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4-15 11:36:44
4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포'바오가 <파묘> 밀어냄

오랜기간 사랑받아온 애니메이션 <쿵푸팬더>가 8년만의 신작 <쿵푸팬더4>로 돌아왔습니다.
<파묘>는 장기흥행을 멈추고 2위로 내려왔는데요. 이번주 박스오피스 함께해요



[국내박스오피스]

<쿵푸팬더4>는 지난 주말 40만여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영화는 3편 이후 8년 만에 나온 신작으로, 용의 전사로 거듭나 포가 스승 마스터 시푸의 명에 따라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 나서면서 겪는 모험을 그렸습니다. <파묘>는 12만여 명을 동원하며 2위, 일본 멜로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5만여 명을 모아 3위에 올랐습니다.
[북미박스오피스]

미국 독립영화사 A24가 제작과 배급을 맡은 <시빌 워>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내전이 벌어진 미국 사회의 전시 상황을 종군기자의 시점에서 담으며 커스틴 던스트를 비롯하여 와그너 모라, 스티븐 맥킨리 헨더슨, 케일리 스패니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엑스 마키나>로 알려진 알렉스 가랜드가 연출을 맡았으며 제작비 5,000만 달러가 들어간 A24의 역대 최고 제작비라고 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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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로 시작되는 괴기한 컷들의 나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CJ CGV
30년간 계속된 일가족 연쇄 살인 사건.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의 생일이 14일이라는 것과
'롱레그스'라는 서명이 적힌 암호 카드뿐.
영원히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에 남다른 능력의 FBI 요원 '리'가 투입되고
지금껏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암호를 해석하는데...
모든 프레임에 악마의 단서가 심어져 있는 지난 10년간 가장 무서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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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미스터리 중독자답게 <롱레그스>는 개봉 전부터 꽤나 기대하고 있던 영화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많이 감상하고 리뷰하게 되면서 생긴 신념 아닌 신념이 있는데, 바로 ㅡ 기대하면 할수록 그 기대를 반감하게 되는 작품을 만나게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이런 느낌의 포스터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롱레그스> 또한, 내가 딱히 선호하지 않는 '악마' 소재를 중점으로 마케팅하고 있었기에, 포스터 자체의 느낌은 너무나도 내 스타일인 세련된 호러처럼 보였음에도 스릴러와 미스터리가 적절히 믹스된 영화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감상해야지, 라고 마음 먹었다. 다시 말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의미 없는 '이렇게 하면 무섭겠지?'라는 가벼운 의도로 디자인된 컷들과 근본적이고 일차원적인 불쾌감을 일으키는 사운드로만 공포감을 이끌어가는 선택은 생각보다 더욱 실망이었다. 그럼에도 여타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인상 깊었던 부분들이 있어,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포인트1. 미장센
출처 : CJ CGV
위 장면들은 모두 영화 초반, 주인공 '리 하커'가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고 능력을 인정 받은 직후 '롱레그스' 사건에 투입되면서 나오는 컷들이다. 정제되고 차분한 톤에 꽉 찬 색감, 프레임 안에서 완벽하게 배치된 사물이 매우 아름다웠다. 인물의 무빙과 자세 또한 조화로웠다. 특히나 첫번째 장면에서는 숫자가 적힌 메모의 위치에 맞추어 증거물들을 정리하는데, 주인공이 사건에 몰입하여 시간이 경과되는 몽타주 시퀀스를 완벽하게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반사적으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처럼 위 컷들이 마음에 든다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겠다.
놀랍게도 정말 딱! 저 두 컷만 그렇다.
그래서 대표 스틸컷으로 홍보된 걸까? 나머지 장면들은 거의 모두 애매한 인물샷과 롱샷으로 이루어진다.
출처 : CJ CGV
또 다른 특징으로는 4:3 비율과 16:9 비율이 적절하게 섞여, 극중 각기 다른 시점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 있다. 이 부분은 관람하면서 딱히 거슬리지도 않았고 오히려 레트로한 호러 장르를 살리기에 매력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4:3 비율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다.
첫 번째 스틸컷을 자세히 보면 각 모서리들이 둥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카메라의 뷰파인더 모양 같기도 한 이 프레임은 극중 리 하커가 FBI 내에서 잠재적인 능력을 평가 받는 특이한 테스트를 진행할 때 나온 화면과 같은 모양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해당 그래픽이 주요하게 사용되어 나에게 이미지가 각인 되어 있었고, 심지어 테스트를 받는 리 하커가 빔 프로젝터로 송출되는 화면을 바라보는 장면의 구도가 관객이 영화 스크린을 바라보는 모습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어? 이거 오프닝이 떠오르네? 중요한 장면인가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고 해당 장면도 스토리 진행을 위한 개연성 부여일 뿐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도 살짝 김이 샜다.
