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8 05:27:01
신화같이 잔혹한 인류의 폭력의 역사
영화 <유니콘 전쟁> 리뷰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매년 꾸준히 참석하는 영화제들중 하나이다.
거리가 가까워서도 크지만, 결정적으로 애니메이션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상영작 공개 이후 갑자기 추가된 상영작이 있었는데, 바로 <유니콘 전쟁>이다.
어떤 작품이길래 갑자기 초청까지 된걸까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라도 소개되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해 보석같은 애니메이션 중 한 편이었다.
러브 군사캠프의 테디 베어들은 조상 대대로의 적수인 유니콘과 맞서싸우기 위해 훈련중이다.
그러다 유니콘의 근거지인 마법의 숲에서 부대가 실종되는 사고가 생기게 되고, 이들의 부대는 숲으로 투입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욕망과 본능과 갈등이 폭발하게된다.
아기자기한 그림체를 보면 '마이 리틀 포니'를 연상시키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지만,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성기 노출, 신체 절단, 유혈, 마약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맞물려 괴리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괴리감은 단순히 쾌락적, 불쾌감을 주기위한 요소가 아니다.
테디 베어와 유니콘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욕망, 폭력, 본능은 인간에게 내재된것과도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은 작화에 담아낸 인간의 폭력에 대한 은유가 담긴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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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생물을 만나 얻은 삶의 동력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상실감은 슬픔과 분노, 외로움 같은 다양한 감정들로 변형되어 퍼진다.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삶을 살아내야 할 목적을 찾아 헤맨다. 대부분은 그런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죽음을 택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살고자 하는 욕구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상실감 속에 숨겨진 삶의 의지이고 그것을 꺼내게 되는 계기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나온다.
상실감이라는 감정의 파고는 언젠가 잦아들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 시간에 누군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하고, 때론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나의 감정을 이해받기도 한다. 상실감이 극에 달한 그 상황에서 결국 위로받는 건 주변에 다가오는 존재들로부터 온다. 그것이 바로 삶의 의지를 꺼내는 계기가 된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기생수 더 그레이>는 괴수 장르 혹은 외계인 크리쳐 장르에 속한다. 일본 원작 만화의 세계관을 따르고 있는 이 시리즈는 한국의 수인(전소니)이 중심인물이다. 여기에 건달 강우(구교환), 특수수사팀 그레이의 팀장 준경(이정현)이 등장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상실감 속에 있다는 것이다. 세 인물 모두 상실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이 연결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무척 다르다.
첫 번째 감정 - 수인의 외로움
수인은 부모를 모두 잃었다. 어린 시절 직접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나 다른 가정을 꾸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를 몰래 찾아가 봤지만, 어머니는 5만 원 몇 개를 쥐어주고는 절대 다시 오면 안 된다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그러니까 수인은 부모에게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다. 한 명은 육체적으로 수인에게 폭력을 가했고, 다른 한 명은 정신적으로 수인에게 폭력을 가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 속에서도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형사 철민(권해효) 덕분이다. 철민은 무심한듯하지만 세심하게 수인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은 상실감이 만들어낸 외로움 속에서 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도 안 좋은 일만 생기는 듯한 그녀에게 우연하게 들어온 기생생물은 그녀의 뇌를 다 먹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지킬과 하이드처럼 수인의 몸속에서 다른 인격의 존재가 된다. 철저하게 외롭게 살아가야 할 수인에게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야 할 존재가 생긴 것이다.
