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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 미씽 발렌타인 / 消失的情人節, 2020
피아노만으로 소개되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청설2009>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넷플릭스"에 공개된 <나의 Ex2018>는 "대만 영화"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보여준 영화들입니다.
마치, 버블티에 담아있는 "타피오카 펄"처럼 관객들의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데, "대만 로코"만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국내 성적을 기대했는데, 영화는 첫 주 박스오피스 6위에 그쳤으며 누적 관객은 5,588명(01.19 기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들려오는 평가가 좋았음에도 그게 성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이런 이유에는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이 "메가박스"만에서 상영하는 제한적인 부분이나 유달리, 신작들이 많았다는 점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해 들은 것들이며, 직접 느낀 것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직접 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빠르기에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과연, 영화는 들려온 것처럼 재밌었는지?' -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는 모든 것이 빠른 여자, "샤오치"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와 "밸런타인데이"에 데이트를 한다는 것에 기대하지만, 정작 "밸런타인데이"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신발에는 모래가 가득하며 피부는 어딜 갔는지 빨갛게 익어버렸고요.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난 후, 매일 우체국에 편지를 보내는 남자 "타이"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샤오치"는 잃어버린 밸런타인데이에 "타이"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 의심하는데...
1.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보이는 이야기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는 119분으로 많은 분량을 가진 영화로 관람 전부터 부담스러울 겁니다.
웃고 즐기자는 분량과는 거리가 꽤 되니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할지 또 그것을 잘 알아먹을지도 걱정이 들 겁니다.
하지만 <마이 미씽 발렌타인>는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가벼우면서도 즐거운 느낌으로 전개되는데요.
무엇보다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를 "샤오치"와 "타이"라는 두 캐릭터로 나눠 각각 전개하며, "샤오치"의 이야기가 앞서 언급한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하루를 바라보는 두 캐릭터의 차이
먼저, "샤오치"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앞서 언급하듯이 재밌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그녀가 "밸런타인데이"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과정 없이 통보되기 때문인데요.
<부부의 품격>이나 <펜트하우스>와 같이 "막장"을 다룬 작품들이 이를 활용하는 이유에는 "막장"에는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정 이상의 설명이 쌓이면, 이를 해소하듯이 터지는 것이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막장"은 이런 과정보다 결과부터 발표하고 과정을 쌓아올리는데요.
그런 점에서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샤오치"이야기는 그녀가 "밸런타인데이"가 사라진 이후 과정이 주되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외에도 깨방정을 떠는 그녀의 모습도 가벼운 분위기의 해당 이야기에 어울리기까지 하니 더더욱 첫인상이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2. 똑같은 구성?, 아니 조금 달라요.
그렇다면,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후반전 "타이"이야기는 어떤 느낌일까요?
앞서 "샤오치"와 비슷한 구성이나 후자에 속한 만큼 앞선 이야기를 활용하며, 첫 관람인데도 N회차하는 느낌을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앞서 바라본 "샤오치"의 이야기도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앞에서 소개하듯이 "샤오치"는 "타이"가 아닌 "류원썬"이라는 남자와 연애를 하는데, 앞선 이야기에서는 이 캐릭터는 완벽한 남자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타이"의 이야기에서는 이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는데요.
이로 인해, 인상이 달라지니 이를 막으려는 "타이"의 모습은 "샤오치"의 깨방정과 다르지만 웃음을 만들어내는 똑같은 결과로 치닫습니다.
후반전, 인저리 타임도 추가해서...
이렇게 본다면, 영화는 다른 캐릭터로 이야기를 북붙한 것으로 보일 겁니다.
그러나 "타이"의 이야기에는 "샤오치"가 궁금했던 잃어버린 밸런타인데이의 질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이를 자신만의 비유들을 섞어낸 소재들과 함께 소개하여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오는데요.
그러면서, 내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왔던 <마이 미씽 발렌타인>이 처음으로 분위기가 촥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영화는 "사진"과 "편지"로 "타이"가 "샤오치"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3. 시간을 맞춰나가는 노력!
포스터에서도 있듯이 "샤오치"는 뭐든지 빠른 여자, "타이"는 뭐든지 느린 남자로 서로가 맞질 않습니다.
여기에 "샤오치"에게는 썸남까지 생겼으니 "타이"로서는 더 이상 그녀와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타이"가 선택한 "사진"과 "편지"는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연인에게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의 발걸음이 맞지 않아 누구는 앞서고 뒤처지는 모습이고 춤으로는 서로의 발을 밟아 고통만 더하니 정상적인 관계로 볼 수 없는데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타이"가 선택한 "사진"과 "편지"는 과거에 있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현실과는 다르게 정적이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로 다른 보폭을 가진 두 캐릭터의 간격은 더 벌어지고 말테니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타이"와 "샤오치"가 서로 시간이 맞지 않겠지만 "사진"과 "편지"는 시간에 구애받는 물건들입니다.
