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9-09 09:54:15
9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비틀쥬스 비틀쥬스> 개봉 첫 주말 1억 달러 넘겼다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개봉 첫 주에 1억 10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흥행 독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데드풀과 울버린>은 2위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한국 박스오피스에서는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요.
개봉 후 누적 관객수 8만여 명을 동원하며 6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 박스오피스 1위는 공포와 SF를 결합한
스릴러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차지했고, 푸바오와 사육사가
함께 했던 날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안녕, 할부지>가 2위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는 한국 관객들의 취향이 북미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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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페르소나,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는 '별남'을 감추기 위해서다. 모든 인간은 별나다. 너무나도 다른, 독창의 존재들은 생존을 위해 한 데 모여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물질과 감정을 공유하고, 나아가 전인류적 진화를 도모하기 위해 규칙을 정했다. 규칙은 사회화 교육을 통해 계승되며 사회를 지탱하는 패러다임이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유사한 겉모습을 띠게 되었다. 교육은 존중과 배려를 알려줬지만, 인간의 DNA에 새겨진 독창성까지 바꿀 수는 없었으므로, 공존하기 위해선 가면을 써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안정은 곧 예측 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삶은 불확실의 연속이므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물질적 안정을 위해 직업을 갖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가정을 꾸리며, 개인적 안정을 위해 취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변수를 줄이는 하나의 시도일 뿐, 삶은 계속해서 당신을 흔들며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시험에 빠트려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안정은 필연적으로 권태를 동반한기 때문이다. 불안을 피해 안정을 찾아왔더니, 편안함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다시 혼돈으로 들어가려는 인간이라니. 어째서일까?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규칙은 우리를 모으게 만들었지만, 삶의 모습을 규격화함으로써 말하자면 삶의 '이상형'을 만들었다. '세후 월급은 얼마고, 집은 몇 평이며, 결혼과 출산은 몇 살 즈음이 적당하다'는 둥 마치 산처럼 켜켜이 쌓여 올려진 일생 과업을 충실하게 오르는 것만이 참인 명제로 여겨지면서, 평생 정상을 좇아야 하는 추격자 신세가 됐다. 공인된 삶의 형태 속에서 가면은 두터워졌고, 스스로를 돌보기는 더 어려워졌으며, 독창적 의미 창출은 실패했다. 가면을 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도망쳐 하산하거나,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에 오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별난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 재미있는 콘텐츠로 자신의 주가를 높이는 유튜버, AI를 활용해 부를 창출하는 사람을 대하는 스스로를 떠올려보라. 질투? 경외? 멸시? 존경? 독창 DNA에 의해 그 '고유성' 을 응원하면서도, 학습된 규칙에 의해 그 '이질성'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마음이 심하게 비틀리면 '운이 좋았어, 나도 금방 할 수 있는 거야.' 같은 볼멘소리로서 자신과 같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까지 하게 될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르다는 이유로 숭배되고 또 부정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는 휠러 부부와 평범한 두 가정(밀러 부부와 기빙스 가족)이 교차로 갈등하며 별난 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두 얼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꿈 많던 청년 프랭크 휠러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하는 직장인1이 되었고, 진취적인 배우였던 에이프릴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다. 지루한 일상에 몸부림치던 그들은 프랑스 '파리'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직장 동료들과 이웃사촌에게 자랑스럽게 포부를 늘어놓지만 그들의 반응은 썩 달갑지 않다. 눈으로는 웃었지만, 입으로는 씹고 있었다.
그 간극을 눈치챈 휠러 부부가 그들을 조롱한 것은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 속에 숨어 도전할 용기조차 없는 그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계몽을 선보이려는 마음까지 가졌을 지 모른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서로를 듬직한 동료삼아 거대한 혼돈 속으로 투신하여 거대한 안정을 꾀하려했지만, 아주 작은 현재의 달콤함이 둘을 갈라놓았다. 프랭크는 안정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 정상에 오르기를 선택했고, 에이프릴은 권태를 참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권태를 더 큰 안정으로 덮으려는 이와 새로운 자극으로 권태를 잊으려는 이. 행복이라는 목표는 같았지만,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에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쳤다는 게 제대로 사는 거라면, 나는 미쳐도 상관없어.
