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2-03 18:32:13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영화 <물비늘> 리뷰

SYNOPSIS.
‘예분’은 손녀 ‘수정’을 사고로 잃은 뒤 삶이 1년 전 그날에 멈춰버렸다.
손녀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매일 같이 강가에 나가는 ‘예분’ 앞에 손녀의 절친 ‘지윤’이 나타난다.
두 사람에겐 들어야 할 진실이 있고, 삼켜야 할 비밀이 있는데…
진실과 비밀 사이 깊은 슬픔이 일렁인다.

#각자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스쳐간 자리는 그 이전과 영영 같을 수 없다. 설령 떠나간 이가 나에게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구멍이 난 유리창이어도, 깨진 곳 없는 유리창과는 같을 수 없다. 그 작은 구멍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불어와, 누군가의 빈 자리를 절감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주 작은 순간일지언정.
하물며 이 이야기 속 예분과 지윤에게는. 손녀를 잃은 할머니 예분,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은 중학생 지윤. 이들은 다른 부위에 난 같은 상처를 안고, 매일 다른 물로 뛰어든다. 예분은 손녀를 삼킨 강에 금속 탐지기를 들고 나가 손녀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것을 매일 찾고, 지윤은 친구와 함께 있던 수영장에 매일 들어간다. 하나의 상실이 남긴 각자의 상처, 각자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매일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매일 뛰어드는 물 속의 축축함이 관객석까지 넘실넘실 전해진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문장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중간중간 교차하는 과거의 장면들을 보면서, 예분과 지윤의 시간을 순서대로 톺아볼수록 더욱 축축해진다.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현재, 그 사이 이들에게 있었을 무수한 감정들이 겹겹이 전해져서다.
#중첩되는 소리 속에서
이렇게 감정을 겹겹이 전달하는 데에는 소리가 큰 몫을 한다. 수정이 사고를 겪은 당일부터,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중첩되고 혼재되기 시작한다. 거센 빗소리, 경찰차 사이렌 소리, 수정을 잃은 엄마의 울음 소리...들이 어지러이 섞여들면서. 아주 거대한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쉽게 삼켜 슬픔으로 중첩시키고,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예분의 금속 탐지기 소리처럼, 때로는 진실을 찾으려 날카롭게 세운 소리가 반대로 귀를 막기도 한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헤매는 예분처럼.

사실 예분에게, 지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진실을 드러내고 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깊고 진득한 자책을 덜어낼 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를 잃어버린 빈 자리를 돌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그토록 숱하게 죽은 몸을 어루만지고, 누군가의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살았던 예분이지만 정작 손녀의 죽음과 거기 어린 자기 감정들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토록 함께 뛰어들던 물 속, 그 익숙한 감각 안에서 친구를 잃은, 이어지는 상실 속에서 도저히 여유가 없는 지윤 또한 마찬가지다.

#물결도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이러한 두 사람이 부딪쳐 파장이 이는 자리마다 삶과 죽음이 물비늘처럼 몸을 뒤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마주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찾고자 혹은 감추고자 한 것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진짜 필요했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가까워지고 다가서는 두 사람의 장면들을 통해, 두 사람의 거리 사이에서, 영화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피워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음 이후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뭐부터 버려야 돼요?" 묻는 지윤에게 "남길 것부터 정리해야지." 말하는 예분의 차분한 어투다. 그렇게 죽음의 대처법을 가르치고서는 정작 지윤을 데려가는 곳이 병원과 식당으로, 죽음에 앞서 삶부터 가르친다는 점 또한.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맞붙어 있다. 삶은 애초에 그렇게, 무수한 이들의 삶과 죽음이 조각조각 물비늘처럼 맞붙어 강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하나의 물비늘, 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지도. 그러나 설령 이 하나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이라 해도, 강은 그런 식의 물비늘이 모여 반짝반짝 흘러 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뒤채는 만남과 헤어짐, 이해와 오해, 그 틈바구니 삶이라는 곳에 우리 그저 소리 없이 나란히 눕는다면. 다른 베개, 다른 이불, 다른 부위의 같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그대로, 그저 같은 요 위에 나란히 눕는다면. 그때 비로소 이 마음에서 축축하고 눅눅한 습기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사실, 모든 축축한 것을 마르게 만드는 햇볕이니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12월 6일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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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캡틴
더 캡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지만, 비이성, 광기의 시대에서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블랙 코미디. 영화는 매우 역설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입장에서 독일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마치 '세르비안 필름'처럼 세르비아인 감독이 자기 나라에서 저지른 폭력을 포르노에 빗대어 고발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헤롤트가 우연히 발견한 장교복을 입으면서, 제복의 힘에 경도되는 과정과 인간성이 파괴되는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4월, 헤롤트 일병은 탈영한다.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듯, 이 시기에 독일군 탈영병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전쟁 끝무렵이니 완전히 수세에 몰린 독일군이 계속 후퇴하고 있었고, 여기서 죽는 건 그야말로 개죽음이라고 생각한 병사들이 하나둘 탈영을 시도했다.