포인트2. '롱레그스'의 의미
제목을 장식하는 키워드일수록 의미 없는 단어는 없기 마련이다. 감독의 마음이란 그렇다. '롱레그스'는 극을 관통하는 빌런이자, 오프닝에서 위압감을 조성하는 의문의 등장인물로 나오며, 대사로도 언급된다. 심지어 '롱레그스'의 얼굴을 오프닝 시퀀스의 점프 스케어로 활용하여 트랜지션 되고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이 정도로 중요한 역할들이 부여된 '롱레그스'라는 키워드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로 뻗어 나갈까 기대가 됐다. 그러나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큰 의미는 없다고 한다. 그저 단어가 흥미롭고 어감이 좋아서, 라고 한다. 이 부분에서 다시금 김이 샜다. 아, 이 감독님 그저 괴기스러운 이미지의 향연이 좋을 뿐 어떠한 깊은 사유에서 은은한 기괴함이 연출될 수 있는지 크게 고민하지 않으시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걸 확신했다.
'롱레그스' 캐릭터의 시그니처 또한 배우의 개인적인 연구에서 도출되었다고 한다. 아, 여기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력은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작년 상반기에 관람했던 <드림 시나리오>에서도 독특한 연기력과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이 돋보였던 배우였기에 <롱레그스>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궁금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감상했고,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검색하던 도중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아, 여기서 니콜라스 케이지 나왔었지? 그럼 대체 누구로?' 기존에 정착된 배우의 이미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연기력으로 롱레그스를 소화했음은 아무런 여지 없이 인정한다.
다시 돌아와서, '롱레그스'라는 캐릭터의 기묘함이 유지되는 데에는 그의 제스처, 목소리 톤, 반복적인 말버릇 등이 있는데 이 모든 요소들이 배우의 개인적인 연구와 도전정신에서 구축되었다는 사실 ㅡ 특히 배우의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 본인을 깜짝 놀래키기 위해 사용하셨던 특징들에 영감 받았다고 한다 ㅡ 은 감독이 직접 탄생시킨 '롱레그스' 고유의 서사가 없을 거라는 추측에 힘을 더 실어줬기에 배우 개인에게는 감탄하게 되면서 작품 전체에는 실망하게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포인트3. 성경 구절
출처 : CJ CGV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에서 성경 속 설화나 특정 구절을 인용하는 연출 방식을 매우 좋아한다. 인간의 역사 속 깊은 순간부터 함께 해 왔고, 커다란 기둥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인간의 이야기를 창작하고 담아내는 '영화'가 그러한 요소를 활용할 수록 풍부하고 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롱레그스> 또한 악마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성경이 안 나올 수가 없었으나, 특히 아래와 같은 구절을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반복적으로 상기시켰다.
And I stood upon the sand of the sea, and saw a beast rise up out of the sea,
having seven heads and ten horns,
and upon his horns ten crowns, and upon his heads the name of blasphemy.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3장 1절
: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적그리스도(국가권력)이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선지자(종교권력)이며, 이적을 행하는 영적능력을 사탄에게 부여 받는다. 타락한 종교권력인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숭배하게 만든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신격화하여 숭배하게 만든다. 두 짐승은 동맹 관계에 있다고 추론된다. 또한, 둘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서로 연합전선을 펼친다. ... 이마에 있는 참람된 말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직접적인 증오심을 나타낸다.
나는 믿고 있는 종교도 없거니와, 성경에 대한 지식도 없어서 알음알음 검색을 통해, 여러 매체를 통해, 혹은 지인을 통해 궁금한 점이 생기면 연관된 내용과 의미를 찾아보고는 한다. 위 내용 또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롱레그스>에서 중요하게 나오는 상징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우선, 영화에서는 역삼각형의 숫자 6이 3번 쓰여 있는 그림이 살인 사건의 해결을 이끄는 근거로서 제시된다.
서구권에서 일반적으로 불길함을 의미하고, 악마의 숫자로 일컬어지는 '6'은 악마/사탄, 적그리스도(예수 반대파), 거짓선지자를 의미하는 숫자 '666'으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 내내 인용되는 '요한계시록'이 갖는 의미와 연관 짓는다면 말 그대로 '악마' 그 자체의 명을 받아 살인을 행하는 '롱레그스'(거짓선지자), 그리고 롱레그스의 명을 다시금 받아 인형을 전달하고 살인을 행했던 '리의 엄마'(적그리스도). 이 세 인물이 모여 미제로 이어지던 살인 사건이 완전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위 문양을 통해 리 하커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사건의 실마리를 드디어 풀어 나가게 되었다는 개연성이 완성되기는 한다.
따라서, 각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그들의 실질적 위치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흥미로울 듯하다.
