김로진2024-09-29 13:01:16
[DMZ Docs] 소리 없는 아우성
비(非)극장 상영 프로그램 <침묵하는 다리들>(2023

침묵하는 다리들(Muted Bridges)
감독: 얀웨이양 Yan Wai 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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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개막했다. 다큐멘터리영화를 실컷 볼 수 있는 장이다. 일산 메가박스 킨텍스,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롯데시네마 주엽, 일산호수공원 노래하는 분수대,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헤이리시네마, 수원시미디어센터, 갤러리그리브스 등지에서 43개국이 참여한 140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2024년 16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 슬로건이 '우정과 연대를 위한 행동'이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단어가 연대 아닐까 싶다.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2023년부터 비(非)극장 상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올해 주제가 '풍경 landscape'이라고 한다. "생활 세계의 공간들과 거리, 건축, 조경, 자연의 풍경 안에서 오늘날 세계가 처한 위기와 관경, 저항의 운동들을 식별"(공식홈페이지 인용)한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얀웨이양의 '침묵하는 다리들'을 관심 있게 보고 왔다.

일전에도 홍콩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적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아비규환이었던 시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이번 양웨이양의 작품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3분밖에 안 되는 영상이지만, 도시의 풍경, 특히 홍콩의 다리 5개를 비추는 카메라가 함의하는 바가 크다. 감독이 조명한 다리는 홍콩 민주화운동 당시 정치적 슬로건과 항의문, 대자보로 뒤덮였던 장소다.
그 장소가 지금은 너무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거의 표백에 가깝다. 한때 뜨거웠던 시간을 모조리 소거해버린 풍경은 몇 년 전의 풍경보다도 살풍경하다.

3분의 영상 앞에서 잠시 홍콩의 거리 시위 현장을 오버랩해 본다. 뜨거웠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화롭다. 깨끗해진 홍콩의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그때의 열기를 잊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 깨끗한 다리에 때가 타고 발자국이 찍히는 동안 홍콩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마저도 잊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누가 기억해 주나.
아마 얀웨이양 같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닐까. 그러므로 기록한다.
왕가위가 작품으로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반환 직전의 홍콩 분위기 역시 진작 잊혔을 것이다. 모두가 사랑했던 그 시절 홍콩은 사라지고, 이제 중국화된 홍콩이 남아 있다.
지금 동두천시가 미군 위안부 성병관리소를 철거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반발이 거세다. 기록물을 지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3분의 다큐멘터리 앞에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폭력과 광기의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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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6.~ 10.02. 레이킨스몰 3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6일 - 10월 02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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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속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디스클로저 (Disclosure : Trans Lives on Screen, 2020)
<센스 8>이나 <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같은 다양한 작품에서 LGBT 사회, 그 중 트랜스젠더인 인물들이 등장해 미디어에서 그들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 있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편견들과 왜곡된 이미지들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14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미디어 속 고정된 트랜스젠더 역할의 비판 및 실제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주변 매체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말한다.
<더 많이 보여질수록, 괴롭힘당한다>
우리가 흔히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에도 트랜스젠더의 상황이 들어맞는다. 그들이 스크린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오히려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를 묘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이들의 심리적 두려움으로 번져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970년대만 해도, <플립>과 같은 드라마 속에서 트랜스여성은 일종의 ‘유머코드’를 위해 존재했다. 그들이 등장할 때면 관객의 웃음 소리가 백사운드로 삽입되었고, 이를 TV로 보는 시청자들이 이들에게 가지게 되는 인상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완전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이 아닌 특정 행위를 즐기는 ‘크로스드레서(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을 일컫는 말)’라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이 행동은 당시 법적인 제제를 받기도 했으며, 이런 사회적 인식은 여성의 이미지를 폄하하는 전형적인 잘못된 예시이다.
여기에는 인종차별적 문제 또한 있다. 흑인 남성이 드레스를 입는 장면들에 대한 일정한 클리셰가 있는데, 남성성의 억제라는 것을 희화화하여 보여주는 의미이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매체에서 다뤄지며 유색인종인 트랜스젠더는 마치 존재할 수 없다는 듯한 폭력적인 인식을 계속해서 심는다. 영화는 인터뷰 중간중간 이들이 직접 봐왔던 영화나 비디오 속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제대로 이들의 생활을 보여준 것들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성장과 트랜스 과정을 겪게 되면서 주위의 도움이 절실했고,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트랜스젠더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미디어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범죄의 타겟이 되어 피해자로 등장하고, 주변 인물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존재를 숨겨야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슬프지만 주변 환경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매체는 당사자의 감정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에 더 공감하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에서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제는 트랜스젠더 시청자들의 입장을 더 생각하고, 그들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다행히도 지금은 여러 미디어에서 이들의 일상을 잘 그리고 있어 스토리에 더욱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인물은 <센스8>의 노미 마크스이다. 트렌스 여성인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자신을 표현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인물로, 전문 해커로서 유능한 커리어우먼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트렌스젠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미래 세대는 미디어를 통해 이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미디어에 이어 현실에서의 변화가 무엇보다 최종의 목표이자, 가장 필요할 때이다.