독일 헌병대에서는 이렇게 탈영한 군인을 잡아들이거나 즉결 처형하기도 했는데, 이 와중에 헤롤트 일병의 실화가 발생한다. 헤롤트는 탈영을 하지만 당장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막막하다. 그러다 우연히 길가에 세워진 군용 짚차에서 트렁크를 발견하고, 그 안에 공군 대위의 제복과 군화를 비롯한 훈장 등 완벽한 세트를 발견한다.
고작 스무 살의 어린 헤롤트였지만, 이미 1년 정도 전방에서 전투에 참전했었고, 초반에는 매우 영웅적인 군인이어서 '철십자훈장'을 받을 정도로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 헤롤트가 어떤 이유에서 탈영을 한 것인지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리지만 이미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철십자 훈장까지 받은 경력을 보면, 나름 배짱도 있고, 머리도 있는 인물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헤롤트는 장교 군복을 차려 입고, 스스로 장교가 된 것으로 자기 최면 및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는 탈영병을 모아 '헤롤트 부대'를 만든다. 그는 후방을 다니며 마주치는 탈영병을 규합하고, 농가에서 밥과 술을 얻어 먹으며 다니는데, 탈영병을 추적하는 헌병대를 만나 위기에 놓이지만, 헤롤트는 자기가 '최고지도자'의 직접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큰소리 치며 위기를 넘긴다.
헌병대 대위와 함께 탈영병들이 잡혀 있는 임시수용소에 도착해 수용소장 쉬테의 환대를 받는다. 쉬테는 탈영병들을 죽이고 싶지만, 그럴 경우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불만만 터뜨리고 있는데, 헤롤트가 쉬테에게 '총통의 특명'을 받고 있으니 자신이 직접 탈영병들을 처리하겠다고 큰소리 친다.
헤롤트는 단지 자신이 살기 위해 공군 장교 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장교가 되었다는 확신에 차서 말하고 행동한다. 그가 일병이었을 때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탈영병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쥐게 되면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벌어지는 상황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헤롤트와 그의 부대가 탈영병 약 90여 명을 대공포로 살해한다. 탈영병이라 해도 같은 독일인이고, 전선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임에 틀림없으며, 헤롤트 자신도 탈영병이었던 걸 생각하면, 헤롤트는 자신이 탈영병이라는 죄의식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헤롤트가 갑자기 장교복을 입고, 장교의 권력을 갖게 되면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이때 헤롤트의 본성이 잔혹하고 폭력적이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전투를 통해 선량한 청년이었던 헤롤트가 점점 괴물로 변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헤롤트의 행위가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있어도, 독일군이 같은 독일군을 살해한다는 점에서 나치의 폭력성, 전쟁광 히틀러와 독일군의 야만성을 풍자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헤롤트의 광기는 순박한 청년이 전쟁에서 미쳐가는 과정과 함께, 당시 1차,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광기와 폭력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건은 뒤에서 발생한다. 탈영병들을 살해한 헤롤트와 그의 부대는 신고를 받고 들이닥치 육군헌병대에 체포된다. 헤롤트도 이 과정에서 체포되며 그가 장교가 아닌, 일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헤롤트는 군사법정에 서게 되는데, 재판장은 장교사칭, 탈영병 학살의 죄를 물어 사형을 집행하려 하지만, 다른 장교가 헤롤트의 행동은 독일군인으로 충분히 할 수 있었던 행동이며, 독일이 전쟁에서 져도 나중에 독일군의 일부는 비밀 저항조직을 만들어 적들과 싸울 것이며, 이때 헤롤트 같은 군인이 필요한 인재라고 옹호한다.
