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19 23:57:16
기록만이 균열을 낸다
영화 <쑤저우강> 리뷰 + 정성일 평론가 라이브러리톡
DIRECTOR. 러우예
CAST. 저우쉰, 자훙성 외
SYNOPSIS.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쑤저우강. 비디오 촬영기사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두 연인 마다와 무단의 목숨까지도 버리는 열렬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연인 메이메이가 있지만 그들과 같은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 마다의 사랑이 꾸며낸 거짓이라고 믿었던 메이메이는 마다와 무단의 시체를 보고는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에게 마다와 같은 사랑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요구를 무시해 버린다.
POINT.
✔️ 미장센이 아름답고 감성이 세기말이에요. 이거 안 좋아하는 법 아시는 분?
✔️ 사랑은 역시 지난 세기의 사랑이 진짜다... 낭만주의적 장면
✔️ 그리고 거기 남아 있는 깊은 역사적 의미. (정성일 평론가가 알려주신 바에 따르면) 천안문 사태를 목도하고 카메라를 쥔 중국 6세대 감독이 무엇을 담았는지 바라보아야 할 영화.
✔️ 1인 2역을 소화하는 저우쉰의 연기 저력

영화 <쑤저우강>은 블랙아웃된 화면에서, 사랑을 시험하는 연인의 질문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이어 강과, 강을 둘러싼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더러 기울어지고 더러 초점이 맞지 않는, 강과 공사 현장과 배... 같은 모습이 점프컷을 통해 불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이내 내레이션을 이끌고 가는 사람은 카메라 촬영 기사로, 앵글이 1인칭 시점으로 움직인다. 카메라 촬영 기사는 동네 술집인 '해피 바' 사장에게 인어 분장을 하고 수조에 들어가 춤을 추는 여성을 촬영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인어 역할을 한 메이메이와 사랑에 빠진다.
가까이에서 연인을 보는 카메라는 이런 느낌이구나. 보이는 거라곤 상대 뿐이라, 사랑에 빠진 시선은 타이트해진다. 맹목적으로 상대를 본다. 그러나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꽉 차지 못한다. 메이메이가 연인에게 던진, 사랑을 시험하는 질문 이야기로 한 겹 더 들어간다. 메이메이의 표현에 의하면 사랑을 잃어버리고 미쳐갔다는 남자 마다의 이야기로.

촬영 기사는 마다와 그의 연인 무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다소 혼란스러워지는데, 이야기가 피자치즈처럼 하나로 쭈욱 이어지는 게 아니라,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베어 물 때마다 후두둑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황상 마다와 무단의 사랑 이야기는 메이메이가 촬영 기사에게 들려준 것인데, 이야기를 관객에게 서술하는 사람은 촬영 기사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궁금했던 건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하는 것이었다. 0에서 100까지의 스펙트럼 전체가 가능성이었다. 마다와 무단이 실존인물일 가능성과 그냥 도시 전설일 가능성. 메이메이가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가능성. 메이메이의 이야기에서 촬영기사가 변형시켰을 가능성.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고, 마다와 무단 이야기의 진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펼쳐지는 쑤저우 강의 흐름에 묶어서 나는 막연하게 느꼈다. 강은 아름답기만 한 곳도 아니고, 교과서적인 표현으로 '생명의 젖줄'이기만 한 곳도 아니다. 때로는 사람을 살리고 때로는 사람을 삼키는 강 위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나고 흘러간다. 영화 초입에 보여주었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강에 계속해서 누덕누덕 기워진다. 역사는, 인간사는 결국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윤슬처럼 무언가 반짝 빛난다. 도저히 인어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희뿌연 강에서 (애초에 강에 인어란 생물체도 없지만) 사람들은 반짝이는 인어의 환상을, 깨진 사랑의 이야기가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는 것을 본다. 공장 굴뚝 연기와 짓다 만 공사 현장의 투박한 사이로, 그런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살아남아 흘러간다.
