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4-22 16:10:25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사는지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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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 리저렉션〉, 끝내주는 추억팔이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매트릭스〉는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으며 가히 세기의 SF영화라 불릴 만한 성취를 이뤄냈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1편에 비해 충격의 강도가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볼 만한 SF 액션영화의 역할 정도는 거뜬히 해냈다.
혁신적인 액션과 플롯, 완성도 높은 비주얼 등 〈매트릭스〉의 장점으로 꼽히는 요소는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건, 영화의 세계관이었다. 두 워쇼스키 감독이 포스트모던 시대를 다룬 장 보드리야르의 기념비적 걸작 《시뮬라시옹》(1981)을 전 스태프에게 읽어보라 권한 일화는 유명하다(《시뮬라시옹》은 〈매트릭스〉 1편에 스치듯 나오기도 한다). 자본주의 스펙터클이 본격화된 사회, 인터넷‧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사회에서 우리는 ‘실재’ 없는 ‘가상의 상호모방’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우리가 온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모든 광경은 원본을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과정을 거친 모방된 이미지이며, 이 과정이 무한 반복되며 원본의 권위는 상실된다. 이제 원본은 없고 모방된 것들만 남아 서로를 참조하여 또다시 모방한 결과물, 즉 시뮬라크르만 남는다. ‘시뮬랴시옹’은 시뮬라크르가 생산되는 끝없는 과정을 지칭하는 말이다. 원본도, 맥락도 사라진 사회는 냉소와 무감각만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음울한 시대진단이었다.
지금은 보드리야르의 개념이 이전처럼 많이 인용되진 않는다. 세계가 기호와 이미지의 의미 없는 순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 이론가들도 있었고,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도 윤리와 희망은 가능하다고 말한 이론가도 있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세기말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가 보드리야르를 경유해야만 했음은 부정할 순 없다. 〈매트릭스〉도 마찬가지다.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에 갇힌 인간을 다룬 디스토피아는 그 누구도 〈매트릭스〉만큼 잘 그려내지 못했고, 같은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좋든 싫든 〈매트릭스〉의 성취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본주의적 스펙터클, 디지털 이미지의 범람에 절망하거나 회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 ‘재미’와 ‘희망’ 그리고 ‘가능성’을 찾는다. 보드리야르가 통찰한 시대의 음울한 특징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지만 더 이상 자신이 ‘갇혀 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자.
〈매트릭스: 리저렉션〉에서는 기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죽은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죽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는 프로그램을 안정시키기 위한 매트릭스의 선택이었다. 강력한 소스 코드인 네오와 트리니티 없이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매트릭스가 이 둘을 되살린 것이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네오는 게임회사의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네오가 매트릭스와 싸웠던 경험과 기억은 그가 개발한 게임 스토리였다는 거짓 환상으로 축소되었다. 네오의 기억 속에서 과거의 경험이 솟구칠 때마다 매트릭스 속 심리상담가는 이를 신경쇠약으로 진단하고 네오에게 ‘파란 알약’을 먹인다(〈매트릭스〉 1편에서 네오가 각각 진실과 허구를 상징하는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 전자를 선택한 장면은 유명하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네오가 두 번째로 ‘빨간 알약’을 먹고 프로그램 밖으로 나오는 과정, 매트릭스에서 세 아이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는 트리니티에게 네오가 진짜 자유를 선물하는 과정을 담았다. 사실 이 과정에서 이전 시리즈물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시대가 변한 만큼 트리니티를 네오의 조력자로만 재현하지 않는다는 점,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드라마 〈센스8〉에서 선보인 감각적인 연출과 세계관을 더했다는 점이 눈에 띠지만(영화에는 〈센스8〉에 출연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이들의 얼굴을 다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를 20여 년이 지나 시리즈를 다시 만든 이유로 제시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는 기계와 그 안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주제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듯, 기계와 인간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대립하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설정을 중간중간에 배치해두었음에도 기계가 인간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영화의 기본 전제는 수정되지 않은 채 반복된다.
