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9 09:47:15
2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영국에서 날아온 패딩턴의 새로운 시리즈!

영국에서 날아온 귀여운 곰돌이 패딩턴이 돌아왔습니다. 페루로 떠난 패딩턴의 여정을 극장에서 확인해 보세요!
<포레스트 검프> 이후, 다시 뭉친 톰 행크스, 로빈 라이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신작 <히어>와
대만 청춘 멜로영화를 리메이크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도 개봉합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퇴마록>도 놓치지 마세요!
패딩턴: 페루에 가다!
Paddington in Peru

개요: 코미디 | 프랑스 | 106분
감독: 두갈 윌슨
주연: 휴 보네빌, 에밀리 모티머, 벤 위쇼, 올리비아 콜먼, 안토니오 반데라스
개봉: 2025.02.19.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

줄거리
영국 국민으로 거듭난 ‘패딩턴’에게 어느 날 고향인 페루에서 날아온 의문의 편지 한 통.
“루시 숙모님이 사라졌어요!” 지도 한 장만 남긴 채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루시’ 숙모를 찾아 떠난
‘패딩턴’과 브라운 가족은 페루의 정글을 둘러싼 비밀을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모험천만 아마존 정글에 뛰어든 도시곰 ‘패딩턴’과 브라운 가족! 올 겨울방학 반드시 가족도 찾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초대형 컴백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더 귀엽곰! 웃기곰! 재밌곰! 패딩턴 머스트 컴백곰!
히어
Here

개요: 드라마 | 미국 | 104분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주연: 톰 행크스, 로빈 라이트, 폴 베타니, 캘리 라일리
개봉: 2025.02.19.
배급: 메가박스중앙㈜, (주)이놀미디어

줄거리
하나의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삶의 대서사시 삶이 남긴 흔적과 아름다움.
“우린 바로 여기(HERE) 있었어.”
‘리처드’(톰 행크스)와 ‘마가렛’(로빈 라이트)의 가족을 중심으로 같은 공간에서 다른 순간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서 시간을 초월해 겹쳐진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You Are the Apple of My Eye

개요: 멜로/로맨스 | 대한민국 | 102분
감독: 조영명
주연: 진영, 다현
개봉: 2025.02.21.
배급: 주식회사 위지윅 스튜디오, CJ CGV

줄거리
선아(다현)’에게 고백하기까지 수많은 날을 보낸 철없었던 ‘진우(진영)’의 열여덟 첫사랑 스토리
퇴마록
Exorcism Chronicles: The Beginning

개요: 애니메이션 | 대한민국 | 85분
감독: 김동철
주연: 최한, 남도형, 정유정, 김연우
개봉: 2025.02.21.
배급: ㈜쇼박스

줄거리
"삼백이 반으로 나뉘고, 다섯이 모자랄 때 불씨가 하늘을 모두 태우리라"
수백 년간 은거하던 해동밀교의 145대 교주가 생명을 제물로 바쳐 절대 악(惡)의 힘을 얻기 위한 의식을 시작한다.
해동밀교의 다섯 호법들은 그를 막기 위해 힘을 보태줄 새로운 인물을 찾아나서고, 파문 당한 신부 박윤규, 무공을 위해 밀교를 찾은 현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예언의 아이 준후가 합세해 거대한 악에 맞서는데...
하늘이 불타던 날,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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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명적 세계에서 몸부림치는 실존, <파닥파닥> 1편
세상에 내던져진 삶, 그 숙명적 힘
나는 나를 선택한 적이 없다. 무릇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말 그대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사회 계급도, 종적 위치마저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태어난다. 하물며 태어나느냐 마느냐 라는 중대한 문제조차 어느 것 하나 우리 손으로 고른 적 없는 세상. 그 속에서 우리를 영문도 모른 채 덜컥 주어진 삶을 사수하도록 몸부림치게 만드는 것은 본능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무책임한 세상이다. 우리의 삶에서 중대한 요소를 바꿀 수도 없이 못 박은 채 어떻게든 살아가라고 떠밀고 있으니. 인간은 생선이 될 수 없고, 생선도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이 마땅한 이치. 생명체는 모두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뒤집을 수 없는 거대한 서열의 흐름 속에 몸을 내맡긴 존재다. 애초부터 공평하지 않은 세상이란 말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죽음이란 또 하나의 필수적인 귀결이다. 삶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죽음. 역설적이게도, 때때로 우리는 갑작스레 맞닥뜨린 죽음 앞에서 비로소 삶의 가치를 상기한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피할 수 없는 숙명. 우리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 힘 아래에 놓여 있다. 여기, 파닥거리는 조그마한 삶이 하나 있다. 땅 위에서 기껏해야 몇 센티 튀어 오르는 것이 전부인, 아주 미미하고도 거대한 움직임이. ‘파닥파닥’은 하찮고 작은 생명체가 삶을 향해 외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모든 공간에 도사리는 불평등성
자유롭게 광활한 바다를 헤엄치던 고등어. 그가 붙잡혀 들어온 수조 트럭은 우겨넣은 생선 더미로 숨쉬기조차 어려울 만큼 답답하다. 고등어가 마침내 당도한 곳은 난생 듣도 보도 못한 직육면체의 세상. 수직으로 정렬된 유리창은 더할 나위 없는 감옥 그 자체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닿을 수 없는 잔인한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바다와 수조 안. ‘파닥파닥’ 속에서 공간의 대치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장면 1> <장면 2>
횟집이야말로 ‘종’적 차이에 따라 그 의미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공간이다. <장면 1>은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본 평범한 횟집의 풍경이다. 가볍게 들러 신선한 메뉴를 고르고, 순식간에 손질되어 식탁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먹는 사람들. 그들에게 횟집은 소주 한 잔도 곁들이고,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즐거운 식사의 장소다. 반면 수조 안에 갇힌 생선들의 시선으로 본 횟집은 <장면 2>, 참혹한 폭력으로 얼룩진 생지옥이다. OST ‘악몽’과 함께 추상적인 2D 그림체로 펼쳐지는 뮤지컬 시퀀스는 고등어가 느낀 절망적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사람의 손짓 한 번에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망에 붙잡히면 저항할 새도 없이 물 밖으로 들리는 생선. 다른 이의 핏물이 채 가시지도 않은 도마 위에 오르면, 순식간에 머리를 쑤시고 배를 갈라오는 칼. 그리고 이 순간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수조 속 생선들.
