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26 00:47:04
신데렐라를 꿈꿨던 또 다른 아노라에게
영화 <아노라>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웃음과 슬픔이 뒤섞인 신데렐라 스토리
- 아노라와 이반 사이의 간격을 보여주는 장면들
- 계단과 엘리베이터의 의미
-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은 대 환장 공방전
- 엔딩 결말 해석
아노라 (Anora, 2024)
신데렐라를 꿈꿨던 또 다른 아노라에게
개봉일 : 2024.11.06.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코미디,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 139분
감독 : 션 베이커
출연 : 미키 매드슨, 마크 아이델슈테인, 유리 보리소프, 카렌 카라굴리안, 바체 토브마시얀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아노라>는 진정한 사랑과 부를 꿈꿨던 여성 아노라의 이야기다. 아노라는 돈을 받고 잠깐의 사랑과 육체를 파는 성 노동자(스트리퍼)다. 그는 진심은 없지만 친절함은 가득한 말투와 아름다운 미모로 가게에 찾아온 남자 손님들을 홀려 돈을 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저분하고 천한 일이라 생각하는 직업이지만 아노라는 아무 불평 없이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러시아어가 가능한 스트리퍼를 찾는 부자 손님이 나타나고 아노라는 사장의 손에 이끌려 테이블로 향한다. 이번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기대보다 그냥 또 일이 생겼구나-싶은 딱딱한 마음으로 향한 한 테이블. 아노라는 그 테이블에서 지금껏 만난 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남자 이반을 만난다.
아노라에게 이반은 특별한 남자였다. 보통의 부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의 재력은 기본이고 아노라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첫 시작은 손님과 구매자였지만 이반은 아노라에게 쉴 틈 없이 사랑을 속삭이고 돈 한 푼 없어도 너랑 함께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프러포즈와 함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선물한다.
이반의 프러포즈 이후 마음을 활짝 열게 된 아노라는 한순간에 밀려온 거대한 행복을 만끽한다. 그리고 이반을 진정한 사랑이자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신분 상승 엘리베이터라 믿으며 온 마음을 다해 그를 붙잡는다.
하지만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이반의 부모님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하수인 3인방을 급파하고 이들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얼마 못가 위기를 맞이한다. 아노라는 그런 와중에도 우리의 사랑을 믿고 기대하지만 이반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아노라는 하수인 3인방과 시끄러운 공방전을 벌인다.
열심히 살아도 신데렐라는 될 수 없다고, 사랑을 믿어도 그것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진 않는다고. 그저 나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아노라>는 말한다. 이제 ‘누구나 행복한 신데렐라가 될 순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나이인데, 그럼에도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는 매번 내 가슴을 신랄하게 들쑤신다.
그래도 <아노라>가 좋았던 건 ‘나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을 마냥 나쁘게 하고 있진 않다는 점이다. 아노라는 언제나 최대한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고 적어도 한 명쯤은 그런 아노라를 존중한다. 션 베이커 감독은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내 그 한 명의 호의적인 시선으로 아노라를 바라보고 영화는 그것을 고스란히 담아내 스크린 밖에 있는 또 다른 아노라에게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아노라>를 보다 보면 자연히 아노라의 인생을 응원하게 된다. 이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아노라가 꼭 대단한 신데렐라가 되진 못해도 그가 진짜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션 베이커 감독의 성 노동자 지지 발언,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성매매 행위, 여성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압박 등 누군가에겐 불편함을 줄만한 표현과 장면들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보다 더 큰 웃음과 슬픔이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아노라>가 좋았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노라와 이반 사이의 간격
두 사람의 계층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들
아노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하는 성 노동자(심지어 이반의 어머니 갈리나는 창녀라며 대놓고 욕한다), 이반은 웬만한 부자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재벌 집 아들이다. 아노라와 이반은 거의 하늘과 땅만큼이나 먼 계층에 위치해있다. 아노라가 처음 이반의 집에 방문했던 날, 그는 두꺼운 철문 두 개와 그곳을 지키는 경비원, 커다란 현관문을 통과해 겨우 이반을 만난다. 아노라가 이반 같은 사람에게 닿으려면 이토록 두껍고 높은 관문들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심지어 그 관문들은 아노라가 자력으로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고 건너편에서 누군가 열어줘야만 통과할 수 있다.
