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5-03 08:36:48
[JIFF 데일리] 낙인 찍힌 삶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다큐 두 편
〈거리의 소년 사니〉, 〈데이비 스트리트의 창녀들〉

*〈거리의 소년 사니〉
국제경쟁/다큐멘터리

〈거리의 소년 사니〉는 노동계급 남성성이 어떤 길을 걷는지에 관한 놀랍도록 흥미롭고 흡인력 강한 다큐멘터리다. 두 감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 소년을 12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8살 소년 사니는 거침이 없다. 그와 친구들은 “언젠가 경찰에 체포될 거예요”라는 말을 일상적 농담으로 주고받는다. 머저리, 밑바닥 인생, 부랑자, 쓸모없는 거리의 아이들……. 사니와 그 친구들을 부르는 말은 여럿이지만 이들이 내포하는 의미는 한결같다. 지독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결국 사회에 해만 끼치는 위험한 존재로 성장하리라는 것. 영화는 이 자기 충족적 예언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그 허구적 빈약함을 폭로한다.
사니는 늘 ‘강함’을 열망한다. 영화에는 그가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니의 일상을 보면 그에게 ‘강함’은 ‘거칢’의 다른 이름인 듯하다.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며 위험천만한 주행을 일삼고, 도무지 ‘장난’으로 보기 힘든 장난을 일삼으며, 학교 교육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사니와 친구들. 그러나 청소년이 된 사니 무리가 털어놓듯 그들을 강해 보이게 해주는 ‘나쁜 짓’의 의미는 ‘어린아이의 환상’, ‘어른이 되기 싫다’는 불안의 투영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거칠고 투박한 남성성을 과잉 수행하는 데서밖에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강함’을 갈망한다. 이들의 ‘강함’은 실은 사회적 존재로 존중받을 수 없다는 ‘불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불행한 것은, 사니가 자신이 뽐내는 거친 남성성의 허약한 이면을 깨달을 때쯤에는 이미 현실의 무게가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불장난을 종종 벌이던 사니 무리는 기숙사에 화재를 일으키고, 이 사건은 사망 사고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을 뿐인 ‘비행 청소년’은 이렇게 순식간에 ‘범죄자’가 되어버린다. 사니는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여자 친구와 결혼을 꿈꾸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순식간에 닥쳐버린 비극적 운명에 꼼짝없이 갇혀버릴 판이다. 그에게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정말 이 모든 게 사니 개인만의 책임인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놀랍도록 생생한 방식으로 노동계급 출신 남자아이들이 마주하는 남성성의 비극적 구조를 조망케 해주는 영화다.
*〈데이비 스트리트의 창녀들〉
게스트 시네필/다큐멘터리

〈데이비 스트리트의 창녀들〉은 ‘게스트 시네필: 아르벨로스 필름 데이비드 메리엇’ 섹션 상영작이다. 이 세션은 저명한 영화 복원, 아카이브 활동가가 직접 선정한 영화를 선보이는 섹션으로, 이번에는 캐나다의 영화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캐나다 인터내셔널 픽쳐스의 데이비드 메리엇이 영화를 선정했다. 메리엇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전통이 강한 캐나다에서도 최고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꼽힌다고 소개했다.
‘캐나다 매춘의 성지’로 꼽히는 밴쿠버의 데이비 스트리트 성노동자의 삶과 노동을 촘촘하고 긴급하게 정치화하는 이 영화의 제작기가 흥미롭다. 애초에 두 감독은 제작사에게서 ‘도덕적 창녀’, 즉 생계 등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성노동에 뛰어든 사람들을 다루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거부하고 독립영화로 제작해 성노동자들의 날 것 그대로의 삶과 노동을 담아냈다. 영화에는 성 구매자들의 얼굴과 흥정 등 어떻게 촬영했을지 궁금한 장면이 많은데, 성노동자들이 몰래 마이크를 달고 카메라로 촬영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화는 당시 데이비 스트리트의 성노동자를 비추며, 경쾌하고 발랄하게 시작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영화에는 성노동자들의 삶에 관해 영화가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담겼다. 호객과 흥정 장면, 가족 인터뷰, 일하며 겪은 폭력, 그들 사이의 갈등, 일상적인 불인과 미래의 압박, 마약 문제 등등. 영화가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멋대로 재단하지 않는다는 점이 유독 인상 깊다. 서로 다른 성노동자들은 왜 자신이 이 일을 시작했는지 말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누군가는 그저 돈이 필요해서 이 일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순전히 아빠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즉 영화는 ‘동정할 만한’, ‘도덕’을 중시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사연을 맨 앞으로 내놓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자발적 선택’에 구조적 맥락이 있다는 점도 깊이 있게 다룬다. 성매매/성노동에 대한 기존 통념을 계속 비껴가면서도 그들이 일터와 삶에서 만들어내는 생기와 활력을 자연스레 담아낸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을 살펴보자. 데이비 스트리트에는 크로스드레스, 트랜스젠더, 시스젠더 여성, 게이 등등이 구역을 나누어 일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항상 함께였다. 폭력적으로 구는 성구매자가 있으면 함께 나서 동료를 보호해주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연대하며 서로를 지켰다. “있으면 안 될 존재들이 한데 모여 있죠.” 도덕 분류 체계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낙인을 비틀며 자신들의 현재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재의미화한 말이다. 사회에 ‘불온하다’ 낙인찍힌 존재들의 모든 연대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하면서도 강력하다.
영화의 또 다른 감동적인 순간은 캐나다 최초의 성노동자 집회 장면이다. 성노동 비범죄화와 미성년자 성매매 금지, 처우 개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요구하며 당당히 행진하는 성노동자이자 활동가들에게서 ‘절망적으로 낙관’하는 태도가 갖는 힘을 분명하게 감각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큐레이션한 메리엇에 따르면, 〈데이비 스트리트의 창녀들〉은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큰 화제를 모았으나 정작 성노동자들은 86년 엑스포를 계기로 다른 곳으로 쫓기듯 이주했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이 절망 속에서도 낙관으로 벼려낸 정치적 저항에 접속한 우리가 이를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볼 일이다.