기생생물이 들어온 이후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저주 같아 보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수인과 기생생물 하이디는 동화되어 간다.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수인은 좀 더 큰 용기를 내어 과감한 행동을 하는데, 그런 수인의 변화는 평생 같이 함께 하게 된 하이디의 존재가 무척 큰 동기가 된다. 수인의 외로움이 점점 약해지고 그녀의 주변에 그를 돕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길수록, 수인의 삶의 의지는 조금씩 커져간다. 그리고 수인이 가지고 있던 외로움과 상실감도 그녀가 가지게 된 삶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두 번째 감정 - 강우의 슬픔
사실 강우와 슬픔이라는 감정은 잘 어울리는 감정은 아니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야기 내내 그는 무척 가벼워 보이고 철없는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하거나, 대충 마무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도통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이 인물을 넣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회사원 같은 모범생 타입의 인물은 아니지만, 조금 철없지만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생생물에 감염된 누나에게 이상함을 느끼고 실종된 여동생을 찾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상황을 맞이하고 큰 슬픔을 느낀다. 실제로 극 중에서 그는 꽤 많은 눈물을 흘리는데 그건 그의 주변에 그를 이해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의미이고,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 그의 주변에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인물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간다. 그래서 겉으로는 무척이나 밝고 별 걱정 없어 보이는 강우지만, 그의 내면에 박혀있는 상실감은 더욱더 커져간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무너지기 직전에 수인과 하이디를 만난다. 전혀 연결점이 없을 것 같은 세 존재가 만나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실감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어 가진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완전히 잡아먹은 기생생물들을 퇴치하고자 하는 공통 목표를 가지게 된 그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결국 강우의 슬픔은 두 존재와 나누면서 이겨낼 수 있는 감정이 되고, 강우에게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만들어진다.
세 번째 감정 - 준경의 분노
준경은 <기생수 더 그레이> 안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프로파일러 출신 경찰인 그녀는 약간 상대방에게 비아냥대는듯한 말투를 가지고 있지만, 기생생물을 찾아내고 처치하는 작전 수행능력은 무척 뛰어나다. 프로파일러가 가진 특유의 감은 그가 좀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돕는다. 그녀는 기생생물을 잘 이용할 줄 알지만, 과도하게 기생생물 퇴치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준경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그녀가 가진 분노다. 그녀는 기생생물 등장 이후, 그것에 감염되어 버린 남편을 잃었다. 바로 눈앞에서 기생생물에 전염된 남편은 준경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죽이려고 시도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을 죽인다. 비록 준경은 가까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켰지만, 손이 잘리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그 상황은 그녀를 슬픔에 가두기보다는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야기 내내 그는 무척 차가 워 보이고 기생수 퇴치가 전부인듯한 말을 내뱉는다.
그녀의 앞에 나타난 세 존재, 수인과 하이디 그리고 강우는 준경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보면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마음, 그 마음은 수인과 강우도 똑같이 경험한 감정이며, 기생생물인 하이디도 동일하게 느낀 감정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갑작스럽게 상실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은 존재들이고, 우연히 만나 상실감으로부터 발현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끼게 된 존재들이다. 이들이 만나 세상에 흩어져버린 기생생물들과 벌이는 대결은 감정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연상호 감독은 <기생수 더 그레이>를 짧은 호흡으로 구성했다. 총 6회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보다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면서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본론으로 진입한다. 또한 각 인물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좀 더 직관적으로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은 꽤나 흥미롭다.
이 시리즈는 수인의 이야기다. 기생생물 하이디와 공생하게 된 수인은 끔찍하게만 느껴졌던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큰 용기를 내어 기생생물들과 대결을 벌인다. 비록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지만, 수인은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시작하지만, 모두가 함께인 따뜻함으로 마무리된다. 무엇보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비밀스런 새로운 인물은 원작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더욱 반길 것이다. 그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HRDUH5A0Jbs?si=cIaXY3LwMKKkD36N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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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리뷰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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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솔루션 북'을 어제 영화관에서 보고 왔습니다.
대강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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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마크'는 에이전트에 자신의 새로운 필름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해고하려하고,
마크는 이에 맞서, 자신의 클립과 자료들을 챙겨 작은 마을로 도피합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영화를 감상한 사람의 의견을 먼저 드리자면, 일단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미셸 공드리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이 본인을 주인공 '마크'에 투영하여 만든 영화인만큼, 그의 기존 작품 스타일과 제작/연출 방식을 알고 보면 이 주인공 '마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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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는 '코미디'입니다.
