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3-09-21 08:32:29
눈과 귀를 열어야 '붉은 하늘'도 아름답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어파이어>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펠릭스'(랭스턴 위벨)와 함께 뜨겁고 건조한 여름 발트해 해변을 방문한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그러나 숲 속 별장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 '나디아'(파울라 베어)와 '데비트'(엔노 트렙스)를 조우한 이후 그들의 여름 계획은 점차 꼬이기 시작한다. 레온은 사사건건 펠릭스와 충돌하고, 새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반면에 펠릭스는 나디아, 데비트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에 더해 휴가뿐만 아니라 일도 레온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막 완성한 소설 출판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진 레온. 산불 소식이 들려오고 소방 헬기가 오가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서도 불길이 꿈뜰거린다. 나디아를 향한 욕망, 데비트를 향한 질투, 펠릭스를 향한 분노가 점점 치솟기 시작하고, 그렇게 네 청춘의 여름은 조금씩 파국을 향해간다.
<어파이어>, 페촐트다운 신작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이른바 ‘베를린 학파’(Berliner Schule)라 불리는 감독들 중 1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외국 도시나 휴양지 등을 무대 삼아 현재 독일인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는 작품을 주로 만들기로 유명하다. 페촐트는 비슷하다. <피닉스>, <운디네>와 같은 작품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다룬다. 다만 차이도 있다. 페촐트의 영화는 독일 근현대사를 배경 삼아 독일인의 혼란과 상실감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어파이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작만큼 무겁지는 않다는 인상은 분명하다. 여름휴가라는 시간적 배경, 바닷가 휴양지라는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삼각, 혹은 사각 관계의 청춘 로맨스라는 소재 역시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산불이라는 위협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마지막에 몰린 구성도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주인공 레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파이어>는 평범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다. 독일어 제목인 <Roter Himmel 붉은 하늘>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레온과 다른 인물의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소통에 대한 고찰과 경계, 그리고 일말의 희망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은 주인공
단언컨대, <어파이어>의 주인공 레온은 끔찍한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그렇다. 별장을 가는 차 안. 운전 중인 펠릭스는 차가 이상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레온은 친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차는 고장 나고, 펠릭스와 레온은 짐을 지고 별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 짧은 장면만 봐도 레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고, 폐쇄적인지 손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첫인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숲이 우거진 지름길을 이용해 별장으로 가려는 레온과 펠릭스. 펠릭스가 길을 하기 위해 잠시 떠난 뒤 레온은 숲에 홀로 남는다. 그곳에서 레온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헬기 소리를 듣지만 하늘에서 헬기를 보지 못한다. 멧돼지 소리도 듣지만 멧돼지 꼬리도 보지 못한다. 차가 이상하다는 펠릭스의 말을 듣지 못한(혹은 않은) 것처럼, 레온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의 한심한 성정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벽이나 문 뒤에 숨은 채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데 특출 나다. 예술학교 입시를 준비 중인 펠릭스의 포트폴리오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지적하며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나디아에게 첫눈에 반한 뒤에는 데비트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정확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디아와 데비트가 연인 관계라고 지레짐작한다. 호텔에서는 호텔 직원의 실수를 대놓고 조롱한다.
자기 손으로 파괴하는 청춘 로맨스
사실 주인공이 짜증 나면 좀처럼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파이어>는 예외다. 페촐트는 주인공의 비 호감도를 역이용해서 평범하지 않은 청춘물을 만들어냈다. 자기만의 좁은 세상과 아집에 갇힌 한 청년이 인생을 망치는 비극을 신랄하게 보여주며 예상에서 살짝 벗어난 쌉쌀함을 안겨준다.
우선 레온은 자기 손으로 로맨스를 파괴한다. 생체발광으로 빛나는 밤바다를 보러 가자며 나디아가 호감을 보여주는데도 소통을 거부하며 스스로 가능성을 없앤다. 자기가 집필한 소설 '클럽 샌드위치'를 나디아가 엉망이라고 평가하자, 고작 아이스크림 판매원의 비평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녀가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 중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는 자괴감 때문인지 그녀에게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즐거워야 할 휴가도 망친다. 펠릭스와의 대화는 철저히 일방향이다. 펠릭스는 계속해서 제안한다. 해변에 가자고, 같이 해수욕하자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지붕을 같이 수리하자고. 하지만 레온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부 거절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거절한다. 나디아, 펠릭스, 데비트가 잘 어울리는 가운데, 레온은 해수욕장 인명구조원인 데비트의 직업을 평가절하하며 선민의식을 드러낸다.
보고 듣지 못한 자의 비극
커리어도 엉망으로 만든다. 소설 피드백을 위해 별장을 방문한 출판사 사장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는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다. 검사 후 신장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헬무트. 이에 그는 레온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능력 좋은 편집자를 붙여줄 테니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잠재력을 떨칠 수 있는 새 작품을 집필하라고.
하지만 레온은 복을 걷어찬다. 헬무트가 자기와 자기 소설을 무시했다고 분개한다. 나디아가 일갈하기 전까지는 헬무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의 진심을 전혀 보지 못한다. 붉게 물든 하늘만 보고 산불을 알지 못하듯이,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을 제대로 보거나 듣지 못했다.
대가는 처참하다. 산불에 초토화된 숲처럼 비참한 현실이 레온을 덮친다. 안전하다고 믿은 해변까지 밀고 들어온 열기와 새하얀 잿가루를 목격한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레온이 걷어차 버린 가능성과 잠재력은 불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타 죽은 펠릭스와 데비트의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등장한다. <어파이어>가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이름값이 어색하지 않은, 쌉쌀한 청춘 영화인 이유다.
