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4-22 16:10:25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사는지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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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국내에서는 <나를 찾아줘> 등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미국판 <오징어 게임>에 참여합니다.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리메이크가 아닌 미국을 배경으로 한 스핀오프 시리즈로 변경되어 원작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으며, 2025년 말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초 The Playlist의 로드리고 페레즈는 핀처가 2021년부터 이 스핀오프를 구상해 왔으며, 이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핀처는 <차이나타운> 프리퀄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고 <오징어 게임>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넷플릭스는 아직 이 프로젝트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페레즈에 따르면, 지난해 핀처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 <유토피아>의 작가 데니스 켈리를 영입해 각본을 맡겼으나, 켈리가 여전히 참여 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CGV아트하우스 20주년 기획전
CGV아트하우스가 20주년을 맞아 기획전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은 연도별 한국 독립영화 화제작과 국외 예술영화 화제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수꾼>, <잉투기>, <우리들>, <홀리 모터스>, <문라이트> 등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들은 물론이고, 관객 수 역대 1위 작품인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시네마톡의 첫 작품인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도 상영될 예정입니다.
정식 개봉을 놓쳐서 아쉬웠던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닐까요?
한스 짐머 <듄: 파트 2>, 오스카 레이스 탈락
<라이온 킹>과 <듄>으로 두 차례의 오스카를 거머쥔 바 있는 음악감독 한스 짐머의 올해 수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카 아카데미 규정에 따르면, 후속작이나 프랜차이즈 작품의 경우 기존 음악의 20% 이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듄: 파트 2>의 경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한스 짐머는 Variety와의 인터뷰에서 상을 위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듄: 파트2>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러운 결말을 향해 테마를 확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쓰여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차기작 화려한 배우 캐스팅
<레버넌트: 죽음으로 돌아온 자>로 오스카를 수상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차기작에 캐스팅된 화려한 배우 라인업이 화제입니다. 톰 크루즈를 필두로 산드라 휠러, 리즈 아메드, 존 굿맨, 마이클 스털버그, 제시 플레먼스 등이 출연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냐리투의 영화는 "세상의 가장 강력한 인물이 자신이 인류의 구세주임을 입증하려고 미친 듯이 나서지만, 자신이 촉발한 재앙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전에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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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과 관음의 경계에서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는 저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사고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사건의 개요, 증거, 검거 과정 등 공개된 자료를 샅샅이 읽어보기를 즐겨 하지요. 그런데 가끔 그런 제 모습이 섬찟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려고 인터넷 세상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실제 사건들을 단순한 재미와 흥미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관심도 한순간에 관음으로 변할 수 있음에 몸서리치며,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곤 합니다.
<레드 룸스>는 누구든 관심과 관음의 경계에 설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둘 사이를 넘나들며 극악무도한 살인 용의자를 주시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살인, 납치, 스너프 필름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자극을 최대한 줄이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레드 룸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레드 룸스>는 2024년 10월 9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레드 룸스
Red Rooms
Summary
10대 소녀 3명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생중계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슈발리에’ 그리고 슈발리에의 재판을 매회 방청하는 모델 겸 해커 ‘켈리앤’. 심증만 있을 뿐, 물증 없는 재판이 길어지는 가운데 슈발리에를 추종하는 팬들과 희생자 가족이 대립한다. 한편, 존재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던 마지막 희생자 영상이 다크 웹에 등장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파스칼 플란테
출연: 줄리엣 가리에피, 로리 바빈, 맥스웰 맥카비-로코스
무언의 방식으로 경계를 흔들다
영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스펜스를 만듭니다. 스릴러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관객이 아는 사실을 주인공만 모르게 하거나, 여러 시점을 교차하며 조금씩 사실을 드러내는 등의 방식으로 긴장감을 조성하죠.
