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2025-08-28 15:18:39
에둘러 말하는 것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리뷰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이 영화는 정호라는 말 없는 남자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작품에 풀칠을 하는 그의 모습과 애인 수진, 그를 짝사랑하는 인주, 그의 전 애인 유정의 애로사항이 교차된다.
바람을 피고 있는 수진과 마음을 숨기는 인주, 정호의 자살시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유정은 모두 조심스럽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145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에둘러 드러나는 이들의 사연이 흥미진진하다.
'검은 개'라는 마지막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검은 개는 '마지막'을 은유하는 듯하다.
자신이 시한부인줄 알았던 인주와 연인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앓는 유정, 그리고 관계의 끝을 목도하는 수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개'와 함께한다.
죽음을 예감하자 계획하게 된 고백, 전 연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 바람으로 인해 모든 관계를 끝내는 상황들... 이렇듯 마지막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행동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깨짐으로 퍼져나가듯.
하나의 조각이 깨짐으로써 멀리 퍼져나가듯.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일상의 실수, 말장난 등 사소한 일들이 미치는 파장을 목격한다.
그것이 뚜렷한 결말을 맺지 않을지라도 은근하게 번지는 후회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
/ 8/20(수) 오후 7시 30분 시사회 메가박스 코엑스
* 위 기사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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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티아스와 막심 / Matthias et Maxime
< 마티아스와 맥심 / Matthias et Maxime >
작년부터
자비에돌란 인스타에 대체 언제 한국에서 개봉하냐는
애정어린 댓글을 보냈을 정도로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
저번에 명동씨네에서 하는 티켓 못구하고 마음속으로 광광울다가
엊그제 우연히 들어간 씨지비앱에서 3자리 남은 거 발견하고 바로 예매함.
(그리고 바로 예리한테 알려줘서 예리도 예매 성공..!)
그런데 A15여서 걍 다음에 봐야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제 새벽에 다시 들어가보니
딱 내가 들어간 타이밍에 어떤사람이 F열3번 자리 취소해서
나도 A취소하고 바로 예매함!
그리고 다행히 예리도 E열로 재예매해서 둘다 편한 자리에서 즐겁게 관람했다.
참고로, 아직 정식 개봉 안함.
부국제에서 잠깐 개봉하고, 12월달인가에 엣나인에서 하루 개봉하고,
요즘 다시 일주일에 한두타임씩 보여주고 있음. (용산,명동에서)
그래서 자리 구하기 진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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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친구집에 놀러간 막심.
거기서 친구 여동생이 영화에 출연할 사람이 펑크냈다며
오빠들한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한다.
흔쾌히 수락한 막심.
그리고 다른 오빠들은 회피하는 가운데
내기에서 진 맷이 출연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촬영에 임하기로 한 가운데
동생에게 두 사람이 키스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맷과 막심 모두 머뭇거리다 결국 촬영하게 된다.
그 이후로, 맷과 막심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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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낌점 /
'단지 세상의 끝' 빼고 자비에돌란의 영화를 다 본
자타공인 자비에돌란빠인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그가 여태껏 만들어왔던 영화들과
그 영화의 재질(?)느낌(?) 이 달랐던 것 같다.
카메라를 다른걸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돈이 들어간게 티가 난달까.
그리고,
몇몇 부분에서도 이전 영화들에서는 보지 못한 신기한 점을 발견하였다.
1. 자비에돌란은 자신이 감독하고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늘 게이 캐릭터로 설정하고
그걸 엄청나게 드러내는데,
이 영화에서는 솔직히 그가 게이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나타낸다.
친구들이 흘러가는 말들로 '호모'라는 단어를 그에게 쓰긴하는데
이게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엔 부족한 것 같다.
2. 자비에돌란이 이성과 키스하는 씬은 정말.. 새로웠다.
난 그가 이성과 키스하는 씬을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키스도 하고 심지어 그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까지한다!
보기에는 진심의 키스라기 보다 사회 혹은 친구들의 시선?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 같긴한데, 그래도 신선했다.
이러한 점들이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실망한 부분들도 있었다.
1.
그의 예전 작들과 다르게 감정선이 크게 들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감정에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맷과 막심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의 이전작인 탐엣더팜이나 마미 등을 보았을 땐
주인공들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게 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분명 주인공이 울고있는데 나는 슬프지가 않다.
2.
