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3-09 18:36:40
꿈결의 사랑에 기대어
영화 <로봇 드림> 리뷰
SYNOPSIS.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도그’는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다려, 내가 꼭 다시 데리러 올게!”
POINT.
✔️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인데, 대사 공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촘촘한 연출력!
✔️ 색감도 아름답고 음악도 귀에 딱 붙는 명작
✔️ 도그와 로봇의 관계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몽글몽글... 이건, 사랑입니다
✔️ 스페인 애니 낯설다고? 배경은 뉴욕 맨해튼! 감독 오피셜, 뉴욕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뉴욕 오마주라고 해요.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정서가 펼쳐져요.
✔️ 칸영화제 특별 상영에서 최초 공개되어, 지금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로 노미네이트! 쟁쟁한 기술력의 작품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작품을 만나 보세요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는 순간, 보기도 전에 마음이 퐁당 녹았다. 따뜻한 관계와 갑작스러운 이별... 그 애틋함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건 모르니까. 뚜껑을 열어 보니, <로봇 드림>은 그런 기대를 기분 좋게 충족시키는 영화인 동시에, 뜻밖의 면면으로 기대를 기분 좋게 배반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어떤 사랑은 눈 마주치는 순간 시작된다
도그를 비롯해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동물로 표현되고 있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어렵지 않게 도그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차갑고 어두운 도시의 밤, 2인용 게임도 혼자 해야 하는 도그는 외로움을 감출 수 없는 캐릭터다. 창문으로 보이는 이웃집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레토르트 식품을 혼자 데워 먹기도 하면서, 그는 외로운 생활을 채워 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텔레비전 광고 속에서 보게 된 한 마디. "외로우십니까?" 그리고 마치 홀린 듯이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그냥 지나치려면 지나칠 수도 있었을 광고를 보게 된 것, 그런 순간도 어쩌면 운명적 순간이라 할 수 있을까? 답은 광고 이후의 관계에 달렸을 것이다. 두 존재가 특별하게 맞닿는다면, 그 시작점이 어떻게 운명이 아닐 수 있겠어.

'친구'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Amigo/Amiga를 연상케 하는 (이탈리아어로 친구가 Amico/Amica이기도 하다) 로봇이 배달되고, 도그는 조립을 시작한다. 마침내 두 존재가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둘에게는 편안한 미소가 떠오른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눈 마주치는 순간 시작된다. 당연한 것처럼, 더없이 자연스럽게.

둘은 더없이 행복하다. Earth, Wind & Fire의 명곡 <September>는 곧 둘의 주제가가 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도시의 주인공이다. 더이상 도그에게 어둡고 차가운 밤은 없다. "우리가 밤에 춤을 출 때 별들이 어두운 밤을 걷어가던 걸 기억하나요?" 노래 가사처럼 이제 그의 일상은 반짝거리고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리움은 사랑의 그림자
그러나 둘의 관계는 신나게 해변을 찾았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이별로 귀결된다. 이후 둘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장면 하나하나가 정서를 어찌나 고스란히 담아내는지, 내가 연애하다가 헤어진 기분이 들 정도로 도그와 로봇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꿈결에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 어쩌면 꿈처럼 기묘하게 정직한 것이 또 있을까? 트라우마처럼 남은 꿈에도, 무지개와 꽃으로 아름다운 꿈에도, 서로가 어른거린다. 그리움은 사랑의 해질녘 그림자가 아닐까. 사랑이 긴 만큼 더 길고 검게 늘어져, 둘을 놓아주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은 돌봄의 방법을 아는 것
로봇과 도그는 서로의 유일무이한 친구로서 우정을 주고 받았을 수도, 아니면 독점적인 사랑을 주고 받는 연인 같은 관계였을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거니와, 관계를 무엇이라고 명명하는지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둘이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을 온전히 기쁘게 즐겼고, 헤어지고서는 깊이 그리워했다는 것. 웬만한 로맨스 영화보다 깊게 그 기쁨과 슬픔을 전달한 영화는 이내 결말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리는 관계에서 배운다. 처음 로봇이 도그의 손을 너무 꽉 잡아 아팠지만, 이내 적절한 세기로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만남을 통해서도, 만남이 지속되는 시간을 통해서도, 헤어짐을 통해서도, 헤어짐 이후의 시간을 통해서도 우리는 배운다. 도그와 로봇이 주고받는 마음과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내 사랑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 하나를 슬며시 추가하고 싶어진다. 그건 돌봄이다. 서로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아는 것. 돌봄 없는 사랑은 모래 위에 지은 성 같다.