<레드 룸스>는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듭니다. 관객이 주인공 '켈리앤'에 관해 아는 내용은 극히 적습니다. 그가 컴퓨터에 꽤 해박한 것으로 보이며, 모델 일을 겸하고 있다는 정도지요. '켈리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목적이 있는지 관객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여백은 살인 용의자의 재판에 참석하고자 밤을 새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행동을 수상쩍게 만듭니다. 더불어 '켈리앤'이 선인인가, 악인인가에 관한 의문도 유발하죠. 이 사람의 행동을 관심으로 볼 것인가, 관음으로 볼 것인가? 그가 추구하는 것은 정의인가, 흥미인가? 의구심은 계속해서 커져만 갑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소리를 긴박하거나 과격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느리고 묵직한 움직임, 적시에 최소한으로 사용된 음악과 효과음으로 한없이 강렬한 장면들을 만들어내죠. 그 무엇도 명료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관객은 저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러한 연출력은 영화 초반부의 법정 신에서 빛을 발합니다. 초점을 두는 대상을 바꾸어 가며 촬영한 롱테이크로 지루함 없이 사건의 개요를 전달하고, 프레임 안에서 서로 어긋나는 시선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며 관객의 주목도를 높이죠. 이러한 시선의 교차는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몇 차례 더 등장하는데요. 발화하지 않고 오직 영화적 기술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레드 룸스>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입니다.
'클레멘타인'이라는 인물을 영리하게 사용해 '켈리앤'의 모호함을 강화하기도 합니다. '켈리앤'과 '클레멘타인'은 모두 노숙해서라도 살인 용의자 '슈발리에' 재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언론 매체는 그들을 모두 광팬으로 명명하죠. '클레멘타인'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켈리앤'과 달리 열정적으로 '슈발리에'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하이브리스토필리아(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끌림을 느낌) 성향의 광팬입니다. 그렇다면 '클레멘타인'과 같은 행동(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노숙하기)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켈리앤'도 같은 성향이 있는 사람일까요? 대중이 미치광이라 부르는 '클레멘타인'마저도 진실을 목도하고 재판장을 떠나갔는데, 그 이후에도 노숙을 이어가는 '켈리앤'은 그보다 더 미치광이인 걸까요? 이렇듯 인물을 사용한 교묘한 연출은 관객의 생각을 쥐고 흔들며, 중후반부의 긴장감을 계속해서 고도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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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세계 속 산재한 공포
'켈리앤'이 인터넷 세상에서 사용하는 아이디 '샬롯의 여인'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샬럿의 여인은 성안에서 오직 거울로만 세상을 바라보다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성밖으로 나가는 아서왕 이야기 속 인물입니다. 이때, 샬럿의 여인이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남성의 연인이 바로 극 중 '켈리앤'이 사용하는 인공지능 비서의 이름인 '기네비어'이기도 하죠.
현실에서는 언제나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세상의 면면을 속속들이 바라보는 '켈리앤'은마치 샬럿의 여인과도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가 아카이빙되어 있는 그의 메모장을 보면, '켈리앤'이 방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관음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켈리앤'과 샬럿의 여인을 동일시하여 바라본다면, 과감한 종국의 선택이 성 밖으로 나선 샬럿의 여인의 결단과 다를 바 없이 보입니다. 재판을 통해 디지털 세상 밖에서 처음으로 진짜('슈발리에')를 목격하고, 운명에 해가 되더라도 용감한 선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결말에 당도해 '켈리앤'이 저지르는 행동은 정의롭지만, 사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타자 몇 번, 클릭 몇 번에 손쉽게 각종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파악해 버리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는 다크웹 '레드 룸스'에서 가상화폐로 스너프 필름을 구매하는 과정이 말입니다. 우리의 디지털 일상이 얼마나 두려운 연결과 공유로 가득한지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이 세상은 달리 말하면 스마트폰에만 침투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음은 강력한 권능입니다. 어쩌면 정보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지요. 앞으로 우리가 필히 마주하게 될 범죄, <레드 룸스>의 이야기보다도 더 잔혹하고 낯설 디지털 세상의 개인정보 범죄가 더 두려워집니다.
