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2024-08-19 21:13:35
내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당신께
임선애, <세기말의 사랑>
<헤어질 결심>과 <미쓰 홍당무> 그 사이 어드메를 노니는 영화가 2024년에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재소환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그 전에 그런 혼종적인 게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레 존재할 수 있을까?
포스터만 보고는 노인 성폭행 피해를 다룬 <69세>의 임선애 감독이 묵직하고 깔깔한 전작에 비해 산뜻하고 푸근한 사랑 영화를 만들려던 줄로만 알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당도한 것은 숨이 턱 막힐 만큼 밀도 높은 감정의 홍수다. 둘러가지 않고 변명하지도 않아서 선명도가 아주 높은 서사와 대사들, 박찬욱이나 이경미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한 스토리텔링, 천재적인 리듬감, 두 눈의 연기만으로 일렁이는 마음들에 함께 올라탈 수 있게 해주는 매력적인 배우들까지. <세기말의 사랑>은 정말이지 감탄밖에 안 나오는 영화다. 그리고 임선애 감독은 단순 '유망주'로만 불리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아깝다. 연차만 낮을 뿐 (한국에서 여성 감독의 권위가 아직 없다는 것은? '그런' 감독의 '이런' 영화에만 유독 젠체하고 가르치려 드는 이들의 저평가를 몇 년이고 버텨야 한다는 의미) 이미 한국 영화계 거장의 반열에 성큼 올라설 수 있는 포텐셜을 다 갖추었기 때문. 윤가은, 이옥섭, 김초희에 이어 이지은과 임선애를 차세대 한국 영화의 희망으로 믿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정말로 간만에 너무 좋은 사랑 영화였다(지금의 여성 관객에게 국내 제작+로맨스 영화가 좋게 다가오기란 거의 바늘구멍 뚫는 일에 가까운데도). 그리고 이때 사랑은 영미와 도영 사이 이상하고 풋풋한 긴장, 유진과 영미의 아웃사이더 연대를 거쳐와서, 기어이 도영과 유진의 눈물로 완성되는 삼각관계 속 연인 간의 애달픈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유전병 발현으로 목 아래 몸이 모두 굳어 혼자 힘만으론 꼼짝할 수도 없는 조유진에겐 친한 푼수떼기 동생 오준과 가출한 조카 미리와의 투닥대는 사랑이 있다. 못나고 외롭고 놀림받기 일쑤인 데다 튀어나온 앞니를 목도리 사이에 푹 파묻고 다녀 '미쓰 홍당무' 양미숙을 연상시키는 회계과장 '세기말 Miss Apocalypse' 김영미에겐... 원래는 아무도 없었다가, 유진과 오준 그리고 도영이 생긴다. 또 영미의 실패한 (줄 알았던) 사랑은 도영만을 향하지 않으며, 부모 잃은 그애가 평생 돌보았던 큰엄마와 그 큰엄마의 짝사랑이던 사촌오빠가 보답해주지 않은 가족 간의 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토록 다양한 사랑이 영화 내내 말 그대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며, 그 사랑들은 자주 내 눈과 뇌가 성급히 직조했던 적당한 상식선의 예상을 배반하기도 한다. 미리의 친아빠와 친엄마가 누구인지 너무나 갑작스럽게 툭 던져지던 씬처럼. 유진의 명품 구두가 왜 모두 '짭'이었는지, 누가 유진의 장애 '덕'을 봤는지, '지랄 1급'이라던 유진에게 들러붙어 있었던 처연한 체념의 그림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까지, 역시 예고도 없이 우르르 한 방에 깨닫게 해주던 오준의 미용대회 시퀀스의 폭풍우 같은 흐름처럼.
어쩌면 이런 예측 불가성을 즐기지 않는 이에게, 혹은 특정한 '부류'의 돌출성을 불편해하는 이에게 영화의 화려한 곁다리들은 일면 산만하거나 심지어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곁다리' 즉 삼각관계와 무관하면서도 구구절절 늘어지는 각 인물들의 사연은 모두 하나의 다정한 진리로 수렴한다.
타인에게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치러내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사랑(들)의 경중을 가리면서 너무 많은 인물의 너무 많은 이야기가 혼란스러우니 어떤 것은 받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복잡한 일이므로. 같은 남자를 사랑한 영미와 유진이 처음엔 너무 다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도영에게 부인이 있다는 형사의 말에 절망으로 물들던 영미의 표정과, 들들 볶이던 자원봉사자 학생의 “우리 엄마 죽었다 미친년아”에 남몰래 무너지던 유진의 표정을 몇 번이고 돌려보다 보면 그 둘이 얼마나 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미리의 이기적인 가출과 카드 도용을 힐난하더니 실은 저도 유진의 장애 등급을 이용해 몰래 차를 샀다던 오준의 욕심과, "지금 누나한텐 나밖에 없으니까" 곁을 지켜야 한다는 오준의 강인한 책임감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처럼. 각자의 바닥은 다 너무 깜깜하고 처량해서 가끔 거기 떨어진 채로 만난 사람에겐 뭐든 다 말하고 날 내맡기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경계하되 타인을 밀어내지 않을 수 있고, 이해하되 섣불리 다 안다고 말하지 않는 신중함을 발휘할 수 있다.