만약 당신이 영화에 나오는 온갖 ‘도착자’, ‘변태’에 끝까지 마음을 열지 못하겠거든 영화에 출연한 성노동자 어머니 인터뷰를 유심히 보면 좋겠다. 그녀는 한때는 아들이었으나 지금은 트랜스 여성이자 크로스드레서로 성노동하는 미셸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도, 사람들에게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점을 늘 상기해달라고 당부한다. 성노동자라는 이유로, 규범적 존재론에서 벗어난 자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거나 존중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급진적으로 전복하는 관점이든 포괄적 휴머니즘의 관점이든, 성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정치학을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을 좇는 이 영화가 뿜어내는 생기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성노동' '퀴어' 등의 말에 근본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보수적 비타협주의자의 심장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두 영화의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컴플리트 언노운 | 반골 음유시인의 시작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1년. 무명 뮤지션 '밥 딜런'(티모시 샬라메)이 뉴욕으로 향한다. 롤모델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스쿠트 맥네리)가 입원했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그를 만나기 위해 곧장 뉴욕으로 떠난 것. 우디를 만나고, 그를 위한 노래를 불러준 밥. 우디의 절친이자 우디 옆에서 밥의 노래를 들은 '피트 시거'(에드워드 노튼)는 밥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그가 작곡한 노래를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다.
피트가 내어준 무대에서 펼친 밥 딜런의 공연은 '조안 바에즈'(모니카 바바로), '조니 캐시'(보이드 홀브룩)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더 나아가 뉴욕에서 만난 사랑 '실비 루소'(엘 패닝)의 응원 속에 작업한 앨범마저 성공을 거두자 밥은 새로운 포크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밥은 겉잡을 수 없는 관심과 유명세를 견디지 못하고, 그는 상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노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반골 음악가, 밥 딜런
전기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으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인물 자체가 흥미로워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자 그의 인생을 조명한 <스티브 잡스>와 <잡스>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바 있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복귀해 회사를 살려낸 스토리는 그 자체로 극적이었기 때문.
하지만 인물이 전부는 아니다. 두 작품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호평은 전자에게, 혹평은 후자에게 집중됐다. 취사선택의 차이가 원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미니멀한 형식으로 잡스의 인생을 재구성했다. 세 번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에만 집중했다. 주변 인물 간의 대화와 갈등을 통해 잡스의 인간됨과 성장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잡스>는 과유불급이었다. 애플 설립부터 복귀까지의 여정을 영화 한 편에 무리해서 밀어 넣었다.
두 영화의 차이는 전기 영화의 매체적 한계에서 기인했다. 한 인물의 생애를 모두 보여주기에는 분량과 형식이 애초에 부적절한 것. 따라서 전기 영화는 확실한 주제나 아이디어에 닻을 내린 채 그 외의 내용은 과감히 생략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영화의 의도가 관객에게 분명히 전달될 수 있다. 일례로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핵무기 개발과 청문회에만, <링컨>은 링컨의 수정헌법 제13조 발의 및 통과에만 집중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취사선택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사실 밥 딜런의 인생을 영화 한 편에 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 밥 딜런은 60여 년 동안 정규음반만 40개를 발표할 정도로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했기 때문. 그래서 맨골드는 1961년부터 65년까지의 밥 딜런을 요약하는 한 단어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눠서 보여주는 데 열중한다. 바로 '반골'이다.
반골의 음악
가장 먼저 돋보이는 층위는 밥 딜런의 음악이다. 이는 <컴플리트 언노운>의 오프닝 시퀀스가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전기 영화치고 이 작품의 오프닝은 이상하다. 밥 딜런의 전기 영화인데 그보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등장하기 때문. 영화는 '우드 거스리'라는 포크 가수가 출연한 방송과 함께 그의 음악을 들려주고, 그다음에는 '피트 시거'라는 가수가 포크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재판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컴플리트 언노운>을 밥 딜런의 반골 기질을 압축한 작품이라고 보면 이보다 밥 딜런을 잘 소개하는 오프닝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창기 음악 세계를 지탱한 저항 정신의 겉뜻과 속뜻을 모두 들려주기에 최적화됐기 때문. 더 나아가 전체 영화 내용에 대한 요약, 암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초창기 음악 세계는 물론, 그의 음악 스타일과 활동 영역이 돌연 달라진 이유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으니까.
우선 거스리가 출연한 TV 방송은 초창기 밥 딜런 음악 정체성을 알려주는 장치다. 미국 포크 음악의 전설인 그는 사회 운동 메시지를 노래에 담았다. 밥 딜런은 그로부터 노래에 저항 정신을 담아내는 법을 배웠다. 밥 딜런이 "그로부터 나는 가장 위대한 교훈을 배웠네"라고 노래했고, 그를 음악적 아버지로 부를 정도였다.
피트의 재판 장면은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포크 음악은 단순히 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사회 저항 운동을 이끄는 주체였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노래에 담긴 변화에 대한 열망은 포크 음악을 만들고 듣던 음악가와 팬들에게 직관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이는 밥 딜런이 데뷔와 동시에 포크 음악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두 장면 덕분에 빕 딜런이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은 전형적이지만, 깊다. 밥 딜런, 거스리, 피트와의 만남이 군수산업에 대한 비판을 담은 ‘Masters of War'나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Blowin’ in the Wind’ 등의 노래 가사에 담긴 저항 정신을 음미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밥 딜런이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 삽입된 흑인 민권 운동, 쿠바 핵 미사일 사태, 케네디 대통령 암살 뉴스 등도 가사의 의미에 집중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반골의 앙시앵 레짐
흥미롭게도 그의 반골 기질은 음악과 가사로만 표출되지 않는다. 그는 특정 도그마에 갇힌 채로 규정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타고난 예술가였으니까. 그래서 피트가 그에게 포크 가수냐고 물을 때, 그는 그저 포크를 좋아하고 포크를 할 뿐이라고 대답한다. 이 문답은 그의 반골 기질 중 또 하나의 층위를 보여준다. 바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외부의 권위와 교의를 거부하고 맞설 줄 아는 용기다.
