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6 21:19:41
[SIWFF 데일리] 서로의 손을 잡고 벗어나자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우천사)
SYNOPSIS
1999년, 폭력이 만연하던 종말론의 시대. 무엇 하나 쉽지 않던 그 시절, 어느 여름보다 뜨거웠던 소녀들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
PROGRAM NOTE
고교 태권도 선수 주영(박수연)에게 그해 여름은 서글프고 찬란하다. ‘정상’여고 태권도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 같이 비정상적이라 세상이 소문대로 멸망이라도 해버렸으면 싶은데, 우연히 만난 예지(이유미)와 사랑에 빠진 다음부터는 자꾸 영원을 꿈꾸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두 갈래로 간극을 넓혀 나간다. 한쪽은 폭력과 비리로 얼룩져 있고, 다른 한쪽은 설렘과 애틋함으로 물들어 간다. 영화는 삐삐와 공중전화 같은 소품, 향수를 자극하는 가요 등으로 시대를 다채롭게 재구성하면서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여성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나이와 성별, 신분을 이유로 위계를 나누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목격하는가 하면, 사랑과 우정이 북돋는 용기에 힘입어 이에 저항하고자 나선다. 영화는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소년을 조명하고 체육계 미투 운동을 상기시키는 에피소드를 전개하면서 어른의 역할에도 질문을 던진다. 다만 인물 곁에는 못되고 못난 어른뿐만 아니라, 제 한계를 확인하며 고민에 빠지거나 타인의 감정을 그 자체로 수용해 주는 어른 또한 자리한다. 덕분에 소녀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경직된 시선에 압도당하지 않고 저마다 소망하는 방향으로 애써 나아간다. 그 길은 미래의 천국보다 현재의 사랑을 기꺼이 택하는 것이기에, 영화는 끝내 반짝이는 순간을 꺼내 보인다. [차한비]

유행은 돌고 돈다. 똑딱이 디카와 DSLR이 ‘보급형’이 된 세상에서 필름 카메라가 아성을 되찾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캠코더가 유행하더니 뉴진스의 <Ditto> 뮤직비디오를 통해 캠코더를 위시한 2000년대 카메라들까지 유행이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1999년은 내가 아직 문화를 향유하기엔 너무 어렸던 나이임에도, 어쩐지 자꾸 대중문화 속에서 소환된 덕분에 기묘한 감각으로 흐릿하게 돌아보게 되는 것은. 대중문화에서 그리운 그 시절로 회고하니 자꾸 그리운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러는 동안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다. 그건 ‘과연 그립기만 한 시절이 맞나?’ 하는 것이었다. 비위가 약했던 어린 날의 나는 그 시절 웬만한 공중화장실이 괴로웠던 것도, 버스 뒷자석이나 페인트 칠해진 벽 위에 수정액 혹은 매직으로 적혀 있던 낙서들이 얼마나 날 서 있었는지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좀더 익숙하던 시대였다. 1999년은 분명 그랬다.
그 시절의 몽글몽글한 감성과, 그 시절의 폭력성을 동시에 재현하는 영화는 그래서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이하 우천사)가 필요했다. 물론 <오징어 게임>으로 이제 그의 연기력 모르는 사람 없게 된 배우 이유미, 담담해 보이는 표정으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는, 내겐 너무나 ‘믿고 보는’ 배우 박수연에 대한 기대도 한 몫 했다. 그리고 <담쟁이>로 우리에게 찾아왔던 한제이 감독까지.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영화였다.

영화 미술팀이 얼마나 꼼꼼하게 노력을 기울였는지 느껴진다. 델몬트 유리병, ‘사랑’ 액자, 야광 별, 옥색 가구… 90년대 집의 무드가 물씬 풍겨 나는 곳. 그 집에서 자란 주영(박수연)은 정상여고 태권도부에 속해 있다. 학교명은 올라야 할 ‘정상’을 지향하고자 하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 비정상을 감내해야만 한다. 방관은 숱하게 일어나고, 심지어 교육을 빙자한 폭력조차 만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벽면에는 “방관도 폭력이다” 혹은 “제3자도 가해자다” 같은 ‘맞는 말’이 적힌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을 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 학대 같은 조건도 “다 하는 건데”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정하고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어머니가 있음에도, 주영은 그 비정상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구조화된 폭력의 세계니까.

거기에 사이렌을 울리며 뚜벅뚜벅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다 주고 싶은 첫사랑,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같이 있으면 다 아름다운 두 개의 거울 같은 사랑을 외면할 자신이 있는지. 그러나 아직 어린 소녀들의 주변은 부서지기 너무나 쉽다. 세기말의 흉흉한 세계에서는 더더욱.