돌봄노동에 최적화된 영미의 성실한 다정과 경청 그리고 손길이 필요했던 거면서 오로지 돈 때문에 같이 있는 거라고 처음부터 스스로를 속이던 유진이의 위악을 나는 알고,
“끝까지 버텨보는 거 나쁘지 않던데요. 그래서 저는 감옥엘 갔지만. 후회는 안 해요.”라며 이상하리만치 끝까지 가보고 싶은 충동을 참지 않는 영미의 달콤한 자포자기도 나는 알지.
그래서 내겐 유진의 영미를 향한 “화상이 맨드라미 닮았네”가 이 시대 최고의 인류애를 함축한 대사 같았다. “그 화상 만져본 적 있어? 내가 한 번 만져봐도 돼?”라는 유진의 묘한 요청. 물렁한 영미의 수락에 유진이 상처를 보듬으며 "생각보다 부드럽네"라고 말하자 영미는 설핏 웃으며 “하여튼 이상해”로 화답한다. 그 욕조 옆에서, 또 미용대회 대기실에서 넘어진 유진의 휠체어 옆에서, 영미는 몸을 낮추어 유진과 시야의 높이를 맞춘다. 제 몸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여자가 멸시받던 여자를 똑바로 바라볼 때, 그늘진 유진의 앞에 놓인 건 환히 쏟아지는 빛처럼 다가오는 영미의 옅은 눈동자와 상냥한 미소다.
회사 돈을 빼돌리는 남자가 제게 조금 다정했단 이유만으로 지구가 망하기 전날 밤에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상하고 대책 없는 외로운 여자. 그런 여자를 두고 맨드라미의 꽃말이 '치정'인 걸 아느냐고 놀려대던 역시 이상하고 화가 많아진 외로운 여자. 소시지 반찬, 모기 물린 자국 위의 십자가, 그게 뭐라고. 그게 다 뭐라고, 사랑하는 이를 구하지도 못하는 내가 나인 게 너무 싫었을 여자들이 서로를 죽어라 질투하면서도 그 '구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줄 유일한 상대를 마음 속으론 악착같이 갈구한다.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사의하고 어려운 일인지, 결국 영미의 '저 사람 나 아니면 어떡하나'가 유진의 짐을 덜고 유진은 도영에게 "그 여자 보니까 처음으로 네가 마음 놓이더라"라고 말한다. "저는 아직 유진 씨가 마음 놓이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도영의 말은 온라인 접견 시간 종료로 뚝 끊기고 말지만, 그 이후로 유진은 완전히 퇴장하고 도영과 영미가 꾸준히 재회해 채무 관계를 핑계로 '다시' 친해지는 에필로그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도영과 영미처럼 유진은 잘 살아갈 것이다 꿋꿋하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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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편난 기억 너머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것들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파편난 기억 너머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것들"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드라마, SF
러닝타임 : 96분
감독 : 코고나다
출연 : 콜린 파렐, 조디 터너 스미스, 저스틴 H. 민
개인적인 평점 : 4.5/5
쿠키 영상 : 없음
애프터 양 줄거리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자 제이크 가족은 그를 수리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고 그의 기억을 탐험하기 시작하는데… 무엇을 남기고 싶었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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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됐던 애플 TV <파친코(1,2,3,7편)>의 연출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된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애프터 양>이 전주 국제영화제를 거쳐 국내에 정식 개봉한다. 제23회 전주 국제영화제의 개봉작으로 선정된 <애프터 양>은 매 상영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애프터 양>은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 소설 [양과의 안녕]을 각색한 작품으로, 테크노 사피엔스라 불리는 안드로이드가 각 가정에 보급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다. 주인공 제이크 가족은 입양한 딸 미카의 고향인 중국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안드로이드 양을 구매한다. 양은 미카에게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하고, 하나뿐인 형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미카 또한 양을 오빠라 부르며 그에게 의지하고 함께 마음을 나눈다.
어느 날, 수명이 다된 것인지 양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자 제이크는 공식 서비스 센터와 사설 센터를 오가며 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딜 가든 양은 다시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답만 돌아올 뿐이다. 제이크는 양을 차 뒷좌석에 앉힌 채 이곳저곳을 헤매다 마지막 보루로 테크노 사피엔스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의 중심부에 저장되어 있던 그의 기억 조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양의 짧은 추억들을 함께 되짚으며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인 사랑과 행복했던 기억, 소중한 것의 상실과 회복, 나의 뿌리(정체성)와 인생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 하나의 아쉬웠던 점? 취향의 차이
개인적으로 <애프터 양>은 상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사심이 가득해서 더 좋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미리 말하자면 이번 리뷰에선 영화의 장단점을 비슷한 비율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에겐 이 영화가 상당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마친 후, 남아있는 감정에 푹 젖어있다가 다음 상영을 바로 예매했을 만큼 이 영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마 이 글의 90%는 영화의 장점과 내가 느꼈던 영화의 메시지들로 채워질 예정이라 아주 작은 아쉬웠던 점 하나를 먼저 던지고 가려고 한다.
<애프터 양>은 느린 속도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에겐 추천하지 않는 영화다. 오프닝 신을 제외하면 스피드가 느껴지는 신이 거의 없고, 양의 기억이 짧게 파편 난 채로 재생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 전체가 마치 아름다운 비디오 일기처럼 흘러가는 느낌이 있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외적으로 감정을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감정선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또 SF영화라 하여 상상력으로 가득한 세상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도 비추! 조용한 영화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로 관람하는 것 또한 비추다.
