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02-04 20:42:16
등이 꼿꼿한 사람
영화 <플랜75> 리뷰
SYNOPSIS.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명예퇴직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
'플랜 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플랜 75'의 세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POINT.
✔️ 초고령화 사회, 인간성을 잃어가는 듯 느껴지는 뉴스가 쏟아지는 지금, 볼 가치가 있는 영화
✔️ 주인공 ‘미치’ 역의 배우 ‘바이쇼 치에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소피 성우이기도 합니다. 극중에도 언급될 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 ‘미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 난 이게 미치 씨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눈여겨본 단편 감독의, 첫 장편 작품. 봉준호처럼 현실 인식이 서늘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처럼 풀어가지만, 그보다 단단하고 무게중심이 낮은 느낌입니다. 차기작이 벌써 기대됩니다.
✔️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주목받은 작품
✔️ 2월 7일 개봉

오래 전 누군가에게 들은 적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그러니까 처음 5-10분은 그 영화를 이끌어가는 내용이자, 나중에 돌아보면 그 부분만 봐도 영화를 다 본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적극 동의하는 동시에 소름이 끼칠 것이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가 되는 ‘플랜75’ 정책은 결국 오프닝 시퀀스에 나온 사건을 아주 천천히, 공적인 탈을 쓰고, 풀어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권리인가? 이 질문은 결국 존엄사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논쟁이 언제나 편치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존엄’을 지킬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죽음을 선택할’ 자리까지 떠밀린 사람들에게 마지막 버튼을 눌러 주는 것이거나, 의료라는 흰 베일을 뒤집어쓴 살인이 훨씬 많으리라는 기분 나쁜 예상 때문이었다.
유독 인물들의 뒷모습을 많이 담아낸 이 영화 속에서, 나는 마치 서래를 본 해준처럼 생각했다. 미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난 그게 미치 씨에 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꼿꼿한 등처럼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다. 꼼꼼하게 일하고, 퇴근해서 장 본 식재료를 정리하고, 베란다에 걸어 두었던 옷을 다시 들여놓는 사람. 퀴즈 쇼에 도전하고 상품을 노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도 그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정갈한 식사를 한다. 호기로운 도전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마음 같은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정하고 알뜰한 일상.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미치의 일상을 보지 않는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예산 들어갈 곳’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존엄사 신청을 받는 국가에게, 미치는 그저 75세를 넘은 노인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을 죽이는 방법으로 명맥을 유지하다니. 누군가의 미래를 짓밟아서 도달하는 곳을 우리가 감히 미래라 불러도 될까.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미래는 무엇인가. 영화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좋은 영화가 으레 그렇듯, 무거운 질문에 답안이 될 수 있을 여러 가지를 그저 보여준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자기 일과 머리 누울 집이 있던 미치에게서, 국가는 그의 세상을 하나씩 잘라내고 몰아낸다. 죽음이 아니면 선택할 수 없는 자리까지 사람을 몰아세우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노인의 가난을 단지 그의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책 <가난의 문법>이 생각났다. 나아가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떠올리며, 노인 자살률이 OECD 압도적 1위라는 한국의 통계치 또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연 그러한 죽음은 ‘자’살인가? 미치를 끊임없이 몰아간 끝에, 라바콘 불빛이 경고등처럼 온통 붉게 번쩍거리는 어느 밤. 온통 빛이 번쩍번쩍하지만 온기는 없는 밤이 마치 이 사회 같았다.
온기 없이 휘황찬란한 세상에서, 미치는 계속해서 꼿꼿하게 걷고, 정갈하게 먹고, 조용히 배려하며, 더없이 예의 바른 언어를 구사한다. 그 중에서도 “신세(お世話)”라는 단어는 세 번 이상 쓴다. 이 단어는 사전에 “도와줌, 보살핌; 폐, 신세, 귀찮은 일”로 등장하데, 도움을 받으면서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한 마음을 담을 때 쓴다. 꽃다발을 받으며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의 의미로, 플랜75 상담원과의 첫 통화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통화에서 “마지막까지 신세 지게 되네요”로 차차 등장한다.
기초 일본어 회화에서 배우는 문장인데, 퇴직하면서 마지막으로 사물함을 깨끗이 닦고 감사 인사를 남기는 미치의 성격상 자연스러운 문장인데, 유독 귀에 툭 걸렸다.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단어들은 죄다 귀에 툭툭 걸렸다. 스스로에 대한 낮춤말이 존댓말 못지않게 발달한 일본어에서는 과히 이상할 게 없는 표현들인데, 왜 그 겸양의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을까. 공적인 탈을 쓰고 무례한 죽음이 판을 치는 세상에 끝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건 아닌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장애인에게도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장만큼이나, 노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 또한 당연한 소리다. 너무 당연해서 흰소리처럼 느껴져야 하는, 힘주어 말할 필요 없는 문장이어야 한다. 당연히 노인은 ‘우리’와 ‘그들’로 나뉘는 개념이 아니어야 하며, 사람이니까 당연히 다르지 않다. 그 모습이 무너진 세상을 표현하면서도, 오히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인간의 면면을 비춘다.
미치와 직장 친구들의 대화,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면 젊은 직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 영화 속 젊은이들과 노인들은 여러 차례 같은 자리에 선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 기차 차단봉 앞에 잠시 서는 것은 미치도 히로무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플랜75로 사망한 노인들의 짐을 정리하고 물건을 털어 보는 마리아와 동료의 모습에서는, 누구라도 아우슈비츠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현실의 어떤 면과 끊임없이 공명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다르냐고.
비슷한 스토리라인을 담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서 주인공 프레드가 남겼던 말, “너도 언젠가 노인이 될 게다”는 문장이 그렇게 이 영화에서도 우리에게 파고든다. 플랜75는 노인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하지만, 히로무와 요코를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는 더 큰 내상을 입히고 있음이 영화에 절절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 속 ‘플랜75’가 지향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성과로 들이미는 것은 “경제적 파급 효과”다. 그건 정말 좋은 것일까? 어쩌면 그건 군더더기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부가 가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밭에서 “농작물 가격을 잘 쳐주지 않다” 수확할수록 손해가 나서 농작물을 갈아엎는데, 마트에서는 너무 비싸서 못 사먹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면, 이 ‘부가’된 것은 가치일까 군더더기일까. 그 군더더기를 만들기 위해 진짜 중요한 가치들을 버린다면, 그걸 어떻게 부가 가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팔을 베고 식탁에 엎드린 미치가 이내 응시하는 어둠. 낮잠에서 깨어난 마리아가 같은 자세로 팔을 베고 응시하는 어둠. 그 시선 끝에, 절대 자구책이 될 수 없는 군더더기가 구더기처럼 우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등에 이야기를 매달고
친구에게 몇 번씩 걸어도 도저히 가 닿지 않던 미치의 전화는, 역설적으로 플랜75 상담원과 연결되면서 그제야 전화기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비록 마음 주고받는 일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상담에 타이머로 시간 제한을 걸고 있고, 우리가 아는 가치들에 붙었던 이름(예컨대 “용기”)을 뒤죽박죽 섞어 쓰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연결이지만… 그 연결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귀여운 하이파이브가 있고, 멜론 소다 아니 크림 소다의 추억이 있고, 지나간 시간이 한 결씩 곱게 펼쳐지고 겹쳐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역할로 단단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모든 등장인물을 품었던 바에쇼 치에코의 목소리로, 꼿꼿한 등으로 해주는 이야기들은 어쩐지 자꾸만 더 듣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히로무 삼촌의, 어쩐지 지친 듯한 등과 방에 놓인 물건들의 이야기도… 어쩐지 더 듣고 싶어서 슬퍼지는 기분이었다.

영화가 마지막에 가까워 갈수록, 어쩐지 나는 “생은 존엄이구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화 속 ‘플랜75’ 광고에서는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순간은 선택할 수 있다”고 호기로운 광고를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깨달음을 준다.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었듯,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자리에 남겨두어야 맞겠구나.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을 만큼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이 생의 본질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당신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도 궁금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말마따나, 계속해서 흑백의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아주 복잡하고... 중요한 이야기들은 회색 지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플랜75' 식이 아닌 답을 찾아내려면, 이 영화가 던진 무거운 질문에 우리 각자의 답을 하나하나 꽃다발처럼 풍성하게 엮어내는 편이 좋을 테니까. 내가 이 영화에서 엿본 것은, 정말 너무 무거워서 좀처럼 쓰고 싶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생의 존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 삶이 바닥을 쳐도 생은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삶의 어느 순간, 결기 어린 눈빛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때가 있을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식의 부드럽고 달콤한 말로 로맨스 영화처럼 혹은 청춘 영화처럼 갈무리할 수 없는 엔딩이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꼿꼿한 등으로 서서, 나의 노래를 한 소절 부르고 또 발걸음을 옮기면 그저 그뿐이다. 이 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꼿꼿한 등에 이야기와 노래를 매달고 걷는 것뿐이다. 여전히, 저는 그게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 감상평 -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허무한 퇴장
-
시리즈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작품의 최종장이라는 거창한 홍보문구에 비해 그 임팩트는 꽤나 부족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쥬라기 월드 3에서 이런 아쉬움이 느껴진 이유에는 몇가지 작품의 판단미스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오웬과 블루의 연대와 케미스트리가 거의 전무하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쥬라기월드 트릴로지의 키 메시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기대에 못 미치는걸 떠나서, 이 정도로 무난해도 되는건가 싶더라고요..?
-
- 영화 랜드 후기 / 미국 국립공원의 사계절 / 영직남 강추 초힐링 무비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랜드”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대자연, #힐링, #로빈라이트
-
- 영화 <바그다드 카페 리마스터링> 메인 예고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초라한 ‘바그다드 카페’. 커피머신은 고장난지 오래고, 먼지투성이 카페의 손님은 사막을 지나치는 트럭 운전사들 뿐이다.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을 쫓아낸 카페 주인 ‘브렌다’ 앞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이 찾아온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한 낯선 동거. 그러나 곧 야스민의 작은 마법으로 그녀들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행복해지려는 노력, 꾸밈없는 미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해가는 소중한 시간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바그다드 카페'도 두 사람의 마법으로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이 깃들게 되는데...
황량한 사막에서 일어난 마법 같은 기적!
당신의 삶을 위로할 가장 아름다운 뮤직바이블이 찾아옵니다! Calling You!
-
-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30초 예고편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스즈'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다.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가상세계 U에 접속하게 된 '스즈'
그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런데 '벨'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어느 날, '용'이라 불리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큰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한 '용'에게 신경쓰이는 '벨' 그리고 현실의 '스즈'
과연 '스즈'의 목소리는 그에게 까지 닿을 수 있을까?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질 때, 기적이 일어난다!