폭발할 것 같은 세계였던 동시에, 그 폭발을 핑계로 폭력을 숨겨보려는 이들이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세기말의 흉흉한 소문들과 권위 의식이 뒤섞이는 이상한 세계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손길들이 작은 삶들을 짓뭉개려 했지만,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햇볕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듯 말랑말랑한 첫사랑의 안온한 온도와, 그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장 차가운 세상에서 가장 뜨거워져야 했던 온도까지 하나에 모두 담았다. 그 극명한 온도 차를 오가다 보면 관객은 목도하게 된다.
소녀가 소녀를 구한다는 것을. 거칠고 폭력적이고 꼬여 있는 세상에서. 사랑이든 우정이든 운동이든, 동기가 무엇이든 그들 모두에게 자유롭게 뛰는 체육관 하나가 필요했음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무관하게 지구 종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었을지도 모르다. 사랑이 없고, 깨어진, 그 모든 날들이 어쩌면.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다. 수정액으로 여기저기 날 선 낙서가 적혀 있는 세상을 막연하게 거칠다 느꼈던 어린 시절에서, 수정액과 수정 테이프를 섞어 사용하던 학창시절을 지나, 이제는 오래 전 한 개 사둔 수정 테이프가 집 어딘가 굴러다니지만 좀처럼 쓸 일이 없는 그런 날들을 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준 마음들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자신을 태워서라도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첫사랑의 애틋함, 가볍고 즐겁지만 그 이상을 분명 간직하고 있는 우정, 같은 상처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스크럼을 짜고 연대할 수 있는 마음. 부디 주영과 예지, 다른 아이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서로 손을 잡고 벗어나자. 사랑 없음으로 종말에 이르는 세상을.

2023. 08. 26. 10:30-12:22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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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과 철의 균열로 눈이 먼 모두에 쏟아지는 빛살
철과 철의 균열로 눈이 먼 모두에 쏟아지는 빛살
빛과 철 Black Light | 2020 | 배종대 | 109분
※스포일러 없는 영화 〈빛과 철〉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희주에게 이년 만의 귀향은 나름의 용기였을 것이다. 다른 기억으로 덮일 때까지 참 오래도 배회했던 시간일 터. 이제는 그때의 사건을 기억할 동료도, 흔적도 남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망각의 과정이었으므로. 하지만 영남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남편이 죽인 그 남자와 함께. 희주가 그렇게 잊고자 했지만 너무도 손쉽게 살아난 그 날의 기억이듯, 영남 역시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지닌 채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죽은, 그리고 죽은 것과 다름없는 남자를 데리고 끔찍했던 과거와 마주한다.
영화 〈빛과 철〉은 교통사고로 서로의 가족을 잃은 세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사고의 가해자인 희주의 남편은 사망했고, 피해자인 영남의 남편은 이년 째 식물인간 상태다. 희주는 과거의 사고 후 다시 돌아온 일터인 공장에서 그곳 영양사로 일하는 영남을 만난다. 영남의 남편이 다녔던 직장이기도 한 공장 주변에 거처를 옮기고 근처 병원에서 간호하는 영남과 딸 은영은 무너진 삶을 힘겹게 살아간다. 어떻게든 없던 일로 만들고 싶던 두 사람의 껄끄러운 관계에 은영은 깊은 파동을 남긴다. 은영은 사고에 감춰진 비밀을 털어놓고, 희주는 자신도 몰랐던 사실들을 확인해 가며 감정의 파고는 거칠어진다.
〈빛과 철〉에서 배우는 영화가 정렬해 놓은 상황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전반적으로 날카로우며 거대한 주제의식과 사회비판에 놓인 배우는 그 상황을 따라가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표현한다. 그리고 극을 이끄는 세 배우의 흡인력 있는 연기는 그 에너지를 추동력으로 영화의 주제를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셋은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한 채 감정을 주고받는데, 그 신경전은 여전히 남은 죄책감과 책임으로 어그러진 자신의 삶을 애써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과 같다. 영화는 한 꺼풀씩 벗겨지는 새로운 사실들로 관객에게 진상을 알려준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주체인 희주는 영화에서 관객의 입장처럼 진실을 알아가며 혼란을 겪는다. 그에 비해 영남은 모든 사실을 그저 못 본 척 지나가 버리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주체할 수 없는 무게에 휘청이며, 종국에 이르러 그 역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며 내면의 고초를 겪는다. 두 사람이 몰려오는 사건들을 앞장서서 맞서는 쪽이라면, 은영은 이야기의 발화를 이끌고 둘에게 화두를 던진다. 인물이 구조를 쫓는 영화에서 전자는 때로 영화의 진행을 위한 방향타 역할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작위적인 선택지는 한계이자 필연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그중에서도 〈빛과 철〉의 은영의 행동은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메인 플롯인 교통사고의 진실에 대해 연관된 사람들은 각자가 저지른 이기심과 묵인으로 사태를 여기까지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그렇다고 사건의 모든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악역’이 그들 중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하고도 부끄러운 죄책감의 배후에 자리 잡은 거대한 시스템과 공권력을 지목한다. 영화의 전반에 걸쳐 옅게, 하지만 강력하게 퍼진 이 존재는 ‘은색 철’로 상징되는 비정한 구조로, 그 안에서 스러지는 인간의 본심을 끄집어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우리 주변의 범인 간에 싸움을 부추긴다. 이후 그를 대변했던 인물이 심경의 변화를 겪는 장면이 나오지만, 여전히 책임지지 않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영화는 철과 철로 이루어진 구조물에 갇혀 운명을 내맡긴 인간의 삶에 주목한다. 비슷한 주제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저항과 투쟁의 장면은 그리 많지 않지만, 감독은 누구나 느낄 만한 거리에 일차적 책임에 있는 시스템을 늘 세워두고 상기시킨다.