객관적으로 본 아쉬운 점은 이 정도가 있겠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단점도 아니고 그냥 취향 차이 정도가 아닐까? 오히려 난 이 천천히 흘러가는 화면들이 좋았다. 빠르지 않은 속도 덕분에 푸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연하게 느껴지는 바람 같은, 그 순간에 담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오늘부터 나의 최애 주머니에 담긴 저스틴 H. 민 배우
이 영화에 처음 띠용-했던 건 코고나다 감독의 이름 때문이었고, 죽어도 꼭 봐야겠다!! 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저스틴 H. 민’이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올해 초, 나는 뒤늦게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통해 이 배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고, <애프터 양>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해사한 미소와 조곤조곤한 말투, 밝은 성격과 내 취향을 저격하는 매력적인 외모. 거기에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보여준 발랄함과 따스함이 뚝뚝 떨어지는 연기까지… 저스틴 H. 민은 내 눈에 쏙 들어오는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리고 나는 <애프터 양>을 보자마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저스틴 H. 민을 최애 주머니에 담아버렸다.
저스틴 H. 민 배우는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양’이 되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는 언젠가는 로봇처럼 딱딱하고 어색하게, 언젠가는 따스한 오빠처럼, 언젠가는 든든한 부모님처럼, 또 다정한 연인처럼 느껴지는 여러 결의 눈빛을 흘리며 나의 마음을 완벽히 홀리는 데 성공했다. 사실 저스틴 H. 민 배우는 단편 영화들을 제외하면 아직은 필모그래피가 많지 않은 배우인지라, 다양한 연기를 보지 못했었는데 <애프터 양>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정말 기뻤다. 나는 섬세하고 정갈한 그의 호흡에 속절없이 빨려 들었고 '이 배우는 지금도 엄청난 스타지만… 앞으로 더 잘될 배우가 확실하다!’고 외치며 그에게 뼈를 묻기로 다짐했다.
세련된 연출
<애프터 양>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정확히 몇 년인진 알 수 없어도 왠지 멀지 않을 것 같은 미래로 보인다. 코고나다 감독은 익숙한 현재의 모습에 미래의 모습을 자연스레 녹여낸다. SF영화라 하면 정말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배경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정말 곧 다가올 것 같은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안경과 닮은 판독기, 낯설지 않은 차의 구조,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카메라와 집, 가구들. 그래서인지 정말 이런 가족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더욱 몰입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인물들의 의복이나 음식, 차를 우려먹는 문화를 통해 영화 곳곳에 동양적인 요소들을 가미함과 동시에 깔끔한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건축물과 가구들을 배치함으로써 흠잡을 곳 없는 깔끔하고 안정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 영화의 세련됨은 오프닝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먼저 얘기하면 장면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으니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다.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의 만남.
그들이 던지는 "~다운 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 각자 떨어뜨려 놓아도 충분히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자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난 작품이라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영화에서 양과 가까운 사이였던 에이다는 양이 교육용 안드로이드로서 미카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의 문화와 아시아인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한다. 양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시아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프로그램에 정보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 문화를 해박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서 살아본 ㄴ적이 없는, 그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양은 미카를 가르치면서도 아시아인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제이크와 차를 마실 때도 그렇다. 차의 기원과 종류는 다 알고 있지만, 양은 차 한잔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그것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제이크의 찻집이 있다. 제이크는 잎이 그대로 살아있는 차를 판매한다. 영화의 첫 장면, 제이크의 찻집에 들어온 손님은 가루로 된 차가 없냐고 묻더니 "차 가루가 없는 찻집도 있냐"고 말하며 찻집을 나간다. 차 가루가 없는 찻집은 찻집답지 못한 걸까? 찻집 다움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제이크는 손님의 말을 마음에 담아뒀는지 차 가루를 내 양과 함께 차 한잔을 마셔보지만 가루로 된 차가 주는 맛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시아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차를 즐긴다는 건 무엇일까?", "안드로이드다운 것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일까?", "가족이란 건 무엇일까?" <애프터 양>은 무언가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애프터 양>을 만나기 전, 저스틴 H. 민 배우의 <애프터 양>이란 영화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터뷰를 읽고 가서인진 몰라도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던져야 했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온전히 느껴지는 듯했다.
차에 대한 기억이 없고 지식만 있어도 나는 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인가?, 중국에 대한 기억이 없고 역사에 대한 지식만 있어도 나는 아시아인이 되는 것인가?
저스틴 H. 민 배우는 자신 또한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분명 나는 한글을 배웠고, 한인 교회에 갔고, 한국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나를 한국인답게 만들 수 있는 걸까?"하는 고민 말이다. 코고나다 감독 또한 이 영화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영화라고 언급했다.
저스틴 H. 민은 양을 닮았고, 양은 저스틴 H. 민과 닮았다.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나다운 것인가. 저스틴 H. 민 배우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양의 여정이 곧 자신의 여정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양의 이름 + 뿌리와 정체성에 대하여
Yang이라는 이름은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이 항상 고민했던 '이민자(한국계 미국인)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는 매개체다. 우리는 Yang을 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화 속 제이크의 가족은 Yang을 양이 아닌 '얭’에 가까운 발음으로 부른다.