독일의 군부는 연합군에 패배한 다음에도 어떻게든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헤롤트 같은 인물을 독일군의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할 정도라면, 독일군부는 히틀러처럼 이미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작동하지 않는,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는 헤롤트가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무사히 탈출해 숲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제 헤롤트는 그로부터 얼마 살지 못하고 참수형을 당한다. 전쟁에서는 살아남았지만, 독일이 패하고, 헤롤트는 항구도시이자 해군주둔지인 빌헬름스 하펜으로 가서 굴뚝청소부로 일하며 살았다. 그가 욕심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면 아마 늙어죽을 때까지 살았겠지만, 1945년 5월에 빵을 훔치다 영국 해군에게 체포된다. 당시 영국 해군은 이 지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하고 있었다.
단지 빵을 훔쳤다는 가벼운 죄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헤롤트는 자기가 군인이었을 때 저질렀던 장교사칭과 탈영병 학살까지 모두 밝혀졌고, 영국 해군은 헤롤트를 끌고 수용소가 있던 아셴도르퍼모어의 수용소 부지로 이송되어 학살당한 장소에서 195구의 유해를 발굴한다. 영국 해군은 헤롤트와 그의 부대원들을 검거했고, 모두 여섯 명이 체포되어 다시 재판을 받았다. 이 가운데 다섯 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헤롤트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1946년 11월 29일, 볼펜뷔텔 교도소에서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선고받고, 모두 참수되었다.
이때 헤롤트의 나이는 불과 스물 한 살. 전쟁이 헤롤트를 괴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헤롤트의 내면에 있던 괴물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권력을 가진 자가 광기에 휩싸이기 쉽고, 이성을 잃으면 얼마나 위험해지는가를 헤롤트의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어리기만한 헤롤트는 그래서 더욱 쉽게 권력의 노예, 권력의 광기에 영혼을 빼앗겼을 수 있다. 당시 독일 전체가 이미 미쳐버렸고, 나치의 광기에 휩싸인 뒤여서 청년들의 생각도 그렇게 세뇌되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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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듦과 돌봄, 상실과 사랑
매료될 수밖에 없는 낯선 언어의 음률,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감성, 무심하면서도 함축적인 메시지. '프랑스 영화' 하면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입니다. 동시에 프랑스 영화의 고유한 느낌이 그대로 담긴 ‘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묘사이기도 하죠. 특별한 스펙터클 없이 프렌치의 일상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메시지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어느 멋진 아침>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어느 멋진 아침>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어느 멋진 아침>은 2023년 9월 6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어느 멋진 아침
One Fine Morning
<어느 멋진 아침>은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 '게오르그'와 사춘기가 시작된 딸 '린'을 보살피는, 딸이자 엄마인 '산드라'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게오르그'는 1년 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일할만큼 건강했으나, 지금은 혼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프리랜서 통역가인 '산드라'는 일하다가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아버지를 챙기고 있죠. 요양원을 알아보고,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고, 병문안을 가고... 예전과 다른 아버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보호자로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은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그러던 중 오랜 친구 '클레망'이 새로운 사랑으로 그의 일상에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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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역을 맡은 배우 레아 세이두는 이번에도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는 짙은 눈빛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의 존재가 뇌리에 박혔던 건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과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에서였는데요. 그때만 해도 설익은 청년의 풋풋한 느낌이 강했으나, 그는 어느새 아이 엄마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만큼 성숙해졌습니다. (그새 실제로 아이를 낳기도 했죠.) 아래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작품이 나이 듦에 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자꾸만 그의 예전과 지금 모습을 번갈아 떠올리게 되더군요.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더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레아 세이두는 참 변함없이 멋진 배우입니다.
이 작품은 삶을 구성하는 면면을 직구처럼 정직하게 묘사합니다. 그중에서도 영화가 가장 집중하는 삶의 측면은 바로 나이 듦과 돌봄입니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은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병든 아버지 '게오르그'와 딸 '산드라'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의 나이 듦을 지켜보는 자식의 고통이 담담하면서도 더 아리게 다가오죠.
