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09-03 14:49:44
제주 바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스르고 접붙여
〈물꽃의 전설〉
87년 동안 물질을 해온 현순직 해녀와 이제 막 해녀 일을 시작한 30대의 채지애 해녀. 〈물꽃의 전설〉은 두 해녀 사이에 놓인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스르고, 접붙인다. 해녀 일에 대한 현순직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녀는 물질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았고, 그곳에서 항상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순직은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종종 바다로 나가 지난날을 회상한다. 이미 중년이 된 막내아들은 혹시나 어머니가 또 바닷속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전화로 신신당부하고, 현순직은 속내를 들켰다는 듯 웃는다. 현순직에게 바다는 삶 그 자체다.
채지애 해녀는 사회생활을 해녀 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채지애의 어머니는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 다니던 딸이 해녀 일을 하겠다는 게 영 마뜩잖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해녀 일은 “낭만적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고된 노동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채지애의 어머니는 아기 우윳값이라도 벌겠다는 절박함으로 수십 년간 물질을 해왔다. 제주의 해녀라면 눈 내리는 바다에서 물질한 후 외로이 숨비 소리를 낼 때의 고독함과 친해져야만 한다. 그러나 동시에, 딸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녀 물질의 목표였던 딸과 같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지난 삶에 대한 딸의 이해와 공감이라는 형태로 돌아왔음에 대한, 즉 그녀의 노동이 소외되지 않았음에 대한 떳떳함의 발로일 것이다.
해녀가 경력이 쌓이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상군 해녀’라 불린다. 현순직은 상군 중의 상군인 ‘대상군 해녀’였다. 대상군 해녀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바닷속 지도와 지형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해녀에게만 허락된 이름이다. 현순직은 지금도 그 풍경이 눈에 훤하다는 듯 바다별 특징과 그곳에서 잡을 수 있는 해양 생물을 줄줄이 읊는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황홀한 바닷속 ‘들물여’로 채지애와 함께 향한다.
그러나 현순직의 기억과 지금 제주 바닷속 정경은 일치하지 않는다. 채지애는 현순직이 일러준 곳에 들어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물꽃을 찾아 헤매지만 끝내 실패한다. 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는 채지애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들물여에 가면 물꽃을 볼 수 있다고 고집스레 자신만만해하던 현순직은 아쉬움에 탄식한다. 들물여뿐만이 아니다. 제주의 해녀들이 자주 물질을 나가는 바다도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로 시야가 뿌예지는 일이 잦다. 제주 바다는 해녀들에게 이전만큼 많은 것을 내줄 수 없다. 그만큼 병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두 여성이 목격하고 기억하는 일터의 모습이 이토록 다르다. 이는 현순직과 채지애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현순직은 짙은 제주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영화에서 자막과 함께 나온다. 섬이라는 제주의 지역성과 그녀가 일터에서 습득한 언어의 특성상 표준어를 쓰는 일반 대중이 매끄럽게 듣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채지애는 현순직의 말을 자막 없이도 알아듣고, 현순직과 능통하게 소통한다. 그런 그녀조차 현순직의 기억과 경험을 온전히 따라갈 수 없다는 데서, 영화는 아릿함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대체 해녀도, 제주도민도 아닌 사람들에게 현순직이 목격한 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물꽃의 전설〉이 두 해녀를 함께 들물여로 보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두 해녀의 관계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을 들물여로 보낸다. 현순직이 가진 것이 채지애를 경유함으로써만, 즉 ‘번역’을 거쳐야만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큐멘터리의 장르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 장면을 삽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언급했듯, 〈물꽃의 전설〉은, 채지애는 끝내 현순직의 기억 속 풍광에 접속하지 못한다. 제주 바다는 이 모든 실패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혹은 실패의 아픔마저 보듬겠다는 듯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이 영화가 자아내는 아릿함을 더한층 부각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현순직과 채지애 사이의 시간을 곱씹게 한다. 점점 오염되가는 제주 바다에서, 들물여의 뭋꽃은 현순직과 그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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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올해의 힐링영화가 ‘거의’ 확실합니다
