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0-07 18:53:16
[BIFF 데일리] 천천히 찾아오는 것
영화 <깜빡이는 불빛> 리뷰
Director] 아누파마 스리니바산Anupama Srinivasan, 아니르반 두타Anirban Dutta
Program note]
인도-미얀마 국경 근처의 외딴 마을 토라에는 도로가 없고 수도가 없고 학교나 병원도 없다. 인도 독립 70주년이 훌쩍 지났지만 오랜 반란의 역사 탓에 세상에서 밀려나 잊혀진 마을 토라에 어느 날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환한 불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희망에 들뜬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냉장고를 들여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 생각에 마음이 들썩이고, 마을 남자들은 땅을 파고 전봇대를 세우느라 진땀을 흘린다. <깜빡이는 불빛>은 온 마을에 첫 전구가 켜지는 날까지 토라 사람들의 이상과 현실, 희망과 좌절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타고난 유머러스한 낙관과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열망이 깜빡이다가 환히 켜지는 불빛 마냥 눈부시다. (강소원)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하기 무섭게, 예상했던 질문이 바로 나왔다. “영화 속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인도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과 가까워 보인다. 혹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이해를 위해 ‘인도-미얀마 국경 근처’라고 표현된 지역은 마니푸르(Manipur) 주, 더 넓게 말하면 인도의 북동부 지역이다. 이쪽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지하는 인도 사람들의 얼굴, 터번과 멋진 수염과 큰 덩치로 흔히 표현되는 북인도 사람들이나, 상대적으로 더 진한 갈색 피부와 둥근 눈을 한 남부 인도의 얼굴과는 다르다. 외려 흔히 생각하는 동아시아 쪽의 얼굴에 가깝다. 실제로 인도 북동부의 토착 부족민들은 티베트 혹은 미얀마 쪽과 더 가까운 혈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담은 나가(Naga) 족의 경우에도 나갈랜드(Nagaland)와 마니푸르 주에 주로 거주하지만, 미얀마에도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옛날에는 외부 교류가 많지 않았다가 영국인 선교사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인도 타 지역에 비해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는 것 또한 독특한 특징이다.
1940년대 말 인도라는 국가가 세워진 이후로도 이들은 끊임없이 각자의 독립국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또 인도 국내에서의 차별로 이어졌고, 이 영화 <반짝이는 불빛>은 그 중에서도 아주 외딴 지역의 ‘토라’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전기도 수도도 학교도 일자리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달밤에 손전등에 의지해서도 춤과 노래를 멈추지 않는 마을. 태양열 전지를 동원해 한밤중에도 농작물 정리하는 바지런한 손길을 멈추지 않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부 소식에 촉각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정직하게 담겨 있어, 영화는 얼핏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의 한 장면처럼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고된 농사 중 기숙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아침,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로 멀거니 차를 마시다 말고 남편에게 촬영 팀 바나나라도 갖다 드리라고 말하는 구멍가게 아주머니 ‘자스민’의 얼굴은, 그야말로 우리가 아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아주머니의 모습 그 자체다. 15년 가량 주민들과 관계를 쌓았다는, 실제로 전기 공사를 진행하는 인부들의 옆 방에서 먹고 자고 발전기를 돌리면서 촬영하고 무려 7년을 녹여 영화 작업을 했다는 감독들의 접근이 이 거리감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동시에 영화는 이들이 사는 현실에 언제라도 서늘한 긴장감이 서릴 수 있는 곳임을 살짝살짝 표현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독립군 생활을 하고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는 노인 ‘캄랑’은 여전히 라디오로 평화 협정 진전 소식을 들으며 “끝이야…”하고 허탈하게 웃기도 하고, 지난 투쟁의 역사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있다. 이따금 뉴스에서 전해지는 특정 지역 통행 금지령이나 심상치 않은 연기나 총 소리는 여전히 이들의 삶이 언제든 긴장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거기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에는 자유와 주체성이 또렷하다. 없는 불빛에 의지해서 합창 연습을 하는 찬송가 가사 또한, “나가 지역 젊은이는 특출하고 공부도 잘한다”거나 “넓고 비옥한 땅을 모두가 부러워한다”면서 지역의 색깔과 자부심을 톡톡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자의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이전에도 몇 번 불발되었던 전기 연결이 과연 이번에는 될까 의구심을 품은 시선으로 느리작느리작 진행되는 공사 과정을 지켜본다. 특히나 독립 운동을 오랜 기간 해온 캄랑 노인은 전기 공급도, 평화 협정 임박 소식도 온전히 믿지 않는다. 그에게 이런 소식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진짜 올 때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랜 기간 피부로 체득한 감각일 것이다.