그런만큼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재미요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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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이 영화는 한 사람이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가 아닌,
(물론 겉으로는 맞습니다만, 미시적으로 보았을때는 그게 포인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와 함께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위기와 갈등들을 통해 그가 한단계 성장하고, 새로운 사랑도 찾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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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톡톡 튀는 영화입니다.
연출도 마음에 들었고, 피에르 니니의 연기도 완벽했네요.
한국에서는 언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개봉하면 보러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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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시간 42분,, 정말 마음에 듭니다.
까이예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가 평점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지만...
저는 3.5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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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 학대를 막을 수 있는 방법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여러 학대받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받고, 집에서 가족에게 학대를 받는 아이들은 그 학대의 흔적을 지우려고 무던히 애쓴다. 그래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흔적을 꼭꼭 숨기려 해도 조금씩은 그것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 사소한 흔적을 유심히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그 대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그 학대의 모습들을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그런 세심한 관심은 학대를 막거나 멈출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세심히 주변을 둘러보고 손을 건네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많은 복지단체, 복지사, 경찰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또는 개인의 관심으로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그런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학대받는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학대를 모두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집에서 벌어지는 학대의 경우, 아이의 부모에게서 아이를 완전히 떨어뜨려 놓기는 힘들다. 제도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 그것을 막으려 하지만 그 힘이 닿지 않을 때도 많다. 얼마 전에 있었던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나, 인천 의붓아들 학대 사망사건 등 최근까지도 이런 학대는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복지 제도권 안에서 해결해보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멈춰지지는 않았다. 그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뉴스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정 내 학대를 다루는 영화 <고백>
영화 <고백>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학대에 대한 영화다.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던 신입 경찰 지원(하윤경)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불안하게 앉아있는 오순(박하선)을 발견한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지원은 뛰어가다 속도를 멈추고 오순의 옆에 앉게 되어 대화를 나눈다. 그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어색하게 헤어진다. 영화는 우순과 지원의 불안하고 찜찜한 얼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가정 학대를 받고 있는 보라(감소현)를 등장시켜 그 주변에서 어떤 반응과 일들이 있는지를 조금씩 보여준다. 뉴스에서는 누군가 아이를 납치하는 일이 벌어지고, 납치범은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국민 일인당 천 원씩 1억 모금을 요구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같은 날 시작된 주인공들의 만남과 납치범의 인질극은 영화 중간중간 묘하게 겹치며 긴장을 만든다.
영화 속 오순은 사회복지사다. 여느 사회복지사가 그렇듯 어려운 일을 돕는데 특히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그와 그의 동료 미연(서영화)이 학대받는 아이를 돕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연이 차분하게 제도 안에서 그들을 도우려 노력하는 인물이라면, 오순은 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를 그곳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에는 합리적으로 차분히 아이를 돕는 미연에게 동감하게 되지만, 실제로 학대를 받고 맞는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면 관객은 점점 오순의 행동에 동감하게 된다. 미연의 도움은 제도권 안의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벌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학대받는 아이들에게 원인을 차단할 수 있는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아이 학대 신고로 아이의 멍든 모습을 보더라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은 앞선 도움의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잘 보여준다.
