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3-09-17 11:26:21
[SICFF 데일리] 눈보라를 이긴 따스한 사랑의 교감
영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2022)
감독: 박재범
배역: 이윤지, 김서영, 강길우, 김예은, 이관목, 송철호, 이용녀 外
러닝타임: 69분
“북극성을 따라서 붉은 곰을 찾아가렴” 툰드라의 그리샤, 엄마를 살리려면 숲의 주인을 만나야 한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툰드라 배경에 스톱모션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3년 3개월이란 제작 기간인 만큼 스톱모션의 섬세함을 보인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평원 속 순록의 피를 마시는 장면과 오로라가 비추는 하늘을 구현한 장면은 툰드라 지역의 현실성을 보인다. 순록의 피를 마시는 장면이 자칫 아이들에게 잔인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툰드라 민족에게는 일상이고, 어린이들의 새로운 지식과 시야를 넓히게 만들 수 있다. 예이츠의 딸이자 장녀인 그리샤는 엄마가 갑작스레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무당으로부터 숲의 주인을 찾으라는 조언을 듣는다. 아버지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도시로 나가 현대의 약을 구하러 간다. 문명에 타협한 태도를 보이는 아버지와 달리 그리샤와 남동생 꼴랴는 숲의 주인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한편, 숲의 주인을 없애기 위해 떠나는 러시아 연방군 블라디미르도 숲의 주인은 찾기 시작한다. 마침내 만난 숲의 주인은 천년을 산 거대한 붉은 곰이었고, 천 년을 살아갈 수 있었던 비밀은 신비스러운 장소 바위 아래 조그맣게 자라는 월귤나무 열매의 힘 덕분이었다. 블라디미르로 인해 다친 숲의 주인을 그리샤가 도와주며 열매를 얻는다. ‘숲의 주인’이라는 점과 치유의 힘과 같은 민담이나 소설의 구상을 영화화로 만들어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좁게는 그리샤와 엄마와의 관계를 보이고, 넓게는 생물을 포용하는 자연을 엄마라고 빗대어 표현해 자연의 위대함을 선보인다. 어머니의 헌신과 어머니를 향한 따스한 사랑이 차가운 눈보라를 이겨낸다.
상영일정: 9/15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9/13~9/2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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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지는 관점 덕에 즐거운, <굿모닝 에브리원>
* 본 리뷰는 영화의 반전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굿모닝 에브리원 Morning Glory, 2010미국 | 코미디 외 | 2011.03.17 개봉 | 15세이상관람가 | 107분
감독: 로저 미첼
달라지는 관점 덕에 즐거운, <굿모닝 에브리원>
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굿모닝 에브리원>는 '사악', '어둠'과 같은 부정적인 언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언제든 볼 수 있고, 영화 끝까지 그 마음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품이 들지 않는 마법 같은 영화랄까. 말 그대로 참 보기 쉽다. 특히 정신적, 감성적으로 목화솜의 촉감처럼, 안정감과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수다쟁이 베키 풀러(레이첼 맥아담스)의 쉼 없는 말과 행동에 잠깐 집중력과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그들만의 세상'이란 관점을 관객에게 심어 그들에게서 완전히 도태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맹점이 너무 드러나있는 점이 살짝 아쉬움을 남기지만, 무료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싫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봐도 좋을 영화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조화로워 메인 주인공 베키의 변화하는 감정선이 잘 보인다. 스토리의 모든 요소에 깃든 유머가 꽤 매력적이고, 아침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충분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채운다. 마이크(해리슨 포드)의 무표정과 한쪽 눈썹을 씰룩거리는 불만 가득한 표정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또 사실상 베키의 수다가 아니었다면, <굿모닝 에브리원>은 시작하자마자 풀썩 주저앉았을 것이다.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굿모닝 에브리원>이 흥미로운 점은 관객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것을 초점으로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형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표면적 측면일 뿐이다. 베키의 바쁜 삶을 시작으로 그녀가 악명 높은 방송국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동시에 사랑을 어떻게 쟁취하고 지켜가는지는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와 똑같다. 하지만 <굿모닝 에브리원>가 온전히 베키만을 내세우고 있는가? 그녀는 앤드리아와 달리 홀로 해낼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주인공이다. 방송 PD란 직업은 본래 다른 이들과의 협업이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시청률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사라질 위기에 놓은 아침방송 프로그램 '데이 브레이크'를 되살린 건 베키 혼자가 아니다.
따라서 <굿모닝 에브리원>이 내세운 첫 번째 관점은 '나'가 아닌 '우리'다.
베키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열정을 다 쏟으며, 자신의 존재가치와 위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고집불통인 마이크까지 변화시키는 사건은 베키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서사적 장치였기에 실패는 더더욱 예견되지 않았다. 망해가는 '데이 브레이크'를 살린 건 포기하지 않는 베키의 열의와 그녀의 역량을 진작에 알아차린 마이크와 그녀의 진심을 깨달은 데이 브레이크의 소속 스텝들의 합심이었다.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그녀가 일 중독자가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꿈을 가진 건 좋아.