One-Liner
계산된 여백과 영리한 연출로 만들어낸 강력한 저감도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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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라는 서정
올타임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가 뮤지컬에 이어 이번엔 영화로 곧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주인공은 60대의 여성 킬러 '조각'으로 철저하게 원칙 아래 세상에 존재하는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방역' 하던 중 그녀의 삶에 등장한 새로운 얼굴들에 의해 그 원칙들이 조금씩 깨져가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에 대한 높은 평가와 더불어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좀 처럼 찾아 보기 힘든 60대 여성 킬러를 소재로 하여 잠잠해진 극장가의 새 바람을 불어올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보다 <파과>를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는 원활한 영상화를 위해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비롯한 디테일들을 구성하여 보다 풍부하게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122분의 러닝타임 빼곡히 자리한 조각을 둘러싼 새로운 만남들은 오랜 시간 만남을 꺼려왔던 조각의 마음을 뒤흔듦과 동시에 조각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적 특성을 빠짐없이 보여주게 된다. 특히 원작보다 풍성해진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는 조각과 상반된 모습과 시종일관 그런 그녀를 뒤쫓는 인물로 그려지며 궁금증을 더하고 조각의 삶을 위협하는 극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파과> 만의 또 다른 진면목이 등장하게 되는데, 관객은 중반부부터 어쩐지 투우가 조각을 향해 분노가 아닌 색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조각과 투우, 두 인물의 대면씬마다 생겨나는 이 의구심은 영화의 결말까지 주요 관람 포인트가 되어주며 결국 한 명이 그 '진실'을 알아내는 순간 그간 쌓아올린 인물들의 감정선이 덩달아 폭발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우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강 선생'은 그야말로 조각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는 인물로 배우 투우와는 확연히 다른 차분한 어조와 행동 등으로 차이점을 보이며 의해 그간 흔들리지 않았던 원칙이 깨어지는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던 조각의 다짐과는 달리 자신을 구해준 강선생을 자신의 삶이라는 영역 안에 두고자 갈등하는 조각의 모습은 서정성을 보이게 되며 과연 그녀의 선택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일로 향할지 아님 변화의 길로 향할지 궁금증을 남기게 된다.
지금 밝힌 바와 같이 영화는 조각과 투우 그리고 강 선생이라는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이들을 둘러싼 전개가 이전 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간의 구조일 뿐더러 재차 강조하는 '60대 여성'의 삶 속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라는 것에 있어 색다른 관람을 선사하게 된다. 조각이 강 선생과 투우를 어째서 다르게 대할 수 밖에 없으며 투우는 그러한 차이에 왜 분노하게 되는지, 강 선생은 평범한 자신의 삶이 점차 위기 속으로 들어감에도 조각을 신경 쓰는지 등 그 관계성의 뒤를 정신없이 쫓다보면 어느새 영화는 그 끝으로 관객을 인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강렬한 만남에 간과하게 되는 또 다른 만남이 있다. 바로 강아지 '무용'의 존재이다. 원작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이 무용의 등장은 고단했던 조각의 삶을 상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변화를 암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역시 점차 변화하는 조각의 모습을 무용에게 건네는 대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길 위의 상처 받고 버려진 존재가 어떻게 세 인물에게 각각 해당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 역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일종의 세게관을 형성, 그 이후나 이전에 대해서도 역시 궁금증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한다. 신성방역이라는 킬러집단의 운영방식과 그 시작은 조각의 회상 등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되나 대모 라고 일컫어지는 조각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에 영화 이전과 이후 역시 상상하게끔 한다. 또한 너무 세계관에 심취하기보다 영화는 과감하게 캐릭텅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택함으로 화려한 액션 외에도 정제된 킬러의 삶을 거쳐온 조각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점이 조각을 둘러싼 세계관은 물론 회상으로써만 등장하는 스승 '류'와 그에게 많은 것을 전수 받은 '어린 조각'의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게 해 관객을 더욱 그 안으로 빨아들이는 효과를 빚어내게 된다.