메시지의 부각만으로 사회가 변하지 않듯, 결국 조각나 버린 파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풀어가야 한다. 그 해답을 비추고 있는 영화의 제목은 은영이 쥐고 있다. 그의 존재란 〈빛과 철〉의 주제의식을 상징한다. 진실의 목격자인 은영은 어른들이 감추고 외면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한다. 그 방법이란 즉각적이고 간명해서 관객이 보기에 이질감이 들 만하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사람만 죽어가는 이 상황에 다른 선택이란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억울해하고, 누군가는 도망가지만, 각자의 작은 행동이 인과로 엮여 만들어진 지금의 현실에 책임질 사람은 없다, 게다가 정작 책임질 존재는 사라진 채 고통받는 이들만 남는다. 그래서 은영은 문을 열고,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연다. 다만 그 화살을 사람에게 향하지도 않는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똑바로 바라보고 인간만이 지닌 연민과 공감으로 서로를 대하라고 제안한다.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화신으로서 제 할 일을 다 하는 모습은 영화 전반에 걸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현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후반의 어떤 장면 이후 은영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로 봐도 무방해 보이기까지 한다.
중반까지 영화를 관람했다면 영남의 남편이 현재 상황까지 이르게 된 이유가, 실은 철과 철의 만남이 아닌 철과 철의 분열이 초래했음을 알 수 있다. 자동차와 자동차의 충돌은 금속의 부딪침이지만, 운전하는 사람과 사람의 충돌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든 누군가와 마주치고 충돌한다.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자리를 조용히 벗어나는 시스템에 관심조차 가지지 못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발단이 된 사건이란 우리와는 낯선 금속의 분화가 일으켰음을 알아채는 것만이 우리의 어깨에 얹어 놓은 감정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는 방법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날카롭게 내리쬐는 햇살은 누군가에게는 참회와 책임감을 불러일으키고, 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힘을 준다. 그것이 오직 사람에게만 비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내버려 두고 분열하는 대신 직시하고 연대하라는 마음가짐으로 이해해보려 한다. 내가 든 칼이 사람을 향하지 않고 더 커다란 쪽을 겨눌 때, 또 다른 희생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는 아무리 어두운 밤길에도 눈앞의 여린 것을 위해 기꺼이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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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력적인 화면구도, 하지만 허무한 결말
류승완 감독의 필모를 찾아보다 보기 시작한 영화 <부당거래>. 사실 황정민과 류승범 배우에 대한 연기 신뢰가 있었고, 류승완 감독에 대한 신뢰 역시 두터웠기에 기대한 작품이었지만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다.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것일까?
영화 <부당거래> 시놉시스
대국민 조작 이벤트
각본쓰는 검사, 연출하는 경찰, 연기하는 스폰서.. 더럽게 엮이고 지독하게 꼬인 그들의 거래가 시작된다!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 사건. 계속된 검거 실패로 대통령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고, 수사 도중 유력한 용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경찰청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가짜 범인인 ‘배우’를 만들어 사건을 종결 짓는 것!
이번 사건의 담당으로 지목된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줄도, 빽도 없던 그는 승진을 보장해주겠다는 상부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스폰서인 해동 장석구를 이용해 ‘배우’를 세우고 대국민을 상대로 한 이벤트를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다.
한편, 부동산 업계의 큰 손 태경 김회장으로부터 스폰을 받는 검사 주양은 최철기가 입찰 비리건으로 김회장을 구속시켰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때마침 자신에게 배정된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조사하던 주양은 조사 과정에서 최철기와 장석구 사이에 거래가 있었음을 알아차리고, 최철기에게 또 다른 거래를 제안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부당거래>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과장된 연기력
영화를 보면서 느낀점은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하는 것 같으나 뭔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민의 연기가 정말 형사라면 스폰 받는 형사이기에 저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와 반대로 류승범의 연기는 굉장히 과장되게 다가왔다. 영화 <용의자 X>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류승범의 연기를 보고 못한다,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영화 <부당거래>에서는 캐릭터 자체가 욱하는 검사 역할이어서 그런건지 조금은 과하게 다가와서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러웠다.
