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2 12:24:36
자비에 돌란 왕가위 영화 영감의 원천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5월 15일 개봉
자비에돌란, 왕가위, 라이언 맥긴리, RM 등
전세계 아티스트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예술가
낸골딘(Nan Goldin)
세계적인 아티스트 낸골딘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5월 15일 개봉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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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음악 비트 속에 담긴 모녀의 이야기
전자음악 비트 속에 담긴 모녀의 이야기
영화 <둠둠> 리뷰
감독] 정원희
출연 ] 김용지, 윤유선, 박종환, 김진엽
시놉시스 ] 자신에게 집착하는 엄마 때문에 전부였던 음악을 놓아버린 DJ이나. 길을 걷다 우연히 들려온 비트에 디제잉을 다시 하기로 결심하고 베를린에 갈 수 있는 오디션에 참가한다.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공식 초청되어 관객들과 먼저 만났던 영화 <둠둠>. 세계 영화제를 휩쓴 단편 <벨빌> 정원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이번 9월 15일에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어 그 전에 시사회를 다녀왔다.
패션소품으로 인아의 목표를 표현하다
영화 둠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엄마의 바람대로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생활하는 이나와 자신의 꿈을 쫓아 DJ를 하는 이나. 엄마의 집착으로 인해 DJ에서 촉망받던 이나는 자신의 꿈을 져버리고 평범하게 콜센터 직원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미혼모였던 이나는 자신의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아이가 있다는 것을 회사에 말하지 않은 것을 결국 들키게 되고, 재계약 연장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그 길로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서 DJ 공연을 보게 되고, 잊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이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정장플랫 신발을 항상 신고 다닌다. 그런 이나가 엄마와 함께 언덕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엄마 나 발 아파"라고 하면서 엄마가 신던 슬리퍼와 플랫슈즈를 바꿔 신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 이 장면이 이나가 더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는 회사원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의 세계로 향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딱딱한 회사생활을 상징하는 플랫슈즈와 가죽가방 대신 이나는 이제 편한 운동화와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선다. 즉, 자신이 편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을 이렇게 패션 소품들을 활용해 암시하고 있어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DJ와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인아는 회사를 그만두고 허름한 DJ바에서 디제잉을 다시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인아의 상황은 인아에게 행복감을 충분히 느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인아의 딸을 잠시 맡아서 키워주던 아주머니는 귀농을 결정하면서 더이상 인아의 딸을 돌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입양처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인아 엄마의 불안증세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인아에게 전화를 하고, 오지도 않은 재난 상황에 대비하며 집 지하에 방공호와 같은 시설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인아는 절친이 인아의 노래를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며 외국 공연에서 사용했다는 말을 듣고 배신감에 휩싸인다. 음악을 다시 시작한 행복을 만끽할 새도 없이 인아에게는 계속 안좋은 상황이 들이닥친다.
상황이 안좋아질수록 인아의 신경은 오로지 베를린 컴피티션에 쏠린다. 이 대회에서 1등을 하면 베를린으로 가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맹목적으로 이 대회에 1등을 하기 위해 몰두하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그동안 디제잉을 하며 행복했던 자신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아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망치는 수단으로써 음악을 택했고, 그 기회가 베를린 컴피티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진정한 화해의 시작영화 둠둠은 이렇게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인아의 혼란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엄마의 사고로 인해 정리가 된다. 그토록 엄마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자신 역시 엄마를 너무나도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엄마 역시 마음만큼은 세상에 단 둘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욱 지키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재정립되지 않는 이상 베를린에 가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인아는 과거 엄마가 불러줬던 노래를 녹음해서 자신의 디제잉에 녹이고, 이 음악을 통해 반목하던 모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다. 어찌보면 굉장히 클리셰적이긴 했지만 현대적인 디제잉 속에서 그 클리셰는 나름 새롭게 다가올 수 있었다.