이를 기록하고, 바라봄으로써 두 캐릭터는 비로소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니까요.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단연, 가장 큰 쾌감은 서로 달랐던 두 캐릭터의 시간이 차차 맞아들어가는 점입니다.
4. 결국, 당할 수밖에 없는 엔딩
그도 그럴 것이 두 캐릭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각자의 시간에 맞춰진 것이 보입니다.
앞에서도 소개하듯이 "샤오치"는 모든 것이 빠른 여자로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나 영화를 보면서 웃는 것으로 일반인에 비해 빠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우편물을 보내는 과정에서 "타이"보다 빠르게 잔돈을 거스르는 것으로 시간이 맞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타이"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고요.
서로의 시간을 맞추며...
역시 앞에서 소개하듯이 모든 것이 느린 "타이"는 남들보다 느린 반응들과 버스를 운전하는 것으로 자기가 주도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이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자신에게 익숙한 시간을 보여줄 뿐 "샤오치"는 "타이", "타이"는 "샤오치"에게 맞춰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엔딩에 비로소, 이들의 시간이 맞는 장면이야말로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에 보기 꺼려 하는 관객들은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영화가 "시간"을 다루었기에 그럴듯한 이론을 바탕에 촘촘한 설정까지 있어 어려운 영화로 인식될 테니까요.
하지만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본 관객들은 그런 딱딱한 영화가 아님을 알 겁니다.
그렇기에 두 주인공의 시간대가 맞물린다는 마지막 장면도 옳고 그르냐를 떠나 살짝, 눈감아줘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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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장에서 사랑에 빠진 감독&배우 커플모음(국내/해외)
일,사랑 두마리 토끼를 잡은 국내해외 영화계커플을 모아봤습니다!!
일중에 사랑이 싹트는건,, 보통일이 아닌데요 몇 커플들은 왠지 더 멋져보이는건 기분탓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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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이충현]
둘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콜>에서 만나 연인까지 발전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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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이옥섭]
알 사람들은 아는 인디 영화계의 아이돌! 구교환배우와 이옥섭감독은 같은 학교 동문으로 만나 교제를 하면서 수많은 단편영화를 같이 만들어왔는데요 이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커플이었답니다. 구교환배우는 넷플릭스 <DP>에서 찰진 입담으로 얼굴을 알리고 이옥섭감독은 <메기>영화를 연출하면서 제7회 들꽃영화상에서 극영화 감독상, 제14회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감독으로서 발돋움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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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문소리]
장준환감독과 문소리배우도 한국 대표 영화인 부부로 성균관대학교 동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회식자리에서 문소리가 합석하게 되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고, 장준환이 연출을 맞게 된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문소리와 재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준환감독이 몇번이고 마음을 밝혔지만 문소리배우는 여러번 거절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구애에 둘은 연인으로 발전해 비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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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탕웨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색계>는 중국에서 변절자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출연한 탕웨이 배우가 3년간 영화계에서 활동 정지 처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 김태용 감독의 <#만추>를 만나게 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게 되는데요. 영화 <만추>는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토론토영화제,베를린영화제 등 잇달아 초청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시 다지게 되었고 김태용감독과 결혼도 골인하게 됩니다. 부부가 된 김태용감독과 탕웨이배우는 영화 <#원더랜드>를 참여하게 되면서 촬영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개봉만 앞두고 있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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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배우 홍상수감독은 영화<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 >에서 만나 열애인정까지 했는데요. 하지만 홍상수배우는 배우자와 자녀를 둔 유부남입니다. 이후에도 김민희와 홍상수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클레어의 카메라> <도망친 여자> <강변호텔> <물안에서>등 꾸준히 같이 영화를 내는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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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에이미스♥︎제임스카메론]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아바타>를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 제임스 카메론은 4번의 이혼 후 <타이타닉>에서 만났던 수지 에이미스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타이타닉>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재개봉되고 있는 명작이며, 제임스카메론 감독은 아바타 시리즈 5까지 제작을 마쳐 개봉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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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블런트♥︎존크래신스키
존 크래신스키감독은 애밀리블런트배우가 출연한 <악마는프라다를입는다>를 75번이나 관람하면서 그녀의 팬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어느 한 식사자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합니다. 이후 부부는 <콰이어트플레이스>에 같이 연출,출연하면서 흥행에 성공 후 <콰이어트플레이스2>까지 만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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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캡쇼♥︎스티븐스필버그]
케이트캡쇼 배우와 스티븐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인디아나존스와죽음의신전>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으로 <라이언일병구하기> <쥬라기공원> <인디아나존스> 시리즈를 만들어낸 감독으로 할리우드 내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개념을 만든 최초의 인물로 평가됩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는 15년만에 다시 극장을 찾았는데요. 스필버그 감독은 <#인디아나존스운명의다이얼>에 제작에 참여했으며 지금 영화관에서 절찬 상영중이니 극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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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길 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시
손자 '욱이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제일 행복한 할머니 미자(윤정희)는 66세의 나이에도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미자는 시 한 편 쓰는 것이 소원이다. 접수 마감이 지난 김용탁 시인의 문학강좌를 간곡히 부탁해 듣게 된 후로 미자의 관심은 온통 시에 쏠려있다. 시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틈틈이 메모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병원에서 희진이라는 아이의 자살 소식을 듣고, 희진의 자살과 종욱(이다윗)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미자의 마음에는 낯설고 격렬한 감정들이 차오른다. 미자는 희진이가 걸었던 길을 걸으며 시를 완성하게 된다.
