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4 06:45:46
후까시랑 쌈마이는 적지만 일단 익숙한 느낌의 재미는 있다
영화 <도어맨> 리뷰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은 흔히 "쌈마이의 귀재"라 부를만한 감독이다.
예술성 영화랑은 다른 속칭 B급의 매력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며, 그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컬트 영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부터 최신작인 <더 프라이스 위 페이>까지 이러한 매력을 잘 밀고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영화 중 하나, <도어맨> 또한 그러한 매력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괜찮게 들어간 영화이다.
사실 이런 줄거리 흔히 알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군인이나 용병 같은 거 하는데 은퇴함 -> 그냥 평범하게 사는 중 -> 근데 괴한이나 범죄 조직이 모종의 이유로 습격 -> 그냥 일반인인 줄 알고 나대다가 역관광 이런 내용 많이 보았을거다.
이 영화도 이런 예상가는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간다.
다만 이런 흔한 스토리를 알면서도 보는 이유는 그 "과정"에 있을 것이다.
속칭 "역관광" 당하는 그 장면들의 매력이 얼마냐에 따라 영화의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이트메어 시네마>에서 감독한 단편 "Mashit" 같은 경우에는 아주 피칠갑을 하고 B급 감성이 그대로 묻어 나왔는데, 이번 영화 등급이 15세인 걸 보면 예상가겠지만 생각보다 수위가 낮아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액션이 심심한건 아니지만, 뭔가 좀 더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수위 조절을 한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다만 스피드하고 흥미로운 전개덕에 오락성은 충분했다 생각이 든다.
또한 <레옹>으로 유명한 장 르노 배우를 악역으로 만나볼 수 있어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다만 본 영화에서는 무난한 연기를 보여줘서 장 르노 배우만의 매력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익숙한 배우를 봐서 좋았다 이 정도의 느낌.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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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우리는>, <경관의 피> 최우식 배우#톺아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요즘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영화 <경관의 피>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 '최우식' 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
그럼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1. 프로필(Profile)이름 : 최우식
출생 : 1990년 3월 26일
국적 : 한국계 캐나다
직업 : 대한민국 배우
2. 최우식의 성장과정
한국에서 태어난 최우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밴쿠버로 이주하게 됩니다.
캐나다의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에 진학 후 1학년 3학기만 마치고,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어느 한 예능에 출연해서 말하기를 연기자로서의 꿈을 정확하게 꾸지 않았지만, 친구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게됐고 합격을 해서 연기자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합니다.
3. '최우식'의 데뷔작
배우 최우식의 공식 데뷔작은 2011년 드라마 <짝패>입니다.
그리고 2012년 <옥탑방 왕세자>,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 출연하는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대중들의 관심을 받진 못했습니다.
주로 약간 허약해보이는 속된말로 찌질하고 호구스러운 역할을 많이 맡게됐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로 서서히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옥탑방의 왕세자>, <닥치고 패밀리>, <호구의 사랑>
4. '최우식'의 영화 주요 필모작
- 2013년 작 <은밀하게 위대하게>, 윤유준 역
출연진 :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 최우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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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웹툰 원작의 작품. 극 중 최우식이 맡은 윤유준은 비중이 크진 않으나, 주인공 김수현을 괴롭히는 동네친구로 등장했습니다.
약간 악동같은 캐릭터를 맡았죠.
- 2014년 작 <거인>, 영재 역
출연진 : 최우식, 김수현, 강신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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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우식에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들꽃영화상 등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게 해준 기념같은 작품입니다.
최우식은 영화 <거인>의 출연 당시 즈음을 회상하며, 연기자로서의 진로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 2016년 작 <부산행>, 영국 역
출연진 : 공유, 정유미, 마동석, 최우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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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우식에게 '천만영화 배우'라는 타이틀을 준 첫 번째 영화입니다.
흥행과 동시에 칸국제영화제 초청이라는 영광까지 더해져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 2017년 작 <옥자>, 김군 역
출연진 :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안서현, 스티븐 연, 최우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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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넷플릭스 작품작. 최우식 배우는 극중 드라이버 '김군'역할로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봉준호 감독과의 첫 만남이 성사된 작품으로 아주 소중한 작품일 것 같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기생충>이라는 엄청난 작품의 주인공으로까지 인연이 이어지죠!
- 2018년 작 <마녀>, 귀공자 역
출연진 : 김다미, 조민수, 최우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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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 배우가 첫 악역으로 출연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하고 훈훈한 비주얼과는 달리 악이 공존하는 역할로 충분히 제 몫을 다할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을 한 작품일 것 같습니다.