보통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은 횟집에서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흥미롭게 구경하거나, 또는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이 광경은 당사자인 생선의 시선으로 전환하자마자 연쇄살인범의 끔찍한 살해 장면을 보는 것만큼 충격적인 사태로 다가온다. 생선을 손질하는 현실적인 장면이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빌려 포착되면서, 카메라는 이 행위에 담긴 폭력성을 뚜렷하게 조명한다. 카메라는 마치 우리더러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것은 손질이 아니다. 끔찍한 살해다.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은 음식이 아니다, 찢어진 살점이다, 라고. <장면 1>과 <장면 2>로 드러나는 ‘횟집’을 둘러싼 대조적인 입장 차이를 통해, 영화 ‘파닥파닥’은 익숙하고 평범한 공간이 내가 속한 종적 위치와 서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점을 상기시킨다.
<장면 3> <장면 4>
아이의 짓궂은 장난으로 작은 관상어가 있는 어항에 빠지는 고등어. 관상어들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침입자를 향해 겁 없이 대들다가 잡아먹히고 만다(<장면 3>). 힘과 크기의 차이가 압도적인 상대를 두고 그들이 기고만장했던 이유는 바로 인간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횟집과 수조, 그리고 바다를 아울러 정점에 서 있는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 이들에 의해 어항 속 물고기와 수조 속 생선의 서열은 기존의 생태계와는 다른 구조로 재정립된다. 보기에 예쁘다, 맛이 좋다 등등 그들만의 잣대로 종류를 구분하고 생사의 서열을 부여하는 최상위 포식자의 막강한 권력. 물때가 낀 삭막한 수조와는 대조적으로 수초와 장식품으로 꾸민 어항은 그 공간 자체로 불평등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똑같이 갇혀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신세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수조 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장면 4> 속, 점호하듯 정렬해 서 있는 생선들, 프레임 아래쪽에 위치해 위를 올려다보는 그들의 모습은 이미 그들이 권력 관계에서 어느 쪽에 위치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통제하고 수수께끼로 상벌을 내리는 올드넙치는 수조 안의 또 다른 상위 포식자다.
“어떻게 우리랑 올드넙치 님이랑 같다고 생각할 수 있어. 애초에 노는 물이 다른데.”
그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연산 출신’이라는 거짓말이다. 태어나길 인간의 양식장 속에서 나고 자라 수조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양식장 출신 생선들.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바다를 동경하며 자연산 출신 생선을 우러러본다. 이후 올드넙치의 거짓말이 폭로되고 고등어가 진짜 자연산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 그가 가진 권력과 발언권은 고등어에게로 기운다.
결국 바다와 횟집, 어항과 수조, 그리고 그 좁디좁은 수조 안마저 끊임없는 서열 가르기와 차별이 당연한 세상이다. 영화 ‘파닥파닥’ 속 모든 공간에는 해소될 수 없는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누구도 자신의 서열을 선택하지 않았다. 태어나고 보니 양식장이었을 뿐인 양식장 출신 생선들. 마찬가지로 우연히 바다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전부인 자연산 고등어. 마음대로 바꿀 수도, 뒤집을 수도 없는 서열이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좌우한다. 정해진 태생의 한계가 우리의 권력구조를 정립해버리는 것이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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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할수없는비밀
《말할수없는비밀》은 시간의 비밀이 숨겨진 캠퍼스 연습실에서 김유준(도경수)과 유정아(원진아)가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기적 같은 마법의 순간을 담은 판타지 로맨스 영화다. 원작은 주걸륜의 2007년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영화를 보면서 든 느낌은, 음악 예능〈복면가왕〉 같은 데서 옛 노래를 요즘 가수들이 커버하는 경우가 떠올랐다. 키(음높이)를 낮추든 편곡(악기 편성, 조바꿈, 장르 전환)을 바꾸던 가수 본인에게 맞는 최적화를 조율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줄거리와 캐릭터, 시퀀스 구성은 원작과 동일하다. 차이점은 원작의 무대가 예술고등학교인데, 이 리메이크작은 음악대학으로 옮겼다. 원작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박인희(신예은)의 비중이 커졌다. 그 외에 ‘시크릿’곡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새롭게 작곡한 음악과,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등 기성곡으로 바꿨다.
고교생에서 대학생으로 옮긴 것은 정아가 수시로 강의에 빠지는 개연성을 보완해준다. 그러나 그 변형이 지불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 벌생했다. 원작은 1999년을 현재로 설정했기에 복고적인 감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나 《말할수없는비밀》은 현재로 설정해 개연성이 일부 파손되었다. 또 미성년자라면 유준의 머뭇거림, 정아의 선택이 납득될 수 있으나 다 큰 성인이 저러고 있으니 답답하다.