포크의 스타가 밥 딜런. 피트와 동료들은 그가 상징적 존재로서 민중 운동과 사회 운동을 계속 이끌어야 한다고 압박한다. 이에 밥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마지막 날 일렉기타를 든 채 그 유명한 'Like A rolling Stone'을 답가로 불러준다. 포크의 저항 정신은 사회 운동의 도구여야 한다는 교의와 레짐 앞에서 포크 록 음악을 연주하며 공개적으로 맞선 것. 설령 자신을 향한 기대와 유명세가 파괴되더라도, 곧 '완전한 무명(Complete Unknown)이 되더라도 자기 정체성과 음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이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안타깝다. "당신의 낡은 길은 빠르게 낡아가고 있어/새로운 길에서 비켜나 주세요"라고 노래한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에는 열광하던 이들이, 정작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이를 비난하는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기 때문. 본인이 기득권인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저항과 혁명을 논하는 이들에게 맞서는 쾌감, 그 변화를 스크린에서 만나야 한다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다.
그렇기에 밥 딜런과 거스리의 만남이 장식하는 결말은 특히 감동적이다. 대부분의 동료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받은 밥. 그는 과거 거스리가 선물한 하모니카를 돌려주려 하지만, 거스리는 밥이 계속 하모니카를 간직하라고 부탁한다. 밥의 변화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본질을 표현하는 방식임을 거스리만큼은 이해한 것. 이 만남 덕분에 우디 거스리를 보여준 오프닝과 결말은 의미심장하게 수미상관을 이룬다.
반골의 사랑과 상처
반골이라서 포크 가수로 스타덤에 오르고, 또 반골이라서 과감하게 음악적 도전과 변화를 추구할 수 있었던 밥 딜런. 하지만 반골 기질이 언제나 그에게 따스한 빛만 비쳐주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기 힘든 상처와 그림자도 안겨주었으니까. <컴플리트 언노운>은 반골의 이면이라는 세 번째 층위를 두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여준다.
밥의 반골 기질은 실비와 조안, 둘과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실비는 여러 시위 현장에 그를 데려가면서 그의 음악 세계가 확장되고 깊어지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피트 시거, 우드 거스리와 같은 결의 포크 가수였던 조안도 그가 반골이기에 그와 사랑에 빠졌다. 시대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그의 노랫말을 들으면서 유망한 뮤지션 정도로 여겼던 그를 다시 본 것.
하지만 밥은 반골이라서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다. 고정된 관계성을 견디지 못한 그가 떠나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했기 때문. 이때 두 여성은 각자 밥의 인간적인 상처를 하나씩 상징한다. 실비는 유명세에 짓눌려 고통받는 밥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열광하는 대중이 두려운 밥은 공포가 커질 때마다 실비를 찾는다. 하지만 실비는 그의 자유로움을 이해할지언정, 그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관계는 진전되지 못한다.
조안은 예술가로서의 상처를 상징한다. 그와 조안은 항상 음악 때문에 싸운다. 합동 투어에서 신곡을 부르려다가 조안과 다툰 후 공연을 포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밥의 반골 기질, 새로움에 도전하는 그의 음악 스타일이 동료들과의 더 큰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암시나 다름없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을 향한 원망과 실망이 조안과의 연애에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불친절하지만, 끝까지 읽게 되는 시집
다만 <컴플리트 언노운>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밥 딜런의 별명답게 영화도 한 편의 시와 같다. 압축적이고 간결해서 설명이 많지 않다. 그래서 불친절하다. 당시 좌파 진영, 사회운동가들의 갈등 양상이 짧은 뉴스 장면 등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그가 동료들과 갈등을 빚게 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밥 딜런의 과거를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갑작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인 뉴포트 페스티벌 공연은 덜 직관적이다.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그가 부른 노래에 담긴 의미도, 좌파 진영과 운동가들이 그에게 원한 역할을 그가 거부하는 쾌감도 명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 역경 극복 서사에 방점을 찍은 것과 비교하면 심심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오히려 그래서 음유 시인의 전기 영화다워 보이는 게 아이러니다.
그래도 배우들의 역량이 설명의 공백을 일부분 채워준다. 5년 간 작품을 준비했다는 티모시 샬라메는 숱한 남우주연상 수상의 이유를 증명한다. 특히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이어 재회한 엘 패닝과의 비슷한 듯 다른 호흡은 영화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모니카 바바로도 <탑건: 매버릭> 속 '피닉스'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 노래 실력과 매력을 자랑한다. 그 덕분에 <컴플리트 언노운>이라는 시집을 도중에 덮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Acceptable 무난함
밥 딜런을 깊이 알면 알수록 배가되는 감동과 전율
-
- 콘서트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콘텐츠
요즘은 신비주의보다 솔직함,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대중에게 더 호응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콘텐츠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주 소재로 풀어내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음악 프로그램<테이크 원>_넷플릭스
뮤지컬과 연극 등을 공연하는 공연장에서는 백스테이지 투어를 이미 예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완성된 콘텐츠만을 보여주던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 주 내용을 공연 준비과정으로 다룬 것이 독특하고 재밌다.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이 공연하거나 발매했던 곡 중 단 한 곡으로만 무대를 꾸미라는 미션을 준다.
제목인 테이크 원은 영상 촬영을 할 때, 슬레이트를 한 번 치는 것을 의미한다.
