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1-05 17:09:58
이 세계는 앞으로도 찬란히 빛나고
영화 <마이 샤이니 월드> 리뷰
BTS 팬 무비 성공 이후 아이돌 팬 무비들이 쏟아졌다. 팬데믹 직격탄을 맞은 극장가의 생존 전략 중 하나인 동시에, 코로나19 기간 동안 공연을 즐길 수 없는 아이돌 팬들이 즐길 거리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상영 시간표 하나 확보하기 힘든 영화들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꼭 반갑지만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팬 무비 중 <마이 샤이니 월드>를 보러 간 건, 우리 집에 샤이니 팬이 하나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팬 아닌 내게도 샤이니 2시간 보는 일은 즐겁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샤이니의 팬으로 정의해 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지만, 샤이니 노래를 거의 다 알고 있으며 꽤 좋아하고 자주 듣는다. 나 정도로 자주 듣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래도 우리 동년배는 기본적으로 샤이니를 다 알지. 아이돌로 대표되는 케이팝 시장의 판도가 한참 바뀌어 요즘 남자 아이돌은 음반 백만 장이 팔려도 대중성을 고민해야 하지만, 10-15년 전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텔레비전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가 요즘보다 쉬웠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2세대 남자 아이돌 대다수가 연예면 대신 사회면에 실리면서 매우 불편해진 지금, (체감하기로는 그룹당 평균 1.8명 정도 살아남은 느낌이다.) 영화 <성덕> 관객과의 대화 자리마다 ‘구 오빠 성토대회’가 열리는 판국에, 샤이니처럼 빛나는 자리를 꾸준히 지켜온 그룹은 많지 않다. 덕분에 샤이니의 역사는 샤이니와 팬들만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나처럼 샤이니에 호감을 가진 일반 대중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마이 샤이니 월드>의 의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무대 장인인 동시에 예능도 되는 걸 대중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주더라도 뭐 샤이니라면 믿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2시간 후 다시 나온 나는 어쩐지 ‘독기 풀 충전’ 상태가 되어 뭐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하고 있었다.

#Let’s go back to the time now
샤이니는 2008년 데뷔했다. 나는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당시는 지금처럼 아이돌 시장이 포화되기 전이었으므로, 누가 데뷔하면 주변인 대다수가 대충 아는 분위기였다. 근데 뭐 노래 제목이 ‘누난 너무 예뻐’라고? 막내가 아직 초졸이라고? 그렇게 시작부터 센세이셔널했던 샤이니는, ‘컨템퍼러리 밴드’라는 현란한 이름을 달고 나왔다. 수능 대비 영단어장에서 contemporary를 “현대의, 동시대의”라고 달달 외우기는 했지만, 당시의 내게 샤이니와 그 단어의 연관성은 이해하지 못했다. 알게 뭐야 내가 신나는데. 당시 <사.계.한>, <real>, <in my room>까지 앨범 수록곡을 전부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샤이니는 정말로 “컨템퍼러리” 밴드였음을 깨닫는다. 16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컨템퍼러리”함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룹으로서 위기를 맞은 순간이 없지는 않았음에도, 그 모든 순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샤이니의 팀 색깔을 지켜냈다. 여기에는 데뷔 16년차가 되도록 단 한 번의 무대도 설렁설렁 하지 않는 그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종현을 멀리 보낸 후, 추모의 마음을 담는 동시에 샤이니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한 정규 6집. 샤이니는 커다란 빛 모양 하나 주변을 네 개의 빛이 둘러싼 로고를 쓰고, 종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사로 담아 노래하고, 그렇게 종현의 자리를 명확히 지켜냈다. 누군가의 앨범이 ‘꽉 차 있다’는 표현은 관용적으로 많이 쓰이지만, 정규 6집은 꽉 차 있다 못해 넘쳐 흐른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의 명반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절로 느껴지는, 그 앨범으로 샤이니는 자신들이 영원히 건재할 다섯 명임을 명확히 했다.
슬픈 일이었지만, 여전히 종현의 말과 글과 음악이 그립지만, 언급을 피해야 하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샤이니가 그 동안 열심히 다져 둔 자리가 이미 탄탄하기에, 이 영화 또한 종현을 슬프게 언급하거나 과하게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후 각자의 군백기를 거치고 나와 <Don’t call me>로 또 센세이션을, 올해 나왔던 앨범 <HARD>는 데뷔 16년차가 기존 색깔과 다른 음악으로 이렇게까지 새로울 수 있다는 놀라움을 주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시간을 공연 영상 위주로 세심히 담는다. 영상 속 샤이니는 땀 범벅이 되어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노래를 한다. 노래를 왜 저렇게 잘하지? 아니 원래 잘하는 거 몰랐던 건 아닌데… 그래도 신기하네… 저 춤을 저렇게 추면서 어떻게 잘하지? 그리고 왜 다 아는 노래지? 물론 샤이니 노래는 명곡도 많고 대중에게 알려진 것만 해도 숱하게 많고… 그러다 보니 통사적으로 모든 곡을 담을 수는 없다. 2시간 동안 모르는 노래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 노래는 없네…’는 많았다. 실제로 콘서트 할 때도 무슨 곡을 담을지가 아니라 무슨 곡을 뺄지 고민한다고 하니까.
공연 영상 사이사이 샤이니 멤버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오직 샤이니만이 할 수 있는 ‘라떼 토크’다.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라떼 토크’다. 이들이 매 순간 얼마나 열심히 임했는지가 물씬 느껴지는, 듣다 보면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그리고 이들이 왜 ‘왕년의’ 이름이 되지 않는지, 왜 앞으로도 쭉 건재할 것 같은지도 느껴지는. 연차가 아무리 차도 눈빛의 독기가 빠지지 않는 그룹들이 있다. 샤이니가 그렇다. 샤이니는 앞으로도 늘 “컨템퍼러리 밴드”일 것이다.

#뜨거워지자 터질 것처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게
‘누난 너무 예뻐’로 데뷔했을 당시의 샤이니를 볼 때는, 이토록 오래 샤이니를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래 본다는 건, 그렇게 서서히 스민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인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동태 눈깔’ 되지 않고 건재한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런 샤이니의 지난 역사를 2시간 동안 볼 수 있어 좋았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보고 싶다. 팬이 아닌, 샤이니에 호감을 가진 대중에게도 이렇게 느껴지는데 팬에게는 이 영화가 얼마나 뜻깊을지 궁금하다. 영화 속에 자리를 내어 팬의 페르소나를 앉혀 두고, 함께한 시간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담아내기도 한 만큼. ‘마이 샤이니’의 세상인 동시에 마이 ‘샤이니 월드(샤이니 팬클럽 이름)’이기도 한 영화로 만들어낸 만큼.