여차저차 이반의 호의를 받으며 들어온 집안. 다음 관문은 침실로 가는 긴 계단이다. 이반은 익숙한 듯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 2층 침실로 올라가고 불편한 신발을 신은 아노라는 이반보다 느린 속도로 어렵게 계단을 오른다. 이때 이반은 "아, 기다려줄게.”라고 말하며 잠시 아노라를 배려해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2층에 도착한 이반과 아노라는 함께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눈다. 아노라는 이반이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런 부를 누리는지 궁금하다. 아노라가 직업을 묻자 장난을 치던 이반은 “니콜라이 자카로프 아들이야.”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아노라는 몸을 갈아서 돈을 버는 게 당연한 삶을 살아왔기에 이반에게 직업을 물어봤는데, 이반은 ‘누구의 아들’인 것만으로도 이런 걸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저 ‘니콜라이 자카로프 아들’이라는 것만으로 소개를 끝내는 이 상황이 참 우습고 슬프다.
아무튼 니콜라이 자카로프? 아노라는 그를 모른다. 사는 세계가 다르고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재벌 이름을 외우고 앉아있겠나. 이반은 구글에 검색하면 나온다며 철자도 알려주겠다고 한다. 이반의 이런 모습(+계단에서 기다려주기)은 얼핏 사랑과 친절함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우위를 점한 자의 여유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올라갈 땐 긴 계단, 내려올 땐 엘리베이터
익숙해질 때쯤 끝나버린 행복
이반은 아노라에게 프러포즈할 때 “너와 결혼하면 돈 한 푼 없어도 행복할 것 같아.” 라고 말한다. 돈 한 푼 없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아노라에게 이런 말을 하니 감미롭다기보단 우습다. 그런데 아노라는 여기에 그대로 넘어가버린다. 무시하기엔 이반이 주는 행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아노라가 사는 집은 지하철의 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늘진 공동주택이고 현관엔 오르기 귀찮은 계단이 있다. 그가 일하는 곳은 창문 하나 없고 소음과 어두운 조명으로 가득하다. 이에 반해 사람보다 큰 통창으로 이루어진 이반의 집은 햇빛이 잔뜩 들어오고 그 넓은 공간엔 좋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엘리베이터도 있고 운전기사가 대신 짐을 들어 운반해 주고, 또 고용인들이 청소도 대신해 준다. 이 외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삶이라니.
아노라는 처음엔 이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반의 품에 안겨서도 청소해 주는 고용인들을 곁눈질로 쳐다보고 카지노에서도 이반 일행에게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색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반의 사랑을 믿고 혼인신고를 한 후엔 일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이반의 집에 들어와 모든 걸 누리며 살기 시작한다. 아노라는 점점 자신이 신데렐라가 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신혼여행은 디즈니랜드, 공주방 리조트가 좋을까?” 고민하며 달달한 신혼생활을 기대한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현실이 들이닥치고 이반의 도주와 결혼 무효화까지 순식간에 착착 진행된다. 베가스에서 시작된 아노라의 꿈은 베가스에서 끝을 맺는다. 호화로운 전용기를 타고 베가스로 향한 이반의 아내 애니는 아노라가 되어 아이 울음소리로 가득 찬 좁은 이코노미 석에 다시 몸을 싣는다.
모든 일이 끝나고 이고르와 하루를 보낸 후 아노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침실에서 내려온다. 계단으로 침실에 올라가는 건, 이반과 부부가 되는 건 (이별보다 비교적) 오래 걸렸는데. 침실에서 내려오는 건, 이반과 남이 되어 현실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다. 이제 잠에서 깰 시간이다. 반야의 아내 애니가 아닌 아노라는 신데렐라가 되지도, 디즈니랜드에도 가지 못한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공방전
이 결혼에 대해 이반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그에게 아노라와의 결혼은 잠깐의 일탈, 그가 즐겨 하던 콘솔 게임 한 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반은 즐거운 미국 여행을 위해 돈을 주고 스트리퍼 아노라를 구매해 잠깐 ‘반야’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됐고, 이제 그것을 버려야 될 때가 왔음을 알고 순순히 결혼 무효화에 동참한다. 그래서 아노라와 어머니가 뭐라고 말하든 이반은 할 말이, 꼭 해야 할 말이 없다. 아노라와의 결혼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 바꾸려고 노력할 만큼의 가치가 없으니까.
하지만 아노라는 할 말이 참 많다. 그는 이 결혼에 모든 걸 걸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곁가지로 매달린 하수인 토로스, 가닉, 이고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생계, 인생을 위해 꼭 결혼 무효화에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할 말이 많다.
우리는 진짜 사랑한다고, 우리는 꼭 이걸 무효화 시켜야 한다고, 나 이 일하다가 뇌진탕 온 것 같다고. 한바탕 몸싸움이 일어난 이반의 집 거실에서 아노라, 토로스, 가닉의 온갖 말들이 뒤섞이며 대 환장 그 자체인 상황이 벌어진다. 다들 가진 건 없는데 할 말은 참 많다. 이 영화는 그 모든 말들을 하나도 거르지 않고 다 들려준다.
