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2023-09-03 23:29:40
상군 해녀는 잃어버린 물꽃의 추억을 떠올리고
<물꽃의 전설> 시사회 리뷰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여름 휴가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바다가 파랗게 넘실거리고 까만 현무암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제주도 특유의 독특하고 시원스러운 풍광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많은 관광객들의 파도에 휩쓸려 이런저런 관광 상품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돌하르방과 감귤 말고도 눈길이 가는 몇몇 물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해녀를 모티프로 한 여러 캐릭터 상품들이었다.
해녀가 어디 제주도에만 있겠냐마는, 예로부터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기로 소문난 그 제주 땅에서 또 해녀만큼 잘 알려진 직업도 드물지 않나. 까만 잠수복에 동그란 물안경을 쓴 채 산소통도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해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아도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 깊이 알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잠수를 오래할 줄 알고 바다 밑바닥에서 전복 따위를 따다가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라는 얄팍한 정보만을 알고 있을 뿐일까. 하지만 세상은 꽤나 살기 좋아졌고 대미디어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해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아래에서 소개할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도 그 중 하나이다.
1. 상군 해녀와 애기 해녀
도시에서 미용 일을 하던 채지애 씨는 어느날 생업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연 선언했다. 나는 해녀가 되겠노라고. 이런 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는 기어코 자신의 어머니와 이웃,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애기 해녀가 되었다. 바다 속을 누비는 일이 어디 쉽겠냐마는, 답답하고 꽉 막힌 것만 같던 도시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을 것이다.
험난한 바다 생활을 가르쳐 준 것은 다름 아닌 선배 해녀들이었다. 영화는 채지애 해녀의 여러 멘토 중 가장 베테랑인 현순직 씨를 조명한다. 팔순이 넘은 나이, 칠십여 년이 넘도록 제주 바다 곳곳을 누벼 온 그 대장 상군 해녀의 머릿속에는 삼달리의 채 알려지지 않은-일부만이 아는- 비밀 지도가 있다. 선배 해녀의 눈과 귀로 파악되고 입으로써 전해져 내려온 그 머릿속 지도 속에는 드넓은 바다 아래의 협곡과 언덕, 들판이 있고, 그 사이사이엔 가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보물이 숨겨져 있다. 그 지도 속에서 바다는 엄하면서도 자비롭고, 거칠면서도 풍요로운 세계다. 그에 대해 논하는 해녀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일련의 모험담을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물질로 말미암아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들의 열정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나이 차가 한참나는 상군 해녀와 애기 해녀 사이의 세대를 초월한 우정 역시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이다.
2. 잊혀져 가는 어느 삶의 터전에 대해
그러나 이러한 해녀들의 삶이 녹아 있는 바다는 점점 잊혀가고 있다. 나이든 대장 상군 해녀의 머릿속과 달리 바다가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와 공장 오염수, 지구 온난화 따위로 인해 바다는 병들어가고, 그에 말미암아 바닷속의 생태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촬영되는 5~6년 사이에도 바다는 빠르게 황폐화됐다. 현순직 해녀가 꿈꾸듯 이야기하던 그 웅장한 물꽃과 바다 풀들의 세계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다 아래에서 자연의 '물건'을 빌려오는 것을 업으로 삼는 해녀들은 이러한 바다의 변화를 가장 기민하게 알아차리지만, 인간이 낳은 대재앙 앞에서는 그저 무력해질 뿐이다.
이 영화는 해녀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우리가 몰랐던 해녀라는 직업과 그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기도 한 바다의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누군가가 가볍게 아끼고 마는 바다를 누군가는 온 열정을 다해 사랑한다. 우리가 시원찮게 생각하는 환경 오염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생계적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해녀들만의 일일까? 당장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고 중금속과 미세플라스틱 따위로 오염된 참치가 식탁에 오르는 요즘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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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랜스포머 : 비스트의 서막> 1차 예고편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압도적인 신작 그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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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타이거 우즈> 공식 예고편
타이거 우즈의 흥망성쇠와 함께 장대한 컴백을 공개한다. 미국 문화, 인종문제, 인간의 본성, 아버지와 아들, 대중이 명성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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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미국 독립 영화 배급사 'A24' 영화 큐레이션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독보적인 개성과 입지로 탄탄한 매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는
배급사 A24를 알고 있으신가요?
<문라이트>에서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현재 상영 중에 있는 영화 <클로즈>까지!
오늘 씨네랩은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를 배급하고 미국 독립영화계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A24 영화사가
제작 혹은 배급한 작품 큐레이션 입니다 :)
평론가 그리고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과 호평을 받은 A24 TOP 7 지금 바로 살펴 보시죠!
문라이트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1분
감독: 베리 젠킨스
출연: 알렉스 R.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개봉: 2023.03.22.
시놉시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명대사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CINE PICK!
A24에서 제작한 영화 <문라이트>는 흑인 소년 '샤이론'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3 파트로 나눈 이야기이자 사랑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3관왕을 차지하며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화 <문라이트>는 A24 제작사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킬링 디어
ⓒ 네이버 영화
개요: 스릴러 | 영국, 아일랜드, 미국 | 121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
개봉: 2018.07.12
시놉시스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과 그에게 다가온 소년 마틴 미스터리한 그와 친밀해질수록 스티븐과 그의 아내의 이상적인 삶은 완벽하게 무너지는데... "이 악몽을 끝내줘. 할 수 있어?"
명대사
이건 은유에요. 상징 같은 거죠.
CINE PICK!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제70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충격적인 복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콜렌 파렐, 니콜 키드먼, 베리 케오간 등이 출연해 절제되면서도 섬뜩한 연기를 펼쳤고 '더 랍스터'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스릴러 작품입니다.
유전
ⓒ 네이버 영화
개요: 미스터리 | 미국 | 127분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토니 콜렛, 밀리 샤피로, 가브리엘 번, 알렉스 울프
개봉: 2018.06.07
시놉시스
‘애니’는 일주일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령이 집에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애니가 엄마와 닮았다며
접근한 수상한 이웃 ‘조안’을 통해 엄마의 비밀을 발견하고, 자신이 엄마와 똑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애니의 엄마로부터 시작돼 아들 ‘피터’와 딸 ‘찰리’에게까지 이어진 저주의 실체가 정체를 드러내는데…
명대사
지금 일어나는 일. 나만 막을 수 있어
CINE PICK!
영화 ‘유전’은 할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저주로 헤어날 수 없는 공포에 지배당한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소름끼치는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유전’에 대해 “공포영화 장르 말고도 기본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면서 “장르 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이면서 우월한 영화”라고 극찬하며 평론 및 대중적으로도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미나리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5분
감독: 정이삭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개봉: 2021.03.03
시놉시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명대사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CINE PICK!
영화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제78회 골든글로브까지 전세계 영화제 78관왕을 기록했다. 더불어 '미나리'의 '순자'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님은 한국 역사 최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아 더욱 재조명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50분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커티스
개봉: 2023.03.01
시놉시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명대사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난 너와 여기 있고 싶어
CINE PICK!
아카데미을 휩쓴 화제의 영화 에.에.올! A24 배급 영화 중 북미, 글로벌 흥행 1위 타이틀을 거머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클로즈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 | 104분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 구스타비 드와엘
개봉: 2023.05.03
시놉시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명대사
오늘은 왜 먼저 갔어?
CINE PICK!
영화 '클로즈'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은 첫 장편작 <걸>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감독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 특유의 다채로운 동선과 디테일한 움직임,
그리고 뛰어난 묘사력이 더해지면서 <클로즈>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한 작품입니다.
<클로즈> 또한 A24가 배급을 맡았습니다.
이 외에도 A24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미드 소마> 등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들을 선보여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클로즈>를 비롯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애프터썬> <더 웨일> 등을 통해
최다 후보를 배출해내는 데 성공하며, 더욱 그 위상과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A24 큐레이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더욱 유익하고 재미난 영화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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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강하게, 공포는 약하게
우리는 종종 가슴 아픈 일들을 만난다. 그렇게 만난 아픈 과거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을 완전히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심한 상처를 남긴 과거를 완전히 잊기는 어렵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괴롭히는 그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에서 멀어져 간다. 그것도 단지 생각이 멀어질 뿐이지 마음 깊은 곳에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서 과거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또한 그렇게 아픈 기억을 지우는 것만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거의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대처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따라 마음의 짐이 가진 무게가 달라진다.