대중 입장에서는 그냥 샤이니가 앞으로도 자기 심지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럴 것 같아 걱정되지 않는다. (걱정이라는 말은 우습지만, 우리는 이미 그 시절 명곡을 많이 잃었어요.) 단지 온유가 건강을 회복하여 다음 활동은 꼭 같이 할 수 있길. 오래오래 샤이니를 보고 싶다. 한일전 중립을 지켜야 되네 어쩌네 하는 자의식 과잉 아이돌이나, 영상통화 팬사인회에 비싼 돈 주고 온 팬에게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만 주억거리는 아이돌조차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에서, (몰랐죠? 저도 이 글 쓰느라 조사하다가 알았습니다. 대중성에서 멀어진 아이돌의 장점일까요.) “샤이니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는 16년차 아이돌은 얼마나 소중한가.
대중에게 샤이니는 감을 잃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고, 자기 색깔을 잃은 적도 없는 그룹이다. 여전히 무대에서는 데뷔 때 못지 않게 열정적이지만, 연차에 따른 여유까지 갖추어 더욱 빛나는 그룹이다. 그렇게 비춰질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지, 이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여전히 “새로운 히트 멈추지 못했다지” 소리를 들을 자신이 있고, “왕관은 주인을 되찾아내”고 있으며, 물려줄 생각이 없는 샤이니를 보니, “샤이니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보고 나오는데 괜히 힘이 났다. 나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저렇게 독기 풀 충전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훌륭한 선배 직장인들에게서 엿본, 연차에서 나온 여유와 여전히 빛나는 열정의 조합을 샤이니에게서도 본다. 샤이니의 세계는 앞으로도 찬란히 빛날 것이다. 때로는 야근 노동요로, 때로는 여행 BGM으로, 때로는 밥 친구 예능으로… 언젠가 디너 쇼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오래오래 빛나는 샤이니를 볼 수 있기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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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갑자기 친한 척 하지 맙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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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부친들에게.
자식과 친해지고 싶나요? 물론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니까 아이들에게 손 많이 가던 때는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낚시도 하고 여행도 가고, 직장도 쭉 다니며(혹은 때려치우기도 하며) 커리어를 쌓고, 도전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며, 내가 번 돈을 놀고 먹는 부인과 자식에게 쓰는 게 때로는 좀 아깝기도 했지만.
자식이 아버지를 존경하거나 다정하게 대하지 않아서 기분이 나쁜가요? 옛날이고 지금이고 돈을 벌어다 주면 된 거 아니냐고 화를 내기는 했지만. 다른 집 자식들은 주말마다 찾아오고 전화도 자주하고 용돈도 주고 여행도 보내주는데, 왜 아버지에게는 늘 데면데면할까요.
이제 자신이 가정 내에서 쓸모 없는 것 같나요? 정답입니다. 아이들의 발달과정에서 애착형성이 아주 중요하던 시기에나 당신이 필요했지, 말 좀 통하고, 이제 손도 안 가는 자식들에게 당신과 지나가는 아저씨의 차이점은 외형이 닮았다는 것뿐이랍니다.
왜 여러 부친들이 맥락도 없이 갑자기 친한 척을 할까요? 이제와 가족애 같은 말로 친한 척을 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난감할까요. ATM이 된 아버지, 외로운 아버지, 실컷 키워놓았더니 제 엄마만 아는 자식들, 그런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어떤 작품에서도 보고 싶지도 않답니다. <가시고기>에서 끝냈어야 하는 아버지.
아아 진절머리나는 아버지의 외로움. 한 번도 친한 적 없었는데 왜 뜬금없이 자식과 당신이 친한 사이라고 상정하는 걸까요. 친하지도 않은데 왜 갑자기 당신의 외로운 영혼, 혹은 아픈 몸을 가족들이 구원해야 할까요.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도 안 친했던 아빠랑 친해지고 싶은 사람?
구원, 영화는 '구원'을 말한다. 나는 찰리를 신경쓰지 않겠다. 세상이 찰리를 연민할 것이다. 300kg에 육박하는 초고도비만이라 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걸어나오지 못하는 몸뚱이를 가진 남자,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남자, 시간강사 일을 하며 자식을 위해 돈을 저축하고 있지만 자식으로부터 외면받는 아버지이니까.
대신, 오직 찰리를 구원하고자 했던 세 명의 여성만을 신경쓰겠다.
리즈
간호사인 리즈는 찰리의 거의 유일한 친구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우기는 찰리를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지난 겨울에는 차가 고장나서 춥고 먼 길을 걸어 찰리에게 와 줄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찰리는 리즈에게 미안해,라고 계속 말하지만 말뿐이다. 리즈는 찰리가 울혈성심부전을 앓고 있고, 머지 않아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찰리의 끼니를 챙기는 사람은 리즈뿐이다.
딸 엘리를 만나는 것도 만류한다. 현재 찰리의 상태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찰리의 집에 새생명교회 전도사라는 놈(토마스)이 찾아오는데, 리즈는 토마스를 쫓아낸다. 토마스는 고장난 라디오마냥 똑같은 소리만 반복한다. '주님이 저를 보내신 이유가 있다' '이 육신을 버리고 빛으로 다시 태어나' 같은. 토마스가 다니는 새생명교회에서 '종말', '144,000명이 구원받고' 같은 말을 하는 걸로 보아, 미국의 신천지교회인가 보다(신천지에서도 요한계시록의 최후의 심판, 종말, 144,000명 구원 등을 말한다. 대충 신천지라 보면 되겠다).
토마스는 자꾸 찰리 주변을 찝적거린다. 마치 신천지처럼... 그러다 리즈에게 한 소리를 듣게 된다. 리즈는 새생명교회 소속의 가정에 입양되었다. 아마 가족 모두가 신천지교도마냥 종교에 빠져있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리즈의 오빠 앨런을 같은 교회 여자와 결혼시키려 했으나 그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족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앨런은 결국 가족과 종교를 등졌다는 고통으로 거식증을 앓다 강물에 투신하여 죽는다. 이런 얘기까지 해도 토마스는 고장난 라디오처럼 신이 자신을 보낸 이유가 있다느니, 빛으로 만든 육신을 받고, 어쩌고 저쩌고를 반복한다.
리즈가 찰리를 돌보는 행위는 죽은 앨런에 대한 애도다. 앨런에게 음식을 먹이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기에, 찰리만큼은 구하고 싶다. 그렇기에 찰리에게 줄 치킨과 샌드위치와 도넛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사다 준다. 리즈는 머지않아 또 다시 실패하게 될 것이다. 또 다시 오빠의 죽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리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찰리를 구하기 위하여.
엘리
찰리의 딸,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인 16세. 세상 모든 것을 싫어하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량학생.
찰리가 떠날 때 엘리는 고작 8살이었다. 아버지는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제자였던 남자를 사랑하게 된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매달 양육비를 부쳐주었으나 엘리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 쓰레기다.