이런 면에서 <아노라>는 성 노동자를 위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모든 노동자를 위한 영화이기도 한 것 같다. 생계를 위해 군말 없이 일을 하는 아노라처럼, 이반을 찾기 위해 캔디 샵을 부수고 견인차에 걸린 차에서 엑셀을 밟는 토로스 일행처럼 그저 생계와 고용인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그런 이들. 영화는 이들의 마음속에 들어있을만한 온갖 불평과 짜증들을 아노라와 하수인들의 입을 통해 한 공간에 풀어놓는다. 이게 정말 우습고 골 때리기도 하고.. 한편으론 공감되고 슬프기도 하다.
내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
결말 엔딩 해석
결혼 무효화가 끝난 후 아노라와 이고르는 이반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이고르는 아노라에게 이고르라는 이름은 ‘워리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알려주며 ‘아노라’라는 이름엔 무슨 뜻이 있냐고 묻는다. 아노라는 “미국에선 이름 뜻 생각 안 해.”라고 말한다. 아노라의 답을 들은 이고르는 휴대폰을 들어 아노라의 이름 뜻을 찾아 알려준다. 석류, 빛, 밝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난 애니보다 아노라가 좋아.”
극 중에서 아노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끔 ‘아노라’라는 이름을 부르긴 하지만 그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존중해 주진 않는다. 아노라 또한 자신의 이름에 관심이 없고 아예 진짜 이름보다 애니라고 불리고 싶어 한다. 아노라는 스트리퍼 아노라, 진짜 아노라의 인생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이반을 만난 후엔 신데렐라 애니의 삶을 꿈꾼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고르가 나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내 이름과 내 인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감기 걸린다고 스카프를 주고, 본인도 좁은 비행기 좌석에 불편히 앉아있으면서 내 편의를 챙겨주고, 내 짐을 들어 계단 위로 올려다 주고, 내가 빼앗긴 다이아몬드 반지를 슬쩍해 가져와주고.. 아노라는 이런 이고르의 성의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다. 돈을 주는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던 것처럼.
하지만 이고르는 애초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아노라와 한 공간에 있다는 이유로 그를 강간할 생각도 없었고 다이아몬드로 그의 몸을 살 생각도 없었다. 이고르는 ‘무언가를 받으면 내 몸을 줘야 한다’는 아노라가 믿어온 이치를 부순다.
이고르의 이런 행동이 아노라를 향한 성애에서 시작된 것인지, 연민, 동질감에서 시작된 것인진 알 수 없지만, 이고르는 아노라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대가 없는 호의를 전한다. 아노라가 이반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받지 못한 따뜻한 마음. 결국 아노라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건 저 위에 있는 왕자님이 아닌 무시하고 오해했던, 아노라와 같은 계급의 노동자 이고르다.
인생역전을 시켜줄 왕자와 그의 수혜를 입을 신데렐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노라에겐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이고르가 있다는 것이다. 둘이 꼭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 않아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그저 이 쪽팔리고 서러운 순간에 아노라의 옆에 이고르가 있어준 것, 조용히 아노라의 눈물을 받아줄 이고르의 가슴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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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여져 다른 옷을 입는 마법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좋아했던 영화의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오면 겁이 덜컥 겁이 난다. 혹시나 애정 했던 그 영화가 잘못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 영화를 사랑했던 시간들마저 훼손될까봐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조마조마하다. 그래서 좋아했던 영화의 리메이크작은 찾아 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우연히 본 영화가 너무 좋았는데, 리메이크작임을 알게 된 순간 덕질이 시작된다. 원작을 찾아보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석하고, 그 영화의 원작이 또 있는 경우에는 또 깊이 들어가 원작 소설이나 웹툰, 웹소설을 찾아 보는 기쁘고 즐거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소울메이트>는 단연코 후자다. 1998년 처음 만난 ‘하은’과 ‘미소’가 10대를 지나 어른이 되기 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20년전 청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재와 소품들 그리고 제주도와 서울이라는 장면과 물리적인 거리감들, 그 사이를 채워주는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은 당연히 오리지널일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운 맛의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열심히 탐구하게 된 영화다.
초등학생 시절,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하은’은 조금은 자유롭게 엉뚱한 ‘미소’의 전학으로 처음 만나게 된다. 그림을 좋아했던 둘은 서로 그림을 그리며 가까워 졌고, 제주도에 미소만 남겨두고 떠난 엄마 대신 하은의 부모님과도 가깝게 지내며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가 되어간다. 시간이 지나 2004년 고등학생이 된 두 사람. 하은의 첫사랑 ‘진우’가 나타면서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미소는 학교를 그만두고 제주도를 떠나려하고, 하은은 그런 미소를 붙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헤어진 미소는 서울에서, 하은은 제주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간다. 거칠고, 때로 각박하고, 자유로운 미소의 삶. 단정하고 차분하고 안정적인 하은의 삶은 닮은 구석도 닿을 곳도 없어 보인다.