You're dirty and sweet, oh yeah
넌 더럽고 달콤해
Well you're slim and you're weak
좋아 넌 날씬하고 가녀리지
You've got the teeth of the hydra upon you
넌 히드라의 이를 가졌지
You're dirty sweet and you're my girl
넌 음란한 달콤함 그래서 내 여자야<롱레그스>의 시작은 위 가사를 인용한 장면으로, 끝은 실제 노래가 흘러 나오며 마무리된다.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톤이 이 노래로 설정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이다. 성경 구절로 해석한 맥락에서 생각해보자면, 어쩌면 이 노래의 화자는 청자를 보살피고 끔찍이 여기는 '위'에 위치한 인물로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애초부터 '악마' 그 자체의 입장에서 영화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에 '아랫층'의 사람, 땅보다 밑에 있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인물, 적그리스도, '리의 엄마'로서 살인 사건이 진행되었다...라는 스토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석해보았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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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캡틴을 봤지만 옛날 캡틴이 그리운 이유
새로운 캡틴을 봤지만 옛날 캡틴이 그리운 이유
연이은 부진한 영화 성적으로 마블은 연간 영화 2편, 드라마 3편 정도만 제작해 콘텐츠의 품질에 신경 쓰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 시작은 아니지만, 영화의 질에 집중하는 과정으로서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브뉴월')는 꽤나 상징적이다. '캡틴'이 '어벤져스' 내에 의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앞으로의 마블 영화의 방향에 아주 중요한 순간에 새로운 '캡틴'의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것은 기존 마블 골수팬들은 물론, 마블의 전성기 영화를 라이트하게 즐겼던 일반 대중들에게도 일종의 '마지막 희망'으로 서 작동했다. '인피니티 사가'의 스토리를 따라갔던 그 열광과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있길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브뉴월'은 그렇게 작용했을까? 분명 낯선 캐릭터도 아니며, 우리가 익히 아는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보지만 어쩐지 영화를 보고 나면 과거의 마블 영화가 으레 그랬듯 어떠한 '기대감'보다는 '헛헛한' 감정이 제일 먼저 든 이유는 왜일까.
첫 번째 이유 : 고뇌하지 않는 인물
"You are NOT STEVE ROGERS"
기어이 미국의 대통령직까지 달성하게 된 '로스' 대통령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된 '샘'에게 했던 대사다. 필자의 생각엔 이 질문이 '브뉴월'을 끌고 나아가는 동력이 되었어야 했다. '스티브 로저스'가 아닌 '샘 윌슨'의 캡틴 아메리카를 보여주려면 그에 대한 차별화된 답이 제시 됐어야 했다. 우리가, 이미 인피티니 사가의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에 익숙해져 있는 일반 관객이 '샘 윌슨'을 2대 '캡아'로 인정하려면 공감 가는 서사가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영웅적 신념, 고민이 선대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필연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2대'의 이야기와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성장 서사... 등등 '2대'라는 것이 갖고 있는 여러 특질들을 '샘 윌슨'이라는 캐릭터에 녹여낼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관객은 좀 더 공감하며 새로운 캡틴에 비로소 익숙해지고 지지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2대'가 갖고 있는 설움을 겪어본 적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브뉴월'의 '캡틴'은 정말 그저 '군인 캡틴'으로만 전락하고 말았다. 본인의 신념보다는 '명령'이 우선인 군인 캐릭터는 우리가 '캡아'에게 기대했던 것이 아니다. 그가 '미국'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만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정부에 저항을 해서라도 지켜나갈 줄 아는 '뚝심'을 말이다. 하지만 다분히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미 대통령'과 '캡틴 아메리카'의 대립적 관계는 그저 '로스 장군'의 개인적인 심장병 문제, 약물 문제, '리더'의 계략이라는 제3의 문제로 희석된다. 우리가 기대하는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내세우지 못한 채, '샘'만이 갖고 있는 신념도 드러내지 못한 채, 그저 '로스'와 '샘'의 개인적 싸움에서만 그친다. 레드 헐크로 변한 '로스'를 잠재운 것도 '샘'만의 신념이 아닌 '배티'와의 약속이라는 다분히 감성적인 요인인 것도 본래 '캡아'만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재미를 심하게 희석시킨다.
우리는 고뇌하지 않는 영웅 캐릭터에 매력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다크나이트> 트릴로지가 영화계에 등장한 이후, 단순한 히어로 캐릭터를 보는 것은 이제 매력적이지 못하다. 선대 '캡아'와의 관계에서 '2대 캡아'인 '샘'의 위치, 그러한 '샘'만의 신념, 그리고 그러한 신념을 위한 고뇌가 없는 영웅이었던 '브뉴월'의 캡틴, 그래서 필자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 '스티브'의 캡틴이 다시 떠올랐고, 그래서 '헛헛한' 감정을 느꼈다.