우선 주변 인물의 역할이 어정쩡해졌다. 예를 들어 '남주의 아버지(배성우)` 같은 경우만 봐도 그렇다. 미성년인 아들을 돌보는 아빠 입장과 다 큰 성인을 다독거리는 아버지 역할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말할수없는비밀》은 원작에 충실한 나머지 뭔가 어색해지는 구간이 발생한다. 또한 원작의 과거시점인 1979년을 이번에 1999년으로 바꾼 것이 패착이다. 현재의 풍경이나 1999년의 캠퍼스가 크게 달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인 〈동감〉 리메이크 때도 2022년과 1999년을 대비하는 데 실패했었다.
현지화 전략에서 그나마 장점이랄 것은 남주 유준이 원작보다 훨씬 더 듬직해졌다는 점이다. 극의 에너지를 도경수 혼자 짊어진 것마냥 존재감이 상당하다. 반면에 원작의 계륜미보다 여주 정아(원진아)는 순진무구한 여인이지만 그 행보는 고구마처럼 답답해졌다. 연적인 인희는 최근 추세를 따른 것 같이 보다 쿨한 캐릭터를 분한다.
원작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결말 부분이 보완된 점은 좋았지만, 대만 영화 특유의 감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감정선이 대만 영화들보다는 2000년대 초반 한국 멜로 영화들이 떠올랐다. 특히 엇갈리는 남녀 사이를 묘사한 대목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에 한국 멜로영화에 자리 잡은 익숙한 애이불비(哀而不悲,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음) 정서에 더 가까워졌다. 리메이크 현지화 전략에 따는 리스크라고 봐야할 것 같다.
클라이맥스 피아노 배틀 장면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솔로로 바꾸며, 공을 들였지만, 원작만큼 애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악보도 보지 못하는 도경수가 열심히 연기했음에도 카메라 구도나 CG 활용, 대사마저 원작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원인은 앞서 말했듯이 배경을 바꾸면서 디테일을 다듬지 못해서이다. 대학생다운 연애가 무엇일까를 더 고민했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원작을 해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풋풋한 미성년자와 성인 남녀의 연애 세포가 동일할 것이라고 봤다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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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런웨이>의 편집장인 미란다, 그녀의 등장에 모든 직원들은 분주해진다. 너저분했던 책상 위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편한 슬리퍼를 벗고 구두로 갈아 신는다. 기자의 꿈을 꾸던 앤디(앤 헤서웨이)가 면접을 보러 와서 목격한 광경이다. 늘 구두를 신고 다니는 런웨이 직원들을 일명 '또각이'들이라고 하며 남자친구에게 그들의 옷차림을 비판하던 앤디는 어쩌다가 런웨이에 입사하게 된다. 워낙 명성이 자자한 잡지사인 이 곳에서, 그것도 미란다의 직속비서로 1년만 버티면 어떤 회사든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에 앤디는 또각이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한다. 하지만 소문난 '얼음공주', '워커홀릭' 미란다의 취향과 세세한 요구를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앤디의 전화벨 소리만큼 앤디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미란다의 심부름으로 점점 지쳐가고 10번 잘하다가 1번의 실수로 듣는 쓴소리에 앤디는 그나마 해낸 9번의 보람마저 없어진다.
'할머니 치마'와 편하고 두툼한 운동화를 신고 온 앤디의 첫 출근날, 그녀에게 구두를 던져준 디자이너 나이젤에게 하소연하던 앤디는,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패션잡지회사에 다니면서 직원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만 하고 지냈지 자신은 정작 어떠한 관심도, 애정도 없이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앤디는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업무에 대한 꼼꼼함과 버티기는 잘해왔었던 앤디의 새로운 노력에 미란다는 점점 눈길을 준다. 쉴 새 없이 울렸던 앤디의 전화벨은 두배, 세배로 더해지고 앤디는 에밀리만 할 수 있었던 미란다의 집에까지 드나드는 일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란다에게 인정받게 된다. 앤디는 기존 비서인 에밀리의 자리가 밀려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직장에서 잘 나가면 개인사가 삐걱대지-'라는 나이젤의 이야기가 앤디에게도 일어날까?
영화를 처음 봤던 5년도 더 지난 그때는 메릴 스트립의 존재감과 앤 헤서웨이의 변화된 모습이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특히 앤디의 열정 속에 느끼는 갈등과 갈증에 대한 그녀의 고민들.