여덟 살 때는 귀여웠지.
열여덟 때는 당차 보였어.
스물여덟 먹고도 그 모양이니 창피해 죽겠다.
상처 받기 전에 현실에 눈뜨란 말이야.베키의 엄마는 베키가 지방방송 PD에서 해고당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딸에게 털어놓는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과 욕심을 자식이 대신 성취해야만 하는, 그런 전형적인 부모의 입장으로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방송일을 꿈꿨던 소녀가 꿈을 이룬 후, 더 이상 꿈이 주는 희열감과 행복감에서 빠져 살 수 없었던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란 얘기다. 따라서 베키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닌 일자리임을 엄마의 현실에서 또다시 깨닫게 된다.
다 좋다. 바쁘게 사는 것도, 쉼 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도 전부다. 하지만 베키는 점점 지쳐갔다.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는 프로그램 폐지를 하겠다고 통보까지 하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 그리고 때마침, 마이크가 등장한다. 그는 베키에게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말라 조언한다. 일에 미쳐 가족에게 소홀했던 자신이 지금 얼마나 외로움과 사투를 하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또한 평생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앉아 뉴스를 진행하며, 영향력 있는 앵커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될 거라 믿었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단편적인 인간이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 중 세 번째란 타이틀을 가진 것도 올라가는 것만 인생의 값진 보물이라 생각한 마이크 본인 탓임을 시인한 것이다.
이후, 베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고민이다. 베키는 그를 보며 자신의 삶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을 해야만 한다. 그게 보통 이야기들의 흐름이니까. 가령, '정말 나에게 일이 전부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일에 미쳐있는 걸까?'란 생각에 묻혀, 일과 개인생활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매번 순기능을 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 말이다.여기서 <굿모닝 에브리원>의 또 다른 관점이 등장한다.
출처: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 스틸컷
사랑스러운 베키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개인적 시선은 그저 시선으로만 기능했다는 점.
희한하게도 베키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보다 직접 행동하는 방식을 취한다. 마이크의 조언과 애인의 배려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는 게 아니라 '조정'한다. 균형을 찾는 것은 베키 개인의 몫이니까. 그녀가 일에 더 미친다고 해서 베키의 삶이 불행할 거란 예측은 아주 불필요한 선입견이란 얘기다. 일과 사랑을 모두 충분히 만족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확인시킬 이유가 베키에겐 전혀 없다. 베키는 정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도, 매번 사랑에 조급해하는 마음도 그녀의 삶을 유지하는 투명하고 깨끗한 사이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베키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상적인 삶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정하면서 완벽한 '나'로 변화한다.베키 스스로는 변화했다고 느끼지만, 타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키포인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볼 때, 카메라 앞에서 앞치마를 결코 두르지 않겠다는 고집쟁이 마이크를 카메라 앞에 세운 장본인은 '마이크나 애인에게 영향을 받아 180도로 바뀐 베키'가 아니라 '처음부터 한결같았던 베키'인 셈이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베키의 성장담을 그린 것이 아니다. 베키의 진면목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면서, 결정적인 순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친절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던 계획이 본 작품의 힘이란 자신감까지 덧붙인다.
마냥 재미있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분명 당신의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메시지가 있다. 끝내 '데이 브레이크'를 떠나지 않는 의리의 베키가 <굿모닝 에브리원>의 뻔한 결말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 영화를 본 이들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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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나간 탕아, 조폭하러 돌아오다
ㅐㄱ
영화 <컴백홈> 포스터
컴백홈 (2022)
감독 : 이연우 │ 장르 : 한국, 코미디·드라마
출연 : 송새벽(기세), 라미란(영심), 이범수(강돈)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9분영화 <컴백홈> 스틸컷
개그맨이 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지
꿈은 이루어진다는 달콤한 말.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 하나를 가지고 서울로 온 ‘기세’에게도 유효한 말이었을까. 영화 <컴백홈>의 주인공 기세는 공개코미디 무대에 열렬히 오르고 싶어하는 ‘아직 뜨지못한’ 개그맨이다. 그래도 개그맨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또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는 애매한 삶. 열심히 하면 기회가 주어지겠지 싶었던 그에게 굴러온 현실은, 날벼락 같은 프로그램의 폐지였다. 소를 키우던 시골에서 맨몸으로 서울까지 왔는데, 인생을 베팅한 직장이 사라져버리니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 따로 없다. 하물며 월세를 밀린 원룸에서는 그만 쫓겨나기까지 하는데..., 그런 기세 앞에 어떤 ‘삼촌’이 나타난다.