춘희는 행복이 낯설다. 행복은 단 한 번도 그녀의 것인 적이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춘희의 부모가 갑자기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이유로 꼽을 테고, 누군가는 외삼촌 가족의 구박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걸을 때마다 바닥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다한증이 심해 춘희가 사회생활에서 위축된다는 걸 그 원인으로 지목할 것이다. 어쨌든, 춘희가 행복과는 영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춘희가 불행하지 만은 않다는 게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의 묘한 재미다. 춘희에게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은 사람에게 으레 보이기 마련인 체념, 무심함, 냉소와 같은 정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다한증 수술비 마련을 위해 매일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음, 맨발로 자는 노숙자를 걱정하며 새 신발을 선불하는 마음, 사람들이 ‘주황’의 말더듬이 증세만 볼 때 그 내용을 듣고 칭찬해주는 마음에서 춘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주황과 춘희가 알콩달콩 만들어내는 케미가 압권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뻔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짜증이 아닌 기분 좋은 미소를 유발하는 건, 어려움 속에서도 차분한 단단함으로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춘희와 주황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귀함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길 잘했어〉에 결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극 후반부의 조금은 헐거운 감정선은 어리둥절함을 자아낸다. 춘희의 어려움을 ‘치유’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도 아쉽다. ‘당신 내면의 아이를 안아주세요’와 같은 명제에 굉장히 비판적인 편이다. 왜 상처받았는지는 도외시한 채 치유 그 자체에만 몰두함으로써 상처를 병리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인 진단과 해결이 아닌, ‘잘 버티는’ 임시방편에만 집착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길 잘했어〉는 좋은 영화다.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은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변에서 아무리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자기 자신이 이를 믿지 못하면 수치심과 좌절감은 걷어지지 않는다. 즉, 상처가 생긴 원인을 적확하게 인지하고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태어나길 잘했어’와 같은 강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문제는 내가 아닌 날 힘들게 한 것들에 있다’는 명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으로써 말이다.
춘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도 ‘태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춘희의 마음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수술비를 벌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까는 춘희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길거리에 누워 있는 맨발의 노숙자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춘희는 따뜻한 연대의 마음이 ‘가진 자의 특권’이 아닌 ‘인간 존재의 특권’임을 가르쳐준다. 말을 더듬는 주황을 남들처럼 무시하지 않는 춘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이를 알아봄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답고 풍성해질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리하여 춘희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심리 상태로 축소 환원하는 세상에서도, 자기 위로에서 시작하는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희망적 명제를 벼려낸다.
춘희가 우연한 계기로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는 건 영화의 주요 설정이다. 여러 영화‧드라마 덕에, 많은 사람이 과거의 나를 만나보는 걸 상상해보곤 한다. 만약 누군가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상상에 마냥 설레고 기쁘기만 하다면, 그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린 주황, 부모님 사후 힘든 시간을 보냈던 춘희에게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건 잊고 지내던 아픔을 상기시키기에 설렘‧기쁨이 아닌 두려움‧긴장을 자아내는 일이었다. 춘희가 과거의 자신에게 ‘부모님과 함께 죽어버리지 그랬냐’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그가 얼마나 큰 아픔을 견뎌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춘희는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 과거의 상처를 대면하고 미래로 나아간다. 자신과 자기 주변 아끼는 춘희의 태도는, 그녀가 끝내 한 번도 자기 것인 적이 없었던 ‘행복’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나아간다. 몇몇 단점으로 인해 〈태어나길 잘했어〉가 올해의 힐링영화가 될 것 같다는 예감에 ‘거의’라는 단서를 붙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춘희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세상이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나의 태도’로서 이를 거스를 수 있음을 알려준 춘희와 그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의 많은 외로운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최진영 감독의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달된다면 좋겠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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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
오는 3월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각 부문 후보가 공개되었습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가 총 1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가장 많이 노미네이트되었고, 애니메이션 <Flow>의 노미네이트로 라트비아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열풍을 일으킨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 역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가운데, 골든글러브에 이어 상을 거머쥘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배우로 더 익숙한 제시 아이젠버그가 본인의 가정사를 담은 <리얼 페인>으로 각본 부문에 후보로 오른 것도 눈에 띕니다.