<디스클로저>는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또는 웃음으로 소비되었던 트랜스젠더에 관한 인식을 재확인한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당사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것.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시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제목은 트랜스젠더들이 두려워하는 폭로의 순간을 의미하지만, 이는 더 나아가 회피의 대상에서 이들간의 긴밀한 연대로 이어지도록 투쟁한 그들을 스크린에 담는다. 이제는 미디어가 활동 영역을 넓히고, 그들을 향한 그동안의 잘못된 표현들을 비판할 수 있는 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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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을 괴롭게 하는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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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어?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에게 밥이 가지는 어마무시한 메타포를,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다 알지만, 외국인의 눈에 이 먹보들은 불가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2010년에 발매된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라는 노래는 이별 후에도 밥만 잘 먹더라는 스토리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힘들어 죽겠어도 '밥만 잘 먹으면' 괜찮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러니까 먹는 걸로 장난치면 뒈지게 혼나는 거다. 가정교육의 또다른 이름은 밥상머리 교육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클럽 제로>는 한국인들이 유전적으로 가진 어떤 버튼을 딸깍 누른다.
다행히도 영화를 볼 때 나는 공복이었다. 종일 먹은 거라고는 베이글 하나뿐이었는데, 정말이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술을 좀 마셨다. 영화 때문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 할머니랑 같이 보면 난리 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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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엘리트 학교에 영양교사로 온 노백이 아이들을 굶기는 이야기.
노백은 학부모 회의에서 추천받아 부임했다. '웹사이트'에서 추천했다는 걸로 보아, '안아키' 한의사와 비슷하다. '의식적으로 먹기'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논리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식사의 정치학
예시카 감독은 <클럽 제로>를 '통제'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다. 밥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어도 무방하다. 이를테면 옷을 통제한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날씨와 옷은 상관 없다고 시작하여 점퍼를 벗는다. 그리고 상의를 벗는다. 다음으로는 하의를 벗는다. 사실 인간은 옷 같은 건 필요 없는 존재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줄 안다. 옷이란 자본주의의 폐해이며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나 통재의 소재가 '밥'인 것은 먹는 행위가 가장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원초적이어서 끔찍하고, 원초적이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양태를 통제할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보호자가 필요한 이유는 수십만 개가 되겠으나 그중 보호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아이를 '먹이는' 행위이다. 그러니 수많은 아동학대 중 밥 굶겼다는 항목에 공분한다. 먹이는 자와 얻어 먹는 자에게는 역학관계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밥을 굶길 수 있는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보다 우위를 점한다. 노백의 클래스에 모인 학생들이 점점 노백에게 종속되는 것처럼.
학생들의 식사를 통제할 수 있게 된 노백은 완전히 그들 위에 군림한다. 마치 사이비 종교 같다. 실제 영화에서 노백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사이비와 다름 없다. 정체불명의 '어머니'를 찾으며 계시를 내려 달라 애원하고, 명상하고, 마음 어쩌고를 찾는 것까지. 사이비 교주가 사이비 신도들을 꾀는 방법과 유사하다. 사이비 신도들이 절대적 믿음을 갖는 순간, 교주가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권력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다. 사이비 종교를 다룬 무수한 콘텐츠들에서 발견되는 맥락과 같다.
접근 방식도 비슷하다. 각자의 약점과 결핍을 파고든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부모 같은 자애로운 사랑을, 특히 부모가 동생만 데리고 떠난 아이에게는 '너만이 내 특별한 아이'라는 환상을 심어 준다. 가난한 싱글맘을 가진 아이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자극하며, 체중 관리를 하는 아이에게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한다.
문제되는 지점은 이들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이다. 교장 선생에게도 노백은 '의식적으로 먹기'를 설파하지만, 식사량을 줄이던 교장 선생은 '처음에는 좋았지만 힘들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다르다. 맹목적인 믿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논리적으로 격파하지 못한다. 종국에는 다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노백의 말만 따른다.
미성년자-그중에서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프로아나'라는 용어가 있다. '아노렉시아(Anorexia)'를 찬성(Pro)한다는 이상한 용어인데, 이들에게도 별 희한한 '믿음'이 있다. 뼈만 보일 만큼 빼빼해지면 모두가 자기를 사랑할 거라는. 프로아나를 지향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정상 체중이다. 밥에도 미쳤지만 외모 강박에도 미쳐버린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쪽에서는 먹방이 난리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프로아나가 난리다.
사실 제3자의 눈에는 이들이 빼빼마른 몸이 아니라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것이 훤히 보인다. 맹목적인 믿음에 빠진 그들만 모를 뿐이다. 사랑에도 정치가 있으니, 권력은 당연히 사랑을 주는 자에게 있다.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부모와 자식간에도, 연인간에도. 노백의 학생들은 노백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단식에 이른다. 부모나 친구로부터 생긴 구멍을 노백이 채워주므로.
노백이 처음에 주장한 '의식적으로 먹기'도 적당히 하면 중요하다. 식사를 통제하고, 의식적으로 액상과당과 탄수화물을 줄이고, 생활을 통제하고, 핸드폰 적게 하고. 우리는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입에 음식을 집어 넣는가. 입이 심심하니까.
노백의 학생들도 초반에는 몸이 가벼워지고, 능률이 오르고 일시적으로 당뇨가 호전되는 경험을 한다.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성인이라면 '적당히'를 안다. 이 정도 통제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통제가 극단으로 치닫는 까닭은 아마도 구멍 때문일 것이다. '결핍' 말이다.
