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2024-08-19 21:21:04
우리 숨바꼭질해, 그리고 다신 잡히지 마
알리체 로르바케르, <더 원더스> 리뷰
<행복한 라짜로>(2018)와 <키메라>(2024) 이후에야 우리에게 도달한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초기작 <더 원더스>(2014)는 어쩌면 그의 작품 중 가장 놀랍고도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키메라>까지 무르익어 간 로르바케르의 재능이란 주로 노골적이면서도 섬세한 대비를 활용하는 재주에 있었다. 이쪽과 저쪽, 차안과 피안, 도시와 시골, 빈자와 부자, 순수와 교활을 빈번히 오가며 비추는 데에 누구보다 능숙했던 로르바케르이기에, <더 원더스>의 모호하고 꿈과 같은 상징들은 더욱 예상 밖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의도된 침묵, 도망친 벌들과 낙타, 빛을 마시는 동작과 동굴에서의 춤 등은 메인 플롯인 고립된 아이들의 성장 서사에 불쑥불쑥 난입하며 알쏭달쏭한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면서도 관객을 속이기 위해 철저히 계산되었다거나 일부러 에둘러간다는 느낌 없이 순진하고 투명한 이야기를 전한다. 실증에서 출발해 환상을 얹은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임을 생각해보면 대개 직관적이고 거칠은 쪽에서 부드러운 은유 쪽으로 나아가는 게 많은 창작자들이 밟는 전철일진대,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처음이 가장 은유적이었고 지금이 가장 직설적인 화법을 발전시키면서 일종의 역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더 놀랍다.
<더 원더스>는 군견을 데리고 밤길 수색을 나온 군인들이 등장하는 이색적인 오프닝부터 ‘이야기’에 대한 집중력을 단번에 끌어올린다. 이 군인들은 나머지 서사의 진행과 전혀 무관하며 주연 인물들과 엮이지도 않는다. 이야기 바깥에 위치한 그들은 외딴 곳의 민가를 발견하고 “저런 곳에도 집이 있다”고 소리치기 위해서 아주 짧은 순간만 등장할 뿐이다. 눈이 침침한 어둠 속에서 불을 비춰 시작을 알리는 이들은 곧 우리에게 전해져 올 ‘이야기’를 낭독할 전기수의 바람잡이, 연극의 첫 막이 시작할 때 열리는 무대의 장막,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를 이끌어낼 동생 두냐자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도구다. 군인의 외침 덕에 우리는 “저런 곳”의 거주민인 주인공들을 마주하는 즉시 그들의 ‘이야기’가 해석될 수 없는 동화처럼 미완으로 남으리란 사실을 직감한다.
그 이야기란 이렇게 시작된다. 한밤중 군인들의 수색으로 집 밖이 훤해지자 여자아이들이 하나씩 깨어난다. 큰딸인 젤소미나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떼쓰는 동생 마리넬라를 단도리하고 더 어린 쌍둥이 동생들은 덩달아 깬 금발의 젊은 어머니에게 매달린다. 젤소미나는 동생들을 달래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거실의 하나뿐인 TV를 점령하고 소파에서 잠든 아버지를 익숙한 듯 일으켜 침실로 올려보낸다.
양봉업자인 아버지 볼프강은 문명과의 단절을 추구하는 기이한 라이프스타일을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강제하는 가부장이다. 장녀답게 눈치 빠른 젤소미나는 벌을 돌보고 채밀기 밑의 꿀 양동이를 한밤중에라도 갈아줘야 하는 큰 책임을 자연스레 지게 된다. 딸이라기보단 특급 일꾼을 대하는 듯한 아버지의 태도에서도 젤소미나는 부녀 간의 유대를 찾아내고 나름의 뿌듯함을 느낀다. 어머니 안젤리카(알바 로르바케르)는 대체로 다정하지만 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젤소미나에게 면밀히 신경써줄 겨를이 없고, 남편의 기행, 일방적인 통보, 대책 없는 금전 감각에 질리고 포기한 듯 대체로 반기를 들지 않는다.
양봉과 가사에 밀려 학교는 제대로 다니고 있을지 혹은 다녀본 적은 있을지 걱정스럽고, 직접적인 폭력이나 악의는 없더라도 정황상 아동학대와 노동 착취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에 불과 열두 살의 젤소미나는 덜렁 놓여있다. 종종 창고에서 젤소미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동생 마리넬라와는 살짝 터울이 지고, 또래 친구 조이아와는 많이 다른 가정환경 탓인지 살짝 어색한 거리감이 있기에, 그애는 너무나도 철저히 혼자다. 언제나 고독했 라짜로와 아르투처럼.
토스카나의 새파란 바다와 드넓은 평야는 무척 아름답지만 그것을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그 시점에 이미 불가했다는 걸 현대의 관객은 알고 있다. 그러나 볼프강은 아직 다가올 운명을 모르거나 모르는 체 하고 있다. 전통적 농법과 양봉을 고집하느라 늘 돈도 모자라고, 이웃들과도 척 지고, 아침마다 집 밖 침대에서 깨어나 사냥꾼의 총성에 미친듯이 화내며 모두를 쫓아내려 한다. 볼프강은 외부에서 밀려들어온 자본에 ‘농민끼리 단결해 맞서야 한다’고 펄펄 날뛰면서 거대한 흐름에 홀로 맞서고자 한다. 굳건한 반골의 의지만큼은 존경스러우나, 아직 미성년인 자식들마저 투쟁에 억지로 동원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외골수 아버지와 힘이 부친 어머니 사이, 과중한 노동과 외로움에 조용히 짓눌려가는 젤소미나에게 어느날 갑작스레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두 번이나 가해진다. 하나는 그 시골의 계곡까지 커머셜 쇼 프로그램 광고를 찍으러 온 인기 배우 ‘밀리’,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가족들과 상의 없이 데려온 독일 소년 ‘마틴’이다.
아름다운 백금발에 여신 같은 차림의 밀리(모니카 벨루치). 그는 네 자매의 이름을 물어봐주고 가장 수줍어하는 젤소미나를 다정히 쳐다보며 예쁜 머리핀을 선물한다. 밀리와의 만남으로 인해 젤소미나는 바깥 세상과의 교류를 더욱 갈망하고 밀리가 홍보하던 ‘전원의 기적’ 쇼에 출연하고 싶다는 소망을 남몰래 품게 된다. 그 와중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들의 재사회화를 위한 위탁 가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틴이 이 가족에 배정되는데, 기관 담당자가 “어긋난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방화나 절도 전력이 있다고 태연하게 부연하자 엄마 안젤리카가 딸들이 걱정되지도 않냐며 볼프강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네 딸들은 커가는데 진정한 일꾼이 되어줄 ‘후계자’ 아들은 태어나지 않자 부족한 노동력에 초조해진 볼프강이 제멋대로 위탁(이라고 말하고 합법적 아동착취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을 신청해놓곤 당일이 되어서야 말하는 걸 잊었다며 실토한 것이다.
