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2-14 14:15:13
2024 4대 OTT 기대작 모음집
넷플릭스 / 티빙 / 디즈니플러스 / 쿠팡플레이
씨네픽 선정 2024 OTT 기대작 모음집!
제일 기대되는 작품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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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는 세상에서 휴먼을 외치는 아쉬움!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소리 내면 죽는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이 설정 하나로 밀고 나가며 스릴러 장르의 묘미를 확실히 전했다. 그뿐인가 희생과 탄생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가져가며 가족 영화로서도 그 매력을 발산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인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과연 전편과 다른 공간인 뉴욕 도심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생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 이들은 누구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전에 이 영화는 놀랍게도 그 기대감과 궁금증을 살짝 비껴 나간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암 환자 사미라(루피타 뇽오)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의미 없는 날을 보낸다. 어느 날, 마리오네트 공연을 보기 위해 병원 사람들과 뉴욕 시내로 간 그녀는 귀가 도중 버스 안에서 정체불명 괴생명체를 목격한다. 단숨에 도시는 살육의 현장이 되고, 사미라는 고양이 ‘프로도’와 함께 도망치다 안전한 공간으로 피신한다. ‘절대 소리 내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들리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가는 괴생명체의 소음만 가득한 뉴욕. 사미라는 뭔가 다짐하며 그곳을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데, 그 와중에 공황장애 환자인 에릭(조셉 퀸)을 만나 어쩔 수 없는 동행을 시작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소리에 민감한 괴생명체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시리즈의 콘셉트를 가져오되, 스릴러가 아닌 휴머니즘에 방점을 둔다.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빗어지는 스릴과 긴장감은 곳곳에 놓여있지만, 결국 영화는 종말의 세상에서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건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시한부 암 환자인 사미라와 공황장애 환자인 에릭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괴생명체의 위협, 특히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상항에서 두 인물은 각각 통증의 고통, 심각한 불안감으로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사미라는 고양이까지 동행하니 그 위험은 더 크다. 하지만 괴물들 앞에 약자인 이들은 서로 연대하며 위험을 벗어나고 생을 이어간다. 인종과 직업,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환자로서 서로의 아픔과 힘듦을 공유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고, 후반부 희생을 통한 삶의 연장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후반부 장면은 결은 다르지만 사미라의 모습은 1편에서 가족을 위해 결단을 내린 아빠 리(존 크래신스키)의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전작처럼 긴박한 스릴을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낯설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괴생명체에 쫓기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스펙터클함은 떨어진다. 휴먼 드라마로서 갖는 영화의 의미는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리즈의 소재를 활용해 만들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지우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의문을 갖기 전 이 영화의 정체성은 스핀오프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예상컨데 시리즈 1, 2편의 연출을 맡았고, 이번 영화에서는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존 크래신스키는 자신이 만든 세계관의 주제, 즉 종말을 앞두고 더 빛나는 휴머니즘을 좀 더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이런 목적으로 연출을 <피그>의 마이클 사노스키에게 맡긴 듯 하다.
그래서인지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과 <피그>는 많은 것이 닮았다. 사랑하는 것을 모두 잃고, 삶의 목적까지 잃은 주인공이라는 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중함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동물이 주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비슷하다.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줬던 자신만의 휴먼 드라마를 이번 영화에 스며들게 하고, 시리즈가 가진 주제 의식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뭔가를 잃어 본 사람이야말로, 상실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공감과 이해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이번에도 전한다. 그 매개체가 음식과 음악이라는 점도 일맥상통하다. <피그>를 본 이들이라면 스펙터클이 줄어들었음에도, 이 영화가 가진 휴머니즘의 마력에 감동할 것이다.
감독의 이런 주제 의식을 배우들이 잘 전달하는데, <노예 12년> <어스>를 통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더 빛나는 루피타 뇽오, 계속 지켜주고 싶은 측은한 마음을 들게 하는 조셉 퀸의 연기는 후반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멋진 신스틸러 고양이 프로도의 연기도 힘을 보탠다. 특히 전작에서 돼지, 이번 영화에서는 고양이 등 감독의 동물 사랑이 빚어내는 감동도 꼭 만끽하길 바란다.
