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9 16:57:54
[BIFF 데일리] 고립과 정박, 그러나 실재
영화 <생존자의 땅> 리뷰
DIRECTOR. 루루 헨드라(Loulou HENDRA)
CAST. 셰니나 시나몬(Shenina CINNAMON), 아르스웬디 베닝 스와라(Arswendy BENING SWARA), 앙가 유난다(Angga YUNANDA), 유수프 마하르디카(Yusuf MAHARDIKA) 외
PROGRAM NOTE.
마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다 위에 부유하는 허름한 수상가옥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래전 땅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다약 원주민인 그녀는 광산 개발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한 노인에 의해 구조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도 잃고 친척들과의 연락도 끊기게 된다. 십 년 넘게 바다 위에서 생존하지만 뭍에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땅에 발이 닿기만 해도 혼절해버리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불길한 장소가 돼버린 땅이지만 그녀는 땅과 그 위의 생명들을 그리워한다. 낡고 무너져가는 집이 언제까지 물 위에서 버텨줄지도 알 수 없다. 인도네시아의 신예 루루 헨드라 감독의 <생존자의 땅>은 트라우마에 갇힌 인간의 몸부림과 내면적 성장에 대한 영화적 고찰이다. (박성호)

감독은 탄광 지역 개발로 삶이 불안해진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를 보며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불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졌다. 영화는 소음에 가까운 거대한 기계음만 들어간 까만 화면으로 시작해, 이내 기울어진 물 위의 집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그 불안과 그에 맞서는 인간의 힘을 세밀히 흘려 보낸다.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집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마이와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대다수의 한국인은 자신이 섬에 속한 존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한 면이 막힌 반도에서의 삶은 이따금 섬의 생활을 그려보게 하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온전히 바다에 둘러싸인 섬에 사는 삶과는 분명 감각이 다르다. 여기에 재해처럼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일들까지 더해지면 불안은 배가된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인공 마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물러난 곳에 있다. 땅을 밟으면 코피를 쏟으며 기절하는 마이의 증세는 심리적 사유 외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영화는 이러한 증세가 찾아오기까지 마이의 삶에 있었던 굴곡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따금 대화에서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삶과 마이 부모님의 죽음 이야기를 통해 막연하게 짐작하게 할 뿐이다. 확실한 건 현재 마이가 거의 유령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인간들이 쉽고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에 제약을 얻은 존재.
그 때문에 마이의 집은 물 위에 배로 떠올린 곳이다. 기본적으로 고립을 특성으로 하는 공간이다. 키우는 닭 또한 흙 없이 갑판 위에 뿌린 모이를 쪼는 것밖에 할 수 없고, 많지 않은 마이의 대사는 대부분 할아버지를 향해 집에 대한 불안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내용으로, 거칠고 짤막하게 구성된다. 마이의 세계는 말로 재구성되는 양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 친구의 손자이자 마이에게 계속해서 친절한 손을 뻗어 오는 유스, 인도네시아의 군사문화 잔재의 기운이 드러나는 제복을 입고 외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와, 두 사람을 만날 때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마이의 욕구는 단순하다. 다친 물소를 돌보고 싶고, 땅을 밟고 싶다. 이외에 대사로 발화되지 못한 마이의 마음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만날 수 있는 고목에 속삭임으로 전달된다.