-
- 기생 생물들 사이에서 믿음과 인류애를 외치다.
주요 내용
- 진부한 전개와 신파 등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아쉬움을 극복한 연상호 감독
- <반도>의 서대위에 이어 또 한 번 구교환 배우에게 딱 맞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물한 연상호 감독
- 사회에 불신과 두려움을 심어준 기생 생물. 기생 생물의 등장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 믿음을 지키려는 자 vs 믿음을 잃은 자의 대립과 상반되는 기생 생물을 대하는 태도
- 준경이 남편의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믿음과 희생. <기생수: 더 그레이>가 말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
기생수: 더 그레이 (Parasyte: The Grey, 2024)
기생 생물들 사이에서 믿음과 인류애를 외치다.
개봉일 : 2024.04.05.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SF, 액션, 크리처, 판타지
러닝타임 : 6부작, 총 300분
감독 : 연상호
출연 :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문주연, 유용, 이현균, 윤현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연상호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느껴졌던 아쉬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는 크리처 장르의 신기원이었던 애니메이션 <기생수>의 세계관을 차용한 리메이크작이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지옥>, <괴이>, 영화 <부산행>, <반도>, <정이>, <염력> 등의 매력적인 크리처, SF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가 연출,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신선함과 상업성을 갖췄다는 호평과 진부한 전개와 신파가 너무 심하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행히도 취향 차를 제외하면 혹평을 받을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 분위기를 깨는 과도한 감정, 액션이 나오거나, 감정을 챙기느라 개연성을 놓치는 부분이 보일 때면 참 아쉬웠다. 그런데 <기생수:더 그레이>에선 이런 부분들을 최소화하여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아쉬움 들을 잘 만회해냈다. 크리처 물이라면 보통 누군가의 희생과 그에 따른 각성 과정이 나오기 마련인데 여기서 감정과 액션을 너무 폭발시켜버리거나 질질 끌게 되면 매번 봤던 신파라고 욕먹기 딱 좋지만, 이번엔 적당하게 잘 잘라냈다. 약간의 개연성 공백들은 회상과 대사를 활용해 친절하게 채운다. 멋있는 방법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빈틈은 잘 막아냈다. 덕분에 초반부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의 분노와 공황도 후반부에 가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개연성과 감정 다음으로 걱정했던 건 액션과 비주얼이었다. 손이 아닌 머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생 생물이라니. 이런 설정 탓에 캐릭터의 외관이나 액션이 좀 바보같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그 부분도 잘 극복했다. 개인적으론 신체가 변형되는 것과 촉수 괴물을 싫어해서 초반부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불쾌하지 않게 적당한 선에서 구현해낸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촉수와 총만을 이용한 액션이었음에도 작위적이거나 속도가 떨어지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아 액션 또한 괜찮은 편이다.
캐릭터의 밸런스도 좋다. 전체적으로 출연 배우들의 능력치가 좋아서 연기 구멍이 크게 없고 극 중 캐릭터의 설정과 합도 좋다. 특히 구교환 배우의 강우 캐릭터가 공감이 될 듯 말 듯하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게 딱, 배우와 잘 맞았다. 배우가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매력적이었던 걸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 캐릭터 자체가 배우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이전에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맡았던 <괴이>에선 구교환 배우의 매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엔 <반도>때처럼 배우에 딱 맞는 캐릭터 구성을 제대로, 매력적으로 해낸 것 같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양한 크리처가 나오는 박력 있는 액션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는 시청자보다는 그 안에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크리처 물로서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넓은 세계관과 다양한 기생 생물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조금 아쉽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기생수 설정만을 가져와 이야기 자체를 새롭게 만든 거라 원작과 비스무리한 리메이크작은 아니니 이 부분을 고려하여 선택하길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기생 생물과 함께 사회에 파고든 강력한 불신
인간은 강하지 않다. 신체적인 장점이 없어 커다란 짐승 한 마리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 살아남을 수 있고, 자연재해 앞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곳에 똘똘 뭉친 인간들은 각자의 생각과 능력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와 자신의 삶을 지켜왔다. 사회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사회에 종속되어 살고 있다. 어쩔 땐 든든하고 어쩔 땐 불안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누군가를 믿으며, 이 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것이라 애써 믿으며 대한민국이란 사회와 그 아래의 작은 사회들을 지켜가고 있다. 사회를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힘이 아닌 서로를 향한 믿음이다. 인간이 서로를 믿지 않고 미워한다면 사회는 금방 와해되고 말 것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 ‘믿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 생물들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의 뇌를 먹어 그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다. 감염되기 전과 생김새는 달라지지 않지만, 정신과 신체적 능력치는 기생 생물과 동기화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강력한 힘을 드러내며 명령받은 대로 인간을 먹어치운다. 얼굴에 변형이 일어나기 전까진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기생 생물을 인식한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는 인물들과 믿음을 잃은 인물
준경이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이런 삭막한 배경과 여러 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공생하는 인물들을 통해 믿음과 공생의 가치를 보여준다.
주인공 수인은 어릴 때 가정 폭력을 당했다. 사람들은 어린 수인을 ‘자기 아빠를 신고한 독한 애’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래도 수인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른이 되어 열심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이번엔 또 어떤 미친놈이 수인을 죽이려 뒤따라온다. 수인은 언제나 불행하고 외로웠고, 수인을 둘러싼 세상은 항상 그녀를 배신했다. 강우는 돈을 벌기 위해 조폭 조직 망나니파에 들어갔다가 한순간에 배신을 당하고 만다. 조직의 리더뿐만이 아니라 끝까지 믿었던 조직의 동생마저도 그를 배신한다. 수인을 구해준 형사 철민은 가까운 사이였던 원석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는다.
세 사람은 모두 세상에, 자기가 속해있던 조직에서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을 보인다. 수인은 믿을 구석 없어 보이는 강우를 살리기 위해 절벽 끝에서 손을 뻗었고 하이디는 자신을 죽이려 끝까지 쫓아온 준경을 살리기 위해 뒤에서 다가오는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강우는 배신당했단 걸 알면서도 죽어가는 규민(조직원 동생)을 챙기려 했고 더 이상 엮이지 않아도 될 수인의 일에 뛰어들어 수인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수인에게 손을 뻗는다. 철민은 수인이 기생 생물이 되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있지만 끝까지 수인을 지키려 했으며 원석이 괴물이라는 제보를 듣고도 그를 바로 고발하지 않는다. 철민은 수인과 원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심은 갖고 있지만 끝까지 둘을 믿으려고 노력했다.
수인, 강우, 철민과 반대쪽에 서있는 인물은 더 그레이 팀의 팀장 준경이다. 준경은 기생 생물에 감염된 남편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고, 그에게 공격을 당해 귀 한쪽을 잃는다. 남편을 빼앗았기 때문일까, 준경은 기생 생물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기생 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미끼로 이용한다. 단, 얼굴이 보이지 않게 가면을 씌운 채로 말이다. 경찰서에서 상황 설명회를 가질 때, 서장이 ‘그래도 사람(준경의 남편)을 저렇게 괴롭혀도 되냐’고 말하자 준경은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선 안돼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린 귀와 손등의 상처를 보여준다.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목격한 순간부터 준경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가장 믿었던 남편이 괴물이 되었는데 과연 누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수인과 하이디는 끝까지 준경에게 믿음을 보여준다. 원석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하이디는 특수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 그대로 준경을 바라보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준경을 지키기 위해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준경은 이런 하이디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엔 ‘정수인은 괴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수인이 강우의 도움을 받지 못해 특수 가면을 벗지 못했다면 이러한 극적인 화해 장면은 보지 못했을 거다.
준경은 남편의 모습을 한 기생 생물에게 특수 가면을 씌워 얼굴을 가리고 사냥개로 이용한다. 이제 그는 남편이 아닌 괴물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너무도 냉정한 모습이다. 보통 좀비물엔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 그대로인데, 어떻게 죽이지? 얘가 진짜 괴물/좀비라고?”하는 딜레마와 슬픔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철민도 잠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준경과 대립을 이루는데 준경은 단호하게 남편을 괴물로 분류한다. 그런데 남편이 원석에게 죽은 후 그의 가면을 벗겼을 때 준경은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괴물에게 씌워둔 가면을 벗겨보니 내가 알던 남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기생 생물에게 씌워둔 가면은 준경을 단호하고 강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인격이 그대로 남아있는 수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준경과 수인이 처음 창성랜드에서 마주쳤을 때 원석이 남편을 공격하는 바람에 준경은 급하게 차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준경은 수인과 얼굴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고 다시 돌아왔을 때도 수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바로 가면을 씌운다. 마지막쯤에 와서야 준경은 가면을 쓰지 않은 수인/하이디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다. 그리고 무조건 인간을 해하는 게 아닌, 인간에게 믿음을 주는 기생 생물 하이디를 목격하고 마음을 바꾼다.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건 믿음
원석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인간 사회를 배신하고 기생 생물들에게 빌붙는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도 매일 비슷한 월급만 받고 신세도 못 펼 바엔 기생 생물 하나를 인간 사회의 머리, 꼭대기 쪽에 앉히고 자신도 한몫 받아먹으려는 속셈이다. 이기적이고 멍청해 보이지만, 왜 배신을 했는지는 이해가 간다. 원석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배신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원석과 목사의 기생 생물은 배신을 반복하며 인간에게도 기생 생물(경희)에게도 적이 되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목이 날아가고 만다.
수인과 하이디, 강우는 본인에게 하나도 이득 될 것이 없지만 사회를 위해 희생한다. 누가 죽든 누구 머리에 기생 생물이 앉든, 그건 수인과 하이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사회는 그들을 괴물이라 칭하며 공개 수배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수인, 하이디는 기생 생물을 잡기 위해 풍물축제 현장으로 향하고 강우는 그들의 뒤를 따른다. 그저 조용히 살아만 있는 것이 목적이었던 하이디는 수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수인에게 물들어 그녀의 믿음을 따라 해보기에 이른다. 어차피 내 알 바도 아닌데 왜?라는 의문이 드는 비합리적인 선택과 믿음이었지만 이 선택과 믿음은 수인과 하이디, 강우.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구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희생과 믿음이지만 그럼에도
원석의 기생 생물은 최용재 의용대장 기념관에서 ‘사람들은 이 전쟁 기념관처럼 머리만 기억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후대 사람들은 최용재 의용대장만 기억한다. 사실 사회가 그렇다.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만 기억하고 그 밑에 있는 이들의 노력, 희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누군가는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 비합리적인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두 종류의 생명체와 극중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믿음과 희생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공생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반복해 이야기한다.