영화 둠둠은 시작과 끝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는 장면이다. 시작에서는 전화하는 인물이 엄마라고 뜨지만 끝에서는 발신인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 영화의 말미에서 인아에게 전화를 건 인물은 누구였을까?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건네면서 여운있게 마무리된 작품이었다.그간 영화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디제잉이라는 요소를 너무나도 감각적으로 잘 풀어낸 영화 <둠둠>. 전자음악의 비트 속에서 한 모녀가 어떻게 화해를 해 나가는지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를 담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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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처음 그리고 계속
처음 그리고 계속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리뷰감독] 권하정, 김아현
출연] 권하정, 김아현, 구은하, 이승윤
시놉시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최종 우승자이자 "장르가 30호"라는 수식어로 불리며 일약 스타가 된 이승윤이 유명인이 되기 직전, 우린 무명이었던 그를 찾아갔다. 우연한 기회로 그의 노래를 듣고 팬이 된 우리는 2년 뒤 무작정 그를 찾아가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겠다고 했다. 뮤직비디오는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무명인들의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시작으로 우리들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음악 예능을 좋아한다. 무대를 준비하는 가수들의 고생이 너무 느껴져서 미안할 정도지만, 아무튼 좋아한다. ‘무명 가수’들의 이름을 가리고 진행되었던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도 열심히 봤다.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가수 이승윤의 우승 후, 이전에 그가 남긴 말들이 인상깊다는 말을 듣고 과거의 라디오를 찾아 들어보았다. 이루지 못했으면서 애초에 꿈꾸지 않은 척하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올해 사활을 걸고 뭐든 할 것이라는 말을 미래에서 듣는 기분이 묘했다. 그가 사활을 건 결과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알기에.
당시 내게 아무런 성장이 없는 듯해 괴로웠던 때였기에, 라디오를 듣고 일기를 썼다. 내 글이 읽히면 좋겠다고. 글쓰기를 자기만족만으로 한다는 건 내게, 사실 이루지 못했으면서 꿈꾸지도 않은 척하는 거짓말이라고. 지치지 않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고 일기장에 썼다. 그리고 지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데일리에 글을 쓰고 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아직 나는 지치지 않았고 또 행복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었다.
처음: 안녕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더없이 진솔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촬영되던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인 지금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노래했던 이는 ‘유명’ 가수가 되었고, 이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영화제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는 것을. 그러나 카메라가 돌아가던 그때의 이들에게는 미지의 일이다.
이들은 아직 모든 게 처음이다. 영화를 전공하고 뮤직비디오라는 낯선 세계에 성큼 뛰어든 것도, 정성스러운 작업물을 받고 뮤직비디오 촬영을 협업하는 것도.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처음이라는 점에 기가 죽어 우려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더 적극적으로 일한다. 전문가들이 연신 말하는 ‘No’를 들어도, 코로나바이러스로 발이 묶여도, 어떡하지 싶은 순간에도 계속해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이들은 서로가 다 처음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 시작했고, 하고 있다는 자체로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이 된다. 각자의 처음을 나란히 어깨동무처럼 걸치고 더 힘이 되어주는 마음이다.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기에, 이들이 ‘듣보인간’이든 ‘무명성 지구인’이든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툰 시작을 불안해하는 모든 이들이 참고할 법한, 다정하고 안전한 자세다.
계속: 힘든 길은 같이 올라가자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점은 뮤직비디오를 준비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협업이다. 옷을 입어보거나 비대면 회의 중에 오물오물 뭔가를 먹는 등 사소한 일상에서도 재미있는 것을 숨 쉬듯 발굴해 내고, 둥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의견을 경청한다.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나, 마음이 복잡할 때, 부끄러울 때조차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털어놓은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여 주면서도 서로 다정한 말을 쌓아 올려준다.
‘영웅 수집가’라는 강렬한 곡을 데모 버전으로 받아 밑그림을 그리면서, 농담처럼 “이렇게 데모 받았는데, 나중에 어쿠스틱 돼 있고…” 하며 웃는 모습은 이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최종 완성본이 아니기에 다른 느낌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데모 버전 노래처럼, 이들이 하는 일 자체가 오락가락한다. 커졌다 작아졌다, 뚜렷했다 희미했다 반복하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이지만 이들은 밝은 에너지로 웃으며 올라간다. “오르기 힘든 길은 같이 올라가자!” 외치면서. 설령 그 뒤에서 우황청심환을 먹거나 26시간째 깨어 있을지라도.
