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3-09-21 08:32:29
눈과 귀를 열어야 '붉은 하늘'도 아름답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어파이어>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펠릭스'(랭스턴 위벨)와 함께 뜨겁고 건조한 여름 발트해 해변을 방문한 '레온'(토마스 슈베르트). 그러나 숲 속 별장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 '나디아'(파울라 베어)와 '데비트'(엔노 트렙스)를 조우한 이후 그들의 여름 계획은 점차 꼬이기 시작한다. 레온은 사사건건 펠릭스와 충돌하고, 새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반면에 펠릭스는 나디아, 데비트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이에 더해 휴가뿐만 아니라 일도 레온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막 완성한 소설 출판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진 레온. 산불 소식이 들려오고 소방 헬기가 오가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서도 불길이 꿈뜰거린다. 나디아를 향한 욕망, 데비트를 향한 질투, 펠릭스를 향한 분노가 점점 치솟기 시작하고, 그렇게 네 청춘의 여름은 조금씩 파국을 향해간다.
<어파이어>, 페촐트다운 신작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이른바 ‘베를린 학파’(Berliner Schule)라 불리는 감독들 중 1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외국 도시나 휴양지 등을 무대 삼아 현재 독일인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는 작품을 주로 만들기로 유명하다. 페촐트는 비슷하다. <피닉스>, <운디네>와 같은 작품은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다룬다. 다만 차이도 있다. 페촐트의 영화는 독일 근현대사를 배경 삼아 독일인의 혼란과 상실감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어파이어>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작만큼 무겁지는 않다는 인상은 분명하다. 여름휴가라는 시간적 배경, 바닷가 휴양지라는 공간적 배경이 큰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삼각, 혹은 사각 관계의 청춘 로맨스라는 소재 역시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산불이라는 위협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마지막에 몰린 구성도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주인공 레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파이어>는 평범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다. 독일어 제목인 <Roter Himmel 붉은 하늘>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레온과 다른 인물의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소통에 대한 고찰과 경계, 그리고 일말의 희망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 대 치고 싶은 주인공
단언컨대, <어파이어>의 주인공 레온은 끔찍한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그렇다. 별장을 가는 차 안. 운전 중인 펠릭스는 차가 이상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레온은 친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차는 고장 나고, 펠릭스와 레온은 짐을 지고 별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 짧은 장면만 봐도 레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고, 폐쇄적인지 손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첫인상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준다. 숲이 우거진 지름길을 이용해 별장으로 가려는 레온과 펠릭스. 펠릭스가 길을 하기 위해 잠시 떠난 뒤 레온은 숲에 홀로 남는다. 그곳에서 레온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헬기 소리를 듣지만 하늘에서 헬기를 보지 못한다. 멧돼지 소리도 듣지만 멧돼지 꼬리도 보지 못한다. 차가 이상하다는 펠릭스의 말을 듣지 못한(혹은 않은) 것처럼, 레온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의 한심한 성정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벽이나 문 뒤에 숨은 채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데 특출 나다. 예술학교 입시를 준비 중인 펠릭스의 포트폴리오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지적하며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나디아에게 첫눈에 반한 뒤에는 데비트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정확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디아와 데비트가 연인 관계라고 지레짐작한다. 호텔에서는 호텔 직원의 실수를 대놓고 조롱한다.
자기 손으로 파괴하는 청춘 로맨스
사실 주인공이 짜증 나면 좀처럼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파이어>는 예외다. 페촐트는 주인공의 비 호감도를 역이용해서 평범하지 않은 청춘물을 만들어냈다. 자기만의 좁은 세상과 아집에 갇힌 한 청년이 인생을 망치는 비극을 신랄하게 보여주며 예상에서 살짝 벗어난 쌉쌀함을 안겨준다.
우선 레온은 자기 손으로 로맨스를 파괴한다. 생체발광으로 빛나는 밤바다를 보러 가자며 나디아가 호감을 보여주는데도 소통을 거부하며 스스로 가능성을 없앤다. 자기가 집필한 소설 '클럽 샌드위치'를 나디아가 엉망이라고 평가하자, 고작 아이스크림 판매원의 비평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녀가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 중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는 자괴감 때문인지 그녀에게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즐거워야 할 휴가도 망친다. 펠릭스와의 대화는 철저히 일방향이다. 펠릭스는 계속해서 제안한다. 해변에 가자고, 같이 해수욕하자고, 저녁 식사를 하자고, 지붕을 같이 수리하자고. 하지만 레온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부 거절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거절한다. 나디아, 펠릭스, 데비트가 잘 어울리는 가운데, 레온은 해수욕장 인명구조원인 데비트의 직업을 평가절하하며 선민의식을 드러낸다.