2시간 넘는 영화가 남발하는 세상에, 100여분의 산뜻한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는 그 모든 감정들을 고스란히 쏟아내고, 별사탕을 가득 받은 사람 같은 기분이 되어 기분좋게 영화관을 떠나게 만든다.

그런데 모두가 별사탕처럼 사랑스러운 것들만 끌어안고 있는 가운데, 나는 어쩐지 도그와 로봇에게서 자꾸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를 읽어내게 된다. 동물이 숱하게 유기되고 학대 당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이겠지만, 서로를 기억하고 주고받는 감정은 분명 대등함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한쪽을 구매하는 형태로 이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어쩐지 마음에 자꾸 남는다.
하긴, 반려동물과 주고받는 감정은 우정과 사랑 모두를 아우르는 커다란 마음이니, 그렇다고 해도 꼭 이상하지는 않겠다. 내게도 몇 년째 꿈결에 그리워하는 동물 얼굴들이 있으니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얼굴들을 생각하면, 로봇과 도그의 마음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헤어지지 말자. 이 위험한 도시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일상의 낭만과 행복을 들이마시자. 우리만의 노래를 틀자. 그리고 혹시 헤어진다면, 꼭 다시 행복해지자.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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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이번 주부터는 저번 한 주에 일어났던 영화계 소식이 아닌최근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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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롯데시네마 영화관람료 인상
ⓒ 롯데컬처웍스
롯데시네마가 다음 달 1일부터 영화 관람료를 1000원씩 인상한다고 밝혔다.
군인, 경찰, 장애인, 국가 유공자 등 우대 요금은 인상에서 제외됐다.
독전2,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
ⓒ 넷플릭스
누적 관객수 520만 명을 기록한 <독전>의 속편 영화 <독전 2>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고 한다.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한효주는 이선생의 실체를 알고 있는 큰칼 역을, 오승훈은 앞서 류준열이 연기했던
버림 받은 조직원 락 역을 맡았다.
제 11회 광주독립영화제, 23일 개막 예정
ⓒ 광주독립영화협회
각종 사회문제를 다룬 독립영화 32편이 광주독립영화제에서 공개된다고 한다.
광주독립영화제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리며, 개막작으로는 '말이야 바른 말이지'가 선정됐다.
<탑건: 매버릭>, 예매율 50% 달성
ⓒ 네이버 영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탑건: 매버릭>이 개봉 2일 전 예매율 50%를 돌파하며 1위를 기록했다.
<탑건: 매버릭>은 6월 22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해외
25년만의 공식 리메이크 <큐브>, 7월 대개봉
ⓒ 디스테이션
영화 <큐브>가 25년만에 첫 공식 리메이크작으로 돌아온다.
7월 13일 개봉 예정이며, 스다 마사키, 안, 오카다 마사키 등이 출연한다.
<패딩턴 3>, 2023년 촬영 예정
<패딩턴 3>는 CF 감독 출신 듀갈 윌슨이 연출을 맡았으며,
촬영은 2023년 페루와 런던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피 데스데이 3>, 제작 논의 중
<해피 데스데이> 시리즈 제작자 제이슨 블룸과 감독 크리스토퍼 랜던이 <해피 데스데이 3>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현재 제작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제작할 예정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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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소재의 영화.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대형 뮤직 페스티벌로 관심이 무척 뜨거웠는데요.