그런 엘리는 학교에서 정학을 먹고, 뜬금없이 아버지를 찾아간다. 개연성은 없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엘리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서는 에세이를 잘 써서 내야 한다.
찰리는 엘리와 가까워지고 싶어 딜을 한다. 에세이를 대신 써 주는 걸로, 그리고 그동안 모은 12만 달러(현재 환율 1,300원으로 계산했을 때 약 1억 5천만 원)도 엄마 몰래 엘리에게 주겠다고 한다. 정말 달콤한 제안이다. 엘리의 입장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나타나 숙제도 해주고 돈도 준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아버지라는 존재를 평생 그리워했고, 또 앞으로도 그리워 할 테지만.
죽음을 앞두고 엘리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은 폭력적이다. 엘리에게 아버지가 필요한 시기에는 사랑에 빠져 외면하다가 이제서야 자식과 가까워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죽음을 앞두고 있기까지 한데.
이런 점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두 남자가 더 신사적이라고 해야 할까. 최소한 자식은 다 키워놓고 커밍아웃을 했으니 말이다.
찰리는 엘리에게 끝없이 넌 완벽하고, 멋지고, 똑똑하다고 세뇌를 시킨다. 과연 엘리를 위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엘리의 취향, 엘리의 교우관계, 엘리의 관심사, 엘리의 장래희망, 엘리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지 않는가. 자기가 한 선택이 다 틀리지는 않았다는 믿음을 얻기 위해, 오직 자기 자신만을 구원하기 위한 발화에 불과하다.
엘리는 집에 자꾸 찾아오는 토마스의 뒷조사를 하여 그의 정체를 밝혀낸다. 구원 타령 하는 토마스도 사실은 교회 활동비 횡령으로 도망다니는 신세에 불과했다(니 팔자나 구원해라).
토마스에게 마리화나를 권하고 토마스의 사진을 찍고 음성을 녹음한 결과는 결국 토마스 가족과 교회가 토마스를 받아들이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래서 찰리는 엘리가 나빠 보이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 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기자신도 엘리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이거 <애프터 썬>의 아버지도 했던 대사다) 미안하다.
어쨌거나 찰리는 엘리에게 사과를 했으니 마음은 좀 편해졌겠다.
메리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피해자 메리의 비중이 적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세 여자 모두 비중이라 할 게 없다. 찰리 때문에 인생이 꼬인 세 여자라는 것뿐. 메리는 어린 자식을 두고 남제자와 바람이 난 남편의 소문을 혼자 감당하며 어린 딸을 키웠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은 변심했고(1콤보) 심지어 그 대상은 남자고(2콤보) 떠났으면 잘 살기라도 하지 초고도비만이 되어 죽음을 앞두고 딸 앞에 나타났고(3콤보) 심지어 모아둔 돈은 자신에게 한 푼도 안 주고 딸만 준다고(4콤보) 하니, 도대체 몇 대를 얻어맞은 것인가.
그래도 메리는 찰리를 용서한다. 찰리의 심장에서 나는 소리에 마음 아파 한다. 나라면 배신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난 못한다. 남편은 동성 제자와 바람났고, 자식은 엇나가고, 기댈 데는 술뿐이다.
찰리에게는 엘리의 좋은 점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메리는 엄마로서도 실패한 것이 될 테니까. 그러니 찰리는 엘리에게 "넌 완벽하고, 똑똑하고, 멋진 아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
찰리가 사랑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을지는 몰라도, 대가는 너무도 컸다. 모두를 희생하게 하는 사랑도 사랑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애인에 대한 애도도 틀려먹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혐오하며 끝없이 폭식이라는 자해를 하는 것은 실패한 애도다.
찰리는 심장에 통증이 있을 때나 곧 죽겠다 싶을 때 누군가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고 쓴 에세이를 읽으며 안정을 취한다. 신경안정제 같은 이 에세이는 자기가 읽은 에세이 중 최고라고 한다. 그리고 엘리가 집에서 낙서하듯 쓴 몇 문장도 운율이 맞다는 이유로 전율한다. 자기 손으로 키우지도 않은 자식이지만 재능이 있으니 감동적인가. 웃기는 소리다.
모든 이상한 지점들에도 불구하고 찰리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걸,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애도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때로는 목숨 걸고 한 선택이 다 틀려먹었고 돌이킬 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원망스러운 건 내 뜨거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도 아니고 먼저 떠난 애인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다. 찰리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을 괴롭혀왔다는 것을, 찰리를 보고 있는 세 여자뿐 아니라 영화 밖의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삼키지 못하는 애인에게 음식을 먹이지 못했던 통탄을 자신의 입에 욱여넣음으로 애도를 선택한 마음까지도.
<더 웨일>은 자신의 모든 선택이 틀렸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 남자를 구원하기로 한 영화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어리석고 이름값 못하는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찰리와 다를 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구원은 셀프. 남을 구원하겠다는 주제 넘는 생각과 타인으로부터 구원받겠다는 나약한 마음가짐을 멀리하자. 그저 방을 청소하고 건강하게 식사하자. 운동을 하고 잠을 푹 자자. 인정하기 너무 싫지만 내가 했던 정신나간 선택들이 그때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리즈와 엘리와 메리처럼 모든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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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3> 이후 그렇다할 인상을 남기지 않았던 브렌든 프레이저의 연기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의료보험은 매우 중요하다. 의료민영화는 절대 안 된다.
더 웨일(The Whale)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주연: 브렌든 프레이저, 세이디 싱크, 홍 차우
상영시간: 117분
개봉일: 2023. 03. 01.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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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하게' 유쾌한, 어떤 바다 위의 풍자극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해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그렇게 호평이 자자하던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왔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지독하고' '통렬하며' '유쾌한' 풍자극이다. 여러 각도에서 인간 사회의 모순을 꼬집으면서 재미까지 모두 담보했다고나 할까. 한없이 가벼운듯하면서도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겁다. 막이 내리면, 이 영화를 끝없이 곱씹게 되는데, 이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대단한 인상을 주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크루즈와 무인도 씬들은 무더운 여름날(이제 여름이나 다름없다!)에 보기에 아주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소개하겠다.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1. 변화무쌍한 주인공의 지위
주인공인 '칼'의 지위 변화는 정말이지 흥미롭다. 직장, 여자친구 앞, 크루즈, 그리고 섬에서 그는 모두 제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칼은 떵떵거렸다가 빌빌 기고, 빌빌 기다가도 큰 소리를 친다. 어라, 이런 남자, 이런 사람. 우리 주변에도 즐비하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그가 처하는 환경에 기인한다. 그가 상대하는 다른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들의 연결고리를 잘 살펴보는 것은 영화의 이해와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2. 대사에 주목하라: 말이 씨가 되는 법
이 영화 속의 대사와 장면 하나하나는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 가장 첫 장면부터 가장 마지막 장면까지! 촘촘하게 연결된 인간 사회에서 갑의 작은 진상짓은 처참한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나비효과는 이윽고 전복적인 결말에 이르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갑들은 언제나 자신이 갑질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거다! 이 안의 다양한 '갑'들의 대사와 그들의 행위에 주목하라. 그리고 그들이 어떤 나비효과를 낳는지를 관찰해보라.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었는지를 알아차려 보라!