그럼에도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좋았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영화가 〈매트릭스〉 시리즈에 매료됐던 사람들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한다는 점이다. 비극적으로 결별해야만 했던 네오와 트리니티가 재회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이전 〈매트릭스〉 시리즈의 장면들은 관객의 추억을 자극하는 동시에 ‘원본’과 ‘모방’의 구도를 다시금 질문하는 효과 역시 자아낸다.
두 번째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기존 설정을 변화시키지 않은 건 감독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보드리야르와 워쇼스키가 문제 삼고자 한 상황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잠식해간다는 명제가 자아내는 두려움이 자발적으로 개인을 인터넷 공간에 전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바뀌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즉 기본적인 세계관을 유지한 감독의 선택에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매트릭스〉 시리즈의 세계관과 설정이 유효하다는 감독의 자신감이 묻어 있다. 사람들이 기계로 매개되는 이미지의 범람에 아무런 불편함‧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은 〈매트릭스〉의 문제틀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요청하고 있다.
요컨대, 라나 워쇼스키는 자본주의 스펙터클‧디지털 이미지와 대립하는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틀에 더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을 더해 돌아왔다. 이 영화가 〈매트릭스〉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 〈클라우드 아틀라스〉‧〈센스8〉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분명한 한계다. 하지만 워쇼스키가 건설해온 세계에 매료되었던 적 있는 사람들에게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여전히 울림이 있는, 끝내주는 추억팔이로 다가갈 것이다. 이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님을 확신한다. 워쇼스키의 영화적 모험이 멈추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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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별부터 공존까지 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일부.
한국단편경쟁 6은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너에게 닿기를>, <작별>,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곰팡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시놉시스
학급반장 수진은 의도치 않게 같은 반의 청각장애인 주연을 다치게 한다. 수진은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하지만, 주연은 사과를 받지 않고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뷰
여러 가지 수단으로 전달되는 말과 표정의 중요성.
반장인 수진이 같은 반 청각장애인인 주연을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주연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 하지만 주연은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진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도무지 전달되지 않는다. 무표정 때문일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사과를 건네고 오해가 풀리길 바랄 뿐이다.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서 나의 모든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알아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언의 목적으로 인해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에게 닿는 그 순간은 어떤 ‘오해’에서 벗어나 다시 진심이 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유하는 건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작별
공선정 감독
시놉시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영주는 외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중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주는 치료와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와 작별한 지 1년째 되는 10월, 영주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을까.
리뷰
누군가의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추모보다는 원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과 추측만이 남아있다. 사회에서 수많은 슬픈 일들이 반감을 일으키는 일이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전찬우 감독
시놉시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의 집에 모르는 남자아이가 텔레비전을 고쳐 달라며 찾아온다.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치는 남자와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서 아이와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리뷰
두 사람이 외출한 사이, 모르는 남자아이가 집에 앉아있다.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의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 엄마가 연인의 집에 찾아왔고, 아이와 다시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가 중요해서 떨어질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영화였다. 장면이 조각조각 연결되며 같은 시간 속 다른 대화는 더욱 희미하게 흩어진다.
곰팡이
박한얼 감독
시놉시스
30대 여자 J는 배우자의 유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곰팡이를 밥에 올리자, 곰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찾아간다. J는 곰팡이 핀 음식을 욕조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리뷰
J의 상황이나 과거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배우자의 존재는 J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에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듯 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검은색 자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J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욕조로 옮겨 담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의 자신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일까. 진짜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하는 상실의 마무리가 참으로 무섭게 여겨졌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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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금주에는 대형 영화 대신 높은 완성도로 호평받고 있는 예술 영화들이 대거 개봉합니다.
기념비적인 공포영화 F.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가 새롭게 돌아옵니다.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만들어낸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시선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북미에서만 누적 수익 8,000만 달러를 넘기며 인디 영화로서는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 중입니다.