이들의 노력은 두 편의 뮤직비디오와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열매를 맺었지만, 설령 열심히 한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졌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우리가 이들의 다른 열매를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미 죽어버린 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던 이승윤의 노래가 우리 곁에 흐르고 있듯, 이들의 프로젝트 또한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찾아왔을 것이다. 꼭 세상의 성공이 기준일 필요는 없지만, 서로 다독이고 격려하고 신뢰를 주고받으며 ‘으쌰으쌰’ 애쓰는 이들이라면, 이런 사랑스러운 협업은 자랑스러운 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평생 이렇게 살래
열심 있게 시작해서 뚝심 있게 계속해 가도, 어느 선 이상으로 가면 지칠 수밖에 없다. 지쳤지만 일에 계속 몰두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얼굴은 마치 아수라 백작처럼 일의 기쁨과 슬픔이 반반씩 묻어나기 시작하는데… 그 상태로 시장을 뒤져 소품을 준비하고, 몰드에 석고를 떠서 직접 소품을 만들고, 세트장을 조금씩 세워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승모근까지 뻐근하게 아파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들은 짜증이나 투정이 아닌 미소와 함께 말한다. “평생 이렇게 살래!” 비록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이렇게 일하는 거 되게 힘들다”는 말이 바로 딱 돌아오지만, 평생 이렇게 살겠다고 툭 내뱉은 권하정 감독의 얼굴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는 피로와 행복이 물씬 느껴졌다.
창작하는 마음은 결국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마음 끝에서 손을 움직일 때, 결과물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다. 처음 이승윤이라는 가수에게 제안을 보내기 위해 ‘무명성 지구인’ 뮤직비디오를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면서, 스마트폰을 끼운 삼각대를 드르륵 밀며 어설픈 달리 인, 달리 아웃을 하던 이들이 이제는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제대로 레일을 깔고 달리 인, 달리 아웃을 하며 이승윤을 직접 찍은 것처럼. 아주 멀어 보이는 것들도 그렇게 한 걸음에서 시작되고, 그 한 걸음은 언제나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깊은 애정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애정에는 전염성이 있다. 묵묵히 사랑해온 음악에 사활을 걸었던 이승윤의 음악이 두 감독에게 또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진 것처럼. 두 감독의 영화가 수많은 사람에게 ‘처음’ 그리고 ‘계속’의 감각을 일깨워준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두 감독을 응원하게 되는 한편, 나도 무언가 시작하고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는 것처럼.
두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과 만나면서 “계속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 “계속”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도 와 박혔다. 두 감독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관객으로서 앞으로도 그들을 더 만나고 싶다. 더 이상 ‘듣보인간’이 아닌 이들의 또 다른 생존신고가 언젠가 유리병 편지처럼 동동 찾아오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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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 봉준호답게 일탈한 SF 모범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빚을 내어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망한 나머지 사채업자를 피해 다녀야 하는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 아예 지구 밖으로 도망치기로 결심한 그는 정치인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의 외계 행성 니플하임 식민지 개척단에 합류한다. 티모와는 달리 아무 기술도 없었던 미키는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신체가 출력되는 '익스펜더블'로 자원한다.
온갖 생체 실험에 동원되면 죽고 출력되기를 16번이나 반복하면서도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 덕분에 4년의 항해를 견뎌낸 '미키 17'. 니플하임 행성 탐사 임무를 부여받은 그는 탐사 도중 외계 생명체 ‘크리퍼’를 조우하고, 죽을 위기를 피해 우주선에 간신히 복귀한다. 하지만 우주선에는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었고, 복제 인간이 둘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규칙에 따라 두 미키는 서로를 죽이려 든다.
봉준호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만남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복기해 보면 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한 작품 내에서도 의외의 타이밍에 장르를 변환하거나, 과감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는 것. <기생충>에서는 '부자는 악하고 빈자는 선하다'는 고정관념을 뒤엎는 전개와 블랙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전환되는 구성으로 충격을 선사했다. 꼬리칸의 반란의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열차라는 시스템 자체를 전복하는 <설국열차>의 결말도 마찬가지였다.그렇기 때문에 <미키 17>은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관습에 구속되지 않는 비틀림'이라는 봉준호의 특징이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다뤄질지 의문이었던 것. 워너 브라더스와 협업하고 제작비만 1억 2천만 달러가 투입된 <미키 17>은 <설국열차>나 <옥자>와는 또 다른,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으니까. 규격화된 시스템과 봉준호가 어떤 조화를 보여줄지 걱정 반, 기대 반일 수밖에 없었다.