<인시디어스> 1편과 2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인시디어스: 빨간 문> 은 2012년과 2013년에 연달아 개봉했던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에서 9년이 지난 현재를 다루고 있다. 조쉬 램버트(패트릭 윌슨)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일을 다루는 영화는 ‘저 너머 세상‘ 로 불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조쉬와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기이한 일들로 고통받던 조쉬의 가족은 영매인 엘리즈(린 샤예)와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나타나는 기이한 일의 원인을 알게 된다.
특히나 ‘저 너머 세상’에 있는 악령은 현실에서 넘어온 조쉬와 그의 아들 달튼(타이 심킨스)의 삶이 큰 영향을 준다. 지난 이야기 속에서 악령에 의해 조정되어 움직이는 아빠 조쉬는 그의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그건 악령의 조종이라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모든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나서 최면을 통해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을 잊게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니까 조쉬와 달튼은 아픈 상처를 계속 떠올리는 것 보단 완전히 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시리즈의 1편과 2편이 흥미로웠던 건 '저 너머 세상'의 모습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가족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습을 담았다는 데 있다. 특히나 악령에 씌인 아빠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가장 친숙한 존재가 망치를 들고 가족을 해치려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평소엔 아주 좋은 아빠이지만 어느 순간 돌변해서 가족들을 해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마치 영화 <샤이닝>의 정신 나간 아빠를 보는 듯한 모습은 무척 공포스러웠다.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전편에서 9년의 시점이 지난 후를 다루고 있다. 본의 아니게 가정폭력의 상흔을 가지고 살아온 가족들 중 모든 것을 기억하는 아내 리나이(로즈 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그 상흔을 가지고 살아왔다. 비록 조쉬와 달튼은 최면을 통해 그 당시의 기억을 지웠지만 조쉬는 다시 과거와 같은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달튼도 성장과정에서 일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조쉬와 아내는 이혼을 했고 조쉬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아이들을 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하는 아빠 조쉬
영화는 마치 아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아빠에 대한 공포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조쉬와 달튼은 서로 가까워지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아 보인다. 조위와 달튼의 대화를 딱 그 시점만 보면 그저 사춘기 소년과 아빠의 어색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리즈의 1편과 2편까지 생각하면 과거에 겪었던 폭력적인 일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5편에서는 조쉬와 달튼의 상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왠지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을 지웠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과거의 상처를 그냥 덮어놓는 방식으로는 서로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서로 이해해야 비로소 진짜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인시디어스: 빨간 문>에서 훌륭한 건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덮은 가족이 다시 그 기억을 복원하고 그 공포를 이겨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 자체로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아빠와 아들이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정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두 사람은 다시 '저 너머 세상'에서 만나 힘을 합한다.
두 사람이 따로 떨어졌을 때보다는 함께 있을 때 전달되는 감정의 파고가 더 크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불편함을 크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얼마나 상대방을 아끼고 있는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후반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음 속의 아픈 상처를 드러낸 아빠와 아들
이렇게 아빠와 아들, 그리고 조쉬 가족 모두의 서사는 나쁘지 않다.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도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드라마가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데 있다. 과거 시리즈에서 '저 너머 세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벌어졌던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이번 영화에서는 덜 느껴진다. '저 너머 세상' 이 초반에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고 후반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게 보여지는 공간이 오히려 작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악령이나 '저 너머 세상' 보다는 조쉬와 달튼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공포 영화로서의 매력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은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다. 그는 <컨저링> 시리즈를 연출했던 것처럼 집안과 가족들의 주변을 활용해 무척 효율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 이후 <인시디어스3>과 <인시디어스: 라스트 키>는 각각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극 중 조쉬 역할을 연기한 배우 패트릭 윌슨이 직접 연출을 맡았다.
패트릭 윌슨은 자신이 <컨저링>이나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연기를 하면서 경험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 영화를 첫 연출작으로 택했다. 그는 조쉬와 달튼의 부자 관계를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더 강화했고,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 효과인 점프 스케어 등을 활용하면서 공포 영화로서의 효과도 높이려 했다. 드라마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게 전개되었지만 시리즈 특유의 공포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조쉬의 가족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들은 과거의 가슴 아픈 일을 잊는 것을 택했지만, 영화는 그렇게 잊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조쉬와 달튼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순간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공포 영화로서의 힘은 조금 떨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풀려가는 과정 자체는 무척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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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인기 많은 <오징어 게임>, 제가 한번 직접 봤습니다
난 드라마 잘 안 본다. <나의 아저씨>나 <DP>, <인간 수업>도 안 봤다.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장혁의 <추노>를 꼽을 것이다. 점점 살다 보니 TV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지 않게 됐다. 나의 아저씨도 본다 본다 말은 했지만 한 10초 봤을 것이다. 나는 드라마에 진심이 아닌 편이다.
<오징어 게임>은 스킵하는 장면 없이 나온 당일날 9시간 만에 정주행을 끝냈다. 이 작품이 엄청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건 진짜 초 쩌는 작품이다' 싶었던 <추격자>나 <곡성>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랑종>을 보고 극장에서 나온 다음과 비슷하달까? 적당히 잘 만든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해진다. 무려 <오티스>를 이겼다는 말이 들리니 말이다. 나 역시 이 드라마가 재미있었던 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소감을 이 브런치에 공유하고자 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은 있다. 흑막의 정체가 너무 쉽게 예상이 간다던지, 몇몇 인물의 개연성에 있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던지, 베드신이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5화의 다리 건너기에서 더 영리한 수를 쓸 수 있지 않은지 등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법한 의문점 역시 나도 갖고 있다. 근데 나는 단점을 제외하고 황동혁 감독이 어떤 걸 의도하고 만든 지 예상할 수 있었고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전적으로 나의 의견이며 실제 이 드라마를 만든 제작자들이나 배우들의 의견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그냥 사람들이 제시하는 각기 다른 해석 중 하나로 읽어주신다면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아래부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흑막은 왜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된 논리를 펼치는가?
죽은 줄 알았던 일남이 살아서 기훈에게 쪽지를 보냈다. 기훈은 놀란 눈빛으로 쪽지가 적어놓은 장소를 향해 걷는다. 기훈이 묻는다. "당신. 누굽니까." 일남이 대답한다. "저기. 저 남자 말이야. 술에 취했는지 몇 시간째 저러고 있어. 행색으로 봐선 노숙자 같은데. 저대로 놔둔다면 금방 얼어 죽을 텐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자네라면 어쩌겠나. 가던 길 멈추고 저 냄새나는 인간쓰레기를 도와주겠나." 이 대사는 일남을 상징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일남은 지나가는 사람을 '인간쓰레기'라고 규정한다. 다음의 일남의 대사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 돈은 자네의 운과 노력의 대가야. 자네는 그 돈을 쓸 수 있어. 삶은 짦아."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내 고객 한 둘이 그러더군.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게 없다고." "자네가 잊은 게 있어. 난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어. 자네도 제 발로 다시 돌아왔잖아." 일남은 이 <오징어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결과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마치 시스템을 만든 조물주와도 같이.