어디까지가 만든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짜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강을 따라 흐르는, 누덕누덕 내려앉은 이야기 중에는 사랑도 이별도 망설임도 추억도 있다.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도 애틋한 도시 전설이 되어 흘러갈 뿐이다.
이야기는 어쩐지 허무하게 끝나고, 페이스트리처럼 후두둑 떨어진 이야기 조각들을 보며 나는 슬퍼진다. 강에는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후두둑 떨어지고 또 누더기처럼 덧대어지며 흘러가겠지. 어찌 보면 허무하고 암담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계속 붙이는 주체를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끌어 가지만 이름도 얼굴도 나오지 않는 촬영 기사 같은 존재를 생각한다. 이야기를 남기고 재구성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도도한 시간의 흐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의 기억과 기록 뿐이다.

왕가위 영화가 생각난다는 평이 많았는데, 내겐 그다지 왕가위 생각이 나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냥 이 영화 자체로 고유했고, 영화가 주는 에너지가 커서 좀더 곱씹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시작된 라이브러리톡에서 정성일 평론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욱 커서, 일부분만 요약해서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정성일 평론가는 러우예라는 감독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러우예는 학생 시절이었던 1989년 천안문에서 민주화 항쟁과 광장에서의 학살을 목격했다. 그의 첫 영화 <주말정인weekend lovers>는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순회했지만, 정작 중국 당국의 검열로 2년간 영화 촬영을 금지당했다. 그는 다음 영화를 찍기까지 5년 가량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쑤저우강>이다. 그는 이 영화로 또 다시 1년간 촬영을 금지당한다. 다음 영화 <자호접>은 1931년 반일 레지스탕스를 소재로 하면서 좀 체제 순응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2006년 대놓고 1989년을 배경으로 한 <여름 궁전>을 내놓는다. 정성일 평론가의 표현을 빌자면 러우예의 "폭탄 같은" 영화였다. 결국 그는 또 다시 5년 동안 영화 촬영을 금지당한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러한 배경을 상세히 풀어내며, 그렇기에 이 영화를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천안문 이후의 절망과 실패, 좌절 등이 담겨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이었기에 직접적인 알레고리를 사용할 수 없지만, 지극히 간접적인 알레고리를 넣었음에도 중국 공산당은 이를 느끼고 촬영을 금지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안문 이후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개방, 정치적으로는 폐쇄를 지향하는 이중의 정책을 펼쳤고, 이 영화는 그 이후 중국 인민들의 정신과 마음 상태를 그려내고 있다. 혼탁한 진흙탕 같은 물. 간명하게 설명되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서사. 마치 유리잔을 깨뜨려 파편을 사방으로 흩듯, 의도적으로 그렇게 찍은 영화라고 했다.
2000년 당시의 중국 상황과 끊어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고 하면서도, 정성일 평론가는 우리가 중국 내부인이 아니라는 한계를 명확히 언급했다. 검열을 당하는 국가에서 알레고리는 지극히 간접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외부자의 해석은 언제나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언제든 교정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타는 열정으로 해석에 접근하는 능동적인 마음과,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외부자의 겸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발언이라 인상 깊었다.

"왕가위의 아류"라는 흔한 해석 또한 정성일 평론가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런 해석은 왕가위도 납득하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탁류 위를 흘러가는 배 같았던 당대의 중국 상황과, 길 잃은 듯 돌아다니던 <중경삼림> 시기의 홍콩 상황은 차이가 있음을 명확히 했다. 반환 앞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홍콩의 상황보다, 떠돌아다닐 수도 없이 수동적으로 흘러가야만 했던 당시 중국의 절망적 감정을 담은 것이다.
더불어, 왕가위의 점프컷은 세심하게 모두 쪼개어 이어붙인 느낌이지만, 러우예의 점프컷은 노골적인 NG컷까지 포함함으로써 찍은 풋티지를 모두 보여주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차이점도 짚었다. 이는 영화의 서술자가 카메라 촬영 기사임을 생각할 때 더욱 절묘한데, 중국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게 익명의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찍은 것을 모두 보여주는 형태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 1인칭 기법을 서방 세계의 미학적 해석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당시 중국의 상황에서 관객과 영화를 이어주는 매개로 자리하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설명이 마음을 울렸다. 언제든 중단될 수 있을 만큼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핸드헬드, 서사와 무관한 쇼트까지 포함한 느낌으로 의도된 편집 또한 그 느낌을 뒷받침했다.