얼마 전, 진행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작품인 <리얼 페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배우로 더 친숙한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출과 연기를 맡은 작품입니다. 그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1939년까지 조부모님이 살았던 폴란드의 집과 마을에서 촬영했다고 전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카모메 식당>, <안경>으로 국내에도 사랑받았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서늘한 신작 <파문>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배우상을 수상한 <은빛살구>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럼 1월 셋째 주 PICK 소개를 시작합니다!
노스페라투
Nosferatu
개요: 공포 | 미국 | 132분
감독: 로버트 애거스
주연: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빌 스카스가드, 애런 존슨, 윌렘 대포, 엠마 코린
개봉: 2025.01.15.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오랜 시간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악몽과 괴로움에 시달려 온 ‘엘렌’.
남편 ‘토마스’가 거액의 부동산 계약을 위해 머나먼 ‘올록성’으로 떠난 후부터
엘렌은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인다. “그가 오고 있어…”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며 마을로 점점 짙게 번져오는 그림자.
영원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올록 백작이 찾아오는데…
리얼 페인
A REAL PAIN
개요: 드라마 | 폴란드, 미국 | 90분
감독: 제시 아이젠버그
주연: 제시 아이젠버그, 키에란 컬킨
개봉: 2025.01.15.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달라도 너무 다른 정반대 사촌과의 여행, 괜찮을까?
생김새부터 성격, 취향까지 모든 것이 다른 두 사촌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에란 컬킨).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오랜만에 재회한다. 한때는 형제처럼 친밀했지만 각자의 삶과 가족 등의 이유로 멀어졌던 둘의 관계는 할머니의 고향인 폴란드를 방문해 투어를 떠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둘의 극과 극 성격은 투어에서도 균열을 만들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면서,
미묘한 감정의 골 또한 더욱 커져만 가는데...
파문
Ripples
개요: 드라마 | 일본 | 121분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주연: 츠츠이 마리코, 미츠이시 켄
개봉: 2025.01.15.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생명수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요리코’.
매일 생명수에 기도를 올리고 정원을 정리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집을 나갔던 남편이 암에 걸려 돌아오며 잔잔했던 ‘요리코’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이 일기 시작하는데…
은빛살구
Silver Apricot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21분
감독: 장만민
주연: 나애진, 안석환, 강봉성, 김진영, 최정현
개봉: 2025.01.15.
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줄거리
퇴근 후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나애진). 남자 친구 ‘경현’(강봉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울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 준비가 쉽지 않다.
이에 엄마 ‘미영’(박현숙)은 이혼할 때 ‘영주’(안석환)에게 받은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건네주고, ‘정서’는 아버지 ‘영주’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 벌교횟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가깝지만 먼, 낯선 가족들의 욕망에 휘말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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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로 만들어낸 최상의 공포
누구나 삶을 이어가며 몇 번의 성장을 이루어낸다. 갓 태어나 숨을 쉬고 기어 다니다가 첫걸음을 떼면서 성장의 속도는 빨라진다. 말을 하고 또 다양한 것들에 대해 교육받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자신을 발전해나가는 모습 그 자체는 어쩌면 삶을 이어가는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장이라는 것이 꼭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앉아서 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혼자 깨닫게 되는 것 또한 사람을 한 단계 성장시킨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성장의 계단을 밟아 가는 것은 중요하다.
어찌 보면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생존에 필요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씩 개인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갔던 것은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었다. 전쟁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이겨내고 성장을 이루어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신체적 장애는 그들에게 절망을 안긴다. 하지만 그 제약 속에서도 그들 또한 나름의 성장을 이루어 낸다. 그렇게 다양한 개개인들이 성장을 해내는 과정들이 모여 전체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성장으로 만들어진 삶은 그다음 세대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것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는 또 그들만의 성장을 이루어낸다.
