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5 03:14:31
타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의 여정은 매우 쉬울수도, 고난이 될 수도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리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사회는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같은 세상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다른 세상이며 미지에 가까울 수 있다.
이 영화는 난치병으로 시력과 기동성을 잃은 한 남자를 통해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본 영화는 실제로 다발성 경화증을 가진 배우가 연기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기가 정말 본인이 겪어온 경험들과 섞이는 듯 해서 정말 훌륭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화면은 계속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을 빼면 초점이 안 맞춰져 있다.
이것은 실제로 본 질병 중 거의 앞이 안 보이는 것을 관객도 직접 느낄 수 있게 의도한 연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단순히 작중 상황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러닝타임이 짧은 만큼 작중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장소도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생각해보면 작중에서 주인공 야코가 언급한거 처럼, 주인공의 여정은 생각보다 안 어렵게 느껴진다.
'좋은 타인' 몇명을 만나 몇번의 도움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기차를 탈 때나, 택시를 탈 때 정도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 '타인'을 잘못 만나서 고난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지갑을 뺏기고, 그 사람이 계속 쫓아와 공장으로 데리고 가는 등, 상황은 더 이상 관객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처음에 그가 말한 좋은 타인을 만나, 시르파의 집 앞까지 도달한다.
어떻게보면 문제가 정말 쉽게 해결된건데, 단순히 내용을 편의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타인이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야코의 여정이 달라진다는 게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슬프게 느껴진다.
만약 처음에 좋은 타인을 만났다면 애초에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드디어 시르파를 현실에서 만나고, 처음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빼고 타인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의 시르파를 빼면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의 얼굴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데, 마지막에야 드디어 다른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고, 그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전화만 했던 시르파라는 사실이, 그 장면의 힘이 정말 강력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 영화는 장애인을 이용해 가난 포르노 같은 걸 찍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를 이러이러하게 바꿔나가야 한다 같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아주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응시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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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찾아서
영화 <어바웃 타임>리뷰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인생영화 <어바웃 타임>의 리뷰를 작성해보려 합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어바웃타임> 영화 스틸컷>
<어바웃타임>은 팀의 아버지 빌이 팀에게 가족대대로 남자들은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가문의 비밀을 알려주며 시작됩니다. 팀은 이 능력을 이용해 여자친구를 사귀려 노력하는데 그렇게 만나게된 여자친구 메리! 팀은 메리와 완벽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시간을 되돌리고 되돌리며 자신의 실수를 하나하나 고쳐갑니다. 하지만 능력을 자주 사용하면 할수록 꼬여버리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이 시련들을 팀이 어떻게 해쳐나갈지! 빌이 팀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진정한 인생이란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영화 <어바웃 타임>을 꼭 봐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어바웃타임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첫번째, 바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의 사용입니다
보통은 '시간여행'과 같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인물이 나오면 슈퍼히어로 처럼 지구를 구하거나 나라를 구하기 마련인데 어바웃타임에서는 팀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사람들 끼리만의 일로 전개된다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주변사람들만의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다른 초능력 영화들과는 달리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고 인물 내면을 더 깊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인생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어바웃 타임을 보고 난 후 사람의 인생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능력을 얻은 팀은 능력을 수차례 사용하지만 영화의 끝에는 능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모습을 통해 어쩌면 사람의 인생 중 순간순간에 행복함과 소중함을 느끼는 이유는 인생에서 단 한번만 경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능력을 사용해 소중한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겠지만 만일 수차례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처음 느꼈던 감정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을까요? 점점 처음 그 순간의 감정을 잊게 될 것입니다.
<어바웃타임>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하루하루와 모든 사건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영화였습니다.어쩌면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하루도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소중했던 순간이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어바웃타임>의 명대사 하나를 보여드리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파노라마_에디터 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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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갑게 몰아치는 웃음, 짙어지는 슬픔의 삼각형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 사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잡히는 주름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미용 업계에서 쓴다는 용어를 제목으로 쓴 걸까요?
제7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슬픔의 삼각형>은 다름 아닌 계급 전복 코미디입니다. 절로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죠. <기생충>도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칸 영화제의 취향을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칸 영화제의 취향과는 무관하게 안쪽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던 자본주의 사회의 부패를 이제는 눈감아 줄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뜻일지도 모르죠. 칸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라서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린 작품이라서든, 어찌 됐든 볼만한 작품 <슬픔의 삼각형>을 소개합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슬픔의 삼각형>의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슬픔의 삼각형>은 2023년 5월 17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슬픔의 삼각형
Triangle of Sadness
<슬픔의 삼각형>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초호화 크루즈의 부자 탑승객들이 외딴섬에 고립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앞으로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놓을 것인지 시작부터 과감하게 드러냅니다. '발렌시아가 표정'과 '에이치엔엠 표정'을 번갈아지어 보이는 남자 모델들을 통해서 말이죠. 소비자를 내려다보는 듯한 도도한 눈짓은 '발렌시아가 표정'이고, 모두에게 편안하고 관대한 포용적인 눈짓은 '에이치엔엠 표정'입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미지가 다른 이유는 두 브랜드가 타깃으로 삼는 소비자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인데요. 이 사실을 아는 관객들은 1초 단위로 표정을 바꿔 짓는 모델들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분명한 진실 하나를 깨닫게 되죠. '부정하고 싶어도, 현대 사회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풍자를 도구 삼아 바로 이 '현대 사회 속의 계급'을 철저히 짓밟아 나갑니다. 바다 위의 고급 크루즈와 무인도는 모두 외부와 단절된 세상, 한 마디로 갇힌 공간입니다. 갇힌 공간은 언제나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로 기능합니다. 고립되는 것만으로 이 안에서 만들어지는 규칙이 속세의 법과 풍습보다 우선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특징을 활용해 감독은 갇힌 공간을 풍자극의 무대로 만들어 버립니다.
