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9-21 14:39:23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15세지만 19금 같은 영화
손석구 혹은 전종서 배우를 좋아하시나요?!
작년부터 시작해서 올해까지 핫하디 핫한 배우를 뽑으라면 이 둘을 뽑을 수 있는데요.
이 둘이 만나 더욱더 재미있게 보게 된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현실적이면서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솔직 단백이 매력적인 영화
그럼,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멜로, 로맨스, 코미디
감독 : 정가영
각본 : 정가영, 왕혜지
출연진 : 전종서, 손석구
개봉일 : 2021년 11월 24일
평점 : 7.96
스트리밍 : tvN , NETFLIX, Whatch
기획 의도
일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은 스물아홉 '자영'(전종서) 전 남친과의 격한 이별 후 호기롭게 연애 은퇴를 선언했지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최후의 보루인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한다.
일도 연애도 호구 잡히기 일쑤인 서른셋'우리'(손석구) 뒤통수 제대로 맞은 연애의 아픔도 잠시
편집장으로부터 19금 칼럼을 떠맡게 되고
데이팅 어플에 반강제로 가입하게 된다.
그렇게 설 명절 아침!
이름, 이유, 마음 다 감추고 만난 '자영'과 '우리'
1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1일차부터 둘은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들게 되고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 누구 하나 속마음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데..
이게 연애가 아니면 도대체 뭔데?
발 빼려다 푹 빠졌다!
등장인물
함자영 | 전종서
방송국을 관두고 아버지의 와플 가게 일을 돕고 있다. 팟캐스트 사업을 위해
정부 지원을 신청한 상태.
데이팅 어플에서의 닉네임은 막자영.
박우리 | 손석구
잡지사에 입사한 문화창작과 출신.
19금 칼럼을 쓰라는 지시를 받고 반강제적으로
데이팅 어플에서의 이름은 직박구리.
여담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는 개봉 전 언론시사회를 가졌을 때부터 상당히 호평을 받으며 특히 전종서와 손석구의 연기 케미에 대해
호평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보편화되어 있는 연애 어플이라는 공감대가 많은 사람의 공감대가 한대 어우러지면서 솔직함으로 무장해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분명 15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수위가 높은 19금 영화 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다는 느낌이 대부분이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결말
우리(손석구)는 자영(전종서)이랑 있었던 이야기들을 칼럼으로 내면서 칼럼은 대박이 나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지내게 된다.
자영 또한 배신감으로 우리와 헤어지며 자신의 특기를 살려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지내게 된다.
이 둘은 첫 만남인 평양냉면집에서 만나게 되며
우리의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자영은 진심으로 용서해 준다. 이 둘의 화해와 다시 연애가 시작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손석구와 전종서라는 핫한 배우들의 만남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케미도 좋고 모든 게 다 좋았다.
매우 솔직한 이야기와 과감함을 더해줘서
조금 뻔뻔할 뻔한 이야기를 더욱더 잘 살려줘서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입니다.
한줄평 : 서른이 왜 서른인 줄 알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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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이 옅어지니 역주행 시작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가 모여 사는 대도시 ‘엘리멘트 시티’. 불들이 모여 사는 파이어 타운에는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레아 루이스)가 있다. 본토를 떠나 엘리멘트 시티로 이민 온 부모님을 도와 잡화점을 운영하는 앰버. 그녀에게는 한 가지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화를 참지 못한다는 것.
어느 날, 앰버 앞에 유쾌하고 감성적인 물 '웨이드'(마무두 아티)가 나타난다. 첫 만남은 악연이었다. 앰버 부모님 가게 수도관이 터지자 공무원인 웨이드가 시청에 고발하고, 앰버가 불처럼 화를 냈기 때문. 그러나 이를 계기로 앰버는 웨이드와 점점 가까워지고, 그녀는 부모님과의 관계부터 자기 꿈에 이르기까지 믿어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27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뒷심이 무섭다. 개봉 11일 차에 처음으로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개봉 19일 차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라는 경쟁작이 등장했지만 박스오피스 정상은 여전히 <엘리멘탈> 몫이다.
<엘리멘탈>의 역주행은 사실 예상 밖의 일이다. 부정적인 이슈가 많았기 때문이다. 제76회 칸 영화제 폐막작으로 공개된 직후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낭패였다. <버즈 라이트이어>에 이어 픽사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흥행성적도 기대 이하였다. 북미에서는 개봉 후 2주 동안 1억 달러를 채 벌지 못했다.
뒤늦게 <엘리멘탈>을 보니 부정적인 반응의 원인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소재는 지극히 픽사답지만, 정작 이야기는 픽사스럽지 않다. 픽사만의 개성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이 괴리감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하지만 이 역설 덕분에 일반 관객에게 <엘리멘탈>은 오히려 사랑스럽다. 109분 동안 부담 없이 화려한 영상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 몇 방울은 덤이다.
픽사다운 소재
픽사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무기는 신선한 소재다. 클리셰를 따르는 안일함은 찾기 어렵다. 대신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는다. 픽사 애니메이션이 아이보다도 어른을 울리기로 유명한 이유다. 일례로 <소울>은 앞만 보고 달리기 바쁜 현대인에게 잠깐의 여유를 줬다. 인생은 무언가 거창한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즐길 때 의미가 있다고 말하면서.