청각장애인 레건의 성장 서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성장에 대한 서사가 담겨있는 공포영화다. 영화 속 세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앞을 볼 수 없지만 소리를 예민하게 들을 수 있는 괴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런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한 가족이 한 시골 농장에서 그들의 삶을 이어가려다 벌어지는 이야기가 1편에 담겼었다. 1편은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는 과정을 그리면서 가족 중 막내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줬던 영화였다. 한 가족이 슬픔과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2편은 1편 바로 직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한 가족 중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딸 레건(밀리센트 시몬스)의 모험과 성장이 이야기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레건 때문인지 모든 가족들은 수화로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소리를 내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리에 예민한 괴수들에게 들키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서로 다독이며 한 동안 특정 공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레건에게도 영화 속 상황이 절망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작은 힘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1편의 마지막에 발견한 괴수의 약점은 그가 가진 장점을 좀 더 부각한다.
엄마인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은 갓 태어난 갓난아이까지 포함하여 레건, 마커스(노아 주프)까지 총 세 명의 아이를 혼자 보호해야 한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좀 더 레건과 마커스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마커스는 아직 너무 어리고 레건은 청각장애가 있기 때문에 에블린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 좀 더 바쁘게 움직인다. 영화 내내 보이는 에블린의 모습은 그 상황이 너무나 공포스럽고 무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은 가족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보인다. 1편에서는 그나마 남편 리(존 크래신스키)가 그를 지켜주고 의지할 수 있었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가 의지할 곳은 없어 보인다. 새롭게 등장하는 에밋(킬리언 머피)이 있지만 자신의 가족을 잃은 그는 그저 책임을 회피하고 혼자 지내고 싶어 하는 약한 인물일 뿐이다.
영화는 어른인 에블린이나 에밋의 서사에 주목하기보다는 사춘기를 막 지나간 딸 레건의 서사를 보여준다.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애초부터 그에게 혼자 모험을 하거나 성장하는 모습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1편에서 괴물의 약점을 발견해낸 것도 레건이었고, 2편에서 상황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도 레건이다. 어찌 보면 가장 약해 보이는 캐릭터인 그에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쥐어준 셈이다. 레건이 혼자 길을 떠나고, 또다시 만나게 된 에밋을 설득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가족을 넘어 전 인류를 구하려는 영웅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침착하게 주변을 이용하고 자신을 돕는 인물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한 소녀의 성장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든다.
소리로 만들어내는 효과적인 공포와 스릴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소리가 중요한 영화다. 1편과 마찬가지로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소리를 내면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이 조용히 행동할 때 같이 숨을 죽였다가 의도치 않게 소리가 나는 순간 주인공들과 함께 입을 틀어막게 만든다. 레건이 보청기를 뺐을 때, 똑같이 무음으로 화면을 같이 보여주는 것을 통해 관객들을 그 상황 자체를 체험할 수 있게 구성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다른 어느 곳 보다 극장의 환경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운드가 좋고 어두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주인공들의 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괴물이 처음 등장했던 첫 날을 보여준다. 아빠 리와 에블린, 레건과 막내아들이 아들 마커스의 야구 경기를 보러 갔던 그날 겪었던 일을 하나의 시퀀스로 보여주는데, 무척 긴장감이 넘친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마을의 모습과 많은 괴수들의 출연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감독 존 크래신스키는 배우 출신으로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로 감독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영화의 첫 장면을 롱테이크 한 컷으로 촬영을 완료하면서 생동감 있는 재난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에블린을 맡은 에밀리 블런트는 1편에 이어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편으론 눈물을 흘리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을 다잡고 괴물을 때려잡는 모습은 배우가 가지고 있는 강인하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새로운 인물 에밋으로 등장하는 배우 킬리언 머피는 이번 영화에서 삶의 의지를 잃은 선한 가장을 연기했다. 악역을 많이 연기했던 그는 눈에서 힘을 뺀 연기로 레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레건 역할을 맡은 배우 밀리센트 시몬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는 실제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농아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다 배우로 데뷔했다. 영화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실제 그의 삶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가 포함된 연기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수화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영화 속 레건의 모습 그 자체로 보인다. 영화 속 레건이 자신의 의지로 자신만의 성장을 이루어냈던 것처럼, 배우 밀리센트 시몬스도 자신의 연기 경력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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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이지만, 그래서 특별한 K 엄마의 독립선언!