특히 '서울재즈페스티벌 2022'는 1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티켓팅에 실패하신 분, 그리고 재즈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을 위해
재즈 관련 영화를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재즈 소재의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올 댓 재즈
All That Jazz, 197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무대 연출가 조 가디언은 기념비적인 무대를 마련하고자 일에 몰두하는데,
과로, 흡연, 습관성 음주로 쓰러질 지경에 이른다.
주위의 완강한 권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제작자 측은 그의 입원에 공연 추진을 보류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는 충격을 받고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데...
cine pick!
<올 댓 재즈>는 영화, 연극, 뮤지컬 연출가로 널리 알려진 밥 포시가
연출한 영화이자 자신의 삶을 투영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문화적, 역사적, 미적으로 중요성을 인정 받아
2001년에 미국 국립영화등기부에 등재되었다.
레이
Ray, 2004
ⓒ 네이버 영화
synopsis
그래미 상을 수상했으며, 수십 년간 히트 앨범을 만든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가수 '레이 찰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cine pick!
제이미 폭스의 열연이 돋보이는 작품인데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치코와 리타
Chico & Rita, 2010
ⓒ 네이버 영화
synopsis
1948년 쿠바.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는 치코와 리타는 사랑에 빠지지만
오해가 뒤엉키며 안타까운 이별을 한다.
그리고 이들은 화려한 기회의 도시 뉴욕에서 다시 재회한다.
cine pick!
세계적인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
그리고 거장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가 만나 탄생한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애절한 두 사람의 이야기.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2015
ⓒ 네이버 영화
synopsis
재즈의 아이콘인 트럼펫 연주가 쳇 베이커.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어진 순간 연인 '제인'과 트럼펫만이 곁에 남았다.
cine pick!
로튼 토마토 신선도 88%, 전세계 평단이 극찬한 영화 <본 투 비 블루>.
'My Funny Valentine'으로 유명한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보통의 실화 영화는 전성기로 향하는 스토리로 진행을 하지만,
이 영화는 쳇 베이커의 전성기 이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마일스
Miles Ahead, 2015
ⓒ 네이버 영화
synopsis
눈부신 전성기를 맞이하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중의 시선에서 5년간 사라진다.
기자 데이브 브래든은 그에게 숨겨진 미발표 앨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사건으로 마일스는 앨범을 도둑맞고, 마일스와 데이브는 앨범을 되찾기 위해 함께 떠난다.
cine pick!
제53회 뉴욕영화제 폐막작, 제32회 선댄스영화제와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초정작으로
선정되며 화제를 모았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마일스>.
마일스 데이비스와 실제 함께 음악을 했던 재즈 거장과 신예 재즈 뮤지션들이 참여해 기대감을 더했다.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A Tuba to Cuba,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뉴올리언스의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가 음악적 뿌리를 찾아 쿠바로 향한다.
일상이 리듬과 소울이 가득한 도시 아바나에서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오직 음악으로 소통하는 이들의 대화에 귀 기울여본다.
cine pick!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는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의 여행을 담은 로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음악의 보편성과 감동적 메시지를 지루하지 않게 담았으며,
재즈 음악으로 음악적으로도 풍부한 영화라고 평가받았다.
더불어, 영화는 제11회 DMZ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초청작이다.
소울
Soul, 2020
ⓒ 네이버 영화
synopsis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게 된 그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지게 되는데...cine pick!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저마다의 성격을 갖춘 영혼이 지구에서 태어나게 된다는
재미있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 <소울>.
국내 개봉 전 제73회 칸 영화제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기대작으로 떠오른 작품이다.
빌리 홀리데이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무대 위에선 모두의 박수를 받지만, 무대 아래에선 시대의 폭력과 광기에 끝없이 시달렸다.
도망칠 곳 없이 어둠으로 내몰린 삶 속에서도 그녀가 포기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세상을 위한 단 하나의 노래, 그녀를 위한 단 하나의 사랑.
cine pick!
