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15 15:05:25
1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주간 박스오피스
1부보다 더 짜임새 있다는 긍정적인 평이 나오고 있지만 주춤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외계+인 2부>.
OTT를 통해 1부를 공개했지만 아쉬운 1부의 스토리 때문일까요? 극장을 찾는 발걸음은 아직은 무거운데요. 과연 역주행 흥행 신화를 이끌수 있을지! 2024년의 문을 연 한국 영화를 응원하며 2주차 박스오피스
같이 만나보아요
[국내 박스오피스]
외계+인 2부가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지만 1부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면서 마냥 웃지 못하고 있는데요. 개봉 2주차에 접어든 <위시>는 100만을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입소문도 들리지 않는 형태입니다. 한편 <서울의 봄>이 다시 3위로 올라오면서 총 1347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2004년 이래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한국 영화 매출액과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북미에서는 제이슨 스타뎀 주연, 피싱 범죄 조직을 향해 복수를 하는 비밀 조직의 전직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더 비키퍼>가 1위에 올라섰습니다. 2위는 글로벌 5억 달러를 돌파한 <웡카>, 3위는 미니언즈 제작진의 신작 <인 투 더 월드>가 기록했습니다.국내에서 <웡카>는 오는 1월 31일 개봉예정이며 동일하게 티모시 샬라메 주연인<듄: 파트2> 또한 연달아 2월에 개봉 예정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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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두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워터 릴리스>(2007)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경험은 크게 다가온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한다. 처음 걷고, 처음 말하고, 처음 웃는다. 그 경험들이 유아기 때는 다른 사람에 의해 기억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청소년기에는 자신만이 기억하는 처음의 순간들을 무수히 만난다. 빠르게 성장하는 청소년기는 몸도 빠르게 변하고, 마음도 빠르게 변해가는 시기여서 자기 자신도 그 변화를 다 따라가기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나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함께 해 나가는 순간은 모두 몸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처음 하는 경험이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미완성의 자신을 통해 좀 더 나아 보이는 상대방을 보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그렇게 좋아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고,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고민하는 많은 순간들을 그저 멍하니 상대방을 보고 혼자 상상하며 보낸다. 그것은 그 상대방을 그저 생각만으로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좋아하는 사랑의 감정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슴 졸이며 망설이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조차 처음 하는 청소년기의 모든 소년소녀들은 좋아하는 상대방과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교류하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 감정은 꼭 남자가 여자에게 또는 여자가 남자에게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첫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다른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다.
|성장기 첫사랑에 대한 영화 <워터 릴리스>
영화 <워터 릴리스>는 첫사랑과 처음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 마리(폴린 아콰르)는 싱크로나이즈드 선수인 플로리안(아델 에넬)을 보고 좋은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마리의 절친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는 수영부 선수인 플로리안 마음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영화는 마리와 안나가 상대방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얻기 위해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따라가며 이들의 첫사랑 여정을 하나하나 따라간다.
영화 초반 공연을 마리고 나온 안나가 마리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며 무섭다는 말을 한다. 자전거 뒤에 타는 것이 무섭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안나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자신의 어떤 행동을 무슨 의미로 받아들일지 무섭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안나는 한동안 마리가 운전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위치를 바꾸어 앞에서 운전한다.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마리도 안나가 그랬듯 누군가의 뒤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을 똑같이 경험한다.
마리가 좋아하는 플로리안은 싱크로나이즈드 주장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실력과 매력을 갖춘 그는 남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가지만 아직 육체적인 관계를 해보지는 않아 그 처음을 시작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실 영화 내내 플로리안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리고 플로리안이 이성과 맺는 관계에 대한 소문들도 어떤 것이 진실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약간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없는 예의 없는 사람처럼 보여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리는 더욱 상대방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그저 조금씩 용기를 내 플로리안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보려 애쓴다.
