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9 16:57:54
[BIFF 데일리] 고립과 정박, 그러나 실재
영화 <생존자의 땅> 리뷰
DIRECTOR. 루루 헨드라(Loulou HENDRA)
CAST. 셰니나 시나몬(Shenina CINNAMON), 아르스웬디 베닝 스와라(Arswendy BENING SWARA), 앙가 유난다(Angga YUNANDA), 유수프 마하르디카(Yusuf MAHARDIKA) 외
PROGRAM NOTE.
마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다 위에 부유하는 허름한 수상가옥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래전 땅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다약 원주민인 그녀는 광산 개발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한 노인에 의해 구조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도 잃고 친척들과의 연락도 끊기게 된다. 십 년 넘게 바다 위에서 생존하지만 뭍에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땅에 발이 닿기만 해도 혼절해버리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불길한 장소가 돼버린 땅이지만 그녀는 땅과 그 위의 생명들을 그리워한다. 낡고 무너져가는 집이 언제까지 물 위에서 버텨줄지도 알 수 없다. 인도네시아의 신예 루루 헨드라 감독의 <생존자의 땅>은 트라우마에 갇힌 인간의 몸부림과 내면적 성장에 대한 영화적 고찰이다. (박성호)

감독은 탄광 지역 개발로 삶이 불안해진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를 보며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불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졌다. 영화는 소음에 가까운 거대한 기계음만 들어간 까만 화면으로 시작해, 이내 기울어진 물 위의 집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그 불안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힘을 세밀히 흘려 보낸다.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집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마이와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대다수의 한국인은 자신이 섬에 속한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한 면이 막힌 반도에서의 삶은 이따금 섬의 생활을 그려보게 하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온전히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 사는 삶과는 분명 감각이 다르다. 여기에 재해처럼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일들까지 더해지면 불안은 배가된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인공 마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물러난 곳에 있다. 땅을 밟으면 코피를 쏟으며 기절하는 마이의 증세는 심리적 사유 외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영화는 이러한 증세가 찾아오기까지 마이의 삶에 있었던 굴곡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따금 대화에서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삶과 마이 부모님의 죽음 이야기를 통해 막연하게 짐작하게 할 뿐이다. 확실한 건 현재 마이가 거의 유령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인간들이 쉽고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에 제약을 얻은 존재.
그 때문에 마이의 집은 물 위에 배로 떠올린 곳이다. 기본적으로 고립을 특성으로 하는 공간이다. 키우는 닭 또한 흙 없이 갑판 위에 뿌린 모이를 쪼는 것밖에 할 수 없고, 많지 않은 마이의 대사는 대부분 할아버지를 향해 집에 대한 불안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내용으로, 거칠고 짤막하게 구성된다. 마이의 세계는 말로 재구성되는 양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 친구의 손자이자 마이에게 계속해서 친절한 손을 뻗어 오는 유스, 인도네시아의 군사문화 잔재의 기운이 드러나는 제복을 입고 외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와, 두 사람을 만날 때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마이의 욕구는 단순하다. 다친 물소를 돌보고 싶고, 땅을 밟고 싶다. 이외에 대사로 발화되지 못한 마이의 마음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만날 수 있는 고목에 속삭임으로 전달된다.