아닌 척하며 독일 사회를 꼬집다
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파이어>는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실제로 <어파이어>는 곱씹을수록 묵직한 영화다. 아무리 감독의 전작보다 가볍다고 하지만, 페촐트의 통찰력마저 없어지지는 않았다. 어두운 현실을 직접 그려내지는 않지만, 가벼운 스케치와 터치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온이 데비트 이름을 듣고는 그가 동독 출신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순간 데비트를 향한 그의 멸시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범주가 아니다. 동독 주민의 2등 국민(Deutscher zweiter Klasse) 정서가 스쳐 지나간다. 레온이 데비트의 직업을 무시하는 대목도 서독에 비해 동독 지역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소득 수준이 낮다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하필이며 펠릭스와 데비트가 산불의 피해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피부색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펠릭스는 일반적인 게르만족이 아닌 이주민이다. 펠릭스와 데비트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들만 목숨을 잃은 셈이다. 그들의 운명은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산불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레온의 말과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어파이어>를 독일 사회의 현실과 떼놓고 볼 수는 없다. 이민자, 난민, 동독 주민 등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 축구 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 전후로 메주트 외질 같은 터키 출신 선수와 관련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자치단체장을 배출하며 약진 중이다. 즉, <어파이어>는 레온과 같은 무관심, 멸시와 외면이 독일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는 영화다.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거대하면서도 중요한 담론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도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어파이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레온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레온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변화한다. 그는 나디야가 함께 보자고 했던 빛나는 밤바다를 목격한다. 소리만 들었던 헬기와 멧돼지도, 붉게 물든 하늘로만 접한 산불의 모습도 두 눈에 똑똑히 담는 데 성공한다.
결말에서 레온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그는 자기 세계에 갇힌 채로 쓴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했다. 직접 겪은 비극적인 여름휴가를 가감 없이 글로 풀어내며 새 소설을 썼다. 암 투병 중인 헬무트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는다. 늘 그랬듯이 뒤에 숨는 대신, 앞으로 나서서 나디아를 마주한다. 그렇게 레온은 성장한다.
레온의 성장은 단순히 한 개인, 청년의 성장이 아니다. 한 사회를 구성한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과 저력을 믿는 희망 찬가일지도 모른다. 이는 산불로 물든 붉은 하늘이 단순한 재난의 전조나 위협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산불이라는 위협을 알리는 붉은 하늘을 정확히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새 희망이기 때문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주인공이 짜증 나는 만큼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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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조2> 잘못된 첫 단추가 굴려 보낸 스노우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북미 수교를 앞두고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의 우두머리인 ‘장명준(진선규)'이 '잭(다니엘 헤니)'이 이끄는 FBI에 의해 뉴욕에서 검거되자, ‘림철령(현빈)'은 그를 인도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장명준은 호송 중에 탈출에 성공하고, 그가 남한에 들어간 것을 알게 되자 철령도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는다. 한편 수사 실패 이후 광수대 복귀를 노리던 '강진태(유해진)'도 또 한 번 철령과의 공조 수사에 자원한다. 한 층 더 돈독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의심하면서 공조 수사를 펼치던 철령과 진태. 그러나 눈앞에서 장명준을 놓친 잭이 남한에 오면서 세 형사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피어오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장명준의 진짜 계획이 드러나면서 공조 수사는 위기에 봉착한다.
2017년 설 연휴에 개봉해 781만 관객을 동원했던 <공조>는 예상치 못한 흥행 성공을 일구어냈다. 현빈과 유해진의 케미가 돋보이는 가운데 짧은 분량 속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윤아의 푼수 연기, 강렬한 악역의 존재감과 나름 짜임새 있는 액션의 조합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공조2: 인터내셔날>은 전편의 성공방식을 고스란히 취하되, 규모를 착실히 키우며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로 잔뜩 무장한 종합 선물세트로 돌아왔다.
성공 공식을 답습한 <공조2>의 명암
실제로 <공조2>는 전작에 비해 한층 돈독해진 림철령과 강진태의 케미에 새로운 인물인 잭을 더해 더 다채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민영과 철령의 로맨스 코미디도 잭 덕분에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뉴욕에서의 총격전처럼 한층 커진 스케일이 돋보이는 장면도 눈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결과물은 전편처럼 명절 연휴를 겨냥한 선택이 상업적으로 적중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메가폰을 잡은 이석훈 감독이 <댄싱퀸>, <히말라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을 흥행시킨 전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명절 연휴를 겨냥한 흥행이 점쳐지는 것과는 별개로 <공조2>의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동일한 성공 방정식을 활용했지만 전편에 비해 영화의 톤과 분위기는 일정치 않다. 많은 이들이 좋아할 다양한 상차림을 펼친 것과 달리 정작 메인 디쉬는 없는 듯 보이고, 깊은 맛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하락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중심에는 장명준과 림철령이 있다. <공조2>는 새로운 인물인 장명준의 서사를 펼쳐 보이면서 스타트를 끊는데, 첫 단추에서 시작된 불협화음이 거대한 스노우볼로 이어진다.