<엘리멘탈>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계에 초점을 맞춰 미국으로 건너 간 이민자의 삶을 살펴본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지킬 것인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다른 가치관은 어떻게 공존할지. 기존 사회의 구성원과 이민자는 어떻게 융화할 수 있는지. 영화는 불과 물이라는, 상반된 원소의 만남과 갈등을 통해 이민자의 삶을 되돌아본다.
특히 아시아계 이민자가 주인공이라서 인상적이다. 미국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 차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지 오래지 않은 만큼, 픽사가 빠지면 섭섭하다. 실제로 피터 손 감독 본인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보니 영화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다. 큰 절, 매운 음식, 코리아 타운 등을 변형해 활용한다. 앰버네 가족 이야기가 백인, 흑인, 유대인보다도 늦게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또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와 겹쳐 보이는 이유다.
픽사답지 않은 이질감
그런데 막상 <엘리멘탈>을 보다 보면 픽사 애니메이션이라는 느낌이 살지 않는다.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평범한 까닭이다. 대부분의 픽사 애니메이션은 후반부를 위한 한 방을 감춰 둔다. 이야기를 예상대로 풀어가다가 반전을 주고, 더 깊은 울림과 감동을 안긴다. 상술한 <소울>도, 코로나 시기에 개봉한 <온워드>도 예상할 수 있는 교훈 대신 한 차원 높은 깨달음을 줬다.
반면에 <엘리멘탈>의 스토리텔링은 무난히 흘러 마무리된다.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고민이 충돌하는 지점은 무난하게 해결된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부모의 내리사랑과 자아실현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자식 세대의 효심 덕분에 손쉽게 해결된다.
앰버와 웨이드의 로맨스도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다.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밝은 여자 주인공을 만난다. 처음에는 악연이지만, 우연이 겹쳐 둘은 계속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남자와 여자는 자기에게 없는 매력을 상대에게서 발견하고, 서로의 단점을 가려주며 사랑을 키운다.
그러니 메시지도 예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지레 겁먹고 마음의 문을 닫는 대신 먼저 손을 건네라고 말한다. 지레짐작해서 마음의 문을 닫는 대신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또 물과 불처럼 사회적 배경부터 외관까지 다 다른 이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부딪혀 봐야 공존하는 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 여전히 감동적인 교훈이지만, '픽사'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평범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디즈니 <주토피아> VS 픽사 <엘리멘탈>
2016년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와 비교해 보면 <엘리멘탈>의 스토리텔링은 더 아쉽다. 두 영화는 소재가 같다. 인종을 동물과 원소에 비유해 다문화 사회의 차별 문제를 지적한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 주토피아와 엘리멘트 시티가 배경인 것도 유사하다. 여자 주인공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소수자 내지는 약자, 남자 주인공이 사회적 강자로 등장하는 것도 같다.
주목한 포인트는 다르다. <주토피아>는 거시적으로 접근한다.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꿰뚫는다. 토끼 경찰 주디를 중심으로 이민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을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소수 집단 우대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도 여우 닉의 이야기에 담아낸다. 그 결과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차별받을 수 있다'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엘리멘탈>의 접근법은 미시적이다. '파란 불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민자들이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화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회 전체의 이슈 대신 이민자 가족 내의 문제에 집중한다. 소수자 차별이나 경제적 불평등 및 불공정성 같은 이슈는 앰버와 웨이드가 썸을 타는 과정에서 잠깐 등장했다 빠진다.
픽사라기에는 평범한
그 결과 <엘리멘탈>은 원론적이다. 잘 알려진 문제 상황과 어려움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적응기가 원론이라면, 적응한 이후에 생기는 문제까지 다루지는 않았다. 활용할 만한 사례도 있기에 더 아쉽다. 공부를 잘하는 아시아인보다 못하는 흑인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미 연방 대법원의 결정이 대표적이다. 소재의 잠재력을 온전히 풀어내지 못한 듯 보인다.
이는 세부 플롯 간의 균형이 맞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엘리멘탈>에는 두 축이 있다. 로맨스가 한 축이고, 하수도 누수 문제를 해결이 다른 한 축이다. 전자가 이민자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는 이야기라면, 후자는 이민자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는 전자에 과도한 비중을 둔다. 자연히 후자는 앰버와 웨이드의 로맨스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필요할 순간에 소환될 뿐이다. 사랑이 시작되고, 갈등을 빚고, 완성될 때. 앰버와 웨이드의 활약이 도시 전체에 가져온 결과는 보기 좋은 배경에 머무른다. 이 역시 닉과 주디의 추격전을 통해 형사물을 닮은 서스펜스도, 사회적 파급력도 놓치지 않은 <주토피아>와 대비를 이룬다.
단순한 스토리 덕에 빛나는 비주얼
하지만 좋게 말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해 특색 없는 스토리 덕분에 픽사의 명작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CG와 영상미가 유독 돋보인다. 우선 물과 불이라는 원소의 특성이 매력적이다. 광물에 발을 디딜 때마다 변하는 앰버, 앰버가 유리를 만드는 장면, 불과 물이 맞닿아 끓어오르거나 폭발할 때의 디테일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러다 보니 흙과 공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아쉽기도 하다.