<미키 17>의 결과물은 전반적으로 할리우드스럽다. 전개는 SF 클리셰에 충실하다. 봉준호라는 명성에 비하면 깊이도 얕아 보인다. 다양한 철학, 종교, 윤리, 정치적 딜레마와 알레고리가 삽입됐지만, 어느 것도 진득이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하다. 디테일로 빚어낸 블랙 코미디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 즉, <미키 17>은 할리우드의 SF 모범생이 전학생 봉준호를 만나 펼쳐 보이는 성실한 일탈의 결과물 같다.
'봉테일'로 빚은 불쾌한 블랙 코미디
<미키 17>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불쾌함이다. 특히 디테일하게 빚어낸 불쾌함을 토대로 이뤄지는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봉테일'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 중심에는 3D 생체 프런터가 있다. 이 프린터는 일반 3D 프린터처럼 입력된 설계도대로 인체를 찍어낸다. 그런데 이 프린터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도 일상적이라서 그 자체로 기괴한 유머처럼 느껴진다.
프린터가 작동하는 방식부터가 그렇다. 외관은 MRI 기계처럼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생겼지만, 정작 작동하는 방식은 옛날 프린터처럼 투박하다. 과거 프린터들은 출력물을 인쇄할 때 종이를 한 번에 매끄럽게 내보내지 않았다. 문서를 한 줄씩 인쇄하면서 덜커덩거리면서 조금씩 종이를 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 프린터 또한 덜컹거리면서 미키를 머리부터 서서히 밖으로 뽑아낸다. 마치 종이 문서를 출력하듯이.
이처럼 일반적인 프린터가 작동하는 익숙함과 프린터에서 종이가 아닌 사람이 출력되다는 낯섦 간의 괴리감은 미묘한 불쾌함을 조성한다. 이 불쾌함은 프린터 사용자들의 태도 때문에 증폭된다. 그들의 태도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하다.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출력 과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받침대를 뒤늦게 깔거나, 출력이 되는 사이 다른 작업을 하다가 출력물이 이상하다고 짜증을 내는 식이다.
문제는 프린터에서 종이가 아니라 미키 반스라는 사람이 출력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투박한 작동 방식이라는 디테일의 진가가 드러난다. 단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세태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로부터 아무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그로테스크함을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기 때문. 유머러스한 연출도 한 몫하다. '사람을 출력한다'는 사안의 심각성과 가벼운 분위기 사이의 간극 덕분에 불쾌함은 극대화된다.
익숙함+봉준호=특별함
프린터에서 느껴지는 불쾌함, 인간의 존엄성을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고 짓밟는 그로테스크함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가짜 임무를 주고 미키를 우주로 내보내서 인체 방사선 실험을 한다. 새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보호 장비 없이 미키를 보내서 대기 상의 바이러스를 파악한 뒤 백신을 만든다. 저녁 만찬에 초대해서는 배양육을 임상실험하고, 부작용이 나타나자 내친김에 신형 진통제 효능까지 시험한다.
이 온갖 생체 실험에도 불구하고 미키는 일절 불평도,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사채를 빌리고 돈을 갚지 못해 죽을 처지가 되자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했으니까.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를 다루는 이 대목은 SF 영화의 클리셰에 가깝다.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익스펜더블로 바꾼 것처럼도 보이고, <아바타>에서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 행성으로 향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기괴함과 유머가 뒤섞인 미묘한 분위기 덕분에 클리셰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된다. 실제로 <미키 17>에서는 돈이 없어서 지구를 떠난다는 클리셰도 마치 생체 프린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채업자 '다리우스'는 돈을 안 받아도 되니 그저 사람이 죽는 모습을 즐기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는 인명 경시 풍조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세태를 고발하는 다른 차원의 효과를 낸다.
<기생충>에서 '박동익'(이선균)이 '김기택'(송강호)의 냄새에 묻은 가난함을 지적하는 것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선악 이분법을 활용하지 않고도 빈부격차를 실감케 한 것처럼, 인간을 액수로 수치화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이 돈이나 다름없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익숙하고 강고한 클리셰의 벽에 봉준호다운 디테일이 균열을 일으키면서 <미키 17>의 폭은 넓어지고 깊이도 더해진다.