저스틴 H. 민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코고나다 감독과 양의 이름에 대해 함께 고민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양의 발음을 실제 버전(양)으로 할지 미국화 된 발음(얭)으로 할지 신중히 고려해 '얭’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양인 부모들이 "Yang을 원래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코고나다 감독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아시아와 서양이라는 두 개의 문화의 중간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양의 잘못 발음되는 이름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아마 서양, 아시아의 문화 사이에서 정확히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서양 부모들에 의해 '양’이 아닌 대충 '얭’으로 발음되는 그의 이름으로 비유했다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다양성에 대하여
위에서 언급한 "~다운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주인공인 제이크의 가족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엔 다양한 모습을 한 가족들이 나온다. 제이크의 가족은 백인 남성, 흑인 여성, 아시아인인 딸, 안드로이드로 구성되어있고 그의 옆집엔 복제 인간 아내와 아이를 둔 이웃이 살고 있다. 오프닝 신에 나오는 가족 댄스 대회의 참여 가족들 또한 피부색, 성별, 인간/복제 인간/안드로이드의 구분 없이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같은 인종인 부부가 이루는 것인가?, 또는 사회 통념상 정해진 보통의 연인들이 이루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그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다. "~ 다운 것"은 타인이 함부로 정할 수 없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이고, 그 답을 찾고, 정의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것이다.
댄스 대회를 하면서 제이크의 가족들은 "우리가 한 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이들은 하나의 온전한 가족이 되어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한 팀이 되어 살아간다.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 입양된 아시아인 딸, 딸의 오빠 역할을 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혹시 이들을 감히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내가 아주 조금만 혼내주려고 하니 어디 한번 그렇게 말해보길 바란다…)
새로운 안드로이드
나는 지금껏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사뭇 건조할 것이라 생각했고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는 순간, 높은 확률로 슬퍼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은 달랐다. 그는 제이크의 가족에게 심어진 곁가지가 아닌 든든한 뿌리였고, 인간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슬퍼하지도 않았으며, 건조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진짜 인간들보다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아온 존재였다.
영화의 초반, 인간들의 눈으로 본 양은 딱딱한 로봇 같은 모습이다. 그는 미카와 대화를 나눌 때도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어딘가 어색한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양의 기억 속 양의 모습과 양이 느낀 감정들은 어떤 등장인물보다도 더 '인간다웠다'. 옆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는 따뜻한 마음, 사랑한 사람을 잊지 않고 그의 주변을 맴도는 지고지순함, 거울을 보며 빙긋 웃어보는 모습까지. 수많은 기억을 저장하며 순수하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양의 모습은 아름다운 인간 그 자체였다.
여담으로 저스틴 H. 민 배우는 GV를 통해 양의 기억을 언급하며 양은 일상의 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며, 관객분들도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생각해보니 내 일상을 단조로운 것이 아닌 매일 다른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본 날이, 일상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본 날이 언제였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엔 왜 양이 주인공인지, 왜 그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양의 기억을 여는 순간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애프터 양>인지.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옅은 흔들림과 여전히 반짝이고 있는 기억들은 나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선물했다. 이런 사랑스럽고 복잡한 안드로이드 같으니…
양의 소중한 기억 속을 함께 유영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96분. 이 시간의 일부는 나의 '아름다웠던 순간' 중 하나로 고이 저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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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신세(身世) 지기 싫다!” 나이 들면 자식들이나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이 말은 아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시니어들이 가진 공포 중 하나는 바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일 것이다.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열패감과 두려움은 아래 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어떻게 단정 짓냐고? <소풍>을 보면 안다. 극 중 주인공들은 이 두려움과 싸우며, 마지막 결단을 내리기 때문. 영화는 신세 지기 싫어하는 노인들의 마지막 몸부림과 그 선택을 따라간다.
요즘 은심(나문희)은 걱정이 많다. 파킨슨병이 날로 심해지고, 현실인지 꿈인지 돌아가신 엄마가 자꾸 눈앞에 보인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해웅(류승수)은 돈 문제로 속을 썩인다. 이때 고향 절친이자 사돈인 금순(김영옥)이 집에 찾아오고, 이들은 오랜만에 고향인 남해로 향한다. 부모의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은심은 하나둘씩 이곳의 추억을 음미하던 중, 과거 자신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를 만난다.
<소풍>은 제목이 갖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그대로 옮긴 듯하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란 소절처럼, 이들의 고향 나들이는 그 자체로서의 오랜만에 떠나는 소풍이자,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소풍이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온 후, 노년이 되어서야 누리는 이 소풍의 분위기는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과 즐거움, 따뜻함이 가득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이 부각되는 건 생의 마지막이라는 지점에 있다.
