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3-11-01 01:19:15
데이비드 핀쳐의 인장을 새긴 '킬러 패스밴더의 일일'
<더 킬러> 스포일러 없는 리뷰
데이비드 핀처가 조용하지만 내내 큰 폭으로 진동하는 영화로 돌아왔다. 핀처의 신작 <더 킬러>에서는 <파이트 클럽>의 화려한 액션이, <세븐>만큼의 강렬한 서스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데이비드 핀쳐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의 개성이라는 듯 내내 스스로를 증명한다. <더 킬러>의 오프닝은 그 서막이다. 감독은 주인공이 목표 저격에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전문 킬러의 일상으로도 장기를 보여줄 수 있어’라는 인상을 준다. 좋은 시작으로 쏘아 올린 이야기는 서서히 끓어올라 관객들을 잡아먹고 이내 후반부까지 질주한다.
이 킬러는 도통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드물다. 이런 그에게 심리적인 위기가 찾아온다. ‘더 킬러’에게 보복하고 싶었던 불한당들이 그의 집에 찾아와 주인공의 여자친구를 해친 것이다. 처음으로 감정을 끓어 올리는 주인공. 서서히 악당들을 해치워나간다. 이 과정을 묘사하는 데이비드 핀쳐의 연출법이 흥미롭다. ‘실행이 전부다’와 ‘공감은 약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대사가 반복된다. 이 반복은 주인공의 강박이 깨지지 않을까라는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또한 시각적으로도 주인공과 악당들이 좁은 공간에서 대치하는 신을 연이어 보여주며 두 인물 사이의 장력을 동력으로 삼는다.
이렇게 전문 직업인의 일상도 고유의 개성을 통해 보여주는 데이빗 핀쳐. 하지만 뭔가 나사가 빠진듯한 종교영화로서의 메타포가 아쉽고, 느슨한 이야기 마무리는 각본의 밀도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데이빗 핀쳐가 보여준 연출세계는 팬들이라면 충분히 좋아할 만 하다. 11월 1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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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도시에서의 따뜻하고 선명한 빛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기회의 땅. 하지만 모두가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아니다. 삶의 궤적이 각기 다르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 밖에서 시작해 이 화려한 공간 속에 뿌리내리려 한다. 인도의 경제 중심지이자, 약 2,100만 명이 살아가는 거대한 도시, 뭄바이. 이 영화는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라는 세 여성을 따라간다. 각기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이 도시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라는 점.
프라바의 삶은 조용하다. 묵묵히 일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얼굴도 보지 못한 채 결혼한 남편은 독일로 떠났고, 그녀는 그가 간헐적으로 보내오는 흔적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녀는 마치 정해진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누는 정반대다. 병원에 찾아온 환자에게 몰래 약을 건네고, 일하는 내내 남자 친구를 떠올리며 히죽거리지만 결혼하라는 엄마에게 서스럼없이 거짓말을 한다. 힌두교도인 그녀는, 무슬림 남성과의 연애를 숨기며 살아간다.그녀는 사랑과 섹스 같은 금기어조차도 기꺼이 입에 올리며 선명하게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파르바티. 그녀는 두 사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이 도시에서 견뎌온 인물이다.병원의 조리사로 일하다 퇴직을 앞두고 있으며, 이제는 삶의 터전까지 위태로운 상태다. 도시에서 버티듯 살아가던 이 세 여성의 삶에, 조용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어느 날부터, 삶을 두드리는 작은 바람들이 세 사람을 흔들기 시작한다.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이방인으로서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이들은 그 작은 바람에도 크게 요동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던 세 사람은, 같은 질문 앞에 선다 —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인도 사회를 관통하는 종교과 계급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사랑이나 주거같은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이 통제가 된 상황은 이들의 내면을 깊게 규제한다. 중매결혼을 통해 결혼한 프라바는 남편을 기다리며 사회에서 정상으로 정의한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데 그런 프라바에게 호감을 표하는 병원 동료가 나타난다. 그녀에게 시를 써주고, 퇴근길을 기다리는 다정함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지만 프라바는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반면 함께 살고는 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아누는 중매결혼을 거부하고 다른 종교인과 연애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당당하게 맞서지는 못하지만 선명하게 사랑을 한다. 공통점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은 한집에 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아누의 뒷이야기를 하는 동료 간호사에게 대신 화를 내기도 하거나 외로움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낯선 도시에서의 삶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낸다. 비록 주거 문제로 뭄바이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올지라도 함께 이사를 도와주며 전기가 들지 않는 집에 빛이 되어준다.