내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면 내 구멍을 찾아야 한다. 외로움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사랑인지. 프로아나 여학생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사랑'이기에 사랑을 받기 전까지는 몸이 걸레짝이 되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노백의 수업은 통제와 가스라이팅을 하려면 반드시 구멍이 있는 자를 찾아야 한다는, 그리고 그 구멍을 집요하게 파야 한다는 이상한 교훈을 안겨 준다.
밥 잘 챙겨 먹자. 맛있는 거 '의식적으로' 먹고,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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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제로(Club Zero)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상영시간: 110분
주의: 역겨운 장면 있음. 저는 비위 약해서 눈 감고 봄.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대받아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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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행위를 통해 서늘한 질문을 던지는 '클럽 제로'
새로운 선생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스 노백(미아 바시코브스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미스 오백. 엘리트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학생들에게 건강한 식습관을 전달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다방면으로 채운 수많은 수업 도구들. 이 미스 노백의 풍부한 준비성은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다. 노백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 수업을 듣는 이유는 각기 다양했다. 누구는 장학금을 받고 싶었고, 어떤 아이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소한 이유에서 학생들이 청강하게 된 시작한 이 수업은 점점 더 광기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아연실색하는 부모님과 선생님들. 하지만 이 광기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씨네랩 감사합니다!) 가장 먼저 떠올린 작품은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인에게 서려있는 집에 대한 강박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면서 집에 대한 이야기와 어떤 영화로서의 맥락이 서로 겹쳐 보인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 <클럽 제로>는 먹는다라는 소재와 ‘그 어떤 영화’로서의 맥락을 겹치고 있다. 특히 여주인공 미스 노백이 아이들에게 갖는 이미지가 그런데, 인물들이 갖고 있는 결함을 노백이 채우는 듯한 묘사가 이 맥락으로서의 이미지를 더 한층 강화시킨다.
이런 비유가 그냥 단지 있어 보이려고 넣은 건 아니다. 물론 엄태화, 제시카 하우스너 감독님에게 진짜 ‘그냥 넣으셨나요’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글쓴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지적하는 것이 집이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필수적이라는 비유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클럽 제로> 역시 마찬가지다. 먹는다는 행위를 인간의 어떤 모습과 대비하고 싶었는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는 인류의 필수조건을 충족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현대인들에게 '먹는 것'에만 한정 짓는 것이 아닌 맹신과 불신을 다뤘다는 점에서 중요한 설정이 되는 것이다.
이 다른 텍스트(맥락)를 가져온 감독의 의도는 시각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잘 짜인 미장센으로 이루어져 있다. 웨스 앤더슨이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근거에 미장센을 두는 것이다. 이 이유는 웨스 앤더슨이 관점에 대해 다룬 영화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도 중요한 연출 방식이었다. 이런 식의 비유가 1대1로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미장센이 이야기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점이 있다고 느껴진다. 이 영화를 우화같이 연출해야 이 맥락과 닿는 부분이 있는데, 이 맥락으로 읽는 것의 토대가 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책 몇 권이 떠오른다.
사운드의 힘
이 영화에서 강박적인 미장센도 인상 깊지만 그거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운드다. 이 영화는 시/청각적으로 관객을 압박한다.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 경우가 되는 것이다. 특히 '험~'하는 소리는 여러 관객에게 인상 깊을 것이다. 왜 이 장면들이 기괴할까? 이는 감독이 영화의 소리들을 전부 장악했고, 그 나름대로 통제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청각적인 측면에서는 감독이 섬세한 분인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소리를 넣어야 관객이 기괴하게 느끼고 영화의 생동감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한 섬세한 연출력 덕분이기도 하다.
또 위에서 쓴 바와 같이 청각적인 것만큼이나 시각적인 요소에 집중하기도 했다. 이는 웨스 앤더슨 같은 강박적인 미장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먹는 행위를 어떻게 묘사했는지도 주의 깊게 볼 만하다. 이 역시 영화의 모든 언어를 통제한 감독의 연출력이 강점이 되는 부분이다. 반대 측면에서 약간 역겹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더 웨일>을 생각하면 쉽게 머릿속에 이 모습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서늘한 질문
이 영화에서 약간 현실성이 없다고 느낄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 아-무 의심 없이 미스 노백에게 현혹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야 말로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는 앞에서도 적었듯 하나의 우화처럼 연출했다. 우화처럼 연출했다는 점은 이야기에서 우리 인류의 모습을 일반화하겠다는 의미다(<별주부전>에서 게으른 인간상에 대해 이야기했던 바와 유사하게). 아이들이 가진 각기 다른 결핍과 이를 주체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모습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시면서 '이건 핍진성/개연성의 문제 아닌가?'라고 생각하시는 것보다 '감독이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라고 생각하시는 걸 추천한다.