고목 옹이에 입을 대고 마음을 전하는 마이는 결국 뭍의 존재들을 믿지 말라던 할아버지의 손녀다. 조상을 향한 할아버지의 기도는 비록 원하는 방향으로 응답된 적이 없지만, 조상들이 자신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현실에 손길도 미치고 있다고 믿는 마음 또한 실재(實在)를 중시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물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야기할 때 사진을 보여주는 라와와 달리, 실재만을 믿고 증거로 채택하는 유스 또한 같은 할아버지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땅 너머로 몰아낸 자들의 존재는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탄광 회사는 두어 장면을 제외하면 말 속에서만 존재하고, 영화는 그들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실재를 믿는 사람들의 영화에 실재하지 않음으로써 탄광 회사의 위치는 명확해진다. 그리고 더더욱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존재감을 갖게 된다. 마이와 할아버지가 처한 답답한 고립과 정박의 상황을 그들은 알지도 못한다. 검은 화면에 기계음만 들어가 있던 첫 장면과, 바로 이어진 마이의 집 장면의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사진으로 증거를 삼는 라와, '자기 인생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면서 할아버지의 결정은 들어주지 않는 삼촌의 존재는 마치 그 탄광 회사의 그림자 같다. 자기 이득을 위해 말을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고, 실재하는 것을 직면하기보다는 말이나 사진으로 재구성된 것들을 믿고 싶어 한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무고해 보이는 선택들이지만, 이 선택들이 누군가를 땅 끝으로, 땅 너머로 몰아내고 있음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탄을 가득 실은 거대한 콘테이너 배가 스크린을 가로지를 때, 그 앞에 작은 조각배를 띄우고 두 다리 단단하게 선 사람의 뒷모습이다. 마치 이 영화 자체 같은 장면이었다. 환상의 악기 연주와 아름다운 춤처럼, 이 영화처럼, 불안을 흩뿌리는 탐욕에 맞서 고립되고 정박된 존재들은 늘 유약하다. 그러나 인간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고립되고 정박되었어도 이들은 두 다리로 여기에 실재한다. 현실 속의 마이와 같은 존재들이 어디 있는지, 나는 또 어디에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였다.
10/04 16:00 영화의전당 소극장 (상영코드 078)
10/05 10:00 CGV센텀시티 3관 (상영코드 157)
10/09 10:00 CGV센텀시티 7관 (상영코드 447)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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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
영화를 보기 전, 다르덴 감독이 한국 관객에게 남긴 메시지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토리와 로키타>를 보는 한국 관객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또 다른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들의 친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온 ‘특별 기여자’들과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건강한 담론보다는 혐오 표현으로 이어지기 일쑤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래도 여론이 갈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와 함께 일해 온 ‘특별 기여자’들인데 팽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인의 의리가 불안을 이겨낸 목소리가 있었다. 여론이 이 정도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하며 무사 귀환에 안심한 후로는 나도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친구들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서모임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당시 특별 기여자 자녀들이 학교에 갈 때, 기존 학생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하나씩 들려 보냈다고. 이것이야말로 아이히만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과 무엇이 다르냐며 분개했다. 차라리 옛날 반장 엄마들처럼 햄버거나 쫙 돌리는 게 낫지, 기존 학생들이 시혜를 베푼 것이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저자세로 들어가게 만드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경계를 넘어설 텐데 어른들이 먼저 선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뒤늦게 들은 내가,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의 친구라 말할 수 있나. 지긋지긋한 내 안의 아이히만을 인지하며, 다소 무거운 감정을 안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토리와 로키타의 행복과 무운을 비는 마음으로.
영화는 불안한 눈빛의 로키타에서 시작한다.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인데, 관객은 금방 로키타의 거짓말을 눈치챌 수 있다. 로키타의 뒤를 따르는 카메라와 함께 가다 보면, 로키타의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토리와 로키타는 각자의 이유로 아프리카 어딘가를 떠나 온 아이들이다. 벨기에에 정착해서 함께 살고자 하지만, 진작에 체류증을 받은 토리와 달리 로키타의 서류 발급은 계속해서 지연된다. 두 사람은 남매임을 증명해서 체류증을 받고자 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돈은 모이지 않는다.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서 입국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는 브로커들이 있고, 고용주 또한 여러 모로 아이들을 착취하며, 심지어 로키타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돈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은 피자도 배달하고, 식당에서 노래도 한다.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이어 이탈리아어로 노래한다. 이국의 언어로, 서사를 부여하면서 불러야 하면 노래도 노동이 된다. 이들의 일은 점차 위험해진다. 위험한 밤의 거리에서, 마약 배달까지 하고 있다. 아직 어려도 야무진 토리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야무지게 챙겨 받을 줄 안다.