극 중에서 가장 유별난 것처럼 보이는 존(기빙스 부부의 아들)은 휠러 부부 사이의 불편한 진실을 파고들며 간극을 넓힌다. 파리로 떠나려는 이유는 새로움이 품어낼 긍정적인 미래 때문이 아닌 공허한 현재 때문이라는 사실. 밝은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현재를 참아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벌이는 시도는 도전이 아닌 도망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폭로한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휠러 부부는 세상 속에 편입하기 위해 도망치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권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찾고자 했다. 물론, 파리 정착에 성공했다고 한들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 안정과 동시에 권태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또 다시 도망칠 것인지, 정상에 오를 것인지 물어올 것이기 때문에. 머무를수도 떠날수도 없었던 에이프릴은 결국 아주 먼 곳으로 영영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권태를 무릅쓰고 정상을 향해 박차를 가하던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잃고 나서야 어느 쪽에도 낙원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안정은 권태를 부를 것이고, 권태는 안정을 요할 것이니 우리는 영원히 흔들릴 것이다. 도망칠수도 머무를수도 없는 삶의 굴레에서 조난당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가면을 벗는 것. 공공의 의미가 아니라 나만의 의미를 창출해낼 것. 만들어진 낙원을 찾지 말고 직접 그 낙원을 만들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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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은 감독 '스즈메의 문단속' 후기
스즈메의 문단속
(23.03.08 개봉 예정)
감독: 신카이 마코토
더빙: 하라 나노카, 마츠무라 호쿠토 등
'스즈메의 문단속' 개봉 전 진행한 프리미어 상영회에 다녀왔어요~
너의 이름은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데요
저 역시 너의 이름은 광팬이라 ㅠㅠ 완전 기대한 채로 관람!
미리 말씀드리자면 살짝 실망했다는 게 저의 총평입니다 ,,,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소타를 만난다.
스즈메가 폐허에서 발견한 낡은 문을 열자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쳐오고
가문 대대로 재난을 봉인하는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는다.
재난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나타나 소타를 의자로 바꾸고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는 여정에 떠난다.
'스즈메의 문단속' 줄거리
'스즈메의 문단속'은 지브리 같았어요
남자 주인공 소타의 내외적 모습은 하울 같고, 작화 및 모션은 모노노케 히메를 떠올리게 하고,
지진 등의 재난(환경 문제) 소재를 이야기하는 것까지
분위기를 따라한 거 같다기보다는...... 그냥 지브리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느낌...? ㅎㅎ
그래도 시각적으로는 정말정말 최고였어요
웅장한 미미즈의 등장부터 대박적...!
미미즈는 뒷문을 닫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라 스즈메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인데요
미미즈가 온세상을 뒤덮었다가 한순간에 싹 사라지고 그때의 그 정적... 잊을 수 없어요
애니메이션만큼은 너의 이름은보다 뛰어났어요!
아 근데 이렇게 절정일 때 OST 쫙 뿌려 줄 줄 알았는데 엔딩 크레딧에만 좋은 노래가 나와서 . . .
고게 아쉬웠어요
신카이 마코토 작품은 OST 듣는 맛인데 ㅠㅠ
웅장한 미미즈를 시각으로 즐기라고 그랬나 청각적 즐거움은 1도 주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아쉽다고 느낀 건 스토리 부분이에요
'스즈메의 문단속'에 캐릭터가 아주 많이 등장하거든요
스즈메 / 소타 / 다이진 / 사다이진 / 엄마 / 이모 / 소타의 할아버지 / 소타의 친구 / 이모를 짝사랑하는 남자까지...
씬을 많이 차지하는 인물만 놔도 이 정도예요
그런데 이 많은 캐릭터의 스토리를 모두 보여 주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결국 모두의 기승전결이 망가진 느낌?
스즈메가 자신의 과거를 위로하는 엔딩이었기에 스즈메-엄마의 과거 그리고 현재 이야기는 꼭 나왔어야 했는데
스즈메가 소타와 사랑에 빠진 후부터 엄마 스토리는 아예 생략되고... 마지막만 훅 등장하거든요
이걸 주요 스토리 라인으로 가져가는 거였으면 계속해서 스즈메 엄마 이모 이 관계가 나오게 했어야 해요
그리고 소타 할아버지가 하는 역할이 없어요
스즈메에게 의지를,, 심어 주긴 했지만,, 마지막에 죽는 것도 아니고 스즈메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 캐릭터??
