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8-17 13:53:21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1초 앞, 1초 뒤>
그리고 <미씽 마이 발렌타인>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1초 앞, 1초 뒤(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2024
일본, 로맨스, 판타지 등 119분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1초 앞, 1초 뒤>
시간이 방대하게 축적된 추억을 연료 삼아 흐를 때, 기억은 위대함과 무력함이 공존하는 대자연의 힘으로 몸집을 키운다. 시간을 소유하고 싶은 염원은 망각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소망과 다를 바 없고, 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말은 언제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그만큼 기억과 시간의 거리는 가깝다. 아니, 하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만큼 둘 사이는 깊고 밀접하다. 여기서 밀접함은, 서로에게 충분히 충족된다는 의미다. 두 개의 원이 각자의 영역을 확고히 하면서도 반드시 겹쳐있다는 점, 다르게 불리고 굴러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시간(기억)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동이 걸려 때때로 멈춤 현상이 발생하지만, 끝없이 흘러가고 이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완전한 거부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 강력한 힘을 기억(시간)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삶을 흐르게 하는 바퀴가 고작 두 개일리 없고, 나아가 겹친 수가 겨우 두 겹뿐이겠는가. 시간과 기억, 그리고 무엇과 또 다른 어떤 것들. <1초 앞, 1초 뒤>는 여기에 ‘관계’를 겹쳤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관계, 너와 나의 사이, 우리와 그들의 차이, 거기서 발생하는 이야기.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개인사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마지막엔 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끝엔 합쳐진 이야기가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붙잡지 않고 풀어놓음으로써 해피엔딩을 완성한다. 남들과 달라 늘 혼자였던 두 인물이, 그 다름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서로를 기억해 내고, 마침내 서로의 품에 녹아들며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 시작은 남보다 1초 빠른 하지메의 속사정으로 출발한다.
교토에서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하지메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과 함께 자랐다. 생강을 사러 간 아버지의 실종도 문제였지만,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사는 삶이 그를 결정적으로 혼자가 되게 만들었다. 달리기 시합을 하면 늘 먼저 출발했고, 말과 행동은 지나치게 많고 빨랐으며, 사진을 찍으면 셔터 속도보다 빨리 반응해 항상 눈을 감은 채 찍었다. 웃음 포인트 역시 반 박자 앞서서 본의 아니게 스포 빌런이 됐고, 우정은 물론 사랑 방식도 타인보다 급해 상대에게 먼저 차이기 일쑤였다. 성인이 된 후 집배원으로 일했지만, 속도위반을 밥 먹듯이 해 ‘분노의 질주남’ 별명과 함께 사무직으로 재배치됐다. 현재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조금의 여유도 허용치 않는 그의 업무 속도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보통 이들이 그렇듯, 일을 적게 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아예 하지 않는 건 또 꺼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하지메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레이카 역시 속도만 다를 뿐 하지메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어릴 적, 시험을 봐도 긴 이름을 쓰느라 문제를 반 이상 풀지 못했다. 느린 탓에 모기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고,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움직이는 피사체를 순간 포착하는 건 버킷 리스트가 된 지 오래다. 웃음 포인트도 스포 빌런과 준하는 뒷북 빌런으로, 모든 사람이 웃고 넘어간 지점을 꼭 뒤늦게 밟아 매번 난처하다. 대학을 7년째 다니고 있고, 집 대신 사진 동아리 방에서 숨어 살고 있다. 현실이 팍팍하고 지난하지만, 죽은 아빠가 남긴 카메라로 세상을 찍으며 외로움과 슬픔을 조금씩 덜어내며 산다.
1초의 횡포도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던 두 사람은, 새로 생성된 관계들로 인해 충돌하듯 재회한다. 길거리 가수와의 연애로 30년 만에 행복을 느끼는 하지메와 그런 그의 시야에 레이카가 처음으로 들어온 순간이다. 사실 레이카는 하지메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과거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자신을 위로해 준 소중한 친구를 잊을 리 없었다. 두 아이는 헤어지기 직전 레이카 고모의 우편함 열쇠를 나눠 가지며 꼭 편지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꼬꼬마들의 소꿉놀이는 잊혔고, 시간 탓을 하든 기억 탓을 하든 둘이 다시 만나 서로를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레이카가 그날, 그때, 버스 하차 벨을 늦게 누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1초 느린 여자가 1초 빠른 남자를 못 알아볼 리 없었고, 레이카는 그날부터 하지메에게 우표를 사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가 날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메에게 잊힌 시간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산 기간이 더 길었으니까. 무엇보다 레이카는 하지메란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깊이 위로받고 있었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하지메와 가수, 가수와 레이카, 하지메와 실종된 아버지, 하지메와 가족, 레이카와 하지메까지, 둘의 이야기는 포개지는 관계들의 영향력으로 특별한 반전 없이 흘러간다. 하지메의 돈이 목적이었던 가수의 못된 심보가 레이카에 의해 밝혀지고, 돈 봉투를 챙겨 가수를 만나러 가던 하지메는 영문도 모른 채 하루를 잃는다. 그가 잃은 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무수히 많은 1초를 저장해 왔던 레이카의 1일이었고, 레이카는 멈춘 하지메를 데리고 바다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 그녀와 같은 1일 무료 사용권을 가진 버스 기사의 도움으로 말이다. 하지메의 아버지도 집을 나간 날 세상이 멈추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하고 지금까지 숨어 살고 있었다. 그는 레이카 덕에 아들과 사진도 찍고 가족들에게 못했던 미안하단 말을 하고 떠난다.
