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2-14 14:15:13
2024 4대 OTT 기대작 모음집
넷플릭스 / 티빙 / 디즈니플러스 / 쿠팡플레이
씨네픽 선정 2024 OTT 기대작 모음집!
제일 기대되는 작품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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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명작] 맞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내가 앉은 카페 맞은편에는 '풍천장어 직판점'이 있다. 그리고 그 비가 오는 길거리에 한 남자 전화를 하며 걸어가고 있다. 저 사람은 누구와 통화하고 있을까? 조잘조잘 웃으며 환하게 웃는다. 마스크가 없는 얼굴에 미소가 더 잘 보인다. 왠지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하고 있을 것 같다. 그냥 친구랑 통화하는 거면 저렇게 환하게 웃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카페에 앉아서 늘 먹는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의 또 옆에는 화분이 덩그러니 있다. 그 화분에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써져있다.
으른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초딩입맛인 나. 이 카페는 large 사이즈가 4천 원 언저리라서 부담 없이 오기 좋다. 사회복무요원의 신분 덕에 돈이 없어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맞지만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을 크고 싸게 한다. 카페모카 류의 커피가 들어간 음료들도 비슷한 가격대지만 난 단 것만 판다. 딱 이런 것만 보면 청승맞은 이유가 있다. 적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와도 난 역시 단 게 좋고 군것질이 좋다. 내 연인이 마이구미를 좋아하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그걸 매일 먹으면 한 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금세 비가 오는 밖의 모습이 보인다. 우산 한 개를 가지고 두 커플이 손 꼭 잡고 걸어가고 있다. 내 우산은 누가 갖다 줄까?라고 자신에게 반문한다. 확실한 건 뭔가 으-른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다. 난 추적추적 비 맞으며 그냥 뛰어가야겠다. 2001년의 한국 어느 곳에서도 우산을 혼자 쓴 남자가 고민에 빠진 것 같다. 왓챠로 달려가 보자.
행복 회로 위이잉
우리의 주인공 봉수는 그냥 직장인이다.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주인공.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 좀 질렸다. 어느덧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봉수. 봉수는 고민이 있다. 바로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다. 나는 왜 결혼을 못하는 걸까? 마음이 답답해진 봉수. 나 정도면 직장도 있고 성격도 괜찮아서 할 만하지 않나? 사실 아내는 고사하고 여자 친구도 없는 봉수지만 생각이 많아진다. 이러다 평생 혼자 사는 것 아닐까?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된다고 봉수의 불안은 점점 이뤄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우 이 끔찍한 이 기분.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데, 옆구리가 시린 느낌이 평소 때보다 더한 것 같다.
이 외로움을 친구에게 주절주절 터놓는 봉수.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나만 빼고 사람들이 통화하는 꼴이 처량했다. 친구는 곧바로 답한다. “나한테 하지!”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속을 몰라주는 것이 답답하다. 그래도 봉수의 삶에 다행인 것이 있다. 바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친구였다. 그래도 너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가 독신주의자인 너보다 먼저 할 테니까. 친구는 곧이어 대답한다. “너 민정이 알지? 걔 결혼한대.” “누구랑 해?” “나랑.” “그날 네가 사회 봐라” 알고 보니 기만자였다. 진짜 너무한다. 사회 보라는 말이 없었다면 비교적 덜 염장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으아!!!!!! 나같이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왜 결혼을 못하는 거야? 세상은 역시 미스터리 투성이지만 그중 최고는 역시 결혼이거나 연애다. 나만 왜 못하는 걸까? 절규를 우아아아아악 내지르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봉수. 직장에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한 여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맑게 웃는 여자와 뭐든 해내는 남자의 사랑이야기
영화는 봉수와 원주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우리가 아는 사랑 영화는 다양하게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맛이다. 귀여운 주인공들, 엇나가는 마음, 풋풋한 내면까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근데 이 영화는 다른 작품들에 갖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바로 타격감이다. 주인공들의 성격 묘사가 섬세한 느낌이다. 특정 장소 앞에서 내면을 털어놓는 장면, 형광등 가는 장면, 원주의 성격 묘사까지 영화는 파릇파릇한 장면으로 러닝타임을 채워놓았다. 그중 생각하는 최고의 풋풋함은 봉수가 마술을 배우는 장면이다. 현대 2022년으로 치면 MBTI쯤 될 마술. 사랑을 위해 마술을 배운다는 게 왠지 우리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라 귀엽다. 근데 이런 자질구레한 소심함 설경구 배우가 캐릭터를 잘 살려서 귀여운 요소로 작용한다. 헤어스타일 + 코디 + 왠지 짠내 나는 성격 + 말투까지 실제로 이런 사람이 꽤나 많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여주인공 원주의 캐릭터도 귀엽다. 원주는 보습 학교 선생님이다. 제법 따뜻한 선생님인 원주. 아이 한 명이 엉엉 울고 있어 ‘무슨 일이니’ 묻는다. 그리고 아이는 대답하다. “애들이 선생님 닮았다고 놀려요!" 예전에 기타리스트 조정치 님이 나와서 '같은 반 애들이 조정치 닮았다고 놀려요'라는 고민상담을 들어주던 짤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원주는 그것보단 유연하게 대처한다. 착한 원주. 우리가 아는 전도연 배우의 비주얼에 그런 캐릭터를 부여한 게 솔직히 납득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돌봐준다. 원주는 그렇게 내면이 깨끗한 사람이다. 영화는 이렇게 파릇파릇한 캐릭터들로 러닝타임을 끌고 간다.