- 2019년 작 <기생충>, 기우 역
출연진 : 송강호, 이선균, 장혜진, 윤여정, 박소담, 최우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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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긴 작품이죠! 누구나 아는 작품이니,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최우식 배우에게 두번 째 천만관객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차치하고서라도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게 된 작품일 것 같습니다.
- 2020년 작 <사냥의 시간>, 기훈 역
출연진 : 이제훈, 박정민, 안재홍, 최우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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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넷플릭스 개봉작이라는 하나의(?) 큰 역사가 된 작품.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네 명의 젊은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으로 크게 화제가 됐고, 이들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네요.
- 2022년 작 <경관의 피>, 민재 역
출연진 : 조진웅, 최우식, 박희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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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 개봉한 작품입니다. 극 중 언더커버 경찰로 투입된 신입 경찰역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어리숙하고 착한 모습이 아닌 신입경찰의 패기와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는 최우식 배우의 또 다른 연기의 결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기대됩니다.
2022년 개봉을 예상하고 있는 최우식 배우의 또 다른 출연작 <원더랜드>(감독 김태용)가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김태용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한다는 점 등 2022년 최고의 기대작 중 한편으로 손꼽히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서 또한 최우식 배우가 어떤 모습으로 영화팬들에게 다가갈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도 씨네랩의 콘텐츠 #배우 톺아보기 콘텐츠를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는 다음 주에 #배우 톺아보기 시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P.S 혹시 #톺아보기 배우로 추천하고 싶거나 관심있으신 배우들이 있으면
주저말고 편안하게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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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라운드> 디오니소스와 함께 술 마시며 춤추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촉망받던 역사학도였으나 지금은 일상에 찌들어 무기력해진 고교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 그는 각각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 니콜라이, 페테르, 톰뮈와 함께 한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흥미로운 심리학 가설을 듣는다.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쯤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정도를 채워주면 더욱 편안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 직접 실험에 나선 마르틴은 음주가 지루한 수업과 가족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후일담을 전해준다. 이에 네 친구는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하고,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한 뒤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에서 탈피하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에 나선다.
현대 사회로 오면 올 수록 술에 대한 인식은 점차 부정적으로 변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술의 정(精)이여! 너에게 아직 이름이 없다면 앞으로 너를 악마라고 부를 테다"라고 외친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2011년에 술은 세계보건기구(WHO) 선정 1급 발암물질이 되기도 했다. 특히 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구하기 쉽다는 접근성과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오래도록 쓰인 문화적 특징과 결부되어 사회적, 개인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해서인지 많은 창작물에서도 술은 흔히 파국을 불러오는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반면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고, 지난 19일에 개봉한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결이 다소 다르다. 덴마크 대표 배우인 매즈 미켈슨과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이 <더 헌트> 이후 처음 합작한 이 영화의 종착역은 쌉싸름함 속에 달콤함이 깃든 다크 초콜릿처럼 마냥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술 내음이 가시지 않는 데도 말이다. 실제로 술이 등장하기 전 마르틴과 그의 친구들의 일상은 잿빛이다. 그러나 보드카·와인·샴페인 등이 등장하자 스크린에는 활기가 돌고, 색채가 살아난다. 왜 그럴까? 이는 <어나더 라운드>가 단지 술 문화 그 자체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술을 매개로 흔히 간과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나더 라운드>는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두 신의 이름을 빌려 술을 둘러싼 네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폴론은 시와 음악의 신이자, 빛의 신이고, 또 질서와 진리의 신이다. 이처럼 다양한 아폴론의 신격은 그의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통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이 문구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로서 신들과는 얼마나 다른지를 알라는 격언으로, 인간의 본성적 한계를 강조한다. 달리 말해 아폴론은 한계와 한도를 통해 무질서에 맞서 질서를 아름다움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관장하는 예술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일정한 한도와 질서라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수단이나 다름없다. 즉, 시와 음악을 관장하는 그의 역할은 개인적으로는 몸을 훈련시키는 체육처럼 영혼을 갈고닦는 교육의 기능에 속하고, 더 넓게는 이성을 통해 세계의 진리를 인식하는 지성적 목적을 갖는다.
