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2-28 17:12:18
거장들의 명작을 오마주한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
<로봇드림> 3월 13일 대개봉
로봇드림 & 맨하탄
로봇드림 & 원스
로봇드림 & 오즈의 마법사
뉴욕 맨헤튼에 혼자 사는 '도그'에게 단짝 반려 로봇이 생기며 벌어지는
꿈같은 일상을 그린 리드미컬 무비!
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 노미네이트
제76회 칸 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 공식 초청
제 47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콩트르상 부문 대상
제 36회 유럽영화상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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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 탐정으로 돌아온 배트맨, 브루스 웨인
나의 최애 슈퍼히어로는 퍼니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마블 히어로들에 비해선 인지도가 떨어지는 영웅이라 많이들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퍼니셔는 중간이란 없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었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그에 대한 분노를 범죄자들에게 푸는 인물이다. 여러모로 슈퍼히어로라고 보긴 어렵다. 원래 같으면 스파이더맨과 같이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개화시키는 게 다방면으로 선한 방식인데 퍼니셔에게 그런 건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런 내면의 폭력성을 후회와 트라우마로 분출시키는 내면의 에너지가 난 너무 멋있다. 데어데블과 킹핀이 MCU로 리턴함에 따라 퍼니셔 역시 합류가 유력하다는 링크가 뜨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그의 복귀를 아~주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존 번탈의 퍼니셔로.
최애도 마블. 제일 인상 깊었던 영화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으로 마블이었다. 난 DC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슈퍼맨이나 아쿠아맨 같은 히어로들은 신이라서 감정이입이 안 된다. 퍼니셔같이 사람이어야지 공감이 돼서 보는 재미가 생기는 것이다. 이 근거로 남들 재밌다고 했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그냥 그랬다. 그냥 취향에 안 맞았던 듯싶다. 그래서 그나마 좋아했던 작품이 <다크 나이트>와 <조커> 정도였다. 전자는 워낙 슈퍼히어로물의 교과서로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작품 아닌가. 후자는 스릴러 향을 첨가한 사회비판 영화로 극에서 표현하는 음울함에 사실 좀 공감하기도 했다. 두 작품 다 인물의 현실감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브루스 웨인이 그냥 돈 많은 잘생긴 부자 1로만 묘사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이 전부 다 떠나가 마음에 구멍이 난 인물이었고(<다크 나이트>) 온 사회가 만든 상처에 빠져 괴물이 된(<조커>) 내면묘사는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어서 인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단순히 마블의 히어로들처럼 때려 부수는 것과는 다른 재미를 무의식 중에 바랬던 것이다. 이런 나는 2022년 3월 1일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관심조차 가지 않는 밴 애플렉의 배트맨과는 다른 히어로가 탄생할 것 같다는 생각에 두근두근 설렜다. 브루스 웨인이 10년 만의 솔로 무비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무력이 강해 기대고 싶은 배트맨은 아닌 것 같다. 이 <더 배트맨>은 우리 곁에 있을법한, 뇌가 섹시한 슈퍼히어로다.1. 어떤 것에 대한 영화인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배트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박쥐 가면 쓴 싸움 잘하는 남자. 뭐 그렇게들 많이 알 것 같다. 맞다. 이 영화는 박쥐 가면 쓴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이다. 이 박쥐 가면 쓴 유사 자경단은 고담시의 부조리가 벌어지면 쨘하고 나타나서 불한당을 두드려 패 버린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불살 주의답게 총기나 칼 같은 둔기류를 쓰지는 않는다. 적당히 두드려 패버리는 선에서 약자를 도와주는 배트맨. 이 영화의 인트로는 배트맨의 히어로 활동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이 배트맨 액션 신과 함께 내레이션을 보여준다. 난 과연 잘하고 있는가, 식의 회의감으로 가득한 배트맨. 배트맨이 된 지 2년밖에 안된 초보 슈퍼히어로라 그런지 그는 마음속의 숭고한 대의만으로도 내면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당연하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나쁜 놈들에게 잃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 복수로 가득 찼다. 이 때문에, 그는 잃었다는 화와 분노 때문에 악인을 보면 죄다 두드려 패버리는, 뒤틀린 슈퍼히어로가 돼버렸다. 당연히 그가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다. 원래 무언가를 잃고 나서 하는 모든 행동은 공허하다. 당연하지. 그 잃은 대상이 돌아오지 않는데. 근데 그는 그렇게라도 해야 내면의 분노가 해소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런 그에게,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고담 시장이 암살당한 것이다. 의문의 수수께끼와 함께 살해당했다. 시체 근처에는 'To batman'이라는 편지가 있다. 살인범은 자기를 리들러 라 칭하며 배트맨에게 메시지를 건넨다. 이 메시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수수께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람이 죽은 이면에는 어떤 사건이 관련되어 있고, 이 <더 배트맨>은 배트맨이 경찰 고든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배트맨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내적 성장을 이루는 것 역시 핵심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보통 배트맨 시리즈 영화를 장르적으로 표현하자면 '슈퍼히어로 영화'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배트맨은 슈퍼히어로니까. 근데 이 영화는 사실 드라마적인 요소가 더 강한 쪽이라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면. 팀 버튼의 배트맨은 감독의 주 장기인 '시각화'가 십분 발휘된 시리즈였다고 생각한다. 펭귄에 대한 비주얼만 생각해도 감독의 인장이 쾅쾅 박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명품 트릴로지로 자주 회자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는 히어로의 탄생과 천재성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놀란은 <배트맨 비긴즈>에서도 라스 알 굴에게 싸움 배우며 내면의 분노를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에 대해 다뤘다. 이 뿐만 아니라 브루스 웨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 직접적으로 조명한 것도 다른 배트맨과는 다른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약간 강박증(?)이 있는 놀란 답게 폭발이나 고딕 양식을 따온 듯한 건축물 디테일도 구현이 잘 됐다.