3.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풍자적 비유들
소위 '갑'의 갑질로 의해 배가 뒤집힌다든가, 걸어가는 백인 부자 손님들이 등장한 바로 다음 씬에 바닥을 닦거나 '보이지 않는' 직원실에 숨어서 개미처럼 일하는 유색인종 직원들의 모습 등은 아주 효과적이고 알기 쉬운 방식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적 연출들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리라.
아, 주의해야 할 것도 있다.
이 영화는 시원하면서도 지독하다. 문자 그대로, 아주 원초적인 방식으로 지저분한 씬들이 나오기 때문에, 비위가 많이 약한 사람이라면 몇몇 장면에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보러 가고 싶다. 여러분도 한바탕 크루즈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저 멀리, 바다의 한복판에서 우리 삶의 또다른 단면을 되돌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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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 페인 | 스토리텔링 시대에 이야기를 찾는 여행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생김새, 성격, 취향이 모두 다른 두 사촌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벤지'(키에란 컬킨). 어릴 때는 형제나 다름없었지만 여러 이유로 소원해졌던 두 사촌 형제는 오랜만에 재회한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왔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녀를 기리기 위해서. 그들은 이민 전에 할머니가 살았던 집을 방문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인 폴란드로 떠난다.
호텔에 도착한 뒤 폴란드계 유대인의 역사를 살피는 가이드 투어에 합류한 두 사촌. 하지만 투어 중 데이비드와 벤지는 전혀 다른 성향 차이 때문에 끊임없이 싸운다. 심지어 벤지는 가이드인 '제임스'(윌 샤프)와도, 함께 투어에 참여한 '엘로지'(커트 에지아완), '마샤'(제니퍼 그레이)와도 갈등을 빚는다. 그들 사이에 낀 데이비드는 벤지에게 점점 화가 쌓이고, 그들의 관계는 새 국면에 접어든다.
진짜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폴란드 여행
몇 년 전부터 스토리텔링은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은 스토리텔링을 활용하지 않는 영역을 찾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마케팅의 경우 소비자로 하여금 홍보하는 대상 그 자체보다, 대상이 속한 서사에 더 빠져들게 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약속한다. 저널리즘도 스토리텔링을 활용한다. 이제 기자들은 정보만 전달하는 대신 사건의 맥락 안에서 감정이 느껴지는 소설 같은 기사를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시대를 마냥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병철 교수는 그의 저서 '서사의 위기'에서 스토리텔링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더 고립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서사는 마치 상품처럼 생산되고 소비된다. 스토리텔링의 서사는 잠시 인식된 후에 사라지는 정보일 뿐, 친밀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야기하지 않고 광고하며, 주목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공동체가 아닌, 소비사회를 형성"한다. 달리 말해 지금의 스토리텔링은 소비자를 만들 뿐, 과거 '일리아스'나 '아이네이아스' 같은 서사시가 한 공동체의 토대를 마련한 것과 같은 역할을 대신하지 못한다. 유럽에서 근대 소설이 국민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 및 공동체를 구축했던 기능도 스토리텔링에게 기대할 수 없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감독, 작가, 제작자, 주연을 맡은 영화 <리얼 페인>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두 사촌 형제는 작고한 할머니의 폴란드 집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그들은 여행 내내 싸운다. 처음에는 성향 차이가 갈등의 원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말에 다다르면 자연스레 생각이 바뀐다. <리얼 페인>은 진정한 이야기의 힘을 잊은 세태가 싸움의 이유였음을 투박하나 진정성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불만 가득한 여행
데이비드와 벤지의 여행기가 처음부터 진중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리얼 페인>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며, 가벼운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시간을 보내는 두 사촌 형제는 자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공항까지 가는 방법도, 비행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다르니까. 심지어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서로의 직업도 겨우 알아가는 수준이다.
<리얼 페인>은 이처럼 갈등이 산재한 여행을 데이비드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그는 자신과 성향이 전혀 다른 벤지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오프닝부터 그렇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데이비드는 벤지가 제때 도착할지 걱정하며 여러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하지만 벤지는 그중 단 하나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걱정 가득히 공항에 도착한 데이비드를 만난 후에야 벤지는 몇 시간 전에 미리 와 있었다고 태연히 대답한다.
폴란드에 도착한 후에도 데이비드의 속은 타들어 간다. 벤지의 기행 때문이다. 그는 호텔로 마리화나를 주문하고, 마리화나를 피겠다며 호텔 옥상 문을 멋대로 열고 나간다. 음악 없이는 샤워를 못한다면서 데이비드의 핸드폰을 멋대로 빌려서 화장실에 들어간다. 가이드 투어에 합류한 후에도 데이비드는 여전히 불편하다. 그는 느낀 점을 여과 없이 말하는 벤지 특유의 화법이 다른 이들에게 혹시 무례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개인에서 공동체로의 변화
데이비드의 심정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떠난 여행 도중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상황이니까. 이처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도입부는 <리얼 페인>의 각본이 얼마나 영리한 지를 방증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사촌의 갈등이 철학적,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가랑비에 옷 젖듯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의 특이점은 두 장면에서 암시된다. 우선 제임스의 가이드 투어에 참가한 이들은 호텔 로비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갖는다. 이때 데이비드나 다른 일행은 어색하게 입을 여다. 그에 반해 벤지는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추억이나 데이비드와의 관계에 대해 어렵지 않게 이야기한다. 르완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엘로지나 남편과 이혼했다는 마샤의 사연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격의 없는 표현이 자칫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른 하나는 기념사진 시퀀스다. 투어 일행은 폴란드 군인의 공헌을 기리는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는 각자 핸드폰으로 사진을 촬영하지만, 이내 벤지가 독특한 이벤트를 만든다. 그는 동상 모습에 착안하여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꾸며 낸다. 다른 일행에게 군의관, 포병, 장교 역할을 맡기며 생생하면서도 독특한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직 단 한 사람, 데이비드만 이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이비드와 벤지는 어색해진다. 데이비드는 예의 없어 보일 정도로 타인의 개인사를 물어보고, 개인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벤지가 불편하다. 반면에 투어 일행은 벤지를 접착제 삼아서 짧은 시간 내에 급속도로 친해진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데이비드는 벤지와 미묘하게 어색해진다. 정작 사촌인 본인은 그 안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벤지가 불편한 진짜 이유
중요한 것은 데이비드가 느낀 불편함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 이유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벤지는 언제든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 안에서 사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 수용소가 있는 도시로 가는 길에 과거 유대인과 달리 편하고 고급스러운 기차를 타는 게 고통스럽고 가식적으로 느껴진다고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개인의 서사와 공동체의 서사 간의 접점을 총체적으로 예민하게 느끼고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데이비드는 다르다. 그는 벤지를 머리로 이해하지만, 진정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공유하거나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불편해한다. 벤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여행이 끝나면 뭘 할 거냐는 벤지의 질문에 그는 그저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답한다. 종종 만나자는 사촌의 말에도 벤지가 뉴욕으로 오라는 조건을 달며 미적지근하게 대한다. 자기가 벤지가 사는 시골로 가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게 그 이유다.