영화 <컴백홈> 스틸컷
20억과 조폭 승계, 사전에 없던 선택지
그가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은 ‘강돈’. 조폭 두목이던 기세 아버지의 오른팔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안 그래도 속이 시끄러워 죽겠는데, 오랜만에 불쑥 찾아와 강돈이 전하는 소식은 다름아닌 아버지의 부고 소식. 아버지가 칼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폭인 아버지가 끔찍하게 싫었던 기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꿈쩍하지 않는‘척’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돈이 제시하는 현금 20억에는 살짝 구미가 당기는데.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기세의 현실이 암담했기 때문이다. 강돈은 20억을 주며 조폭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으라 제안한다. 어차피 실질적 일은 강돈이 할 것이고, 자신은 바지사장 마냥 아버지 자리를 이어받는 시늉만 해주면 되는 것 같았기에, 고민하던 기세는 강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싸움 따위 1도 할 줄 모르는 개그맨의 조폭 승계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영화 <컴백홈> 스틸컷
개그맨이 조폭이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중반부가 지나가자 생각지도 못한 빌런을 보여준다. 그는 바로 무식하고 유치하지만 진심으로 기세를 아끼는 듯 보였던 강돈이었다. 알고보니 강돈은 기세의 아버지를 제끼고 일선이 되고싶었던 그저 그런 양아치였던 것. 아버지의 죽음부터 시작하여, 기세에게 20억을 줬다가 도로 뺐기까지, 기세는 강돈이 깔아놓은 시나리오에 자기가 걸려들었다는 걸 알게되고 전에 없던 분노를 느낀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평생 원망만 하며 지냈던 아버지가 실은 자신을 끔찍이 아꼈다는 사실까지 뒤늦게 알게 되는데..., 모든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고, 단지 20억이 필요했던 기세는 그렇게 얼떨결에 목표를 수정하게 된다. 아버지를 배신한 가짜 삼촌을 처단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기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고향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얼마나 웃기고 뭉클하던지.
영화 <컴백홈> 스틸컷
내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왜 이제야 보일까
상경의 꿈을 안고 대도시로 간 자가, 고향을 얕잡아보고 오만해지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대도시의 냉혹함에 치여 고향으로 돌아와보면 자신이 얼마나 오만불손했는지를 또 깨닫게 되는 게 인간의 간사함 아닐까. 기세는 승계와 복수를 핑계로 다시 머물게 된 고향에서,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씩 꺠우쳐간다. 촌스럽고 짜증나서 떠나고만 싶었던 곳. 조폭 따위나 하던 아버지. 번듯하기는커녕 별볼일없이 늙어가는 유치한 친구들. 사랑했지만 개그맨이라는 원대한 자신의 꿈에는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중국집 딸내미 영심. 한때 떨쳐버리고 싶던 그 모든 것들이, 반짝이지는 않아도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존재들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개그맨이 조폭이 되는 B급 코미디를 외피로 한 이 영화의 제목은 <컴백홈>. 그러니까 잘 곱씹어보면 이 영화는, 집으로 돌아온 탕아가 자신의 집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곳이었는지를 알게되는 따뜻한 성장스토리에 더 가까운 듯 싶다. 돈도 성공도 좋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큼 사람을 든든하게 하는 게 있을까. 촌스러워서 떨쳐내고 싶었던 나의 고향, 노잼도시 대전이 어쩐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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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을 뒤흔든 순정마초의 뒤안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793년, 프랑스의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흥분과 광기에 휩싸인 군중 사이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코르시카 출신의 포병 장교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 그는 이 혼란을 자기 기회로 삼기로 결정하고, 툴룽에서 영국군을 무찌르며 영웅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때마침 하늘도 그에게 행운을 선사한다. 한 사교 파티에서 기품 있는 여인 '조제핀'(바네사 커비)을 만나 첫눈에 반한 것. 자기 운명을 바꿔줄 남자를 찾던 조제핀은 열렬한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그들은 부부가 된다. 비록 결혼 생활이 원만하지는 않았지만, 조제핀을 만난 후 승승장구한 나폴레옹은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올라선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하고, 나폴레옹의 몰락도 막을 올린다.
주의! 리들리 스콧의 시대극입니다
리들리 스콧의 시대극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다루는 시대를 재현하는 데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비주얼리스트의 웅장한 영상미에 홀리면 그의 시각에서 해석한 시대, 사건, 인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칫 잊을 수 있기 때문.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엑소더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모두 마찬가지였다. 리들리 스콧의 화려한 볼거리는 자유의 평등의 가치를 고찰하고, 종교의 의미와 기능을 성찰하며, 젠더 이슈를 고민케 하는 도발적인 질문을 품고 있었다. 과거를 재현하는 대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반추한 결과였다.
Apple TV+와 리들리 스콧이 손잡은 <나폴레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뛰어난 정치가이자 뛰어난 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전유럽에 자유주의를 흩뿌리고, 대륙법의 기반인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었으며, 황제 자리를 차지해 정점을 찍은 정치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전쟁의 신으로 칭송한 전술가이자 일반 병사들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은 꼬마 부사관.
