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5-06 19:54:59
[JIFF 데일리]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을 이야기
영화 <뒤바뀐 신부들>
SYNOPSIS.
2001년 인도의 어느 시골을 배경으로 한 <뒤바뀐 신부들>은 같은 기차에서 길을 잃은 두 어린 신부의 모험을 그린다.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사건들과 예상치 못한 일들을 통해 두 사람은 자신과 여성성, 인생 자체에 대해 엄청난 발견을 한다.
PROGRAM NOTE.
인도의 국민 배우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아미르 칸이 제작하여 화제를 모은 <뒤바뀐 신부들>은 2001년, 인도의 시골 어딘가를 배경으로 한 유쾌한 가족 코미디이다. 자야와 풀, 두 여인은 신부가 된 날 밤, 빨간 결혼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남편을 따라 같은 기차에 몸을 싣고 각자의 시댁으로 향한다. 풀의 남편 디팍은 한밤중의 혼잡한 기차에서 실수로 자야를 깨워 자신의 마을로 데려가지만, 집에 도착해서야 실수를 알게 되고, 반대로 자야의 남편은 풀과 기차에서 내리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풀을 기차역에 버려둔 채 사라진다. 이제 두 여인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나야 한다. 좌충우돌 신부를 찾아 나서는 디팍과 덩달아 애가 타는 그의 가족을 오히려 위로하는, 자아실현을 위해 나아가려는 지혜로운 현대 인도 여성의 모습인 자야와, 수줍은 성격이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풀의 성격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전진수)

돌이켜보면 나의 영화제 도장 깨기는 "인도 영화 찾아 삼만리"로 시작되었다. 넷플릭스에 있는 것도 여러 차례 시도해 봤지만 별로인 게 너무 많았다. 춤과 노래가 반복되는 거야 뮤지컬 영화라 생각하면 된다 쳐도, 개연성을 버리면서까지 흥겨우면 그만인 식의 전개 혹은 맥락을 끊고 들어오는 힌두 신 찬양 장면이 너무 재미없었다. 그런 내 눈이 들어온 것이 바로... <세 얼간이> 배우 아미르 칸이다.
그는 우리에게 <세 얼간이>의 주연배우로 가장 잘 알려졌지만, 자기 이름 내건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영화 제작자이기도 하고,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 모든 작업의 공통점은, 맥락 없고 개연성 없는 양산형 엔터테인먼트를 하지 않는다는 것. 아미르 칸 프로뎍션 작품들은 모두 여성 인권이나 아동 보호 등 인도 사회에 묵직하게 드리워진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상업영화들이다. <당갈> 과 <시크릿 슈퍼스타>는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흥행도 해냈고, 국내에도 개봉했다.
<뒤바뀐 신부들>은 <당갈>과 <시크릿 슈퍼스타>를 연출한 키란 라오 감독의 신작이며, 여기에도 아미르 칸은 제작자로 참여했다. <당갈>과 <시크릿 슈퍼스타>도 좋아했지만, 이번 작품을 보고는 더욱 만족스러웠다. 전작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편하게 어필하는 영화다. 웃으면서 유쾌하고 편하게 볼 수 있고, 실제로 전주국제영화제 현장 반응도 너무 좋았다. 인도 향신료 '마살라' 맛이 이렇게 김치처럼 입에 착 붙어도 돼요?
참고로 이 작품은 해외 넷플릭스에는 오픈되었는데, 국내 계정으로 접속하면 나오지 않는다. 향후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넷플릭스에 서서히 오픈될지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 <세 얼간이>의 뒤를 이을 만한 인도 영화로 기억될 만한 작품이므로. 그 날이 어서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이 영화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기보다는 감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써 보기로 한다.

결혼: 연애vs중매 너머 더 다양한 이야기로
인도에서 결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연애결혼(love marriage)와 중매결혼(arranged marriage)이다. 그건 만국 공통 아니냐고? 그렇긴 하지. 하지만 중매 혹은 선자리라는 말이 소개팅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가는 우리 나라만 보아도, 타인의 역할은 '소개' 선으로 축소된다. 결혼을 전제하고 만나더라도, 실제 그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그 시간을 아주 빠르게 마치는 커플도 있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사진 한 장 받고 결혼하는 시대는 아니다.