너무 불친절한 상황설명?
분명 말하고 싶은 바는 많은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던 것 같다.
설명충을 바라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등장하는 인물들과 주인공 사이의
관계와 상황 정도는 친절하게 설명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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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족한 부분들이 있긴해도
나름 재밌는 영화였다.
내가 본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본 듯.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p.s. 가장 지루했던 영화는 '로렌스 애니웨이'..또 보지는 못할 것 같다.)
+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잘생겨서 눈호강 장난아님..
친구 여동생 진짜 너무 예쁨..
그리고 막심 친구들도 다 잘생김..
막심(자비에돌란)얼굴 보고 놀라고
다음씬에 나오는 맷 얼굴보고 감탄하고
장발친구(이름이 기억안나네)보고 설레고
존잘대잔치~~!
+
중간에 맷이 회사일 끝나고
식당에서 혼밥하는데
뚝불(뚝배기불고기)먹고 있는거 보고
진짜 육성으로 뿜을 뻔했다
처음에는 중식당인가 했는데
식당에 불고기라고 적혀있는거 보고 깨달음
애틋한 우정일까, 애매한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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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영화 '킬링 로맨스'
킬링 로맨스
23.04.14 개봉
코미디, 15세 관람가
한국, 107분
감독: 이원석
출연: 이하늬, 공명, 이선균 등
'킬링 로맨스'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거였어요
부다페스트 호텔 세트장에서 꾸리는 C급 코미디
'킬링 로맨스'는 옛날 공효진, 공유 님이 하시던 쓱 광고 ㅋㅋ
에 나올 것 같은 비비드한 컬러의 세트장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외국인이 영어 동화책 읽어주듯 나레이션이 늘 함께해서
더욱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 싶습니다
근데 요건 색다른 구성의 시도라 굉장히 좋았어요
나름 고퀄리티인 척하는 영화가 되기도 했고요 ㅋㅋㅋ
다만 스토리가......
아니 스토리랄 게 없다는 게 킬링 로맨스의 최대 단점입니다
간간이 웃기 좋지만 딴짓하다 봐도 이해가 될 정도로
에피소드랄 게 없고 그냥 웃기기 위해 만든 영화 같아요
약간 가문의 영광 같은 느낌이려나??
C급 코미디라고 한 이유도 그거 때문이었습니다
B급은 일단... 내용은 있지만 저질스럽게 웃길 때
B급 코미디라고 표현하거든요 저는
근데 '킬링 로맨스'는... 내용이 없이 웃기기만 하니까요
이상한 푹쉭팍... 어쩌고 중국어 따라 하면서 웃기고
뮤지컬 영화기 때문에 중간중간 배우들이 노래를 하는데
구석에 몰린 여래가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하니까
범우가 "누나 왜 갑자기 노래를..." 이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또 웃겨서 자존심 상하는,,, 그런,,,
B~C급 코미디는 별로였던 점을 지적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아쉬웠던 점 몇 개를 풀어 보자면요
일단 범우의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범우는 명문대 출신 집안의 유일한 4수생인데요
딱... 그 설정까지만 말해 줍니다
이후 여래를 돕기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될 뿐
범우 자체의 성장이나 이후의 삶은 안 보여 주더라고요
집안에서 그렇게 개무시를 당한다고 설정해 놓고
영화 내내 여래만 도와주다가 끝나다니......
게다가 여래를 도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절정 부분에선
개뜬금없는 단역들이 합심해서 같이 도와주러 가요
진심 ????? 이 상태였음
두 번째로 아쉬웠던 건 절정 부분이었는데요
여래를 도와주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뮤지컬 영화인 걸 갑자기 거기서 실감함
노래로 싸우거든요 누가누가더잘부르나신나게춤추나
이거 걍 연휴 시즌에 개봉했어야 해요
가족끼리 볼 거 없을 때 보기 좋은 병맛 영화거든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30 퍼센트라도 살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몸을 던지는 연기 아니었을까 싶네요
특히나 이선균 배우님께서...