한 편의 시에 대한 긴 해설과도 같은 이 영화는 시와 시인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보다
시의 출발은 '잘 보는 것'이다. 시인은 학생들에게 '사과를 진짜로 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조명 아래에서 살펴도 보고, 향도 맡아보고, 한 입 베어 물어도 보고 즉, 온전히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진짜로 보아야 느껴지는 것이 있고, 그것을 종이에 옮겨내면 그것이 바로 '시'다. 미자는 수업 이후로 일상의 모든 것을 진짜로 보려고 애쓴다. 사과를, 설거지통을, 꽃과 나무를, 손자 종욱이를 본다. 미자가 '꽃을 좋아하고 이상한 소리도 많이 한다'며 시인의 기질이 있다고 말하지만 시상은 도통 찾아오지 않는다.
미자는 아름다움을 찾아 시로 담으려 한다. 하지만 아름다움만으로 시를 완성할 수는 없다. 수강생들이 말하는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에는 모두 슬픔이 담겨 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아름다움과 괴로움은 함께 한다.
“괴로움도 참 아름다워요”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시들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떨어지는 백일홍이, 자신의 몸을 내던져 다음 생을 준비하는 살구가 아름다운 이유를 미자는 차츰 제대로 보게 된다. 미자의 노트에는 꽃의 시들음이 살구의 떨어짐이 차곡히 쌓여간다. 상실과 고통, 괴로움이 쌓여간다. 희진이의 길은 고통의 길이지만 미자는 그 길에서 언제나 아름다움과 사랑을 발견한다. 희진이의 죽음이 미자의 마음 한편에 심은 고통의 씨앗은 그렇게 시로 움트기 시작한다.
미자는 자신의 죄를 똑바로 보지 않는 종욱에게 마주할 기회를 준다. 그것이 미자의 사랑이다.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가 아이의 장래와 인생을 위해 죄를 덮으려 할 때 미자는 종욱이가 제대로 보기를 바란다. 명과 암을 보게 된 미자가 희진에게 바친 시와 종욱에게 치르게 한 죗값은 윤리적 판단을 넘어서 미학적인 선택이 된다.
미자는 희진이의 죽음과 손자의 죄를 겪어내며 시인이 되었다. 영화는 한 편의 시가, 한 명의 시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아네스의 노래
희진은 순결을 상징하는 성인, 아네스의 이름으로 불린다. 아네스의 위령미사를 본 후로 미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희진이의 길을 따라 걷는다. 학교의 과학 실습실과 몸을 던졌을 강가의 다리,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과 엄마가 일하는 밭을 미자의 시선으로 본다. 관객은 미자를 따라 걸으며 보이지 않는 희진의 영혼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애도하게 된다.
다리 위에서 떨어진 하얀 모자는 헌사하는 꽃처럼 떠내려가고, 미자의 노트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기도문이 되어 희진의 고통을 어루만진다. 미자는 자신이 무엇을 쓰게 될지 모른 채 걸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시는 그의 안에서 움트고 있었다.
희진은 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를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미자의 목소리가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던 희진의 목소리가 될 때 학교와 집을 거쳐 강으로 향하는 1인칭의 카메라에서 관객은 희진이의 모습을 선명히 보게 된다. 영화는 가해자의 '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희진의 마지막을 정성 들여 애도하고 배웅할 뿐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코두codu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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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영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그저 그 시간에 집중한다. 특별히 몇몇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은 그들이 놀고 시간을 보내는 바로 그때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친구와 다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기억을 쌓아나간다. 그래서 모두에게 유년기 시절의 좋은 추억들이 하나쯤은 있다. 그 시간 그 모든 것을 함께한 어른들은 그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기록한다. 언제든지 꺼내어 보고 그 당시를 추억하면서 자신의 깊숙이 담아두었던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유년기를 벗어나는 시기는 결국 찾아오며 누구도 예외는 없다.
청소년기가 되고 어른이 되면 몸에 커지고 아는 것도 조금은 더 많아진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만이 가고 싶은 방식으로 삶을 그리고 나아간다. 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모험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면 결국 집 밖의 시간을 늘리게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일 때 가지고 있던 동심과 순수함, 천진함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동심은 아직 어른이 되어 커진 마음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된 후 누군가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나이가 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렇게 나이 듦을 경험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유년기 시절의 동심을 가지고 있다.