SF 모범생을 일탈시키다
클리셰에 봉준호 향을 첨가해 색다른 맛을 내는 방식은 <미키 17>이 해결책을 제시할 때도 유효하다. 사실 앞서 보여준 문제의식에 대한 <미키 17>의 답안은 너무 모범적이고, 순진하기까지 하다. 두 방향의 아가페적 사랑을 해결책으로 내놓기 때문. <미키 17>은 니플하임에 사는 크리퍼처럼 모든 생명을 아끼고, 나샤처럼 타인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면 생명이 경시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극 중 서로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크리퍼와 인간은 정반대 태도를 취한다. 인간은 크리퍼를 전부 죽이려 하지만, 크리퍼는 처음 보는 인간도 죽을까 봐 걱정하면서 구해준다. 또 종족을 위한 길이라며 미키를 17번이나 죽이는 인간들과 달리 크리퍼는 인간에게 잡힌 새끼 한 마리를 구하려고 모든 종족이 전투에 나선다. 즉, 모든 생명을 더한 만큼 한 생명이 소중하다는 <옥자>스러운 메시지를 인간과 크리퍼의 대비 속에 담아낸다.
한편 나샤의 사랑은 미키를 변화시킨다. 미키가 무기용 살상가스 테스트를 당할 때, 나샤는 그를 홀로 두지 않는다. 방호복을 입고 실험실 안에 들어가서 그가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준다. 또 티모가 다리우스의 협박 때문에 미키 17을 죽이려 할 때도 나샤는 목숨을 걸고서 그를 구해낸다.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은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미키 17을 각성시키고, 그가 케네스의 압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의 힘을 찬양하는 메시지도 사실 신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서도 봉준호다운 색다름을 엿볼 수 있다. 미키 17과 나샤는 항해 중에 여러 섹스 체위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중 하나가 케네스의 압제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신호로 활용된다. 아가페적 메시지를 순간 에로스적으로 풀어내는 유머 덕분에 진부할 뻔한 장면에 생동감이 깃든 셈이다. 이 또한 봉준호가 할리우드 SF 모범생을 변화시킨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악역을 무찌르는 사랑의 힘
한편, 사랑의 메시지는 정치 풍자의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미키를 출력할 때 가장 독특한 지점은 그의 기억과 성격이 보존되고 이어진다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마셜 부부가 상징하는 파시즘에 대한 경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키는 존재 자체로 마셜의 이상에 반하기에, 그의 성장 서사는 그 자체로 케네스의 실패와 퇴락을 뜻하기 때문.
마셜 부부는 인간 중심주의와 우생학을 신봉한다. 식민지 행성 개척 프로젝트도 더 우월한 인류를 만들겠다는 비틀린 신념의 일환이다. '일파'(토니 콜레트)'가 만드는 '소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소스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소스를 즐길 줄 아는 우월한 종자와 즐기지 못하는 열등한 종자로. 더 맛있고 좋은 소스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생학에 기반해 니플헤임 행성을 개척하려는 케네스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케네스가 보기에 복제품이라서 진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미키는 열등한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복사되는 존재이기에 미키는 진정으로 진화할 수 있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만남이 미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 미키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자기가 엄마 차에 있던 빨간 버튼을 누른 순간 교통사고가 발생해서 엄마가 죽었다고 믿는 것. 버튼이 실제 원인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미키 17은 또 다른 '나'를 만나 달라진다. 그는 우유부단한 자신과 달리 과감한 미키 18을 보면서 모든 미키가 죄책감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케네스와 크리퍼의 전쟁을 막기 위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자폭 버튼도 망설임 없이 누르는 미키 18로부터 자신에게도 있을 가능성을 배운다. 마셜 부부가 등장한 백일몽에서 과거와는 달리 당당히 일파와 맞서는 미키 17의 모습은 그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함의 힘을 믿다
미키의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격려처럼도 보인다. 현실적으로 대중에 속한 한 개인은 미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케네스 같은 독재자의 시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없이 복제된 미키의 집합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이, 대중이 미키처럼 자신의 가능성과 힘을 자각할 때, 케네스는 비로소 힘을 잃는다.
일례로 미키와 나샤는 번역기를 만들어 준 과학자 '도로시'(팻시 패런)나 일파의 지시를 불이행한 '지크 요원'(스티브 박) 등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한 평범한 대원들 덕분에 크리퍼를 몰살하려는 케네스의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즉, 자기 자신을, 연인을, 동료를,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는 평범한 이들의 가능성을 믿는, 달리 말해 민주주의를 신뢰하는 이야기가 <미키 17>인 셈이다.