<공조>와 <공조2>의 결정적 차이
당장 오프닝 장면부터 <공조2>는 전작과 매우 유사하다. 일전에 '차기성(김주혁)'의 범죄를 막으려다가 실패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던 림철령은 이제 장명준의 범죄와 탈출을 막는 데 실패하고 아끼는 동료를 잃는다. 이후 차기성처럼 남한으로 향한 장명준을 쫓아 철령은 다시 한번 휴전선을 넘어 내려오고, 진태를 만나 공조 수사를 펼친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조2>는 전편이 개척한 길을 착실히 뒤따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바로 극의 주도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공조>는 한 마디로 말해 림철령의 복수극이다. 자신이 신뢰했던 상관의 손에 아내를 잃은 철령의 복수심이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령의 시점에 몰입한 관객들은 자연히 차기성을 응징하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되고, 그 덕분에 감정의 밀도가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공조2>는 장명준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외화를 벌기 위해 당의 명령을 따라 군인의 명예도 버리고 마약 밀거래를 시작한 장명준.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어온 외화가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자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범죄자의 길을 택한다. 이후 북한 정권에 의해 가족이 처형당한 사실을 알고서는 북한 측 10억 달러의 비자금을 훔쳐 복수를 실행할 미끼로 삼는다.
따라서 작중 모든 사건과 에피소드는 장명준에 의해 발생하며, 공조를 펼치는 세 형사는 그 사건들에 휘말리는 수동적인 캐릭터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명준이 숨기는 진짜 목표와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 그의 큰 그림과 동기가 무엇인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그 결과 뉴욕이나 폐공장, 클럽 VIP룸과 북한 대사 숙소처럼 장명준과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대면하거나 충돌하는 시퀀스를 제외하면 이들 간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명준과 세 형사의 서사는 하나의 이야기로 긴밀하게 엮이는 대신 다 따로 노는 듯 보인다.
달라진 주도자가 밀어버린 스노우볼
물론 장명준을 스토리텔링의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은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 각 캐릭터에게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고,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티키타카는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를 오가는 <공조2>의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장명준을 매개로 잭이 공조수사에 투입되어 림철령과의 라이벌리를 조성한 결과 강진태의 큰 형 리더십이 돋보이는 것 대표적이다. 또 빌런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혹은 복수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기에 림철령은 한결 여유롭고 느긋해질 수 있으며, 그래서 철령과 진태의 관계에서는 익숙한 듯 새로운 면모가 엿보인다. 이에 더해 조연이었던 민영의 역할이 늘어나 로맨틱 코미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변화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달리 말해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에피소드 간의 집약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실 장명준은 철령에게 잔혹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비록 뉴욕에서 철령이 동료를 잃기는 하지만, 눈앞에서 아내가 살해된 것에 비하면 정서적인 유대감이 느껴지지 않는 동료가 죽는 것은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기제라고 보기 어렵다. 즉, <공조2>는 전편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동기를 대체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했다. 이때 영화는 굳이 장명준과 주인공들의 관계성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장명준이라는 빌런의 캐릭터성을 강화하여 옅은 관련성을 가리려는 듯 보인다. 악역의 잔혹함이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각인시켜 주인공들과의 대립에 개연성을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 밀수를 통해 북한 정권의 비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복수하려는 장명준의 서사는 전작의 악역이었던 차기성에 비해 꽤나 상세하게 제시된다. 전편의 철령만큼이나 장명준은 절박하고 다급해 보이는 캐릭터로 비친다.
그런데 정작 카메라의 포커스는 진태, 철령, 잭에게 쏠려 있고 장명준은 국면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영화는 언밸런스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민영이 호감을 느끼자 잭을 질투하는 철령이나 국정원 요원들과 갈등을 빚는 진태처럼 부차적인 장면들이 거듭 더해지다 보니 장명준의 존재감과 복잡한 서사를 소화해낼 충분한 비중과 분량은 미처 주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서브플롯 중 무엇을 희석시키고 무엇을 농축시켜야 할 지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림철령과 잭이 아니라 현빈과 다니엘 헤니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심심할 때마다 등장하는 슬로 모션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편을 좋아했을 관객들에게 추파를 보내기에 바빠 극의 전반적인 밸런스를 좀처럼 잡지 못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산만함
결국 전편이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액션과 코미디를 활용했다면, 이번 편은 액션과 코미디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짠 것처럼 보인다. 액션이 등장할 때, 민영과 함께 코미디가 나올 때, 강진태의 가족 드라마가 펼쳐지고 장명준의 범죄 행각이 묘사될 때마다 영화의 톤과 템포가 전혀 다른 작품을 이어 붙인 듯 널 뛰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래서 악역인 장명준은 망설임 없는 잔혹한 악행과 독특한 비주얼, 림철령에 견줄 만큼 날렵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극에 녹아들지 못한다. 전편의 경우 전체적인 서사의 흐름이나 구조가 월터 힐 감독의 1988년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 <레드 히트>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속편은 그보다도 못한 부실한 서사를 선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조2>는 산만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더해 영화가 중심을 못 잡는 사이 커진 스케일 사이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장면도 발견된다. 새로운 캐릭터인 FBI 형사 잭을 투입하기 위한 배경 설정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이전에 기획된 작품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남북 공조에 미국을 개입시키기 위한 지렛대로 북미 관계의 개선이라는 소재를 끌고 온다. 북한과 미국이 안정적으로 정식 수교 관계를 맺기 위해 잭이 뉴욕에서 검거한 북한 측 범죄자 장명준을 림철령에게 인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했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것이나 평창올림픽 당시 김영철의 방남을 연상케 하는 내용도 <공조2> 배경의 시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북미 관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2022년 현재 시점에서, 추석을 앞두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이러한 배경 설정은 무리수로 느껴질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이를 그저 영화 전개를 위한 가상의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인터내셔널' 대신 촌티가 느껴지는 '인터내셔날'이 부제목인 데에는 첨예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스크린 속으로 끌고 오지 않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 또 명절에 걸맞게 웃기는 액션 영화로 남겠다는 <공조2: 인터내셔날>의 정체성과도 맞닿아있다. 비록 코미디가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고 휴지 대신 파리채를 쓰는 액션씬이 인상적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웃음을 강요하지 않으며 나쁜 놈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이기는 액션은 <공조2>가 목적을 이루는 데에 충분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공조2>의 완성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오징어 게임>, <수리남>처럼 명절을 겨냥한 장르물이 OTT로 공개되는 가운데 명절 영화라는 이유로 못 만든 영화라는 비판을 피해 가는 기획과 제작에 어떤 의의가 있을지 의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땅한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빈집 털이에 가까운 <공조2>의 성공 역시 과연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을지, 그 의문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D(Dreadful, 끔찍한)
흥행만을 노리는 선물 세트에 담긴 한국 상업 영화의 절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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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기록 TOP 10
얼마 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2009)가 중국에서 재개봉해 단번에 2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추가하며 루소 형제의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 한동안 내줬던 전 세계 역대 흥행 수익 1위 기록을 되찾았다. <아바타>는 20세기 폭스 배급작이었으나 현재는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자회사가 되었으므로, 이번 중국 재개봉이 굳이 흥행 1위 자리를 되찾기 위한 제스처일 것 같지는 않다. 소식이 들려오자 마블 스튜디오도 공식 트위터를 통해 축하하는 등 작은 이벤트 정도로 지나가는 분위기. 그래서 겸사겸사 글로벌 흥행 (수익 기준) 1위부터 10위까지 기록을 다시 살펴봤다.