영화는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도 노인이 겪는 신체적 아픔을 즉시 한다. 파킨슨병에 의한 손 떨림은 물론, 허리가 아파 거동 자체를 못하는 모습, 뇌종양 등 질병으로 인한 고충 등을 가감 없이 전한다. 특히 금순이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하고 소변을 실례하는 장면은 적지 않은 충격을 전한다. 이처럼 노인들의 치부를 전시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이들의 아름답고도 행복한 짧은 여행이 곧 마무리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신세 지는 일 없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삶을 마감하겠다는 이들의 다짐을 굳건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존엄사라는 뜨거운 감자를 수면위로 올려놓은 영화는 윤리적인 잣대가 아닌 당사자들의 고통과 공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감독은 중반부에 은심과 금순의 미래를 보여준다. 자식이 걱정할까봐 병을 숨기고 살아온 친구의 죽음은 은심의 미래를, 요양병원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친구가 죽은 듯 사는 모습은 금순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이 장면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노인들이 가진 고통과 공포다. 두 친구는 이런 공포에 휘감겨 살다가 가느니, 차라리 존엄을 택한 것. 후반부는 이들의 존엄 투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소 아쉬운 지점은 이 문제의식이 개인만의 문제로 그친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노인들이 겪는 다수의 문제를 개인이 감내하고 존엄으로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각 자체가 이들에게만 국한된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플랜 75>의 경우 고령화 사회 문제를 사회적 시각으로 넓혔던 것에 비해, <소풍>은 그 부분이 다소 약하다. 물론, 은심과 해웅 사이에 빚어진 중산층 가족의 민낯, 리조트 개발 위기에 놓인 시골 마을 등 가족 및 사회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이 부분마저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는 구실로만 작용한다. 더불어 특별함 보단 안전함을 택한 듯 너무나 밉지만 그럼에도 도와주는 어미의 모습, 그 모든 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지켜보게 하는 건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등 노배우들의 연기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실제 은심, 금순, 태호로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존재감은 영화의 빈 공간을 채우고도 남는다. 특히 세 배우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80대 노인들의 고통과 아픔을 연기로 승화시킨다. 여기에 요양병원에 갇혀 사는 이들의 친구 청자 역에 최선자, 은심을 질투하는 맹희 역에 이용이, 마을 터줏대감 영배 역에 한태일 등 스테레오 타입의 역할이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 연기를 수행하는 노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에 힘을 싣는다.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다.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지만, 마치 이 영화를 위해 탄생한 곡처럼 은심과 금순의 이야기에 잘 스며든다.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 깊게 패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아등바등 가열차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신세 지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모래 알갱이처럼 홀연히 떠나며 건네는 이들의 인사. 이 노래와 함께 마주해보길 바란다.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3.0 /5.0
한줄평: 의존하는 삶의 공포를 뒤로한 마지막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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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장르가 섞였지만, 맛있어요
- 당신에게도 풋풋한 첫사랑 같은 영화가 있나요? 제게는 구파도 감독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그러합니다. 어느 계절에 떠올려도 첫사랑의 온기가 온전히 느껴지고, 생각만으로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데요. 그 영화의 감독과 배우가 다시 뭉쳤습니다. 판타지 로맨스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입니다.※ 2월 7일(월)에 진행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2022년 2월 9일 국내 개봉했습니다.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Till We Meet Again<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의 이야기로 막을 엽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저승의 풍경과 죽음 이후의 절차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신과 함께>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그리는 저승의 풍경은 <신과 함께>와는 사뭇 다릅니다. <신과 함께>의 저승이 한 인간의 죄악을 평가하기 위한 무시무시한 7개의 지옥이었다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저승은 무시무시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죠.영화 초반부, 죽음과 함께 저승세계에 입문한 '샤오룬'을 인도하는 방식에서부터 이 영화만의 색다른 저승 세계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죄질을 평가하는 것은 무서운 창을 들고 서 있는 신이 아니라 스캐너가 달린 컴퓨터입니다. 스캐너로 이마와 혀의 바코드로 찍으면 한 인간이 지나온 전생과 이번 생의 공덕이 단번에 저승 컴퓨터로 전송되죠. 환생의 절차를 알려주는 것도 저승사자 따위가 아닙니다. 키치한 분위기의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재생해줄 뿐이죠. 이 장면은 잘 만든 B급 영화로 유명한 <남자사용설명서>의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과감하고 색다릅니다. 저승에서 일하며 이번 생의 부족한 공덕을 채우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스토리와 저승의 대왕인 염라가 며칠은 안 씻은 듯한 꼬질꼬질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 또한 의외였습니다. 저승에서 활개를 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혹여 저들이 저승의 신에게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들은 조금의 꾸지람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여태껏 봐왔던 저승은 그만큼 무섭고 음침한 분위기였지만, 이 영화 속 저승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구파도 감독은 무지개별로 떠난 자신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저승이 조금은 명랑하고 활기차게 그려진 것도, 어떤 식으로든 환생이 가능하게끔 설치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 두 번째는 이승에 남겨진 '샤오룬'의 여자친구 '샤오미'의 인연 찾기, 세 번째는 500년 전 자신을 죽인 동료들을 벌하고자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설명 등을 일절 보지 않고 영화를 감상한 저는 보는 내내 흠칫흠칫 놀라곤 했습니다. 세 가지의 이야기가 뒤섞여 진행되다 보니 영화의 장르가 쉴 틈 없이 바뀌곤 했거든요. 판타지 로맨스 같다가도 호러 같고, 스릴러 같다가도 코미디 같았습니다.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방문하신다면,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온갖 장르의 폭격에 당황하실 수도 있습니다.'