오순은 보다 적극적으로 학대받는 아이 보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직접 보라 아빠와 각을 세우기도 하고, 소리치고, 몸싸움도 벌인다. 그렇게 영화는 보라가 아빠에게 학대당하는 모습과 그것이 아이의 일상생활을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를 오순의 눈과 귀를 통해 보여준다. 집에서 보라는 늘 겁에 질려있고, 학교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자신이 선생님의 관심에서 멀어진다고 느낄 때 다른 친구에게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기도 한다. 많은 학대 아동들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겠지만, 그것은 의외의 모습을 만들기도 한다. 영화 속 선생님의 말처럼 그런 아이의 모습은 섬뜩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배경을 이해하고 알게 된다면 그 모습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사회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 세심한 관심
영화 속에 신입 경찰 지원은 주변을 아주 세심히 관찰하는 인물이다. 가정 폭력을 받는 여자를 도우려 한다거나 그런 폭력적인 낌새를 눈치채고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 역시 경찰이라는 사회제도적 울타리에서 행동한다. 그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경찰에 대한 교육을 할 때 그는 경찰은 주변을 잘 관찰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의 말처럼 경찰은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고 이상한 것이 있는지를 발견해 내야 한다. 보통 가정 폭력 피해자들은 보복 때문에 그것을 주변에 알리기 어려워한다. 영화는 지원의 그런 세심한 관찰을 보여주며 실제로 가까운 사람의 폭력을 어떤 식으로 도와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번이고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도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보라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해주는 오순을 만나며 보이지 않던 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보라는 오순과 보낸 짧은 시간을 행복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가 미소 짓는 순간은 영화의 분위기도 밝게 만든다. 그동안 공포에 질려 보낸 집, 그리고 아무도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학교에서 그는 시종일관 무표정하거나 공포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아빠에게 별 이유 없이 맞고 잘못했다고 우는 모습은 계속 지켜보기 괴롭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서에 가도 아빠라는 이유로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 멍이나 여러 가지 학대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빠가 때렸는지 증명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경찰의 이야기는 과연 지금의 제도가 가정 학대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질문하게 만든다.
영화에 또 다른 이야기로 등장하는 유괴사건은 그 실체를 명확히 알려주지는 않는다. 일종의 맥거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누가 그 모금을 위한 편지를 보냈는지 왜 모금 계좌를 복지재단으로 했는지 등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 납치 사건과 오순, 보라 그리고 지원이라는 세 인물에게 벌어지는 일을 대비시킴으로써 가정 폭력의 가해자와 납치범 각각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비교하면서 관객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주인공 오순역을 맡은 박하선 배우는 가정 학대를 한 부모에게는 신경질적이고 감정적으로, 다른 한 편으로 피해 아동에게는 차분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오순을 잘 표현해낸다. 그 자신도 학대를 받았던 오순이 아직도 그냥 끔찍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며 오열하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눈에 띄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원 역을 맡은 하윤경 배우도 따뜻한 시선의 좋은 연기로 영화의 사실감을 더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고백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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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으로 물드는 사랑, 영화 <로마>
- 로마 (Roma, 2018)
제작 : 멕시코, 드라마 │ 감독 : 알폰소 쿠아론
출연 : 얄리차 아파리시오(클레오), 마리나 데 타비라(소피아)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35분뛰어난 색감 구현이 가능한 컬러영화 시대에 흑백영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흑백영화인 <로마>를 보았을 때, 색을 볼 수 없으니 왠지 답답할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차례도 답답함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흑백판으로 다시 개봉된 바 있고, 이준익 감독의 <동주>와 <자산어보>는 아예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이에 대해 두 감독은 비슷한 이야길 한다. 봉준호 감독은 “색이 없으면 텍스쳐에 더 집중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이준익 감독 역시 “현란한 컬러를 배제하면 물체나 인물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형태가 더욱 뚜렷하게 전달된다”라고 말한다. <로마> 역시 그러했다. 이 놀라운 흑백영화가 다시 컬러판으로 재상영한다고 하면 이제는 왠지 배신감이 들 것 같을 정도다.
<로마>는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의 수도, 그 로마가 아니다.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동명의 작은 지역을 가리킨다. 그곳은 멕시코 출신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자란 곳으로, 영화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의 멕시코, 즉 알폰소 쿠아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자전적 이야기이다.
감독의 어린 시절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자신을 낳고 기른 엄마 ‘소피아’. 그리고 엄마 못지않게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폈던 여인 ‘클레오’. 중산층에서 태어난 그의 집에는 입주 가정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극 중의 ‘클레오’라는 멕시코 여성이다.
가정부 클레오가 집을 이리저리 치우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네 명의 아이들과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분명히 그들이 고용한 고용인이지만 어쩐지 가족처럼 친밀해 보이는 클레오까지. 화목해 보이는 이 중산층이 그려질 때만 해도 영화는 따스하기만 했다.