그런데 이 맷 리브스 표 <더 배트맨>은 다르다. 일단 배트맨의 기원 그런 것 없다. 레이철? 그런 거 없다. 캣우먼도 '캣우먼'이라는 이름으로는 언급되지 않는다. 유년시절에 대한 언급이 단 1도 없고 신참 배트맨의 모습 그대로를 먼저 제시한다. 실제로 영화는 처음부터 악인들 때려잡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초반부터 기존의 배트맨들과는 다른 지점을 보여준다. 이런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은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느껴진다. 이렇게 다르게 시작했던 <더 배트맨>은 주인공 내지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게 만든다. '악인이 나온다 - 무력으로 두들겨 팬다 - 나쁜 놈이 착해진다'의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꼼꼼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이에 따라 '이 사람이 피해자가 될 것이다'라는 식의 추리물로 변한 것이다. 이는 원작 묘사에 철저했다는 뜻도 된다고 생각한다. 원래 DC의 뜻이 'Detective Comics'라고 한다. 이에 걸맞은 히어로 묘사가 된 것이다. 또 누아르 영화 느낌도 난다. 주요 정치인들이 살해되며 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이게 우리가 <세븐>이나 <조디악>에서 보던 느낌이다. 약간 슈퍼히어로 30% 첨가에 범죄 수사물 50%에 성장기 20%가 첨가된 느낌?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3. 또 어떤 부분에서 기존의 시리즈들과 다른 영화인가요?
내가 이 영화가 진정한 배트맨스러웠다고 생각한 지점은 이 부분이다. 이 근거로 영화의 색감이 어둡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얼마 전 <나이트메어 앨리>를 봤었는데 그 작품보다 더 어두웠던 것 같다. 배트맨의 내면이 깊고 어둡지 않나. 고담시의 묘사 역시 개판 오 분 전이다. 온갖 범죄가 판치고 마피아가 쌈 싸 먹은 게 고담시다. 이에 맞게 색감을 전체적으로 어둡게 뺐다. 난 이게 배트맨 시리즈다운 묘사라고 생각한다. 기존 시리즈들과 비교해봐도 큰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낮에 벌이는 일이 거의 없는 느낌? 사건이 대부분 밤에서만 일어난다. 일부러 사건의 시각 설정도 그런 부분을 염두해서 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낮이라는 소재가 들어가면 확실한 특징으로 꼽을 수 없어 팀 버튼과 놀란에게 비교당하기 쉬울 테니까.
또 슈퍼 히어로서의 비범함이 물리력이 센 쪽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싸움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는 뜻이다. 실상 액션신을 까 보면 많이 맞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은 고담시의 악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에 대한 연출이 사운드에서 나타나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는데 배트맨이 차를 쓸 때 부르릉하는 배기음이 난다. 내가 악당 입장이라면 배기음 이거 좀 무서울 것 같다. 소리가 무서운 사운드다. 또 배트맨이 악인들에게 나타날 때 빠르게 다다다 뛰지 않는다. 천천히 걷는다. 이게 무슨 의미겠어? 빠르게 고통스러운 거면 '순식간에 끝나니까' 그렇게 안 무서울 수도 있다. 그런데 배트맨이 천천히 걸어온다고 해보자. 악당들은 그가 걸어오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배트맨은 공포를 도구로서 활용한다. 이렇게 섬세한 연출 지점이 타 배트맨 시리즈와는 차이점을 갖게 한다.
