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3-05-17 17:41:18
쏟아지는 금빛 토사물, <슬픔의 삼각형>
이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및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질문했다. ”부르주아들을 놀려 먹는 영화들은 왜 이렇게 재밌을까?” 더 넓게는 인종적, 젠더적 권력을 전복하는 내용이 구미가 당길 때도 있다. 어떤 영화들은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조롱하며 어떤 때에는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죽여 버리기도 한다. <슬픔의 삼각형>은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올라가는’ 유머를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단 채 스크린에 걸렸다. 결과는 8분 간의 기립박수와 완전히 압도당한 채 용산역 지하철 플랫폼을 터덜터덜 걷는 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슬픔의 삼각형>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멋진 제목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과 황금색의 무언가를 토해내는 포스터를 보고는 저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해서 벼랑 끝까지 떠밀릴지 확인하게 되기만을 기다렸다.
보기 전에는 구토를 하는 장면이나 침몰하는 요트, 식탁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 남녀의 모습 같은 이미지 때문에 <더 메뉴>처럼 긴강감을 높이면서 조금 더 신랄한 유머를 구사하는 정도를 예상했다. 그리고 요트 위가 가장 중요한 공간일 거라는 상상도 했다. 그런데 젊은 커플과 그들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너무나 시의성 있어서 미치도록 웃긴) 갈등에서 시작해 요트, 무인도로 옮겨 가는 파트 분배가 흥미로웠다. <슬픔의 삼각형은> 너무 고지식하지도, 지나치게 가벼워서 생각을 못하게 만들지도 않는 적절한 유머를 구사한다. 그러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깔깔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 놀람과 역겨움, 웃음을 동시에 토해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장면들로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슬픔의 삼각형>은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처럼 반복적이고 연극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연출을 이어나가거나, <더 메뉴>처럼 하나의 소재를 붙들다 이내 불타 없어져버리지 않는다. 고통을 주기보다는 오물을 뒤집어씌우면서 조롱하고, 제 업보 때문에 바보같이 죽어버리는 캐릭터보다는 깔끔하게 수장해버리는 방향을 택하면서 구조를 하나씩 전복해나간다. 거기에 매끄러운 촬영과 과장된 캐릭터를 그렇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더해지면서 세련된 영화가 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직접 말했듯, 동시대 관객들이 극장에서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며 즐길 수 있는 영화로 거듭났다. 먼 미래에 누군가가 21세기를 비틀어 묘사한 가장 신랄하고 웃긴 영화를 찾는다면 주저 없이 추천해 주고 싶다. 바위를 든 채 번뜩이는 눈을 한 가모장제 사회마저.
실은 시사회를 처음 가봐서 티켓 수령할 때부터 엄청 우왕좌왕했다… 줄이 두 개로 나뉘어 있는 데에서 1차 당황, 직원분께서 내게 ‘구토 방지용 봉투’만 주시고 팜플렛은 안 주셔서 2차 당황. 하지만 출석체크를 무사히 마치고 이 넓은 용산 CGV에서 내가 해냈다..!! 하는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자리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ㅎㅎ 비록 옆에 앉은 남자분이 지각 + 상영관 안에서 음주 + 중간에 퇴장하기…를 모두 해내셨지만 영화도 정말 재밌었고 첫 시사회 경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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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열정 - 사랑이라는 이름의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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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혼마저 잠식한 열병 같은 사랑에 빠져버린 엘렌,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욕망 그리고 육체적 탐닉을 마주할수록
점점 혼란에 빠지고,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아니 에르노의 베스트셀러 원작!
그의 뜨거운 고백을 스크린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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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주 최신 개봉영화(싱크홀, 프리가이, 더 톨:함정, 암살자들, 생각의 여름)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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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메인 예고편
전설적인 가수의 실종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20년 간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해온 순이(오민애)는
‘윤시내’와 함께할 뻔한 꿈의 무대도, 일자리도 잃어 좌절에 빠진다.
한편, 사람들의 관심이 고픈 유튜버 ‘짱하’(이주영)는
라이브 방송 중 우연히 찍힌 엄마 ‘연시내’ 영상의 조회수가 떡상하자
대박 콘텐츠를 꿈꾸며 ‘윤시내’를 찾는 여정에 따라 나서는데…
동료 가수 ‘운시내’(노재원)와 함께 가시내, 윤신애, 윤사내까지 모두 만나며
사라진 ‘윤시내’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한 동상이몽 두 모녀는 과연 ‘진짜’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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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현장> 메인 예고편
거리의 고양이들을 ㄷ로보느라 빚까지 지게 된 마음 약한 람 형사, 어느 날 살인 사건 현장에 투입되게 되고 그곳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말하는 앵무새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람 형사의 상사인 입 팀장은 지난 번 벌어진 리슨 금은방 강도사건 주범인 션 왕이 이 사건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촉에 의지한 채 입 팀장을 의심하게 된 람 형사는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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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하는 것과 어떻게 하는 것과의 차이
전작의 명성을 잇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전작이 장르영화로서 호평을 받았을 경우에 영화는 새로운 과제를 하나 더 부여받는다. 전작이 가진 영화의 재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후속작만의 독보적인 강점을 갖는 것.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점에서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였으나, 장르영화의 재미는 챙겼다. 다만 이 재미를 어떻게 챙겼느냐에 관하여는 관객의 몫에 달린 듯하다.