피터팬을 웬디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영화 <웬디>
영화 <웬디>는 동심과 나이 듦에 대한 영화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터팬을 재해석하여 웬디(데빈 프랑스)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판타지 장르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웬디는 기찻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집에서 엄마와 더글라스(게이지 나퀸), 제임스(개빈 나퀸)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 웬디는 옆에 앉아 같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식당에 주변에서 놀거나 간단한 식당 일을 돕는다.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 집의 아이들은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재미없는 일상이 아닌 뭔가 색다른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영화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주로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담는다. 마치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처럼 관객들도 집 밖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초반 세 아이가 잠들기 전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엄마의 어릴 적 꿈에 대한 것인데, 웬디는 왜 지금은 그 꿈을 이룰 수 없는지를 묻는다. 이에 엄마는 지금 하는 일과 상황에 만족하니까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그 뒤에 바로 이어진다. 엄마가 나가고 웬디는 왜 엄마가 꿈을 실행하려 하지 않는지 혼잣말로 궁금해하는데,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엄마는 늙었으니까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에 웬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 일련의 장면은 이 영화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 바로 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피터팬과 원더랜드의 아이들은 나이가 들지 않는다. 영화 <웬디> 안에서도 우연히 기차에 탄 피터(야슈아 맥)를 발견하고 따라가는 웬디와 더글라스, 제임스는 늙지 않는 섬에 도착하고 거기서 꽤 오래 머무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난다. 이들 역시 나이가 들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놀이를 하며 계속 아이로 생활하고 있다. 처음 그곳에 간 웬디는 처음엔 어색해하지만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와 재미를 경험하고 나서는 완전히 그들과 동화된다.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이 그들에게 에너지가 되어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기쁨 안에 있는 섬의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건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 그 자체의 모습이다.
대비되는 아이와 노인
그 섬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노인들도 있다. 섬의 노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린 이들이다. 영화 속 노인 중 한 명인 버죠(로웰 랜디스)는 몰래 친구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훔쳐보곤 한다. 아이들은 보통 도망가며 그가 버조가 아니라고 외친다. 버조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일종의 늙음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버조가 과거 자신들과 같이 아이의 모습이었던 또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나이 든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이유로 친구로 인정하지 않고 쫒아내 버린다. 그렇게 노인으로 변한 이들은 노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분리되어 생활하게 된다.
사실 보조를 비롯한 노인들은 친한 친구를 잃거나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나서 늙은 모습으로 변했다. 아픔을 경험하고 나서 철이 들고 조금 성장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그런 아픔과 번뇌를 겪고 나서 조금은 다른 모습이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들처럼 사춘기의 변화를 겪고 또 가족과 학교에서 다양한 일을 겪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처 받고 슬픈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일을 경험하다 보면 어느덧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금방 노인이 되어 버리지만 아이와 노인 사이에 어른이라는 시기가 존재한다. 영화는 그 모습을 생략하고 아이와 노인을 대비시키면서 과연 나이 듦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노인들은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것이 동력이 되어 피터의 일행과 노인 일행이 대립하게 되기도 한다. 기존 우리가 알고 있던 피터팬에서 피터팬과 후크가 대결하는 것처럼 노인들은 젊음을 얻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들이고, 피터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둘의 대결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노인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과 대립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노인들은 조금씩 사람이나 사회에서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말 주변이 없어지고 조용히 무언가를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노인들은 아이들에 비해 말이 없다.
웬디가 제안하는 노인을 바라보는 태도
웬디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노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인물이다. 노인으로 변한 아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들에게 같이 대화하고 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즉석에서 춤을 추며 그들과 어울린다. 어두운 표정만을 짓고 있던 노인들이 웬디 주변에 하나둘씩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보이지 않았던 미소가 가득하다. 사실 노인들이 아이였을 때 노는 방법이나 느낌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저 늙었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든 것뿐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과 함께 어울릴 것을 제안한다.