어디선가 툭 나타난 기생 생물처럼 언제부턴가 나타난 불신과 혐오가 사회 여기저기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큰 불안감과 분노를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가 <기생수: 더 그레이>를 보며 느껴야 하는 건 단순한 장르적 쾌감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다.
-
- 영화 <무뢰한>, 아니면서 무뢰한 척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씨발년아."
자신을 칼로 찌른 여자가 있다. 그런데도 그 칼을 꽂힌 채로 그는 그녀를 위한 새해 덕담을 내뱉는다. 이 영화의 느낌은 마지막 대사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다. 포스터처럼 어스름한 새벽녘의 피곤한 두 얼굴로도 충분하다. 왜 이 영화를 다시금 찾았냐고 묻는다면 그런 날이라서 그랬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담배 연기를 맡고 싶은 날이라서. 다들 그러다 담배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담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좋아하는 거니까. 담배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게 보고 싶은 날이었다. 저 대사 같은 말을 해주고픈 사람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처음 봤을 땐 영화의 결말이 정말 '영화'같다고 생각했었다. 뭉근하게 피어오른 담배연기에 자욱하게 빠져있다가 저 결말을 보고선 갑자기 담뱃재가 왈칵 쏟아져내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더라. 정말 미운데, 그래도 정이 몽당 떨어질 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온갖 상처를 받고도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 사람. 기분이 무척이나 나쁘지만 가끔 궁금은 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늦게 깨달은 탓이리라.
앞서 드라마틱한 마지막 애증의 한 마디를 남긴 이는 어딘가 비뚤어진 형사 정재곤이다. 정의구현은 무슨,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법의 테두리를 왔다 갔다 한다. 그는 형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범죄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뿐이지, 그의 수단과 방법은 범죄자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헛헛해 보이는 살쾡이나 표범 같다. 그는 가장 빠른 루트로 가기 위해서라면 가장 잔인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약점을 빠른 시간 내에 파고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그가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이 돼지발정제를 써서 용의자의 애인에게 자백을 얻어 사건을 해결한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걸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씁쓸한 표정으로 적당히 찌들고 풀어진 눈으로, 삐딱한 걸음걸이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모든 하루를 걷고 있다.
김혜경은 열쇠 7개 있는 집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단란주점 사장이다. 남자 때문에 인생 종친 케이스라고 모두가 인정. 회장님 세컨드로 잘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 부하와 엮이는 바람에 인생이 피곤해졌다. 그가 재곤을 만나게 된 건 그녀의 애인이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남자란 어떤 존재일까. 권력과 자리에 따라 자신을 유흥거리나 정복지쯤으로 여기는 한량이나 게임중독자일까. 확실히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잘 쓸 줄도 안다. 그러나 늘 여유로운 웃음을 안고 모두를 대하는 그녀라도 실상은 그녀만큼 외롭고 허망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기껏 마음을 붙였던 애인은 이제 도망자가 되어 자신을 돈줄로 써먹고 있다. 돈과 남자는 그녀에게 등짝을 쳐주고 싶은 원수가 아닐까. 남자에게 돈을 벌어 남자에게 돈을 쓴다. 게다가 지금은 범죄자의 애인이라니. 그냥 다 버리고 떠나오기엔 그것들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발목을 족쇄에 가둔다. 흘러넘치는 건 술이요, 오도독거리는 건 얼음뿐이라. 까무룩 술이 취해 아침에 잠이 들고 밤에 펼쳐지는 아득바득한 인생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무뢰한이다. 신기한 건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이 가장 무뢰한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곤과 혜경을 묶어두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더 피도 눈물도 없는 무뢰한에 가깝다.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의 공통점이 있다면 빈틈 있고 어딘가 짠하다는 것. 무뢰한 비스무리 사는 중인데 고민이 많다는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을 것 같은 재곤은 사실 자존심과 연줄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과 직업의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돈이나 받아먹는 부패한 형사가 되고 싶지 않아 성질을 부렸더니 고작 그의 스폰서가 보낸 금액은 정확히 48만원. 얼척이 없다. 범인을 잡을 때 몸 성치 않게 끝내 달라면서 형사 같지 않은 요구를 하는 건 선배 형사다. 그의 몰골이 짠하다. 그는 선배님의 '내 사람이 맞냐'는 질문에 토해내듯 대답을 했고, 적은 액수의 뇌물을 확인하고 돌려주기 전 허탈한 듯 히죽거린다. 돼지발정제를 쓸 수도 있는 무자비한 형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어떠면 그가 속한 교양 있는 무뢰한들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혜경 역시 보다 보면 저렇게 짠할 수가 없다. 뭐하고 살았냐고 물으면 빚 받으러 다니고, 빚 갚으러 다녔단다. 인생의 뭔 빚이 그렇게나 많은지 모르겠다. 범죄자 애인은 몇 천이 누구 집 애 이름 같나 보다. 그의 소식에 혼자 마음 졸이고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숨어 지켜보는 재곤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경이 궁여지책으로 외상금을 받으려 돌아다니는 모습은 당당하고 가냘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당함으로 무장했던 그녀는 웃으면서 돈을 받아내다가 결국은 술집 외상 때문에 인생 종 치고 싶냐며 사정하면서도 나 김혜경이라면서 힘들게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듯한 것이 마음 아픈 사람.
둘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진심인 듯 아닌 듯 서로를 속이고 있다. 그것이 무뢰한들의 세상에 걸맞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속으면 바보같이 당하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상대의 모습에 흔들리고 만다. 의심 가득했던 그녀는 재곤을 완전히 믿지 못해도 그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하고, 사건을 위해서 혜경을 이용하려 했던 재곤은 혜경이 다칠까 배려해주고도 아무 일도 모르는 척한다.
그들의 진심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서로를 가장 속여야 하는 순간에 드러난다. 진심과 거짓의 경계에서 그들은 사랑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다. 혜경이 돈을 위해 재곤(그녀는 그를 '영준'으로 알고 있지만)을 유혹해야 하고, 재곤은 범인 검거를 위해 그 유혹을 알고 짐짓 모른 척 받아들이는 순간. 재곤이 그녀가 자신의 약점이라고 말하고, 그녀가 아끼던 목걸이를 다시 전당포에서 찾아와 내려두는 순간. 지금 애인이고 뭐고 버리고 자신과 살면 안 되냐는 재곤의 말에 진심이냐, 고 물으며 흔들리던 혜경의 눈. 에이, 그걸 믿냐 하며 어설프게 둘러대는 그의 말에 끝내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씁쓸한 눈빛과 미소.
혜경이 어처구니가 없는 건 결국 그렇게 자신을 흔들어 놓았던 재곤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자신이 알던 '이영준'이 아니라잖나. 자신의 애인을 한 방의 총알로 날려 보낸 것보다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 '나 김혜경이야'라는 말처럼 지켜오던 자존심이 와르르 무참히 쓸모 없어져 버려서. 아무것도 믿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번에는, 그는, 그래도 자신에게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에게 분노한 것이리라. 그녀의 집주소며 모든 정보를 알면서 정작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제대로 안 것이 없다는 것에, 겪을 만큼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이토록 무방비했던 자신이 비참하고 자존심 상해서. 충격보다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것이리라. 그 총알로 날렸던 건 애인의 심장만은 아니겠지.
재곤은 사과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찾아와 나는 형사고,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녀를 상처주려 했던 게 아니라고 할 뿐이다. 재수 없다. 술을 팔 때보다 더 구차하게 마약을 놔주며 살고 있는 혜경을 찾아가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녀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면서도, 처량 맞게 집 앞에서 하루 종일 비나 맞고 있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혜경에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일 텐데. 미안하다고, 다시 곁에 있어달라고. 한번 안아주면 될 텐데.
세상이, 영준이, 아니 영준이라고 믿었던 재곤이 그녀에게 무뢰한이 되라고 가르쳤으니 그녀는 그녀대로 '무뢰하게' 그를 꼭 안아 칼로 찌르고 만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다. 그녀에겐 진짜 이름이 뭐 건간 그는 여전히 그의 애인 준길의 이상한 감방 친구로 그녀 눈 앞에 등장했던, 이영준이다. 그를 보고 싶었던 마음, 한번 꼭 안고 싶은 마음, 왜 비를 맞고 있냐며 묻고 싶은 마음이 한 켠.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나의 애인을 다리 하나 팔 하나 병신 만드는 것도 아니라 심장에 총알을 박아야만 했나. 나에게 했던 모든 말 그것도 거짓이었냐. 묻지 못한 그 야속함과 증오, 배신감이 한 켠. 그렇게 마음이 한 켠 한 켠 쌓인 뒤섞인 행동이다.
그러나 거기서 알 수 있다. 그렇게 무뢰한같이 칼을 찌르고 나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혜경의 모습에서. 애초에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된다는 걸. 혜경은 무뢰한이 아니며, 될 수도 없는 사람이란 걸. 재곤 역시 그 칼을 맞고도 유유히 경찰차도 보내고 꾸역꾸역 아파하며 길을 걸어 내려오는 걸 보면. 죗값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 보면. 그 역시 무뢰한이 아니라는 걸. 차라리 아주 못돼 쳐 먹은 사람들이었으면 좋았을 걸. 무뢰한이 아닌 그들이 주변 사람처럼, 세상처럼 무뢰하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영화는 대문짝만 하게 자신을 하드보일드 멜로라고 말한다. 세상이 녹록지 않다. 잘 믿어서도, 진심을 잘 들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형사인 재곤에게는 범죄자가 애인과 한바탕 나뒹굴고 있는 소리를 엿들으면서도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하는 것이고, 혜경에게는 한 때는 자기 발 밑 같았던 사람이,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자신을 은근슬쩍 더듬고 희롱해도 감정을 숨기고 웃음을 살짝 지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 사랑이란 게, 웃음이란 게 있지만 한 군데씩 비틀려 있다. 뾰족한 송곳 같은 사랑, 우스꽝스러운 웃음 같은 것. 그와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을 꼽자면 언제일까. 그건 그녀가 그가 구구절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따졌을 때가 아닐까. 어설픈 그의 거짓말에 그녀가 날카롭게 파고들었을 때, 그러고도 그가 예리하네, 하면서 뻔뻔하게 웃어넘겼을 때. 그럼에도 서로가 밉지 않았던 순간. 밤도 아침도 아닌 그 어스름한 새벽에 무뢰한이 아닌 이들의 '무뢰한'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
- [#톺아보기] 손예진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현재 방영 중인 '서른, 아홉'에서
차미조를 연기한 '손예진' 배우를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오르며 충무로의 대표 배우가 됐습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배우 손예진을 "2000년대 한국 영화가 낳은 압도적 대형 톱스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배우 손예진은 데뷔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찍으며 본업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배우는 팬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며
팬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로맨스, 코믹, 스릴러 등 장르를 불문하고 뛰어난 소화력을 보여주는
배우 손예진!