일남은 이 '오징어 게임'을 만든 인물이다. 이 <오징어 게임>에서 프런트맨이 중요시하게 주장하는 원칙이 있다. 바로 평등과 소외된 이에 대한 수용이다. 전자는 111번 참가자가 스태프들과 결탁해 부정을 취한 게 드러날 때 말했던 논리다. 후자는 미녀가 깍두기처럼 남겼을 때 주장한 말이다. 프런트맨이 주장했다고 해서 일남과 무관하냐? 당연히 아니다. 프런트맨은 운영 스태프들을 총괄하는 입장임과 동시에 호스트의 분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프런트맨의 논리가 일남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오징어 게임> 전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일남이 이 게임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평등과 배려다. 나름대로는 '하류인생들에게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준 것이다. 근데, 이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문답이 있다. 그래서 결국 이 과정이 옳았는가? 아니다. 평등과 배려를 원칙으로 해 1명의 우승자를 찾는 이 <오징어 게임>은 죽는 사람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방식이다. 자세한 묘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이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옥도와도 같다. 앞서 쓴 바와 같이 사람이 죽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른 측면을 본다고 해보자. 2화를 봤을 때, 과연 이 456명의 참가자들에게 있어 현실이 게임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애초부터 게임을 재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5대 5로 여론이 나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위기를 겪은 사람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게임은 다르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연탄불에 생을 끝내려고도 하는데, 게임은 살아남기만 한다면 큰돈을 가질 수도 있다. 난 이 2화에서 각자 인물들이 처한 설정과 게임이 대비된다는 지점과 일남이 <오징어 게임>을 기획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이 같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황동혁 감독은 이 설립 의도가 합리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만든 기득권층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지나가는 인간쓰레기'라고 정의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심지어 어떤 게임에서는 그가 실제 조물주와 비슷하게 쥐락펴락 갖고 놀았다. 우리 스스로에게 간단하게 물을 수 있다. 이 일남의 스탠스는 옳았나? 아니다. 일남과 프런트맨의 논리는 '겉으로는 평등과 원칙을 주장하지만 결과는 살인'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모순이다. 또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릴 권한은 없다. 그것이 상금과도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기할 수 있는 도구를 준다고 해도 말이다. 이 과정이 실제로 평등과 배려를 깔았다 하더라도, 하위계층에 대한 거의 유일한 구제책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아닌 건 아닌 거다. 우리는 이것들을 절대 모르지 않는다.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사회정의에 대해 석학들이 논의했다. 근데 이 논의가 다 유의미했냐? 아니다. 그거 다 이뤄졌으면 모두가 다 살기 좋았다. 그러니까 이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은 모순투성이인 셈이다. '하위 계층에게 올라갈 기회를 준다. 참여에 대한 강제 없이'가 서로를 죽이는 논리지만 우승자를 골랐던 이유가 '너랑 노는 게 재미있어서'인 것도 이에 대한 근거다. 두 질문은 '왜 게임의 승리자로 나를 설정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대답한 것과 같다. 애초부터 일남에게 누구를 살리는 데 있어 내적 논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소외된 사람들은 살리고 패배자는 총으로 쏴버리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말을 못 지키는 것이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내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밑에 깔린다는 걸 알면서도 살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남을 밟고 일어날 거라고 예상 못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 원리원칙에 대해 하위계층이던 상위계층이던 사실 다 알고 있다. 내가 이기면 누군가가 진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오징어 게임>에 강제가 아닌 철저히 본인의 의지로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다. 마음 한 구석에 총알 몇 방 맞아가며 말이다. 내 생각에 황동혁 감독은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 표현하려고 일남과 프런트맨의 논리를 이렇게 설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감독은 현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VIP의 구성과 플레이어들에 대해 알아보자. 다양하게 나눠진다. VIP는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이다. '한국의 게임이 이렇게 재밌다니'라고 말하는 거 보면 각국의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또 동성애자도 있다. 이 부분은 드라마를 잘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2번에서도 언급할 것과 같이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평등과 정의를 중요시한다. 또 약자에 대한 배려도 지킨다. 외적으로 보면 기득권층은 각계각층서 온 사람들에 심지어 동성애자까지 껴 있는 평등한 세상이다. 플레이어들에게 부조리가 일어나는 걸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도덕성은 틀렸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도덕성은 지키면서 그 외적인 건 뭐가 일어나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난 이 인원 구성이 한국사회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내지는 이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소수가 중심이 되는 사회지만 이는 결국 기득권의 이해관계 아래 놓여 있을 뿐이다. 감독은 '이 드라마가 현실에 대한 은유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인원 구성부터 힌트를 준 것이다. 굳이 안 넣어도 됐을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 치매노인이라는 설정도 있으니 말이다.
3. 프런트맨과 29번 스태프는 왜 등장하는 것인가?
프런트 맨이 2화인가 3화 즈음에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다. 난 이것만 듣고도 담당 배우를 맞출 수 있었다. 음성변조를 넣기야 넣었는데 난이도는 쉽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또 지영 역(이유미 배우)이 새벽에게 모히또와 몰디브 어쩌고 하지 않나? 그것도 프런트맨의 정체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이 <남한산성>이었다는 것도 복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또 막상 가면을 벗을 때 솔직히 너무 멋있어서 깜짝 놀랐다. 에이 뻔하지 싶었는데 육성으로 '헉' 소리가 나온 것이다. 눈빛 연기가 대단했다.
아무튼,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29번 스태프의 정체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9번 스태프는 잠입한 황준호다. 황준호는 실종된 형을 찾고 있다. 직업은 경찰이다. 물론 경찰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처음 잠입할 때 29번 스태프를 때려눕히고 변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경찰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영에도 능하고 총도 곧잘 쓰는 부분도 경찰이라는 장점이 작용했다. 그런데 경찰이라는 직업 본질적인 것에 대해 따져보자. 경찰은 사회 부정의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직업적 특성은 황준호의 임무 2순위, 집단살인에 대한 진상규명의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그렇게 모험을 떠나 휴대전화로 이 <오징어 게임>의 전말을 대략적으로는 알리기는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데,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프런트맨의 정체였다. 황준호의 형이자 전직 경찰관이었다. 정의를 추구해야 할 인물이 세상 가장 부조리한 곳의 수장이 되어있었다. 이 <오징어 게임>의 기득권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경찰이 집단살인이 난무하는 곳의 기득권이 되었다는 건 굉장한 아이러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태와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루는 부조리함은 나쁜 사람들만 모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정치인들. 금융인들. 기업인들. 나름대로의 선한 논리는 다 있을 것이다. 사회를 바꾸는 선택지가 정말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에겐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을 뿐. 그냥 눈 뜨고 일어났는데 2021년에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프런트맨 역시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 기생하는 선택지를 골랐으며 이 게임에 대해 폭로하고자 했던 인물(황준호)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형이라는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은 것이 결과로 제시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시스템에서 사회정의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자구책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차피 우리는 이해관계가 만든 판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사회 부정의를 해소에 현실에 기여하는 방식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는 셈이다.