다만 사랑이라는 주제와 정치 비판 간의 연결고리가 부각되지 않다 보니 <미키 17>의 의도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협력 과정보다 갈등이 강조된 결과 미키 17의 변화와 성장이 조명받지 못한 것. 그렇다고 두 미키의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도 않았다. 나샤의 진짜 연인이 누구인지를 중심으로 둘 중 누가 진짜 '나'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돌연 둘의 갈등을 유야무야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수박 겉핥기처럼 지나가는 대목이 많은 나머지 정치 비판이 일차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례로 케네스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 극단주의의 심화라는 정치적 흐름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배경이나 개인사가 단편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케네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거시적인 정치 흐름이 아닌 특정 정치인만을 겨냥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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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여러 플롯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인상도 짙다. 크리퍼 번역기가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눈에 띄는 복선이나 암시 없이 함장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식이다. 티모나 카이 같은 미키의 주변 인물들이 명확한 쓰임새 없이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전개는 과욕이 아닌가 싶다. 복제 인간 활용법도 '멀티버스의 나'를 등장시킨 MCU의 스토리텔링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어서 신선하지는 않다.
그래서 <미키 17>을 봉준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SF 영화로서 성실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졌지만 특별한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예상보다 블랙 코미디에 가까워서 큰 스케일이나 막대한 제작비도 와닿지는 않는다. 클라이맥스를 제외하면 우주선 내부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 그 결과 전반부에 가득한 기괴함의 충격에 비해서는 후반부와 결말의 즉각적인 쾌감이 부족하다.
그 대신 곱씹을수록 풍미는 깊어진다. 봉준호다운 장치가 친절하고 모범적인 상상력 사이로 만든 균열이 덕분에 의도한 맛이 뒤늦게 느껴지는 것. 가까이서 보면 범작이지만, 멀리서 볼 때 수작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거대 자본과 작가의 창조성이 타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처럼 보인다. 이렇게 <미키 17>은 봉준호 스타일로 소화한 할리우드 SF를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봉준호가 제출한 할리우드 SF학 개론 중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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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기말에 갈 순 없지만, 소녀들의 사랑은 볼 수 있겠지!
1990년대 후반, 특히 1999년 세기말의 현실을.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 종말론이 가져온 불안과 혼돈의 시기, 그럼에도 21세기라는 미래를 염원하는 설렘 등의 분위기가 가득찼던 그 시절의 노스텔지아는 <응답하라 1997>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그 시절을 길어올린 드라마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최근 개봉한 <빅토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이하 ‘<우천사>’)도 제목만 보면 앞소 소개한 작품들과 그 궤를 같이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뚜껑을 열어보면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태권도 대회를 앞두고 체중을 증량해야 하는 고등학생 주영(박수연)은 친구 민우(김현목)의 부탁으로 롯데리아 알바생 예지(이유미)에게 고백 쪽지를 대신 전한다. 그 인연으로 예지는 태권도 부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던 주영을 도와준다. 태권도 코치의 폭력과 차별을 참지 못한 주영은 사랑했던 태권도를 그만두지만, 거짓말처럼 그 빈자리에는 예지가 자리한다. 엄마의 청소년 사회화 프로그램 참여로 주영은 예지와 함께 살게 된점점 시간을 함께 보내며 미묘한 감정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들의 감정과 달리, 현실은 냉혹하다.
잊고 살았다. <벌새>에서도 다루지만 1990년대는 지금보다 더 폭력과 억압의 시대였다. 특히 10대 소녀들에게는 더 그랬다. 당시 <여고괴담>(1998)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최강희 누나의 점프컷이 아닌 체벌로 정당화된 폭력과 무한경쟁체제 몰아가던 시스템이다. 드라마 <학교>가 사랑받았던 것도 극화되었지만, 그나마 현실적인 고등학생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학교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바깥으로 튕겨나간 아이들, 보듬어주기는 커녕 착취에만 열을 올리는 어른들의 모습은 <나쁜 영화>(1997), <세기말>(1999) 등의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천사>의 주영과 예지는 각각 학교와 세상 밖에서 폭력과 차별을 받는다. 주영은 국가대표를 달기 위해 살을 찌워야 하고, 부원들의 폭력을 받아내야 하며, 코치가 행한 승부조작을 감내해야 한다. 예지 또한 마찬가지다. 소년원 출신이란 낙인 때문에 롯데리아에서 부당하게 잘리고, 거짓말에 속아 술집에서 일하고, 경찰도 색안경을 낀 채 차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치의 강압에 폭력을 대리하고, 메달을 따기 위해 성폭력을 감내해야하는 태권도 소녀들은 지옥의 세계에서 멤돈다.