풋풋한 이 느낌
두 주인공 설경구-전도연 배우의 이 작품 전작 <박하사탕>과 <해피엔드>가 생각난다. 광기가 폭발하던 <박하사탕>이나 불륜을 다뤘던 <해피엔드>까지 이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상큼 발랄한 모습이 보인다. 특히 전도연 배우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대척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전도연이란 사람을 실제로 아는 건 아니지만 왠지 이 배우는 상상력으로만 연기를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이런 상큼 발랄한 성격이 내면에 있을 것 같다. 근데 설경구 배우의 짠내 나는 모습은 정말 새롭다. <킹메이커>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나 <네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뒤틀린 내면까지 요즘 관객들은 모를법한 인물 연기가 재밌었다. 뭔가 왓챠라는 OTT의 순기능 같은 느낌?
있을 때 잘해라 인마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얼굴에 또박또박 적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런 미래를 예지 하는 능력 따윈 없으니 사랑에 울고 웃는다. 이 울고 웃는 것에서 오는 난제는 역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일 것이다. 영화는 이 난제에 대한 묘사도 빼먹지 않았다. 막상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남자 주인공의 욕심은 사실 우리와 그렇게 차이가 있진 않다. 나도 주말마다 카페에서 궁상과 주접을 떨지만 '아무나랑 사귀어라'라고 하면 싫다. 좀 별 것 아닐 것 같은 상황과 처지지만 이런 구석구석 디테일한 인물 묘사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미묘한 내면묘사는 '뒤돌아 본다'라는 행동이다. 내내 사랑스러운 톤과 분위기로 이끌어가지만 상실과 부재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이 있으니 이 부분도 관객에게 강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있을 때 잘해라. 그리고 현재의 네 삶을 사랑하라'라는 고루한 주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마음과 정서가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 이유는 각본의 꼼꼼함 덕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엔딩이다. 두 주인공의 성격이 오롯이 담겨있는 이야기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래서 로맨스 영화를 보나 싶다.
깨알같이 담겨있어
어느 각도에서 보면 이 영화는 이야기 전개에 진전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잔잔하다!'라고 생각하실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소소한 디테일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왠지 점점 이뻐지는 듯한 원주, 우산으로 시작한 첫 장면, 봉수의 찌질한 대사 톤까지 소박하고 순수한 사랑을 기대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좋은 대리만족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런 작품들을 많이 못 본 것 같다. <연애 빠진 로맨스>같이 19금 코드가 적절히 들어있는 게 떠오르지 극장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이제 안정세에 접어든 만큼 우리 한국영화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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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들의 해방을 꿈꾸는 작품 8선
제 75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수상작
유럽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19번째 장편 영화 <당나귀 EO>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로베르 브레송의 걸작 <당나귀 발타자르>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동물권 문제에 대한 날카롭고 진중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인데요.
10월3일 개봉할 #당나귀EO 와 함께 동물들의 해방을 꿈꾸는 작품 8선을 소개합니다.
인간의 그릇된 행동들로 상처받고 고통받는 동물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당나귀 EO]
cinepick!
가련한 눈망울의 회색 당나귀 EO는 세상의 전부였던 서커스단으로부터 구조된 뒤 폴란드와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에 오른다. 평화로운 농장, 훌리건으로 가득한 축구장 공포의 소시지 공장, 쇠락 직전의 저택...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겪은 인간 세계는 다정하면서도 잔혹하다.
[더 코브: 슬플 돌고래의 진실]
cinepick!
수중 촬영, 녹음 전문가, 특수 효과 아티스트, 세계적 수준의 프리다이버들로 구성된 이들은 돌고래 학살을 은폐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 참혹한 현장으로 잠입한다.
[마이펫의 이중생활]
cinepick!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주인바라기 ‘맥스’. 어느 날, 자신의 집에 입양견 ‘듀크’가 굴러들어오고 ‘맥스’는 ‘듀크’와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급기야 뉴욕 한복판을 헤메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옥자]
cinepick!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에게 옥자는 10년 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가고,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카우]
cinepick!