휘파람으로 노래할 줄 알지만, 이탈리아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불청객인 마틴. 마리넬라가 “잘생겼다”며 소근거릴 정도로 진한 외모로 소녀들에게 이상한 긴장을 불러일으킨 마틴. 로르바케르 영화 속 꾸준히 수수께끼의 존재로 그려지는 ‘이방의 남자’에 대한 아이디어가 여기서도 발견된다. 직계 가족이 아닌 성인 여성 코코 외에 한 사람의 군식구가 더 늘자 젤소미나 가족의 역학은 빠르게 변화한다. 키는 작지만 힘센 마틴을 보며 아버지가 흡족해하는 표정, 자기들을 보며 “계집애들이란!”하고 내뱉는 표정을 비교하며 젤소미나와 마리넬라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진다.
단박에 아버지의 신뢰를 뺏어간 마틴을 향한 젤소미나의 질투, 아버지를 향해 피어나는 반항심, 그런 딸을 두고 “쟤가 없으면 난…” 안될 거라며 친구에게 조용히 드러낸 볼프강의 진심, 마틴과 젤소미나처럼 외로운 이들끼리 필연적으로 품게 되는 서로를 향한 호감 어린 호기심, 잠깐씩 어그러지는 젤소미나와 마리넬라의 우애까지. 어지러이 뒤섞이는 감정들 속 아버지는 여전히 강경하게 젤소미나가 나가고 싶어하는 ‘전원의 기적’ 쇼에 신청하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아이는 이미 멈출 수 없는 격정에 몰래 신청서를 써낼 각오도 불사한 채다. 꿀을 팔러 나갔던 어느 날 시내에서 마주친 폭풍우는 잦아들지 않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몸으로 벌통을 꽉 누른 트럭 안에서 젤소미나는 돌연 “우리 거기 참가해요”라며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러니까 그건 더이상 삶의 고독과 혼란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진 아이의 몸을 뚫고 나온 절규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국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전원의 기적’ 쇼에 양봉업 대표로 출연하게 되긴 한다. 젤소미나가 몰래 신청하고 심사위원이 다녀갔단 걸 뒤늦게 알게 된 볼프강이 말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고 상처받긴 했지만. 여기서 알리체 로르바케르 특유의 아주 섬세한 터치가 정념을 제대로 건드린다. 아이들이 꿀을 엎고 마리넬라가 다치고 심사위원을 맞이하고 난장판을 수습하는 한나절 동안 볼프강이 시내에 나가 큰딸에게 선물할 낙타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감정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이때, 마틴의 등장 이후 소원해진 큰딸과의 사이를 풀고자 아버지가 기껏 드물게 다정을 발휘했는데 이 ‘선물’을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안젤리카는 힘겹게 모은 돈을 고작 낙타 따위에 다 써버린 남편에 분노하며 이번에야말로 헤어지겠다고 선포하고, 젤소미나는 아버지가 가장 싫어할 만한 유형의 외부인 - 지적 권위를 갖고 자본의 호위를 받는 남성 심사위원 -을 들였다며 고백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낙타를 갖고 싶어했던 큰딸은 이제 그게 ‘불법’이란 걸 알게 됐고, 아버지가 뭔가 이상한 사람이란 걸 의식하며 바깥 세계로의 탈주를 염원하게 됐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무엇이 됐든 분명 자신이 질 싸움이란 걸 차차 직감하고 있는 중이다. 코코가 볼프강에게 맞서며 젤소미나가 불쌍하다고 했을 때, 친구 에이드리언이 젤소미나를 밀라노로 데려가겠다고 농을 던지고 젤소미나가 수줍게 좋다고 할 때, 볼프강의 고집 센 얼굴 위로 스쳐가는 회한이나 자기의심을 카메라는 놓치지 않는다.
젤소미나의 반항에 볼프강은 망연자실 밖으로 나가 낙타를 끌어내려다 포기하고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혼자 노동을 계속한다. 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젤소미나의 표정 역시 말이 아니다. “아빠 제가 뭘 할까요? 저 뭘 하면 되나요?” 그렇게 받고 싶던 아버지의 사랑이 주어지던 바로 그 순간 그걸 단박에 기뻐하며 받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눈물 흘리며 외치지만 아버지는 “하지 마”라며 불퉁하게 거절할 뿐이다. 자기 쓸모를 증명해야만 부모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여기는 아이를 보며 서럽기도 하지만, 이 어른의 마음도 어렴풋이 짐작되는 우리가 과연 볼프강의 속좁음을 탓할 수 있으랴. 그도 안젤리카도 ‘바깥’의 세상에서 된통 두들겨맞고 자신들만의 낙원을 구축해보려다 실패한 어른들임을 영화는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더 원더스>는 아이의 혼란과 상처뿐 아니라 어른들의 상처도 조밀히 들여다보는데, 네 딸들의 부모만큼이나 코코라는 어른의 존재도 흥미롭게 다뤄진다. 처음에는 코코가 안젤리카의 사촌 혹은 먼 모계 친척인가 싶었지만, 에트루리아인의 흑발 흑안과 로마인의 도드라진 ‘금발’을 늘 코드화하는 로르바케르의 습관을 생각하면 아마 친척은 아닐 듯 싶다. 그렇다면 볼프강과 안젤리카, 코코와 에이드리언은 모두 원래 밀라노 출신의 소꿉친구였다가 각자의 방황 끝에 긴 사연을 안은 어른이 되어 토스카나 시골로 찾아들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얹혀살려면 밥값을 해야 한다’며 볼프강에게 싫은 소리를 듣던 군식구 코코는 분명 제대로 된 어른은 아니다. 젤소미나 편을 들며 “아이들을 그만 부려먹으라”며 이제는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볼프강에게 화를 내긴 하지만 정작 코코는 부모의 부재시 보호자 노릇을 젤소미나만큼도 해내지 못한다. 이상한 요가 동작에 심취하느라 마리넬라가 채밀기에 손을 베일 때에도 아이들 옆에 없었고, 병원이나 방송사 관계자 같은 ‘진짜 어른’들 앞에서는 당황한 나머지 변명도 못하는 식이다.