영화를 보면서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이석원 작가의 책 『2인조』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에 더럭 겁이 나고 슬퍼지기도 하는 순간들. 결국 그런 날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자식의 삶이기에, 팔순이 넘은 부모와 보내는 하루하루는 나의, 아니 모든 자식들의 마지막 화양연화다. (이석원, 『2인조』)
<어느 멋진 아침>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만 같은" 순간들을 감당하는 "자식의 삶"을 말이죠. '산드라'는 병든 아버지를 볼 때마다 괴로워합니다. 기억 속 아버지와 눈앞의 초라한 아버지는 어쩐지 같은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병에 갇혀 끝없이 가라앉는 아버지보다 서재에 켜켜이 꽂혀있는 아버지의 책들이 오히려 진짜 아버지 같다고 느끼죠. 아직 아버지의 대소변을 직접 봐줄 자신도 없는데, 그 맘도 모르고 아버지의 병세는 빠르게 악화됩니다.
돌봄은 명백하게 주체와 객체가 나뉘는 행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사자의 주체성이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나이 듦의 당사자이자 돌봄의 객체인 '게오르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요양원으로의 이송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게오르그‘에게 이송에 동의하느냐고 반복적으로 질문하던 담당관과 이게 ’동의‘가 맞느냐고 투덜거리던 '게오르그'의 모습이 저는 좀처럼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어느 멋진 아침'은 '게오르그'가 쓰려던 자서전의 이름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연구하는 철학자였던 그는 뇌의 기능이 망가지는 병에 걸리자, 자서전에 자신의 상태를 "뜻밖의 신체 상태에 갇힌 죄수"라고 적었습니다. 나이 듦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돌봄의 주체인 자식들뿐만이 아닙니다. 돌봄의 객체인 부모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 변화에 적응해야 하죠. 병든 몸에 가둬진 부모의 영혼을 보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나이 듦의 당사자를 돌봄의 객체에서 행위의 주체로 다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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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이러한 소재를 통해 삶을 구성하는 상실과 사랑에 관해서도 말합니다. '게오르그'는 자기 자신의 상실을 겪고 있고, '산드라'는 아버지의 상실을 겪고 있습니다. ‘산드라’는 한편으로 '클레망'과의 관계에서 상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산드라'는 상실했고, 상실하는 중이며, 앞으로도 그의 삶에 상실은 계속될 겁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필히 무언가 얻은 적이 있어야만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앞의 말은 이렇게도 쓸 수 있죠. '산드라'는 사랑했고, 사랑하는 중이며, 앞으로도 그의 삶에 사랑은 계속될 거라고요.
삶은 흐릅니다. 때로는 잔잔하게 흐르고, 때로는 요동치듯 흐릅니다. <어느 멋진 아침>은 그런 ‘산드라’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는 영화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어느 하루를 콕 집어 "참 멋진 아침이었다."라고 말할 만한 날은 흔치 않습니다. 아주 먼 훗날, 상실과 사랑이 혼재했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야 비로소 "어느 멋진 아침들이었지."하고 말할 수 있는 법이죠.
Summary
여덟 살 난 딸,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파리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산드라는 어느 날 오랜 친구 클레망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서 삶은 계속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찬란하게 찾아온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미아 한센-러브
출연: 레아 세이두, 멜빌 푸포, 파스칼 그레고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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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수퍼 소닉3>가 북미 3,761개 극장에서 6,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디즈니의 <무파사: 라이온 킹>을 꺾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평단과 관객들의 고른 지지로 <수퍼 소닉3>는 개봉 전 예상 오프닝 스코어였던 5,500만~6,000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새해까지 이어질 연말 흥행작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수퍼 소닉3>는 시리즈 최저 성적으로 출발할 것으로 보였으나, 2020년 첫 번째 영화(2월 개봉, 5,800만 달러)보다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2022년 속편(3월 개봉, 시리즈 최고 7,200만 달러) 바로 아래 수준으로 개봉했습니다.