고목 옹이에 입을 대고 마음을 전하는 마이는 결국 뭍의 존재들을 믿지 말라던 할아버지의 손녀다. 조상을 향한 할아버지의 기도는 비록 원하는 방향으로 응답된 적이 없지만, 조상들이 자신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현실에 손길도 미치고 있다고 믿는 마음 또한 실재(實在)를 중시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물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야기할 때 사진을 보여주는 라와와 달리, 실재만을 믿고 증거로 채택하는 유스 또한 같은 할아버지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땅 너머로 몰아낸 자들의 존재는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탄광 회사는 두어 장면을 제외하면 말 속에서만 존재하고, 영화는 그들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실재를 믿는 사람들의 영화에 실재하지 않음으로써 탄광 회사의 위치는 명확해진다. 그리고 더더욱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존재감을 갖게 된다. 마이와 할아버지가 처한 답답한 고립과 정박의 상황을 그들은 알지도 못한다. 검은 화면에 기계음만 들어가 있던 첫 장면과, 바로 이어진 마이의 집 장면의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사진으로 증거를 삼는 라와, '자기 인생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면서 할아버지의 결정은 들어주지 않는 삼촌의 존재는 마치 그 탄광 회사의 그림자 같다. 자기 이득을 위해 말을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고, 실재하는 것을 직면하기보다는 말이나 사진으로 재구성된 것들을 믿고 싶어 한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무고해 보이는 선택들이지만, 이 선택들이 누군가를 땅 끝으로, 땅 너머로 몰아내고 있음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탄을 가득 실은 거대한 콘테이너 배가 스크린을 가로지를 때, 그 앞에 작은 조각배를 띄우고 두 다리 단단하게 선 사람의 뒷모습이다. 마치 이 영화 자체 같은 장면이었다. 환상의 악기 연주와 아름다운 춤처럼, 이 영화처럼, 불안을 흩뿌리는 탐욕에 맞서 고립되고 정박된 존재들은 늘 유약하다. 그러나 인간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고립되고 정박되었어도 이들은 두 다리로 여기에 실재한다. 현실 속의 마이와 같은 존재들이 어디 있는지, 나는 또 어디에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였다.
10/04 16:00 영화의전당 소극장 (상영코드 078)
10/05 10:00 CGV센텀시티 3관 (상영코드 157)
10/09 10:00 CGV센텀시티 7관 (상영코드 447)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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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인류의 역사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악기들이 존재한다. 그 악기들을 다루는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그리는 연주가의 청사진을 안고 잠이 들었거나, 들 것이다. 무수한 가수들이 저마다 고유한 음색으로 세상을 칠하고자 성대(聲帶)의 고난을 견뎠거나, 견딜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꿈'이 그러하듯이 뮤지션이라는 꿈의 표면도 미끄덩하다. 꿈의 토대 위에 바로 서고자 아무리 치열하게 노력해도 번번이 넘어지기 일쑤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녹아내리기 십상이다. 마침내 누구나 인정할만한, 혹은 최소한 해당 분야 종사자들은 엄지를 치켜세울 결과물을 얻었다고 해도 세속적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이 모두 뛰어난 뮤지션은 그만큼 희귀한 보석이다. 하물며 자신의 유산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복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며, 꾸준히 음악적 실험을 추구하는 뮤지션이라면? '인피니트 스톤'이라고 할만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밴드 퀸(Queen)과 밴드의 리드 싱어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재현(representation)'한다. 음악영화이자 전기영화인 셈이다. 음악영화로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오리지널리티(독창성)를 추구했던 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냉소적인 영국식 유머를 주고받고, 때로는 음악적 견해의 차이 때문에 티격태격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늘 '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작품을 만들어내는 멤버들의 모습이 웃음과 희열을 선사한다.
퀸의 수많은 히트곡 중 하필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 영화의 제목으로 채택된 이유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다른 어떤 노래보다도 당대의 조류를 거슬렀기 때문일 것이다. 라디오를 활용한 곡 프로모션이 성공의 절대 반지였던 당시에 누구도 쉽게 도전하지 않았던 6분짜리 대곡,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에도 나오듯이 이 곡은 발매 초기 평론가들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대중의 평가는 사뭇 달랐다.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작곡한 이 곡은 아카펠라, 발라드, 오페라, 하드 록 등 전혀 다른 장르들을 조합한 실험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퀸이 세계적인 밴드의 반열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위키백과 'Bohemian Rhapsody' 항목에서 인용)
전기영화로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묘사한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는 실제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영화 자체의 기승전결을 위해 허구의 사건과 인물을 추가하고, 실제 일어난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영화적 흐름에 맞게 재구성하기도 했다. '재현'은 있는 그대로의 '복제'가 아니므로 과하지 않은 수준의 각색이라면 납득할만하다.