그럼 우리는 3월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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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런웨이>의 편집장인 미란다, 그녀의 등장에 모든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너저분했던 책상 위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편한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갈아 신는다. 기자의 꿈을 꾸던 앤디(앤 헤서웨이)가 면접을 보러 와서 목격한 광경이다. 늘 구두를 신고 다니는 런웨이 직원들을 일명 '또각이'들이라고 하며 남자친구에게 그들의 옷차림을 비판하던 앤디는 어쩌다가 런웨이에 입사하게 된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잡지사인 이 곳에서, 그것도 미란다의 직속비서로 1년만 버티면 어떤 회사든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에 앤디는 또각이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한다. 하지만 소문난 '얼음공주', '워커홀릭' 미란다의 취향과 세세한 요구를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앤디의 전화벨 소리만큼 앤디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미란다의 심부름으로 점점 지쳐가고 10번 잘하다가 1번의 실수로 듣는 쓴소리에 앤디는 그나마 해낸 9번의 보람마저 없어진다.
'할머니 치마'와 편하고 두툼한 운동화를 신고 온 앤디의 첫 출근날, 그녀에게 구두를 던져준 디자이너 나이젤에게 하소연하던 앤디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패션잡지회사에 다니면서 직원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만 하고 지냈지 자신은 정작 어떠한 관심도, 애정도 없이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앤디는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업무에 대한 꼼꼼함과 버티기는 잘해왔었던 앤디의 새로운 노력에 미란다는 점점 눈길을 준다. 쉴 새 없이 울렸던 앤디의 전화벨은 두배, 세배로 더해지고 앤디는 에밀리만 할 수 있었던 미란다의 집에까지 드나드는 일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란다에게 인정받게 된다. 앤디는 기존 비서인 에밀리의 자리가 밀려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직장에서 잘 나가면 개인사가 삐걱대지-'라는 나이젤의 이야기가 앤디에게도 일어날까?
영화를 처음 봤던 5년도 더 지난 그때는 메릴 스트립의 존재감과 앤 헤서웨이의 변화된 모습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특히 앤디의 열정 속에 느끼는 갈등과 갈증에 대한 그녀의 고민들.
자신이 가진 커리어의 성공적인 스토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미란다의 모습은 그녀의 외적인 포스뿐만 아니라 영화의 플로우에서도 느껴진다. 예를 들면 앤디가 런웨이에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의 과정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미란다가 앤디를 합격시켰던 이유와 당시 앤디에 대한 미란다의 어떤 감정들을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앤디가 단번에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도 앤디의 다양한 변화를 한 쇼트로 이어서 담아 이야기의 다음 파트를 밀고 나가는데 힘을 싣는다. 그렇게 앤디는 런웨이에서의 경력을 쌓게 되면서 영화도 앤디 개인의 꿈과 직업에 대해 선택하는 과정들을 같이 쌓아간다. 주축이 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을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설정한 감독은 영화의 엔딩까지 캐릭터에 설정한 신념을 끌고 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엔딩씬의 매력이 더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봐도 좋은 영화, 좋은배우들.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영화로써만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확연히 느껴진다. 벌써 개봉한 지 14년이 지난 영화를 오랜만에 관람하니 이 영화가 2020년에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힘을 싣는 이 영화의 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명작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콘텐츠도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도 안다. 그저 영화의 체험적인 면모가 커질수록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해봤다. 그저 이야기의 힘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토 스틸컷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성 실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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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의 모든 것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 물 만난 영화, 바람난 음악"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이 7월 14일(목) 오전 11시 유튜브 생방송을 통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맹수진 프로그래머-조직위원장 김창규-집행위원장 조성우)