화면의 컷 분할
개인적으로 영화 화면전환 및 분할에 있어서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있는 구도를 좋아한다. 영화 <부당거래>는 이런 개인적인 기호와 잘 맞아 떨어진 작품이었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캐릭터가 한 프레임 안에 등장 할 때 두 인물은 절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질 않았다. 반드시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을 등장시켰는데, 가로수 혹은 창문틀 등 다양한 장치들을 이용해 둘의 관계에 선을 긋고 있었다.
이렇게 최철기가 자신이 생각하는 적군과 아군을 프레임 속에서 선의 구분으로 등장시키고 그 적군과 아군이 변화하면서 선이 사라졌다가 다시 재등장하는 구도가 굉장히 잘 드러났던 작품이었다.
그래도 결말이 너무 허무한 것이 아닌가
배우로 잡아들인 가짜 범인이 실제로 연쇄살인마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이를 아는 사람들을 제거하려다가 최철기는 자신의 심복을 죽이게 되고 이에 반감을 얻은 최철기는 자신이 이끄는 대원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물론 이 작품이 범죄물, 느와르 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저렇게 허무하게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판을 짰는데 그것이 진실이었고,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부하들에게 들켜 죽임을 당하는,,, 어찌보면 권선징악일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허무함을 안겨주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잘 만들언 작품이었으나 영화 결말에 대해서는 조금 아리송 했던 영화 <부당거래>. 화면의 컷분할과 구도를 분석하기에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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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코미디 영화 추천 7
많은 분들께서 이용하시는 넷플릭스에도 재밌는 코미디 영화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좋아하는 코미디 영화 10가지 리스트를 꼽아봤습니다
(추천 영화는 가나다순으로 작성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스파이는 없었다.
<스파이> (2015)
이전까지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 (톰 크루즈) 같은 전형적인 남성 캐릭터 이미지가
첩보영화의 메인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스파이>는 CIA의 여성요원 수잔 쿠퍼 (멜리사 맥카시)가 현장에 가게 되며 펼쳐지는 코미디 첩보영화입니다. <분노의 질주>시리즈나 <익스펜더블>시리즈에서 최정예 액션 요원으로 주로 활약한 제이슨 스타뎀은 몸게그와 언어유희를 구사하고, 수잔 쿠퍼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돌격하는 장면마다 병맛 넘치는 상황이 발생해 큰 웃음을 줍니다.
* 마지막 쿠키영상까지 깨알같은 웃음을 주는 코미디 첩보 액션 영화입니다!
힐링 로맨틱 코미디
사랑 때문에 아픈 상처를 거침없이(?) 극복! 하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2010년대 <엑스맨>시리즈와 <헝거게임> 시리즈에서 빛나는 활약을 하는 제니퍼 로렌스
<행오버>와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너구리 로켓으로 친숙한 브래들리 쿠퍼가 커플로 나온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후 괴로워하는 팻 (브래들리 쿠퍼)
그리고 남편의 죽음 이후 회사의 모든 남자 직원과 관계를 가진 티파니 (제니퍼 로렌스)
한 성격하는 인물들이 동네 이웃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팻과 티파니가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느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도 찾기 힘든 솔직하고 가식 없는 인물들이 사랑스럽습니다
특히 헐리우드의영화들도 개인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인물들을 다룰 때 작위적인 감정선이 포함된 경우가 많은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도 솔직합니다
* 근 20년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중, 로맨틱 코미디 성격의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는 제니퍼 로렌스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솔직하고 가식 없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찰떡같은 연기 보는 재미 쏠쏠
회사 생활하며 겪는 스트레스까지 공감 가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보그] 등 패션지 편집장으로 유명한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한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원작 영화입니다
회사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는 많은 분들께서 공감하신 작품이지요?
직장 상사이지만 때때로 악마처럼 느껴지는 미란다로 열연한 메릴 스트립
사회초년생 앤드리아로 열연한 메릴 스트립의 연기 대결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화려한 커리어'와 '나다운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앤드리아의 모습이 공감가는 영화인데요
배우들의 연기, 주제, 이야기, 유머도 좋은 작품이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 다양한 옷을 찰떡같이 소화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영화의 명장면이 아니라 패션쇼 현장의 런웨이처럼 느껴졌습니다
* 특히 앤드리아의 출근길 장면, 다양한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장면을 잘 이어붙여서 편집한 장면, 적절한 영화음악은 빛났습니다
까칠한 이웃 아저씨의 사람 되기 프로젝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90년대 명화 중에는 코미디 영화의 웃음, 드라마 영화의 감동이 이상적으로 조화된 작품이 많았습니다
웃음과 감동을 주는 명화 중 대표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강박증 있는 할아버지 유달 (잭 니콜슨)이
로맨티스트로 변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영화입니다.
