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3-10-27 08:39:31
미국이라는 상속자에게 들려주는 편지
<플라워 킬링 문>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석유 터져 나온 오세이지족 보호구역, 미국 서부 오클라호마. 오세이지족이 부자가 된 이 땅에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타난다. 오세이지족의 친구로 명성을 쌓은 삼촌 '윌리엄 킹 헤일(로버트 드 니로)'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
택시 기사로 오클라호마에서의 삶을 시작한 어니스트. 어느 날 그는 ‘몰리 카일리’(릴리 글래드스톤)를 승객으로 만나고, 곧장 사랑에 빠진다. 몰리 역시 어니스트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들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이내 난관에 부딪힌다. 윌리엄이 조카를 통해 몰리와 그녀 가족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으려는 음모를 실천에 옮겼기 때문. 몰리의 어머니와 자매가 하나 둘 죽어 나가는 가운데, 어니스트는 아내와 유산을 두고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스코세이지가 스코세이지 하다
<플라워 킬링 문>은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서 발생한 오세이지족 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다. 1870년대에 오세이지족은 캔자스 보호구역에서 강제 이주를 당했고, 결국 오클라호마에 보호구역을 매입했다. 이후 1890년대에 오클라호마 보호구역에서는 석유가 발견됐고, 석유 채굴권을 오세이지족 전체가 공유함에 따라 오세이지족은 벼락부자가 됐다.
하지만 오세이지족은 이내 자기 재산을 강탈당했다. 미국 정부가 도입한 후견인 제도 때문. 백인 남성이 오세이지족 은행 계좌를 관리하고, 미국 정부가 석유 로열티를 대신 맡으면서 오세이지족 자본을 노린 범죄가 난무했다. 이 난리통 중에는 백인에게 가족 모두를 잃은 오세이지족 여성의 사연도 있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데이비드 그랜의 동명의 논픽션에 기반해 그 비극의 시작과 끝을 차분히 비춘다.
소재만 봐도 <플라워 킬링 문>은 스코세이지다운 영화다. 그는 <갱스 오브 뉴욕>, <택시 드라이버>, <아이리시맨> 등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미국 역사의 역설을 성찰했다. '아메리칸드림'이 과연 자랑할 정도로 떳떳한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이 가장 스코세이지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근본적인 시작점으로 되돌아간 셈이므로.
사랑과 상속의 줄다리기
<플라워 킬링 문>의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클라호마에 온 어니스트가 몰리를 만나고, 삼촌 빌의 지시 하에서 몰리의 가족을 살해한 후 유산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전반부다. 이후 FBI가 등장해서 어니스트와 빌의 범죄 행각을 추적하고 법정에 세우는 이야기가 후반부를 채운다. 이때 스코세이지는 전반부에 힘을 준다. 범죄 스릴러의 쾌감 대신 백인과 원주민의 드라마에 주목한다.
특히 어니스트와 몰리의 멜로가 핵심이다. 어니스트가 몰리를, 몰리가 어니스트를 사랑한 것은 분명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 기저에 다른 감정을 깔아 둔다. 욕망과 두려움이다. 돈을 욕망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 대한 두려움. 부부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각자 내면의 괴물과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3시간 넘도록 반복된다. 영화는 그들이 마지막 선택을 내리는 찰나에 비로소 대미를 장식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이뤄질 수 없는 부부 관계를 통해 미국이라는 국가의 근간을 드러낸다. 사랑, 욕망, 두려움의 근원에는 '상속'이 있다. 오세이지족의 유산을 상속받겠다는 빌과 어니스트의 야욕. 영화는 그 야욕이 단순히 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는 지난 세월 스코세이지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문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공동체이자 가족의 일원이 된 사람들을 짓밟는 모순. 그에 힘입어 만들어 낸 '미국'이라는 사회적 자본. 그 자본을 상속받은 지금의 미국까지. 영화는 미국의 자본축적이 피와 불의의 역사였다고 가감 없이 말한다. 그래서일까? 오세이지족 사람들이 만들어낸 꽃과 미국의 첫 번째 성조기가 겹쳐 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아름답지만, 처연하다.
미국인도, FBI도 아닌 오세이지족의 눈으로
물론 <플라워 킬링 문> 속 자성의 메시지는 자칫 뻔할 수도 있다. 미국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은 한 둘이 아니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메시지는 유달리 날카롭게 폐부를 찌른다. 오세이지족의 관점을 빠뜨리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어니스트가 화자인 것과는 별개로, 영화는 범죄자와 형사 사이에서 자칫 가려지기 쉬운 피해자를 조명하고자 노력한다. 그 덕분에 메시지에도 최대한의 진정성이 담겼다.
오프닝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오세이지족 구역의 생활상을 비춘다. 오클라호마에서 석유가 터지고, 부유해진 이들. 양복을 입은 그들은 백인 기사를 거느리며 자동차를 타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며, 골프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 이 몽타주는 이질적이라서 더 의미심장하다. 필름 속 오세이지족은 다른 미디어에서 흔히 접한, 통념 속에 갇힌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석유라는 행운 덕분에 손에 쥔 부를 미국인다운 방식으로 즐기는 모습일 뿐이니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논리적 귀결과 달리 이 몽타주는 여전히 이질적이다. 나도 모르게 아메리카 원주민을 '미국인'에서 배제하는 편현합의 발로 대문이다. 이는 스코세이지의 의도처럼 느껴진다. 영화가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백인들의 익숙한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면서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의 진수를 암시한 셈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잊혔고, 잊힐 수밖에 없는 오세이지족의 생활상을 가능한 자세히 기록하려 한다. 템포를 과하게 잡아먹는 게 아닌가,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인가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오세이지족 언어는 날 것 그대로 영어 자막 없이 삽입됐다. 그들의 장례, 결혼, 유아세례 비슷한 기념 풍습도 스크린 위에 재현된다. 심지어 오세이지족이 믿는 사후세계도 등장한다.