인생은 타이밍 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저기 우스갯 소리로 쓰이곤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에 분명한 타이밍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를 둘러싼 인연이 특히 그러하다. 내 삶을 바꿔놓을 정도의 큰 파장이 사람으로부터 뻗어나온 경험은 다들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여기 조각의 삶이 그러하다. 킬러는 사람들을 죽이는 직업이기에 그 수많은 청소 대상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단 하나 뿐인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역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그렇게 킬러의 뒤를 바짝 쫓게된다. 이는 살아남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조각 역시 강 선생에게 구해지는 순간, 스승 류에게 구해지는 순간 잊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영원히 그 시간 속에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반면 어떤 이는 묵묵하게 그 시간을 가슴에 묻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간다. 그곳에서 비롯된 비극은 극적이나 관객의 가슴에도 크게 남게 된다. 영화 <파과>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놓치지 않고 강조한다. 내 인생을 뒤흔들 만남 그리고 그에 따른 시련 하지만 결국 그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고 기억하겠다 말하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하필 지금, 하필 이때 고독하게 살아오던 킬러 조각의 삶에 들어온 이들과 그들이 보여줄 서정. 이 영화 역시 다신의 타이밍에 맞게 찾아간 인연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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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서 '헬조선'이 싫어요
"추운 겨울, 해가 뜨기도 전 어두컴컴한 새벽. 집에서 머리카락도 말리지 못하고 급하게 뛰어나간다. 사람들이 가득한 초록색 마을버스를 탄다. 정거장 12개를 지나 내린다.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는다. 서울로 가려는 사람들로 지하철도 만원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다. '지옥철'에선 스트레칭조차 사치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탄다. 다시 12개 정거장을 가 강남역에 내린다. 강남역 근처 회사로 뛰어간다. 엘리베이터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겨우 ‘대리’라는 직함이 붙어 있는 회사 자리에 도착해 외투를 벗고 한숨을 쉰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린 시간만 2시간. 출근길이 아니라 전쟁을 치른 것 같다."
영화 시작과 함께 보여주는 계나(고아성)의 출근길과 내레이션은 보고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다. 우리는 이 같은 사회구조를 향해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비하하곤 한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행복을 찾아 직장과 가족을 두고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행을 택한 20대 계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언급한 내레이션과 함께 계나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별다른 것이 없다. '지옥의 통근길'이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고, 7년간 사귄 취준생 남자친구, 넉넉하지 않지만 자식들을 사랑하는 부모님. 20대 젊은이들의 평균치다. 물론 계나는 이 지점들이 지긋지긋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해 '한국이 싫어서' 떠나려고 결심한다.
뉴질랜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시계열을 따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 계나의 뉴질랜드 라이프와 한국에서 겪었던 삶을 끊임없이 교차하여 보여준다. 계나를 중심으로 7년 간 사귄 남자친구(김우겸)와 가족, 장수 고시생 대학 동기 경윤(박승현), 뉴질랜드에서 만난 유학원 동기 재인(주종혁)과 앨리(트래 테 위키), 유학원 가족과의 만남 등으로 관객들의 숨통을 죄었다 풀었다 한다.
원작이 출간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헬조선'이고, 팬데믹을 겪고 난 뒤에는 더욱 팍팍해졌다.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욜로', '소확행' 등 행복론들이 스쳐 지나갔고, 영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확신 없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물론 계나의 뉴질랜드 라이프도 녹록지는 않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느끼고, 인종차별을 겪기도 한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 한국생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행복이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하며 남의 기준에 맞춰 막연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사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따라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에선 미소 짓는 계나의 얼굴이 많이 잡힌다.