자신이 가진 커리어의 성공적인 스토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미란다의 모습은 그녀의 외적인 포스뿐만 아니라 영화의 플로우에서도 느껴진다. 예를 들면 앤디가 런웨이에 들어가기 위해 한 노력의 과정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미란다가 앤디를 합격시켰던 이유와 당시 앤디에 대한 미란다의 어떤 감정들을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앤디가 단번에 성장하게 된다. 이 과정도 앤디의 다양한 변화를 한 쇼트로 이어서 담아 이야기의 다음 파트를 밀고 나가는데 힘을 싣는다. 그렇게 앤디는 런웨이에서의 경력을 쌓게 되면서 영화도 앤디 개인의 꿈과 직업에 대해 선택하는 과정들을 같이 쌓아간다. 주축이 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을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설정한 감독은 영화의 엔딩까지 캐릭터에 설정한 신념을 끌고 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엔딩씬의 매력이 더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봐도 좋은 영화, 좋은배우들.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영화로써만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확연히 느껴진다. 벌써 개봉한 지 14년이 지난 영화를 오랜만에 관람하니 이 영화가 2020년에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힘을 싣는 이 영화의 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명작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콘텐츠도 이야기의 힘이라는 것도 안다. 그저 영화의 체험적인 면모가 커질수록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해봤다. 그저 이야기의 힘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토 스틸컷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성 실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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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연 | 발버둥칠수록 벗어날 수 없는 업보의 늪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채업자'(조진웅)에게 진 빚을 아직 갚지 못한 '박재영'(이희준). 기한이 다가올수록 그는 마음이 급해진다. 이에 아버지를 죽인 후 사고사로 위장하고, 사망보험금으로 사채를 갚기로 결심한 재영. 그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족 출신 살인 전과자 '장길룡'(김성균)에게 아버지 살해를 의뢰한다. 하지만 길룡이 아버지의 사망을 사고사로 위장하는 데 실패하면서 재영의 계획은 예상 못한 나비효과를 초래한다.
한편, 한의사 '한상훈'(이광수)는 애인 '이유정'(공승연)과의 데이트 도중 음주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다.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목격자까지 생기자 상훈은 사고를 숨기려 한다. 시체를 암매장하고 목격자 '김범준'(박해수)의 입을 돈으로 막으려는 것. 그러나 범준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해 오면서 그의 계획은 또 다른 사고를 낳고, 사건과 사고가 연이은 끝에 범준, 재영, 유정, 그리고 '이주연'(신민아)의 악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업보로써 직조한 피카레스크 스릴러
힌두교나 불교 같은 인도 계열 종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카르마(Karma), 곧 업과 업보다. 이들 종교에서는 모든 지각 있는 존재의 행위와 결과가 그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연쇄적으로 묶여 있다고 여긴다. 원인으로 작용하는 그들의 생각이나 언행은 업이고, 업의 결과는 업보다. 업에 따라서 업보는 달라질 수 있다. 선업을 쌓았다면 좋은 업보를, 악업을 쌓았다면 나쁜 업보를 감당해야 한다.
이때 업보는 당장 행위자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언젠가는 되돌아온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 다다음 생, 혹은 사후의 내세에서라도 업보는 행위의 당사자에게 무조건 되돌아간다. 인도 계열 종교는 대체로 한 개체가 죽더라도 소멸하지 않고 윤회하는 세계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 업보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해탈을 통해 윤회의 수레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검사외전>, <리멤버>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이일형 감독의 신작 <악연>은 'Karma'라는 영어 제목에 맞게 업보의 수레바퀴에 갇힌 이들을 조명한다. 무관해 보이는 캐릭터 7명이 어떻게 연이 닿고, 그 악연이 업보가 되어 되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에피소드 6개를 앉은자리에서 보게 만드는 지독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악연>의 구조와 구성 자체가 업보의 의미와 무게를 체감할 수 있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하지만 <악연>의 뒷맛은 개운치 않다. 중독적인 첫맛과는 다른 이질적인 맛이 느껴진다. <악연>은 업보의 굴레에 갇힌 이들만 보여주지 않는다. 후반부에서는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과 그 방법도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악인들이 얽히고설키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분위기가 깨진다는 것. 그 결과 중반부까지의 임팩트도 빛이 바래고 만다.
설계된 반전
<악연>의 첫인상은 독특하다. 수많은 반전 덕분이다. 얼핏 보기에 <악연>의 반전은 장르적 특성 같다. <악연>이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악행에 토를 달지 않고, 도덕적 옹호도 하지 않는 피카레스크 장르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만 보더라도 주연을 제외하면 빚쟁이, 사기꾼, 살인자, 꽃뱀, 불륜남 등 악인으로 가득하다. 서로서로 뒤통수를 쳐도 어색하지 않은 판이 처음부터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악연>의 반전은 장르적 특성과는 별개의 작법에 가깝다. 단순히 주인공들이 변심하거나 상대를 배신하는 전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반전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유도하기 위한 구조적 설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악연>의 반전은 일관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건의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사건의 원인을 나중에 보여주면서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앞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식이다.
일례로 상훈과 유정은 처음에 연인처럼 보이지만, 이내 유정이 범준과 작당해서 상훈의 돈을 털어먹으려는 사기꾼임이 드러난다. 심지어 상훈도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한참 후에 등장하면서 더 큰 충격을 안긴다. <악연>은 이러한 반전의 결과를 각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원인은 다음 에피소드에 배치하면서 작품의 유기성과 몰입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인과의 역순으로 풀어낸 업보
<악연>의 반전은 그 자체로 영화 제목이자 주제의식인 'Karma(업보)'라는 개념을 영상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업보라는 개념은 단순히 직선적인 인과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의 원인이 있을 때, 그 원인이 다방면으로 영향으로 끼치면서 두 개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기에 업보는 의도치 않은 나비효과를 유발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언제나 행위자에게 되돌아온다.