위선을 행하며 부와 재력을 과시하던 부자들은 거센 비바람에 휘청거리는 배 안에서 만찬을 즐기다가 구토와 분뇨에 뒤범벅되고 맙니다.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구토와 분뇨를 부자 계급과 연결지음으로써 품격 있던 그들은 한없이 우아함과 멀어집니다. 감독은 글자 그대로 부자 승객들을 구토와 분뇨 위에 데굴데굴 굴려버리죠. 극 중 인물들이 뿜어대는 토사물은 특수효과나 연출이 아니라 실제 배우들의 구토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구토와 분뇨는 본능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웃음 치트키'지만, 팡파르처럼 터져 나오는 토사물과 똥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게 됩니다. <슬픔의 삼각형>은 '현대 사회 속 계급'을 향해 보내는 매서운 눈초리를 더러움으로 표현하려는 듯, 상상 그 이상으로 지저분한 묘사를 해냅니다. 따라서 비위가 약하시다면 감상을 무척 주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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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마냥 웃기기만 하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니, 시도 때도 없이 계급 차별, 인종 차별, 성 차별, 남녀 관계와 페미니즘, 자본주의의 모순 등 논쟁적 주제들이 치고 들어오는 통에 마냥 웃을 수가 없다고 해야 정확하겠습니다. '끽끽-'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면 아무리 즐거운 상황에서도 괜히 예민해지듯이 말이죠.
그렇게 약간의 불편함을 안고 영화를 보다 보면 종국에는 또 하나의 진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직 생존력만이 중요해진 외딴섬에서 사람들의 계급, 인종, 성별의 차이는 모두 사라집니다. 그렇게 부자 승객들의 구토와 분뇨를 청소하던 크루즈의 청소부이자 필리핀 여성인 '애비게일'이 그곳의 우두머리이자 캡틴이 됩니다. 그녀가 이곳의 캡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돈의 가치가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녀가 바깥세상에서 캡틴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그곳이 오직 돈의 가치만이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이죠. 계급, 인종, 성별을 아우르는 모든 논쟁적 주제의 핵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총 3부로 구성된 <슬픔의 삼각형>에서 외딴섬의 이야기는 3부에 등장합니다. 3부는 계급, 인종, 성별을 전복하고 캡틴의 자리에 오르는 '애비게일'의 역할이 무척 중요한 파트인데요. 3부의 끝자락에서 '애비게일' 역을 맡은 배우 돌비 드 레온이 선보인 표정 연기는 이 영화의 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애비게일'의 얼굴에 강하게 드리운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있으면, 제 미간 사이의 슬픔의 삼각형이 함께 짙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기생충> 속 인디언 모자를 쓰고 '박사장'을 바라보던 '기태'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하죠.
영화는 상영 시작 후 5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슬픔의 삼각형'의 의미를 밝힙니다. 따라서 관객은 장장 2시간 30분에 이르는 상영 시간 내내 이것의 함의를 생각해 보게 되죠. 의미를 곱씹으며 영화의 여정을 따라 흘러가던 관객은 마침내 종착지에 다다라서야 '애비게일'의 얼굴에 선연하게 자리한 슬픔의 삼각형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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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슬픔의 삼각형>에는 화각을 넓게 잡아 화면 속 인물을 실제보다 멀리 보이게끔 연출한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말입니다. 더불어 흔들리는 배 안을 실감 나게 연출했던 섬세한 촬영 기법도 인상적이었죠.