그리고 이모를 짝사랑하는 미노루가 있는데요
계속해서 이모를 좋아하는 씬을 넣길래 스즈메를 도와주며 마지막엔 이어질 줄 알았어요
근데 이게 웬걸 . . . 스즈메와 이모를 돕는 건 소타 친구 토모야예요
그렇다고 토모야랑 잘 되는 것도 아님 왜 등장하죠?
굉장히... 이유 없는 캐릭터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 만큼은 주된 내용이 로맨스가 아니니까......
조금 더 환경, 혹은 가족 쪽으로 끌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해요
스즈메와 소타 둘의 시점으로 진행하려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못 잡고 엉성해진 케이스
아 고양이 너무 귀여워요!!!!!!! 자막판 목소리 완전 포뇨예요 ㅠㅠ
뒷문을 막는 요석인 다이진인데요 고양이로 변해서 막 스즈메를 쫓아다녀요
'스즈메 다정해', '스즈메 나랑 놀자'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자신을 요석으로부터 탈출시켜 준 게 스즈메니까 집착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스즈메에게 열린 뒷문 위치를 알려 주는... 오히려 주인공을 돕는 그런 존재였어요(??)
'스즈메의 문단속'이 지브리 같았다고 했는데
저는 지브리의 의도, 스토리를 잘 이해 못해서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거든요... ㅎㅎ
그래서인지 '스즈메의 문단속'도 막 완전 좋다 이건 아녔어요
웅장하고 큰 사건 있는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는 분들은 너무 좋아하실 거 같습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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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의 모든 것
이브의 모든 것
1950년 작품. 영화 형식으로 보면, 1945년 개봉한 영화 '밀회'와 매우 비슷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같은 장면이며,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나레이션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순환구조를 갖는 영화는 이후에도 가끔 등장한다.
이 영화도 '밀회'처럼 각종 영화상을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영화 자체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의회도서관과 미국 국립영화등기부에 등록되었다. 등장인물 역시 쟁쟁해서 주인공 베티 데이비스, 앤 박스터, 마릴린 먼로 등 당대 유명 배우들과 미래의 탑스타가 단역으로 출연하는 귀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마고 역의 베티 데이비스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이브 역을 한 앤 박스터는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는 이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다.
연극배우에게 주는 최고의 상을 받는 시상식장. 이브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상을 받기 위해 앉아 있고, 앞쪽 테이블에는 마고와 그의 친구들이 앉아 있다. 나레이션이 시작되고, 이 시상식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처음부터 시작된다.
연극배우로 탑스타인 마고(베티 데이비스)는 그가 출연하는 연극이 전부 흥행에 성공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스타의 삶을 살아간다. 마고 주변에는 연극연출가, 극작가, 비평가 등 수많은 남성들이 따르고, 그녀를 흠모한다.
하지만 마고 스스로는 이제 곧 마흔 살이 되고,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으며, 자기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연출가 빌이 연하의 남성이어서 다른 여자들이 넘본다는 의심을 끊이지 못하고 있다. 그날도 연극이 끝나고 무대 뒤 대기실에서 마고와 마고의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캐런이 한 젊은 여성을 데리고 들어온다. 마고의 열성 팬이며, 마고가 등장한 연극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다는 이 젊은 여성은 이브(앤 박스터)였다. 이브는 공연장 후문에서 오래도록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 마고의 친구 캐런이 나타나자 자신이 마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마고의 공연을 보기 위해 멀리서 왔다는 것을 말한다. 캐런은 안쓰러운 마음에 대기실로 이브를 데리고 들어가 마고에게 소개한다.
이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일찍 결혼했고, 남편은 전쟁터에서 사망했으며, 돈을 훔쳐 대도시로 나와서 근근히 생활하지만 마고의 공연은 빠뜨리지 않고 다 봤다고 말한다. 그 사실에 살짝 감동한 마고가 자기 일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묻고, 이브는 감격한다.