(물론, '브뉴월'에서 '샘'의 서사를 보여주기 위한 내적 고뇌는 바로 '슈퍼 혈청'도, 최첨단 슈트도 없는 평범한 인간인 내가 히어로를 할 수 있을까? 였다. 그러나 정작 레드헐크를 제압하는 데 사용된 슈트는 '와칸다'의 최신 기술이 들어간 슈트였으며, '로스'와의 갈등을 해소한 것도 그저 '샘'의 '감성 팔이'라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 : 매력 없는 빌런의 배치
'히어로' 영화 장르는 프로타고니스트가 '히어로'인 만큼 빌런인 안타고니스트의 매력도 중요하다. 수작이라 평가받는 히어로 영화의 '빌런' 캐릭터는 '히어로' 캐릭터만큼이나 공을 들여서 만든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서사에서 서로 상호대립하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는 것처럼, 히어로와 빌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브뉴월'의 빌런은 어떠한가? 이 영화에는 총 세 명이 등장한다. 서펀트 소사이어티의 리더 격인 '사이드 와인더', 그들과 협력 관계로 있었던 최종 보스 '리더(사무엘 스턴스)' 그리고 그의 복수 대상인 미 대통령 '레드 헐크(로스)'. 사실 각각의 빌런 캐릭터만 떼어 놓고 보면 꽤 괜찮은 서사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이드 와인더'는 전형적인 정치 스릴러 내지 첩보물의 빌런이며 '리더'는 '제모 남작', '리들러'와 같은 전형적인 두뇌형 악당 캐릭터, '레드 헐크'는 헐크와 맞먹는 힘과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때려 부수는' 빌런 캐릭터. 사실 아주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이 스토리 속에서 기능하는 방식 혹은 배치되어 있는 방식으로 인해 서사의 힘이 떨어져 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브뉴월'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리더'의 등장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리더의 분장도 맘에 썩 들진 않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이니 제쳐두더라도, '리더'의 등장이 너무 빨랐다. '리더'는 좀 더 비밀스럽고 음침하게 어둠 속에서 미국을 조종하고 있어야 했다. 사람들을 조종하고, 그 배후가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는 이 영화를 좀 더 '정치 스릴러적'인 분위기로 끌고 갔을 것이다. 또, 큰 문제는 '리더'가 대립하고 있는 상대가 '캡틴 아메리카'인 '샘 윌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실험실에 가두고 미국을 위한 실험쥐처럼 이용한 '로스'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한 것이다. 너무 빨리 정체가 공개된 '리더'의 '개인적 복수심'은 거대한 정치적 스릴러였던 초반의 분위기를 평범한 SF로 희석시킨다. 개인적인 심장 문제로 딸과의 화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벌고 싶어 하는 '로스'의 개인적 욕망, 10년간 '로스'에게 갇혀 미국의 실험쥐로 이용당한 '리더'의 개인적 복수심 사이, 우리의 주인공 '캡아'의 신념은 사실 설 자리가 없다.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서사적 갈등이 문제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서사에 이러한 개인적 복수심과 개인적 욕망은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물론 '리더'가 미국 전체를 공격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캡틴의 대결이라 볼 수도 있지만, 리더의 복수의 대상이 하필이면 미 대통령이 된 것이지 미국 체제의 전복이 그의 주목적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리더'와 '캡틴 아메리카'의 대립은 어딘지 모르게 '붕 떠있는' 느낌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차라리 '리더'의 등장이라도 늦췄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이드 와인더'의 분량이다. 작중 유일하게 '캡틴 아메리카'와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라면 '리더'도, '레드헐크'도 아닌 '사이드 와인더'이다. 하지만 서펀트 소사이어티라는 집단에 대한 설명이 명확히 되지 않았다. 마블에 대한 '찐팬'이 아니라면 대체 뭐 하는 집단인지, 왜 캡틴 아메리카랑 대립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극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평범한 액션 첩보극의 빌런으로서 대중들이 낯설어하는 인물을 아니지만, 그렇다고 캡틴과의 서사적 관계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아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반부, 그는 '캡틴'에게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되고 이후에 내뱉는 대사는 관객들에게 아직 우리는 적대 관계임을 보여주는 작위적인 대사까지 등장한다. 대체 서펀트 소사이어티가 캡틴을 싫어하는지, 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보여주기만 한다. 관객은 충분한 이해 없이 따라갈 뿐이다. 그래서 멋진 CG 액션이 등장하지만 과거처럼 몰입하기 힘들다. 이 또한 꽤 아쉬웠던 부분이다.