그럼 지금부터 배우 손예진 #톺아보기 시작하겠습니다!
출처 | 가네시 인스타그램
이름 | 손예진 (孫藝珍)
출생 | 1982년 1월 11일
소속사 |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데뷔 | CF '꽃을 든 남자' (1999)
별명 | 소예진, 예진핸드, 존예진 등
배우 '손예진' 데뷔 과정
출처 | 가네시 인스타그램 , 네이버 영화배우 손예진은 연기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중학교 때부터 배우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시청률이 30%가 넘으면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손예진 배우의 빼놓을 수 없는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2001년에 찍었는데요.
역대 모델 중 최초로 2년 연속 재계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 모두 꾸준한 연기 활동을 하면서
연기력도 인정받고, 다양한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배우 '손예진'의 대표작
클래식
지혜/주희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우연히 엄마의 젊은 시절 편지와 일기장을 발견한 지혜.
엄마의 첫사랑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편지와 일기장을 보면서
지혜는 엄마의 클래식한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된다.
손예진은 국회의원 딸인 주희, 그리고 주희의 딸인
대학생인 지혜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김수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건망증이 심한 수진은 그 건망증 덕에 운명처럼 철수를 만나 결혼한다.
철수는 날로 심해지는 수진의 건망증에 그녀와 병원에 가고,
그녀가 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손예진은 LG패션 남성복 팀장이자, 건망증 앓고 있는
'김수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아내가 결혼했다
김수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인아를 독점하기 위해 덕훈은 그녀와 결혼하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새로 생겼다는 그녀는 그 사람과도 결혼하겠다고 제안한다.
손예진은 '비독점적 다자연애'인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주인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여월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옥새를 삼킨 고래를 사냥하러 조선의 도적들이 모였다.
누명을 쓴 도적, 바다는 처음인 산적, 그리고 건국의 위기에 봉착한 개국 세력 간의
웃지 못할 싸움이 벌어진다.
손예진은 아름다운 미모와 강인한 카리스마는 물론
화려한 검술 실력까지 겸비해 조선 바다를 제압한 해적단 여두목
'여월'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시즌
덕혜옹주
덕혜옹주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13세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 후,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던 덕혜옹주에게 어린 시절 친구 장한이 나타난다.
손예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시즌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수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수아는 우진에게 비가 오는 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1년 뒤 어느 여름날,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의 수아가 나타난다.
하지만 수아는 우진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손예진은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온
'수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협상
하채윤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국제 범죄조직의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는 태국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를 납치하고 협상가 채윤을 협상 상대로 지목한다.
남은 시간 12시간,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협상이 시작된다.
손예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최고의 협상가
'하채윤'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사랑의 불시착
윤세리 역
출처 | 티빙 홈페이지어느 날 돌풍과 함께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하게 되는 특급 장교 리정혁의
절대 극비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손예진은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 2남 1녀 중 막내딸이자
세리스 초이스의 대표,
'윤세리'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이상으로 배우 '손예진' #톺아보기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손예진 배우가 참여한 작품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방영 중인 <서른, 아홉>에 주연 배우로 출연 중인데
이 드라마도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도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음 주에도 톺아보기 콘텐츠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٩( ᐛ )و
씨네랩 에디터 Hizy
-
- <최선의 삶> - '최선은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최선의 삶 (Snowball, 2021)
개봉일 :2021.09.01
감독 : 이우정
출연 : 방민아, 심달기, 한성민
최선은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많은 걸 알고 있는 나이도 순진한 나이도 아닌 애매한 주변인으로 불리는 그 시절, 사춘기. 우린 이제 클 만큼 컸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충격에도 와장창 부서지고 마는 연약한 그 시절. <최선의 삶>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우린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어른이라 생각했던 소녀들의 이야기다. 세상의 전부라고 느꼈던 친구들과 함께 모든 걸 차가운 길바닥에 내던질 수 있었던 무모한 그때. 소녀들은 나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최선을 다한 결과는 왜 항상 최상이 되지 않는 걸까?
<최선의 삶>의 주인공 강이, 소영, 아람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각자 다른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성격도, 가정 환경도, 학업성취도도 퍽 다르다. 하지만 강이, 소영, 아람은 믿고 있다. 우리의 우정은 견고하고 우리는 한 덩어리와 같은 사이라고. 강이, 소영, 아람은 세 사람 사이의 우정을 믿고 우리가 원하는 자유를 찾자며 어른들의 보호를 벗어나 길거리로 향한다. 아무런 준비도 능력도 없었던 소녀들은 현실에 부딪히며 주저앉고 충격으로 깨어진 마음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안과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은 이내 거친 행동으로 변하고, 이전부터 은은하게 존재해왔던 세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는 한층 더 견고해진다.
미성년자인 주인공들은 정해진 가정으로, 다니는 학교로 당연하게 돌아가야 했다. 그들을 밀어붙이는 가출, 반항, 왕따, 정체성의 혼란, 가정 폭력과 같은 고민과 문제들에 시선을 주는 인물은 없다. <최선의 삶>은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조금씩 뒤틀려온 감정들과 미묘하게 마음을 긁어대던 문제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던 뜨거운 공기가 가득했던 새벽. 그리고 모든 걸 체념하고 날카로운 해결법으로 우리들의 관계를 도려내고 울음을 토하던 밤까지의 기록이다. 우리 셋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믿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 최선을 다했지만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허탈한 그 순간. <최선의 삶>은 보는 이의 마음을 손에 꽉 쥐고 뒤흔들고 끝내 찢어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걸 재끼고 무작정 달려가는 강이, 소영, 아람의 걸음이 그저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하필 또 이들은 세명. 홀수 중에서도 가장 불안하게 느껴지는, 한번 소외되면 다시 흡수될 다른 집단을 찾을 수도 없는 수, 셋이라니. 세 명의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격동적인 마음의 변화와 그들 사이의 묘한 위계질서, 분노, 불안감 등을 필터 없이 거칠게 표현해낸 이 영화를 보며 윤성현 감독님의 2010년작 <파수꾼>이 떠오르기도 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3명의 친구,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던 세상과 서로를 날카롭게 쑤셔댔던 말들. 이 두 영화는 어딘가 닮아있다. 주인공이 소녀인지, 소년인지만 다를 뿐이지.
내 앞만 바라보기에도 벅차 나와 다른 방식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친구는 돌아볼 틈 따위는 없었던, 이제 단단해졌다 생각했지만 충격 한 번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던 그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모두가 최고가 되진 못했다.
<최선의 삶>은 이젠 완전한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갖게 된 방민아 배우의 새로운 얼굴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심달기, 한성민 배우의 합, 일명 강.소.아의 케미와 망설이거나 뜸 들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감정선을 연출해낸 이우정 감독의 역량이 빛나는 파괴적인 작품이었다.
최선의 삶 시놉시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열여덟 ‘강이’, ‘아람’, ‘소영’. 더 나아지기 위해서 기꺼이 더 나빠졌던 우리의 이상했고 무서웠고 좋아했던 그 시절의 드라마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예쁘고 똑똑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소영과 사고 치는 것 외에 눈에 크게 띄지 않았던 강이와 아람. 세 사람은 항상 한 덩어리처럼 뭉쳐 다녔고 선생님들은 그런 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을 갖춘 똑똑한 소영만큼은 좋아했다. 소영은 어른들의 눈뿐만이 아닌 강이의 눈에도 멋진 사람이었다. 강이는 예쁘고 똑똑한 소영을 존중하고 좋아한다. 소영이 밑도 끝도 없이 짜증을 부려도 강이는 소영의 입에 아이스크림 한 숟갈을 떠 넣어주고 골목 유일의 가로등 전구를 박살 내면서까지 그의 짜증을 받아낸다.
강이, 소영, 아람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소영과 아람의 관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강이가 가장 밑에서 두 사람을 받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진다. “집을 나가자”고 먼저 운을 떼던 건 소영과 아람이고 강이는 답답하다고 느끼던 찰나, 두 사람의 결정에 함께한다. 그리고 소영과 아람이 무슨 행동을 하든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등을 토닥이는 것 또한 강이다. 매일같이 오르는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하굣길.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관심과 사랑을 한주먹씩 밀어 넣는 부모님이 있는 집. 분명 사랑을 받고 있긴 한데 강이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시끄러운 지하철 소리를 방패 삼아 크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내뱉은 악이 소음에 완전히 묻혀 자신의 귀에도, 누군가의 귀에도 전혀 들리지 않으니 시원하기보단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강이는 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 대신, 시끄러운 소음 아래서 소리 지르는 걸 택한 걸까.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소영은 세 사람 중 가장 독단적인 인물이다. 연기를 배우고 싶은데 연기학원을 끊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덜컥 가출을 감행한 철없는 이 소녀는 호기심에 이끌려 강이의 손을 잡고는 이내 강하게 뿌리친다. 그리고 부모님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최선을 향해 홀로 걸어간다. 함께했던 강이와 아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말이다.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는 게 중요했고, 내 자존심을 꺾을 일이 일어나지 않는게 가장 최우선이었던 소영. 나는 그가 이기적이면서도 현명하다 싶을 만큼 계산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람은 강.소.아라는 집단의 중심 같은 인물이다. 함께 차를 탈 때, 사진을 찍을 때. 아람은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중앙에 위치한다. 아람이 이 집단을 이끈다는 의미보다는 강이와 소영을 이어주고 이 집단의 중심을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세 사람이 집을 구하고 아람은 금방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아람이 자리를 비우자 강이와 소영은 조금씩 삐걱거리더니 이내 엇나가는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소영과 묵묵히 받아내는 강이 사이에서 가벼운 농담으로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아주는 아람. 알 수 없는 표정과 앞일 따위 걱정하지 않고 빠르게 휩쓸려내려가는 아람을 보며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싶기도 했지만 반대로 자신의 상처를 덮기 위해 걱정 없는 척 과장된 감정을 내보이던 아람의 행동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조금은 가난하지만 딸을 아끼려 노력하는 부모님 밑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자라온 강이. (가출을 통해 얻어낸 것이긴 하지만) 딸의 의사를 들어줄 수 있는 이성과 그만한 능력이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소영. 경제적으론 모자라지 않지만 툭하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밑에서 자란 아람.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 사람은 서로를 잘 안다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처럼 상처 입고 버려진 것들을 모두 주워 담는 아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영과 연기를 배우면서 비로소 사람이 맞을 때의 느낌을 체험하게 된 소영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람. 이해하기보단 미워하기를 택한 소영이 강이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람이 강이보다는 자신의 앞길을 쳐다보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자 강이는 혼자 남게 된다.