<나폴레옹>은 이 모든 이미지를 멜로드라마라는 틀 안에 담아낸다. 위대한 나폴레옹 1세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한 남자 나폴레옹의 시점에서 그의 모든 행적과 위업을 다시 해석한다. 이 재해석은 분명 신선하고, 그의 일생과 나름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으며, 예상치 못한 울림을 안기기도 한다. 다만 해외에서 먼저 공개된 후 호불호가 격렬히 나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자기 해석을 밀어붙일 뚝심이 부족한 게 결정적인 패착이다.
화살표가 확실한 오프닝 시퀀스
당장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이 단두대에서 달아나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대놓고 알려준다. 오프닝 분위기만 느껴도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로 향한다. 사형집행인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치운 후 자세를 고정시킨다. 거대한 칼이 그녀의 하얀 목에 닿고, 집행인이 왕비의 목을 들어 올리자 지켜보던 군중이 환호한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상징하는 시작점. 그러나 연출은 역사적 중요성과 사뭇 대조된다. 웅장하거나 비극적인 음악이 깔려야 할 것 같은 직관에 반하는 음악이 들려온다. 왈츠를 듣는 듯 신나고 경박스럽기까지 하다. 웅장한 전기 영화나 서사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라 미리 경고하는 듯하다. 기록된 역사와 달리 나폴레옹이 군중 안에서 왕후의 처형을 지켜보는 것도 그 일환이다.
'나폴레옹 1세'는 없다
그러니 <나폴레옹>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위대한 정치인이자 뛰어난 군인이었던 나폴레옹의 후광을 지우는 것. 실제로 영화는 혁명, 쿠데타, 즉위식 등 그가 주도한 여러 정치적 사건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데서 그친다. 배경이나 맥락은 사치라는 듯이 생략한다. 보나파르트 가문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동기와 욕망에 대한 설명도 많지 않다. 황제까지 즉위한 나폴레옹 1세의 정치적 여정을 영화만 보고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전쟁의 신이라는 찬사를 받은 보나파르트 장군의 모습도 편린만 스쳐 지나간다. 물론 각각의 전투 시퀀스는 인상적이다.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대표적이다. 적군 유인, 보병 간 전투, 기병대 기습, 포격으로 마무리되는 전투 양상을 명확하게 담아냈다. 워털루 전투 역시 나폴레옹의 최후에 걸맞은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다만 나머지 전투는 그저 나폴레옹이 거쳐야 했던 퀘스트 중 일부로 짚고 넘어간다.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도 활용된다. 극 중 나폴레옹은 카리스마형 주인공이 아니다. 군사적 재능은 있지만 전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벌벌 떤다. 1799년 쿠데타 장면도 비장함보다 우스꽝스러움으로 가득하다. 그가 지휘한 전투에서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는 마지막 자막은 화룡점정이다. 리들리 스콧 작품 중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등과 비슷한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해도 이상하지 않다. 해외에서 영국인(리들리 스콧)이 프랑스 위인을 비하했다는 지적이 나올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순정마초 나폴레옹
이처럼 정치인과 군인의 모습을 지운 여백에 <나폴레옹>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모습을 그려 놓는다. 나폴레옹은 극장에서 조제핀을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고, 곧장 결혼한다. 그는 이집트 원정 전후로 조제핀의 불륜을 확인하지만, 가까스로 이혼 위기를 극복한다. 이후 부부는 아들을 낳지 못해 갈등을 빚고, 끝내 이혼을 선택하지만, 죽을 때까지 친구로 남는다.
나폴레옹이 겪은 수많은 사건들은 이 사랑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제핀이 "승리의 부인(마담 드 빅투아르)"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재해석으로 보인다. 극 중 일방적이었던 그의 사랑이 양방향이 되고, 조제핀이 마침내 그와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며, 행운이 차오르는 순간부터 그의 전성기가 펼쳐진다. 쿠데타로 제1집정을 거쳐 황제가 되고,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동맹군을 무너뜨리며 유럽을 제패한다.
반면에 그가 더 큰 영광을 원한다면서 조제핀을 버리자 몰락이 시작된다. 이혼한 순간부터 그의 운은 다한다. 그는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하고, 퇴위하고, 유배를 떠난다. 마지막 기회도 그녀에게 달려 있다. 조제핀이 아직 생기 있을 때, 그는 알바 섬을 탈출한다. 그러나 그녀가 끝내 폐렴으로 사망하자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다. 그렇게 황후와 황제는 흥망성쇠를 같이 겪는다.
리들리 스콧다운 영상미도 이 로맨스와 어우러지며 힘을 발한다. 황제 즉위식과 텅 빈 모스크바에 나폴레옹이 입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스크린을 벌겋게 물들인 모스크바 대화재는 정점이다. 이 장면들은 정치인이자 군인으로서 나폴레옹의 정점과 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조제핀의 내레이션이 나폴레옹을 감싸는 연출이 더해지면서 조제핀이라는 행운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그 행운이 그를 배신했음을 보여준다.