보고 듣지 못한 자의 비극
커리어도 엉망으로 만든다. 소설 피드백을 위해 별장을 방문한 출판사 사장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는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다. 검사 후 신장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헬무트. 이에 그는 레온에게 진심으로 충고한다. 능력 좋은 편집자를 붙여줄 테니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하고 잠재력을 떨칠 수 있는 새 작품을 집필하라고.
하지만 레온은 복을 걷어찬다. 헬무트가 자기와 자기 소설을 무시했다고 분개한다. 나디아가 일갈하기 전까지는 헬무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의 진심을 전혀 보지 못한다. 붉게 물든 하늘만 보고 산불을 알지 못하듯이,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을 제대로 보거나 듣지 못했다.
대가는 처참하다. 산불에 초토화된 숲처럼 비참한 현실이 레온을 덮친다. 안전하다고 믿은 해변까지 밀고 들어온 열기와 새하얀 잿가루를 목격한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레온이 걷어차 버린 가능성과 잠재력은 불 속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타 죽은 펠릭스와 데비트의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등장한다. <어파이어>가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이름값이 어색하지 않은, 쌉쌀한 청춘 영화인 이유다.
아닌 척하며 독일 사회를 꼬집다
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파이어>는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실제로 <어파이어>는 곱씹을수록 묵직한 영화다. 아무리 감독의 전작보다 가볍다고 하지만, 페촐트의 통찰력마저 없어지지는 않았다. 어두운 현실을 직접 그려내지는 않지만, 가벼운 스케치와 터치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온이 데비트 이름을 듣고는 그가 동독 출신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순간 데비트를 향한 그의 멸시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범주가 아니다. 동독 주민의 2등 국민(Deutscher zweiter Klasse) 정서가 스쳐 지나간다. 레온이 데비트의 직업을 무시하는 대목도 서독에 비해 동독 지역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소득 수준이 낮다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하필이며 펠릭스와 데비트가 산불의 피해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피부색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펠릭스는 일반적인 게르만족이 아닌 이주민이다. 펠릭스와 데비트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대변하는 인물들만 목숨을 잃은 셈이다. 그들의 운명은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산불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레온의 말과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어파이어>를 독일 사회의 현실과 떼놓고 볼 수는 없다. 이민자, 난민, 동독 주민 등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 축구 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 전후로 메주트 외질 같은 터키 출신 선수와 관련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지율 2위를 기록하고 자치단체장을 배출하며 약진 중이다. 즉, <어파이어>는 레온과 같은 무관심, 멸시와 외면이 독일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하는 영화다. 가장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거대하면서도 중요한 담론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도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어파이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레온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레온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변화한다. 그는 나디야가 함께 보자고 했던 빛나는 밤바다를 목격한다. 소리만 들었던 헬기와 멧돼지도, 붉게 물든 하늘로만 접한 산불의 모습도 두 눈에 똑똑히 담는 데 성공한다.
결말에서 레온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그는 자기 세계에 갇힌 채로 쓴 '클럽 샌드위치'를 포기했다. 직접 겪은 비극적인 여름휴가를 가감 없이 글로 풀어내며 새 소설을 썼다. 암 투병 중인 헬무트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는다. 늘 그랬듯이 뒤에 숨는 대신, 앞으로 나서서 나디아를 마주한다. 그렇게 레온은 성장한다.