젊음이라는 것은 한번 잃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언젠가 늙어간다.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부정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찾아온다. 영화 후반부 누군가가 늙어서 못한다고 이야기할 때, 웬디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영화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이 듦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인 웬디도 엄마가 되고 자신의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일이지만 그 나이 든 육체가 가진 마음만큼은 육체만큼 나이가 들지 않는다. 노인들도 나름의 동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만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영화 <웬디>를 연출한 데뷔작 <비스트>(2012)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신인 감독이다. 그는 두 번째 연출작인 <웬디>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속에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고, 피터팬 원작이 담고 있는 내용에서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끌어내어 영상화했다. 극적인 요소가 다소 떨어지고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영화가 조금은 심심하고 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을 관객에게 명확히 던지는 영화다.*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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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리뷰>
https://youtu.be/Rsehc6qDP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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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꽃은 크리스마스 눈처럼 자유의 씨앗을 흩뿌렸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CGV
우리는 서로 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었다!제2차 세계대전, 인도네시아 자바섬.무사도 정신을 맹신하는 일본군 대위 요노이는포로수용소에서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와 마주하게 된다.사형 직전의 잭을 자신의 수용소로 데려온 요노이는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면서도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끊임없이 갈등한다.한편,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국군 중령 존 로렌스는영국군과 일본군, 양측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수용소의 분위기는 점점 격화된다.전쟁의 포로이자 인간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과연 전쟁터 한가운데에서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우선, 이 영화를 있게 한 제목과 대표곡에 드러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중심 메타포가 아니다. 물론 크리스마스 자체의 상징성에 기대어 주요한 메시지가 더욱 강조되는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알기 전부터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수도 없이 반복해 재생한 기억이 있었고, 어린 시절임에도 곡의 멜로디를 들으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고는 했다. 그리움, 슬픔? 그렇다면 무엇이 그립고 왜 슬픈 것일까? 지금에 와서는 쉽게 떠오르는 질문도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했던 그때의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이 곡이 지닌 수많은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출처 : CGV
국내 첫 정식 개봉인만큼, 리뉴얼된 포스터는 심하게 아름다웠다. 색상의 혼합을 활용한 것도, 약간은 빛바랜듯한 배경의 질감도, 철조망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특정된 두 장면이 가지는 의미도. 작품을 직접 감상하기 전부터 직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취향이 아닌 '전쟁'이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낄 정도였는데, 감상한 후에는 그 마음이 더 커져 서울에서 파주까지 보위의 개인 포스터를 얻으러 가기도 했다. '전쟁', 나는 전쟁이라는 특수성 짙은 배경으로 소재를 갖는 영화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이기에 잔인한 장면이 동반되고 근본적인 불쾌감을 일으키는 부분을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포스터 디자인에 홀려 보러 갔을까? 아니다. 83년도에 제작된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정식 개봉을 이루어낼 만큼 부정할 수 없는 어떠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감상하고 배우는 입장에서, 긴 시간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그 이유를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때마침, 아트나인에서 GV를 진행하는 회차가 있어 전문가들의 설명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납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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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장센
필름 특유의 빛바랜, 알록달록한 색감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눈이 즐거웠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사형 선고를 받기 전 셀리어스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외출 준비를 하고, 누군가와 단조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는 숱한 상황들 가운데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기억하고 지키는 듯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의미심장한 노래도, 능청스러운 연기도 매력적이지만 특히 위 사진처럼 담배를 피우는 척하고, 담뱃재를 털고, 바닥에 던져 발로 짓이기는 행동이 바닥에 묻은 흰색 자국(마치 담뱃재처럼 생긴)으로서 한 씬을 완성시키는 흐름이 매우 취향이었다. 정갈한 발걸음으로 프레임 아웃하며 액팅이 마무리되는 일련의 행위들은 예술 그 자체였다.
출처 : CGV
그 직후, 사형 집행을 받는 보위가 결박되고 일본군이 안대를 씌우는 장면이 나온다. 셀리어스는 당당한 눈빛으로 이런 것 씌우지 않아도 된다며 저항한다. 손이 묶여 있는 바람에 고갯짓만으로 그들의 행동을 저지해야 하는데, 그 몸짓과 눈빛이 겹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오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잭 셀리어스'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자긍심이 매력적이다. 셀리어스의 뒷모습이 보이며 사격 개시의 정렬을 맞추는 일본군들의 무빙도 굉장히 정갈하다. 기계의 움직임처럼 군더더기 없는 액팅과 여백을 적당히 활용한 인물의 배치가 심각하게 아름다워 실제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2. 캐릭터
드용&가네모토(맨처음의 두 군인) / 로렌스&하라 / 셀리어스&요노이
극 초반 씬들에서 세 가지 주요 관계성이 모두 제시된다. 두 군인이 지닌 의미는 초반에, 하라와 로렌스는 중반에 드러나며, 셀리어스와 요노이는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극의 진행이 마무리되는데, 관계성이 지닌 의의를 제외하고서도 각 캐릭터들의 특성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어 2시간 가량의 스토리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자의 서사가 완벽하게 묘사된다.
출처 : 미디어캐슬
우선, 데이비드 보위로서 표현된 '잭 셀리어스'가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미학적이다. 위 사진은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군사재판이 열리면서 공간과 인물의 정보를 동시에 제공해야 하는 복잡한 씬이기 때문에 첫 장면을 롱샷으로 잡았으리라 판단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각 인물에 대해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정보값을 판단하고 앞으로 흘러갈 씬을 파악하게 되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중심에 위치하여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보위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출처 : CGV
GV에서 듣기로는 셀리어스 역에 유력했던 배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너무 여지 없이 잘생긴 외모라서 캐스팅이 불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감독은 보위와의 캐스팅 여부를 결정하고자 하는 미팅 직전, 그의 연극을 먼저 관람하며 그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속으로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고 한다. 영화 이전부터 보위가 쌓아 온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그의 외모가 지닌 오묘한 매력을 증폭시켰다고 생각한다.