*수익은 전 세계 합산(BoxOfficeMojo) 기준, 개봉일, 관람 등급은 북미 기준
*PG는 통상 우리나라의 전체 관람가, PG-13는 통상 15세 이상 관람가와 비슷
*국내 관객 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통계 기준
1위: <아바타>
*수익: 28억 3,367만 달러
*개봉일: 2009년 12월 18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1,362만 4,328명
2009년 개봉한 <아바타>는 북미에서 7억 6,050만 달러, 해외에서 20억 7,317만 달러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누적 수익이 28억 3,367만 달러가 넘는다. 한때 <아바타>의 기록을 넘었던 유일한 작품이 후술할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뿐이며 <타이타닉>과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제외하면 20억 달러를 넘은 작품이 없으므로 꿈의 수치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이것을 넘어설 작품은 카메론 감독 본인의 <아바타 2>가 아니면 당분간 없을 듯하다. <아바타>의 북미 바깥 시장 매출 비중은 73.2%로, 10위권 작품 중에서는 <분노의 질주 7>이 기록한 76.7%의 다음이다.
2위: <어벤져스: 엔드게임>
*수익: 27억 9,750만 달러
*개봉일: 2019년 4월 24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1,397만 7,602명
<아바타> 이후 10년 만에 나온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북미 흥행 8억 5,837만 달러, 해외 흥행 19억 3,912만 달러의 성적으로 누적 수익 27억 9,750만 달러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누적 관객 1,397만 명을 기록하며 매출액 기준 북미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중국과 영국 바로 다음의 흥행 순위를 나타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뷰 '앞으로의 '마블'은 '엔드게임'을 넘어설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cosmos-j/589)
3위: <타이타닉>
*수익: 22억 0,164만 달러
*개봉일: 1997년 12월 19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197만 1,780명
1997년작이 역대 흥행 3위에 지금도 올라 있다는 사실이 일단 가장 경이롭게 느껴지는 부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I'm king of the world!"라는 수상 소감으로도 유명한,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주요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 개봉 당시는 지금처럼 통합전산망이 없었으나 서울 관객 수 기준으로 197만 명 정도를 동원했다고 여러 기사 및 통계에서 언급되고 있다.
4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수익: 20억 6,845만 달러
*개봉일: 2015년 12월 16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327만 3,879명
2015년 연말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일곱 번재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20억 6,845만 달러로 역대 4위. 국내에서도 3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 시리즈가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
5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수익: 20억 4,835만 달러
*개봉일: 2018년 4월 25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1,123만 3,176명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를 연이어 성공시킨 루소 형제 감독의 후속작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20억 4,835만 달러의 수익으로 역대 5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국내에서도 1,123만 명이 넘는 관객 동원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6위: <쥬라기 월드>
*수익: 16억 7,051만 달러
*개봉일: 2015년 06월 10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554만 7,463명
2015년 여름 시즌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가 16억 7천만 달러의 수익으로 역대 6위. 국내에서도 55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본작을 연출한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은 속편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연출은 참여하지 않았으나, 2022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연출로 복귀할 예정.
7위: <라이온 킹>
*수익: 16억 5,787만 달러
*개봉일: 2019년 07월 11일
*관람 등급: PG
*국내 관객 수: 474만 3,295명
<정글북>(2016)을 성공시킨 존 파브로 감독의 <라이온 킹>이 16억 5,787만 달러로 7위.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영화에 대한 반응은 여러모로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국내에서는 474만 관객을 동원했다.
*<덤보>를 앞두고 다시 보는 디즈니 실사영화 흥행 정리(2019.03.13.): (https://brunch.co.kr/@cosmos-j/491)
8위: <어벤져스>
*수익: 15억 1,885만 달러
*개봉일: 2012년 04월 25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708만 7,068명
8위는 15억 1,885만 달러의 글로벌 수익을 거둔 2012년작 <어벤져스>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이 본격적으로 흥행 보증 작품처럼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작품. 2019년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MCU의 한 페이즈가 마무리 된 지금으로서는, 이런 큰 이벤트를 만나기 위해서는 다시 몇 년이 더 걸릴 듯하다.