아티스트와 공연 크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무대를 단 한 번의 슬레이트로 촬영을 끝낸다는 것이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공연 준비 제한 시간이 있다.
어떤 곡으로 어디에서 공연할지, 무대는 어떤 식으로 꾸밀지, 관객은 어떤 분으로 모실지 기획해야 한다.
특히 조수미 아이스트의 무대 준비 과정을 담은 시리즈가 인상깊었다.
조수미 아티스트는 365일 중, 300일 가량을 고국인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보내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면, 한국 음식이나 문화보다 타국의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단 하나의 공연을 준비할 때, 오페라에 한국 전통 음악과 의상을 접목시키려 노력한다.
오페라와 국악을 연결시키기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고 조율해가는 과정도 멋졌다.
-
- 바튼 아카데미 | 뻔한 이야기 속에 숨은 진주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 뉴잉글랜주의 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에서 역사 교사로 재직 중인 '폴'(폴 지아마티). 이렇다 할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는 책과 자기 세상에 갇힌 채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마스 방학 동안 숙직을 맡아 기숙사에 남은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교장의 제안도 큰 불평 없이 받아들인다. 어차피 그의 크리스마스는 달라질 게 없으니까.
하지만 크리스마스 방학 첫날부터 그의 예상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앵거스'(도미닉 세사)가 갑작스레 학교에 남았기 때문. 입이 튀어나온 앵거스는 교칙대로 공부를 강요하는 폴의 지도에 틈만 나면 반기를 든다. 거기에 아들과 사별한 기숙사 주방장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까지 학교에 남으면서 무미건조할 예정이었던 폴의 크리스마스는 자꾸만 궤도를 벗어난다.
알렉산더 페인이 크리스마스 영화를 변주하는 법
'크리스마스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가족과 떨어져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주인공. 그는 가족이 아닌 이들과 여러 모험을 겪는다.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되새기며 그렇게 한 층 성장한다. <나 홀로 집에>나 <해리 포터> 시리즈 초반부가 대표주자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 폴 지아마티 주연의 코미디 드라마 <바튼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다. 비둘기 아줌마나 늑대인간은 없지만 큰 틀은 같다. 엄마와 새아빠의 신혼여행 때문에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방학을 보내야 하는 앵거스. 불만 가득한 앵거스는 당직 교사 폴, 학생 식당 조리사 메리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결 성숙해진다.
이렇게 보면 특별할 게 없다. 잘 만들고 감동적인 크리스마스 영화. 그뿐이다. 그러나 정말 이뿐이라면 <바튼 아카데미>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남우주연, 여우연, 각본, 편집상까지 다섯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칫 익숙해 보이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 가족, 교육, 그리고 1970년대다.
학교에서 새로운 가족을 찾다
폴과 앵거스는 단순한 학생과 교사 관계가 아니다. 앙숙이다. 규칙을 준수하는 교사와 자유분방한 청소년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친구가 아니기에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은 더 감동적이다. 특히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눈에 띈다. 그들은 가족과 관련해서 남몰래 간직한 아픔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를 건넨다. 그 순간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비로소 따뜻해진다. 옆에 있는 새 가족을 찾았기 때문이다.
앵거스는 가족을 잃었다. 친아빠는 정신병원에서 치료 중이라 만날 수 없다. 친엄마는 계부와 신혼여행을 즐기느라 자기를 학교 기숙사에 처박아뒀다. 그래서 그는 유일한 가족사진에 유독 집착한다. 바튼 아카데미에 집착하는 폴은 괴짜로 유명하다. 교칙을 어기거나 공부를 안 하는 학생에게 유달리 엄격하다. 그런 그에게도 속사정이 있다. 어릴 적 엄마와 사별한 후, 그에게 집은 바튼 아카데미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앵거스와 폴은 그토록 바라던 가족과 집을 서로에게서 발견한다. 도저히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서로 마음에 안 들던 둘은 같이 병원을 가고, 저녁을 먹고, 서점을 가고, 볼링을 치면서 상대방의 고독함을 발견한다. 앵거스가 숨기고 있던 우울증 약도, 하버드에서 쫓겨나 바튼 아카데미로 돌아와야 했던 폴의 사연도 공유한다. 가장 비참한 순간을 보여주면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끈끈한 사제 관계로 거듭난다.
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아들을 최근에 잃은 그녀는 후유증에 시달린다. 두 남자는 그녀 옆에서 같이 TV를 보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동행하며 외로운 시간을 채워준다. 메리도 앵거스와 폴이 싸울 때 은근슬쩍 앵거스의 손을 들어주고, 폴이 앵거스를 학생이 아니라 제자로 대하도록 충고를 건넨다. 그렇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 마침내 새 가족을 찾는다. 셋이 함께 칠면조를 먹는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크리스마스인 이유다.
학교에 저항하는 사제지간
그러면서도 <바튼 아카데미>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실제로 영화 곳곳의 힌트를 따라가면 앵거스와 폴을 매개로 삼아 암시하는 이야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다운 블랙 코미디와 찰진 대사를 쫓으면 <바튼 아카데미>의 진짜 풍미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교육이다. 흥미롭게도 배경은 학교지만, 두 주인공은 학교에 썩 어울리지 않는다. 명령과 교칙을 준수하는 교사나 학생은 아니기 때문. 일례로 폴은 교장에게 뻗댄다. 부유한 집 아이에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점수를 부여하라는 교장 지시를 단칼에 거절한다. 그 아이들이 바튼 아카데미라는 명문 학교에 입학한 것만으로 그들은 이미 특혜를 받았으니, 좋은 성적을 따는 것을 그들 몫이라면서.