파르바티의 고향에 머물며 혼자 시간을 보내던 프라바는 우연히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게 된다. 간호사로 평생을 누군가 보살피며 살아온 그녀가 이곳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사고 이전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와 부부로 오해를 받게 된다. 영화는 프라바가 나올 때는 줄곧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다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남자가 그녀의 남편인 듯 이야기를 건넨다. 관객들이 실제 남편인지 아닌지 착각하게 만드는데 그 진실은 상관이 없다. 너무 오래전 얼굴도 잊었을지도 모르는 남편의 얼굴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던지 프라바는 듣고 싶은 말을 듣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너무 힘들다고 - 마침내 진심을 전한 영화는 프라바의 삶까지 밝히고 나서야 결말로 드러선다.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과 영화 속의 바람, 파도 같은 자연의 소리는 영화에 녹아들어 이들의 눅눅한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채운다. 희망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빛과 소리의 형태로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이방인으로서 도시에서의 삶은 낯설기만 하고 더럽고 때로 서럽다. 그러나 그 안을 메우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닌 주변을 밝혀주는 이들의 따뜻한 온기, 작은 시선과 다정함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빛이다.
영화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시사회에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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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없는 명예 속에 남은 상처
덧없는 명예 속에 남은 상처
영화리뷰 <파더 앤 솔져>감독] 마티유 바데피드
출연] 오마르 사이, 조나스 블로켓, 알라산 디옹, 바마르 칸
시놉시스] 1차 대전 당시 프랑스령 세네갈. 프랑스인들은 세네갈인들을 징집하여 유럽의 끔찍한 전쟁터로 보낸다. 척박한 땅에서 아들 티에르노와 가축을 치며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 바카리는 프랑스 군인이 나타난다는 소문만 들리면 징집 대상인 아들을 은신처로 보내 숨어 있도록 하지만 아들은 결국 세네갈에 있는 신병교육대로 끌려간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탈출하기 위해 자원입대를 하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부자는 유럽 전선으로 끌려간다. 한 전투에서 100만 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곳, 같은 아프리카인들끼리도 서로를 속이고, 강도 행각을 벌이는 전선에서 어떻게든 아들을 찾아 탈출하려는 아버지와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휘관의 눈에 들어 영웅이 되려는 아들은 서로 다른 전쟁을 겪게 된다. 2022년 칸영화제 Un Certain Regard 섹션의 개막작이었던 이 작품은 아버지의 애틋한 정과 덧없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다.(출처 : 전주국제영화제)
#스포일러 유의
허황된 권력과 지위
아들 티에르노는 세네갈인이지만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끌려온 전쟁터에서 장교의 눈에 빠르게 들 수 있었다. 말단 이병이었던 그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상급자가 죽을 때마다 일병으로, 상병으로 부사관으로 점차 승진하면서 권력의 맛을 깨닫는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군대에 자원입대한 아버지 바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전쟁터에서 탈출을 하고자 뒤에서 수많은 애를 쓰고 있지만, 권력과 지위에 맛을 알아버린 아들 티에르노는 아버지의 탈출 작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는다. 이젠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계급으로써 군대라는 사회 속에서는 아버지에게 지시를 내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지시에 복종을 해야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이에 아버지는 어떻게든 비참한 마음 속에서도 단지 아들을 살려서 지옥같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아들을 계속해서 설득해서 탈출을 진행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보다 간부의 인정에 더 고팠던 티에르노는 상관이 지시한 침투조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중간에서 탈출하여 다시 전쟁터로 돌아간다. 그렇게 선발대로서 적진으로 침투한 티에르노는 결국 적의 함정에 빠져 죽을 위기에 놓이고, 아들을 버리고 혼자 탈출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뒤를 쫓아 아들을 위기 상황 속에서 구해내지만 정작 자신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아들 티에르노는 적진에서 도망쳐나오며 명예롭게 싸웠다는 훈장을 받는다. 당장의 안위와 가족의 염려보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꿈. 하지만 이것은 모두 허황된 것에 불과했다. 군대라는 사회 속에서의 인정에 매몰되면서 결국 아들 티에르노는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영화 파더 앤 솔저는 전쟁이 결국 인간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통제된 사회라는 군대 속에서 통제를 잘 받아들이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거나 라인을 잘 타면 빠르게 진급해서 사람들을 거느리고,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 군대의 모든 구성원에게 이를 알림으로써 보다 더 충성적인 복종을 자연스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신기루는 군대 구성원들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존엄에 대해 망각하게끔 만든다. 지위체계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면서 이와 동시에 다음날 죽을 수도 있다는 죽음의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굉장히 본능적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각자의 삶에서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생존과 권력이라는 2가지 본능적인 욕구에만 집중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 본능 속에서 살다가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해체되어 버린 군대에서의 명예가 과연 남을까.빠르게 진급하면서 당시에는 느꼈을지 모를 성취감은 이제 자신을 찾지 않는 떠나간 군대를 보며 과연 그 감정이 오롯이 남겨져 있을까. 모두 허탈함으로 바뀌어져 있을 것이다. 매순간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애썼지만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나고 개별 군인에게 남는 것은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 이제는 사라진 조직 등 과거의 감정들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영화 파더 앤 솔저는 훈장을 받고 터덜터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 돌아왔다는 자책감과 그토록 진급에 기뻐했던 과거가 덧없음을 티에르노의 눈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 파더 앤 솔저는 전쟁이 얼마나 인간 개개인을 활폐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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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 밋밋한 단테의 지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돔'(빈 디젤)과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로만'(타이러스 깁슨), '테즈'(루다크리스), '램지'(나탈리 엠마뉴엘), '한'(성 강)이 로마로 작전을 나간 사이 그들은 불청객을 만난다. 바로 숙적 '사이퍼(샤를리즈 테론)'. 그녀는 새로운 빌런 '단테'(제이슨 모모아)의 존재를 알려준다. 오래전 돔 때문에 가족을 잃은 단테. 그는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돔을 범죄자로 만든다. 이에 뿔뿔이 흩어진 패밀리. 그들은 각기 '제이콥'(존 시나)과 '쇼'(제이슨 스타뎀) 등 가능한 모든 친구를 모아 단테에게 반격할 준비를 한다.