이브는 마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마고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마고의 생활, 연기에 필요한 보조 역할을 철저하게 해낸다. 이브는 마고 뿐 아니라 마고의 친구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완벽한 인물이었다. 마고의 스케줄 관리, 집안 정리, 정돈, 청소, 무대 의상 준비 등 마고가 미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준비하는 이브를 보면서 마고는 이브를 더욱 신뢰한다.
이브는 연극 무대에 서기 위해 마고는 물론, 마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접근해 마고의 대역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 과정에서 이브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리플리 증후군'에 해당하는 이브의 행동은 결국 이브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고, 이브는 마고가 맡아야 할 배역을 차지한다.
그 과정에서 이브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다르게 말하고, 행동했던 과거가 드러나고, 이브가 처음에 마고와 그의 지인들을 만났을 때 했던 자신의 과거도 거짓임이 드러난다. 이브는 자기의 과거를 속였고, 가능한 동정을 받을 만한 내용으로 꾸며 거짓말을 했으며, 그렇게 톱스타의 동정과 안쓰러움을 바탕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이브는 당대 최고의 극작가 로이드의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올라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고, 결국 상을 받게 된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첫 시작점에서 이어진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마고와 그의 지인들은 이브가 화려하게 스타로 탄생하는 것을 지켜본다. 마고는 자신이 나이 들고, 젊은 애인을 질투했다는 걸 인정하고, 톱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마고의 시대는 저물어 간다는 것을.
반면 이브는 과거 마고가 올랐던 그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시상식이 끝나 대기실로 돌아오는데, 대기실에서 낯선 여성을 발견한다. 그 여성은 이브의 연기를 존경한다며, 자기도 이브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과거 이브가 마고에게 했던 말과 똑같이 말하며, 이브의 손과 발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물결은 끊임없이 밀려들고, 앞선 물결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브는 지금 톱스타가 되었지만, 언젠가 자신도 마고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 물러나게 될 것임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브는 연극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인맥을 만든다. 최초에는 공연장 후문에서 무작정 기다리다 우연히 대스타 마고의 가장 친한 친구 캐런을 만나게 되지만, 이후 마고의 인맥들 가운데 마고의 애인이자 연출가인 빌, 희곡을 쓰는 로이드, 연극비평가 애디슨 등을 개별적으로 만나면서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서서히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이브가 연기에 재능이 있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미인이고, 연기를 잘 하며,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좋은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개별적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절박한 처지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결과는 주변 사람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세우고, 자신의 출세에 사람들을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이브는 자신이 원하는 무대에 서고, 훌륭한 연기로 상까지 받지만, 자기의 뒷조사를 완벽하게 한 평론가 애디슨에게 약점을 잡힌다. 이브는 거짓말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모두가 선량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물론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자기의 영역, 연출, 극본, 비평에서 이브를 이용해 보다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욕심을 보인다. 즉,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것을 최대한 보기 좋게 포장하려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것이 예술가의 한계라는 비판이기도 하고, 인간의 나약한 속성이라는 비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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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너를 닮은 사람>
<너를 닮은 사람> 포스터 (사진출처 : JTBC)
너를 닮은 사람 (2021)
편성 : JTBC, 16화 완결 │ 장르 : 한국, 드라마·멜로
연출 임현욱 │ 극본 : 유보라 │ 출연 : 고현정(희주), 신현빈(해원), 김재영(우재) 외
등급 : 19세 이상 관람가 │ 원작소설 : 정소현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매혹적이고 특별한 무드의 드라마