어느 날 아빠는 해외로 출장을 떠나게 되는데, 엄마 소피아가 떠나는 아빠의 등을 움켜잡고 울먹이는 게 왠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길로 아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새 연인이 생겼고, 그래서 다시는 이 가족을 보러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 관객들은 알 수 있었는데, 천진한 아이들은 미처 이 상황을 모른다. 그 모습이 너무도 마음 아팠다.
그 무렵 가정부 클레오는 만나던 남자의 아이를 갖는다. 그러나 비겁한 남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관 앞에 앉아 도망간 남자를 기다리는 클레오의 모습은 얼마 전 소피아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마찬가지로 그 남자도 돌아올 일은 없겠지. 온기가 맴돌던 집안에 남겨진 두 명의 여자.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때는 1970년대다. 가장이던 남편이 떠난 후 네 명의 아이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그 시절 여성의 삶은 너무도 막막하다. 내 뱃속의 애를 부인하고 내뺀 그놈 앞에 유전자 검사결과지를 뿌리며 인생을 조져주겠다는 용기도 쉬이 내기 힘들던 시절이다. 소피아는 양육비도 주지 않는 남편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구하고, 클레오는 비록 아빠는 없지만 뱃속의 아이를 낳을 생각으로 지낸다. 두 여성의 삶이 그 암흑 같던 시절에 얼마나 버거웠을지는 감히 헤아리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행으로, 그 돌풍 속에서도 아이들만큼은 아버지의 부재를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이유는 당연히도,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는 두 여성의 눈부신 애정이 있었기 때문. 관객들은 알고 있었다. 그녀들만큼은 이 아이들, 이 집을 떠나지 않을 거란 걸. ‘부모와 아이들’로 구성되어있던 한 가족은, 그렇게 점차 ‘두 엄마(소피아와 클레오)와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가족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고용주-고용인 관계였던 소피아와 클레오의 관계도 여성 간의 연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자신의 물건을 챙기러 집에 들르기로 한 날, 가족은 여행을 떠난다. 물론 여기서의 가족은 엄마 소피아와 가정부 클레오 그리고 아이들이다. 제법 단단해진 엄마 소피아는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이제 아빠는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아이들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말. “아빠가 더는 우리를 안 사랑하세요?” 아니, 많이 사랑하시지. “그럼 언제 볼 수 있어요?” 그건 엄마도 몰라.
경제적 지원마저 끊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야 했을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당시 쿠아론 감독은 고작 열 살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왜 돌아오지 않는지, 넷 씩이나 자식을 낳아놓고도 왜 돈을 보내주지 못하는지, 아이들도 소피아도 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비정한 남자를 대신해 그 옆에 앉아 아이들의 밥을 먹이는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클레오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이들은 다소 파도가 거세 보이는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위험하니 깊은 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은 영 듣지 않으며. 결국 아이들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지고, 이를 지켜보던 클레오가 놀라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간다. (클레오는 이 여행을 오기 전, 멕시코 독재정부를 타도하는 시위대가 정부의 총격에 맞아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 유산을 했다.) 그녀는, 죽을 뻔한 아이를 건져내고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때 달려온 엄마 소피아는 그녀와 아이들을 부둥켜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클레오, 우린 너를 사랑한단다. 정말로 사랑한단다.” 유산한 클레오의 곁에 있던 것도, 그 남자가 아닌 고용주 소피아와 그 가족들이었다.
그야말로 눈물이 주룩주룩.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던 이 두 여인의 남자들은 어디 있는가. 바닷가에서 두 여인과 아이들이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들은 여지없는 분명한 가족이었다.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이런 것일까. 이 영화에는 색감뿐 아니라 음악도 없는데, 영화의 매력적인 두 요소가 빠졌다는 게 정말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이라 표현하긴 진부하고, 가족애라 표현하기엔 편협한 어떤 커다란 감정이, 오로지 이 영화를 채우는 전부다. 하지만 모자람을 느낄 겨를 따윈 없다는 거.