Lauv의 OST가 흘러나올 때 비치는 도시 경관도 화려하다. 눈이 호강한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물이 흐르는 지하철이나 거대한 용광로처럼 보이는 파이어 타운의 경관도 한몫한다. 영화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각 원소의 특성을 알 수 있지만, 동시에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엘리멘트 시티는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결국 <엘리멘탈>의 역주행은 픽사답지 않고 개성이 약한 완성도에서 비롯된 셈이다. 소재 자체의 힘, 한국적 정서, 보편적인 이야기와 화려한 비주얼의 조합이 입소문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치 <미나리>의 애니메이션 버전 같기도 하다. 그러니 아무도 예상 못한 역주행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Acceptable 무난함
무난한 이야기와 창의적인 볼거리. 픽사답지 않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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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유아인만 문제였을까
배우 유아인의 마약류 투약 혐의 건으로 인해 그가 출연하는 작품들은 비상에 걸렸다. 특히 촬영 완료하고 공개를 앞둔 작품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인데,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가 그중 하나다. 한동안 공개 보류했으나 고심 끝에 지난 26일에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종말의 바보'에게서 '유아인 리스크' 여파가 느껴지긴 한다.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를 걷어낼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걷어냈지만, 유아인이 극을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하윤상 역을 맡았기에 흐름이 툭툭 끊기는 부분도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유아인 탓만 하기엔 '종말의 바보'의 전반적인 퀄리티에 물음표가 붙는다.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200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되, 긴박한 상황 전개보단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감정호소하는 듯한 휴머니즘으로 풀어내려고 한 것이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시청자들을 유입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1, 2회에서 '종말의 바보'는 임팩트를 심어주기는커녕 다소 산만하고 루즈하게 풀어냈다. 시작부터 대한민국의 소행성 충돌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소식과 함께 곧장 시위 및 폭동으로 연결해 개연성이 부족했다. 이런 점 때문에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는 반응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오류를 많이 범했다. 예를 들면, 데이터센터 폭파 이후 통신 장애와 동영상 송출 등이 막혀있다는 설정인데 해적 라디오를 통해 동영상을 송출하거나 실시간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은 모순이다. 이를 포함해 허술한 설정들이 다수 존재하기에 디테일함에 민감한 시청자들에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기엔 충분하다.
등장하는 캐릭터들 대부분이 바싹 건조하리만큼 무겁고 진지하다. 분위기 전환용으로 시도한 지점도 있긴 하나, 오히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에 불필요하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소주연(서예화)의 닭 키우기 에피소드만 하더라도 안 하느니만 못한 유머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결국 '종말의 바보'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력만 아깝다. 진세경 역을 맡은 안은진은 '연인'을 기점으로 확실히 중심축을 잡아주는 주연배우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스토리라인의 또 다른 중심인 전성우(우성재 역), 김윤혜(강인아 역)도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어갔다. 여기에 김영옥, 김여진, 박혁권, 신은정, 차화연, 백지원, 박호산 등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의 시너지도 꽤나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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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말란이 다시 인류에게 보내는 서늘한 경고
가족 여행
신난다! 가족 여행이야! 언제 어디를 가든 여행은 늘 설레다. 귀여운 꼬마 웬. 한적한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즐거운 기분이다. 노래 볼륨 크게 키우고 이동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이동하는 세 사람. 여행지에 도착했다. 짐을 꺼내고 어디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복잡한 고민은 어른 둘이서 해도 큰 문제는 없잖아? 팔랑팔랑 뛰어 어딘가로 향하는 웬. 별건 아니다. 별장 앞에 어떤 풀숲이다. 혼자 놀고 있는데 떡대 큰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안녕!” “안녕하세요!”
성격은 좋아 보인다. 처음 보는 아저씨와 대화하는 웬. 서로 이름을 말한다. 저는 웬이에요. 난 레너드야. 사람 없는 한적한 동네였기 때문에 웬의 입장에서 이 손님이 낯설다. 왜 여기에 오셨어요? “사실 인류를 구해야 할 과제가 있거든” 갑자기 차분한 전원일기에서 sf로 장르가 바뀌고 있다. 뭔 소리지? 웬이 레너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난 너희 가족을 만나러 왔어. 너희 가족은 이제 숭고한 결정을 해야 하거든.” 느낌이 안 좋다. 어린 나이지만 이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느낌이 현실로 이뤄지듯 웬의 시야에서 어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들은 무기를 갖고 있다. 설마? 이거 우리 가족을 해치려고 오는 건가? 쿵쿵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웬은 달린다. “아빠! 아빠!” 그런 웬을 보는 레너드. 레너드의 속셈은 간단했다. “웬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죽여 인류를 살려야 한다”라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이유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문장은 예고에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내 가족을 희생시킬 것인가, 인류를 구할 것이다”다. 이 질문은 굉장히 자극적이다. 만약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묻는다면 답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공리주의에서 타고 내려오는 인류의 고전적 떡밥이 영화에서 구현된 셈이다. 영화는 이 딜레마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어떻게? '불신'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왜 불신하게 됐을까?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세팅이 있다. 이게 시놉시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서 뭐라고 쓸 수는 없다. 대략적으로 써보자면, 이 웬 가족은 약간 특별한 가족이다. 가족 구성원이 살짝 다른 것이다. 이 다르다는 특성은 영화에서 핵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과관계를 갖는다.
바로 이 가족 구성원의 배치는 불신이라는 핵심으로 닿을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뭐 PC주의다 뭐다 해서 이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뛰운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혐오 내지는 혐오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는 두 이야기(가족의 탄생, 레너드 일행과의 인질극)를 축으로 끌고 줄거리를 이끈다. 이 가족이 왜 세상에게 이럴 수밖에 없는가? 의 배경을, 또 두 가지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괜히 세상이 망해가는 이야기와 가족의 탄생을 병치시킨 것이 아니다.