데이비드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현대적 일상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서사의 위기>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체제의 스토리텔링이 낳은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성과와 생산성을 높이려고 사람들을 고립시킨다. 모든 개인은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자기 최적화, 자기실현 서사를 추구한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사회에서는 타인과 의미를 공유하는 이야기가 부족해지고, 안정적인 공동체도 없다.
즉, 데이비드는 최선을 다해 일상을 영위하는 평범한 현대인이다. 이는 그가 타인의 사연을 궁금해하면서도 그들에게 깊이 공감할 여유까지는 지니지 못한 이유다. 공동체의 비극적인 역사를 이해하더라도 자신과 직접 연관 있다고 실감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벤지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리얼 페인>은 스토리텔링에 이야기가 묻힌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여행기인 셈이다.
벤지와 이야기의 진가
하지만 그렇기에 데이비드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벤지라는 캐릭터의 진가가 역설적으로 명확해진다. 특히 투어 가이드 제임스와 벤지의 관계가 흥미롭다. 투어 도중 제임스와 벤지는 여러 차례 충돌한다. 벤지는 제임스의 투어 내용을 번번이 비판한다. 투어가 폴란드의 유대인 공동체와 관련된 장소와 정보로 가득하지만, 정작 과거의 공동체와 현재의 우리가 연결되는 경험이 없다고 지적한다.
공동묘지에 들렀을 때가 대표적이다. 벤지는 묘지에 묻힌 이들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하는 제임스를 막아 세우며 지금은 정보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역사를 배우고 외우는 것을 넘어서 실존했던 공동체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체화하는 맥락을 느낄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더 나아가 벤지는 유대 전통에 따라 묘비석 위에 돌을 올려주자고 제안하고, 제임스는 그의 말을 따른다.
그런데 투어가 끝난 후 제임스는 벤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다. 그 누구도 주지 않았던, 하지만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피드백을 받았다면서. 이전까지 그의 가이드 투어는 그저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를 형성하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이제 제임스는 그의 투어 안에 내재했지만, 자본 논리에 가려졌던 진정한 서사와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다. 이야기와 공동체의 관계를 형성할 줄 아는 벤지의 특별함 덕분이다.
이 광경은 <서사의 위기> 속 "이야기는 사회적 응집성을 만든다. 이야기는 의미를 제공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치를 전달한다"라는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할머니가 별세한 후에 벤지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연도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개인적인 괴로움의 결과가 아니라, 이야기의 의미를 잊은 공동체의 위기와 공허함에 대한 비유이자 의인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늘 자기 자리에 있던 이야기
영화의 결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리얼 페인>은 데이비드의 변화로 끝을 장식한다. 생전에 할머니가 지내던 집 앞에 도착한 뒤, 데이비드는 제안한다. 공동묘지에서 벤지가 그랬듯이, 집 앞에 돌을 내려놓자고. 공항에서 헤어질 때도 데이비드가 벤지를 대하는 태도는 이전과 퍽 다르다. 그는 벤지를 먼저 집에 초대하고, 벤지와 할머니 간에 있었던 독특한 에피소드를 재현하면서 작별 인사를 건넨다.
결국 데이비드의 변화는 그의 여행기가 잊고 지내던 폴란드계 유대인이라는 혈연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재발견하는 여정이었기에 의미심장하다. 이에 더해 그의 여행기는 그가 SNS 광고업 종사자라서 더욱 입체적이다. 그의 변화는 이야기의 본래 기능, 사람들을 응집하는 힘을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그런데 정작 SNS는 사람들을 파편화된 스토리에 빠트린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에 역설적인 맛이 있다.
그의 변화 덕분에 오프닝과 클로징의 대조도 뇌리에 각인된다. 결말에서 카메라는 데이비드와 헤어진 후 공항에 남은 벤지를 비춘다. 이 장면은 벤지가 공항에 먼저 와 있었던 오프닝과 이어진다. 마치 벤지, 곧 이야기는 데이비드 같은 현대인을 언제나 기다린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에 공간적 맥락을 더하면 벤지의 가치는 더 돋보인다.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항은 가장 개인적이고 비서사적인 공간이니까.