다음 날, 깨어난 하지메는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속된 우연으로 우편함 열쇠까지 찾아내 레이카가 그동안 보냈던 편지(사진들)를 발견하면서, 덮어뒀던 그녀와의 추억을 찾는 데 성공한다. 매 순간 어긋나기만 했던 둘의 시간이 딱 맞춰지는 그때, 늘 빠르기만 했던 하지메는 레이카를 기다리고, 늘 느렸던 레이카는 하지메를 위해 빠른 걸음으로 우체국 안으로 들어간다. 서로를 마주 보고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트리는 두 사람, 영화는 잊지 않고 둘의 치유 과정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렇게 흐르게 놔둔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1초 앞, 1초 뒤>는 진옥훈 감독의 <마이 미씽 발렌타인>(2010)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굳이 원작을 언급한 건, 본 작품을 원작과 함께 음미하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과 다른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인공의 성별(원작은 여자가 빠르다)이 바뀌었고, 새로운 인물들이 추가로 등장한다. 둘째, 주인공이 잃어버린 하루가 밸런타인데이에서 커플 대회가 열리는 날로 변경됐고 하루 삭제가 가능하게 된 이유도 나름 보충됐다. 셋째,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하면서도 배경(일본의 교토)을 보여주는 데 힘썼다. 세 가지 차이점은 단순히 이야기의 구성요소가 바뀌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의 기본 시각과 주제가 달라졌음을 뜻한다. 두 작품은 ‘1초’를 활용하는 방식과 1초에 숨은 ‘기억’을 다루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그로 인해 관객에게 각각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출처: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다음)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시간과 기억에 ‘방황하는 나’를 겹쳤다. 1초 빠른 여자와 1초 느린 남자는 군중 속 외톨이였다. 따라서 홀로 내면의 힘을 기르고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 그런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상하게만 느꼈던 내가 사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며, 더는 혼자가 아님을 확신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다. ‘자신을 사랑하라,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에서 ‘자신을 사랑하라,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로 바뀌는 자막도 한몫한다. 따라서 원작에서 ‘1초’는 인물들의 단순 ‘기질’로 표현된다. 여자 주인공은 말과 행동, 생각까지 타인보다 급한 성격을 가진, 그리하여 남보다 시간을 더 쪼개 쓰는 사람이지 <1초 앞, 1초 뒤>의 하지메처럼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리메이크작의 차별화된 방식에 있다. <1초 앞, 1초 뒤>는 제삼자의 시점으로 하지메와 레이카의 평범할 수 없는 삶을 소개한다. 관찰자의 목소리는 원작의 코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줬던 ‘연민’이란 감정 외에, 하지메와 레이카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환상’을 덧입힌다.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사는 ‘외톨이들의 웃픈 사랑’ 이야기가, 같은 시공간에 속해 있으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자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시간이 멈춰 하루를 잃는 판타지적 요소도 <마이 미씽 발렌타인>에선 이야기 중반에 갑자기 튀어나오지만, <1초 앞, 1초 뒤>에선 처음부터 하지메와 레이카를 통해 풍기며 등장한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도마뱀 인간(정령?)이 <1초 앞, 1초 뒤>에선 생략된 이유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원작이 끝까지 집중한 한 겹은 ‘남들보다 유별난 나(자아)’이고, 리메이크작의 한 겹은 ‘태생적으로 조금 특별한 삶을 사는 우리(관계)’다. 일상 속의 나와 판타지 속의 우리. 사건 해결의 결정적 추도 ‘나’와 ‘우리’로 각자 진행된다. 원작의 인물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개인의 몫으로, 리메이크작의 인물들은 모두의 영역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한다. 결말의 형태는 같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인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러나, 결말이 주는 의미는 다르다. 원작의 끝엔 유별나도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나와 네가 있고, 리메이크작의 끝엔 오랜 그리움과 기다림을 버텨온, 서로에게만 각별한 연인이 있으니까.
두 작품 모두 재미있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이지만, 다른 작품으로 봐도 좋다는 얘기다. 똑같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지만 각자 발산하는 매력이 다르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맛이 서툰 삶과 풋풋한 첫사랑에 있다면, <1초 앞, 1초 뒤>의 맛은 순수함과 첫사랑을 향한 불가항력(초능력)에 있달까. 이는 대만 영화와 일본 영화가 가진 각각의 특색과도 연결돼, 보는 맛이 더 다채로울 것이다.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우린 매일 어떤 것이 어떻게 겹친 줄도 모르고 삶을 굴리고, 동시에 굴려지며 그렇게 물 흐르듯 산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하루를 더 보상받거나 하루를 잃고도 이를 전혀 모르고 사는, 그런 발칙한 정체 구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낙이라면, 분명 흐르는 데 좋은 연료로 쓰일 거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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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리함을 뽑내는 펭귄, 그리고 관심이 필요한 문어
귀여운 것에 환장하는 사람으로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귀여운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웨이브의 늪에서 귀여운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발견했다. 정말 처음부터 귀여운 펭귄들이 잔뜩 나와서 행복했고, 남극의 빙하 위에서 뒤뚱뒤뚱 걸어가며 생각없이 살아가는 펭귄들과 이 생각없음에 개탄하는 4총사 펭귄의 대치가 초반부터 굉장히 귀여워서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 시놉시스
넘치는 유머, 감쪽 같은 위장술, 똑소리 나는 브레인! 날 때부터 남달랐던 악동 펭귄 스키퍼, 코왈스키, 리코, 프라이빗! 어느 날 그들 앞에 복수심에 불타는 문어박사 옥토브레인이 나타나고, 그의 거대한 음모를 알게 된 펭귄 4총사는 비밀 조직 ‘노스윈드’와 함께 세상을 구할 사상 최대의 작전을 펼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마다가스카의 펜귄 스포가 존재합니다.
자그마한 관심도 못받던 문어의 발악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관심받지 못한 문어가 열폭하고, 그 문어를 막기 위해 펭귄 4총사가 나서는 이야기다. 생김새만으로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펭귄들과 달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던 문어 데이브는 이 모든 것이 펭귄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약물을 개발해 펭귄들을 세상에서 다 없애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기회가 실패로 끝나면서 문어 데이브가 좌절하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아진 문어 데이브를 향해 한 아이가 하핫! 너무 귀엽잖아~ 이 한마디를 시전하자 데이브는 굉장히 행복해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관심 한 번을 받지 못해 시작된 이 이야기. 어찌보면 사소한 관심이 막대한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마다가스카의 펭귄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특색을 잘 담아내다
문어 데이브가 세계 각지에 있는 펭귄들을 납치하면서 펭귄 4총사가 이를 막기 위해 문어 데이브를 뒤쫓는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여러 나라를 거치게 된다. 잠깐잠깐 등장하는 나라들이었지만 이탈리아면 이탈리아, 중국이면 중국 등 굉장히 해당 나라의 특색들을 잘 녹여내서 괜시리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데이브를 따돌리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에서는 베네치아의 가장 유명한 그,,, 배,,, 노래 불러주는 사공,, 뭐라 그러더라,,? 어쨋든 여유로운 베네치아의 모습과 상반되는 추격전이 대조되면서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뛰어난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가장 멋있었어!
프라이빗은 다른 펭귄 스키퍼, 코왈스키, 리코보다 한참 어린 덕분에 사실 작전 수행을 하면서 큰 역할을 수행하진 않는다. 그래서 작품 중간쯤 프라이빗을 스피커에게 나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스키퍼는 지금 너가 맡은 역할도 중책이라며 어르고 달래서 쉬운 역할을 맡긴다. 하지만 그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스키퍼를 당황하게 만드는 귀여운 프라이빗이다.언제나 막내일 것 같은 프라이빗이었지만 형들이 다 데이브 문어에게 잡혀가서 이상한 괴생명체로 변하는 약을 맞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자 일사분란하게 형들을 구하고 형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우리 프라이빗이 달라졌다!
자신의 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프라이빗은 자신을 희생하며 결국 모든 펭귄들을 구하는데 성동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드래곤 시수가 생각났다. 가장 막내였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세상을 구한 것은 막내였던 시수와 프라이빗이었다.