4. 결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난 주인공 성기훈이 결국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딸을 주도적으로 키울 수 있었냐? 아니오. 돈 쓸 수 있었냐? 아니오. 만원도 못 써 은행 직원에게 돈을 빌린다. 상우 어머니에게 진상을 세세히 말할 수 있었냐? 아니오. 살리고 싶은 사람들 다 살리고 빠져나왔나? 아니오.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냐? 아니오. 승리는 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일남이 마지막 병원에서 했던 말이 이 인물에게 제일 중요하다. 이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성기훈은 드라마의 끝까지 본인의 허술한 부분만 드러나다 끝난다. 검은 머리의 성기훈은 부조리가 벌어질 동안 손가락만 빨다가 끝난 셈이다. 근데 한 변곡점을 통해 머리 색이 바뀐다.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분기점을 상징하는 사건이 있다. 게임의 호스트 일남과의 내기다. 일남은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패배한 듯 보인다. 이 내기에서 이긴 이후에 염색을 한다. 머리색을 주인공의 각성이라는 상징으로 가정해보자. 빨간 머리로 염색한 장면은 '이 인물이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특별한 해결방법으로 시스템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것의 암시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빨간색으로 염색 안 한다. 보통 그런 차림이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 아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파란 모자를 쓰고 검은색 머리 스타일에 대해 무난한 코디라고 받아들인다. 기훈은 머리의 염색을 통해 한풀 더 각성해 이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당연히 쉽진 않겠지. 맞은편 지하철에서 의문의 남자와 재회하는 장면을 보자. 다른 남자가 따귀를 맞고 있는걸 뻔히 보면서도 다른 <오징어 게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의 어머니에게 돈을 주고 떠나거나 게임의 참여자가 되는 등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입장이 되려고 노력한다. 황동혁 감독은 각본을 촘촘히 쓰면서 색상의 대비나 머리색이라는 상징으로 어떻게 이 성기훈이라는 인물이 <오징어 게임>을 받아들일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결말의 의미는 성기훈이 이제 우리 사회의 패배자가 아닌 맞서 싸우는 주체가 된다는 의미. 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쓰다 보니 막 뱉어낸 것 같다.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니 무조건 따른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난 좋은 드라마를 본 것 같아 시간이 후딱 갔다고 생각한다. 시즌 2 계획 없다고 하던데 솔직히 그냥 하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한다. 빠른 시일 내에 후속작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아. 정호연이란 탑 모델을 배우로 발굴해준 황동혁 감독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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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붉은 전설 -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고는' 볼만하다
TVA 기반의 애니메이션은 사실 대부분 그 작품의 팬들이 본다. 왜냐하면 애초에 제작의도 자체가 팬층만을 위한 팬서비스에 가깝고, 그렇기에 작품의 독립성도 낮기에 아예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에 리뷰하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붉은 전설"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TVA의 연장선상에 놓여진 작품이다. 필자는 이 원작의 팬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단 하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인 "펄프 픽션"의 각본가 로저 아버리가 만점(!)을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이 씨네필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이 사건(?)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펄프 픽션을 굉장히 재밌고 봤고 고평가하는 작품인데, 그 영화의 각본가가 무려 만점을 줬다니! 필자가 아는 원작은 '그 쪽 계열', 오타쿠 타겟층의 애니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딱 하나다. '생각보다는' 괜찮다. 필자는 과거에 장르는 다르지만 TVA 기반 극장판 중 "주문은 토끼입니까?? ~디어 마이 시스터~"를 보고 정말 심각하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졸작의 반열이었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나마 평작이라 부를만한 영화. 원래 원작이 있는, 그것도 오타쿠 타겟층이라면 한계가 보이는데, 이 영화는 그 한계를 잘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애쓴 영화이다. 애초에 이 영화의 감독을 전세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영화 역사상 거장 감독을 앉혀둔다고 해서 걸작이 탄생하지는 못한다. 애초에 이 영화는 TVA라는 발목을 잡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진지해지다가 유쾌하게 풀어내는 점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필자는 이 영화 기반의 TVA를 1기를 초반만 보다 말았는데, 그 정도만 알아도 영화 이해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대다수의 애니에서 악평의 요소로 작용하는 '작붕'을 호평 받을 수 있게 일종의 유머 포인트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같이 훌륭하고 경이로운 작화로 승부하는 애니메이션 위주로 보다가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니 신선했다. 솔직히 이것도 나름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여러 장점들을 말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알아야 한다는 점에 영화의 독립성은 낮게 평할 수 밖에 없고, 필자가 오타쿠 계열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원작을 알고 좋아한다면 추천. 애초에 이 쪽 계열 애니가 다 그렇지만 말이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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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엠마 (2020), 낭만주의 영국에서 펼쳐지는 하트시그널 (안야 테일러 조이/넷플릭스/영국 시대극/영국 영화)
엠마 (2020)
“낭만주의 영국에서 펼쳐지는 하트시그널”
영화 <엠마> 정보
개봉: 2020.02.27
감독: 어텀 드 와일드 (장편영화 데뷔작)
출연: 안야 테일러 조이, 자니 플린, 미아 고스, 빌 나이, 미란다 하트, 칼럼 터너, 조쉬 오코너 등
원작: 제인 오스틴 소설 <Emma>
중매를 좋아하는 귀족 아가씨의 성장기
중매가 취미인 귀족 아가씨 '엠마 우드하우스(안야 테일러 조이)'는 스물 한 살에 나이에도 아버지(빌 나이)와 단 둘이 살면서 마을 사람들을 이어주는 걸 삶의 낙으로 삼고 있다.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이 잘 풀렸던 그녀 앞에 사생아 출신인 여자 기숙학교 학생 '해리엇 스미스(미아 고스)'가 나타나 그의 짝을 점지어 주려 하는데,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마을의 목사 '엘튼(조쉬 오코너)'과 해리엇의 중매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또다른 상류층 자제 '프랭크 처칠(칼럼 터너)'과 눈에 거슬리는 '제인 페어팩스(앰버 앤더슨)'가 등장하면서 그녀의 계획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해리엇의 중매 실패에 책임을 느낀 엠마는 두 번째 시도를 감행하지만, 관계에 함께 얽힌 '조지 나이틀리(자니 플린)'에게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내적 혼란을 겪는다. 사랑 앞에 자만했던 그녀는 자신의 오만을 인정하고, 한 발짝 더 성장해나간다.
화려한 의상, 아름다운 영상미
<엠마>는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인만큼 독보적인 영상미를 자랑한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인물들의 화려한 의상과 거주 공간의 장식들, 자연광을 활용한 화사한 풍경의 색감들이 가져다주는 시각적인 효과는 매우 강렬하다. 비주얼적으로 눈길을 끄는 요인들이 많다보니 내용 자체가 극적이거나 사건이 많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상대적으로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귀족 자제인만큼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러운 의상들 수십 벌이 등장하는데, 의상에 보통 신경을 쓴 게 아닌 듯 하다.
<엠마>가 장편영화 데뷔작인 '어텀 드 와일드' 감독은 그동안 뮤직비디오 위주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그래서인지 화면을 예쁘게 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마을의 주인공과도 같은 '엠마'를 예쁘게 보이게끔 촬영 기법이나 화면 구도, 색감 톤 배치 등을 세밀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장면 장면의 채도가 높고, 화사하고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어 시각적인 피로도를 줄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한 자연광과 색감 간의 대칭과 조화로 인해 굉장히 자연스럽고 안정적이다. 영국 사극 작품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일 지라도, 영상미와 화려한 비주얼을 감상하기 위해 꼭 봐야 하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유럽여행을 가서 왕립미술관 전시를 관람하거나 오페라 공연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엠마의 하트시그널을 동반한 성장기
중매가 취미인 '엠마'는 마을에서 제일 예쁘고, 부자인 아가씨이기 때문에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중매를 할 때도, 자신이 점지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극 초반~중반까지의 엠마는 예쁘고 똑똑하지만, 다소 오만하고 허영심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자만은 '해리엇'의 중매 실패를 불러왔고, 젊은 청춘남녀의 사랑을 훼방놓을 뻔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던 자신마저도 '프랭크 처칠'과 '제인 페어펙스'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한다.
극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넘치지만 엠마와 이들이 다른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엠마는 부잣집 자제임에도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성장해나간다는 것. 직설적인 언행으로 상처를 줘버린 이웃 '베이츠(미란다 하트)'에게 직접 사과의 말을 전하고, 자신 때문에 사랑에 실패한 '해리엇'을 위해 마지막 큐피트의 일을 수행한다. 그리고 매번 바른 말로 자신을 질책하는 '조지 나이틀리'의 말을 받아들이고, 반성하기도 한다. 시작은 분명 엠마가 날린 잘못된 화살로 관계가 꼬여버린 하트시그널이였지만, 끝은 그녀의 성장기로 마무리된 것이다.
고리타분한 시대극 탈피, 센스와 유머
유럽 배경의 시대극을 생각하면, 왠지 고리타분하고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엠마>는 19세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굉장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원작 소설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각색을 시도했고, 다양한 인물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에서 비롯된 사랑스러운 멜로드라마에 초점을 맞춰 흥미를 쉽게 유발한다. 단순히 영상미에만 시선이 빠져들기에는 스토리의 재미가 크게 뒤지지는 않는다.
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퀸스 갬빗>과 여러 스릴러 영화로 이미 얼굴을 충분히 알린 '안야 테일러 조이'는 물론, 시트콤 <미란다>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미란다 하트'는 적은 분량임에도 웃음을 유발한다. 넷플릭스 인기드라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에 '애덤'으로 등장하는 '코너 스윈델스'와 '릴리'로 등장하는 '타냐 레이놀즈' 역시 반가운 얼굴들이다. 그리고, 극의 그 어떠한 젊은 남성 캐릭터들보다도 매력이 넘치는 '빌 나이'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고, 연기력들이 모두 출중하다보니 극에서 다소 소홀하게 다뤄지는 인물들 간의 사랑과 우정 관계를 연기로 커버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센스와 유머가 함께 어우러지는 건 덤.