그뿐만이 아니다. 관례를 따르는 다른 교사들과 달리 폴은 방학 직전까지도 수업을 강행한다. 자연히 학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을 리 없다. 이 점은 앵거스와 폴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유달리 입이 거친 앵거스는 다른 학생의 인신을 공격하는 데 도가 텄기 때문. 방학 첫날부터 주먹질을 유발할 정도다.
진정한 학교와 교사를 만나다
그런데 <바튼 아카데미>는 오히려 그들의 비뚤어짐을 비난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강제하는 일방향 규칙을 마음껏, 제대로 어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폴이 앵거스에게 교칙을 지키라고 요구할 때 그들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오히려 그들이 규칙을 깰 때 변곡점이 생겼다. 앵거스가 체육관에서 난동을 부릴 때. 그들이 교칙을 깨고 보스턴 여행을 떠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서로를 이해했다.
이처럼 <바튼 아카데미>는 단순히 몇몇 개인 방학과 연휴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튼이라는 학교가 대표하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저항, 규율에 대한 도전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 그보다는 삶의 축소판에 가깝다. 정해진 길을 알려주는 교육을 따르는 대신,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필요하면 반항할 줄 아는 삶의 과정을 그려냈다.
시작과 끝 역시 주인공, 더 나아가 관객의 반항을 응원한다. 교장과 대면하는 첫 장면에서 폴은 키케로의 어록을 인용한다. ‘우리 중 누구도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Non nobis solum nati sumus).’ 마지막 순간, 그는 그 말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직접 증명해 보인다. 본인에게는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바튼 아카데미를 포기하려 한다. 이제는 아들과도 같아진 앵거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래서 폴이 앵거스에게 슬며시 건네는 악수는 그 어떤 대사와 제스처보다도 감동적이다.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찾아온 추운 겨울날 같은 현실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따뜻하기도 하다. 마음의 흉터를 못 지웠거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이들 간의 연대를 단 한 순간에 꾹꾹 눌러 담았으므로.
70년대 터치 덕분에 더 감성적인
극 중 시대상이 1970년대임을 고려하면 <바튼 아카데미>는 더 의미심장해진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인한 히피 문화가 퍼지며 사회에 대한 저항이 꽃피우는 시대였으니까. 페인 감독은 시대적 환경을 절묘하게 활용하며 강압적인 제도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군사 학교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앵거스를 비추면서 베트남 전쟁을 암시하는 식이다.
여러 기술적 접근에도 페인 감독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줌 렌즈, 1.66:1의 화면비, 필름 스크래치, 디졸브 효과가 배경에 깔린 올드팝과 어우러지는 순간 스크린 위에는 1970년대가 되살아난다. 오래전에 사용된 영화사 로고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다소 평범한 듯한 각본도 의도된 것처럼 느껴진다. <바튼 아카데미>는 관객을 70년대로 초대함으로써 가족, 학교나 학생,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에 관해서 까지도 한 번 더 사색할 수 있는 시공간을 선사하는 영화이기 때문. 이 대목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떠오르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투박한 <바튼 아카데미>가 '따뜻한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무미건조한 평가에 갇히면 안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배우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폴 지아마티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의 연기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성과로 보여줬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올랐을 뿐만 아니라,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각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눈에 띄는 배우는 따로 있다. 고등학교 연극부 활동이 경력의 전부라는 도미닉 세사의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가 퍽 탁월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이상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기쁨
-
- 로봇이 찾은 작은 희망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과도 같다. 아주 가까운 자식은 그런 돌봄을 받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다. 아이를 키우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챙겨준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정을 쌓아간다. 그 모든 과정은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끝이 나는 듯 하지만 그 아이가 또 다른 가정을 만들면서 다시 비슷하면서 다른 과정이 시작된다. 세대와 세대를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이 과정은 아마도 모든 동물들이 자라면서 교류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키고 돌보려고 하는 존재가 밥을 먹고 자신과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떤 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계속 그 어떤 존재를 돌본다. 아이가 자라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우거나 식물을 키우며 무언가와 끊임없이 교류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돌보는 행위 자체가 인간이 가진 하나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 큰 자식이 자신의 품을 떠나 독립할 때, 약간의 허무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 것이다.
오존 파괴로 혼자 살아남은 주인공 핀치와 로봇 제프의 이야기
영화 <핀치> 속 주인공 핀치(톰 행크스)는 지구 오존 파괴로 거의 파괴된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이다. 영화 초반 화면 속의 핀치는 낮에 특수한 장비를 입고 밖에서 활동을 하고, 밤에는 그나마 안전한 실내에서 생활한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작은 로봇과 개 한 마리가 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개발자였던 그는 제프(칼레 랜드리 존스)라는 새로운 로봇을 개발한다. 그 외에 등장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구 종말의 상황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핀치의 생활이 영화에 담긴다.
새로운 로봇인 제프는 많은 지식을 전송받긴 했지만 실제로 걷고, 활동하는 것에 아직 교육이 필요한 존재다. 핀치는 제프를 교육시키고 알려주면서 폐허가 된 세계에서 그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그러니까 제프는 핀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개를 돌보면서 남은 삶을 겨우 살아내고 있다.
핀치가 키우는 개는 '굿이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굿이어는 우리가 아는 여느 개처럼 정이 넘치고 인간 주변을 맴돌며 온기를 만든다. 핀치는 그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핀치가 로봇 제프를 만들어낸 궁극적인 이유 자체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굿이어를 돌볼 수 있는 존재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제프는 그런 핀치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지만, 핀치는 자신이 만든 로봇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돌본다. 그저 바보 같은 인공지능 로봇에 불과했던 제프의 변화과정이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담긴다.