문과생에게 미적분 같은 느낌
이렇게 <클럽 제로>는 우화 같은 이야기로 라이프스타일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는 예술영화가 우리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이 영화가 가진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영화 분명 쉽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나 <보 이즈 어프레이드>처럼 고난도의 예술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 두 영화만큼이나 굉장히 심오하고 난해하게 느낄 부분도 몇 있다. 이 장면에서 그냥 일반적인 예술영화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영화를 좀 보는 사람에게 오히려 추천하고 싶다. 사실 이 영화는 예술영화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예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난해할 수 있어도 꼭 보면 좋을 영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힘에 강세를 뒀기 때문에 뭔가 다른 구멍도 느껴진다. 이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이, 특히 촬영과 관련된 부분이 깔끔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먹는 행위와 우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방식은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 그런데 촬영에서 시각적으로 보기가 편하지는 않았다. 이 역시 기괴한 시청각적인 요소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굳이 이 부분에서까지 이런 표현법이 들어갔어야 했는가? 는 의문점이다. 영화에서 날것의 흔적이 난다는 것이, 미장센의 완성도가 뛰어나지는 않았다는 관점에서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다. 감독님에게 '의도가 있었나요'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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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페이스 | 에로스 뒤에 숨은 소유욕을 파헤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상 편지만 남겨두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 첼리스트 '수연'(조여정). 수연의 약혼남이자 그녀가 속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성진'(송승헌)은 그녀 자리를 비워둔 채로 고통 속에서 기다린다. 하지만 수연의 잠적이 길어지자 그는 그녀의 후배 첼리스트 '미주'(박지현)를 대체자로 뽑는다. 매일 같은 연습 중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성진과 미주는 비 오는 밤, 성진과 수연의 신혼집에서 서로의 욕망에 휩쓸린다.
에로스의 두 얼굴, 성애와 소유욕
그리스 신화를 수놓은 신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다. 비록 12주신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그를 간과할 수는 없다. 에로스의 황금 화살이 아니었다면 파리스와 헬레네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트로이 전쟁도 없었을 테니. 그의 기원은 여러 전승이 전해진다. 일반적으로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사이의 아들로 알려졌지만, 때로는 카오스만큼 오래된 고대의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플라톤의 '향연'은 또 다른 기원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에로스는 풍요의 남신 포로스와 결핍의 여신 페니아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머니를 닮아 늘 결핍을 느끼기에 아버지의 풍요로움을 갈구했다. 즉, 자기 자신의 풍요로움을 위해 상대를 동경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인 셈이다. 그런데 이는 사랑과 탐욕이 한 몸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랑에 빠지는 순간, 상대를 가지려는 소유욕은 뒤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인간중독> 이후 10년 만에 공개된 김대우 감독의 신작 <히든 페이스>는 에로스의 또 다른 얼굴, 소유욕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세 주인공의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수연의 잠적을 조명하며 그들의 위계가 전복되는 과정을 긴장감 가득하게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에로스가 소유욕에 의해 추동된다는 사실도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히든페이스>의 관능미는 퍽 인상적이다. 마지막 순간 매력을 일부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탁월한 에로스
<히든페이스>는 크게 세 시점으로 나뉜다. 수연이 성진을 떠나겠다는 영상만 남기고 잠적한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하나다. 이 내용은 성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3개월 전 시점도 있다. 수연과 성진이 독일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순간부터의 이야기가 수연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7개월 전의 이야기가 있고, 수연의 결혼 소식을 들은 미주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현재 시점의 내용만 놓고 보면 <히든페이스>는 평범하고 에로틱한 불륜 이야기일 뿐이다. 수연은 갑자기 잠적하고, 성진은 그녀를 대신할 오케스트라 단원 미주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녀에게 조금씩 빠져든다. 수많은 우연을 핑계 삼아서. 미주의 차가 고장 났다며, 비가 았다며, 술에 취했다며, 대리 기사가 늦었다며. 여러 공통점도 발견한다. 알고 보니 둘 다 자수성가했고, 와인 맛도 커피 맛도 모르고, 넓은 집이 불편하다고.
김대우 감독의 절묘한 연출 덕분에 성진의 일탈에서는 불륜 이외의 함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성진과 미주의 눈이 맞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성진이 미주의 연주 녹음을 듣는 순간, 그전까지는 고정된 구도를 유지하던 카메라가 갑자기 흔들린다. 마치 미주라는 돌멩이 하나가 성진의 마음에 떨어져서 파동이 퍼져나가듯이.
전작인 <인간중독>과 겹치는 연출도 야릇한 분위기를 정점으로 이끈다. 성진이 차 뒷좌석에 앉아 대리 기사를 기다리면서 미주를 바라볼 때, 그가 오케스트라 연습 중 미주에게 반한 순간이 교차된다. 이 부분은 <인간중독>에서 회의 중인 김진평(송승헌)이 종가흔(임지연)과의 밀회를 떠올리는 장면을 똑 닮았다.
에로스라는 가면을 벗다
하지만 수연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히든페이스>의 에로스는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녀의 소유욕이 밝혀질 때, 다른 두 주인공이 감추고 있던 욕망도 비로소 구체화되기 때문. 수연은 미주와 성진 모두를 갖고자 한다. 수연과 미주는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연인이었다. 다만 서열은 분명했다. 미주는 수연의 노예였다. 첼로 레슨 선생님 집에 숨겨진 창고에서 미주가 자기 발목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뒤 수연에게 열쇠를 맡길 정도로.