인도에서는 여전히 가능하다. 특히 이 영화의 배경처럼 시골인 경우, 상대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채로 맺어지는 결혼이 가능하다. 비슷비슷한 아웃핏의 붉은색 웨딩 사리를 입고 두꺼운 베일로 얼굴을 가린 신부가 뒤바뀐다는 이 영화의 시놉시스 또한, 이러한 배경 위에서 성립 가능하다.

애초에 인도에서 결혼이란 두 사람의 연애 감정 그 이상의 것들이 많이 작용한다. 이 또한 만국 공통이겠지만 인도는 더더욱 그렇다. 워낙 다이나믹한 국가다 보니, 다양한 언어와 종교와 '가문' 수준으로 세분화된 카스트 등 다수의 역학 관계가 존재한다. 도시에서는 차라리 '돈'을 위시해 심플해진 현대의 '계급'이 작용하지만, 마찬가지로 이러한 조건들 또한 시골에서 더욱 강력하게 기능한다.
참고로 그 심플해진 현대의 기준들 또한 새로운 형태로 세분화되는데, 넷플릭스의 <매치메이킹 인디아: 중매를 부탁해>를 보면 흥미로운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 도시의 부자들은 저런 식으로 중매 결혼을 하는군, 이라는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시리즈는 '밥 친구'로 좋으니 추천한다.

문제 해결: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다
많은 인도 영화가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보장된 해피 엔딩"이다. 춤추고 노래하며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문제가 뚝딱 해결되고 또 다 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끝나는 것이 전통적인 발리우드 영화의 인상이다. 발리우드 컬러를 걷어낸 작품들도 국내에 조금씩 더 소개되고 있지만, 그게 꼭 인도 영화의 '발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인도 영화도 다른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그 발전이 꼭 국제적 통용의 동의어는 아니라는 뜻이다. '마살라'만의 맛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영화는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보장된 해피 엔딩의 맛 안에서, 인도 사회의 이러저러한 면면을 밉지 않게 담는다. 인맥에 좌지우지되지만 그나마도 좀 어설픈 정치인의 모습은, 그 나름대로 또 좀 든든하다. 많은 문제에 뇌물과 주먹을 개입시키는 인도 경찰의 모습 사이사이 또 그 나름대로 훌륭한 역량들이 돋보인다. 정석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는데 어찌저찌 에둘러 가다 보면 뭐가 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고들 한다. 유능하고 발빠른 행정 처리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대체 왜 공공기관의 정한 프로세스를 안내받지 못하는지, 혹은 안내 받은 대로 다 했는데 왜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인도는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도가 게으르고 무능한 나라인 것은 아니다. 그냥 인도에는 인도식 방법이 있는 것이다. 수천 년째 얽히고설킨 이 뿌리를 현대 합리주의가 손쉽게 걷어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냥 거기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그리고 적절히 따박따박 따지며 화낼 타이밍과, 여성이라면 전략적으로 눈물을 뿌릴 타이밍을 파악하여 이 도전에 응전하는 수밖에.)

여성: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한 장점 중 하나는 아주 다양한 여성들이 나오며, 이 중 어느 한쪽만 옳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집 주소도 남편의 이름도 입밖에 내지 못할 사람으로, 단지 집안일만 하고 아이만 낳는 사람으로 여성을 기르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교육도 받고 일해서 돈도 벌고 아이도 낳고 아무튼 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이다. <시크릿 슈퍼스타>에서 눈물 뚝뚝 흘리는 어린 신부의 입으로 재현되었던 이 메시지는, 영화를 통틀어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선택으로 더 은은하지만 강하게 발산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농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2001년 마디아프라데쉬(Madhya Pradesh)의 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아직 '유기농 농법(organic farming)'이 널리 알려지기 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때부터 이미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는 대신 보다 안전하고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방법들을 고민하고자 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이 향하는 데라둔이라는 도시는 반다나 시바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반다나 시바는 국내에도 <오늘부터의 세계> 같은 책이나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시리즈 등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환경운동가이다. 오래 전 삼림파괴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고 버티는 '칩코 운동'을 조직하였고, (주로 서구권의) 거대 농업회사들이 종자를 통해 식량주권을 침해하는 상황 속에서 지역의 토종을 잘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그의 주장은 단지 세계화에 맞선 지역 주권의 측면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궤를 같이 한다. 발전의 비용을 선진국이 개도국에게 전가하는 동시에, 여성에게도 착취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성이 농촌에서 로컬한 종자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 삶을 긍정한다. 이러한 마음은 나브다니야(Navdanya)라는 단체 설립으로 이어졌는데, 영화 속 인물이 훗날 이 단체에서 일하게 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에코페미니즘, 지구 민주주의, 다양성 강조 등으로 정리될 수 있는 그의 사상은 지금 같은 시대에 귀를 기울여봄직하다.