필연적인 호불호
다만 <플라워 킬링 문>은 결코 상업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모든 부분이 대중성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러닝타임만 해도 그렇다. 3시간 26분에 달하는 분량 덕분에 영화는 어니스트, 몰리, 빌의 변화를 사냥개처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분량 때문에 영화의 접근성은 자연히 높아진다. 후반부에 FBI가 등장하며 템포를 끌어올리는 등 탁월한 완급조절을 자랑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스코세이지 영화를 많이 접했다면 전제적인 스토리텔링과 구성, 주제가 익숙하기에 더 지루한 느낌도 있다.
기술적인 측면도 마찬가지다. 와이드 한 촬영법, 롱테이크와 이동하는 카메라 장면 덕분에 인물의 감정선과 영화의 주제에는 힘이 실린다. 다만 그로 인해 고전 영화와 현대 영화가 섞인 느낌도 든다. 자칫 올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나리오가 변경됨에 따라 배급권이 파라마운트에서 애플 티비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파라마운트의 결단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호불호가 갈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 니로는 안정적이다. 다만 충격적이지는 않다. 특히 디카프리오의 경우 본인이 극을 주도할 때 빛나는 배우이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 속 '캘빈 캔디' 같은 역할을 맡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어니스트' 역을 선택한 디카프리오 대신 FBI 형사 '톰 화이트'를 연기한 제시 플레먼스의 존재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래도 조연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누구보다도 '몰리'를 연기한 릴리 글래드스톤이 눈길을 잡아끈다. 사랑과 두려움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지만, 그 싸움을 숨기려 최대한 애쓰는 인물을 표정만으로 표현해 낸다. 그 감정선을 따라가기 위해 얼굴을 보다 보면 마치 모나리자 그림을 보는 것처럼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끝내 기대치를 넘어서는 엔딩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엔딩 덕분에 <플라워 킬링 문>의 호불호는 이내 잊힌다. 영화는 남은 이야기를 에필로그 형식으로 보여주려 한다. 주요 인물이 재판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줄 차례이므로. 대부분의 영화는 이 순간을 익숙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실제 자료 화면이나 사진에 자막을 더하는 식으로.
스코세이지는 다르다. 그는 직접 영화에 출연한다. 단순히 모습을 비추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올라 낭독극의 화자가 된다. 감독 본인의 음성으로 인물들의 남은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 낭독을 통해 영화가 보여준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듯하다.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지난날을 반성하는 이야기. 앞으로도 같은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점을 잊지 않겠다는 이야기.
이에 더해 스코세이지다운 방식으로 영화의 위기에 스코세이지가 대처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결국 이야기라고. 설령 달라지는 일은 없더라도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고, 보여주는 게 이야기꾼의 유일한 역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마블 영화를 테마파크라고 지적하며 서사를 들려주는 '시네마'의 공간이 줄어드는 세태를 비판했던 것처럼. <플라워 킬링 문>의 끝이 어느 때보다도 노장의 진심으로 가득한 마무리인 이유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지막 낭독 덕분에 완성된 영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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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고 있는 <영웅>의 질문 '누가 죄인인가?'
꼭 이루고 싶은 꿈
"나 이번에도 가" 안중근은 쉽지 않은 말을 가족에게 전했다. 왠지 모르게 무덤덤한 어머니. 그와 반대로 안중근의 아내는 슬퍼하고 있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어렵나? 아내 김아려는 울며 사정하고 있다. "집도 팔고, 예물도 팔고, 온갖 물건 다 팔았소. 나라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라고!" 금방 온다는 약속도 무색하게 될 것 같다. 떠난다면 어쩔 수 없다. 안중근을 보내는 가족들. 대의명분을 위해서 아들과 남편을 희생해야 할 때가 여지없이 온 듯하다.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과의 이별을 겪으며 마음 안에서 울었다.
시간이 지났다. 독립군 부대에 도착한 안중근. 때는 경술국치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몇 전투에서 이긴 안중근. 전쟁 포로로서 일본군 몇을 잡아놨다. 독립군은 이 일본군 몇몇을 처형하려고 한다. 총을 발포하기 직전이다. 겁에 질린 일본군. 그러나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처형하는 독립군을 멈춰 세우는 독립군 대장 안중근. 하나하나 비틀어 죽여야 할 놈들이지만 인도주의로, 대의명분을 위해 일본군을 풀어주기로 한다. 청산유수의 화법으로 다른 독립군을 설득한 것이다. 그 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독립군 소대에 폭탄이 날아든다. 일본군의 급습이었다.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이 독립군 소대를 습격했다. 너무 많은 희생을 한 독립군. 동지들의 시체 속에서 안중근은 일본군의 가슴속에 흉터를 내려 총구를 겨눈다.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의외로 감탄한 것
영화에서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때깔이었다. 초반부에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가 어느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 밑의 일본군 졸개는 얼굴 정면으로 밝게 보여준다. 반대로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흰 화장을 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얼굴 톤 대비로 인물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뮤지컬 신에서 김고은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 굉장히 어둡다가 빛을 활용해서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방식은 영화를 뮤지컬처럼 표현한 좋은 연출이었다. 또 실내, 실외 가리지 않고 빛을 이용한 주인공을 조명시키는 방법은 영화 화법을 좀 더 간편하게 만드는 나름의 해결방안 중 하나였다.