<인피니티 워>에는 미치지 못하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이하 <분노의 질주 10>)를 보면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다. 둘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시리즈 속 모든 인물이 집결한다. 가장 치밀하고 강력한 빌런도 등장한다. 몇몇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 종결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판을 까는 영화라는 점도 같다.
그런데 두 영화의 인상은 사뭇 다르다. <인피니티 워>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동시에 기대감을 키웠다. 파멸적인 피해를 입은 영웅들이 타노스에게 어떻게 반격할지. <엔드게임>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었다.
<분노의 질주 10>은 반대다. 주인공이 유례없는 위기에 빠지는 전개는 동일하다. 그런데 그 위기는 진짜 같지 않다. 새 빌런 단테도 타노스만큼의 위압감은 없다. 과거 주역들의 복귀는 반갑지만, 인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억지스럽다. 결말도 아쉽다. 놀랍지만, 기대감보다는 실망감이 더 크다. 이유는 명확하다. <인피니티 워>와 달리 <분노의 질주 10>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끝난 준비 작업
잠깐 시선을 전편으로 돌려보자.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나름 인상적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우주로 향하는 무리수는 충격적이었지만, 시리즈의 난맥상을 정리한 서사는 돋보였다. 사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통일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브라이언과 한의 빈자리는 컸다. 첫 편과 비교하면 장르도 크게 변했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가족의 귀환을 택했다. 그 중심에는 돔의 동생, 제이콥이 있었다. 제이콥은 성경 속 야곱 같았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둘러싸고 형과 갈등을 빚었다. 제이콥은 아버지와 진실을 숨긴 채 돔과 충돌했다. 진실을 알지 못한 돔은 제이콥을 패륜아로 비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오해를 풀고 화해했다. 긴 시간 헤어져 있던 가족은 마침내 하나 됐다.
제이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도, 미아도, 심지어 브라이언도 직간접적으로 토레토 패밀리에 복귀했다. 돌아온 탕자, 제이콥의 서사가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다른 이들의 복귀는 비교적 매끄러웠다. 익숙한 얼굴이 재합류하면서 시리즈에 통일성도 생겼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를 기준으로 이야기가 나름 깔끔하게 연결됐다. 이처럼 <분노의 질주 9>라는 가족 드라마는 프랜차이즈를 떠나보낼 준비 작업을 깔끔히 끝마쳤다.
레퍼런스를 잘못 써먹다
그런데 정작 <분노의 질주 10>는 달리지 않는다. 자기 역할이 <인피니티 워>와 다르다는 걸 망각한 듯 보인다. <인피니티 워>의 과제는 두 가지였다. 우주와 지구에서 활동하는 영웅들을 한 데 모아야 했다. 동시에 타노스와의 대결을 그려내야 했다. <분노의 질주 10>은 첫 번째 과제를 이미 끝냈다. 전편에서 돔은 분명 모든 가족을 규합했다. 그들에게는 달릴 일만 남았다. 화끈하게 단테와 싸우면 그만이었다.
<분노의 질주 10>의 선택은 달랐다. 제작자 빈 디젤은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까지도 전부 끌어모았다. 최종 빌런인 단테에 맞서기 위해 과거 빌런이었던 쇼와 사이퍼를 소환한다. 시리즈에서 하차한 줄 알았던 '홉스'(드웨인 존슨)도 불러온다. 심지어 오래전에 사망한 줄 알았던 '지젤'(갤 가돗)을 되살려낸다.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멤버도 투입한다.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의 부재는 그의 딸 '테스'(브리 라슨)가 대신한다. 8편에서 죽은 '엘레나'(엘사 파타키)의 여동생 '이사벨'(다니엘라 멜키오르)처럼 잊고 지나갈 뻔했던 가족도 챙긴다.