4. 그래도 슈퍼히어로물에 액션이 빠지면 시체죠! 액션 연출에 대해 써보자면?
영화 자체가 강인함이나 무력을 소재로 삼지 않았다고 해서 액션이 부실한 것은 아니다. 이것도 나름 탁월하다. 배트맨은 불살 주의 히어로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묘사는 안 나온다. 그런데 이게 실제 싸움으로 적용한다면 무슨 사고가 날 것 같다. 예를 들어, 격투 신에서도 퍽 퍽 하는 소리가 타격감이 있다. 때리는 것도 한번 퍽 치고 나는 게 아니라 행동불능이 돼도 몇 대 더 때리는 묘사가 나온다. 물론 3번에서 쓴 내용도 맞다. 자주 맞기도 하고 사실적으로 때리는 사람이다. 근데 이렇게 공-방이 자주 반복된다는 것이 액션신의 합을 잘 짰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5. <조디악>과 <세븐>, 둘 다 범인을 찾아가는 영화였습니다. 또 빌런 리들러는 수수께끼를 내는 빌런이지요. 이거, 우리가 꼭 수수께끼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오. 영화가 수수께끼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쓰지도 않고, 일단 내가 그것들을 죄다 틀리기도 했다.(ㅋㅋ) 그래서 뭐 문제 못 맞혀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6. 러닝타임 176분, 거의 세 시간입니다! 지루하진 않나요?
난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러닝타임 세시 간인 거 1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액션으로서의 슈퍼히어로를 기대하고 가시는 분들에겐 좀 루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븐> 같은 영화 좋아하셨던 분들에겐 취향저격일 듯.
7.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펭귄을 맡은 콜린 파렐, 셀레나 카일을 맡은 조이 크래비츠 둘의 퍼포먼스도 좋았다. 또 제일 중요한 주인공 로버트 패틴슨은 사람의 내면과 어울리는 비주얼을 갖고 있지 않나. 완전 잘 맞는 캐스팅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하고 싶다. 리들러 역의 폴 다노다. 초반부-중반부-중후반부 직전까지 극을 이어가는 카리스마에서는 이 인물에게 나왔다. 다른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히스 레저)는 개연성이 없는 사이코패스였다. 근데 그게 말이 돼야 한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광기가 보여야 이 사람의 개연성이 드러난다. 밑도 끝도 없이 은행 털고 강도들 죄다 총으로 쏴 죽여야 조커스러운 광기가 드러난다. 단순히 행동으로만 하면 그 사람의 광기가 느껴지나? 아니다. 히스 레저는 디테일한 감정 묘사로 진정한 광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광기는 배트맨이 해결해야 할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조커는 이 영화의 베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히스 레저는 이렇게 어려운 캐릭터 설정을 소화해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난 영화를 보고 나서 리들러가 이 조커와 비슷한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의 리들러는 비대면으로 악행을 중계하는 빌런이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볼 때 리들러 슈트와 가면만 볼 수 있어서 직접적으로 감정 전달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폴 다노는 목소리 톤과 눈빛만으로도 악성을 드러내야 한다. 역시 까다로운 조건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리들러는 살짝 보이는 광기만으로도 내면의 분노를 폭발시켜 관객을 내내 압도한다. 소리 지르는 연기. 셀프 카메라로 자기 자신을 찍는 연기. 후반부의 특정 신에서의 대사 하는 방식. 이게 세상 착하게 생긴 폴 다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게 말이 되게 하는 배우의 퍼포먼스였다. 더 이상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구체적으로 쓸 수 없지만, 나는 폴 다노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값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인 악역이었다. 여태까지 본 적 없는.
8. 왜 추천하고 싶나요?
단순하다. 재밌으니까! 배트맨 멋있으니까! 리들러 멋있으니까! 좋은 영화 보면서 행복하고 싶으니까!
나는 이 영화가 되게 영화의 속성 한 가지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안 본 분들 부럽다. 얼른 달려가서 보시길 바란다.
아. 꼭 영화 끝까지 집중해서 보셔라. 굉장히 중요한 장면 하나 있다. 쿠키는 안 봐도 된다. 번역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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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널 영원히 남겨두기로 했어
왜 그렇게 수도 없는 사랑 이야기가 만들어진 걸까? 아름답지도 않은데. 아닌 경우도 분명 있겠지만 연애와 결혼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별의별 이야기로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합친다. 어떤 사람은 ‘성욕에 뇌가 절여진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누구는 어떤 사람에게 감동 못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럴 거면 왜 사랑을 하지? 사랑은 예쁘지 않다. 전적으로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사람이 하는 것에는 뭐든 장/단점이 있지 않나. 내가 보기엔 사랑은 장점이 3개쯤이고 단점이 97개다.