정성일 평론가의 설명을 들으며, 아무리 제재와 검열이 아스팔트처럼 뒤덮어와도 예술은 한 평 땅의 흙처럼 숨 쉴 구멍의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가 지나가는 말처럼 일갈한,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나(자신)만 불쌍'하게 보는 시각 또한 한편으로는 비판받을 지점이라 생각되면서도, 동시에 2024년의 한국 현실과 공명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사회를 배경으로 피어난다.
영화와 설명까지 모두 끝난 자리, 내겐 동일하게 한 문장이 남는다. 기록만이 균열을 낸다. 사회의 거대한 기조, 도도한 시간의 흐름, 괴로운 현실에... 이름도 얼굴도 남지 않는다 해도, 기록하는 손의 방향성만큼은 뚜렷하게 남아 균열을 낸다. 지금 우리는 무슨 균열을 낼 수 있는가. 사유하고 반응하고 싶은 마음으로 탁류를 응시한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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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함 뒤의 악의, 두 소녀가 갇힌 집
할리우드 제작사 A24는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영화로 옮기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회사다. <유전>, <미드소마>, <펄>처럼 감각적인 공포 영화를 선보이는가 하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언컷 젬스>, <더 웨일> 같은 드라마 장르도 파격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오락성과 작품성 중 하나만을 골라 집중하기보다는, 관객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점이 A24의 강점이다. 그래서 A24의 로고가 뜨는 순간, 왠지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오는 4월 2일 한국에 개봉 예정인 <헤레틱>도 그런 A24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점프 스케어나 피 튀기는 장면을 최소화하고, 심리적 압박감과 폐쇄감을 극대화해 ‘새로운 형식의 공포’를 시도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A24가 제작한 영화 중 7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두었으나, 정작 한국에는 정식 개봉하지 않아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작품이기도 하다.
<헤레틱>은 두 명의 소녀 선교사가 외딴 지역에 사는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의 집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늘 그렇듯 문을 두드리고 자신들의 신앙을 전하려 애쓰지만, 비오는 날 만나게 된 리드의 집은 묘하게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거실의 불이 마음대로 꺼졌다 켜지고, 문이 잠기거나 창문이 어딘지 모르게 작고 답답해 보이며, 집주인 리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어쩐지 기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폐쇄된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첫번째 감정] 미스터 리드의 따뜻함
첫인상에서 리드는 순수하고 인자한 노인처럼 보인다. 팩스턴(클로이 이스트)과 반스(소피 대처)가 노크를 하자마자 그는 문을 활짝 열고, “얼마나 날씨가 험악하냐”며 따뜻한 미소를 건넨다. 감미로운 차와 파이를 내오며, 별안간 찾아온 두 선교사를 흔쾌히 환대한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누군가가 방문해주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보이는데, 덕분에 소녀들은 ‘이 집에서 포교 활동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갖는다.
그러나 리드의 친절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숨어 있다. 처음에는 소녀들의 종교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질문이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교리나 신앙에 대해 묻는 것 같지만, 문득문득 끼어드는 리드의 말에는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 이때 팩스턴과 반스는 말은 이어가면서도, 속으로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관객 역시 리드의 웃음 뒤편에 감춰진 음산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리드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은 처음엔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해석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마치 미로 같다는 인상을 준다. 따뜻한 미소와 구불구불한 주름 사이 어디선가 악의가 비죽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이처럼 리드는 “마음씨 좋은 노인”이라는 첫 이미지를 무기로, 두 소녀를 천천히 자기 세계로 끌어들인다. 관객에게도 그 과정이 기이하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데, 이는 휴 그랜트의 섬세한 연기가 만들어낸 섬뜩한 온기 덕분이다.