노동이 되어야 하는 노래와 대조적으로, 두 사람의 지친 밤을 위로하는 노래가 있다. 토리가 따라 부르는 로키타의 자장가. 실제 카메룬 언어로 된 자장가라는데, 내 귀에는 어쩐지 자꾸 익숙한 찬송가처럼 들렸다. “사랑의 주 사랑의 주 내 맘 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상한 맘 고치소서”라는 한 구절처럼. 아무리 뒤져봐도 찬송가라는 말은 없던데. 그러나 진짜 찬송가였다고 해도 그 노래는 로키타를 구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브로커들이 로키타에게 만남을 요구하는 장소는 언제나 교회다.
아직 어린 어깨에 책임이 너무 많다.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도 어린데, 자기 세상을 지켜야 한다. 그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로키타에게는 토리, 토리에게는 로키타이다. 두 사람이 어떤 서사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이런 유대 관계를 쌓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유독 힘든 날 보고 싶은 사람도 서로이고, 학교에서 ‘아는 사람’ 그리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도 서로일 뿐이다. 겁먹고 숨을 헐떡일 때 약과 물을 건네주는 한 사람, 대신 문을 두드려 따져 물어주는 사람, 착취의 세상 속에서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이다.
아이들의 깊은 우정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피부로 감각하여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는 환영 못 받잖아.” 로키타가 시시각각 처하는 상황은 분명 비극이지만, 세상이 로키타를 그전까지 대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끌고 가고, 무슨 일이 생겨도 탈출구가 없는 건물에 들어가야 하고, ‘원한다 je veux’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로키타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는데도, 흥청망청 사는 어른보다도 훨씬 똑똑하게 삶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이들의 노동하는 등을 따라간다. <로제타> 때부터 일하는 누군가의 등을 다정하게 따르던 그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로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러나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가 만드는 영화의 감각에 안심할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는 걸. 영화 속에도 친절한 개인은 있었다. 기꺼이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잘 곳 없을 때 오라고 주소를 주는 쉼터 선생님도. 그러나 개인의 친절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는 말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에서 조금은 마음에 남은 것이 있길 바란다고, 그래서 주변과 이야기를 나눠 주길 바란다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왜 다르덴 형제가 토리와 로키타의 친구가 되어 달라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세상만큼은 아니었으면, 사라지지 않도록 아이들이 그 자리에만 있을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어 갔으면.
그런 마음으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으니, 세상은 어린이날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얼마나 환대하고 있을까. <토리와 로키타>가 던진 질문을 계속 입 안에서 굴려 본다. 담담하여 다정하며, 더 깊은 담론을 끌어내는 이 영화는, 아마 남은 오월 내내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는 해맑은 노래와 함께 잔상처럼 남아 있을 것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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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8월 다섯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오늘과 내일 태풍 소식이 있으니 다들 외출은 최대한 자제하시고조심하시길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9월 첫째 주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육사오> (▲1)▶ 지난 번에 2위를 차지했던 <육사오>가 주말 동안 많은 관객을 동원하면 1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주말 박스오피스에서도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SNS에 입소문을 타며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40만 6,99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13만 478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헌트> (▼1)▶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헌트>가 9월 첫째 주에는 아쉽게 2위로 하락하였습니다.