마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줍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스타일이라면 친구 안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상대방의 반응이 어떤 지보단 자신이 적극적으로 먼저 마음을 표현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란 기대를 하는 그의 방식은 첫사랑을 대하는 또 다른 모습이다. 사실 두 사람의 접근 방식이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모두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고 다가간다는 점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반면, 그들이 던지는 사랑의 행동들을 받는 상대방들의 모습도 서투르고 그 받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그들 앞에 있는 사람들의 진정성까지 헤아리지 못한다.
|안나와 마리, 두 여성이 첫사랑을 얻으려는 적극적인 태도
마리가 한 걸음씩 플로리안에게 다가가면서 둘은 서로 교류하게 되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인 마리는 매 순간 플로리안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를 판단하려 애쓴다. 그가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클럽에서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할 때 마리는 질투심과 실망감으로 화를 내며 플로리안과 멀리하지만 첫사랑의 마음은 상대방의 그런 모습 속에서 조차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이미 마음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고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실제로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마리는 플로리안에게 육체적인 첫 경험을 선사하지만 플로리안에게는 그저 친구가 선사한 하나의 경험일 뿐이다.
영화 내내 플로리안의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아 울고 웃는 마리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경험한 사춘기 시절의 모습과 닮았다. 마리와 플로리안은 영화 중반 같은 침대에 누워 같은 천장을 바라보지만 각자의 머릿속에 흐르는 생각들은 다르다. 영화의 마지막 마리와 안나가 수영장 천장을 바라보고 똑같이 누워있는 장면이 반복된다. 안나가 플로리안과 바뀌었을 뿐, 그들이 느낀 감정과 상실감은 동일한 것이기에 친구로서 그들이 바라보는 천장은 같은 것이다.
영화 <워터 릴리스>는 안나와 마리, 두 여성이 진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사랑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여성 서사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첫사랑의 결말이 어떠하든 그들이 상대방의 행동이나 표현에 완전히 끌려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모습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리를 연기하는 폴린 아콰르의 감정 연기가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알 수 없는 첫사랑의 대상을 연기한 아넬 에넬은 이 영화에서 그의 치명적인 매력을 완전히 발산하고 있다. 도발적인 눈빛과 미소는 보는 관객들도 그에게 몰입하게 만든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abbitgumi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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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스트리트 댄스라는 열정에 대한 헌사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킵 스텝핑(Keep Stepping)
Australia/2022/95min/루크 코니시 감독 작품
스트리트 댄서 문화를 담은 영화 〈킵 스텝핑〉은 세 인물의 서사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루마니아 출신의 브레이크 댄서 파트리샤, 칠레-뉴질랜드(사모아)인 부모를 둔 팝핀 댄서 개비, 스트리트 댄스 대회 ‘디스트럭티브 스텝스(Destructive steps)’를 조직한 한인 출신 조가 주인공이다.
셋 모두에게 춤은 치유와 열정의 계기였다. 파트리샤는 서른셋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낯선 나라에서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춤 연습을 이어간다. 개비는 남들과 다른 피부색과 체형으로 위축된 적이 있고, 조 역시 백인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그러나 스트리트 댄스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의 불리한 조건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춤에 진심인 구성원을 보듬고 춤 실력으로만 사람들을 평가한다. 즉 춤에 쏟는 열정을 순수히 보상받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도달 불가능한 욕망을 양산하여 개인에게 좌절을 안기지만 스트리트 댄스 신(scene)은 누군가의 욕망과 노력을 착취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금지만 당하지만 댄스 배틀에서 주어진 45초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는 한 댄서의 말이 이를 증언한다.
파트리샤와 개비는 모두 오랫동안 춤을 출 수 있을지, 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불안해하며 고민한다. 춤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고민이 있다. 파트리샤는 윈드밀 기술을 익히는 것, 개비는 사모아 전통 춤을 팝핀과 결합해 자신만의 춤을 선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조는 자신을 키워준 스트리트 댄서 친구들과 커뮤니티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적자를 내면서도 대회를 꾸려왔다.