[두번째 감정] 반스의 의심
두 사람 중 먼저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쪽은 반스다. 팩스턴보다 한결 냉철하고 논리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스는, 리드가 내놓는 말들에 무언가 꼬투리가 있다는 걸 빠르게 눈치챈다. 영화는 반스가 아주 독실한지, 혹은 단지 친구를 돕기 위해 전도 활동을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가 상대적으로 세속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의심부터 하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리드의 대화가 알쏭달쏭해질수록, 반스는 하나씩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문이 자동으로 잠기고, 조도가 계속 바뀌는 집 안에서 ‘혹시 우리가 갇힌 건 아닐까’라는 경계심을 키워나간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품어온 신앙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괴상한 현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과연 이 사람이 제기하는 질문이 단순한 신앙적 호기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인가?”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의심이 모든 문제의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이상한 낌새를 잡아도, 함정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반스는 분명히 “이 집은 위험해”라고 인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탈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리드가 던지는 미끼에 말려들면서, 불신이 불신을 낳고 갈수록 꼬여만 간다. 그렇다고 반스가 완전히 패닉에 빠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 영화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은 바로 반스이며, 관객은 그녀의 시선에 의지해 이 집의 이면을 함께 탐사하게 된다.
[세번째 감정] 팩스턴의 믿음
팩스턴은 두 소녀 중 좀 더 신앙심이 깊은 캐릭터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진심으로 종교에 귀의했고, 그 믿음으로 포교 활동을 해내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리드의 호의에 별다른 의심 없이 순응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반스가 불안감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팩스턴 역시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팩스턴은 가장 마지막까지 신앙적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하려 든다. 반스가 이성적으로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면, 팩스턴은 종교적 신념을 통해 “끝까지 견디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이런 상반된 접근 덕분에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팩스턴이 보여주는 호기심과 집착은 더욱 흥미롭게 부각된다.
결국 팩스턴이 맞닥뜨리는 마지막 시점에서는, 리드가 유도해온 괴이한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차분하고 약해 보이던 팩스턴이 어떻게 반격에 나서는지를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과연 어떤 국면을 열어줄지, 그리고 그 믿음이 리드의 끊임없는 조작과 통제를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관객은 팩스턴의 시선에 몰입하게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하게 되는 새로운 호러영화
<헤레틱>은 겉으로 보면 “종교와 신앙의 충돌”을 다룬 호러 영화로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오리지널과 표절’에 대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낸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몇 가지 소재—모노폴리와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의 역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립(Creep) 노래가 표절 시비에 휘말린 설정—는 마치 하나의 ‘보드게임’을 펼쳐두고 플레이하는 느낌을 준다. 집 안 곳곳에 배치된 기묘한 창문, 눈부실 만큼 화려한 벽지 등은 관객에게 소름 돋을 만큼 치밀한 미술 설계를 체감하게 만든다. 이 밀실 안에서 “이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질문이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예술, 창작, 인간관계 전반에 해당하는 주제로 확장된다.
특히 휴 그랜트가 맡은 리드 캐릭터는 이전에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영화 속에서 보여준 “스윗한 남자”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노팅힐>의 사랑스러운 남주인공, <웡카>에서 보여준 유쾌한 움파룸파의 일면이 여기서는 광기 어린 악역으로 돌변한다. 그의 많은 주름살이 처음엔 인자해 보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미로 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 이중성에 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괴이한 플레이를 하는가”라는 의문이, 극의 긴장도를 끝까지 유지시키는 동력이다.