레온의 성장은 단순히 한 개인, 청년의 성장이 아니다. 한 사회를 구성한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과 저력을 믿는 희망 찬가일지도 모른다. 이는 산불로 물든 붉은 하늘이 단순한 재난의 전조나 위협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산불이라는 위협을 알리는 붉은 하늘을 정확히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새 희망이기 때문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주인공이 짜증 나는 만큼 붉은 하늘은 아름답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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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지는 관점 덕에 즐거운, <굿모닝 에브리원>
* 본 리뷰는 영화의 반전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굿모닝 에브리원 Morning Glory, 2010미국 | 코미디 외 | 2011.03.17 개봉 | 15세이상관람가 | 107분
감독: 로저 미첼
달라지는 관점 덕에 즐거운, <굿모닝 에브리원>
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굿모닝 에브리원>는 '사악', '어둠'과 같은 부정적인 언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언제든 볼 수 있고, 영화 끝까지 그 마음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품이 들지 않는 마법 같은 영화랄까. 말 그대로 참 보기 쉽다. 특히 정신적, 감성적으로 목화솜의 촉감처럼, 안정감과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수다쟁이 베키 풀러(레이첼 맥아담스)의 쉼 없는 말과 행동에 잠깐 집중력과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그들만의 세상'이란 관점을 관객에게 심어 그들에게서 완전히 도태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맹점이 너무 드러나있는 점이 살짝 아쉬움을 남기지만, 무료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싫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봐도 좋을 영화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조화로워 메인 주인공 베키의 변화하는 감정선이 잘 보인다. 스토리의 모든 요소에 깃든 유머가 꽤 매력적이고, 아침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충분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채운다. 마이크(해리슨 포드)의 무표정과 한쪽 눈썹을 씰룩거리는 불만 가득한 표정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또 사실상 베키의 수다가 아니었다면, <굿모닝 에브리원>은 시작하자마자 풀썩 주저앉았을 것이다.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굿모닝 에브리원>이 흥미로운 점은 관객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것을 초점으로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형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표면적 측면일 뿐이다. 베키의 바쁜 삶을 시작으로 그녀가 악명 높은 방송국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동시에 사랑을 어떻게 쟁취하고 지켜가는지는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와 똑같다. 하지만 <굿모닝 에브리원>가 온전히 베키만을 내세우고 있는가? 그녀는 앤드리아와 달리 홀로 해낼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주인공이다. 방송 PD란 직업은 본래 다른 이들과의 협업이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시청률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사라질 위기에 놓은 아침방송 프로그램 '데이 브레이크'를 되살린 건 베키 혼자가 아니다.
따라서 <굿모닝 에브리원>이 내세운 첫 번째 관점은 '나'가 아닌 '우리'다.
베키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열정을 다 쏟으며, 자신의 존재가치와 위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고집불통인 마이크까지 변화시키는 사건은 베키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서사적 장치였기에 실패는 더더욱 예견되지 않았다. 망해가는 '데이 브레이크'를 살린 건 포기하지 않는 베키의 열의와 그녀의 역량을 진작에 알아차린 마이크와 그녀의 진심을 깨달은 데이 브레이크의 소속 스텝들의 합심이었다.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그녀가 일 중독자가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꿈을 가진 건 좋아.
여덟 살 때는 귀여웠지.
열여덟 때는 당차 보였어.
스물여덟 먹고도 그 모양이니 창피해 죽겠다.
상처 받기 전에 현실에 눈뜨란 말이야.베키의 엄마는 베키가 지방방송 PD에서 해고당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딸에게 털어놓는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과 욕심을 자식이 대신 성취해야만 하는, 그런 전형적인 부모의 입장으로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방송일을 꿈꿨던 소녀가 꿈을 이룬 후, 더 이상 꿈이 주는 희열감과 행복감에서 빠져 살 수 없었던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란 얘기다. 따라서 베키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닌 일자리임을 엄마의 현실에서 또다시 깨닫게 된다.
다 좋다. 바쁘게 사는 것도, 쉼 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도 전부다. 하지만 베키는 점점 지쳐갔다.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는 프로그램 폐지를 하겠다고 통보까지 하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 그리고 때마침, 마이크가 등장한다. 그는 베키에게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말라 조언한다. 일에 미쳐 가족에게 소홀했던 자신이 지금 얼마나 외로움과 사투를 하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또한 평생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앉아 뉴스를 진행하며, 영향력 있는 앵커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될 거라 믿었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단편적인 인간이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 중 세 번째란 타이틀을 가진 것도 올라가는 것만 인생의 값진 보물이라 생각한 마이크 본인 탓임을 시인한 것이다.