이처럼 두 사촌의 여행기는 개인과 공동체의 접점, 스토리텔링과 이야기의 차이라는 틀에 비추어 곱씹을수록 맛이 진해진다. <리얼 페인>이 제40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왈도 솔트 각본상을 수상한 힘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셈이다. 더 나아가 제시 아이젠버그를 재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리얼 페인>은 특유의 '너드' 같은 연기 스타일에 갇힌 듯 보이던 그가 알을 깨고 감독, 제작자, 작가로서 태어나는 전환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스토리텔링에 숨 막힌 개인을 이야기가 구원하는 방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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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장르가 섞였지만, 맛있어요
- 당신에게도 풋풋한 첫사랑 같은 영화가 있나요? 제게는 구파도 감독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그러합니다. 어느 계절에 떠올려도 첫사랑의 온기가 온전히 느껴지고, 생각만으로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데요. 그 영화의 감독과 배우가 다시 뭉쳤습니다. 판타지 로맨스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입니다.※ 2월 7일(월)에 진행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2022년 2월 9일 국내 개봉했습니다.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Till We Meet Again<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의 이야기로 막을 엽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저승의 풍경과 죽음 이후의 절차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신과 함께>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그리는 저승의 풍경은 <신과 함께>와는 사뭇 다릅니다. <신과 함께>의 저승이 한 인간의 죄악을 평가하기 위한 무시무시한 7개의 지옥이었다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저승은 무시무시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죠.영화 초반부, 죽음과 함께 저승세계에 입문한 '샤오룬'을 인도하는 방식에서부터 이 영화만의 색다른 저승 세계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죄질을 평가하는 것은 무서운 창을 들고 서 있는 신이 아니라 스캐너가 달린 컴퓨터입니다. 스캐너로 이마와 혀의 바코드로 찍으면 한 인간이 지나온 전생과 이번 생의 공덕이 단번에 저승 컴퓨터로 전송되죠. 환생의 절차를 알려주는 것도 저승사자 따위가 아닙니다. 키치한 분위기의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재생해줄 뿐이죠. 이 장면은 잘 만든 B급 영화로 유명한 <남자사용설명서>의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과감하고 색다릅니다. 저승에서 일하며 이번 생의 부족한 공덕을 채우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스토리와 저승의 대왕인 염라가 며칠은 안 씻은 듯한 꼬질꼬질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 또한 의외였습니다. 저승에서 활개를 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혹여 저들이 저승의 신에게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들은 조금의 꾸지람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여태껏 봐왔던 저승은 그만큼 무섭고 음침한 분위기였지만, 이 영화 속 저승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구파도 감독은 무지개별로 떠난 자신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저승이 조금은 명랑하고 활기차게 그려진 것도, 어떤 식으로든 환생이 가능하게끔 설치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 두 번째는 이승에 남겨진 '샤오룬'의 여자친구 '샤오미'의 인연 찾기, 세 번째는 500년 전 자신을 죽인 동료들을 벌하고자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설명 등을 일절 보지 않고 영화를 감상한 저는 보는 내내 흠칫흠칫 놀라곤 했습니다. 세 가지의 이야기가 뒤섞여 진행되다 보니 영화의 장르가 쉴 틈 없이 바뀌곤 했거든요. 판타지 로맨스 같다가도 호러 같고, 스릴러 같다가도 코미디 같았습니다.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방문하신다면,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온갖 장르의 폭격에 당황하실 수도 있습니다.'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은 웃음이 픽픽 새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이승의 인연을 붉은 실로 엮어주는 월하노인의 임무를 맡은 '샤오룬'과 '핑키'는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씩 진정한 파트너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샤오룬'을 향한 '핑키'의 사랑도 스멀스멀 싹트죠. '샤오미'의 인연 찾기는 절절한 로맨스입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다며 사랑을 맹세했던 '샤오룬'이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샤오미'의 새 인연을 찾아주는 과정은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선사하죠.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 스릴러입니다. 이미 환생을 거듭해 전생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12세 관람가입니다.)그래서 재미가 없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다들 잡탕밥 드셔보셔서 아시겠지만, 잡탕밥은 그 오묘함이 맛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여 버렸어도 맛은 있었답니다.⊙ ⊙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생과 사를 골몰하게 됩니다. '샤오룬'이 동네 어르신들과 농구를 하다가 별안간 벼락에 맞아 죽었듯이, 어쩌면 저도 이렇게 글을 쓰다가 별안간 건물이 무너져서 죽을 수도 있지요. 요즘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정말 그런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극 중에서도 월노로 활동하는 죽은 자 중에 노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요절한 청년들이었죠. 이렇듯 죽음은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의 무작위성은 죽음을 두렵게 만듭니다.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던지는 '만약'이라는 가정 덕분에 저는 죽음의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겨냈습니다. '만약 죽음이 또 다른 생의 시작이라면? 내가 이미 열 번이 넘는 환생을 거쳐 몇백 년간 존재해왔다면? 사랑, 선의, 그리움 등의 감정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즐거운 가정과 함께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좀 더 알차게 이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인생 1회차 인간을 위해 앞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는 영화가 더 많이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마지막 쿠키 영상을 보고 눈물을 훔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인 만큼,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아루'에게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쿠키 영상에 담았거든요. 쿠키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시고,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마음들을 온전히 느끼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Summary
샤오미(송운화)만 사랑해 온 직진남 샤오룬(가진동), 하지만 청혼하려던 순간 갑작스런 사고로 저승에 간다. 환생하고 싶으면 붉은 실로 커플 매칭을 하는 월하노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데, 하필 사사건건 부딪히던 핑키(왕정)와 파트너가 된다. 드디어 이승으로 내려온 ‘월하노인’ 샤오룬과 핑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 우리가 인연을 맺어줘야 할 인간이 샤오룬이 평생 사랑했던 단 한 사람, 샤오미란다! (출처: 씨네21)Cast감독: 구파도출연: 가진동, 송운화, 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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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이 정도면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값은 한 거겠지
푸른빛을 잘 담아내는 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돌아왔다. 사실 '날씨의 아이'가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이번 영화마저 별로라면 굳이 영화관 가서 이 감독의 영화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별점 5점 만점에 3.5점은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깎아버린 1.5점은 결국 영화의 개연성 때문이었다.
1. 일본의 자연에 진심인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작화이다. 그의 강점이기도 한데,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수려하게 그려내었다. 그의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자연 요소는 아무래도 물일 것이다. 그가 그려내는 작화는 물이 가진 수려함을 잘 그려내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퀀스 초반에 스즈메가 등교하던 중 보이는 바다는 참 아름다워 단번에 와 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역시 그는 이런 푸르름을 극대화하는 작화를 그 어떤 애니 감독보다도 잘 그려내는 것 같다. 그가 그려내는 푸르른 작화는 왠지 모르게 투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는 일본의 재난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왔다. 그는 일본의 자연 환경에 참 관심이 많고, 그에 따라 그의 영화의 주제는 대체로 일본의 재난이다. 그를 유명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너의 이름은' 또한 영화의 스토리의 배경은 재난으로 폐허가 된 한 마을이었고, '날씨의 아이' 또한 해일이 덮쳐 물바다가 되어버린 일본을 그려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일본의 지진에 집중했다. 일본의 지진을 막아내는 초월적인 존재가 있고, 그 초월적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남주 소타와 같은 토지시가 등장하며 일본의 재난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다는 설정으로 이번에도 그는 일본의 자연 환경과 무속적인 존재와 결부시켜 이야기를 끌어나갔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그의 영화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영화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일본의 자연 환경, 재난을 무속적인 기질을 타고난 인간이 막아내고, 그 인간을 사랑한 또다른 인간이 등장해 이들의 로맨스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그만의 클리셰라면 클리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클리셰에 질리진 않았겠지만 추후 만들 영화도 비슷한 이야기라면 이젠 조금 질리기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주 살짝 우려된다.