하지만 올스타전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이미 전편에서 끝난 가족 드라마를 중언부언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또 가족이라는 이유로 시리즈에서 퇴장했거나 죽은 인물을 되살리니 긴장감이 없다. 단테가 돔을 위기에 몰아넣어도, 패밀리가 중 한 명이 죽어도 담담하다. 다시 살아날 테니까. 아무리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가족애로 똘똘 뭉친 시리즈 해도 과한 전개다. 시리즈를 향한 빈 디젤의 애정이 집착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유다.
다른 문제도 있다. 영화는 돔과 단테의 대결을 보여주기도 벅차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자꾸 끼어든다. 흩어진 일행 중 일부는 쇼를 데려와야 하고, 다른 쪽은 사이퍼와 친해져야 한다. 돔은 테스와 함께 브라질로 가서 이사벨을 구해야 한다. 물론 어떻게든 각 에피소드를 하나로 이어 붙이려는 노력은 엿보인다. 가족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돔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사 내용도 타이밍도 작위적인 나머지 설득력은 부족하다. 이처럼 구심점 없는 2시간 20분은 어지럽다.
단테의 지옥이 펼쳐지다
잘못된 레퍼런스 활용은 단테의 서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사실 단테라는 빌런의 모티브는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돔에게 그대로 되돌려주는 악당이다. 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듯한 계획이다. 이탈리아 작가 단테가 창조한 '신곡' 지옥편 속 지옥은 인과응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옥에서 자기가 저질렀던 죄를 형벌로 되돌려 받는다.
실제로 <분노의 질주 10>는 단테가 열어젖힌 지옥도를 보여준다. 단테는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서 돔 때문에 아버지와 재산을 모두 잃고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돔의 아들을 집요하게 노린다. 돔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겨주기 위해서. 단순히 아들을 죽여 복수하려는 게 아니다. 살아 숨 쉬는 동안 가족을 차례로 잃고, 무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아픔을 돔에게 안기려 한다.
단테는 가족애로 무장한 시리즈에 걸맞은 최종 빌런이라 할 수 있다. 돔에게 물리적 위협만 가하는 게 아니라, 그의 신조까지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을 챙기기 위해 다른 가족은 파괴해도 되는지. 그의 신조는 정녕 정의로운 것인지. 돔을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테는 길고 길었던 가족 이야기를 끝내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서 손색없다.
밋밋하기만 한 지옥
문제는 단테라는 캐릭터의 완성도다. 영화는 토레토 패밀리를 다시 규합하는데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그 결과 단테라는 캐릭터에게 필요한 공간을 내주지 못했다. 잘못된 레퍼런스 활용의 또 다른 예시다.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악역의 신념과 철학, 위력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우주의 절반을 죽이는 살인자이자, 대의와 영웅을 존경하는 현자라는 입체적인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단테에게는 그런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분노에 불타는 복수귀를 보여주는 게 전부다. 그 결과 남은 건 스테레오 타입이다. 단테는 소시오패스 살인범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개연성도 떨어진다. 그가 돔보다 언제나 한 발 앞서 계획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과정은 부자연스럽다. 평면적인 악역이 너무 완벽하고, 무턱대고 잔인하니 좋은 소재나 모티브도 힘을 쓰지 못한다.
<분노의 질주 10>이 비빌 언덕은 결국 액션이다. 현실감을 되찾은 액션이 눈길을 끈다. 물론 헬리콥터를 차로 격추하거나 대형 폭탄을 쫓아 로마 시내를 종횡무진 누비는 대목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우주로 가거나, 잠수함과 싸우는 전편에 비하면 현실적인 느낌을 주도록 액션이 잘 짜여 있다. 5편인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와 6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을 오마주한 일부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는 언제나 인상적인 팀 액션이 있었다. 토레토 패밀리가 한 팀으로 움직이며 악역을 막아내는 시퀀스는 늘 짜릿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로마 시퀀스를 제외하면 뛰어난 팀 액션을 찾아볼 수 없다. 팀원들이 다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레이싱 장면이 스쳐 지나간 점도 감질난다. 물론 시리즈 정체성이 바뀐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시리즈의 기원을 생각하면 레이싱 과정이 너무 간단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분노의 질주 10>은 한계가 명확한 10번째 시리즈다. 가족애 말고는 더 할 이야기도 없고, 카 액션도 한계가 찾아왔으며, 빌런도 매력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다운 스펙터클은 여전하지만, 특별함과 신선함은 없다. 과연 이 장수 시리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미래가 밝지는 않아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기본만 하는 국밥집처럼 밋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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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웨이 스페셜(2020)> 리뷰
인간은 유사 이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 삶에 유통기한이 뚜렷이 새겨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두려움과 절망, 그럼에도 남겨질 이들을 떠올리며 점차 무력해지는 몸뚱이를 끝끝내 움직여야만 하는 운명에 대한 비참함과 서글픔. 그리고 그 사이에 스며드는 숭고함 따위를 어찌 감히 일반화할 수 있겠나.