9위: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수익: 15억 1,525만 달러
*개봉일: 2015년 04월 01일
*관람 등급: PG-13
*국내 관객 수: 324만 8,904명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일곱 번째 영화인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 글로벌 역대 흥행 9위. 당시 배우 폴 워커를 향한 추모 분위기가 있었고 영화에 대한 좋은 반응도 더해지며 결국 시리즈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지금도 기록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324만 관객을 동원했다.
10위: <겨울왕국 2>
*수익: 14억 5,002만 달러
*개봉일: 2019년 11월 20일
*관람 등급: PG
*국내 관객 수: 1,374만 7,792명
<겨울왕국> 이후 5년 만에 속편으로 나온 <겨울왕국 2>는 전편보다 약 2억 달러 가량의 수익을 글로벌 기록으로 추가했다. 14억 5천만 달러. 국내에서도 전편을 뛰어넘는 흥행에 성공했다.
*<겨울왕국 2> 리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능력': (https://brunch.co.kr/@cosmos-j/924)
*11위~20위 영화도 아래와 같이 간략히 기록한다.
11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14억 280만 달러
12위: <블랙 팬서>(2018), 13억 4,759만 달러
13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2011), 13억 4,222만 달러
14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 13억 3,269만 달러
15위: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2018), 13억 1,046만 달러
16위: <겨울왕국>(2013), 12억 8,101만 달러
17위: <미녀와 야수>(2017), 12억 6,406만 달러
18위: <인크레더블 2>(2018), 12억 4,308만 달러
19위: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2017), 12억 3,600만 달러
20위: <아이언맨 3>(2013), 12억 1,481만 달러
언뜻 봐도 눈에 들어오는 사실은 상위권 대다수 작품이 디즈니(폭스 포함) 배급작이라는 점, 그리고 워너의 경우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 이후, <아쿠아맨>(2018, 11억 4,848만 달러) 정도를 제외하면 글로벌 흥행 상위권 영화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 정도다. 1위부터 20위까지를 함께 보면 디즈니 작품이 아닌 영화는 <타이타닉>(파라마운트), <쥬라기 월드>와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유니버설), <분노의 질주> 7편과 8편(유니버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워너브러더스)까지 여섯 편이 전부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물론 루카스필름, 마블 스튜디오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 디즈니의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
이제 단순 극장 수익과 관객 수가 아니라 OTT 등 극장 외 플랫폼에서의 인기도 고려해야 하게 되었고 흥행 수치가 전부는 아니지만, 극장에도 봄이 오길 기다리며 정리해본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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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극장의 영웅으로 내세울 순 없다!
마침내라는 표현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영화 <영웅>도 "코로나19"로 개봉을 기다린 작품이다. - 재밌는 건. 개봉 경쟁작이 얼마 전에 개봉했던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동명의 뮤지컬을 그대로, 영화로 가져왔기에 기대치도 있겠지만 문제는 "윤제균"이라는 이름이다.
<해운대, 2009>와 <국제시장, 2014>으로 천만 관객들을 넘겼지만, 반응이 "진정한 천만 영화"로 반응이 썩 좋지 않다. - N회차가 없다는 이유로...조선 말기.
일제를 비롯한 외세의 침략을 겪는 대한 제국은 "외교권"을 비롯해 주권들이 차례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독립운동을 펼치는 이들이 존재했고 "안중근" 역시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하는데...1. 음악 방송도 가사는 보여준다.
동명의 뮤지컬을 옮긴 <영웅>이기에 기대치도 있겠지만 우려 또한 존재한다.
혹자는 이를 '가사가 한국어'라는 이유를 언급하겠지만, <라라랜드, 2016>를 보는 "미국인"과 <레미제라블, 2012>을 듣는 "프랑스인"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결국, 해당 장르의 문제는 "한국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건데 영화 <영웅>도 "뮤지컬"보단 다른 문제들이 눈에 보인다.결국, "뮤지컬"을 떠나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주체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것이 "넘버"이다.
<겨울왕국, 2013>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듀엣)'만 살펴보면, 닫혀있던 왕국의 문을 열려는 "안나"의 설렘과 "엘사"의 비밀이 대비적으로 그려져있다. - 그리고, "Let It Go"로 "엘사"의 매력이!!!
그런 점에서 이번 <영웅>에서 인상적인 넘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이런 이유에는 필자가 해당 원작 뮤지컬을 챙겨보지 않았다는 점도 있겠지만, 음악의 가사가 보이지 않다는 것이 크다.
이전에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도 가사가 보이지 않았지만, 크게 돋보이지 않는 이유에는 기존 곡들을 활용한 "팝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은 오리지널 뮤지컬로 부르는 노래들 역시 새로이 만들어졌기에 앞서 <겨울왕국, 2013>을 생각하면 이런 세심함이 있어야만 했다!2. 새로운 캐릭터들이 나왔음에도...
앞서 말했듯이 <영웅>은 "도마 안중근"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영화나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그 마무리는 알 거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 살이 붙여나가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려는 것이 가장 초점을 둘 것이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해야 한다.