실제로 영화는 이러한 아폴론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학교인 것만 해도 그렇다. 학교라는 공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대학교 정장에 'VERITAS LUX MEA', 곧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이 단적인 예시다. 네 친구가 각각 역사, 체육, 심리학, 음악 등 그의 신격과 관련된 영역의 교사인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질서와 진리를 강조하는 신의 가치가 지배적인 공간과 직업답게, 그 안에서 지내는 구성원들에게도 강력한 규칙과 규율이 적용된다. 제 몫을 다해내지 못하면 교사들은 면담을 통해 학부모들로부터 직접 컴플레인을 들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학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학생은 졸업 대신 재수강을 반복해야 한다. 당연히 술의 존재 역시 학교에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금기시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질서가 확고한 공간 안에서 작중 구성원들은 행복해지는 대신 오히려 피폐해진다는 점이다. 교사라는 직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교사는 그 무기력함이 가족 관계로 번지는 것마저 막아서지 못한다.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버지는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토로한다. 졸업 시험에서 거듭 낙제를 경험했던 학생은 극도의 공포심에 휩싸이며, 축구팀 내에 스며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어린아이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이러한 공통의 좌절감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학교 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처럼 강력한 질서와 규율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되는 기반이 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술을 매개로 포도주의 신이자 축제, 광기, 야성의 신이기도 한 디오니소스를 불러온다.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을 산과 들로 이끌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게 하면서 열광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신이다. 그는 질서와 같은 이성적 틀이 사람들의 삶에 가하는 억압으로부터 자연스러운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춤과 노래의 인도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감정이라는 삶의 생명력으로부터 반지성적 목적을 이루려 한 것이다. 이는 그가 포도주로 상징되는 비이성적인 도취 상태로 사람들을 이끄는 신인 이유다.
그래서 <어나더 라운드> 속 술 역시 단순한 일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형화된 삶 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진정으로 삶을 살아있게 하는 그 의지를 일깨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는 마르틴이 술을 마신 이후로 크게 세 가지의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려낸다. 우선 인생에서 지나가 버린 젊음이다.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마치 젊은 적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한다. 다음으로는 그간 손 놓고 있었던 관계다. 아내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거나 오래간만에 가족 여행을 계획한다. 마지막은 잃어버렸던 열정이다. 수업 진도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시험 문제 출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마르틴. 그러나 그는 이제 실험적인 강의 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과거의 본인이 품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전해주기까지 한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의 신격과 그 함의는 마르틴이 항구에서 술 마시며 춤추는 마지막 장면에서 제대로 분출된다. 고대에 이루어지던 디오니소스 제의 중에는 “코레이아”(choreia)라고 불리던 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해당 장면이 바로 시, 음악, 무용의 원시적 융합 형태였던 코레이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코레이아가 춤추는 자의 영혼을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마르틴의 춤은 더욱 인상적이다. 매즈 미켈슨이 젊은 시절 기계체조를 배우고 무용수로 활동하던 경력을 발휘해 재즈 발레를 추는 사이, 무기력했던 마르틴의 삶에는 활력이 돌고, 그의 무채색 일상에는 빛이 들어오며, 그의 삶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간다. 술로 인해 인생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는 이처럼 아폴론의 가치에 눌려 있었던 디오니소스적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에 비로소 완결된다. 이는 영화 속 술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대신, 영화가 끝날 때 제목대로 “한 잔씩 더(Another Round)!”를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다.
물론 <어나더 라운드>가 마냥 술과 디오니소스가 대변하는 삶의 태도를 긍정하지는 않는다. 네 친구의 실험은 그들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고, 그들은 술을 통제하지 못하며 온갖 사고를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굳이 점차 터부시 되는 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때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본성에 대한 합당한 배려가 결여될 경우,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제나 술과 같은 쉼터, 혹은 탈출구를 경시하지 않고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술과 술의 신의 이름으로 통찰하면서 <어나더 라운드>는 사회적,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길을 보여준다.
A(Acceptable, 무난함)
아폴론의 빛을 견디기 힘들 때면, 디오니소스와 함께 마시고 춤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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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어 가는 한 시대를 표현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서부극을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고 나서 나름 서부극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루하고 총만 난사하는 고정된 스토리라인만이 존재할 줄 알았던 나에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시놉시스
1969년 할리우드, 잊혀져 가는 액션스타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새로운 스타들에 밀려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릭’의 옆집에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배우 ‘샤론 테이트’ 부부가 이사 오자 ‘릭’은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기뻐하지만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다.