그냥 봐도 재미있는 영화지만, 인도의 현실과 접목하여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흥겨운 마살라 맛 너머 인도라는 나라의 변화상도, 그 사회를 담은 영화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2024. 05. 04. 16:3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상영코드 339)
2024. 05. 05. 2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상영코드 462)
2024. 05. 09. 11:00 CGV전주고사 1관 (상영코드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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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씨네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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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리뷰 - 후반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스포일러 주의!
<서브스턴스>는 한때 할리우드 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하며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엘리자베스는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고, 자신의 처지를 바꾸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 서브스턴스와 접촉하고 만다. 그렇게 약물에 의해 '수'라는 또 다른 나 자신이 탄생한다. 7일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수의 몸으로 지낼 수 있게 된 엘리자베스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떠오르는 스타가 되고 자신의 전성기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큰 명성과 꿈을 이루기 위해 수로서 더 살아가고 싶었던 엘리자베스는 결국 7일의 규칙을 어기고,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결국 자신의 몸이 뒤틀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욕망을 놔버릴 수 없었던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를 더욱 사용하며 끝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린 코랄리 파르쟈 감독의 바디 호러 영화다.
미쳤다. 이제는 너무 쉽게 남용되어 흔하디흔한 단어가 됐지만 <서브스턴스>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수식어가 없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미쳤고 말 그대로 끝까지 간다. 어느 정도의 시점에 와서는 적절히 타협을 볼법한데도 <서브스턴스>는 이 이야기가 향할 수 있는 가장 극단의 순간까지 망설임 없이 질주한다. 끔찍한 호러 영화라고 불리는 <랑종>, <미드소마> 같은 영화들조차 이 정도의 극단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과감한 시도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맥락으로 해당 패기가 최고 절정으로 치닫는 후반부를 집중적으로 보자. 수는 자신의 치아와 손톱, 심지어 귀까지 떨어질 만큼 신체에 한계가 와 있는 상태다. 그때 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남은 서브스턴스를 모조리 투하하여 또 다른 자신을 만들기로. 그렇게 하면 영화의 초반처럼 등을 찢고 미인의 내가 당연히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거울을 통해서 보게 된 건 마치 사람 네 다섯 명을 찰흙처럼 뭉쳐놓은 듯한 처참한 몰골의 괴물이었다. (자막으로는 이 괴물을 가리켜 '엘리자수'라고 나온다.) 여기서 감독은 선언을 한 건다. 남은 20분은 그야말로 끝까지 갈 거라고.
<서브스턴스>가 유독 타 고어 영화보다 더 끔찍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지 고어의 정도가 지나치게 과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관객이 오랜 시간을 걸쳐 따라왔던 주인공이 최악의 선택들만 연이어 한 채 끝내 모든 것이 망가져버린 처참한 파국을 맞이했다는 것에서 오는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말까지 보고 나면 끔찍함과 동시에 안타까운 감정도 몰려온다. 특히 엘라자수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관중들과 도망가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엘리자수의 모습은 이러한 감정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상반된 감정이 잘 느껴졌다면 그건 이 영화의 각본이 굉장히 치밀하게 설계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브스턴스>는 주인공이 예정된 비극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관객의 정신까지 함께 괴롭힌다. 뒤이어 무대 위에서 가슴을 토해내고, 관중들을 향해 피를 뿜어내는 클라이맥스는 정말이지 극단의 극단까지 간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의 각본의 완성도와 패기에 박수를 치다가도 여기에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서브스턴스>는 외모라는 외형적인 특성 하나로 개인의 모든 가치를 재단하는 사회의 시선과 그런 시선 때문에 외형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공포를 다루는 영화다. 이것만 봐도 영화의 주제의식이 외모지상주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의식이 중반부까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하게 드러나지만, 후반부에 돌입하면 자극적인 이미지들이 필요 이상으로 범람하는 바람에 정작 주제의식이 뒷전으로 밀려나버리는 주객전도를 일으킨다. 물론 그 자극적인 이미지들 안에서도 각각의 의미가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괴물이 된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장면이나 엘리자수가 뿜은 피를 관중들이 맞는 장면은 결국 이 모든 일의 책임이 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런 부분까지 생각해도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고어의 정도를 지나치게 높였다는 혐의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끔찍한 장면과 주제가 함께 잘 붙어서 따라왔다면 후반부는 주제를 느낄 새도 없이 온갖 구역질 나는 이미지들이 총출동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제의식이 흐릿해지고 피로감만 남는다.