재즈 3대 디바 중 한 명인 '빌리 홀리데이'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명감독 리 다니엘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섹스 앤 더 시티> 디자이너 파올로 니에두,
그리고 <그린 북> 음악 감독 크리스 보워스가 참여해 기대감을 더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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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완전한 기억이 마주한 그날의 진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2012) – 불완전한 기억과 ‘나’
줄이언 반스,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
★★★
“야, 이 닭 대가리야!”
신입사원 시절 회식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다 선배 K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얼마나 화가나고 분통했던지 씩씩거리며 따져 들었다.
“내가 왜 닭 대가리요?, 그럼 선배는? 붕어 대가리처럼 생겨 가지고는…”
(물론 끝엣 말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추가하는 말임을 알아주기 바란다.ㅋㅋ)
내 기억의 저장소에 등록된 ‘특별한’ 순간들
사실 내가 그때 화가 났던 것은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래 전 일을 눈앞에서 보듯이 선명하게 읊조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경멸하듯 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때가 많다.
그러나, 아주 아주 가끔은 나에게도…
갑자기 반짝이는 번개 빛이 순간적으로 특정 지역을 훤히 드러내듯,
활짝 되살아 난 나의 기억이
과거의 특별 했던 그 순간의 의미를 떠오르게 해 줄 때가 있다.
‘하하, 나도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지!’
그때마다 나는 나의 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을 그 ‘특별한’ 기억의 조각들이
어느 순간 적절한 타이밍에 되뇌임 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고,
잘 보관되어 왔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그 선택된 기억의 조각은 나에게 의미 있는 특별한 삶의 순간이었겠지!
내 기억의 파편들, 그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이런 ‘특별한’ 기억에 관한 책/영화이다.
이제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①우리의 기억은 항상 올바른 것일까?
②우리의 기억은 올바른 것일까?
위 두가지 질문 중 어떤 것이 답하기 쉬운가?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개 '항상'이라는 글자에 방점을 두고
'그렇지, 항상 올바르지는 않겠지, 한두번은 틀릴 수 있지 않겠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질문은 참으로 답하기 어렵다. 다시 두번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의 기억은 올바른 것일까?
더군다나 40년이나 지난 어떤 일에 대한 것이라면?
이제 60대 중반에 들어선 주인공 토니는
옛날 고등학교와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아 들고선,
과거의 잊어버렸던 기억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 주인공 토니는 ‘평균치’ 삶을 살고 있는 카메라 수선공으로 나온다.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마주한 옛 연인 '베로니카'.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기억은 고등학교 역사수업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선생님이 던졌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두 주인공의 답변은,
‘기억의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 책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33p, 토니)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34p, 에이드리언)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의 엇갈린 답변은
이 소설의 결말을 예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책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이를 알게 된다.
그래서 다들 책을 두 번 다시 읽게 된다고 한다.)
구분하자면 토니는 역사(=기억)란 ‘의도적인 거짓말’일 가능성에,
에이드리언은 ‘부정확한 확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 에이드리언(좌) 과 토니(우)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이렇게 ‘특별한’ 기억의 핵심 사건은 주인공 토니의 대학시절,
자신과 결별했던 연인 베로니카가 그의 절친 4인방 중 하나인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아드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쉽게 말하자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토니는 이미 헤어진 사이라며 쿨하게 둘 사이의 관계를 축복하는
엽서를 보냈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십일일자로 온 자네의 서신을 수령하면서,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77p)
물론 그때 감정의 동요가 없진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감출 요량으로 엽서를 보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의 편지를 읽은 후에 내 본심을 감출 요량으로 보낸 엽서를 기억해 냈다.
모든 것이 다 좋아, 이 친구야 운운하며 평정을 가장했던 문장들을.
그것은 클리프턴 현수교 사진이 인쇄된 카드였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171p)
이 정도다.