'요노이'의 첫 등장은 군사재판이 아닌 드용과 가네모토가 일본군에게 잡혀 존엄성을 짓밟히는 장면에서 나온다. 문제에 대해 제대로된 전후상황도 살피지 않고 하라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가네모토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요노이는 마치 '해결사'의 위치처럼 여겨진다. "폭력적인 하라와 달리 요노이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자연스럽게 그렇다,는 답변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요노이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군사재판에서 더욱 굳어진다. 말 안 통하는 극우주의자들과 달리, ‘군사재판’이라는 성격이 뚜렷한 장소에서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의응답을 통해 셀리어스를 옹호해주는 씬으로 캐릭터 설명을 대신한다. 그러나 점점 드러나는 그의 실체는 일본의 역겹고 비상식적인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아집의 상징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빗대어, 요노이는 셀리어스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음을 감독은 꽤나 명확하게 드러내고 강조했다고 본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드용의 죽음을 기리는 꽃과 일본군에 저항하는 만두를 배부하고 독방에 수감되면서, 요노이는 매일같이 순찰이라는 명분으로 그를 찾아갔다. 값이 꽤 나갈 것 같은 카펫을 들고. 매일밤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갑작스레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렌스와 함께 탈출한 셀리어스는 요노이를 마주하고 왜 물리적인 충돌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언제나 당당함으로 무장한 그가. "나만 이기면 자유인데 왜? 왜 싸우지 않지?" 절망하는 듯한 요노이의 대사에 이어 즐거운듯 미소를 보이고 칼을 내려놓는 셀리어스의 감정이 과연 어떤 형태였을지는 미지수일 것이다.
출처 : CGV
윈체스터 학교 출신의 '로렌스'는 포로로 잡힌 영국군 중 유일하게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군 주요 인사인 요노이와 하라에게 자주 대화 상대로 불려가고는 한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영국군의 리더는 로렌스에게 어느 학교 출신인지 물어보고, '윈체스터'라는 대답을 듣고는 비웃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당시의 '윈체스터'는 귀족으로서 세상 물정 모르고 어딜 가나 아부하는 일종의 기회주의자와 같은 특성을 시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로렌스는 스스로의 신념을 중시하고 굳건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덕목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전장에서 정반대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극중 결정적인 상황에서 옳은 목소리를 내는 건 로렌스 뿐이다. 일본의 악습을 향해 '아닌 건 아니다'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펼치는 것도, 셀리어스의 독단적인 행동(그러나 옳은)에 대해 옹호하는 것도, 부당한 대우의 개선을 바라고 행동하는 것도 전부 로렌스이다.
왜 제목도, 극의 플롯도 로렌스를 대상으로 했을까? 보통은 주연 캐릭터와 연관된 장면으로 엔딩 시퀀스를 구성하기 마련인데 그저 조력자인, 혹은 그들만의 개별적인 서사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캐릭터로 시작과 끝을 맺었는데도 의미 전달이 확실하고 주연 캐릭터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점이 매우 감탄스럽다.
3. 상징
'상징'은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파트이다. 특정 사물과 상황으로 비유하여 극의 깊이감과 레이어를 더하는 방식은 나에게 보다 강력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집중할 상징은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이다.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나아가 현대에서는 서로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 받는, 누구나 행복감을 느꼈으면 하고 또 그만큼 상대에게 무언가를 베풀게 되는 그러한 날이다. 그렇다면 '전쟁 속 크리스마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출처 : CGV
권력을 가장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하라는 억울하게 독방에 갇힌 셀리어스와 로렌스를 본인의 임의로 풀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불러 술에 취해 살짝 들뜬 말투로 'Father Christmas(파더 크리스마스)'를 언급한다. 말그대로 '산타'이다. 박애주의와 인류애의 상징, 산타가 되고자 했던 하라. 전쟁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형태인가? 이 질문은 무조건적인 호의와 애정을 담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그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반인륜적인 전쟁에서는 누명을 쓴 누군가를 도와주는 정도,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지만 그럼에도 상황적 제약으로 인해 쉽게 실천할 수 없었던 정의로운 '선행'을 베푼 하라의 모습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거 같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정상성으로 일컬어지는 행위를 감히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전쟁 속 크리스마스가 발현되는 한계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씨를 뿌렸고, 우리는 그 곡식을 거두는 거 같다”
위 문장은 종전 후 전범국의 주요 인사들이 사형 당하고, 그중 하나인 하라 또한 사형을 목전에 앞둔 어느날 밤 로렌스가 면회온 씬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자유의 씨앗을 심은 것은 각자의 속에 어떤 것이 뿌리내린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꼴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일본군을 토대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적에게 잡히면 절대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아'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아' '이미 일본을 위해 영혼을 바쳤고 죽음을 각오한 목숨이야'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전체성에 잡아먹혀 거짓된 자긍심을 고수하고 할복자살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하라와 요노이, 그리고 이를 따르는 수많은 일본군들. 이러한 메시지는 비단 과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는 체제에 순응하려고 태어났는가? 정녕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파고들고 사유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4. 노래, 사운드
현대에 와서 리마스터된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부드러운 음율이 돋보이는 반면,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투박한 음질이 오히려 더 감정을 증폭시킨다. 특히 오리지널 버전만이 지닌 강하게 내려찍는 느낌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와 조합되며 더욱 그 느낌이 좋았다. 이와 견줄 정도로 귀를 사로잡았던 OST가 또 있는데, 바로 'Sowing the Seed'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에 사용될 만한 느낌이 아닌,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극적인 장면들에 쓰일 법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보편적인 음악이 아니었기에 전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크리스마스'의 고유한 이미지를 몽환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영화 자체도 잘 만들어졌지만 음악을 통해 완벽한 결과물이 되었다고 느꼈다.