그러나 아기들과 함께 집에 남은 엄마 안젤리카를 대신해 섬에서 촬영하는 ‘전원의 기적’ 프로에 함께 참가한 코코는 바로 그곳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가난하고 힘 없는 목축업자, 양봉업자, 낙농업자 등등 가지각색의 가구를 불러다놓고 우스꽝스럽게 치장시킨 쇼 프로. 그 옛날 고래의 무덤으로 불렸다는 자연 동굴 안에서 인공적인 불빛과 스탭들의 말소리가 울려퍼지고, 마치 가장 무도회처럼 동물 탈이며 월계수 화관을 쓴 농민들은 얼빠진 채 긴장한 채 서있다. 사회자인 밀리는 시골 소녀들을 불러내곤 과장된 말투로 “귀여운 에트루리아인”이라 호명하더니, 정작 그 지역에서 평생 살아온 할머니들이 아름다운 전통 민요를 부를 때는 살며시 옆으로 빠져 피곤한 얼굴로 귀를 막아버린다.
또 가족들 사이에선 그토록 폭군 같던 볼프강은 십수 대의 카메라와 양복 입은 도시인들 앞에서 굳은 채로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더듬거리며 허망한 믿음을 역설한다. 몸으로 익힌 신념이, 무언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가장 천박한 자본이 가장 고귀한 노동을 파괴하는 것을 목격한 후 굳어진 “세상은 곧 멸망할 것”이라는 깨달음이, 그의 단단한 육체 안에서 부글거리고 있지만 비극적이게도 볼프강에겐 그것을 ‘제대로’ 설파할 만큼의 학식이 없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어 “보여줄 공연이 있다”며 젤소미나가 황급히 밀리를 불러세운다. 밀리를 다시 보길 몇 달 내내 바라온 젤소미나가 입안에서 벌을 꺼내 얼굴에서 춤추게 하는 자신의 특기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애의 진지한 예술은 아버지가 방금 전 기인 철학자처럼 더듬거린 신념과 함께 무참히 무시당한다. 부녀는 ‘수습’의 대상으로 격하될 뿐이다.
그 모든 기이한 난장판을 지켜본 코코는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다. ‘진짜 이탈리아인의 전원생활’을 조망하고 격려한다는 TV 쇼의 명분은 다 허울 뿐이고, 이제는 농민 개개인의 삶까지 (볼프강이 보던 TV 속 조잡한 재연 프로그램처럼) 서사화되어 도시인들의 한낱 유흥으로 무참히 착취되고 무시당할 거란 진실을. 그래서 코코는 돌연 울기 시작한다. 방금 전 밀리와 도시인들에게 민망하리만큼 외면당한 젤소미나를 바깥으로 끌고 나온 코코는 “넌 정말 예뻐,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어”를 몇 번이고 말해준다. 그 순간 코코는 진실을 먼저 깨닫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외마디를 외치는 선지자다. 그 외침은 젤소미나에 투사한 자기 젊은 시절에 보내는 위무이기도 하다. 곧이어 “나도 아름다워. 난 정말 아름다운 여자야”라고 발작적으로 반복하는 그를 보며, 관객은 코코 또한 정말이지 고단하고 외롭고 아픈 여자였단 걸 비로소 알게 된다.
코코는 젤소미나의 (가장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는 인물로서 존재한다는 게 이 장면에서 비로소 명확해진다. 동생 마리넬라, 루나, 카타리나처럼 엄마의 아름다운 금발을 물려받지 못한 큰딸이 계속 제 의지에 반해 유폐된다면 곧 맞이하게 될 운명을, 불쌍한 흑발의 미친 여자 코코가 대신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에트루리아인 이웃들에 찰싹 붙어 엮여있으면 먹고살 길이 열린다고 말하던 볼프강. 우리 ‘밀라노인’들은 누가 신경 써준 적 있냐는 볼프강의 서러운 고함에 에이드리언은 ‘밀라노인!’이라 곱씹으며 한 번도 그렇게 분류된 적 없다는 듯 낄낄 웃는다. 익숙지 않은 호명은 곧 그들이 표준화된 복지 체계 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지방/민족/인종 출신이란 의미다. 도시 생활과 자본의 침범에 상처 받고 그 어떤 ‘문명’의 덕도 보지 못한 어른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때론 애완견을 부르는 듯 ‘귀여운 에트루리아인’이란 모멸적 호칭을 빌려서라도 생계를 이어가려 한다.
섬에서 코코에게 기습적으로 키스 당한 마틴이 온 힘을 다해 도망친 다음 실종되자, 기관 담당자가 방문해 볼프강과 언쟁을 벌이다 “상식적인 규율이란 게 있는데 알기를 거부하시네요. 세상 물정도 모르시고요”라며 잔인한 선고를 내린다. 하지만 그는 바로 직전 자기 관리상의 허점을 숨기기 위해 “아이에 대한 기록은 싹 덮어서 지워버렸다”고 부끄럼없이 자료 조작과 공모 행위를 털어놓은 직후다. 위선자 같은 그가 잘 안다던 ‘세상 물정’이란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법칙일까.
또한 이 담당자는 앞서 마틴을 데려왔던 날, 허술한 농가를 한 차례 둘러보곤 제대로 된 교화를 위해 ‘체계성’ 있는 기록과 교육을 제공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즉 다시 요약하자면 <더 원더스>는 결국 재래성과 체계성의 대립에 관한 영화다. <키메라>를 제작하며 에트루리아의 유적과 무덤가에서 자매와 뛰놀던 유년기 기억을 참고했다고 밝힌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은, 초기부터 ‘발전’된 문명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어두운 구석의 시간에 깊이 천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그의 질문은 누가 어떻게 정상성을 정했는가부터 시작된다. 어떤 질서가 문제와 문제 아닌 것, 익숙한 것과 이질적인 것, 발전한 것과 낙후된 것, 문화재로 보존될 것과 쓰레기로 퇴거당할 것을 구분하고 있는지, 우리가 뭔가를 스스로 판단한다고 착각할 때 그 권위에 실은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더 원더스>는 농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기 직전, <행복한 라짜로>는 밀려나는 중, <키메라>는 밀려난 직후를 다루는 연작이라 해도 좋겠다. <키메라>의 톰바롤리들이 “일만 하다 돌아버린 노인”이라고 조롱하던 피로의 삼촌에게서 우리는 늙은 볼프강의 최후를 본다. ‘효과 좋은’ 최신 농약도 볼프강에겐 땅과 벌을 다 죽일 끔찍한 화학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들과 평온히 자족하는 생활을 추구하고 싶지만 세상은 아이들에게 자꾸만 화려하게 빛나는 것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은 부모의 질서로부터 탈주를 꿈꾼다. 피할 수 없는 결과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볼프강과 안젤리카의 강경한 자세에서 이상하게도 품위를 느낀다. 도시의 방송사 카메라로는 잡아낼 수 없었던 그것을.