부실했던 기초 공사
그러나 과감한 재해석에 충분히 힘을 실어주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오프닝에서 나폴레옹의 일생을 로맨스로 풀어내겠다는 지향점을 보여줬는데, 정작 초반 전개가 그 방향성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실제로 초반부는 씬마다 정치인, 군인, 남자 나폴레옹의 모습이 뒤엉켜 있다. 극장 안에서 편집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난잡하다. 특히 이집트 원정까지는 나폴레옹의 연애사가 위업을 포괄하지 못한 채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특히 로맨스를 쌓아 올리는 분량이 부족하다. <나폴레옹>은 관객이 순정남 나폴레옹에게 이입하고, 로맨스의 관점에서 전쟁과 정치적 사건을 따라간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가 조제핀을 사랑하는 과정은 급하게 지나가고, 조제핀의 개인사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히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관계도, 그녀가 그의 행운을 뜻한다는 해석도 부각될 수가 없다. 나폴레옹을 운 좋게 권력을 잡은 정신병자 내지는 사랑하는 여자도 차지 못한 찌질한 전쟁광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부실한 초반 전개는 러닝타임을 고려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판단착오에 가까워 보인다. 근래 OTT 공개 예정 작품은 극장 개봉 시 러닝타임의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3시간을 넘긴 <플라워 킬링 문>이 대표적이다. 조제핀의 삶을 보다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4시간 30분 분량의 컷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아쉽다. <나폴레옹>의 완성도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2011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공개된 '순정마초'가 떠오른다. 가사 때문이다. "나의 사랑을 버린 그댈 잊지 못한, 죽은 심장 상처 난 백합 순정마초." 첫사랑을 기억하는 순정남이자, 다른 여자들을 차버리고 다니는 마초라는 의미였다.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가사다. 나폴레옹의 첫사랑이자 그 사랑을 배신했던 조제핀. 첫사랑인 황후를 버리고 떠난 나폴레옹. 이 커플의 관계가 가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지점에서 나폴레옹 1세의 일생을 그려낸 장엄한 서사시를 기대할 이들에게 <나폴레옹>이 실망스러운 이유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배경으로 조금 더 웅장하게, 위엄 있게, 극적으로 그려낸 리들리 스콧 버전의 '순정마초'니까.
Acceptable 무난함
웅장한 이미지 사이로 흥하고 지는 순정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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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라는 이름으로.
힘이 넘치면서도 말도 많은 이 시리즈의 시작, 마녀1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한 배우의 얼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김다미라는 배우의 괴물 같은 연기력을 통해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마녀를 만났다.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훨씬 많은 ‘마녀 :Part1 The Subversion’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 그 속에 펼쳐진 액션은 배우들을 더욱 빛낸다. 다소 오글거리는 대사 남발로 당황스러움을 건네지만 영화와 배우의 시너지가 잘 맞아떨어져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충족시킨다.
목적을 위한 목적은 가치를 잃어버린 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만든다. 1세대에 그치지 않고 실험체를 만들어내던 한 실험실에서 탈출한 한 아이가 바로 그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사람은 주변 환경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에 무게를 싣게 된다. 타인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고통에 주목하는 사람이 폭력으로 무장된 힘으로 눌리려다가 역풍을 맞게 되면서 마녀가 본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기도 전에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야 했던 자윤은 고통을 주었던 그들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그 후, 보통의 일상을 살아갈 수 없게 된 자윤은 그런데도 자신을 되찾기 위해 가족과 친구를 뒤로하고 떠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그의 기행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 갑자기 등장할지 모를 자윤의 행방이 마녀2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녀의 탄생과 그 이유를 더할 ‘마녀: Part2. The Other One’가 다가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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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이름과 팔려나간 아이들
조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는 입양자 가족 찾기 서사가 아니다. 이 영화는 해외 입양을 개인의 선택이나 운명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감독은 해외 입양된 사람들이 왜 부모를 찾으려 하는 지를 보여 준다. 그렇게 점차 밝혀지는 진실은 해외 입양이야말로 한국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는 1970년대 초 서울 길거리에서 발견되어 미국으로 입양된 미오카 밀러의 실화를 중심에 둔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례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해외입양’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수출하듯 내보냈던 한국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난다. 영화 제목인 <케이 넘버>는 해외 입양아에게 부여된 일련 번호다. 인간에게 붙은 숫자, 이름 대신 번호로 존재해야 했던 현실은 그 자체로 입양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시스템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케이 넘버>의 입양인들이 생모를 찾는 이유는 단지 혈연의 회복이 아니다. 정체성의 회복이다. 미오카 밀러는 자신의 엄마가 자기를 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엄마를 찾는다. 이는 한국의 그 당시 여성들의 고통 아픔과도 연결된다.