그렇다면 후반부가 이 영화의 오점인 걸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단점의 영역도 있지만 장점의 영역이 더 크다. 만약 이렇게나 끔찍한 후반부가 없었다면 그냥 적당히 재밌는 장르 영화 정도로 밖에 기억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파격적인 후반부 덕분에 예측 가능한 전개와 수천 번은 우려먹은 주제의식이 독창성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결말의 처리가 좋았다. 박살난 엘리자수의 몸에서 튀어나온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보도블록 위로 힘겹게 기어간다. 그리고 그 위에서 숨을 거두며 블록 위로 핏자국을 남긴다. 이 장면은 <서브스턴스>의 오프닝, 행인 중 한 명이 엘리자베스의 블록 위로 토스트를 떨어트려 블록이 케첩 범벅이 되는 장면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오프닝에서 행인은 케첩을 지우기 위해 블록을 대충 밟고 떠난다. 그러나 엔딩에서 핏자국을 청소하려는 청소부는 청소만 깔끔히 하고 블록은 밟지 않는다. 이러한 결말은 감독이 캐릭터에게 하는 최소한의 존중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영화 <조커: 폴리 아 되>가 주인공에 대한 존중 없이 자신의 메시지를 위해 마구잡이로 학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영화의 결말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서브스턴스>는 바디 호러 장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극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명확한 성취를 남긴 작품이다. 140분의 긴 러닝타임을 지나고도 이 정도의 광기를 뿜어내는 영화는 흔치 않다. 물론 끔찍한 모습이 된 주인공이 길거리를 활보해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편의적인 구간이 다소 의아스럽고, 갑자기 성룡이 되는 수의 피지컬처럼 설명되지 못한 구간도 존재한다. 서로 간의 대비를 만들기 위해 엘리자베스의 축 처진 육체와 수의 탄탄한 육체를 클로즈업으로 연달아 보여주는데 이러한 촬영이 정작 영화가 비판하는 성 상품화에 가깝다는 의견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의 본 모습을 최대한 감추고 외면만 과하게 드러내는 SNS 시대에 아주 시의적절한 영화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렇게 의미도 있는데 정신 나간 재미와 폭주하는 클라이맥스까지 있는, 괴물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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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은 좋지만, 이야기는 여전히 아쉬운...
세상을 이끌어가는 건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앞에 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을 만들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일반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가진 막강한 힘과 자본은 일반인들이 하는 문제제기나 제안을 거부하고 묻어두려 하지만 그런 문제가 계속 지속되면 한 순간에 폭발해버리기도 한다. 그때는 누군가가 영웅처럼 나타난다. 그건 사회운동가일 수도 있고 기업인일 수도 있다.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항하는 일반인들은 개개인의 힘은 없지만 각자가 가진 힘을 합하면 권력자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럼 어떤 정의가 맞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명확히 알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영웅이 등장했을 때, 그 인물이 정말 옳은 정의를 찾아올 수 있는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고 어떤 영웅은 좀 더 과격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반면, 어떤 영웅들은 사회로 합의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그건 개개인의 특성일 수 있지만 그 영웅이 속한 사회에서는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바라는 영웅의 특성도 다를 수밖에 없다.