바로 그래서 마틴이 젤소미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그 동굴에 남는 것이다. 여전히 포착되지 않고 언어화되지 않은 이탈리아 시골의 생동처럼, 도시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품위처럼, 끝까지 문명의 규칙에 포섭되지 않으려고 도망친 ‘밀라노인’ 가족처럼 마틴 역시 영원히 붙잡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과거의 언어나 노래 혹은 유적을 찾아내면/기록하면 필연적으로 도굴꾼의 돈벌이가 되고 부자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비되며(키메라) 믿는 자들의 맹목을 부른다는 것(라짜로)을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처음부터 알았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마틴을, 아이들을, 가족들을 잡히지 않는 유령으로 만들어버린다.
화내고 싸우고 경계하는 어른들의 말이 흘러넘칠 때 아이들은 오히려 한 마디 말도 없이 소통한다. 아이들의 대화는 아직 무음의 신체 언어 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젤소미나가 마틴에게 벌의 춤을 보여줄 때도, 두 아이가 동굴 안에서 고대인의 그림자잡기처럼 춤을 출 때도, 마리넬라가 젤소미나의 무반주 노래에 맞춰 춤을 출 때도, 젤소미나의 ‘빛을 마셔보라’는 아름다운 주문을 마리넬라가 순순히 따를 때도(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키메라>의 무덤 속 아르투가 맞이한 베니아미나의 빛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젤소미나는 어떻게 그 험한 바다를 서핑보드에 의존해 맨몸으로 다녀왔는지 별다른 설명 없이 들판에 놓인 가족의 침대로 파고든다. 모든 게 젤소미나의 꿈 같았던 시간. 엄마도 아무 질문 없이 그애가 잘 다녀올 줄로 믿었다며 따뜻이 안아주고, 처음으로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그제야 비로소 어린 아이처럼 보인다. 젤소미나는 마틴처럼 속을 알 수 없이 그윽한 눈빛의 알파카를 바라보며 마틴의 휘파람을 따라한다.
이윽고 그들은 뼈대만 있는 침대를 남기고 증발한다. 그들을 지켜보던, 남루하지만 어딘지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집도 벽 몇 개만 남기고 낡아버린다. 언젠가 그 집은 흰수염고래의 무덤처럼 먼 과거의 시간을 상징하는 스펙타클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현대인’을 얌전히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거기 살던 사람들은 이제 다시는 탐욕스러운 카메라에 붙잡히지 않는다.
영화관을 나오며 <고스트 스토리> 또는 <퍼스트 카우>에서 보여준 탁월한 애도를 겹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서부를 개척한 이들의 유골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집의 잔해나 이를 지켜보는 지박령 같은 존재를 통해 억겁 같은 시간을 애처로이 붙잡아두고 재소환하려던 영화들. <더 원더스>는 조금 다른 쪽으로 애도의 개념을 확장한다. 이건 이탈리아에 마지막 남았던 순수를 영원히 해방시켜 영영 잡히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게 하는 선택을 감행한 영화다. 아마도 그것이 언제나 피안으로, 신성의 영역으로 인물을 숨게 했던 로르바케르 식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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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자식의 친구를 죽인 살인자를 면회하는 이유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중범죄자도 경범죄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할까?
흉악범은 교화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가 나에게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의 범죄 사회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머릿속에 차오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변덕스럽습니다. 범죄자도 사람이므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가족을 해친 사람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다고 상상하면 절로 피가 거꾸로 솟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이처럼 선악, 가해자와 피해자, 인권에 관한 고민을 다시 한번 촉발하는 영화였습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
Kaneko′s Commissary
Summary
폭력으로 수감된 '가네코'는 면회 온 아내에도 화부터 내는 남자였다. 개차반이던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내와 아이, 삼촌이라는 가족의 힘이었다. '가네코'는 과거 자신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영치물품을 넣어주고 대신 면회를 해주는 영치품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화는 아들의 친구인 어린 여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후루카와 고
출연: 마루야마 류헤이, 마키 요코, 미우라 키라
'옥바라지'도 대행이 됩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 영치품을 대신 전해주거나 면회를 대행해 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전과자였던 '신지'의 과거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영치품점의 역할을 소개합니다.
영치품점은 이른바 옥바라지 대행 서비스입니다. 정부 시설의 특성상, 구치소와 교도소는 주민센터와 같은 평일 낮 시간에만 방문객을 받는데요. 아무래도 평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문이 쉽지 않은 데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우려해 일부러 발길을 끊기도 합니다. 영치품점은 그 빈자리를 메꾸며 옥바라지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지요. 취재 과정에서 영치품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루카와 고 감독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치품점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폭행 전과자였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새 삶을 살고 있는 '신지'는 삼촌이 운영하던 영치품점을 물려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잇고 있습니다. 영치품과 면회는 수감자들의 권리이며, 이를 대행하는 자신의 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카즈마'의 동네 친구 '카린'이 묻지 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일로만 여겼던 강력 범죄가 내 일이 된 동네 사람들은 '가네코' 가족이 범죄자를 돕는 일을 한다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죠. '신지'는 그 과정에서 무력함과 회의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혼란을 겪던 그에게 '카린'을 살해한 범인의 어머니가 영치품과 면회를 대행해 달라며 찾아오면서 ‘신지’는 또 다른 괴로움과 직면합니다.
영화는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을 모두 경험한 '신지'라는 인물을 통해 선을 망치는 악과 악을 품는 선에 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선을 일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악이지만, 그러한 악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선이지요. 선과 악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더라도, 이 세상에 절대불변의 가치란 없고요. 관객은 교정 시설을 오가는 '신지'의 혼란을 스크린 너머로 체험하며, 선악에 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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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것, 결국 가족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에는 선과 악을 오가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신지'가 그렇습니다. 그는 동료를 폭행해 징역 3년을 받고, 감옥에서 난동을 부려 1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는 이전의 삶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베푸는 선한 사람이 되었죠.
엄마를 살해한 야쿠자를 면회하기 위해 매일 교정 시설을 찾는 고등학생 '사치'도 그렇습니다. '사치'의 이야기는 '신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서브플롯인데요. 초반에는 '사치'가 그저 강도에 의해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로 보였지만, 실은 엄마의 강요로 성매매에 시달리는 소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야쿠자는 성매매를 위해 그 집에 들렀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어린 '사치'를 구하기 위해 엄마를 공격했던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사치'였습니다. 선이었다가도 악이 되고, 악이었다가도 선이 되는 인물들. 이처럼 영화 속 선과 악은 손바닥 뒤집듯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선의 방향으로, 또는 악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지'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미와코'의 단단한 지지와 아들 ‘카즈마’를 향한 부성애 덕분이었습니다. 살인이라는 분명한 악의 편에 서 있던 '사치'와 야쿠자는 어떨까요? 가족에게 이용당한 '사치'와 출소 후 가족 같았던 조직의 해체를 맞닥뜨린 야쿠자는 혈혈단신인 서로를 가족으로 인지하면서 서서히 악에서 벗어납니다. 이렇듯 영치품점을 소재로 벌어지는 여러 선과 악의 이야기 아래에는 따스한 가족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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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가족의 힘을 말하는 영화지만, 메시지를 소구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다소 과장하거나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삽입해 영화의 탄력을 저해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식 신파가 무릇 그렇듯이 어쩐지 다정함이 넘쳐, 다 보고 나면 괜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작품이랍니다.