여기까지 보면 토니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옛날 한 순간의 추억은
그리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기억을 다시 떠올려낸 순서는 뒤죽박죽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편집되었을지라도
크게 사실을 호도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토니는 지나온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볼 때,
누군가에게 크게 해악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보통 사람들 수준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평균치, 학교를 떠난 후 나란 인간은 줄곧 그랬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평균치. 우정과 사랑에서 평균치, 섹스에도 의심할 여지 없이 평균치였다.
(중략) 그러나 평균치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평균치가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평균치 인생. 평균치 진실. 평균치 윤리관.” (174p)
물론 그러한 평가 조차도 나 자신을 위한 합리화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게 되고
고집불통이 되어 간다는 것을 인생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165p)
그렇기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없다.
과거의 기억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불행하게도, 우려했던대로
잊어 버렸던 아니, 애써 잊고 싶었던 기억에 대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 기억에서 사라졌던 장면들
그 당시 옛 연인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의 교제를 쿨하게 인정했었던 엽서에 대한 기억은
사실은 윤색되고 각색된 기억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록은 기억을 뛰어넘어 사실을 보여준다.
아래 편지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 왜곡이었던가?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베로니카, 개 같은 년. 잘 지냈나? 너도 이 편지를 읽도록) 내가 너희를 소개해 준 날을 저주하게 되길…
(중략) 각자의 인간관계에 독처럼 작용하는 고통이 평생 이어지길…
(중략) 너의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바라고 있어. 이유인즉 내가 시간이 대대손손 복수를 가한다는 걸 굳건히 믿는 인간이라 그래…
너도 이미 그 여자가 남자 잡아먹는 요물이라는 사실쯤은 알았겠지.
내가 너라면 ‘모친’에게 이런 사실들을 확인해 볼걸? 오래전에 그 여자가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중략) 에, 또, 허세 덩어리이기도 하니, 명심하라고… 그리고 기원컨대 너희의 관절과 성유를 바른 머리통에 산성비가 쏟아지기를 (토니)” (165p)
# 토니의 기억에 조차 남아 있지 않던 당시에 보낸 편지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내가 정말 이런 편지를 썼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두 사람에 대한 저주의 글을 보고 토니는 소스라치게 놀랄 뿐이다.
더군다나 40년이 지난 지금
그 편지가 불러일으켰던 후폭풍을 이제서야 마주하고서야
토니는 기억의 저편에 남아있는 진실과 그 결말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후회와 회한이 밀려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럽다.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환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242p)
그 옛날 저주의 편지를 받아든 베로니카, 에이드리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 다음 이야기는 '스포일러'에 해당하여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기억의 왜곡, 그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본능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기억에 대해 불완전한 존재인지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그 옛날의 기억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래 그림에서 A기억 저장소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은
A'라는 기억으로 대체된 지 오래지만
우리는 그 대체과정을 살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그 과정에는 나 자신의 존엄을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잠재된 윤리적 저항의식 보다는 강하게 작동하기에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작위적 기억의 편취에 대항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된 기억일수록 나 자신과 합의된 ‘합리화된’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 – 기억이 왜곡되어져 가는 과정
저자는 이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를 통해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기억의 저편에 남아 있을 진실을 마주하자’는 식의
상투적인 교훈을 남기고자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인간은 기억에 한해서는
우리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이던가?
자신만만해 하던 ‘내 기억’은 사실 짜집기된 나의 주장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상처가 깊을수록 그 기억의 왜곡도 심해진다.
혹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100% 순도의 기억을 남길 방법은 없다.
자기 생존 방어 본능에 따라 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은 왜곡되고 윤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에 한한 우리 자신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불완전한’ 과거를 확신하는 것에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다.
어쩌면 20년전 K선배가 말했다고 하는 ‘닭 대가리’에 대한 나의 기억도
나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자기방어적 편집된 기억일 수도 있겠다.