유달을 로맨티스트로 만든 인물 식당의 웨이트리스 캐롤 (헬렌 헌트)도 아들이 아프고 이런저런 생활고에 억눌려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소중한 인간관계를 통해 발견하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주인공 할아버지 유달(잭 니콜슨)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아무래도 창의적인 작업에 대한 강박 때문에 때때로 괴팍한
성격이 있는데 (귀엽지만 괴팍한! 성격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집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회복하는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10여분이 지나면 열리는 독특하고 판타스틱한 코미디, 영화의 세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일본의 한 영화감독이 하나의 컷으로 구성된 논스톱 좀비 영화를 찍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1917>의 장면들처럼 쉼 없이 이어지는 듯한 좀비 영화를 찍고 싶었던 겁니다
(실제로 <1917>은 끊김이 없는 1개의 컷으로 구성된 영화처럼 촬영/편집한 영화이지만 1컷으로 구성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가 시작한 10여 분, 촬영 중 사고, 갈등이 한바탕인 촬영장은 전쟁터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연출하고자 하는 감독님
제작자, 배우 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영화 촬영에 임했을까요?
하나의 테이크로 구성된 좀비 영화를 만들기 이전 열정이 넘치는 열혈 감독님, 소심한 제작자, 영화 본편 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듯한
배우들의 엉뚱한 모습이 엉뚱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진 코미디 영화입니다
병맛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의 독특한 매력에 빠지실 겁니다 (퐁~!)
인생영화로 꼽히는 코미디 영화
<트루먼 쇼>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사실은 방송국 작가가 짜 놓은 각본이라면,
살고 있는 집이 사실은 방송국 초대형 세트의 일부라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영화 <트루먼 쇼>는 알고 보니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수십만의 국민이 보는 방송국 프로그램의 세계에 살고 있던 트루먼 (짐 캐리)의 이야기입니다
트루먼이 거주하는 세계가 실제 세계가 아니라 방송국 세트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들이 흥미롭고
트루먼이 인생에서 진실한 것은 무엇인지 깨닫고 새로운 세계로 걸어나가는 과정은 커다란 감동을 줍니다
여자로 변장한 흑인 형사들의 코미디
<화이트 칙스>
80년대 고전영화 중 더스틴 호프만이 여장을 하며 열연한 <투씨>라는 작품이 있지만
남자가 여장을 하는 소재의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FBI 흑인 형사 2명 마커스와 케빈이 범인 검거 작전을 실패한 이후 얼떨결에 한 파티의 경호를 맡게 됩니다
그러던 중 호텔 재벌 윌슨 자매를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마커스와 케빈 형사가 귀한 윌슨 자매의 얼굴에 상처를 냅니다
그래서 두 형사는 윌슨 자매로 여장을 하게 되는 코미디입니다
건장한 남자 형사가 여장을 하게 된 설정 때문에 다양한 몸게그와 유머를 활용하는 코미디영화입니다
- 이상으로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영화 7개 추천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혹시나 포스팅에서 다루지 못한 영화가 있으면 댓글로 의견을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본 콘텐츠는 블로거 리얼리스트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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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원작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스포일러 포함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2022.11.30 개봉)
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미치에다 슌스케, 후쿠모토 리코 등
이치조 미사키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보고 왔어요. 솔직히 제목 무슨 투바투 노래도 아니고... 길고 못 외우겠고 일본틱하고 그렇잖아요? 영화를 보고 나시면 왜 이런 제목인지 아실 겁니다 진짜 이렇게 딱인 제목이 없어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가장 행복한 오늘을 줄게' '잊고 싶지 않아' 토루와 마오리의 명대사인데요. 어느 대사가 들어가도 딱 들어맞는 제목이죠? 저 대사 두 개가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랍니다.
저는 소설로 먼저 봤다고 했잖아요? 솔직히 소설로 봤을 땐 이렇게까지 깊은 감명은 없었어요. 그냥 뻔하디 뻔한 일본 소설이다 싶었거든요. 선행성 기억상실증이 있는 여주에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심어 주는 남자 주인공, 알고보니 그에게는 심장병이......?! 말도 안 되는 3류 드라마 줄거리 아닌가요. 여주의 기억 상실마저도 너무 판타지스러운데 남주까지 심장병 걸려서 죽어 버린다니......
게다가 인기 있는 소설 작가가 남주의 친누나이며,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하루하루 버티다싶이 한다는 그런 설정은 왜 넣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누나가 쓴 소설의 내용이 전개에 등장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지막에 이즈미를 도와주는 인물일 뿐이거든요.
실제로 그때 별점 세 개 반을 주면서 '일본 소설은 다 거기서 거기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긴 하겠네'라고 코멘트 달았었네요. 그런데 정말 영화로 나올 줄이야...... ㅋㅋㅋㅋㅋ
B급으로 만들었으면 개망했을 스토리인데 연출, 각색, 영상미가 정말 뛰어나서 다 했다 싶은 작품이에요. 포스터부터 영상까지 필름 카메라 느낌으로 찍어서 청춘물 느낌이 나게 한 것도 한몫 하는 거 같고요. 토루와 마오리가 등장할 때마다 햇빛에 솨르륵~ 비추는 남녀 둘의 비주얼이...... 지나쳐... 눈물 날 정도로 잘생기고 예뻐서 더 보고 싶은......