길고 풍성한 머리에 창백한 화장의 고현정 배우를 보고 처음 이 드라마의 특별한 무드를 느꼈다. 왜 창백한 것일까. 울적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색감은 또 뭐지. 마찬가지로 울적한 음악까지 맞물리면서 나는 깊게 드라마에 빨려들었다. 음울하고 슬픈데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분위기였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드라마의 원작은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의 수상 작가인 ‘정소현’의 첫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이다. 8가지 이야기를 다룬 소설집에서 한 편의 짤막한 단편소설이었던 이 이야기는, 드라마 작가 ‘유보라’에 의해 각색되어 영상으로 재탄생했다. 유보라 또한 이 소설에서 어떤 치명적인 흡입력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는 “소설이 끝나고도 계속 곱씹게 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나는 보았다”라고 말한다. 궁금했던 나는 드라마에 이어 원작 소설까지 섭렵했다. 두 이야기를 모두 읽어본 결과, 소설과 드라마는 어느 하나가 덜하고 못하고 없이 공통의 무서운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건, 짧은 소설에 비해 드라마는 16화라는 긴 호흡이었으나, 원작의 그 음울하고도 파괴적인 분위기를 손색없이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어느 날, 과거가 나를 찾아왔다
주인공 ‘희주(고현정 분)’는 재력이 든든한 남편을 만나 물질적 안정 속에 살아가고 있는 여자다. 그녀는 유년시절 몹시도 가난했기 때문에 인과적으로 물질적 안정을 추구했던 것 같다. 좋은 집, 화가라는 멋진 직업, 물심양면 지원해주는 남편, 바르고 예쁜 두 아이들. 그녀의 인생은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그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느 날 ‘해원(신현빈 분)’이 희주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녀는 희주의 오래전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다. 한때 희주는 그녀에게 그림을 배웠고, 자신과 달리 가난함에도 위축되지 않고 밝고 씩씩했던 그녀를 몹시도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해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희주가 사 준 10년도 더 된 낡은 코트를 떨쳐 입고 ‘과거에 붙들린 망령’처럼 서있는 그 장면은, 소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원이 희주를 망치러 왔다는 걸.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내 이야기의 시작은 역시 너다
희주는 해원에게 죄를 지었다. 해원에게 전부였던 그녀의 연인 ‘우재(김재영 분)’와 과거 밀회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주에겐 지나가는 사랑이었다. 불안정하고 동화 같은 사랑보단 물질과 풍요가 중요했던 희주는 결국 우재를 떠났고, 두고두고 그 일을 후회했다. 해원만 몰라준다면 영원히 묻고 싶은 과거의 일이었다. 그러나 희주에게 스치는 바람에 불과했던 그 일이 해원의 인생을 뒤흔들었고, 건강하게 빛나던 해원은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 희주를 겁박한다. 나도 망했으니 너도 망해보라고. <너를 닮은 사람>의 긴장감은 바로 그 두 여자의 숨 막히는 심리전과 비밀스러운 과거에 포진되어 있다.
클라인, 그건 분명 너였다.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과 다시 인연이 닿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먼지 쌓인 박제 같은 외양 때문이었는지 불쾌하고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정소현의 중반부, 유보라의 중후반부
소설과 드라마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과거에 머물렀던 우재가 드라마에서는 현재의 희주 앞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거기서부터 드라마는 소설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중후반부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숨 막히고 아름다웠다. 희주의 안정을 위협하는 해원과 우재, 과거에 붙들린 두 망령들로부터 벗어나려는 희주. 그러나 여전히 과거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까지. 그 모든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폭죽처럼 터지며 파국으로 치닫는 걸 보고있자면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너와 달리 그는 모든 것이 지나쳤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했고, 지나치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모순적인 감정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에 아름다웠다. …
그는 너 몰래 찾아와 내가 보고 싶었다고 하며 나를 그리곤 했다.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나는 당신을 경멸합니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해원보다는 희주에 가깝다. 친구랑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과거에 붙들려 현재의 나를 돌보지 않는 일은 너무 미련한 것이라고.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에게 집착하고,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느라 현재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희주의 잘못이 가벼웠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빛을 잃고 낭떠러지로 돌진하는 해원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행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을 인지하지 못한 채 긴 세월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며 살아온 희주 또한 안타깝고 불행해 보인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파괴했던 게 아닐지.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과거의 것들과 결별할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드라마의 후반부, 희주는 점점 옥죄어오는 과거의 위협이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던 자신의 욕망, 한 사람에겐 전부였던 사랑을 가볍게 탐한 죄, 그 모든 것들의 무게가 희주의 가족을 망치려 할 때 희주는 결심한다. 그 과거를 끌어안고 자신이 사라져야겠다고. 그러나 왜인지, 자신의 뜻대로 희주가 파멸하자 해원은 행복해하는 대신 울음을 터뜨린다. 모든 게 끝나고서야 해원은 깨달은 걸까. 비이성적인 앙갚음이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었다는 걸.