함께 출연하는 소피 대처는 <컴패니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국내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이번에도 반스 역으로서 차분하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보여주며, 팩스턴 역의 클로이 이스트와 호흡을 맞춘다. 두 소녀의 미묘한 대비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견인하는 만큼,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가 매끄럽게 형성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헤레틱>의 완성도에는 쟁쟁한 제작진도 한몫한다. 먼저 감독 스콧 벡 & 브라이언 우즈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각본을 맡아 호러 장르에 확실한 흥행력을 입증한 듀오다. 밀실 구조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연출, 사소한 디테일을 공포의 장치로 변환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촬영감독 정정훈은 <올드보이>, <웡카> 등을 통해 독특한 화면 미학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밀폐된 공간과 화려한 미장센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미술감독 필립 메시나는 <오션스> 시리즈의 세련된 스타일에 더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이 집을 지옥의 한 단면처럼 형상화했다. 이처럼 현장감 넘치는 세트 디자인과 공포를 야금야금 스며들게 하는 촬영 기법이 결합돼, 관객은 마치 보드게임 속 말을 움직이듯 기괴한 심연으로 끌려들어간다.
종합해보면 <헤레틱>은 단순한 호러영화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종교와 믿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 창작과 표절의 문제, 두 소녀의 우정과 의심, 그리고 휴 그랜트가 선사하는 서늘한 이중성까지 다채로운 요소가 뒤섞여 관객을 사로잡는다. 무서우면서도 묘하게 빠져들게 되는, A24 특유의 심리적 공포가 흐르니 “이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꼭 챙겨볼 만하다.
4월 2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평소 A24가 만든 영화들을 좋아했다면 <헤레틱>도 분명 흥미롭게 보게 될 것이다. 만약 기존 점프 스케어 위주의 공포영화가 식상해졌다면, 이 밀실 스릴러의 서늘한 재미를 통해 새로운 공포의 영역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집 안 가득 퍼지는 의심과 믿음의 대립, 그 끝에서 기다리는 무언가는 예측을 뛰어넘을 만큼 묵직하다. 영화를 본 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신념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본 포스팅은 마케팅사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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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앳 love at second sight
오랜만에 로맨스 영화를 찾아보았습니다.
최근에 액션, 판타지, 스릴러 영화를 주로 봐서인지 사람이 죽거나 우울하게 끝나지 않는 밝은 영화가 보고 싶었거든요.
밝은 로맨스 영화가 기분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죠.
넷플릭스에 최근에 새로 올라온 영화 중에 <러브 앳>이 눈에 띄었습니다.
프랑스의 로맨스 영화였는데 예고편도 나쁘지 않았고, 정보를 찾아보니 평점도 높았습니다.
마블에서 많이 나오는 평행세계 개념을 로맨스 영화로 가져온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평행 세계로 간 한 남자가 이전 세계에서 부인이었던 여자와의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한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영화 <러브 앳>은 남녀 주인공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Story
아내 올리비아(조세핀 자피)와 다투고 만취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 베스트셀러 작가 라파엘(프랑수아 시빌)은 평행세계에서 눈을 뜬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라파엘은 중학교 선생님이고, 베프 펠릭스(벤자민 라베른헤)는 탁구광이고, 아내 올리비아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다. 라파엘은 올리비아와 다툰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으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올리비아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올리비아에게는 마크라는 애인이 있지만, 친구 펠릭스의 도움으로 그녀를 공략한다. 하지만, 원인이 그것이 아님을 알고 라파엘은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과연 라파엘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 Positive.
1.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한 영화입니다.
두 사람의 로맨스를 아름다운 배경과 좋은 분위기, 거기에 적당한 유머까지 곁들여서 재미있게 보여줍니다.
2. 여주인공 조세핀 제피의 상큼한 매력이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현재까지는 주로 조연으로 출연한 신인급인데,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3. 예상과 다르게 마무리된 마지막 장면은 깔끔합니다.
보통 이런 영화는 원래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서 약간 의외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마무리 또한 좋았습니다.
4.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평범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 없이 잔잔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5. 영화의 배경이 아름답습니다.
파리의 풍경도 시골 마을의 풍경도 예쁘게 그려집니다. 집도 예쁘고 소품들도 예쁩니다.
6. 영화의 코미디는 과하지 않고, 적절한 유머는 미소 짓게 합니다.