우베르토 파졸리니의 <노웨이 스페셜>은 죽음을 목전에 앞둔 서른네 살 창문 청소부 존(제임스 노튼)과 그의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의 일상을 그렸다. 언뜻 보면 의젓한 네 살 아들과 자상한 아버지의 단란한 나날 같지만, 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이 부자父子의 삶을 자꾸만 촉박하게 만든다. 특히 창문을 닦는 일조차 점차 버거워지는 존은 아들 마이클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나날에서 얼룩을 지우는 막중한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는 영국의 입양법에 기반한 공공기관을 통해 적당하고 새로운 가정을 소개해주려 애쓰지만 그 일은 존의 예상보다도 힘들기만 하다.
※ 이하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배경이 북아일랜드이며 위에서 말했듯 아버지 존의 직업이 창문 청소부라는 점에서 <노웨어 스페셜>은 소외된 자들을 조명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존이 공공기관을 통해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은 갈등들을 겪는 장면이 함께 있어서, 나는 영화를 감상하던 도중 켄 로치를 몇 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베르토 파졸리니의 영화는 켄 로치의 것보다는 죽음을 앞둔 젊은 아버지의 심리라는 사적인 영역에 보다 집중한다.
입양 희망자에 대한 면담, 적절성 평가, 사무적인 태도 등이 비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존에겐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쇼나(에일린 오히긴스)가 있다. 마이클을 입양하고자 하는 이들은 여럿이며 나름대로 (자신들이 믿는)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 정부가 개입해 입양 희망자들을 분류하는 것이 아주 그른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일부 들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존이 마이클의 예비 가족을 만날 때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존의 내면 변화이다. 그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입양이 무엇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대답을 해줘야만 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담는다. 또한 존은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아들의 가족을 대신 선택해 줄 만큼, 마이클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존의 모습은 그가 진실로 마이클을 사랑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그는 끔찍하리만큼 진실된 사랑을 한 이에게만 허락되는, 가슴 아픈 성취를 획득한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존은 자신에게 닥친 허무를 수용한다. 아이에게 자신을 그저 창문닦이로 소개하면 그만이라고 말하거나, 굳이 뿌리를 알려야 하느냐고 손사래를 쳤던 영화 초반과 달리 존은 미래의 마이클이 열어볼 수 있도록 기억 상자를 마련한다. <노웨어 스페셜>은 전반적으로 톤이 일정하며, 등장인물들이 과할 정도로 오열하는 장면은 없다. 손때가 묻은 물건을 넣고, 우연히 찾은 생모의 사진을 넣는 장면조차 더욱 드라마틱하게 진행할 수 있었음에도 별달리 극적인 효과가 개입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듯하다. 그저 애달픔만으로 속이 이렇게까지 상할 수 있구나, 싶은 느낌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영화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한다. 존의 직업이 창작에 기반한 것이라면, 나는 영화 제작진이 굉장히 영리했다고 말하고 싶다. 창문을 닦는 행위를 통해 존은 한 걸음 밖에서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될 뿐만 아니라 유리는 그가 보지 못한 세상의 이면을 비춰줌으로써 , 존이 처한 상황과 자연스러운 접점을 형성한다. 또한 아버지 존의 이름은 너무도 평범한 것으로, 그의 슬픔이 사실 원치 않는 상황에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는 모든 이들의 상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가 세상에 남기는 아들 마이클은 미카엘 천사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떠나는 이들에게 당신이 세상에 남기는 희망은 곧 빛이 되지 않겠냐며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작중 네 살 마이클의 캐릭터다. 특별히 조숙하다는 설정을 넣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상보다 많은 것을 알며 종종 어른보다 현명한 태도를 보인다. 표현은 미숙할지 몰라도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마냥 어리게 볼 수밖에 없고, 걱정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의 시선에서 영화가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나, 마이클이라는 캐릭터를 지금보다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지.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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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운 게 늘어난다. 예전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시도하지 못한다.
실패하면 더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고 괜히 도전했다가 허송세월을 보내게 될 거란 걱정에 시달린다. 그렇게 익숙한 사람과 환경 속에 몸을 숨긴 채 새로운 일은 매번 다음으로 미룬다.이전에 하던 대로, 주어진 대로 지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불안하다. 문득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이 생긴다.
게다가 지금처럼 망설이다가 후회했던 과거가 떠오르는 날이면 용기 내서 도전하는 사람에게 괜히 시선이 향한다. 그들을 보면 자극을 받아 용기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생긴다.