이후, 베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고민이다. 베키는 그를 보며 자신의 삶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을 해야만 한다. 그게 보통 이야기들의 흐름이니까. 가령, '정말 나에게 일이 전부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일에 미쳐있는 걸까?'란 생각에 묻혀, 일과 개인생활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매번 순기능을 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 말이다.여기서 <굿모닝 에브리원>의 또 다른 관점이 등장한다.
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사랑스러운 베키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개인적 시선은 그저 시선으로만 기능했다는 점.
희한하게도 베키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보다 직접 행동하는 방식을 취한다. 마이크의 조언과 애인의 배려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는 게 아니라 '조정'한다. 균형을 찾는 것은 베키 개인의 몫이니까. 그녀가 일에 더 미친다고 해서 베키의 삶이 불행할 거란 예측은 아주 불필요한 선입견이란 얘기다. 일과 사랑을 모두 충분히 만족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확인시킬 이유가 베키에겐 전혀 없다. 베키는 정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도, 매번 사랑에 조급해하는 마음도 그녀의 삶을 유지하는 투명하고 깨끗한 사이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베키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상적인 삶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정하면서 완벽한 '나'로 변화한다.베키 스스로는 변화했다고 느끼지만, 타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키포인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볼 때, 카메라 앞에서 앞치마를 결코 두르지 않겠다는 고집쟁이 마이크를 카메라 앞에 세운 장본인은 '마이크나 애인에게 영향을 받아 180도로 바뀐 베키'가 아니라 '처음부터 한결같았던 베키'인 셈이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베키의 성장담을 그린 것이 아니다. 베키의 진면목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면서, 결정적인 순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친절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던 계획이 본 작품의 힘이란 자신감까지 덧붙인다.
마냥 재미있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분명 당신의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메시지가 있다. 끝내 '데이 브레이크'를 떠나지 않는 의리의 베키가 <굿모닝 에브리원>의 뻔한 결말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 영화를 본 이들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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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사랑, 그리고 연대만이 살길!
난민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5년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난민이 유럽에 몰려왔고, EU는 이들을 수용했다. 인도적 수용이긴 하지만 모두가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수용하는 난민의 수가 많아질수록 반이민 정서는 높아져 갔다. 경제 성장 둔화와 일자리 문제 등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이뤄진 수용이라는 점에서 내국인들의 분노가 커진 것. <나의 올드 오크>는 난민과 내국인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2016년 영국 북동부 마을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리고 연출을 맡은 켄 로치 감독은 전작과는 좀 다르게, 하지만 현시점에서 꼭 필요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연대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영국 북동쪽 더럼에 위치한 폐광촌. 이곳에 낯선 차가 들어온다. 내리는 이들은 히잡을 쓴 시리아 난민 가족이다. 주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모이고, 급기야 화가 난 한 주민은 이들을 보며 비아냥거린다. 난민 가족 장녀인 야라(에블라 마리)는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이를 본 주민은 카메라를 내동댕이친다. 마을의 유일한 술집인 ‘올드 오크’ 주인 TJ(데이트 터너)는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고, 중재에 나선다. 이후 올드 오크를 방문한 야라는 TJ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TJ는 미안함을 담아 카메라를 고쳐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국경을 초월한 우정과 연대를 시작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는 켄 로치 감독의 은퇴작이자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에 이어 발표한 영국 북동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감독의 시선은 노동자 계급으로 향해 있는데, 영국 북동부는 과거 철강, 석탄 산업이 번성했다가 쇠퇴 후 급격히 사회 경제 시스템이 무너진 곳이다. 켄 로치는 2014년 <지미스 호>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이곳읠 실상을 목격하고 2016년 번복했다. 그리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발표, 그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나의 올드 오크>는 전작처럼 영국 북동부 지역의 문제와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사뭇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희망’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도 사회 시스템의 변방에 위치한 이들의 연대와 작은 행복을 그리지만, 결국 비극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3부작의 갈무리 영화답게 희망을 그린다. 물론, 이 밝은 빛을 만나기 위해선 감독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인물들은 지난한 과정을 겪는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난민 가족이 들어온 후, 먹고 살기 힘들어진 상황에 놓인 주민들의 화살은 정작 정부가 아닌 이 가족들로 향한다. 약한자가 더 약한자를 공격하는 행태에 1980년대 이곳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을 승리로 이끈 것을 보고, 마을 부흥을 위해 노력했던 TJ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간판의 마지막 철자인 K가 삐뚤어져 이를 나무 막대기로 고정시키지만 이내 원상 복귀되는 것처럼, 절망이란 삶의 늪에 빠져 모든 걸 다 내팽겨치고 술만 마시는 어른들에겐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런 주민들은 혐오자가 아닌 또 한 명의 피해자인 셈이다.