지루할 틈이 없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짜릿한 액션까지 선보이며 관객을 이끌었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20만 3,50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11만 6,629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한산: 용의 출현> (-)▶ 2주 연속 3위를 차지한 <한산: 용의 출현>. 지난 번과 비교했을 때 주말 관객 수가 10만에서 1만 대로 하락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7만 7,00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15만 9,66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16회 예측 이벤트는 9월 첫째 주 주말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9월 1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1,2,3위를 모두 비슷한 비율로 맞춰주셨는데요. 순위를 예측하기 조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육사오>를 1위로 예상하신 유저 분들이 35%를 차지했으며, 2위는 38%, 3위 24%였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118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탑건: 매버릭> (-)▶ 순위 변동 없이 4위만 계속 유지하고 있는 <탑건: 매버릭>! 6월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N차 관람이 많았던 영화인만큼
여전히 그 현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말 동안 (9월 2일~9월 4일) 관객 수 5만 404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806만 5,87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리미트> (NEW)▶ 주연부터 조연까지 최고의 연기자로 꽉꽉 채워진 <리미트>.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야기로,
이들이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궁금증에 이끌린 관객이 많을 것 같다.
주말 동안 (9월 2일- 9월 4일) 관객 수 2만 7,494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만 8,96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
피해자 엄마 대역을 맡게 된 경찰 ‘소은’(이정현).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도중
‘소은’은 누군가로부터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범인은 대역이 아닌 ‘소은’과의 협상을 요구하는데…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주말 동안(9월 2일- 9월 4일) <Spider-Man: No Way Home>의 매출액은 6,000,000 (한화 약 82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8월 5일 ~ 2022년 8월 7일)1.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600만 달러 (누적 600만 달러)2. <탑건: 매버릭> 560만 달러 (누적 6억 9,882만 달러)3. <DC 리그 오브 슈퍼 펫> 545만 달러 (누적 8,080만 달러)4. <불릿 트레인> 540만 달러 (누적 8,593만 달러)5. <더 인비테이션> 470만 달러 (누적 1,374만 달러)...씨네픽의 9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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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없는 명예 속에 남은 상처
덧없는 명예 속에 남은 상처
영화리뷰 <파더 앤 솔져>감독] 마티유 바데피드
출연] 오마르 사이, 조나스 블로켓, 알라산 디옹, 바마르 칸
시놉시스] 1차 대전 당시 프랑스령 세네갈. 프랑스인들은 세네갈인들을 징집하여 유럽의 끔찍한 전쟁터로 보낸다. 척박한 땅에서 아들 티에르노와 가축을 치며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 바카리는 프랑스 군인이 나타난다는 소문만 들리면 징집 대상인 아들을 은신처로 보내 숨어 있도록 하지만 아들은 결국 세네갈에 있는 신병교육대로 끌려간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탈출하기 위해 자원입대를 하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부자는 유럽 전선으로 끌려간다. 한 전투에서 100만 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곳, 같은 아프리카인들끼리도 서로를 속이고, 강도 행각을 벌이는 전선에서 어떻게든 아들을 찾아 탈출하려는 아버지와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휘관의 눈에 들어 영웅이 되려는 아들은 서로 다른 전쟁을 겪게 된다. 2022년 칸영화제 Un Certain Regard 섹션의 개막작이었던 이 작품은 아버지의 애틋한 정과 덧없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다.(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스포일러 유의
허황된 권력과 지위
아들 티에르노는 세네갈인이지만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끌려온 전쟁터에서 장교의 눈에 빠르게 들 수 있었다. 말단 이병이었던 그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상급자가 죽을 때마다 일병으로, 상병으로 부사관으로 점차 승진하면서 권력의 맛을 깨닫는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군대에 자원입대한 아버지 바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전쟁터에서 탈출을 하고자 뒤에서 수많은 애를 쓰고 있지만, 권력과 지위에 맛을 알아버린 아들 티에르노는 아버지의 탈출 작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는다. 