'애비게일' 역의 돌비 드 레온의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입니다. 자본주의를 죽도록 싫어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크루즈의 괴짜 선장 '토마스' 역의 우디 해럴슨, 인플루언서의 지질한 남자친구 '칼' 역의 해리스 디킨슨, 그리고 당당하고 주체적인 인플루언서 '야야' 역의 샬비 딘까지. 그래서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배우 샬비 딘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더 많은 작품에서 펼쳐질 호연을 기대케 했던 그녀의 유작을 극장에서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Summary
호화 크루즈에 #협찬 으로 승선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휴가를 즐기던 사이, 뜻밖의 사건으로 배가 전복되고 8명만이 간신히 무인도에 도착한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구조 대기뿐인 사람들… 이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여기선 내가 캡틴입니다. 자, 내가 누구라고요?”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돌리 드 레온, 샬비 딘, 해리스 디킨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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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일 순위는 나여야만 해
제목의 '위국(違国)'이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어긋난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긋난 나라에서 쓰는 일기'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왜 어긋난 나라인지는 영화 속 마키오와 아사의 불편한 동거를 보면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저 다른 것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끝까지 양보하려 들지 않는 양쪽의 지독한 고집이 서로를 끝끝내는 어긋나게 만들어 버린다. 보통이라면, 남들이라면 대체로 웃으면서 그러려니 넘어갈만한 지점들도 꼭 짚어내어 기어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두 사람의 일반적인 생활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눈대중으로는 얼추 맞을 것 같은데, 기묘할 정도로 결정적인 곳에서 맞지 않는 이들의 성향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한다. 칼각으로 접히는 수건이나, 틈새에 딱 들어가는 청소기같이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영상들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의 정 반대다. 항상 삐걱거리고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없는 둘의 사이는 그야말로 '위국'이다.
"어른이 친구가 있는 건 처음 봤어."
아사는 이모를 보며 자신이 알고 있던 어른의 범주가 굉장히 좁았음을 알게 된다. 어른이라면 응당 이럴 것이라는 기대감과 선망이 사라지자, 그들 역시 인간에 불과하다는 뻔하고 지루한 진실만이 남는다. 하지만 이모인 마키오는 그런 것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거나, 어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해줄 만한 행동보다는 '모든 어른이 그렇지는 않다'라는 것을 쉽게 인정할 따름이다.
"이모가 반대할까 봐 그랬어."
자신의 친구조차 쉽게 대하지 못하고 버벅대는 이모를 보는 아사의 심리는 조금씩 바뀌어간다. 세상 모든 어른의 기준이 자기 엄마였기에, 처음에는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하려고 애쓴다. 밴드부에 가입한다고 하면 혼날까 봐, 말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아사가 엄마에게 꽤나 압박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선생님과는 다른 어른 군상을 통해 아사는 조금 더 자유를 만끽하는 쪽으로 변화되어 간다.
"나는 네 엄마가 될 수는 없어."
아사의 불안감과 외로움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마키오였지만, 정작 아사를 가장 불안하고 외롭게 하는 것도 마키오였다. 아사는 마키오에게 자신이 첫 번째이지 않은 것, 마키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더욱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빛나지 않더라도, 부모님과 있을 때는 언제나 자신이 우선순위였던 삶이 처참히 무너지면서 겪는 일종의 상실감일 것이다. 혼자가 될 때마다 '엄마였다면' 하고 되뇌지만 정작 그런 엄마가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죽어버린 것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아사는 혼란스럽다.
"너와 나는 다른 주체니까. 네 인생은 네가 살아야 해."
그런 아사에게 마키오는 잔인하고 냉담하게 말한다. 엄마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나 역시 마찬가지고,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것을. 그 말을 다르게 번역하면 '넌 결코 내 첫 번째가 될 수는 없어'라는 뜻과도 같다. 그리고 그건 모든 인물들에게도 통용된다. 마키오에게 첫 번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니까. 결국 마키오는 은연중에
"너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너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가 남겼던 일기를 보고 아사는 학교도 빠지고 할머니 댁으로 도망가 버린다. 아사는 자신이 생각한 엄마와 남들이 알고 있는 엄마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엄마'가 아닌 '코다이 미노리'라는 한 명의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아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에게도 결국 자신이 첫 번째는 아니었다는 것.
엄마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자신을 위했다기보다는 본인을 위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그제야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슬퍼할 수 있게 된 아사. 마키오 이모의 품에 안겨 울면서 '과거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한다. 타임머신을 만들어보라는 마키오의 말에 아사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 만나지 못했으려나."
"누굴?"
표면적으로는 이모인 마키오를 두고 한 말이었겠지만, 더 깊숙이 파고든다면 말 그대로 '어긋난 나라'를 의미한다. 기묘하고 이상하게 어긋난 세상을 만났기에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한층 성숙한 '어른'으로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것은 아사와 마키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여 감정선을 끌어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부분이다. 물론 그 주변인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불필요한 요소가 다소 존재한다고 느꼈다. 의도나 상징이 짙은 부분들에 있어서 영화의 맥락에 어긋나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 약간 불편했던 것 같다. 그저 보여주기식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고.