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은 웃음이 픽픽 새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이승의 인연을 붉은 실로 엮어주는 월하노인의 임무를 맡은 '샤오룬'과 '핑키'는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씩 진정한 파트너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샤오룬'을 향한 '핑키'의 사랑도 스멀스멀 싹트죠. '샤오미'의 인연 찾기는 절절한 로맨스입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다며 사랑을 맹세했던 '샤오룬'이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샤오미'의 새 인연을 찾아주는 과정은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선사하죠.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 스릴러입니다. 이미 환생을 거듭해 전생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12세 관람가입니다.)그래서 재미가 없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다들 잡탕밥 드셔보셔서 아시겠지만, 잡탕밥은 그 오묘함이 맛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여 버렸어도 맛은 있었답니다.⊙ ⊙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생과 사를 골몰하게 됩니다. '샤오룬'이 동네 어르신들과 농구를 하다가 별안간 벼락에 맞아 죽었듯이, 어쩌면 저도 이렇게 글을 쓰다가 별안간 건물이 무너져서 죽을 수도 있지요. 요즘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정말 그런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극 중에서도 월노로 활동하는 죽은 자 중에 노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요절한 청년들이었죠. 이렇듯 죽음은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의 무작위성은 죽음을 두렵게 만듭니다.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던지는 '만약'이라는 가정 덕분에 저는 죽음의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겨냈습니다. '만약 죽음이 또 다른 생의 시작이라면? 내가 이미 열 번이 넘는 환생을 거쳐 몇백 년간 존재해왔다면? 사랑, 선의, 그리움 등의 감정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즐거운 가정과 함께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좀 더 알차게 이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인생 1회차 인간을 위해 앞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는 영화가 더 많이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마지막 쿠키 영상을 보고 눈물을 훔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인 만큼,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아루'에게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쿠키 영상에 담았거든요. 쿠키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시고,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마음들을 온전히 느끼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Summary
샤오미(송운화)만 사랑해 온 직진남 샤오룬(가진동), 하지만 청혼하려던 순간 갑작스런 사고로 저승에 간다. 환생하고 싶으면 붉은 실로 커플 매칭을 하는 월하노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데, 하필 사사건건 부딪히던 핑키(왕정)와 파트너가 된다. 드디어 이승으로 내려온 ‘월하노인’ 샤오룬과 핑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 우리가 인연을 맺어줘야 할 인간이 샤오룬이 평생 사랑했던 단 한 사람, 샤오미란다! (출처: 씨네21)Cast감독: 구파도출연: 가진동, 송운화, 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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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운 게 늘어난다. 예전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
실패하면 더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고 괜히 도전했다가 허송세월을 보내게 될 거란 걱정에 시달린다. 그렇게 익숙한 사람과 환경 속에 몸을 숨긴 채 새로운 일은 매번 다음으로 미룬다.이전에 하던 대로, 주어진 대로 지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 문득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이 생긴다.
게다가 지금처럼 망설이다가 후회했던 과거가 떠오르는 날이면 용기 내서 도전하는 사람에게 괜히 시선이 향한다. 그들을 보면 자극을 받아 용기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그런 날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보면 어떨까? 불도저 같은 성격의 주인공 '롤라(빅토리아 저스티스'에게 용기를 배울 테니까.
영화 <퍼펙트 페어링>
영화 <퍼펙트 페어링>은 2022년 5월 19일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최신 로맨스 영화이다. 주인공 '롤라'는 승진을 앞둔 발표에서 친한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상사에게 무시당한다.
큰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와인 회사를 그만두며 스스로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완벽한 홀로서기를 꿈꾸며 유명 와인 회사 대표 '헤이즐'을 찾아'호주의 낯선 목장에 도착한 그녀 앞에 의문의 남자 '맥스(아담 데모스)'가 나타난다.
티격태격 다투며 대화하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예고편을 통해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만나보세요!
영화 <퍼펙트 페어링>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유능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 영화의 모든 클리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꾸준히 봤던 사람이라면 다음 장면에 어떤 행동과 대사를 할지 맞출 수 있을 정도이다.
주인공의 퇴사, 낯선 곳으로의 여행, 여자들의 우정, 멋있지만 비밀 많은 남자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들 한 번쯤 마음에 품었을 로망이 모두 담겨있다.단순하게 클리셰가 많아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로맨스 영화에서는 클리셰를 유지하되, 독특한 개성을 더하는 게 흥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퍼펙트 페어링>은 뻔한 스토리에 와인이라는 세련된 소재를 더하고 아름다운 호주 농장을 배경으로 얹었다.
덕분에 과도한 긴장감이나 격한 감정 소모를 겪을 필요 없이 언제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Q. 용기 낼 타이밍은 언제일까?영화 속 모든 클리셰는 당연하게 주인공 '롤라'를 향한다. 정확히는 모든 요소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이끈다.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반할 때처럼 과하게 느끼던 그녀의 열정에 점점 빠져든다.
예를 들어 '롤라'는 '헤이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가축의 배설물을 치우는 작업 등이 처음이라서 계속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도 그녀는 늘 자신감 넘치게 지금껏 못해본 일이 없으니 해낼 거라고 답한다.특히 영화는 관객들이 그녀의 열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구구절절한 서사를 부여한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그녀가 '헤이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이유가 결코 돈이나 명예가 아닌 와인을 향한 애정임을 강조한다.