이젠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계급으로써 군대라는 사회 속에서는 아버지에게 지시를 내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지시에 복종을 해야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이에 아버지는 어떻게든 비참한 마음 속에서도 단지 아들을 살려서 지옥같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아들을 계속해서 설득해서 탈출을 진행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보다 간부의 인정에 더 고팠던 티에르노는 상관이 지시한 침투조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중간에서 탈출하여 다시 전쟁터로 돌아간다. 그렇게 선발대로서 적진으로 침투한 티에르노는 결국 적의 함정에 빠져 죽을 위기에 놓이고, 아들을 버리고 혼자 탈출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뒤를 쫓아 아들을 위기 상황 속에서 구해내지만 정작 자신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아들 티에르노는 적진에서 도망쳐나오며 명예롭게 싸웠다는 훈장을 받는다. 당장의 안위와 가족의 염려보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꿈. 하지만 이것은 모두 허황된 것에 불과했다. 군대라는 사회 속에서의 인정에 매몰되면서 결국 아들 티에르노는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영화 파더 앤 솔저는 전쟁이 결국 인간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통제된 사회라는 군대 속에서 통제를 잘 받아들이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거나 라인을 잘 타면 빠르게 진급해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 군대의 모든 구성원에게 이를 알림으로써 보다 더 충성적인 복종을 자연스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신기루는 군대 구성원들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존엄에 대해 망각하게끔 만든다. 지위체계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면서 이와 동시에 다음날 죽을 수도 있다는 죽음의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굉장히 본능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각자의 삶에서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생존과 권력이라는 2가지 본능적인 욕구에만 집중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 본능 속에서 살다가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해체되어 버린 군대에서의 명예가 과연 남을까.빠르게 진급하면서 당시에는 느꼈을지 모를 성취감은 이제 자신을 찾지 않는 떠나간 군대를 보며 과연 그 감정이 오롯이 남겨져 있을까. 모두 허탈함으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매순간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썼지만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나고 개별 군인에게 남는 것은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 이제는 사라진 조직 등 과거의 감정들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영화 파더 앤 솔저는 훈장을 받고 터덜터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 돌아왔다는 자책감과 그토록 진급에 기뻐했던 과거가 덧없음을 티에르노의 눈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파더 앤 솔저는 전쟁이 얼마나 인간 개개인을 활폐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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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타니안>믿음과 신념으로 지켜내는 정의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프로 보노(pro bono,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활동의 일환으로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리타니아 출신 '슬라히(타하르 라힘)'의 변호를 맡는다.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라는 혐의를 받은 그는 기소와 재판 없이 6년 간 관타나모에서 수감생활을 이어 왔다. 그를 접견한 후 그의 무죄를 주장하기로 결정한 낸시는 동료 '테리(쉐일린 우들리)'와 그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 나서지만, 진실을 가로막은 국가 기밀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한편 그의 유죄를 확신하던 군 검찰관 ‘코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 중령은 재판 준비를 하면 할수록 아무리 봐도 부족한 증거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쿠바에 위치한 관타나모 수용소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 같은 테러리스트는 물론 단지 테러와 연관되어 있다는 '혐의'를 받은 민간인들까지 납치, 감금한 후 고문을 행한 것으로 악명 높다.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자랑으로 삼는 미국의 수치이기도 하다. 이 장소가 논란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변호인 선임권, 묵비권, 재판받을 권리 및 신체 자유와 같은 개인권의 말살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에서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믿어졌던 원칙이 복수심과 원한 앞에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흑역사인 것이다. 이곳에 무고하게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모리타니안>은 이 흑역사를 두 가지 관점에서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플롯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하나는 살라히의 과거와 낸시, 코우치 중령의 현재를 연결시키며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 정의가 바로 서는 과정을 조명한다. 다른 하나는 낸시와 코우치 중령이 펼치는 법정 공방을 각각 공적 맥락과 사적 맥락에서 비추며 정의의 양면성을 논한다.