또 정성화, 김고은, 나문의 배우의 퍼포먼스는 어마어마했다.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사실 극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 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설희가 직면한 문제가 좀 싱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김고은 배우는 이를 전혀 싱겁지 않게 연기한다. 사랑하는 주변인을 잃고 분노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매번 다른 눈물연기로 소화하는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설희라는 인물의 눈물이 조선의 분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설희에게만 배당되기 때문이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를 보여주듯 김고은 배우는 강강강의 빠른 템포 연기를 잘 소화한다. 뿐만 아니라 나문희 배우의 연기도 영화의 강점으로 돋보일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이 <영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아니라 아들을 숭고하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조마리아 여사의 애달픈 감정'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는 살린 건 사실이지만 굉장히 전형적이고 상투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있다. 이런 식의 신파 연출은 우리가 자주 봐왔다. <부산행>에서 봤었고 <비상선언>에서도 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투적인 연출을 뚫고 보여주는 나문희 배우의 카리스마는 극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그림자 진 얼굴과 함께 보여주는 슬픈 표정연기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와 정서를 내포하는 엄청난 연기다. 작년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 양조위 배우가 맡은 만다린의 연기처럼 극을 이해한 배우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성화 배우가 맡은 안중근 역은 이 사람이 뮤지컬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안중근이라는 배역에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 목소리 톤과 눈빛연기로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조악한 캐릭터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강박적으로,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디서 봤던 캐릭터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박진주-이현우 배우가 맡은 마진주-유동하는 극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제시되는 캐릭터들이었다. 찾아보니 원작 뮤지컬 <영웅>에서도 이 두 캐릭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영화를 위한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그럼 뭐 하러 각색을 하나? 각색을 한 보람도 없이 이 두 인물은 안중근의 곁에서 단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옆에서 '우와 대단해요'만 할 뿐이다. 극후반부쯤에 영화에서 동귀어진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동귀어진이 안중근 의사랑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인물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는 지점 덕에 조악하게만 느껴지면 다행이다. 이 박진주-이현우 두 배우는 한 영화를 기점으로 이미지 변화가 절실함을 느낀다. 박진주 배우는 오래전 <써니>에서, 또 올해 <정직한 후보 2>에서 봤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자연인 박진주의 <놀면 뭐 하니?>의 출연 행보도 겹쳐 보인다. 그냥 가창력이 좋고 코미디 잘할 것 같으니까 섭외한 게 너무 티가 나서 거의 모든 것이 다 예상이 된다. 이현우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 이현우라는 배우는 머지않아 커리어의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봤던 이미지가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에서 나왔고, 역시 <영웅>으로 이어지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다.
또 우덕순, 조도선 캐릭터 역시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구멍이 많이 보인다. 일단 이 두 사람이 영화 전개에 구멍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두 인물이 어떻게 퇴장하는가? 에 대한 근거가 더 묘사돼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조재윤, 배정남 배우는 낡은 연출의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한산 : 용의 출현>에서 잠깐 나왔던 일본 장수는 어디 가고 좀 실없고 유치한 아저씨만 영화에 나온다. 배정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역시 이상한 연출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령 이 사람이 처음 등장할 때 상의를 탈의하고 나온다. 여기서 이 인물이 상의를 탈의할 이유가 단 1가지도 없다. 그냥 '너희들 이런 거 좋아하지?' 싶어서 넣은 것이다. 심지어 그 상의를 탈의하는 장면 자체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해외에서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신분 숨기는 거 모르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그걸 몰랐다고 하더라도 짧은 장면, 대사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닐까? 또 이 배정남 배우의 조도선 캐릭터 역시 구석구석 보이는 '윤제균스러운 캐릭터 특징'이 보인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싫어할 법한 캐릭터 설정이 나왔다.
이는 조연캐릭터들과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김고은 배우가 맡는 설희 역시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있어야 할 이유가 그렇게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키포인트가 되는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이긴 하다. 그런데 굳이 이걸 설희의 서사를 깊게 다 보여줄 이유는 없다. 위에서 '조선의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거의 돌림노래처럼 '나라의' '꿈' '조선'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민족주의적인 소재가 이 인물로 표현되지 않아도 안중근 자체가 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극후반부에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와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내포되고 있다. 이 덕에 설희가 갖고 있는 모든 인물 서사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 불필요함은 설희의 퇴장 신 덕택에 더 두드러진다. 이 설희의 공간적 배경은 너무 대놓고 그린스크린 티가 난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윤제균 감독이 연출했던 전작 <국제시장>은 왠지 모르게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케 한다. 뭐 그럴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기이할 정도로 많은 영화적 소재를 만들어냈으니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아무나의 아버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은 작품 하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윤제균은 이 선을 잘 타며 많은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차곡차곡 전달하는 감독이었다. 어떤 평론가들과 소수 관객들은 싫어할지 몰라도 쌍천만이라는 스코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 K-상업영화의 시발점 같은 느낌? 이는 윤제균 감독이 자기화에 능한 예술가라는 말과도 닿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오마주와 변용은 느껴진다. 일단 초반부에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 신이 있다. 어떤 장면은 롱테이크로 묘사된다. 롱테이크를 이용한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생각난다. 뭐 이건 <1917>도 시도한 바 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보이는 장면전환과 색감, 조명, 상하 움직이는 카메라의 공간이동이 박찬욱의 영화들 특히 <박쥐>가 생각난다. 군중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구도는 <레 미제라블>(2014), 설희의 특정 뮤지컬 신은 <알라딘>의 'speechless'가 연상된다. 어떤 구도는 김지운의 <밀정>을 갖고 온 듯하다.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창작자 윤제균의 작품들을 동의하기 어렵다. 글쓴이가 스노비즘이라? 아니다. 윤제균이 상업적으로 감각이 좋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감각으로 이렇게 소심한 연출을 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개인적인 안중근과 독립운동 서사가 나오길 바랐다. 이거 오마주 한 것 굳이 볼 바에 그냥 역사책 한 권과 <알라딘>을 한번 더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작지 않은 구멍들