형편상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게 된 ‘릭’과 ‘클리프’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릭’의 집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던 중 뜻하지 않은 낯선 방문객을 맞이하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 이 이후로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서부극의 끝물을 그려내다
1969년은 미국에서 영화의 흐름이 바뀌는 과도기적인 시기다. 1970년 이후부터 스타워즈와 같은 대형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나오면서 기존에 유행했던 서부극이 한 풀 꺽이는 시기다. 영화의 한 장르와 과거의 스타가 함께 그 명성이 기울어져 가고 그것을 점차 받아들이는 표현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는 아역배우와 릭달튼의 대화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앞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갈 아역배우 옆에서 노쇄함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어린 배우가 그런 릭달튼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히피들 맞나?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히피들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체제운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자연을 찬미하면서 그와 동시에 기성세대의 사회통념이나 제도, 가치관들을 부정하는 집단 말이다. 히피들은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게다가 베트남전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마지막에 사람을 죽인다. 세상에나. 그렇게 가치관의 혼란을 선사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그래서 히피, 폭력 이렇게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왜 이 영화가 마지막에 히피들을 살인자로 만들고 그들을 죽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1969년 할리우드 여배우 샤론 테이트가 히피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비롯해 7명의 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돼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다고 한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동명의 샤론 테이트를 영화 속에서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클리프와 릭을 공격하게끔 해서 결국 히피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즉, 현실 속에서의 슬픔을 영화 속에서 통쾌함으로 대치한 장면으로 이해됐다.
미디어의 폭력 연구가 왜 시작됐는지 표현하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면서 해결된 궁금증 중 하나는 왜 당시 미디어 연구가 그렇게도 부정적으로 연구될 수밖에 없었나? 였다. 도대체 텔레비전이 뭐라고 그 텔레비전 영상 하나 봤다고, 텔레비전이 폭력을 야기하고 좋지 않다는 연구가 쏟아졌는지 정말 궁금했다. 거의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 매체 연구는 해당 매체의 부정적인 부분을 파헤치는 것이 목적이라도 된 것처럼 일제히 비판을 했다.
하지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히피들이 릭을 죽이러 가기 전 “나는 텔레비전에서 폭력을 배웠고, 지금 그 폭력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러 가는거야.” 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를 비롯해서 당시 프로그램드을 보면 총과 칼을 이용한 서부극들이 유행했고, FBI와 같은 범죄수사물들이 계속해서 방영됐던 것이 사실이다.
움직이는 영상이 훨씬 더 자극적으로 다가올 뿐 아니라 그런 범죄의 구체성이 피부로 와닿을 수밖에 없기에 미디어 연구자들은 그 부정적인 영향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해됐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단지 서부극의 이야기 뿐 아니라 저물어가는 한 시대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같은 문화권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서부극에 대해 향수를 느낄 수 있을 정도 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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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일본에서 주목받는 떠오르는 영화감독 미야케 쇼의 신작 <새벽의 모든>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심한 감정 변화에 시달리는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야마조에가 특별한 연대로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공감 드라마입니다.
새벽의 모든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고,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이어 3연속 베를린에 초청된 미야케 쇼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신예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의 섬세한 연출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9월 셋째 주 개봉예정 PICK
새벽의 모든
All the Long Nights
개요: 드라마 | 일본 | 119분
감독: 미야케 쇼
주연: 마츠무라 호쿠토, 카미시라이시 모네, 미츠이시켄, 시부카와 키요히코
개봉: 2024.09.18.
배급: (주)디오시네마
줄거리
한 달에 한 번, PMS 때문에 짜증을 억제할 수 없게 되는 ‘후지사와’. 한층 악화된 증상에 다니던 회사를 도망치듯 그만둔 그녀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 ‘쿠리타 과학’으로 이직한다.
친절한 동료들과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에 차츰 적응해 가던 중, 직장 내 자발적 아웃사이더 ‘야마조에’의 사소한 행동에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크게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야마조에’가 극심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의 고충을 나눈 두 사람 사이에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특별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수유천
BY THE STREAM
개요: 드라마 | 한국 | 111분
감독: 홍상수
주연: 김민희, 권해효, 조윤희, 하성국
개봉: 2024.09.18.
배급: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줄거리
한 여대에서 촌극제가 있다. 전임이라는 이름의 강사가 외삼촌에게 자신의 학과 촌극 연출을 부탁한다. 전임은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작품 패턴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 째 일을 못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이다.
사십 년 전 이 여대에서 대학 일학년의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기억 때문에 연출을 맡은 것이다. 촌극하는 학생들 사이에 스캔들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나고, 전임과 외삼촌은 그 사건에 가볍게 끼어들게 된다. 그사이 외삼촌은 텍스타일과 여교수와 가까워지는데, 밤마다 하늘의 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전임은 아침마다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테인티드 러브
Tainted Love
개요: 드라마 | 중국 | 100분
감독: 마잉신
주연: 주동우, 장위, 장유호, 이몽
개봉: 2024.09.19.