좋은 성적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기대감을 심어준 <수퍼 소닉3>는 국내에서는 오는 1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면, <문라이트>,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의 감독 베리 젠킨스가 메가폰을 잡아 큰 화제를 모았던 디즈니의 <무파사: 라이온 킹>은 4,100개 극장에서 3,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나, 개봉 전 예상치였던 5,000만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작비가 2억 달러 이상, 전 세계 홍보비가 약 1억 달러로 추정되는 대형 블록버스터로서는 부진한 출발이기에 흥행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한편, 국내에서도 <무파사: 라이온 킹>은 주말 관객 수 23만 명, 누적 관객 수 31만 명을 기록하며 2위를 기록했습니다. 앞서 개봉한 <모아나 2>의 개봉 첫 주말 관객 수가 100만 명에 달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입니다.
1위를 차지한 <소방관>은 개봉 3주 차에도 선두를 지켰습니다. 누적 관객 수 250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은 물론이고 2024년 개봉 한국 영화 흥행 5위 안에 안착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흥행을 이어 나가고 있는 <소방관>이 대작 한국 영화 <하얼빈>이 개봉하는 금주에도 준수한 성적을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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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서사의 관점으로 본 〈탑건: 매버릭〉
오랜만에 속편으로 돌아오는 옛 영화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는커녕 옛 추억마저 갉아먹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탑건: 매버릭〉은 오히려 전편(〈탑건〉(1986))보다 훨씬 뛰어난 완성도와 서사를 선보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영화적 체험’,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하는 정말 재미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훌륭한 상업영화라는 것과는 별개로, 〈탑건〉과 〈탑건: 매버릭〉은 남성서사의 관점으로 살펴볼 때 다른 의미에서 흥미로워지는 영화다. 〈탑건〉은 남성판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할리우드 버전이라 할 만하다. 매버릭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반항적 기질과 즉흥적 성격으로 동료‧조직과 자주 마찰을 빚는다. 훌륭한 전투기 조종술로 매번 의심과 회의의 눈초리를 돌파하긴 하지만, 자기 고집대로 비행을 하다가 동료 파일럿 구스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자 큰 충격을 받기도 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같은 고전 작품이든 할리우든 영화든, 통제되지 않는 말썽쟁이 캐릭터가 여성인 경우 결말은 늘 비슷하다. 완전히 길들여지거나, 세계와 불화하여 파국을 맞이하거나. 하지만 같은 말썽쟁이임에도 성별만 다른 매버릭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매버릭은 비행을 멈추기는커녕 조직으로부터 네 잘못이 아니니 비행을 멈추지 말라는 독려를 받는다. 결말에 가서는 내내 라이벌 구도에 있던 또 다른 남성 인물에게 인정받기까지 한다. 완벽한 ‘내부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주인공의 콜 네임이 영단어 ‘maverick’이라는 데서부터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개성이 강한[독립적인] 사람’이라는 뜻의 이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매버릭에게는 ‘말괄량이’로 불리는 여성들과는 처음부터 다른 결말이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탑건〉이 여성과는 다른 길을 걷는 남성 말괄량이의 사회 진입기를 다룬다면, 〈탑건: 매버릭〉은 어느새 은퇴할 나이가 된 매버릭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를 유산의 형태로 후대에게 상속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기본 설정에서부터 드러난다. 매버릭과 그의 팀은 인간 파일럿보다 무인 조종이 가능한 전투기를 더 선호하는 해군 제독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매버릭이 예산을 뺏기지 않고 계속 비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후배 파일럿 교육이다. 적이 관리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폭격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젊은 파일럿들을 교육하라는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다. 〈탑건〉의 속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짐작했듯, 매버릭이 교육해야 하는 사람 중에는 그와 함께 비행하다 목숨을 잃은 구스의 아들 루스터도 있다. 루스터는 절차적 문제는 없었더라도 매버릭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기에 내내 매버릭과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화는 둘이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며 화해하는지를 좇는다. 결혼하지 않은 매버릭이 아버지를 잃은 루스터와 유사 가족을 형성하여 ‘아버지-아들’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한때 말썽쟁이였던 한 남자가 어떻게 조국의 위대한 자산이자 누군가의 훌륭한 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해내는 것이다. 톰 크루즈의 열정과 영화의 완성도에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딸을 남기지 못하고 사그라진 말괄량이 여성들을 생각하면 어딘가 씁쓸해진다.