원래 소설에서는 이야기 전개가, 토루 시점 - 마오리 시점 - 이즈미 시점 이런 식으로 넘어가거든요. 시간 순서대로 쭉쭉 흘러가는 느낌인데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이즈미 시점으로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이즈미 시점을 유지해요. 물론 주인공은 토루와 마오리기에 그 둘의 이야기를 포함!
이즈미의 눈으로 이야기를 따라갔기에 더 처지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마무리됐던 듯해요. 현재 - 과거 - 다시 현재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 완벽한 각색이었다는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일본 영화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유치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나간 건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따라올 영화가 없는 거 같아요! 소설을 보셨든 안 보셨든 꼭 한 번씩 관람하셨으면 하는 영화랍니다! 너의 췌장 나는 어제의 너와 등등은 안 봤지만...... 너의 이름은이랑 견주어 보았을 때 비슷한 정도의 감동이긴 해요! 개인적으로는 너의 이름은이 조금 더 우세하지만,,,
실제로 상영한 지 한 달이 다 되었는데도 상영관이 꽉 찰 정도로 관람객이 많았고
(N차 하시는 분들 정말정말 많아 보였음)대부분이 많이 우시더라구요 물론 저도 ㅠㅠ......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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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를 털고 능숙하게 벼려 밝힌 영화라는 여명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21 | 스티븐 스필버그 | 156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파크,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를 옆에 낀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는 미국 역사의 곡절이 담겨있다.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기 노동 계급의 거처, 20세기 전쟁의 풍파로부터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혹은 생활고를 피해 희망을 찾고자 정착한 이민자의 터전으로 발전한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자본과 사람이 유입해 문화와 예술이 발흥하는 뉴욕을 대표하는 부촌이 되었다. 지금의 멀끔하고 반듯한 건물과 거리, 햇볕을 쬐고자 바깥에 나온 느긋한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약 60여 년 전 도시 재개발로 링컨 센터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막 뜬 그때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은 떠나야 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백인 하층 노동 계급 지역 할렘 Harlem과 중남미 이민자의 거리 산 후안 힐 San Juan Hill을 배경으로 생존과 반목을 넘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뮤지컬을 영화화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61년 동명의 작품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이 영화를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영화 애호가들은 기대와 (주로는) 우려가 엇갈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첫 뮤지컬 장르라는 관심과 함께, 우리는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시 선보일 것인가에 관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잘 돼야 본전, 망치면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실망만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노련한 거장은 결국 고전의 향수와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현재의 시선에서 영화 매체에 마침맞은 재구성을 이루어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벌 간의 갈등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인 이 뮤지컬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제리 라비노비츠)의 안무가 결합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의 기술력이나 연출을 고려하더라도, 원작의 배우와 무대, 소품이라는 세트피스가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유명한 오프닝 씬이나 체육관의 댄스파티 속 뮤지컬 넘버와 안무의 조화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장면이지만,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 시선과 배우들의 대사 처리 등 뮤지컬 실황에 영화적 기법을 첨가한, 60년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적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과 영화의 차이가 시각 매체로써 특히 공간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유무에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영화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라는 한 지구地區를 통째로 배경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America〉는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거리를 누비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인 〈Gee, Officer Krupke〉에서는 경찰서의 소품들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거기에 〈Cool〉에서의 부서진 폐건물을 중심으로 ‘토니’(안셀 엘고트)와 ‘리프’(마이크 파이스트), 제트파 사이의 갈등과 신경전, 체육관에서의 댄스파티 등 뮤지컬 넘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일조한 카메라 워킹도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발레와 라틴댄스 기반의 춤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공들인 정교한 합과 역동적인 집단 군무가 스크린 앞 관객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면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다. 관객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날 선 갈등과 비극을 춤과 노래를 통해 어느 정도 희석된 버전의 모습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음악만큼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극적 상황을 조성하는 장치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체육관 뒤편에서 토니와 마리아(레이철 지글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건너편 틈 사이로 빛이 스며오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장면이 사랑에 빠진 몽롱한 분위기를 더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소금창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며 겹치면서 발생하는 명암의 대비로 두 파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원작이 주차장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발레 대결이라면 리메이크된 작품에서는 훨씬 실감 나는 대전이 벌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모자이크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빛의 분위기도 눈여겨보게 된다. 연출을 위한 소품의 적절한 사용도 눈에 띈다. 앞서 제트파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퀀스에서 주변 소품을 활용한 앙상블은 재기 발랄하며 맹랑한 캐릭터에 잘 들어맞는다. 토니가 싸움을 말리러 갔지만 결국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를 죽인 후 마리아의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의 장막을 사이에 둔 만남이나, 사랑을 위해 토니를 감싸주는 마리아에게 분노하는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의 듀엣에서 집에 걸어 둔 천으로 흔들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의 장면들은 원작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작을 관람하기 전 관객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뮤지컬을 어떤 방식의 영화로 만들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링컨 센터 공사를 위해 곳곳이 헐린 5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가 담겨있다. 