이때 전자는 한 개인의 세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 그들의 종교성을 선택한다. 살라히는 신에게 모든 것을 위탁한다. 유일하게 마음 편히 말을 섞을 수 있었던 옆방 수감자가 죽자 서아프리카의 독실한 이슬람 국가 모리타니아에서 온 슬라히는 신에게 매달린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정당한 삶을 달라고, 관타나모에서 억울하게 죽은 수감자들에게 평화를 달라고 기도한다. 반면에 낸시는 철저히 변호사의 윤리와 원칙에 스스로를 의탁한다. 그녀는 살라히가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서를 작성한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변호를 포기한 동료 테리와 달리, 그녀는 자신이 믿는 원칙과 신념을 다시 한번 붙잡는다. 낸시는 모든 사람에게 사법 정의는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다시 한번 슬라히를 접견하고 그에게 진실을 말할, 정의를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
코우치 중령은 두 사람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 달리 말해 살라히의 신에 대한 믿음과 낸시의 사법 정신에 대한 신념의 접점이다. 그는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타워를 들이받은 비행기에 타고 있던 친구를 잃었다. 그래서 그는 살라히를 기소해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관타나모의 실상을 깨달은 후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러던 그는 끝내 교회를 찾은 후에 마음을 정한다. 정의를 추구하고, 무고한 이들을 도우라는 신의 말씀에 응답한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동시에 개신교인으로서 슬라히를 기소할 수 없다고 결단을 내린 뒤, 군복을 벗는다. 이렇게 개인의 믿음과 신념은 비록 그 대상과 방식은 다를지언정 정의를 바로잡는 초석이 된다.
이처럼 개인의 종교적 믿음과 신념을 전면에 내세운 스토리텔링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에 감정적인 면을 북돋아 준다. 특히 신에게 호소하는 슬라히, 미국의 법과 헌법을 굳게 믿는 낸시, 신의 가르침과 헌법 정신의 공통점을 실천하기로 결심한 코치 중령의 모습이 한 데 응축된 것이나 다름없는 후반부의 법정 장면이 백미다. 8년 만에 서게 된 재판장에서 살라히는 그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일은 큰 충격이었지만 미국이 저지른 범죄를 자신이 용서했기에 자신은 자유라고 주장한다. 신의 가르침대로 아랍어로 자유와 용서는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또 법정과 판사의 결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미국의 법정은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법의 정의를 실현할 것이기 때문에, 법정에서의 선고는 그에게 신의 뜻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살라히가 무고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할 기회도 준다는 점에서 더욱 호소력이 짙다고 볼 수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탄생시킨 테러와의 전쟁 및 미국과 중동 지역의 외교적 분쟁은 역사적, 정치외교적 뇌관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폭탄임이 분명하다. 영국의 식민통치, 유대인의 이주, 4번의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테러단체의 활동,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그로 인한 반미 감정이 한 데 어우러진 결과다. 이러한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는 흔히 이슬람교와 기독교라는 두 세계 종교의 충돌이라는 피상적인 그림 밑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두 종교의 신이 알려준 가르침과 미국 법정의 정신이 다르지 않다는 <모리타니안>의 메시지는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이 종교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두꺼운 물감에 가려진 밑그림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한편 영화의 두 플롯 중 나머지 하나는 낸시와 코우치 중령을 대조시키며 신에 대한 믿음, 그에 못지않은 법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고 필요한 경우 과감히 꺾을 줄 아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낸시는 철저히 공적인 가치와 원칙에 입각해서 재판을 준비한다. 애초에 슬라히의 재판을 맡기로 한 것도 프로보노 활동의 일환이었던 만큼, 그녀에게 이 사건은 단지 무너진 법치주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낸시는 어머니에게 전화해달라는 슬라히의 요청을 연민과 동정심을 자아내려는 피고인의 전략으로 취급할 정도로 슬라히에게 인간적이고 사적인 교류를 일절 하지 않는다.