출처 : CGV
OST 외에도 음향 자체에 집중할 만한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일본군의 장례를 빌어주는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일본군의 반복적인 구타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로렌스가 일본식 정좌를 애써 해내려는 모습, 비논리와 비상식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 없는 요노이와의 대화, 격앙되는 감정 속 장례지도를 끊임없이 진행하는 하라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고, 그 모든 요소가 조화롭지 않아서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5. 일본
사실,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감독이 누구인지, 전작은 무엇인지, 제작 비화가 따로 있는지 등 관련 정보를 전혀 찾아보지 않고 극장에 들어선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또한 감독이 일본인인줄 모르고 봤을 정도이니 가늠이 되실 거라 생각한다. 워낙 유명한 데이비드 보위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난 작품이니 그저 동양과 서양의 합작이겠거니 싶었는데, 로케이션과 배우, 제작들이 여러 인종으로 섞여 있을 뿐 감독 자체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일방적인 침략을 일으키고, 지금에 와서도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만행들을 자행했으며, 현대까지도 그 잘못된 방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마냥 평범한 관점으로 감독과 작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옳지 않은 대사나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음에도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거의 없었다. 후반부의 로렌스 대사 중 하나가 일본인을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잘못된 것을 옳다고 말하는 식의 비약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감독이 회피하지 않고 일본의 고질적인 악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씬들이 여럿 있었다. 극 자체가 조선인 가네모토와 네덜란드인 드용의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애정으로 구성되는 시퀀스로 시작하는 만큼, '동성애' 즉 기본적인 인권이 짓밟히고 일본인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양상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며 강조하고 싶었던 의도로 보인다.
그 시대인 걸 감안하고 요즘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여러 의미에서 앞서 나간 작품인 건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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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피로 얻은 산 자들의 자유를 빼앗길 뻔한 날, 12월 3일,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공간인 전쟁에서, 크리스마스의 눈처럼 자유와 평등을 흩뿌리고자 했던 영화. 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전쟁의 상황적 배경에서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고 싶었는지 확실하게 드러냈고, 그 제작자의 의도는 동성애를 첫 대목에 위치함으로써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의 잔혹함을 극대화한다.
고전영화의 특징일까?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기교가 없고 모든 장면과 시퀀스가 매우 깔끔하고 정확하다. 담고자 하는 의미가 그대로 보이며, 컷과 컷의 연결점 또한 의도가 명확하다. 그러나 보위의 이미지와 류이치의 음악의 조합이 요즘 영화들의 화려한 스타일을 넘어서서 기교를 부리는듯 착각을 일게 한다.
다만, 모든 요소가 수려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창작 방향성을 잡아나가려고 하는, 말 그대로 발아하기 직전에 모여 만들어진 작품인만큼 작품이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에, 투박하지만 보다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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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을 자른다는 것의 의미
팔을 자른다는 것의 의미
<127시간>은 주인공 '아론 랠스턴'이 블루존 캐니언을 홀로 등반하다가 실족하고, 설상가상으로 바윗돌에 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 상태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설명이 스포일러가 아닌 것은,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영화의 한국 포스터 하단에는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감동실화’라고 적혀있기도 하다. 갇혀 있었던 시간을 정직하게 암시하는 ‘127시간’이라는 제목부터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탈출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좋은 영화라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특별히 생생한 영화들은 따로 있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 <마션>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든가 <타이타닉>, <죠스>처럼 재난을 다루는 영화들이 보통 그러하다. <127시간>역시 개인에게 닥친 재난으로써 보는 이로부터 한껏 집중을 이끌어낸다. 너무도 생생한 탓에 아론 랠스턴에게 닥친 시련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조할 수 없게 만든다. 그의 팔과 나의 팔이 일치를 이루고, 함께 갇힌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긴 시간 함께 갇혀 있다가 비로소 그가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할 때는 '그가 탈출했다'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탈출했다'는 기분마저 든다.