<악연>의 반전은 업보의 나비효과를 직관적으로 설명해 준다. <악연>은 시간을 역행한다. 결과를 먼저, 원인은 나중에 보여준다. 또 그 원인을 만들어낸 그 이전의 원인도 나중에 알려준다. 이를 몇 차례 반복하면 모든 사건의 기점인 하나의 사건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원인이 서로 다른 사건에 영향을 끼치면서 서로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이 결국 하나의 실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상훈과 유정의 데이트는 유정과 범준의 범죄행각과 상훈의 불륜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상훈의 부인이 사설업체를 통해 남편을 뒷조사하는 과정에서는 범준의 신원이 밝혀진다. 범준의 행적을 역으로 추적하면 그와 유정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이 드러나고,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던 재영과 주연이 그들과 악연으로 얽힌 최초의 사건 또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즉, 한 사건의 파장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결과들을 초래하고, 그 결과가 행위자들에게 되돌아온다는 업보의 개념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이루는 셈이다. 따라서 그저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는 지독한 악연과 업보의 무게감을 자연스럽게, 저절로 체감할 수 있다. 심지어 <왕좌의 게임>이 연상될 정도로 주인공들을 거침없이 퇴장시키기에 그 업보는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해탈하지 못하고, 해방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업보가 쌓여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스타일리시하지만,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세련되지 못했다. 후자를 전담하는 이주연 플롯의 완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견 모순적인 '수동적 능동성'에 기반한 각성을 보여줘야 할 그녀의 서사는 수동적인 이미지로만 가득하다. 그 결과 주연은 업보의 굴레로부터 주도적으로 해탈하기보다는 해방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쾌감도 크지 않다.
겉보기에 주연은 분명 수동적인 인물이다. 각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예상치 못한 업보를 쌓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강간 피해자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는 착실히 경력을 쌓은 의사일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오프닝 장면부터 등장했고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있는 주요 인물인데도, 그녀의 이야기는 중심부에서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수동적 이미지 이면에는 능동적인 이주연이 숨어있다. 성폭행을 주도했던 재영이 자기 환자로 입원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녀는 재발한 트라우마와 치열하게 맞서 싸운다. 재영을 향한 살의는 점점 커져 가고, 그녀는 살의를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그를 죽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더 나아가서 그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잊고, 고통과 복수심에 집착하지 않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는 이 장면은 주연의 능동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악연>은 이 기회를 놓친다. 주연이 결단을 내리는 그 순간, 드라마는 그녀의 남자친구 '윤정민'(김남길)에게 먼저 주목한다. 살인을 저지르면 그들처럼 삶이 망가진다며 만류하는 그의 설득이 그녀의 변화보다 부각되는 것. 그 대가로 <악연>의 의도는 흐려진다. 메시지를 담아내야 할 주연의 능동성이 수동적 외양에 전부 가려진 탓이다. 이는 흰 눈이 내리는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주연이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이 공허한 이유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역효과
윤정민의 존재는 또 다른 역효과도 유발한다. 과거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집착하는 대신, 그 갈망을 멈출 때 새롭고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주연의 깨달음은 다른 방식으로도 묘사된다. 그녀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가해자들이 인과응보를 받는 식이다. 주연을 강간한 재영도, 그를 이용한 유정도, 그녀를 부추긴 범준도 각자의 업보를 죽음으로 되돌려 받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윤정민의 존재와 역할은 업보라는 주제의식을 약화한다. 재영의 사채 빚을 몰랐던 범준은 재영 행세를 하다가 난데없이 사채업자 패거리에게 납치당한다. 얄궂게도 윤정민은 사채업자 조직에서 장기밀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결국 정민은 범준의 모든 장기를 떼어내고 그를 죽이면서 주연의 복수를 대신한다.
이 전개는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일단 윤정민이라는 캐릭터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써 기능하면서 극의 완성도를 저해한다. 주연을 설득해서 그녀를 각성시키도 하고, 여자친구를 대신해서 복수도 자행하면서 모든 갈등을 편의적으로 종식하기 때문이다. 불법 장기 밀매 사업에 관여한 그가 정작 업보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큰 틀에서는 주제의식에 어긋나는 묘사라고 볼 수 있다.
김남길이라는 배우를 특별출연시킨 반전의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 드라마는 그가 수상한 전화를 받고, 친척 핑계를 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그가 불법 조직과 연이 닿아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다 보니 범준이나 재영이 업보를 돌려받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즉, 마지막 반전은 앞선 반전들과는 달리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서 뻔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잘 만든 스릴러가 아쉬운 이유
이일형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같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사회적 복수, 정의, 방벌이다. <검사외전>은 사법과 정치 영역의 부패 문제를, <리멤버>는 친일파 청산 문제를 정리, 해결하는 영화였다. <악연>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과연 사회가 청소년 범죄를 충분히 정의롭고 응분히 처벌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악연과 업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써 제기하는 드라마니까.
그렇기에 작위적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구축으로 인해 완결성이 무너진 <악연>의 아쉬움은 작지 않다. 흥미롭게 곱씹어 볼만한 메시지와 소재가 장르적 쾌감으로만 소비되면서 불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분명 잘 만든 스릴러이고, OTT 시청자 입장에서는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오락인데도 <악연>의 몇몇 단점이 유독 눈에 잘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Acceptable 무난함
진단은 맞았지만 처방이 잘못된 탈업보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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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의 예수님까진 아니고 테레사 수녀쯤?