펭귄으로 좋아한다면, 작고 귀여운 펭귄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고 싶다면 영화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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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랑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뻔해진다
어떤 이야기를 단지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그게 어떤 것으로 다가오는지. 영화 <반쪽의 이야기>(2020)는 대만계 미국인 감독 앨리스 우(Alice Wu)의 작품이다. 동양인 여성 감독인 그는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으로서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는 MIT와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잠시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했었다고 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진 <세이빙 페이스>(2004)가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감독으로 전업하나 싶었는데, 지금 소개할 <반쪽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16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앨리스 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감독의 트위터에는 어느 여섯 살짜리 아이가 말했다는 “Drawing is my favorite enem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의 친애하는 적. 감독은 이 말이 영화 만드는 일에 관해 자신이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며 동시에 즐겁지 않은 일,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할 수밖에 없는 일.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사이의 16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들로 채워지기도 했겠지.
<반쪽의 이야기>는 고등학생인 ‘엘리’(리아 루이스)가 같은 학교 남학생 ‘폴’(대니얼 디머)로부터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위 ‘하이틴 로맨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감독의 전기적 특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과 전하고 있는 메시지 자체가 이런 종류의 10대들 사랑 이야기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배경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겠다.
‘폴’이 부탁한 연애편지라는 건, ‘폴’이 좋아하는 동급 여학생 ‘애스터’(알렉시스 러미어)에게 쓰는 것이다. ‘엘리’는 평소에도 약간의 돈을 받고 학우들의 과제를 대신 써주고는 했다. 대필 이야기를 듣자마자 ‘엘리’는 “세 페이지 이하는 10달러, 열 페이지까지는 20달러, 그 이상은 안 해.”라고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견적을 말한다.
‘엘리’는 저 말을 다른 학우들이 숱하게 부탁했을 과제 이야기겠거니 하고 꺼낸 건데 ‘폴’이 원하는 게 학교 과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라는 걸 알게 되자 그걸 단호하게 거절한다. 누군가의 진심은 대신 써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서. 편지의 명목상의 발신인과 그 수신인을 아주 잘 안다고 해도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꾸며낸다는 건 아주 천재적인 작가에게 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 <그녀>(2013)에서 ‘테오도르’(와킨 피닉스)가 쓰는 종류의 조금 간단한 대필 편지 정도면 모르겠지만. ‘엘리’가 편지 대필을 해주기로 하는 계기는 따로 있었다. 당장 50달러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폴’이 그 돈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신이 직접 써도 그게 전해질까 말까 할 텐데 다른 사람이 대신 써주는 편지.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폴’이 자기가 일단 써봤다며 내민 편지를 읽더니 ‘엘리’는 거의 다 고쳐야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 영화의 키워드는 흔하디 흔하지만 ‘진심’이 되었다. 사랑 이야기에 진심이라니. 우여곡절이 있지만 한 사람의 간절하고 지순한 마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해지고 둘의 관계가 ‘결실’을 맺는 정도의 구조일까.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원하는 걸 얻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서두에서 ‘엘리’의 내레이션은 이미 <반쪽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 전제한다. 장르의 흔한 공식을 따르기를 애초부터 거부하는 이 영화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발단은 따로 있다. ‘폴’의 편지를 대필해주던 ‘엘리’는 한 번이라고 생각했으나 ‘애스터’로부터 답장이 오면서 계속 이어지는 편지 속 이야기의 과정을 통해 ‘애스터’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기왕 쓰는 것 잘 쓰기 위해서 ‘폴’과 계속해서 ‘애스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애스터’의 일상을 몰래 관찰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지는 않지만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게 된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지만, 이건 '흔한' 퀴어 영화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사랑 영화도 아니고 퀴어 영화도 아닌데 하이틴 로맨스 영화이고 흔한 이야기는 아니라니. 정말 제목처럼 이야기의 반만 꺼낸 셈인데, 글 제목의 뜻에 대해서도 아직 말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낸 것 같다.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그렇게 숭고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다. 실은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게 사랑이라면서.
“
“Love is messy and horrible and selfish …and bold.”
그러니까, ‘엘리’는 사랑이 상대방에 대해 낱낱이 아는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 같다. ‘폴’이 편지 대필을 부탁했을 때 처음 써준 편지에 의도치 않게 ‘애스터’의 답장이 오고 나서, ‘폴’과 ‘엘리’는 이제 정말 작정을 해야만 했다. ‘폴’은 이제 데이트 신청을 하자고 했지만 ‘엘리’는 “다른 남자애들과 똑같아지고 싶냐”라며 편지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
‘엘리’에게는 단서가 있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애스터’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애스터’는 ‘엘리’가 들고 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보고 자기도 그 책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엘리’는 ‘폴’을 대신해서 그의 이야길 하고 있었다. 사랑이 뭔지 모른다는 핑계로 빔 벤더스 영화 속 대사 언급을 했더니 ‘애스터’가 자신 역시 빔 벤더스를 좋아한다고 답장을 한다든가... 이제 ‘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좋아하고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편지를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한 이상 그건 자연스럽게 떠안아야만 했을 문제일지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엘리’와 ‘폴’은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스터’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일단 데이트 약속을 잡았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애는 구상화보다 추상화를 더 좋아해. ‘남아있는 나날’ 얘길 꺼내면 영화가 나치 얘기를 줄이면서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를 말해.” ‘엘리’가 ‘폴’에게 해주는 조언은 대략 이런 것이었는데, 이런 건 ‘애스터’의 취향에 대해 ‘폴’이 학습하도록 하는 정보들이었다.
당연히 첫 데이트는 ‘엘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폴’은 두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잡아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며 밀크셰이크에 든 빨대를 쪽쪽거리는 ‘폴’이 ‘애스터’에게는 나름대로 귀여워 보였던 모양. 실제로 ‘애스터’는 “넌 좀 이상하지만 그래서 귀여워”라고 언급한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의 중요한 대목은 이런 것에 있다. 이 일련의 데이트는 ‘폴’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고 ‘엘리’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는다. 가령 ‘엘리’는 ‘폴’ 대신 직접 ‘애스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이런저런 조력을 하지만 이건 마치 ‘글로만 배운 연애’ 같아서 가끔은 그것보다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폴’의 것이 통하기도 한다.
일단 제목의 의미 하나가 여기 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그리고 많이 영향 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그 영향들이 쌓이고 쌓이는 방식으로 완성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영화 속 ‘반쪽’이라는 건 ‘폴’과 ‘애스터’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애스터’와 ‘엘리’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며, 나아가 ‘폴’과 ‘엘리’ 아빠 ‘에드윈’(예성)의 관계도, ‘엘리’와 ‘에드윈’의 관계도 모두 포함한다. 반쪽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것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앞에서 ‘사랑이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것’이라는 인용을 했는데 ‘엘리’의 말이다. 관찰하고 계산한 대로, 정해진 공식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과 의외성이 통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서로가 만나 각자의 고유함을 바탕으로 조금씩 관계를 다져가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 <반쪽의 이야기>는 특정한 가치관에 따라 흘러가지도 않고 누군가의 가치관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입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주 똑똑한 영화다.