TJ도 이들과 결은 다르지만 피해자인 건 마찬가지다. 과거 마을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가족의 죽음과 경제적 힘듦이 겹치면서 그는 한발 물러선다. 돈이 없어 간판도 못 고치고, 건물 보험도 해지한 상황이니 그 또한 절벽 끝에 놓인 상황. 이때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 노인 난민 가족은 과거 자신이 열정을 담아 일을 했던, 그리고 1980년 자기 부모 세대가 이룬 파업 성공의 열정을 다시 샘솟게 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그 시작은 술집 뒤편에 마련된 공간이 열리면서 시작된다. 이곳은 1980년대 파업 운동 때부터 마을 커뮤니티 공간. TJ의 안내에 따라 공개된 이곳에는 과거 공동체 생활을 했던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 있고,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라는 문구도 보인다. 이 공간을 확인한 야라는 TJ와 난민에게 우호적인 이들과 함께 온 마을 사람들이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든다. 저마다 생활의 궁핍함을 겪는 이들 모두와 함께 밥을 먹으며 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이 공간을 열면서 마을엔 생기가 돈다. 학교 내 싸움을 벌였던 주민, 난민 아이들도 함께 밥을 먹고,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던 마을 어른들도 마음의 문을 연다. 켄 로치 감독은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단순하지만 힘 있는 문구와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일수록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극 중 올드 오크 나무가 새겨진 피켓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의 올드 오크>가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영화적 완성도와 감흥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이전 작품에서 느껴졌던 비극, 즉, 국경과 민족을 넘어 작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한 삶의 슬픔이 이 영화에서는 오롯이 다가오지 않았다. 비극 보단 희망과 연대라는 주제를 담고자 하는 그 의도가 되려 현실과의 거리감을 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그럼에도 켄 로치의 은퇴작이자 영국 북동부 3부작의 마지막 영화, 그리고 영국을 넘어 현 유럽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서의 의의와 의미는 강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86세 고령의 노 감독이 힘든 세상에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뭉치면 사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담이 어느때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평점: 3.5 /5.0
한줄평: 먹어야 산다! 연대해야 산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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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 않는 속편을 기다리며
다들 속편이 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영화가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그중에서도 요청이 쇄도했던 <콘스탄틴>의 속편이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많은 팬을 기쁘게 했는데요.
<콘스탄틴>처럼 다른 영화들도 하루빨리 속편이 제작되기를 바라며 콘텐츠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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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차별과 아픔을 공감해 주길 바라며...
1. 여름의 아이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많은 국민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 피난처를 찾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전쟁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푸틴은 살인을 중단하라는 도보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띄는데 전쟁이 지속됨으로써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피해를 본다. 그렇기에 이 단편 영화는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2. 내 방
지안은 삼 남매 중에 장녀인데도 자신의 방이 없다. 동생들과 방을 같이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안에게도 고민이 있으니 학교 스터디 그룹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친구들은 혼자 방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부를 하는 영상을 찍어 공유하지만 정작 지안에게는 동생들이 어질러놓은 방을 치우느라 바쁘고 공부하기도 힘들다. 그런 지안은 소외감을 느껴 짜증 나기만 하는데...
자신의 방이 없다는 건 어쩌면 괴로운 일이다. 그렇기에 지안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지안에게 중요했던 건 자신의 친구들처럼 과외도 받고 싶고 집도 넓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3. 오늘만 재워줘
정훈은 누나와 함께 빨래방을 가다가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현아를 발견한다. 현아는 정훈에게 한 번 만이라도 재워달라고 부탁하지만
정훈은 거절한다. 그런데도 현아는 계속 부탁을 하면서 따라와 정훈의 방 장롱에 몰래 들어간다.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정훈이 현아를 보고 자신의 방에서 나가라고 하지만 현아는 말을 듣지 않는다.