사랑과 배려가 때로 더 큰 오해를 가져오기도 하고, 자격지심으로 비뚤어져 버리기도 한 복잡한 감정과 사건사이에서 진실과 진심에 다가가는 과정이 가슴 아프게 그려진 영화다. 원작으로 알려진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대만 금마장영화제에서 역대 최초로 공동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쉽게 <소울메이트>가 <안녕,나의 소울메이트>를 리메이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의 원작은 따로 있다.
중국의 작가 칭산이 200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칠월과 안생>인데, 소설 발표 후 2002년에는 만화로, 2011년에는 연극으로 각색되었고, 이후 2017년에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라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된다. 그 후 2019년 소설의 제목 그대로 <칠월과 안생>으로 무려 53부작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소울메이트>는 그 이후 2023년에 개봉되었다. 원작 소설의 문장도 섬세하지만,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심리나 생각 등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 않아, 오히려 영화가 더 좋았다는 평도 많다.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확실한 편이고, 두명의 친구가 각기 다른 성격과 환경에서 성장해가며 겪는 스토리가 조금은 격동적이라 그런지 단편 소설이 이토록 다양한 장르로 확대 재생산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사례를 보여준 것 같다. 특히 다른 콘텐츠로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채널과 시리즈의 길이, 혹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도 있어서 각 콘텐츠를 유심히 본다면 콘텐츠를 좋아하거나, 혹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여져 다른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리메이크작의 묘미’ 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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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게 살자.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머릿속이 시끄럽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학업부터 직장, 돈, 사람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대인에게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의 주인공 '마르타'가 말한다. 그렇게 많은 것을 고민하며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Out of My League, Sul più bello>는 희귀 유전병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는 '마르타(루도비카 프란체스코니)'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다. 이탈리아 토리노를 배경으로 지역 랜드마크인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와 포 강(povor)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유럽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개봉 당시 이탈리아에서 우수한 흥행 성적을 거두며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넷플릭스가 판권을 구매하며 유럽 전 지역에 공개되었고 세 번째 시리즈가 제작될 예정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키싱부스> 등 인기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제작한 넷플릭스의 선택이니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할 만하다.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를 1분 30초 만에 확인하기▼
영화의 구성은 주인공 '마르타'를 둘러싼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그녀의 소꿉친구 '페데리카(가야 마시알레)', '야코프(요체프 기우라)'와의 우정이다. 세 사람은 한 집에 살며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 심지어 3살 때 부모님을 잃은 '마르타'의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페데리카'와 '야코프'는 아이를 낳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는 '아르투로(주세페 마조)'와의 사랑 이야기다. 집안과 학벌, 외모 등 빠지는 부분 없이 완벽한 그는 마르타를 까칠하게 대하지만, 곧 그녀에게 빠져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꾼이 된다.
익숙한 로맨스 클리셰는 요즘 감성에 알맞은 연출과 영화 미술이 합쳐져서 톡톡 튀는 개성을 지닌다. 다채로운 카메라 구도와 편집으로 인물의 시선과 행동을 지루하지 않게 담아낸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세련된 영상미와 음악으로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몬스 침대의 광고와 비슷하다. 인물의 의상이나 소품은 강렬한 원색 계열이되 빈티지한 색감을 사용해서 감각적이다. '페데리카'가 화려한 빨간 머리에 대비된 초록색 재킷을 입어도 주변의 색감과 어우러져 홀로 튀거나 어색하지 않다.
또한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는 일상과 밀접하면서 로맨스 코미디에서 흔하게 등장하지 않은 장소인 마트를 활용한다. 마트는 '마르타'가 할인 상품 안내 방송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소로 그녀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장소이다. 첫 데이트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마트를 헤매는 '아르투로'의 모습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Q.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한가요?
'아르투로'를 만난 순간부터 '마르타'의 행동은 거침없다.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학교와 조정 클럽을 따라다닌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아르투로'의 질문에 당당하게 '저녁 식사'를 외치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녀의 직진 본능은 스스로 인생을 선택한 적 없던 '아르투로'의 사랑을 얻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안타깝게도 '마르타'의 병세는 악화되고 그녀는 '아르투로'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별을 고민한다. 연애를 통해 달라진 '아르투로'는 사랑은 원래 수많은 헤어질 이유가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만 신경 쓰자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결국 그들은 현실적인 이유를 고민하기보다 서로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무한한 사랑을 약속한다.