새소리로 지저귀며 끝나는 이 영화의 엔딩을 통해, 쿠아론 감독이 두 여인의 사랑 속에 얼마나 따뜻한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가족은 다시 그들의 일상을 영위해나간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바다에서 빠져 죽을 뻔한 이야기를 전하고, 클레오는 유산 후의 실어증을 극복하며, 소피아는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알폰소 쿠아론이라는 명 감독을 선물해 준, 감독의 두 여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알폰소 쿠아론이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들은 과연 엄마이자 아빠였고, 그 사랑은 가족애라는 개념을 넘어선 연대정신이었다. 쿠아론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묵직하고 다정한 시선은, 자신을 키워낸 여인들의 그 따스한 품에서 피어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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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놉이라할땐 난 옙!
블로그 소개란에 써있는 '약간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스포일러를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ㅎㅎㅎ'는 실제, 영화를 보는 스타일이다.
'진짜 재밌는 영화는 스포가 되어도 재밌다'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호하기에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는 결말에서 그 충격이 그대로 온다면, 좋은 영화로 받아들인다.
근데, 이번 <놉>만큼은 스포일러를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영화 <놉>은 하늘에 떠 있는 "그것"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OJ"와 여동생 "에메랄드"가 "그것"과 맞닥뜨린다는 내용이다.
1. 말처럼 변한 관객들
영화 <놉>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중요한 소재는 "말"을 택한 이유에는 동물들 가운데 가장 겁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잘 달린다는 표현보다는 "천적으로부터 도망간다"라는 보호적인 행동으로 봐야 한다. 공포 영화에서 관객들의 의중과 달리 행동하는 데에 "왜 저래?" 하는 짜증 나는 순간이 있을 거다!
하지만 무서움과 별개로 궁금함도 생겨 상반되는 낯섦을 관객들에게 안겨준다.
극 중. "OJ"를 비롯해 모든 캐릭터들은 하늘에 떠있는 물체에 집중하고는 이를 찍어 "오프라 쇼"와 같은 곳에 팔려는 욕심을 보여준다.
"그것"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는데도 왜 그럴까?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판도라"는 "제우스"에게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라는 당부를 듣지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세상의 모든 죄악이 나오고 만다.
우리는 그걸, "호기심"이라 하며 "본능"이라고 말한다.2. 우리 모두, 쇼비즈니스에 있다!
영화 <놉>에서의 "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극 중. "OJ"와 "에메랄드"는 자신들을 소개하는 데에 '에드워드 머이브릿지'가 촬영한 최초의 영화 <움직이는 말1878>에 나온 기수의 후손이라고 소개하며, "OJ"와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목장은 할리우드 촬영장에 쓰일 말들이다.
여기, 현재 "주피터 랜드"를 운영하는 "주프"는 아역 배우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으니 <놉>은 애써, '메타포'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내용과 홍보에는 "스포일러"를 경계한다!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는 "쇼비즈니스"의 특성상. <놉>의 "그것"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카메라맨 "호스트"와 "에메랄드"는 열심히, "그것"을 찍으려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아이맥스 필름과 디지털, 그리고 자연광과 피사체라는 경쟁 구도로 이어진다.
물론, "먼저 찍어야 한다"라는 목적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바깥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 블로거의 말마따나 좋아요와 댓글, 그리고 조회 수로 먹고사는 "쇼비즈니스"의 원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tmi. 1 - "OJ"를 맡은 "다니엘 칼루야"는 <놉>의 촬영으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하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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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오브 도그>서부극이라서 가능했던 강렬한 퀴어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25년 미국 몬타나,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베너딕트 컴버배치)'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리먼스)'는 '로즈(키얼스틴 던스트)'와 그녀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피터를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서부극 하면 늘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말을 타는 카우보이가 방랑자 내지는 보안관과 펼치는 결투. 서부를 개척하는 이주민들과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원주민의 대립과 갈등. 서부개척시대와 시대적 배경이 겹치거나 이어지는 남북전쟁이나 노예제와 같은 이슈의 등장 등등.