마침내 전기는 아주 천천히 주민들을 찾아온다. 수풀을 헤치고 나무를 베고 전봇대를 하나씩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전봇대가 마을 한복판으로 다가오고, 지연 끝에 자재가 도착해서, 집집마다 두꺼비집 판과 전구 자리를 설치하고… 그러다 마침내 마을 첫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우리 나라 옛날 모습처럼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서 다 같이 영화를 보고, 냉장고를 들인 기념으로 구멍가게에서는 주스를 얼린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이 바란 바로 그 크리스마스에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몇 해 지연되어서나마 그들은 비로소 불 밝힐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그러나 평화 협정은 여전히 저 멀리 있다. 전기뿐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의 미래 또한 자연스럽게, 이내 도래하기를 바라게 되는 영화였다. 이들의 단단한 자의식이 무너지지 않고도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기를. 깜빡깜빡 서서히 들어오는 백열등처럼 찾아와 주기를. 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빛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캄랑 노인의 말대로 “어둠과 빛은 같지 않”으니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2023.10.04-13) 상영시간표]
10월 05일 19: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2관(상영코드 055)
10월 07일 16:30 CGV 센텀시티 2관 (상영코드 160)
10월 10일 14:00 CGV 센텀시티 1관 (상영코드 38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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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블릭 도메인의 활용 가능성이 기대될 뿐
스크림, 할로윈 시리즈와 같이 시리즈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슬래셔 영화라하면, <곰돌이 푸: 피와 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A. A 밀른의 곰돌이 푸의 저작권 만료로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기에 등장한 슬래셔 영화 <곰돌이 푸: 피와 꿀>.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버림받은 곰돌이 푸와 피글렛이 잔혹한 학살로 복수를 벌인다는 무시무시한 재해석으로 개봉전부터 대중들에게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런 곰돌이 푸의 슬래셔 장르 컨셉은 아이디어가 좋지만, 아이디어'만' 칭찬하고 싶다.
영화는 8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깊이없는 캐릭터들의 단순 사살만이 반복될 뿐이다.
게다가 슬래셔물의 꽃인 사살까지 이르기까지의 예열이 길고 따분하다는 것도 큰 흠이다.
그리고 그 사살마저도 곰돌이 푸와 피글렛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살이었냐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
흔하게 보는 슬래셔식 사살 장면이지만, 거기에 곰돌이 푸와 피글렛을 얹은것 뿐이다.
저예산 영화임을 감안하더라도 연출이 상당히 낙제점이라는 것이 아쉬웠고, 아이디어만 빛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흥행은 대박을 쳐서 이미 후속편도 확정되었다던데, 후속작에서는 이 좋은 아이디어를 살릴 좋은 연출을 보길 바래본다.
여담으로 올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선라이즈"도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다고 한다.
곰돌이 푸: 피와 꿀이 이런 고전들이 퍼블릭 도메인이 되면서 새롭게 재해석해 재탄생하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든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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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복 영화 후기 - 인간의 꿈인 불로불사가 과연 좋은 것일까?
인간의 꿈인 불로불사가 과연 좋은 것일까?
- 서복 영화 후기
민기현은 1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심한 두통 때문에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 그를 시한부 인생으로 죽지 않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서복이라는 복제 인간을 소개한다. 서복이라는 복제인간은 불로불사이며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민기현은 수명 연장의 대가로 서복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한편 서복의 불로불사능력을 훔쳐 가려는 테러범들이 나타나 현장을 덮친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같지만 서복이 초능력을 사용해 테러범들을 막는다. 과연 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로불사의 능력을 가진
서복을 지키려는 민기현의 투쟁!"
-하니엘의 머릿속-
불로불사읜 능력을 가진 서복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괴로움도 사라질까?