근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사랑이 역겹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나 마음이 따라가게 되는 것. 이 사랑의 기억은 사람마다 깊은 행복함이 있으니 어떤 것들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랑 때문에 어떤 인생이 행복해진다. 그리고 이 97개쯤 되는 단점이 결국 내 인생의 행복감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으로 결론이 난다. 참, 불행하다는 것이 과거의 내가 행복했다는 증거가 되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사랑의 상흔을 그림으로 남겼던 프랑스의 두 사람이 있다고 한다. 18세기의 프랑스로 가보자.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마리안느는 화가다. 결혼은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제자를 가르치고 있던 마리안느. 마리안느의 화실에는 그림 한 장이 있다. 제자들은 그림에 대해 마리안느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림 제목이 뭐예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마리안느는 그림 앞에 멈춰 서서 옛 생각에 빠진다.
앞에서도 썼듯 마리안느는 화가다. 18세기의 프랑스는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결혼 이전에 여자의 초상화가 남자의 집에 전송되면, 맘에 든 경우에 결혼 절차를 밟는다. 원래는 한 여자의 언니와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예비 신부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이유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어머니에게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 원래 결혼하고자 했던 남자의 집에 전하고자 했다. 엘로이즈의 집으로 가는 마리안느. 엘로이즈는 ‘포즈 잡는 게 싫다’라며 그림 그려오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마리안느에게 주어진 시간은 6일이다. 이 6일 동안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서로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다.
마음에 남을 수밖에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강점은 몰입감이었다. 특히 이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중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사운드다. 이 영화는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이 영화에 파도 소리가 자주 들린다. 이 파도 소리를 바탕으로 인물들이 대사를 치는데 이는 오롯이 영화의 내용과 대사에 집중이 잘 되는 효과다. 또한 이런 식의 미니멀한 연출법은 하이라이트 신의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 연주 소리가 기억에 남는 효과를 더한다. 이 몰입감의 연출은 최종 엔딩신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로맨스 영화의 가장 큰 덕목이 뭘까? 뭐 모든 영화가 다 그렇겠지만 역시 집중력일 것이다. 이게 내 사랑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나를 이끌고 내러티브를 전개하면 보이는 사람에게 큰 감정의 깊이를 남기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크고 작은 사운드 연출 하나만으로도 로맨스 영화로서의 흡인력은 충분했던 셈이다.
또 고를 수 있는 이 영화의 강점은 캐릭터 설정이다. 각본을 쓴 셀린 시아마는 생동감이 있는 인물들을 만들었다. 감독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가령 특정 인물이 달리기를 와다다다 달리는 부분이 있다. ‘달리기를 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하면 뭔가 억압된 것이 있을 거라 예상하기 쉽다. 온 세상이 억압적으로 대했으니 그녀가 달리나 수영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런 세상의 뭉개기는 사람의 성격과도 이어지기 쉽다. 이 엘로이즈의 성격 묘사가 입체적인 느낌이다. 솔직히 엘로이즈 답답했다. 그런데 왜 답답하지?로 생각하면 이 세상이 만든 명과 암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면 핍진성이 성립한다. 또 마리안느의 경우 그녀는 화가다. ‘초상화를 그려 남자의 집에 전한다’라는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이다. 얼핏 보면 수동적으로 보이는 마리안느. ‘그림을 그린다’라는 것은 얼핏 보면 주체적인 예술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시스템에 종속된다는 아이러니가 성립한다. 이 설정은 셀린 시아 마가 하고 싶었던 주제의식과도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이 ‘화가’라는 모티브는 두 사람의 로맨스와도 연관이 있다. 이 부분은 ‘뮤즈’ 같은 개념을 논파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는 듯했다.
또 영화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직관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잘 사용한 느낌이다. 흰 의상에 불이 타는 장면,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 마리안느가 했던 특정한 행동, 엘로이즈의 그림까지. 또 영화 전체적으로 이끄는 색감 연출은 ‘여성을 어떤 존재로 인식할 것인가’라는 것을 떠나 ‘멜로드라마로서도 탁월하다’라고 말하기 충분하다.