마지막으로는 '레드 헐크'는 서사의 도구로서만 사용되고 버려진다. '레드 헐크'는 '브뉴월'의 예고편 속 등장으로 굉장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작중 등장시간은 최후반부 전투씬이 전부다. 그마저도 이전의 마블 영화들의 최후 전투씬에 비해 다소 빈약한 액션신을 보여준다. 영화의 대부분은 사실 '로스' 장군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그가 갖고 있는 딸과의 갈등, 이전의 모습과 달라져서 딸과 화해하고 싶은 욕망이 극을 이끌어가는 그의 주된 동기이다. 그의 욕망을 방해하는 것은 '리더'의 혈청 투약으로 인한 내적 분노뿐이다. 그의 욕망을 방해하는 주된 요인이 자신의 정의를 실현시키려는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이라면 좀 더 몰입감 있는 플롯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이유 : 구심점 없는 스토리
사실 '브뉴월'은 평이하게 잘 만든, 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새로운 캡틴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 관여도가 낮게 되는 이유의 가장 큰 문제는 구심점 없는 이야기가 크다고 생각한다. 위에 설명했듯, 인물의 관계가 각자 '따로 노는' 느낌이다. 이렇다 할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도 사실 크게 없다. 2대 팔콘이 되려는 '토레스'도 왜 팔콘이 되고 싶어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인물이 작동하는 방식에 '왜'를 설명하기보다 그저 보여주고 관객은 따라갈 뿐이다. '토레스'의 열정이 이해되지 않은 채 전투기 액션 장면에서 소위 과한 열정으로 '나대다가' 위험에 빠지는 클리셰는 지루할 따름이다. 인물의 유기적 관계가 없어 이야기의 구심점을 잃는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많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는 것에 충분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충분히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터매니아>처럼 혹평을 들을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마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캐릭터의 매력도가 높아야 한다. 우리가 캐릭터를 맘에 들어하고 그 캐릭터를 '덕질'하는 것이 마블과 같은 히어로 장르가 나아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인물들이 보여줄 것만 보여주는 식의 안정적이지만 그 이상이 없는 전개는 앞으로의 마블을 기대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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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바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스르고 접붙여
6★/10★
87년 동안 물질을 해온 현순직 해녀와 이제 막 해녀 일을 시작한 30대의 채지애 해녀. 〈물꽃의 전설〉은 두 해녀 사이에 놓인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스르고, 접붙인다. 해녀 일에 대한 현순직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녀는 물질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았고, 그곳에서 항상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순직은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종종 바다로 나가 지난날을 회상한다. 이미 중년이 된 막내아들은 혹시나 어머니가 또 바닷속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전화로 신신당부하고, 현순직은 속내를 들켰다는 듯 웃는다. 현순직에게 바다는 삶 그 자체다.
채지애 해녀는 사회생활을 해녀 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채지애의 어머니는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 다니던 딸이 해녀 일을 하겠다는 게 영 마뜩잖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해녀 일은 “낭만적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고된 노동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채지애의 어머니는 아기 우윳값이라도 벌겠다는 절박함으로 수십 년간 물질을 해왔다. 제주의 해녀라면 눈 내리는 바다에서 물질한 후 외로이 숨비 소리를 낼 때의 고독함과 친해져야만 한다. 그러나 동시에, 딸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녀 물질의 목표였던 딸과 같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지난 삶에 대한 딸의 이해와 공감이라는 형태로 돌아왔음에 대한, 즉 그녀의 노동이 소외되지 않았음에 대한 떳떳함의 발로일 것이다.
해녀가 경력이 쌓이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상군 해녀’라 불린다. 현순직은 상군 중의 상군인 ‘대상군 해녀’였다. 대상군 해녀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바닷속 지도와 지형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해녀에게만 허락된 이름이다. 현순직은 지금도 그 풍경이 눈에 훤하다는 듯 바다별 특징과 그곳에서 잡을 수 있는 해양 생물을 줄줄이 읊는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황홀한 바닷속 ‘들물여’로 채지애와 함께 향한다.