그렇게 이것저것 다 뒤섞은 바람에 영화를 보고 나서도 큰 주제와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원작이 10권으로 구성된 순정만화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용적으로 각색이 있어야 할 터인데, 곁가지들을 애매하게 남겨놓은 것이 영화 감상 방해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일본 특유의 감수성만큼은 잘 살린듯한 영화였다.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 받아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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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아이 대신 교복 입고, 연극 무대에 선다
- 장기자랑The Talent ShowCast감독: 이소현Synopsis중년 여성들이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하고 극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연극을 그만둘 수가 없다. (출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Review연기 한 번 해본 적 없는 중년 여성들이 모여 극단을 만듭니다. 그들은 수학여행을 앞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립니다.이 극단의 이름이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무대에 선 배우들은 세월호에 탑승한 단원고 학생들의 엄마들입니다. 엄마들은 연극이라는 도구를 통해 열여덟의 나이에 시간이 멈춰버린 아이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연극의 의미는 비단 애도만은 아닙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자아를 되찾는 세월호 유가족의 연극 도전기 <장기자랑>을 보고 왔습니다.⊙ ⊙ ⊙연극, 애도와 욕망의 매개체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여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임에서 시작했습니다. 괴로운 현실을 잊고 싶은 마음에 함께 커피를 배우고 희곡을 읽던 엄마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바로 그곳에서 탄생했죠.연극 ‘장기자랑’은 수학여행 장소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작품입니다. 엄마들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열여덟의 아이들을 연기하죠. 자신들의 아이는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연극 ‘장기자랑’ 속 아이들은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아이들의 꿈, 성격, 취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인물들을 연기하는 엄마 배우들은 “아프면서도 좋다”고 말합니다.뭐라도 해보려고 시작한 연극, 그 속에서 엄마들은 색다른 감정과도 마주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경험은 아내이자 엄마로 살면서 숨겨왔던 욕심, 욕망, 욕구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거든요. 연극을 시작한 뒤, 애진 엄마는 자기주장이 늘어 생전 해본 적 없는 말싸움을 했다고 말합니다. 짜릿한 연극 예술의 마력에 빠진 예진 엄마와 영민 엄마는 하고 싶은 배역을 두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요. 영화 <장기자랑>이 슬픔으로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영화 속에는 연극을 통해 잠시나마 아이를 잃은 죄책감, 공허함, 슬픔에서 벗어나 자아를 되찾는 여정에 오른 엄마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더 좋은 배역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며 싸우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유가족분들도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네.’ 이 메모를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제가 지금까지 안경을 끼고 유가족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가족은 종일 슬퍼만 할 거야, 유가족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야, 유가족은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할 거야. 하지만 유가족이라고 24시간 365일 내내 슬퍼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유가족에게도, 피해자에게도 일상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더 나은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몫이죠.사회가 제 몫을 다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연극이라는 매개체로 연대하며 자기 자신을 돌보아내는 엄마들이 대단하고 멋집니다. 감히, 편견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려 했던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 ⊙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2016년 4월의 그날 아침은 제 머릿속에도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아침 자습을 하던 중에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 재학생들은 바로 다음 주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고, 저는 1년 전에 같은 회사의 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곧바로 핸드폰을 제출하는데, 그날은 왜인지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해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은 몇몇 아이들이 계속해서 세월호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오보를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죠.올해로 벌써 세월호 참사 8주년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나와 비슷한 어른으로 자랐을 친구들을 떠올립니다. 떠나간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합니다. 엄마들이 연극 무대에서 자신을 ‘OO 엄마’라고만 소개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의 이름을 한 번 더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죠. 왜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예진, 영만, 순범, 동수, 수인, 윤민이를 비롯한 304명의 이름을.⊙ ⊙ ⊙추신. 처음으로 배리어프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자막을 켜고 시청할 수 있는 OTT 서비스가 많아져 한글 자막은 익숙했지만, 장면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설해주는 내레이션은 꽤 낯설었습니다. 낯섦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의도적으로 배리어프리 영화를 시청해야겠습니다.Schedule in DMZ DOCS2022.09.25(일) 메가박스 백석 컴포트4관 17:002022.09.27(화) 메가박스 백석 컴포트4관 10:302022.09.27(화)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103호 17:00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 09월 22일 -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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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간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사 둘의 광기
그토록 기다리던 닥터 스트레인지 2편이 개봉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두 번째 쿠키영상을 보고 나서 '아 언제 개봉날 오냐' 싶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소처럼 일하는 근면성실함 덕에 시간이 금방 갔던 것 같다. 또 <문나이트>를 비롯한 여러 디즈니 시리즈도 있었다! 오스카 아이작의 1인 다역 연기 보는 맛에 일주일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뭐 같은 사회복무요원 노예생활에서도 마블 덕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5월 5일 어린이날 전야에 무려 오후 반가를 쓰고 갔던 극장! 영화 자체는 나에게 엄청 재밌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 이은 기대치를 충족한 느낌이 좋았다. 샘 레이미 감독의 필모그래피 <드래그 미 투 헬>, <이블데드>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도 몇 군데 보여 보는 재미도 좋았다. 만약 안 본 분이 있다면 난 추천하고 싶다.