사실 영화 <핀치>의 중심인물은 핀치가 맞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핀치보다 제프의 영화로 보인다. 제프의 탄생부터 그가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하나씩 보여주는 영화 속에서 제프는 그저 감정 없는 로봇이라기보다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가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또 실수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자 서사이다. 제프는 뭘 해도 서툴러 보인다. 실수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더욱 인간미가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면 그건 모두 제프의 서툴고 어색해하는 그 모습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로봇 제프의 따뜻한 성장기
이 영화에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보호막이 사라진 지구의 환경이다. 환경이 만들어낸 토네이도와 폭풍은 아주 짧은 시간 이어지지만 아주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악당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보다는 핀치가 그토록 보살피고 지키려는 노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좀 더 관심이 있다. 마치 부자 관계처럼 보이는 핀치와 제프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들이 조금은 척박한 화면과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주인공 핀치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인물을 다시 한번 연기한다. 과거 <캐스트 어웨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등장해 개와 로봇과 벌이는 그의 연기는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번엔 로봇 제프라는 존재가 있어 어느 정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유머도 포함되어 있어 시종일관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영화를 연출한 미구엘 사포크닉 감독은 과거에 <리포맨>(2010)이라는 SF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다. 또한 <얼터드 카본> 같은 드라마 에피소드 연출하는 등 SF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핀치>는 지구 종말의 분위기 속에서 따뜻함을 담았는데 그 따뜻함이 누구도 아닌 차가운 이미지의 로봇에게서 느껴진다는 점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영화 속 핀치가 돌봐주었던 굿이어를 위해 만든 로봇 제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 되어간다. 그가 핀치에게 배운 것처럼 그는 어떤 존재를 똑같이 돌보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가 과연 굿이어와 교류를 하게 될지, 굿이어가 로봇이라는 차가운 존재를 받아들일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 <핀치>는 애플 TV에 공개되어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IMDB]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코엔 형제 작품. 다시 봤다. 다시 보고 또 놀랐다. 먼저, 영화 제목을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코엔 형제가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 영화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알았다.
예이츠의 시 가운데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에서 가져온 구절로 원래는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이다. 예이츠의 시를 읽어보자.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저것은 노인의 나라가 아니다.)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팔짱 낀 젊은이들, 나무 위 새들,)
--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노래하고 있는 저 죽어가는 세대)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연어 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물고기, 짐승, 새들이 여름 내내)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잉태되고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을 찬양한다.)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모두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Monuments of unaging intellect.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엔 관심이 없다.)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늙은이란 하찮은 것)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막대기에 걸친 누더기일 뿐이리라)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육신의 옷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을)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영혼이 좋아 손뼉치고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지 않는다면)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노래를 배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그래서 나는 바다를 항해하여 왔다)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아 벽의 황금 모자이크 그림 속에 있는 듯)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신의 거룩한 불 속에 서 있는 성현들이시여,)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그 성화에서 원을 그리며 내려오셔서)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 주시라.)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내 심장을 다 태워버려 주시라, 욕정에 병들고)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죽어갈 동물성에 매어)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제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심장을 -그리고 나를 거두어 주시라)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영원히 죽지 않은 예술품 안으로.)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자연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어떤 자연물에서도 내 육신을 취하지 않으련다.)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대신 그리스의 금 세공인들이 망치질한 금과)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황금 유약을 발라 만든 형체를 취하여)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졸고 있는 황제를 깨우련다.)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아니면 황금 가지 위에 앉아)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비잔티움의 귀족과 부인들에게 노래해주련다)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 (지나간 것과 지나가는 것들, 그리고 다가올 것에 대해.)
따라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다. 어느쪽이든, 이 영화를 상징하는데 있어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원작 소설을 쓴 코맥 맥카시는 미국 작가로 하드보일드한 액션 스릴러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액션 스릴러'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매우 하드보일드한 것만은 틀림없다.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텍사스의 사막 근처에 살고 있는 주인공 모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마약 거래 현장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돈가방을 발견한다. 그리고 냉혹한 살인자 안톤 쉬거에게 쫓긴다.
돈가방을 갖고 도망다니는 주인공, 그를 쫓는 살인마 안톤 쉬거, 두 사람을 추적하는 지역보안관. 여기서 '노인'은 지역 보안관 에드를 말한다. 삼대를 이어 지역 보안관으로 일하고 있는 에드는 노련한 경찰이지만, 무차별,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옛날을 그리워한다.
영화 제목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영화 끝부분에 에드와 다른 보안관이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품위와 존경의 시대가 사라진 지금의 사회에서는 노인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이 독특하면서도 매력을 끄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개성 있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보여주는 때로 엉성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하는 대사는, 웃음과 함께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칼슨 웰즈를 보자. 그는 최근에 HBO의 미니시리즈 '참 형사(트루 디텍티브)'에도 주연으로 등장한 배우인 우디 해럴슨인데, 여기에서는 겉멋든 킬러로 등장한다.
살인마 안톤 쉬거를 처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등장해서 뭔가 멋진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그는 짧은 시간에 무수한 대사를 늘어 놓지만 결국 안톤 쉬거에게 맥없이 죽고 만다.
또한 주인공 모스 역시, 거의 살인마를 따돌리고 한숨 놓기 직전에 어처구니 없게도 멕시칸 갱에게 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장모 때문이다. 살인마 안톤 쉬거 역시 자신이 목표로 삼은 모스의 아내 칼라를 찾아가 죽이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죽지는 않았지만 부러진 뼈를 감싸고 사라진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는데, 보안관 에드 역시 퇴직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노인은 입을 닫는다. 즉, 돈과 마약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인의 지혜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는 총이 필요 없던 과거의 보안관 선배들 이름을 나열한다. 그때가 그래도 인간적인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미치광이의 시대라고 말하며. 그리고 곧바로 안톤 쉬거가 보안관에게 붙잡혀 경찰차에 태워지고, 수갑을 찬 채 보안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전화로 보고를 끝낸 보안관을 목졸라 죽이는 안톤 쉬거. 그의 두 팔목에 수갑에 긁힌 핏자국이 선명하고, 발버둥친 보안관의 발쪽으로 어지러운 흔적이 가득하다. 보안관 차를 훔쳐타고 나온 안톤 쉬거는 앞서가던 자동차를 세우고, 운전자를 살해한다. 그의 살인에 동기가 있을까.