소영은 연기를 배워 자신의 최선이라 생각하는 CF 촬영을 해냈고, 아람은 길거리에 버려진 슬픈 것들을 주워 위로하는 것에 몰두한다. 강이도 나름의 노력을 했고 강이의 부모님은 강이를 위해 기도하고 강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강이의 삶에서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강이가 할 수 있는 건 열대야가 기승인 밤, “덥다”고 말하며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퍼먹는 것, 다른 아이들의 웃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웃는 것처럼 앞에 놓인 상황에 순응하고 섞여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견디다 못한 강이는 둘둘만 옷 사이에 나를 지키기 위한 칼을 품고 다니기 시작하고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아람과의 사이를 생채로 도려내는 더 나쁜 선택을 하고 만다. 최선의 선택이었던 그것의 결과는 최상이 아니었지만 모든 건 각자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
- 디스토피아, 우정, 사랑, 구원 그리고 희망의 영화
9★/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성장통에 관한 영화일까 아니면 지극한 순애보를 그려낸 영화일까. 근미래의 일본. 유타와 코우는 늘 육교 위에서 헤어진다. 육교를 쭉 같이 걷다 보면 양 갈래 계단이 나온다. 유타가 말한다. “넌 저쪽이야. … 난 너무 외로워.” 내일이면 또 볼 친구를 향한 장난스러운 인사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같이 걷다 갈라설 수밖에 없는 매일의 작별은 두 사람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근미래의 일본은 지금보다 조금 더 음울하고 긴장감이 높은 사회다. 나라엔 외국인이 너무 많고, 지진 경보/오보는 수도 없이 울린다. 이 모든 건 안전을 명분으로 하는 권위적 통치의 근거가 된다. 일본 총리와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은 모두 안전을 이유로 각각 일본 국민과 학생들을 감시한다. 그리고 그 감시에 기반해 직접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를 이어간다.
코우는 자이니치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교장이 장학금 추천서를 써주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 반면 ‘순혈’인 유타의 부모님은 돈이 많다. 그러나 유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은 음악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를 통해 점점 옥죄어 오는 것들로부터 자신들만의 영토를 구획하며, 그 안에서 제한된 자유나마 만끽한다.
그러나 안전 경보는 날로 요란해진다. 두 사람과 친구들이 만든 자유의 공간, 숨 쉴 곳은 점차 위협당한다. 무엇보다 코우와 유타 사이에 후미가 끼어든다. 자이니치로서 많은 설움을 겪은 코우는 저항 정신이 투철하고 변혁 운동에 적극적인 후미와 친해진다. 이후 어릴 때부터 단짝이었던 유타가 알지 못하는 코우만의 세계가 생긴다. 코우는 유타와 음악 말고도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을 뜬다. 그러자 점차 유타와 거리가 멀어진다. 코우는 또 다른 친구에게 만약 자신이 지금의 상태로 유타를 처음 만난다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코우는 음악과 유치한 장난에만 매달리는 유타가 답답하다. 그러나 유타는 과거에 머무르며 성장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코우를, 그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코우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코우가 계속 음악을 매개로 자신과 함께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아이러니하다. 유타는 코우와 함께 친 장난의 죄과를 혼자 뒤집어쓰고 퇴학당한다. 유타의 희생으로 코우는 장학금 추천서를 받고 대학에 진학한다. 혁명을 모색한 일본 사회의 ‘외부자’ 코우는 대학을 매개로 체제에 진입할 계기를 마련한다. 반면 안락한 곳에서 출발한 유타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딱딱한 체제의 외부로 밀려난다. 유타는 자신만의 방식(음악)으로 코우와는 다른 미래를 도모해야만 한다.
영화의 엔딩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여느 때처럼 두 사람은 육교를 함께 걷는다. 양 갈래 계단이 나온다. 유타가 코우에게 손을 뻗어 그를 붙잡는다. 잠깐 화면이 멈춘다. 영화가 끝난 걸까? 그렇지 않다. 정지 화면이 끝나면 유타와 코우는 각자의 길을 간다. 그 몇 초간의 정지에는 코우를 붙잡고 싶은 혹은 마지막으로 코우와 연결되고 싶은 유타의 소망이 담겨 있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횡행하는 근미래의 일본에서, 유타는 자신을 희생하고, 우정으로(아니, 사랑으로) 코우를 구원한다. 코우는 유타에게 고마워하면서도 그를 철부지로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타 덕분에 ‘외부자’의 설움을 조금은 덜고, 자기 자신을 비롯한 또 다른 ‘외부자’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이것이 ‘철부지’ 유타가 피워낸, 지극한 사랑의 가능성이다. 그러니까, 〈해피엔드〉는 디스토피아 영화이자, 우정과 사랑의 영화이자, 구원의 영화이자, 희망의 영화다. 코우를 바라보는 유타의 표정과 눈빛이 그렇게 말한다.
-
- 7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범죄도시>1000만영화 등극!! <범죄도시>이후 역주행 하는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영화일까요?!
안녕하세요! 모두들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지난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순위를 공유해드리겠습니다!
.
.
.
[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첫째 주, 1위를 차지한 엘리멘탈! 엘리멘탈이 주말 관객수 60만명을 넘겼고 박스오피스 총 관객 수 200만 명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역주행을 수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범죄도시3>가 1000만을 기록하면서 <범죄도시2>이후 두번째 천만영화가 되었습니다. 23일 개봉한 <귀공자>는 흥행에 실패하며 주말 누적 관객 수 10만을 가까스로 넘기는 추세이며 다음주는 더 낮아질것으로 예상됩니다.
1. <엘리멘탈>
한국계 재미동포 2세인 피터 손 감독의 작품 <엘리멘탈>이 입소문을 타며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주말 관객수 60만명을 넘기면서 전주보다 높은 주말 관객수를 기록하였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보다 10일 빠른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가족애의 메시지를 담고있는 따듯한 온기를 전하는 영화입니다.
2.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
주말관객수 24만명을 기록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엘리멘탈>의 흥행에 밀려 2위에 올라섰습니다.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5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배우, 제작진 등 원년 멤버들이 대거 참여해 레전드 시리즈 귀환을 알렸습니다. 1편부터 4편까지 감독을 맡았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는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기존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중입니다.
3.<범죄도시3>
쌍천만 기록에 성공한 <범죄도시3>!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1000만 영화이며, 역대 1000만 영화로는 30번째를 기록했습니다.
마동석은 <범죄도시>2개 작품과 <신과함께> <부산행>등 총5편의 1000만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됬다고 합니다.
4.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개봉 11일째 5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전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동시기 관객수를 뛰어넘는 기록이며 <귀공자>보다 빠른 속도로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5. <귀공자>
손익분기점 180만의 영화로 아직 누적관객수 50만을 기록하고 있는 <귀공자>는 대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은 호평이 많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는 불리한 요소때문인지 미미한 반응과 높지않은 관객수를 유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 7월 첫째주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1위를 차지하였고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엘리멘탈>이 3위, 제니퍼 로렌스가 제작, 출연까지 겸한 <노 하드 필링스>가 23일 개봉을하면서 4위,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이 5위를 기록했습니다.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1위에 올랐지만 제작비와 비교해 실망스러운 데뷔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
.
.
씨네픽의 7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 감상평 - 쥬라기 월드 시리즈의 허무한 퇴장
-
시리즈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작품의 최종장이라는 거창한 홍보문구에 비해 그 임팩트는 꽤나 부족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쥬라기 월드 3에서 이런 아쉬움이 느껴진 이유에는 몇가지 작품의 판단미스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오웬과 블루의 연대와 케미스트리가 거의 전무하다는 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쥬라기월드 트릴로지의 키 메시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기대에 못 미치는걸 떠나서, 이 정도로 무난해도 되는건가 싶더라고요..?
-
- 영화 랜드 후기 / 미국 국립공원의 사계절 / 영직남 강추 초힐링 무비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랜드”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대자연, #힐링, #로빈라이트
-
- 영화 <바그다드 카페 리마스터링> 메인 예고편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초라한 ‘바그다드 카페’. 커피머신은 고장난지 오래고, 먼지투성이 카페의 손님은 사막을 지나치는 트럭 운전사들 뿐이다. 무능하고 게으른 남편을 쫓아낸 카페 주인 ‘브렌다’ 앞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이 찾아온다. 최악의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한 낯선 동거. 그러나 곧 야스민의 작은 마법으로 그녀들의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행복해지려는 노력, 꾸밈없는 미소.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해가는 소중한 시간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던 '바그다드 카페'도 두 사람의 마법으로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이 깃들게 되는데...
황량한 사막에서 일어난 마법 같은 기적!
당신의 삶을 위로할 가장 아름다운 뮤직바이블이 찾아옵니다! Calling You!
-
-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30초 예고편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스즈'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다.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가상세계 U에 접속하게 된 '스즈'
그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런데 '벨'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어느 날, '용'이라 불리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큰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한 '용'에게 신경쓰이는 '벨' 그리고 현실의 '스즈'
과연 '스즈'의 목소리는 그에게 까지 닿을 수 있을까?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질 때, 기적이 일어난다!
-
- 기생 생물들 사이에서 믿음과 인류애를 외치다.
주요 내용
- 진부한 전개와 신파 등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아쉬움을 극복한 연상호 감독
- <반도>의 서대위에 이어 또 한 번 구교환 배우에게 딱 맞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물한 연상호 감독
- 사회에 불신과 두려움을 심어준 기생 생물. 기생 생물의 등장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 믿음을 지키려는 자 vs 믿음을 잃은 자의 대립과 상반되는 기생 생물을 대하는 태도
- 준경이 남편의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믿음과 희생. <기생수: 더 그레이>가 말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
기생수: 더 그레이 (Parasyte: The Grey, 2024)
기생 생물들 사이에서 믿음과 인류애를 외치다.