‘무용’해 보이는 것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자신만의 길을 닦아 나가는 자들이 뿜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아름다움이 현실에서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채 사그라들 때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처음부터 ‘실패’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 태도가 언젠가 도달할지도 모를 ‘실패’를 하찮게 만든다. 누군가가 부여한 욕망이 아닌 자기 내면에서 솟은 욕망을 따라 조금씩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이 비슷한 상황의 많은 이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 연대로 다가가리라 확신한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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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Heretic, 2025)>, 종교는 거들 뿐인 밀실 탈출 스릴러
A24에서 또 한 번 강렬한 공포 영화를 내놓았다. <유전>, <미드소마>, <톡 투 미>와 같은 특유의 신선한 호러 감각이 이번엔 종교를 만났다.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야기, <헤레틱>이다. *필자는 지난 3월 27일, 씨네렙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를 통해 <헤레틱>을 미리 만날 수 있었다.
'헤레틱'은 영어로 '이단'이라는 뜻이고, 바로 내일(2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 기본 정보
제목: 헤레틱 (2024)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휴 그랜트
장르: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11분
국내 개봉일: 2025년 4월 2일
제작/배급: A24
줄거리: 어느 눈 오는 날, 몰몬 선교사 자매인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는 전도를 위해 한 남성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집 주인 리드(휴 그랜트)는 이들을 호의적으로 맞이하며 날씨가 궂으니 잠깐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규칙상, 여성이 있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내가 있다'는 말에 두 자매는 의심 없이 문을 넘는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고, 남자의 대화는 점차 묘하게 불편한 질문들로 이어지는데... 자신들이 이 집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두 자매는 탈출을 감행한다.
1. 믿음과 의심 사이의 긴장감
최근 공포 영화는 점프 스케어보다 서스펜스와 심리적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헤레틱>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낯선 남자의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긴장감을 점진적으로 쌓아올린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에는 '종교'라는 소재가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무섭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섭다"는 역설적인 명제를 중심에 두고, 영화는 관객을 믿음과 의심 사이 긴장으로 이끈다. 궤변 같으면서도 논리적인 시험 속에서,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끊임없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시험대에 놓인다.
물론 영화가 처음부터 이 철학적 긴장감만으로 공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궂은 날씨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외딴집, 그 안에 두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과 함께 있다는 상황만으로 관객은 익숙한 불안을 감지한다. 이 상황 속에선 성별에 따른 물리적 힘의 위계가 힘의 비대칭을 만든다. 이는 남성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불안을 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성, 그리고 관객이 처음으로 의심하는 것은 바로 남성의 정체이다. 중년 남성 리드가 정말로 겉모습처럼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곧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이 역할에 ‘노팅 힐’로 유명한 휴 그랜트를 캐스팅했다. 그는 젠틀하고 따뜻한 미소의 리드를 연기하며, 두 여성이 기꺼이 스스로 낯선 남자의 집 안으로 향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이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간 결정적인 이유는 리드가 ‘집 안에 아내가 있다’고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리드는 부인이 낯을 가린다며 계속해서 그녀의 등장을 지연시킨다. 리드라는 인물에 대해 신뢰를 거둘지에 대한 판단은 영화 초반부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두 자매는 이러한 의심 속에서도 그들의 본래 목적대로 리드에게 전도를 하려 한다. 하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점차 리드에게 넘어간다. 그는 점점 종교적 신념을 정면으로 겨누기 시작하고, 미묘하게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리드는 계속해서 두 여성의 신념을 흔든다. 그리고 두 여성은 점점 그가 만들어낸 심리 게임의 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는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리드의 질문에 동참하게 되고, 함께 시험을 받는 듯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헤레틱>은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실존적인 위협에 기반한 상황을 통해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믿음에 관한 심리 게임을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방식은 매우 치밀하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설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2. 치밀한 설계