2. 일본의 폐허들과 그 폐허에 있었던 사람들을 추모하는 마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 재난으로 폐허가 되어 더이상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무관심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지시들은 이런 버려진 장소들에 관심을 기울이며 재난이 문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관리한다. 그 재난을 막아내는 요석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요석이었던 다이진이 더이상 재난을 막아내는 일을 버텨내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점만 봐도 일본은 기본적으로 재난이라는 개념을 필연적으로 견뎌내야할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 재난을 책임지고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무관심으로 도배된 세상에서 나혼자 나라의 안녕을 위해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면 그 누군가가 초월적 존재, 혹은 신이더라도 얼마나 인간들이 괘씸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다이진의 행동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고, 서사의 가장 큰 빌런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정리될수록 어쩌면 제일 외로운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 산재해 있는 재난에 대한 관점, '슬픈 일이긴 하지만 내 일은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다이진으로 하여금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도망치고 싶어지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추모를 위해서도 일종의 책임자를 만들어낸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추모인지 보여주는 존재가 아닐까. 추모는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독은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영화의 제목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아니라 '다이진의 일탈'이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스즈메와 소타는 일본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폐허가 된 마을 속에서 떠다니는 저 세상의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참 일상적인 문장인데, '다녀오겠습니다'가 '다녀왔습니다'로 바뀌지 못한 그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인생에서 어떤 이유로든 어떤 사람이 사라졌는데, 그 사람을 기억할 때 의외로 그런 일상적인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 사람을 기억할 때, 그 사람이 대단한 말을 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음식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이 했던 '밥 먹어'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대단한 사람들의 연설을 듣거나 유명한 상담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것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일상적인 말이 오히려 더 치유에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스즈메와 소타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들려주기 위해, 그래서 이들의 한이 다음 세대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3. 결국은 직면해야 한다.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재난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고 다음에는 어떤 재난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이미 발생한 재난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 그저 묻으려고만 하는 일본인들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다수가 재난의 상처에 무관심하고 그저 상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상처에 대해 티를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곪아가고 있는 사회를 꼬집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란 직면해내고, 몰아치는 수많은 감정을 감당해내고, 어떻게든지 표현을 해내어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표면적으로 동일본 지진 생존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지만 감독은 재난을 겪었든 관망했든 우리 모두 당신의 기억에 직면하고 맞서 다시 제로 베이스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어쩌면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충고를 사회에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 받아내고 막아내고 있는 다이진이나 소타 같은 토지시들이 나라의 대의를 위해 힘써줄 동력이 생겨날 것이다. 그저 기억하고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4. 총평
사실 영화의 개연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타와 스즈메의 로맨스 라인이 뜬금없는 감이 있고, 이렇게까지 이 두 사람이 사랑할 만한 이유가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가 치유와 위로인 만큼 로맨스를 일종의 양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 개연성 부족은 약간 흐린 눈 해줄 수 있다. 그 외에 영화의 메시지가 관객들을 이해시키기에 충분히 명확했고, 충분히 제작 의도가 보여서 좋았다. 역시 서사가 있는 모든 작품들은 약간의 단점이 보이더라도 말하고자 바가 명확한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연성을 개나 주면 안되겠지만 메시지가 곧 개연성일 때도 있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음악이 영화의 작화와 아주 잘 어울린다. 요새 내 최애 플레이리스트가 될 정도였다. 일본어는 모르지만 적당히 몽환적인 것이 멜로디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이미 보신 분들이라면 나처럼 음악만 n차 감상하고 계실 것이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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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팡질팡하는 리부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 우주의 행성을 집어삼키는 ‘유니크론’을 섬기는 ‘스커지’(피터 딘클리지). 그는 ‘테러콘’을 이끌고 '맥시멀' 행성을 급습한다. 맥시멀이 지키는 '트랜스워프 키'를 확보하면 유니크론이 은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주의 지배자가 될 수 있기 때문. 이에 '옵티머스 프라이멀'(론 펄먼)과 맥시멀은 지구로 도망친 후 키를 숨긴다.
어느 날, 고고학자 '엘레나'(도미니크 피시백)는 트랜스워프 키를 우연히 찾아낸 뒤 실수로 키를 작동시킨다. 이에 지구에 피난 온 '옵티머스 프라임'(피터 컬런)과 오토봇은 새로운 친구 '노아'(앤서니 라모스)와 맥시멀의 도움을 받아 키를 찾기 시작한다. 고향 행성 사이버트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키의 위치를 알아낸 스커지가 지구에 도착하자 오토봇과 맥시멀은 위기에 처하고, 그들은 운명을 건 전투에 돌입한다.
리부트 시리즈의 본격적인 시작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흥행한 이후 할리우드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매료됐다. 새롭게 출범하는 시리즈도, 기존의 프랜차이즈도 마블의 발자국을 따라가기 바빴다. 일례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톰 크루즈가 출연한 <미이라>(2017)로 '다크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렸다. '해리포터'와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도 '위저딩 월드'로 재편됐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5편인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는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북미에서도, 한국에서도 흥행에 실패했다. 월드와이드 흥행도 4편의 절반 수준이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 계획은 취소됐다. 본래 스핀오프로 기획된 <범블비>가 급하게 리부트 시리즈의 첫 타자로 낙점됐다.
<범블비> 이후 5년 만의 속편인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리부트 시리즈의 진정한 시작을 알린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범블비>의 연장선상에 있다. 로봇과 인간의 교감에 주목하는 가운데, 간결해진 시나리오와 액션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 아직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욕심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계인과 인간의 교감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은 소수자라는 특징에 주목해 인간과 외계인의 관계를 풀어낸다. 노아는 히스패닉이다. 그는 미국 주류 사회에 녹아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미 육군 출신인데도 취업 면접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오토봇도 지구에서는 소수자다. <범블비>에서 사이버트론을 탈출해 지구로 피신한 오토봇. 그들은 전편에 인간에게 쫓 경험이 있기 때문에 철저히 숨어 지낸다.
양측이 처음부터 협력하지는 않는다. 노아는 유니크론이 트랜스워프 키를 이용해 지구를 파괴할 거라고 우려한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트랜스워프 키를 활용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노아는 키를 파괴하려 하고, 옵티머스는 지키려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공통점을 계기로 둘은 힘을 합친다. 가족애다. 노아에게는 아픈 동생이 있다. 돈이 없어 병원 진료를 볼 수 없게 되자 그는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범죄를 저지른다. 옵티머스에게는 말을 못 하는 범블비가 있다. 자기를 믿고 지구에 온 동료들도 있다. 고향에 대한 집착은 리더의 책임감처럼도 보인다. 이 부담과 책임감은 노아와 옵티머스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협하는 기점이 된다.
인간을 지렛대 삼아 트랜스포머를 살리다
그 결과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핵심 캐릭터인 옵티머스 프라임의 존재감이 극대화된다. 물론 마이클 베이 버전에서도 옵티머스는 멋진 캐릭터였다. 정의롭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하지만 동시에 일차원적이었다. 무조건적으로 인간 편을 들며 지구를 수호하려 했다. 4편에서는 인간에게 사냥당하는 와중에도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의 말 몇 마디에 설득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옵티머스는 인간을 불신한다. 맥시멀이 트랜스워프 키를 숨기는 대신 한 인간 부족에게 맡겨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란다. 인간에게 쫓겨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처지를 노아에게 오버랩하고, 맥시멀과 인간의 동맹을 목격한 후 생각을 바꾼다. 마음을 열고 인간을 돕기로 한다. 이 전개가 예상보다 설득력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옵티머스는 어느 때보다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리더로 보인다.