그러나 현순직의 기억과 지금 제주 바닷속 정경은 일치하지 않는다. 채지애는 현순직이 일러준 곳에 들어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물꽃을 찾아 헤매지만 끝내 실패한다. 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는 채지애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들물여에 가면 물꽃을 볼 수 있다고 고집스레 자신만만해하던 현순직은 아쉬움에 탄식한다. 들물여뿐만이 아니다. 제주의 해녀들이 자주 물질을 나가는 바다도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로 시야가 뿌예지는 일이 잦다. 제주 바다는 해녀들에게 이전만큼 많은 것을 내줄 수 없다. 그만큼 병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두 여성이 목격하고 기억하는 일터의 모습이 이토록 다르다. 이는 현순직과 채지애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현순직은 짙은 제주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영화에서 자막과 함께 나온다. 섬이라는 제주의 지역성과 그녀가 일터에서 습득한 언어의 특성상 표준어를 쓰는 일반 대중이 매끄럽게 듣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채지애는 현순직의 말을 자막 없이도 알아듣고, 현순직과 능통하게 소통한다. 그런 그녀조차 현순직의 기억과 경험을 온전히 따라갈 수 없다는 데서, 영화는 아릿함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대체 해녀도, 제주도민도 아닌 사람들에게 현순직이 목격한 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물꽃의 전설〉이 두 해녀를 함께 들물여로 보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두 해녀의 관계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을 들물여로 보낸다. 현순직이 가진 것이 채지애를 경유함으로써만, 즉 ‘번역’을 거쳐야만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큐멘터리의 장르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 장면을 삽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언급했듯, 〈물꽃의 전설〉은, 채지애는 끝내 현순직의 기억 속 풍광에 접속하지 못한다. 제주 바다는 이 모든 실패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혹은 실패의 아픔마저 보듬겠다는 듯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이 영화가 자아내는 아릿함을 더한층 부각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현순직과 채지애 사이의 시간을 곱씹게 한다. 점점 오염되가는 제주 바다에서, 들물여의 뭋꽃은 현순직과 그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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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최근 국내외 영화계, OTT 업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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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봉준호 신작, 스티븐 연 합류
ⓒ 네이버 영화
에드워드 애쉬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미키 7>에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을
확정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7일 외신에 따르면 스티븐 연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봉준호 감독과 스티븐 연은 <옥자> 이후 함께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이정현, <더 그레이> 출연 긍정 검토 중
ⓒ 네이버 영화
배우 이정현이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기생수>를 원작으로 하는 <더 그레이> 출연을 긍정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배우 구교환과 전소니가 출연을 확정한 바가 있다.
고경표 X 이이경 , <육사오> 8월 개봉
ⓒ 네이버 영화
배우 고경표와 이이경 주연의 코미디 영화 <육사오>가 8월 개봉을 확정했다. <육사오>는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버린 57억 1등 로또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 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육사오는 영화 <박수건달>을 연출한 박규태 감독의 신작이다.
허준호, 영화 <빙의> 출연
ⓒ 네이버 영화
<사바하> <엑시트> <모가디슈>의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신작 <빙의>에 허준호가 출연을
최종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빙의>는 김성식 감독의 첫 연출작이며, 배우 강동원, 이동휘, 이솜이
출연한다고 알려졌다.
해외
파라마운트+, K-POP 드라마 <Dee Takes Seoul> 제작
ⓒ 파라마운트+ 홈페이지
파라마운트+에서 <영 앤 헝그리> 작가 다이애나 스나이더 리터와 CJ 엔터테인먼트 공동으로
K-POP 드라마 <Dee Takes Seoul>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드라마는 신인 걸그룹의 안무가가 된
미국인 디 마티네즈가 서울에서 꿈과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을 담은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 <데스노트> 실사화
ⓒ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가 더퍼 형제 제작사인 '업사이드 다운 픽쳐스'와 계약한 영화 중 하나가 <데스노트>이다.
2017년에 이미 이 영화를 각색한 적이 있지만, 이번 작품은 2017년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아시안영화제, 장혁·류승룡· 김혜윤 등 참석
ⓒ 뉴욕아시안영화제 홈페이지
15일에 개막하는 2022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제에는 다수의 한국 영화와 감독, 배우가 초청되었다. 최동훈 감독, 권수경 감독,
최재훈 감독, 장혁 배우, 류승룡 배우, 김혜윤 배우 등이 영화 상영 후 GV도 진행할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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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인지 자작인지 뭣이 중헌디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이름마저도 '응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나 영국 출신!'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은 넷플릭스의 <브리저튼>. 19세기 영국판 <가십걸>이라고 해서 시대극이나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루팡>을 보고 넷플릭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 포함 모두들 시즌 2가 얼른 다시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시즌 1의 여덟 편을 보는 내내, 나는 브리저튼 집안 8남매 중 다섯째인 엘로이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 보면서도 아래와 같은 의문들이 지속적으로 떠올랐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결혼에 목숨을 걸어야 하지?'
'왜 남자들은 저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데 여자들은 못하지?'
언니인 다프네가 런던 사교계에 데뷔하여 좋은 신랑감을 찾기 위해 가면을 쓰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참아내는 것을 보며 엘로이즈는 언니처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고, 결혼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대가 시대이고 고증을 착실히 한 작품인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근데 그래 놓고 왜 굳이 다인종으로 캐스팅했는지는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함) 수많은 무도회에서 여자들은 춤을 신청하는 카드를 받아야지만 남자들과 춤을 출 수 있다. 남자들만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여자들은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 물론 남자들에게 '어서 나에게 춤추자고 신청해!' 압박을 넣을 수는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관심 있는 여성에게 구애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남자들만 여자의 집에 방문할 뿐, 여자들이 먼저 발을 떼는 장면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장면들은 특정 문화나 관습, 풍습이 후대까지 굉장히 길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줬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은 아직까지도 여자들이 먼저 고백을 하거나 프러포즈를 하는 것에 대해서 위의 관점에서 해석을 한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낼 만큼 매력이 없다거나, 혹은 멋지다거나라는 식으로 평가를 한다. 그 기저에는 아무래도 호감의 표시나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런 생각들이 혹시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어서 절대 빼낼 수 없는 건가 싶을 정도이다.