단순하고 거침없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시종일관 해맑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행동할 용기를 준다. 그러니 영화가 끝난 후엔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단순하게 행동해보자. 영화 속 '마르타'와 '아르투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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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객이 전도된 마블의 쿠키 인질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혼자서도 거뜬히 은하계를 수호하는 히어로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어느 날, 우주선에서 이상한 신호를 감지한 후 정찰을 떠난 그녀는 평소와 달리 계속해서 열려 있는 '점프 포인트'를 발견한다.
그런데 점프 포인트에 손을 댄 바로 그 순간부터 캐럴에게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캡틴 마블의 광팬이자 고등학생 히어로인 '미즈 마블/카말라 칸'(이만 벨라)과 빛의 파장을 조작하는 히어로 ‘모니카 램보’(티오나 패리스)와 위치가 바뀌기 시작한 것.
'닉 퓨리'(새뮤얼 L. 잭슨)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크리족 리더 '다르-베'(자웨 애쉬튼)의 음모로 인해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셋. 그렇게 팀 '마블스'는 캡틴 마블에게 복수하고 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을 파괴하려는 다르-벤을 저지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똑 닮은 자매, <캡틴 마블>과 <더 마블스>
2019년에 개봉한 <캡틴 마블>은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 관객 500만 명을 돌파했고, 전 세계에서 1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다만 비평적으로 호평받지는 못했다. 히어로 영화 1편의 기본 소양이 부족했기 때문. 슈퍼히어로는 자기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뇌한다.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토르도 예외는 없었다. 반면에 <캡틴 마블>은 캐럴 댄버스의 책임감을 어필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서사가 빈약하니 보조 플롯도 조명받지 못했다. 예를 들어 <캡틴 마블>에서는 여성 서사 못지않게 의외로 강조된 이야기가 있었다. 난민이다.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우주 난민 스크럴 종족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를 통해 <캡틴 마블>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지중해 난민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의 틀을 깔 수 있었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캡틴 마블>의 속편이자 캡틴 마블, 미즈 마블, 모니카 램보의 팀업 무비인 <더 마블스>는 1편의 행보를 따라간다. 의외의 선택은 있다. 굵직하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린다. 세 히어로의 능력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캡틴 마블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서사와 캐릭터성은 여전히 완성도가 높지 않다. 결국 차기작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만 뇌리에 남는다. 이조차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기대감만 키운 전편 행보를 따른다.
캡틴 마블의 성장기
물론 1편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곳곳에 있다. 특히 캡틴 마블의 내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캡틴 마블>과 <엔드게임>에 이어 이번 영화 초반부까지 캐럴 댄버스는 독선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누구보다도 강력하기에 그녀는 옳다고 믿는 일을 저지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크리의 모성인 '할라'를 급습해 행성을 관리하는 A.I. '슈프림 인텔리전스'를 파괴했다. 관리 체계가 없어진 할라는 내전에 휩싸이고, 대기, 물, 태양광 같은 자원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캐럴에게는 '말살자'라는 이명이 붙었다. 또 이 오명을 혼자 힘으로 씻어내기로 결심하고 지구로의 귀환도 차일피일 미룬다. 그 때문에 어릴 때 캐럴을 가족처럼 따르던 모니카와의 관계도 엉망이 된다.
<더 마블스>는 캐럴 댄버스가 자기 독선과 오만으로 인한 과오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빌런 ‘다르-벤’과의 대결을 통해서는 본인이 초래한 참극을 직시하고 자기 힘으로 할라의 문제를 해결한다. 특히 자기 광팬인 고등학생 히어로 미즈 마블, 절친의 딸 모니카와 팀으로 활동한 대목이 주효했다. 부끄러운 과거와 고민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졌고, 독선적인 면모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므로.
우주 경찰 캡틴 마블, 지구 경찰 미국
MCU 속 캡틴 마블의 독특한 위상을 고려하면 그녀의 변화는 꽤 흥미로운 은유이기도 하다. 캡틴 마블은 압도적인 히어로다. 광속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고, 크리 족이나 타노스의 함선을 단신으로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타노스와 일신으로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를 현실의 지구에 대입하면 꽤 의미심장한 비유가 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보여주기 때문. 캡틴 마블이 우주를 마음껏 넘나들듯이 미국은 지구의 바다와 공중을 넘나드는 유일한 국가다.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를 풍비백산할 수 있는 군사력을 투영할 수 있는 국제적 위상도 캡틴 마블의 존재감과 유사하다.