한편,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죽음을 앞둔 인간이 가져야 할 마지막 마음가짐과 자세를 보여준다. 시인이자 지금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는 삶의 마지막을 마리오네트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이 진정 행복했던 집,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린 공간과 음식, 그리고 사랑하는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그의 선택은 마치 존엄사를 택한 이들과 겹쳐 보인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을 듣는 그녀의 얼굴은 오랜 잔상을 남긴다. 그러고 보니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도 같은 곡이네~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2.5 / 5.0
한줄평: 소리 없는 세상에서 휴먼을 외치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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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으로 가득찬 '랑종' , 2021 나홍진 감독작품
영화 '곡성'에 관한 리뷰는 블로그에는 없지만, 제임스 완의 컨저링 유니버스만큼 좋아하는 나홍진 감독의 프로덕션이자, 슬프고 잔혹한 태국 영화 '셔터'를 만든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랑종'이 개봉 초읽기에 들어간 연휴. 원래는 친구와 고요하고 평화로운 산책을 할 계획이었으나, 포스터를 보자 말할 수 없는 이끌림에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다급히 양해를 구해본다.
'나 오늘 정말 보고싶은 영화가 있는데, 같이 봐줄래? 근데 공포 영화야...'
장르는 공포 영화가 맞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관에서 같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거의 혼자 보는 편인데, 사실 이 영화는 혼자 보기에는 좀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기대도 커서였을까. '곡성'을 영화관에서 세 번이나 본, 감독의 미끼를 제대로 물어버린 유약한 나로선 글쎄. 그냥 거부할 수가 없었다. '랑종'은 랑송~이라는 발음이 더 가까운 태국어로, '무당'을 말한다. 영어 제목은 'the medium',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고 악령이 씌인 것을 해결해 주는 '영매'의 직역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포스터를 보니 'every faith will be challenged'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역시, 영화의 스포성이 느껴지는 강렬한 글귀다.
그렇다면, 곡성 2탄 격인 '랑종'은 어떤 영화일까? 우선,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나홍진 감독의 연출과 반종 감독의 촬영은 참 스마트하다. 무대가 태국의 이산이라는 곳으로 옮겨졌지만, 동남 아시아 특유의 스산하고 어두운 느낌과 함께, 한국이 무대였던 '곡성'과 별반 다르지 않을 인간의 욕망들, 가족간의 비밀, 그리고 삐뚤어지리만치 간절한 모성애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구성은 '블레어 위치'와 '파라노말 액티비티', 그리고 일본 영화 '온다'를 적절히 섞은 것 같은 포맷이지만 - 이 영화의 구성 운운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 수 있다!- 그것들을 불식 시키는 "힘"은 내림 무당을 하는 Nim의 싸와니 우툼바라는 배우와, 그녀의 조카 역인 Ming의 나릴야 쿤몽콘켓이라는 배우 (심지어 첫 스크린 데뷔작이라고 한다)의 열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왕 이렇게 밝힌 거 시원하게 써 보자.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뭐에 이끌리듯 일어나서 이렇게 기억을 몇 자 남기는 이유는 영화가 강렬해서였다. 곡성이 그랬듯 랑종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소름이 돋는다. 이미 내 머릿 속에는 한 번 더 영화를 보러 가야지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다. 나는 어쨌든 감독의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 영화는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것이 영화 - 허구의 이야기- 라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반전인 듯 하다. 그만큼 모든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웠고, 정말로 동남아 발리 깊은 산중, 혹은 태국의 사원 같은 곳에서 본 듯한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리라. 동남아는 일본만큼이나 많은 사물에 깃든 신을 모시는 듯 하다.
발리가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신들이 있고, 발에 채일 만큼 많은 신밥 - 제물- 과 꽃이 길마다 널브러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피어나는 물안개는 아름다웠지만, 숲이 우거진 곳들은 한 낮에도 스산했고 밤의 리조트는 더할나위 없이 괴괴했으니. 랑종의 무대가 된 태국의 북동부라는 '이산'도 아마, 그러한 분위기의 동네가 아니었을까. 그런 스산함이 마치 스크린으로 나와 번지는 듯 했다. 영화관 안에서는 그런 풍경에서 번진 잉크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Nim은 원래 언니 Noi가 받으려고 했던 신을 대신 받는 운명에 놓였었다. 그녀가 모시는 신인 바얀은 여성만 허락하여 몸을 싣는 신이며 사람들을 굽어살펴 준다고 나온다. 바얀의 실체는 오로지 세습무인 Nim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그 위로 올라가는 무당들을 위시한 의식을 통하여 세상에 그 영향력을 미친다. '믿는 자에게 보이고 느껴지는 신'. 감독은 이렇게 첫번째 물음을 던진다. '무엇을 믿고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믿음이 견고한지에 대해.