패트와 매트
이 영화의 주인공은 중고차 딜러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이다. 슈퍼히어로 같은 건 이미 은퇴했다. 웨이드를 떠난 바네사. 웨이드와 함께라면 재미는 있을지언정 위험한 일이 많았다. 진중하지 못한 웨이드에 모습에 실망한 걸까? 웨이드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주위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다는 점 하나를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은 웨이드의 생일이다.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웨이드는 정말 기뻤지만 은근히 소심한 탓에 고마운 마음을 다 드러내지는 않았다. 마음을 숨기는 웨이드. 생일 파티에 온 바네사(모레나 바카린)를 보면서도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들려오는 벨소리. TVA라는 곳에서 왔다고 한다. 얘네 뭐야? 맞대결을 펼칠 준비를 하기도 전에 TVA가 웨이드를 끌고 가버렸다. TVA에 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패러독스(매튜 맥퍼딘)이었다. 패러독스가 건네는 제안. 웨이드에게 본인 세상과 친구들을 구하고 싶다면 특정 멀티버스의 중심인물을 만나 여기로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그 중심인물이 누구냐고 묻는 데드풀. 패러독스의 입에 나온 이름은 '울버린(휴 잭맨)'이었다. 울버린? 내 친구 울버린? 설마 로건? 근데 걔는 이미 죽지 않았나? 하지만 괜찮다. 여기는 마블이고, 한참 멀티버스 세계관을 좌우로 넓게 펼치고 있었다. 멀티버스의 울버린을 만나면 되는 일 아니겠어? 데드풀은 울버린을 만나, 울버린은 데드풀을 만나 지독하게 티격태격한다.
히어로로 어떻게 살 것인가
우선 이 영화의 핵심을 이야기하기 전에 MCU 4,5 페이즈에서 작동하는 핵심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이 뭐야? ‘어떻게 주체적으로 슈퍼히어로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대를 <어벤저스 : 엔드게임> 직후로 돌린다. <블랙 위도우>는 스칼렛 요한슨이 다시 출연하며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을 알렸다. 나타샤와 같은 주연이었던 옐레나(플로렌스 퓨). 블랙 위도우들의 일환으로 활약하다 언니에게 자극받아 히어로가 된다. 블랙 위도우가 본질적으로 암살자들의 집단이고 나타샤 본인부터가 SHELD에 입사하기 전에 나쁜 짓을 일삼던 캐릭터였다. 빌런에서 히어로가 됐다는 의미인데 이 흐름은 사실상 이후 영화들에게 핵심으로 작동한다. 애 같은 무책임함을 보여줬던 스파이더맨, 친구의 희생을 뒤로하고 각성하는 이터널스, 존재감이 부족했지만 정복자 캉과 처음으로 정면대결했던 앤트맨, 스티브가 아닌 진짜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팔콘이 그랬다. 글쓴이가 이 문단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마블의 드라마나 영화들도 다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히어로, 자연인으로서 단단해지는 플롯을 중심으로 담았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엔드게임’ 이후의 마블이 발표한 영화/드라마가 담고 있는 핵심을 그대로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데드풀이 갖고 있는 히어로로서의 개성만으로도 ‘어떻게 주인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플롯에 넣기 쉽다. 어떤 특성? 그것은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는다는 속성이다. 보통 이야기를 통제하는 것은 감독이거나 제작진이다. 하지만 데드풀은 그 경계선을 넘으며 본인(캐릭터)을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과 같은 입장에 등치 시킨다. 이야기를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1차적으로 이야기의 핵심이 캐릭터에 닿아있는데, 영화의 플롯도 ‘데드풀이 바네사에게 어떤 자극을 받고 특정한 위치에 있고 싶어 한다’니 사실상 ‘데드풀이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란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울버린 역시 ‘어떻게 이야기를 쓸 것인가’에 대한 부분과 이어진다. 사실 울버린은 <로건>이라는 영화에서 장중한 마무리로 이야기를 끝냈다. 하지만 영화 외적인 맥락에서 이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는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고민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다. 왜? 그거야 마블은 ‘판타스틱 4’나 ‘엑스맨’ 같은 엑스맨 유니버스의 등장인물들을 mcu로 편입시키기 위해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 <더 마블즈>의 쿠키영상이나 mcu의 핵심인 완다의 역할 같은 것이 아직도 Mcu에 남아있다. 그리고 내년즈음에 mcu판 <판타스틱 4>가 발표된다는 말이 있고, 글쓴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7월 28일) 닥터 둠 역할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했다는 속보가 있으니 마블이 현재 울버린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블이 울버린을 두고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외적인 맥락이라 울버린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이야기에서 겉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미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는다는 점에서 어색함을 줄였고, 마블의 멀티버스 사가는 이런 서사의 뒤엉킴을 해소하는데 적합하다. 데드풀의 파트너로 울버린을 선택한 것이 영화 외적인 근거가 되는 셈이다.