장성란 저널리스트가 사회를 맡아 진행한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되었으며, 김창규 조직위원장, 조성우 집행위원장, 맹수진 프로그래머가 참석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제18회를 맞아 큰 도약을 준비했다"며 세계 최고의 영화음악축제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음악영화인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제천영화음악상은 세계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2017년부터 아시아 음악영화인으로 후보를 넓혀가며, 올해부터는 전 세계 음악영화인을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올해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영화 <위플래쉬>,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가 2022년도 제천영화음악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스틴 허워츠는 하버드에서 작곡과 어케스트레이션을 전공했으며,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모든 영화 음악을 작곡했으며, <라라랜드>, <위플래쉬>, <퍼스트맨>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등 유수의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여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2017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음악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영화음악계에 떠오르는 신성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2022년 제천영화음악상 수상자 저스틴 허위츠의 특별 단독 공연이 전 세계 최초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는 역대 최대 규모인 39개국 140편의 음악영화로 찾아왔습니다. 그 중 영화제의 시작을 알릴 개막작은 바르토즈 블라쉬케 감독의 <소나타>입니다. 영화는 현실적인 성장이야기로, 소피아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비행장)
이번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제천을 상징하는 의림지무대와 제천비행장에서 펼쳐집니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기존 영화제의 모습을 탈피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주 무대를 제천시 모산동에 위치한 제천 비행장으로 옮겼습니다.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주 무대가 의림지 야외무대, 제천 비행장이다. 제천 시민속으로 파고 들고 더 많은 관객이 영화제를 즐길 수 있도록 공간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올해는 축제의 정체성을 한층 더 강화해 대표 음악 프로그램인 '원 썸머 나잇', '필름콘서트' 저스틴 허위츠의 '스페셜 콘서트' 등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축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 썸머 나잇'은 역대급라인업으로, 첫번째 8월 12일 금요일에 열리는 '그루비 나잇'에서는 힙합 뮤지션 사이먼 도미닉, 로꼬, 릴보이, 릴러말즈가 무대를 채우고, 두번째 8월 15일 월요일에 열리는 '멜로우 나잇'에는 십센치, 선우정아, 이석훈, 폴킴, 잔나비, 이무진 등 감성 보컬이 무대를 꾸밀 예정입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객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습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올해부터 [영화와 음악]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영화와 음악] 프로그램 섹션 중 하나인 올해의 큐레이터는 '조영욱'음악 감독이 맡았습니다. 그는 1997년 영화 <접속>을 시작으로 <조용한 가족>, <해피엔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작품들의 음악감독입니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올해의 큐레이터 섹션을 위해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6편의 영화 리스트를 선정하였습니다.
본인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무뢰한>, <공작>, <헤어질 결심> 3편과,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의 <말라버린 꽃>, 마이크 호지스 감독의 <겟 캇터>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더불어 [영화와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고(故) 방준석 추모전 섹션이 준비되어있습니다. 한국영화음악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도 깊은 인연을 맺어온 방준석 감독을 추모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고(故) 방준석 추모전을 마련했습니다.
<자산어보>,<주먹이 운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후아유>등 방감독이 참여한 4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방준석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든 이준익, 류승완, 김용화, 심보경 그리고 방준석 감독의 동생인 방준원과 각 영화 상영 후 릴레이 토크에 참여해 방감독에 대한 추모의 시간을 함께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세계 각국의 영화와 음악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는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오는 8월 11일(목) ~ 8월 16일(화) 에 개최됩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 https://www.jimff.org/kor/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획기사는? 씨네랩 홈페이지 : https://cinelab.co.kr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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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북유럽 복수극의 창조적 파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동으로 파견되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덴마크군 군인 '마르쿠스(매즈 미켈슨)'. 그는 아내와 딸 '마틸드(안드레아 하이크 가데버그)'가 열차 충돌 사고에 휘말렸고, 아내가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한다. 좀처럼 아내와의 사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지내던 그의 앞에 어느 날 아내와 같은 열차 칸에 탔던 통계학자 '오토(니콜라이 리 카스)'가 등장한다. 그는 데이터 분석가 '에멘할러(니콜라스 브로)', 해커 '렌나르트(라르스 브리그만)'와 함께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열차 충돌 사고가 계획된 범죄였음을 알려준다. 이에 분노로 가득 찬 마르쿠스는 직접 범인들을 심판해 아내의 복수를 이루려 한다.