아, 앞에서 썼듯 영화의 가장 좋은 장점은 마음의 기척을 묘사하는데 탁월했다는 점이다. 대사 하나, 행동 하나, ‘그림’이라는 키워드, 예술이라는 매체, 두 주인공의 처지까지 아름다운 사랑이 기억에 남는 이유를 형식적으로, 내러티브로, 미학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꿈같은 영화였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영화의 제목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실 모호하다. 뭐가 타오른다는 뜻일까? 이 단어의 수식 범위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의 결론은 ‘여인의 초상이 타고 있다/여인이 타고 있다’ 둘 다였다. 일단 여인이 타고 있다는 의미는 특정 장면과도 이어진다. 이 특정 장면에서 두 인물의 사랑이 어디까지 왔나?를 중심으로 본다면 한 번에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여인의 초상’이 타고 있다는 의미는 셀린 시아 마가 극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답, 그리고 사랑의 속성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왜 사랑이 아름다울까? 만약 이뤄진 사랑이라면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을까? 과거에 대한 미련, 자기 후회, 자아에 대한 분노 등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때를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타올라서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여인의 초상’이 타올랐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사랑의 속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아름답게 불타던 때는 분명히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게 초상화로 남아있다. 이 그림은 그런 의미다. 아름답게 피어났던 기억이 있다는 건 즉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타올랐던 기억만 남은, 두 주인공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미 수도 없이 뒤돌아본 이야기
이 영화에 사용됐던 모티브는 에우리디케 설화다. 이 설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오르페우스는 하지 말라던 ‘뒤돌아보지 마라’라는 말을 듣고도 결국 돌아봐 아내를 구하는데 실패한다. 수도 없는 예술에서 차용된 이야기고 이 작품에서도 쓰였다. 특히 ‘뒤돌아 봐’라는 대사가 인상 깊다. 영화에서 이 오르페우스의 선택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니까 멍청하게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본 게 아니라 에우르디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 선택을 했다는 말이다. 이 부분은 ’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라는 대사와도 이어진다. 뒤돌아 보는 것, 그러니까 예전의 사랑을 추억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에 남으라고 말하고 있다. 뒤돌아보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
과하지 않게
영화는 적절한 선을 지킨다. ‘뮤즈’라는 개념과 임신중절에 대한 이야기를 극 전체에 암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냥 유치하게 선전이라도 하는 듯 쭉 극을 전개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중심은 탁월한 멜로 드라마였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 사랑에 빠진 이가 벌이는 행동들, 착취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주제가 부담스러울 분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그냥 잘 만든 영화다. 배우 아델 에넬, 노에미 룰랑 둘의 연기는 이에 생동감을 부여하기도 했다.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넷플릭스영화추천 #왓챠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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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깨진 살점 위에 짓는 집
영화 <사상, 2020>은 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부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몇 가지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먼저, 부산에는 사상구(沙上區)라는 지역이 있는데,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부제처럼 한자 역시 모래 사, 위 상을 쓰고 있었다. 다음으로 이 지역과 오랜 인연이 있는 장제원 국회의원이 세 번째 당선되어 직무 수행 중인 곳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에서 환경정비지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추진되는 만덕5지구는 사상구가 아니라 북구에 속한다.
영화 <사상, 2020> 포스터
<사상 공단과 성희의 살>
감독의 아버지이기도 한 성희는 사상 공단에서 열심히 일했다. 사상 공단은 낙동강 주변 저지대에 조성된 공업단지로 1970년대 중반부터 부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계획적으로 공장들을 모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업체들도 열악한 환경이었고, 난개발로 심각한 도시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성희는 이곳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얻었다. 아버지의 이름값을 치르고자 환갑이 가까운 나이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집 한 채도 손에 쥐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사상 공단은 성희의 손가락까지 잡아먹었다. 무시무시한 기계가 깨문 자리는 살점이 으깨져 이어 붙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손가락이 있던 빈자리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둥둥 떠 있다.
성희는 사상 공단에서 열심히 일했다.
<만덕5지구와 수영의 살>
수영이 사는 만덕5지구는 북구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사상 공단이 형성되던 시기 동구와 영도구에 살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만든 동네이다. 변두리 지역의 땅을 겨우 얻은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 집을 직접 짓고 제반 시설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30년이 넘게 지나고 보니 소위 없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은 도시의 경관을 해치는 지저분한 것이 되어있었다. 새롭고 깔끔한 아파트는 헌 집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헌 사람들까지 밀어낸다. 때때로 이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수영은 굴삭기를 돌리는 생업을 포기한 채 위태로운 탑을 쌓고 그 위에서 빠진 앞니로 치킨을 뜯으며 개발 논리 앞에 묵살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온몸으로 외쳤다. 결국 만덕5지구는 수영의 허리를 비틀어놓았다.
수영은 만덕5지구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으깨진 살점과 도시의 불협화음>
만덕5지구를 비롯한 모든 개발은 으깨진 살점 위에서 이루어진다. 곳곳에 설치된 지뢰처럼 영화 속 공간의 살점을 밟을 때마다 작품은 비명과도 같은 불협화음을 내지른다. 창문 프레임으로 보여주는 색 빠진 그림도 어딘지 모르게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성희와 수영처럼 쇠를 주무르고, 땅을 파며 이 나라에 돈이 잘 돌게 했던 아버지들의 몸은 지난 시간을 담은 하나의 기록이자 증거가 되었다. 사상구가 아니더라도 으깨진 살점의 비명은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다.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면 으깨진 살점의 비명이 들린다.