수많은 해외 입양자들이 길거리에 버려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자식을 길에다 버리는 엄마는 실제로 얼마나 될까? 수십만명이 넘는 어린아이가 길에서 버려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영화는 해외에 입양간 입양자들의 찾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 또한 한국의 해외 입양 시스템이 큰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의 한국인들이 해외 입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보통의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 문제가 그동안 얼마나 감춰지고 숨겨지고 무관심했던 한국의 현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질문은 개인적 고민이 아니다. 가족도 이름도 빼앗긴 존재가 남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구조적 상처이다. 이는 자본주의와 국가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발이기도 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영화가 입양인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아이를 떠나보낸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까지도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다. 생모들은 대부분 미혼모였다. 사회적 낙인과 제도적 지원의 부재 속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키울 수 없도록’ 강요당한 여성들이다.
어떤 이는 분만 직후 아이를 얼굴도 못 본 채 빼앗겼고, 어떤 이는 병원 서류 하나에 서명하며 ‘아이를 포기했다’는 낙인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감독은 이 고통을 단지 개인의 불운이나 선택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와 사회의 명백한 방조이며, 때로는 적극적인 개입이었다.
영화는 1970~80년대 한국 정부가 경제적 실리와 외교적 명분을 위해 해외 입양을 조직적으로 장려했음을 지적한다. 아이들은 복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미화됐다. 그 이면에서 국가는 사회 문제를 외면한 채 ‘인간 수출’에 가까운 구조를 방치하거나 조장했다. 이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침묵의 공범자에 한국 사회 전체가 포함돼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케이 넘버>는 미오카 밀러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다수의 입양인 증언, 서류, 과거 영상 그리고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층적으로 구조화된다. 감독은 감정적 몰입에 기대지 않고, 증거와 목소리로 관객을 설득한다. 그렇기에 영화의 충격은 오히려 더 깊다. 이 다큐멘터리는 관객의 눈을 적시는 대신, 외면하고 있던 사회의 민낯을 들이민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아이들이 거래되던 이 잔혹한 역사를,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정체성을 잃은 사람들, 아이를 잃고도 죄책감을 떠안은 여성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방관하거나 정당화해온 사회는 이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영화는 요구한다. 반성 없는 발전은 없다. 기억하지 않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제목: 케이 넘버 (K-Number)
감독: 조세영
각본: 조세영, 남순아
촬영: 조영춘
편집: 이윤정
제작사: 선보필름
배급사: 마노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 112분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일: 2025년 5월 14일
+씨네랩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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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임파서블 8 | 그의 액션에는 서사와 감동이 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디지털상의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인공지능 엔티티. 엔티티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등 강대국의 핵무기 시스템마저 순차적으로 장악하며 핵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마친다. 이에 CIA와 IMF의 모든 정보원은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찾아 나선다. 그는 엔티티를 파괴할 수 있는 열쇠를 확보한 뒤 잠적한 엔티티를 악용하려는 국가와 세력을 경계하며 잠적했기 때문.
'슬론'(안젤라 바셋) 대통령의 절박한 메시지를 받은 뒤 에단은 결국 엔티티를 파괴한다는 조건으로 작전을 개시한다. 북극해에 가라앉은 러시아 잠수함에서 엔티티의 소스 코드를 빼내고, 이를 미끼로 핵전쟁 발발 직전에 엔티티를 속인 후 제거하겠다는 것. 엔티티는 아픈 과거를 공략하며 에단을 방해하기 시작하고, 그는 오랜 동료 ‘루터’(빙 제임스)와 ‘벤지’(사이먼 페그), 그리고 새로운 팀원 ‘그레이스’(헤일레 앳웰), ‘파리’(폼 클레멘티에프), ‘드가’(그레그 타잔 데이비스)와 함께 불가능한 임무에 도전한다.
명성에 걸맞은 최종장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로 명성이 높았다. 첩보 액션 스릴러의 정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리즈의 7번째 작품 <데드 레코닝>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인공지능 엔티티와의 갈등이 첩보물에 어울리지 않고, 긴 러닝타임에 비해 액션씬도 빈약하다는 혹평이 있었기 때문. 국내에서 400만 명, 해외에서는 6억 달러를 간신히 돌파한 흥행 성적은 실망감의 방증이었다.
그렇기에 시리즈의 8번째 작품이자 최종장으로 알려진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이하 <미임파 8>)의 어깨는 무거웠다. 전편을 향한 미적지근한 반응을 열광과 환호로 바꿔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떠안았으니까. 예고편에 중점적으로 등장한 톰 크루즈의 잠수와 맨몸 비행 스턴트 액션, '데드 레코닝 PART TWO'에서 '파이널 레코닝'으로 변경된 부제에는 8편에 쏠린 관심과 기대, 부담과 각오를 함축되어 있었다.