오히려 원작의 멀끔한 세트보다 이 불안한 10대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한 2021년의 영화는 기존의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원작에 담긴 불쾌한 지점, 혹은 지나쳤던 지점을 부각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한다. 시나리오와 노래에는 십 대 청소년의 일탈과 사회 갈등,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빈곤, 재개발 문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당대 인식의 기반에 깔린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갈등의 중심부에 두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원형을 일부 유지한 채 스코어의 가사들을 윤색함과 동시에 넘버를 일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효과를 준다. 감독은 원작에서 지나쳤던 미국 사회(이지만 사실 모든 사회에 통용될)에 고착된 차별과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프나 브릿지로 만들어 시의성을 높인다. 원작에서는 ‘우리의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을 별종 혹은 외부 집단으로 설정해 그들의 유입으로 두 파벌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갈등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조차 백인 소년들의 편에 서서 이민자들을 향해 차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리메이크작에서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역사의 흐름에서 자본에 밀려 탈락한 백인 하층 노동자 집단과 중남미 이민자 집단이라는 두 비주류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을 명시한다. 경찰로 상징되는 기존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눈에는 두 파벌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 정치 지형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정했음은 스페인어에 따로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가 제1 언어인 미국이나. 두 언어에 익숙지 않아 그들의 자막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한국의 관객 관점에서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그만큼 확고히 보여주는 설정도 없다. 이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주류 사회 분위기에 편입하려는 당시 이민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식과도 같다.
주인공인 토니와 마리아를 중심에 두면 영화는 대립적인 집단 간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외곽으로 내모는 사회에 눈을 돌린다면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이들의 파국에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은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두 파벌의 중립지대인 가게(약국)의 주인인 ‘독’을 대신해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를 추가한 점은 익숙하며 낡아 버린 서사에 새로운 결을 터 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발렌티나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어른 캐릭터이자 아직 어린 청년들의 치기와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설정상 독과 사별한 부인이며 유대인이자 코카시안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에게 복합적인 감정선과 서사를 부여한다. 인종과 문화 등 다층적인 차별과 분노가 폭발하는 공간에서 발렌티나는 인종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위치하기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다. 배신자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아픔에도 이 이야기 속 유일한 ‘어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지점은 발렌티나가 1961년 원작에서 아니타 역할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원작 속 아니타의 넘버였던 〈Somewhere〉를 사실상 원곡자인 발렌티나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이 넘버는 61년 작품의 아니타의 감정과는 다른, 한 노인이 끝내 안온한 삶을 바랐으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을 향한 회한의 노래이자, 분열로 극한 대립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향한 기약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이뤄야 하는 목표의식으로 변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하나의 배역을 넘어 원작과의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타는 제트파에게 마리아의 전언을 일러주려 발렌티나의 약국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원작은 이 상황을 극화된 리듬과 안무를 부여해 단지 서사의 변곡점 역할로 넘어갔지만, 정황상 아니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독은 상황을 종결시키며 충동적인 청년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넘어간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니타에게 누구도 사과와 위로는 없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과거의 악몽이 그때의 아니타이자, 지금 발렌티나의 눈앞에 재현된다. 영화는 과거 리드미컬한 연출로 재현된 끔찍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도 상황의 극화 없이 정확히 직시하는 연출로 기이하며 끔찍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지금의 상황이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또한 원작과 달리 제트파와 함께 있던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아니타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인종 혐오가 아닌 더 큰 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황을 발견한 발렌티나는 제트파를 제재하고 아니타를 내보낸 뒤 범죄를 저지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너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결국 60년 전 어린 아니타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건과 가해자들을 기억하며, 자신은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일갈하는 장면이다. 그는 60년 전 그 날에 갇힌 피해자에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남성들을 단호히 ‘강간범’이라고 호명하며 여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대변하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밖에도 영화는 원작의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를 피상적인 톰보이 캐릭터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설정해 제노포비아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서사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배제된 소수자에서 결국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애니바디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제트파가 마련한 권총이 치노(조쉬 안드레스 리베라)로 이어져 발생하는 결말에 비중을 두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논쟁인 총기 규제 문제를 다루는 모습도 보인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미숙한 총기 사용으로 노출되는 범죄의 양상은 작품 중후반에 꽤 자세히 다뤄진다.