영국 켄트의 한 낙농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젖소 ‘루마’의 아주 특별한 일상과 여정을 따라간다.
[파닥파닥]
cinepick!
자유롭게 바다 속을 가르던 바다 출신 고등어 `파닥파닥`. 어느 날, 그물에 잡혀 횟집 수족관에 들어가게 된다. 바다로 돌아갈 꿈을 버리지 않고 탈출을 시도하는 `파닥파닥`으로 인해 수족관의 평화(?)는 깨지고, `올드 넙치`와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데...
[프로젝트 님]
cinepick!
허버트 박사의 프로젝트를 위해 강제로 어미와 이별한 후 스테파니의 집에 맡겨져 ‘인간의 아이’처럼 길러진다. 허버트 박사 연구팀에게 맡겨지고 수화를 통해 기본적인 단어들을 배우며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지만, 어느 새부턴가 침팬지의 야성을 드러내는데..ㅍ
[프리 윌리]
cinepick!
수족관에서 가장 큰 골치덩어리인 고래와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거리에서 방황하는 소년 제시의 만남. 제시는 소년원에 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걸고 윌리를 풀어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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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리나 | 과감한 액션만큼 소심한 드라마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질에 충실한 시리즈와 스핀오프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사람 혹은 국가 간의 갈등을 풀어내는 행위다. 이때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정치적 수단 중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가 바로 전쟁인 것. 이 격언은 영화 속 액션의 본질을 설명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전쟁이 국가 간의 갈등을 일방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행위이듯이, 영화의 액션은 캐릭터 간의 갈등을 일방적으로 해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액션은 단순히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인물 간의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감정의 표출이자 의지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액션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이 싸우는 이유, 곧 그들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이를 망각하고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하고 현란한 시퀀스도 그저 무의미한 움직임과 소음에 불과해지며, 관객을 매료하지 못한다.
<존 윅> 시리즈는 액션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 아내의 마지막 선물을 파괴한 이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동기도, 킬러의 규칙을 깬 사람은 죽인다는 규칙에 예외가 없다는 '존 윅'(키아누 리브스)과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상대와의 차이점도 직관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다. 즉, 드라마는 단순해도 존 윅과 상대방이 싸우는 이유와 그들의 차이는 명확하게 제시됐다. 이에 더해 액션 장면의 질도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높아졌으니 금상첨화였다.
스핀오프 영화인 <발레리나>도 마찬가지다. 복잡할 수도 있었던 드라마를 간결하게 가다듬으면서 단순하되 직관적인 갈등 구도를 제시한다. <존 윅> 세계관을 잘 몰라도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의 액션과 감정선에 손쉽게 몰입할 수 있을 정도다. 그와 동시에 새 주인공의 특성을 반영해 존 윅보다 과감한 액션 스타일을 선보인다. 그 결과 <발레리나>는 시리즈의 정체성과 새 활력을 모두 잡으며 스핀오프의 역할을 다해낸다.
단순해도 반복되면 효과적이다
<발레리나>의 드라마는 간단하다. '의장'(가브리엘 번)이 이끄는 컬트 집단 소속이었던 이브의 아버지 '하비에르'(데이비드 카스테나다). 그는 총을 잡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삶을 딸에게 물려주고자 컬트 집단에서 발을 빼지만, 그의 배신을 용납하지 않은 의장은 이브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사살한다. 이후 이브는 아버지와 연이 있었던 '윈스턴'(이언 맥셰인)의 도움을 받아 ‘존 윅’을 배출한 암살자 양성 조직 '루스카 로마'에 맡겨진다.
'디렉터'(안젤리카 휴스터)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킬러로 성장하고,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브. 그녀는 복귀하던 중 그녀를 공격한 킬러의 손목에서 아버지를 죽인 컬트 집단의 표식을 확인하고,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품었던 복수의 총구를 마침내 꺼내 든다. 컬트 집단과의 전면전을 우려하는 디렉터는 이브를 만류하고 또 협박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의장을 찾아내 죽이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발레리나>는 이브와 사연과 비슷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여러 인물을 제시하며 드라마의 단순함을 상쇄한다. 이브와 존 윅의 접점을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디렉터의 명령대로 이브를 찾아낸 존 윅. 그는 이브와 나눴던 짧은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가 복수를 끝낼 약 30분의 기회를 준다. 그도 사랑하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은퇴 생활을 접고 킬러들의 세계에 복귀했던 만큼, 이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다니엘'(노먼 리더스) 부녀도 이브의 서사를 보충해 준다. 의장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다니엘에게 접근한 이브는 그가 이브의 아버지처럼 딸을 컬트 집단에서 빼내려다가 수배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그녀는 다니엘을 죽이려던 계획을 바꿔서 그의 딸을 보호해 주기로 결심한다. 그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봤기 때문. 이처럼 <발레리나>는 여러 나무젓가락을 겹치듯이 유사한 사연을 반복하면서 단단한 반석을 세운다.