그런 날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보면 어떨까? 불도저 같은 성격의 주인공 '롤라(빅토리아 저스티스'에게 용기를 배울 테니까.
영화 <퍼펙트 페어링>
영화 <퍼펙트 페어링>은 2022년 5월 19일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최신 로맨스 영화이다. 주인공 '롤라'는 승진을 앞둔 발표에서 친한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상사에게 무시당한다.
큰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던 와인 회사를 그만두며 스스로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완벽한 홀로서기를 꿈꾸며 유명 와인 회사 대표 '헤이즐'을 찾아'호주의 낯선 목장에 도착한 그녀 앞에 의문의 남자 '맥스(아담 데모스)'가 나타난다.
티격태격 다투며 대화하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예고편을 통해 영화 <퍼펙트 페어링>을 만나보세요!
영화 <퍼펙트 페어링>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유능한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맨스 영화의 모든 클리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른다.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꾸준히 봤던 사람이라면 다음 장면에 어떤 행동과 대사를 할지 맞출 수 있을 정도이다.
주인공의 퇴사, 낯선 곳으로의 여행, 여자들의 우정, 멋있지만 비밀 많은 남자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들 한 번쯤 마음에 품었을 로망이 모두 담겨있다.단순하게 클리셰가 많아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로맨스 영화에서는 클리셰를 유지하되, 독특한 개성을 더하는 게 흥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퍼펙트 페어링>은 뻔한 스토리에 와인이라는 세련된 소재를 더하고 아름다운 호주 농장을 배경으로 얹었다.
덕분에 과도한 긴장감이나 격한 감정 소모를 겪을 필요 없이 언제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Q. 용기 낼 타이밍은 언제일까?영화 속 모든 클리셰는 당연하게 주인공 '롤라'를 향한다. 정확히는 모든 요소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이끈다.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반할 때처럼 과하게 느끼던 그녀의 열정에 점점 빠져든다.
예를 들어 '롤라'는 '헤이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가축의 배설물을 치우는 작업 등이 처음이라서 계속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도 그녀는 늘 자신감 넘치게 지금껏 못해본 일이 없으니 해낼 거라고 답한다.특히 영화는 관객들이 그녀의 열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구구절절한 서사를 부여한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그녀가 '헤이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이유가 결코 돈이나 명예가 아닌 와인을 향한 애정임을 강조한다.
그러니 남자 주인공 '맥스'가 그녀를 위해 수 천만 원이 넘는 와인을 준비해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직접 그린 영화 속 한 장면
반면 그녀에게 농장 일을 알려주는 '맥스'는 잘생긴 외모, 농장 주인이라는 직업 등 객관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와인 회사 CEO '헤이즐의 친동생이며. 심지어 가족의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초반에 도와준 투자자이다.
일말의 부족함 없이 지낼 것 같지만, 사실 '맥스'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세상에서 도망쳐서 지내는 겁쟁이다.
영화 내내 현실에 만족한다며 누나 '헤이즐'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농장 주인으로 존재를 숨기다가 결말이 되어서야 '롤라'를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낸다.'롤라'와 '맥스'의 관계를 보니 어쩌면 용기는 한 잔의 와인 같다. 누군가의 용기를 마주하면 처음엔 호기심이 생겨 살짝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사람의 열정에 조금씩 빠지다가 어느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도 모르게 열정이 생겨 평소라면 말도 안 되는 용기가 생긴다.
와인이 달콤하다는 이유로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어느새 취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인사불성의 상태와 닮았다.그러니 용기 낼 타이밍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신중해도 괜찮다. 도망칠 만큼 도망쳐 더는 갈 곳이 없는 곳에 숨어 있어도 상관없다.