언제나 불가능한 임무를 달성하는 에단 헌트처럼 <미임파 8>은 맡은 바를 다해냈다. 전편에서 혹평받은 엔티티와의 대립은 오히려 에단의 지난 30년을 복기하는 기회가 됐고, 바닷속과 공중을 배경으로 펼쳐진 액션 시퀀스는 전편의 아쉬움을 만회할 뿐만 아니라 8편의 서사를 총망라하여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렇게 <미임파 8>은 시리즈와 배우의 이름값도, 최종장의 역할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전편에서 한발 더 나아가다
<미임파 8>의 전반적인 전개나 줄기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편에서 보여준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애초에 1부와 2부로 나눠서 기획된 작품이니 당연한 일이다. 엔티티는 강대국의 핵무기 통제 시스템을 장악한 뒤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멸종시키려 하고, 이 묵시록적 세계를 달성할 도구로서 에단을 이용하려 한다. 그에 반해 에단은 엔티티가 계산에 넣지 못한 변수를 찾아 엔티티의 결정론적 세계에 맞선다.
다만 <미임파 8>의 스토리텔링은 전편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주안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편은 인간의 가능성, 아날로그적 미덕을 긍정하는 서사가 핵심이었다. 아무리 엔티티가 디지털 세계를 모두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철저히 아날로그적 장비와 작전으로 무장한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즉, 일견 완벽해 보이는 인공지능이 만든 결정론적인 세계에도 분명히 균열이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미임파 8>은 전편이 입증한 명제를 더 구체화한다. 엔티티의 맹점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을 현실화하는 방법도 보여주고자 한다. 그 방법은 명백하다. 엔티티의 계산에 포함된 외적 행위와 높은 확률의 가능성이 아니라, 낮은 확률과 한계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바로 그 답이다. 에단 헌트의 서사를 총망라하며 '불가능한 임무'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그의 마음 그 자체를 인간의 가능성이자 희망으로 제시한다.
자책과 함께 침전하다
물론 엔티티는 ‘가브리엘’(에사이 모랄레스)을 매개체로 삼아 에단의 굳은 의지를 무너뜨리려고 애쓴다. 실제로 엔티티는 그가 언제나 필연적으로 지고 있어야만 했던 부담감과 자기 의심, 죄책감을 자극하고, 그를 자신의 결정론적 세계 속에 가두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트렸던 그의 과거 선택이 낳은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그가 애써 무시하던 죄책감과 불안감을 상기하는 식이다.
일례로 엔티티는 3편의 맥거핀을 재언급한다. 전처 '줄리아'(미셸 모나한)를 살리려고 에단이 찾아야 했던 '토끼발'이 생화학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라 엔티티의 프로토타입이었음을 알려주면서 그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이에 더해 에단이 1편부터 함께한 친구이자 동료인 루터의 죽음을 못 막도록 유도하면서 그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다음 임무에 다른 팀원들을 투입해야 하는지 고민하도록 유도하려는 것.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 온 에단의 어두운 내면은 첫 번째 하이라이트인 잠수함 액션 시퀀스에서 단적으로 상징화된다. 에단은 침몰한 러시아 잠수함 세바스토폴 호에 들어가 엔티티의 소스 코드를 꺼내 온다. 흥미롭게도 이 시퀀스는 침전하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에단은 잠수함에서도 더 깊숙하고, 어뢰 발사구처럼 좁은 공간으로 밀려들어 간다. 잠수함 선체 역시 무게 중심이 흔들리면서 더 깊이 가라앉는다.
심지어 그가 잠수함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이후에도 침전의 이미지는 유지된다. 수면 위로 올라가려는 에단을 보여줄 때 화면 위아래를 뒤집어 버리기 때문. 그 결과 빙하가 마치 바닥인 것처럼 연출되고, 에단도 해수면 위로 떠오르는 대신 바닷속에 침전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렇게 그는 엔티티의 탄생, 애인과 친구의 희생에 대한 자책감과 함께 가라앉는다.
비상(飛上)하는 이단 헌트
하지만 에단은 물속에서 죽지 않는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잠깐이나마 줄리아의 환상을 본 뒤 이단은 계획대로 깨어나는 데 성공한다. 전편에서 그가 가능성만 보고 기회를 주거나 살려줬던 그레이스, 파리, 드가가 0%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임무를 수행한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 이를 계기로 에단은 확신한다. 과거의 선택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희생을 초래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결국 옳았다는 믿음을 되찾는다.
비록 아내를 수차례 죽을 위기에 빠트렸고, 애인인 '일사'(레베카 페르구손)도 눈앞에서 못 구했고, 루터도 잃어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새롭게 만난 팀원들이 그에게 엔티티를 파괴할 기회를 다시 한번 줬으니까. 그렇기에 에단은 자기 의지력과 팀원의 능력을 믿고 다시 한번 불가능한 임무에 나선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순간에 전 세계가 핵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데도.
두 번째 하이라이트인 비행기 액션 시퀀스는 이처럼 죄책감과 의구심을 딛고 일어선 에단의 의지를 담아내려 한다. 그렇기에 6편 <폴 아웃>의 헬리콥터 액션과 유사해 보이면서도, 세부적인 전개나 묘사가 다르다. 6편에서는 에단과 '어거스트 워커'(헨리 카빌)가 지상으로 내려와 결판을 냈지만, 이번에는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에단이 공중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잠수함 시퀀스와는 정반대로 비상하는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함이다.