보통 코믹을 담당하는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는 오버하거나 과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러브 앳>에서 친구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적절한 위트와 진지함을 함께 보여주는 멋진 사람입니다.
<노팅힐>에서의 주인공 친구와는 천지차이죠.
| Negative.
1.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조금 짜증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친구에게 하는 상처를 주는 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 프랑수아 시빌 Francois Civil - 라파엘 역
1990년생 프랑스 파리 출신 배우입니다.
2005년 영화 <Le cactus>로 데뷔했고, 영화 <프랭크>(2014)에서는 직접 연주도 합니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영화 <프랭크>(2014), <프랑스 대테러>(2016),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7), <러브 앳>(2019), <트루 시크릿>(2019) 등이 있습니다.
| 조세핀 자피 Josephine Japy - 올리비아 역
1994년생 프랑스 배우입니다.
| 벤자민 라베른헤 Benjamin Lavernhe - 펠릭스 역
1984년생 프랑스 배우이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러브 앳>(2019), <큐리오사> (2019),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2020) 등이 있다.
| 카미유 룰루슈 Camille lellouche - 멜라니 역
1986년생 프랑스 파리출신 배우, 코미디언 및 가수이다.
유투브에서 유머러스하고 음악적인 공연과 프랑스어 버전의 The Voice에 참여하면서 알려졌다.
| Amaury de Crayeoncour - 마크 역
1984년생 프랑스 베르사유 출신 배우이다.
| 총평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밝고 사랑스럽고 유쾌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 기분 좋은 프랑스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호흡이 좋이서 진부한 스토리지만 영화가 좋습니다. 추천합니다.
영화를 보게 되면 여주인공 조제핀 자피의 매력에 빠질 겁니다.
러브 앳 평점 8.0 (작품 8, 재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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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북미에서도 저예산으로 흥행을 터트린 <프레디의피자가게>가 한국에서도 1위에 올라서며 흥행저력을
입증했습니다. <더 마블스>는 누적관객수 100만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주말관객수 또한 9만명에
그쳤는데요.
또 지난 1일에 개봉한 한국영화 <소년들>은 총 관객수 50만명을 넘기지 못하며 한국 영화와
극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데요. 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호러명가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한 <프레디의 피자가게>가 34만명을 기록하면서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섰습니다. <더 마블스>는 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위를 했고 박서준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적은 분량으로 실망한 관객들과, 마블이 예전같지 않은 영화들을 선보이며 좀처럼 기운을
못내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가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17~19일 44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이전 시리즈들은
총수익 3조를 넘긴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전 세계 13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트롤: 밴드
투게더>가 2위에 올랐고 국내엔 레드벨벳 웬디, 라이즈 은석이 캐스팅되어 12월 20일 극장을 찾아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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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복수를 위한 한 어린 칼춤
김은숙 작가님의 드라마가 다시 돌아왔다. 신데렐라가 아니라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소재에 이끌려 작가님의 전작을 보긴 했지만 지루함에 이탈했었는데 이번 드라마는 왠걸 한 순간의 정지 없이 봤다. 그만큼 흡인력 있었다는 얘기다
김은숙 작가님의 강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다양한 세상에서 살 법한 신데렐라를 그려 여자들의 환상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배경과 인물만 달라질 뿐 비슷한 스토리 포맷은 지루함을 낳는다. 전작 '더 킹: 영원의 군주'가 그 지루함의 한계에 도달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작가님은 돌파구가 필요했던 시점에 제대로 한 방을 선사해 주셨다. 아직까지 작가님의 작품 중 인생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이지만 이 작품도 못지 않은 멋있는 작품이다.
1.신데렐라 스토리에서 한 단계 발전한
주인공 동은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고데기로 지져진 그녀의 몸이 폭력의 증거였기에 동은은 자신의 몸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자신을 괴롭혔던 범인들을 처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쉬운 방법들을 포기하고 동은은 돌고 돌아 18년을 기다린다.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폐부를 찌르기 위해서.
이번 드라마는 로맨스가 뒤로 빠져 있는 복수극이다. 로맨스보다는 복수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기승전 '왕자님의 도움으로 동은이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전개가 아니다.