그러니 남자 주인공 '맥스'가 그녀를 위해 수 천만 원이 넘는 와인을 준비해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직접 그린 영화 속 한 장면
반면 그녀에게 농장 일을 알려주는 '맥스'는 잘생긴 외모, 농장 주인이라는 직업 등 객관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와인 회사 CEO '헤이즐의 친동생이며. 심지어 가족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초반에 도와준 투자자이다.
일말의 부족함 없이 지낼 것 같지만, 사실 '맥스'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세상에서 도망쳐서 지내는 겁쟁이다.
영화 내내 현실에 만족한다며 누나 '헤이즐'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농장 주인으로 존재를 숨기다가 결말이 되어서야 '롤라'를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낸다.'롤라'와 '맥스'의 관계를 보니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누군가의 용기를 마주하면 처음엔 호기심이 생겨 살짝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사람의 열정에 조금씩 빠지다가 어느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도 모르게 열정이 생겨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용기가 생긴다.
와인이 달콤하다는 이유로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어느새 취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인사불성의 상태와 닮았다.그러니 용기 낼 타이밍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신중해도 괜찮다. 도망칠 만큼 도망쳐 더는 갈 곳이 없는 곳에 숨어 있어도 상관없다.
당신에게 용기 내는 법을 알려 줄 누군가를, 무언가를 깊이 사랑할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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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조정석 주연의 영화 <파일럿>이 개봉 12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가 파격적인 변신을 거쳐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2024년 여름 개봉 영화 중 최단 시간 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올여름 최고의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또한, 광복절 연휴 주간이 시작되는 다음 주에도 흥행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8월 14일 개봉하는 조정석 주연의 또 다른 영화 <행복의 나라>가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다음 주는 '조정석 주간'이 될 전망입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으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한편,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 수 40만 명을 돌파하며 2위를, <슈퍼배드 4>는
<데드풀과 울버린>을 제치고 3위에 올랐습니다.
국내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데드풀과 울버린>이 개봉 3주 만에 전 세계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올해 두 번째로 10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 되었습니다.
데드풀의 실제 아내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주연한 <잇 엔드 위드 어스>가 2위를 차지했으며, <트위스터스>가 3위에 올랐습니다.
<행복의 나라> <빅토리> <트위스터스> <에이리언: 로물루스> 광복절 전날 기대작들이 줄줄이 개봉하며 박스오피스 순위는 어떻게 변할지! 씨네픽 박스오피스 분석 다음주에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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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과정보다 결과로 말하는 걸까
지난 3월 - 화창하지만 약속 없는 토요일에, 모처럼 일찍 눈이 떠졌다. 당당히 나와 놀아주는 날을 오랜만에 시전 했다. 평온한 요가 타임을 거쳐,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서점으로 갔다가 내 아지트인 한글 책 서점이 공간 재정비 중임을 깨닫고 근처의 영화관으로 향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는 에드리언 브로디 배우 주연의 '브루탈리스트 : The Brutalist'. 아카데미 시즌이기도 해서 봤던 콘클라베 (Conclave : 나는 '브루탈리스트'를 보기 전에는 콘클라베의 랄프 파인즈가 남우 주연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측했다!)를 어쩌다 보니 두 번이나 봤고, 데미 무어의 화제작 서브스탄스(Substance)도 출장 중에 비행기 안에서 봤던 터라 시간도 맞고 볼 만한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송구한 러닝 타임의 (총 3시간 35분, 인터미션이 15분 정도 포함되어 있고 이 마저도 영화의 일부다) 긴 장편 영화를 선택했다.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이 건축 사조를 일컫는 말인지 전혀 몰랐다. 그저 남자 주연배우가 연기했던 2003년작 영화 '피아니스트'를 너무 좋아해서, 비슷한 전쟁 배경에 그가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보고 싶었다. 위키피디아에는 이 영화를 다음 단락의 인용문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브루탈리즘이라는 건축 사조는 흔히들 잘 아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사용하는 빛, 물, 콘크리트 등을 전반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가 만든 북해도의 교회는 못 가봤지만, 최근 서울 마곡나루에 생긴 LG 아트센터는 가 봤다. 지하철에서 센터로 연결되는 동굴 같은 구조를 그가 설계한 것이라고 하던데, 새로운 세계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의 시작도 그러하다. 헝가리에서 취조를 받는 그의 조카 조피아와 상반되게,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에드리언 브로디 분)는 미국 망명에 성공하며 카메라는 자유의 여신상을 거꾸로 보여준다. 거꾸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헝가리인 건축가가 미국으로 건너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제목의 브루탈리스트는 건축 사조 브루탈리즘을 따르는 주인공을 의미한다."
라즐로는 망명 뒤, 미국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사창가를 거쳐 (여기서 영화가 21세 미만 관람 불가인 점과, 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영화 전반에 걸쳐 인간의 영혼에 각인한 상처를 표현하는 도구로 쓰이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복선과도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촌인 아틸라가 정착한 필라델피아로 향한다. 그리고 아틸라부부가 운영하는 가구점 쇼케이스 뒤편에 위치한 작은 창고 같은 방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다. 그들은 라즐로를 위하는 척 하지만, 당연히 그가 아내인 에르자벳과 조피아도 망명시키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타박을 준다. 아틸라의 가구점 고객인 부유한 뷰렌가 자택의 독서실 개조 프로젝트를 멋지게 성공시키고, 초과된 예산 때문에 외래 쫓겨나는 라즐로. 믿을 자 없는 타지 생활에서 노숙자 숙소와 건축 잡부 생활을 이어나가는 그에게 독서실의 주인인 뷰렌이 찾아와 그의 재능을 사고 싶다고 한다. 온갖 아름다운 것을 탐닉하는 부자인 그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지만..