아. 안 본 분이 있다면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준비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완다 비전> 시리즈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돈이 없고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기 싫다 하는 분들은 유튜브에 내용 요약이라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크 홀드의 존재와 비전의 존재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웬만하면 <완다 비전>을 구독해서 보는 걸 추천드린다. 드라마를 잘 만들기도 했지만, 리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요약본 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또한 '브루스 캠벨'이라는 배우가 감독 샘 레이미의 필모그래피 단골손님이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사람이 뭐 영화 자체에 이야기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배우의 등장이 갑자기? 싶은 구석도 있을 것 같다. 사전에 알려진 대로 호러 맛 첨가의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또한 샘 레이미의 이름값과 어울리는는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올슨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엄청났다! 아, 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는 여기까지만 쓰고 싶다. 이다음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읭? 싶으실 수도 있는 부분을 글로 풀어쓰려고 한다. 영화를 본 다음의 폭넓은 감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든 스칼렛 위치
이게 <완다 비전>을 봤는지 유무가 극 이해에 영향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다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는 봤겠지? 잠깐 언급하자면, 비전은 완다에게 타노스의 마인드 스톤 회수 방지를 위해 자기를 파괴해달라고 요청한다. 완다와 비전은 서로 연인관계였기에 완다는 당연히 거부한다.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희생을 결심하는 완다. 어벤저스를 위해 자기 손으로 연인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타노스는 타임 스톤을 활용해서 비전을 다시 부활시킨다. 그리고 머리에 마인드 스톤이 뽑힌 채로 잔인하게 죽는다.
다시 <완다 비전>으로 돌아간다. 완다의 시트콤은 끝이 났다. 연인이 떠난 세상을 받아들이는 완다. 자기기만의 원인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한다. 문제에는 소드가 있었다. 실드와 유사한 조직인 소드. 소드의 국장이라는 놈은 비전의 몸을 오체 분시 한다고 한다. 이유는 자원 때문에 다. 고작 돈 때문에 내 연인을 죽이려고 한다. 국장은 재료 하나하나를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한다. 완다의 동의도 없이 비전을 무작정 끌고 갔다. 그리고 그 해부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완다. <시빌 워>에서 부터 시작해, 온 세상이 그녀에게 부드러웠던 적이 없었다. 멘토였던 스티브 로저스와 호크아이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닉 퓨리? 의무만 주고 혜택은 뭐 준 게 있었나? 나타샤 로마노프는 희생해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피붙이였던 오빠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삶을 그렸던 완다. 그녀에게 행복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그나마 행복했던 시기에 돌아가려고 애쓴다. 굴곡진 그녀의 삶에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유일한 전성기였다. 현재가 너무나도 불행하기 때문에, 과거에 미련을 돌리는 완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완다 비전>의 빌런 아가사가 말해준 다크 홀드를 꺼내는 완다. 그렇게 다크 홀드의 주화입마에 빠져 전우주적으로 강력한 마법사 스칼렛 위치로 변한다. 완다는 이 힘을 이용해 멀티버스를 파괴해서라도 아이들에게 가고 싶어 한다.
짧게 완다의 서사를 써 봤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완다 비전>과 인피니티 사가의 모든 영화를 봐야 한다. 그래서 이들 중 하나라도 안 본 분은 영화의 갑작스러운 호러영화 전개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과수원이 지옥도로 변한다고? 갑자기 완다가 스티븐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고?라고 느끼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오기 이전에 완다는 이런 서사를 품고 있다는 걸 다시 상기하시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을 때 봤던 스타크 폭탄. 너무 어릴 때 하이드라와 엮여 생겼던 능력. 이 덕에 날 괴물 취급하는 세상. 히어로 노릇하다 떠난 오빠와 비전. 마음 둘 데 없이 자기 인생 찾아 떠난 선배들까지. 그녀에게 행복이란 없다. 그녀가 희생해야 할 건 많았는데 세상이 해준 게 있을까? 솔직히 소드/실드/어벤저스가 도움 된 거라곤 비전의 오체 분시 직관이었다. 뭐 <시빌 워>에서도 그녀의 실수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긴 있지만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전 세계가 두들겨 팼으니 어느 정도는 가혹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러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난 그녀의 흑화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크 홀드를 펼치기 전에 슈퍼히어로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반복되어 내면이 뒤틀린 인간이다. 유일한 행복이라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인데, 히어로 짓 해서 얻었던 것도 없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양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적인 내면묘사로 인해 인물의 성격이 뒤틀렸고 이는 곧 <완다 비전>으로 이어진다. 아마 슈퍼 히어로서의 선함이 내면에 우세하다면 웨스트뷰 마을 주민들을 세뇌시킬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녀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본작에서의 살육극은 완다가 MCU에 존재하며 갚아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서사 전체에 대해서는 허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멀티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등장한 이유
극에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네 번 나온다. 첫 번째는 MCU의 닥터 스트레인지다. 슈퍼 히어로서의 닥터 스트레인지이며, 우리가 아는 사람이다. 마블의 영화를 꾸준히 정주행 했다면 그의 서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초반부다. 이상한 아저씨가 스티븐에게 스윽 나타나서 '정말 그것 빼곤 방법이 없었냐?'라고 묻는다. 스티븐은 대답한다. '응. 그거 빼곤 없었어'라고. 그리고 결혼식에서 크리스틴과 대화한다. 그녀가 스티븐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어차피 우리는 안 됐을 거야'라고. 크리스틴 역시 '그 방법 빼고는 없었다' 식의 답을 한 것이다. 사랑에 미련이 남은 스티븐에게 비수가 꽂힌다. 그리고 마음이 깨진다. 마치 유리가 깨진 시계처럼. 정말 그 방법 빼곤 없었을까? 아마 그는 그 자신에게 여러 번 질문한 듯 보인다.