관객은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알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만드는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 감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소수자성과 대립에 주목하며 기존의 작품 속에 감춰있던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랑과 생존 중 더 중요한 것을 묻는 발렌티나의 질문에 토니는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존엄한 삶의 소중함은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몫은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지속한다. 서로 같은 달빛 아래 다른 마음으로 밤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원작의 마지막에 2021년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로하듯 새벽이 밝아 오는 맨해튼의 도시를 보여준다. 비극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한 빛은 찾아온다는 사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 사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말하던 이 명제를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여러 우려를 감수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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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밀성 장인의 퀴어 외로움 탐구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친밀성‧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극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 중 하나다. 상류층 중년 여인의 마음에 불어닥친 고요한 폭풍을 펼쳐내는 〈아이 엠 러브〉(2011), 치정癡情이 치사致死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비거 스플래쉬〉(2017),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사회가 금지하는 사랑을 ‘식인’에 빗댄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러브 스토리 〈본즈 앤 올〉(2022) 등등. 야심 차게 도전한 공포영화 〈서스페리아〉(2019)는 영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는 〈챌린저스〉(2024)로 다시금 ‘자기 주제’로 돌아와 그를 추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윌리엄 버로스의 원작 〈퀴어〉의 연출을 그가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린 이유였다.
오래전에 읽은 원작의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퀴어》와 짝을 이루는 작품인 《정키》와 더불어, 우울하고 건조한 분위기만이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퀴어》는 어느 외로운 부자 게이가 젊고 아름다운 남성의 관심을 구걸하며 내내 괴로워한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줄거리가 없는 작품이니까.
퀴어 소설, 퀴어 영화에서 한물간 게이 남자들은 보통 주변부에서 조연 역할만 맡는다. 젊고 파릇한 주인공들이 눈앞의 사랑을 붙잡지 못했을 때 어떤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지 환기하는 부수적이지만 중요한 역할 말이다. 제임스 볼드윈의 퀴어 고전 소설 《조반니의 방》부터 몇 년 전 개봉해 호평받은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까지. 게이 텍스트에서 ‘제때’ 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은 늘 되고 싶지 않은 미래만을 표상했다.
〈퀴어〉의 특이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주인공 리는 처음부터 젊고 예쁜 남자를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남자랑 ‘둘만 있으면 자려고 드는’ 리의 평판은 바닥이고, 그런 리의 외로움을 알아보는 몇몇 멕시코 청년만이 리에게 몸을 허락한다. 그러던 와중 눈부신 청년 유진이 나타난다. 리는 유진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그에게 ‘영혼이 이끌린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유진을 욕망하는 리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유진을 사랑스럽게 다듬는 영혼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육체다. ‘차갑고 미끄러워서 잡기 어려운 물고기’와도 같은 유진의 곁에서, 리는 내내 전전긍긍하고, 안달복달하며, 처연할 정도로 애절하다. 일주일에 두 번만이라도 내게 다정하게 대해달라는 리의 간청은 자유롭게 유진을 애무할 수 있는 영혼과 달리 대체로 그를 냉정하게 대하는 유진 육체의 호소와도 같다.
‘대대로’ 퀴어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에 유진의 기분과 태도에 다라 삶의 모든 행복이 결정되는 또 다른 비참이 더해진 리의 가여운 외로움이야말로 이 영화가(그리고 원작이) 근본적으로 다루려 하는 것이다. 리가 공허함에 마약에 빠지고, 텔레파시를 가능케 해주고 심지어는 상대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게까지 해준다는 신비한 약초 ‘야헤’를 찾아 나서는 것은 모두 이 외로움 때문이다. 리가 유진과 함께 에콰도르의 어느 숲으로 들어가 야헤의 비밀을 탐험하는 부분은 전반부보다 몰입감이 현저히 떨어지고, 감독이 아직도 〈서스페리아〉에 미련이 남았나 싶은 불길한 짐작을 주기도 하지만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유진에게 절대적 타자일 수밖에 없는 리의 외로움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리는 야헤 경험을 통해 이성애와 동성애를 오가는 유진 역시 나름의 불안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래봐야 그 대상이 리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다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나이든 리가 수십 년 후에도 여전히 유진을 갈망하고 있다는 듯한 결말의 장면은 퀴어의 외로움을 너무 감상적으로 해석한 것만 같아 아쉽다. 늙고 한물간 게이인 리의 외로움은 비단 유진의 거부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 외로움은 게이/퀴어 존재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엔딩 장면은 이를 유진을 향하는 개별적인 마음으로 축소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장면에서, 문득 〈문라이트〉의 열린 결말이 얼마나 위대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했다. 친밀성 장인의 퀴어 외로움에 대한 감각적인 이번 탐구는, 절반의 성공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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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영화 후기 / 안젤리나 졸리 오랜만 / 개쩌는 보안관 아내 임신부의 활약 / 산불은 양념?!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후기입니다.
쿠키 영상은 없네요~#안젤리나졸리, #범죄액션, #스릴러, #재난영화, #산불, #공수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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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괴물 복싱 챔피언과 견자단의 대결 시간 순삭 무술 액션의 끝판왕 엽문2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엽문2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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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에 살인범이 있다고? 추리 광 세명의 유쾌한 수사가 시작된다.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는 2월 26일 디즈니+에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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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요원들 손에 떨어진 일급비밀. 4월 1일 Apple TV+에서 '슬로 호시스' - Slow Horses를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