배급: (주)디스테이션
줄거리
“사랑해… 거짓말” 연인에게 사기를 당한 여자 ‘저우란’. 진실을 찾기 위해 방문한 낯선 곳에서 두 남자 ‘린즈광’과 ‘쉬자오’를 만난다. 꿈 같았던 만남도 잠시, ‘저우란’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깊어지는 사랑과 의심 속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트랩
Trap
개요: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 미국 | 105분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조쉬 하트넷, 아리엘 도노휴, 살레카 샤말란, 헤일리 밀즈, 알리슨 필
개봉: 2024.09.18.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팝스타의 콘서트, 경찰의 거대한 덫… 탈출해야만 한다!
10대 딸과 함께 인기 팝스타의 콘서트를 찾은 ‘쿠퍼’. 신나게 콘서트를 즐기던 그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곳이 최악의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한 거대한 덫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쿠퍼’ 자신이 바로 연쇄살인마라는 것! 이제 ‘쿠퍼’는 수많은 관객과 경찰을 따돌리고 어린 딸과 함께 무사히 이 덫에서 탈출해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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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나를 위한, 아니 우리 모두를 위한 응원가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잘 나오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의 잘 만들어진, 매 화의 대사 하나하나가 공들여 쓰여졌다는 게 느껴지는 드라마 정말 오랜간만에 찾았다. 어느 대사 하나 예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은데, 최소한 나에게는 너무나 취향이다. 그래서 난 이 드라마가 너무 어둡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덕질하자고 꼬셔보려고 한다. 과연 내 구구절절한 글로 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1. 폐부를 찌르는 대사의 향연
이 드라마의 장르를 나눠본다면, 휴먼 80/로맨스 20 정도가 될 것 같다.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 드라마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관계에 대한 고찰이 너무 잘 느껴지는 드라마이다. 관계가 가진 성질은 다양해서 가족과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연인과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동료와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연인 간의 관계의 실패로, 질투와 시기가 난무하는 동료와의 관계 등으로 관계 자체에서 염증을 느끼는 두 남녀, 구씨와 미정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추앙"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새로운 사람에게서 치유받고자 하기 위함일까. 결국 인간은 사람에게 질리면서도 사람 간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대사 하나하나에서 내 인생을 돌아볼만한 묵직한 대사들이 많았다.
“싫을 때는 눈 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 말을 걸면 더 싫고. 쓸데없는 말을 들어줘야 하고 나도 쓸데없는 말을 해 내야 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중노동이야.”
“나도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두시간 되나? 나머지는 다 견디는 시간.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이 대사가 내가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든 폐부를 찌르는 대사였다. 처음 만나서 어색함에 아무말이나 해야 할 때, 상대가 하는 말도 아무말이구나 싶을 때, 이 어색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오는 현타. 그리고 그 상황이 종료되고, 한창 말 잘하고 나와서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나왔지. 쓸데없는 말이었는데."하는 자책에서 비롯된 두 번째 현타. 구씨의 대사에서 이런 내 모습이 투영되어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요 근래 내 자신을 왜 좋아할 수 없을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서 이런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한 대사에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남이 하는 이야기가 가끔 지칠 때가 있다. 그들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지치면, 그 지친 감정은 곧 짜증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면서도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주절주절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리곤 후회한다. 그 사람은 이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을 텐데,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그저 들어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또다시 미안해진다. 내 이기적인 마음을 비판하며, 또다시 나는 나를 미워하게 된다.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으면서 남을 비판했을 때, 내가 나에게 느끼는 위선적 혐오감, 나는 오늘도 마음으로 삭히지 못하고, 또 감정을 표출해내고야 말았다는 후회 그리고 내 말을 들어주느라 지쳤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하나의 인간 관계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불안함. 그렇게 쿨한 척 하지만 한없이 소심한 내 자신에 대한 끝없는 자책. 이 생각의 잔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을 싫어하고, 인간에게서 내 자신을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인간들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신경쓰는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 결국 나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나는 인간을 상대하는 게 힘들어서 인생은 혼자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결국 온전히 혼자서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완전히 인간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공허함을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대사를 통해 '맞아, 나도 그런 비슷한 느낌 받았었어'하며 동질감을 느끼고, 좀 덜 외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2. 왜 하필 추앙일까.