여기까지가 덴마크의 국민배우 매즈 미켈슨이 주연을 맡은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의 영화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의 줄거리다. 사실 줄거리만 보면 이 작품은 리암 니슨의 대표작인 <테이큰> 시리즈나 최근에 개봉한 <캐시트럭>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이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 혹은 사랑하는 이의 신체나 정신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범죄를 경험한다.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피해를 되갚아 주기 위해서 범인을 추적하고 계획을 세운다. 마지막으로 그는 범인과 대결하고 피비린내 나는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하지만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를 앞서 언급한 예시들과 동일한 범주에 놓는 것은 부적절하다. 영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복수의 결과를 보여주기보다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 속 복수극의 단계를 뒤틀어 복수의 이면과 본질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옌센 감독은 복수극의 공식을 파괴하는 네 장의 카드를 꺼내 보인다.
첫 번째 카드는 복수극의 단축과 서스펜스의 실종이다. 작중 복수의 계획과 범인의 추적은 막힘 없이 진행된다. 마르쿠스는 직접적인 범인으로 판단한 이를 이렇다 할 저항 없이 죽인다. 범인이 속한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라는 이름의 갱단 구성원과 보스가 누구인지, 그들의 집합 장소와 시간을 알아내는 작업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궁극적인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갱단 보스와의 대결도 총알이 그의 머리에 꽂히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고 깔끔하게 끝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숙명의 대결은 없다. 그 결과 영화는 러닝타임을 30분가량 남겨둔 상태에서 이미 마르쿠스의 복수를 일단락시킨다.
두 번째 카드로 영화는 일단 복수가 끝난 극의 전개를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중 어느 것에도 도달하지 못한 충격과 혼란 속에 빠트리면서 복수의 이면과 의미에 대한 고찰을 풀어놓는다. 성공적인 복수를 자축하던 찰나에 마르쿠스와 동료들은 지나치게 수월히 진행된 복수가 열차 충돌 사건과 무관한 이를 죽이고, 관련 없는 갱단을 공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들의 복수는 완벽한 헛발질이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위치를 복수의 주체로부터 아무 이유 없이 봉변을 당한 갱단의 복수 대상으로 뒤바꿨을 뿐이다.
그 순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마르쿠스의 반응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깊이 절망한다. 단지 자신이 잃은 것을 되갚아 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에게 복수는 구원을 얻기 위한 속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동 파견 군인이라서 아내와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그들이 사고가 발생할 기차를 타는 원인을 직간접적으로 제공했다는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던 그. 그의 입장에서 성공한 복수의 아이러니한 실패는 아내와 딸에게 사죄하고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길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더해 그가 복수만을 바라보며 아등바등한 모든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진실도 그의 절규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사실 마르쿠스의 복수극은 명백한 팩트(fact)가 아닌 한 가지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모든 사건에는 우연이 아닌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면 특정 사건을 예측할 수 있고 동시에 특정 사건의 원인도 밝혀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그래서 오토, 렌나르트, 에멘할러는 마르쿠스에게 수상한 탑승객의 행적이나 갱단의 보스와 관련된 이슈 등을 근거로 내밀며 단순한 사고로 보이는 열차 충돌 사건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정되었던 테러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 이는 그가 복수에 나서는 방아쇠가 된다.
따라서 그들의 총알이 과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을 깨닫는 순간, 열차 충돌 사건이 테러가 아니라 의도가 섞이지 않은 우연이 낳은 사고라는 것을 알아챈 순간 복수는 역으로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복수는 본질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현재에 전복하는 행위이기에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 상황에 영향을 끼쳤다는 근거가 있어야만 복수의 대상이 특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마르쿠스의 절규를 통해 복수극을 지탱하는 전제를 파괴하고 기존 복수극의 전개와 구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의미심장하게 연출되었던 자전거 도둑 사건이나 값비싼 샌드위치를 그냥 버려버리던 수상한 남자 등도 이 시점부터는 전부 아무 의미 없는 맥거핀이 되어버린다.