영화에서 느껴지는 큰 구멍은 두 개였다. 우선 영화에서 하이라이트에 매가리가 없다는 점이다. 윤제균 감독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서사 내내 쌓다가 터트리는 극후반부의 감정전달이다. 그러나 영화 러닝타임 2시간 전부 과한 연출만 반복되다 보니 이 후반부가 좀 얕게 느껴진다. 극에서 삽입되는 노래들 가사 거의 대부분이 '장부' '조국' '꿈'이 반복된다. 또 노래마다 고음역대를 지르는 하이노트가 하나씩은 있다. 웅장한 편곡이 대다수다. 이러다 보니 영화 내내 산만한 기운이 후반부 힘을 줘야 할 때 분산되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1절을 못하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내 반복되는 패턴이 후반부에 또 나오면 그게 왜 하이라이트일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영웅'이고 주인공이 안중근 의사면 어느 정도 기대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연출은 영화에서 굉장히 큰 단점으로 느껴진다. 뭐 윤제균 감독 본인이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전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 바가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후반부 조마리아와 안중근의 대화만큼이나 영화 내적으로 물리적인 분량, 밀도가 얕은 영화 연출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이렇게 분량이 부족하다보니 스릴러로서 과정이 주는 긴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과정 묘사도 과한 연출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 이게 어려워야 암살 당시의 쾌감과 모자의 이별에 감동이 느껴질 텐데 말이다. 이렇게 필요한 쪽에 이야기가 없는 것들은 안중근 가족의 서사에도 마찬가지다. 조마리아와 김아려의 서사에 몰입할 만큼의 양이 없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게 전부다. 오히려 이 가족애를 강조한 연출보다 만두가, 또 불필요하게 적나라하고 길었던 폭력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동귀어진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귀어진이다. 뜻은 '상대방과 같이 죽음으로서 뜻을 다한다'라는 의미다. 설희도, 안중근도 동귀어진을 목표로 조국의 독립을 바라고 있다.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사실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를 다뤘다면 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김지운 감독이 <밀정>으로,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보여줬듯이 말이다. 그러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서사와 '너네 이거 좋아하지'식의 몇몇 연출 때문에 감독의 진정성이 그렇게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가 <아바타 : 물의 길>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쓴이는 동귀어진의 이미지가 아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 집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사건으로 희생된 건 아니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봤던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연한 감정전달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내내 감정적인 이 영화.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에는 뭔가 설득력이 없다. 아픈 역사를 아는 우리 모두 다 누가 죄인인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도 있고, '누가 죄인인지' 동시에 물을 시대가 된 지금 윤제균 감독의 질문은 와닿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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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학교는'부터 '킹덤: 아신전'까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시리즈 라인업
'지금 우리 학교는'부터 '킹덤: 아신전'까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시리즈 라인업
이래서 넷플릭스는 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라인업을 보고도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은데요. 넷플릭스에서 2021년에 공개되는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시리즈의 라인업과 함께 해당 작품들의 공식 스틸 이미지들을 공개했습니다. 하나같이 다 기대되는 작품들인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더 가슴이 뛰는데요. 넷플릭스가 마음먹고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넷플릭스의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총 9개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공식 스틸 이미지가 공개되었는데요. 아직까지 구체적인 공개일자가 공개된 작품은 없기 때문에 표기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2021년 말 혹은 늦어도 2022년 초에는 9개의 작품들 전부 공개될 것 같네요. 그럼 올해 어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시리즈들이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미지 출처: Netflix Korea
<킹덤: 아신전>
연출: 김성훈 감독
출연: 전지현, 박병은
K-좀비, 한국 드라마의 우수함을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작품이었죠. <킹덤> 시리즈의 외전이라고 할 수 있는 <킹덤: 아신전>입니다. 지난 <킹덤> 시즌2 엔딩에 잠깐 등장한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을 뽐냈던 배우 전지현이 맡은 캐릭터 '아신'이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북방 여진족 부락의 후계자 아신과 생사초의 비밀을 다루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연출: 이재규 감독
출연: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또 하나의 넷플릭스, 한국, 좀비 조합입니다. 웹툰을 즐겨보시는 20~30대 분들이라면 아마 이 작품도 많이들 기억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바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됐던 네이버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입니다. 개인적으로 웹툰 입문을 이 작품으로 하게 됐고, 좀비라는 장르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느끼게 해줬던 작품이라 실사화가 확정됐을 때 정말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메가폰은 <베토벤 바이러스>, <더 킹 투 하츠>, <완벽한 타인> 등을 연출한 바 있는 이재규 감독이 맡았다고 합니다. 부디 잘 나와줬으면 좋겠네요.
<마이 네임>
연출: 김진민 감독
출연: 한소희, 박희순, 안보현, 김상호
이번에 공개된 스틸 중에서 가장 강렬한 스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 최고 시청률 28.4%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영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 역을 맡으며 존재감을 뽐냈던 배우 한소희가 그때와는 180% 다른 이미지로 돌아왔는데요. 한소희는 이번 작품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기 위해 언더 커버가 되는 주인공 '지우'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지난해 4월 공개됐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의 김진민 감독이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넷플릭스와의 호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연출: 김성호 감독
출연: 이제훈, 탕준상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청년 '그루'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후견인이 된 '상구'가 유품정리업체를 운영하면서 죽은 이들이 남긴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그렸다는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입니다. 안정감 있는 연기력으로 베테랑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제훈과 <사랑의 불시착>으로 눈도장을 찍은 탕준상이 각각 상구와 그루를 연기했는데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김성호 감독이 이번 작품의 메가폰을 잡았다고 합니다. 마음 따뜻해지는 그런 힐링 드라마가 나올 것 같습니다.