계속 궁금했었다. 왜 작가는 연애하자는 말을 추앙이라고 바꾸어 표현했던 것일까. 처음에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읭?하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때의 그 의문스러운 느낌 때문에 많은 뇌피셜 해석들을 찾아봤었는데,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들어갔다고 해석하신 분들이 꽤나 많았었다. 그 해석에 대해 많이 동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세계관이고 뭐고 그냥 단순하게 해석해서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끼고, 내가 좋으면 그냥 좋다고 표현할 거라는 대사에서 이 추앙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미정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신선하고, 미정이라는 캐릭터의 걸크는 여기에 핵심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꾸 답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두고 봐라. 나도 이제 톡 안 한다. 그런 보복은 안 해요. 남자랑 사귀면서 조용한 응징과 보복 얼마나 많이 했게요. 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돼서 너무 좋아요. 그냥 추앙만 하면 되니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이리저리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거 말고, 그냥 나는 그 때 상황에 맞추어 내가 하고 싶은 감정적 표현을 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미정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술에 절어사는 상대(구씨)를 바꾸려 들지 않고, 그저 좋아한다는 표현, 그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미정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을 시작한다는 개념이 너무 신박하다고 느껴졌고, 그런 담백하지만 묵직한 표현을 통해 구씨가 미정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우면서 보기가 불편하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싫어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한 명의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살 만해진다는 미정의 말처럼 나를 사랑하는 사람 간의 섹슈얼한 관계가 아니라 나를 응원하는 사람의 존재 덕분에 나는 오늘도 버틴다는 메시지가 너무 가슴 따뜻해진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적인 로맨스는 참 많지만 내 영혼을 보듬어주고,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다. 나의 경우,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나부터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해보는 연습부터 해봐야 겠다. 나는 그런 경험이 전무하기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치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지만 나를 이해하고, 나를 구원할 한 사람은 필요하다. 지금의 나의 모습은 너무나 침체되어 있음을 느끼기에.
요근래 참 나에 대한 고찰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 나는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생각을 단순화시키려고 한다. 그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해야겠다. 남을 신경쓰지 않는 척했던 과거를 지나 정말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
3. 삶이 힘든 그대에게
지금 이 시각,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무래도 열린 결말인 듯하다. 무엇보다도 하수구에 떨어질 뻔한 위기의 동전을 구하고, 편의점에서 샀던 술을 노숙자에게 준 걸로 봐서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고, 새로운 챕터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가 화류계를 떠나고, 정말 술을 끊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술을 끊는 첫 스텝은 밟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구씨는 조금씩 미정의 세계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믿을 거다. 아무래도 작가님은 각자가 원하는 결말을 알아서 상상하라는 의도로 그런 결말을 내신 것 같으니, 나는 내가 원하는 결말을 내련다.
삶이 힘들고, 연애가 지치고, 친구 관계도 염증이 날 때, 미정의 상황, 기정의 상황, 창희의 상황에 감정 이입하기 보다는 그들이 하는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추천한다.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해 내 안에서 답을 내지 못한 답답함을 뚫어내는 잔잔한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그렇게 해방일지에 스며들며, 이들의 말에 공감하며, 이들의 캐릭터가 대단히 성공하지는 못해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이 드라마 속 모든 캐릭터들을 "추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응원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응원, "추앙"을 받고 싶다. 그렇게 여러분들도 세상의 단 한 명의 사람에게 "추앙"받는 삶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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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표 없는 끝이라도
1994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은희에게 한문학원 영지 선생님이 묻는다. "뭘 좋아해요?" 은희는 주춤거리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2019년, 은희 나이의 두 배도 넘은 나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에게.
내 나이는 은희 나이의 두 배보다 큰 숫자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영화와 책, 정도로 성글게 말해도 좋지만, 어떤 영화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콕 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끼니까. 올해는 작정하고 그런 해로 보내겠다 다짐했다. 풍성한 텍스트의 세계를 바지런히 산책한 2019년, 영화 딱 한 작품만 꼽으라면 나는 <벌새>를 고르겠다.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별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벌새>는 은희라는 아이의 삶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SNS가 발달한 요즘은 좀 다르겠지만, 20세기 말의 보통 중학생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대치동에서 떡집을 하시는 부모님, "공부 못해서 강북까지 버스 타고 학교 다니는" 언니, 외고-서울대 코스를 밟으리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오빠, 학원에서 같이 킥킥거리는 친구, 서툴고 어색한 애정 표현을 주고받는 남자친구. 조금씩 변주하면 수백 명을 비슷하게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은희는 그렇게 살고 있다.
언제나 거시적인 통계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속인다. 은희는 하나뿐이다. 수백 명은 고사하고 다섯 명뿐인 가족 중에서도, 아니 친구나 남자친구와의 일 대 일 관계에서조차 소홀하게 치부되는 때가 많지만 은희는 사실 하나뿐이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도 여기 있다고, 벌새 날갯짓처럼 은희는 계속해서 외친다. 바라보는 시선으로, 내리깐 시선으로, 꾹 다문 입술로, 참아낸 한숨으로, 그런 것들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열네 살의 삶에도 중요한 일은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친구 지숙, 남자친구, 후배 유리, 오빠, 언니, 아빠, 엄마, 선생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 모든 상황 대부분이 은희를 그냥 지나칠 때, 은희의 앞에 따뜻한 우롱차를 한 잔 내어주고 은희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한문 선생님 영지가 있다.