서복은 자신이 줄기세포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란 걸 인지하지만 불로불사라는 능력 때문에 죽음이란 어떤 건지 알고 싶어 한다. 죽음은 영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꿈 없는 잠을 영원히 자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서복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인간다움을 원했고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민기현에게는 그동안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괴로운 순간이 많았기에 죽음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서복은 민기현에게 자신이 왜 존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민기현은 자신이 겪어왔던 불행한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꿈인 불로불사를 실현시킨다면 인간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무조건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복과 불행을 같이 겪어간다. 죽음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죽음이란 게 없어진다면 영원함이 지속되고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지루함도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죽음이 두렵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만든 복제인간도 의식이 존재한다면 이 존재를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도 많다. 아마도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지금 이 순간이 괴로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자신에게 고민하고 물어보라는 철학적인 의문을 남기는 영화인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두려움과 같다.
-하니엘의 영화 주관 평가-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하니엘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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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문을 열지 마시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제목 : <오픈 더 도어>
감독 : 장항준
출연 : 서영주, 이순원
프로그램 노트
: <오픈 더 도어>는 어느 밤 술에 취한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국 뉴저지, 치훈(서영주)은 매형인 문석(이순원)과 함께 술을 마신다. 과거를 추억하던 두 사람은 애써 외면했던 불행까지도 길어 내게 되고, 감정이 격해진 문석에 의해 숨겨져 있던 비밀이 밝혀진다. 장항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픈 더 도어>는 과거를 되짚어가며 숨겨진 사연을 조금씩 풀어놓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한다. 숨겨진 그날의 진실보다 중요한 건 그에 이르는 과정이다.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영화는 인물들이 불안과 의심으로 무너져 가는 모습을 조금씩 증폭시켜 나간다.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인물, 긴 호흡의 카메라를 활용해 밀도 높은 긴장감을 쌓아나가는 솜씨가 놀랍다. (송경원)
다섯 개의 섹션
영화는 총 다섯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다. 그마저도 시간의 흐름이 아닌, 섹션이 뒤로 갈수록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특이점은 영화의 제목부터 말해주듯 섹션의 시작마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실 이와 같은 사실을 자각하기까지는 네번째 섹션이 되서야 깨달았다. 문을 여는 행동은 '어떠한 선택'을 의미한다.
첫 시퀀스는 미국 뉴저지, 치훈이 매형인 문석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며 시작된다. 둘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술에 취하니 그들이 꺼내서는 안될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치훈'의 엄마이자 문석의 장모님의 살인 사건. 대화로 짐작해보면 그녀는 세탁소를 운영 중, 강도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은 격해지고. 결국 문석이 숨겨진 비밀을 뱉어낸다. (첫번째 시퀀스 끝.)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긴 카메라 호흡 그리고 사운드의 매력
사실 공포 영화, 스릴러 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1위가 스토리 그리고 그 다음이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공포 영화 혹은 스릴러 영화는 귀를 막고보면 하나도 안 무섭다는 말이 딱 그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픈 더 도어>는 고전적일 수도 있는 사운드로 그 긴장감을 살린다. 실제로 옆자리 관객분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나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긴 카메라 호흡의 지루함을 사운드로 채워준 듯 했다.
영화 <오픈 더 도어>는 긴 카메라 호흡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첫 시퀀스부터 컷 전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호흡이 길다. 스릴러 영화에서는 관객들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컷 전환하기 바쁜데 이 영화는 다르다. 치훈과 문석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컷 전환이 거의 없었다.
영화를 관람할 당시에는 왜 호흡이 길지?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렇기에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결과적으론 난 그 둘의 대화에 깊게 집중했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길어진 호흡에는 연기력이 필요하다
상기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영화 자체의 호흡이 길다. 그 말은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이 필요하다. 영화에는 불안 그리고 의심, 균열,그리고 배신 등의 감정이 담겨있다. 조금이라도 비어보이면 무너져버리는 스토리. 그럼에도 <오픈 더 도어> 배우들은 깊은 연기력으로 그 틈을 꽉 채워주었다. 장르가 '스릴러'인데 배우들 모두 연기가 '스릴러'스럽다. 사실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는 장항준 감독만을 보고 선택하는 바람에 배우들은 사전에 찾아보지 않았는데 기존에 조연으로 많이 보았던 배우들이기에 연기력이 보장된 것 같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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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엎어진 테이블, 그 위에 남은 추한 본성들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요소들
- 붕괴되는 부모
- 사건의 피해자들이 의미하는 것
- 거울 같은 연출
보통의 가족 (A Normal Family, 2024)
뒤엎어진 테이블, 그 위에 남은 추한 본성들
개봉일 : 2024.10.16.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허진호
출연 :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엔딩크레딧 시작 전에 하나
나는 보통 아주 재밌거나 취향에 딱 맞는 영화를 만나면 미쳤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미쳤다는 뭔가 한순간 강하게 후려치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보통의 가족>은 미쳤다기보단 시종일관 우아하게 돌고 있는, 돌아있는 영화라고 표현하려 한다.