이는 "설희(김고은 분)"와 "진주(박진주 분)"에게 향하지만, 앞서 말한 가사 문제를 비롯해 이야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영화에서 이들을 살펴보면, "궁녀"에서 "을미사변"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정보국 요원으로 활동하는 "설희"와 "진주"는 "동하"와 로맨스 라인을 형성한다.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큰 상관은 안 하나 이들의 이야기 톤이 널뛰며 달라지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설희"는 극에서 "안중근"과 이야기를 양분할 만큼 큰 분량을 할애하는 데에도 매력 없이 소비된다. - 그리고, "진주"는 모두가 걱정한 눈물로 희생된다.결국, 이런 부족한 설명력은 극 중. 그에게 감동한 일본 교도관이 대신해 사과하는 실제 역사를 허구로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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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노키오, 너는 이미 '진짜 아이'인 걸
공통점
홀로 사는 목공,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인형 '피노키오'를 만든다. 제페토는 잠들기 전, 푸른 요정에게 "피노키오를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달라"라고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을 들은 푸른 요정은 마음씨 착한 제페토의 소원을 들어주어 피노키오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푸른 요정은 나무로 만든 소년인 피노키오에게 "남을 먼저 생각하고 착하고 용감한 소년이 되어야만 진짜 아이가 될 수 있다"라고 조건을 건다. 그리고 피노키오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귀뚜라미 '지미니 크리켓'이 양심이 되어 도우라고 지시한다.
제페토는 살아 움직이는 피노키오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낸다. 하지만 학교에 가던 중, 피노키오는 사기꾼 여우인 어니스트 존과 그의 부하 고양이 기디온을 만난다. 그들의 꾀임에 넘어간 피노키오는 인형극의 단장인 '스트롬불리'에게 팔려가 공연을 하게 된다. 욕심쟁이 스트롬불리는 피노키오 덕에 돈을 많이 벌자, 피노키오를 새장에 가둔다. 그 사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피노키오를 찾기 위해 제페토는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피노키오는 새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집에 돌아가던 중에 이번에는 '오락의 섬'에 끌려가게 된다. 그곳은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당나귀로 만들어 파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피노키오는 당나귀 귀에 꼬리까지 생겼지만 가까스로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상태였다. 아빠를 구하러 간 피노키오는 먼스트로라는 고래 뱃속에 제페토와 함께 갇히고 만다. 제페토와 피노키오는 고래 뱃속에 불을 피워 재채기를 하게 만들어 먼스트로가 입을 벌렸을 때 탈출한다.
아빠를 무사히 바닷가로 데려온 피노키오는 용감하고 착하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진짜 아이'가 된다.
차이점
1. 요정을 대하는 지미니 크리켓의 태도
알다시피 실사판 [피노키오]에서는 푸른 요정이 민머리의 흑인으로 나온다. 이와 다르게 애니메이션에서는 푸른 요정이 백인에 금발의 머리를 하고 있다.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애니메이션과 실사판을 비교하며 볼 때 지미니 크리켓의 태도가 너무 달랐다.
백인 요정이 나왔을 때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스스로 나서서 피노키오의 양심이 되겠노라고 자처한다. 요정이 시키기도 전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는 등 예의를 차리면 차렸지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흑인 요정이 "이 아이의 양심이 되어 주겠니?" 하고 요청하자 칼같이 거절한다. 그러다가 요정이 갈 데 없이 떠돈다고 팩트 폭력을 날려 버리자 마지못해 알겠다고 한다.
이런 작은 디테일이 논란을 더욱 키운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실사판을 거치며 많은 것이 각색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백인과 흑인을 대하는 곤충의 태도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온전히 똑같이 재현할 것까진 없겠지만, 적어도 우호적인 태도는 유지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푸른 요정, 어니스트 존과 기디온의 반복등장
어니스트 존과 기디온은 영화 [피노키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악당이다. 이 인조 사기단인 여우와 고양이는 학교에 가고 있는 피노키오를 꾀어내 극단으로 향하게 만든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사기단이 피노키오를 스트롬불리와 오락의 섬으로 이끄는 역할을 모두 수행하지만, 실사판에서는 처음에 딱 한 번 등장하고 만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움직임을 제법 재미있게 잘 살렸는데,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각색한 듯하다.
푸른 요정의 등장 횟수도 다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처음 피노키오가 말을 하게 되었을 때, 피노키오가 새장에 갇혔을 때, 총 두 번 등장한다. 하지만 실사판에서는 처음 한 번 등장하고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피노키오와 제페토가 집으로 돌아갈 때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긴 하지만) 이런 각색 덕분에 피노키오의 '모험'을 잘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 피노키오가 겪는 시련
영화에서 피노키오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애니메이션에서는 피노키오에게 온전히 지우곤 한다. 때때로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린아이에게 가혹하다. 하지만 실사판에서는 피노키오가 선택한 일들을 아이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단 나쁜 어른들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 때문에 순수한 아이가 유혹의 길로 빠진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애니메이션에서 피노키오는 자신의 선택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느낌이다. 새장에 갇혀 푸른 요정을 만나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피노키오는 갱생 불가한 나쁜 소년처럼 보인다. 오락의 섬도 마찬가지다. 어니스트 존에 발 놀림에 꾀이긴 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 피노키오는 그 섬에서 노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실사판에서 피노키오는 꿋꿋이 학교에 갔다가 쫓겨나고 만다. 나무 인형은 학교에 올 수 없다는 교장의 발길질과 아이들의 비웃음. 비정한 사회의 편견이 피노키오를 결국 스트롬불리의 극단으로 내몰고 만다. 또한 실사판 피노키오는 오락의 섬에서의 행동들에 거부감을 느낀다. 맥주를 마시지도, 물건을 부수지도 않는다.
그 때문인지 지미니 크리켓의 태도도 많이 변한다. '어디 한 번 나 없이 잘 해봐라!'하는 태도에서 '우리 피노키오를 내가 지켜야 해!'하는 모멘트로 말이다.