특정 인물의 전기영화는 주연배우가 실존 인물의 외양과 행동을 얼마나 잘 따라 했는지로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레미 말렉만 소위 '싱크로율 대박'인 것이 아니다. 퀸의 메인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한 귈림 리, 드러머였던 로저 테일러로 분한 벤 하디, 그리고 베이시스트 존 디콘(디키)을 연기한 조셉 마젤로 등 모든 주연 배우들이 퀸을 충실히 재현했다.이 영화는 결말부에 등장하는 'LIVE AID' 공연의 벅찬 감동을 위해 수미상관의 구조를 채택했다. 긴장한 채'LIVE AID' 무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으로 시작된 영화는 'LIVE AID' 공연이 끝나는 동시에 마무리된다. 'LIVE AID' 무대에 오르는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퀸의 멤버들이, 특히 프레디 머큐리가 공연장 안과 밖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몰랐다면 마지막 공연의 감흥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악기가 특정한 음(音)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진동해야 한다. 인산인해를 이룬 관객들을 바라보는 동안 프레디 머큐리의 눈동자는 얼마나 많이 떨렸을까. 그런 그의 눈동자는 또 다른 악기가 되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전 세계를 울리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대표곡 '라디오 가가(Radio Ga Ga)'의 가사 "Radio, someone still loves you"가 아니라 "Everyone still loves you, Freddie fxxxing Mercury."라고 노래한다.
'프레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Mercury)'처럼 뜨겁게 살다 간 한 뮤지션을 위한 열렬한 헌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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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서 보내는 응원
"나이 드니까 눈물만 많아져. 어쩐지 눈물이 나네." 같은 말에서는 괜스레 낙엽 냄새가 난다고, 그러니 내 입에서 나오기엔 좀 방정맞은 것 같다고, 아마도 십대쯤이었던 나는 생각했다. 삼십 대에 들어선 지금도 자신이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이들이 왜 저런 문장을 골랐는지 알 것 같은 순간들이, 가끔 그 비슷한 말이 슬쩍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이전에는 무심하게 넘어가던 일들이 실은 여상하지 않음을 깨달아가는 탓이다.
꽃 한 송이 피는 순간이나 새 살이 돋아 상처가 아문 자리는 어쩜 그리 경이로운지. 남들 다 하고 사는 일 중에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들이 많은지. 반쯤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느낌을 즐기며 천문학 책을 읽어보는데 중력이나 관성 같은 개념은 어쩜 그렇게 신비로운지. 모두 다 이전에는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두 번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 깨달음이 켜켜이 쌓인 자리에 무언가 와 닿았을 때, 그래서 물방울이 터지듯 눈물이 훅 고일 때, 그럴 때 우리는 "어쩐지" 눈물이 난다고 한다. 기실 이게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 걸까 곰곰이 따져보고 생각할 시간이 우리에겐 많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나이 드니까', '어쩐지'라고 해도 자연스러울 만큼 많은 시간을 그렇게 허덕허덕 보내고 있는 것이다.