그와 동시에 수연은 성진도 온전히 손아귀에 넣으려고 한다. 한국에 입국한 뒤 성진의 애정이 식었다고 느껴지자, 자기가 실종된 것처럼 상황을 꾸며서 성진을 시험하려고 한다. 예전 선생님 집을 리모델링해서 신혼집을 꾸민 점에 착안했다. 미주와 밀회를 나누던 창고에 숨은 뒤 성진의 반응을 지켜보려는 것. 흥미롭게도, 수연의 욕망이 가시화되자 성진과 미주의 행동 역시 소유욕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힌다.
일례로 성진은 지휘자이지만, 오케스트라 단장이 예비 장모인 관계로 그의 음악 취향과 선호도는 무시당하고, 오케스트라도 온전히 자기 뜻대로 이끌지 못한다. 신혼집도, 결혼 생활도 온전히 그의 소유는 아니다. 신혼집은 수연의 것이고, 집안 사정의 차이 때문에 그는 예비 장모 앞에서 당당할 수 없으니까. 반면에 미주는 그 누구보다, 무엇보다도 성진이 손쉽게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다. 자기 오케스트라 단원일 뿐만 아니라 고아니까.
소유와 지배의 역전
하지만 7개월 전 미주의 시점에서 보면 성진과 미주의 관계, 더 나아가 미주와 수연의 관계는 다시 한번 전복된다. 수연은 미주에게 일방적으로 성진과의 결혼을 알린다. 수연의 새 집 리모델링 공사도 맡아서 도와주던 미주는 이에 복수를 다짐한다. 그 일환으로써 미주는 성진을 포함해 수연이 소유한 모든 것을 빼앗으려 든다. 즉, 성진이 미주를 가진 것이 아니라, 실상은 미주가 성진을 소유한 셈이다.
특히 미주는 성진을 차지하는 모습을 일부러 밀실에 갇힌 수연에게 보여준다. 그 순간 그들의 주종관계는 완벽히 역전된다. <히든페이스>에서 밀실은 소유당하는 사람의 공간이다. 안방 거울 뒤에서 그저 밖의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고,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외부인의 호의에 기대야만 하니까. <히든페이스>는 밀실의 주인이 계속 바뀌는 스릴을 통해 에로스의 숨은 모습을 드러내고, 단순히 야한 영화라는 편견도 깨버린다.
예상 못한 씁쓸함
수연과 미주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세 주인공의 에로스는 씁쓸한 지점도 있다. 밀실은 지배당하는 사람, 소유의 대상이 된 사람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여전히 용인받지 못하는 동성애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 단적으로, 수연과 미주는 교수님의 시야 밖이라고 생각했던 창고에서 사랑을 나눠야 했던 것만 보더라도 그 함의를 알 수 있다.
미주와 성진에 대한 소유욕도 수연이 레즈비언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수연은 미주에게 결혼 사실을 알리면서 성진과의 결혼을 '진짜 삶'이라고 표현한다. 성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와의 결혼은 사회에서 용인하는 정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 미주와의 관계와 달리. 만약 동성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였다면 수연의 독단적인 결단도, 그로 인한 미주의 복수도 불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수연이 성진과의 결혼 생활도 유지하고, 미주도 지배하며 그들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결말은 씁쓸하다. 정상화한 듯 보이는 그 상태가 애초에 정상이 아니기 때문. 동성애를 이성애와 같은 사랑의 한 형태로 대할 수 없고, 동성애인이라는 관계가 사회적 지위와 평판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밀실에 가둬야 한다는 의미니까. 이는 아직도 관용적이지 못한 사회상을 곱씹을 수 있는, 예상외의 깊이가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스스로 갑옷을 벗다
사실 <히든 페이스>는 다소 양식적인 영화다. 수연과 성진의 신혼집의 구조나 밀실의 존재 등은 사랑의 틀을 쓴 소유욕의 위계를 보여주려고 애초에 설계한 공간이다. 뒤집어 말해 <히든 페이스>는 영화적 허용에 기대는 작품이다. 특정한 의도를 지니고 특정한 소재를 다루려는 작품이기에 설령 몇몇 현실적이지 않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지점이 있더라도 능구렁이처럼 넘어가 달라고 말하는 영화인 셈이다.
후반부의 급전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여지가 있다. 일례로 클라이맥스 직후에 성진과 미주의 태도는 급작스럽게 변한다. 성진과 예비 장모의 갈등, 경찰 수사 등도 유야무야 된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의도적인 생략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영화의 의도를 고려하면 소유관계를 시작점으로 복구하면서 스토리의 형식을 갖추고, 성소수자의 현실을 반영하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히든페이스>가 스스로 영화적 허용을 깨는 것. 밀실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 등장하는 순간, 그 설정의 부자연스러움은 더 강조된다. 그전까지는 흐린 눈을 하던 사건이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설명이 필요해지니까. 이는 인물 간의 관계나 사건을 급히 마무리하고 그 과정을 건너뛸수록 후반부의 빈 공간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결국 <히든페이스>는 판만 벌여놓고 정리를 회피하는 모양새로 끝나 버린다.
후반부의 맥 빠지는 전개는 다른 장점을 희석시키기에 더욱 아쉽다. <히든 페이스>는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답게 도발적인 설정과 소재를 인간 본성과 사회상에 대한 성찰까지 확장시키는 영화다. 여배우의 과감한 노출이나 높은 수위의 연출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야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러한 장점이 묻히고, 평범한 관능애적 영화로 격하시키는 인상을 주고 말았기에 마무리는 더욱 아쉽다.