<D.P.>
연출: 한준희 감독
출연: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또 다른 드라마 <D.P.>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김보통 작가님의 웹툰 <D.P. 개의날>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D.P.>는 대한민국의 여느 평범한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군복무를 하던 이등병 '준호'가 어느 날 군무이탈 체포조가 되어 탈영병을 쫓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리는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군대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군복무를 하고 오신 분들이라면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대세 배우 정해인이 주인공 준호 역을 맡았고, 김성균, 손석구, 구교환 등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습니다. 연출을 <차이나타운>, <뺑반>의 한준희 감독이 맡았다고 합니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연출: 권익준 PD, 김정식 PD
출연: 박세완, 신현승, 영재, 민니, 한현민
이번에는 시트콤입니다. <남자 셋 여자 셋>, <논스톱>의 권익준 PD와 <하이킥>, <감자별>의 김정식 PD가 공동 연출을 맡은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인데요. 서울의 한 대학 국제 기숙사에 살고 있는 다국적 학생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청춘을 담은 시트콤이라고 합니다. 시트콤 장인들이 참여한 작품인 만큼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그런 한국형 시트콤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지옥>
연출: 연상호 감독
출연: 유아인, 박정민, 김현주, 원진아, 양익준
이 작품도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요. 바로 <부산행> 연상호 감독과 <송곳>의 최규석 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지옥>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했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 그리고 그들과 마주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원작을 모르는 분들이라도 캐스팅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요. 유아인을 필두로 박정민, 김현주, 원진아, 그리고 양익준이 출연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30대 남자 배우들 중에서 최근 가장 좋은 폼을 보이고 있는 유아인과 박정민이 주연을 맡았네요. 거기에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까지 있고요. 공개 전에 원작 웹툰도 챙겨 봐야겠습니다.
<오징어 게임>
연출: 황동혁 감독
출연: 이정재, 박해수
오징어와는 거리가 먼 두 미남 배우 이정재, 박해수가 출연한 <오징어 게임>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이정재가 실직한 가장 '기훈' 역을, 박해수가 회사 자금을 유용하다 위기를 맞게 된 '상우'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려있는 만큼 목숨 역시 내걸어야 하는 극한의 서바이벌 게임 참여하게 된다고 하네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연출한 바 있는 황동혁 감독이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았습니다.
<고요의 바다>
연출: 최항용 감독
출연: 공유, 배두나, 이준
마지막까지도 엄청난 캐스팅이네요. 공유, 배두나, 이준이 주연을 맡았고 정우성이 제작을 맡은 드라마 <고요의 바다>입니다. 이 작품은 최항용 감독이 지난 2014년에 발표한 동명의 단편 영화를 장편 시리즈로 확장한 것인데요. <고요의 바다>는 사막화로 인해 물이 부족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고요의 바다>는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도전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국에서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멋진 SF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공유님은 점점 더 멋있어지는 것 같습니다.
"본 콘텐츠는 네이버 블로거 리쓰남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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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를 이끌어 가는 대화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이자 세 편의 단편을 엮어 만든 소품같은 영화다. 걸작임에도 러닝타임이 길고 등장인물이 많아 관객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두 시간여의 적당한 러닝타임에 편당 주요 등장인물의 수가 세 명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줄어든 등장인물의 자리를 꿰찬 것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다. 이들의 대화는 때로는 독백의 형태로, 때로는 낭독의 형태로, 때로는 상황극의 형태로 발현되어 우연을 드러내거나 상상을 이끌어 낸다. 보다 스케일도 크고 로케이션도 다양했던 전작과는 달리 <우연과 상상>은 등장인물 수도 적고 배경도 한정되어 있지만 이들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는 진실은 <드라이브 마이 카>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세계의 주목을 집중시켰던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는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열정>의 전개 방식에 <해피 아워>의 서사를 담은 것만 같은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감독의 초심을 담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어째서 복잡한 비유나 상징을 이용하는 대신 직설적인 발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영화 언어에서 발화 언어를 통한 서사 전개는 촌스러운 방식으로 여겨진다. 직접성보다는 간접성을 통해 수용자의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예술은 정답을 이끌어낼 여지가 있는 직설적인 표현을 꺼려한다. 아예 언어가 배제되는 회화나 무용의 경우는 색감이나 예술가의 신체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발화 언어를 사용할 선택지가 있는 영화 예술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예술성을 평가받기도 한다. 대사에 복잡한 비유와 상징을 담아 직설성을 배제하기도 하지만 대개 발화 언어는 직접적인 표현 방법에 쓰인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담보로 하는 예술인 영화는 대사를 알쏭달쏭하게 꼬는 대신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의미를 함축하더라도 직접적인 의미 전달과 간접적인 의미 함축이라는 두 역할을 수행하게끔 만들곤 한다. 이는 추리물을 포함한 반전 서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관객에게 반전의 충격을 안겨주려면 간단한 대사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전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노리더라도 나레이션을 사용해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우연과 상상>은 소소한 반전을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플래시백이 전혀 없다. 등장인물들은 현재 시점에서만 존재하며 과거의 이야기는 전부 대사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플래시백을 영화 기법에서 제외하는 경우 관객은 한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사는 전부 진실에 기반하는 것인가? 3화 「다시 한번」에서 아야(카와이 아오바 분)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반전은 아야만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아야의 말에 의구심을 느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야가 드러낸 진실이 진실인지 아닌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과 상상>의 대화들은 내용의 진실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관객이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다. 