트랜스포머에만 집중하라
노아와 옵티머스의 교감은 간결해진 시나리오 덕분에 더욱 빛난다. 이전과 달리 음모론이나 가상역사의 비중은 줄었다. 페루 구스코 신전과 잉카 제국이 배경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딱 잘라 선을 긋는다. 달 착륙 음모론이나 아서 왕 전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전편들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한다. 엘레나가 나스카 지상화도 너희(맥시멀) 작품이냐고 묻자 프라이멀이 아니라고 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신 트랜스워프 키를 찾는 오토봇, 테러콘, 맥시멀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다. 트랜스포머보다 인간 주인공과 미군에 주목한 이전 시리즈의 잘못을 피해 간다. 사실 초반에는 인간 캐릭터 비중이 크다. 다만 노아, 엘레나, 오토봇이 한 팀을 이루는 순간부터는 확실히 트랜스포머가 주인공이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프라이멀이 스커지와 대립하고, 노아와 엘레나가 양념을 친다. 덕분에 '미라지'(피트 데이비슨) 같은 오토봇이나 '에어레이저'(양자경) 같은 맥시멀이 자기 매력을 발산할 공간도 충분하다.
액션도 간결해진 각본과 조화를 이룬다. 트랜스포머의 특성과 매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일단 모습을 자유롭게 바꾸는 트랜스포머의 특징을 적절히 활용한다. 일례로 미라지는 쓰레기차로 변신해서 박물관에 잠입한다. 페루에서도 오토봇은 자동차 상태를 유지하며 퍼레이드 쇼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자동차라는 한계가 명확한 오토봇과 지상과 수중, 공중을 오가는 테러콘도 명확히 대비된다. 마치 <트랜스포머> 1편 속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대결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부메랑이 된 장점
문제는 장점이 부메랑 마냥 단점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장점은 확실하나, 장점을 어떻게 살릴지 판단의 묘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트랜스포머에만 집중한 각본은 좋다. 그런데 필요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냈다. 범블비의 죽음과 부활이 대표적이다. 예측 가능하지만,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작위적이다. 편집도 부자연스럽다. 박물관 전투 후 스커지가 유니크론을 만나는 장면은 앞뒤 흐름에서 다소 유리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액션씬에서도 간결함이 독이 된다.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이 웅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쏟아지던 마이클 베이 표 액션에 비하면 이번 편은 심심하게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액션 구성이나 스타일이 <트랜스포머> 1편과 유사하다 보니 아쉬움이 더 클 수 있다.
인간과 오토봇의 교감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일부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문제도 있다. 엘레나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박물관 인턴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한 그녀. 엘레나는 맥시멀이 숨긴 트랜스워프 키의 절반을 우연히 발견해 연구하다가 노아와 함께 온 오토봇과 조우한다. 즉, 그녀는 오토봇과 별다른 접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엘레나의 역할은 노아나 오토봇이 막다른 골목을 마주했을 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그친다. 트랜스워프 키의 남은 반쪽을 찾을 장소나 유니크론을 막을 시스템 입력어 모두 그녀의 연구 노트에서 운 좋게 튀어나온다. 1편의 여주인공 '미카엘라'(메간 폭스)와 비교하면 더 몰개성적이다. 미카엘라는 범블비나 오토봇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그러나 액션씬에서 '자동차'라는 포인트를 살려 활약한 바 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욕심
무엇보다도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향한 욕심이 문제다. 당장 영화의 클라이맥스만 봐도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미라지가 마지막 힘을 짜내 변신한 슈트를 입은 노아. 그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 옆에서 함께 싸우며 유니크론을 패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스토리 전개만 놓고 보면 그의 활약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다. 아이언맨과 앤트맨을 연상시키는 슈트 때문은 아니다. 트랜스포머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인간 캐릭터가 갑작스레 활약하다 보니 다음 영화에서 트랜스포머가 다시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지.아이.조'의 등장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은 이 우려를 재확인한다. 트랜스포머와 지.아이.조의 크로스오버는 예견된 일이었다. 두 프랜차이즈 모두 제작사 해즈브로의 주력 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시네마틱 유니버스(심지어 마블도)가 위기에 빠진 현황을 고려하면 무모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이 아쉬움 속에서도 여러 장점을 보여줬지만, 리부트 시리즈의 미래가 여전히 어두워 보이는 이유다.
Poor 형편없음
다음 기회를 얻기에는 충분하지만, 이내 불안감이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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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황정민이 납치당하자 살아남기 위해 한 행동ㅣ중국 실화 한국판 리메이크 영화화ㅣ인질 황정민ㅣ세이빙 미스터우 결말포함 영화리뷰ㅣ
?인질(2021) 영화 예고편 분석
- 원작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 소개
- 중국 배우 납치 사건 소개- 영화정보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 각본: 필감성
제작: 강혜정
출연: 황정민
제작사: 외유내강
배급사: 대한민국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촬영기간: 2019년 5월 15일 ~ 2019년 8월 13일
개봉일: 대한민국 2021년 8월
제작비: 80억 원
#인질 #영화인질 #인질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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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래비티에 담긴 주제와 흥미로운 이야기들 #8
환몽(幻夢) CINE 리뷰 8화_ 영화 그래비티 해석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이번엔 왓챠 회원님들의 멋진 한줄평과 함께 했습니다!
이전까지 이런 우주영화가 없었기에, 개봉했을 당시 평단의 극찬이 엄청났었는데요.
있는 그대로 느끼고 체험해도 엄청나면서, 숨겨진 비유와 상징, 알고 보면 재미난 이야기까지 모두 준비해봤습니다.- 화려한 이력을 가진 '그래비티'
- 압도적인 오프닝
- 영화의 주제 : 중력과 삶의 의지에 관하여
- 영화 속 비유와 상징
- 알쓸신잡 : 과학적 고증 오류와 아닌강(?)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환줄평 / 몽줄평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래비티 #그래비티해석 #알폰소쿠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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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니언즈2> 메인 예고편
7월 20일, 극장가를 점령할 Ml니언즈 C네마틱 U니버스 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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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테헤란> 공식 예고편
"이란에 잠입한 이스라엘 정보 요원, 임무가 꼬이며 탈출할 방법도 사라진다. Apple TV+에서 '테헤란' - Tehran을 감상하세요. https://apple.co/_Tehran" "드라마 '파우다' 작가 모세 존더의 신작 첩보 스릴러. 테헤란에 잠입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과 주변 인물들은 큰 위험에 빠지는데... 모세 존더, 다나 에덴, 마오르 콘이 제작하고 다니엘 시르킨이 연출했으며, 옴리 쉔하가 존더와 함께 각본을 썼다. 책임 프로듀서로 모세 존더, 다나 에덴, 슐라 스피겔, 아론 아란야, 줄리엥 르루, 피터 에머슨, 엘다드 코블렌즈가 참여했다. Donna and Shula Productions가 Paper Plane Productions와 함께 제작하고, Cineflix Rights 및 Cosmote TV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