개봉일 : 2024.04.05.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SF, 액션, 크리처, 판타지
러닝타임 : 6부작, 총 300분
감독 : 연상호
출연 :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문주연, 유용, 이현균, 윤현길
개인적인 평점 : 3.5 / 5
연상호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느껴졌던 아쉬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기생수: 더 그레이>
<기생수: 더 그레이>는 크리처 장르의 신기원이었던 애니메이션 <기생수>의 세계관을 차용한 리메이크작이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지옥>, <괴이>, 영화 <부산행>, <반도>, <정이>, <염력> 등의 매력적인 크리처, SF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가 연출,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신선함과 상업성을 갖췄다는 호평과 진부한 전개와 신파가 너무 심하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행히도 취향 차를 제외하면 혹평을 받을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 분위기를 깨는 과도한 감정, 액션이 나오거나, 감정을 챙기느라 개연성을 놓치는 부분이 보일 때면 참 아쉬웠다. 그런데 <기생수:더 그레이>에선 이런 부분들을 최소화하여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아쉬움 들을 잘 만회해냈다. 크리처 물이라면 보통 누군가의 희생과 그에 따른 각성 과정이 나오기 마련인데 여기서 감정과 액션을 너무 폭발시켜버리거나 질질 끌게 되면 매번 봤던 신파라고 욕먹기 딱 좋지만, 이번엔 적당하게 잘 잘라냈다. 약간의 개연성 공백들은 회상과 대사를 활용해 친절하게 채운다. 멋있는 방법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빈틈은 잘 막아냈다. 덕분에 초반부엔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의 분노와 공황도 후반부에 가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개연성과 감정 다음으로 걱정했던 건 액션과 비주얼이었다. 손이 아닌 머리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생 생물이라니. 이런 설정 탓에 캐릭터의 외관이나 액션이 좀 바보같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그 부분도 잘 극복했다. 개인적으론 신체가 변형되는 것과 촉수 괴물을 싫어해서 초반부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불쾌하지 않게 적당한 선에서 구현해낸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촉수와 총만을 이용한 액션이었음에도 작위적이거나 속도가 떨어지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아 액션 또한 괜찮은 편이다.
캐릭터의 밸런스도 좋다. 전체적으로 출연 배우들의 능력치가 좋아서 연기 구멍이 크게 없고 극 중 캐릭터의 설정과 합도 좋다. 특히 구교환 배우의 강우 캐릭터가 공감이 될 듯 말 듯하면서도 동시에 매력적인 게 딱, 배우와 잘 맞았다. 배우가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매력적이었던 걸수도 있지만, 애초에 이 캐릭터 자체가 배우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이전에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맡았던 <괴이>에선 구교환 배우의 매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엔 <반도>때처럼 배우에 딱 맞는 캐릭터 구성을 제대로, 매력적으로 해낸 것 같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다양한 크리처가 나오는 박력 있는 액션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는 시청자보다는 그 안에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크리처 물로서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넓은 세계관과 다양한 기생 생물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조금 아쉽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기생수 설정만을 가져와 이야기 자체를 새롭게 만든 거라 원작과 비스무리한 리메이크작은 아니니 이 부분을 고려하여 선택하길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기생 생물과 함께 사회에 파고든 강력한 불신
인간은 강하지 않다. 신체적인 장점이 없어 커다란 짐승 한 마리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을 쳐야 살아남을 수 있고, 자연재해 앞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곳에 똘똘 뭉친 인간들은 각자의 생각과 능력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와 자신의 삶을 지켜왔다. 사회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사회에 종속되어 살고 있다. 어쩔 땐 든든하고 어쩔 땐 불안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누군가를 믿으며, 이 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것이라 애써 믿으며 대한민국이란 사회와 그 아래의 작은 사회들을 지켜가고 있다. 사회를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힘이 아닌 서로를 향한 믿음이다. 인간이 서로를 믿지 않고 미워한다면 사회는 금방 와해되고 말 것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 ‘믿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생 생물들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의 뇌를 먹어 그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다. 감염되기 전과 생김새는 달라지지 않지만, 정신과 신체적 능력치는 기생 생물과 동기화된다. 기생 생물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신의 강력한 힘을 드러내며 명령받은 대로 인간을 먹어치운다. 얼굴에 변형이 일어나기 전까진 누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기생 생물을 인식한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는 인물들과 믿음을 잃은 인물
준경이 기생 생물에게 씌운 특수 가면의 의미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이런 삭막한 배경과 여러 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공생하는 인물들을 통해 믿음과 공생의 가치를 보여준다.
주인공 수인은 어릴 때 가정 폭력을 당했다. 사람들은 어린 수인을 ‘자기 아빠를 신고한 독한 애’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래도 수인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른이 되어 열심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이번엔 또 어떤 미친놈이 수인을 죽이려 뒤따라온다. 수인은 언제나 불행하고 외로웠고, 수인을 둘러싼 세상은 항상 그녀를 배신했다. 강우는 돈을 벌기 위해 조폭 조직 망나니파에 들어갔다가 한순간에 배신을 당하고 만다. 조직의 리더뿐만이 아니라 끝까지 믿었던 조직의 동생마저도 그를 배신한다. 수인을 구해준 형사 철민은 가까운 사이였던 원석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는다.
세 사람은 모두 세상에, 자기가 속해있던 조직에서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을 보인다. 수인은 믿을 구석 없어 보이는 강우를 살리기 위해 절벽 끝에서 손을 뻗었고 하이디는 자신을 죽이려 끝까지 쫓아온 준경을 살리기 위해 뒤에서 다가오는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강우는 배신당했단 걸 알면서도 죽어가는 규민(조직원 동생)을 챙기려 했고 더 이상 엮이지 않아도 될 수인의 일에 뛰어들어 수인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수인에게 손을 뻗는다. 철민은 수인이 기생 생물이 되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있지만 끝까지 수인을 지키려 했으며 원석이 괴물이라는 제보를 듣고도 그를 바로 고발하지 않는다. 철민은 수인과 원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심은 갖고 있지만 끝까지 둘을 믿으려고 노력했다.
수인, 강우, 철민과 반대쪽에 서있는 인물은 더 그레이 팀의 팀장 준경이다. 준경은 기생 생물에 감염된 남편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고, 그에게 공격을 당해 귀 한쪽을 잃는다. 남편을 빼앗았기 때문일까, 준경은 기생 생물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기생 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미끼로 이용한다. 단, 얼굴이 보이지 않게 가면을 씌운 채로 말이다. 경찰서에서 상황 설명회를 가질 때, 서장이 ‘그래도 사람(준경의 남편)을 저렇게 괴롭혀도 되냐’고 말하자 준경은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선 안돼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린 귀와 손등의 상처를 보여준다. 기생 생물이 된 남편을 목격한 순간부터 준경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가장 믿었던 남편이 괴물이 되었는데 과연 누굴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수인과 하이디는 끝까지 준경에게 믿음을 보여준다. 원석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하이디는 특수 가면을 쓰지 않은 모습 그대로 준경을 바라보고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준경을 지키기 위해 기생 생물을 타격한다. 준경은 이런 하이디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엔 ‘정수인은 괴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수인이 강우의 도움을 받지 못해 특수 가면을 벗지 못했다면 이러한 극적인 화해 장면은 보지 못했을 거다.
준경은 남편의 모습을 한 기생 생물에게 특수 가면을 씌워 얼굴을 가리고 사냥개로 이용한다. 이제 그는 남편이 아닌 괴물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성적인 판단이지만 너무도 냉정한 모습이다. 보통 좀비물엔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 그대로인데, 어떻게 죽이지? 얘가 진짜 괴물/좀비라고?”하는 딜레마와 슬픔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철민도 잠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준경과 대립을 이루는데 준경은 단호하게 남편을 괴물로 분류한다. 그런데 남편이 원석에게 죽은 후 그의 가면을 벗겼을 때 준경은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괴물에게 씌워둔 가면을 벗겨보니 내가 알던 남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기생 생물에게 씌워둔 가면은 준경을 단호하고 강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인격이 그대로 남아있는 수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준경과 수인이 처음 창성랜드에서 마주쳤을 때 원석이 남편을 공격하는 바람에 준경은 급하게 차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준경은 수인과 얼굴을 오래 마주하지 못했고 다시 돌아왔을 때도 수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바로 가면을 씌운다. 마지막쯤에 와서야 준경은 가면을 쓰지 않은 수인/하이디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다. 그리고 무조건 인간을 해하는 게 아닌, 인간에게 믿음을 주는 기생 생물 하이디를 목격하고 마음을 바꾼다.
배신보다 큰 힘을 가진 건 믿음
원석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인간 사회를 배신하고 기생 생물들에게 빌붙는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도 매일 비슷한 월급만 받고 신세도 못 펼 바엔 기생 생물 하나를 인간 사회의 머리, 꼭대기 쪽에 앉히고 자신도 한몫 받아먹으려는 속셈이다. 이기적이고 멍청해 보이지만, 왜 배신을 했는지는 이해가 간다. 원석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배신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원석과 목사의 기생 생물은 배신을 반복하며 인간에게도 기생 생물(경희)에게도 적이 되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목이 날아가고 만다.
수인과 하이디, 강우는 본인에게 하나도 이득 될 것이 없지만 사회를 위해 희생한다. 누가 죽든 누구 머리에 기생 생물이 앉든, 그건 수인과 하이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사회는 그들을 괴물이라 칭하며 공개 수배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수인, 하이디는 기생 생물을 잡기 위해 풍물축제 현장으로 향하고 강우는 그들의 뒤를 따른다. 그저 조용히 살아만 있는 것이 목적이었던 하이디는 수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수인에게 물들어 그녀의 믿음을 따라 해보기에 이른다. 어차피 내 알 바도 아닌데 왜?라는 의문이 드는 비합리적인 선택과 믿음이었지만 이 선택과 믿음은 수인과 하이디, 강우.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구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희생과 믿음이지만 그럼에도
원석의 기생 생물은 최용재 의용대장 기념관에서 ‘사람들은 이 전쟁 기념관처럼 머리만 기억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후대 사람들은 최용재 의용대장만 기억한다. 사실 사회가 그렇다.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만 기억하고 그 밑에 있는 이들의 노력, 희생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누군가는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 비합리적인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두 종류의 생명체와 극중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믿음과 희생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공생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반복해 이야기한다.
어디선가 툭 나타난 기생 생물처럼 언제부턴가 나타난 불신과 혐오가 사회 여기저기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큰 불안감과 분노를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가 <기생수: 더 그레이>를 보며 느껴야 하는 건 단순한 장르적 쾌감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다.
-
- 영화 <무뢰한>, 아니면서 무뢰한 척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씨발년아."
자신을 칼로 찌른 여자가 있다. 그런데도 그 칼을 꽂힌 채로 그는 그녀를 위한 새해 덕담을 내뱉는다. 이 영화의 느낌은 마지막 대사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다. 포스터처럼 어스름한 새벽녘의 피곤한 두 얼굴로도 충분하다. 왜 이 영화를 다시금 찾았냐고 묻는다면 그런 날이라서 그랬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담배 연기를 맡고 싶은 날이라서. 다들 그러다 담배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담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좋아하는 거니까. 담배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게 보고 싶은 날이었다. 저 대사 같은 말을 해주고픈 사람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처음 봤을 땐 영화의 결말이 정말 '영화'같다고 생각했었다. 뭉근하게 피어오른 담배연기에 자욱하게 빠져있다가 저 결말을 보고선 갑자기 담뱃재가 왈칵 쏟아져내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더라. 정말 미운데, 그래도 정이 몽당 떨어질 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온갖 상처를 받고도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 사람. 기분이 무척이나 나쁘지만 가끔 궁금은 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늦게 깨달은 탓이리라.