은은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을 은희에게 건네는 사람, 누구도 위로용으로는 부르지 않을 법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 반듯한 얼굴을 하고 일상을 사는 어른들에게도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듦을 인정하고 손가락을 움직임으로써 그 상태를 벗어나는 법을 아는 사람.
그런 영지는 은희의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미성년"의 "어린" "여자"를 둘러싼 세상은 일상 구석구석까지 폭력이 스며 있어, 영지 같은 존재는 흔치 않다. 어쩌면 여기에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과도해 보일지 모르겠다. <벌새>는 분명 <박화영>이나 <파수꾼>이 아니지만, 세상 모든 단어가 그렇듯 폭력이라는 말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촘촘하게 들어있다. 하물며 90년대, 하고픈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들이 지금보다 많던 시절이었다.'날라리 색출'을 하겠다며 '날라리' 친구 이름을 써 내게 시키고 불도저 같은 구호를 외치게 하는 학교 선생님의 태도에서도, 선명한 외도의 흔적을 숨기지 못한 주제에 당당하게 밥상머리 훈계를 늘어놓는 아버지의 태도에서도, 그 뒤에서 괴롭게 머리를 쥐뜯는 것밖에 못하면서 동생에게는 폭력을 수시로 쏟아내는 오빠의 태도에서도, 언니 수희에게 무자비하게 쏟아지던 비난에서도... 폭력은 보인다. 일방적으로 비틀리고 상처 받는 사람이 분명 그곳에 있었다.
폭력은 기묘해서 저절로 흐른다. 각자를 죄고 있는 억압은 각자만 쥐고 흔드는 게 아니라 약자에게까지 흘러간다. 이야기를 비극으로 만드는, 겉으로 보이는 폭력뿐이 아니다. 일상 구석구석에 선연하게 녹아 있다. 하얀 커튼 휘날리는 부엌이며, 평범한 갈색 가구가 놓여 있는 거실, 화분이 있는 베란다... 복도식 아파트 1012호 구석구석에. 그건 마치 소파 밑의 유리 파편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다.
90년대를 섬세하게 담아낸 이 영화의 공간 배경은 정겨울 정도다. 금방이라도 행주가 마르는 것이 눈에 보일 듯한 부엌, 의자를 뺄 때 어떤 소리가 날지 알 것만 같은 은희의 방, 눈에 익은 교복... (나는 2000년대에 중학교를 다녔지만 은희와 똑같은 교복을 입었다. 그때 보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교복은 커서 보니 더 이상했다.) 그 평범한 공간마다 그토록 여상하게 폭력성은 묻어 있었다.이 폭력성이 단순히 은희 오빠가 은희를 때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심한 듯한 엄마의 표정조차 은희를 할퀸다. 그런데 은희의 그런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 폭력은 핏빛이 아니라 투명한 색이다. 그것도 물풀처럼 끈적하게 묻어나는 투명함이다. 이 잔잔한 일상 속의 폭력을 피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메타메시지로 전해지는 폭력이 훨씬 더 깊고 진하게 멀리 간다는 것도.
지진을 예감하는 작은 새처럼 예민하게 피부로 그걸 감지하던 사람들. 선명했지만 너무나 공공연해서 아직 언어로 정의되지도 않았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작은 벌새 같았던 이들. 그들은 맞설 수 없는 대신 그렇게 서로를 챙겼다. 아무도 자신을 중히 여겨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같기도 한 너를, 너 같기도 한 나를.그 시절의 그 감정은 소설 <항구의 사랑>에도 나오듯 집단적이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찰하고 기이하게 여겼음에도, 대부분이 그 마음을 소위 말하는 '퀴어'로 분류하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연구 논문에서도 '이반'이라는 한시적 용어로 담았고, 주변 어른들의 말로 통역하면 "다 한때야."일 것이다.
90년대 여중생 혹은 여고생들 사이에서 산발적으로 그러나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는 그러한 양상. 연구하는 이들은 아이돌-팬픽-이반이라는 '현상'들을 일직선으로 긋는다. 이 일직선 안에 사랑이라고 이름 붙는 감정이 있다면, 그 사랑은 섬이 아니었을까. 일상 속 폭력의 안전지대. 실은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줌으로써 서로를 철저히 이해하는 이들의 도피성. 그래서인지 이 사랑은 자아 의탁 정도가 유달리 높아 보인다.