대개는 즐거움인데 대화가 <우연과 상상>을 한층 좋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이유는 정작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들에게는 진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연과 상상>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그야말로 충실하게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첫 에피소드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퇴근길 택시에 합승한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와 츠구미(현리 분)의 대화를 오래도록 보여주지만 대화의 내용은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츠구미가 새로운 남자를 만났고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이 대화 직후에 이루어진다. 메이코는 택시에서 내려 어딘가로 향하고 그 곳은 바로 츠구미가 만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분)가 일하는 곳이다. 카즈아키와 이코는 역시나 긴 대화를 이어가지만 대화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메이코가 이 장소를 떠나는 순간이 되어야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카즈아키가 메이코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대화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물들의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화가 거의 들리지 않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다. 그리고 카즈아키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유리창 내부의 공간으로 이동했을 때 발생하는 대화는 주로 메이코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는 대화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화를 인물들의 행동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혹은 맥거핀으로 유연하게 사용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인 「문은 열어둔 채로」에서 관객의 시선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발화 언어는 나오(모리 카츠키 분)가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 분)의 책을 낭독하는 부분이다. 상당히 오랜 시간 일부러 민망한 부분을 골라 낭독하는 나오의 목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유도하지만 동시에 세가와 교수가 보이는 반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민망해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멈추게 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며 낭독을 듣는 세가와 교수는 이 낭독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일까. 문을 닫으려는 나오의 행동만을 저지하며 긴 낭독을 듣고 나오의 고민상담을 해준 세가와 교수는 나오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듣고서야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나오의 질문에 대한 세가와 교수의 대답은 일반적으로 관객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관객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가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이 에피소드의 결말 또한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다. 특히 가장 충격적인 결말은 나오의 발화가 아닌 오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2화 또한 대화를 훌륭한 매개체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화를 발화 언어의 목적 그 자체에 가장 충실하게 활용한 에피소드는 3화인 「다시 한번」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에피소드의 가장 큰 반전은 아야의 입을 통해 전달되지만 아야와 나츠코(우라베 후사코 분)는 결론적으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츠코를 자신의 집에서 대접하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야는 사실 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어떤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던 것임이 드러난다. 반면 대화 자체가 목적이었던 나츠코에게 이는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이후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 쪽은 나츠코가 아니라 아야다. 관객에게 가장 큰 충격을 전달하는 것은 이후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지만 서사를 마무리짓는 것은 폭로 이후에 이어지는 상황극이다. 특히 아야가 나츠코를 배웅하며 역 앞의 육교에서 벌이는 상황극은 대사는 상황극일지언정 두 캐릭터의 감정만큼은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 에피소드에서도 대화는 아야와 나츠코의 과거를 들려주고 스스로를 힐링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실제로 심리 치료에도 사이코드라마라는 비슷한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그다지 변화가 없는 배경, 적은 수의 등장인물을 가지고 대화만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이끌어 냈지만 사실 대화가 서사를 잇는 매개로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우연과 상상>은 영화 예술에서 대사의 활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굳이 어려운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지 않아도, 혹은 대사 없이 이미지로만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대사는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하마구치 감독이 증명해낸 셈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는 영화지만 <우연과 상상>은 초심으로 돌아간 감독이 관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본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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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 신분 상승을 향한 치열한 싸움
기생충 리뷰
(이 글은 2023년 작성된 글입니다)
상류층을 동경했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껏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부의 정도는 개인이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하지만 기생충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쯤, 부자를 “동경”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불쾌감과 불편함에 휩싸였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빈부격차와 가족이기주의라는 조금은 흔한 소재를 다룬다. 그리고 감독은 이 소재를 통해 ‘가족이기주의와 신분 상승의 욕망이 결국 파국을 불러온다.’라는 주제를 전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사회 계층을 다룬 다른 영화들, 그리고 소설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생충은 이와 같은 주제를 전하는 기존의 영화들을 답습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늘 그랬듯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한다.
'가난한 자는 착하고, 부자들은 못된 그런 뻔한 이야기들. 자연스럽게 가난한 자에게는 동정심을 갖고 기득권들에는 분노를 느끼는 관객들.' <기생충>은 이러한 기존의 것들을 완전히 파괴한다. 아는 맛을 기대하고 영화관에 간 관객들은 이 지점에서 불쾌감과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기생충처럼 박사장 가족을 쪽쪽 빨아먹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기택네 가족. 그리고 그런 기택네 가족에게 바보처럼 당하며 가진 것 다 털리는 박사장 가족.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관객들은 결국, 조금 떨어져 영화 속 인물들을 지켜보는 쪽을 택하게 된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기심을 숨기고 살아간다. 모든 순간 가면을 쓰고 이타적인 척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이 영화 속 가족들은 이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기택의 가족은 4명이 똘똘 뭉쳐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사기를 치고, 문광은 남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박사장은 근세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자기 아들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모두 자기 가족밖에 모른다. 대 놓고 드러내는 이기심에 나는 마치 속마음을 들키는 기분이 들어, 불편한 마음이었다.