스릴러 주인공에서 벗어난 안야 테일러 조이의 새로운 가능성
<엠마> 이전의 "안야 테일러 조이"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대부분 스릴러나 공포 장르의 작품들로 많이 채워져 있었다. 비슷한 장르에 반복해서 출연한 탓인지 스릴러물에 적합하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연기하기 어렵거나 어두운 캐릭터 위주로 섭외를 받는 듯 했다. 하지만, <엠마>를 통해 공감 능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엠마'를 연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에 성공한다. 분명 완벽하게 호감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은 아니지만, 친구에게 사과할 줄 아는 솔직담백한 모습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적극적인 모습을 함께 보이며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엠마>는 곧 그녀에게 밝은 분위기의 작품도 소화해낼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작품인 셈이다.
2시간 안에 담기엔 넘치는 스토리
<엠마>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에 등장하는 인물이 상당히 많고, 인물 간의 관계가 복잡하다보니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내기에 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영화가 아닌 미니시리즈 장편이었다면 훨씬 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수월했으리라 본다. '엠마'의 이야기 외에도 이웃과 친인척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사건들이 대사를 통해서만 풀어지다보니 인물 간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극 초반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사건들은 아직 관계도의 틀이 머릿속에 제대로 잡히지 않은 관객의 입장에서 지루함과 산만함을 느낄 수 있다. 영상미와 캐릭터 면에서 확실한 장점이 있는 작품이지만, 분량 조절에 실패한 스토리와 페이스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이미지 출처: IMDB
* 본 콘텐츠는 블로거 겔겔겔스타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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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라리 | 경로를 이탈한 집착과 욕망의 레이싱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57년 여름,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아담 드라이버)는 위기에 처한다. 좀처럼 차가 팔리지 않으면서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선 것. 이에 더해 엔초가 사랑하는 두 여자도 그를 괴롭게 한다. 아내이자 동업자인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는 엔초의 외도를 문제 삼아 회사의 지분을 무기로 사용하고, 애인 '리나'(셰일린 우들리)는 아들 피에로를 좀처럼 '페라리'로 인정하지 않는 엔초와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에 엔초는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포드를 비롯해 다른 자동차 회사의 투자 제의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은 거부한다. 대신 가장 빠르다는 드라이버를 모집하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전역 공도를 가로지르는 1,000마일 레이스 '밀레 밀리아'에서 우승하기 위해.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 우승한 레이스카의 판매량이 오를 테고, 높아진 명망은 시끄러운 개인사를 충분히 덮어줄 테니까.
애매하게 걸친 양다리
전기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인물 중심 또는 사건 중심이다. 전자는 연대기적 구성이다. 한 인물을 유년 시절부터 관찰하면서 그의 생애를 보여주는 식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프리실라> 등이 해당된다. 후자는 <소셜 네트워크>, <스티브 잡스>, <오펜하이머>와 같은 영화를 말한다. 특정 사건을 통해 한 인물의 여러 면모를 동시다발적으로 관찰하는 방식으로, 그림으로 말하자면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같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주변 인물의 활용법이다. 전자는 철저히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다.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후자는 다르다. 주인공도 중요하지만, 주인공과 관계를 맺는 조연들의 역할이 더 크다. 다양한 주변인과의 관계 속에 그의 생애, 가치관, 변화를 녹여서 보여줄 수 있으니까.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 못지않게 스트로스, 그로브스, 키티와 같은 조연들이 빛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는 이 차이점을 간과한 듯하다. <페라리>는 페라리의 창립자인 엔초 페라리가 1957년 '밀레 밀리아' 레이스를 앞둔 상황을 다룬다. 즉, 사건 중심의 방식을 선택한 전기영화다. 문제는 철저히 엔초 페라리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것. 이처럼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 소재와 사건 자체는 나름 자극적이고 흥미로운데도 불구하고 <페라리>는 무미건조하다.
엔초의 다른 이름, 집착
극 중 엔초 페라리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집착이다. 그는 카 레이싱에 집착한다. 레이싱 드라이버 출신인 그에게는 회사마저도 카 레이싱 경기에 참여하고 승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회사의 경영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마저도 카 레이싱에서 찾는다. 그에게는 '밀레 밀리아'가 해결책이다. 레이스에서 이기면 우승한 차를 더 많이 팔아서 경영 실적을 개선할 수 있을 테니까.
반면에 포드와 같은 다른 자동차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는 선택지는 그에게 무의미하다. 외부 자본이 개입하는 순간, 엔초 페라리는 회사의 주도권을 온전히 가질 수 없으니까. 이는 곧 회사 차원에서 레이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므로 엔초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는 대신 더 빠른 드라이버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된다.
<페라리>는 엔초의 집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기어코 레이싱에서 우승을 차지한 끝에 페라리라는 이름도, 레이싱을 우선시하는 자동차 회사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레이싱만 바라보는 집착은 결실 이상의 피해를 초래한다. 시험 운행 중 문제가 드러난 차를 그대로 본 시합에 투입한 결과 드라이버와 관중 모두 피를 보고 만다. 이처럼 엔초의 집착과 열망은 명암이 분명히 갈리기에 뇌리에 더욱 각인된다.
마이클 만의 짙은 그림자
흥미롭게도 엔초의 집착은 유달리 타인과의 관계에서 강조된다. 그는 페라리를 위해서라면 진심으로 사랑한 두 여자와의 약속을 모두 저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들 '디노'를 잃은 후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던 라우라가 얼핏 드러낸 진심을 이용해서는 자금을 융통한다. 피에로를 아들로 인정할 것처럼 굴면서 리나의 기대감을 키우다가 배신하면서 회사와 자기 명망을 지키기도 한다.
즉, <페라리>는 집착 때문에 주변 사람을 소모품으로 대하면서도 그 집착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욕망을 꿰뚫어 볼 줄도 아는, 복잡 미묘한 사람에 관한 캐릭터쇼인 셈이다. 이는 엔초 페라리의 서사에서 마이클 만 특유의 매력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게 가장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남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나 의무 때문에 가족에게, 애인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거나 끝없이 갈등을 빚는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마이클 만의 필모그래피는 이 남성들이 겪는 의무감, 고초, 인생 풍파, 후회로 가득하다. 특히 그들의 심경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행동 위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앞뒤 설명 없이 레이스에서 우승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엔초의 모습을 건조하게 보여주는 <페라리> 또한 마찬가지다.
드라마와 형식의 부조화
문제는 마이클 만 특유의 드라마가 형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 <페라리>는 '밀레 밀리아'라는 사건을 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조합해 엔초 페라리를 그려내는 영화다. 라우라와 리나를 비롯해 여러 드라이버의 서사가 한 데 모였을 때 엔초가 얼마나 레이싱에 미쳐 있는 사람인지 묘사되는 구성인 셈이다. 그래야만 그의 집착이 갖는 양방향성도 더 입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그 구성을 채워야 할 내용도 명확했다. 사랑은 식었지만, 사업 파트너이며 긴 세월을 함께한 아내. 아들을 낳아줬고,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애인. 목숨을 건 경쟁에 본인을 대신해서 뛰어들어야 하는 선수들. 엔초는 그들의 요구, 욕망, 그리고 삶의 무게를 떠안은 채로 매 순간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페라리>는 위의 내용을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엔초가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설령 갈등을 빚더라도, 그의 시점에서 이유를 보여준 뒤 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으로 갈무리한다. 그 결과 주변 캐릭터들은 엔초의 난관일 뿐이고, 복잡해 보였던 그의 인간관계도 평이해진다. 엔초가 피에로를 데리고 '디노'의 묘를 방문하는 결말로부터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견 자극적인 소재도 빛을 잃는다. 외도 후 약속보다 늦게 집에 들어온 엔초에게 라우라가 권총을 쏘는 오프닝까지만 해도 재벌가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내 엔초의 이기심으로 말미암은 여자 문제, 출생의 비밀과 같은 소재의 원초적인 매력은 이내 무미건조해진다. 라우라도, 리나도 그저 들러리에 불과해지니 엔초의 난잡한 사생활은 익숙한 막장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공허한 레이싱
만약 후반부를 장식한 레이스 시퀀스가 강렬했다면 상술한 문제들은 덮어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레이싱 장면은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역할을 나름 충실히 해낸다. 페라리의 레이싱카 중 하나가 전복될 때, 순간적으로 음향을 소거하면서 긴장감과 몰입도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식이다. 이에 더해 도심 한가운데에 짚단으로 레이싱 트랙을 만드는 것과 같은 수십 년 전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출한 디테일도 신선한 볼거리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다. 레이스의 존재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극 중 드라이버들은 엔초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누가 1등을 하는가 보다는 빨간 차가 1등을 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레이스 안에서 페라리 드라이버끼리 펼치는 경쟁은 애초에 흥미도, 절박함도 유발하지 못한다. 이는 마이클 만이 기획한 <포드 V 페라리>에 비해 <페라리>의 레이스 시퀀스가 유독 밋밋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페라리>는 레이싱 영화로서의 쾌감이나 박진감도, 막장 드라마로서의 원초적인 자극도 모두 놓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전기 영화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만다. 엔초 페라리라는 인물이 얼마나 레이싱에 진심이었는지를, 또 페라리라는 브랜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실존 인물을 되살린 것 같은 애덤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셰일린 우들리의 열연이 아까울 따름이다.