‘애스터’는 원래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는데 어떤 사정으로 포기한 인물이다. 그래서 ‘폴’의 이름으로 ‘엘리’는 ‘애스터’와 그림 이야길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대화 내용에는 어쩌면 <반쪽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된다. ‘애스터’는 미술 시간에 들었던 그림에 관한 이야길 꺼내고 그림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선을 그려 넣는 일에 관한 대화가 이어진다.
“
“어쩌면 중요한 건 그거야. 그림을 망가뜨리더라도
그 괜찮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해.
하지만 대담한 선을 그려 넣지 않는다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영영 모르겠지.”
사랑으로 한정해 볼까.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은 본래 서로가 만나기 전부터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것이다. 굳이 서로가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을 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일. 그러나 한 사람은 용기를 낸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한 사람이 거기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 이것이 어떤 흐름을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 그건 훗날 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안 되었으리라 믿을 만큼 삶 전체를 바꿔버리는 운명적 관계가 되기도 한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라는 문장이 나온다. 말하자면 ‘훌륭한 그림’을 만드는 건 ‘괜찮은 그림’에 대담하게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선 하나를 그려 넣는 행위일 거다. 뚜렷한 정답이 없는.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애스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억지로 읽고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폴’의 방식이 통하기도 하는 것처럼.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누가 정해놓거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치 대단히 중요한 내용처럼 플라톤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사랑이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같은 이야기. 보통 영화에서 검은 화면에 자막으로 이런 식으로 뭔가가 적혀 있으면 그건 거의 반드시 중요하거나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이 영화에선 별로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구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영리하게 그걸 비트는 영화라고 해야할지.
가톨릭을 독실하게 믿는 조용한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뻔한 하이틴 로맨스처럼 인물 관계를 구성해놓고 <반쪽의 이야기>는 ‘애스터’를 중심으로 ‘엘리’와 ‘폴’ 각자의 내면을 꽤 세밀하게 펼쳐놓는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10대니까, 이들은 얼마든지 삶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그래도 되는 존재들이다. ‘엘리’는 ‘폴’이 불쑥 내뱉는 “그게 사랑 아냐? 상대를 사랑하는 데 노력을 쏟는 거.” 같은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나를 뺀 세상의 전부’가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걸 예상치 못한 채 쉽사리 뒤흔들어 놓기도 하는 일 말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10대 중반쯤 되면 보통 사랑에 관해 나름의 기준 내지는 목표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거나 조금씩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가령 ‘폴’에게 사랑은 “치즈프라이를 하나 더 시키는 것”이다. ‘애스터’와 무슨 대화를 할지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편지부터 쓰는 것이고, 편지에 대뜸 “맛있는 곳 아는 데 같이 먹으러 가자”거나 “나 트럭도 있고 풋볼 선수야” 같은 이야기나 꺼내보는 것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읽는 것도 물론이고.
50달러를 받기 위해 편지를 정성들여 써주긴 했지만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서로 전혀 공통점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엘리’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엘리’의 생각과 달리 ‘폴’과 ‘애스터’의 두 번째 데이트가 성사되고 둘은 키스까지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듯 보인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둘이 하나여서 머리도 몸통도 둘 팔 다리도 넷이었는데 신이 하나된 둘의 완전함을 시기하여 둘을 갈라놓았고 평생 동안 서로를 계속해서 찾아다니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영화 제목도 사실 거기서 따온 것인데, 아주 진지한 이야기인 양 플라톤도 인용되고 사르트르도 인용되는데, 아무리 이 영화의 ‘엘리’라는 캐릭터가 다른 학우들의 과제를 대필할 만큼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을 사랑에 관한 각종 문학적 인용에 통달한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거나 그가 깨달음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야기로 서사를 맺을 생각이 없다.
영하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그 근거 중 하나는 저 인용들의 대상이 후반에 가면 ‘엘리 추’ 자신이 된다는 점이다. ‘엘리’에게 어떤 좌절의 상황이 찾아오자 영화가 띄우는 인용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이며,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던 ‘엘리’의 어떤 진심이 발언되는 장면 직후에는 앞에서 소개한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예요.”가 자막으로 등장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해서 고쳐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반쪽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이며, 그 점은 효과적으로 성취된다.
<반쪽의 이야기>는 흔한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그 모두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뭉클하고도 아름답게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갈등이나 오해는 대체로 해소되지만 그것이 사랑의 실현으로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엘리’는 물론이고 ‘폴’에게도 ‘애스터’에게도, 수많은 실패와 좌절, 상처들이 분명 찾아오고 어떤 것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앞에서 제목에 관하여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언급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빈번하게 내레이션까지 하며 ‘폴’의 행동을 이끌고 자신도 움직이지만 전지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전기 요금을 3개월 체납한 것에 대해 ‘엘리’는 아빠에게 전력 회사에 전화해봤는지 묻고 아빠는 동양인인 자기 억양을 못 알아들을 거라며 (통화) 안 해봤다고 한다. 이에 ‘엘리’는 시도는 해보았는지 되묻지만 다음날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할 뿐 아빠를 나무라지 않는다.
‘폴’의 이름으로 쓰는 편지를 통해 ‘엘리’는 ‘애스터’와 꽤 여러 주제에 걸쳐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내용을 보면 취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서로의 것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무엇보다 ‘애스터’에게는 사실 이미 공인된 (약혼 직전의) 남자친구쯤 되는 ‘트리그’(볼프강 노보그라츠)가 있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그는 당연히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캐릭터로 쓰였겠지만 여기선 전혀 그렇지 않다. 갈등을 빚지 않는 정도를 넘어 아예 ‘애스터’와 ‘폴/엘리’의 관계를 모르기까지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갈등 요소로 쓰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 더 짚자면 영화 속 스쿼하미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는 보수적인 동네지만 여성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얼굴을 붉히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일이 살짝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건 당사자만의 문제일 뿐 공동체의 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 모든 건 놀랍게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동양인 여성 캐릭터,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백인 남성 캐릭터, 무엇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기 많고 예쁘기까지 한 또 다른 여성 캐릭터라는 아주 전형적인 인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좋은 영화는 전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틀을 가지고도 선례를 답습하지 않고 활용과 변주, 시도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영화라고 <반쪽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생각하게 된다.
“난 늘 사랑은 한 가지 방식뿐이라 생각했어. 올바른 방식 하나. 하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라는 ‘폴’의 말처럼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은 특정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모든 종류의 사랑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평등하고도 특별하게 보여준다.
괜찮기만 한 그림과 훌륭한 그림 사이에는 아름다운 실패가 있다. 어떤 그림은 잊히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한 번 그린 그림의 순간을 기억하고 다음 그림을 또 그릴 수 있기도 하다. 이 영화를 두 번 더 되풀이해서 보는 며칠 동안 사랑에 관한 시나 산문을 여럿 읽었다. 확신하지 않은 채로, 그리지 않아도 되었을 선을 그려 넣는 일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끌어안으면서, 낙관하지 않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이 영화를 보고 여러 문장들 중에서도 떠오른 대목이 있어 여기에 덧붙일까 한다.