단단한 반석 위에서 빛나는 액션
그 반석 위에서 <발레리나>는 유려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의장과 컬트 집단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최소화한 단순한 서사 덕분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주인공에게 집중된다. 자연히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모든 초점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빌런들은 그저 리액션 대상으로 전락한다. 즉, 이브라는 캐릭터의 상황과 특성을 온전히 반영하면서 <발레리나>만의 개성과 장점을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실제로 <발레리나>는 이브가 이제 막 킬러들의 세계에 발을 내디딘 새내기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례로 그녀는 공간과 상황을 제때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격투를 펼치기 전후로 쉽게 기습당하고 함정에 빠진다. 이는 베테랑 킬러답게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변수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존 윅과는 다른 이브만의 액션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브의 액션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과감함'이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아나 데 아르마스가 연기한 '팔로마'와도 비슷하다. 그녀는 경험 많은 존 윅이나 제임스 본드라면 생각조차 안 할 무모한 임기응변을 자주 보여준다. 레스토랑에서 기습당한 순간, 권총 손잡이에 식칼을 이어 붙여서 앞에 있는 적을 찌름과 동시에 다가오는 적을 겨냥해 쏘면서 무기와 숫자의 열세를 극복하는 대처법이 대표적이다.
수류탄 액션 시퀀스는 그 정점이다. 무기 상점에서 미처 총기를 구매하기도 전에 습격당한 그녀는 폐쇄된 실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한다. 문과 벽을 방패 삼아 10여 개의 수류탄을 한 번에 투척해 적들을 제압하는 식이다. 수류탄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 액션 연출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원숙함을 갖추지 못한 초보 킬러의 막무가내 액션을 볼 수 있다 보니 이 순간의 쾌감은 <존 윅> 본편마저도 앞서는 듯하다.
그녀의 이름이 '이브'인 이유
하지만 액션이 만족스러울수록 상대적으로 서사의 아쉬움은 커진다. 액션에 들인 공에 비하면 전개가 지나치게 편의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발레리나>에는 눈에 잘 띄는 메타포가 있다. 바로 이브다. 하와라고도 불리는 이브는 성경에 등장하는 첫 여성이자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그의 짝이다. 천주교에서는 선악과를 먹고 신의 명령을 어긴 나머지 인간의 원죄에 책임이 있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발레리나>는 성경 속 이브의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이미지를 극 중 이브에게 선사하려 한다. 성경에서 신은 이브에게 아담과 같이 에덴동산을 떠나고, 평생 노동과 출산에 시달려야 하는 영속적인 벌을 내린다. 이러한 신과 이브의 관계는 오히려 영화 속 의장과 그 추종자들의 관계와 유사하다. 신이 인간에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벌을 주듯이, 그 역시 자기 명령을 어긴 추종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죽음으로써 응징한다.
반면에 극 중 이브는 성경 속 원죄를 저지른 이브와는 정반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컬트 집단 내에서 신이나 다름없는 의장을 향한 복수를 꿈꾸는 그녀는 구원자에 가깝기 때문. 다니엘 부녀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그녀는 억압적인 구조로부터 다른 피해자들을 구해내는 영웅인 셈이다. 프로이트적으로 본다면 '아버지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억압적인 초자아의 표상을 파괴하고 자아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주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이브라는 이름은 해석의 여지가 큰 종교적 메타포다. 즉, 성경 속 이브에게 부여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또 다른 이브를 일종의 아이콘으로서 구상했다고 봐도 어색하지는 않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와 집단에서의 탈출과 해방 서사가 렌 와이즈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특유의 작품세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메타포가 의도된 상징이라는 점은 더 명확해진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리다
그런데 <발레리나>는 이 매력적인 메타포를 애써 무시하고 부정한다. 이브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비웃는 대사를 집어넣는 식으로 메타포의 함의를 억누른다. 한 마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무장 집단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의장이 이끄는 컬트 집단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브라는 메타포가 존 윅 시리즈와의 접점을 강조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발레리나>는 독립된 작품으로서는 이브의 캐릭터성을 강조해야 하고, 존 윅 시리즈의 부품으로서는 존 윅과의 접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기모순이 노출된다. 존 윅이 이브를 도와주고 그녀의 멘토처럼 묘사되는 결정적인 장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버지 신'이라는 표상에 도전하는 이브의 캐릭터성이 약화하기 때문이다.