윤이형 작가의 <작은 마음 동호회>에 수록된 단편을 읽다가 그렇게 "어쩐지" 울컥한 장면이 있다. 어떤 자매의 이야기였는데, 동생에게 생긴 큰 변화를 엄마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언니가 엄마의 입장을 헤아려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이었다. 버는 돈 대부분을 책과 영화에 쏟아내며 사는 자신의 존재는 엄마에게 어떨까 생각하는, 뭐 대략 그런 문장이었다. 전철 한가운데서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눈물이 터졌다. 어쩐지 울컥하네. 그리고 마침 전철 한가운데였으므로, 종점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있었으므로 그 "어쩐지"의 정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건 내가 가진 불안과 맞닿아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안정적인 것들과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오히려 점점 멀어지는 스스로를 보면서, 엄마도 아빠도 눈치를 주지 않건만 괜스레 눈치 보게 되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십대 때처럼 대단한 입신양명을 꿈꾸는 건 아니라 해도, 최소한 이 정도는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니 하는 세간의 말에 나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아씨들>의 조가 그 '세간'과 반대로 가는 삶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은 그 걸음조차 흔들리는 그대로 괜찮다고 끌어안아준다. 좋은 영화, 마음에 남는 영화가 많지만 찬실은 마치 어려운 날 함께 앉아있어 주는 친구처럼 따스하고 다정하다.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 정말 굉장히 운이 좋은 찬실이란 사람이 나오나 봐 ” 라고 생각한 한국인이 있을까? ( 내 친구는 자꾸 “ 찬실이는 복도 없지 ” 로 기억했다. ) 시놉시스를 볼 것도 없이 찬실이의 날들이 꽤나 박복하게 굴러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제목이기도 하다.
찬실은 영화를 사랑하는 프로듀서다. 즉 감독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영화라는 형태에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할 때, 그걸 현실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기획과 제작부터 홍보와 개봉까지 전 과정에 손이 닿는 사람, 본인 말을 빌자면 "돈도 관리하고 사람들도 모으고 뭐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다. 찬실은 예술 영화로서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감독과 오래 같이 일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영화 찍으며 평생 살 줄 알았다. 감독이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갑작스럽게 실업자가 될 때까지는.
찬실이의 복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OST 가사처럼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는 현실이 갑작스럽게 부대껴오는 것이다. 시간과 애정을 다 바쳐 사랑한 영화가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때로는 엉엉 울기도 하고 때로는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기도 하면서 찬실은 씩씩하게 삶을 다시 꾸려나간다. 얼마 안 되는 짐을 추려 언덕길에 할머니 혼자 사는 집 문간방으로, 사각형도 오각형도 아니고 반지하도 1층도 아닌 방으로 이사한다. 생계를 위해 친하게 지내던 배우 소피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급브레이크 걸린 길에서 방향을 어디로 틀어야 하나.
찬실에게는 별로 여유가 없다. "한국 영화계의 보배"라며 찬실을 추켜세우던 영화사 대표는 ‘감독의 예술이었으니 프로듀서가 누구여도 상관없었을 것’이라며 직업인으로서의 찬실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때마침 소피에게 불어를 가르친다는 단편영화 감독 영을 보면서는 또 나름대로 심경이 복잡하다. 좋아하고 어쩌고 할 만큼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리고 정작 알아보면 그렇게까지 잘 맞지도 않지만 ("노올란?!"), 이 정도면 대충 업계도 맞겠다 사람도 다정하니 괜찮은 것 같은데 적당히 연애라도 해볼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조각배 같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던 찬실의 일상에 한 남자가 더 나타난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맘보 춤을 출 것만 같은 속옷 차림새에, 추위에 파르라니 떨면서도 콘셉트에 충실하게 머리카락까지 고슬고슬 만지작거리는 그는, 자신이 장국영이라고 주장한다. 유령일까 환상일까 아니면 영화의 현신 같은 존재일까. 아무튼 그는 본인이 장국영이라고 주장하고, 찬실은 "이제 내가 미칬는갑다... 완전히 돌았는갑다..." 하고 서러워한다.