텍사스주 테럴 카운티의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모스는 우연히 갱들이 서로 죽고 죽인 현장을 발견한다. 다섯 대의 트럭과 주위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는 사람들. 그는 한 트럭에서 가득 찬 마약을 발견한다. 아마도 마약 거래를 하던 자들이 서로 총질을 해서 모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이다. 모스는 분명 근처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무 아래 죽은 사람을 발견한다. 그 옆에는 가방이 있고, 그 가방 안에 2백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모스는 돈가방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트럭에서 죽어가던 사람이 물을 달라던 말을 기억하며 내키지 않지만, 물통을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간다. 한밤중, 물을 달라던 멕시코인은 이미 죽었고, 모스는 다시 돌아가려하지만, 갱단의 일행이 도착하고, 모스는 쫓기게 된다.
모스의 운명은 여기서 갈린다. 범죄 현장에서 돈가방을 발견한 것은 행운일지 모르나, 그는 범죄자가 아니었고, 사람이 그냥 죽는 걸 지켜보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가 물을 가지고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그냥 부자로 살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건 결국 자신의 의지이며, 그 선택에 따라 다시 운명이 갈리는 아이러니는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모스는 돈가방을 들고 도망하고, 아내는 오데사로 보낸다. 범죄 현장에 차를 두고 도망했기 때문에 이미 그의 정체는 드러났고, 돈을 찾기 위해 범죄조직에서 자기 뒤를 쫓아 올 거라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안톤 쉬거는 사막의 주유소 매점에 들르고, 매점 주인과 신경전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매점 주인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맞닥뜨린다. 살인마 안톤 쉬거는 차를 뺐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싸이코패스인데, 매점 주인과의 동전 내기에서 매점 주인의 선택이 맞자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매점을 나간다. 이건 그 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뜻이다.
안톤 쉬거는 두 남자를 만나 범행 현장에 도착하고, 돈가방 안에 들어 있는 추적기를 찾을 수 있는 송신기를 받는다. 그리고 두 남자를 살해한다. 양복을 입고 추적 송신기를 들고 나타난 두 남자를 미루어 짐작하면, 마약범죄조직을 체포하기 위한 위장 거래를 하던 경찰 수사관 또는 마약단속국(DEA), FBI 요원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돈가방을 지닌 채 죽은 사람은 경찰이거나 FBI 요원 또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비밀요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안톤 쉬거는 모스의 트레일러 집을 찾아가고 그곳을 샅샅이 살펴본다. 트레일러 관리실에 가서 모스의 행방을 묻지만, 관리실 아주머니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때 안톤 쉬거는 말 없이 사무실을 나간다. 그의 행동은 언듯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싸움에서 살짝 밀리는 느낌이다.
안톤 쉬거가 트레일러에서 나가고 뒤 이어 보안관들이 트레일러를 찾아온다. 보안관은 아무 단서를 찾지 못하지만, 안톤 쉬거는 집안에 있던 우편물에서 모스의 처가집 전화번호를 찾아내 확인한다.
모스는 텍사스주와 멕시코의 경계인 '델 리오'에 도착해 허름한 모텔인 델 리오 레갈 모텔 138호에 묵는다. 방의 환풍구에 돈가방을 숨기고,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다른 모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돌아와 138호 맞은편 37호실을 하나 더 빌린다.
안톤 쉬거는 멕시코로 가는 길에 '델 리오 레갈 모텔'을 지나다 수신기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모텔에 모스가 있다는 걸 확신한다. 모스는 37호에서 환풍기에 올려 놓은 돈가방을 끌어당기고, 안톤 쉬거는 총과 산소탱크를 들고 맨발로 138호를 찾아간다. 두 사람의 대결은 조용하면서도 긴장감 높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138호를 급습한 안톤 쉬거는 그 방에서 세 명의 멕시코인을 발견하고 살해한다. 멕시코인들은 마약 범죄조직원들이고, 이들이 쉽게 모스의 행방을 알 수 있었던 건 돈가방에 든 송신기를 찾을 수 있는 수신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칼슨 웰스의 등장은 하드보일드한 영화에 약간의 유머를 넣으려는 코엔 형제의 의도로 보인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안톤 쉬거를 제거하려고 살인청부업자 칼슨 웰스를 고용한다.
레갈 모텔에서 도망한 모스는 이글 패스 호텔 213호에 묵는데, 이때 카운터를 보는 사람에게, 자기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잠을 자려고 누운 모스는 돈가방을 살펴보다 송신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을 쫓는 살인자가 매우 가까이 있다는 걸 직감한다.
모스와 안톤 쉬거는 여기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총을 쏜다. 둘 다 만만찮은 상대였고, 둘 다 총상을 입는다. 총상을 입은 안톤 쉬거는 사라지고, 모스는 피를 흘리며 멕시코 국경을 걸어서 넘는다. 다리 중간에서 돈가방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 무사히 국경을 지나 멕시코로 들어가는 모스. 이제 악몽은 끝난 걸까.
다리에 총을 맞은 안톤 쉬거는 약국 앞에 주차한 차에 불을 지르고,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훔쳐 나온다. 그는 총상이 심했지만,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꿰맨다. 그는 확실히 보통사람과는 다른 인간이다.
그 사이, 병원에 입원한 모스를 찾아온 사람은 칼슨 웰스. 겨우 3시간만에 모스를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보안관 에드는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을 오데사에서 만난다. 칼슨 웰스는 국경 다리에서 모스가 던진 돈가방을 발견하지만, 호텔로 쫓아온 안톤 쉬거에게 당한다. 안톤 쉬거가 칼슨 웰스를 죽인 직후, 모스와 전화 통화를 하고, 서로 두고 보자고 벼른다.