결국 우리의 1등 신붓감 다프네는 왕족 다음으로 높다는 공작의 부인이 된다. 조건만 최고인 게 아니라 둘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기까지 하니 일단 다프네의 결혼은 성공한 듯 보인다. 계속 보다 보니 당시 귀족 여성들이 왜 그렇게 결혼에 목을 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 그녀들은 단지 공작부인 혹은 자작부인, 이렇게 누군가의 부인으로 불릴 뿐이다. 쓰고 보니 '취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배경을 생각하니 앞서 가졌던 의문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실제 그 시대에 영국에서 살며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와 그녀의 자매들도 처음에 편견 때문에 남성 이름의 필명을 써서 책을 출간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당시의 시대상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그녀들을 정상 참작해주자.
우리나라는 은장도가 있을 정도로 여성이 순결이나 정조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게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국 귀족 사교계에서도 떠받들어지는 가치였다. 미혼 여성들은 정원에 남자와 단 둘이 있기만 해도 스캔들에 휩싸여 혼사길 막힐 걱정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가장은 엄마가 아닌 첫째 아들인 점, 귀족 여성들의 생계와 삶의 질은 남편에게 달려있다는 점, 혼전임신이 굉장한 흠으로 여겨지는 점 등 여러 가지들이 내가 지금 사는 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관습이나 풍습이 19세기와 21세기, 영국과 한국이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듯하다.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렇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다 비슷한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에 다프네는 본인을 괴롭혔던 가면을 벗고, '척'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 진실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이 쓴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프네는 물론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과업으로 여기지만, 나름 주먹도 날릴 줄 아는 여성이었다. 내 남편이 공작인지 자작인지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다프네에게는 본인의 부모님처럼 아이들을 낳고 잘 기르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엘로이즈는 피아노와 자수를 배우는 대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한다. 이 고민에는 정답이 없으니 다프네와 엘로이즈처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내 해답도 찾아가고 있는 중!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스인 줄만 알았는데, 보고 나니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었다. 얼른 시즌2가 나오길!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윤캔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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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복순 (2023)
* <길복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길복순 (2023)
감독: 변성현
출연: 전도연, 설경구, 김시아, 이솜, 구교환, 이연
장르: 액션, 스릴러, 느와르
공개일: 2023.03.31
상영시간: 137분
'길복순(전도연)'은 중학생 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동시에 살인청부업체 'MK Ent'의 에이스 킬러다. 여느 엄마들처럼 평범하게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학부모 모임에 나가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여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를 얕잡아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3만원 주고 산 도끼 하나로 칼을 든 일본 야쿠자와 일대일 맞다이를 뜰 수 있는 실력자에 주어진 '작품(살인)'은 반드시 성사시키는 냉혹함을 지닌 프로 청부살인업자니까. 하지만 찔러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 바로 하나뿐인 딸, '재영(김시아)'을 대할 때면 도저히 수가 읽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이라고 '복순'이 직접 말할 정도니까.
단지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건만 딸 '재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버겁고, 마음의 문을 닫은 딸은 쉽사리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딸의 변화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천하의 킬러 '복순'의 마음을 흔들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스스로를 이끈다. 늘 그렇듯 영리하게 문제 해결을 위한 수를 찾아내는 '복순'이지만 한 번 꼬인 운명은 고달프고 귀찮은 일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액션 느와르 영화는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지 않는 장르에 가깝다. 소위 조폭·깡패 영화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타입의 한국 액션물들은 대부분 내용들이 예상 가능한 대로 흘러가고, 지나치게 자극적이기만 하며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 도통 끌리지 않았다. 그런 내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라는 작품은 이같은 장르에 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부순 작품이었다. 분명 조폭이나 살인 따위와 같은 뻔한 소재들이 쉼없이 범람하는 줄거리였지만 주인공들의 관계에 멜로적 색채를 더하고 서사를 탄탄하게 쌓아 스테레오타입을 뒤집는 전개로 상당한 몰입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한국 느와르 영화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었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내게 큰 영향을 준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변성현' 감독의 신작 <길복순>에도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페르소나 '설경구'와 최고의 여배우 '전도연'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니 그의 세련된 터치를 만나 세 사람이 어떠한 시너지를 보여줄지 개봉 전부터 궁금증이 크게 증폭됐었다.