이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불신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영화에서 왜 딜레마가 일어날까? 상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지 못하는 이유’에 따라 주인공(들)이 설정해 놓은 장치들이 있다. 뭐 동양인 딸을 입양했다던가, 차에 뭔가가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 장치들이 매 번 다르고, 왜 구비했는지도 사실감이 있게 제시했기 때문에 글쓴이는 영화가 흥미로웠다. ‘아, 감독이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이 도구들을 영화에 넣었구나’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인류와 가족 중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불신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전개한다는 생각에 빨려 들어갔다.
현재 그리고 미래
영화에서 제시한 불신을 과거 그리고 현재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에 대해서도 흥미로웠다. 우선 영화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종말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어떻게 다루는가? 의 답은 간단하다. 주인공 일행이 이걸 믿지 않으면 그의 반작용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샤말란은 이 현재 세태에 대해서 '단순히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가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규정지었다. 이는 우리 현대 사회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를 인과관계로 설정했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영화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과연 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재앙들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일어났던 걸까? 아닐 것이다. 이미 레너드와 같은 사람들이 계층을 가릴 것 없이 경고했던 것이다. 또 이런 일들이 전부 다 별개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살짝 이루어져 있다. 물질론적 사회구성이론이 세상에 한 트럭인 것이 이 근거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이런 것들이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는 듯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 역설을 중심으로, 좁은 공간을 설정한 후 강강강의 템포로 전개하는 영화의 서사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영화의 목표와 목적이 정해진 것이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식은 전작을 생각나게 한다. 바로 <올드>다. 이 <올드>와 <똑똑똑>이 세상을 구현하는 방식은 유사한 듯 보인다. 먼저 좁은 공간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어느 해안 <올드>, 한적한 별장 <똑똑똑>이 공간적인 비슷하다. 또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담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올드>, 경고와 불신을 소재로 담은 <똑똑똑>이 그렇다. 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소재로 다룬 <올드>와 인과관계를 소재로 담은 <똑똑똑>이 유사하다. 물론 이 둘은 안 좋은 지점까지도 닮은 듯하다. 그러나 이 유사하다는 특징은 인간을 바라봤던 샤말란의 관점이 느껴진다는 점, 그러니까 감독이 샤말란을 어떻게 현재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절대 그냥 넘어갈만한 세팅은 아닌 듯하다.
좀 심했어
그러나 이렇게 사회비판적인 코드를 '샤말란스럽게' 잘 소화한 듯 하지만 이 영화의 불호 포인트는 명확할 듯싶다. 우선 첫 번째, 영화 템포가 너무 강강강의 템포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 빠른 템포에 비해서 영화의 키워드가 주인공들의 특수한 세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어떤 분에게는 영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전작 <올드>는 주인공들에게 병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여러 커플이 나오기 때문에 샤말란이 품고 있을 다층적인 관점을 품을 수 있다. 넓은 영화라고 보기는 좀 어렵기 때문에 이 영화의 이야기 방식이 지루하고 기가 빨린다고 느끼기 쉬울 것 같다. 또 주인공들의 선택(들)이 합리적이었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박력이 갑자기 풀리기 때문이다.
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동하는 몇 가지 반전이 있다. 그중 하나는 집단의 구성이다. 영화에서 거의 주인공격인 집단이 후반부즈음에 밝혀진다. 이 집단이 구성되는 이유가 샤말란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때려 박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를 제시하는 방식도 위에서 서술했던 '박력이 약해지는 이유'기도 했지만 글쓴이는 더 나아가 이 암시가 굳이 필요한지도 의문점이 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서스펜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뭔지 감 잡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인물들이 벌이는 어떤 행동들이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이걸 이야기의 긴장감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 자체가 영화에서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하는 방식과 내용까지 아쉬운 단점이 되는 것이다. 아니 초중반부까지 '이 사람들이 과연 어떤 인간인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일반인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던 힘으로 영화가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이를 후반부에서 다 너무 설명하고 넘어가니까 주인공의 입장 빼고 영화가 무뎌졌을 것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또한 이 인물구성이 이루어진 계기를 생각해 보면 좀 살짝 작위적인 느낌이 있다. 이 사람들이 크고 작게 행동하는 근거들이 힘이 떨어진다. 게다가 네 명 중 한 사람의 가장 또렷한 히스토리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기능적으로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좀 있다. 이는 후반부가 될수록 좀 이질감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레슬러
영화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캐스팅 둘이 있다. 바로 레너드 역을 맡은 데이브 바티스타와 레드먼드 역을 맡은 루퍼트 그린트다. 데이브 바티스타는 MCU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출연하며 나름의 인지도를 높였다. 또 이를 바탕으로 작년 <나이브즈 아웃 : 글라스 어니언>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치를 잘 살리듯 바티스타는 영화를 끌고 가는 원 톱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에서 '안타까움'에 대한 감정적인 리액션이 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바티스타의 공이 크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살짝 질리기는 한다. 뭐 관객 분들이 보는 데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또 '해리포터' 시리즈의 론 위즐리 역이었던 루퍼트 그린트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론 위즐리' 생각이 잘 안 났다. 그렇게 좋은 연기를 보여준 두 사람과는 다르게 주인공 둘은 연기가 많이 아쉽다. 한 인물은 감정연기를 하는데 거의 똑같은 표정으로 매번 같은 억양을 보여준다. 레너드 일행이 나올 때는 몰입되지만 주인공 가족이 나올 때 루즈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또 세 주인공 중 하나는 영화에서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는데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연기에 힘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주인공들이 별로 기억에 안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샤말란 영화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깜짝 카메오가 있다. 솔직히 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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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정직했던 건 아닐까요 도지사님
주말마다 하는 고민이 있다. '이거 봐야 해 말아야 해?'다. 재미없는 사회복무요원 생활 속 작가님 소리 듣는 건 재미있다. 그래서 CGV 어플을 켜고 프리미어 시사회와 온갖 쿠폰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거의 주마다 가는 영화관. 유일하게 생각했던 진로가 물 건너 간 후에 이 영화 저널 쓰기는 나에게 좋은 놀이가 되고 있다.