“두근거리다가 터지는 풍선이 되어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해요. 바람 앞에서 살랑거림을 주체 못하고 펄럭이는 내 쪽에서 먼저 고백하기로 해요. 달은 밤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밤에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해도 마찬가지로 아침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아침마다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뒤늦게 뜨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니까요. 늦어도 좋으니 일단 뜨기만 하면 세상이 밝아지는 일이니까요.”
(이원하,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에서)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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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실황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주춤했던 공연들이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각종 SNS에서 대학교 축제부터 음악 페스티벌까지!
공연과 관련된 다양한 게시물이 많이 업로드되며,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아직 공연을 못 즐기시는 분들을 위해
집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영화를 추천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공연실황'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2021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
Swag Age: Shout Out, Joseon!,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시조 속에 담아 훌훌 털어버렸던 백성들은 역모 사건으로
시조 활동이 금지되면서 자유도 행복도 잊은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15년 만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조선시조자랑이 열리게 되고,
탈 속에 정체를 감추고 양반들의 악행을 파헤쳐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조직된
비밀시조단 ‘골빈당’은 이것을 기회 삼아 조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한편, 왕의 비선실세이자 시조대판서인 홍국은 자신에 대한 악덕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이유를 들어골빈당을 잡으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cine pick!
서울예대 학생의 학사 창작 뮤지컬이었던 <외쳐, 조선!>으로 처음 시작되었고,
학교 공연 중 이례적으로 재연과 삼연까지 한 작품이다.
게다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 안무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하면 3관왕에 오른 작품이다.
팬텀: 더 뮤지컬 라이브
Phantom: The Musical Live,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어둠만이 가득한 지하,
그곳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흉측한 얼굴 탓에 숨어 지내는 오페라의 유령이 있다.오페라 하우스를 지배하는 그는 ‘팬텀’이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 그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그는 우연히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크리스틴 다에의 목소리를 듣고 단번에 매료되고,그녀를 오페라 극장의 새로운 디바로 만들기 위한 비밀스러운 레슨을 시작한다.오페라의 유령의 도움으로 크리스틴의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고 기다려왔던 데뷔 무대를 치르지만,열등감과 질투에 사로잡힌 오페라 극장의 디바 카를로타의 사악한 음모에크리스틴의 데뷔는 엉망이 되고 만다.이에 분노한 오페라의 유령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크리스틴을 지키기로 다짐하게 되는데…cine pick!
색다른 앵글과 촬영 방식을 통해 입체적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제작된 영화.
클로즈업샷을 통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몰입도를 높였다.
몬테크리스토: 더 뮤지컬 라이브
Montecristo,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젊은 선원 에드몬드 단테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샤토 디지프 섬의 감옥에서 14년을 보낸다.
에드몬드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정체를 깨닫고 복수를 결심한다.
cine pick!
8K 시네마틱 카메라와 14대의 온-스테이지 밀착 촬영으로 담아낸
역동적인 관람 뷰와 영화관 최적의 사운드로 생생하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Musical Daddy Long Legs, 2017
ⓒ 네이버 영화
synopsis
고아원 밖의 세상을 꿈꾸던 제류샤. 어느 날 수수께끼의 남자가 그의 정제를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제루샤의 대학 공부를 후원해 주겠다고 하고,
제루샤는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 부르며 매일 편지를 보낸다.
cine pick!
사랑스러운 넘버와 귀엽고 재치있는 각본.
소극장 2인극이지만, 무대를 완벽하게 채워낸 두 배우와 연출.
해밀턴
Hamilton, 2020
ⓒ 네이버 영화
synopsis
미국 건국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
cine pick!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힙합 뮤지컬의 만남!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재밌겠지만,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힙합' 뮤지컬이다.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
BILLY ELLIOT THE MUSICAL LIVE, 2014
ⓒ 네이버 영화
synopsis
소년 ‘빌리’는 아버지의 강요로 하게 된 권투 수업 중 중 우연히 본
발레 교실을 통해 본능적으로 춤에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cine pick!
전 세게 81개 어워드를 수상한 최고의 뮤지컬이다.
원작 <빌리 엘리어트>를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은 원작과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블랙핑크 더 무비
BLACKPINK THE MOVIE,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숨 가쁘게 달려온 5년 동안, 지나온 시간만큼 차곡차곡 쌓인 추억들,
그리고 무대에서의 기쁨.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언제나 함께했던 팬들과 나누는 영화.
cine pick!
블랙핑크의 무대뿐만 아니라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부터 리허설 과정까지 모든 부분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블랙핑크의 미공개 스페셜 인터뷰 또한 담아져 있다.
미스터트롯 더 무비
Mr.Trot The Movie, 2020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내일은 미스터트롯 대국민 감사콘서트’ 서울 공연의 뜨거웠던 무대 실황과
그 너머, TOP6의 매력적인 일상이 선물처럼 찾아온다.cine pick!
35.7%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TOP6을 기록한 6명의 콘서트.
<미스터트롯: 더 무비>는 15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동원하며,
그 해 멀티플렉스 3사 단독 개봉작 중 최고 스코어를 달성하기까지 하였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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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키 카즈아키의 '지옥의 화원'
본 글은 씨네랩을 통한 시사회 관람 후 리뷰를 요청받아 쓴 글입니다.
포스터만 보고 눈을 돌리는 영화들이 있다. <외계+인>도 포스터만 보고 보지 않으려고 했다. 워낙 제작비가 높은 한국 영화여서 어쩔 수 없이 봤지만 여하간 이런 유의 포스터들은 영화를 보지 않는다. 2시간이라는 시간은 한정적이고 난 2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낮아졌다. 아니, 변했다. 어쩔 수 없는 변화이지만 제작이 되는 영화들은 그 자체로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런 영화들 중에서도 가리기는 한다. <지옥의 화원>의 경우 시사회 관람 요청이 왔을 때 무시하려고 했지만 영화제에서 선택받은 사실과 몇몇 평들이 나쁘지 않아서 보기로 결정했다.