서품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악령을 퇴치하는 일에 있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유리아수녀. 그녀는 악마를 믿지 않는 담당의와 원칙을 준수하는 천주교 원로들을 뒤로하고 12형상 중 하나에 빙의된 구마자를 구해야 하는 과제에 놓인다. 구마자 희준과 유리아에게 동질감을 느낀 미카엘라 수녀는 그녀를 도와 구마의식을 돕게 되고, 수녀는 구마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두 사람은 희준을 구하고자 한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요소에는 한국에서는 잘 그려내지도,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오컬트장르를 감독의 덕심하나로 성공시켰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서양의 오컬트문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닌 그 점 그대로 잘 표현해 냈다는 점에 관객의 마음이 동했다. 어쭙잖게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어설프게 그려내지도 않았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감독이 본인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르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열정과 이해도가 높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전작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이에 관점을 조금은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꽤 했다. 천주교 원로회로 분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짐작할 수도 있듯이 이 영화는 보수적인 집단에서의 두 여성이 연대하여 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성서사에 가깝다. 단순히 여성 2명이 등장하였기에 여성영화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에 참여할 수 없는 수녀'라는 설정 자체가 어떠한 제한을 가진 여성 자체를 상징하고 있고 영화 말미에 악마를 봉인하는 의식에서는 오로지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유리아의 희생이 잇따른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검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수녀'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나 할까.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꿰하였다는 점이나, 토속신앙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여 극의 내용을 풍부히 했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을 가진 이 영화는 다만 배우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다. 송혜교배우의 전작 <더 글로리>에서의 문동은이란 역할이 수녀복을 입은 것과 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유리아수녀는 배우의 전작에 기대며 몹시도 평면적이다. 주인공인 그녀를 제외하고도 극 중 전여빈배우가 분한 미카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물들의 과거사는 거세된 편에 가깝다. 이는 극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점은 그림자와 같은 과거사를 없애었더니 모든 인물이 평면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충분히 입체적인 역할을 그릴 수도 있었던 극 중 주인공들은 오로지 자신이 부여받은 한 가지 목적 외에 다른 관점은 골몰하지 못한다. 종이인형처럼 극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도 같아 보이는 이들은 얼핏 열정적으로 보이면서도 무채색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미 자신이 부여받은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였을지도 모른다.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부분 성공한 듯처럼 보인다. 다만 이 영화가 그리하여 매력적이냐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역할을 잘 수행한 것과, 어떻게 수행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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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도 겹치면 짙어질까
빗자루질 소리에 잠에서 깨어, 소박하지만 정리된 삶을 살아간다. 일반인들이 무시하는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묵묵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닦고 청소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책을 읽다 잠든다. 항상 똑같은 조용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것 같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아저씨. 그런 그의 굳어진 얼굴이 풀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때가 있다. 바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시간, 그리고 코모레비(木漏れ日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히라야마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사람들과의 거리를 지키고, 자신의 작은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화장실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늘 깨끗하게 닦고 있다. 깨끗하게 콧수염 정리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또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영혼이 녹슬지 않도록 가꾼다. 그런 그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 작은 소중한 삶이 얼마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지 점점 깨달아간다.
그러나 마음이 깊은 사람은 그만큼 큰 상처를 지니고 있는 법이고,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히라야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 정도의 깊이에 도달했단 말인가. 삶의 모든 것에서 소중함을 느끼는 히라야마는, 아마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사람이리라. 그 음악과 햇빛 사이로, 히라야마의 깊은 상처는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의 삶 사이에 빛과 그림자가 가득한 꿈을 그려 넣는다. 시각세포는 두 가지가 있다. 색을 인지하는 세포와 빛과 그림자를 인지하는 세포. 밝은 곳에서는 색으로 모든 것을 인식하지만, 빛이 별로 없는 어두운 곳에서는 빛과 그림자만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빛과 그림자만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준다. 히라야마는 꿈속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코모레비에 대해 자막까지 넣어가며 설명을 했지만, 코모레비는 빛이 주체다. 빔 벤더스가 설명한 히라야마의 과거 깨달음의 시점에도 빛이 중요한 모티브라고 했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꿈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바로 그림자다. 히라야마가 자기 전 책에서 읽었던 구절 중에 '影(영: 그림자)'라는 한자가 유독 두드러지며, 나뭇잎의 그림자들이 서로 겹쳐진다. 코모레비는 일렁이는 햇빛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바로 일렁이며 겹쳐진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그림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는 자신의 과거를 딱히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과거를 입에 담는 것조차 상처가 되는 그런 깊은 상처일터다. 바로 히라야마가 살고 있는, 불에 탄 흔적이 얼핏 보이는 낡은 집처럼.
나에게도 그런 짙은 상흔의 과거가 있다. 삶의 모든 것이 부서지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두고, 원망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 위로의 말이나 손길에게도 피해를 줄까 봐 멀리 떠났던 시절. 그 달동네에는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쉬던 커다란 느티나무와 평상이 있었다. 아주 잠시만 있을 수 있었지만 그 평상 나무 그늘에 누워서 느티나무 그늘 사이로 비치는 코모레비를 보는 것이 그렇게도 위로가 되었다. 일렁이는 햇빛은 마치 내 삶이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 위안과 희망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도 그 시절을 견뎠다. 히라야마가 코모레비를 보며 잠시 평안해지는 그 미소는 바로 그 시절 나의 미소였다.
히라야마와 같이 맥주를 나누던 '그 남자'는 히라야마에게 물어본다. "그림자도 겹치면 짙어질까요?" 히라야마는 당장 해보자고 한다. 그 남자는 그림자가 똑같아 보인다고 하고, 그림자 전문가인 히라야마는 짙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빛은 파동이기도 하므로 회절현상이 일어난다. 광원이 완벽하게 1개라고 하고 반사하는 물질이 없어도, 그림자 속에 들어간다고 해서 완벽히 빛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림자 속에도 주변 빛의 회절현상으로 빛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회절되는 빛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그림자를 겹치면, 점점 어두워진다. 그림자 속에도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 겹쳐지는 그림자를 많이 본 히라야마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상처도 겹치면 짙어진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렇게 겹치고 겹친 그림자들의 사이가, 바로 코모레비처럼 빛난다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와 그림자의 틈, 상처와 상처의 틈, 아주 작은 공간들, 비어있는 줄 알았던 그곳이 희망이라는 걸,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순간만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그의 삶은 코모레비와 같아졌다. 그가 항상 흑백 사진으로 남기는 그날그날의 코모레비는, 항상 똑같아 보이지만 다른 소중한 그의 일기인 것이다. 일기는 한자로 日記라고 한다. 히라야마는 말 그대로, 그날의 태양을 기록하고 있다.