아무도 모르는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 책 표지
#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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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으세요. 굶으면 구원받습니다.” 극단주의의 메커니즘
6★/10★
몇몇 사람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배경에 대한 온갖 말과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명확한 것은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뿐이니까. 사람들은 금세 혀를 찰 것이다. 파편화된 채 흩뿌려진 근거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집단 자살을 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은 곧 ‘극단주의자’, ‘정신이상자’ 등으로 불릴 것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은 금세 그들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테다. 그러나 그리 간단치가 않다. 집단 자살에 동참한 사람 중 그들처럼 ‘상식적인’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면? ‘상식적인’ 사람을 정신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위험한 신념을 품게 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죽은 자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성급히 단정 짓는 일은 왜 그들이 그런 선택에 이르렀는지 질문할 기회를 박탈한다. 〈클럽 제로〉는 상상력을 발휘해 왜 누군가가 극단주의의 강력한 추종자가 되는지, 그 과정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질문한다. 다양한 형태의 극단주의가 난립하는 요즘 시대에 긴요한 상상력이다.
상류층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에 노백이 영양교사로 임명된다. 노백은 늘 끝까지 단정하게 단추를 채운 카라티를 입고 다니며 흥분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한다. 옷차림부터 언행까지, 노백이 특정한 형태의 완벽주의/극단주의의 상징임이 암시된다. 그는 다양한 이유로 식이법을 고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개설하고, 그들에게 ‘의식하며 먹기’를 제안한다. 처음에는 심호흡하며 먹기 등의 간단한 요법만 제시하던 노백은 점차 식사량을 줄이고 마침내는 아무것도 먹지 않음으로써 얻게 될 자유를 설파한다. 학생들을 자신의 신념에 동참시키기 위해 노백이 사용하는 기술들은 기묘하고 절묘하다. 이런 유의 얼토당토않은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참고할 만하다.
먼저 학생 개별에 밀착하여 각자의 사연에 맞는 계몽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 호명은 주체화의 조건이다. ‘너는 새로운 식이법의 주인공이야’라는 속삭임은 자기 쓸모와 미래를 고민하는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방황하는 인간이 갖기 어려운 주체로서의 역능과 효능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체성의 토대가 마련되면, 그에 반하는 행동(즉, 먹기)에 죄책감을 느끼게끔 한다. 힘에 부칠 때는 의지로 돌파해야 한다고 북돋는다. 이탈자나 회의자가 생기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계몽으로 이것이 자유를 향한 고난의 길임을 강조한다. 당연하게도 기성 사회의 상식에 반하는 가치, 즉 진정한 자유의 추구에서 과학적 사고는 거부된다. ‘옳은 일’에는 과학 따위가 들어설 곳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신념을 잘 따라오는 자에게는 포상이 주어진다. ‘클럽 제로’라는 비밀 조직에 입회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클럽 제로 입회가 자유를 성취했다는 증거라는 사고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비밀 임무를 주어 내부자들의 결속과 소속감을 다지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선민의식을 낳는다. 진짜 자유를 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위계가 생기는 것이다.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총화總和하면서는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신념을 재확인한다. 내부 구성원 이외의 관계망을 약화시키거나 끊는 건 필수다. 이 영화에서는 자녀의 거식拒食을 걱정하는 부모가 그 관계망의 핵심이다. 부모의 애정 어린 간섭의 의미를 자유에의 훼방으로 뒤바꿔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조차 구성원 간 신념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이 신념 공동체를 완전히 이탈하지 못한다. 먹지 않아 쓰러지는 친구 옆에서 몰래 먹으며 눈치를 볼 뿐이다. 구성원들에게 이 신념 공동체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사망 선고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건 이때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부모, 학교 당국이 논의를 시작하지만 이미 늦었다. 노백을 해고해도 아이들은 바뀌지 않는다. 그의 신념은 아이들에게 이미 깊숙이 새겨졌다. 식이법에 대한 학생들의 간절함에서 시작된 노백의 극단적 신념 공동체는 그들이 클럽 제로 입회 후 ‘위대한 길’로 갔다는 말과 함께 사라지는(혹은 ‘구원’받는)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그 아이들이 정말 ‘낙원’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족‧학교에 머물며 만들어갈 미래가 사라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부모와 학교(사회)는 진작 더 촘촘하게 아이들(구성원)의 마음을 살폈어야 했다.