DC의 안티 히어로 <블랙 아담>
영화 <블랙 아담>에는 다소 어두운 영웅이 등장한다. 블랙 아담(드웨인 존슨)은 아주 오래전 칸다크라는 가상의 국가에 노예로 살다가 어떤 기회에 슈퍼 파워를 얻게 된 인물이다. 그는 갑자기 얻은 힘을 복수에 활용하면서 많은 사람을 살상하게 되고 결국 땅속에 영원히 묻혀 잠드는 저주를 받게 된다. 그러다 아드리아나(사라 샤이)에 주문에 의해 깨어나게 되고 다시 등장한 그를 막으려고 접근하는 모두를 죽여버린다. 그가 아무런 판단 없이 하는 그 행위는 살인이다. 거기에는 아무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곧바로 죽여버리는 행위가 수차례 이어지고, 그건 아주 오래전에 행했던 사적 복수와 연결되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칸다크라는 국가는 현재 시점에도 갱단의 통제를 받는 여전히 안정되어 있지 않은 국가다. 갱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반인들을 통제하고 괴롭힌다. 영화 속 아드리아나는 암울한 칸다크의 자유를 위해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알 수 없는 힘을 지닌 고대 유물을 찾아다니는데, 그 유물은 악마가 만든 것으로 블랙 아담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를 불러낼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드리아나는 그 유물이 칸다크를 구할 거라 믿지만 그 과정에서 블랙 아담이 깨어나면서 그가 원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상황이 전개된다.
영화 초반에 아드리아나가 블랙 아담을 깨우면서 곧바로 이어지는 살육 장면들은 관객이 누구에게 감정 이입하면서 봐야 할지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악당의 모습에 가까운 영웅에게 바로 감정이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힘이 없는 아드리아나를 응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블랙 아담은 다행히 갱단들만 죽여나가지만 그가 일반인들이나 아드리아나의 동료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계속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블랙 아담과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액션 대결
블랙 아담이 본격적으로 칸다크 도심으로 오면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라는 영웅 집단이 칸다크로 파견된다. 갑자기 등장한 존재인 블랙 아담을 막기 위해서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에 속한 영웅들은 호크맨(알디스 호지), 닥터 페이트(피어스 브로스넌), 사이클론(퀸테사 스윈델), 아톰(노아 센티네오)이다. 이들은 영웅으로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블랙 아담과 전투를 벌인다. 이들의 도심 전투는 꽤 볼만하다. 하지만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에게는 역시나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진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측면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흥미롭게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혼란스러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블랙 아담이 등장하면서 벌인 살육전과 우리가 잘 모르는 영웅들이 격투를 벌이는 모습이 영화의 중반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그 혼란스러움은 계속 해결되지 않고 남는다. 영화 <블랙 아담>에서 아쉬운 부분은 그렇게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계속 등장함에도 이야기에서는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아 답답함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답답함은 빠른 전개와 액션으로 어느 정도 가려지지만 그것도 한계가 느껴진다.
영화 속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블랙 아담과 대치하면서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영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영웅들은 블랙 아담을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살인자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 판단 없이 바로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블랙 아담은 자신이 죽이는 인물들은 이미 도적적 흠결이 있기 때문에 바로 죽여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다소 과격한 블랙 아담의 생각은 영화의 거의 말미까지 계속 유지되면서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낸다. 안티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블랙 아담이라는 영웅을 DC코믹스에서는 그나마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이다. 적어도 소니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베놈> 시리즈나 <모비우스> 같은 안티 히어로 영화들보다는 좀 더 나은 완성도를 보인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샤잠>의 스핀오프라고도 볼 수 있는 <블랙 아담>은 <샤잠>에 비해서는 유치함을 덜어내고 심각한 분위기를 더 넣었다. 액션 장면들은 꽤 타격감이 있는데, 특히나 닥터 페이트가 보여주는 분신 액션 장면들이 꽤 훌륭하게 담겼다. 그 외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그렇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주인공인 블랙 아담의 액션도 과거 <맨 오브 스틸>에서 보여줬던 강력한 액션 장면들을 다시 활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향후 DC코믹스에서 만들고 있는 유니버스 안에서 블랙 아담과 슈퍼맨의 대결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블랙 아담>은 그런 다양한 계산 하에 만들어진 공산품 같은 액션 히어로 영화다.