극 중 '카린'을 살해한 범인이 늘어놓은 궤변이 떠오릅니다. 100마리 개미를 모아 놓으면 그중 20%는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데, 일하던 80마리를 따로 떼어 놓으면 또 그중 20%가 일하지 않다는 실험을 언급하며 성악설을 주장하는 장면이었죠. 영화를 곱씹어 보니, 이처럼 쉽게 뒤바뀌는 선악 속에서도 언제나 80%의 보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려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일하지 않는 20마리를 따로 떼어놓으면 그중 80%는 다시 선해진다는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One-Liner
누구나 흐릿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악으로도, 다시 선으로도.
Schedule in BIFF
2024.10.03(목) 영화의전당 소극장 19:30
2024.10.04(금) CGV센텀시티 3관 19:30
2024.10.10(목) CGV센텀시티 7관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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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고립과 정박, 그러나 실재
DIRECTOR. 루루 헨드라(Loulou HENDRA)
CAST. 셰니나 시나몬(Shenina CINNAMON), 아르스웬디 베닝 스와라(Arswendy BENING SWARA), 앙가 유난다(Angga YUNANDA), 유수프 마하르디카(Yusuf MAHARDIKA) 외
PROGRAM NOTE.
마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다 위에 부유하는 허름한 수상가옥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래전 땅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다약 원주민인 그녀는 광산 개발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한 노인에 의해 구조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도 잃고 친척들과의 연락도 끊기게 된다. 십 년 넘게 바다 위에서 생존하지만 뭍에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땅에 발이 닿기만 해도 혼절해버리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불길한 장소가 돼버린 땅이지만 그녀는 땅과 그 위의 생명들을 그리워한다. 낡고 무너져가는 집이 언제까지 물 위에서 버텨줄지도 알 수 없다. 인도네시아의 신예 루루 헨드라 감독의 <생존자의 땅>은 트라우마에 갇힌 인간의 몸부림과 내면적 성장에 대한 영화적 고찰이다. (박성호)
감독은 탄광 지역 개발로 삶이 불안해진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를 보며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불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졌다. 영화는 소음에 가까운 거대한 기계음만 들어간 까만 화면으로 시작해, 이내 기울어진 물 위의 집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그 불안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힘을 세밀히 흘려 보낸다.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집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마이와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대다수의 한국인은 자신이 섬에 속한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한 면이 막힌 반도에서의 삶은 이따금 섬의 생활을 그려보게 하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온전히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 사는 삶과는 분명 감각이 다르다. 여기에 재해처럼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일들까지 더해지면 불안은 배가된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인공 마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물러난 곳에 있다. 땅을 밟으면 코피를 쏟으며 기절하는 마이의 증세는 심리적 사유 외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영화는 이러한 증세가 찾아오기까지 마이의 삶에 있었던 굴곡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따금 대화에서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삶과 마이 부모님의 죽음 이야기를 통해 막연하게 짐작하게 할 뿐이다. 확실한 건 현재 마이가 거의 유령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인간들이 쉽고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에 제약을 얻은 존재.
그 때문에 마이의 집은 물 위에 배로 떠올린 곳이다. 기본적으로 고립을 특성으로 하는 공간이다. 키우는 닭 또한 흙 없이 갑판 위에 뿌린 모이를 쪼는 것밖에 할 수 없고, 많지 않은 마이의 대사는 대부분 할아버지를 향해 집에 대한 불안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내용으로, 거칠고 짤막하게 구성된다. 마이의 세계는 말로 재구성되는 양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 친구의 손자이자 마이에게 계속해서 친절한 손을 뻗어 오는 유스, 인도네시아의 군사문화 잔재의 기운이 드러나는 제복을 입고 외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와, 두 사람을 만날 때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마이의 욕구는 단순하다. 다친 물소를 돌보고 싶고, 땅을 밟고 싶다. 이외에 대사로 발화되지 못한 마이의 마음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만날 수 있는 고목에 속삭임으로 전달된다.
고목 옹이에 입을 대고 마음을 전하는 마이는 결국 뭍의 존재들을 믿지 말라던 할아버지의 손녀다. 조상을 향한 할아버지의 기도는 비록 원하는 방향으로 응답된 적이 없지만, 조상들이 자신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현실에 손길도 미치고 있다고 믿는 마음 또한 실재(實在)를 중시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물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야기할 때 사진을 보여주는 라와와 달리, 실재만을 믿고 증거로 채택하는 유스 또한 같은 할아버지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땅 너머로 몰아낸 자들의 존재는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탄광 회사는 두어 장면을 제외하면 말 속에서만 존재하고, 영화는 그들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실재를 믿는 사람들의 영화에 실재하지 않음으로써 탄광 회사의 위치는 명확해진다. 그리고 더더욱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존재감을 갖게 된다. 마이와 할아버지가 처한 답답한 고립과 정박의 상황을 그들은 알지도 못한다. 검은 화면에 기계음만 들어가 있던 첫 장면과, 바로 이어진 마이의 집 장면의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사진으로 증거를 삼는 라와, '자기 인생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면서 할아버지의 결정은 들어주지 않는 삼촌의 존재는 마치 그 탄광 회사의 그림자 같다. 자기 이득을 위해 말을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고, 실재하는 것을 직면하기보다는 말이나 사진으로 재구성된 것들을 믿고 싶어 한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무고해 보이는 선택들이지만, 이 선택들이 누군가를 땅 끝으로, 땅 너머로 몰아내고 있음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탄을 가득 실은 거대한 콘테이너 배가 스크린을 가로지를 때, 그 앞에 작은 조각배를 띄우고 두 다리 단단하게 선 사람의 뒷모습이다. 마치 이 영화 자체 같은 장면이었다. 환상의 악기 연주와 아름다운 춤처럼, 이 영화처럼, 불안을 흩뿌리는 탐욕에 맞서 고립되고 정박된 존재들은 늘 유약하다. 그러나 인간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고립되고 정박되었어도 이들은 두 다리로 여기에 실재한다. 현실 속의 마이와 같은 존재들이 어디 있는지, 나는 또 어디에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였다.
10/04 16:00 영화의전당 소극장 (상영코드 078)
10/05 10:00 CGV센텀시티 3관 (상영코드 157)
10/09 10:00 CGV센텀시티 7관 (상영코드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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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다섯 번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개봉 전부터 높은 예매율을 자랑하고 있는 <범죄도시3> 부터
김선영 X 이윤지의 <드림팰리스> 까지!