이 모든 주변인 틈바구니에서 찬실은 어떤 카테고리로 규정되지 않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간다. 뚜렷하게 계약서 찍힌 직업도 없고, 함께 서로를 보듬자고 미래를 약속한 사람도 없고, 하다 못해 여태까지 해왔던 일조차도 없어졌지만 찬실은 늘 최선을 다한다. 장국영에게 고민 상담을 하거나, 영과 잘해보겠다고 도시락 싸들고 따라가기도 하고, 자신에 대해서 깊이깊이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소피에게도 너 자신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해 보라고 하고, 더듬더듬 한글을 배우는 집주인 할머니 숙제를 도와드리거나 함께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그리고 그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다. 도시 곳곳에 세금으로 조성한 공간을 저렇게 귀엽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 크리스토퍼 놀란을 무시하고 오즈 야스지로(를 비롯해 '시네필'들이 좋아하는 감독)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저렇게 유쾌할 수도 있구나. 빛날 찬 열매 실, "내하고 닮았나" 고민했던 모과처럼 단단하고 향기로운 사람이다. 모과 바로 뒤에 붙어나온 배, 사과, 곶감 등 영화 대박 기원 고사상의 과일들은 끝내 그녀의 것들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찬실에게는 알찬 열매라면 으레 그렇듯 은은한 윤기가 돈다.
그러는 동안 장국영은 찬실에게 계속 묻는다.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뭐냐고. 영화를 "해나갈 수 있을까" 묻는 찬실에게, 찬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묻는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영과 "잘될 수 있을까"를 묻는 찬실에게, 외로운 건 외로운 것일 뿐이니 상대가 아닌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일련의 일들 끝에 찬실은 모든 걸 게워낸 사람이 물병을 더듬더듬 붙들듯 다시 영화를 잡는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찬실은 "하고 싶은 일"의 첫걸음을 떼어나간다.
영화 끝에서 찬실은 장국영이 메어주는 아코디언을 한 품 가득 끌어안고 희망가를 연주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시작과 끝에 어쩐지 쓸쓸한 바람 소리를 품고 있는 악기여서일까. 제목은 희망이라지만 어쩐지 절망적인 시대에 불리던 아득한 노랫말이어서일까. 그 장면은 어쩐지 눈물겹다.
이 영화에서 내게 "어쩐지" 눈물이 난 부분은 이 장면이었다. 차분한 연주 끝, 그동안 자기 일처럼 열을 내며 해준 장국영의 조언이 더 이상 찬실에게 필요치 않다는 걸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 제가 멀리 우주에서 응원할게요 "
" 고마웠어요.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그 차분한 인사는 마치 영화와 주고받는 말 같았다. 우리는 이래서 영화를 보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영화에 있어 늘 외부자라고만 느꼈던 내게도 영화가 말을 걸어주는 순간이었다. 우주 어딘가에서도 누군가가 담은 마음을, 때로는 택배 받듯 때로는 유리병 편지 받듯 건네어 받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오래오래 기억하고 마음에 품고 이따금 끄집어내어 살펴보는 것. 그게 영화와 나의 관계였다. 찬실처럼 프로듀서가 되고 감독이 될 일도, 영처럼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업을 두루 섭렵할 일도, 하다 못해 이미 폐간된 <키노> 지를 쌓아놓고 정성일 평론가의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일도 없지만 그런 나에게도 영화는 선물처럼 가까이 와준다. 마치 이 영화, 찬실이 그랬듯.
영상으로 보다 보면 닮아 보인다. 진짜다.
영화의 현신 장국영. 그를 우리가 길이길이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잘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는 영화의 아우라가 있으니까. 이 영화에도 나온 <아비정전>의 옷차림이 그의 외적 시그니처라면, <패왕별희>는 그의 내적 시그니처였다. <패왕별희>에서 그가 맡은 데이는 철저하게 이야기 속으로 침잠한 인물이었으니까.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가장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가 데이인데, 그럼에도 그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건 영화가,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 때문이다.
그가 이야기의 극단에 서 있다면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은 쥬샨이다. 거친 현실을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했던 쥬샨과,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던 데이. 샬로는 그 사이에서 남편이었다 패왕이었다 하며 갈지자로 걸었다. 이야기 안에만 있고자 한 이에게 현실은 너무 거셌고, 현실을 바지런히 걷고자 한 이에게 이야기는 너무 매혹적이었다. 끝내 현실은 이야기를 밀어내지 못했고, 이야기는 현실을 지우지 못했다. 공리와 장국영은 대척점에 있었지만 실은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찍힌 대척점이었다. 현실과 픽션은, 삶과 영화는 그렇게 먼 것 같지만 멀지만은 않다.