Noi라는 여성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세습무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을 강렬히 원했기에, 정해진 운명을 거슬러 결혼을 했고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아들에 뒤를 이어 남편도 사망하고, 그의 장례식장에서 여러 불가사의한 일들의 시초가 발견된다. Nim과 Noi의 위로는 Manit이라고 하는 오빠가 있으며 그에게는 또한 갓 태어난 아들 Pong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Ming은 바로 그 Noi의 남겨진 외동딸이며, Nim과 Manit의 조카인 셈이 된다. 장례식장에서 술을 마시고 도박(화투와 같은)을 하는 것을 보니,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실소가 드는 것도 잠시, Ming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언행을 높인다. 삼촌에게 성적으로 나를 원하는 거 아니냐는 암시를 주고 있다. 그러나 그날 밤, Nim이 본 것은, 망자를 응시하는 자다 깬 조카의 모습이었다.
다큐 형식을 빌린 인터뷰가 계속 될 수록, 무당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인 Nim과, 거부하여 카톨릭으로 살아가는 Noi/ Ming의 모습이 대조된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삐뚤어져 가는 Ming, 화를 참지 못하고,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며 웃고, 멍하니 있다가 다시금 괜찮아지는 일도 잠시, 회사에 출근한 그녀의 하혈이 시작된다. Noi는 그런 모습이 반복되는 딸을 보고, 자신이 신을 받으려다 거부했던 때를 생각하며, 그녀의 상황이 악화되기 전 신내림을 받자고 한다. 물론 엄마가 생각했던 신은 좋은 신, 동생의 몸에 깃들어 있던, 바얀이라는 신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조금만이라도, Nim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했더라면, 딸은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녀의 모성애는 견고하다 못해, 딸의 모든 상황을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참을 수 없이 답답함이 느껴졌다. 왜 하혈일까? 왜 성적인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Ming 에게서 보여줄까 ? 여성의 자궁은 아이를 생산하는 곳이다. 그곳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상처받게 하는 건, 대를 끊어 가족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보이지 않는 '것'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빙의되기 전 Ming의 꿈 이야기는 무서웠다. 빨간 옷을 입고 피칠갑을 한 사내가 든 칼, 그 아래로 나뒹구는 사람의 머리들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복선에 불과했다. '무당이 되는 것에 관심 없다'며 철없는 또래의 모습을 부각시킨 초반의 대사도 뒤에 가서는 복선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것'은 도래하고야 말았다. 권선징악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너무나도 잔혹한 방식으로.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악령에게 잠식당한 Ming의 영혼은 Mac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열연은 아름다운 여배우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이 그로테스크했다.
...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각, 청각적 혼란이 지나가고 난 후...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질문을 한다. '믿음은 정말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내가 믿고 있는 어떤 절대자의 힘에 대해, 운명에 대해, 믿는 만큼 사람은 강해지는 것 같다. 믿는 만큼 사람은 때로, 우매해지는 것 같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피비린내 나는 모성애, 그리고 신가물, 나만은 피해가고 싶은 영매라는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인해 빠져든 카톨릭 교회의 형광색 십자가가 어지러워 보였다.