사실 현아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현아의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출소해 현아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현아는 자신의 어미니에게 폭력을 대물림 당했다. 그래서 정훈에게 한 번만 방에 재워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정훈은 자신과 일면식이 있는 남자도 데려와 잠을 재워준다.
그렇게 자신도 누나에게 너무 착하면 사람들이 얕본다고 말을 듣는다. 그렇지만 정훈도 우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자신도 좋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현아가 자신에게 그러한 말로 상처를 줬고 희망도 꿈도 없는 공시생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나버린다.
이 단편 영화는 감독이 말하길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는 지인이 부모에게 가정 폭력을 당했는데 그걸 영화로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배경이 서울 강동구인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방황하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걸 잘 표현한 단편 영화가 아닌가 싶다.
4. 가을바람 불르면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종수는 한국말이 서툴다. 그런 종수를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인 지희는 종수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시 쓰는 법도 가르쳐 준다. 지희는 시를 잘 쓰는 덕분에 상도 받았지만 종수는 시 한 편도 서툴게 쓰는 아이이다.
그래서 지희의 시 쓰기 수업에 참가한다. 지희는 일단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체험을 해보고 사물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종수에게 알려준다.
종수는 애들에게 놀림받고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어머니가 연애할 때 받았던 아버지가 쓴 러브레터를 보고 서울로 이사를 가는 지희에게 시 한 편을 주려고 밤새 시를 쓴다.
다문화가정에 태어난 아이의 외로움과 차별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이 영화에서는 관객들에게 어김없이 보여준다.
2023.09-19 (화) 14:30 롯데시네마 은평(롯데몰) 7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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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돌라는 낭만을 타고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참석한 시사회 <곤돌라>의 영화 리뷰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곤돌라
누군가의 관을 싣고 하강하는 곤돌라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 <곤돌라>. 미처 다 담기지 않아 곤돌라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관의 모습, 그리고 공중에서 하강하는 관을 올려다보며 추모를 건네는 마을 주민들. 조지아에 위치한 고요한 산골 마을에는 곤돌라가 유일한 이동 수단이자, 그들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매개체다.
산과 땅 사이를 오르내리는 곤돌라 정류장의 풍경은 비현실적이다. 땅과 산과 하늘을 교차하며 공중을 가로지르는 곤돌라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을 잇고 나른다.
새로 마을에 와 곤돌라의 승무원이 된 이바는 맞은편에서 곤돌라를 운행하는 니노와 가까워진다. 이때 그들의 교류 방식은 독특하다. 하루종일 곤돌라를 타지만 그들은 결코 같은 차에 탑승하지 않고,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보는 순간이라고는 곤돌라가 교차하는 짧은 찰나가 전부. 그러나 교대로 긴긴 체스 게임을 한 칸씩 전진해나가기도 하고, 급기야 친밀해진 둘은 시선이 얽히는 짧은 찰나를 위해 제각기 흥미로운 이벤트를 준비한다.
막간의 쇼를 선보이거나, 곤돌라를 개조해 로켓처럼 만드는 등 서로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온갖 놀이를 고안해내는 둘.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그들은 대사 한 마디 내뱉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복잡하기 않고 단순한 플롯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서사와 말 대신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작은 웃음소리와 추임새, 그리고 집기가 달그락거리거나 악기가 연주되는 소리다. 그들은 말 대신 악기를 합주하고 유리잔을 문질러 작은 공명음을 내는 등 시간을 보낸다.
곤돌라에서 벌어지는 이바와 니노의 즐거운 놀이는 점차 마을 사람들을 감화시켜 소리 한 구절을 주고받고, 즐거운 한밤의 연주회로까지 이어진다. 이쪽과 저쪽을 잇는 곤돌라. 지하철과 버스 등 각종 온갖 편리한 이동수단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이는 언뜻 단절되고 불편한 생활일지 몰라도, 그 이동수단이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은 마을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의 음악으로 이어주는 것 역시 곤돌라다.