영화는 상당히 치밀히 짜여져 있다. 결말에서 치밀한 설계는 단순히 장르의 플롯을 넘어서 주제의식으로 발현된다. 동시에 관객으로서 이 치밀함 덕분에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도 준다. 먼저 캐릭터의 균형이 잘 맞춰졌다고 생각했다. 팩스터와 반스는 모두 독실한 몰몬교 신자이다. 그들은 속옷마저 교회가 규정한 의상을 입고, 교회의 공동체에 기반하여 생활한다. 반스는 현실감이 없이 순진한 전형적인 신자처럼 보인다. 반면, 팩스터는 상대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현실 감각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팩스터는 리드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 인물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 덕분에 일방적으로 리드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맞서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고 탈출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또한 인물들이 상당히 실행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심이 거두어진 순간에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 ‘저건 믿으면 안 될 거 같은데’하는 답답함이 들 때쯤, 타이밍 좋게 인물들도 움직여준달까. 그런데 그 순간마다 절묘하게 새로운 변수나 불가항력적 상황이 또 던져진다. 결국 그들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치밀하게 설계한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빈틈 없다고 느낀 부분은 대사이다. 감독들의 전작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 설정 아래 대사를 최소화하며 긴장을 유도했다면, <헤레틱>은 그 정반대 지점에서 대사로만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감독들 역시 이런 극적인 대비를 하나의 창작 실험으로 삼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말맛'이 살아있는 그 자체로 즉흥적인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모든 대사가 계산된 구조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리드가 반스에게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자 반스는 ‘스파이더맨’이 말한 것이라고 받아친다. 리드는 이를 ‘볼테르’가 말한 것이라 정정한다. 처음 이 장면에서 이 대사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흘러갔기 때문에, 자그마한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고 넘겼다. 그러나 이후 영화가 반복적으로 원형과 복제, 신념의 계승과 변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앞선 대사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대화를 통해 서서히 분위기를 조이고, 이후 그 대사들이 퍼즐처럼 맞물려 돌아올 때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심지어 음악마저 아무 의미 없이 삽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지점들이 감상 이후 곱씹을수록 서늘함을 안겨준다.
3. 총평
<헤레틱>은 스릴러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정교하게 설계한 작품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오직 대화만으로 긴장을 구축하는 연출이 인상 깊었고, 이야기 자체도 흡입력이 있어 몰입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극의 대부분이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부 장면에서는 다소 과하게 설명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리드라는 인물의 특성상 몇몇 장면은 마치 신학 강의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대사의 길이나 논리적 구성이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다시 보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할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이 ‘강의 장면’들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리드가 주도하는 그 ‘강의’가 실제로는 힘의 위계와 물리적 위협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은, 그의 논리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앞서 언급한 실존적 위협은 장르적으로는 훌륭한 장치지만, 영화가 내세우는 주제적 메시지(믿음과 확신에 대한 탐구)와는 결이 어긋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믿음에 대한 철학적 시험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 때문에 미묘한 뉘앙스만 주던 초반부에서 다소 노골적인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의 매력이 한풀 꺾인다. 결말 또한 만족스럽다고 하긴 어렵다. 여러 버전의 결말을 놓고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덧붙인 듯한 인상을 준다.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끝내 찾지 못한 채, 결국 캐릭터가 가진 ‘선(善)’의 속성에 기대어 마무리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믿음을 의심하는 리드가 실은 누구보다 믿음을 갈구하는 인물처럼 마무리되는 아이러니도 다소 예측 가능한 부분이다.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휴 그랜트는 로맨틱 코미디의 상징과도 같던 자신의 이미지를 이번 작품에서 기민하게 비틀었다. 그가 완전히 다른 역할로 변신한 것은 아닌, 기존의 친근하고 젠틀한 이미지를 미묘하게 왜곡해 섬뜩한 설득력을 만들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당신이 알고 있던 '로맨틱한 휴 그랜트'의 잔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팩스턴을 연기한 소피 대처는 어딘가 낯익은 인상이다 싶었는데, 제나 오르테가와 안야 테일러 조이를 반씩 섞은 것 같다. 