Acceptable 무난함
본능적이라서 공감하고 특수해서 안타까운 에로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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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숨>은 무엇을 찍고 무엇을 말하는가
영화 <숨>은 네 개의 이미지가 교차되며 시작한다. 타오르는 불과 드넓은 물(바다). 이제 막 몸을 뒤집고, 걸음마를 떼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는 아기의 움직임과 이제는 어떠한 미동도 없이 차갑게 식은 망자의 고정된 몸. 각각 생명력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교차하며 영화는 시작부터 삶과 죽음의 대비, 경계, 혹은 순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때 들리는 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이다. 이것은 생명력을 가득 머금은 소리 같기도 하고, 이제 막 그 호흡이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의 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다시. <숨>은 그 시작에서 삶과 죽음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사이를 기필코 감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크게 삶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 있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노인과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 폐지 줍는 노인의 주름진 몸과 느릿한 움직임은 이제 그는 삶의 시간을 대부분 정리하고 죽음에 더 가까이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노인이 생활하는 집, 그가 잠에서 깨 일어나는 모습, 얼굴을 씻고 밥을 짓고 식사를 하는 모습, 하루에 천오백 원 남짓한 돈을 벌기 위해 폐지를 줍는 모습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생’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늙고, 주름지고, 느리고 힘들어도 그는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고, 잠에서 일어나고 밥을 먹고 일을 하는 것은 전부 생의 유지를 위한 일이다.
아쉬운 것은 그 생의 유지를 위한 활동과 움직임을 보는 영화의 시선이다. <숨>은 유재철 장례지도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부자도 가난한 자도 똑같다고 말한다. 그 장면의 앞뒤로 이 노인을 배치할 때 <숨>의 태도는 과연 그 내레이션과 일치하는지 묻고 싶다. 이를테면 영화의 중반부, 노인을 비추며 감독의 목소리는 이렇게 내레이션한다. 이 폐지 줍는 노인은 한때 성공한 사업가였다고. 이 내레이션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것과 공명하는 건 김새별 유품정리사의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고독사한 누군가가 생전 받았던 장영실상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대단하신 분인데 왜 이렇게 좁은 방에서 사시다가 가셨을까, 하는 유품정리사의 혼잣말. 부자도 가난한 자도 죽음 앞에서는 똑같고 좁디 좁은 관에 들어가면 모두가 똑같다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건 영화가 과연 그 말과 동일한 태도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냐는 의문 때문이다. 좁은 관에 들어가는 건 다 똑같다는 그 말. 하지만 ‘대통령의 염장이’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인도하는 그 관은 수많은 언론사의 카메라가 찍는 관이다. 한때 장영실상을 받았으나 결국 좁은 집에서 고독사로 생을 마무리한 그의 죽음은 유품정리사의 말처럼 “관공서 컴퓨터 안에 이름 세 글자”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모든 죽음이, 모두가 죽음 앞에서 똑같다는 영화 <숨>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숨>이 자신의 태도를 일관적으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죽음을 더 존중했어야 한다.
*씨네랩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다녀온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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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뉴먼츠 맨
모뉴먼츠 맨
전쟁은 고도의 경제행위라고 맑스(레닌인가?)는 말했다. 특히 침략국-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청일, 러일 전쟁과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습격한 일본-은 전쟁을 일으켜야 하는 구체적 명분을 대외에 공표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전쟁의 합리적 이유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 자체가 이미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경우, 이미 16세기 초(1510년 경)부터 왜구들이 조선의 남해안 일대를 꾸준히 침략해 노략질을 하고 있었고, 조선관군, 수군은 왜구의 난동을 진압하느라 고생했다. 1510년 4월에 삼포왜란이 일어났고, 1555년에도 을묘왜변이 발생해 지역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16세기 들어서면서 전국시대에서 내부적 통일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오다 노부나가가 통일을 추진했으나 통일을 완성한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일본의 각 지역 영주들이 권력의 서열을 인정하고, 위계질서가 확립되며, 일본의 내정이 안정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통일은 했지만, 지역 영주의 존재는 여전히 중앙 정부를 위협하고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력과 권위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조선 침략의 명분은 일본이 명나라를 공격할 것이니 조선은 길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고, 그런 말을 한 일본도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표는 세 가지였다. 자신이 명나라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명나라의 황제와 자신을 동급으로 격상하는 것, 결국 권위와 권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내부의 문제를 전부 봉합하고, 군사를 모으려면 지방의 영주들에게 소속된 군인을 차출해야 하는데, 이는 지방 영주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지방 영주가 전쟁에 참가하도록 해 결국 자신의 명령 체계를 따르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조선을 침략해 마음껏 조선의 재물을 약탈할 수 있으니 당시 일본보다 앞선 문화의 조선에서 온갖 금은보화, 예술품을 약탈해 일본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일본이 조선보다 앞선 분야는 전쟁무기였다. 일본은 15세기 후반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유럽 상인들에게 조총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조선과 똑같이 칼, 창, 활 등 재래식 무기만 쓰던 일본의 영주들은 유럽의 조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한 발 장전하고 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무기였지만, 활보다 먼 거리에서 적을 살상할 수 있고, 살상력 또한 매우 높다는 점에서 신무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유럽의 16세기 전쟁에서도 드러나듯, 조총부대는 2열 또는 3열로 서서 1열의 군인이 총을 쏘면, 2열의 군인이 장전된 총을 건네주고, 3열의 군인이 재장전을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따라서 총을 발사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면 적을 살상하는 공격 효과가 시간에 비례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권력의 확립, 내부 문제의 봉합, 침략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조선을 침략했고, 초기에는 일본의 의도대로 성공하는듯 했지만, 7년 전쟁을 통해 일본은 패배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본은 조선의 재물과 사람을 약탈해 일본으로 가져갔고, 지금도 조선의 보물 일부가 일본의 보물로 지정, 전시되어 있으며, 도자기 장인을 비롯한 많은 조선사람이 일본에서 문화, 예술의 수준을 향상시켰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발발했지만, 전쟁의 발화는 1871년 보불전쟁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비스마르크는 독일제국을 통일하고, 독일은 산업과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한다.