동화같은 이야기
영화 <곤돌라>는 소소하고 단순한 이야기다. 미아와 이바의 싹트는 관계로부터 시작해, 휠체어를 탄 탓에 곤돌라 탑승을 거부 당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소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하는 풋풋한 소년. 마을 안에서 곤돌라는 그들의 작은 소망을 이루어준다. 아늑한 만찬의 공간부터 시작해 다리가 불편한 노인을 날게 만들어주는 근사한 기구가 되어주기까지. 그들의 사랑과 꿈을 질투한 한 남자로 인해 소동이 벌어지지만 결국 큰 위기와 아픔 없이 미아와 이바는 툭툭 털고 자리를 나선다.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마찬가지로 <곤돌라>의 서사는 잔잔한 동화와 같다.
곤돌라를 둘러싸고 큰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다. 이곳 곤돌라가 위치한 이 마을 속에서는 대사 없이 작은 소리와 몸짓으로 교감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저 평화로울 뿐이다.
이바와 니노가 본격적으로 수고를 들여 곤돌라를 개조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즐거워할 상대방의 얼굴 하나만을 생각하며 그 짧은 찰나를 위해 용접과 설계도를 그리는 일. 수고롭지만 어쩌면 그들에겐 힘든 일도 아니었을 테다. 그저 일터 속에서 상승-하강만을 반복하며 권태롭게 보내는 일상보다도, 찰나의 교차점에 만난 서로의 짧은 웃음을 보기 위한 노고가 그들 스스로에게 더 큰 기쁨이었을 테니. 현실이었다면 위험천만했을 법한 상황도 이 영화 속에서는 사소한 돌부리 같은 일이 된다. 몹시 극적이고 동화적인 영화 <곤돌라>는 어쩐지 특유의 순수함과 함께 영화 산업 초기 무성 영화 시절에 있었을 법한 유머 코드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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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하게 아픈 어느 3대 대가족의 초상
우리~~~하게 아프다. 경북이 고향은 아니지만, <장손>을 보면 이 사투리가 절로 나온다. 약 2시간으로 압축된 대가족의 이야기를 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 특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긋지긋한 애증 관계를 유지하다가 끝내 등을 돌리는 김씨 집안 가족의 모습은 그 자체로 쑤시고 아리는 듯한 고통을 전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이 보편적인 가족은 마주하기 싫지만, 그래서 더 보게 된다. 이게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이라고 여기면서.
경북 시골에서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김씨 집안 식구들은 분주하다. 오늘이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여느 가족처럼 남자는 놀고, 여자는 일한다. 한여름 제사라 에어컨도 틀법한데, 집 안의 안주인인 할머니 말녀(손숙)는 장손 성진(강승호)이 와야 틀 기세다. 서울에서 무명 배우로 활동하는 성진은 뒤늦게 고향 집을 찾는다. 오랜만에 내려온 터라 반가울법한데, 성진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아니나 다를까 제사 이후, 아버지 태근(오만석)이 할아버지와 자신의 대를 이어 두부 공장을 물려받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반기를 든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성진은 할아버지 승필(우상전)과 말녀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올라간다. 계절이 바뀐 가을 어느 날, 성진은 급히 고향으로 내려간다. 건강했던 말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두부처럼 살아온 가족
<장손>은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것 없는 3대 대가족의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은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세대, 젠더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소리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어느 집안이나 문제는 다 있듯 김씨 집안도 마찬가지다.“아이고 우리 장손 왔나!”라는 말녀의 말 한마디에서 알 수 있듯 장남을 최고로 여기는 이 집안은 여성들만 노동한다. 1990년대 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올법한 남녀 차별이 이곳에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뿐인가. 한국전쟁 때 가까스로 살아남아 두부 공장을 운영하며 장손의 책임을 다한 할아버지 승필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다리를 절고 낙향한 아들 태근을 못 마땅해 한다. 태근 또한 자신을 빨갱이 운동에 가담했다고 미워하며, 두부 공장 운영에 일일이 간섭하는 아버지가 밉다. 성진은 술만 마시면 가슴 속 응어리진 울분을 토해내며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태근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가족 중 유일한 기독교 신자인 첫째 딸 혜숙(차미경)은 기도와 믿음으로 교통사고 후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보살피고, 성진은 그 사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 막내딸 옥자(정재은)는 사업가 남편 동우(서현철)를 따라 승필이 그토록 싫어하는 공산국가인 베트남으로 이민을 간다. 가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성진의 누나 미화(김시은)는 남편과 두부 공장을 물려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
김씨 집안 사람들은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혈연지간으로 뭉친 가족이지만, 알고 보면 실상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를 달가워하지 않는 관계다. 마치 자신의 의지 없이 억지로 뭉쳐져 네모반듯하게 나온 두부처럼 말이다. 김씨 집안의 가업이 두부 공장이라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사라져가는 가족주의