Poor 형편없음
르망 24시에 F1 레이스카로 출전한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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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랜스포머 : 비스트의 서막> 1차 예고편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압도적인 신작 그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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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타이거 우즈> 공식 예고편
타이거 우즈의 흥망성쇠와 함께 장대한 컴백을 공개한다. 미국 문화, 인종문제, 인간의 본성, 아버지와 아들, 대중이 명성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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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미국 독립 영화 배급사 'A24' 영화 큐레이션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독보적인 개성과 입지로 탄탄한 매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는
배급사 A24를 알고 있으신가요?
<문라이트>에서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현재 상영 중에 있는 영화 <클로즈>까지!
오늘 씨네랩은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를 배급하고 미국 독립영화계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A24 영화사가
제작 혹은 배급한 작품 큐레이션 입니다 :)
평론가 그리고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과 호평을 받은 A24 TOP 7 지금 바로 살펴 보시죠!
문라이트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1분
감독: 베리 젠킨스
출연: 알렉스 R.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개봉: 2023.03.22.
시놉시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명대사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CINE PICK!
A24에서 제작한 영화 <문라이트>는 흑인 소년 '샤이론'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3 파트로 나눈 이야기이자 사랑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3관왕을 차지하며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화 <문라이트>는 A24 제작사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킬링 디어
ⓒ 네이버 영화
개요: 스릴러 | 영국, 아일랜드, 미국 | 121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
개봉: 2018.07.12
시놉시스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과 그에게 다가온 소년 마틴 미스터리한 그와 친밀해질수록 스티븐과 그의 아내의 이상적인 삶은 완벽하게 무너지는데... "이 악몽을 끝내줘. 할 수 있어?"
명대사
이건 은유에요. 상징 같은 거죠.
CINE PICK!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제70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충격적인 복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콜렌 파렐, 니콜 키드먼, 베리 케오간 등이 출연해 절제되면서도 섬뜩한 연기를 펼쳤고 '더 랍스터'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스릴러 작품입니다.
유전
ⓒ 네이버 영화
개요: 미스터리 | 미국 | 127분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토니 콜렛, 밀리 샤피로, 가브리엘 번, 알렉스 울프
개봉: 2018.06.07
시놉시스
‘애니’는 일주일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령이 집에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애니가 엄마와 닮았다며
접근한 수상한 이웃 ‘조안’을 통해 엄마의 비밀을 발견하고, 자신이 엄마와 똑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애니의 엄마로부터 시작돼 아들 ‘피터’와 딸 ‘찰리’에게까지 이어진 저주의 실체가 정체를 드러내는데…
명대사
지금 일어나는 일. 나만 막을 수 있어
CINE PICK!
영화 ‘유전’은 할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저주로 헤어날 수 없는 공포에 지배당한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소름끼치는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유전’에 대해 “공포영화 장르 말고도 기본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면서 “장르 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이면서 우월한 영화”라고 극찬하며 평론 및 대중적으로도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미나리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5분
감독: 정이삭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개봉: 2021.03.03
시놉시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명대사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CINE PICK!
영화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제78회 골든글로브까지 전세계 영화제 78관왕을 기록했다. 더불어 '미나리'의 '순자'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님은 한국 역사 최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아 더욱 재조명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50분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커티스
개봉: 2023.03.01
시놉시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명대사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난 너와 여기 있고 싶어
CINE PICK!
아카데미을 휩쓴 화제의 영화 에.에.올! A24 배급 영화 중 북미, 글로벌 흥행 1위 타이틀을 거머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클로즈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 | 104분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 구스타비 드와엘
개봉: 2023.05.03
시놉시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명대사
오늘은 왜 먼저 갔어?
CINE PICK!
영화 '클로즈'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은 첫 장편작 <걸>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감독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 특유의 다채로운 동선과 디테일한 움직임,
그리고 뛰어난 묘사력이 더해지면서 <클로즈>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한 작품입니다.
<클로즈> 또한 A24가 배급을 맡았습니다.
이 외에도 A24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미드 소마> 등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들을 선보여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클로즈>를 비롯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애프터썬> <더 웨일> 등을 통해
최다 후보를 배출해내는 데 성공하며, 더욱 그 위상과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A24 큐레이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더욱 유익하고 재미난 영화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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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강하게, 공포는 약하게
우리는 종종 가슴 아픈 일들을 만난다. 그렇게 만난 아픈 과거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을 완전히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심한 상처를 남긴 과거를 완전히 잊기는 어렵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괴롭히는 그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에서 멀어져 간다. 그것도 단지 생각이 멀어질 뿐이지 마음 깊은 곳에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서 과거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또한 그렇게 아픈 기억을 지우는 것만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거의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대처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따라 마음의 짐이 가진 무게가 달라진다.
<인시디어스> 1편과 2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인시디어스: 빨간 문> 은 2012년과 2013년에 연달아 개봉했던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에서 9년이 지난 현재를 다루고 있다. 조쉬 램버트(패트릭 윌슨)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일을 다루는 영화는 ‘저 너머 세상‘ 로 불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조쉬와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기이한 일들로 고통받던 조쉬의 가족은 영매인 엘리즈(린 샤예)와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나타나는 기이한 일의 원인을 알게 된다.
특히나 ‘저 너머 세상’에 있는 악령은 현실에서 넘어온 조쉬와 그의 아들 달튼(타이 심킨스)의 삶이 큰 영향을 준다. 지난 이야기 속에서 악령에 의해 조정되어 움직이는 아빠 조쉬는 그의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그건 악령의 조종이라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모든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나서 최면을 통해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을 잊게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니까 조쉬와 달튼은 아픈 상처를 계속 떠올리는 것 보단 완전히 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시리즈의 1편과 2편이 흥미로웠던 건 '저 너머 세상'의 모습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가족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습을 담았다는 데 있다. 특히나 악령에 씌인 아빠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가장 친숙한 존재가 망치를 들고 가족을 해치려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평소엔 아주 좋은 아빠이지만 어느 순간 돌변해서 가족들을 해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마치 영화 <샤이닝>의 정신 나간 아빠를 보는 듯한 모습은 무척 공포스러웠다.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전편에서 9년의 시점이 지난 후를 다루고 있다. 본의 아니게 가정폭력의 상흔을 가지고 살아온 가족들 중 모든 것을 기억하는 아내 리나이(로즈 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그 상흔을 가지고 살아왔다. 비록 조쉬와 달튼은 최면을 통해 그 당시의 기억을 지웠지만 조쉬는 다시 과거와 같은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달튼도 성장과정에서 일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조쉬와 아내는 이혼을 했고 조쉬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아이들을 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하는 아빠 조쉬
영화는 마치 아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아빠에 대한 공포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조쉬와 달튼은 서로 가까워지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아 보인다. 조위와 달튼의 대화를 딱 그 시점만 보면 그저 사춘기 소년과 아빠의 어색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리즈의 1편과 2편까지 생각하면 과거에 겪었던 폭력적인 일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5편에서는 조쉬와 달튼의 상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왠지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을 지웠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과거의 상처를 그냥 덮어놓는 방식으로는 서로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서로 이해해야 비로소 진짜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인시디어스: 빨간 문>에서 훌륭한 건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덮은 가족이 다시 그 기억을 복원하고 그 공포를 이겨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 자체로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아빠와 아들이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정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두 사람은 다시 '저 너머 세상'에서 만나 힘을 합한다.