<보통의 가족>은 왈츠를 추듯 우아하게 합을 맞추는 배우들과 함께 부드럽게 턴을 돌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예상을 벗어나는 이야기의 흐름은 호기심을 일으키고 서서히 상승하는 대비감과 극 전반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우아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한눈 팔 틈을 주지 않는다.
<보통의 가족>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보통의 가족처럼 보이는 이들의 이면을 거침없이 털어내는 작품이다.
영화는 다른 성격의 두 형제,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내부인과 외부인 같은 두 여자,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들 사이에 얼룩진 거울 한 장을 대놓고는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자, 이런 문제가 생겼어. 너는 어떻게 할래?”
동시에 튀어나온 각자의 응답은 서로 얽히고 설키며 새로운 쟁점을 만들고 거울 앞에 앉은 인물들은 시시각각 태도를 바꾸며 식은땀을 흘린다. 땀이 지나간 자리엔 서늘함과 축축한 불쾌감만이 남는다.
영화는 주인공들에게 자극적인 음식을 반복해 대접하며 그들이 언제까지 태평한 척을 할 수 있는지 실험한다. 이들은 애써 꼿꼿한 자세와 평온한 호흡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지만 결국엔 폭발하여 테이블을 뒤엎는다. 이제 이 가족의 테이블 위에 오가는 건 이기적인 합리화와 책임 전가, 추한 본성뿐이다.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어른 재완, 재규, 연경, 지수 역을 맡은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배우는 예리하게 갈아낸 각자의 캐릭터를 손에 쥐고 쉴 틈 없는 칼싸움을 펼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대립구도는 극의 텐션과 몰입력을 한도 없이 끌어올린다.
개인적으로 설경구, 장동건 배우의 경우 최근 필모그래피의 방향이 조금 아쉽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아직은 이 배우들을 더 믿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다른 신념을 가진 재완과 재규. 연경과 지수재완은 살아있는 멧돼지를 사냥하고 재규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 재완은 악질 가해자에게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냐’고 묻고 재규는 피해자가 병원 수납을 마치지 못했음에도 그의 생명을 위해 우선 다음 수술 날짜를 잡는다. 돈을 좇는 재완과 돈보다 올바름이 중요한 재규. 재완과 재규는 형제지만 다른 신념을 갖고 있다.
재규의 아내인 연경은 재규와 비슷하게 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 그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아동 복지에 힘을 보태는 어른이며 치매가 온 시어머니를 돌보는 착한 며느리다. 최근 가족이 된 재완의 아내 지수는 재완의 재력 덕분에 생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지수는 자신을 외부인 취급하는 연경과 약한 대립각을 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 가족과 한 발자국 정도 거리를 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붕괴되는 부모들
아이들 사건의 피해자, 노숙자가 의미하는 것재완은 나래 사건의 합의를 위해 가해자와 대화를 나눌 때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자식 앞에선 약해지기 마련이죠.”
이 말은 혜윤의 부모인 재완, 시호의 부모인 재규, 연경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재완, 재규, 연경은 자신의 삶에 있어선 각자 다른 신념을 가진다. 하지만 ‘내 아이가 죄를 저질렀다’는 문제에 있어선 각자의 신념을 무너트린 채 비슷하게 행동하고 결국 같은 결론을 낸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눈물 흘리고 싸운다. 그리고 붕괴된다.
억울한 피해자인 노숙자와 나래는 재완, 재규 형제의 신념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다. 노숙자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폭행이라는 큰 신체적 충격을 받고, 나래는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한다. 재완, 재규는 아이들이 독단적으로 벌인 폭행 사건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노숙자는 혼수상태가 되고 나래는 큰 수술을 받으면서도 삶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재완, 재규는 충격을 받은 후에도 아직 남아있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이대로 숨길 수 있다’, ‘시호를 자수 시켜야 한다.’ 주장하며 옥신각신 싸움을 한다. 그러다 노숙자는 사망, 나래는 상태가 다시 나빠지게 되고 그 시점에 시호와의 진솔한 대화, CCTV 영상의 발견이라는 상황을 뒤집을 사건이 터진다. 이때 형제의 굳건했던 신념은 붕괴되고 뒤바뀌게 된다.