우연으로 이어진 이들의 만남이 운명처럼 그려지는 건 각기 다른 이유지만 지옥같은 그 시절을 함께 이겨나가는 연대감에 있다. 힘든 상황속에서도 함께 손잡고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 힘은 사랑이란 감정으로 번지고, 이들은 어른과 사회가 반대하는 사랑이란 관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혹독한 성장통을 겪는 두 소녀의 모습은 퀴어 멜로와 병합되면서 애잔함을 전하기에 충분. 끝내 이들의 용감한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시대물로서 당시 벌어졌던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두 소녀의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구실로서 작용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시대상황이 그 활용 요인으로만 작용하기 위해 배치된 느낌이 강하다. 다수의 어른들은 악인으로서만 그리는 것도 되려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극중 악의 근원인 코치의 마무리도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소녀의 무모하고도 과감한 사랑 지키기에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건 박수연, 이유미의 연기다. 무조건 직진하는 두 소녀의 당찬 에너지는 두 배우의 케미를 통해 보여지는데, 마치 지옥같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당시 10대 들의 울분과 외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도 보여준다. 말간 이들의 표정은 쉬이 잊히지 않을 것.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OST다. 자우림의 ‘애인발견’, 고호경의 ‘처음이였어요’ 등 당시 음악들은 관객을 그 시절로 데려가는 역할을 물론, 주인공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애인발견’은 예지의 마음을, ‘처음이었어요’는 주영의 마음을 대변한다.(엔딩크레딧에 두 배우가 직접 부른 ‘애인발견’이 나온다.) 여기에 012로 시작하는 삐삐, 레트로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요소들은 영화의 감흥을 더한다.
결국 <우천사>는 ‘사랑’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힘든 세상에서 더 빛나는 사랑의 힘은 결국 어른과 사회라는 장애물을 뛰어넘는 역할을 한다. “지구가 종말하면 횡단보도 앞에서 만나”자는 이들의 약속이 끝내 지켜졌을지는 모르겠지만, 10대를 관통하고 어른이 되었음에도 그 맹세를 잊지 모습은 사랑의 무한한 힘을 일깨워준다. 사랑이 실종된 이 시대,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 소녀들이 더 그립다.
사진제공: 메리크리스마스
평점: 3.0 / 5.0
한줄평: 지옥 같은 세상 속 빛나는 소녀들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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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3번 같이 먹다 숨 넘어가겠네
밥을 3번 같이 먹었을 뿐인데, 숨이 턱턱 막힌다. 식사 자리를 가질 때마다, 체할 것 같은 큰 사건들이 터지기 때문이다. 신작 '보통의 가족' 이야기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헤르만 코흐 작가의 장편소설 '더 디너'를 영화화하였고,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에 좀 더 가깝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만약 당신의 자녀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전형적인 질문을 '보통의 가족'을 구성한 두 형제 양재완(설경구), 양재규(장동건) 형제 일가에게 어느 날 폭탄처럼 터뜨린다. 오직 법논리로만 판단하는 형과 따뜻한 마음과 의술을 가진 동생. 가족 일에 한 발 물러서 있는 재완의 새 아내 지수(수현), 치매 걸린 시어머니 간호를 도맡으며 가족에 헌신하는 재규의 아내 이연경(김희애) 주요 캐릭터들을 초반부에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어 이들이 3차례 식사를 하면서 묵직한 주제들이 주어진다. 첫 번째는 치매를 앓는 모친의 향후 거취를 두고 재완, 재규 형제가 의논을 한다. 그러는 사이에 두 가족의 자녀 혜윤(홍혜지)과 시호(김정철)가 범죄를 일으키고, 양가 부부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며 두 번째 식사를 가진다. 네 명의 감정 모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이어서 난감한 상황에 쉽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게 된다.