인간의 믿음 뒤에 숨겨진 추악한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가끔 그것들을 보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려 한다. 직면해 보면 별 거 아닌 거일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이 영화가 공포라기 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가족 사이의 타부에 대하여,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슬프게 가라앉는 물안개마냥 돌 날아오듯이 질문이 던져지니까. 시각적으로 신선하게 놀라우니까. 촬영 감독들은 리얼리티를 위해 시나리오가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사실감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며칠 내로 한 번 더 보러 가야지. 그럼 또 다른 것들이 보이고 이 글도 조금 더 다듬을 수 있겠지. 백중이 있는 음력 칠월 첫날에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길거리에서 갈곳 없는 영혼들을 달래주려 종이 돈을 태우고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조금 남달라 보였던 동남아에서의 오늘.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친구와 손 꼭 붙잡고 볼 수 있어서 행복했던 날. 첨부할 사진은 많은데 일단 먼저 글부터 올려보는 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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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 카우리스마키, 사랑은 낙엽을 타고 (2023)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빌어 이렇게 말해본다. 행복한 노동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노동의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행복하고 만족 스런 자본주의 노동은 무엇일까? 일을 적게 하고 많이 버는 것? 유명세를 떨치는 것? 늙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적어도, 카우리스마키의 세계관 안에서는, 노동과 감정(행복 혹은 불행)을 연결 짓지 않는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소위 ‘일의 기쁨과 슬픔’ 자체가 부재하는 사회인 것이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일률적인 표정의 부재는, 자본주의 사회 노동의 동적인 단면(들뢰즈의 표현을 빌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예컨대 일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시기는 사회초년생 시기에 한정된다. 연차가 쌓일 수록, 모니터 앞에 무표정하게 앉아서 덤덤하게 일을 처리하는 시간의 비중이 늘어나고, 사회는 이를 프로답다고 여긴다. 안사의 슈퍼마켓 가드는,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몰래 가져나오는 안사를 발각한다. 잠시 멈추어 보여지는 그의 표정은 우스꽝스러운데,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 노동의 총체적인 비디오를 돌리다가 순간, 일시 정지를 누른 것과도 같다.
영화는 인물의 무표정과 무감동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동시대의 감각을 없애서 이러한 노동 조건이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고 영구고착되었다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유일하게 시대 감각을 일깨우는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 마저 전기세가 비싸기 때문에 단
절된다.
노동자들은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세계에서, SNS 대신에 80년대스러운 무대형 가라오케와, 술 담배가 주는 도파민에 절어 있다. 우연한 만남에서 오는 도파민은 그 중 최고이다. 과장하자면, 이 모든 쾌락들은 노동을 지속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무리 심한 중독이나 의존증이라도 노동 자체를 이길 수는 없다. 안사는 홀리파의 부주의한 실수로 몇 차례씩 바람을 맞고 마음이 무너지지만, 다음 날은 어김없이 여전한 무표정으로 공장에 출근해야 한다. 홀리파는 술 때문에 산업재해 처리도 못 받고 해고 당하지만, 그 즉시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전전한다. 한 마디로, 인간의 노동에 대한 의존은 가장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러한 노동이라 하더라도, 다가오는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노동조차 끊지 못하게 하는 술에 대한 중독을 사랑은, 언젠가 치유해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킬 힘은 없지만, 안락사 당할 뻔한 개를 구하고, 혼수상태의 연인에게 책을 읽어줘서 마법처럼 그를 일으킨다. 안사와 홀리파가 (그들의 강아지와 함께) 전기세를 나눠내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쟁소식에도 귀기울이는 상상을 한다.
[Eurofilm 13. 핀란드, 독일]
- 이미지 제공 : 씨네랩
2023년 12월 13일 감상 / 2023년 12월 20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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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의 구조로
시놉시스
<증거>는 미국 정치 및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는 검은돈의 영향, 그리고 기업 투자에 대한 분석이면서 동시에 가족과 돌봄이라는 개념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이다.
영화 정보
감독: 리 앤 슈미트 (Lee Anne SCHMITT)
제작국가: 미국
제작연도: 2025년
상영시간: 76분
장르: 다큐멘터리
상영 형식: DCP, 컬러/흑백
상영 섹션: 영화보다 낯선
아시아 프리미어
리뷰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된다.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며 영화의 첫 페이지를 펼친다. 무역회사에 다녔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다양한 인종의 인형들을 선물해주었고, 그녀는 그 인형들을 통해 세계를 처음 마주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 회상은 곧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 놓인 미국의 거대기업, ‘올린’이라는 실체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감독의 아버지가 일했던 무역회사의 주요 거래처는 바로 올린이었다. 세계 곳곳으로 제품을 수출하며 부를 축적한 이 기업은, 화려한 외관과 달리 내면에는 수많은 폐해를 숨기고 있었다. 올린은 수많은 공장을 개발도상국과 미국 내 저소득 지역에 설립했는데, 이들 중 다섯 곳 중 세 곳이 흑인과 히스페닉 인구가 밀집해 사는 지역이었다.