실제로 과거 몰몬교 신자였다고 하는데, 그런 배경이 캐릭터의 미묘한 디테일을 풍부하게 만든 것 같다. 최근 개봉한 <컴패니언>에서도 색다른 연기를 보여줬는데, 배우에 관심이 생겼다면 해당 작품도 꼭 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컴패니언>에서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반스를 연기한 클로이 이스트는 <파벨만스>에서도 얼굴을 비췄던 배우다. 그녀 역시 몰몬교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흥미롭게도 "다른 삶을 살았으면 자매 선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 모두 2000년생으로 비교적 어린 배우들이다. 실제 나이와 캐릭터가 잘 맞아떨어지며, 두 사람의 호흡도 매우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캐스팅이 탁월하게 어우러졌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튼, 재밌게 감상했다. 필자는 종교에 큰 관심이 없어 처음엔 관람을 망설였지만, 막상 보고 나니 종교적 맥락보다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완성도와 장르적 매력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인물 간의 긴장감이 주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반대로 말하면, 종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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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적 이성’ vs ‘이성적 종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좁디좁은 창문, 겉보기보다 넓고 깊은 집 구조, 음습한 지하실, 전파를 차단하는 벽, 장치를 달아두어 열 수 없는 문. ‘사이비’ 혹은 ‘이단’의 딱 들어맞는 은유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이 은유를 비틀어 종교와 이성의 ‘적대적’ 관계를 재현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모르몬교 신자인 두 젊은 여성 반스와 팩스턴이 종교에 ‘속고’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매그넘 콘돔이 실은 일반 콘돔과 사이즈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남자의 허세와 마케팅의 흔한 거짓말이 합쳐진 무수한 거짓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의 현재와 다른 듯 닮았다. ‘콘돔’이라는 성적 상징물은 (적어도 교리의 측면에서는) 정반대에 있는 두 여성의 보수적 삶과 대비를 이루지만, 동시에 그들의 종교적 ‘확신’이 실은 마케팅 회사의 거짓말과 닮은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써 속고 있다.
반스와 팩스턴은 ‘누가 봐도’ 모르몬교고, 사람들은 대개 두 사람을 무시하며 종종 모욕적인 방식으로 두 사람을 조롱한다. 그런 그들에게 교리에 관심이 있다며 방문을 요청한 중년 남성 리드의 존재는 반갑고 귀하다. 그러나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가진 리드와의 몇 마디 대화에서, 반스와 팩스턴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리드는 한때 일부다처제를 허용한 모르몬교의 교리, 유일신을 숭상하는 종교의 난점 등을 두고 두 사람과 토론하고자 한다. 그는 주제에 관한 깊이 있는 식견과 분명한 입장으로 그저 호의를 갖고 교리를 설명해주러 왔을 뿐인 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리드의 정중하고 부드러운 태도는 불안을 상쇄하는 알리바이가 되어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금세 판명난다. 그러나 이미 문은 잠겼다. 두 사람은 갇혔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전화도 되지 않는 집. 리드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지만 점점 더 거세게 두 사람을 몰아붙인다. 반스와 팩스턴은 완전히 겁에 질린다. 리드의 논거는 분명하다.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유일신 종교가 여러 지역의 신화를 갈무리해 신비화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특징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모르몬교까지 반복되어왔다 등등. 여러 신화의 짜깁기와 변형이 유일신 종교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뒤이어 정교하게 설계된 리드의 반反신앙 실험이 이어지고,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탈진해 소진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극한에 몰린 순간, 세 사람 사이에 반전의 계기가 싹튼다.
리드의 주장은 타당하다. 종교의 사회적 필요성에 관한 논의와는 별개로, 여러 역사 및 문헌 연구로 입증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성으로 무장한 리드는 이성을 ‘믿는’ 듯 보인다. 그것도 ‘종교적’인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종교 비판에 심취해, 이를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 구축했다. 한편, 반스와 팩스턴은 리드와 맞서는 방법이 신실한 믿음이 아닌 논리적 반박이라는 점을 깨달아간다. 힘으론 못 이겨도, 머리로는 이길 수 있다는 자각이다.
그러니까 ‘이성적’ 인간인 리드는 거짓 신화에 기댄 통제가 종교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종교적’으로 신봉하고, 그에게 대항하는 두 명의 ‘종교적’ 인물은 ‘이성적’ 추론을 무기 삼아 맞선다. 이 구도에서 폐쇄적 믿음에 갇힌 건 오히려 이성의 소유자 리드다. 그는 자기가 비판하는 사이비, 이단의 폐쇄성을 그대로 구현한 듯한 집에 살며 그 집에서 자기가 옳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여성 종교인을 고문, 감금해왔다. 반면 모태 신앙인 반스와 팩스턴은 자신의 종교와 닮았다고 할 수 있는 폐쇄성을 지닌 리드를 피해 그의 집(즉 ‘사이비’ 혹은 ‘이단’)에서 빠져나가고자 한다. 영화는 이성과 종교의 통념적 구도를 뒤집어, 스릴러·공포 영화의 오랜 무대인 집을 폐쇄적 믿음의 상징물로 변환하여, 과연 누가 ‘이단(heretic)’인지 묻는다.