이에 <발레리나>는 이브라는 상징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취급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푸는 대신 단칼에 잘라버렸듯이, <발레리나>도 메타포에 담긴 이야기는 최대한 잘라낸다. 그 대신 본편과의 접점을 최대한 강조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이브와 상대방이 서로 화염방사기를 쏘는 순간을 촬영한 장면은 <존 윅 4>에서 드래곤 브레스 탄을 활용해 펼쳐졌던 전투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그 외의 장면도 시리즈로서의 연결고리를 부각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매 편마다 한 번씩은 등장한 클럽에서의 격투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예상보다 존 윅에게 할애한 비중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브와 일 대 일로 격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이브가 대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우위를 뽐내면서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에 기다림에 보답한다.
과감한 만큼 소심하다
이에 더해 마지막 장면에서 이브는 마치 존 윅처럼 공공의 수배 대상이 되어서 온갖 킬러에게 쫓기는데, 이 또한 존 윅 같은 결말이자 속편을 암시하는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발레리나>는 여러모로 '존 윅' 시리즈다운 스핀오프 작품으로서 관객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스핀오프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시한 선택도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리즈 일부로서 몰입도를 높이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되기 때문.
그와 동시에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갖추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매듭을 잘라 버린 대가가 영화 곳곳에 흩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디렉터 밑에서 함께 훈련받다가 루스카 로마를 떠난 이브의 친구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종의 구원자여야 할 이브의 정체성을 강조되지 않다 보니, 이들의 우정과 평범한 발레리나가 된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이브가 뿌듯해하는 결말은 그 중요성만큼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다.
따라서 <발레리나> 스토리텔링이 지나치게 편의적이라는 비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 명백한 상징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소심함이 액션씬을 구상하고 연출할 때의 과감함과 대비를 이루고, 또 강조되니까. 그 결과 <발레리나>는 쾌감만큼 크고 진한 아쉬움을 함께 남긴다. 본편에 절대 뒤쳐지지 않고, 때때로 본편보다 뛰어났던 액션만큼 서사에도 공을 들였다면 더 뛰어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Acceptable 그럭저럭
이브의 반만큼만 과감했다면 더 풍성하고 깊어졌을 스핀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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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은 어째서 기생충을 선택했을까?
개봉 직전 칸의 선택을 받은 영화 <기생충>. 우리나라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고, 그 기대만큼 사람들의 환호도 넘쳐났다. 그래서 나 역시 기생충에 대한 기대감을 안은 채 봤지만 볼수록 의문덩어리였던 작품이었다.
영화 <기생충> 시놉시스“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 가족. 장남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사회적 계층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빈부 격차가 드러나는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교묘하게 그 차이를 드러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 현실을 더 크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지하와 대저택이라니,, 유치원생이 봐도 부자와 가난한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이 돼서 너무 흑백논리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상을 받을만큼 역작이었나?
칸이 선택한 작품이라기에 기대했지만 굉장히 평범했던 작품이었다. 빈부격차 속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려 기존의 사람을 없애고 자신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은 한 번쯤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니 말이다. 근데 그것이 가족 전체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일까?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만큼 과연 작품들이 뛰어난 영화였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 당황스러웠다. 칸의 저명한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한국영화를 많이 보고 자란 내 눈에는 내용이 뻔했고, 예상이 가능해서 보는 내내 이게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가? 의심스러웠던 영화였다.
그래도 연기력은 좋았던 작품
의심을 하면서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중간이 끊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합이 너무나도 찰떡같았기 때문이다. 송강호와 최우식, 박소담 그리고 장혜진까지 진짜 가족을 보는 것처럼 연기가 너무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이질감 자체가 없었다. 그냥 실제 가족을 직접 보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찰떡같이 캐스팅을 했는지캐스팅 디렉터의 안목이 빛났던 작품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뻔했지만 그들의 연기력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 <기생충>은 개인적으로 상을 왜 받았을까?하는 의문이 든 작품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정말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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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질문을 던질 때
좋은 영화는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철학적인 논쟁이나 윤리적인 이슈가 있는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대부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감독의 의견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서복> 이전에도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는 있었고 한국에서만 대성공을 거두었던 <아일랜드>의 경우 복제인간의 인권을 인정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일랜드>가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논의의 여지를 주려고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황우석 박사의 논문이 발표되며 복제 이슈가 뜨거웠던 당시로서는 소재만으로도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했다. 이후 여러 논란을 거쳐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전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지금 이용주 감독은 복제인간 소재를 꺼냈다. 소재가 낡았다고 해서 영화까지 낡으라는 법은 없지만 <서복>은 소재를 가지고 논의에 들어가기보다는 소재와 논의를 보여주는 데서 그친다.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이 기헌(공유 분)에게 하는 질문들은 질문 자체로는 의미가 있지만 영화의 맥락과 어울리지 않아 기헌을 당황시킬 뿐이다.