공장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 즉 인구 분포다. 왜냐하면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그 피해가 누구에게 닿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철저한 계급과 인종적 계산이 깔린 결과다. 올린은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오염된 곳에 모여 산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오염된 곳으로 가난한 이들을 몰아넣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결국 그 지역의 사람들, 주로 흑인과 히스페닉계 주민들은 오염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건강을 잃고, 부를 축적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이 구조 속에서 가난은 세습된다. 올린은 한편으로 대학 재단과 연구소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보수주의의 새싹’을 키워낸다. 이 기부는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확산시키고, 인종차별과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 극단적인 가치관을 세력화하는 데 사용된다.
이들이 펴내는 책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 ‘남성은 동성애를 기피해야 한다’, ‘복지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사유재산은 신성하다’. 이러한 주장들은 단지 의견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교육, 법제도의 재구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논리로 발전된다.
보수집단은 복지제도를 공격한다. 왜냐하면 복지제도가 확대될수록,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곧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고, 이는 강자들의 체계를 위협한다. 따라서 그들은 가족, 사유재산, 전통적 가치의 신성화를 통해 이 시스템을 방어하고자 한다.
‘가족’은 이 서사의 또 다른 축이다. 감독은 가족이 신격화되는 구조를 비판한다. 부의 세습을 위해 가족이 필요하고, 자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은 혼자 살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에 보수집단은 불안을 느끼며, 가족이라는 형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폭력, 성폭력은 가족 내부, 혹은 아는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성역으로 간주되고, 문제를 숨긴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의 가족’에서 출발하여, 미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자본의 논리를 하나하나 따라간다. 그리고 이는 결국 다시 ‘나의 가족’으로 되돌아온다. 이 순환의 구조는 단지 개인의 회고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재생산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다큐 속 내레이션은 차분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대신 각 장면마다 문헌과 기록, 논문과 기사, 인터뷰와 영상 자료 등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시청자의 사고를 이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상영될 수 있었던 의미는 크다.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미국 사회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한국 사회에도 깊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가족이 부의 재생산 단위로 기능하고 있다. ‘비혼’과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사회는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중심의 제도와 문화는 견고하다. 동시에 복지에 대한 혐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성소수자 혐오 역시 한국 사회에서 점점 목소리를 얻고 있다. 미국의 문제는 한국의 문제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 다큐는 말한다. “나는 다양한 인종의 인형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인형들은 귀엽고, 색이 다르고, 머리 모양이 달랐다. 나는 그것이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인형들의 고향은, 올린이 만든 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이 말은 이 작품의 본질을 드러낸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으며, 한 개인의 과거는 자본과 권력, 구조와 역사 속에 깊이 묻혀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를 낱낱이 파헤치며, ‘왜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진짜로 바꿔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작품은 단지 고발의 다큐가 아니다. 그것은 연결의 다큐이며, 성장의 다큐이고, 기억의 다큐이며, 결국에는 질문의 다큐다. 감독은 가족을 통해 세계를 보고, 세계를 통해 가족을 다시 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다큐가 존재하는 이유다.
상영 일정
2025년 5월 2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2025년 5월 5일 1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4관
2025년 5월 9일 10:00
CGV 전주고사 8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2025.04.30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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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담하고도 몽환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오다 카오리
다시, 주목할 만한 감독 칼럼은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이 없어 언급이 잘 안돼는 감독이나 한국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감독을 다시 주목해보자는 취지로 적는 칼럼입니다.
본 칼럼 시리즈를 통해, 다시, 주목할 만한 감독들에 대해 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번 사라 고메즈 감독에 이어 이번에 이야기하고 싶은 감독은, 일본의 다큐멘터리 감독 오다 카오리이다.
이번 감독은 현역 감독인데, 한국에서는 제작년에 서울아트시네마 '새로운 바람 - 일본 영화의 현재' 특별전으로 처음 소개되고 '2021 시네바캉스'로 최신작이 한 편 소개되었고 2022년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단편 <가라오케 카페 보사>가 소개된 바 있다.
오다 카오리 감독은 1987년 오사카 출신으로, 간사이 외국어 대학을 졸업 후 미국 홀린스 대학에서 영화학 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2011년 자신의 커밍아웃을 밝히는 내용을 담은 자전적 다큐멘터리인 <노이즈가 말하기를>로 단편 대뷔작을 발표한다.