살고 있는 집이 내 집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 있나? <다섯 번째 방>의 주인공인 김효정씨는 그렇다고 말한다. 3대가 사는 집에서 겪은 30년간의 시댁살이, 여기에 남편과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삶 속에 놓인 그녀는 안타깝게도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 이 부재는 눈덩이처럼 커져 본인 자체가 내 집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 알게 모르게 김효정씨와 비슷한 삶을 산 엄마들은 이 부분에 고개를 끄덕일 듯. 이같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보통의 K 엄마의 특별한 독립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것도 딴 사람이 아닌 실제 딸이.
김효정씨가 사는 집은 시부모 소유의 2층 양옥집이다. 여기서 30년 동안 시부모, 남편, 그리고 3명의 아이와 함께 살았다. 살고 있으니 내 집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그녀지만, 이게 바보 같은 자기 합리화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계기는 남편의 소파 사업이 실패하고, 전문 상담가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하면서다.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그녀는 자신만의 방이 필요했고, 힘든 설득 후 2층에 그 공간을 마련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은 불쑥불쑥 그곳을 침범하는 일이 잦아지고, 급기야 실소유주인 시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 집 지분을 상속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가장임에도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이 집과 가족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독립을 선언한다.
날 돌봐주는 사람은 이 집에 아무도 없어.
김효정씨의 이 말 한마디가 다큐의 시작이었다. 엄마의 뼈 있는 말을 듣는 순간 카메라를 든 전찬영 감독은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몰랐던 엄마를 카메라에 담았다. 단편 <바보 아빠> <집 속의 집 속의 집> 등 아빠의 이야기를 담은 전작들과 달리, 감독은 이 집에서 위기에 처한 엄마를 보여준다. 보통의 엄마, 가족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지 않았던 가족간의 미세한 균열이 보이고, 그 틈 사이로 보이는 진짜 엄마, 아니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렸던 김효정이란 여성을 마주한다.
김효정씨가 자아를 찾는 방법은 ‘방’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다섯 번째 방’은 비로소 엄마가 찾은 자기만의 공간을 뜻한다. 시댁살이를 하면서 타의로 방을 3번 옮겼고, 자의의 노력으로 2층 방을 사무 및 휴식 공간으로 만든 그녀이지만, 결국 자기만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사랑하지만 너무나 가까워서 그 공간을 엄마의 방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침범은 이 공간과 공간의 주인인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아이러니 한 건 엄마가 가장이 되어 가정을 이끄는 주체가 되었음에도 가족들은 이를 인식하거나 인지했어도 그렇게 행동하기를 꺼린다는 것에 있다. 가부장적 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구성원들에게 엄마는 돈을 버는 가장인 동시에 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설거지도 안 하는 가족들의 모습, 노동을 하고 와서도 집안일을 해야 하는 엄마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의 독립은 자기 공간을 갖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도 보인다.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이 가장의 역할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그녀의 울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이내 폭발한다. 시어머니에게 집 처분에 대한 울분을 토하고, 친정아버지 장례식에서 술 마시고 소란을 핀 남편에게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퍼붓는다. 감정의 파고를 넘나드는 후반부를 보면 전반부는 태풍의 눈 안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집에서 비일비재한 사건처럼 보이는 작품 속 이야기지만, 이 다큐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뒤늦게라도 가부장적 제도에 용기 내 목소리를 낸 엄마와 이를 카메라로 독려하며 연대의 손을 내민 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사이자 가정폭력 예방 강사인 김효정씨는 많은 이들 앞에서 얘기하는 바를 비로소 실천한다. 견고하게 쌓인 가부장적 제도에 맞서 내는 작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는 여성인 딸의 카메라에 가감없이 담긴다. 화려한 카메라 워킹이나 편집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지는 엄마의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준다. 피하지 않고 부딪히고, 어떻게든 소통하며 합일점을 찾는 그 과정을 결혼 후 30년 만에 처음한 그녀는 비로소 자유를 찾고, 자기 공간을 찾는 동력을 얻는다. 한 명이 희생하면 가족 모두가 편하니까 딸이자 여성임에도 엄마의 책임과 힘듦을 묵인했다 말한 감독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듯 딸로서, 여성으로서 그 누구보다 강한 엄마와 김효정씨의 모습을 오롯이 담는다.