깊은 상처는 히라야마에게 모든 날들이 완벽하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날도 모두가 완벽하다. 그림자의 뒤엔 빛이, 죽음 뒤엔 생명이, 이별 뒤엔 사랑이, 눈물 뒤엔 웃음이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이 사라져가는 생의 한 뒤켠에, 빔 벤더스의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은 낡은 카세트 테잎의 노래처럼 탁한 빛으로 관객의 마음 속을 비춘다. 그러기에 모든 나날들은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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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아주담담 & 짧은 영화, 긴 수다
아주담담 & 짧은 영화, 긴 수다는 다양한 작품과 게스트들이 하나의 주제 하에 모여 활발하게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10월 7일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6층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진행된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2에 참여하여 영화를 더욱 깊이 들여보는 시간을 가졌다.
<홍이>, <파동>, <3학년 2학기>, 이 세 작품의 감독 황슬기, 이한주, 이란희, 배우 변중희, 박가영이 함께했다.
<홍이> 황슬기 감독, 변중희 배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개막한 10월 2일부터 계속 머물고 있다는 황슬기 감독은 틈틈이 영화도 챙겨보고 이번에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추천할만한작품으로는 박송열 감독의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를 추천했다.
영화를 소개하기를 홍이는 30대 후반 경제난에 시달리는 한 여자가 자신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데려오면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며,
제가 어떤 겪었던 경험담과 그런 걸 듣고 보고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쓰고 영화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황슬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홍이>. 이번 작품을 제작할 때를 되돌아보면 즐거운 순간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함께 만드는 영화를 함께 만드는 동료의 소중함을 정말 많이 느꼈다고 한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과거와는 달리 첫 장면을 찍으면서 스태프들이랑 얘기하고
각자가 일을 나누어서 더 얼마만큼 마음을 쓰고 신경을 쏟느냐를 같이 나누는 작업이 영화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변중희 배우는 홍이 엄마로서 딸이 듣는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딸이 살짝 보는 엄마의 표정이 엄마의 다가 아니라는 것과
모성에 대한 것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반어법적으로 나오는데, 그것을 중점적으로 보며 그 마음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황슬기 감독은 홍이에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미워할 수도 없고 더 사랑할 수도 없는 모습인데,
화학 작용을 내는 게 저 영화에 잘 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10월 9일 10시에 마지막으로 상영하는데 그 모습들을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파동> - 이한주 감독, 박가영 배우늘 배우로 영화제를 참가했던 이한주 감독이 <파동>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그의 첫 연출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물결 파에 겨울 동을 써 파동이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서울에서 철도 기관사로 일하고 있는 문영이라는 인물이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기억을 쫓아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상호라는 인물이 문영의 고향을 내려가게 되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왔다갔다 하면서 조금씩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라고 전했다.
<파동>은 의도적으로 파편적이고 불친절하게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이러한 장르를 선호한다는 이한주 감독은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생각하며,이미지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자신에게는 인상 깊었기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며 파동에서 그런 부분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전부터 이한주 감독과 여러 작품을 같이 했다는 박가영 배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영화의 창작에 대해서 많은 소통을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같이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장편으로 써져 있는 글들이 자신이 좋아했던 어떤 시기를 구현할 수 있는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박가영 배우는 이 영화의 관람포인트로 풍경을 꼽았다. 전북 남원의 지리산 쪽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 촬영을 했다는 <파동>.사라져가는 동네를 추억할 수 있고, 누군가들이 떠오를 수 있는 공간,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존경할 수 있는 것들,
그런 풍경들을 고스란히 담으려고 한 흔적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 말했다.
또, 그 풍경들을 인물이 나오지 않은 순간에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이한주 감독은 넓은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봐 달라 청했다.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복잡하고 힘든 영화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속 3명의 인물이 각자 다른 위치에서 개인적인 성장을 이룬다.
영화를 볼 때, 각기 다른 세 명의 인물들을 통해 개인의 어떤 시절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을 꼭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유이하 배우, 김성국 배우첫 장편 영화 <휴가>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이란희 감독은 두번째 장편영화 <3학년 2학기>로 다시 부산을 찾았다.늘 청소년 노동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란희 감독은 뉴스에 현장 실습생들 사고 소식을 듣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히 첫번째 장편 영화 <휴가>를 통해 만난 현장 실습 하다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두번째 장편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김성국 배우는 <3학년 2학기>는 실습생들의 성장과정을 많이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행동하는 부분이 재미있는 관점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유이하 배우는 결말을 다 알면서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보며 "한 번만" "한 번만" 하며 응원하게 되는데, 자신과 같은 지점에서 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이 했던 말들을 생각해 달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란희 감독은 현장 실습생 사고 소식은 보통 뉴스로 접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실습을 같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계 고등학생들에 대해 글자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학생들로 생각해 달라고 전했다.
[상영시간표]
<홍이>
10/6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7 10: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9 10:0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파동>
10/6 12: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7 09: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0/8 15: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3학년 2학기>
10/6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10/8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9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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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
미국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의 범행 과정과 검거, 재판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어서 연쇄 살인을 저지른 테드 번디의 범죄와 검거 후 재판 그리고 사형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잘난 사람이고 싶지만, 타인을 이해하거나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한 테드 번디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물이었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화풀이로 살인을 택한다.