노백이 아이들을 휘어잡는 과정의 서스펜스 강도가 더 높았다면 좋았겠다 싶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여기서 영화 속 극단주의와 우리 주변의 극단주의를 면밀히 비교해볼 적당한 비평적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는 점은 감안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극단적 신념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던(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람으로서, 영화는 적당한 객관화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극단적 신념의 메커니즘을 미스터리 장르로 버무려내는 시도는 장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끝끝내 남는 질문도 있다. 어떠한 극단적 신념이 정말 옳은 것이라면? 그 신념으로 부조리한 세계를 뒤집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역사는 때때로 극단주의가 옳았음을 증명한다. 때문에 ‘극단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 ‘좋은’ 극단주의인지를 감별하는 안목과 구성원이 ‘나쁜’ 극단주의에 거리를 둘 수 있게끔 하는 사회의 자정 능력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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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진의 <창밖은 겨울>
본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작년 전주 영화제에서 볼 영화가 없어서 선택한 영화였다. 당연히 기대감도 없이 심드렁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꽤나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흥미로워지기 시작한 지점은 MP3의 주인을 기다리는 공기사의 태도였다. 나의 질문은 “MP3로 어쩔 건데?”였다. 아주 사소한 무언가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영화는 누군가가 잃어버린 혹은 버린 MP3로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간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거나 명작은 아니다. 분명 이 영화는 누군가의 습작품처럼 미학적인 야심보다는 이야기에 충실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영화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따뜻함은 어떤 특정한 장면이나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점은 분명 진해라는 공간에서 드러난다. 작년 전주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내가 이 영화에서 “좋다”라고 생각한 지점들이 어떤 지점들인지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보면서 첫 장면부터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내가 본 느낌은 감독이 “진해”라는 공간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지형적인 쇼트나 진해만의 특색이 느껴지는 쇼트는 없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찍은 시점 쇼트나 몇몇 풍경 쇼트들은 마치 누군가가 항상 일상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소중한 순간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다.
영화의 첫 장면은 버스를 모는 공기사로 시작한다고 이야기하면 그건 틀린 것이다. 우린 화면에서 버스를 모는 공기사를 보지만 첫 장면에서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한다. 첫 장면은 아침방송으로 시작한다가 맞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공기사의 전 여자친구가 공기사에게 이별 통보를 하면서 한 말이 아침방송을 듣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마도 영화를 하는 사람 혹은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디테일이지 않을까. 맨날 밤을 새는 직업. 혹은 언제 일어나고 언제 자는지 정해지지 않은 삶. 이 부분을 지적한 까닭은 이 영화는 디테일이 꽤나 훌륭하게 설정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심지어 MP3를 고치러 방문한 문구점에서 주인 할아버지가 돌고 돌아서 돌아가라는 대사 또한 마치 공기사의 마음과도 같지 않은가. 이 돌고 도는 것은 로터리에서 시각화된다. 영화관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은 그것이 웃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진행시키는 감정이거나 혹은 어떤 은유적인 표현들의 디테일들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공기사가 아침방송을 듣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영화를 포기한 이유와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결합된 것임은 추정이 가능하지만 정말 아침방송을 듣고 싶다고 이야기한 전 여자친구의 말 때문에 그는 버스 기사가 된 것일까. 이렇게 생각이 닿는 순간 어쩌면 공석우는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다.