이러한 클리셰를 기대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서부개척시대가 끝나가던 1925년을 배경으로 하기에 서부극다운 상징적인 클리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드라마), 감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작품이 여전히 뛰어나고 아름다운 서부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익숙한 장면은 없어도 서부극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며, 퀴어영화의 요소를 더해 그 본질을 유려하면서도 색다르게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서부극의 본질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특히 이분법적 관점의 묘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동부의 이주민이 금광을 비롯한 자연을 개발하고 착취하며 원주민의 영역을 침범한 서부개척시대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당장 <파워 오브 도그> 속 배경만 봐도 그렇다. 마음껏 뛰놀아야 할 소들은 목장 안에 갇혀 있고, 들리지 않는 말굽소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대신하며, 평원에는 철도가 들어온다. 자연의 영역은 인간과 문명에게 잠식당하고, 광활한 서부에는 점차 안정적인 질서가 자리 잡는다. 그래서 서부극은 선과 악, 삶과 죽음, 자연과 문화, 무지함과 교육, 야만과 문명, 남성과 여성처럼 상이한 세게의 총체적 대립을 묘사하기에 용이하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 두 세계와 관점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지점은 캐릭터들이다. 소를 몰고 가던 필이 평원에 누워있는 소 시체를 보고 탄저균이 옮을 수 있으니 절대 만지지 말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강조하는 것은 단적인 예시다. 로즈와 조지 부부가 조지의 부모님, 주지사 부부가 참석한 저녁 파티 장면처럼 대비되는 인물상을 통해 무지함과 교육, 야만과 문명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어버리기도 한다. 서부에서만 지내온 로즈는 교양 넘치는 대화에 전혀 끼어들지 못한다. 그녀는 피아노 연주를 부탁받지만 도시 출신 손님들 앞에서 지나치게 긴장해 연주를 망친다. 파티에 꼭 참석해달라는 조지의 부탁을 무시한 필은 씻지도 않고 연회복도 입지 않은 채 식사자리에 난입해 손님들을 당황시킨다.
이때 수많은 대립 구도 중 캠피온 감독이 유달리 관심을 기울이는 대목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이다. 이는 필과 로즈, 필과 피터의 첫 만남에서부터 알 수 있다. 목장의 주인이자 카우보이의 리더로서 마초적 가치를 중시하는 필은 창백한 피부를 지닌 피터의 유약함을 조롱하면서 피터가 만든 종이꽃을 불태운다. 이를 목격한 로즈가 피터를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필은 남자애를 약하게 키우면 안 된다면서 자신의 강인함을 더욱 뽐내려고 한다. 로즈가 조지와 결혼해 한 집에서 살게 되자 필의 행동은 더욱 거칠어지고 조롱의 강도도 더해진다. 로즈는 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로 술을 선택하고, 피터도 필 앞에서는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다. 이렇게 영화는 남성성과 여성성 간의 일방적인 충돌 양상을 그려낸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성의 대변자인 필이 정작 동성애자이자 누구보다도 여성스러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동생이 자신의 곁을 떠나거나 자신에게 소홀하면 불안해하고, 종이꽃을 만들던 피터처럼 섬세하게 기타를 연주할 줄 안다. 그는 자신에게 승마를 알려주고 카우보이의 삶을 가르쳐준 브롱코 헨리를 사랑했고, 그 애정을 항상 간직해 왔다. 결국 필에게 카우보이들을 장악하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마음 여린 동생을 향한 조롱, 지나치게 마초적이고 남성적이었던 그의 언행은 상실감을 가리지 위한 포장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는 필의 성적 지향은 그를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인물로 만들기도 한다. 영화가 묘사하는 또 다른 경계들까지 무너뜨리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일대학교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필은 서양적 관점에서 볼 때 문명의 시작을 심도 있게 공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문명과 거리가 먼 카우보이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추구한다. 그에게 말, 카우보이, 자연, 언덕과 그림자, 이 모든 자연은 브롱코 헨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은 문명과 도시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루이지애나를 탐험하며 태평양까지 향했던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의 정신을 동경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필이라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서부극 속 영웅들인 존 웨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전형적인 영웅처럼 느껴진다. 서부극의 영웅은 농장과 황야를 오가고 이주민과 원주민의 특성을 모두 가지면서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오간다. 두 세계 사이의 긴장, 충돌, 모순을 보여주고 둘 사이를 매개한다. 브롱코와의 사랑의 흔적을 아무도 올 수 없는 내밀한 숲 속에 숨겨두는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랑을 매개로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두 세상을 그려낸다. 동성애자로서 자신과 닮은 이들을 조롱하고 탄압하고 짓밟아야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당시의 시대적 모순을 보여준다. 그저 총을 쏘지 않고 결투를 펼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파워 오브 도그>는 서부극이기에 가능한 퀴어영화다.