앞서 드라마틱한 마지막 애증의 한 마디를 남긴 이는 어딘가 비뚤어진 형사 정재곤이다. 정의구현은 무슨,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법의 테두리를 왔다 갔다 한다. 그는 형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범죄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뿐이지, 그의 수단과 방법은 범죄자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헛헛해 보이는 살쾡이나 표범 같다. 그는 가장 빠른 루트로 가기 위해서라면 가장 잔인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약점을 빠른 시간 내에 파고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그가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이 돼지발정제를 써서 용의자의 애인에게 자백을 얻어 사건을 해결한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걸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씁쓸한 표정으로 적당히 찌들고 풀어진 눈으로, 삐딱한 걸음걸이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모든 하루를 걷고 있다.
김혜경은 열쇠 7개 있는 집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단란주점 사장이다. 남자 때문에 인생 종친 케이스라고 모두가 인정. 회장님 세컨드로 잘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 부하와 엮이는 바람에 인생이 피곤해졌다. 그가 재곤을 만나게 된 건 그녀의 애인이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남자란 어떤 존재일까. 권력과 자리에 따라 자신을 유흥거리나 정복지쯤으로 여기는 한량이나 게임중독자일까. 확실히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잘 쓸 줄도 안다. 그러나 늘 여유로운 웃음을 안고 모두를 대하는 그녀라도 실상은 그녀만큼 외롭고 허망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기껏 마음을 붙였던 애인은 이제 도망자가 되어 자신을 돈줄로 써먹고 있다. 돈과 남자는 그녀에게 등짝을 쳐주고 싶은 원수가 아닐까. 남자에게 돈을 벌어 남자에게 돈을 쓴다. 게다가 지금은 범죄자의 애인이라니. 그냥 다 버리고 떠나오기엔 그것들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발목을 족쇄에 가둔다. 흘러넘치는 건 술이요, 오도독거리는 건 얼음뿐이라. 까무룩 술이 취해 아침에 잠이 들고 밤에 펼쳐지는 아득바득한 인생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무뢰한이다. 신기한 건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이 가장 무뢰한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곤과 혜경을 묶어두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더 피도 눈물도 없는 무뢰한에 가깝다.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의 공통점이 있다면 빈틈 있고 어딘가 짠하다는 것. 무뢰한 비스무리 사는 중인데 고민이 많다는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을 것 같은 재곤은 사실 자존심과 연줄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과 직업의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돈이나 받아먹는 부패한 형사가 되고 싶지 않아 성질을 부렸더니 고작 그의 스폰서가 보낸 금액은 정확히 48만원. 얼척이 없다. 범인을 잡을 때 몸 성치 않게 끝내 달라면서 형사 같지 않은 요구를 하는 건 선배 형사다. 그의 몰골이 짠하다. 그는 선배님의 '내 사람이 맞냐'는 질문에 토해내듯 대답을 했고, 적은 액수의 뇌물을 확인하고 돌려주기 전 허탈한 듯 히죽거린다. 돼지발정제를 쓸 수도 있는 무자비한 형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어떠면 그가 속한 교양 있는 무뢰한들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혜경 역시 보다 보면 저렇게 짠할 수가 없다. 뭐하고 살았냐고 물으면 빚 받으러 다니고, 빚 갚으러 다녔단다. 인생의 뭔 빚이 그렇게나 많은지 모르겠다. 범죄자 애인은 몇 천이 누구 집 애 이름 같나 보다. 그의 소식에 혼자 마음 졸이고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숨어 지켜보는 재곤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경이 궁여지책으로 외상금을 받으려 돌아다니는 모습은 당당하고 가냘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당함으로 무장했던 그녀는 웃으면서 돈을 받아내다가 결국은 술집 외상 때문에 인생 종 치고 싶냐며 사정하면서도 나 김혜경이라면서 힘들게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듯한 것이 마음 아픈 사람.
둘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진심인 듯 아닌 듯 서로를 속이고 있다. 그것이 무뢰한들의 세상에 걸맞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속으면 바보같이 당하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상대의 모습에 흔들리고 만다. 의심 가득했던 그녀는 재곤을 완전히 믿지 못해도 그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하고, 사건을 위해서 혜경을 이용하려 했던 재곤은 혜경이 다칠까 배려해주고도 아무 일도 모르는 척한다.
그들의 진심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서로를 가장 속여야 하는 순간에 드러난다. 진심과 거짓의 경계에서 그들은 사랑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다. 혜경이 돈을 위해 재곤(그녀는 그를 '영준'으로 알고 있지만)을 유혹해야 하고, 재곤은 범인 검거를 위해 그 유혹을 알고 짐짓 모른 척 받아들이는 순간. 재곤이 그녀가 자신의 약점이라고 말하고, 그녀가 아끼던 목걸이를 다시 전당포에서 찾아와 내려두는 순간. 지금 애인이고 뭐고 버리고 자신과 살면 안 되냐는 재곤의 말에 진심이냐, 고 물으며 흔들리던 혜경의 눈. 에이, 그걸 믿냐 하며 어설프게 둘러대는 그의 말에 끝내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씁쓸한 눈빛과 미소.
혜경이 어처구니가 없는 건 결국 그렇게 자신을 흔들어 놓았던 재곤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자신이 알던 '이영준'이 아니라잖나. 자신의 애인을 한 방의 총알로 날려 보낸 것보다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 '나 김혜경이야'라는 말처럼 지켜오던 자존심이 와르르 무참히 쓸모 없어져 버려서. 아무것도 믿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번에는, 그는, 그래도 자신에게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에게 분노한 것이리라. 그녀의 집주소며 모든 정보를 알면서 정작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제대로 안 것이 없다는 것에, 겪을 만큼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이토록 무방비했던 자신이 비참하고 자존심 상해서. 충격보다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것이리라. 그 총알로 날렸던 건 애인의 심장만은 아니겠지.
재곤은 사과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찾아와 나는 형사고,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녀를 상처주려 했던 게 아니라고 할 뿐이다. 재수 없다. 술을 팔 때보다 더 구차하게 마약을 놔주며 살고 있는 혜경을 찾아가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녀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면서도, 처량 맞게 집 앞에서 하루 종일 비나 맞고 있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혜경에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일 텐데. 미안하다고, 다시 곁에 있어달라고. 한번 안아주면 될 텐데.
세상이, 영준이, 아니 영준이라고 믿었던 재곤이 그녀에게 무뢰한이 되라고 가르쳤으니 그녀는 그녀대로 '무뢰하게' 그를 꼭 안아 칼로 찌르고 만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다. 그녀에겐 진짜 이름이 뭐 건간 그는 여전히 그의 애인 준길의 이상한 감방 친구로 그녀 눈 앞에 등장했던, 이영준이다. 그를 보고 싶었던 마음, 한번 꼭 안고 싶은 마음, 왜 비를 맞고 있냐며 묻고 싶은 마음이 한 켠.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나의 애인을 다리 하나 팔 하나 병신 만드는 것도 아니라 심장에 총알을 박아야만 했나. 나에게 했던 모든 말 그것도 거짓이었냐. 묻지 못한 그 야속함과 증오, 배신감이 한 켠. 그렇게 마음이 한 켠 한 켠 쌓인 뒤섞인 행동이다.
그러나 거기서 알 수 있다. 그렇게 무뢰한같이 칼을 찌르고 나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혜경의 모습에서. 애초에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된다는 걸. 혜경은 무뢰한이 아니며, 될 수도 없는 사람이란 걸. 재곤 역시 그 칼을 맞고도 유유히 경찰차도 보내고 꾸역꾸역 아파하며 길을 걸어 내려오는 걸 보면. 죗값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 보면. 그 역시 무뢰한이 아니라는 걸. 차라리 아주 못돼 쳐 먹은 사람들이었으면 좋았을 걸. 무뢰한이 아닌 그들이 주변 사람처럼, 세상처럼 무뢰하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영화는 대문짝만 하게 자신을 하드보일드 멜로라고 말한다. 세상이 녹록지 않다. 잘 믿어서도, 진심을 잘 들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형사인 재곤에게는 범죄자가 애인과 한바탕 나뒹굴고 있는 소리를 엿들으면서도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하는 것이고, 혜경에게는 한 때는 자기 발 밑 같았던 사람이,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자신을 은근슬쩍 더듬고 희롱해도 감정을 숨기고 웃음을 살짝 지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 사랑이란 게, 웃음이란 게 있지만 한 군데씩 비틀려 있다. 뾰족한 송곳 같은 사랑, 우스꽝스러운 웃음 같은 것. 그와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을 꼽자면 언제일까. 그건 그녀가 그가 구구절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따졌을 때가 아닐까. 어설픈 그의 거짓말에 그녀가 날카롭게 파고들었을 때, 그러고도 그가 예리하네, 하면서 뻔뻔하게 웃어넘겼을 때. 그럼에도 서로가 밉지 않았던 순간. 밤도 아침도 아닌 그 어스름한 새벽에 무뢰한이 아닌 이들의 '무뢰한'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
- [#톺아보기] 손예진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현재 방영 중인 '서른, 아홉'에서
차미조를 연기한 '손예진' 배우를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오르며 충무로의 대표 배우가 됐습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배우 손예진을 "2000년대 한국 영화가 낳은 압도적 대형 톱스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배우 손예진은 데뷔 이후 거의 매년 작품을 찍으며 본업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배우는 팬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며
팬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로맨스, 코믹, 스릴러 등 장르를 불문하고 뛰어난 소화력을 보여주는
배우 손예진!
그럼 지금부터 배우 손예진 #톺아보기 시작하겠습니다!
출처 | 가네시 인스타그램
이름 | 손예진 (孫藝珍)
출생 | 1982년 1월 11일
소속사 |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데뷔 | CF '꽃을 든 남자' (1999)
별명 | 소예진, 예진핸드, 존예진 등
배우 '손예진' 데뷔 과정
출처 | 가네시 인스타그램 , 네이버 영화배우 손예진은 연기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중학교 때부터 배우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1년 MBC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시청률이 30%가 넘으면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손예진 배우의 빼놓을 수 없는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2001년에 찍었는데요.
역대 모델 중 최초로 2년 연속 재계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 모두 꾸준한 연기 활동을 하면서
연기력도 인정받고, 다양한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배우 '손예진'의 대표작
클래식
지혜/주희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우연히 엄마의 젊은 시절 편지와 일기장을 발견한 지혜.
엄마의 첫사랑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편지와 일기장을 보면서
지혜는 엄마의 클래식한 사랑을 조금씩 알게 된다.