난 여자들의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킬빌>이나 <원티드>같은 영화들도 있기는 하지만 여자들의 액션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특히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 액션은 더더욱 믿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들의 액션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대사 또한 믿어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는 한국 영화 <차이나타운>이 그러하다. 더 나아가서 아무런 통찰도 없이 젠더 체인지만 하는 영화들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젠더만 바꾸었을 뿐인데 신선하다거나 좋다고 하는 평은 믿지 않는다. 젠더만 바꿔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렇게 서론을 적었을 때 <지옥의 화원>은 뭔가 다른 요소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옥의 화원>은 젠더 체인지는 실패했고, 영화적인 완성도는 나름 선방한 쪽이다. 이 영화의 기발한 점은 여직원들의 세계다. 시치미 뚝 떼고 진행하는 여직원들의 세계는 우리가 질리도록 많이 본 고등학생들의 일진 세계다. 고등학생들의 일진 영화는 영화 자체가 그들의 세계라면 <지옥의 화원>은 여직원들의 세계는 영화 속에서 분리된 세계다. 그러니까 영화 속 안에 여직원들의 세계와 그 밖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직원들의 세계에는 남성들이 존재할 수 없다. 혹은 들러리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 엔딩에 불만을 가진 관객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설정은 감독의 한계다. 그리고 이 한계는 부수적인 문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나오코의 액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고정관념의 한계일 수도 있으나 <아저씨>의 원빈은 믿어진다. <킬빌>의 우마 서먼도 믿어진다. 그러나 나오코의 액션은 믿어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나가노 메이의 가녀린 신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의 손오공은 믿지 않는가. 여기에는 고정관념이 작동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여하간 믿어지지 않는다. 그건 몹씬에서 보이는 엑스트라마저도 허공에 발길질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배우들의 움직임이 허술한 탓일 수도 있다. 이 불신을 잠재우는 것은 자기 반영적 요소와 편집, 그리고 캐릭터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놀랐던 것은 영화의 관심이 액션보다는 나오코의 일반인 세계에 있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액션이 이루어질 때면 항상 컷투로 화면이 바뀐다. 그런 뒤에 싸움의 결과가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싸움이 편집되고 우리는 싸움을 보지 못한다. 여기에 나오코의 내레이션이 더해진다. 란이 등장할 때와 나오코가 납치될 때, 그리고 납치되었을 때 그녀의 내레이션은 이 영화의 중심 뼈대에 붙어있다. 주인공과 조연. 이 영화의 캐릭터와 중심 뼈대는 주인공과 조연에 있다. 클리셰를 깔아놓고 클리셰를 비트는 방식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자기 반영적 요소를 내비친다. 이 패러디에는 컨벤션과 클리셰가 골고루 섞이면서 나오코의 비밀이 드러난다. 이 순간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봐왔던 컨벤션이지만 다시 한번 웅장함을 느끼게 된다. 그와 동시에 논리적으로 이 설정이 납득되지 않아서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전에 컨벤션이 아닌 클리세로 지겨운 대사들을 남발(란이 혼자서 나오코를 구하러 가면서 하는 말)하고 동시에 그 클리세를 패러디로 전환(란의 음료수를 언급)하며 이 영화의 톤이 오글거림과 자조섞인 웃음에 있다는 것을 통과한다. 이 통과와 나오코의 웅장함은 조연과 주인공의 대비처럼 그려진다. 웅장함의 논리적인 설정은 역시 시미치 뚝 떼고 지나간다. DNA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영화 자체가 그런 논리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 않냐고 이야기하듯.
이 영화의 장점은 중심 뼈대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면서 그와 같은 DNA를 가진 설정들이 예쁘게 붙어있다는 것이다. 주인공과 조연의 관계는 결국 여직원의 세계와 일반 여직원의 세계로 나누어진다. 일반 여직원의 세계에서 동료들과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고 싶은 나오코. 여직원의 세계에서 지상 최강의 여직원이 되고 싶은 란. 둘은 서로 크로스 된다. 이 설정 자체가 영화 초반의 교차편집으로 일반 여직원의 세계와 여직원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역시 중심 뼈대로 모인다. 우리는 주인공 나오코가 일반 여직원의 세계에서 여직원의 세계로 넘어왔을 때 자연스럽게 기대를 하게 된다. 마치 <크로우즈 제로>나 만화 <짱>같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숨겨진 힘이 드러날 때의 웅장함을 말이다. 이건 컨벤션이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이 컨벤션을 이용하고 끝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컨벤션 자체가 주는 쾌감과 캐릭터가 주는 쾌감이 공존한다. 주인공은 끝내 일반 여직원의 세계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일반 여직원의 세계에서는 완패한다.
이 패배가 이 영화가 달려온 지점이다.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것들을 다 던져줬다. 물론 그것이 훌륭하다거나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나오코의 첫 액션신이나 클라이맥스는 전부 이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의 최대치를 선사한다. 물론 믿기지 않는다는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다. 얇디얇은 손목으로 땅바닥도 부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여하간 이런 쾌감은 오랜만에 느껴본다. 이 쾌감의 최대 장점은, 이런 쾌감의 종류는 이제 올드하다는 느낌을 동반한다는 것인데, 올드함 없이 병맛과 버무린 쾌감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지점은 나오코의 패배다. 영화 속 주인공이 겸허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아쉬움을 내뱉거나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고 긍정하는 쪽으로 영화가 달려나간다. 하지만 <지옥의 화원>은 그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패배의 쓴맛을 그린다. 이 패배는 주인공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쾌감과 동시에 웃음을 선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쓸쓸한 넘버 투 히어로 란의 행복을 빌게 만드는 엔딩이다. 그래서 난 이 엔딩을 긍정한다. 여기에 OL 물에 고춧가루를 뿌렸다거나 헤테로를 뿌렸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애초부터 이 OL 물의 주인공은 평범한 여직원을 꿈꿔왔던 것이니 말이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비평이 아무 소용이 없는 종류이다. 이 병맛스러움을 긍정한다면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받아들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저 그런 싸구려 영화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 같은 사람도 이 영화의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팝콘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당신이 씨네필이어도.
2022년 1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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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답게 살았던 그 시절의 노스텔지어
빠르다. 대도시인 서울의 삶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빠른 템포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오랜 세월 이 도시에 살고 있음에도 불현듯 이곳은 낯설고 힘들 때가 적지 않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그 테두리 안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모두 나 자신이 아닌 이 도시가 원하는 사람으로 점점 변했을 터. 하지만 가슴 속엔 아무것도 정립된 건 없지만, 스스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주구장창 했던 본연의 자신이 꿈틀댄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영화인 동시에 나답게 살았던 그 시절의 노스텔지어를 떠올리게 하고 또 한 번 가슴을 뛰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반갑고도 고마운 작품이다.
미친X와 게이가 만났다. 너무나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로 갖가지 소문을 달고 사는 재희(김고은)와 자신의 인생에 절대 커밍아웃은 없고, 사랑도 하지 않는다는 주의를 내세우는 흥수(노상현)는 서로에게 공통점을 발견하고, 합의하에 동거를 시작한다. 완전한 베프로 20대 초중반을 함께 보낸 이들은 좋든 싫든 서로의 역사를 공유한 소중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이 동거가 영원할 수는 없는 법. 흥수는 군대를 가고. 재희는 취업을 위해 노력한다.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서로 딛고 있는 도시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 중 첫 파트인 ‘재희’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에서는 흥수(원작에서는 ‘영’)가 화자로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반면, 영화에서는 흥수와 재희가 극의 중심을 잡아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게이인 흥수와 미친X인 재희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약자라는 점이다. 이들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불온한 시선을 받고, 뒷말을 듣게 되고, 마녀사냥을 당하기 일쑤다. 보기와는 전혀 다른 이 차가운 도시에서 흥수는 뒷걸음질 치며 숨고, 재희는 앞으로 나가 당당히 맞선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로서 몸으로 터득한 경험을 자양분 삼아 각자의 대처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가 너무 다르지만, 그래서 공감하고 이해하고 연대한다.