뷰렌의 부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마약과 술, 담배에 찌든 그러나 건축가적인 재능으로 빛나던 라즐로에게 뷰렌은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는 교회 겸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어 달라고 청했다. 그의 도움으로 에르제벳과 조피아의 망명도 성공하고, 그는 뷰렌가의 집에 세 들어 살며 건축 설계도를 완성해 나간다. 전쟁의 상처로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에르제벳은 옥스퍼드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 재원으로 저널리스트이다. 끊임없이 자신이 모든 면에서 우월함을 대화로 표출하려는 뷰렌과, 자신들이 믿는 가치만으로 아름다운 라즐로와 에르제벳 부부.
이들에게 닥친 시련은 뷰렌이 운영하는 철도 운송회사에서 건축 자재를 수송하다가 큰 사고가 난 다음, 해고된 것이다. 돈 앞에서 미학적인 가치를 단숨에 내던지는 사람과, 역시 자신의 믿음 속에서 일해 나가는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상반된다. 몇 년 뒤에 뷰렌은 다시 이들을 불러들여서 건물을 완성시키고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부부에게는 전쟁이 준 상흔과 미국 생활의 고단함에 지쳐가는 시절이었고, 감정의 대폭발은 뷰렌이 라즐로를 '강간'하는 과정에서 터진다. 라즐로는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코가 부러졌지만 치료를 못하고 대마에 의존하며 미국으로 망명했고, 에르제벳 또한 전쟁 수용소에서 수차례 성고문/폭행당해 휠체어에 의지해왔을 몸으로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틀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대마를 통해, 강간을 당하며 다시금 상처를 열어젖혀 상처를 치유하는 두 사람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끝에 과연 라즐로가 설계한, 태양 빛에 따라 십자가가 내부 대리석에 반사되는 교회당의 건물이 완성될 것인가? 라즐로는 유대계이며 그가 설계한 건물은 그 완성으로 인해 그가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하게 된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조카인 조피아의 입을 빌려서 말이다. 영화의 끝에서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판단은 관객의 몫.
나는 시오니즘 (zionism)이라는 말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무위키를 빌리면 이 단어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던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t) 운동이다. 시온(Zion)이란 원래 예루살렘 시가지 내의 언덕 이름으로 예루살렘, 또는 이스라엘인의 땅을 의미한다'. 싱가포르에도 Zion Road라는 곳이 있으며 다양한 종교를 지원하는 나라 사정상 유대교가 존재할 것으로 사료된다.
영화에서도 라즐로가 유대교의 미사에 참여하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나는 그가 전쟁 속에서도 자신의 민족성, 종교, 가치를 추구했기에 더 많이 상처 입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이 전쟁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듯이, 그리고 독립투사들이 아주 가혹히 지탄받았듯이 - 유대인인 그도 홀로코스트에 맞서 처절하게 싸우는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영혼은 상처받기 쉬운 유리그릇 같다. 부부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는 '성' 행위 또한 전쟁 속에서는 너무나 잔혹한 폭력이다. 영화는 이런 아픔들을 표면에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건축물이나 대화, 은유적인 표현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 찾아오는 여운은 더 크고 아프다. 오늘도 인류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반복하고 있다. 서로 상처 주고 싸우고 후에 그로 인해 고통받을지 어떨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양심 앞에서, 내가 믿는 가치 앞에서 떳떳한 마음으로, 당당한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내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감사하면서도 마음 아팠던 영화의 기록과 나의 오늘을 적는다. 나는 과정이 중요한 사람인가, 결과가 중요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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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주 최신 개봉영화(애프터 관계의 함정, 퍼펙트 스틸, 아네트,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고장난 론)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0월 4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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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관계의함정 #퍼펙트스틸 #아네트 #당신은믿지않겠지만 #고장난론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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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끝장리뷰 |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상징 | 야자수 의미 | 오프닝, 엔딩 해석 | 결말해석 | 세 번의 탈피 | 음식과 물질 | 스탠리 큐브릭 | 두 자아
[서브스턴스](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야자수, 세 가지 색 (빨간색 vs 파란색, 노란색)
Chapter 2 물질과 음식, 세 번의 탈피
00:00 괴랄한 수작
00:31 스탠리 큐브릭
01:14 야자수
02:30 세가지 색깔
05:12 의아한 지점
06:10 물질과 음식
07:52 나vs나
08:55 탈피, 변태
09:55 별점 및 한 줄 평
10:12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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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쿠라우> 30초 예고편
미지의 땅 ‘바쿠라우’.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총격으로 구멍 뚫린 물 수송 차량,
하늘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
마을 곳곳에서 시신까지 발견되며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는데…
이곳에 절대 발 들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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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바이킹스 : 발할라> 공식 티저 예고편
런던 브리지가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핏빛 전설을 예고하는 <바이킹스 : 발할라>.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