하지만 <길복순>은 기대만큼 짙은 인상을 남길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변성현' 감독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크게 두드러졌고, 그에 따른 호불호도 더욱 크게 갈릴 것이라 느꼈다. 우선 '변성현'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색감과 촬영 로케이션을 감각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탁월하게 발휘됐다. 사실 조폭·청부살인 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경들은 대개 틀에 박힌 공간들인데, <길복순>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대체로 새롭고 아름답다. 화초들의 싱그러움과 차가운 대리석 인테리어가 '길복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한 그의 자택, 근대식으로 지어진 서양의 건축물이 떠오르는 '설경구'의 클래식한 사무실, 하물며 떡볶이집과 국수가게까지 냉기 가득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하나같이 예쁘다. 미술과 소품에 굉장한 공을 들였음이 느껴졌고, 시각적으로 디테일한 요소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을 것이다.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단연 주인공 '전도연'이다. 감독은 <길복순>의 개봉 전부터 '전도연'의 광팬임을 고백해 왔다. 실제로 '복순'이라는 캐릭터는 배우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전도연'과 닮은 부분이 많을 정도로 작품에 그의 영향력이 많이 들어갔다. '전도연'이 유능한 베테랑 배우인 덕도 있겠지만, 감독의 무한한 애정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그는 원톱 주연으로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 액션신에서의 디테일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냉혹하고 스피디한 나이프 액션신을 끌고 가는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며 특유의 나긋나긋한 화법은 모든 것에 통달한 A급 킬러의 여유를 발산하는데 제격이다.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이라는 표현이 적격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도연'을 보기 위해서라도 <길복순>은 꼭 감상해야 하는 작품이라는 의의를 남긴다.
주연의 대활약, 아름다운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길복순>은 시종일관 킬러 '길복순'의 실력을 과시하고, 그의 눈부신 활약상만을 비춘다. 물론 '길복순'은 살인청부업자와 엄마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입체성을 지닌 캐릭터이지만 대부분의 캐릭터가 그를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서만 활용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변성현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설경구'는 특히 이번 작품에서 쓰임을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포지션을 담당하며 '구교환'과 '이솜'의 역할도 이들의 역량을 십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작품은 연기 변신에 도전한 '전도연'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지만, 이는 곧 '전도연'이 아니라면 볼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다양한 기법으로 액션신을 표현하고자 한 감독의 시도도 눈에 띈다. 특히 '복순'이 상대의 수를 미리 읽으며 수싸움을 하는 장면을 수 차례 활용하는데, 이는 미국 코믹스나 해외 액션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연출의 활용 빈도가 높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장면이 난잡해 보이고, 긴박하게 흘러가야 할 구간들이 지루해져 거슬린다는 인상을 크게 받았다. 그래도 국수가게에서의 잔혹한 액션신을 미국 B급 액션영화처럼 유쾌하게 연출한 것, '복순'과 '영지'의 일대일 대치 장면에서 템포에 불규칙한 변화를 준 것은 매력적이었다. 한국 액션영화에 없을 법한 작법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 '변성현 감독'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장르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출중했으나 내용의 긴밀성이 부족했다. 결국 '길복순'이 모든 위기를 홀로 헤쳐 나간 뒤 제손으로 모두를 죽이고, 딸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넘어 유치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마치 히어로 액션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는 장르성에 출중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길복순'이라는 킬러가 가차없이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분명한 쾌감과 매혹을 일으킨다. 물론 이와 같은 감상을 느낄 수 있는 데는 배우 '전도연'이 가진 아우라와 연륜이 결정적이었겠지만. '전도연', 그리고 '길복순'을 위해 감독이 엄청난 애정과 욕심을 쏟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지만 배우로서 '전도연'의 도전 의식을 불태우는 횃불을 제공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남기지는 못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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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복 후기 / 티빙 동시 개봉 / 공유, 박보검의 환상 케미 / 복제인간이 현실이 된다면...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서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복제인간, #박보검, #공유, #브로맨스, #티빙,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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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12? ?영화 PPL?! 영화 성수기, 비성수기?!?
?씨나병의 영화정보 #12? ⠀ ?열두 번째 주제? ⠀ ? 영화 PPL?! 영화 성수기, 비성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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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림> 메인 예고편
줄거리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매일 눈물로 지새우던 비련의 여인 ‘도라’.
설상가상 삶의 유일한 낙인 디저트 카페 ‘크림’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다.
카페를 되살리기 위해 타개책으로 ‘가족 사업 대상 지원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도라’는 치과 의사 ‘마르시’, 이웃집 꼬마 ‘라시카’와 계약 가족을 급조해
상금을 획득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전 남친과 그의 부인이 경쟁자로 등장하는
웃픈 상황 속에서 ‘도라’는 ‘마르시’에게 점점 끌리기 시작하는데…
우리의 달콤한 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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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멀티버스의 역습' 30초 예고편
멀티버스의 그 무엇도 함부로 예측하지 말것!
상상의 경계를 벗어난 광기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