작가님의 시그니처인 왕자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동은에게 왕자와 같은 주여정은 동은에게 관심이 있지만 '칼춤 추는 망나니'가 필요한 동은을 위해 망나니가 되기로 한다. 이번 드라마 에서는 왕자가 주인공에게 조력자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왕자가 주인공의 삶에 등장해 로맨스를 강제 주입시키지는 않는다.
2. 남자 캐릭터들의 매력 대결이 예고된 다음 시즌
다음 시즌에도 동은의 왕따 주동자 박연진의 파멸은 자명해 보인다. 더 비참해질 것이다. 하지만 다음 시즌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캐릭터가 있다면 하도영이다. 하도영은 동은의 조력자인지 악인인지 스탠스가 명확하지 않다. 동은을 보호할 만한 모습이 드러나긴 했지만 동은을 공격할 만한 요소도 갖춘 양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정의 감춰진 폭력성이 다음 시즌의 드러날 것으로 예고되어 그 폭력성이 동은을 위해 쓰여지긴 할지. 쓰여진다면 어떻게 발현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만큼
다음 시즌은 동은의 이야기에 가려져 소극적으로 보였던 남자 캐릭터들이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남자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것은 작가님의 주무기이기에 기대가 된다.
하지만 이들의 매력 대결이 동은의 복수의 의미가 퇴색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3. 남성상의 변화
확실히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남성상이 바뀌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결혼의 현실을 겪어내면 '동화 속 왕자는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어도 여전히 내 남자에게서 끝까지 나를 보호해주는 왕자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우울을 느끼는 기성 세대 분들을 꽤나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확실히 세대가 바뀌며 왕자는 환상의 결합체임을 인지하고 조금은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왕자가 등장해야 한다면 나를 보호하고 간지럽게 사랑해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캐릭터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랑의 표현 방식이 폭력, 살인이더라도 상관없다. 결국 여자 캐릭터의 삶의 방향을 제멋대로 바꾸지 않는 '최소한의 매너'를 보이는 캐릭터라면 환호를 받는다.
이런 남성 캐릭터의 다각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매너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생각도 좋지만 어떤 일을 하지 않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매너의 한 부분임을 상기시키며.
사설이 길었다. 하여간 사이다 전개의 통쾌함, 다음 시즌을 향해 기대감 혹은 긴장감 등 꽤나 다채로운 매력이 많은 드라마인 만큼 한 번쯤 볼만하다. 바둑이 등장하는 점도 매력적인데 바둑이 침묵 속 치열한 암투를 보여주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한 명의 전사와 같은 동은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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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가 발휘할 수 있는 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객석에 앉아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주인공들이 있다. <몬스터>속 샤를리즈 테론의 캐릭터가 그랬고,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일부러 그러한 서술 방식을 취함으로써 문제의식을 가지도록 한다. <투 레슬리>의 레슬리 역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계속 실패하고 마는 캐릭터이다. 관객은 그녀가 무너지고 또 모욕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적어도 ‘괜찮은’ 엔딩이 기다리고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의 힘겨운 여정은 미국의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변을 위태롭게 걷다 사라지지 않는다. 레슬리는 끝내 방 한 칸을 찾아 안착함으로써 관객을 배반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한때 얻었던 복권 당첨금은 도박으로, 주변 사람들의 신뢰는 알코올 중독으로 모두 잃었다. 이곳저곳 거처를 옮기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마땅치 않다. 원래 살던 곳에서 그녀가 재기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던 중 우연하고도 놀랍게도 허름한 모텔을 운영하던 남자가 그녀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일자리를 제안한다. 그 자신도 사유지에서 몰래 잠을 자던 부랑인인 레슬리에게 숙식과 급여를 제공하기로 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마침내 중독을 억누르고 가족과 친구를 끌어안는 레슬리를 보고 나면 관객은 깨닫게 된다. 일자리 제안도,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힘겨운 과정도, 망친 관계를 회복해보려는 움직임도 모두 레슬리를 향한 아주 작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찰나의 믿음이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마침내 그녀가 한발짝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레슬리에게>는 그 제목처럼 레슬리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녀의 눈부신 성장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끈질긴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발휘할 수 있는 작은 믿음에 관한 영화라는 것이다. 아주 작은 믿음이 바로 레슬리를 엔딩까지 데려가는 실낱 같은 희망이고, 그것이 쌓여 실패하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힘과 관계망을 만든다. 그래서 그녀가 앞으로 ‘오래 오래 행복하게’사는 엔딩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관객은 충만한 채 극장을 나설 수 있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아 참석 및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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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끝까지 사탄 숭배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우.