두 사람이 따로 떨어졌을 때보다는 함께 있을 때 전달되는 감정의 파고가 더 크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불편함을 크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얼마나 상대방을 아끼고 있는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후반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음 속의 아픈 상처를 드러낸 아빠와 아들
이렇게 아빠와 아들, 그리고 조쉬 가족 모두의 서사는 나쁘지 않다.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도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드라마가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데 있다. 과거 시리즈에서 '저 너머 세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벌어졌던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이번 영화에서는 덜 느껴진다. '저 너머 세상' 이 초반에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고 후반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게 보여지는 공간이 오히려 작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악령이나 '저 너머 세상' 보다는 조쉬와 달튼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공포 영화로서의 매력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은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다. 그는 <컨저링> 시리즈를 연출했던 것처럼 집안과 가족들의 주변을 활용해 무척 효율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 이후 <인시디어스3>과 <인시디어스: 라스트 키>는 각각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극 중 조쉬 역할을 연기한 배우 패트릭 윌슨이 직접 연출을 맡았다.
패트릭 윌슨은 자신이 <컨저링>이나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연기를 하면서 경험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 영화를 첫 연출작으로 택했다. 그는 조쉬와 달튼의 부자 관계를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더 강화했고,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 효과인 점프 스케어 등을 활용하면서 공포 영화로서의 효과도 높이려 했다. 드라마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게 전개되었지만 시리즈 특유의 공포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조쉬의 가족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들은 과거의 가슴 아픈 일을 잊는 것을 택했지만, 영화는 그렇게 잊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조쉬와 달튼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순간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공포 영화로서의 힘은 조금 떨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풀려가는 과정 자체는 무척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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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인기 많은 <오징어 게임>, 제가 한번 직접 봤습니다
난 드라마 잘 안 본다. <나의 아저씨>나 <DP>, <인간 수업>도 안 봤다.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장혁의 <추노>를 꼽을 것이다. 점점 살다 보니 TV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지 않게 됐다. 나의 아저씨도 본다 본다 말은 했지만 한 10초 봤을 것이다. 나는 드라마에 진심이 아닌 편이다.
<오징어 게임>은 스킵하는 장면 없이 나온 당일날 9시간 만에 정주행을 끝냈다. 이 작품이 엄청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건 진짜 초 쩌는 작품이다' 싶었던 <추격자>나 <곡성>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 <랑종>을 보고 극장에서 나온 다음과 비슷하달까? 적당히 잘 만든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해진다. 무려 <오티스>를 이겼다는 말이 들리니 말이다. 나 역시 이 드라마가 재미있었던 사람으로서 내가 느낀 소감을 이 브런치에 공유하고자 한다. 물론 아쉬운 지점은 있다. 흑막의 정체가 너무 쉽게 예상이 간다던지, 몇몇 인물의 개연성에 있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던지, 베드신이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5화의 다리 건너기에서 더 영리한 수를 쓸 수 있지 않은지 등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법한 의문점 역시 나도 갖고 있다. 근데 나는 단점을 제외하고 황동혁 감독이 어떤 걸 의도하고 만든 지 예상할 수 있었고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전적으로 나의 의견이며 실제 이 드라마를 만든 제작자들이나 배우들의 의견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그냥 사람들이 제시하는 각기 다른 해석 중 하나로 읽어주신다면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아래부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흑막은 왜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된 논리를 펼치는가?
죽은 줄 알았던 일남이 살아서 기훈에게 쪽지를 보냈다. 기훈은 놀란 눈빛으로 쪽지가 적어놓은 장소를 향해 걷는다. 기훈이 묻는다. "당신. 누굽니까." 일남이 대답한다. "저기. 저 남자 말이야. 술에 취했는지 몇 시간째 저러고 있어. 행색으로 봐선 노숙자 같은데. 저대로 놔둔다면 금방 얼어 죽을 텐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자네라면 어쩌겠나. 가던 길 멈추고 저 냄새나는 인간쓰레기를 도와주겠나." 이 대사는 일남을 상징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일남은 지나가는 사람을 '인간쓰레기'라고 규정한다. 다음의 일남의 대사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 돈은 자네의 운과 노력의 대가야. 자네는 그 돈을 쓸 수 있어. 삶은 짦아."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내 고객 한 둘이 그러더군.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게 없다고." "자네가 잊은 게 있어. 난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어. 자네도 제 발로 다시 돌아왔잖아." 일남은 이 <오징어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결과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마치 시스템을 만든 조물주와도 같이.
일남은 이 '오징어 게임'을 만든 인물이다. 이 <오징어 게임>에서 프런트맨이 중요시하게 주장하는 원칙이 있다. 바로 평등과 소외된 이에 대한 수용이다. 전자는 111번 참가자가 스태프들과 결탁해 부정을 취한 게 드러날 때 말했던 논리다. 후자는 미녀가 깍두기처럼 남겼을 때 주장한 말이다. 프런트맨이 주장했다고 해서 일남과 무관하냐? 당연히 아니다. 프런트맨은 운영 스태프들을 총괄하는 입장임과 동시에 호스트의 분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프런트맨의 논리가 일남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오징어 게임> 전부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일남이 이 게임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평등과 배려다. 나름대로는 '하류인생들에게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준 것이다. 근데, 이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문답이 있다. 그래서 결국 이 과정이 옳았는가? 아니다. 평등과 배려를 원칙으로 해 1명의 우승자를 찾는 이 <오징어 게임>은 죽는 사람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방식이다. 자세한 묘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이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옥도와도 같다. 앞서 쓴 바와 같이 사람이 죽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른 측면을 본다고 해보자. 2화를 봤을 때, 과연 이 456명의 참가자들에게 있어 현실이 게임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애초부터 게임을 재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5대 5로 여론이 나뉘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위기를 겪은 사람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게임은 다르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연탄불에 생을 끝내려고도 하는데, 게임은 살아남기만 한다면 큰돈을 가질 수도 있다. 난 이 2화에서 각자 인물들이 처한 설정과 게임이 대비된다는 지점과 일남이 <오징어 게임>을 기획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이 같은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황동혁 감독은 이 설립 의도가 합리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만든 기득권층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지나가는 인간쓰레기'라고 정의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심지어 어떤 게임에서는 그가 실제 조물주와 비슷하게 쥐락펴락 갖고 놀았다. 우리 스스로에게 간단하게 물을 수 있다. 이 일남의 스탠스는 옳았나? 아니다. 일남과 프런트맨의 논리는 '겉으로는 평등과 원칙을 주장하지만 결과는 살인'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모순이다. 또 돈이 많다고 해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릴 권한은 없다. 그것이 상금과도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기할 수 있는 도구를 준다고 해도 말이다. 이 과정이 실제로 평등과 배려를 깔았다 하더라도, 하위계층에 대한 거의 유일한 구제책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아닌 건 아닌 거다. 우리는 이것들을 절대 모르지 않는다.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사회정의에 대해 석학들이 논의했다. 근데 이 논의가 다 유의미했냐? 아니다. 그거 다 이뤄졌으면 모두가 다 살기 좋았다. 그러니까 이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은 모순투성이인 셈이다. '하위 계층에게 올라갈 기회를 준다. 참여에 대한 강제 없이'가 서로를 죽이는 논리지만 우승자를 골랐던 이유가 '너랑 노는 게 재미있어서'인 것도 이에 대한 근거다. 두 질문은 '왜 게임의 승리자로 나를 설정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대답한 것과 같다. 애초부터 일남에게 누구를 살리는 데 있어 내적 논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소외된 사람들은 살리고 패배자는 총으로 쏴버리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말을 못 지키는 것이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우리는 내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밑에 깔린다는 걸 알면서도 살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언젠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남을 밟고 일어날 거라고 예상 못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 원리원칙에 대해 하위계층이던 상위계층이던 사실 다 알고 있다. 내가 이기면 누군가가 진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오징어 게임>에 강제가 아닌 철저히 본인의 의지로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다. 마음 한 구석에 총알 몇 방 맞아가며 말이다. 내 생각에 황동혁 감독은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 표현하려고 일남과 프런트맨의 논리를 이렇게 설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감독은 현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VIP의 구성과 플레이어들에 대해 알아보자. 다양하게 나눠진다. VIP는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이다. '한국의 게임이 이렇게 재밌다니'라고 말하는 거 보면 각국의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또 동성애자도 있다. 이 부분은 드라마를 잘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2번에서도 언급할 것과 같이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평등과 정의를 중요시한다. 또 약자에 대한 배려도 지킨다. 외적으로 보면 기득권층은 각계각층서 온 사람들에 심지어 동성애자까지 껴 있는 평등한 세상이다. 플레이어들에게 부조리가 일어나는 걸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도덕성은 틀렸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도덕성은 지키면서 그 외적인 건 뭐가 일어나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난 이 인원 구성이 한국사회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내지는 이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소수가 중심이 되는 사회지만 이는 결국 기득권의 이해관계 아래 놓여 있을 뿐이다. 감독은 '이 드라마가 현실에 대한 은유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인원 구성부터 힌트를 준 것이다. 굳이 안 넣어도 됐을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 치매노인이라는 설정도 있으니 말이다.