손예진은 국회의원 딸인 주희, 그리고 주희의 딸인
대학생인 지혜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김수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건망증이 심한 수진은 그 건망증 덕에 운명처럼 철수를 만나 결혼한다.
철수는 날로 심해지는 수진의 건망증에 그녀와 병원에 가고,
그녀가 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손예진은 LG패션 남성복 팀장이자, 건망증 앓고 있는
'김수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아내가 결혼했다
김수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다는 인아를 독점하기 위해 덕훈은 그녀와 결혼하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새로 생겼다는 그녀는 그 사람과도 결혼하겠다고 제안한다.
손예진은 '비독점적 다자연애'인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주인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여월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옥새를 삼킨 고래를 사냥하러 조선의 도적들이 모였다.
누명을 쓴 도적, 바다는 처음인 산적, 그리고 건국의 위기에 봉착한 개국 세력 간의
웃지 못할 싸움이 벌어진다.
손예진은 아름다운 미모와 강인한 카리스마는 물론
화려한 검술 실력까지 겸비해 조선 바다를 제압한 해적단 여두목
'여월'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시즌
덕혜옹주
덕혜옹주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는 일제에 의해
13세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 후,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던 덕혜옹주에게 어린 시절 친구 장한이 나타난다.
손예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시즌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수아 역
출처 | 네이버 영화수아는 우진에게 비가 오는 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1년 뒤 어느 여름날, 이전과 다름없는 모습의 수아가 나타난다.
하지만 수아는 우진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손예진은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온
'수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협상
하채윤 역
출처 | 네이버 영화국제 범죄조직의 무기 밀매업자 민태구는 태국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를 납치하고 협상가 채윤을 협상 상대로 지목한다.
남은 시간 12시간,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협상이 시작된다.
손예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최고의 협상가
'하채윤'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사랑의 불시착
윤세리 역
출처 | 티빙 홈페이지어느 날 돌풍과 함께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하게 되는 특급 장교 리정혁의
절대 극비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손예진은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 2남 1녀 중 막내딸이자
세리스 초이스의 대표,
'윤세리'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이상으로 배우 '손예진' #톺아보기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손예진 배우가 참여한 작품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방영 중인 <서른, 아홉>에 주연 배우로 출연 중인데
이 드라마도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도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음 주에도 톺아보기 콘텐츠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٩( ᐛ )و
씨네랩 에디터 Hizy
-
- <최선의 삶> - '최선은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최선의 삶 (Snowball, 2021)
개봉일 :2021.09.01
감독 : 이우정
출연 : 방민아, 심달기, 한성민
최선은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많은 걸 알고 있는 나이도 순진한 나이도 아닌 애매한 주변인으로 불리는 그 시절, 사춘기. 우린 이제 클 만큼 컸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충격에도 와장창 부서지고 마는 연약한 그 시절. <최선의 삶>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우린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어른이라 생각했던 소녀들의 이야기다. 세상의 전부라고 느꼈던 친구들과 함께 모든 걸 차가운 길바닥에 내던질 수 있었던 무모한 그때. 소녀들은 나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최선을 다한 결과는 왜 항상 최상이 되지 않는 걸까?
<최선의 삶>의 주인공 강이, 소영, 아람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각자 다른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성격도, 가정 환경도, 학업성취도도 퍽 다르다. 하지만 강이, 소영, 아람은 믿고 있다. 우리의 우정은 견고하고 우리는 한 덩어리와 같은 사이라고. 강이, 소영, 아람은 세 사람 사이의 우정을 믿고 우리가 원하는 자유를 찾자며 어른들의 보호를 벗어나 길거리로 향한다. 아무런 준비도 능력도 없었던 소녀들은 현실에 부딪히며 주저앉고 충격으로 깨어진 마음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안과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은 이내 거친 행동으로 변하고, 이전부터 은은하게 존재해왔던 세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는 한층 더 견고해진다.
미성년자인 주인공들은 정해진 가정으로, 다니는 학교로 당연하게 돌아가야 했다. 그들을 밀어붙이는 가출, 반항, 왕따, 정체성의 혼란, 가정 폭력과 같은 고민과 문제들에 시선을 주는 인물은 없다. <최선의 삶>은 반복되는 상처 속에서 조금씩 뒤틀려온 감정들과 미묘하게 마음을 긁어대던 문제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던 뜨거운 공기가 가득했던 새벽. 그리고 모든 걸 체념하고 날카로운 해결법으로 우리들의 관계를 도려내고 울음을 토하던 밤까지의 기록이다. 우리 셋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믿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 최선을 다했지만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허탈한 그 순간. <최선의 삶>은 보는 이의 마음을 손에 꽉 쥐고 뒤흔들고 끝내 찢어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걸 재끼고 무작정 달려가는 강이, 소영, 아람의 걸음이 그저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하필 또 이들은 세명. 홀수 중에서도 가장 불안하게 느껴지는, 한번 소외되면 다시 흡수될 다른 집단을 찾을 수도 없는 수, 셋이라니. 세 명의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격동적인 마음의 변화와 그들 사이의 묘한 위계질서, 분노, 불안감 등을 필터 없이 거칠게 표현해낸 이 영화를 보며 윤성현 감독님의 2010년작 <파수꾼>이 떠오르기도 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3명의 친구,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던 세상과 서로를 날카롭게 쑤셔댔던 말들. 이 두 영화는 어딘가 닮아있다. 주인공이 소녀인지, 소년인지만 다를 뿐이지.
내 앞만 바라보기에도 벅차 나와 다른 방식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친구는 돌아볼 틈 따위는 없었던, 이제 단단해졌다 생각했지만 충격 한 번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던 그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모두가 최고가 되진 못했다.
<최선의 삶>은 이젠 완전한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갖게 된 방민아 배우의 새로운 얼굴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심달기, 한성민 배우의 합, 일명 강.소.아의 케미와 망설이거나 뜸 들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감정선을 연출해낸 이우정 감독의 역량이 빛나는 파괴적인 작품이었다.
최선의 삶 시놉시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열여덟 ‘강이’, ‘아람’, ‘소영’. 더 나아지기 위해서 기꺼이 더 나빠졌던 우리의 이상했고 무서웠고 좋아했던 그 시절의 드라마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예쁘고 똑똑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소영과 사고 치는 것 외에 눈에 크게 띄지 않았던 강이와 아람. 세 사람은 항상 한 덩어리처럼 뭉쳐 다녔고 선생님들은 그런 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을 갖춘 똑똑한 소영만큼은 좋아했다. 소영은 어른들의 눈뿐만이 아닌 강이의 눈에도 멋진 사람이었다. 강이는 예쁘고 똑똑한 소영을 존중하고 좋아한다. 소영이 밑도 끝도 없이 짜증을 부려도 강이는 소영의 입에 아이스크림 한 숟갈을 떠 넣어주고 골목 유일의 가로등 전구를 박살 내면서까지 그의 짜증을 받아낸다.
강이, 소영, 아람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소영과 아람의 관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강이가 가장 밑에서 두 사람을 받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진다. “집을 나가자”고 먼저 운을 떼던 건 소영과 아람이고 강이는 답답하다고 느끼던 찰나, 두 사람의 결정에 함께한다. 그리고 소영과 아람이 무슨 행동을 하든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등을 토닥이는 것 또한 강이다. 매일같이 오르는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하굣길.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관심과 사랑을 한주먹씩 밀어 넣는 부모님이 있는 집. 분명 사랑을 받고 있긴 한데 강이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시끄러운 지하철 소리를 방패 삼아 크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내뱉은 악이 소음에 완전히 묻혀 자신의 귀에도, 누군가의 귀에도 전혀 들리지 않으니 시원하기보단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강이는 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 대신, 시끄러운 소음 아래서 소리 지르는 걸 택한 걸까.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소영은 세 사람 중 가장 독단적인 인물이다. 연기를 배우고 싶은데 연기학원을 끊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덜컥 가출을 감행한 철없는 이 소녀는 호기심에 이끌려 강이의 손을 잡고는 이내 강하게 뿌리친다. 그리고 부모님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최선을 향해 홀로 걸어간다. 함께했던 강이와 아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말이다.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는 게 중요했고, 내 자존심을 꺾을 일이 일어나지 않는게 가장 최우선이었던 소영. 나는 그가 이기적이면서도 현명하다 싶을 만큼 계산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람은 강.소.아라는 집단의 중심 같은 인물이다. 함께 차를 탈 때, 사진을 찍을 때. 아람은 자연스럽게 세 사람의 중앙에 위치한다. 아람이 이 집단을 이끈다는 의미보다는 강이와 소영을 이어주고 이 집단의 중심을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세 사람이 집을 구하고 아람은 금방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아람이 자리를 비우자 강이와 소영은 조금씩 삐걱거리더니 이내 엇나가는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소영과 묵묵히 받아내는 강이 사이에서 가벼운 농담으로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아주는 아람. 알 수 없는 표정과 앞일 따위 걱정하지 않고 빠르게 휩쓸려내려가는 아람을 보며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싶기도 했지만 반대로 자신의 상처를 덮기 위해 걱정 없는 척 과장된 감정을 내보이던 아람의 행동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조금은 가난하지만 딸을 아끼려 노력하는 부모님 밑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자라온 강이. (가출을 통해 얻어낸 것이긴 하지만) 딸의 의사를 들어줄 수 있는 이성과 그만한 능력이 있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소영. 경제적으론 모자라지 않지만 툭하면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밑에서 자란 아람.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 사람은 서로를 잘 안다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처럼 상처 입고 버려진 것들을 모두 주워 담는 아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영과 연기를 배우면서 비로소 사람이 맞을 때의 느낌을 체험하게 된 소영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람. 이해하기보단 미워하기를 택한 소영이 강이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람이 강이보다는 자신의 앞길을 쳐다보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자 강이는 혼자 남게 된다.
소영은 연기를 배워 자신의 최선이라 생각하는 CF 촬영을 해냈고, 아람은 길거리에 버려진 슬픈 것들을 주워 위로하는 것에 몰두한다. 강이도 나름의 노력을 했고 강이의 부모님은 강이를 위해 기도하고 강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강이의 삶에서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강이가 할 수 있는 건 열대야가 기승인 밤, “덥다”고 말하며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퍼먹는 것, 다른 아이들의 웃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웃는 것처럼 앞에 놓인 상황에 순응하고 섞여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견디다 못한 강이는 둘둘만 옷 사이에 나를 지키기 위한 칼을 품고 다니기 시작하고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아람과의 사이를 생채로 도려내는 더 나쁜 선택을 하고 만다. 최선의 선택이었던 그것의 결과는 최상이 아니었지만 모든 건 각자의 최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