대신 옌센 감독은 복수극의 의미가 없어진 자리에 한 편의 힐링 드라마를 채워 넣는 세 번째 카드를 꺼낸다. 그 중심에는 마르쿠스와 함께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오토, 렌나르트, 에멘할러 삼인방이 위치한다. 그들은 마르쿠스와 계획을 세우고 범인을 찾아다니는 동안 예상치 못한 기행을 하나씩 저지르면서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마주한다.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신체적 콤플렉스에 시달린 이, 헛간에서 가정폭력을 경험한 피해자, 자신의 실수로 가족을 떠나보낸 아버지까지. 여기까지만 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은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분노로 삭히지 못해 폭력을 자제하지 못하는 마르쿠스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르쿠스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서로에게, 또 한 팀을 이룬 마르쿠스와도 자신들의 상처를 공유한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닌 척 서로 신경 써주며 웃음과 유머로 고통과 상처를 보듬어 안으며 마치 가족과도 관계를 이룬다. 이는 삼인방 서로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렌나르트와 에멘할러는 자신들이 받은 심리치료를 바탕으로 아버지 마르쿠스와의 관계가 무너지진 마틸드의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치유해주며, 오토는 엄마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그녀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영화에서도 언급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슬픔의 5단계' 안에서 삼인방과 마르크스의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삼인방은 상실과 슬픔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새롭게 살아가는 법, 즉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보듬어주는 방법을 깨우치고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중 마지막인 '수용' 단계로 넘어가 있다. 반면에 마르쿠스는 여전히 절망과 슬픔 같은 강렬한 감정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우울' 단계에 머무르는 데 그친다. 다만 그 역시 마지막에는 오토에게 안겨 울면서 자신이 외면하던 과거와 진실을 받아들이고,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온전히 상처와 고통을 나누고 서로 보호하는 관계에까지 이른다. 이는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형체 없는 대상을 쫓는 복수극 대신, 현실의 아픔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다짐하는 힐링 드라마로 거듭나려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카드로 영화는 덴마크, 곧 북유럽권의 고유한 정서를 부각하며 분량의 절반 가량을 맥거핀으로 만드는 플롯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비장함과 황량함, 그리고 이를 버텨내는 일상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뛰어난 북유럽 범죄소설에 주는 유리열쇠상을 '해리 홀레' 시리즈로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가 2014년 방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작품이 "북유럽 특유의 슬픈 감성"을 담고 있으며, 그 감성은 "커다란 재난이 일어나서 겪게 되는 슬픔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축적된 슬픔"이고, 사람들이 "그 슬픔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소설에 주로 담는다고 밝힌 것이 단적인 예시다. 이러한 북유럽 고유의 감성은 일 년 내내 춥고 거친 황량한 환경에서 생존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심성적 측면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정서는 북유럽 신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북유럽 신화는 신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세계의 종말인 라그나로크에서 대부분의 신이 사망하는 결말을 맺는다. 신보다 운명이 더 우위에 있고, 신이라 해도 세계의 운명을 극복할 힘은 없다. 단지 운명과 현재를 받아들이면서 견뎌낼 뿐이다. 다만 북유럽 신화는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라그나로크를 피한 몇몇의 신과 단 한 쌍의 인간이 새롭게 황금시대를 만들 것이라고 노래하며 종말 그 너머에 있을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만큼은 간직한다. 이처럼 운명에의 순응과 실낱같은 기대가 담긴 신화는 신과 운명에 저항하는 영웅을 사랑하는 그리스 신화 및 비극의 전통과 뚜렷이 구분된다.
영화는 이러한 감정들을 주인공들의 서사에 깊숙이 녹여낸다. 성당 장례식에서 모든 비극은 우연이라는 추모사를 모두 부정하며, 신과 산타클로스 따위는 없다던 마르쿠스가 태도를 바꾸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피에타 상처럼 동료의 품에 안기는 그는 아내의 죽음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연에 가까운 확률이 빚어내는 현실과 운명에 순응한다. 그러면서도 세계의 멸망 속에서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않는 신화처럼, 마르쿠스와 동료들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날에 프렌치 호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슬픔과 아픔을 딛고 지금보다 따뜻한 미래를 다짐한다. 이처럼 북유럽만의 감성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마무리와 함께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는 복수극이라는 껍질을 깨부수면서 한 편의 진중하고 따뜻한 힐링 드라마로 온전히 탈바꿈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플롯의 공식과 장르의 관습을 깨부수는 노르딕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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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드 90' 리뷰
형제가 있는 집에서 pc는 결코 개인적이지 못하다. 연령대가 엇비슷할수록 더 그렇다. 게임을 하더라도 언제나 순번을 정해야 했고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싸움이 나는 건 다반사였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좋으나 싫으나 죽어라고 서로 놀았어야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은 모르면 어울릴 수가 없는 것들이 생겼다. 그 나이대 애들이 그렇다. 사랑해서 좋아하기보다는 어울리기 위해 좋아하게 된다. 조금씩 아는 게 늘어나면 기존의 자신과 구분 짓기 시작한다. 자신을 버린다. 멋있어지려는 노력은 좋아했던 것들에서 멀어지려는 노력이었다. 애들에게 멋이란 건 인정 욕구니까.