적당한 완성도로 만들어진 공산품 같은 영화
영화를 연출한 자움 콜렛 세라 감독은 <하우스 오브 왁스>, <오펀: 천사의 비밀> 같은 공포 영화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언노운>, <논스톱>, <런 올 나이트>, <커뮤터> 같은 작은 규모의 액션 영화 연출에도 재능을 보였다. 이 영화에서 블랙 아담 역을 맡은 드웨인 존슨과 <정글 크루즈>를 연출하면서 보다 큰 규모의 영화를 연출하게 되었고 <블랙 아담>이라는 큰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선택되었다.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지만 DC코믹스에서 하고자 하는 것들을 성실히 영화 안에 녹여냈기 때문에 향후 DC 유니버스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드웨인 존슨은 이번 출연으로 히어로 장르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영화 안에서도 큰 근육의 우람한 몸을 이용한 액션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배우로서 좋은 이미지를 쌓아온 그가 안티 히어로가 된 것이 영화에 신뢰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블랙 아담은 영화에서 큰 힘을 가지게 되었고, 칸다크 라는 국가의 수호자로 거듭난다. 그가 행하는 방법은 정의롭지 못하지만 그가 하려는 일은 정의로운 일이다. 그의 방식대로 행하는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인가는 아마도 향후 DC코믹스의 영화들에서 계속 다루어질 문제인 것 같다. 이 영화의 말미에 존재하는 쿠키 영상 한 개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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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영국 첩보국 일명 '서커스'의 국장, 컨트롤은 부하 짐 프리도에게 밀명을 내린다. 서커스 안에 숨어있는 러시아 스파이 '두더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헝가리 장군을 만나보라는 것. 하지만 짐이 만난 장군은 일종의 함정이었고, 그는 살해된다. 그 후, 사건에 책임을 지고, 컨트롤과 함께 물러난 조지 스마일리는 러시아의 첩보국장 카를라가 숨겨놓았다고 전설처럼 언급되곤 했지만 모두가 믿지 않았던 두더지 잡기 작전에 돌입한다. 그러던 와중에 변절했다고 알려져 있던 리키 타르가 그를 찾아와 자신에게 벌어졌던 자초지종을 토로하고, 자신의 보고를 묵살한 서커스를 의심하는 발언을 그에게 쏟아낸다. 이 때, 조지는 리키 타르의 증언을 토대로 서커스의 일원 4명 중에서 누가 스파이일까 고민하게 되는데, 과연 그는 러시아에서 보낸 스파이를 깔끔하게 잡아낼 수 있을까?
1. 액션 신이 없어도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
"아무도 믿지 말게, 짐. 특히 수뇌부 사람들은 말이야."
짐 프리도에게 내려진 컨트롤의 밀명은 서커스 멤버 중에서 두더지가 있으니, 그를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컨트롤은 짐에게 두더지가 앨러라인일 경우, 암호명으로 팅커, 헤이든일 경우에는 테일러, 블랜드일 경우, 솔져, 에스터 헤스일 경우, 푸어맨으로 지정해 주었다. 그나마 컨트롤이 신뢰하는 서커스 멤버였던 것으로 보이는 스마일리는 자신의 동료를 의심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은밀히 진행한다. 단 한 번의 무력적인 충돌 없이. 그 결과, 그저 남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 스파이를 찾아낸다.
흔히 첩보 영화라면 시원한 액션을 기대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액션 신이 없다. 하지만 충분히 긴장감이 있다. 특히, 스마일리를 돕고 있는 피터 길럼이 리키가 보고하던 날의 업무 일지를 빼돌려 오라는 지시를 행하는 장면에서의 배우는 문서를 유출하는 자신을 보호해야만 하는 그의 급박함과 침착함을 잘 표현해내었다고 생각하며, 그런 연기에 긴장감 넘치는 빠른 템포의 음악을 덧입히니, 급박한 상황을 잘 표현하는 음악과 그의 침착한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 멋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제이슨 본, 007시리즈처럼 요원들의 멋있는 액션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것을 타겟으로 잡지 않았다. 스마일리는 사람을 잘 이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인 캐릭터이다. 무표정 속에서 그는 동료를 수없이 의심하고, 정보원들이 물어다주는 정보도 철저히 그만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그를 보고 있으면 첩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액션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만 같다.