처음엔 피해자의 눈물에 공감하며 나래 엄마에게 예배당을 알려주던 재규는 그곳에 앉아 가해자인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피해자인 노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입맛이 돌기라도 하는지 식판을 싹싹 비워낸다. 아내인 연경은 시어머니의 냄새 나는 옷을 갈아입히다 이 소식을 듣고 여러모로 깨끗하게 해결된 상황에 만족하며 웃음 짓는다. 반대로 돈을 위해 가해자를 옹호하던 재완은 복잡한 얼굴로 노숙자의 집에 찾아가 돈 봉투를 밀어 넣는다. 이후 세 사람은 바뀐 신념을 주장하며 더 강하게 충돌한다.
지수는 이 ‘신념의 붕괴’라는 사건에서 제외되는 유일한 어른이다. 연경은 지수를 혜윤의 엄마가 아닌 사람, 외부인으로 반복해 칭하는데 지수는 여기에 열을 내기보단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수는 혜윤과 큰 친밀감이 없고 부모라기엔 조금 먼 느낌이 있다. 그래서 지수는 재완, 재규, 연경과는 다르게 객관적인 외부인의 시선으로 혜윤, 기호의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마지막엔 CCTV 영상을 공유하며 엇나간 재완의 신념을 붕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숨겨둔 양면성을 꺼내놓다
인물들의 심경 변화, 거울 같은 연출사람에겐 한 가지 면만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추하고 부끄러운 면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를 뿐이다. 영화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실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론 턱에 초고추장을 묻히고 와인을 소주처럼 들이키는 지수,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고 꼿꼿하게 앉아있지만 사실은 꽉 끼는 옷에 숨도 못 쉬어 화장실에서 몰래 지퍼를 푸는 연경, 정정당당함을 이야기했으면서 시호를 위해 극단적인 사고를 치는 재규를 보여주며 완벽함 뒤에 숨겨진 부끄러운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완은 이들과 다르게 부끄러운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후반부에 들어 그 뒤에 있는 보통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중에서 양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재규다. 그는 가족들 앞에서 정의로운 척을 하지만 뒤에선 아이들과 똑같은 일들을 저지른다. 그는 술을 먹고 노숙자를 폭행, 유기한 아이들처럼 술을 먹고 고라니를 친 후 사체를 유기한다. 두 사고 장면은 비슷한 연출 요소들로 채워진다. (피해자를 질질 끌고 가는 가해자와 바닥에 그려지는 피, 비슷한 카메라 구도)
노숙자의 소식을 듣고 시호와 대화를 나누며 포장을 걷어낸 재규는 CCTV 속 아이들이 했던 말과 비슷한 결의 발언들을 내뱉고, 재완이 가해자를 옹호하며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그를 차로 쳐버린다. 이제 재규에게 남은 건 뻔뻔한 본성뿐이다. 흘러가듯 들렸던 ‘재규가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라는 어머니의 말, ‘너랑 나랑 진짜 나쁜 형제 새끼’라는 재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도 이래저래 떠들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보통의 가족>이 딱 그렇다. 영화가 끝나면서 테이블 위 조명도 모두 꺼졌지만 극 중 인물들이 남긴 첫맛과 끝 맛은 여전히 입안을 맴돌며 아쉬움을 남긴다. 나는 아직 이 화려한 갈등의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인물들을 더 씹고 뜯고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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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도 바깥으로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내가 인도에 살던 시절, 이웃에는 남루한 단칸방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저래 봬도 브라만 출신이라고 수군거렸다.
카스트에 대해 입밖에 낸 말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누가 실은 브라만이래,라고 웅성거릴 때가 아니면 들을 일이 없었다는 소리다.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4계급이라고 학교 다닐 때 배웠지만... 그 얘기를 꺼내면 인도 사람들은 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제로는 수천 개의 계급이, 실은 직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나중에 들었다.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인도 사람들끼리는 이름만 들으면 대충 알아본다는 얘기도.