제24회 부산독립영화제 관객심사단상, 제20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시청자&관객상을 받는 등 <다섯 번째 방>은 보편성의 힘이 강한 작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를 공감케 하는 인물은 악역을 자처하는 아버지 덕분이다.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 집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엄마, 아빠를 객관화하기 어려웠다는 감독은 최대한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이들을 대하는데, 이 노력으로 아버지는 단순히 문제의 온상으로만 비치지 않는다. 후반부로 가서는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이 다큐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가족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보편성을 확보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 애정과 애증의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김효정씨의 인생이자 전찬영 감독의 가정사이며,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씨네소파
평점: 3.5 /5.0
한줄평: 보편적이지만, 그래서 특별한 K 엄마의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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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먼쇼>
<트루먼쇼>
" 시간이 한참 지나 의미가 보이는 만큼 재미있어야 진짜 명작이다. "
<트루먼 쇼>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짐 캐리의 명연기? 세간을 뒤흔든 신선한 소재? 곳곳에 숨은 미장센? 감독의 연출력? ...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지면 이런 명작이 나오게 되는 걸까. 처음 <트루먼 쇼>를 봤던 날 느꼈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제 각기 살아가면서 한 번쯤 떠올려보는 '사실 내 삶이 조작된 게 아닐까?' 라는 가벼운 상상력이 이토록 멋진 영화로 연출되다니, 현대에도 신선한 이 영화, TV와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1998년도에는 얼마나 더 큰 파급력을 일으켰을지 말로 설명할수록 부족할 뿐이다. 방송학을 전공하거나, 미디어 관련 쪽의 강의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의미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여전히 명작으로 불리우는이유 중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재미있다'는 점이다. 개봉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만약 당신의 삶이 모두 거짓이었다면? 당신이 살아온 그 무수한 삶들이 사실은 조작된 것이었다면 당신은 어떨까. 허망할까, 아니면 분노하게 될까. 영화는 본질적인 존재 '당신'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도 알고보니 배우였고 어린시절 당신을 힘들게 했던 트라우마도 각본이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던 말이 연기였을 뿐이고 사건은 시간에 맞게 적절히 맞춰 일어난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때마다 느꼈던 그 감정은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짜여진 대로 맞춰가야 했던 당신의 삶 속, 당신이 한 생각과 느낀 감정들이 과연 진짜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했던 데카르트의 말처럼 트루먼(짐 캐리) 또한 거짓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의 삶만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적어도 영화 속 주인공의 생각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굉장히 잘 짜맞춰져 있다보니 스토리를 놓칠 겨를 없이 보는 재미가 있다. 초중반부에서는 잔잔하게 이어지는 듯 하지만 중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에 속도가 붙기 때문에 한 눈 팔 새 없이 순신각에 몰입하게 된다. 밝고 명량한 분위기와 다르게 간혹 섬짓한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이런 장면들을 짜맞춰서 스토리를 읽어내는 것도 나름 큰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스토리 자체가 촬영되고 있는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꽤나 독특한 카메라 구도와 미장센의 연출을 보는데도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짐 캐리 특유의 유쾌한 연기와 배우들의 적절한 호흡이 영화와 잘 맞아 떨어지지 않나 생각이 든다. 스토리 흐름이 좀 억지스럽지 않나 느껴질수도 있지만 영화의 배경 자체가 만들어진 세상이다 보니 이것 또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영화가 미디어 시대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냈다는 의견도 많은 편이다. 1998년이라면 TV 미디어가 가진 파급력이 워낙 강했던 때였고 빅 브라더에 대한 경각심도 강조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트루먼을 바라보던 인물들도 시청자였지만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도 한 인간의 만들어진 삶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네 삶에 시청자들은 미디어의 편집과 각색으로 만들어진 삶에 살고있다. 