수십 명의 사람을 살해했으면서 본인의 죽음 앞에선 두려움을 느끼는 열등감 덩어리 인격장애 테드 번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 테드 번디 테이프는 살인을 수사한 형사, 피해자, 테드 번디의 가족 등 범죄와 마주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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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출신 영화인'이 변명이 되지 않을 때
복수는 못 참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알아주는 건달 경철(오대환)이다. 쫓기는 경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향한 곳은 교회다. 몸을 숨기는 경철. 인성(김정태)의 급습에 죽을 위기에 처할 뻔했다. 와신상담이 따로 없다.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경철. 하지만 경철이가 몸을 숨긴 곳은 교회다. 교회라고 함은 그 교회에 방문하는 신도가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에 꽂힌 신도들. 신도들은 손님 경철이 메시아라고 추앙한다. 이 따뜻한 분위기는 무엇? 하지만 경철에겐 상처와 분노가 남았다. 복수는 못 참는다. 칼을 가는 경철. 목표는 인성이다. 이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태용(이용규)이다. 대머리인 용규. 심지어 험상궂게 생겼다. 누가 봐도 조폭인 태용. 태용 역시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다. 절로 숨은 태용. 대머리니까 아주 적절한 곳에 몸을 숨긴 셈이다. 무소유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이 평화로운 곳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 아주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복수는 못 참는다. 복수의 칼날을 가는 태용. 경철과 함께 인성을 공격하는 목표를 세운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도필(지승현)이다. 도필은 경찰이다. 하지만 좀 특별하다. 왜? 도필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신에 빙의하는 병이 생겼다. 혼자 있을 때만 이런 일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일할 때도 빙의를 겪으니 죽을 맛이다. 하지만 일상의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역시 복수는 못 참는다. 인성을 잡아넣고 싶은 도필. 과연 경철, 용규, 도필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흥미롭기는 했었어
우선 결론부터. 신선하기만 했다는 게 총평이다. 왜 신선했을까? 이 영화의 기본적인 틀은 들어본 적 없던 것 같다. 혹자는 ‘조폭 코미디 한 번도 안 봤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글쓴이는 힘주어 ‘종교와 복수’라는 아이러니를 어디서 봤냐고 역설하고 싶다. 목사, 스님, 박수무당이 각자 종교인으로서의 숙제를 나름대로 이행하면서 사적 복수를 추구한다? 세 종교인이라고 서로 싸울 것 같은데 그것도 심지어 경찰과 조폭, 건달이? 이거 신선하지 않아? 차라리 ‘박목스’면 사람 이름 같고 좋을 걸 ‘목스박’이래서 느껴지는 C급 영화적인 기운도 신박한 아이디어 아래에선 별거 아니게 느껴진다.
이 외에 영화의 다른 장점을 찾자면 다들 ‘열일’을 했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도필 역의 지승현 배우는 이 영화에서 배우로서 가진 모든 역량을 보여준다. 1인 다역부터 액션 코미디까지 지승현 배우의 열연은 이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오대환 배우도 이 영화에서 좋았다. 오대환 배우가 연기하는 방식은 지승현 배우와는 다르다. 캐릭터가 가진 카리스마를 좁고 날카롭게 깎아야 영화의 무기가 된다. 이 캐릭터를 설정하는 이상한 요소가 많음에도 경철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유가 이 배우의 역량에 있는 것이다. 감독의 역할에 있어서도 고훈 감독은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맞는 재기 발랄한 연출을 몇 번 보여준다. 이 영화는 고의적으로 품격 있는 누아르이자 복수극을 거부하는 듯하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에서 이 의도를 읽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무언가 깨지는 장면이 좀 진부하긴 해도 기획의도를 살리는 좋은 연출이었다.
내내 고루해
하지만 이 영화는 내내 고루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첫 번째. 이 영화의 주인공 세 명의 분량에 대한 부분이다. 경철/도필이 아닌 다른 주인공 태용은 이 이야기에서 코미디를 담당하는 핵심 캐릭터 중 한 명이다. 어떤 코미디? 태용 옆에서 스님 동료로 설정되어 있는 ‘환장스님’이라는 인물과의 캐미다. 이 캐미가 영화에서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상 감정선이 급작스러워 ‘왜 저래’ 싶기도 하고, 두 배우가 과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의 장애물이 된 것이다. 또 어느 부분에서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갈 생각이 없나?라는 느낌마저 든다. 구체적으로 주인공 3인방이 각자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성장영화로서의 테마와 환장스님과의 노닥거림이 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차라리 후반부에서 이 환장스님이 등장하는 근거를 찾을 수는 있다. 근데 그 후반부를 뒷받침하려면 전반부에서도 역시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선 그렇지 못했다. 다른 주인공 도필은 지승현 배우의 열연만 두드러질 뿐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있어 구멍이 많다. 대표적으로 이 인물이 직업인으로서 찾아올만한 위기가 몇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편의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라이터’에 관한 장면이나 중반부 찍고 경철에게 하는 대사가 이 도필이라는 캐릭터의 약점을 집약한 듯하다. 또 이 인물을 설명하는 방식에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미친개’라는 별명이다. 이 ‘미친개’라는 수식어구는 굉장히 자주 들린다. 작년 <소년들>에서 설경구 배우가 맡은 역할도 ‘미친개’였고, 1998년 <여고괴담>에서 빌런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의 별명도 ‘미친개’였다. 이 ‘미친개’는 본작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올드한 영화의 톤을 집약하는 낡은 설정이었다. 또 이 영화의 핵심 세팅인 박수무당으로서의 역할과 능력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둔 선택지가 그렇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도필이 상황에 대한 인지를 더 빠르게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코미디를 위해 인위적으로 짠 설정들이 영화의 맛을 떨어트리는 듯 했다.