132분의 러닝타임 속에 9년의 시간이 흐른다. 하나의 이야기로 쭉 연결되는 서사보다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조각난 파편을 모으는 작업으로 구성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으깨진 살점처럼.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활동, 10년의 기록 <오지에서 온 다큐멘터리> 온라인 기획전이 10월 27일 수요일까지 열린다. 성희의 아들, 박배일 감독의 다른 작품도 감상해볼 수 있다.
https://www.indieground.kr/indie/notice.do?mode=view&articleNo=1189
[인디그라운드X오지필름] 오지필름 10주년 기획전 '오지에서 온 다큐멘터리' (10.14(목)~10.27(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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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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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가 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저는 매일 체크리스트를 적던 학생이었습니다. 겉으로는 계획적인 아이였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하루 계획을 전부 달성할 때까지 자신을 몰아세우는 아이였죠.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교무실로 부르셨습니다. 체크리스트를 적는 바로 그 노트를 가져오라고 하시면서요.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셨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 이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졌고, 교무실에서 한참을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아주 작은 관심, 그게 강박에 사로잡힌 열여덟 저의 숨통을 틔워주었던 겁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은 관심을 베푸시던 그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이 영화도 같은 맥락에서 그때 그 선생님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연약한 새싹을 건강한 나무로 키우는 세상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작품, <연소일기>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연소일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연소일기>는 2024년 11월 13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연소일기
Time Still Turns the Pages
Summary
한 고등학교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주인 모를 유서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교감은 이 일을 묻으려고 하고, 정 선생은 우선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부터 찾아보자고 한다. 편지와 학생들의 글씨 모양을 비교하던 정 선생은 편지 속 한 문장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든다. 정 선생은 일기를 읽으며 묻어뒀던 아픈 과거와 감정들을 마주하고,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탁역겸
출연: 노진업, 황재락, 하백염
뒤엉켜 나타나는 세 종류의 '연소'
<연소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플롯 구성의 영화입니다. 영화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과거는 초등학생 '요우제'와 '요우쥔' 형제의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쓸모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아버지와 폭력적인 남편에게 복종하는 어머니는 '요우제'와 '요우쥔'을 철저하게 차별합니다. 동생 '요우쥔'은 우수한 성적과 뛰어난 재능으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지만, 형 '요우제'는 비교, 무시, 폭력, 무관심 속에 내버려지죠. '요우제'는 일기를 쓰면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그 안에는 아무도 몰랐던 '요우제'의 진심이 담깁니다.
<연소일기(年少日記)>, 직역하면 '어린아이(年少)의 일기'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쩐지 '연소'라는 단어가 빛과 열을 내며 타는 연소(燃燒)로도, 불길이 인근에 옮겨붙는 연소(延燒)로도 읽힙니다. 병들어버린 능력주의 사회를 내면화한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 타들어 간 아이(형 '요우제')와 가정폭력을 목격하며 치유할 수 없는 그늘과 상처를 갖게 된 아이(동생 '요우쥔'). 가족의 비뚤어진 울타리가 어떻게 연소(年少)의 연소(燃燒)와 연소(延燒)를 만들어내는지 영화는 천천히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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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우울로 내모는 사회
현재의 이야기는 교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유서의 주인을 찾아다니는 '정 선생'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다른 선생들은 "요즘 애들이 문제"라는 말로 어물쩍 넘겨버리려 하지만, '정 선생'은 그때 그 일기장의 내용과 유사한 유서를 무시하지 못하죠. 학생들을 수소문하며 유서를 쓴 사람을 찾기 위해 무던한 애를 씁니다.
영화를 감상하다가 문득 그의 행동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고작 쪽지 한 장일 뿐인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지나치게 혼란케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금세 부끄러워졌습니다. 수험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이런 일은 쉬쉬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능력주의에 빠진 '요우제' 가족들의 가치관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수면 위로 꺼내야 할 것을 쉬쉬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우울로 내모는 사회를 만들고 있을 텐데 말이죠.