<서복>이 던지려고 했던 질문들은 서복의 존재에서 파생된다. 서복은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탄생했지만 뜻밖의 부작용으로 염력을 가지게 됐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쉽지만 서복을 만들어낸 임세은 박사(장영남 분)는 별도의 목적이 있었다. 임 박사의 서복 제작 동기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깊이 들어가지 못하며 서복의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고뇌를 잠깐 보여주는 선에서 머무른다. 비슷한 논의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레플리카>에서 시도된 적이 있는데 역시나 액션영화로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임 박사의 동기에 대해서는 관객과 제작진 모두가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 파고들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임 박사는 서복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감정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고 장영남이라는 배우치고 영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퇴장한다. 서복의 탄생 동기를 둘로 나눈 건 확실한 패착이었다.
연구소의 실장 신학선(박병은 분)이 서복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서복이 과연 인간인가'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고 사람처럼 말을 하고 성장하지만 서복은 실험실에서 태어났고 인간과는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탄생 동기가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서복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신 실장의 의견이다. 따라서 실험체로서 서복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은 신 실장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관객에게 서복이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인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며 인간이 아니라고 대답하더라도 서복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 영원히 고통받아서는 안된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대답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복이 박보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복이 인간의 형상이 아닌 생명체였다면, 혹은 서복이 박보검이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다른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서복이 기헌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모두 서복을 인간이라 인지하며 심지어 기헌에게 동생을 잘 챙기라는 연민섞인 시선마저 보낸다. 그렇기에 서복이 인간이냐는 질문은 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동물실험마저 윤리적이지 않다는 논의가 나오는 시대에 복제인간이 인간인가/복제인간은 이용되어도 좋은가에 관한 질문은 신학선의 무자비한 캐릭터를 설정해주는 데 머무를 뿐이다.
서복을 탄생시킨 연구소 서인의 회장인 김천오(김재건 분)는 서복을 가지고 신의 역할을 하려 한다. 서복이 줄 수 있는 영생을 나눠줄 이를 악인이 선택하겠다고 한다는 발상은 꽤 낡았으며 그다지 유효하지도 않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일은 이미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와 받지 못하는 자로 나뉘는 사회에서는 이미 평균수명에서 차이가 나며 의료 혜택이 동등하게 분배되는 곳에서는 정작 의료진이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의료 수준의 질이 낮다. 자세한 논의는 이미 <식코>에서 마이클 무어의 무자비한 카메라가 다룬 적이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다룰 수 있는 시대는 오래 전에 도래했으며 관련 논의도 마무리된지 오래다. 차라리 사형제도 폐지 쪽이 이제는 동일 주제를 다루는 쪽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영생의 무의미함에 대해서는 뱀파이어물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기록이 있어 <서복>은 늦은 감이 있다. 결국 회장이 다루는 주제도 마찬가지로 회장의 판에 박힌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며 돈에 환장한 늙은이 캐릭터조차 식상해 주제도 캐릭터도 서사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헌이 서복에게 갖는 질문들은 보다 복합적인 편이다. 다만 기헌의 질문들은 본인 스스로가 갖는 의문이기보다는 서복이나 다른 캐릭터들이 던지는 질문을 흡수하는 것에 가깝다. 기헌은 서복을 통해서든 아니든 자신이 가진 질병을 치료하고 더 살고 싶어하는데 정작 그이유는 알지 못한다. 서복은 기헌에게 "내가 왜 민기헌 씨를 살려줘야 하는데요?"라고 묻지만 기헌은 대답하지 못한다. 이외에도 서복은 기헌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기헌은 잠시 생각해 보지만 결국엔 단 하나의 질문에도 스스로 답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헌은 서복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이를 통해 기헌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증거는 서사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기헌은 서복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서복이 인간의 형상, 특히 박보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복에게서 채취한 치료제로 삶을 연장하려던 기헌은 채취 과정을 알고 나서야 서복을 보호하려 든다. 서복에게서 치료제를 채취하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서복이 실험실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라면 서복에게서 치료제를 채취하는 것은 정당한가? 기헌은 서복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도로 실험실로 데려오지만 스스로는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캐릭터다.