그리고 글쓴이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김정태 배우가 맡은 역할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단점과 이어져있다. 영화가 이야기의 흐름이나 연출의 흠으로, 기술의 힘으로 젊은 톤을 유지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 척을 한다. 무슨 말이냐. 이 인성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의도가 지나치게 투명하다는 점에서 이 <목스박>이 ‘젊은 층도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표방한 흔적이 너무 대놓고 드러난다고 쓰고 싶다. 이를 어디서 읽을 수 있느냐. 인물의 행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인물이 가진 욕망은 간단하다.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뭘 할까. 인스타그램을 공부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 사진을 올려서 좋아요 수가 올라가고. 인맥을 넓혀서 팔로워 수를 늘리는 것들이 인성의 목표다. 하지만 인성이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당연하다. 힙한 사람이 이미 아니니까 힙해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럼 억지로 힙해지려고 들지 않는 게 중요하겠지? 이 새삼스런 발견을 영화는 처음부터 알려줄 생각이 없는 듯 인성을 ‘공감성 수치’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가령 영화 중후반부에 인스타 팔로워에 관한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할 필요도 없고 이에 대한 부분을 자막으로 구현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인물의 악함이나 행보가 이 ‘젊어지려 하는 것’과 그렇게 잘 맞아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둘 다 따로 논다. 이말은 곧 '인성이의 셀럽 도전기'가 영화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스박>이 인물의 성격을 기능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까지 보다 보면 이 인물이 굳이 이렇게까지 분량이 많았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 조직원 중에 여성 캐릭터가 있는 것 자체는 좋았다. 이거 하나만 유일하게 뻔하지도, 작위적이지도 않았다.
억지로 젊은 척
주인공이 아닌 조연들에게도 올드한 필치가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다. 영화 도중에 게임이라는 소재가 나온다. 당연히 뭐든 과하면 안 좋다. 특히 이 영화에 등장하는 게임 중독자 묘사에겐 더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게임이라는 소재는 왠지 어떤 아이디어에 기반해서 만들었는지 알 것 같다. 바로 게임 중독자는 누군가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전제다. 이 캐릭터가 자기 입으로 "나는 방구석에서 게임만 합니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낸다. 그럼 이 인물이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구원이 필요한 것인가, 인생을 막 살아서 구원이 필요한 것인가? 영화는 그 부분을 전자로 선택해 인물들의 성장요소로 활용한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굉장히 올드하게 느껴지는 접근방법이다. 무언가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문제라면 현세대의 덕후들 전부가 잘못됐다는 의미인가? 차라리 이 인물이 이 영화에서 타인에게 가하는 무례함은 치유가 무조건 필요하다. 이것에 대해 경철이 예절을 주입시키는 방식이었다면 납득이 갈 것이다. 또 이 캐릭터가 불법도박을 하는 인물이었다면 구원이 필요한 인물이 맞다. 방구석에서 시간만 잡히고 돈만 뺏기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은인이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조연 중 깜짝 카메오가 있다. 이 두 사람은 말 그대로 대세다. 특히 여자 배우 인기 정말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굳이 나올 필요가 없었다. 왜? 이 부분은 두 사람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에 근거한다. 이 둘을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이 전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 배우가 <30일> 같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것이 무색하게 이 배우는 어디선가 본 이상한 제스처를 취하고, 남자 배우는 사실 그 장면이 영화에 아예 없었어도 큰 무리가 없었다. 뭐 이런 빈약한 인물서사가 여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 태용의 사찰 소속 주지스님, 경철의 조직, 경찰이라는 공권력, 장갑을 이용한 장면, 경철과 갈등을 겪는 인물까지 이 영화는 ‘스타일리시함’을 추구하다 실패한 결과물이 이야기를 이끈다. 아직도 기억난다. 경철이 건달 출신 목사라는 디테일을 강조하기 위해 징 박힌 가죽장갑을 낀다? 솔직히 이런 목사님이 세상에 존재하나? 몸을 숨겨 복수극을 이행한다는 설정과 잘 맞는 연출이라고 볼 수 있나?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이음새가 꼼꼼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의 음향 믹싱 상태와 후시녹음의 싱크로율은 더 꼼꼼하게 검수할 필요가 있었다. 이 두 요소가 중요한 이유는 후반부의 전개를 살리기 위함이다. 생동감이 넘쳐야 인물의 동선에 설득력이 생기고 하이라이트에 감동이 전해지는 것이다. 특히 도필의 액션은 반 박자 느린 ‘퍽’ 소리에 김이 샌다. ‘액션이 들어가면 관객들이 좋아하겠지?’를 생각하고 쓴 각본이라는 게 너무 잘 느껴 저서 이 구멍은 더 아쉽다. 이는 영화의 편집에서도 느껴지는 단점인데 이물감이 느껴지는 플롯을 영화 스스로 만드는 느낌까지 들었다. 경철이 목사로서 목회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부분은 그냥 해결책만 딱 보여줘도 이야기의 흐름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목스박>은 그 과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보여주지 못하고 널뛰기한다. 그냥 해결책만 딱 보여줘도 그 전의 과정을 관객들이 이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응원하지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간단하다. 제주는 영화 불모지다. 영화를 폭넓게 볼 수 있는 환경은 고사하고 공부할만한 판이 깔려있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고훈 감독은 제주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 2018년에 무려 칸 영화제에도 초청받은 바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글쓴이의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제주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라고 하면 어설픈 사투리를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빈약한 선례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결과까지 냈기 때문에 고훈 감독의 영화가 궁금했다. 이 <목스박>은 이 불모지에 자란 한 줄기 꽃 같은 존재다. 충분히 제주에서도 상업영화로 데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글쓴이는 이 고훈 감독님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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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껍데기의 결말
도리언 그레이의 첫 묘사는 손때가 묻지 않은 연약함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순진무구한 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던 한 청년이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위 분석은 도리언 그레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도리언 그레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어린아이가 자아를 찾아나가는 관점과 관련 있다는 가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One and only 사랑은 없다. 당신의 착각이었을 뿐
그는 시빌 베인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시빌 베인이 연기한 캐릭터들, 그녀의 연기력, 즉, 그녀의 재능을 사랑한 것이었다. 그녀의 출중한 연기력으로 그녀가 표현해낸 줄리엣, 이모겐을 사랑한 것이다. 그녀는 도리언의 완벽한 외모에서 비롯된 그의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갈구했다면, 그는 그녀의 연기만을 사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내면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겉껍데기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난 뒤,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젊음에 대한 찬미가 담긴 초상화에 대해서 진절머리를 느끼게 된다. 시빌 베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완전무결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완벽히 그려낸 초상화가 흉측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는 그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도리언의 초상화는 그의 인생이 담겼고, 그의 영혼이 담겨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리언은 자신의 완전무결한 모습에 취해서 초상화에서 보이는 자신의 늙고, 흉측한 모습은 애초에 보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에 시빌 베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더 이상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 자신의 초상화를 다락방에 가두어 버리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이처럼 배실의 초상화는 도리언의 인생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면서 도리언의 잘생긴 외모라는 가면 아래 남들에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던 악한 모습도 포함하고 있는 어쩌면 도리안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도리언은 배실에게 페로몬을 흩뿌려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도리언에게 있어서 배실은 이성보다는 선에 기반한 감성을 더 자극하는 사람으로, 도리언의 나르시시즘을 발현시키는 것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도리언이 헨리와의 쾌락적이고, 비관주의적인 토론을 하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고, 그의 젊음을 찬미하기에만 바쁘다. 이런 배실의 탐닉적인 모습은 자신이 그린 초상화가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무너지게 된다.