이따금 <패왕별희>의 어떤 장면이 생각나는 이유. 장국영의 눈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 삶에 에너지가 뚝 떨어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찬실을 만난다는 기분으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들여다보는 이유. 우리가 늘 이야기를 찾는 이유는, "사는 게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라는 찬실의 말에, 다른 이들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뒤에서 비춰주는 찬실의 플래시에 녹아 있는지 모른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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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을 사랑한다면, 물속에 던져버려라
6★/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권위 있는 음악상을 받은 드니 뒤마르. 차근히 경력을 쌓은 그는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할 차세대 기수로 손꼽힌다. 그런데 드니는 수상 소감을 말할 때 굳이 객석에 자리하지 않은 아버지를 언급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프랑수아가 같은 지휘자, 그것도 업계 최고로 꼽히는 지휘자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드니는 미래가 창창한 지휘자이지만, ‘프랑수아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시상식 다음 날. 드니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뒤마르가 자신이 지휘자로 일하는 악단으로 출근한다. 한 명, 두 명, 세 명… 프랑수아가 마주하는 모두가 웃는 얼굴로 드니의 수상을 축하한다. 프랑수아의 신경이 점차 날카로워진다. 그 자신 역시 명망 있는 지휘자인데,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프랑수아에게 이제는 ‘누군가의 아버지’로 밀려날 때가 되었다는 불안감을 주는 것이다.
그러던 중 프랑수아에게 전화 한 통이 온다. 모두가 꿈의 극장이라 부르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온 전화로, 그를 차기 지휘자로 모시겠다는 연락이다. 콧대 높은 아버지의 기분이 풀린다. 피할 수 없는 경쟁 관계에 놓인 부자는 그제야 서로의 성과에 박수 치며 웃는다. 그러나 그 전화는 잘못 걸려 온 전화였다. 라 스칼라의 제안은 프랑수아 '뒤마르'가 아닌 드니 '뒤마르'에게 갔어야 했던 실수였다. 관계자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드니는 고민에 빠진다. 의도치 않은 실수 탓이기는 해도, 결과적으로는 아들이 아버지가 평생 꿈꿔온 자리를 빼앗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부자 관계에 늘 흐르던 경쟁심이 깃든 긴장 관계 역시 진실을 밝히기를 어렵게 한다.
차일피일 진실을 밝히기를 미루는 드니와 날이 갈수록 라 스칼라를 향한 꿈에 부풀어 오르는 프랑수아. 영화는 둘의 갈등이 봉합되고 이들이 화합하는 과정을 담는다. 다소 지루하고 작위적인 전개와 결말이다. 부자 간 화해라는 보편의 메시지를 빌미 삼아 영화 전반에 흥미롭게 흩뿌려진 갈등을 너무도 손쉽게 봉합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니 고개를 돌려보자. 진실을 알게 된 프랑수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즉 그의 양육법 말이다. 프랑수아는 드니에게 어릴 적 휴양지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물을 두려워했던 프랑수아는 자신을 닮은 아들을 이해했고, 그런 아들에게 계속 물에 들어가 놀라고 말하는 아내에게서 드니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드니의 어머니는 그런 드니를 물속에 던져버렸다. 드니는 두려움에 질려 허우적거렸고, 프랑수아는 아내의 ‘폭력적’ 양육법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얼마 후. 물속에 던져진 드니는 자신의 공포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고는 이내 즐거운 표정으로 물장구를 치며 놀기 시작한다. 프랑수아는 충격을 받는다. 드니의 두려움에 대한 공감이 오히려 지금껏 드니의 성장을 막아온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랑수아는 중년에 접어든 아들 드니가 마주한 문제가 수십 년 전 휴양지에서 있었던 일과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드니가 자신에게 진실을 알리기를 주저한 진짜 이유를 간파한 것이다. 드니는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연 자신이 라 스칼라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의심하기 때문에 진실을 빠르게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를 위한다는 선의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고자 했던 것이다. 프랑수아는 수십 년 전의 깨달음을 발판 삼아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아들을 물속에 던져버린다. 드니는 수십 년 전에 물속에서 그러했듯, 이번에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증명해 보인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 프랑수아와 함께다.