마지막으로 서복이 서복 자신에게 갖는 질문들은 꽤나 심오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질문한다. 서복은 자신이 누구의 DNA로부터 탄생했는지 알고 있었으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기원을 탐구하고자 한다. 서복을 연기한 박보검은 연민을 자아내면서도 때로는 무자비하고, 사회적 규칙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서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배우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서복이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서사에서 자리가 온전히 잡히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서복은 자신의 기원을 찾아내고 인류에게 영생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탐구하면서도 결국엔 실험실로 돌아가길 자청한다. 단순히 기헌을 살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영화 후반 서복이 내리는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서복은 서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철학적인 인물이지만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행동하는 경향이 짙다. 서복의 질문들은 시사점이 많지만 논의를 시작하기보다는 철학수업 첫시간에 듣는 질문을 나열할 뿐이다.
<서복>이 비록 낡기는 했지만 매력적인 소재를 발견한 건 사실이다. 서복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 나아가 연구 윤리와 트롤리 딜레마까지 다루려 했던 노력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가 시사하려 하는 바가 캐릭터 설정에 머무른다면 박보검과 공유의 조합으로도 커버할 수 없다. 이용주 감독이 이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밀도 있는 서사가 <서복>에서는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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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안되는 소리 같은데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없는 영화
이 글을 읽는 몇 안 되는 여러분, 혹시 최근에 웃었던 적이 언제인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2022년 1월 2일이다. '올해 처음으로 언제 웃었어요?'나 '혹시 어제 웃은 적 있나요?'라고 물으면 답을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웃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애인이 있거나 자제분들이 있는 집안이라면 쉽겠지만 나 같은 솔로남들에겐 웃기란 더더욱 어렵다. 생각해보면 공포영화를 보고 무섭다고 느끼는 것도 어렵지 않나? 비단 작년에 봤던 <랑종>의 경우 나는 극장에서 뛰어나오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서웠다. 근데 누구는 안 무서웠다고 말하는 걸 보니 감정은 이렇게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이건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까 필연적이다. 또 인간사에 당연하게 통하는 공식이란 없잖아? 무조건 웃기고 무섭고 이런 건 웃음의 신이 와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분노와 공감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기 마련이다. 이 말은 사람마다 관심 있는 사회문제가 다를 수밖에 없단 것을 의미한다. 나 역시 관심 있는 사회이슈가 있겠지? 만약 내가 일하는 곳의 환경을 반영해서 '치매 환자분들과 가족들의 처우를 더 낫게 개선해준다'라고 한다던가 '사회복무요원 월급 인상과 복무기간을 단축해준다'면 내 표가 올해 대선에 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회로 반영되는 과정이란 가지각색이라 당연히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근데 가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가치관에 의해 일상을 사는 게 아니라 하루가 일상에 잡아먹히도록 놔두는 것 같다. 가령 정치인들이 하는 심한 욕설이나 막말, 위선들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가.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돼?' 같은 뭐 그런 것들 말이지. 이런 안타까움은 단적으로 우리나라에만 나타나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저 멀리 있는 미국에서도 정치현실에 사고방식이 잡아먹힌 사람이 있는 것 같으니. 짱짱한 배우들과 아담 맥케이라는 나름 굵직한 감독이 이 미국 사회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뇌 비우고 볼 수 있는 코미디를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추천하는 작품이다.
1. 무엇에 대한 작품인가요?
서두에서 쓴 바와 같이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그 전의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에피소드를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얼굴 빨개진 게 상수가 돼서 망언을 늘어놓았다는 기사가 하나, 둘이었나? 그의 어록들 중에 나에게 기억에 남는 것은 코로나19를 무시하고 백신 접종도 안 하다 전염병에 걸렸다는 일화다. 자기만 병에 걸리면 뭐 크게 피해가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걸 나라 전체의 의사결정에 반영해 미국의 경제산업에 참사를 일으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영화는 (내 기준에) 코로나19와 유사해 보이는 재앙을 보여준다.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우리가 사는 이 터전이 파괴될 수도 있음을 예견하는 랜디와 케이트. 그러나 이 둘은 백악관과 방송계의 헛스윙 때문에 경고를 전하는데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영화는 이때 '어떻게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는가?'와 '이때 만난 사람들이란 어떤 종자들인가?'를 보여준다. 이 인물을 보고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분도 있을 것 같다. 근데 머지 않아서 머릿속에 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비슷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순히 위에서 비슷해 보이는 재앙을 대처하는 두 대통령을 대비시킨 것은 아니다. 이렇게 바보같은 정치인을 지지하며 취하는 스탠스는 무엇인지, 모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틱톡과 인스타그램이 쥐고 흔드는 쇼츠 문화가 낳는 단점은 무엇인지 지적한다.