부자 위에 부자 있고, 가난 아래 가난 있다. 지상에 사는 박사장 가족과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의 갈등으로 극을 끝까지 끌어 가는 줄 알았으나, 감독은 중반부를 지나며 반지하보다 더 아래인 지하에 사는 근세를 등장시킨다. 그러면서 영화는 점차 기택 가족과 문광 가족의 갈등으로 전개된다. 어느새 부자는 배제되고, 가난한 자들끼리 물고 뜯는 상황이 연출된다. 우리는 끝없이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 비교 속에서 위안을 얻기도, 실망하기도 한다. 혹은 기택의 가족처럼 상대를 이겨 먹고자 아등바등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싸움도 체급이 맞아야 가능한 것이다. 기택의 가족이 박사장 가족을 문광 가족 대하듯, 대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이라 본다. 자신들과 체급이 맞으며, 심지어는 자신들보다 못한 것 같으니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올라가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상징적으로도 연출된다. 폭우가 내리던 날, 기정은 역류하는 변기 위에 앉아 물을 막아낸다. 여기서 역류하는 물은 상승을 꿈꾸는 하층민(근세)이고, 그 위를 막는 자도 하층민(기정)이다. 감독은 이러한 이미지로 주제 의식을 한 번 더 강조한다. 우리 자신을 보자. 우린 올라가고 싶다고 해서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 아래의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짓밟는 방법을 택한다. 그게 더 현실성 있는 선택지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자 위에 부자, 그 위에 더 부자, 가난 아래 가난, 더 아래 가난. 정말 끝없이 촘촘하게 나누어진 계층 속에서 우린 기택의 가족처럼 누군가를 계속 짓밟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신분 상승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반지하에서 시작한 영화는 반지하에서 끝난다. 결국 기택의 가족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바탕 사건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다. 엔딩을 보고 나니, ‘앞으로도 위를 보며 부를 동경하면서, 발로는 누군가를 짓밟으며 살아가겠지’하는 마음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번 폭우를 보면서 더 그랬다. 누군가의 집은 다 잠기고 있을 때, 누군가는 골프를 치고 있었다. 기생충의 폭우와 현실에서의 폭우. 기생충과 현실이 참 많이 닮아있다. 기생충은 부의 양극화를 극복할 수 없는 문제처럼 그린다. 현실에서의 우리가 마주할 끝은 무엇일까. 우린 어딜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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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실패에도 다시 도전하기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다.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고 다시 도전을 계속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목표를 포기하거나 수정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진행된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과제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통해 각자는 레벨업을 하며 성장해 나간다. 책을 읽고, 몸을 움직이고,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자신 만의 지식을 습득하고 실제로 활용해 가면서 자기가 자기고 있는 힘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 모든 과정은 성장을 위한 작은 계단들이다.
너무나 흔하지만 '실패'라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실패를 맞이하면 대부분은 주저앉아 절망한다. 그렇게 포기를 택하면 ‘실패’를 인정하고 더 이상 전진하지 않게 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 되는 선택이 바로 포기다. 만약 그것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사람들은 ‘실패’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에게 다가가기 위해 가장 많이 택한 실패 극복의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의 이야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에는 실패를 거듭하는 한 팀이 나온다. 팀에 속한 에드긴(크리스 파인), 홀가(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그리고 도릭(소피아 릴리스)는 네버윈터의 영주인 포지(휴 그랜트)에 맞서 보물과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에드긴을 중심으로 모인 이 팀에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다. 리더인 에드긴은 과거에 성스러운 일을 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아내를 잃고 딸을 혼자 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에드긴은 수많은 실패를 하게 된다.
에드긴이 아내 없이 처음 맡은 임무인 육아에도 계속 실패하자, 우연히 그 광경을 본 홀가는 에드긴의 집에 같이 살며 남매 같은 사이가 되고 딸을 같이 키운다. 이후 에드긴과 홀가, 사이먼은 크고 작은 보물을 훔치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내를 살리기 위한 부활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팀을 만들어 보물이 있는 장소에 가지만 그곳에서 에드긴과 홀가가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가장 큰 실패를 맞이한다. 몇 년 후 결국 감옥에서 다시 탈출하지만 이미 과거 동료였던 포지와 악의 위저드 소피나(데이지 헤드)가 에드긴의 딸을 볼모로 삼게 된다.
영화에는 에드긴의 팀이 포지의 보물과 에드긴의 딸을 구출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팀은 막강한 위저드의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는데, 깊은 던전에 숨겨둔 투구를 찾거나 마법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등의 다양한 모험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는 건, 그 목표를 향해 선택하는 방법들에 확신이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리더인 에드긴의 계획에 따라 가지만 멤버들은 늘 벽에 막힌다. 또한 각 인물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타고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홀가를 제외하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믿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 찾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젊은 위저드 사이먼이다. 그는 자신의 마법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늘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가 동료들에게 하는 말들도 모두 자신 없는 말들 뿐이다. 그래도 그를 좀 더 도전할 수 있게 이끄는 건 실패 전문가 에드긴이다. 에드긴 역시 최고의 전사나 마법사가 아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딸을 빼앗기는 큰 실패를 계속 겪는 인물이다. 영화는 실패한 리더 에드긴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어떤 식으로 다가가는지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전달한다.
에드긴이 선택한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어쩌면 불가능해보이는 그의 계획은 당연하게도 계속 실패한다. 영화가 다루는 에드긴의 실패는 절망적이지 않다. 이건 영화의 분위기가 밝은 톤이라서이기도 하지만 실패를 대하는 에드긴의 태도가 많은 영향을 준다. 영화 중반까지 관객의 입장에서 에드긴과 그의 팀이 성공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우리 앞에 꽤 많은 실패가 먼저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이루어갈 때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후반부 에드긴이 팀원들에게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맞이하는 모험의 끝이 나쁘지 않을 거란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팀원들은 실패의 순간에 목표를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에드긴은 실패 이후 어떤 식으로 상황을 대할 것인지 알려준다. '포기'를 택하는 순간 실패는 현실이 된다. 하지만 '포기'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하면 그 목표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방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고, 그것마저 안되면 다시 처음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 '포기'를 선택하지 않는 삶, 그 태도가 리더인 에드긴이 살아온 삶이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사실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영화다. 오랜만에 제작된 판타지 영화이고, 과거 2000년에 한 번 영화화된 적 있는 영화는 롤플레잉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2000년에 개봉했던 <던전 드래곤>은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즈가 주연을 맡았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저 그런 판타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리메이크된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꽤 잘 만들어진 오락 판타지 영화다.