때문에 〈마에스트로〉는 부자 관계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양육법에 관한 영화다. 시대를 거스르는 절대적인 양육법은 없다. 지난 시대였다면, 두려워하는 아이를 물속에 던져버리는 양육법은 자녀에게 공감하지 않는 부모의 폭력을 상징하는 일화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아이에게 공감하는 양육과 과보호가 구분되지 않는 시대, 그리하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하지 못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는 아이를 물속에 던져버리는 양육법이 다시 필요할지도 모른다. 중년이 되어서도 자기 역량을 의심하며 회의하는 아들에게 후자의 양육법이 더 적합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를 물속에 던져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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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붉그스름한 군자
감독: 박재민
러닝타임: 4분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험난한 성인식을 치러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 과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애니메이션 1' 中 <성인식> 스틸컷
옛날 부족국가 시절, 제사는 신을 향한 행위였다.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도 가능했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도 있었다. 제물이 희귀할수록 신에게 큰 기쁨을 전달할 것이라 믿었던 부족들의 행위였다. <성인식>은 인신공양까지는 아니고, 하얀 새를 제물로 바친다. 제단 위에서 제사장이 꼬마에게 하얀 새를 공양하라고 한다. 그러나 꼬마는 반대한다. 하얀 새를 제사장에게 던지며 제사장을 제단 밑으로 떨어트린다. <성인식>은 샌드아트와 복합적으로 연출하며 빠른 전개와 인상적인 효과를 보인다. 넘어진 제사장을 목격한 다른 하얀 새를 품고 있던 꼬마들은 각자가 품었던 하얀 새를 풀어준다. 하얀 새들은 자유를 찾는다.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 꼬마의 결단력 있는 행동은 성인(聖人)의 모습을 보인다.
상영일자: 9/19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9/1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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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여서 끝까지 해 볼 수 있는 것
함께여서 끝까지 해 볼 수 있는 것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40대 부부 레이첼과 리처드가 있습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임신을 시도하고, 수술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봤지만 다 실패했어요. 고민 끝에 입양을 결정하고 아이를 밴 젊은 여성과 연락이 닿지만, 알고 보니 관심을 받고 싶어 임신 중이라고 거짓말한 사람에게 속은 것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실패에 몸과 마음이 지칠 뿐 아니라 이들이 쓰는 비용도 점점 늘어 갑니다. 게다가 이들에게 임신은 더 이상 '프라이빗'하거나 로맨틱한 이슈가 아닙니다. 궁금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받고, 의사에게는 민감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 털어놓아야 하죠.