몸을 불사지르는 코믹 연기를 보여 주셔서
그 덕에 간간이라도 웃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토리: 1/5점
*연출: 1/5점
*영상미: 4/5점
*OST: 4/5점
*연기: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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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미래를 부정당한 퀴어, 가능성을 벼려내다
홈그라운드/Home Ground
권아람/한국/2022/78min/‘지금 여기, 한국영화’ 세션
1970년대 명동 ‘샤넬’은 바지씨, 치마씨들의 은밀한 아지트였다. 1996년, 레즈비언 청년들은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를 직접 오픈한다. 2000년대 초, 커뮤니티를 찾던 10대 퀴어들은 신촌의 작은 공원에 모여든다. 명우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레스보스를 지키고 있지만, 코로나 위기로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진다. 명우는 레스보스를 지킬 수 있을까?(서울국제여성영화제)
퀴어 이론가 리 에델만은 자신의 책 《미래 없음No Future》에서 퀴어의 ‘미래 없음’을 급진 정치학의 토대로 정초했다. 이성애 규범과 성별 이분법이 공고한 사회는 퀴어의 미래가 ‘없다’고 가정하거나, 존재하더라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공포와 불안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에델만은 퀴어를 향한 비난을 전유한다. 생물학적 재생산의 ‘불능’ 혹은 ‘대문자 아이’로 상징되는 미래(‘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와 같은 수사)에 기반한 비난을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퀴어 정치의 상상력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지구에게는 곧 ‘미래 없음’을 의미하는 시대에 에델만이 제안한 ‘미래 없음’은 퀴어 정치학에 한정되지 않는 복합적인 정치를 펼쳐낼 장이 될 가능성도 품는다. 매력적인 개념이다.
다만 이론적 매혹과 현실을 살아가는 퀴어 삶의 관계에는 조금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퀴어의 ‘미래 없음’에 기반해 지금, 여기를 바꿔낼 정치적 상상력을 벼려내는 일과 고군분투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퀴어의 삶을 등치시키면, 현실의 삶이 이론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그 복잡한 맥락이 소거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퀴어의 삶에 주목하여 ‘미래 없음’과 동시에 ‘다른 미래’ 역시 말해야 한다.
〈홈그라운드〉는 이를 위한 좋은 참조점이 되어준다. 곧 일흔을 앞둔 명우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를 운영하고 있다. 1996년 처음 생긴 레스보스는 레즈비언 청소년들의 모임 장소였던 일명 ‘신공’(신촌공원) 근처에서 운영되다 지금은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는 레스보스의 이야기와 명우의 이야기를 교차로 엮어낸다. 레즈비언이 ‘부치’, ‘펨’이란 말 대신 ‘바지씨’, ‘치마씨’로 불리던 시절부터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었던 명우와 그런 명우가 다른 레즈비언들이 편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운영해온 레스보스. 이 둘에게는 레즈비언들의 역사가 켜켜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들이 쌓아온 역사는 퀴어 미래를 쌓아가기 위한 주춧돌이 되어준다. 아무도 퀴어로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 사회에서, 상상할 만한 미래가 필요한 다음 세대 퀴어에게 ‘네게도 미래가 가능하다’는 위안을 건네는 것이다.
레즈비언들이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쌓아온 역사와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미래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계보다. 공동체, 장소, 기억, 미래 등 정체성의 토대가 될 만한 퀴어 선배들이 꾸려온 정보로부터 차단당한 퀴어들은 고립되는 일이 잦다.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가진 자가 도처에 있는데도 혼자라고 느끼며 외로워하는 것이다. 요컨대 퀴어들은 집단적 삶의 연속성, 즉 계보를 갖지 못한 채 파편화된 존재로 적대적인 세상에 노출된 상태다. 그러나 명우와 레스보스가 레즈비언의 역사일 수 있다면, 레즈비언에게도 계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에는 레스보스를 오가는 손님들이자 명우의 후배 레즈비언들의 인터뷰가 다수 나온다. 이들의 이야기가 모여 계보의 사전적 뜻인 ‘계승되어 온 연속성’이 구체화된다.
물론 명우와 레스보스가 품은 레즈비언 기억과 계보의 가능성을 낭만화할 수만은 없다. 명우는 여전히 이성애자 친구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증명해야만 하고, 노인의 돌봄을 가족에 위임하는 사회에서 노후를 걱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머리만 길러도 집에서 사업자금을 대준다고 했어.” 명우의 오랜 친구이자 ‘형님’인 꼭지의 말이다. 물론 꼭지는 그 제안을 거부하고 평생을 짧은 머리 여자로 살았다. 명우와 꼭지뿐 아니라 많은 퀴어가 공적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치열하게 자립을 모색한다. 그리고 레스보스와 같은 퀴어 공간은 자립의 과정이 버거운 퀴어들이 서로에게 위로와 위안을 건네는 장소로 기능해왔다.