2. 변절자를 대하는 스마일리의 모습
"전 선택해야만 했어요. 도덕적 선택 못지 않은 미학적 선택이었죠. 하지만 전 그의 수하가 아닙니다."
영화 말미에 스파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스마일리가 동료들을 추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자신이 러시아 첩보국의 스파이가 된 것은 미학적인 이유였다는 대사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 미학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혹시 이미 스파이라고 탄로난 상황에 썩을대로 썩은 서방 세계를 떠나 뜨고 있는 다른 국가의 스파이가 되는 것이 폼나지 않느냐 라는 것일까. 입을 삐죽거리며, 자신의 폼생폼사를 논하는 그를 보니, 조금 찌질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관객의 입장에서 칙칙한 필터로 그려진 한 인간이 배신으로 몰락을 바라볼 때, 모호하지만 강렬한 감정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호함이 짠함일 수도 있고, 경멸일 수도 있고, 오묘한 감정의 총합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동료를 배신한 자가 이유랍시고 한 말은 그저 추해 보일 뿐이었는데, 그 추함은 아마도 자신의 변절을 멋있음으로 포장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마일리의 추궁은 감정적이지 않았다. 추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호통을 치면서 추궁을 하고 있긴 하지만 크게 표정을 일그러트린다거나 동료의 배신에 눈물 흘리며 감정적 호소를 하지 않는다. '네가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가 있어' 같은 신파적인 요소가 없다. 그저 건조하지만 힘있는 말투, 서늘한 눈빛으로 그저 질문할 뿐이다. 정보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 굳이 화를 내지 않고도 정보로만 승부를 보고, 차분히 취조하는 그의 태도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두더지의 손아귀에
"실패와 추문만 난무할 뿐 쓸만한 요원이 없어요"
두더지가 잡혔지만 모두가 공범이었고, 결백함을 주장하기엔 너무 멀리와 있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충성한다는 명분 아래 정보를 유출시키고 있었다. 영국에는 믿을 만한 정보원이 없다면서 자국 디스를 했지만 결국 그들도 변절까지는 아니지만 국가의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두더지의 농간에 놀아나는 요원으로서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또한, 그들은 두더지가 짜놓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짐 프리도에게 조용히 살 것을 종용하고, 러시아 첩보원에 대해 아는 사람들을 해고시켜가면서 서커스를 곪게 만들었다. 그들의 의도는 영국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겠지만 말이다. 충성심을 역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다니, 카를라라는 캐릭터는 단 한 번의 얼굴 등장도 없이, 참 존재감이 크다.
그들의 충성심은 영화 막판에 두더지의 정체를 알게 되고, 두더지의 소재지에서 나오며 스마일리와 마주쳤을 때, 그의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는 한 실패자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고, 또다른 실패자는 스마일리의 추궁 장면에서 그가 울먹일 때, 조금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변절자가 아니라 속아넘어간 사람들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잘난 척들을 했지만 결국 스파이의 농간에 놀아난 사람들임이 탄로나버린, 작전에 실패한 요원들의 말로를 보니, 첩보 세계의 냉정함이 보였고, 첩보원들은 참 치열하고, 치밀해야 함을 느꼈다. 스마일리의 무표정하고, 치밀한 일처리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인간으로서 동정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인간적인 이해보다는 철저한 요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이기에 깊은 인간적 이해는 그만두도록 하자.
4. 총평
한국에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보고, '공작'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 정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첩보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액션을 위한 좋은 몸이 아니라 눈치와 머리 싸움이라는 것도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라는 점이 비슷하다. 공작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내부에 숨어있는 적을 색출해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첩보 세계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이 두 영화를 추천한다.
이런 영화들을 볼 때면, 애국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애국은 다른 이들에게 변절일 수도 있는 첨예한 단어이기 때문일까.
※ 해당 영화는 Netflix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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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핑크빛으로 만드는 브라운 베어
늦은 밤 뜨근한 방바닥에 앉아, 소파에 비스듬히 어깨를 기대고 따듯한 차를 한잔 끓여 손에 잡고 컴퓨터를 켠다.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스토리를 따라가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편안하게 아는(!) 이야기를 열어 아름다운 장면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날도 있다.