두부 같은 가족을 어떻게든 뭉치게 한 이는 바로 말녀. 영화는 그녀의 죽음 이후 바스라져 버리는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결국 이들이 와해되는 건 돈 때문이다. 전조는 장례식장에서 각자 친구 지인이 전한 조의금을 나누는 장면부터지만, 문제의 촉발 지점은 혜경으로부터 시작한다. 헤경은 과거 말순에게 맡겨 놓은 돈을 장손인 태근에게 찾아보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이로 인해 촉발된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 큰 사고가 발생하며 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혜경이 요구하는 건 돈이지만, 실상 원하는 건 그동안 이 집안을 위해 노력했다는 가족의 인정이다. 가부장적 가족주의에서 철저히 배제된 딸(혹은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정을 바라는 혜경의 모습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혜경의 남편이 두부 공장을 이어받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하고 이를 돌봐야 하는 혜경의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딸이 짊어져야 하는 차별의 무게를 비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3대 장손의 이야기를 대변하듯 여름, 가을, 겨울이란 세 계절을 담는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족주의는 해체가 되고, 관객은 이를 지켜본다. 그나마 화기애애했던 여름을 지나 냉기 서린 가족의 이면이 드러나는 겨울에 당도하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엿소리처럼, 한 가족으로서 이들을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계절이 변하듯 이 과정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연출한다.
<장손>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계절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자연이다. 이 풍광을 유려한 미장센으로 담아낸 화면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매력적인데, 반대로 무섭게 다가온다. 인간으로서 자연의 섭리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가족주의 해체 또한 막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함박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걸어가는 승필의 마지막 모습은 사라져가는 가족주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축제>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떠오르다!
<장손>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엄지척을 날린 평단의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영화가 가부장적 3대 가족을 통해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는 부분이다.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격동기를 겪은 근현대사, 압축성장에 따라 빠르게 변화한 우리 사회는 발전과 번영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대 간의 갈등을 낳았고, 서로 간의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3명의 장손은 서로 간의 오해만 쌓아놓고 산다. 저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지만, 이를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이야기하지 못한다. 장남으로서 해야 할 책임과 책무에 짓눌려 살아왔기 때문이다.
장손으로서 이들은 가족을 지키지 못하고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공포감에 점차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웠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단해진 벽은 허물 수 없게 되어버린다. 후반부 승필은 성진에게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아왔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혜경이 그토록 찾는 돈의 행방을 알려주는데, 그 때야 성진과 관객은 이 할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늦었지만 비로소이해의 물꼬를 트는 장면은 과거 임권택 감독의 <축제>, 그리고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 두 작품은 사뭇 다르지만, 서로 담을 쌓고 지냈던 세대가 ‘죽음’이란 계기를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은 닮아 있다. 그리고 각각 동화책(<축제>)과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그 촉매제 역할을 한다.
<장손>은 이제 사라져가는 윗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한 시대를 책임졌던 세대가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 이 현상은 누군가에게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일일 수 있지만, 감독은 마지막 승필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왠지 모를 욱신거리는 고통의 슬픔을 안긴다. 사라진 후에야 그 세대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승필이 전한 검은 지를 확인하는 성진은 그제서야 장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애쓴 할아버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모른척했던 장손의 역할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장손은 가족 중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닌 가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자라는 것을 말이다.극 중에서 보이지 않는 계절인 봄은 출산을 한 미화의 아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의 이름은 ‘봄’이다. 전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그 기점. 어떤 봄을 맞이할 것인가는 검은 봉지를 받은 성진, 그리고 또 다른 성진이들의 선택에 달렸다.
사진 제공: 인디스토리
평점: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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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벌어질만한 상황을 계속 보여주죠.
특히 과학자들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면서부터 대중들도 정치인들도 종말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저 정치적인 싸움만 하게 됩니다.
꽤 신랄하게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지적하고 있어요.
블랙코미디이지만 꽤 심각하고 무서운 영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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