젠더 역학의 측면에서, 종교와 이성에 대한 영화의 비틀기는 더한층 깊어진다. 확신에 찬 중년 남성과 그가 설계한 세계에서 두려움에 떨다가도 상대의 무기를 탈취해 자기 자신들을 가둔 감옥의 설계도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젊은 여성. 이들이 만들어내는 젠더·연령의 권력 구도는 이 영화가 종교와 이성에 관한 통념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장르 영화의 재미를 생산한다는 점을 넘어, 통제와 자유라는 더 넓은 주제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인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등에서 호흡을 맞춰온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의 기교가 돋보이는 장르 영화의 재미에 충실한 영화다. 동시에 장르 영화의 문법과 소재 곳곳에 전통적 상징을 비트는 것들을 배치한 익살과 통찰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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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과의 안녕이 정말 이별은 아니겠지요
갑자기 분위기 아담 워록
어느 날의 노웨어. 가오갤 멤버들은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딱 한 명은 다르다. 가모라를 떠나보낸 스타로드. 타노스와의 일전 도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이다. 사실 가모라는 살아있다. 다른 평행우주선의 가모라일뿐. 스타로드와 사랑에 빠졌던 적이 없던 세계의 가모라. 스타로드를 보더라도 모르쇠 한다. 마음에 구멍이 난 스타로드. 수많은 은하수들 속에서 별이 되어 반짝였던 가모라는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술로 하루를 지내는 스타로드. 그 어떤 일로도 상실감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시 노웨어. 로켓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트라우마처럼 피어오르는 기억들. 로켓은 애써 머릿속을 지우기로 한다. 무작정 스타로드의 zune에 이어폰을 연결한다. 들리는 노래는 라디오헤드의 ‘Creep’이었다.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로켓의 시선에 맨티스와 드랙스가 보이고, 네뷸라와 그루트도 보인다. 그래. 현재에 집중하는 거야. 스타로드와 mp3인 zune을 건드리지 말라고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이는 로켓. 시간이 지나 로켓도 일과를 마치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노웨어에 쳐들어온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아담 워록. 느닷없이 로켓을 공격한다. 당황하는 노웨어 사람들. 네뷸라가 대응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드랙스 역시 마찬가지다. 겨우 상황을 정리했지만 로켓이 치명상을 입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뭉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타로드는 가오갤의 리더로서 로켓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자고 독려한다.
퇴사 5분 전
6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동안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와 <어벤저스 : 엔드게임>으로 나름대로의 서사를 이어갔던 가오갤 멤버들. 최근 마블이 새로운 히어로들을 출시함에 따라 이들의 행보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제임스 건이 메가폰을 잡는 게 확정이 됐고 이내 이 작품이 시리즈를 끝내는 작품이 되는 것이 확정됐다. 이 말은 즉슨 제임스 건이 이 영화를 마무리하고 MCU에서 하차한다는 말이 된다.