다채로운 이번주 개봉작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범죄도시3
THE ROUNDUP : NO WAY OUT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요: 범죄, 액션 | 대한민국 | 105분
감독: 이상용
출연: 마동석, 이준혁, 아오키 무네타카, 이범수, 김민재, 이지훈, 전석호, 고규필
개봉: 2023.05.31.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대체불가 괴물형사 마석도, 서울 광수대로 발탁! 베트남 납치 살해범 검거 후 7년 뒤, ‘마석도’(마동석)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살인사건을 조사한다. 사건 조사 중, ‘마석도’는 신종 마약 사건이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수사를 확대한다. 한편, 마약 사건의 배후인 '주성철'(이준혁)은 계속해서 판을 키워가고 약을 유통하던 일본 조직과 '리키'(아오키 무네타카)까지 한국에 들어오며 사건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가는데... 나쁜 놈들 잡는 데 이유 없고 제한 없다. 커진 판도 시원하게 싹 쓸어버린다!
CINE PICK!
2017년 '범죄도시', 2022년 '범죄도시2'로 이어진 '범죄도시' 시리즈
세 번째 영화 <범죄도시 3>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천만 영화를 달성한 <범죄도시 2>를 만든 이상용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마동석과 함께 이준혁·이범수·김민재·이지훈·전석호·고규필 등이 출연하고, 일본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가 출연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라이드 온
Ride On
© (주)NEW
개요: 액션, 코미디, 드라마 | 중국 | 126분
감독: 래리 양
출연: 성룡, 류 하오춘, 곽기린
개봉: 2023.05.31.
배급: (주)NEW
시놉시스
한때 잘 나갔던 전설의 스턴트맨 ‘루오’(성룡). 유일한 파트너마 ‘레드 헤어’가 경매에 부쳐질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소원했던 딸 ‘바오’(류호존)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바오’는 자신의 변호사 남자친구 ‘미키’(곽기린)와 이를 해결하고자 하고, 조금씩 ‘루오’에게도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루오’가 ‘레드 헤어’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콤비 액션 영상이 SNS를 통해 화제를 모으게 되고, 유명 영화에 참여할 기회까지 찾아오는데…! 스턴트 생활을 청산하길 바라는 딸 ‘바오’와 인생 역전의 기회에서 고민하는 ‘루오’. 과연, 그는 가족과 커리어를 모두 지킬 수 있을 것인가?!
CINE PICK!
세계적인 액션 배우 성룡의 귀환! '루오'(성룡)과 스턴트마 '레드헤어'의 코믹 팀플레이어를 그린 영화로 세계적인 액션 스타 성룡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국에서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중국의 라이징 스타 류호존과 관기린이 함께 참여해 유쾌한 케미를 기대케 한다.
드림팰리스
Dream Palace
©인디스토리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12분
감독: 가성문
출연: 김선영, 이윤지, 최민영, 김용준
개봉: 2023.05.31.
배급: 인디스토리
시놉시스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과 ‘수인’은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운 사이다. ‘혜정’은 합의금을 받고 싸움을 멈췄지만, ‘수인’은 다른 유가족들과 아직도 농성 중이다. 남편 목숨 값으로 분양받은 아파트 ‘드림팰리스’에서 새 삶을 시작한 ‘혜정’은 ‘수인’에게 새 집을 꿈꾸라고 부추긴다. 처음엔 단칼에 거절하던 ‘수인’도 어느새 ‘드림팰리스’를 꿈꾸게 되는데… 맞잖아요? 행복은 아파트 분.양.순.
CINE PICK!
김선영 X 이윤지의 웰메이드 영화 <드림팰리스>!
남편의 목숨값으로 장만한 아파트를 지키려는 두 여자의 고군분투를 담은 소셜 리얼리즘 드라마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묵직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각본뿐만 아니라 흡입력 높은 연출력까지 주목받으며 걸출한 신예 감독의 데뷔를 알린 바 있다.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
©(주)슈아픽처스
개요: 드라마 | 아일랜드 | 95분
감독: 콤 바이레드
출연: 캐서린 클린치, 캐리 크로울리, 앤드류 베넷
개봉: 2023.05.31.
배급: (주)슈아픽처스
시놉시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가난한 집의 어린 소녀 코오트는 여름 동안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다. 낯선 환경도 잠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다정함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어느새 이들 사이엔 떼어놓기 힘든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CINE PICK!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7관왕을 석권한 '말없는 소녀'는 전 세계 매체가 앞다투어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는가 하면, 해외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대작!
'말없는 소녀'는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어린 소녀 코오트가 인생을 바꾸는 짧고 찬란한 여름을 보내면서 사랑받는 것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는가를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Last Dance
©티캐스트
개요: 드라마 | 벨기에, 스위스 | 83분
감독: 델핀 리허리시
출연: 프랑수와 벨레앙, 라 리봇, 케이시 모텟 클레인
개봉: 2023.05.31.
배급: 티캐스트
시놉시스
사랑하는 아내를 갑자기 잃고 홀로된 제르맹은 자식들의 지나친 걱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시간표까지 짜서 자신을 돌보는 자식들의 극성에 시달리던 제르맹은 아내와의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현대 무용단에 입단한다. 그의 어설픈 몸짓은 뜻밖에도 무용단을 이끄는 세계적인 무용가의 관심을 끌게 되고, 급기야 공연을 불과 4주 남기고 제르맹을 주역으로 한 새로운 안무가 만들어진다. 한편, 공연 사실을 비밀로 하고픈 제르맹의 행동은 그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CINE PICK!
제75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 <사랑하는 당신에게>. 현대 무용을 통해 이별의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무용가 라 리보트와 생애 첫 현대 무용에 도전한 제르맹의 유쾌한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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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열어젖힌 가능성의 세계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 앞에서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주체적인 인간을 그린다. 마사는 죽기 적당한 때를 선택하고 죽기 편안한 장소를 물색한다. 마사의 몸은 오랜 항암 치료로 이미 전장이 되어버렸다. 심장이 뛰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암세포와 싸워야 하는데, 남은 날들을 끔찍한 고통 속에서 보내며 자기 자신을 잃어가느니 조금이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존엄하게 떠나고 싶다.
죽음이 열어낸 가능성
죽음은 닫혔던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첫째는 옛 친구 잉그리드와의 재회가 그렇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젊은 날 같은 잡지사에서 일했지만 각자 종군 기자로, 작가로 바쁘게 살아오느라 소식이 끊겼다. 마사의 투병 소식은 둘을 재회하게 만들었고, 생각지 못했던 만남은 마사의 마지막 여정에 잉그리드가 동행하도록 이끈다. 또 한 가지는 남보다 못한 관계로 지내왔던 딸 미셸과의 관계다. 미셸은 아버지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방황했다. 마사는 이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 수 없었고, 종군 기자로 전쟁터를 돌아다니느라 모녀 사이의 골은 더 깊어졌다. 마사의 죽음을 앞두고도 냉담했던 모녀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사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화해의 가능성을 품게 된다.