본 영화는 2011년 나라국제영화제 관객상 수상, 도쿄 국제 LGBT 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호평 받게된다.
그리고 2013년부터 3년 동안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거주하며 영화 감독 벨라 타르의 필름 아카데미인 필름팩토리(FILM FACTORY) 과정을 3년 이수한다.
당시에 다른 대학이나 교육 과정에서 배우지 못한 여러 영화적 지식과 경험들을 쌓았다고 직접 밝힌 바 있었기에, 감독의 이후 작품들에 큰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필름팩토리 과정을 이수중이던 2015년 발표한 장편 대뷔작 "광산"은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오래된 광산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찍으며, 어둠속에서의 빛과 인부들의 움직임, 운동을 담아내며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이다.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며 특별언급이 되었다.
이후 2019년 또 다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발표한 "세노테"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될 뿐만 아니라 구로사와기요시 감독 등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오시마 나기사상의 제1회 수상자로 뽑히며 더 큰 주목을 받게된다.
세노테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북부에 존재하는 물이 샘솟는 ‘세노테(cenote: 암석 붕괴 등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한 우물)’라는 공간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마야 시대부터 사람들은 세노테와 함께 살며 삶을 영위해 가기도 했지만, 동시에 세노테는 산 사람을 공물로 바친 죽음의 장소이기도 한,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공간으로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았다.
직접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진행한 수중 촬영과 교차해가며, 물과 하늘, 빛과 그림자,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가며 몽환적인 광경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현재로서 가장 최근 장편은 본 작품이기에, 추후 발표하는 작품은 어떨지 기다려지는 부분이다.
오다 카오리 감독의 작품들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담담하고도 몽환적'이다.
연상되는 감독으로는 라브 디아즈, 왕빙 감독이 떠오르는데 실제로 광산은 오다 카오리 감독이 참고를 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왕빙 감독의 철서구를 봤다고 하고,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거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앞서 말한 이 두 감독 처럼 영화는 감독의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고, 최소한의 설명, 혹은 설명없이 담담하게 대상을 담는 스타일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다.
이러한 담담함은 단순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초현실적인 풍경을 담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최신작인 세노테라고 생각이 드는데, 감독이 직접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촬영한 수중 촬영과 현재 세노테 부근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을 담은 영상, 과거의 기억이 담긴 목소리들, 현재의 목소리들과 같이 대조되는 존재들이 교차되며 보여지는 광경은 정말 독창적인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예고편은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한번 예고편만이라도 봐보시고 짧게나마 경험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려본다.
전에 서술한 오시마 나기사 상의 경우에는 오다 카오리 감독이 수상한 2020년 제1회에 이어 2021년에 제2회가 진행되었는데, 2021년에는 적절한 수상자가 없어 수상을 아예 안 했다.
수상자 없음에 대해 심사위원 중 한명인 사카모토 류이치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을 통해 명성의 상징이 된다면, 그것은 그가 싫어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명성에 단순히 편승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그를 도발하고 비판하고 초월하는 자만이 이 상을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영화를 만나고 싶다." 라고 말했다.
이만큼 심사위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뽑는 상인 만큼 오다 카오리 감독은 일본 감독 중 주목해야할 감독이 맞으며 강력히 지지를 표하고 싶다.
이전에 세노테를 본 이후로 필자는 아직까지도 오다 카오리 감독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으며, 분명 그 신작은 필자의 기대 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인들의 기대도 충족시킬만한 영화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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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걷자 난 다 궁금해 • <태풍 클럽>
영화 초반부가 졸려서 난감했지만 결말부로 갈수록 엄청난 영화였다. 남학생(켄)이 자기가 다치게 한 여학생(미츠키)을 육체적으로 제압하려고 하는 롱테이크 씬이 있다. 이 씬은 두 가지의 경로로 해석해 볼 수 있다. 1)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켄이 미츠키의 상처 를 확인하려는 시도였으며, 그녀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려고 한 것이다. 혹은 2) 켄이 미츠키를 강간하려고 한 것이다. 보는 내내 '강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크고 두꺼운 볼드체로. 그러나 전자 쪽에 더 설득이 된다. <태풍 클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래서 시적으로까지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리에가 자기 혼자 등교하는 남자친구를 놓치고 아무도 없(어 보이)는 집안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엄마'를 외치며 꺼이꺼이 우는 장면이 그랬다. 관객이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장면들을 길게 잡아준다. 상처받고 놀란 순간 여자아이는 내면으로 침잠하고, 남자아이는 바깥을 공격한다는 점을 나타내는 의도였을까 싶었다.