또다른 등장인물,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 그레이에게 “사상적인 분신”의 역할을 한 사람으로서 배신을 도리언에게 아름다움을 고취시킨 사람이라면,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의 악한 욕망에 눈 뜨도록 이끌어준 인물이다. 바질은 선에 입각한 인물이었다면 헨리 워튼 경은 사탄과도 같은 존재이다. 도리언에게 쾌락주의적 사상을 본의 아니게 주입시키는 인물로서 정신적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망가뜨린 인물이다. 그의 상징적 이미지는 실낙원에서 선량한 아담과 이브를 고통의 세계로 이끈 뱀(serpent)의 이미지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는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는 인간의 충동적인 결정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부분으로 앞으로 도리언 그레이가 어떠한 충동적인 결정으로 크나큰 비극을 맞게 되는지에 대한 암시를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혼은 정말 몸 안에 존재하냐고 질문하는 부분은 구절은 이후 도리언 그레이가 영원한 젊음을 위해서 영혼을 파는 부분을 연상시키면서 더 이상 도리언 몸에 있지 않은 도리언 진짜 영혼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도리언의 추악한 본능을 담은 매개체는 도리언의 몸이 아니라 도리언을 그려낸 초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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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열정 - 사랑이라는 이름의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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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혼마저 잠식한 열병 같은 사랑에 빠져버린 엘렌,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욕망 그리고 육체적 탐닉을 마주할수록
점점 혼란에 빠지고,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아니 에르노의 베스트셀러 원작!
그의 뜨거운 고백을 스크린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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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주 최신 개봉영화(싱크홀, 프리가이, 더 톨:함정, 암살자들, 생각의 여름)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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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메인 예고편
전설적인 가수의 실종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20년 간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해온 순이(오민애)는
‘윤시내’와 함께할 뻔한 꿈의 무대도, 일자리도 잃어 좌절에 빠진다.
한편, 사람들의 관심이 고픈 유튜버 ‘짱하’(이주영)는
라이브 방송 중 우연히 찍힌 엄마 ‘연시내’ 영상의 조회수가 떡상하자
대박 콘텐츠를 꿈꾸며 ‘윤시내’를 찾는 여정에 따라 나서는데…
동료 가수 ‘운시내’(노재원)와 함께 가시내, 윤신애, 윤사내까지 모두 만나며
사라진 ‘윤시내’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한 동상이몽 두 모녀는 과연 ‘진짜’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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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현장> 메인 예고편
거리의 고양이들을 ㄷ로보느라 빚까지 지게 된 마음 약한 람 형사, 어느 날 살인 사건 현장에 투입되게 되고 그곳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말하는 앵무새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람 형사의 상사인 입 팀장은 지난 번 벌어진 리슨 금은방 강도사건 주범인 션 왕이 이 사건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촉에 의지한 채 입 팀장을 의심하게 된 람 형사는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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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하는 것과 어떻게 하는 것과의 차이
전작의 명성을 잇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전작이 장르영화로서 호평을 받았을 경우에 영화는 새로운 과제를 하나 더 부여받는다. 전작이 가진 영화의 재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후속작만의 독보적인 강점을 갖는 것.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점에서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였으나, 장르영화의 재미는 챙겼다. 다만 이 재미를 어떻게 챙겼느냐에 관하여는 관객의 몫에 달린 듯하다.