철드는 건 나쁘거나 대단한 게 아니에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원작소설 <너를 닮은 사람> 中<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모든 욕망을 내려놓은 자에게 들리는 종소리
푸른 파다, 푸른 초원과 함께 절경을 이루는 아일랜드의 모허(Moher) 절벽. 희주와 우재가 서로의 가족과 연인을 속인 채 밀회를 나눴던 그곳에서, 우재는 이런 말을 했었다. “수도원에 있던 한 은종이 호수에 빠졌는데, 맑은 영혼한테는 그 종소리가 들린대” 희주는 자신이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라는 걸 알았기에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결국 죽게 된 우재의 시신을 유기할 때까지도 당연히. 그러나 자신의 삶에서 우재를 없애고 현실로 돌아가고자 했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적했을 때. 희주의 귓가에 별안간 희미한 종소리가 들려온다. 물질, 탐욕, 이기심을 모두 내려놓은 그 끝에였다. 그 장면은 너무도 인상 깊은 장면이자, 소설에는 없지만 소설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짚은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희주가 결국 그 종소리를 듣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것이 구원이라면 말이다.
<너를 닮은 사람> 스틸컷 (사진출처 : JTBC)
선악을 모두 품은, 인간이라는 존재
<너를 닮은 사람>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나뉘어있지 않다. 희주와 해원과 우재 모두가 서로에게 죄를 짓고 죄를 당하며 얼기설기 얽혀있을 뿐이다. 내 안에도 해원과 우재와 희주가 있다. 시기와 질투, 물질과 안정에 대한 욕망, 잘못된 징벌의 심리까지도. 모두 서늘하게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그 선과 악에 대해, 그것이 끊임없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에 대해,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써낸 정소현 작가와 유보라 작가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는 정말이지 열렬히 바라게 됐다. 파멸과 자멸의 끝에, 희주와 해원 그리고 우재가 자신들을 옥죄던 그 무엇들로부터 해방되었기를.
글쓰는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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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의 또 다른 시도'라는 말도 이제 식상해
동상이몽
멀지 않은 미래의 대한민국. 현재 인류는 위기 속에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올라간 해수면. 인류는 우주를 뒤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인류가 그곳에 붙인 이름은 ‘쉘터’다. 80여 개의 쉘터를 만든 인류. 시간을 들여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쉘터 중 8,12,13가 스스로를 ‘아드리안’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전쟁을 벌이는 인류.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이 아드리안과 인류의 전쟁을 위해 자원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지구. 전설적인 군인 윤정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로봇 병사들이 떼거지로 몰려오고 있다. 힘든 싸움을 펼치는 정이. 부수고 뜯었다. 로봇들을 두들겨 패는 정이. 그런데 갑자기 정이가 정지됐다.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알고 보니 정이는 AI였다. 인류는 실존인물이었던 정이를 AI로 개발하고 있었다. 이 인간만 아니었어도 마지막 작전이 성공했어. 투정하는 과학자들. AI인 정이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인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한 사람만 다르다. 과학자 중 서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은 혼자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인물이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숙한 연상호 유니버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싶으면 맞다. 이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같이 보인다. 우선 영화의 근본적인 장르 설정 두 개는 ‘디스토피아’와 ‘그 세계관 아래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디스토피아적 세팅은 <반도>에서 봤었다. 좀비가 인류의 일상을 파괴시켰다가 영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세팅이었던 <반도>. 많은 분들이 감독의 전작 <부산행>에서 봤던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뭔가 나사가 빠진 좀비들에게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좀비가 들어가는 장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소설 보는 셈 치고 봤다. 그런 것 때문인지 그냥 아무 무리 없이 봤던 기억이 있다. 이때 극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나름 탄탄하게 잘 묘사했던 기억이 있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묘사는 살짝 다르지만 비슷한 결이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도 이어진다. 사실 <지옥>의 공간적 배경인 곳은 완전 현대적인 대한민국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드라마의 설득력에 있어 가장 중요했을 ‘그것’ 묘사가 좋았다. 처형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이 덕에 많은 분들이 연상호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로 <지옥>을 뽑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제작하던 경험치는 역시 어디 가지 않는다.