재완-지수, 재규-연경 부부를 짓누르기 시작한 자녀 범죄의 압박감과 긴장감은 영화 전체로 번져 나간다. 오프닝 시퀀스에 뜬금없이 등장했던 사건이 왜 등장했는지 서사가 전개되면서 확인할 수 있었고, 초반에 다소 웃음을 유발하다가 뒤로 갈수록 진지하게 바뀌는 분위기,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정도로 활용했던 장면이나 대사 등을 회수하여 충격을 주거나 재활용하여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의 디테일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때, 세 번째 식사에서 마주하는 충격반전이 더해져 관객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린다. '가족', '보통'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부조리함과 이율배반의 민낯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친근하게 사용해 왔던 두 단어에서 거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다만, 세 번의 불편한 식사자리가 만든 결정이 빚어낸 결말은 보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결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묵직하다 할 수 있겠으나, 109분 러닝타임 동안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결말 한 방으로 급끝맺음 하려는 듯한 뉘앙스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거운 딜레마 위에서 캐릭터 본질을 지키면서 한 끗 변주를 시도하며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려고 하는 배우들의 해석력과 앙상블 또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더 문', '돌풍'에 이어 3번째 함께 호흡 맞춘 설경구와 김희애의 활약상이 인상 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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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낮 여독처럼 슬쩍 사라질 고독이었다면, 영원한 그 이름 속에서 머물렀겠지.
2022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화제작 <스펜서>를 지난 주 씨네랩 초청 사전 시사회를 통해 만나고 왔다.
어느덧 개봉일이 다가왔다는 사실! 더 많은 분들이 좋은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 널리널리 홍보중이다. 올해 놓치면 후회할 작품 중 하나.
2013년에 비슷하게 ‘다이애나 스펜서’를 다룬 작품이 있다.
나오미 왓츠 주연의 <다이애나>라는 작품인데, 똑같은 인물의 일대기를 그렸지만 초점은 완전히 다르다. <다이애나>는 궁정에서 별거생활을 하던 시점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스펜서>는 완전히 별거생활을 하기 전, 3일 간 궁정에서의 성탄절 연휴를 보내며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렸다.
기대를 어느 정도 하고 갔지만, 훨씬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영화의 화면 비율부터 자글자글한 필름의 포근한 감성까지 살리며 1980년대 영국의 모습을 아름답게 재현했다. 광활한 자연 경관과 올곧게 펼쳐진 왕실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화에 매료되었다. 이 모든 것을 담은, 잔잔하지만 묵직한 에너지가 살아있었던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두고두고 생각난다. 한 번 더 관람하고 싶을 정도.
사실, 영화의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혼자 이끌어 간다.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와 흡입력을 2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다채롭게 표현해야 했고, 관람 전 제일 흥미로운 포인트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트와일라잇>의 벨라, <카페 소사이어티>의 보니 등 이전 작품에서 보여진 이미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그 틀을 이번 작품에서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의문들은 영화를 보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영국 억양은 물론, 고개를 기우는 각도부터 걸음걸이, 사소한 제스쳐 등 인물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치열하게 한 흔적이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느껴질 정도로 듬뿍 담겨 있었다. 결국, 실사 인물을 연기한다고 함은 관객들을 설득하는 것과 같다. 이미 대중들에게 각인된 그 인물의 선명한 이미지의틀을 오롯이 본인의 역량으로 깨야 하고, 그 자체가 영화의 의미가 된다. 인물의 서사를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낸 명분은 또다른 해석으로 변화를 줘야하고 동시에 감동을 줘야 한다.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그 무른 과정들을 섬세하게, 성공적으로 해냈다.
비로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 그것이 고독이든 여독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의 부재는 영원한 이름으로 남았을 테니. 자신의 수많은 감정들과 부딪히고, 단단했던 신념의 조각들이 처참히 부서지며 모든 것이 멈췄지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스펜서.’
*본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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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만에 넷플릭스 전세계 1위 한국 드라마 지옥 정주행 하기(해석)
넷플릭스 오리지날 한국 드라마 지옥 1~3 편의 내용입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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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외계+인 2부> 티저 예고편
2024년 새해부터 [외계+인] 2부의 등장이라? 마침내 완성되는 대서사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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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게임기 시장을 뒤흔든 닌텐도와 그에 맞선 세가가 펼친 세기의 콘솔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