돈이 또 하나의 카스트라는 씁쓸한 말도 그즈음 들었던 것 같다. 이건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단출한 생활을 하는 이웃집 할머니더러 '저래 봬도 브라만 출신'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돈과 명예를 가진 이들의 성공 신화에서는 낮은 카스트도 좋은 소재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카스트는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각양각색의 차별은 더욱 은밀하고 촘촘하게 자라났다. 게다가 카스트 자체도 현실에서 폐지되지 않았다. 일상의 차별은 물론이고 공적 문서로 카스트 증명서 발급이 가능하니, 카스트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인도에서는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는, 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보면서 떠오른 상념들이다. <화이트 타이거>의 길잡이가 되어줄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화이트 타이거>를 재질에 비유하자면 녹이 슬고 거친 양철 판 같다. 금방이라도 나를 쓱 베고는 파상풍을 안겨줄 것 같은 영화. 동시에 살짝만 손 대도 묻어나는 녹 가루처럼, 순식간에 확실한 흔적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발람이라는 인물과 함께, 가장 흡입력 있는 1인칭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람은 인도에서는 신에게 찬양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발리우드 영화들 초반에 '하레 크리슈나'처럼 힌두교 크리슈나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오거나 향을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그러나 정작 발람의 청자는 인도에 방문하는 중국 총리 원자바오다. 매끈한 사업가의 외양을 하고 총리에게 메일을 쓰는 발람. 발람의 신은 돈과 권력일까.
발람의 회고를 따라간다. 그의 어린 시절에는 돈과 권력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이따금씩 지주가 수금하러 오는 작은 시골 마을, 대가족의 둘째 아들로 자랐다. 발람은 학교에서 영어를 줄줄 읽고 "한 세대에 한 마리만 나오는 백호가 너다"라는 칭찬을 받을 만큼 똑똑하지만, 백호로 자랄 기회는 없다. 마을 찻집에서 석탄 깨는 일, 그것이 발람의 카스트이자 주어진 자리였다.
수금하러 오는 지주를 '황새'로, 그 큰아들을 '몽구스'라고 부르며 속으로 싫어한다. 그래도 앞에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출세 기회도 없지만 그나마 있다면 지주들을 통해서 올 수밖에 없으니까. 구세대의 산물인 황새, 전형적인 깡패 느낌의 몽구스와 달리 미국 유학파인 둘째 아들 아쇽이 나타났을 때 발람은 기회를 찾았다고 느꼈다. 아쇽은 오랜 외국 생활로 아버지나 형에 비해 비교적 "하인"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운전면허를 따서 지주의 운전기사가 되겠다는 손주를 할머니는 고깝게 본다. 집안의 모든 수입을 틀어쥐고 대가족을 관리하는 할머니에게는 아들도 손주도 대가족의 부품이다. 부품이란 기능에 맞게 기량을 발휘해야지, 무한한 꿈을 꾸거나 자리 바깥으로 나가선 안 되는 것이다. 할머니만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굴러온 시스템이 그렇다.
하지만 발람은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따낸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마침내 아쇽과 함께 델리로 가는 길에 기사로 동행하게 된다. 아쇽이 미국에서 만난 아내 핑키까지 모시게 되어, 충직한 하인의 자리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속으로는 아쇽을 어린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내 그가 어린양이 되기도 한다. 풀숲에 숨어 고개를 떨구는 초식동물.
델리에서 어떤 사건들을 보고 듣고 겪었기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그가 영화 초입에 보여주었던 단정한 사업가의 얼굴을 이뤄낸 것일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전환이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 자꾸 그의 이야기를 뒤따라가게 된다. 중간쯤 발람이 "앞으로 자기 이야기가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 경고해도 멈출 수 없다.
발람은 인도가 "빛의 인도"와 "어둠의 인도"로 나뉘어 있다고 말한다. 그 어둠의 인도 한가운데, 인도의 가장 찬란한 발명품인 "닭장"이 있다고. 눈앞에서 도살되는 다른 닭을 보면서도 닭장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하인" 계급 카스트의 하층민들을 일컫는 것이다. 발람의 표현대로라면 배부른 자와 굶주려 허리를 움켜쥔 자 중 후자. 이들은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더 잘 기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개인의 일탈이 가족 몰살로 이어질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대대로 굴러내려 오며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업(業)의 수레바퀴가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카스트에 충직하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내 역할을 어떻게든 다해야 한다. 반대로 내 역할만 다한다면 그밖에 자잘한 잘못이 있어도 죄과가 아니다. 만약 장사꾼의 업이 이득을 보는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저울을 속이는 것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충직한 하인들의 입말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는 그토록 미워하는 지주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시라고 말하는 발람의 표정에도 그 비릿함이 묻어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해진 아쇽 부부에게는 그 비릿함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만으로 거대한 카스트의 수레바퀴를 걷어내기엔, 마찬가지로 그 수레바퀴 아래 있는 이들에게도 역부족이다. 가족의 굴레는 발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쇽 부부의 대처방식은 더욱 나약하다. 아쇽은 싫다고 하면서도 아버지와 형 말대로 정치권에 뇌물을 성실하게 전달한다. 핑키는 발람에게 "열쇠를 찾아 헤맸겠지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라고 말하는데, 그야말로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과연 발람의 닭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을까?