그런데 <더 마블스>는 캡틴 마블의 힘을 부정한다. 간신히 보금자리를 만든 후 크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스크럴. 그러나 그들은 협정 체결 직전에 캡틴 마블 때문에 다시금 행성을 잃는다. 그들은 캡틴 마블을 비난한다. 힘이 얼마나 강한 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설사 크리가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 게 아니라 해도, 그녀 때문에 다시 한번 피해를 입었다면서.
이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비롯해 미국이 개입한 수많은 국제분쟁을 연상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그간 MCU 속 영웅들의 서사와도 일맥상통한다. 미국 군수산업의 모순을 지적한 아이언맨,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한 캡틴 아메리카와 유사한 국제관계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건만 남고 주인공은 사라지는 마법
문제는 1편처럼 엉성한 플롯이다. 부실한 완성도 때문에 영웅의 성장담도, 비유도 부분적으로만 드러난다. 배경을 쌓아 올릴 충분한 분량이 쌓이기도 전에 일단 사건 속으로 주인공을 던져 놓는다. 실제로 <더 마블스>는 시작과 동시에 점프 포인트 때문에 파괴된 행성과 세 주인공의 위치가 뒤바뀌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후 해결법을 찾고, 한 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좋게 보면 짧은 러닝타임에 걸맞은 시원한 전개다. 하지만 <더 마블스>의 핵심이 캡틴 마블의 성장과 팀업이라는 걸 고려하면 적절한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없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여유를 충분히 주지 않은 채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관객은 쏟아지는 정보를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그 과정에서 주인들의 갈등도 날림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그들이 한 팀을 만드는 과정에 몰입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캐럴과 모니카의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캐럴의 절친이자 모니카의 어머니인 '마리아'(러샤나 린치)의 부고를 지키지 못한 일을 포함해 수십 년의 앙금이 쌓인 문제니까. 그런데 영화는 둘 사이에 활달한 제삼자 카말라를 완충지대로 투입해 10분도 되지 않은 사이에 모든 감정의 골을 메워 버린다. 캐럴이 자기 독선과 과오를 깨닫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 변화를 체감할 수가 없다.
즉, 영웅이 성장할 방향은 알려주지만, 사건에 캐릭터가 묻혀 버린 형국이다. 현란한 CG, 더 귀여워진 구스와 다른 아기 플러큰의 활약이 지나가고 나면 정작 주인공이 뭘 했고,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성장했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파악할 수가 없다. 이는 <토르: 러브 앤 썬더>, <앤트맨 앤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목도한 문제와 똑같다.
조연도, 빌런도 함께 실종된다
다른 캐릭터도 존재감을 보여줄 수가 없다. 주인공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바쁜데 다른 조연들의 서사에 투자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자연히 <더 마블스>는 불친절해진다. 일단 모니카와 미스 마블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 없다. 디즈니+에서 <완다비전>과 <미스 마블>을 보지 않으면 두 히어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스쳐 지나가는 플래시백 외에 전무하다.
그러니 '마블스'라는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세 여성 히어로의 연대를 그려낸 여성 영화라지만, 정작 셋의 연대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여성 서사 관련 논쟁도 무의미하다. 그나마 능력을 쓸 때마다 서로 위치가 바뀐다는 점을 살려낸 초반부 액션씬이 눈을 사로잡지만, 그조차 점점 매력을 잃는다. 액션의 절대적인 양도, 스턴트 액션의 박력도 부족하기 때문. 관객이 MCU에 기대하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
빌런도 마찬가지다. 사실 다르-벤은 꽤 입체적인 인물이다. 캡틴 마블이 미국에 대한 은유라면, 그녀는 개발도상국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르-벤은 캡틴 마블 때문에 파괴된 할라를 복구하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기 때문. 즉, 그녀의 행적은 환경이라는 더 큰 선을 위해 개발도상국도 희생을 감내하라는 선진국 논리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크리 제국이 빌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맥락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더 마블스>는 다르-벤에게 뱅글과 코스미 로드(망치)로 점프 포인트를 열어 위기를 조성하는 역할 그 이상을 맡기지 않는다. 그녀가 캡틴 마블과 적대하게 되는 계기에 대한 설명도 딱 한 장면뿐이다. 그녀의 최후 역시 히어로와 대립한 결과보다는 자멸에 가깝기 때문에 임팩트가 크지 않다. 타노스, 로키, 제모 남작, 웬우 등 과거 MCU의 빌런을 돌이켜보면 MCU가 빌런 레시피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쿠키 영상을 보기 위한 100분
결국 남는 것은 쿠키 영상뿐이다. 본편 끝에는 카말라가 드라마 <호크아이>의 주인공 케이트 비숍을 만나며
'영 어벤저스(Young Avengers)'의 등장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엔딩 크레디트 후에는 멀티버스를 매개로 MCU와 기존 20세기 폭의 엑스맨 시리즈의 만남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이 있다.