1차 세계대전의 직접 원인으로 알려진 사라예보에서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은 당시 유럽의 복잡한 정치, 민족 구조가 원인이었고,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세르비아가 10개 항목 가운데 8개 항목을 수용했음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전쟁을 선포한다. 이어서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독일이 러시아를 향해 선전포고한다.
이렇게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이미 아시아에서 식민지를 넓혀가고 있던 일본은 연합군에 합류한다.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었고,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향해 선전포고 한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얻은 이익은 상당하다. 우선 아시아에서 국제적 발언권과 영향력이 높아졌고, 중국에 있는 독일의 조차지인 산둥반도와 태평양의 독일령 남양군도를 점령해 식민지를 확대하는 이익을 봤다.
독일을 포함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터키), 불가리아 왕국은 전쟁에서 패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영토와 인구를 잃는다. 독일은 외국 식민지를 모두 잃고, 본토 역시 알자스, 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빼앗겼으며, 무엇보다 연합국에 배상해야 할 전쟁배상금으로 목이 졸린 상태가 되었다.
1918년 11월 11일, 전쟁이 끝났지만 유럽에서는 약 9백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그리고 불과 20년이 지나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데, 전쟁을 일으킨 주역이 다시 독일이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이 비용이 너무 막대해 독일 국민의 불만이 높았고, 극우 정당인 독일사회민주당에서 히틀러가 총통으로 등장하며 독일 국민의 불만을 인종차별과 유대인 학살, 전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히틀러의 전략은 16세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쓴 전략과 같다. 내부의 불만 즉, 독일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프랑스, 영국 같은 주변 국가의 압력으로 돌리고, 전쟁배상금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유럽 전체에서 미움을 받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키워 나간다. 유대인은 이미 역사적으로 비유대인들의 미움을 받는 존재였으며, 유대인 학살은 여러 세기를 거쳐 크거나 작게 늘 있어왔던 사건이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순수혈통론을 내세우며 유대인 말살 계획을 세운다. 독일 영토에 살던 유대인은 게토로 강제 이주당하고, 독일이 침공한 폴란드를 비롯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유대인은 게토와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소유한 모든 '동산'을 압수했다. 유대인들이 게토나 수용소로 갈 때는 가방 한두 개의 단촐한 살림일 수밖에 없었는데, 집에 있던 재산 가운데 미술품, 가구, 은식기, 은촛대 등 값비싼 세간은 독일군이 모두 압수해 체계적으로 분류, 보관했다.
나중에 유대인 학살이 본격 진행하면서 유대인이 소지하고 있던 보석, 목걸이, 반지를 비롯해 심지어 금이빨까지 수집해 따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런 물건들이 전쟁이 끝난 다음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금괴 100톤를 발견하자 당시 최고사령관이던 아이젠하워와 브래들리, 패튼이 금괴가 있는 광산까지 찾아와 사진 찍는 장면이 나온다. 예술품을 찾는 작전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지휘관들이 금괴의 발견에 호들갑을 떨며 나타난 것은, 이 전쟁의 속성을 드러낸다.
실제, 연합국 가운데 미국과 쏘련은 독일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뺐은 예술작품과 금괴 등을 자기 나라로 가져갔다. 영화에서는 예술품이 인류의 유산이고, 원래 있던 곳으로 온전히 반환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또 실제로 대부분의 예술품은 원래 있던 지역으로 돌아간 것도 사실이지만, 군인들의 개별적 약탈까지 막지는 못했다.
독일이 예술품을 비롯한 가치 있는 재산을 '전략적'으로 약탈한 것과 달리 미국과 쏘련은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금괴를 제외한 예술품 등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약탈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군이 유럽에서 저지른 범죄는 만만치 않다. 전쟁 시기에는 어느 나라의 군인이든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르기 마련인데, 이것은 연합군이건 추축국이건 가릴 것이 없는 전쟁범죄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약탈한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 미국 TV프로그램인 '전당포 사나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유럽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물건들이 개인의 손에 들려 전당포로 오게 된다. 전당포에서는 이 희귀한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빙해 확인하고, 비싼 값으로 거래된다.