다른 스트레인지는 디펜더 스트레인지(꽁지머리 스트레인지)이다. 아메리카 차베즈와 멀티버스를 여행하다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사망하는 스트레인지. 그는 아메리칸 차베즈의 능력을 뺏으며 '이것 빼곤 방법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말하며 차베즈를 살상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이 스트레인지는 시체가 된다. MCU로 시체가 이송되고, 이 꽁지머리 스트레인지는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극후 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은 슈프림 스트레인지다. 슈프림 스트레인지는 본인을 희생해서 타노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아이언맨이 메인 세계관에서 어마어마한 위인으로 평가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그가 추앙받는다. 그러나 슈프림 스트레인지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역시 다크 홀드를 이용해서 멀티버스를 여행했고, 이 덕에 타노스 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내 기억상 그가 직접적으로 '이것 빼곤 방법이 없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스티븐의 행적을 뒷받침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변종 크리스틴이다. 크리스틴은 스티븐에게 '그 역시 독선적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증언은 미스터 판타스틱의 입에서 다시 나온다. 세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가 하는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니까, 타인을 믿지 않았다.
네 번째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역시 독선적인 판단에 지배당하는 인물이다. 크리스틴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한 시니스터 스트레인지. 이것에 대현 여파로 그 역시 흑화 했다. 다른 차원의 닥터 스트레인지를 수도 없이 밀어 죽여왔으며 메인 유니버스의 스티븐에게도 다크 홀드를 이용한 교환을 요청한다. 당연히 거절하는 스티븐. 이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를 요약하자면 역시 타인을 믿지 않는 인물이다. 역시 자기가 선택한 해결책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네 명의 스트레인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독선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틴의 대사 '모든 스트레인지는 다 똑같군요'로 다시 재현된다. 그리고 이 독선적인 선택을 다른 주요 인물에게 적용할 수 있다. 바로 완다다. 사실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는 또 다른 차원의 완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랑하는 사람(크리스틴/완다의 두 아이)을 위해 다크 홀드를 사용해 흑화 했으며 역시나 타락했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자아를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 이름이랑 외모만 다르다 뿐이지 완다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MCU 스티븐의 대결이 완다와의 싸움이라는 의미와도 닿아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왜 완다가 아닌 닥터 스트레인지인가? 와도 닿으며, 부제에 Madness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스티븐은 완다만큼 미친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크 홀드가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 역시 그걸 이용해서 스칼렛 위치를 저지했다. 그럼 그게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아닌가? 그가 슈퍼히어로라고 해서 그의 이런 광기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변종 크리스틴과 변종 스트레인지를 투입해서, 자기가 쌓아놓은 이 '내로남불'과 마법사의 운명론을 서서히 깨트린다. 모든 게 다 정해져 있을 거라 믿었던 스티븐. 사랑하는 사람이 두려웠던 그에게 마법사로서의 자아를 뛰어넘는 선택지를 고르게 해 이제 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그가 슈퍼히어로로 한 단계 더 진화한 이유이며, 그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또한 네 명의 스트레인지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변종 스트레인지의 모순이 완다와 유사해져 그의 성장 서사를 만든 것이다.
일루미나티의 빠른 퇴장?
극에 흥미로운 집단이 나왔다. 바로 일루미나티다. 일루미나티는 원작에서 굉장히 똑똑한 집단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완다에게 아주 박살이 났다. 변종 모르도를 제외하고, 모두 다 잔인하게 죽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특히 캡틴 카터와 변종 미스터 판타스틱은 어린이날 전날에 나온 히어로 영화 답지 않게 잔인하게 죽었다. 찰스 자비에는 X맨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강력함 절반도 못 갔다. 얼핏 보면 슈프림 스트레인지가 다크 홀드를 써서 타노스를 저지한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 어느 정도는 이 일루미나티의 퇴장이 허무했다. 다른 세계의 어벤저스 같은 존재들이 마법사 한 명에게 먼지가 되도록 두드려 맞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난 이게 필요한 연출이라고 봤다.
첫 번째. 클리셰 뒤집기다. 우리가 익숙하던 사람들이 나왔다. 변종 모르도, 찰스 자비에, 변종 캡틴 마블, 캡틴 카터, 미스터 판타스틱 모두 사실 <왓 이프..?>와 <인휴먼즈>, X맨 시리즈 등 기존의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마블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집단이 굉장히 셀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특히 찰스 자비에의 경우 본지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세계관에서 굉장히 강한 마법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종 모르도도 소서러 슈프림이고. 캡틴 마블은 그냥 세고. 블랙 볼트는 입 열면 엄청 강한 캐릭터인 것 같다. 이 인물들이 스티븐과 차베즈, 웡과 동맹을 맺어서 완다를 상대하면 사실 좀 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극이 평이하게 가는 느낌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인피니티 워>가 생각난다. 이미 뒤집는 이야기를 몇 번 썼던 샘 레이미가 이걸 눈 뜨고 패스했을 것 같지는 않다. 완다가 울트론이고 뭐고 다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기존의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지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캡틴 아메리카 같은 맨몸 히어로가 스티븐 스트레인지 같은 마법사들과 비등하면 그거대로 이상하지 않을까?