한번 더
이 영화에서 글쓴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 같은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이게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처럼 누가 어떻게 나온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놉시스나 예고만 본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하나하나 예상외의 캐릭터 터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중 글쓴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울버린과 관련된 카메오였다. 글쓴이는 ‘엑스맨’을 다 보지도 않았어서 휴 잭맨하면 사실 울버린부터 생각나지 않는다. 휴 잭맨 연기 잘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울버린과 관련된 캐릭터 하나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는데, 울버린에게 있어 이질적인 이미지라 인간적인 측면이 강조됐던 캐릭터였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 캐릭터가 왜 등장하고 어떻게 퇴장하는지에 대한 예우를 충실히 갖췄다.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도 데드풀과 울버린에게 적용된 모티브가 여전히 작동한다. 이 인물에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낸다는 것 역시 중요한데 이 인물이 보여주는 영화의 몇 장면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이번엔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 최고의 강점. 세 사람의 등장이다. 글쓴이는 이 영화에 이 세 사람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 없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예상하지 못하다는 점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전적으로 예상한 바다. 이 인물들은 코믹스가 영화화된다는 관점에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끝마무리 짓지 못한 캐릭터들이다. 영화는 이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인물은 ‘오직 나 혼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특정 캐릭터는 굳이 그 인물이었어야 했으며 그 나머지 캐릭터는 굳이 특정 히어로를 언급했다. 심지어 세 캐릭터가 특정 캐릭터의 어떤 행동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넣으면서 이 영화의 핵심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조/카메오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아마 글쓴이만 이 캐릭터가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생뚱맞으니까. 이 캐릭터가 이렇게 중요할 일인가? 하지만 이 인물 역시 영화 후반부에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주목하니 흥미로웠다. 영화가 '어떻게 영웅으로 살 것인가'라는 점을 살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캐릭터 역시 극의 내적 논리를 철저하게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A vs B
이 영화에서 처음과 끝이라는 모티브가 작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두 세계의 충돌이다. 우선 영화 안의 두 주인공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야기 안에서 내내 티격태격한다. 우악스러운 데드풀이나 성격 더러운 울버린이나 다들 각자 주장이 세다. 내내 평화로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재미가 없다. 그럼 내내 싸울 수밖에 없는데, 이 다투는 이유를 주목해 보면 영화가 두 인물의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주안점으로 뒀다. 이 주안점은 영화에서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첫 번째는 TVA의 존재) <데드풀과 울버린>의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데드풀이 여자친구를 잃었는데 케이블 덕분에 어찌어찌 잘 산다 같은 거 말고, 왜 이 영화가 기획됐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따뜻한 분위기가 있다. 왜 따뜻함이 있을까? 바로 폭스가 디즈니에게 인수합병됐기 때문이다. 이거 과정 엄청 복잡했고 기사도 여러 개 나왔다. 애초에 마블 코믹스가 원작인데 다른 회사가 영화를 만드는 상황이 정상적이진 않으니 대략적으로 유추해도 이 과정이 가볍지는 않았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상황은 두 세상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극 중 데드풀-울버린과의 관계와 겹쳐 보인다.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나드는 것처럼 이야기의 안과 밖이 하나의 모티브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두 세계의 충돌이라는 키워드는 플롯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첫째. 두 주인공의 액션은 정말 대단하다. 액션의 다이내믹함이 과하면 과할수록 두 인물 간의 충돌이, 또 감정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테이크를 길게 뺀다던가 무기도 비슷하게 배치하면서 긴박감을 늘린다. 두 번째. 영화의 두 빌런은 충돌이라는 모티브를 전적으로 이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첫 번째 빌런 미스터 패러독스는 캐릭터 명부터가 ‘패러독스’다. 패러독스는 직역하면 역설이다. 그리고 이 인물은 충돌을 일으키기 위해 세상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충돌한다. 어떤 인물이 되고 싶은 데드풀과는 다르게 카산드라는 무의미함을 좇는다. 두 상황이 충돌한다는 모티브가 빌런을 때려잡는다는 장르의 특징이 빌런과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 크고 작게 대립하는 영화의 상황들, 다른 시리즈를 가져온 측면이나 멀티버스를 활용한 방식이나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중반부의 두 캐릭터나 이야기의 원동력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박력이 돋보였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마지막 직전
이 영화의 단점을 누군가가 나에게 물으면 글쓴이는 준비물이 너무 많다는 점을 뽑고 싶다. 글쓴이는 이 영화 개봉 하루 전에 <데드풀 2>를 봤다. <데드풀 2>를 보고 느낀 점. 이걸 어떻게 지금의 MCU와 연관 짓지? 글쓴이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 지금의 MCU와의 큰 연관점을 가지는 건 '로키' 시리즈의 TVA다. 이 집단이 범우주적으로 수많은 시간선을 관리한다는 집단이라는 걸 모른다면 '쟤들은 뭐야?'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 알고 난 다음이 문제다. 이야기 전개 상 감독이 영화를 전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후반부에 좀 있다. 이 구멍을 영화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코미디로 돌파하는 감이 있는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의 맥이 쉽게 빠질 것이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단점이라고 보는 것은 극후반부의 전개다. 이 영화가 이 MCU의 시리즈물에 편입한 순간부터 정해져 있는 단점이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끝마무리가 확실하지 못했다. 두 빌런 카산드라 노바와 미스터 패러독스의 끝마무리도, 울버린과 데드풀도 이야기에서 더 설명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카산드라 노바는 인물의 능력에 비해 설명하는 것이 게을렀다도 생각한다.
생명 연장?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고 꽤나 만족했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점이 들었다. 마블 시리즈 보면서 좋았다고 느낀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다 지난 것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스파이더맨이 돌아온다던가. mcu의 원년멤버인 로키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짓는다던가 하는 일들이 그랬다. 대중적으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가 흥행한 걸 생각해 보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마찬가지다. 잊혀 간 것들과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임과 동시에 지나간 것에 예우를 갖추는 영화다 보니 마블의 동력이 정말 다 떨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우려와는 별개로 이 영화 자체는 정말 재미있다. 휘둥그레 놀라는 전개, 멀티버스 활용법, 라이언 레이놀즈의 기획자로서의 역할, 숀 레비의 역량과 휴 잭맨의 카리스마까지 신나는 오락영화를 기다려온 관객들에겐 기대치를 충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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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당신에게
!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감독) 오시야마 키요타카
주연) 카와이 유미, 요시다 미즈키
작년 9월, 5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한다. 만화 천재 ‘후지노’와 그녀를 따르는 ‘쿄모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룩백>이다. 일본 현지 반응이 심상치 않았으며, 국내에서도 성공한 애니메이션인 <체인소맨>의 원작자 ‘후지모토 타츠키’의 작품이기 때문에 <룩백>은 개봉 전부터 꽤나 큰 기대를 받았다. 개봉 직후부터 입소문을 탄 <룩백>은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며 30만 관객을 모집하는 큰 성과를 거둔다.