물론 모든 물건이 약탈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전쟁 이후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민 왔고, 그 과정에서 희귀한 물건을 소지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유럽의 희귀한 물건들이 나오는 것이 꼭 미군의 약탈로 인한 것이라는 단정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개별적 약탈은 한 사례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군이 본격 약탈을 시작한 건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 이후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이 아직 독립하기 전인 18세기 초반부터 미국은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에 진출하면서 이미 약탈을 시작했다. 미국은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기 전부터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면서 폭력으로 다른 나라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살육해 멸종에 이르게 했고,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약탈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국가대 국가의 약탈까지는 아니어도 개별적 약탈과 일부 지휘관의 암묵적 약탈 행위를 눈감아 주는 방식으로 점령국의 예술품과 금괴 등을 미국으로 가져갔다.
이후 중동에 직접 개입하면서 미국은 드러내놓고 약탈한다. 그것도 군인 개별적인 약탈이 아니라, 군의 지휘부의 통제에 따른 전략적 약탈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곧 미국의 공식 입장이며, 미국 정부가 미군을 통해 약탈을 계획, 집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가장 먼저 무력으로 확보한 곳은 은행, 박물관, 미술관 등이었다. 전쟁과 동시에 이곳은 이미 약탈당하고 있었는데, 미군은 약탈을 방조, 방관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약탈의 주범이 자기 나라 국민이라는 점에서, 이라크도 할 말은 없지만, 미군 역시 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약탈했으며, 특히 은행 금고에 있던 금괴를 미국으로 반출한 의심을 받는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나라다. 8천톤이 넘는 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온전히 미국땅에서 나온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금본위제 당시 벌어들인 금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와 너무 심하게 차이가 많이 난다. 금은 약탈 품목에서 최우선이었다. 미국은 17세기부터 다른 나라를 침략해 금을 약탈했으며, 이렇게 모인 금과 19세기 중반(1840년대) 미국에서 '골드 러쉬'가 일어나 금광과 사금 등 금을 캐는 사람이 캘리포니아로 몰리면서 몇 년 사이 금광에서 캔 금은 수십 톤이 넘었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미국과 캐나다에 맡긴 금이 더해졌다.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게 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미국과 캐나다에 금을 맡겼다.
미국은 '전시무기대여법'을 시행하면서 연합군에게 무기와 피복, 식량, 각종 장비 등을 빌려주거나 팔았는데, 이때 대금의 상당 부분을 금으로 환산해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약 2만2천톤의 금을 보유할 정도였는데, 이는 당시 세계 전체 금 보유량 2만9천톤의 약 80%에 해당하는 양이다.
금본위제를 시행하던 시기, 미국은 35달러에 30그램의 금을 교환하는 정책을 폈고, 달러를 금과 맞바꾸면서 달러는 기축 통화로 자리잡는다.
미군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한국의 문화재를 약탈한 증거가 있다. 한국전쟁은 이념전쟁이자 강대국의 대리전쟁이라는 성격을 갖는데, 우리에게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지만, 강대국 특히 미국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목적과 공산주의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의도로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도 약탈을 자행했다.
이 영화는 미군의 특수부대-예술품 반환-의 활약을 그리고 있지만, 영화의 긍정적이고 감동적인 장면만 볼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미국은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고, 보편적 정의를 실현한 것도 분명하지만, 그들이 드러내기 꺼려하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삭제된 전쟁범죄 또한 엄청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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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 끝장리뷰 | 신앙에 대한 긍정 or 부정 해석 | 나비, 눈(snow) 상징 | 상승과 하강 | 두 자아
[헤레틱](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긍정 or 부정 (1)
Chapter 2 긍정 or 부정 (2), 두 자아, 상승과 하강
00:00 A24와 헤레틱
00:41 종교와 영화
02:02 신앙 부정
06:15 눈과 나비
07:24 신앙 부정
08:34 두개의 자아
09:11 상승과 하강
10:08 별점 및 한 줄 평
10:2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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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 2차 예고편 속 '이중 매트릭스' 의 증거?! | 매트릭스 리저렉션 예고편 리뷰 | 매트릭스 결말포함 영화리뷰 | 매트릭스 리뷰 | 매트릭스 요약 | 매트릭스 스토리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2차 예고편 리뷰
+ 매트릭스1,매트릭스2,매트릭스3 결말포함
+ 매트릭스 스토리 해설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2]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매트릭스4 #매트릭스4예고편 #매트릭스_리저렉션《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 예고편 리뷰
+ 매트릭스1,매트릭스2,매트릭스3 결말포함
+ 매트릭스 스토리 해설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2]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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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임크라임> 30초 예고편
다세대촌에 살고 힙합을 좋아하는 소년 ‘송주’, 가수 이센스는 그의 영웅이다.
아파트 부촌에 살고 있는 반 친구 ‘주연’과 함께 둘은 힙합팀 ‘라임크라임’을 결성한다.
두 소년은 힙합 성지 ‘밀림’의 무대에 오를 꿈을 꾸며
함께 랩을 하기 위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 차이가 둘의 길을 갈라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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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아이스 에이지 : 벅의 대모험> 와일드한 친구들 예고편
잃어버린 세계로 돌아온 애니멀 가족들이 다시 뭉친다!
벅의 와일드한 매력도 폭발!
매머드 하나 정돈 거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