마사에서 잉그리드, 미셸로 이어지는 관계의 대물림은 흥미롭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과거에도 같은 연인을 공유한 바 있다. 마사의 연인이었던 데이미언이 이후 잉그리드와도 연인이 됐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사는 물려주는 쪽이고, 잉그리드는 물려받는 쪽이다. 잉그리드는 마사가 죽은 후 나타난 딸 미셸과의 하룻밤을 마사의 유산이라 여긴다. 잉그리드는 친구를 똑같이 닮은 딸을 통해 친구를 느낀다. 단절되었던 세 여자가 마사의 죽음으로 인해 순차적으로 연결되고,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우정의 연대는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품는다.
여성의 방식으로 전쟁을 다시 전유하기
처음 마사가 잉그리드를 집에 초대하며 대접한 것은 식탁 가득한 과일과 허브차였다. 마지막 여정을 보냈던 뉴욕 근교의 집에서도 식탁 위에는 늘 과일이 놓여있었으며, 그들은 저녁 식사로 삶은 당근을 씹어 먹었다. 캐럴 제이 애덤스의 <육식의 성정치>에 따르면 1차 대전 이후 많은 여성 저술가들이 전쟁과 육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쟁의 무분별한 학살은 불필요한 고통을 멈춰야 한다는 통찰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동물 사냥에 대한 인식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자연 식물식, 숲으로 둘러싸인 멋진 집의 무성한 초록, 호퍼의 그림, 그리고 고요한 아침의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두 여자의 시간에는 생기와 생명력이 가득하다. 이는 마사가 한 평생 익숙해져야 했던 전쟁과 살육, 죽음의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다.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 종군기자는 드물었기에 마사는 남성적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만 했다. 전쟁터를 떠돌던 날들은 딸 미셸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연인들과의 관계 역시 전쟁의 공포를 잊을 아드레날린일 뿐이었다. 미셸의 아버지 프레드 역시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로 망가지면서 마사를 떠났다. 전쟁터는 마사와 타인을 단절시키는 동시에, 사랑과 애착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마사는 딱 한 번 세상에 내어놓지 않은 허구의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이라크 전쟁에서 끝까지 남은 수사들을 취재한 후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쓴 것이었다. 또한 서점에서 읽고 싶었던 책 ‘성애적 부랑죄’ 를 발견하지만 죽기 전에 다 읽지 못할 거라며 내려놓았다. 전쟁은 마사의 삶에 줄곧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죽음과 사랑의 대치된 이미지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러므로 마사는 자신의 죽음 또한 전쟁이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마사의 방식은 죽음을 실행하기 전까지 옆방에 머물러 줄 ‘동행’과 함께 하는 것이다. 바람이 통하고 친구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살짝 열어 둔 문, 사랑에 대한 열망, 그리고 어떠한 살육도 없는 식탁은 폭력과 단절로 상징되는 기존 남성적 전쟁의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전쟁을 전유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마사가 죽은 후에도 마사의 방 문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죽음 안쪽으로 열려있는 문은 죽음을 삶으로부터 단절시키지 않는다.
소설가인 잉그리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쪽이다. 마사로부터 미셸을 물려받으며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마사의 전쟁 수첩 또한 잉그리드에게 넘어가며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어둠을 선택함으로써 빛은 선명히 새어들어오고, 소멸이 예정된 마사의 몸은 세상을 향해 더욱더 활짝 열렸다. 닫힐 것 같았던 문은 닫히지 않았고, 죽음은 의외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며 순환을 예고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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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엔딩이 아닌 새로운 챕터의 시작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고, 얼굴만 바라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방금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또 전화기를 붙들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그 사람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냐고 묻는 말에 “그냥 좋으니까, 다 좋다.”고 대답했던 설레는 시간을 지나, 이런 점은 이유 없이 좋고, 저런 점은 제법 괜찮은 것은 같고, 그래도 참아 줄만한 단점과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바꿔 보고 싶은 그런 성격들이 대충 파악이 되었다고 말도 안되는 자만심으로 “이 사람을 알만큼은 알고 있지.” 하고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둘만의 관계는 나의 원가족, 그의 원가족까지 확대 되기 마련이고, 출산과 육아를 겪고 나면 둘의 우주는 더 넓어 진다. 넓어진 세계관 속에 놓여지고 나면, 내가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으로 바뀔 때도 있고, 가끔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모습들이 나타나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도 부지기수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 결혼이라는 것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일 뿐 아니라,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발견은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부정적일 때도 있다. 지금의 나는 누구일까?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끝없는 물음표 속에서 답을 찾아가고,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가끔 이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관계를 재정비 하고 바로 세우고자 할 때도 있다.
영화 <결혼이야기>는 뉴욕시에서 활동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뮤지컬 감독 찰리 바버와 배우인 아내 니콜 바버의 이혼이야기이다. 둘은 아들하나를 둔 화목한 부부였지만, 시간이 흘러 결혼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이혼 중재인을 찾아가 상담의 일환으로 서로의 대해 좋은 점을 쓴 글을 읽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렇게 좋은 점들이 있지만, 결국 이혼을 선택한 부부라는 첫장면에서부터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현실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진행되는 이혼의 과정은 더욱 더 현실적이다. 니콜이 처음에 말한 것처럼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도록 변호사 쓰지 말고 깔끔히 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동료의 권유에 LA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여성 가정변호사 '노라'를 만난 니콜은 상담에서 찰리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되새겨 보다 찰리가 매번 자신을 등한시해왔고, 내 생각이 매번 거절당한 것 같고, 심지어는 기획사의 무대 매니저와 바람핀 것 같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다 결국 노라를 변호인으로 고용한다.
그 이후 니콜은 마침 가족을 만나러 LA로 건너온 찰리에게 이혼서류를 건넨다. 니콜의 독단에 괘씸해진 찰리는 또 다른 실력파 변호사 '제이'를 찾아가게 되고, 제이는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자문하게 되고, 부담스런 수임 비용과 아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생각해 단념하고 뉴욕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노라가 찰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른 시일 내에 변호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헨리의 양육권을 받아갈 수 밖에 없다고 재촉하면서, LA로 다시 넘어와 정중하면서도 회유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전직 가정변호사 버트 스피츠를 변호인으로 내세우게 된다. 양육권 소송에서 유리하기 위해 LA의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게 되는 찰리.