3. 프런트맨과 29번 스태프는 왜 등장하는 것인가?
프런트 맨이 2화인가 3화 즈음에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다. 난 이것만 듣고도 담당 배우를 맞출 수 있었다. 음성변조를 넣기야 넣었는데 난이도는 쉽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또 지영 역(이유미 배우)이 새벽에게 모히또와 몰디브 어쩌고 하지 않나? 그것도 프런트맨의 정체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이 <남한산성>이었다는 것도 복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또 막상 가면을 벗을 때 솔직히 너무 멋있어서 깜짝 놀랐다. 에이 뻔하지 싶었는데 육성으로 '헉' 소리가 나온 것이다. 눈빛 연기가 대단했다.
아무튼,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29번 스태프의 정체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9번 스태프는 잠입한 황준호다. 황준호는 실종된 형을 찾고 있다. 직업은 경찰이다. 물론 경찰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처음 잠입할 때 29번 스태프를 때려눕히고 변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경찰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영에도 능하고 총도 곧잘 쓰는 부분도 경찰이라는 장점이 작용했다. 그런데 경찰이라는 직업 본질적인 것에 대해 따져보자. 경찰은 사회 부정의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직업적 특성은 황준호의 임무 2순위, 집단살인에 대한 진상규명의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그렇게 모험을 떠나 휴대전화로 이 <오징어 게임>의 전말을 대략적으로는 알리기는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데,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프런트맨의 정체였다. 황준호의 형이자 전직 경찰관이었다. 정의를 추구해야 할 인물이 세상 가장 부조리한 곳의 수장이 되어있었다. 이 <오징어 게임>의 기득권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경찰이 집단살인이 난무하는 곳의 기득권이 되었다는 건 굉장한 아이러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태와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루는 부조리함은 나쁜 사람들만 모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아는 정치인들. 금융인들. 기업인들. 나름대로의 선한 논리는 다 있을 것이다. 사회를 바꾸는 선택지가 정말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에겐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을 뿐. 그냥 눈 뜨고 일어났는데 2021년에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프런트맨 역시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 기생하는 선택지를 골랐으며 이 게임에 대해 폭로하고자 했던 인물(황준호)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형이라는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은 것이 결과로 제시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시스템에서 사회정의를 건져 올릴 수 있는 자구책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차피 우리는 이해관계가 만든 판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사회 부정의를 해소에 현실에 기여하는 방식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는 셈이다.
4. 결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난 주인공 성기훈이 결국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딸을 주도적으로 키울 수 있었냐? 아니오. 돈 쓸 수 있었냐? 아니오. 만원도 못 써 은행 직원에게 돈을 빌린다. 상우 어머니에게 진상을 세세히 말할 수 있었냐? 아니오. 살리고 싶은 사람들 다 살리고 빠져나왔나? 아니오.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냐? 아니오. 승리는 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일남이 마지막 병원에서 했던 말이 이 인물에게 제일 중요하다. 이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성기훈은 드라마의 끝까지 본인의 허술한 부분만 드러나다 끝난다. 검은 머리의 성기훈은 부조리가 벌어질 동안 손가락만 빨다가 끝난 셈이다. 근데 한 변곡점을 통해 머리 색이 바뀐다.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분기점을 상징하는 사건이 있다. 게임의 호스트 일남과의 내기다. 일남은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패배한 듯 보인다. 이 내기에서 이긴 이후에 염색을 한다. 머리색을 주인공의 각성이라는 상징으로 가정해보자. 빨간 머리로 염색한 장면은 '이 인물이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특별한 해결방법으로 시스템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는 것의 암시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빨간색으로 염색 안 한다. 보통 그런 차림이면 눈에 띈다. 오징어 게임, 아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파란 모자를 쓰고 검은색 머리 스타일에 대해 무난한 코디라고 받아들인다. 기훈은 머리의 염색을 통해 한풀 더 각성해 이들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당연히 쉽진 않겠지. 맞은편 지하철에서 의문의 남자와 재회하는 장면을 보자. 다른 남자가 따귀를 맞고 있는걸 뻔히 보면서도 다른 <오징어 게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우의 어머니에게 돈을 주고 떠나거나 게임의 참여자가 되는 등 일반적인 관념을 깨는 입장이 되려고 노력한다. 황동혁 감독은 각본을 촘촘히 쓰면서 색상의 대비나 머리색이라는 상징으로 어떻게 이 성기훈이라는 인물이 <오징어 게임>을 받아들일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결말의 의미는 성기훈이 이제 우리 사회의 패배자가 아닌 맞서 싸우는 주체가 된다는 의미. 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쓰다 보니 막 뱉어낸 것 같다.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니 무조건 따른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난 좋은 드라마를 본 것 같아 시간이 후딱 갔다고 생각한다. 시즌 2 계획 없다고 하던데 솔직히 그냥 하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한다. 빠른 시일 내에 후속작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아. 정호연이란 탑 모델을 배우로 발굴해준 황동혁 감독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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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붉은 전설 -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 극장판 '치고는' 볼만하다
TVA 기반의 애니메이션은 사실 대부분 그 작품의 팬들이 본다. 왜냐하면 애초에 제작의도 자체가 팬층만을 위한 팬서비스에 가깝고, 그렇기에 작품의 독립성도 낮기에 아예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에 리뷰하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붉은 전설"도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TVA의 연장선상에 놓여진 작품이다. 필자는 이 원작의 팬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단 하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인 "펄프 픽션"의 각본가 로저 아버리가 만점(!)을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이 씨네필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이 사건(?)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펄프 픽션을 굉장히 재밌고 봤고 고평가하는 작품인데, 그 영화의 각본가가 무려 만점을 줬다니! 필자가 아는 원작은 '그 쪽 계열', 오타쿠 타겟층의 애니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딱 하나다. '생각보다는' 괜찮다. 필자는 과거에 장르는 다르지만 TVA 기반 극장판 중 "주문은 토끼입니까?? ~디어 마이 시스터~"를 보고 정말 심각하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졸작의 반열이었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나마 평작이라 부를만한 영화. 원래 원작이 있는, 그것도 오타쿠 타겟층이라면 한계가 보이는데, 이 영화는 그 한계를 잘 알고 그 한계 안에서 애쓴 영화이다. 애초에 이 영화의 감독을 전세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영화 역사상 거장 감독을 앉혀둔다고 해서 걸작이 탄생하지는 못한다. 애초에 이 영화는 TVA라는 발목을 잡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진지해지다가 유쾌하게 풀어내는 점이 편하게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필자는 이 영화 기반의 TVA를 1기를 초반만 보다 말았는데, 그 정도만 알아도 영화 이해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대다수의 애니에서 악평의 요소로 작용하는 '작붕'을 호평 받을 수 있게 일종의 유머 포인트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같이 훌륭하고 경이로운 작화로 승부하는 애니메이션 위주로 보다가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니 신선했다. 솔직히 이것도 나름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여러 장점들을 말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알아야 한다는 점에 영화의 독립성은 낮게 평할 수 밖에 없고, 필자가 오타쿠 계열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원작을 알고 좋아한다면 추천. 애초에 이 쪽 계열 애니가 다 그렇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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