당신에게 용기 내는 법을 알려 줄 누군가를, 무언가를 깊이 사랑할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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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난한 이야기에 영화의 개성을 부여하는 윤여정의 마법
우연히 만난 선물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최고의 건축가 조민서(윤여정)이다. 강연 중인 민서.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다. 비단 최고의 위치라는 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다. 화려한 삶을 즐기고 있다. 존경받는 민서.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호텔의 관리자가 민서에게 “뷔페 드시고 가실래요?”라고 묻는다. 거절하는 민서.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넓은 집 적적한 민서를 기다리고 있는 건 민서의 반려견 완다다. 아들에게 전화해 보는 민서. 어머니의 근황이 단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이 그냥 전화를 끊어버린다. 밥 하기도 귀찮다.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민서. 이 민서의 라이더로 진우(탕준상)가 배정된다. 특별한 만남이 시작됐다. 안면이 트인 진우와 민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반려견 완다와 함께 시작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싱글남 민상(유해진)이다. 혼자 사는 민상. 민상은 깔끔한 타입이다. 깔끔한 타입이라는 점은 자기 소유의 건물에 세 들어있는 진영(김서형)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의미다. 진영은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온갖 반려동물들이 모여드는 진영의 동물병원. 건물 여기저기에 동물들의 흔적들이 깔려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을 다 받고 있다. 그러나 민상에게 어마어마한 손님이 찾아온다. 바로 한국 최고의 건축가 조민서다. 공간 설계를 기획하는 일을 하는 민상에게 민서는 굴러들어 온 호박과도 같다. 좋아! 나 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그러려면 수의자인 진영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민상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도그보다 '데이즈'
이 영화가 제목이 ‘도그데이즈’인것과 다르게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 군상이다. 물론 반려동물들을 다룬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 영화는 인물들이 이끈다는 점에서 휴먼드라마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강아지와 등장’인’ 물을 투 트랙으로 끌고 가는 각본 역량과 연출이 좋았다. 글쓴이가 이에 근거를 대고 싶은 것은 김서형 배우가 맡은 진영 캐릭터와 윤채나 배우가 맡은 지유 캐릭터다. 진영은 수의사다. 이 수의사라는 직업이 동물들을 다룬 영화에서 중요한지는 두 말하면 손 아프다. 하지만 핵심은 이 캐릭터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점인데, 이 인물에게 장르적인 재미 하나를 붙이면서 그 설정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인 주제와 맞물린다는 점은 좋은 선택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또 지유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켜볼 만하다. 이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 있다. 이 특성이 영화에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진 장점 중 하나다. 또 이 캐릭터가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이런 입장에 놓여본 관객의 입장에선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글쓴이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행위의 속성을 손쉽게 설명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관계를 반려동물과 사람의 사이로 치환시킨 것이다.
하지만 반대측면에서 이 영화가 반려동물들의 세계를 깊숙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 영화가 다루는 문제 중 어떤 것들은 윤리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논의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라면 좀 더 탄탄하게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표적으로 영화 중반부에 진영과 민상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한데, 이 부분에서 드러나는 한 쟁점이 갑자기 확 들어온다. 근데 이 두 사람 중 하나 민상이 반려동물과는 영 친하지 않았다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다룬 것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작 이 문제를 암시하는 것은 다른 캐릭터다. 그러니까 영화 자체가 이 문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영화가 파편화된 것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소재들이 하나로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점은 윤여정 배우가 맡은 조민서 캐릭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사실 앞서 쓴 바 그대로 이 영화는 강아지를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잡고 있다. 이게 핵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핵심이다 하더라도 강아지들에 대한 내용이 어느 정도는 더 들어가야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있다. 민서와 강아지가 어떤 사이고 무슨 관계인지를 더 비추는 것이다. 이는 민서의 서사가 과연 영화에서 어떤 것을 차지하는가? 와도 이어진다. 민서가 이야기의 핵심이 되어 극을 이끄는 것 치고는 윤여정 배우의 개인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이 부분에 있어 약간 모순적이긴 하지만, 한 편으로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윤여정 배우의 캐릭터가 한 대사라고 해도 크게 이질감이 없었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현우, 다니엘 혜니 배우가 끌고 가는 이야기에서 장르를 바꾸는 선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장면들은 큰 이질감이 되어 JK필름의 전작 <영웅>이 생각나 진부하게 느껴졌다.
생명을 따스하게
이 영화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생명에 대해 따뜻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구성할 때 인물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화법을 선택했다. 이 화법은 이 영화에서 특정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 한 줄에서도 느껴진다. 그리고 정아(김윤진), 선용(정성화) 캐릭터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설정에서도 읽을 수 있다. <도그데이즈>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큰 줄기를 차지하는 두 요소를 중심으로 강아지들을 함부로 대하는 조금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JK필름의 영화들이 억지 감동을 위해 캐릭터들을 지나치게 희화화한다던가 희생시킨다던가 하던 단점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이는 동물들을 바라보는 윤리적인 거리감을 잘 지켰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극후반부 엔딩으로 이뤄지는 귀결이 납득 가능하다는 장점으로도 이어진다. 무슨 말이냐? 이 영화의 엔딩은 덜컹거리는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설득력이 있다. 만약 이 인물들 중 누군가가 강아지를 괴팍하게 다뤘다면 이 인물들이 이런 동선으로 구성될 거라고 생각이 잘 안 든다. 연출과 플롯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냥 작곡가도 K-POP 작곡가입니다만
물론 약간 작위적으로도 느껴지는 부분이 없진 않다. 바로 이 영화를 소개할 때 나타나는 문구 두 줄이 있다 ‘K-POP 작곡가’라는 문장과 ‘MZ 라이더’다. 뭐 이 두 단어를 쓰지 말라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이 두 개가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라이더’와 ‘작곡가’여도 충분한데, 이 부분을 굳이 지적하는 이유는 이야기에 별 상관없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1차원적인 접근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홍보 카피가 아닌 영화 내적으로 들어간다. 정아가 가진 모성이 이야기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 모성을 이런 관계에서 가지는 것이 당연히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이 인물에 이입하기 쉽진 않다. 이 장면 앞에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만으로 이 인물이 이런 사람이라는 걸 파악하긴 어렵다. 이 감정이입의 어려움은 정아라는 왠지 모르게 ‘K-POP’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1차원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다룬 ‘모성’과 K-POP’은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작곡가라는 직업적 특성(그것도 K-POP)과 부모라는 설정이 이야기에서 중요했다면 이 두 소재에 더 힘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갔다는 점 역시 아쉽다. 왜 이 세계관엔 강아지만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어떤 영화에선 앵무새도 등장하는데, 고양이가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명에 대해 다룬 영화치고 강아지만 등장하는 건 좀 의아했다. 이렇게 일부 소재를 힘 없게 다루는 방식 역시 JK필름의 수많은 전작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적당히 문화생활하는 40-50대를 타깃 삼고 기획한 영화의 느낌이 강하다.