두 번째. 후반부에 드러나는 맥거핀 '비샨티'의 존재 때문이다. 이 영화는 2)에서도 썼듯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성장 서사가 중요한 영화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감독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오케이. 어느 세계관이던 궤변이 심한 스트레인지는 넣었어. 그리고 그 아치 에너미로 완다도 넣었어. 그러면 완다가 엄청 세야겠지? 그럼 그 완다가 세진 이유는 뭐야? 다크 홀드겠지? 근데 다크 홀드가 중요해? 아니야. 결국 중요한 건 다크 홀드를 쓰는 스티븐의 모순이야.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쓰게 만들어야 해. 멀티버스라는 공간적 배경 때문에, 완다가 아바타를 조종하듯 스티븐도 마찬가지의 환경이 만들어져야겠지? 이를 위해서 비샨티의 존재에 힘을 점점 더 주게 된다. 비샨티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스티븐이 다크 홀드를 사용하는 개연성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완다 이야기로 돌아간다. 다크 홀드에 의해 강해진 완다. 일루미나티를 바사삭 가루로 갈아버린다. 그럼 이 강해진 완다와 상대하기 위해서 비샨티가 필요할 것이다. 이 비샨티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일루미나티는 필요했다. 스티븐의 모순을 보여주는 도구가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일루미나티 역시 스티븐과 똑같은 모순을 범했다. 일루미나티는 스티븐에게 '완다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자기가 믿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이는 곧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황과도 이어진다. 그들 역시 스티븐과 같은 실수를 범했고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난 이런 소소한 디테일들 때문이라도 그들이 이렇게 퇴장하는 것이 각본상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완다의 사망?
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지도 모른다. 난 안 죽었다에 건다.
일단 배우가 마블과 재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고또 <호크아이>의 킹핀처럼 일부러 시체를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후속작과도 이어진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좀 나와주세요.. 히히..시계의 의미?
이 시계라는 매개체는 사실 영화 리뷰계의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존재다.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다.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다 근데 이 시계가 깨졌다? 당연히 그의 시간이 멈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티븐에겐 미련이 있다. 크리스틴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지질해진 스티븐. 사랑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전해지 못했던 마음을 크리스틴에게 전한다. 그리고 바로 시계를 고치는 신이 나온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싸우는 자아에 대한 꿈을 꾸고 시계가 부서진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시계를 고치는 신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나타났다. 내적인 성장 이후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제는 마법사의 예언이 아닌, 나와 자신 그리고 동료들을 믿으니 그의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는 슈피 히어로서의 성장이 오히려 인간 그 자체의 진보와 이어졌다는 점에서 <아이언맨 2>나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 생각난다.
누가 봐도 샘 레이미
영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역시 호러 분위기였다. 완다가 거울에 갇히는 장면 인상 깊었다. 또 어디에선가 좀비같이 튀어나오는 장면, 물웅덩에 눈 하나 짠 나오는 장면, 자비에의 죽음, 메이크업까지 섬세하게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하이라이트 부분 좀비 스트레인지가 영혼을 가지고 망토처럼 쓰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의 비주얼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멀티버스 내부 묘사나 가르 간 토스 외면까지 판타지에 의존하는 부분도 꼼꼼함이 가득했다. 샘 레이미라서 가득한 CG 느낌? 또 사운드도 몰입하기 좋았다. 아마 피아노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질감이 단 1도 없다. 고전적인 호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과연 1등 공신인 셈이다. 이 외에도 초반부 가르 간 토스를 사살하는 장면에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엔딩신에선 <드래그 미 투 헬>이, 좀비 비주얼은 <이블데드>가 생각났다.