두 장면 모두 마블 팬의 심장을 뛰게 하기는 충분하다. 특히 엑스맨과 MCU의 만남은 디즈니가 20세기 폭스 스튜디오를 인수한 이후로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린 이벤트다. MCU의 다음 작품이 <데드풀 3>인 점도 팬들의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기대감도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상업적으로는 훌륭한 전략일지 몰라도, 본편 완성도를 고려하면 MCU 영화가 일종의 '쿠키 영상 인질극'으로 변질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더 커진다. 특히 한국 관객은 기대보다 실망이 커도 놀랍지 않다. 마블 코리아가 적극적으로 홍보한 '얀 왕자', 박서준의 출연 분량이 카말라의 가족이나 구스보다도 적기 때문.
Dreadful 끔찍한
멀티버스와 팀업이라는 강박. MCU의 엑스맨마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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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상처와 온기, 그 선명한 기록
치열한 생존 눈치싸움 –〈우리들〉이 포착한 아이들의 세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만들어진다. 친한 친구들끼리 무리가 형성되고, 소속과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말 한마디, 우연히 엿듣게 된 대화, 한순간의 표정 변화만으로도 관계의 역학이 흔들린다. 영화 **〈우리들〉(2016, 윤가은 감독)**은 이 미묘한 감정을 치밀한 시선으로 포착하며, 아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치열한 눈치싸움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표류하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끈
영화는 친구 관계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색한다. 주인공 선은 새 학기를 앞둔 여름방학, 전학 온 지아와 가까워지면서 처음으로 ‘친구를 만든다’는 감각을 경험한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관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무리에 속하지 못한 선과 새롭게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지아는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며, 서로를 밀어내기도 하고 붙잡기도 한다. 윤가은 감독은 이를 통해 ‘우리’라는 집단 안에 속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우리들의 시선 – 낮은 눈높이에서 본 세계
〈우리들〉이 돋보이는 지점은 아이들의 시선을 정확히 포착하는 촬영 방식이다. 카메라는 철저히 주인공들의 눈높이에 머물며, 어른들의 세계를 배제한 채 또래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또한 긴 롱테이크와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 기법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단순한 아동 영화가 아닌, ‘어린 시절’이라는 시기를 살아본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끌어낸다.
〈우리들〉이 남긴 여운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왕따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쁜 아이’도, ‘착한 아이’도 없다. 선과 지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아이들은 그저 ‘우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칠 뿐이다. 영화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집단의 잔인함을 고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집단 안에 속하고 싶어 하는 개인의 절박함을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다.
결국 〈우리들〉은 특정한 세대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순간을 정밀하게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의 감정을 여과 없이 담아낸 이 영화는, 우리 각자가 거쳐 온 길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선의 동생인 윤이가 한 말이다.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그때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했는지. 우리는 왜 그게 잘 안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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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자연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 영화 '교섭'
실화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에 외면했던 영화이다. 하지만 한 번쯤 보아도 좋을 법한 작품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보았다.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배경으로 했지만, 오프닝에 보여주듯 그것이 영화를 제작한 주 목적은 아님을 밝힌다. 그저 이건 극을 이끌어가는 소재일 뿐이라고.
예전에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미국인의 기사를 접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자국민의 생명을 저리 살려낸 일이 있었던가를 두고 한동안 궁금했었다.
비록 정부 차원에서 가지 말라던 땅에 가서 의료적인 도움을 준 것이 화근이 되었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은 믿음직스러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각종 고문과 자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던 대한민국은 지나갔고, 어떠한 목적으로 그들이 갔든 그들의 목숨을 구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외국에 나갔을 때 나의 생명을 저리 살려주겠지'라는 마음을 들게 만들어주었다.
두 남자의 버디무비, 장르는 액션, 드라마, 스릴러, 시대극, 어드벤처를 띠고 있는 영화 '교섭'을 만나보자.
교섭
교섭은 임순례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은 1996년 장편영화 '세 친구'로 데뷔했다. 신인 감독 시절 영화 평론계의 정점에 서있는 기념비적 인물로 알려진 '정성일'이 극찬한 인물이다. 그 당시 정성일 평론가가 주목할 신인 감독으로 임순택, 김기덕, 홍상수를 거론하였는데, 이 셋 모두 현재 영화계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1960년 인천광역시 출생으로 대한민국 핸드볼을 소재로 삼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일명 우생순)'을 제작했으며, 이외 다수의 작품을 감독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 소재의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 (2003)' 중 외모 지상주의를 다룬 '그녀의 무게' 부분을 연출하였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에브리원 에브리씽 올 앳 원스'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아시아계 '양자경' 여배우가 수많은 여성 배우들이 연기의 스펙트럼과 작품의 선택 폭이 넓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여배우들의 연기 생활이 외모로서만 어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참고로 '몬스터볼'로 유색 인종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할리 베리'가 시상자로서 참석해 더 빛났던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개봉일은 2023년 01월 18일로 설 연휴를 겨냥한 작품이었으나, 초반부의 순조로운 스타트와는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 밀리고, 여러 이유로 인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제작비는 150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은 관객 수 350만 명이었으나, 동원된 수는 대략 170여만 명이었다.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진 영화였으니 볼거리가 있는 편이다.