무척 흥미로운 판타지 오락영화
과거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는 팀원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무엇보다 강력한 악의 위저드보다 부족해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서사가 흥미롭다. 주인공 에드긴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분위기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실패 전문가들이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이 경쾌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에드긴 역을 맡은 크리스 파인은 과거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유쾌하지만 허술해 보이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하면서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았다. 여전사 홀가 역을 맡은 미셸 로드리게즈, 사이먼 역을 맡은 저스티스 스미스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도릭 역을 맡은 소피아 릴리스의 매력이 돋보인다. 사기꾼 포지 역을 맡은 휴 그랜트는 능글맞은 이기적인 배신자역에 무척 잘 어울린다. 영화에는 이런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뚱뚱한 드래곤이나 다양한 마법 위저드들이 등장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마치 마블 시리즈의 초창기 영화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경쾌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다. 다양한 방향의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는 원작이 있기 때문에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다양한 시리즈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에드긴과 그의 팀이 앞으로 어떤 실패를 겪고 또 극복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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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바로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체험해야 할 영화
개봉 | 2025.06.03.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독일
러닝타임 | 167분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주)
시놉시스 |
꿈에 그리던 수사판사 승진을 하게 된 ‘이만’, 때마침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이만’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총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딸들과 논쟁을 벌인 어느 날, 총이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족의 믿음에는 균열이 생긴다.
철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빛이 아니라
목 잘린 발들이 일으키는 먼지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외부가 한낮으로 향해 갈 때
어둠이 숨어드는,
모두가 짙어지면 홀로 더 깊이 짙어지는,
땅보다 낮은 땅에서
절대 상하지 않겠다
박세미, <일조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싶은 영화 중 한 편인데요. 보다 많은 분들께 영화에 대해 알려드리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합니다.
영화는 테헤란을 배경으로 하며, 혁명 법원의 수사판사로 임명된 이만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만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사형 선고를 승인해야 하는 일을 맡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합니다. 일을 맡은 직후에는 양심의 거리낌을 느끼지만, 정신없이 일을 하며 그는 점차 무뎌지죠. 그가 일에 적응하는 한편, 그의 딸 레즈반과 사나는 세상의 변화에 눈을 뜨고 냉혹한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가 호신용으로 지급받았던 총을 집에서 잃어버리자, 그들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집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속에 실제 2022년 이란의 '여성, 생명, 자유' 시위 장면을 삽입하여, 극 중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삽입된 시위 장면을 볼 때마다, 이 영화는 그저 영상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영화관에서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 “시네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포스터 상단에 적힌 “반드시 목격해야 할 영화”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었고, 관객들이 모두 이란 정부의 잔혹한 폭력의 목격자가 되는 듯했습니다.
영화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란 사회의 전체주의적 구조를 하나의 가정에 빗대어 보여줍니다. 영화에 그려지는 가족은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가 아니며, 집은 가장 편안한 장소가 아닙니다. 가족식사 장면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압박감마저 느껴지죠. 말을 해도 서로에게 닿을 수 없고, 그 어떤 공간에서도 편히 쉴 수 없습니다. 아버지인 이만과 어머니인 나즈메에게는 총을 잃어버린 공간, 딸들이 총을 숨겼을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불신의 공간이라면, 딸인 레즈반과 사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복해서 총을 숨겼냐며 따져 묻고, 수시로 방을 뒤지는 불안함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갈등이 심화되며, 관객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됩니다. 이 지점이 혼란감을 주기도 하죠. 다큐멘터리같은 이 영화를 보며 서스펜스를 느껴도 되는 걸까? 영화는 정치적 책임감을 갖고 보지 않아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심리적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한 연출들이 눈에 띄기도 하죠. 영화는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비추면서도, “영화”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끝까지 가져갑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제작진의 신변에 대한 걱정이 될 정도인데요. 이란 내의 폭력 현장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은 점으로 인해 개봉에 어려움이 있진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비밀리에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감독이 겪어야 했던 일들은 우리가 안일하게 짐작한 것보다 훨씬 고되고 심각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이란 정부로부터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추가적인 형벌이 예정된 상태에 놓였습니다. 이에 그는 전자기기를 모두 버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산악 지대를 도보로 넘어 이란을 탈출했죠. 그는 수감과 망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결국 독일에 도착하여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엄마 나즈메 역을 맡은 배우 소헤일라 골레스타니 역시 자국을 비판하는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태형 74대와 징역 1년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실제로 2022년 대규모 히잡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체포되어 에빈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는데요. 영화가 개봉 이후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출국 금지 조치로 인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라술로프 감독과 함께 이란을 탈출해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딸 역할의 두 배우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는 망명을 선택하고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감독과 배우들이 사생결단으로 만든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비롯하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2024년 칸 영화제에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상영된 후, 라술로프 감독은 "이란 영화인들에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며, "그들은 우리를 낙담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존엄한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또한 영화제에서 이란에 남아 있는 배우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답답하고 두렵지만, 결국은 싹을 틔우고 조금씩 뿌리를 내리며 억압을 무너뜨리는 영화.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진실을 가리는 베일을 벗어던지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극장에서 한 분이라도 더 보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전하며 마치겠습니다. 함께 목격하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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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0] 스릴러로 돌아온 안젤리나 졸리의 추격극
영화 윈드리버의 타일러 쉐리던 감독이 신작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건조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스릴러로 보여줬는데요.
이번 영화는 좀 더 스케일이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습니다.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에요.
시카리오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타일러 쉐리던은 이제 연출을 시작하는 감독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 감독이네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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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스트 히어로즈> 메인 예고편
사악한 마녀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는 노아라 마을.
알란과 친구들은 우연히 들어간 숲속에서 마녀가 봉인된 관을 발견하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20년 후, 마을에서 발생한 동물 연쇄 살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알란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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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호스트: 접속금지> 티저 예고편
전 세계가 극찬한 100% 리얼 팬데믹 호러!
지금, 당신의 랜선미팅에 무언가가 접속했다!팬데믹, 락다운과 함께 자가격리를 시작한 ‘헤일리’와 친구들.
‘줌’을 통해 랜선 미팅을 연 그들은 금기를 어기고 영혼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위험한 놀이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르는 것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