20대 초중반에 찾아오는 고민들, 특히 풋사랑들의 기억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성숙하지 못했던 자신들만의 사랑법에 웃고 우는 이들이 연거푸어 벌어지고, 서로의 흑역사를 기억하면서 술 한잔으로 모든 걸 치유했던 흥수와 재희의 모습은 그 시절을 관통했던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가족보다 더 두터운 신뢰로 자신을 대신해 욕해주고,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이들의 우정은 그 자체로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는 단순히 순수하고도 뜨거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매개체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무분별한 혐오와 폭력이 자행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겪는 불합리함을 비중 있게 다룬다. 2010년대를 배경으로 성소수자를 향한 비난의 눈초리, 데이트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현실은 서울이란 도시, 한국이란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영락없이 까발린다. 중반 이후 두 청춘은 어엿한 사회 구성원의 역할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내 돌아오는 건 쳇바퀴처럼 도는 혐오와 폭력을 겪는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커밍아웃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대중 영화로서 퀴어 요소를 내세우는 작품이기 때문에 커밍아웃은 흥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재희를 통해 확장한다. 조금만 달라도 비정상으로 낙인 찍는 공동체적 시선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누군가의 여자 친구, 애인이 아닌, 흉흉한 소문에 정면으로 들이받는 구재희로서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 이런 확장성을 통해 영화는 퀴어를 소재로 했지만, 나 자신을 포기하고 사는 평범한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공감을 얻는다. 후반부 두 주인공의 진정한 커밍아웃이 행해지면서 영화는 두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서 소비되었던 게이 남자 친구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것은 물론, 퀴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대중영화로서 그 의의는 충분하다. 하지만 극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사용한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 설정과 퀴어 영화에서 볼 법한 진부한 설정들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김고은과 노상현의 케미다. 김고은은 진짜 구재희처럼 미친(긍정적인 뉘앙스다.) 연기를 보여주는 데. 겉으로 강단 있고 당차 보이지만, 그 안에 서린 슬픔이 엿보이는 순간의 감정 연기를 너무나 잘 표현한다. 더불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코믹한 연기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극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파친코>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노상현의 연기도 발군이다. 전형적인 게이 남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20대 남자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 부딪히고, 실수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물론, 재희와의 인연을 통해 비로소 대도시의 사랑법을 알게 된 이 남자의 성장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일 수 있겠냐”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흥수와 재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 보호해 주며 끝내 성장한다. 인생의 고저 속에서 누구나 힘듦을 겪기 마련. 그 순간 극 중 흥수와 재희가 이 응원의 한마디를 건넨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대사를 듣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도시를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자. 그리고 돌이켜봤을 때 이런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살았던 가장 반짝였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 보자. 그리고 말해보자. 진짜 진짜 보고 싶다고.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평점: 3.0 / 5.0
한줄평: 나답게 살았던 그 시절의 노스텔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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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다운 캐릭터가 조화를 이루다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우리에게 묵직한 사회적 함의를 던지는 이야기꾼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당시 수사 시스템의 허점을 통해 실체 없는 공포와 무력함을 그려냈고, <마더>에서는 극단적 모성애로 인한 폭주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기생충>에서는 계층 간 격차를 촘촘한 미장센과 인물 구도를 통해 묘사함으로써, 사회학을 전공한 감독 특유의 비판적 시선을 매섭게 드러냈다. 그 연장선 위에서 탄생한 신작 <미키17>은 우주라는 새로운 무대를 빌려, 우리의 현실 속 ‘계급’과 ‘정치’,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본능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영화는 우주 이주 프로그램에 참여한 미키(로버트 패틴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그는 자신이 죽을 때마다 기억과 인격을 복제해 다시 깨어나는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의 담당자로 설정되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위험천만한 프로젝트에 지원했을 뿐이지만, 반복된 죽음과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미키의 여정, 그의 연약함을 감싸는 나샤(나오미 애키)의 ‘사랑’,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을 악용하는 정치인 마셜(마크 러팔로)의 ‘욕심’이다.
[첫번째 감정] 미키의 두려움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감정은 미키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다. 지구에서 엄청난 빚을 지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그는, 결국 우주로 도망치듯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를 몰아세웠고,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실험체나 다름없는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에 덜컥 지원한다. 이때 미키가 제대로 설명도 듣지 않고 서류에 사인을 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이 두려워 도피한 곳이 하필이면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구역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미키는 이내 ‘복제’를 통해 계속해서 부활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간다. 바이러스 테스트나 우주방사선 노출 실험처럼 잔인한 방식으로 소모되는 모습에서도, 그는 겉으로는 무감각해 보인다. 몸이 망가져 죽으면 또 다른 미키가 깨어나 동일한 기억을 잇기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이던 미키에게, ‘살아있음’ 자체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이기도 하다. “기억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가?”
진짜 문제는 미키17이 ‘미키18’을 마주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미키18은 기억과 외형은 비슷하지만, 분명히 성향과 태도가 조금 달라 보이는 존재다. 그제야 미키17은 깨닫는다. 죽는 순간 자신이 ‘영원히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복제 기술이 완벽하다 생각했으나, 결국 매번 다른 개체가 나타날 뿐 ‘이전의 나’와 100% 동일할 수는 없다는 걸 체감한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는 질문을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이 던질 때, 그것은 미키가 가진 두려움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동안 답을 찾기 힘든 이 근원적 공포가, <미키17>에서 인간성을 탐색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두번째 감정] 나샤의 사랑
두 번째 감정은 미키를 헌신적으로 지켜보는 나샤의 ‘사랑’이다. 여러 차례 죽고 깨어나는 사이에서, 미키의 곁을 지키는 건 오직 나샤뿐이다. 그녀는 “죽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처럼 끔찍한 질문을 미키에게 묻지 않는다. 죽음의 상처를 굳이 후벼팔 필요 없음을,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공감 능력은 미키가 가진 두려움을 일시적으로나마 잊게 만들어주고, 시종일관 곁에서 그를 안심시킨다. 영화 초반에는 이러한 관계가 단순히 ‘연약한 남성을 돌보는 강인한 여성’ 구도로 보일 수 있지만, 곧 나샤의 매력이 훨씬 깊고 다층적임이 드러난다.
특히 나샤는 ‘미키17’과 ‘미키18’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둘 다 같은 미키임에도, 성향은 조금씩 다른 두 사람을 동등하게 받아들이고 사랑을 나눈다. 이중적 존재가 생겨난 불안한 상태에서도, “네가 누구든 사랑하고 지켜주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그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는 단지 연애 감정의 차원을 넘어, 이주 행성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생겨난 새로운 ‘존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를 배척하지 않고 소통으로 품어내는, 그런 태도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테마로 자리한다.