안톤 쉬거는 모스가 병원에 있다는 것도 알지만 찾아가지 않고, 그의 아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모스는 병원에서 나와 다시 미국 쪽으로 국경을 넘은 다음, 돈가방을 찾아 아내에게 전화한다.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로 오라고. 엘 파소 역시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도시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모스의 장모에게서 정보를 얻고,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은 보안관에게 남편 모스의 행방을 알려주고, 안톤 쉬거는 모스를 쫓는다. 이들은 모두 엘 파소에서 맞닥뜨린다. 보안관이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총격전이 벌어진 뒤였고, 모스는 죽어 있었다.
모스의 장례를 치르고 곧 이어 칼라 진의 어머니도 암으로 사망한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칼라 진은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톤 쉬거를 만난다. 안톤 쉬거는 이번에도 동전을 던져 정하라고 칼라 진에게 말한다. 칼라 진의 집에서 나온 안톤 쉬거는 무심한 상태로 운전하다 다른 차와 부닥치고, 부상을 입고 사라진다.
보안관 에드는 퇴직하고, 아내와 차를 마시며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서 아버지를 봤고, 아버지는 춥고 어두운 오솔길을 앞질러 가시면서, 횃불을 들고 있었노라고 한다. 자신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안톤 쉬거가 살해한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다. 이 가운데 두 명은 살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도로에서 만난 닭장차 운전수와 마지막 장면의 칼라 진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 역시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과 맞닿아 있는 테럴 카운티에서 시작해 델 리오, 오데사, 엘 파소로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도시와 연결된다.
보안관 에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지역은 과거와는 너무 달라졌고, 사람들이 돈과 마약으로 타락했으며, 도덕과 상식이 사라진 현실이 개탄스럽다. 늙어가는 에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느끼고 은퇴한다. 삶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메마르며, 불투명해서 행복한 삶이란 마치 파랑새를 찾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
- 이옥섭x구교환의 <연애 다큐>, 페이크 리얼 러브
페이크 리얼 러브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영화 <연애 다큐>의 핵심은 제목에 있다. 연인이 서로의 모습을 다큐 필름을 찍어 공모전에 출품한다. 플롯은 단순하지만, 그걸 연출해내는 방식이 이엑구답게 참신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흔한 로맨스 극 영화가 아니라, 페이크 다큐 형식을 취하면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구교환은 배우로 잘 알려진 영화 감독이다. <연애 다큐>에서도 연인을 촬영하는 감독으로써 등장한다. 관객은 마치 감독 구교환이 촬영한 것만 같은 영화를 마주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목격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철저하게 짜인 각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교환 감독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구교환’이라는 캐릭터를 적극 활용한다. 구교환 감독이란 배역으로 등장하며 반려견 ‘겨울이’와 함께 노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급기야 실제 어머니가 어머니 역할로 출연한 것을 보고 관객은 헷갈린다. 영화의 제목 <연애 다큐>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 주인공들이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는 저 영화 속 다큐멘터리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보이는 영화 그 자체인지.
구교환을 연기하는 구교환. 당연한 진리지만 영화는 진실의 미학을 숨겨놓았다. 오로지 진실만을 고할 거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범주를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불변하지 않는 진리가 이 영화를 관통한다. 구교환 배우이자 감독은 영화의 또다른 연출자인 이옥섭 감독과 연인 사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옥섭 감독과의 일련의 과정들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셀프 연애다큐'로 지원하자는 아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한다. 지원금을 받아서 함께 맛있게 밥 먹고 놀러 다니면서 만들자고. 결국 영화가 탄생한 원동력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담은 영상들의 모음집. 영화는 극중 연인을 담고 있지만, 분명 페이큐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그 간극을 알고 있는 듯, 나레이션은 고백한다.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라고.
-
- 뉴 캡틴 / 레드 헐크와의 대결 /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 어벤져스 빌드 업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후기입니다.
*꼭 보아야 할 쿠키영상이 있어요~
-
- 마블 디즈니 플러스 티비시리즈 총정리 (feat. 마블의 새로운 도전)
#디즈니플러스 #페이즈4 #마블총정리
블랙프라이데이 특가! 2년 플랜을 68% 할인된 특가에 구매하고 4개월 추가 이용 혜택을 받으세요!
링크 https://nordvpn.com/marveler 로 가셔서 이용하시거나 쿠폰코드 "MARVELER" 를 이용해주세요!*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52 완다비전
02:20 팔콘앤더윈터솔져
04:34 로키
06:48 왓 이프...?
08:40 호크아이
09:41 미즈마블
10:42 문나이트
11:44 쉬헐크
12:27 NordVPN
14:20 디즈니플러스의 의미"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0. 11. 2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
-
- 영화 <슈퍼노바> 티저 예고편
여기, 우리의 별이 머물렀다.
오랜 시간 서로의 구세주이자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최고의 친구로 지내온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와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된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이 끝나갈수록,
그들의 감정은 점차 고조되는데…
차마 사라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 마음의 파편,
그곳에 가장 빛나는 사랑이 있었다.
-
- 영화 <더 랍스터> 재개봉 예고편
전대미문의 커플 메이킹 호텔! 이곳에선 사랑에 빠지지 않은 자, 모두 유죄!
유예기간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완벽한 짝을 찾아야만 한다.
홀로 남겨진 이들은 45일간 커플 메이킹 호텔에 머무르며, 완벽한 커플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을 얻지 못한 사람은 동물로 변해 영원히 숲 속에 버려지게 된다.
근시란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고 호텔로 오게 된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새로운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숲으로 도망친다.
숲에는 커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을 선택한 솔로들이 모여 살고 있다.
솔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절대규칙은 바로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근시를 가진 완벽한 짝(레이첼 와이즈)을 만나고 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