레이첼과 리처드는 임신을 위해서 "애를 납치하는 것만 빼고 다"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마지막 방법으로 난자 기증을 추천받죠. 처음에 레이첼은 강하게 반대해요. 아이에게 자신의 유전자는 들어 있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리처드는 '따져 보면 입양보다 난자 기증이 더 합리적이지 않냐, 못할 게 뭐냐'고 설득합니다. 입양아에겐 부부의 유전자가 없지만, 난자 기증을 통해 얻은 아이는 리처드의 유전자는 갖고 있고, 레이첼의 배 속에서 품으니 그가 태내 환경을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 결국, 이들은 자신에게 난자를 기증해 줄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프라이빗 라이프>는 누가 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고 귀여워하지만, 한 번도 키워 보고 싶었던 적은 없어서 이들이 왜 이렇게 상처를 받으면서 노력하는지 공감하지는 못했거든요. 분명 아이와 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고 싶은 것일 텐데 그 과정이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고, 임신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 소망의 농도를 재보지 않고 계속 애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리처드는 너무 지쳐서 홧김에 "이젠 아이를 갖고 싶지도 않아"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둘에게 아이가 그만큼 간절하구나 싶었고, 나도 좀 더 나이를 먹고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갖기 시작하면 마음이 바뀔까, 라는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원래 살던 뉴욕을 벗어나 타지의 작은 식당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부부의 모습입니다. 사뭇 긴장한 듯 말없이 문 쪽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레이첼의 손을 잡는 리처드. 서로를 보며 살짝 웃고는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이고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옆에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는 것. 이 영화에서 저는 그런 마음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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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브런치 문소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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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개별성을 뭉뚱그리지 않는 가족 모델
귀환/Homecoming
카트린 코르시니/프랑스/2023/108min/'새로운 물결' 세션
케이디자는 부유한 파리지엥 가족의 아이들의 보모로 여름 동안 코르시카섬에 머물게 된다. 10대인 두 딸 제시카와 파라를 데리고, 케이디자는 15년 전 비극을 피해 도망쳐 나온 그 섬으로 돌아간다.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서울국제여성영화제)
어린이 한 명은 손에 잡고 갓난아이 하나는 품에 안은 흑인 여성 케디자.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차가 선착장에 도착한다. 그때 전화가 온다. 케디자는 무너져 내린다. 눈물을 흘리며 두 아이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유람선에 오른 케디자의 옆에는 그새 성장한 두 딸 제시카, 파라가 있다. 파리에서 보모로 일하는 케디자의 고용인이 코르시카 섬으로 휴가를 떠나며 케디자와 그녀 가족에게도 동행을 권했기 때문이다. 케디자에게는 출장과 휴가를 겸한 여정이다. 15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코르시카섬을 떠났던 케디자와 마냥 들뜬 두 딸. 15년 전 그들이 떠나온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호기심을 촉발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셋은 코르시카에서 나름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흑인을 모욕하는 현지의 백인 남성, 고용인의 별장에 초대받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도 케디자가 보모 일을 해야 하는 순간으로 인해 긴장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한 흑인 가족인 세 모녀에게 이 정도는 그냥 넘길 수 있을 만한 일이다. 꽤나 즐길 만한 휴가가 이어진다. 제시카와 파라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휴가를 즐긴다. 제시카 고용인의 딸과 연인이 되고, 파라는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던 백인 남자와 미움과 애정이 뒤섞인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사건이 생긴다. 첫째는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 친할머니가 실은 코르시카섬에서 멀쩡히 살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파리의 좋은 대학에 들어간 제시카가 엄마와 동생을 부끄러워하며 그들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내용을 적은 일기를 파라가 발견한 일이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세 모녀는 갈가리 찢기고 각자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엄마의 비밀과 문화/계급 상승 욕망이 단란하고 단단했던 세 모녀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헤쳐 놓는다.
그리고 위기 끝에 세 모녀는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케디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나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고, 이를 딸에게 물려주기 싫어 코르시카를 떠났다. 제시카는 자신이 동경하던 세계가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엄마의 진심을 확인한 후 다시 돌아온다. 파라 역시 말썽을 부리고 멋대로 굴면서도 자신이 엄마, 언니와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귀환〉은 세 모녀의 개별 서사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이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관계성으로 다시 엮어낸다. 즉, 개별성과 관계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의 여성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누구의 서사도 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존중되기에 그들이 엮였을 때의 감동도 배가 된다. 〈귀환〉은 강요된 희생과 역할이 아닌 이타적 욕망과 서로 다른 존재의 결을 품는 가족 모델을 상상하는 데 훌륭한 밑절미가 되어주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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