나는 중간에 조금 졸다가 이 롱테이크 씬부터 입을 쩍 벌리고 봤고, 졸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이동진은 '원시적인 에너지의 분출'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평식은 '푸른 독을 품고 몸부림치는 날에'라고 썼고, 김철홍은 '오래오래 힘을 잃지 않을 시대의 저기압'이라고 썼다. 오진우는 '태풍으로 세계의 치부를 발가벗겨버'린다고 했다. 문제의 장면에서 내가 본 것은 미츠키와 켄 둘 다 펄떡펄떡 널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청소년기란 감시다. <태풍 클럽>은 방임이다. 어른들이 완전히 부재한다. 학교에 연극부실이 있는 것. 종이학을 주렁주렁 매단 줄. 드레스 코스튬. 핑크색 가발과 초록 드레스를 입은 이 아이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기타맨 같다. 이야기에 딱히 영향을 안 미치는데 본인이 즐겁고 살짝 미쳐있고 아이코닉하다는 점에서. 사물함이 가리지 않은 넓은 창문과 거기를 가득 채운 초록 나무들. 각종 운동 유니폼. 수업 시간이 아닐 때도 북적북적한 체육관. 몰래 무대로 쓰는 강당.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등교하는 것. 몰래 수영하기. 사고를 쳐서 담임 선생님이 데리러 오는 것. 그리고 많은 담배! 교실에 딸린 베란다가 있어서 키 큰 식물들과 함께 밖을 내다 보고. 거기서 비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나는 사람들의 호들갑이 싫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귀여운 성장 영화를 기대하고 <태풍 클럽>을 봤다가 물벼락이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충격받는다. 아이들이란 이렇겠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눈앞의 아름다움을 못 보는 것이 뭐가 자랑이라는 건가? 팬티 차림으로 빗속에서 춤을 춰 본 적 있어? 그러고 싶다고 생각이나 해 본 적 있어?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 못하겠지!
인물 중심의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태풍이다. 눈에 보이는 푸릇푸릇한 것들(나뭇잎, 비, 태풍)은 아름다운데 시원하지 않고 찝찝한 느낌이 든다. 그건 내가 감시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다. (라고 근거를 들었는데 왜 이렇게 썼는지 잘 모르겠다)
조용하다가 가끔 물이 풍덩거리는 수영장에서의 제일 첫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날것이고 정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여학생들의 일관된 흰 속옷만은 정제된 것 같다만...) 이런 영화도 있어야 되지 않나? 리에가 엄마를 부르면서 우는 것. 병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친구를 다치게 하는 것. 감정을 다루는 데 굉장히 미숙한 것. 상처주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는 것. 자살 시도를 하는 것.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어야 하지 않나? 있을 만하지 않나? 소마이 신지의 다른 영화가 강력하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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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이 우릴 완벽하게 속인 순간들
#산돌구름 #마블반전 #랄프보너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20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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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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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이번에도 속았다..
00:44 오딘? NO I’M 로키
01:52 퀵실버? NO I’M 보너
02:38 만다린? NO I’M 트레버
03:44 닉퓨리’s EYES
04:49 구독자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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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러브 앤 몬스터스>
[2021년 4월 14일, 넷플릭스 공개]
돌연변이 괴물들이 지구를 덮치고 7년이 지났다.
살아남은 인류는 지하에 숨어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버텨온 조엘 도슨(딜런 오브라이언).
그가 무전을 통해 고등학교 시절 여자 친구 에이미와 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여전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녀와의 거리 135킬로미터. 이 지하 벙커에 그를 붙잡을 거라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에이미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렇게 조엘은 해안을 향해 떠난다.
사랑을 찾아, 희망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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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원더풀 월드> 티저 예고편
"모든 것은 그날의 사건으로 시작됐다" 한순간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건, 그 뒤에 숨겨진 미스터리한 비밀... 명품 배우 ‘김남주’ & 처음 보는 ‘다크 차은우’의 열연! [원더풀 월드] 3월 1일 디즈니+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