‘세계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행동’ 역시 많이 봐 온 것의 연장선상이다. 우선 <지옥>에서 이 특성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 드라마를 생각해 보면 인물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소개되는 선에스 끝난다. 극 중 범죄집단인 화살촉이 해체 위기를 겪긴 하지만 짠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왜 ‘그것’이 등장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 이는 곧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이 세게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서울역>이나 <부산행>에서도 극단적인 세팅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핵심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연상호 감독은 이런 작품세계의 연장선상을 이 <정이>에도 끌고 왔다.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이 미장센의 힘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뭔가 축축하고 처지는 색감을 바탕으로 로봇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야기에 몰입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끔 보여준다. 역시 이런 SF 장르는 좀 있어 보여야 한다. 영화에서 주요한 활동반경이 되는 장소는 또 선명하지만 익숙한 맛으로 잘 만들어냈다.
보고 또 보고
영화에서 느껴졌던 가장 첫 번째 단점은 이걸 또 봐?라는 점이다. 글쓴이가 연상호의 영화를 이 것 하나만 봤다면 ‘볼만했다’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상호의 작품 세계를 몇 작품 봤다. 이런 입장에서 그의 <정이>가 신선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정이> 이거 <부산행>이랑 <반도> 합친 것 아닌가? 이야기 형식은 <지옥>을 빌렸다. 어떤 점에서 공통점을 가질까? 바로 주인공들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 아래에서 인물들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을 묘사한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 과정에서 품고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공략한다는 점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뭐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신선하게 전달하면 색다르게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 기존 작들이랑 비슷하니 영화에서 신선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뭐 이렇게 배경이 인물들과 딱딱 맞아떨어지게 설정이 꼭 되라는 법은 없다. 단순히 전작 <지옥>만 봐도 그런 세팅 아래에서 하고 싶은 것들 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잘 짜면 기획의도에 대한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가 굉장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줄거리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윤정이가 로봇들과 싸우는 액션 신이다. 이 액션 신은 정이가 AI라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이다. 그런데 이 이후의 장면들이 좀 매가리가 없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인물들이 품고 있는 속사정이 극에서 이야기의 키포인트로 묘사된다. 이걸 처음부터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이야기를 전개할 때 에피소드처럼 삽입되는 장면들이 맥이 끊긴다. 이는 어떤 인물의 존재감이 큰 원인이 된다. 안 그래도 본 연상호의 세계관에 균열까지 가는 연출이 들어간 것이다.
초 치는 캐릭터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류경수 배우가 맡은 상현 역이다. 이 상현 역은 초반부부터 계속 나오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야기의 행동대장격 악역 정도로 극에서 포지션을 잡았다. 이 인물의 작중 행적이 너무 작위적으로 짜였다는 것은 둘째로 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신경 썼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인물이 (나름 자기 딴에는) 웃긴 대사를 하는 장면이 몇몇 있다, 일부러 불쾌한 골짜기를 유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안 재미있다. 또 말이 너무 많다. 극에서 서현의 감정선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사람 때문에 신경 쓰여서 집중이 안 된다. 이 재미없는 유머는 후에 어떤 인물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키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이 키포인트가 영화의 내적 논리에서 생략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냥 영화에서 '내가 그렇게 했다' 이 한 마디만 해도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떡밥 수거로 연출적인 쾌감을 주고 싶었던 걸까?
이 외에도 특별출연 정도로 등장한 한 캐릭터와 성적인 코드가 들어가는 방식은 도식적으로 뽑아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인물이 좀 중요하게 나올 것 같이 하고 별 영양가가 없었다는 점이나 악랄한 내면을 묘사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은 불쾌한 골짜기만 두드러지고 영화에서 별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현 외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 중 많은 분들이 그럴 것 같고, 또 글쓴이가 좋지 않게 생각한 것은 역시 ‘이 소재’다. 이 요소가 없으면 넷플릭스한테 투자를 못 받나?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부산행>에서 이걸 넣었고 상업영화로서의 고점이 여기 있었으니 유사한 것을 넣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정이>가 이 요소에 임팩트를 주기엔 인물들과 배경이 큰 관계가 없다는 점이 역효과로 느껴진다. <지옥>은 감정적으로 과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도라는 말도 이제 식상해
<승리호>라는 작품이 공개되고 난 후의 반응이 생각난다. 아마 씨네 21이었나. 처음 발표되고 나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솔직히 기대했다. 뭐 한국영화에서 SF를 새롭게 시도해서라는, 뭔가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영화와는 맞지 않아 보였던 외국인 배우들이나 이상한 대사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후반부 신파극은 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영화를 뭐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글쓴이는 이런 이유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SF 세계관을 설명하는 비주얼은 잘 뽑았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남매의 집>과 <짐승의 끝>으로 기본적인 연출력을 보여줬던 건 우연일까? 경험치가 있는데도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 굉장히 아쉬웠다. 초반 평가가 좋게 나온 게 나만 몰카 찍는 줄 알았다.