또 이 영화를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민상이라는 인물은 의문부호가 있다. 물론 이 사람이 따라가고 있는 영화 내의 흐름이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우리 일상생활에도 이런 사람 많다(심지어 글쓴이도 이래 본 적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인물이 이런 캐릭터였다면 전반부에서 이에 대한 묘사를 더 던져주고 주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아니 오히려 이 인물의 이런 성격을 굳이 이렇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 글쓴이는 그런 연출 방식과 장면이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이야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 장면이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진 것이다.
성장형 제작자?
이 영화는 JK필름의 향이 묽은 작품이기도 하다. 글쓴이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팬이라면 ‘JK필름’이라는 단어를 잘 알고 있다. 신파라는 요소를 한국영화계에 유행시킨 공이 큰 윤제균 감독의 제작사 JK필름. <해운대>부터 <공조 : 인터내셔날>까지 인위적인 전개로 영화팬들과 대중들에게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20/30대의 관객들 중 JK필름의 영화를 싫어하는 경우가 몇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JK필름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봐도 그의 향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찾자면 있지만 무난하게 따스하고 재미있고 강아지가 귀여운 영화가 된 것이다. 글쓴이는 윤제균 감독을 위시한 JK필름의 관계자 분들이 많은 비판을 숙고해서 시나리오를 받은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 생각 외의 전개가 어느 정도는 있고 이는 분명한 강점이니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도 무난하게 볼 만하다. 특히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시는 분들은 오열할 만한 장면이 몇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카리스마다. 우리 모두 윤여정 배우가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족적을 남겼던 영화 <미나리>보다 이 <도그데이즈>에서의 연기가 훨-씬 훌륭했다. 이 인물은 카리스마가 있고, 카리스마 이면에 깔려있는 어떤 정서가 있다. 그 정서는 진우를 대할 때 진정성이 되어 행동의 근거가 된다. 이 서사 아래 이야기를 이끌거나 영화의 제작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지점에서도 윤여정 배우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두 가지는 사실 좀 상충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는데, 이 인물이 중심으로 플롯을 끌고 가다 보니 이입하는 데 있어 큰 무리가 없다. 배우가 영화에 강력한 탄력을 만든 것이다. 윤여정 배우가 연기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낀 장면도 몇 있는데 글쓴이만 체감할 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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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이스토리가 이별에 서툰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슈퍼맨이 돌아왔다 280화에서 윌리엄과 건후를 보며 떠오른 토이스토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매 순간 이별을 향해 달려가지만,
여전히 이별에 서투른 우리들에게 토이스토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오늘은 토이스토리를 빌려 이별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토이스토리3 #토이스토리 #토이스토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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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악녀 크루엘라, 패션계를 접수하다!
101달마시안을 새롭게 재해석한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가 상영중이죠.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려서 너무 멋지고 또 이상하게도 보이기도 해요.
과거 영화와는 다르게 악녀의 길을 가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조금은 다른 길을 가려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루엘라의 머리가 흑과 백으로 딱 나뉘어 있는 것처럼 기묘하게 균형감이 살아있는 영화에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 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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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올빼미> 런칭 예고편
그날 밤, 세자가 죽었다.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는 어의 ‘이형익’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하고, ‘인조’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도 잠시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어느 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진실을 알리려는 찰나 더 큰 비밀과 음모가 드러나며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아들의 죽음 후 ‘인조’의 불안감은 광기로 변하여 폭주하기 시작하고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경수’로 인해 관련된 인물들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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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십개월의 미래> 30초 예고편
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미래는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족과 연인, 국가는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의 십개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