여기 스티비도 크게 다르진 않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랑은 또래처럼 놀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스티비는 계속 외로웠고, 우연히 가게 앞에서 스케이트 보드 트릭을 연습하는 동네 형들을 마주친다. 콘크리트 바닥을 밀고 나아가는 바퀴의 둔탁한 파열음, 공중에서 머무는 몇 초, 그 모든 과정이 멋있었다. 어떻게 멋있는 줄 아냐면 간단하다. 뭐든 주변에 또래 무리가 있으면 멋있는 일이 된다. 그런 이유로 어쨌거나 스티비는 보드가 필요했다. 절대로 거래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손을 내밀게 될 정도로 원했던 물건이었다. 설령 한참 써서 낡아빠진 보드여도 상관없었다. 그걸로 입장권은 끊은 셈이었다.
물론 그 정도 수준으로 부족했던 건 사실이었고 그 무리에 끼고 싶어서 스티비는 나름의 일탈을 저지른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들에는 항상 결과가 따랐다. 무리에 끼려면 인정이 필요했다. '할 수 있다'는 인정이 아니라 '해냈다'는 데서 오는 인정. 무리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테스트가 필요했다.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 받아들였다. 별명을 얻고 나서 스티비는 도전했고 받아들여진다. 그냥 같이 노는 친구에서 더 나아가서 온전히 받아들여진다. 아이의 시선에서 미지의 영역에 있는 건 대부분 일탈의 경계다. 스티비는 땡볕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무리에 깊게 들어간다.
화면은 금기나 경계의 물건,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그 시선이 손쉽게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고정된 카메라는 선을 넘나드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배운 바가 있고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카메라는 그렇게 향수를 되살려낸다. 90년대를 지나온 아이들의 피부에 각인된 경험들.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하고 부딪혀 깨졌던 추억이다. 개중에는 일탈의 경험도 있다. '4학년' 형이 만들었던 홈비디오는 그런 조각난 과정을 한 편의 영상으로 멋지게 다듬어낸다. 보드를 타고 자유롭게 선을 타고 넘었던 시간을 그들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스티비와 아이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었다. 소년스러움이 드러나는 모습부터 슬픔을 간직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기로에 서있는 모습까지 모두다 기억에 남는다. 있을 법한 인물들을 무리에 집어넣고 자연스럽게 다듬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별명으로 호명되는 애들, 특정한 역할을 하는 애들, 개개의 가정사까지 그 환경이 무척 핍진했다. 보드를 타면서 친구들은 다 같이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동선을 가로막는 건 어른의 시선이었다. 아이들 사이에는 위-아래가 없었고 모두들 좌우가 아니라 전후로 움직였다. 실은 아이들이 자라나는 방향도 그들의 눈높이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멈춰 서거나 나아가는 쪽으로.
모든 걸 구독하는 현대인의 삶과 다르게 90년대의 미덕은 소유에 있었다. 세상은 가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손쉽게 나뉘었다. 그때의 아이들이 모두 그 값어치를 이해했던 건 아니었다. 그 물건들은 그냥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게 된다. 또래들이 전부 가지고 있어서 사야 했던 물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디지바이스 다마고치가 그랬고, 4학년 때는 BB탄총으로 넘어갔다. 조르고 졸라서 샀던 물건이 몇 번 쓰지도 못해 고장 났을 때는 정말 아찔했다. 그 총을 쓰지 못한다는 아쉬움보다도 이렇게 빨리 고장 냈느냐고 혼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리에 끼고 싶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을 때 비로소 사춘기의 초입에 들어섰던 것 같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미드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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