나샤가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이주 행성에서 만난 ‘벌레’ 같은 생명체를 지키려는 결심을 보여줄 때다. 우주정복이나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자원을 갈취하려 드는 정치인 마셜 집단과 달리, 나샤는 ‘이 생명체들도 우리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녀의 시선은 결국 ‘사랑’과 ‘공감’의 확장판이다. 미키를 받아들이듯, 우주 생명체와도 대화하며 공존하려 애쓰는 나샤의 모습에서 우리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타인(혹은 타종)을 소모하는 행태’에 대한 날 선 비판인 셈이다.
[세번째 감정] 정치인 마셜의 욕심
세 번째 감정은 마셜(마크 러팔로)이 상징하는 ‘욕심’이다. 그는 지구에서 정치적 입지가 별로였기에, 우주 이주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올라선다. 본질적으로 무능력하기에, 늘 아내(토니 콜렛)에게 모든 결정을 위임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비춰진다.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서 그는 한편으론 교묘하게 대중을 현혹하고, 다른 한편으론 미키 같은 존재를 마음껏 써먹으려 든다.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은 이주 중 만날 수 있는 위험에서 유용하게 소모될, ‘하나쯤 없어져도 괜찮은 인력’이라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흥미로운 건, 마셜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자연스레 한국의 정치 현실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지지층을 어떻게든 확보하고, ‘뭔가를 해내는 척’ 무대만 만들어 놓은 뒤, 실제로는 구체적인 청사진이나 능력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지도자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권위자에게 줄을 서고 충성을 다하는 이들은 마셜의 비위를 맞춰주며, 그의 온갖 추한 면을 뒤처리한다. 그러나 막상 이주한 행성에서 어떠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듣기 좋은 연설만 반복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몫의 이득 챙기기에만 급급한 셈이다.
결국 미키와 그 곁을 지키는 나샤, 그리고 우연히 교류하게 된 외계 생명체가 보여주는 ‘공존과 연대’야말로 마셜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봉준호 감독은 “작은 존재가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여러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기생충>이 그렇고 <설국열차>도 그랬다. 이번에도 무심코 버려졌던 미키와 외계의 작은 벌레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가 정치적 거인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우리 사회 속 ‘무능한 리더십’이 불러올 참담한 결과를 예고하는 현실 풍자처럼 보인다.
<미키17>이 담은 봉준호 월드
한편, 마셜과 미키17의 대립을 ‘권력자와 청년 노동자’의 대립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마셜은 지구라는 기존 체제에서 기득권을 꽉 잡고 있던 권력자가 우주로 무대를 옮겨 권위를 재차 행사하는 인물이다. 반면, 빚 때문에 스스로 ‘소모품’ 역할을 떠맡은 미키17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기꺼이 위험한 임무를 감수하는 청년 노동자에 가깝다. 그들은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마셜에게 미키17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착취 구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고용시장과 권력자-피고용인의 위계 질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봉준호 감독은 어김없이 약자들의 연대와 소통을 통해 부조리를 깨부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미키17>은 반복되는 죽음과 복제라는 소재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진다. 이 질문은 동시대의 다양한 사회문제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흥미로운 건, 지구에서 이 우주로 떠난 이들은 대부분 생존의 위협이나 경제적 압박, 혹은 정치적 이유로 도피해 온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지구를 버리고 떠나온 자들의 새로운 세계에서, 과연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이란, 어디에서건 같은 고민과 탐욕, 그리고 소외 문제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영화가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결코 비관론으로 끝맺지 않는다. 미키와 나샤, 그리고 벌레라 불리는 생명체가 맺어가는 조화로운 관계는 ‘어울림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즉, 서로 다른 존재를 존중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태도가 바로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마셜처럼 권력을 쥔 자들이 제시하는 허황된 미래가 아닌, 작고 연약해 보이는 주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협력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주목할 만하다. 로버트 패틴슨은 겁에 질려 우주로 피난 온 미키의 불안하고 나약한 면을 능숙하게 표현하면서도, 복제체를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절묘한 차이를 두어 미키17과 미키18을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나오미 애키의 나샤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내, 영화 후반부 ‘복수의 미키’를 모두 감싸 안는 장면에서는 강렬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마크 러팔로와 토니 콜렛 커플의 괴이하고 익살스러운 정치 드라마 역시 봉준호 특유의 블랙코미디 감각을 살려내며, 관객들에게 씁쓸한 웃음을 선사한다.
연출 면에서 봉준호 감독은 우주라는 넓은 무대 안에 좁은 계급적 공간을 다시 구축해냈다. 탁월한 미장센과 대사, 그리고 캐릭터 간의 긴장감으로 <설국열차>와 비슷한 계급 구조를 만들면서도, 이번에는 스스로 우주로 나아가는 세계관을 선보인다. 행성 밖 생명체와의 교류라는 설정이 상징하는 것은, 결국 인류가 고집해왔던 ‘자기중심성’을 깨부수라는 요청처럼 보인다.
결국 <미키17>은 관객들에게 명쾌한 답을 내리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다. 나 자신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과연 ‘죽음’ 자체인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인가? 그리고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권력을 쥔 자들의 배신과 무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모든 물음은 비단 우주 이주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분명하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적 메시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우주판 기생충’이라 불릴 만한 신선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흥미로운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행성에서 벌어지는 계급·정치·사랑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죽음과 복제라는 철학적 소재가 어떻게 감각적인 장르 영화로 변주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미키17>을 꼭 극장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분명 그 안에서,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마주해야 할 근원적 질문들이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꿈꿔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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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에서 227일 동안 호랑이와 동거한 남자 #6
환몽(幻夢) CINE 리뷰 6화_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2012)‘ 해석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마음에 드나요?”
(“So which story do you prefer?”)3.14159265358979...
원주율(Pi, π)만큼이나 무한한 이 영화의 해석!
이 영화가 질문하는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안 감독 외계인설?!
- 하나의 사건, 두 개의 이야기
- 예민한 당신을 위해 준비한 교묘한 복선
-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마음에 드나요?”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환줄평 / 몽줄평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라이프오브파이 #영화추천 #환몽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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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가 유령이 된다면 어떨까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작년 말 개봉한 루니 마라와 케이시 애플랙 주연의 '고스트 스토리' 보셨나요?
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딘의 인스타그램을 시작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기형도의 '빈집'을 연관시켜 소개해드립니다.
아픈 이별을 겪는 우리는 모두 유령입니다.
// 왓챠에서 '진상명' 팔로우 하시면 빠른 평 업데이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고스트스토리 #니체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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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엘리트들: 못다한 이야기> 티저 예고편
[2021년 6월, 넷플릭스 공개]
《엘리트들》 시즌 4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봐야 할 게 이렇게나 많답니다! 《엘리트들: 못다 한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구스만 + 카예 + 레베
두 번째 이야기: 나디아 + 구스만
세 번째 이야기: 오마르 + 안데르 + 알렉시스
네 번째 이야기: 카를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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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블러드 레드 스카이>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의문의 병을 앓는 여자.
치료를 위해 어린 아들가 밤 비행기에 오른다.
이륙 후, 비행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당하자 여인은 생존 싸움을 시작한다.
그간 힘겹게 숨겨온 어둠의 힘을 뿜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