서품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악령을 퇴치하는 일에 있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유리아수녀. 그녀는 악마를 믿지 않는 담당의와 원칙을 준수하는 천주교 원로들을 뒤로하고 12형상 중 하나에 빙의된 구마자를 구해야 하는 과제에 놓인다. 구마자 희준과 유리아에게 동질감을 느낀 미카엘라 수녀는 그녀를 도와 구마의식을 돕게 되고, 수녀는 구마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두 사람은 희준을 구하고자 한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요소에는 한국에서는 잘 그려내지도,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오컬트장르를 감독의 덕심하나로 성공시켰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서양의 오컬트문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닌 그 점 그대로 잘 표현해 냈다는 점에 관객의 마음이 동했다. 어쭙잖게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어설프게 그려내지도 않았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감독이 본인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르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열정과 이해도가 높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전작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이에 관점을 조금은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꽤 했다. 천주교 원로회로 분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짐작할 수도 있듯이 이 영화는 보수적인 집단에서의 두 여성이 연대하여 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여성서사에 가깝다. 단순히 여성 2명이 등장하였기에 여성영화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에 참여할 수 없는 수녀'라는 설정 자체가 어떠한 제한을 가진 여성 자체를 상징하고 있고 영화 말미에 악마를 봉인하는 의식에서는 오로지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유리아의 희생이 잇따른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검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수녀'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나 할까.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전작과의 차별화를 꿰하였다는 점이나, 토속신앙 등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여 극의 내용을 풍부히 했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을 가진 이 영화는 다만 배우를 잘 활용하지 못하였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다. 송혜교배우의 전작 <더 글로리>에서의 문동은이란 역할이 수녀복을 입은 것과 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유리아수녀는 배우의 전작에 기대며 몹시도 평면적이다. 주인공인 그녀를 제외하고도 극 중 전여빈배우가 분한 미카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물들의 과거사는 거세된 편에 가깝다. 이는 극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점은 그림자와 같은 과거사를 없애었더니 모든 인물이 평면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충분히 입체적인 역할을 그릴 수도 있었던 극 중 주인공들은 오로지 자신이 부여받은 한 가지 목적 외에 다른 관점은 골몰하지 못한다. 종이인형처럼 극 안에서 움직이는 것과도 같아 보이는 이들은 얼핏 열정적으로 보이면서도 무채색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영화 <검은 수녀들>은 이미 자신이 부여받은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였을지도 모른다.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워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부분 성공한 듯처럼 보인다. 다만 이 영화가 그리하여 매력적이냐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역할을 잘 수행한 것과, 어떻게 수행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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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도 겹치면 짙어질까
빗자루질 소리에 잠에서 깨어, 소박하지만 정리된 삶을 살아간다. 일반인들이 무시하는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묵묵히,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닦고 청소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책을 읽다 잠든다. 항상 똑같은 조용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것 같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아저씨. 그런 그의 굳어진 얼굴이 풀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때가 있다. 바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는 시간, 그리고 코모레비(木漏れ日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히라야마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사람들과의 거리를 지키고, 자신의 작은 순간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화장실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늘 깨끗하게 닦고 있다. 깨끗하게 콧수염 정리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또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영혼이 녹슬지 않도록 가꾼다. 그런 그의 삶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 작은 소중한 삶이 얼마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지 점점 깨달아간다.
그러나 마음이 깊은 사람은 그만큼 큰 상처를 지니고 있는 법이고,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히라야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그 정도의 깊이에 도달했단 말인가. 삶의 모든 것에서 소중함을 느끼는 히라야마는, 아마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사람이리라. 그 음악과 햇빛 사이로, 히라야마의 깊은 상처는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빔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의 삶 사이에 빛과 그림자가 가득한 꿈을 그려 넣는다. 시각세포는 두 가지가 있다. 색을 인지하는 세포와 빛과 그림자를 인지하는 세포. 밝은 곳에서는 색으로 모든 것을 인식하지만, 빛이 별로 없는 어두운 곳에서는 빛과 그림자만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빛과 그림자만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준다. 히라야마는 꿈속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코모레비에 대해 자막까지 넣어가며 설명을 했지만, 코모레비는 빛이 주체다. 빔 벤더스가 설명한 히라야마의 과거 깨달음의 시점에도 빛이 중요한 모티브라고 했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꿈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바로 그림자다. 히라야마가 자기 전 책에서 읽었던 구절 중에 '影(영: 그림자)'라는 한자가 유독 두드러지며, 나뭇잎의 그림자들이 서로 겹쳐진다. 코모레비는 일렁이는 햇빛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바로 일렁이며 겹쳐진 그림자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그림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는 자신의 과거를 딱히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과거를 입에 담는 것조차 상처가 되는 그런 깊은 상처일터다. 바로 히라야마가 살고 있는, 불에 탄 흔적이 얼핏 보이는 낡은 집처럼.
나에게도 그런 짙은 상흔의 과거가 있다. 삶의 모든 것이 부서지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두고, 원망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로 돌려 위로의 말이나 손길에게도 피해를 줄까 봐 멀리 떠났던 시절. 그 달동네에는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동네 사람들이 앉아서 쉬던 커다란 느티나무와 평상이 있었다. 아주 잠시만 있을 수 있었지만 그 평상 나무 그늘에 누워서 느티나무 그늘 사이로 비치는 코모레비를 보는 것이 그렇게도 위로가 되었다. 일렁이는 햇빛은 마치 내 삶이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 위안과 희망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도 그 시절을 견뎠다. 히라야마가 코모레비를 보며 잠시 평안해지는 그 미소는 바로 그 시절 나의 미소였다.
히라야마와 같이 맥주를 나누던 '그 남자'는 히라야마에게 물어본다. "그림자도 겹치면 짙어질까요?" 히라야마는 당장 해보자고 한다. 그 남자는 그림자가 똑같아 보인다고 하고, 그림자 전문가인 히라야마는 짙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빛은 파동이기도 하므로 회절현상이 일어난다. 광원이 완벽하게 1개라고 하고 반사하는 물질이 없어도, 그림자 속에 들어간다고 해서 완벽히 빛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림자 속에도 주변 빛의 회절현상으로 빛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회절되는 빛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그림자를 겹치면, 점점 어두워진다. 그림자 속에도 그림자를 만들 수 있다. 겹쳐지는 그림자를 많이 본 히라야마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상처도 겹치면 짙어진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렇게 겹치고 겹친 그림자들의 사이가, 바로 코모레비처럼 빛난다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와 그림자의 틈, 상처와 상처의 틈, 아주 작은 공간들, 비어있는 줄 알았던 그곳이 희망이라는 걸,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순간만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그의 삶은 코모레비와 같아졌다. 그가 항상 흑백 사진으로 남기는 그날그날의 코모레비는, 항상 똑같아 보이지만 다른 소중한 그의 일기인 것이다. 일기는 한자로 日記라고 한다. 히라야마는 말 그대로, 그날의 태양을 기록하고 있다.