영화는 감독의 이 입지를 잘 활용하듯 기존 마블영화에서 약간 벗어난 것 같이 보인다. 우선 첫 번째. 영화에서 액션 비중이 덜 중요하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다른 시리즈물들에 비해서는 살짝 약하긴 하다. 이는 여태까지 만들어진 페이즈 4,5의 영화들이 갖고 있던 패턴을 깨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 그 액션 쾌감을 어디서 채웠나? 로켓의 과거회상과 SF적 상상력이다. 전자 로켓의 과거회상은 영화가 갖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를 표현한다. 이 전자도 중요하지만 후자 'sf적 상상력'은 특히 더 중요하다. 사실 4 페이즈 이후 마블 영화들이 시각적 상상력이 약했다는 것은 아니다.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의 탈로칸,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 만다린이 이끄는 마을,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에서 양자역학 월드 등 나름대로 성의 있는 묘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들이 갖고 있는 시각화의 단점은 뭔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다. 탈로칸은 <아바타> 시리즈에서,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은 할리우드가 바라본 동양문화에 대한 동경을 어느 정도 따라왔다는 점이,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는 <스타워즈>에서 봤다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글쓴이는 이 작품이 이 영화들과 다른 차이점을 갖는다는 것이 예상이 안 됐다는 점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뭐 일부 크리처는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 <제5 원소>에서 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어떤 소재를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개성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우주선에서 어떤 파일을 가져가기 위해 도착한 한 장소가 그렇다. 여기서 전개되는 거의 모든 이야기는 클리셰를 뒤집는다. 이렇게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시각화가 영화의 중심이고 가장 큰 장점이 된다고 해서 액션이 약하나? 그건 또 아니다. 아담 워록이 갖고 있는 액션은 생각해 보면 좀 익숙하다. 멀리 안 가도 '이터널스'의 이카리스나 '캡틴 마블'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빨리 달리기형 빌런중에서는 이 아담 워록이 가장 매력적이었을 정도로 영화는 상상력을 충분히 가진 채로 질주한다.
또 히어로 무비의 기본문법을 살짝 벗어났다는 느낌이 든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동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선 빌런의 활용법이다. 본작의 빌런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원래 슈퍼히어로 영화 하면 빌런이 선량한 인물들을 공격하거나 이야기의 전개를 뒤엎는 경우가 많다. 가령 같은 mcU에서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이 캡틴아메리카에 대응했던 방식은 빌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아이언맨이 얼마나 정의로운 인간인과는 별개로). 또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도 버키가 스티브의 오랜 친구인 것과는 별개로 작중에서 빌런 롤을 맡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이언맨이나 버키처럼 무력이 강한 인물도 빌런이 될 수 있지만 반대의 측면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어벤저스 간의 분쟁을 조장하는 인물 제모 남작은 무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치 혀 놀리는 능력과 뛰어난 기획력으로 어벤저스 간의 갈등을 유도한다. 이런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서 빌런 활용법은 연작들이 첩보/스릴러 영화같이 느껴지게 만드는 연출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변박을 주는 빌런 연출법은 이 영화에도 쓰인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후반부의 한 대사가 있다. 또 어떤 장면이 반복됨으로써 주는 감동이 있다. 이 두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빌런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봤는지를 주목해서 관람한다면 영화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측면에서 이 지점은 영화의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가오갤 멤버들의 서사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슈퍼히어로 장르의 특성을 어느 정도는 취한 듯 보이지만 빌런의 존재감이 약하게 느껴진다는 건 기대에 못 미치는 지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 같이 함께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이 '어벤저스'시리즈들을 좋아했다. 글쓴이가 좋아했던 이유는 '액션을 잘 뽑아서'였다. 그러나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 깊던 장면들은 '연대'라는 가치에서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대표적으로 <어벤저스 : 엔드게임>의 일부 장면이 생각난다. "어벤저스! 어셈블" 장면은 타노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슈퍼히어로들이 하나 결집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면이다. 바로 전작이었던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슈퍼히어로들이 사라지는 장면은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관객들 역시 봐왔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선이었다. 이 작품은 어느 부분에서는 슈퍼히어로물의 클리셰를 부쉈지만 한 편으로는 그 어떤 영화보다 강하게 특색을 유지했다. 무슨 말이냐. 영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 그리고 내지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이 있다. 당연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이 장면은 온갖 판이한 세상이 판치는 영화의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가진다.