관람 수위는 12세 이상으로 부모 동반하에 자녀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실제 피랍 사건은 2007년 7월 21일 발생하여 사건 종결까지 44일이 소요되었으나, 영화 내에서는 2006년 9월 19일에 발생, 극의 긴장감을 유발하며 18일 만에 상황 종료가 이루어진다.
작作 중 '김선일 사건'과 '마부노호 피랍사건'이 잠깐씩 나오는데, 김선일 사건은 이라크전과 마부노호 피랍사건은 소말리아와 연관되었다.
황정민 배우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22년 만에 임순례 감독과 다시 촬영한 작품이며, 그의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가는 듯싶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황정민 배우의 연기 자체는 탁월하고 좋지만, 그가 어떠한 작품에 출연했다면, 어떠한 톤과 어떠한 목소리로 어떠한 표정으로 연기를 할지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배우의 연기에 대한 새로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교관 '정재호'를 연기하는 황정민과 일명 또라이로 불리는 국정원 '박대식'을 연기한 현빈,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유일하게 파슈토어를 구사할 줄 아는 '카심'과 '이봉한' 역을 맡은 강기영
이 세 명을 한 영화 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관객들이 있을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문화적인 차이가 큰 아프가니스탄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가 있으며, 2020년 7월부터 9월까지 요르단 해외 로케이션을 한 덕분에 광활하게 펼쳐진 그 땅의 자연을 보는 것도 감상의 한 묘미이다.
샘물교회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이 발생할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아프간에서 의료봉사를 많이 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저 나라를 간다면, 문화적 차이에 낯설고 이질적인 차이로 그들을 밀어낼 것인가.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더 알아가고 그것을 통해 그들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액션이 있지만, 드라마 라인도 함께 해 감정선을 건드리는 부분들이 함께 한다.
김선일 피랍사건 당시 인질을 구출해 내지 못한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박대식은 아프가니스탄의 인질들을 구해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자리로 간다. 사람들의 희생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며, 일명 또라이라던 그의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해 있음을 보게 한다.
쟁쟁한 배우들을 본다는 것, 지나간 사건을 재조명해 본다는 것, 촉망받았던 신인 시절을 지나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감독의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 등등 수많은 이유로 이 영화를 접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차이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것과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영화 '교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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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라는 활로 쏘아올린 사회비판의 화살
촬영
<괴물>은 주로 수평과 수직 관계가 많이 등장한다. 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괴물이 살고 잇는 하수구나 지하는 수평의 촬영으로, 높은 빌딩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다리 사이의 공간을 촬영할 때는 수직의 촬영을 이용하여 보는 이가 괴물의 위압감이나 등장 전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중요한 포인트를 촬영이 짚어준다.
비
'비' 라는 존재는 어떨까 생명의 힘이 깃들고 차분해지는 이미지도 있다마는 이 영화에서는 신비롭고 영롱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둡고 잔잔한 분위기에서 괴물이 깜짝 등장했다고 생각해보자. 공포나 긴장감이 두 배로 나올 것이고, 괴물이라는 소재에 은연히 드러나는 사회 비판에 대한 어두움을 표현하기에 비 만큼 어울리는 배경은 없을 것이다.
사회비판
처음에 봤을 때는 그냥 괴물에 맞써 싸우는 가족들의 사투와 애환에 관한 내용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쾌하면서도 묵직하고 예민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걸 영화를 다 보고 깨닫게 되었다. 한강에 독극물을 타는 초반 시퀀스는 실제로 2000년에 있었던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을 생각내게 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밖에도 정부의 미흡한 대처능력과 괴물이라는 소재가 아니라도 충분히 갈등이 벌어지는 문제들을 <괴물>에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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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주얼과 흥이 살아있는 모아나 2 / 전작보단 별로인듯 / 열정적인 음악과 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모아나 2" 후기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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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큐!! 극장판 / 쓰레기장의 결전 / 많이 보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 쇼요와 켄마의 매력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끝나고 제대로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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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공식 예고편
“이것은 그 무엇도 아닌 학대다” 2019년 대한민국, 가장 끔찍한 지옥을 추적하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5월 1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