그렇다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룩백>은 학교에서 네컷 만화를 연재하는 ‘후지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녀에게 만화는 ‘잘하는 것’ 정도이다. 친구들의 칭찬을 받으면서도 만화가가 되는 것을 열망하진 않는다. 그러던 그녀의 삶에 ‘쿄모토’가 등장한다. 쿄모토의 만화는 이렇다 할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도와 묘사를 보았을 때 대단한 실력자가 그린 것만은 확실했다. 자극을 받은 후지노는 만화 그리기에 열중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간격에 만화를 그만두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후지노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쿄모토의 집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열성팬인 쿄모토를 마주한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누군가에겐 평생의 과제일 것이다.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두 가지가 일치하기는 더욱이 어렵다. 재능이 있다고 믿은 분야에서 진짜 재능을 만나 벽을 느끼기도 하며, 좋아하는 일이 싫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후지노에게는 만화가 그러했을 것이다. 쿄모토의 만화를 본 그녀는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노력하지만 쿄모토를 따라잡지 못한다. 만화를 그만두는 후지노의 선택은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그러던 그녀의 앞에 나타난 쿄모토가 그녀의 오래된 팬임을 밝혔을 때, 후지노는 지금까진 없었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후지노와 쿄모토는 공동 작업을 시작한다. 쿄모토는 후지노가 짜놓은 이야기 속의 배경을 그린다. 그들의 포지션은 그들의 관계성과도 닮아있다. 쿄모토는 후지노의 배경이다. 쿄모토는 후지노를 선망해왔다. 후지노의 방에서의 그들의 위치 또한 의도되어있다. 바닥에 앉아있는 쿄모토가 책상 앞 의자에 앉아있는 후지노의 등을 바라보는 구조인 것이다. 후지노의 입장에서 쿄모토는 자신을 빛내주는 사람이며, 든든한 지원자이자 팬이자 동기부여의 대상이다. 그녀는 이제 만화에만 몰두할 수 있다. 그녀의 배경은 풍요롭게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성장해간다. 그러면서 각자의 꿈을 키워나간다. 결국 후지노와 쿄모토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자연스럽게 쿄모토의 시선으로 시작된 Look Back의 주체는 후지노에게 넘겨진다. 쿄모토의 Look Back이 후지노의 등을 보는 것이라면, 후지노의 Look Back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허나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뒤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다. 쿄모토는 항상 뒤에 있을 것이며 지금 집중해야하는 것은 눈 앞의 만화이다. 그런 그녀에게 쿄모토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이겨낼 수 있는 사건이다. 그녀는 더이상 뒤돌지 않는다. 이젠 뒤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인기 작가가 된 후지노는 어느 날 한 가지 사건을 전해 듣는다. 쿄모토가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충격에 빠진 후지노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가 그 날 쿄모토의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쿄모토는 지금 살아있을 것이다.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자책한다. 어쩌면 그녀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건, 쿄모토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존재가 아닌 등을 내어줄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였고, 떨어진 후에도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지노의 Look Back은 공간적 차원에서 시간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후지노의 배경이 되어준 쿄모토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쿄모토와 함께한 시간들은 후지노의 삶에 생생히 남아있다. 후지노는 깨달았을 것이다. 쿄모토가 그린 배경은 훨씬 장대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이제 그녀는 쿄모토를 위해 만화를 그린다. 쿄모토가 그려준 배경에 어울릴만한 솜씨를 갖기 위해서, 그리고 쿄모토가 채워준 삶의 배경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후지노의 작업실 창문에는 네컷만화가 붙어있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인다. 그 선택의 결과는 당장은 알 수 없으며, 우연과 필연 사이의 운명과 같은 사건들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통제할 수 없는 삶은 가혹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또는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후회는 먼지보다도 작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의 눈은 앞만 볼 수 있어서, 뒤를 돌아보면 다시 앞을 볼 수 없다. 정확히는 원래는 앞이었던 뒤를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내가 보는 방향이 앞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역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룩백>은 공교롭게도 ‘룩백(Look back)’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담긴 작품이다. 등을 본다는 의미에서의 <룩백>은 누군가의 뒤를 지켜준 이들에 대한 감사 표시일 수 있겠다. 부모님, 배우자, 은인 등 각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쿄모토가 그 대상일 것이다.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에서의 <룩백>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놓친 것들에게 대해 후회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이다.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뒷편의 모습들을 충분히 사유하고 기억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다가왔다. 앞을 보고 살아왔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다. 후지노는 자신이 쿄모토를 구하는 이야기를 만화를 통해 그려냈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룩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57분간의 짧은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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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피델> 메인 예고편
목숨을 건 탈출!
이보다 더 극적일 순 없다.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중동에 간 미국인 기자이자 블로거 ‘더그’(짐 카비젤)
하지만 난데없이 납치를 당하고,
이란 정권의 스파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다.
한편 국무부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 ‘리즈’가 이 사실을 알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미국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리즈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직접 이란행을 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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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순> 메인 예고편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제17회 로마국제영화제 2관왕? ?전 세계 19개 영화제 초청 & 8관왕 등극? 오직 나를 위한 내일을 준비하려 합니다 [#정순] 4월 17일 개봉 확정!? 눈물샘을 자극하는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