세상에 새로운 영화, 못 본 영화가 이렇게나 많은데 같은 영화를 수 십 번 보는게 지겹지도 않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N차 관람 마니아들은 알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는 볼 때마다 행복하단걸. 그행복한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봤던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한다는 걸. 나의 수많은 N차 관람 영화 리스트들 중에도 특히나 좋아하는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 모두 눈에 담아 두고 싶은 사랑스러운 영화 <패딩턴2>이다.
영화 패딩턴은 영국의 국민동화 <패딩턴 베어>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1편이 가족을 잃은 꼬마곰이 페루에서 영국까지 홀로 오게 되면서 런던에서 브라운 가족을 만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그렸다면 나의 페이보릿 <패딩턴 2>는 런던 생활 3년차 브라운 가족으로 지내는 패딩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패딩턴은 자신을 구해주고, 길러주었지만 지금은 혼자 남게 된 루시 숙모의 생일에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다. 바로 런던의 12명소를 소개하는 팝업북 ! 하지만 이 책은 패딩턴이 구입하기에는 비싼 가격이었고, 패딩턴은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은다. 이제 거의 다 돈을 모았는데, 누군가 가게에 침입해 팝업북을 훔치는 것을 발견한다. 패딩턴은 쫒아가지만 도둑은 사라졌고 현장에 있던 패딩턴은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되고 만다.
하지만 패딩턴은 무시무시한 감옥생활마저 핑크빛으로(!) 또 행복하게 바꿀 수 있는 존재다. 사람들의 장점을 알아봐주고 기운을 북돋을 줄 아는 패딩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온기가 가득해진다. 패딩턴이기에 브라운 가족도, 교도소의 새 친구들도 패딩턴을 위해 팝업북 진범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 돕게 된다.
사람의 말을 하는 작은 곰 패딩턴 만큼 사랑스러운 이 영화의 매력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있는 동화적인 세계관이다. 영국 최고층 건물에 근무하는 미스터 브라운이 등장하면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아닌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고속철이 있는 시대지만 조나단 브라운은 증기기관차 마니아이며, 주디 브라운은 오래된 인쇄기계를 찾아 신문을 만든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며,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 묻어 있다. 끝도 없이 넓은 세계관을 가진 해리포터, 나니아연대기, 반지의 제왕과는 다른 귀여운 현실형 판타지 <패딩턴 2>의 또다른 주인공이 바로 ‘런던’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12명소가 소개된 팝업북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 되고 있어,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런던에 가고 싶어진다. 루시숙모에게 꼭 런던을 보여 주고 싶었던 패딩턴을 이해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귀여운 장면은 고작 작은 빨간 양말 하나가 전체 죄수복을 핑크로 만든 것이었는데, 패딩턴이 바로 빨간 양말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지만 주변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존재.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내 마음도 핑크빛으로 가득 차 행복해진다. 마음에 작은 핑크빛이 필요할 때 꺼내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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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2차대전 독일군에 의해 고립된 연합군 병사들의 최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전쟁영화 덩케르크(2017)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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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본인 출연, 제리> 메인 예고편
부국제 화제작 〈본인 출연,제리〉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 이 이야기는 실화이자, 당사자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기한 작품이다. 40년 전,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대만에서 미국으로 온 평범한 아저씨 '제리'. 은퇴 후 플로리다에서 지내던 '제리'는 어느 날 중국 본토 경찰의 전화를 받고, 그가 대규모 국제 돈세탁 사건의 주요 용의자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 일로 중국으로 송환되어 체포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은 '제리'는 혐의를 벗기 위해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경찰 임무에 뛰어드는데... 몇 주 동안 지속되는 고된 임무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 과연 '제리'는 임무를 완수하고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본인 출연,제리〉 11월 13일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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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애틀랜타 실종과 살인> 공식 예고편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애틀랜타에서 28명의 흑인 아이들이 살해 당한다. 애틀랜타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지만 별 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다. 그러다 웨인 윌리엄스라는 23세의 흑인 청년이 용의자로 체포되며 수사의 흐름이 급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