반면에 코우치 중령에게 슬라히 사건은 일, 업무, 국가적 차원의 사건이기 이전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이번 사건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는 별개로 절대 틀릴 수 없는 사건이다. 실제로 슬라히의 재판에 투입된 직후 그는 가장 먼저 죽은 친구의 아내를 찾아가 범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낸시와 코우치가 관타나모 수용소 휴게소에서 만난 장면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코우치 중령은 그녀가 미국의 적을 옹호한다고 비꼬며 이길 수 없는 재판을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낸시는 자신이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변호사라고 비난받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슬라히는 아직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면서 미국의 사법 제도가 허점이 존재했다면 어떡할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이처럼 사적인 분노와 적개심과 공적 가치에 입각한 질문과 대답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사건에 인위적이면서도 강력한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동시에 상당히 인상적인 연출을 통해 그들의 신념과 원칙을 한 번에 무너뜨리면서 그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작중 과거와 현재 장면은 각각 1.33:1과 2.35:1의 다른 화면비율로 표현되는데, 두 주인공이 관타나모의 진상을 알게 되는 상황에서는 두 화면이 겹쳐져서 나타나며 그들이 받은 충격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이는 둘이 슬라히의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180도로 달라지는 것에 대해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제 낸시는 살라히가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온갖 수모와 고통을 한 인간으로서 보듬어주려고 하고, 반대로 코우치 중령은 모든 개인적인 원한을 뒤로한 채 공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렇게 <모리타니안>은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꺾을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되는 아이러니를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제시하며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다만 사건의 진상과 해결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범생처럼 훑고 지나가는 정공법을 취해서인지 영화는 간과하기 어려운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 안에서 어떠한 일들이 자행되었는지가 세상에 알려진 지도 오래된 상황에서 과연 잔혹한 고문 기법을 그리 세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물고문과 성고문을 비롯해 시청각을 괴롭혀 잠을 못 자게 하고, 슬라히의 어머니를 납치한 후 강간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말로만 들어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만한 고문을 연달아 보여준다.
이는 고문 장면이 그렇게까지 세세하지 않아도 진상을 깨달은 낸시와 코우치 중령의 충격, 슬라히가 겪어온 고통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연출로 보인다. 슬라히를 둘러싼 법정 공방의 이야기가 잊힐 정도로 분량이나 비중 배분에 있어서도 아쉬움을 남기며,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해당 장면이 지속되다 보니 피로감이 누적되어 그 충격이 갈수록 약해지는 역효과도 낳는다. 그 결과 <모리타니안>은 배우들의 연기, 작품의 메시지, 연출과 편집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강렬한 임팩트를 스스로 깎아내리며,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작품, 영국 작품, 각색, 남우주연, 촬영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 아쉬운 완성도로 관객을 마주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때때로 불편하지만 성공적으로 진중하게 재현된 인권 탄압과 정의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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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종일 흥얼거리게 만들 뮤지컬 영화 8선
뮤지컬 영화를 보고 나오면,
온종일 영화 속 넘버를 흥얼거리는 사람…
바로 여기 있습니다 … !
<렌트>, <틱틱붐>을 만든 뮤지컬 작가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틱, 틱… 붐!>부터 영화 <위키드>을 연출한 존 추 감독의 또 다른 뮤지컬 영화 <인 더 하이츠>, 최근 국내에서도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시카고>까지!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넘버들이 나오는 영화들을 모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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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이지만 너무 외롭지는 않게
에놀라는 첫 사건을 마무리하고 탐정 사무소를 차린다. 하지만 오빠인 셜록 홈즈의 후광에 가려 폐업하려던 찰나 에놀라는 한 사건을 의뢰받는다. 한 성냥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 베시가 자신의 언니 새라를 찾아달라고 한 것. 미스터리함이 뿜뿜하는 이번 사건에 에놀라는 열과 성을 다해 조사를 시작하는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 사건, 심상치 않다.
1. 혼자이지만 너무 외롭지는 않게
영화 속 에놀라는 오빠, 툭스베리 등 많은 조력자들을 물리치고 온전히 혼자 서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를 독립적으로 키워낸 엄마, 유도리아 홈즈는 "내가 널 너무 독립적으로 키웠나 보다. 가끔은 남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살아가야할 때도 있는 거야."라고 조언하는데, 이 조언은 꽤나 내 마음을 울렸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내가 에놀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최근 나의 엄마도 비슷한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너무 혼자서만 살아가서는 안된다고, 다른 이와의 적당한 교류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러면 더욱 윤택한 혼자의 삶을 구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가끔 뭐든지 혼자 해내려다 더 복잡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에놀라도오빠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복잡하게 돌아가며 사건 해결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복잡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묘미는 없었겠지. 영화적 장치였다고 해두자.