미디어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우리네 삶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처럼 전파한다. 살인사건, 혐오전쟁, 전쟁, 테러 등 위험하고도 자극적인 뉴스가 방영되고 나면 우리네 삶을 위협하는 것 처럼 느껴지니까 말이다. 영화는 이러한 미디어가 만들어놓은 사회에서 벗어나 진짜 당신의 삶을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TV에서 고개를 돌리면 당신이 사랑하는 현실이 있고, 당신 스스로가 '당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삶에서 당신의 인생을 즐기라고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죽음을 무릅쓰고 화면에서 벗어난 것처럼 미디어와 멀어진 지금의 삶이 불편할지언정 당신 또한 그렇게 벗어나라고 말이다. 시대를 흘러 이 영화가 더욱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TV에서 발전해 스마트폰과 SNS 사회 속 작은 화면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경고로 느껴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주려는 메시지는 당신 스스로가 선택한 삶만이 오직 당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이 조작된거야'라는 트루먼의 이야기에 부인, 동료, 친구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미쳤다라고 대답하고, 의구심에 못 이겨 여기저기 나서도 의도적으로 누군가 훼방을 놓는다. 여행을 가려해도, 도망치려 해도 마치 누군가 짠 것처럼 상황이 악화된다. 근데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이 묘하게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당신이 무얼 도전하려고 했을 때 '미쳤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상황이 여의치 않아 주어진 기회를 포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트루먼은 모든 것에 의구심을 품고 끈임없이 의심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떠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즉, 스스로의 가치관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넓은 세상에 거의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고난을 겪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부정당할수도 있고, 실패할수도 있다. 그럼에도 당신의 삶은 여전히 당신의 것으로 남아있다. 타인을 제쳐두고 당신만이 선택할 수 있으며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 시간에 스스로를 믿는다면 당신 또한 '트루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이 대사와 장면 정도는 알고 있을것이다. 진짜가 아닐지도 모르는 세상으로 향하며 트루먼은 미소를 남긴채 떠난다. 자신을 고립시키고 조작된 삶을 살게한 PD를 분노하지도 않고, 자신의 삶을 그저 쇼 오락거리 정도로 봐왔던 사람들에게 원망하지도 않는다. 마치 진짜 드라마의 엔딩처럼 웃으며 작별을 고한다. 그의 마지막 대사가 무슨 의미였는지는 아직까진 나도 알 수가 없지만, 자신만이 살아온 자신 스스로의 삶은 진짜인 것처럼 작별을 고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공이다.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삶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의심할 나위 없다. 진짜 세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편안한 환경을 벗어나, 불안할지도 모르는 미래로 떠난 트루먼처럼 당신도 스스로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 주인공처럼 웃으며 대사를 외칠 때가 되었다.
명작을 볼 때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반영된다. 언제, 어느 시기에 보았는지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어린 시절에는 TV속에서 탈출하겠단 의지를 가진 트루먼의 박진감과 짜릿함에 초점을 맞춰 보았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대중매체를 공부하며 미디어가 주는 억압과 편협된 세상에 초점을 맞춰 보았고, 최근에는 트루먼이 살았던 삶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보았다.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해석할 필요 없이 내 감정과 환경에 이끌리는 대로 보았다. 보고싶은 대로 이런 저런 견해를 짜맞춰 가며 봤다는 이야기다. 트루먼은 이야기한다. 'but in my world, you have nothing to fear' , 당신의 세상에서 두려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영화를 보는 당신도 어떻게 해석하든 자유다. 당신의 인생에서 어떻게 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The Truman Show>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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