이 감상은 2023년에도 이어진다. <지옥>의 연상호는 뭔가 달랐다.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르게 광기가 보였다. 오. 내가 아는 연상호의 연출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 이야기 전개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식상하지 않고 오히려 신선했다. 유아인, 박정민 두 배우의 열연이 이에 힘입어 시너지를 냈다.
그러나 이 <정이>는 그를 상회할 정도의 단점만 느껴진다. 이제는 모녀간의 관계를 강조한 드라마를 좀 많이 본 듯하다. 인간사의 기본(?)과도 같은 모성애. 작년에 모든 것을 죄다 때려 박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있었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런데 어떻게? 의 관점에서 다른 방식을 썼다는 것이 영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이>는 sf 시각화 방식도 연상호 영화의 연장선상이고, 많이 상투적인 모성애 모티브까지 매크로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신선한 시도가 좋았다' 혹은 '외국에서 시청자들이 많았다'라는 말을 할 것 같다. 글쓴이는 좀 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정말 이 시도가 신선할까? 심형래 감독의 <디 워>부터 들렸던 이야기가 보고 또 보고 반복되는 것이 이젠 좀 진부하게 느껴진다. 결정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신선하다는 말이 그냥 일반 관객들에게 얼마나 유의미한지 의문점이 든다. 외국영화든 한국영화든 그냥 똑같은 영화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도는 김현주 배우만 한 듯 하다.
하늘의 별이 된 강수연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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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가족끼리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적과의 동침'은 친밀한 관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에 대해 다룬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바로 생각난 드라마가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이라는 소설을 드라마화한 '빅 리틀 라이즈'였다. 우선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로라의 남편인 마틴은 결혼 전 로라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나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로라를 때리고 협박하며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에서도 이와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전직 변호사였던 셀레스트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남편을 보살피는데 조금이라도 남편의 심기에 거슬리는 일, 마찰 등을 겪으면 남편은 폭력을 행사하고 셀레스트는 으레 그렇다는 듯 그 폭력을 견딘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가정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단순히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며 피해자가 발생한다. 법적인 제도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범죄가 존재하고 피해자가 존재한다면 그 원인과 문제점은 무엇일까? 나는 법의 허점과 법에 명시된 사항들이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가정폭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배우자 폭행, 아동방임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법률적으로 명시된 정의가 아니다.
가정폭력은 범죄로 인정되긴 하지만 그 처벌법에 의하면 가정보호법으로 처리되어 크게 형사처리사건과 가정보호사건으로 구분된다. 형사사건의 경우 피해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피해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사건을 진행하지만 가정폭력으로는 경미하다고 판단되어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가 되는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사건으로 진행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가 성립된다. 이 경우 피해자가 고소 의사를 밝히고 사건이 기소된 후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야 가해자가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으며 피해자는 언제든 다시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피해자가 더 불리한 입장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느껴야 할 주거공간이 공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의 가정폭력의 경우 문제를 일으킨 폭력의 가해자가 퇴거명령을 받고 법원에서 개입 후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가해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기본 원칙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자가 집을 떠나 쉼터로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난다. 이는 근본적으로 현 사회가 가정폭력을 '폭력'보다는 '가정'에 방점을 찍어 가정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둔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1997년 제정되어 그 이후 5번 정도 개정되었는데 20년이 넘는 법의 역사 속에 아직도 숱한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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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드디어 스포가 있는 자세한 리뷰 영상입니다!
영화 속에 들어있던 수많은 이스터에그들 중,
이번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캡틴과 아이언맨의 떡밥 및 이스터에그 들을 자세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영상 재미있게 봐주세요~
2018. 04. 27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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