그 덕분에 모든 고통을 딛고 일어난 에단의 서사는 관객의 뇌리에 직관적으로 각인될 수 있다. 발 디딜 곳도 마땅치 않은데 그는 도저히 못 막을 것 같은 핵전쟁이라는 미래를 끝내 막아 세운다. 운명처럼 보이는 미래에 굴복하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완수해 내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아름답고 강력하며 위대한지를 온몸으로 증명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비행기가 등장하는데도 <미임파 8>의 클라이맥스가 <탑 건: 매버릭>만큼이나 손에 땀을 쥐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한 번의 질주가 감동적인 이유
에단의 서사를 총망라하는 두 액션 시퀀스는 <미임파> 시리즈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전력 질주로 연결되어 있기에 더 감동적이다. 각각의 씬이 구체적인 함의는 다를지언정,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으니까. 실제로 루터를 구하려고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질주는 침전하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가브리엘의 비행기를 쫓는 질주는 자기 자신과 동료들이 극악의 확률도 뚫을 수 있다는 신뢰를 함축한다.
이에 더해 <미임파 8>은 같은 메시지를 변주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슬론 대통령은 전 세계가 핵무기에 의해 파괴될지 모르는 상황에 몰린 와중에도 넓게는 인간에 대한 믿음, 좁게는 에단 헌트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다. 엔티티의 계산과 예측을 피하고자 말도 되지 않는 작전 계획을 브리핑했는데도, 그의 임무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그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항공모함 단장도, 잠수함 함장도, 1편에서 그와 악연으로 얽힌 '던로'(롤프 색슨)와 '브릭스'(셰이 위검)까지도 무모해 보이는 그의 계획에 믿음을 보낸다. 작위적으로 보이는 순간도 있지만, 이러한 전개는 액션씬에 담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준다. 그렇기에 <미임파> 시리즈만의 매력이자 정체성인 톰 크루즈의 현실감 넘치는 스턴트 액션은 그저 눈만 즐거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뭉클하게 만들어준다.
마지막이라 이해할 수 있는 욕심
다만 <미임파 8>의 완성도는 액션 시퀀스의 쾌감을 온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 욕심이 과한 나머지 도리어 짜임새가 엉성한 지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초반부는 엔티티를 파괴할 임무를 설명하는 분량이 너무 긴 나머지 다소 맥이 빠진다. 또 임무의 난이도를 강조하려고 여러 캐릭터가 돌아가면서 설명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한 대목은 다소 어색하거나 올드하게 느껴진다.
캐릭터의 활용법도 매끄럽지 않다. 특히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에단을 그레이스가 구해내는 장면에서는 그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일사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특히 <미임파 8>이 시리즈를 총망라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더욱 크다. 5편 <로그네이션>에서 그녀가 수중 탱크에 잠입했다가 죽을 뻔한 에단을 이미 한 번 살린 전적이 있는 만큼, 시리즈의 연계성과 완결성을 높일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이에 더해 전편에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중 그레이스를 제외한 이들의 활용도 또한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파리의 경우 가브리엘에게 직접 복수하지 못한 결말 때문에 그녀의 역할도, 가브리엘과의 관계성도 애매해졌다. 드가도 마찬가지다. 그가 에단의 팀에 합류하게 되는 과정은 관객의 유추에 맡겨졌다. 그러다 보니 그의 활약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정쩡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데서 그쳤다.
다행히도 과욕이 빚은 몇몇 단점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다. 무려 30년에 걸친 에단 헌트의 서사를 총망라하는 명(明)이 암(暗)을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잠수 액션과 활공 액션 두 시퀀스만으로도 169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액션 첩보 영화의 정석이자 톰 크루즈라는 스타를 상징하는 시리즈의 최종장으로서 <미임파 8>에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가 결코 과언이 아닌 이유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침전과 질주, 비상 끝에 도달한 최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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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이스 로드> 티저 예고편
캐나다 매니토바주,
다이아몬드 광산 폭발 사고로 갱도에 매립된 26명의 광부들.
이들을 구출할 유일한 방법은 제한시간 내
해빙에 접어든 아이스 로드를 횡단해 구조용 파이프를 운반하는 것뿐.
영하 50도에 달하는 극한의 추위와 눈 폭풍이 도사린 ‘하얀 지옥’ 위니펙 호수 위
불가능한 미션의 수행자로 선택된 전문 트러커 ‘마이크’는
대형 트레일러 3대와 구조팀을 이끌고
예측불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아이스 로드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30시간,
살기 위해 멈추지 말고 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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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엔젤> 예고편
다들 미친 것 아닌가
자유로운 건 아무도 신경 안 써
가고 싶은 데로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야
각자 운명대로 사는 거야
난 타고난 도둑이야
그래서 나한테는 내 것 네 것이 없어
그러니 끝까지 가야지
불법과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이야
끝까지 간다
나는 바로 ‘죽음의 천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