영화 초입에서부터 보여주었듯 발람은 번듯한 사업가가 되었으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했다. 발람은 자신이 닭장을 탈출했다고 믿지만, 정말 그럴까?
발람이 겪은 모종의 사건들을 척척 엮어 보여주는 동안, 자연스럽게 인도 사회의 사다리가 눈앞에 드러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소름마저 오소소 돋는다. 발람이 닭장이라 믿은 공간은 실은 사다리의 한 층이었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을 수직으로 겹겹이 포개어 쌓아 낸 지옥도. 사다리 위층도 여전히 사다리 위다. 여느 성공 신화와 달리, 올라간 자리 또한 지옥이라는 것. 그렇게 이 영화는 끝까지 절망에 녹슨 채로 강렬하게 문을 닫는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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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무너진 균형에 매몰된 감동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그는 괜한 관심과 주목을 피하기 위해 무뚝뚝하고 차갑게 학생들을 대하며 기피 대상이 된다. 어느 날, 그는 잘못된 친구 관계 때문에 기숙사에서 쫓겨나 떠돌던 '한지우(김동휘)'를 만나고, 어려운 가정환경과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수포자가 되어 좌절 중이던 지우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던 중 학성은 우연히 지우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만다.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지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그는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자신의 삶에서도 전환점을 맞이한다.
박종훈 감독의 첫 상업영화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정직하다. 영화의 첫인상인 제목으로부터 보여주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은 크게 '수학자'와 '이상한 나라'로 이루어진다. 이때 '수학자'는 수학이라는 소재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미끼일 뿐, 영화가 진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그 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또 이용하는 개개인들의 사연일 것임을 말해준다. 또 '이상한 나라'는 수학자들이 발 디디고 있는 공간이 품은 이야기에 따라 해당 사연들의 내용과 감흥이 달라질 것이라고 암시한다. 다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정직함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데 그친다. 수학자의 스토리는 감동적이고 그의 공간도 시각적으로 잘 구현되었지만, 이들의 만남은 하나의 짜임새 있는 플롯을 이루지는 못한다.
우선 '수학자'의 이야기를 보면, 이 영화에서 수학은 철저히 수단적인 도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학의 이름을 빌려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성은 지우에게 특정 문제의 구체적인 풀이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수학에 접근하는 자세를 일러준다. 예를 들어 풀이를 단축시킬 공식을 알려 달라는 지우에게 학성은 칠판을 가득 채울 만큼 복잡한 계산을 모두 직접 하라고 말한다. 수학의 기술과 문제의 결과만을 쫓는 지우에게 수학의 진정한 묘미는 과정에 있음을 알려준다. 학성이 지우에게 내준 첫 문제가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라는 문제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러 존재할 수 없는 삼각형을 보기로 주면서 기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공식을 통해 답을 구하는 것보다 수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때 작중 수학을 대하는 태도는 곧 인생을 대하는 태도로 연장되기에 흥미롭다. 영화는 “수학이 단순하단 말을 못 믿네? 곧 믿게 될 거다. 인생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된다면”이라는 대사를 통해 인생에는 하나만의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또 수학계의 난제인 '리만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 온 학성의 사연을 빌려 왜 수학의 공식을 증명하고자 하는지, 곧 무엇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정답에 맞춘 증명이라는 결과 그 자체보다 정답보다 중요한 올바른 풀이 과정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Q. E. D. (증명 완료)'라는 자막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고, 그 증명을 강요당한다고 볼 수도 있는 시대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또한 수학으로써 인생을 말하는 메시지의 울림은 수학이 아름답다는 학성의 찬양 덕분에 더욱 깊고 진하게 느껴진다. 수학의 아름다움은 삶의 미학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찬양의 수단이 수학과 뗄 수 없는 음악이기에 더욱 직관적이고 동시에 인상적이다. 음악은 소리를 소재로 삼을 뿐 그 구성요소인 박자나 선율, 화성 등은 모두 수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다. 서로 다른 음을 내는 현 사이의 길이가 간단한 정수의 비로 표현될수록 어울리는 소리가 난다는 피타고라스의 발견처럼, 아름다운 음악에는 올바른 수학적 비율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학성과 함께 등장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삼인방이 함께 파이(π)의 값을 악보로 옮겨 연주하는 '파이송'은 예술과도 같은 수학의 아름다움과 수학에 대한 영화의 인문학적인 접근법을 부각한다.