아쉬운 부분도 있어
아마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음표 전투신 좀 오그라들었다. 너무 샘 레이미하고 싶은 대로 다 해~였다. 굳이 음표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주변 물건으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완다 비전>이 강제되는 부분은 라이트 하게 즐기는 분들이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뭐 뭘 만들든 제작자들 마음이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소외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두 마법사의 광기를 보여주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연기 잘하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물이 1인 4역을 해야하는데 성격이 미묘하게 달라야 한다. 그냥 대놓고 다른것도 뭐 어렵겠지만 미묘하게 다른 연기를 하는 건 신기할 정도. <문나이트>의 오스카 아이작을 보면서도 감탄했는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그냥 빙의한 사람 같았다. 특히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변종 크리스틴과의 대화신이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는 건 누가 보면 거짓말인 줄 알 것이다. 다른 배우 중 놀란 사람은 엘리자베스 올슨이다. 분노. 슬픔. 당황. 행복회로 굴리는 모습. 광기. 눈물. 모든 것을 소화하는 연기였다. 연기 잘하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또 일단 비주얼적으로 너무 예뻤다. 피칠갑을 해도 미모는 못 숨겼다. 엘리자베스 올슨의 스타성 만으로도 티켓값을 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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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의 과정을 이토록 생생히
눈으로 뒤덮인 산. 멀리서 보기엔 아름답지만, 그 안에 고립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그곳은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추위와 배고픔 등 생존을 위한 한계상황에서 인간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1972년 안데스산맥 오지에서 조난당한 이들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선택과 힘겨운 생존 과정을 생생히 옮겨 담았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IMDB
1972년 우루과이 공군 571편이 추락한다. 위치는 안데스산맥 중심부. 여행에 부푼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탄 대학 럭비팀 일원들은 한순간 고립무원에 놓인다. 전체 인원 45명 중 생존자는 29명. 하지만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은 생존자들을 지독하게 괴롭힌다.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이들은 어떻게든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내지만, 부상 당한 이들부터 한 명씩 숨을 거둔다. 게다가 식량은 바닥나고 굶주림은 심해지는데, 결국 이들은 죽은 시체를 먹기에 이른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1993년 개봉한 <얼라이브>에 이어 또 한 번 동일한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얼라이브>는 각색을 통한 드라마 요소가 강했던 것에 반해, 이번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중심을 둔다.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파블로 비에르시의 저서 ‘눈의 사회’(La Sociedad de la Nieve)의 판권을 구매하고, 제작진과 함께 모든 생존자와 1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녹음하는 등 초기 작업을 견고하게 진행했다. 가명을 쓴 <얼라이브>와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실명을 사용하고, 극 중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모든 이름을 화면에 게재하는 등 생존자뿐만 아니라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존재까지 알리는 노력도 기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IMDB
확실히 눈에 띄는 건 다큐처럼 느껴질 정도로 구현된 영상이다. <더 임파서블>로 사실적인 쓰나미 재난 영화를 만든 바 있는 감독은 안데스산맥의 아름답고도 공허한 풍경, 비행기 추락 장면, 조난 후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 눈사태로 고립되는 장면 등은 관객들을 극한의 안데스산맥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특히 조난 후 유일한 거처가 된 사고 비행기 안에서 눈사태의 위협으로 사람들이 파묻히는 사고 장면은 그 자체로 위협감을 느낀다. 마치 거대한 자연(혹은 재난)이 ‘이래도 살아남을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이들의 생존을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더불어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고 그에 따른 고통의 강도는 인물들의 얼굴로 표현되는데, 유독 영화가 인물 클로즈업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런 긴장감은 비주얼뿐만 아니다. 생존이 먼저인지, 인간성이 먼저인지에 대한 대립과 갈등이 시작되면서 극의 내적 긴장감도 더한다. 조난, 재난 등 특수 상황을 그린 영화에서 생존과 인간성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는 영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자칫 윤리적인 문제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이 부분을 영화는 그들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인식시킨 후, 그 당위성을 확보하는데 주력, 인물들이 왜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와 삶을 향한 의지를 부각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인물들이 인육을 먹기까지 많은 고민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는 걸 보여준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 칼을 집어든 로베르트(마티아스 레칼트)와 그 반대편에 서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누마(엔조 보그린칙)를 보여주며, 인육 취식은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더불어 앞서 소개한 눈사태도 인육을 먹으며 배고픔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후 이들에게 닥치는데, 마치 금기를 어긴 이들에게 신이 형벌을 내린 것 같은 느낌, 죄책감에 짓눌린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화는 어떠한 역경이 와도 삶을 놓지 않는 게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극 중 이를 잘 표현하는 건 난도(아구스틴 파델라)인데, 사고 후 큰 부상을 입고, 엄마와 여동생을 먼저 떠나보낸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했던 누마의 바통을 받아 그 또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정진한다. 인육을 먹는 고통을 자처하더라도 사고에서 살아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은 생존자들의 마음 또한 이를 같이 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생존하고, 병원에서 안식을 취하지만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이 겪은 이 일에 대해 혹자는 기적, 혹자는 비극이라 말한다. 삶은 소중하지만, 이를 영위해 나가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 사고 당시 16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인 구스타프 제르비노는 모 인터뷰를 통해 당시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이렇게 말했다. “삶이란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50년 전에 일어난 기적 혹은 비극을 마주하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덧붙이는 말: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및 폐막작으로 공개되었고, 제38회 고야상 13개 부문 노미네이트, 오는 7일(북미 기준) 열리는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스페인 대표 출품작이다. 과연 이 영화의 메시지가 수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평점: 4.0 / 5.0
한줄평: 기적 혹은 비극을 마주하는 삶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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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gumi 입니다!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습니다.
송태섭의 서사를 중심으로 북산과 산왕의 전국대회 경기를 보여주고 있죠.
산왕과의 경기가 무척 흥미롭게 전개되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저의 간단한 리뷰를 영상에서 말씀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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