오늘도 고민에 여념이 없다. 이걸 봐야 해 말아야 해? <정직한 후보>? 1편 그냥 평범했는데. 근 30분간의 고민을 뒤로하고 '그래. 한번 가보자'라고 마음을 먹는다.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도착한다. 이거 장병 할인받고 싶은데요. 네. 5시에 들어가시면 되세요. 이거 맞나? 환불할 수 있나? 어플을 켜서 환불할 수 있나 확인한다. 환불 불가라는 글자가 떡하니 눈에 들어온다. 그래. 한국영화의 부흥을 위해서라고 (다시) 되뇌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후회했다. 조금만 덜 정직하면 좋았을 것 같았다. 2021년, 코로나19가 덮치지 않은 지구, 대한민국에 사는 백수 주상숙 씨가 정치인으로서의 재기를 계획하고 있다. <정직한 후보 2>다.
나는야 백수
전직 3선 의원 주상숙.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국회의원 한번 해보기도 어려운데 3번이나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런 기록이 있으면 보통 원내정당에서 '중진'으로 불린다. 중진의 뜻은 무거울 중자에 잘 담겨 있다. 조직에서 무게감이 있다는 건 많은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영 아니다. 인생에서 뭐가 가장 쉬웠니? 거짓말이오! 거짓말로 3선이나 해 먹었지만 그 탓에 역풍이 날아들었다. 4선 도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시장에 출마한 주상숙. 이미 떠난 민심이 쉽게 돌아올 리가 없다. 당연히 실패했다. 현대사의 여느 정치인이 그랬듯 야인으로 돌아간다. 남편 소유의 아파트까지 팔아 선거 자금으로 댄 주상숙. 그동안 모아놨던 돈은 홀라당 까먹고 강원도의 어느 집에서 남편과 함께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대로 무너질 거면 주상숙에게 3선의 기운이 날아들지 않았다. 시장에서 생선 손질하고 있는데 트럭 하나가 바다에 풍덩 빠졌다. 수영할 줄 아는 분 없으세요? 없었다. 그럼 내가 빠지고 말지. 무작정 바다에 빠져 트럭 운전수였던 청년 한 명을 구한다. 정작 기절 상태에 빠진 주상숙. 정신을 차려보니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희철이 반긴다. 뭐지? "누나. 기회가 왔어요." 무슨 말이야? 희철은 병상에 있던 커튼을 치웠다. 바로 자기를 취재하려 찾아온 기자들이 상숙을 반겼다. 이게 무슨 일 이래? 아무 계획 없이 바다에 빠졌던 일이 정치인 주상숙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된 것이다. 과연 이대로 죽으란 법은 없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점점 부활의 서막을 밟아가는 주상숙. 눈 떠보니 강원도지사다. 몰락한 커리어가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켰다. 고점을 찍는 지지율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러다가 대통령도 생각해 볼 법하겠어? 그녀에게 브레이크란 없다. 아니 없을 것 같았다. 주상숙은 두 가지 브레이크를 만난다. 바로 다시 찾아온 '그분', 거짓말 못하는 주둥아리와 도지사 곁에서 열심히 해쳐먹는 부랑자들이다. 그녀는 과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2년 만에 돌아온 신작
2020년 개봉한 1편이 2년 만에 후속작을 냈다. 주인공은 여전히 라미란, 김무열 두 배우다. 전작은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은 넘었다. 전작을 요약하자면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코미디 쇼'였다. 이는 주상숙이라는 인물의 직업적 특성과도 이어진다. 주상숙은 정치인이다. 정치 인하면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이미지는 거짓말이다. 선거 때마다 겉으로만 쨘하고 나타나서 달콤한 말로 유권자들을 속이는 모습은 많은 미디어를 탔다. 이렇게 잘 알려진 특성을 '진실을 말해야만 하는' 상황과 결합시켜 코미디 요소를 만들어냈다.