이처럼 수학에서 인생의 올바른 가치와 길을 찾는 '수학자'의 관점은 '이상한 나라'의 의미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특히 같은 학교 안에서 극도로 대비되는 공간을 통해 '이상한' 대목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당장 지우가 다니는 자사고의 교실과 기숙사, 복도 공간은 무채색의 화이트 톤으로 명암 대비를 낮춰 평면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는 ‘학성’과 ‘지우’의 집을 관통하는 콘셉트이기도 하다. 이 공간들은 모두 메말라 있고 비어 있는 황량한 느낌을 선사한다. 고액의 수학 과외가 이루어지는 학원 역시 같은 인상을 남긴다.
반면에 지우와 학성이 함께 수학을 공부하는 장소인 과학관 B103 아지트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명암 대비를 높여 보다 입체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밝고 따스한 호박색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어두우면서도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동시에 신비롭기까지 하다. “으스스하지만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서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라는 느낌을 주는 미지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박동훈 감독의 말대로 과학실을 가득 채운 잡동사니 덕분에 역으로 어떤 작은 변화도 이상하지 않을 아지트로 재탄생한다.이처럼 두 공간의 상반된 분위기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나라'의 함의가 바뀌게 되는 힘이 되어준다. 초반부만 해도 지우의 수학 성적이 매우 낮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이유로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학 가기를 권유하는 학교의 태도는 냉혹하지만 현실적인 것처럼 묘사된다. 딱히 지우에게 인간적인 정을 주지 않는 주변 학생들의 모습도 이를 부추긴다.
그러나 과학관 B103이라는 공간이 등장한 이후로는 비록 냉정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였던 학교의 분위기는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상식적인 인상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문제의 조건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으니 복수정답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지우에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기술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것이 진짜 잘못된 것이라고 일갈하는 교사의 모습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답안지 유출 사건을 비롯해 왜곡된 교육 시스템의 진상이 이미 잘 알려진 만큼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수학을 매개로 삶의 감동과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잘 이끌어 가던 영화는 '이상한 나라'에 남북관계를 끌어오려는 과욕을 부리고 만다. 작중 학성과 지우의 관계는 마치 유사 부자 관계나 다름없다. 탈북한 후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학성이 아들의 모습을 지우와 겹쳐 보기 때문이다. 필생의 과업인 리만 가설을 증명하려던 노력 때문에 비극을 겪은 만큼 학성에게 유독 수학 때문에 괴로워하는 지우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선을 쌓아가면서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영화가 적절히 균형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우선 짐작 가능한 학성의 개인사를 굳이 숨기고 있다가 그의 사연을 나열하는 선택은 영화와 관객 간에 감정교류를 저해하고 학성의 감정선마저 작위적으로 느껴질 소지를 주고 만다. 또 탈북자인 학성과 국정원의 관계를 풀어나갈 때는 그 위기를 억지로 조성한다는 인상을 남기는데, 이는 딸기 우유로 대표되는 뻔한 클리셰와 결부되어 영화의 깊이감과 몰입감을 모두 방해하고 만다. 그 결과 '이상한 나라'에 담긴 사회적 의미와 현실의 무게감과 인물의 사연이 만들어 낸 일차원적이고 편의적인 감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적으로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문제가 요약되어 있다. 배우의 중량감이나 분량, 스토리의 깊이만 봐도 주인공은 이학성이 되어야 하지만, 미흡한 작법으로 인해 정작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이학성이 아니라 한지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정직한 제목에 어울릴만한 짜임새를 보여주지 못한 나머지 표류선 마냥 '이상한 나라'와 '수학자' 사이에서 무너지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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