4. 파비니아의 등장
파비니아는 실사판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로 스트롬불리가 노예처럼 부리는 인형 조종사다. 파비니아는 등장인물 중에 유일하게 피노키오를 도우려는 선한 인물이다. 또한 인형 조종사들과 함께 스트롬불리를 감옥에 보내고 평등한 인형 가족 극장을 만드는 정의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물의 등장은 피노키오를 학교에서 쫓아내거나, 새장에 가두거나, 당나귀로 만들어 내다 파는 나쁜 어른들 속에서도 착한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물론 영화 자체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에 희망과 어른에 대한 믿음을 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영화를 보는 어른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상평
실사판 [피노키오]는 애니메이션과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은 같지만, 중간중간 각색된 디테일들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무엇보다 피노키오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성장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피노키오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요정에 대한 논란이 약간 아쉽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좋았다.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피노키오의 무릎 뒤의 이음새가 변하는 것을 눈치채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고 피노키오가 '진짜 소년'으로 변했다고 생각해 조금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 이음새가 사라질 때 푸른 요정의 증표인 파란 불빛이 반짝이지 않는다.
"넌 언제까지나 나의 진짜 아들이란다. 뭐 하나도 바꿀 게 없단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그리고 널 많이 사랑한단다."
제페토는 자신을 구해준 피노키오에게 말한다. 이미 피노키오는 자신에게 진짜 아들이라고. 그리고 이 말은 피노키오가 '진짜 아이'로 변한 것이 말 그대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노키오는 여전히 나무인형에 불과하지만, 제페토에게만큼은 진짜 아이 못지않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제페토와 함께 걸어가는 피노키오의 뒷모습은 진짜 아이처럼 보이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해주는 지미니 크리켓처럼,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 귓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언제나 알려줄 수는 없더라도 행동을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피노키오가 나무로 만든 아이라서, 진짜 아이가 아닌 가짜 아이인 걸까? 그건 아니다. 누구든 피노키오를 진심으로 대해준다면 피노키오는 그 사람에게 '진짜 아이'가 될 수 있다.
어떤 아이든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아이를 정직하고 용감하며 남을 위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의 몫이 아니다.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는지는 어른들의, 우리 모두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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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우리의 과거처럼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비슷한 비극을 가지고 있어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여겨야 할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죽음을 목격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전까지는 보사노바를 마음껏 즐기면 되겠지! 하는 기대와는 다르게 너무나 익숙한 비극을 마주하니 고통스러웠다. 마치 5월의 광주에서처럼, 제목에서 가리키는 ‘그들’이 피아노 연주자를 쏘아 죽인 데에는 아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피아노 연주자의 공연이 아니라 다름 아닌 독재의 산물인 비극이다.
작가인 주인공은 우연히 한 보사노바 앨범을 발견하게 되고, 연주자를 찾아 나선다. 그는곧 피아노 연주자가 1960년대, 보사노바 장르의 인기 속에서 활동하던 테노리오 주니오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공연을 마친 어느 날 밤 실종되었고 지금까지 행적을 알 수 없다는 것까지. 관객에게 익숙할 만한 아티스트들, 엘라 피츠제럴드, 조빔, 빌 에반스 등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영화는 보사노바 장르를 설명하고, 홀연히 사라진 테노리오의 이야기로 옮겨 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그의 이야기가 예술과 유행, 특이한 행보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까지 알려 준다.
실종 당일 그의 행적과 그를 찾으려 노력한 가족, 친구들의 증언을 듣고 또 들으면서 영화는 그의 실종이 당시 남미를 집어삼킨 독재 정치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증언하는 모두가 입을 모아 테노리오가 실종 이전에는 정치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고, 집과 피아노와 추구하는 장르가 있었고, 연인과 친구와 동료 예술가가 있었지만 독재자들이 경계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와는 무관한 피아노 연주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관객은 독재 정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단지 밤에 길거리를 걸어 다녀서, 예술가인 친구가 있어서 그들은 멋대로 사람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죽였다. 그리고 끝내 책임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지만 숫자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함께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테노리오가 실종되면서 그에게는 어쩌면 앞으로 있었을지도 모를 수많은 공연과 찬사, 예술가로서의 세계가 통째로 사라졌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삶, 그 안의 문제들을 해결할 기회도 전부 빼앗겼다. 영화는 그의 행적을 알아내려는 주인공의 여정과 여러 명의 증언, 애니메이션으로 재연한 화면을 통해서 관객이 그 사실에 천천히 당도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마치 한국의 과거를 처음 배웠을 때의 심정처럼 관객에게 다가선다. 그것을 직면하고 나서야 마침내 보사노바를 즐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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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성공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레오 카락스의 독창적 뮤지컬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2년 만에 열린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등장해 심사위원들은 물론, 해외 각종 언론과 평론가들에게서 “2021년 가장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감독상을 수상한 뮤지컬 영화 〈아네트〉 리뷰입니다. 그 시작점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것에는 그만의 특별함이 있었는데, 이미 다수의 마니아 층을 확보한 프랑스 감독 레오 카락스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첫 음악 장르에 그것도 대사 없이 전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오로지 영어만 사용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장르적 규칙과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자신의 틀 조차 바꾼 파격적 형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시사회라는 좋은 기회를 맞아 먼저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아네트〉, 시놉시스 및 기본 정보
관객의 환호 속 사랑과 기쁨, 그 어두운 이면
신의 유인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인기 절정의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인 안과 LA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며 귀여운 딸 Annette를 낳게 됩니다. 이후 점점 성공 가도를 달리는 안과 달리 육아에 전념하면서 커리어의 내리막길에 들어선 헨리, 그의 좌절은 두 사람 사이를 삐걱대게 만들죠. 그리고 관계 회복을 위해 떠난 보트 여행에서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생기는데...