사랑하는 대상에 나를 투사하는 마음은 어떤 사랑에서나 빠질 수 없겠지만, 어쩌면 이런 마음이야말로 벌새가 돌아갈 집이었는지 모른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House of Hummingbird, 벌새의 집이다.) 실제 벌새의 둥지는 아주 작고, 포식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거미줄의 점성을 이용해 이끼와 잎으로 뒤덮는다고 한다.
변영주 감독의 강연집에서 읽은 말이 생각났다. 20대 때 그가 꽂혔던 말이 "여성성은 모든 약한 것들과의 연대"라고. 읽을 땐 '좋은데?' 하고 슥 지나간 말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말을 내 식대로 소화했다. 세밀하게 흔들리는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고 눈여겨보고, 위로하기 위해 차 한 잔과 작은 음식들을 기꺼이 내어주고,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 그렇게 서로 배려하고 챙기고 다독이며 함께하는 것. 변영주 감독이 꽂혔다는 말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벌새는 철저히 여성 서사다. 은희가 (유리와 지숙 또한 마찬가지로) 서투르게 그런 세상을 찾으며 조금씩 성장할 때, 이미 어른이 된 영지가 너그럽게 차를 내어주는 아름다운 성장의 서사.
아름다운 서사에도 예외는 없어서, 삶에는 죽음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호의적이지 않은 것들 사이로 호의적인 것들만이 흐르는 죽음을 역행한다. 연어가 옆구리 찢어지도록 강을 거스르듯. 그렇게 세상을 거스를 수 있다면, 묵묵히 바른 그런 사람 하나 곁에 있다면 나 무서울 것이 없겠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런 이들도 그저 시간의 강물에 몸을 내맡긴 또 한 마리 물고기와 같다는 걸. 영지와 은희에게 일어난 일은, 특수한 일인 동시에 사실 삶을 풍경으로 매일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차마 마침표 찍지 못한 끝이 어디선가 숭덩 나타나곤 한다는 걸.
우리가 살결을 맞대고 마음을 마주볼 수 있는 시간이 영구히 허락될 수는 없다는 걸. 그러니 우리가 기대봄직한 건 그저 친절한 타인이 되어, 팔딱이며 물방울을 폭죽처럼 튀기는 것뿐이라는 걸. 삶의 한 순간을 들여, 그 순간을 서로에게 축제가 되게 할 뿐이라는 걸. 순간에 거하면서도 그 순간을 영원에 가 닿게 하는 방법은 오직 누군가의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것뿐이라는 걸.
은희는 친절한 타인을 만나면서 죽음을 거슬러보았다. 맞고 있지만 않았다. 맞서 싸웠다. 혹을 떼냈다. 병원에서 새하얀 햇살 아래 친절한 아주머니들이 예쁘다 안쓰럽다 말하며 놓아주는 반찬을 먹었다. 끝내 마지막에 감자전을 허겁지겁 씹어먹는 은희를 예리한 눈으로 들여다보는 엄마가 있었다. 딸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음을 감지하는 엄마의 눈. 실은 마찬가지로 한 마리 벌새였던 엄마의 눈.
그러니 은희는 무사할 것이다. 무사히 자라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과거의 자신을 떠오르게 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에게 차를 가만 놓아줄지 모른다.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끊어진 어느 갑작스러웠던 날, 마침표 없이 끝나버린 어떤 이의 문장을 떠올릴지 모른다. 언젠가 제 인생도 빛이 날까요, 묻던 그의 날갯짓에선 이미 빛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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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디 브로커> 메인 예고편
미국 약물 중독 치료시설의 충격적인 실체가 드러난다!
마약에 찌들어 범죄를 일삼던 '유타'는 자신의 삶에 지쳐가던 찰나 마약 중독 치료 센터를 알선해 주는 '우드'를 만난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치료 센터에서 마약을 끊은 '유타'는 '우드'와 함께 일을 하게 되고, 이곳이 마약 중독자를 치료해주는 척하며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뒤로는 마약을 알선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제 마약 중독자로 재테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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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걸어도 걸어도> 재개봉 메인 예고편
료타’와 가족들은 십여 년 전 바다에 빠진 소년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의 제사를 위해 매 여름 고향 집에 모인다 ‘준페이’가 목숨을 구해준 ‘요시오’ 역시 기일마다 그들의 집을 찾아오고 그런 ‘요시오’를 놓아주자는 ‘료타’의 말과 함께 가족들은 묻어뒀던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재개봉: 2025년 5월 21일 -등급: 전체관람가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고레에다히로카즈 #걸어도걸어도 #5월영화 #영화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