애초에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사랑했다 아름답게 헤어지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관계가 되기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소송으로 약점을 내세우기 위해 서로의 나쁜 면을 모두 꺼내어 이혼으로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고, 그 과정은 둘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게 된다. 사랑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만큼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소송 중에도 문득 남아 있는 서로의 애정이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상을 받은 니콜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니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 ‘이렇게 까지 이혼해야 하는 걸까?’ 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니콜과 찰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찰리와 니콜의 이혼과정을 통해, 결혼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인생과 너의 인생 그리고 아이까지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삶으로 완전하게 인정되며, 따로 또 같이 모두함께 행복의 순간을 누리도록. 나는 어떤 아내인가. 나는 어떤 엄마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게 만든다. 결혼이란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와 같은 엔딩이 아닌 새로운 삶의 형태의 시작이고 인생의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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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실 비치에서, 사랑은 콤플렉스를 마주하는 순간
도미닉 쿡.
사랑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다.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마주하는 순간이자 모르는 세계를 열어주는 몇 없는 문이며 인생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폭풍이다. 같은 사람과의 관계라 할 지라도 어느 시기에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은 전혀 다른 세기와 모양으로 휘돈다. 우리는 폭풍이 지나간 뒤에야 '그러면 좋았을 걸.' 하며 황량한 길을 서성인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그러면 좋았을 일' 따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이후의 나와 이전의 나는 다른 존재인 이유에서다. 지금 차분한 마음으로 폭풍의 흔적을 돌아보는 나는 폭풍 안에 있던 언젠가의 나를 완전히 헤아릴 수 없다.
인생의 크고 작은 바람과 함께 이전의 나는 계속해서 소멸해왔다.
추억한다는 것은 애도하는 일이다. 한때 연인이었던 누군가과 나였던 누군가의 죽음을. 애틋해질 수밖에 없다.
1. 다른 취향
로큰롤을 좋아하는 남자와 클래식밖에 모르는 여자. 나는 예전에 이 둘은 절대 연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호감은 생길 수 있겠지만 연애로 이어지기에는 공감대가 너무 없으니까. 취향은 그 사람의 살아온 삶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부유하고 엄숙한 가정에서 자란 플로렌스와 서민 가정이자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돌보며 자란 에드워드. 그들의 삶을 구구절절 나열하며 이 둘은 다르다 말하기 뭐하니 작가는 로큰롤과 클래식으로 대변해버린 것이다. 다른 취향, 본질적으로는 다른 환경을 가진 그들의 끝은 예견되어 있었던지도 모른다.
특히나 에드워드는 자신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 가족에 질려했다. 그러니 그는 더더욱 자신의 기분을 헤아려주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와 연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타인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길 바란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섹스 후 뛰쳐나가 버린 플로렌스를 그는 몰아세웠다. 왜 나를 창피하게 만드냐며. 플로렌스는 공허했을 것이다. 연애는 결핍을 채우는 행위가 될 수도 결핍을 마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른 취향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내부에 본질이 있다면 연인 사이에 이러한 본질을 마주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적어도 상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하는 태도는 지녀야 할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공허하다.
2. 새드엔딩일까
애매하다. 연인이 헤어졌다고 해서 새드엔딩이라 말하는 것은 섣부르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각자 큰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마도 에드워드에게는 뇌손상을 입은 어머니가, 플로렌스는 친척에 의한 성적 학대의 기억이 트라우마일 것이다. 트라우마는 나약한 인간에 깊숙이 박힌 못이다. 깊숙하다고 하여 그 못을 뽑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못이 뽑히는 순간 그 자리를 채워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완전히 채우지 못한다면 벽을 든든히 지탱해주면서 조금씩 채워나가면 된다. 플로렌스는 꽤나 우직하게 에드워드를 받쳐줬지만,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성추행 트라우마라는 못을 발견하지도 못한 채 플로렌스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가 잘한 것은 아니나 밉지도 않다. 대단히 현실적이다. 오히려 플로렌스보다 더 마음이 가기도 한다. 대부분 우리는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빠져 남의 속내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말을 하면 분명 도와줬겠지만 먼저 손을 뻗기란 쉽지 않다.
플로렌스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해피엔딩일 수도 있다. 자신과 공통된 취미를 가진 남성과 가정을 꾸려 자식을 셋이나 낳았다.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는 극복했을 것이다. 원하던 공연 홀에서 원하던 애니스모어 사중주단 구성 그대로 은퇴공연을 마쳤다. 객석에는 꽤나 그리워했을 옛 애인이 약속한 좌석에서 브라보를 외치며 그를 축복했다. 에드워드를 다시 마주한 그 날은 뭉클하고 싱숭생숭 했겠지만 그래도 그의 전체적인 인생을 돌아봤을 때 에드워드 없이도 꽤 괜찮은 이후를 살았다. 물론 이것은 감독이 에드워드의 시각으로 후반부를 구성했기에 플로렌스의 겉모습만 훑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반면, 에드워드는 그렇지 않다. 대학시절 역사학 수석을 할 만큼 학업능력이 우수했던 그는 종일 담배를 문 허름한 레코드샵 사장이 되었다. 엄마 선물을 산다고 가게에 들른 꼬마가 플로렌스의 딸인 걸 알자 쓸쓸한 얼굴로 그의 친구들에게 그의 커플이 헤어지던 날을 이야기했다. 더 나이가 많이 들어서는 라디오에서 소개된 플로렌스의 은퇴 공연을 혼자 보러 갔다. 그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잘 지냈군요. 혹시 우리도 잘 지낼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너무 많이 어렸을까요.
그들 중 누군가는 꿈을 이뤘다. 그들은 철없던 시절 했던 약속을 용케 떠올렸고 지켰다. 극의 초반부터 커플은 위태로웠으니 그들이 헤어졌다고 하여 이 엔딩이 새드엔딩이라 말하기도 힘들다.
다만 운명이라는 것. 진짜 운명이라는 게 있고 우리는 그저 무력한 존재라면,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새드엔딩이다.
3. 왜 플로렌스는 배를 타고 있었을까
실제로 움직이는 배는 아니었다. 해변 위에 장식마냥 세워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떠한 의미를 형성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배에 플로렌스가 타고 있는 것처럼 연출했다. 해변 신의 후반부로 갈수록 에드워드는 등을 돌리고 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다시 돌아가자고. 하지만 에드워드는 결국 플로렌스를 떠나보내고 만다. 그녀는 말하자면 에드워드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는 십 수년이 지나 레코드샵 사장이 되었을 때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반면, 배에 타 있던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에 관계의 해결책을 말해보거나(그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더라도)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다 했지만 연인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녀도 상심했을 것이다. 다만 이별 후에는 더 쉽게 털고 나아갈 수 있는 강자의 입장이 되었다. 플로렌스는 나아갔다. 자신의 꿈을 향해, 발전을 향해 항해했다. 플로렌스에게 그 장면은 기회가 아니라 전환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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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영화#조니댑#스피븐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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