전편을 보며 느꼈던 점은 신선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진실된 말만 한다는 설정은 그냥 문장 자체가 신선하다.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가지고 하는 범죄, 스릴러물은 많이 봤어도 정반대의 특성을 살려 코미디화 시킨 건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라미란이라는 배우는 이런 낯선 설정을 톡톡히 잘 살렸다. 후반부 신파가 들어간 전개와 전반부 코미디 요소를 살리는 방법, 또 정치인으로서의 모순된 지점까지 디테일을 구석구석 살려 생동감을 부여한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런 생동감은 앞에서도 서술한 '정치인들의 민낯 드러내기'와 시너지를 낸다. 후보의 비리사실을 지적하지만 그런 인물 역시 뒤가 썩었다는 묘사,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점을 부여한다는 설정, 정치인의 기본 준비물 같았던 원정출산, 언론인 매수 등등 어딘가 익숙했던 현대사의 단면을 코미디화 시킨 것은 아주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ZOO'라는 단어를 활용한 말장난은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 어느 시기의 국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특장점이 앞에서 서술한 라미란 배우의 활용법과 플러스 효과를 내며 나름 좋은 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상황에서 후속작이 나왔다. 오롯이 장점만 발현됐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느낌
1편은 좋았다. 신선했고 정치사 이면을 들여다보는 관점까지 나쁘지 않았다. 후반부에 들어간 신파도 뭐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다. 충분히 뭉클했고 이야기 전개에 억지로 균열을 낼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또 초반부 '왜 진실만을 말하는 주둥이가 됐는가?'도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었다고 본다. 코미디 영화에서 왜 이게 웃겨?를 일일이 설명하면 장르적인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을 어긋 내는 요소가 있어야 코미디가 성립하지 않겠어?
그런데 이 영화, 그러니까 본편인 2편에서는 안 좋은 부분만 답습했다. 사실 좋은 부분이 안 좋은 부분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1편에서 느껴졌던 신선한 코미디를 2편에서 그대로 끌고 왔다. 초반부터 코미디 패턴이 예상되기 때문에 안 웃기다. 이 지점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주상숙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웃기지가 않다. 이 코미디 패턴이 곡선 형태로 바뀌면 모르겠는데 영화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코미디는 이 진실밖에 말하는 입에 의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코미디 영화인데 식상해서 안 웃기는 것이다.
그렇게 전반부를 이 코미디 패턴에 할애하고 중반부로 넘어간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 사실 이 영화는 스릴러로 변한다. 도지사가 된 주상숙이 어떤 일을 겪고 해결하는 과정이 영화의 물리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짠 이야기 전개는 예상외로 좋았다. 고공 행진했던 주상숙의 지지율이 원인이 되고, 정치인으로서 지리멸렬했던 과거가 좋은 인재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전개는 짜임새가 있다. '내가 도지사이기 때문에' 무작정 의사결정을 보여주지 않는 주상숙, 후반부 제시되는 빌런의 정체, 주상숙 친구 캐릭터, 문제 해결을 이루며 소모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캐릭터 사용까지. 영화는 코미디를 설계했지만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장점을 발현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왜 코미디가 기능하지 않았을까 더 생각하면 이유가 더 나온다. 일단 초반부.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1편에서 봤던 코미디 패턴이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에 그냥 무덤덤해진다. 또 이 방식이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식상하기까지 하다. <육사오>에서 군이라는 공간적 세팅을 통해 다방면으로 코미디 요소를 만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임윤아, 유해진, 다니엘 헤니, 현빈 네 배우의 장점을 활용해서 만든 코미디와도 다르다. 진실을 말하는 입이 된 차희철과 주상숙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게 끝이다.
이런 코미디 설정은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서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 절반은 '이런 병 아닌 병이 들어온 후 대응하는 주상숙의 모습'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런데 1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의 기도가 주효해서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처지가 된 상숙. 무슨 말이냐? 이 사람이 이런 특성을 가진 건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초반부처럼 '이렇게 말하면 예외가 되어서 난감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어요'를 제시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영화가 직접 이 작품의 설정 오류를 말해주는 느낌? 신이 소원을 들어줘서 그렇게 된 건데 예외를 두면 '저런 상황에서 잘 참아서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기 쉽다. 그럼 몰입이 깨지는 것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주상숙과 차희철이 이런 처지가 된 사건 설계 자체도 엉성하다. 물론 <육사오>에서의 설정 역시 엉성했다. 보통 그쯤 되는 복권은 알아서 찢어지거나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기본 베이스는 애초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할머니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사진은 왜 버렸대? 그리고 바다에는 왜 그렇게 자주 빠지는 거야? 또 근본적으로 주상숙이 왜 정신을 안 차렸는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커리어가 허위 공작으로 부서질 뻔한 인물이 높은 지지율 때문에 변해서 위기에 봉착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인과관계를 따지면 웃길 일이 없다는 것 잘 알지만 이건 좀 아쉽다. 아쉬운 만큼 후에 웃기면 다행인데 단조로운 패턴이 식상하기까지 하니 더 두드러지는 것이다. 또 코미디 쪽 파트에서 이야기가 앞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극후반부를 위한 준비물? 생각해보면 그 시퀀스가 없어도 일처리 시원시원한 건 다 알 수 있다. 내가 왜 주상숙이 결혼식 주례 보는 걸 알아야 하지? 큰 의미가 없는데?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가 있다 보니 러닝타임 절반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또 그나마 작동하는 후반부의 스릴러도 각본이 깔끔한 건 아니다. 엉성한 단점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영화의 만듦새 때문에 뭔가 텅 비어 보이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반짝반짝 빛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후반부의 스릴러 코드에서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치인과 보좌관들이 정책을 설계하며 겪는 노고가 그대로 전해진다. 또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각본이 엉성하긴 해도 이야기 전개가 굴곡이 있는 편이라서 흥미진진하다. 이 과정에서 주상숙 캐릭터 설정이 빛을 발했다. 이 사람이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성격이 이래서 그대로 행동한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 위해 라미란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했다. 1편에서 상도 받았지만 오히려 난 이 2편이 이 배우의 최고작 같다.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잘 이해한 좋은 퍼포먼스였다. 또 신파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뭉클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 때도 눈빛, 말투 연기 하나로 극에서 설득력을 부여한다. 라미란 배우가 이정은, 김혜수 배우만큼이나 원톱 롤을 줘도 잘 소화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또 김무열, 서현우 배우도 높은 경험치를 경제적으로 활용했다. 김무열 배우 연기 잘하는 것 같다. <악인전> <소년심판>이랑 연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정말 다르다. 특히 <소년심판>에서의 연기는 나긋나긋하게 침착한 인물을 잘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내면에 상처가 있어 그만큼의 동기부여를 작동시키는 게 당시의 김무열 캐릭터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원톱 여성 주인공을 보조했지만 아예 정반대의 퍼포먼스를 소화하며 극을 보조한다. 개인적으로 1편에서 싸움 잘한다는 특징을 준 것으로 아는데 액션 신이 없었던 건 많이 아쉽다. 또 서현우 배우 역시 베테랑 티가 난다. <죄 많은 소녀>에서 이기적인 선생님 역할과 비슷한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또 다르다. 착한 척은 하되 그냥 눈빛부터 나쁜 놈 티가 나면서 차희철 캐릭터와 대비를 이뤄야 하는데, 이 과제를 무탈하게 소화해낸다. 그러나 배우들 중에서 가장 재발견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윤두준 배우다. 하이라이트라는 팀에서 배우를 데뷔한 사람이 누가 있지? 이기광 씨만 기억에 남았는데 윤두준이라는 이름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말투를 통한 인물 해석이 돋보였다. 드라마에서는 몇 번 나오셨던데 영화에 나와서도 잘하실 것 같다. 역시 액션 연기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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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생존자다 | 때로는 지옥을 재현할 필요도 있다