2. 이번에도 두드러지는 여자들의 활약
이 영화는 시즌 1과 동일하게 여자들의 활약을 보여주며 과거 여자들이 느끼던 차별을 당당한 스탠스로 타파 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는 남자의 귀속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서 의견이 있고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조금은 과격한 방식으로라도 표현하는 점이 같은 여자로서 너무 멋있었다. 여자들이 연대하면 무례한 남자를 이기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 또한 압축적으로 표현해서 나도 나를 지키는 정도의 운동은 배워야 하나 싶었다.
이 영화 시리즈에서는 남자는 확실히 여성 캐릭터의 악세사리 같은 존재들이다. 남자들은 여성들의 계획에 조력자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 셜록도 그랬고, 툭스베리도 그랬다. 셜록도 에놀라를 어린아이 대하듯 행동하는 것 같지만 항상 에놀라의 의사를 무시하지 않는다. 툭스베리도 애놀라의 사건 해결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에놀라를 그 자체로 인정한다. 두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진정한 매너지' 싶었다.
3. 이 영화가 로맨스를 그리는 방법
이 영화도 로맨스가 있다. 전편보다 더욱 진한 로맨스가 있는데도 그것이 그리 거슬리진 않다. 에놀라는 툭스베리가 좋으면서도 남자답지 못하다는 핑계를 대며 겉으로는 밀어낸다. 반면, 툭스베리는 에놀라를 좋아하지만 마음을 고백하는 데 있어에 에놀라에게 남자로 인정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난 이 점이 툭스베리의 남자다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은근슬쩍 표현하지만 에놀라의 삶, 성격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표현하는 점이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에놀라는 싸움에 능하지만 그는 춤과 꽃에 해박한 남자이기에 상반된 매력이 더 눈길을 끌었다.
절대적 여성성과 남성성은 없다. 성향 차이만 있을 뿐이고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구분은 이제 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조금은 산재해있는 성별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인식은 이제 구시대적 발상으로 취급받아야 할 듯하다. 여러 사람의 인생을 관습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뿐이니까.
4. 총평
영화에 등장하는 모리아티의 존재에 주목하시라. 모리아티의 범행 동기는 무시받아온 권력자에 대한 통쾌한 한 방이 될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일 수도 있다.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일 수도 있고 사이코패스의 사회 탓일 수도 있고.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시즌 3 나왔으면 좋겠다. 셜록과 에놀라의 제대로된 공조 또 보고 싶다. 유도리아가 추구하는 여성 존중 사회를 만드는데 에놀라가 기여하는 또다른 사건으로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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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리뷰ㅣ쫄보기자들과 바이럴에 낚였습니다...ㅣ랑종 후기ㅣ
? "랑종" 리뷰(*스포없음)
- 랑종 정보
장르: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페이크 다큐멘터리, 오컬트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각본: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제작: 나홍진, 반종 피산다나쿤
원안: 최차원, 나홍진
- 랑종 스토리 시놉시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은
조카 ‘밍’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는 ‘밍’.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
#랑종 #랑종리뷰 #랑종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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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기억 영화 후기 / 논란의 여주인공 / 나름 객관적인 감상평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내일의 기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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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스톤 오션> 공식 예고편
2011년, 미국 플로리다 주 남자 친구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사고에 휘말린 쿠죠 죠린. 그것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 돌로 만들어진 바다와 같은 교도소. 스톤 오션에 갇힌 죠린은 과연 그 바다를 헤쳐나올 수 있을까. 뒤엉킨 운명으로 인해 수백 년간 싸워온 죠스타 가문 사람들과 디오. 이제, 마지막 대결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