〈탑건: 매버릭〉에서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주인공들이 폭격해야 하는 적이 누구인지에 관한 구체적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적이 NATO 규정을 위반해 위협이 된다는 언급이 스치듯 나올 뿐이다. 적군의 인종‧국적을 추측할 만한 단서도 없다. 적이 강력하고 악할수록 주인공의 ‘선함’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이는 꽤 흥미로운 지점인데,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와 탄탄한 연출, 무엇보다 매버릭과 루스터의 ‘아버지-아들 되기’ 서사에 집중함으로써 적군 얼굴의 빈자리를 채운다. 작전에 성공한 후 기지로 되돌아갈 때, 매버릭과 루스터가 설원 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진심을 확인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요컨대 ‘탑건’ 시리즈는 다소 길어 보이는 35년의 시리즈 공백을 오히려 영화적 자원으로 활용하여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시리즈의 공백을 한 남성의 생애주기에 맞춰 마치 매버릭이 은퇴할 나이가 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남성서사를 상업 블록버스터와 버무린 것이다. 수십 년을 거슬러 속편을 제작할 탄탄한 역사를 지닌 할리우드의 필모그래피, 그리고 말썽쟁이였으나 끝내 모범시민으로 거듭난 남성 캐릭터는 부러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언젠가 도래할 비非 남성 캐릭터의 귀환 또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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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돈으로 엮일 때
극장에서 <멋진 하루>(2008)를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돈으로 엮이는 사랑 이야기가 많이 나오겠구나.’ 헤어진 남자 친구 병운(하정우)에게 떼인 350만 원을 받기 위해 그와 오롯이 하루를 함께 하는 희수(전도연)를 마주했을 때 (영화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현실 속 사랑은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는 희수의 해방을 보기는 했지만, 그 연결고리가 ‘돈’이라는 건 한편으로 씁쓸했다. <은빛살구>를 봤을 때, 17년 전 느꼈던 이유 모를 씁쓸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청약이 당첨되어도 걱정이다. 일생일대 결혼을 앞두고 최고의 행운을 얻은 정서(나애진)는 계약금 마련을 위해 엄마 미영(박현숙)을 찾아가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대신 미영은 과거 이혼한 아빠 영주(안석환)가 직접 쓴 차용증이 붙어 있는 색소폰을 건넨다. 하는 수 없이 떼인 돈을 받기 위해 고향 동해에 간 정서는 아빠와 아빠의 가족과 조우한다. 그곳에서 떼인 돈을 받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이복동생 정해(김진영)와 유대하고, 예비 신랑인 봉성(박경현)을 동해로 불러들인다.
<은빛살구>는 보통의 가족영화와는 다르다. 콩가루 집안을 그리거나(<고령화 가족>)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외면했던 가족의 내홍을 들춰내거나(<장손>) 하는 다수의 가족 영화와 그 궤를 달리한다. 이 작품은 온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신세를 져야 하는 청년 세대의 현 상황을 소개하면서 혈연이 아닌 돈으로 엮인 가족이란 공동체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정서가 부모의 이혼 후 고향인 동해를 찾아간 건 오로지 아버지에게 떼인 돈을 받기 위해서다. 이 낯선 조우에 딸도 아빠도 그리고 아빠의 새 식구도 불편하기 짝이 없을 터. 오랜만에 딸을 본 아빠는 혈육임에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애증의 관계에 놓은 이들이라도 가족이라 하기엔 냉기가 철철 흐른다.딸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버지는 그 돈을 맨 입으로 주지 않기 위해 본의 아니게 날을 세운다. 정서를 괴롭히는 건 아버지만이 아니다. 정해 또한 이복 언니인 정서를 통해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미리 받아내려 하고, 봉성도 청약 아파트를 얻기 위해 알게 모르게 정서를 압박한다. 정서의 엄마 또한 딸을 시켜 돈을 받아오게 시켰으니, 뭐 이 집안은 피가 아닌 돈으로 엮인 게 맞다.
물론, 정해와 친자매처럼 지내고, 봉성이 동해로 내려와 아버지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노력하고, 가까운 관광지로 가족 여행을 가는 등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을 겪는 정서는 잠시나마 아버지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과거의 순간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가족들의 안위보다 자신의 욕망에만 한없이 투명한 아버지의 냄새를 맡는다. 가까이하기도 싫은 그 냄새를 말이다.