원작을 먼저 읽었던 관객들이라면 '한국이 싫어서'가 다소 판타지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한국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발생하는 불공정과 불평등사회에서 허덕이는 계나의 모습은 사라졌고, 이를 기민하고 날카롭게 찌르는 시선 또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건재 감독이 "뉴질랜드를 낭만화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히긴 했지만, 여전히 뭔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호불호가 갈리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법한 영화 이야기를 몰입하게 만드는 건 주연인 고아성 덕분이다. 현실 앞에 숨이 턱 막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실감 나는 얼굴로 분노하다가 해방감을 누리고, 어떤 때에는 다시 좌절하기도 하며 관객을 끌어당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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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의 첫 편이 나온 지 15년이 넘었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이야기의 초점은 흐려지고, 오로지 파괴적인 액션 장면들이 나열되는 느낌을 준다. 초기의 신선했던 감동은 점차 사라지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 시리즈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의 세계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 그들의 고향인 사이버트론이라는 행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애니메이션 영화 <트랜스포머 원>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사이버트론의 기원을 다루며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단순히 로봇 전투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들의 정치적 성장과 계급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정치적 함의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이제, 이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주요 캐릭터들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감정] 오라이온 팩스(옵티머스 프라임)의 자유
영화 <트랜스포머 원>에서 오라이온 팩스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 평범한 노동자 계층에 속하는 광부로 등장한다. 그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깊었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질서가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이버트론의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오라이온 팩스에게 큰 충격을 주며, 그는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진실을 알게된 그 순간은 그의 내면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오라이온 팩스는 시스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는 자유를 위해 싸우되, 과격한 방법 대신 온건한 접근을 택한다. 그의 목표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부패한 체계를 개선하고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비둘기파에 가까운 온건한 이상주의자적 태도이며, 사이버트론에서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영웅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오라이온 팩스가 선택하는 길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타협과 대화를 중시하는 방식이다. 그는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로 성장한다. 이는 그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단순한 전투영웅을 넘어선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이후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거듭나며 사이버트론의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 번째 감정] D-16(메가트론)의 분노
오라이온 팩스와 대조적으로 D-16, 즉 메가트론은 같은 노동자 계층에 속해 있지만, 그가 택한 길은 완전히 다르다. 메가트론은 처음에는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오라이온 팩스와 함께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메가트론은 체제의 틀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내면에서는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체제를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욕망으로 변모한다. 그는 현재의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고 믿는다. 메가트론의 이 파괴적인 성향은 그를 강경한 매파로 만든다. 그는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오직 새롭게 탄생할 세계를 꿈꾸며 폭력적인 혁명을 추진한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갈등하게 되는 핵심 원인이 된다.
하지만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파괴적 욕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며, 이 영화는 메가트론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더 깊이 파고들며 그의 폭력적 성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메가트론은 단순한 악역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로서 그의 캐릭터가 확립된다.
[세 번째 감정] 사이버트론 고대 조상들의 믿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에서 시작한 두 인물이 결국 각기 다른 정치적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이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들은 각 영웅들에게 지혜와 힘을 부여하며, 그들의 성장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흥미롭게도, 고대 조상들은 자유와 정의를 상징하는 오라이온 팩스, 즉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다. 그들은 사회를 파괴하기보다는 개선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개혁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러한 조상들의 믿음은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이 상징하는 두 가지 정치적 이념, 즉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을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는 결국 이 두 인물의 갈등을 통해 자유와 분노, 개혁과 혁명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들은 사이버트론의 미래를 두고 서로 대립하며, 그 과정에서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라는 두 영웅의 정치적 성장과 충돌을 보여준다.