2. 배우들의 연기 합은 어떤가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조나 힐, 케이트 블란쳇, 티모시 살라메, 메릴 스트립까지 할리우드의 국밥 같은 배우들이 나온다. 얼굴만 봐도 든든해지는 배우진들이 모여 잘 짜인 코미디 한 편을 만들어냈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미남 배우'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떠오르지 않나? 그는 이번에 살짝 다른 역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나 <캐치 미 이프 유 캔>같이 대놓고 방탕한 캐릭터가 아닌 소심한 과학자 역할을 맡았다. 얼굴이 그냥 딱 봐도 조각미남인 사람이라 처음에야 살짝 엥? 이런 역도 하나? 싶었지만 꽤나 잘 맞는다. 그리고 이런 소심한 캐릭터가 후반부의 어떤 결정에 영향이 가는데, '이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라고 납득이 갈 정도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뭐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은 제니퍼 로렌스다. 돌아이 연기 권위자답게 그녀 다운 역을 잘 소화해낸다. 또 다른 배우 케이트 블란쳇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 아빠한테 서운한 게 많은 신(토르 : 라그나로크), 레즈비언 로맨스(캐롤), 사회성 떨어지는 건축가(어디 갔어, 버나뎃) 등등 다양한 역을 맡았던 것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근데 나는 이런 역할에 비해 '섹시한 뉴스 진행자'는 좀 덜 개성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이 배우가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긴 했지만 뭐 연기를 잘했으니 미스캐스팅이라고 보기 어렵겠지. 이 외에도 메릴 스트립 역시 베테랑답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대통령 연기를 잘 해냈다. 근데 이런 기라성 같은 배우들 만큼이나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배우가 있다. 나는 이 것을 조나 힐로 꼽고 싶다. 점점 장면이 쌓이고 러닝타임이 지나가면서 얼굴만 봐도 웃기는 과정을 여러분도 겪게 될 것이다. 별 대화 안 하는데 그냥 웃긴다. 이 조나 힐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으로 영화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3. 이해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이게 어떻게 설명해야 맞냐면, 대사의 양이 많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줄거리는 어렵지 않은데 말이 많아서 이해능력이 떨어지는 나 같은 분들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극이 어렵다거나 그러진 않을 것이다. 또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바일 환경에서만 이 작품을 볼 수 있지 않나? 재생 바가 왔다 갔다 하니 모바일 환경에서 보는 것도 그렇게 썩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4. 보기 전에 알고 가야 할 지식이 있나요?
사실 있지만 내가 서두에 써버렸다(ㅋㅋ). 미국 영화이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 알면 좋을 것이다. 그 외적인 건 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어떤 층이 지지했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미국의 백인 남성이 그에게 표를 줬다는 말이 많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 다문화 사회를 표방했던 미국에 불만이 많았던 미국 국민들은 백인 중심으로 사회를 재건하겠다!라고 말한 그에게 표를 줬다. 이런 투표의 작동과정이 영화 내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면에 난 단순히 이 공화층 지지자들만 비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성이 날아오는 걸 세상에 알리고 백악관이 어떤 태도를 견지하려고 하는데, 이 관계자들이 '특정한 논리'를 내세워서 반대한다. 난 '특정한 논리'가 민주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몇 정치인들에게도 적용되는 풍자라고 생각한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네이버 들어가서 시사 뉴스 몇 개 보고 가면 될 것 같다. 그럼 알 것이다. 감독이 사회의 어떤 모습을 공격하고 싶었는지를. 아, 이 외에 알고 가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영화에 크리스 에반스 나온다. 한번 찾아보시길.
5.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어 여행이고 나발이고 발이 묶인 요즘이다. 백신이 보급화되서 해치웠나? 싶었지만 오미크론이 확산되며 전염병 문제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말이 들려온다. 이에 따라 각국의 정부의 리더십이 비판대에 올랐다. 영화는 이 지도자들의 위선을 웃음으로 삼는 작품 아닌가? 당연히 이 사회에 할 말이 많은 분들이라면 속이 엄청 시원할 것이다. 이게 나쁜 것도 아니고 충분히 그들의 주장이 일리 있기 때문에 이들은 그야말로 사이다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다른 지점이라면 역시 그냥 뇌 뺀 코미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그냥 재미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운데 그 안에 코미디도 담겨있고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도 있는 그런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때 후자, 그러니까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살짝 우선순위가 덜해 보여서 그렇지 영화는 오락성의 측면에서 좋은 기능을 한다. 넷플릭스에서 할 거 없을 때 보기에 좋은 작품이란 뜻이다. 아, 티모시 살라메 좋아하는 분들 많지 않나? 팬들은 이 영화 보면서 만족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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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히트 & 런> 티저 예고편
한없이 사랑한 아내가 살해당했다.
그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어둠 속을 걷는 한 남자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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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원정빌라> 런칭 예고편
303호에서 무슨 일인데ㅜㅜ 이젠 지나가다가 불 켜져 있는 집만 봐도 무서울 듯... [곤지암] 잇는 충격적 현실 공포 도시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