만약 시사회에 감독이 참석했고 관객들에게 질문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또 다른 질문은 공기사의 엄마를 찍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에서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장면과 졸혼을 이야기한 뒤에 거리를 걷는 장면은 모두 뒷모습으로 찍혔다. 이 뒷모습이 유달리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영애와 걸을 때 패닝으로 뒷모습이 보이는 것과는 다른 감정적 효과를 자아낸다. 영애와 걷는 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영애와의 걷는 장면에서의 뒷모습은 마지막 쇼트에서 정서적 힘이 발휘된다. 그런데 이 마지막 쇼트도 앞에서의 뒷모습과는 다르다. 앞에서의 두 쇼트는 정면으로 찍을 수도 있는 쇼트다. 여기서 뒷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가 화제가 된다면 아마도 한선화라는 배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는데 난 예능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다만 한선화가 아이돌이었고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연기를 계속해도 되겠다는 관객들의 인정을 이 영화에서 얻어낸다. 그건 어쩌면 <건축학개론>의 수지와도 같다. 수지와 한선화를 비교하는 건 아니다. 다만 <건축학개론>에서 서연이라는 캐릭터는 내면을 표현하거나 딜레마를 겪거나 혹은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건 <창밖은 겨울>에서 영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캐릭터를 감싼다. 연기라기보다는 마스크와 감독의 영리한 디렉션이 결합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영애의 입에서 탁구 시합을 나가려는 것이 탁구에 남은 미련인지 후회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고 대답했을 때 공기사는 미련인지 후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영화 협회에 다시 참석한다. 난 여기서 공기사가 얻는 대답이 미련일지, 후회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연출할 지도 궁금했다. 다시 보고 있는 과정에서도 첫 번째 감상에서 놓친 이 답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감독은 여기에 미련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또다시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미련인지, 후회인지도 깨닫기 전에 저쪽에서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답을 준다. 그 순간 미련이건 후회이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거기서 이미 끝난 것이라고 감독은 이야기한다.
MP3가 돌고 돌아서 결국 결국 공기사에게 도착한다. 그것은 전 여자친구를 거치고 유실물 센터를 거쳐서 수리를 받고 마침내 영애에게 도착했을 때 그 MP3의 이어폰은 영애과 공기사가 한 쪽씩 끼게 된다. 이제 우리는 돌고 돌아서 마침내 MP3가 목적지를 찾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순간 우리는 따뜻함을 느끼지만 그것보다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디테일의 힘, 즉 돌고 돌아서 MP3가 도달하는 곳을 공기사가 돌고 돌아 영애에게 도달했다는 것으로 일치시킨 기분 좋은 유쾌함을 느껴야 한다. 아, 오랜만에 보는 진정으로 따뜻한 한국 영화다.
2022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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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역시 조정석!
개봉 첫 주 <파일럿>이 <데드풀과 울버린>을 밀어내고 1위에 올라섰습니다.
누적 관객 수 174만여명으로 2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편 <데드풀과 울버린>은 지난 7월 24일날 개봉했지만 한주 뒤 개봉한 <파일럿>보다 저조한 누적관객수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4 청불 영화중 최고 흥행작에 등극한 작품으로 글로벌 수익8116억원을 벌어들이며 엄청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또한 <데드풀과 울버린>이 1위를 기록했으며 정이삭 감독의 <트위스터스>가 2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미스터리 스릴러 <트랩>이 3위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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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임크라임> 메인 예고편
다세대촌에 살고 힙합을 좋아하는 소년 ‘송주’, 가수 이센스는 그의 영웅이다.
아파트 부촌에 살고 있는 반 친구 ‘주연’과 함께 둘은 힙합팀 ‘라임크라임’을 결성한다.
두 소년은 힙합 성지 ‘밀림’의 무대에 오를 꿈을 꾸며
함께 랩을 하기 위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 차이가 둘의 길을 갈라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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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좀비버스> 공식 예고편
좀비 앞에 장사 없다? 있는 힘껏 뛰고 생존하고 살아남아라! 좀비로 가득 찬 서울? 누구를 살리고, 포기할 것인가 생존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 넷플릭스 예능 《좀비버스》 8월 8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