영제 : ANNETTE│감독 : 레오 카락스│각본 : 론 마엘, 러셀 마엘│출연진 :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몬 헬버그 외 多│장르 : 뮤지컬,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 141분│개봉일 : 2021년 10월 27일│국가 : 프랑스, 벨기에, 독일, 미국, 일본, 멕시코, 스위스│등급 : 15세 관람가│평점 : 기자·평론가 7.17, 왓챠피디아 예상 4.1, 로톤 토마토 신선도 71% 팝콘 76%, IMDB 6.4, 메타 스코어 67점
We love each other so much
뮤지컬이란 장르에 맞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두 주연 배우인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노래입니다. 특히, '모든 것은 현장에서!'라는 원칙을 내세운 감독의 고집에 따라 오페라 아리아 장면에서의 전문 가수 목소리를 얹거나 사전 녹음을 한 노래를 제외하곤 모두 라이브로 소화하며 연기를 펼쳐냅니다. 두 인물 모두 공연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에서 미디어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모양새는 또 다른 그들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죠. 유명인이 만나, 파국을 맞고 결국 비극으로 치닫는 그들의 불행은 그저 볼거리로 변질되며 밑바닥으로 향하는 한 남자의 불행의 이유, 매일 밤 죽음으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한 여자의 행복,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말을 하지 않는 아이의 내막은 뒤로 한 채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비춥니다. 그 얄팍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 그저 돈의 가치에 움직이는 오락적인 소재로 치부되는 두 인물의 불안은 어쩌면 예견되었던 것이고 그것을 노래와 연기로 보여준 두 배우의 깊이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더불어 두 주연보다 더욱 파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두 인물의 딸을 일반 배우가 아닌 목각 인형 마리오네트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목각 인형의 등장은 이야기를 더욱 몽환적인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적인 쓸쓸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작품 특유의 기괴함을 배가 시킵니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 나오는 마리오네트는 엄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은 딸이 아빠의 강압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줄에 묶인 채 입을 벙긋거리며 아빠와 딸의 관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주죠. 초반 놀라움과 이질감을 주었던 요소에서 어느새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로 전환돼 동정과 연민을 자극시킴으로서 마지막 엔딩에 힘을 실어줍니다.
So, may we start?
관객들이 마주하는 첫 장면부터 사뭇 다르게 '노래하고 웃고 박수치고 우는 일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쇼가 벌어지는 동안 숨도 쉬지 말라'는 내레이션이 흐르며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연주가 흘러나오고, 주요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해 '그럼, 시작할까요?'(So, may we start?)라는 노래를 부르며 시작합니다. 모든 이들이 모여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롱테이크로 마무리되고 두 주연이 자신의 역할로 떠나는 오프닝 시퀀스는 감독이 꿈꾸는 가상 세계에 대한 설정을 스팍스의 리듬과 멜로디에 맞춰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을 받게 해 극의 시작을 매혹적으로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이라는 특이점들이 현재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극장가에서 그 기초가 되는 음향과 시각이 전달해 주는 메시지에 더욱 집중해달라는 그의 부탁과도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이전에 보여준 작품에서의 나쁜 남자의 모습,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배우들의 연극적 제스처, 무대 위의 화려함과 그 어두운 이면의 음울함을 오가는 색채, 전체적으로 흐르는 환희와 비극이 어우러지는 오페라 같은 느낌은 분명 호불호를 일으키기에 분명하지만, 그 기괴함이 묘한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사랑의 시작부터 기쁨, 결실, 그리고 적대감으로 변화해가는 그 일련의 과정에 관객들은 141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스팍스의 몽환적 노래와 함께 그만의 기이하고 독특한 뮤지컬 판타지로 빠져들게 됩니다. 언뜻 사랑스럽고 따뜻한 스토리를 생각했겠지만, 전개는 성공의 격차로 점차 폭력적이고 우울한 모습으로 치닫게 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폭력적 충동으로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까지 파멸로 이끄는 비극, 그 상황 속 헨리의 어두운 심연을 이미지화하며 연극적인 요소를 녹여 아리아같은 느낌을 만들어주죠.
스크린을 통해 사랑이 주는 기쁨부터 그 관계가 산산이 부서지는 비극까지 잔잔한 파도가 풍랑으로 변해 몰아치는 광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꼭두각시였던 마리오네트가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인격화됨으로써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나쁜 아빠는 만감이 교차하며 한 남자로서 자신의 속죄를 하게 됩니다. 결국 감독이 인터뷰에도 밝혔듯 함께 출연한 딸에게 해주고 싶었던 사랑과 가족, 죄와 벌 등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알 수 있죠. 그렇기에 기존에 생각한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스타일의 뮤지컬과는 다르고 상업적으로만 접근을 한다면 실망하실 분도 있으실 겁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 무성영화와 같은 고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한 측면에서 강렬한 배우의 연기나 감독에서 대한 애정으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ps. We love each other so much 이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겁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한 줄 평 : 사랑과 예술이 빚어낸 성공의 이면, 파국에 이르는 의식의 흐름 속 레오 카락스의 기이한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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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가려진 서사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그린 나이트” 후기입니다. 난해하지만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아래 네이버지식백과에 나온 원작시에 대한 해설을 참고하고 영화를 감상하신다면 판타지와 원작을 비교하면서 충분히 영화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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