이 공감대는 제임스 건이 얼마나 변태적인 인간(?)인가를 느끼게 한다. 첫째.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사람으로 국한 짓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아니 뭐 sf영화에 등장인물이 사람이 아닌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것이 강점처럼 느껴진다. 왜냐. 이 낯선 세상을 몰입시킬 공감대는 전적으로 인간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의 이해가 쉽다는 이점이 되고, 또 간단한 이미지인 원형(O)의 형태가 인물들끼리 반복되기 때문에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관객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다. 이 연대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소재인 동물 실험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과 동물이 큰 차이가 없어서 이런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역시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뜻한 가족 영화
뭐 다른 마블의 시리즈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작품 역시 가족영화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마니아>에서의 찐 부녀관계나 <블랙 위도우>에서의 대안가족적인 특성이 그 예시다. 당연히 온 가족이 가서 보기 좋은 영화를 목표로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모름지기 칭찬도 1절만 해야 한다. 사실 마블이 페이즈 4에 돌입하고 나서 이런 가족영화적인 특성을 사골국 우려먹듯이 반복했던 것도 사실인 듯하다(그래서 가족의 해체를 다뤘다는 점에서 <문나이트>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매번 반복되는 지루한 루틴을 제임스 건은 어떻게 주파했을까? 이 아저씨는 동물과 인간의 연대, 그리고 캐릭터 간의 떡밥수거로 해소했다.
우선 로켓이 개조실험을 받기 전후에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이 동물 친구들은 종류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가족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네 캐릭터가 쌓아 올린 서사는 <블랙 위도우>의 대안가족을 연상케 한다. 사실 이 네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인물 서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물들이 왜 이런 상황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익숙한 이야기임에도 변주를 줬다는 걸 알게 한다. 단순히 동물보호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 그런데 이게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특히 마블 영화가 이런 플롯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가족영화로서의 틈새시장을 잘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송태섭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짠 것과 궤를 비슷하게 하는 셈이다.
이 부분은 대조적인 측면에서도 이어진다. 가오갤 멤버 중에 유일한 사람이 누굴까? 스타로드다. 스타로드는 사실 비극적인 가족사를 갖고 있다. 이기적이었던 친부와 실질적 아버지 역할을 했던 욘두와의 서사는 우리가 1,2편을 보고 난 다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아버지 같지도 않은 아버지와 아들 간의 서사는 영화에서 반복되는 지점이 있다. 이 부자관계 모티브는 위에서 서술했던 영화의 원형 이미지와 시너지가 있다. 인물들 간의 대비를 더 강조시키는 느낌? 이 대조를 활용한 함께의 이미지는 영화의 쿠키영상까지 이어지는 따뜻함과 이어진다. 이렇게 정석적인 가족영화 클리셰의 반대지점을 정확하게 찔러서 이야기를 펼쳤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나 가오갤 멤버들의 개성과도 어울린다는 점은 제임스 건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알게 한다.
그나마 뽑자면
오랜만에 마블 영화의 정수가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지점은 있다. 바로 빌런인 하이 에볼루셔너리다. 이 사람의 내면묘사가 조금 더 들어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이 인물이 이런 능력과 성격을 가져야만 한다는 건 대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인물이 몇 없는 패턴으로 후반부까지 끌고 간다는 점은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철학적인 소재들이 더 들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인물들이 살짝 연극적인 느낌이 있다. 특히 스타로드 쪽이 그렇다. 영화를 보면서 살짝 끊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어떤 대사들은 마음을 알린다. 후반부 그루트와 워록의 대사가 그렇다. 그러나 워록과 하이 에볼루셔너리 이야기나 트랙스 쪽의 연기나 서사는 살짝 작위적인 느낌? 그러나 앞서 두 가지가 영화 관람에 있어 발목을 잡지는 않는다.
‘제임스 건’ 해버렸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는 음악이다. 이 부분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처팝송의 p도 모르는 글쓴이마저도 알고 있는 제일 첫 번째 삽입곡부터, 극후반부까지 영화를 더 따뜻하게 만드는 연출 지점이 된다. 글쓴이는 이런 음악의 활용을 보면서 제임스 건이 영화라는 매체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마블이 다시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까? 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제임스 건 같은 인재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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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의 무도회 왈츠가 흐르는 영화 -7-
❣️[Cinelab Curation]❣️
이유 없이 설레는 봄에는 왠지 왈츠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왈츠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 영화들을 가져와 봤습니다!
그럼 씨네랩 큐레이션으로 설렘 가득한 무도 회장으로 떠나 보실까요!🧡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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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영화리뷰/반전리뷰]
#반전영화#추리영화#탐정영화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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