깊은 상처는 히라야마에게 모든 날들이 완벽하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날도 모두가 완벽하다. 그림자의 뒤엔 빛이, 죽음 뒤엔 생명이, 이별 뒤엔 사랑이, 눈물 뒤엔 웃음이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이 사라져가는 생의 한 뒤켠에, 빔 벤더스의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은 낡은 카세트 테잎의 노래처럼 탁한 빛으로 관객의 마음 속을 비춘다. 그러기에 모든 나날들은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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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아주담담 & 짧은 영화, 긴 수다
아주담담 & 짧은 영화, 긴 수다는 다양한 작품과 게스트들이 하나의 주제 하에 모여 활발하게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10월 7일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6층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진행된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2에 참여하여 영화를 더욱 깊이 들여보는 시간을 가졌다.
<홍이>, <파동>, <3학년 2학기>, 이 세 작품의 감독 황슬기, 이한주, 이란희, 배우 변중희, 박가영이 함께했다.
<홍이> 황슬기 감독, 변중희 배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개막한 10월 2일부터 계속 머물고 있다는 황슬기 감독은 틈틈이 영화도 챙겨보고 이번에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아 영화를 보는 재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추천할만한작품으로는 박송열 감독의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를 추천했다.
영화를 소개하기를 홍이는 30대 후반 경제난에 시달리는 한 여자가 자신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데려오면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며,
제가 어떤 겪었던 경험담과 그런 걸 듣고 보고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 쓰고 영화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황슬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홍이>. 이번 작품을 제작할 때를 되돌아보면 즐거운 순간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함께 만드는 영화를 함께 만드는 동료의 소중함을 정말 많이 느꼈다고 한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과거와는 달리 첫 장면을 찍으면서 스태프들이랑 얘기하고
각자가 일을 나누어서 더 얼마만큼 마음을 쓰고 신경을 쏟느냐를 같이 나누는 작업이 영화의 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변중희 배우는 홍이 엄마로서 딸이 듣는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딸이 살짝 보는 엄마의 표정이 엄마의 다가 아니라는 것과
모성에 대한 것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반어법적으로 나오는데, 그것을 중점적으로 보며 그 마음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황슬기 감독은 홍이에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미워할 수도 없고 더 사랑할 수도 없는 모습인데,
화학 작용을 내는 게 저 영화에 잘 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10월 9일 10시에 마지막으로 상영하는데 그 모습들을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파동> - 이한주 감독, 박가영 배우늘 배우로 영화제를 참가했던 이한주 감독이 <파동>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그의 첫 연출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물결 파에 겨울 동을 써 파동이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서울에서 철도 기관사로 일하고 있는 문영이라는 인물이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기억을 쫓아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상호라는 인물이 문영의 고향을 내려가게 되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왔다갔다 하면서 조금씩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라고 전했다.
<파동>은 의도적으로 파편적이고 불친절하게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이러한 장르를 선호한다는 이한주 감독은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생각하며,이미지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자신에게는 인상 깊었기에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며 파동에서 그런 부분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전부터 이한주 감독과 여러 작품을 같이 했다는 박가영 배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영화의 창작에 대해서 많은 소통을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같이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장편으로 써져 있는 글들이 자신이 좋아했던 어떤 시기를 구현할 수 있는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박가영 배우는 이 영화의 관람포인트로 풍경을 꼽았다. 전북 남원의 지리산 쪽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 촬영을 했다는 <파동>.사라져가는 동네를 추억할 수 있고, 누군가들이 떠오를 수 있는 공간,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존경할 수 있는 것들,
그런 풍경들을 고스란히 담으려고 한 흔적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 말했다.
또, 그 풍경들을 인물이 나오지 않은 순간에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이한주 감독은 넓은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봐 달라 청했다.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복잡하고 힘든 영화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속 3명의 인물이 각자 다른 위치에서 개인적인 성장을 이룬다.
영화를 볼 때, 각기 다른 세 명의 인물들을 통해 개인의 어떤 시절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을 꼭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유이하 배우, 김성국 배우첫 장편 영화 <휴가>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이란희 감독은 두번째 장편영화 <3학년 2학기>로 다시 부산을 찾았다.늘 청소년 노동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란희 감독은 뉴스에 현장 실습생들 사고 소식을 듣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히 첫번째 장편 영화 <휴가>를 통해 만난 현장 실습 하다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두번째 장편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김성국 배우는 <3학년 2학기>는 실습생들의 성장과정을 많이 보여주는 영화라고 한다.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행동하는 부분이 재미있는 관점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유이하 배우는 결말을 다 알면서도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보며 "한 번만" "한 번만" 하며 응원하게 되는데, 자신과 같은 지점에서 같은 생각을 하며 자신이 했던 말들을 생각해 달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란희 감독은 현장 실습생 사고 소식은 보통 뉴스로 접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실습을 같이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계 고등학생들에 대해 글자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학생들로 생각해 달라고 전했다.
[상영시간표]
<홍이>
10/6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7 10: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9 10:0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파동>
10/6 12: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7 09: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0/8 15: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3학년 2학기>
10/6 16: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10/8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10/9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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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
미국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의 범행 과정과 검거, 재판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평범한 사람들 속에 숨어서 연쇄 살인을 저지른 테드 번디의 범죄와 검거 후 재판 그리고 사형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잘난 사람이고 싶지만, 타인을 이해하거나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한 테드 번디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물이었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화풀이로 살인을 택한다.
수십 명의 사람을 살해했으면서 본인의 죽음 앞에선 두려움을 느끼는 열등감 덩어리 인격장애 테드 번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 테드 번디 테이프는 살인을 수사한 형사, 피해자, 테드 번디의 가족 등 범죄와 마주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