다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이 이야기는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는 과연 포스터 홍보 문구의 말대로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꾸었는가?'에 대한 점이 특히 그렇다.
내 생각에 아론 랠스턴은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것이 아닌 것 같다. 큰 돌에 팔이 낀 상태에서 팔을 자르고 탈출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끝까지 불가능한 일이다. 팔을 자르고 탈출한다는 이 기괴한 결정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그것을 불가능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애초 가능한 것을 선택한 것일 테니까. 그가 처음부터 팔을 자르고 뚜벅뚜벅 탈출하지 않았던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힘든 선택지가 아니라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팔을 자르고서라도 살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팔을 자른다는 행위를 불가능으로 치부하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인데, 내 생각에 나라면 팔을 직접 자르느니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한 쪽 팔 없이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마취없이’ ‘직접’ 팔을 자르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팔은 레고의 그것이 아니니까. 너무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아닌 것을 선택해버린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것 같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홍보문구의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트집 잡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자신의 팔을 자르고 탈출한 사람을 예찬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을 종합해보면 이 이야기는 일종의 '인간승리' 서사로써 이해되는 듯하다. 사람들은 아론 랠스턴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과감하게 결단해서 살아남은 대단한 인물 정도로 요약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줄 수 있는 교훈이라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직접 팔을 잘라서라도 살아 남아라?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팔 하나 정도 잃고 살아남을 수 있다? 매사에 긍정적이다 보면 직접 팔을 자를 용기도 생긴다? 내가 볼 때 그가 직접 팔을 자르고 탈출한 사례는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모범은 아니다. 이 영화가 진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 말하지 않으면 위기에 봉착한다. 둘째,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일이 늘 달콤하지는 않다.
아론 랠스턴은 말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자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론이 사랑했던 여자와의 달콤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여자친구는 “알려줘. 널 해제할 암호.”라고 말하는데 아론은 “그걸 알면 넌 나한테서 못 벗어나”라고 농담처럼 대꾸한다. 그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사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고 만다. 따지고 보면 아론이 블루존 캐니언에 갇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유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알릴 수도 있었고, 단골 가게 직원에게 알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항상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약점을 알리지 않는 오만함.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객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탈출에 성공한 뒤에는 모험(여행)에도, 사랑에도 성공하는데 성공한 이후의 그는 이제 행선지를 꼬박꼬박 밝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겸손해졌다. 진정한 사랑이든, 일이든, 뜻하지 않은 위기에 봉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숨기지 않고 자꾸만 알려주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영화가 말하는 듯하다.
주인공의 재난을 우리가 부여받은 운명으로, 팔을 자르는 행위를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탈출하는 행위로 보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일이 늘 달콤하지는 않다는 깨우침도 주는 것 같다. 살다보면 큰 돌에 팔이 낀 것 같은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그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일수도, 팔을 자르고 탈출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는 없는 존재이므로, 기상이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듯이 주어진 운명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때로는 선택지가 아닌것, 불가능이나 다를바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운명을 이겨내고 새로운 국면으로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새로운 삶,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늘 달콤한 것은 아니다. 마치 영구적으로 한쪽 팔 없이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운명을 극복하는 그 치열하게 끔찍한 선택이 결국 나를 나로서 살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27시간>은 주인공의 결정 그 자체보다, 그에게 그러한 불운이 닥친 이유에 더 집중하는 영화다. 그리고 팔을 자른다는 그의 선택이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었으나 영구적인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오만함으로 쉽게 망가질 수 있으며, 자연재해처럼 닥쳐오는 운명을 이겨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논조의, 비관적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시각에서 <127시간>을 감상하다 보면 어쩌면 용기보다 두려움을 갖게 된다. 늦기 전에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낄 수 있기에 그렇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서댐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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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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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찰리> 예고편
내 이름은 찰리
화목한 가정,
잘나가는 정치인 아버지,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님,
넘치는 용돈까지.
그런데
나는 왜 지금 흔들리는 것일까?
담배 피고, 술 마시고, 마약하고,
점점 세상에서 나는 혼자가 되어 가고 있다.
급기야 난 선택의 여지없이 중독 재활 치료소에 가게 됐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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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메인 예고편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캠핑 여행을 떠난 ‘베가’와 ‘빌리’.
5살 나이에 딱 걸맞게 모든 게 신나기만 한 ‘빌리’와 달리,
9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베가’는
병원에 있는 엄마의 특명을 받아 아빠와 동생 챙기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뿔싸! 아빠가 강가 바위 틈으로 추락했다!
아빠를 구하기 위해 왔던 길을 거슬러 가보지만,
곧 드넓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떠오른 엄마의 한마디.
“포기할 거야? 아니면 슈퍼히어로가 될 거야?”
내 안의 슈퍼파워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
다 함께 외쳐봐! 토~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