현재 플롯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유서를 작성한 아이를 찾으려는 '정 선생'의 시점에서 죽음에 관해 서로 다른 고민을 하는 반 아이들의 내면이 보이스오버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이는 '정 선생'의 상상에 불과한 장면이었으나, 오늘날 불안 세대의 단면을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묘사하는 연출이기도 했지요. 이제껏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타들어 간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눈길 한 번을 준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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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처럼, 그리고 저의 담임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어른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는 안아주어야 하고, 고통을 호소하지조차 못하는 아이는 찾아내야 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우울증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은 5만 명이 넘습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동·청소년도 200명이 넘지요. 이 수치는 매년 역대 최고 수치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세상, 그 사실을 절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One-Liner
감정 과잉은 최소화하고, '연소'의 고통은 최대한으로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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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디의 피자가게> 리뷰 - 무섭지 않은 공포 영화 추천
스포일러 주의!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남동생을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여동생 애비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마이크 슈미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자신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남동생이 납치를 당하는 사건을 겪고 난 후 어른이 된 마이크는 동생 또래의 아이가 어른에게 강제로 붙잡혀 가는 듯한 낌새만 보여도 곧장 달려들 만큼 폭력적인 성향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러한 성향 때문에 마이크는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되고 애비의 양육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마이크는 자신과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은 애비의 소망에 따라 어떻게든 양육권을 지켜내기 위해 유일하게 남은 직장인 '프레디의 피자가게'에서 경비원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따분하게 시간을 보내며 졸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형들이 이상한 낌새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신과 지인을 해치려고까지 하자 마이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프레디와 인형들을 막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과정을 그린 엠마 타미 감독의 호러 영화다.
만약 누군가가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재미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잠깐 망설이고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한 가지 전제를 반드시 달고 말이다. 원작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원작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즐겁게 시청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게임 속 존재들을 영화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원작을 좋아해야만 가능한 이야기일 뿐, 영화 자체로는 억지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호러 영화로서의 완성도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일단 무섭지가 않다. 소위 무서운 영화로 꼽히는 <컨저링>, <유전> 같은 영화에는 어림도 없고 굳이 따지자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보다는 아주 살짝 나은 정도의 호러다. (근데 이건 애초에 호러 영화가 아닌지라...) 애비와 폭시의 숨바꼭질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애초에 영화가 긴장감을 끌어올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찰나의 점프 스케어에만 의존한 채 관객이 깜짝 놀라기를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원작의 숨 막히는 긴장감 같은 건 도저히 느낄 수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어린이들도 볼 수 있는 호러 영화를 지향점으로 삼았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낮은 호러 강도는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를 보게 되면 내용도 뻔하디뻔한 가족 드라마고,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중간에 인형들과 함께 테이블과 의자를 활용하여 간이집을 만드는 장면은 호러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신나고 귀엽게 연출되었다. 다른 부분의 완성도는 낮은데 유독 인형 애니매트로닉스의 퀄리티만 신기하게 높은 것까지, 애초에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저연령층과 게임의 팬들을 주 타깃으로 삼았음을 대놓고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영화가 얄팍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는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저연령층과 팬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서 작품의 질까지 낮으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마이크의 트라우마가 형상화되는 꿈 장면은 너무 많이 반복돼서 지루함을 준다. 프레디가 여성의 허리를 깨물어서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키는 장면이나 컵케이크에 의해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저연령층을 노리겠다는 의도가 무색할 만큼 수위가 높다. 후반부에 스프링 보니를 등장시키는 선택은 오히려 프레디의 존재감을 옅어지게 만들고, 아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고 그에 따른 원한이 생기는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복하기에 썩 좋은 선택이라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중반까지의 신선함마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어차피 3부작인데 이후에 나와도 괜찮지 않았을까?) 직업상담사인 스티브 래글런이 사실 모든 일의 원흉인 윌리엄 애프튼이라는 반전 역시 호러 장르에서 너무 많이 쓰인 트릭인데다가 초반 이후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라 반전의 황당함은 더욱 커진다. 그나마 스프링 보니의 첫 등장 장면은 굉장히 강렬하게 연출된 덕분에 그나마 기억에 남는다는 게 위안거리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그럭저럭 즐겁게 볼만한 작품이지만 그 외에 관객에게는 만족을 주기 힘든 영화다. 심지어 원작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호러의 약한 강도, 지루한 드라마, 뻔한 엔딩 등에서 불호를 느낄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 많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고 오히려 애정이 가는 지점도 있었으나 상업성에 눈이 먼 탓인지, 감독 고용을 잘못한 건지는 몰라도 결국 낮은 완성도로 무너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더 재밌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였는데 여러모로 많이 아쉽고 아깝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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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스웨덴] 영화의 페르소나를 벗겨내는 영화, <페르소나>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페르소나>는 필름이나 영사기 등의 장치들을 보여주거나, 오프닝 시퀀스에서 제작자의 이름이 적힌 흰 바탕의 화면과 인물의 얼굴, 사물의 클로즈업을 교차해 배치함으로써 관객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이며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에게 일깨워 준다. 대사 없이 소년을 따라 이어지는 영화의 다음 장면을 기대하며 집중하고 있던 관객은 인물과 사물 사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필름 인서트에, 영사기가 돌아가는 모습에 다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이것이 필름에 기록되어 영사기를 통해 상영되고 있는 영화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때로 어두운 영화관 속에서 스크린의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마치 실제 현실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인물 혹은 카메라의 시선에 동일시 되어 디제시스에 몰입하게 되는데, 비록 소문일 뿐이라고 알려졌지만,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 처음으로 다수의 관객 앞에서 상영되었을 당시 관객이 실제로 자신에게 기차가 달려오는 줄 알고 놀라서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 효과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영화는 이처럼 때로는 허구의 세계를 현실처럼 보여주어 관객에게 실제와 같은 인상과 감각을 제공하는 페르소나를 갖는다.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는 이러한 영화가 가진 페르소나를 벗겨주는 영화이며, 그것을 통해 관객이 인물에게 몰입하고, 동일시된다기보다, 엘리자베스와 알마 두 여성이 점점 겹쳐지는 과정과 그 이면을 제대로 관찰하게 해준다.