조상들의 역할은 단순히 전설 속의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가 현대의 갈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남긴 유산은 두 인물의 행동에 방향성을 제시하며, 영화 속에서 사회적 진화와 혁신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제공한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이 갈등의 심오한 철학적 배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깊이
<트랜스포머 원>은 단순한 액션 애니메이션 이상의 깊이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는 사이버트론의 계급 갈등과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성장 과정을 그리며, 자유와 정의, 분노와 혁명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의 대립은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각기 다른 정치적 이념이 충돌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 영화는 특히 사이버트론이라는 세계의 기원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을 세밀하게 다룬 점에서 주목받는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로봇들의 전투 장면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인물들의 정치적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되는 정치적 주제들을 트랜스포머 세계를 통해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영화의 감독은 애니메이션계에서 유명한 조시 쿨리다. 그는 <토이 스토리 4>를 통해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은 감독으로, <트랜스포머 원>을 통해 트랜스포머 세계관의 깊이를 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이클 베이가 이끌었던 실사판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달리, 조시 쿨리는 이번 애니메이션에서 서사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특히 캐릭터들의 내면을 탐구하며 그들의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옵티머스 프라임, 즉 오라이온 팩스의 목소리를 맡은 크리스 햄스워스는 특유의 남성적이고 강렬한 목소리로 프라임의 리더십과 결단력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메가트론의 목소리를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그의 분노와 카리스마를 잘 전달하며 메가트론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두 배우의 목소리 연기는 영화의 감정선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트랜스포머 원>은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서사적으로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단순한 로봇 전투를 넘어, 정치적 성장을 그린 이 영화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기원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랜스포머 팬뿐만 아니라, 정치적 서사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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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결말 리뷰
혹시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기욤 뮈소"라는 작가를 아시나요?!
저는 이 작가를 참 좋아해서 신작이 나오면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가장 먼저 읽곤 하는데,
워낙 유명했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영화 버전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재미있게 보고 왔어요~
오늘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영화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30년 후의 내가 찾아왔다"
기본 정보
장르 : SF,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시대극
감독 / 각본 : 홍지영
출연진 : 김윤석, 변요한, 채서진
개봉일 : 2016년 12월 14일
평점 : 8.80
스트리밍 : tvN , NETFLIX, 왓챠, 티빙
기획 의도
인생을 뒤바꾼 기적 같은 10번의 기회
"넌 30년 전의 나고, 난 30년 후의 너야"
"과거는 되돌릴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역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당신에겐 과거지만 나한테 미래에요. 그 미래 내가 정하는 거고!"
사랑했던 연아를 꼭 한 번 보고 싶었다는 현재 수현의 말에
과거 수현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이어 믿기 힘든 미래에 대해 알게 되는데...
그 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내 인생도 바뀔 수 있을까요?
여담
기욤 뮈소 작가의 팬들은 한국에 참 많이 있다.
그러면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영화가 개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봤지만
안타깝게도 손익분기점은 넘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개봉한 날에 "라라랜드"의 막강한 경쟁상대와 붙어버렸으니.. 밀릴만하지
내용이 다소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드라마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사실은 책이 먼저 나오면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영화가 많이 나왔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결말을 살펴보자면
패암으로 죽을뻔한 수현은 미래의 수현 때문에 다행히 살아남는데,
그 중간 태호가 우연히 알게 된 수현의 비밀을 알게 되자
과거로 날라가 수현의 담배를 뺏으면서 다시는 담배를 못 피게 막아버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아는 과거에는 목숨을 잃었지만,
미래의 연아는 살아있으면서 수현과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이 내린다.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가는 타임 슬랩의 종류는
쫄리는 맛과 결말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 그래도를 느끼면서 보게 된다.
다행스럽게 원작이었던 소설책과 크게 별반 다르지 않아서
무난하게 봤던 것 같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책이 몇 배나 더 재미있는데!
시간이 있다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한줄평 : 당신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뭘 할 건가요?
(코..in...and 테..슬.. 우주,,갈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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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에버 퍼스트 러브 -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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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배급사 [콘텐츠패밀리]와의 저작관 협의를 통해 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작품 [포에버 퍼스트 러브]는 12월 9일 개봉하는 드라마, 로맨스 영화인데요!
여러분들은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과 맞춰가며 관계를 이어나간 적이 있나요?
오늘 이 두 남녀는 보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로맨스를 보여주며
서로 충돌하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무엇보다 어른들을 위한 솔직한 로맨스라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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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플러스 [호크아이] 메인 예고편
크리스마스엔 돌아올게? 올 겨울, 최고의 선물? [호크아이]는 오직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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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언차티드> 15초 예고편
누구나 꿈 하나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억만장자 돼서 꼭 뜨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