오컬트 요소가 짙다고 해서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엑소시즘을 하는 등 주인공이 명확하게 악한 존재와 대립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맞서려는 시도가 있는 영화는 흥미롭게 보는 편이다. 주인공에게 나를 대입해서 보는 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오컬트 요소의 영화들은 보통 악마와 같은 존재가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경우다. 사건의 전후 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주인공의 기억이 흐릿한 탓에 내가 그런 사건사고를 겪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때 나도 같이 띠용해버리는 바람에... 엥, 이게 나였다고? 나도 이런 일을 겪었다고? 뭐 주로 이런 식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영화 설명에도 그렇고 초반부에 꽤나 수사물인 '척'하는 경향이 있다. 척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공이 사건을 전개시키는 과정 탓이다. 주인공인 '하커 리'는 FBI 수사원인데 첫날부터 감으로 때려맞히는 쾌거를 보여준다. 나름 선배처럼 보이는 짝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탐문 레츠고' 하는데 'ㄴㄴ저 집에 범인 있음' 하는 식이다.
관객으로서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수사물'은 아니라는 것을 나름대로 확인하게 된다. 주인공이 돗자리 깔고 감으로 때려 맞추는 게 수사물일 리가 없으니까? 근데 영화에서는 계속 FBI인 걸 강조하면서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사물이라고 하면 진실에 접근해가며 전개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수사 진척이 전혀 없다. 오히려 주인공에게 계속 진실이 다가오고 있다.
이 과정이 굉장히... 지루하달까. 어차피 주인공은 감으로 때려 맞출 것이고, 범인이 주인공 근처에 배회하고 있는데 좀 빨리 알려주면 안 되나, 하는... 질질 끌어서 답답한데, 결국 나중에 보면 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지롱! 하는 게 너무나 킹 받는 모먼트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못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이런 식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 것 같다. 다만 내가 열받는 건 수사물인 줄 알고 신났는데 결국 아니었다는 사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런 것일지도? 수사물 호빵인 줄 알았는데 반으로 갈라보니 오컬트 앙꼬를 숨겨놓은...
내 입장에서는 '악마'라는 존재가 그다지 엄청난 공포로서 다가오지 않는다. 애당초 종교도 없을뿐더러, 그런 경험도 없는 데다가, 동양권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더 크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관을 나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찝찝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서양권에서는 꽤나 무서울지 몰라도 나처럼 그저 동양권 공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이 약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였다.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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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비우스, 이게 최선인가? , 제작사 소니의 또다른 실수
소니가 영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악당 캐릭터인 모비우스의
단독영화가 개봉하였습니다.
개봉 전 꽤 기대를 불러왔던 영화였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영화였습니다.
배우 자레드 레토의 재능이 또 한 번 소비되어버리고 마는 작품입니다.
캐릭터의 매력도, 액션 장면의 매력도, 이야기의 재미도 잡지 못한 영화네요.
아마도 앞으로 소니에서 제작될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서 계속 보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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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 아웃트로2020. 08. 2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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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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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 <에코> 메인 예고편
절대 악에 맞서 스스로 괴물이 되다! ?시청주의? [에코] 메인 예고편 대공개! 디즈니+ 마블 오리지널 시리즈 [에코] 1월 10일 디즈니+ 모든 에피소드 단독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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