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평2025-05-24 17:31:55
당신도, 나도 이 청춘들일 수 있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2025) 리뷰
청춘의 방황은 보이지 않는 어떠한 벽을 깨부숨으로써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얼음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얼음이 될 수도 있다. 온도에 따른 변화다. 그렇지만 녹음으로써 '변태'한 물은 언제든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가능성을 철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부수어야 한다. 얼음이 녹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마침내 부숴야 깨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흔적인 조각들의 형체를 치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브레이킹 아이스>가 전하는 메시지다.
청춘은 꿈을 꾼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의 웅덩이를 둔다. 하지만 인생에 예측불가한 사건사고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 나나(주동우)는 어렸을 적 꿈꾸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부상이라는 한 순간의 일로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꿈의 웅덩이가 얼어붙는다. 한때 피겨 선수를 꿈꾸며 그 위를 유영했던 빙판이,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마음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다.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 꿈과의 이별은 사람을 영원히 그 안에 가둔다. 작별할 각오가 생겨나기 전까지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나나는 연길에서 여행 가이드로서 돈벌이를 하면서도 애써 마주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빙판을 갖고 살게 된다. 한때 함께하던 동료, 친구, 심지어는 가족과도 멀리한 채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일 것이다. 혹은 도피하지 못해 선택한 '무모함'일 것이다. 얼음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이다.
샤오(굴초소)는 연길에서 친척의 가게 일을 도우며 지낸다. 스스로 빙판 아래에 가두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나나의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얼어붙은 청춘의 시간에서 방황하는 것은 나나뿐만이 아니리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가게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샤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형태를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을 얼음으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샤오에게는, 자신이 물이 될 수 있음은 예상 불가능한 일이며 감히 꿈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 된다.
샤오는 나나에게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 가능성을 엿보지 못한다. 허나 그 일말의 희망을 나나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곁에서 나나의 얼음을 깨는 과정을 곁에서 지키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기에 나나에게 불러준 노래가 그 의의를 가진다. 나나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빙판 아래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서.
그런 점에서 샤오는 나나를 짝사랑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나에게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를 약속받지는 못한다. 짝사랑이라는 관계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어쩌면 샤오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려면 나나가 샤오와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샤오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오펑(류호연)은 그렇기에 이 삼각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나나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샤오보다 나나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위치를 취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오펑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나의 관계성이 연길에서의 목적이 아니다. 하오펑은 상하이에서 일을 하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하오펑이 연길이라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단군신화의 골지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인 단군신화는 짐슴이던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긴 시간동안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오펑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해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력은 보상으로서 하오펑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적을 잃어버린 과정만 남은 하오펑이 우울증을 앓고 삶을 포기하려는 자세를 가진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기에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선 그가 우연히 마주한 단군신화를 직접 마주하는, 그 상징인 곰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방황을 공간화한 것이 플롯의 주 배경이 되는 연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모호한,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존재가 '조선족'이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 서있지만 연길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장벽이 마침내 허물어진다. 그곳에서는 그 모호한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결혼식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혼재가 그 결혼식에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연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들어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 각자의 방황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민족의 모호성이 그 특유의 형태를 찾을 수 있게 된 곳이 연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과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이 등장하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나나는 집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다. 동양권에서 실내는 신발을 벗는 곳이다. 바깥과 안을 경계짓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정론이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신었던 신발을 집에서도 신고 있다는 것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나나가 애써 자신이 피겨 선수를 꿈꾸던 과거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 모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게 된다.
그 모호한 집의 경계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두 남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그런 나나의 방황을 지금 당장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 주인공은 서로의 방황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자체를 공감하고 있다. 서로를 어떠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되어야 할 것임도 사실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 속에서 찾아질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도 자연스레 형태를 갖춘다. '무모한' 서점에서의 놀이가 하오펑의 방황을 찾게 할 어떠한 계기가 되어주었고, 그 계기를 통한 '깨어짐'은 다른 인물들의 방황도 깨부술 수 있는 연쇄 작용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들이 서로를 계몽시켜야 할 목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저 함께 이 모호한 시기를 이겨낼 것이라는 일종의 동료로서 바라본 것의 효용이다.
그래서 한때 뭉쳐진 삼각관계는 곰을 마주한 순간 이후로 순식간에 해체된다. 그 곰은 하오펑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며, 곰이 나나의 아픔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것은 나나의 모호성까지 해결해낸다. 자기 자신의 방황을 깨어나야 할 것으로 인지한 나나는 마침내 샤오가 스스로의 짝사랑을 놓을 수 있게끔 하기에 이른다. 방황의 빙판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이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연길에서 마주한 그들 저마다의 빙판 아래 모습들을 마주하고 극복한다. 방황을 깨고 육지로 올라온다. 그렇게 <브레이킹 아이스>의 메시지가 결론에 다다른다. 비로소 방황의 빙판이 깨어질 때, 내면에 숨어있던 자아를 마주할 때 진정한 성장의 서사가 영화의 수면 위에 올라선다.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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