같은데, 달랐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생존자다>가 다룬 4개의 사건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정보가 이미 많았으니까. JMS 사건의 후일담은 재판 진행 과정이 꾸준히 보도된 상태였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지존파 살인 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도 이미 그 실상이 여러 차례 다른 프로그램에서 밝혀진 바 있었다. 유튜브만 검색해도 사건들의 발단, 책임 소재, 정치권의 결탁 문제 등을 다룬 수많은 관련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충격적이었다. 이미 아는 사건을 다시 보는데도 이전과는 다른 강렬한 인상이 뇌리에 각인됐다. 특히 부산 형제 복지원 사건을 다룬 첫 두 에피소드는 말로 쉽사리 표현할 수 없는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당시 숙소를 재현한 공간에서 실제로 입었던 것과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생존자들의 인터뷰는 마치 <오징어 게임>의 실사판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러한 연출은 과연 적절할까?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나는 신이다>가 지나치게 선정적인 묘사로 논란이 되었듯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2화까지만 봐도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지옥이나 다름없던 광경을 재현하고 보여줄 때만 발생하는 독특한 효과와 반향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재현된 지옥이 특별한 이유
상술한 세트나 복장 외에도 <나는 생존자다>의 사건 묘사 수위는 분명 충격적이다. 출연한 피해자들과 충분히 협의한 결과물이겠지만, 인터뷰 내용이 특히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 성폭행당한 순간, 강요를 이기지 못해 누나에게 쌍욕을 해야만 했던 순간을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려주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역 배우를 써서 재현하는 것과는 달리, 눌러 담은 회한이 느껴지기에 더 고통스럽다.
박인근 원장의 가족들과 피해자가 대면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를 웃으며 무시하고, 피해자가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광경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포착된다. 머리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적나라해야만 하는가 싶은 순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생존자다>는 차별화된다. 고통의 기억을 돌려 말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 힘을 획득한다. 단순히 선정성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고통의 경험을 재현할 때 형성되는 종교 문화적 효과 덕분이다. 문화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에 따르면 "종교적 관점에서 고통의 문제는 모순되게도 어떻게 그것을 피하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당하냐"에 있기 때문이다.
고통의 종교적 승화
기어츠는 ‘당할 만큼 의미 있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to make suffering sufferable)이 종교적 고통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경험과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고통을 감내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제도적으로 확립하면 종교라는 일종의 문화적 시스템이 탄생한다는 것. 실제로 세계적인 대형 종교도 고통스러운 기억을 의도적으로 재현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식을 채택하곤 한다.
국민의 80%가량이 천주교 신자인 필리핀의 경우에는 부활절을 앞두고 독특한 의식이 진행된다. 부활절을 앞둔 목요일은 예수와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 목요일’인데, 이날 빨간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남성들은 자신을 채찍질하며 속죄 의식을 치르곤 한다. 이는 예수가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메고 가서 못 박힌 것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 그 고통을 부활의 환희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아파 무슬림도 '아슈라' 날에 유사한 의식을 진행한다. 아슈라는 시아파의 세 번째 이맘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이 수니파 무슬림의 습격으로 죽은 참극을 애도하는 날이다. 이날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거리 행진을 하며 가슴을 주먹으로 치거나 채찍이나 칼로 자해한다. 최근에는 헌혈 행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이 역시 고통의 기억을 재현 및 전시하여 다른 의미로 승화하는 의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고통의 재현과 전시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려는 예술가들을 목격할 수 있다. 세르비아의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고통을 통해서 내면을 변화시키고, 몸의 경계를 초월하며, 터부를 무너뜨리려는 예술적 지향을 추구한다. 자신을 극한의 신체적 고통의 상황에 놓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 본질은 종교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적나라해서 달랐다
<나는 생존자다>도 마찬가지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저 자극적으로 범죄 사건을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다. 생존자들이 직접 고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의식에 가깝다.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면서 종교적 영성을 획득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을 거친다. 이 의례의 끝에서 그들의 아픔은 트라우마로 남는 대신, 사회 정의를 위한 고발의 증거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에 더해 시청자들도 피해자들의 증언을 매개로 삼아 일종의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마치 자기 몸과 마음이 다치는 것처럼 간접적으로 고통을 경험한다. 단순히 과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 것 이상으로 분노하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행위 자체가 고통의 기억을 공유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공동체의 아픔으로 변화시키는 일종의 시청각적 자해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현황에 대한 관심과 보도가 늘어나는 현상은 이를 방증한다. 2023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국가 책임을 처음 인정하며 피해자들에게 145억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 뒤로도 국가 배상 판결은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법원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652명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111건 재판이 접수돼 있다. 모두 <나는 생존자다>가 공개 전까지는 대중의 이목에서 벗어나 있었던 소식들이다.