이에 더해 <파워 오브 도그>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영웅인 필의 파트너로 피터를 내세우면서 서부극의 서스펜스를 조성함과 동시에 퀴어영화적 요소를 심화시킨다. 창백한 피부를 지녔고, 테니스도 잘 못 칠 뿐 아니라 말 타는 법도 모르는 피터. 그러나 피터는 필요하면 언제든 눈 깜짝하지 않고 토끼를 죽이고 해부할 수 있는 담력을 지닌, 의외로 강인한 인물이다. 즉, 피터 역시 필처럼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걸쳐 있는 인물이고, 그 모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필이 숨겨 왔던 가장 내밀한 공간을 찾아내 수 있고, 필만이 볼 수 있었던 개 모양의 그림자를 언덕 위에서 발견해낸다.
그런데 영화는 두 남성의 공통점으로부터 오히려 가장 큰 차이를 끄집어내며, 그 대조가 낳는 묘한 감정선을 통해 액션이나 결투 하나 없이 강렬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 긴장감은 영화 제목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파워 오브 도그(Power of Dog)'는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Power of Dog)'으로부터 구하소서"라는 내용의 시편 22장 20절 속 표현이다. 이때 '나'를 필로 본다면, 그를 위협하는 개의 세력은 그의 동성애적 성향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이며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는 피터의 존재다. 그래서 필은 피터를 강하게 밀어냄과 동시에 그를 눈여겨본다. 하지만 피터에게 개의 세력은 따로 있다. 어머니와 함께 필에게 모욕과 위협을 당해온 피터에게 칼과 개의 세력은 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격적인 태도 밑에 숨은 사랑과 열정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필과 달리, 피터는 사랑을 가장한 냉철함을 유지한 채 필에게 다가간다. 필은 피터에게 승마를 알려주고 애정의 증표인 밧줄을 만들어 주지만, 피터에게 이 모든 것은 자신과 어머니를 구할 날카로운 칼날로 보인다. 즉, 둘의 접점은 선악의 경계마저도 불분명하기에 더욱 긴장되고 강렬한 것이다. 단적으로 보면 피터는 선이고 필은 악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더 과장되게 포장해야 했고, 자신 본연의 모습과 정체성을 감춘 채 스스로를 잠그고 살아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필은 단순히 평면적인 악인으로 규정되지도 않느다. 그래서 둘이 함께 하는 장면은 정적이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고, <파워 오브 도그>는 서부극이기에 강렬한 퀴어영화가 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연명하던 서부극에 섬세하고 감성적인 새 숨결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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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은 결말을 포함하고있습니다. 영화: 메리,퀸 오브 스코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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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예 12년> 오스카 예고편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미국 내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州)로 팔아 넘기는 것.
음악가 '솔로몬 노섭', 노예 '플랫'!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실화!
1841년 뉴욕.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에게 노예 신분과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12년의 시간 동안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나게 되는데…
단 한 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12년 간의 기록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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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청춘적니> 30초 예고편
17살, 빈 교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링이야오'에게 첫눈에 반한 '뤼친양'.
그의 순수한 고백에 '링이야오' 역시 호감을 느끼며 두 사람은 사랑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이 전부일거라고 생각했던 10대와 달리 20대에 들어선 두 사람은 점차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가고, 마침내 두 사람이 사랑한 지 10년이 되는 날, '뤼친양'은 '링이야오'를 위해 운명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내 청춘 속 누구보다 빛났던 너, 세상 끝에서 다시 함께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