극 중 떼인 돈 받아내기 프로젝트는 결국, 아버지, 가족 관계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아직도 옭아매진 그 혈연이란 족쇄를 끊으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특히 이 부분에서 영화는 가족을 뛰어넘어 사회 제도로서 그 영역을 확장, 정서를 통해 돈과 평온한 삶을 위해 불온한 일을 넘길 것인지, 아니면 힘든 상황에 놓일지언정 떳떳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결단을 내린다. 매번 아버지(또는 가족)에게 흡혈 당한 정서가 도리어 흡혈하는 대상으로 역전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통쾌함과 시원함을 안긴다. 후반부 자신은 아버지처럼 냄새를 풍겨가며 안온한 삶을 살아가기 싫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정서의 모습은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가족이란 보편적인 주제를 ‘돈’이란 소재와 결부시켜 표현하려는 의도는 새로움을 전한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도리어 영화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데, 특히 가족이나 사회에서 정해진 제도를 타파하는 것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상쇄하는 건 배우들의 힘이다. 극을 이끌어 가는 나애진은 불안함으로 점철된 정서를 입체감 있게 그려내는데, 아버지와 가족, 세상을 모두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골 기질과 서늘한 표정이 압권이다. 왜 이 작품으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버금가는 안석환의 연기는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묘한 매력으로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호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싸늘한 시선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착하게 살면 맛이 없지. 건강해라” 정서와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내뱉는 이 대사는 꼭 눈여겨보길 바란다.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첫 장편을 내놓은 장만민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서울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정서가 우연히 꺼낸 가족사진에 묻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는 마음에 대해 관객분들도 같이 상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영화를 설명했다. 사랑보다 돈으로 엮인 이 가족사, 그리고 이 관계를 타파해 가며 진정한 해방일지를 적어 내려간 정서를 보면서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길 바란다. 그 먼지의 맛이 볼품없어도.
사진 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평점: 3.5 / 5.0
한줄평: 가족의 목덜미를 물어야 비로소 가능한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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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섭x구교환의 <연애 다큐>, 페이크 리얼 러브
페이크 리얼 러브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영화 <연애 다큐>의 핵심은 제목에 있다. 연인이 서로의 모습을 다큐 필름을 찍어 공모전에 출품한다. 플롯은 단순하지만, 그걸 연출해내는 방식이 이엑구답게 참신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흔한 로맨스 극 영화가 아니라, 페이크 다큐 형식을 취하면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구교환은 배우로 잘 알려진 영화 감독이다. <연애 다큐>에서도 연인을 촬영하는 감독으로써 등장한다. 관객은 마치 감독 구교환이 촬영한 것만 같은 영화를 마주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목격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철저하게 짜인 각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교환 감독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구교환’이라는 캐릭터를 적극 활용한다. 구교환 감독이란 배역으로 등장하며 반려견 ‘겨울이’와 함께 노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급기야 실제 어머니가 어머니 역할로 출연한 것을 보고 관객은 헷갈린다. 영화의 제목 <연애 다큐>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 주인공들이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는 저 영화 속 다큐멘터리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보이는 영화 그 자체인지.
구교환을 연기하는 구교환. 당연한 진리지만 영화는 진실의 미학을 숨겨놓았다. 오로지 진실만을 고할 거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범주를 확장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불변하지 않는 진리가 이 영화를 관통한다. 구교환 배우이자 감독은 영화의 또다른 연출자인 이옥섭 감독과 연인 사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옥섭 감독과의 일련의 과정들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셀프 연애다큐'로 지원하자는 아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한다. 지원금을 받아서 함께 맛있게 밥 먹고 놀러 다니면서 만들자고. 결국 영화가 탄생한 원동력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담은 영상들의 모음집. 영화는 극중 연인을 담고 있지만, 분명 페이큐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그 간극을 알고 있는 듯, 나레이션은 고백한다.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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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자단의 마지막 여정 엽문4 :더 파이널 [영화리뷰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엽문4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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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어공주> 티저 예고편
2023년, 디즈니 라이브 액션 [인어공주] 티저 예고편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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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TV 실제 상황 "트렁크 납치 생방송 시작합니다" [드라이브]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