<나는 생존자다>를 향한 바람
한 가지 지점은 아쉽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에피소드는 피해자들이 피해 보상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정부에서 항소했다는 자막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법무부는 지난 5일 상소취하 결정을 내렸다. 물론 공개 직전에 이뤄진 방침 변화를 즉각 작품에 반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뉴스까지 같이 보여줬다면 분노와 충격을 안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정의를 향한 한 가닥 희망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 이 사건과 동시에 화제가 된 JMS 사건 모두 사이비 종교인들이 가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의 의미와 가르침을 왜곡한 이들로 인해 피해자들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나는 생존자다>는 그들이 가장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방식으로써 고통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음을 보여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묘하게 대조한다.
이 시리즈는 시즌 3, 4로 이어질 수도 있어 보인다. 다룰 사건이 없는 게 최선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새로운 시즌이 나올 때마다 선정성과 잔혹성 논란이 일더라도, 초심을 유지했으면 한다. 비록 보고 듣기조차 힘들어도, 그 정도로 고통스러운 묘사가 없이는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지금처럼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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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한 재미로 승부를 보다
이제 마블을 보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마블에 늦게 입덕한 자로서 영화 한 편 한 편이 개봉할 때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토르 1, 2편을 몰아보고, 3편은 볼 시간이 없어서 위대한 유튜버 선생님들의 요약본을 보면서 복습을 하고 영화관에 찾아갔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시놉시스"신을 죽이는 자, 신이 상대한다!"
슈퍼 히어로 시절이여, 안녕! 이너피스를 위해 자아 찾기 여정을 떠난 천둥의 신 토르. 그러나 우주의 모든 신들을 몰살하려는 신 도살자 고르의 등장으로 토르의 안식년 계획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토르는 새로운 위협에 맞서기 위해, 킹 발키리, 코르그, 그리고 전 여자친구 제인과 재회한다. 그녀가 묠니르를 휘두르는 마이티 토르가 되어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제, 팀 토르는 고르의 복수에 얽힌 미스터리를 밝히고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전 우주적 스케일의 모험을 시작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에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긴 영화영화 토르의 1, 2편을 보고 굉장히 진중한 컨셉에 조금 지루했었다. 3편은 요약편을 덕택에 이렇게까지 토르가 웃긴 캐릭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깔깔깔 웃다가 나왔다. 토르 3편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다보니 3편을 본 사람들 중에서 그 재미가 전작만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3편을 요약본을 본 터라 굉장히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소비영화로서 2시간 깔끔하게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위험에 빠진 왕국들을 구하러 다니면서 보상으로 받은 염소 2마리,,, 한국의 고라니인가 싶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데,, 아주,, 재밌었다. 비명소리로 관객을 이렇게 웃길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느슨해진 영화의 유머감에 한 순간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신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의 강력한 빌런 고르. 신 도살자인 고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신 도살자로 거듭니다. 가뭄이 찾아오면서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고 자신과 딸 밖에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신이 섬기는 신을 만난 고르는 그 신에게서 자신은 필요 없고, 자신을 믿어주는 다른 이를 찾으면 된다는 말에 네크로소드를 가지고 신을 죽이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신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백성을 져버린 신과 다르게 아스가르드 백성이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토르의 믿음이 대비되면서 신은 자신을 믿어주는 백성들의 신념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근데 사실 나는 무신론자여서 이러한 장면이 꼭 신에게만 적용된다기 보다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신의 권력과 권위는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신망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확장해서 받아들였다.
우상은 우상으로 남는 것이 좋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제우스가 너무 별로라는 점이다. 만화책에서 본 제우스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었다. 엄청난 위압감을 가진 신들의 신 제우스가 배불뚝이 아저씨로 나와서 순간적으로 엥?? 했던 장면이었다. 물론 외관으로 평가를 해서는 안되지만 상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는 행동들 역시 자신들의 왕국만 지키면 되고, 다른 신들이 죽는 것에서는 상관없어하는 천하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면서 토르는 그동안 자신이 존경하고 흠모한 제우스가 이런 존재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누구나 자신이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존재들이 있지만, 정작 그들의 실제 모습을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상은 가까워지지 않고 자신이 상상으로 우상으로서 존재했을 때 더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모습에 친근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제우스처럼 자신의 왕좌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면 엄청난 실망감이 몰려올테니 말이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마블 영화치고 그리 길지 않았던 러닝타임과 빵빵 터지는 유머요소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귀여운 만두신을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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