흐릿한 여자의 초상화를 쓰다듬는 남자아이가 등장하고 엘리자베스 보글러와 알마라는 두 인물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되는데, 이때 알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부분은 마치 관객인 우리가 문을 열고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영화 속 세상으로 들어간 듯한 인상을 준다. 알마를 지켜보는 시선에 몰입하려던 찰나, 그녀의 앞에 있던 카메라는 그녀의 뒤통수와 옆모습을 단절된 컷으로 비추는데, 이로써 그녀는 보이는 대상이 되고 관객은 극 중 인물에게 동일시되기보다는 그녀를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가진다. <페르소나>에서는 인물의 클로즈업과 시점 쇼트가 빈번히 활용되는데, 덕분에 관객은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관한 생각에 공감할 수 있으며 함께 가까워지고, 때로는 인물과 대화하고 있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 서로의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죄의식을 떠올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혼동하며 동일화되어 가는 두 사람의 클로즈업 샷이 점점 섞여가다가 마침내 반반으로 합쳐져 한 사람의 얼굴이 된 결정적인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하나의 얼굴은 일시적으로 사진처럼 정지한다. 이는 아녜스 바르다의 <행복>의 후반부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의 단체 사진과도 유사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데, 두 사람의 클로즈업으로 만들어진 정지된 얼굴은, 인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그 누구의 시선도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하게 만들며, 관객에게 하나의 얼굴로 합쳐져 이제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분간하기도 어려워진 상태에서 두 인물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영화가 진행되어 오는 동안 몰입하고 동일시해왔던 인물들로부터 일시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며,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현실적인 인상을 주는 영화의 페르소나를 벗기고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두 여인의 서사가 마무리되고 오프닝에 등장했던 소년이 다시 등장하는데, 소년이 쓰다듬던 초상화 속 여인이 엘리자베스라는 것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그 소년은 엘리자베스의 아들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엘리자베스와 알마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그 또한 역시 2차원의 화면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로써 우리가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는 행위를 뚜렷하게 자각하게 된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부분, 초상화의 정체와 소년이 드러남과 더불어 촬영 현장에 놓여있는 듯한 촬영용 카메라들과 앞서 보았던 영사기, 그리고 끝이 거의 보이는 다 풀려가는 필름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영화가 끝을 맺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 <페르소나>는 엘리자베스와 알마라는 두 여인을 통해 인간의 깊은 심연과 이면, 죄의식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서의 삶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화가 가진 페르소나를 드러내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착각을 인지하게 해주며 관객이 인물들에 동일시되지 않고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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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빈곤층에서 헐리우드 최정상까지, 스칼렛 요한슨 (블랙위도우)
#블랙위도우 #스칼렛요한슨 #어벤져스
2021. 07. 0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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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MCU 첫 여성 히어로
00:50 미국의 빈곤층, 스스로 찾은 꿈
02:53 전환점이 된 배역, 블랙 위도우
04:52 헐리우드 최정상이 되기까지
07:14 3번의 결혼, 그리고 딸
08:29 블랙 위도우 & 페미니스트
09:36 나타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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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 중국 사상과 불교가 가득한 SF영화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4 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 리저렉션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1,매트릭스2,매트릭스3 결말포함
+ 매트릭스 스토리 해석 및 분석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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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최악의 악> 티저 예고편
1990년대 강남 한-중-일 마약 트라이앵글을 막기 위한 멈출 수도, 끝낼 수도 없는 위험한 잠입이 시작된다! [최악의 악] 티저 예고편 공개 9월 27일, 오직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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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1분 예고편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재난 속 생존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면! 8월 9일 극장으로 렛츠고 렛츠고 렛츠고 컴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