명우는 젊은 퀴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여전히 집회에 참석하고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가졌던 편견을 되짚어보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미래 없음’의 이론적 가능성을 모색하면서도 미래를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명우와 레스보스, 그리고 그곳을 거쳐 간 많은 퀴어가 만들어온 궤적이 분명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리라는 데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도래할 ‘다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척박한 땅에서 일궈온 기억, 계보, 공동체라는 자산으로부터 시작될 미래를 기다려본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영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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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유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족
가족은 한 개인의 성장과 안착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에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이고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준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이겨 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는 부쩍 성장해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 지점으로 가기까지는 많은 인내심이 따르고 한 순간 한 순간 이겨내는 것이 어려운 시기도 있다. 그 어려움을 결국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버팀목이 되어 한 걸음씩 나아가면 그래도 그 고난함이 견딜만하다.
하지만 어려움이 심각해지면 앞으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 어두운 시기를 끝까지 참아내지 못하고 무너진 가족의 일원이 있다면 그 일원은 가족의 분위기를 바꾼다. 술이나 도박에 중독되어 가정에 소홀하거나 자신의 희망을 다른 이성에게 찾아 여러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책임을 자녀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여 뒤쳐진 그 가족의 일원에게 손을 뻗어 같이 가려는 노력은 꽤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암흑 같은 시기에 약간은 원망스러울 그 가족족의 손을 잡으며 걸어가다 보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미국 백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의 이야기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특히 미국의 백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주인공 JD(가브리엘 바소)의 유년기 시절과 현재를 담는다. 현재 그는 예일대 법대생이고 중요한 인턴십 면접을 앞두고 있다. 그는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의 연락을 받게 되고, 엄마 베브(에이미 아담스)가 헤로인을 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가는 과정과 함께 JD의 청소년 시기의 이야기들이 플래쉬백으로 교차로 보인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유년기 시절 엄마 베브의 모습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혼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고, 새로운 이성을 만나지만 금방 헤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렇게 감정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면서 가끔 아이들에게도 심한 폭언이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의도치 않게 자신의 몸을 자해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기도 한다. 엄마와 아주 잘 지내면서 따뜻한 모습을 보던 JD는 갑자기 급격히 감정이 변하는 엄마를 볼 때 많이 흔들린다. 그렇게 흔들리는 엄마를 보는 JD의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어간다.
영화에는 엄마와 누나 이외에도 할머니(글렌 클로즈)도 중요한 가족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공장 노동자였던 할아버지(보 홉킨스) 옆에서 가족을 챙기며 살아왔던 그에게 자신의 딸인 베브가 그렇게 삶의 끈을 놓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 손주 JD를 보면서 그것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약함을 잠시 감추고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마초를 피워대는 JD를 다시 잡아 자신의 길로 돌아가게 만든다.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고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JD
주인공의 현재 모습을 보면 굉장한 우등생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JD가 성장했던 마을은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지냈던 그 지역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은 JD가 면접 전 참여했던 변호사들 간의 만찬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대부분은 그 마을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촌구석이나 부끄러운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JD는 그 인식에 굉장한 불만을 토로하며 반론을 제기한다. 그에게는 자신이 자라고 자신을 만들었던 그 마을을 하찮게 생각하는 그 발언들이 부당하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JD에게 가족은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굉장히 불편한 장면들이 있다. 특히 엄마 베브가 JD에게 무차별한 감정적 폭발을 쏟아내고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던 JD와 누나 린지가 다행히 문제없이 자라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 어쩌면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자리를 할머니가 대신 채웠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길로 빠지려고 하는 순간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할머니는 자신의 딸 베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을 때, 손주들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적어도 할머니는 JD와 린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두 손주가 거의 성장할 때까지 그들을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특히 JD를 할머니 본인 집으로 데려와 생활할 때, 나쁜 길로 나아가던 JD가 할머니의 노동과 고생하는 모습을 경험하고는 올바른 길로 변화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JD가 시험에서 1등을 했을 때, 할머니의 표정에서 보이는 기쁨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JD는 가족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JD는 과거부터 약에 중독된 엄마를 보아왔다. 보통의 경우라면 성장한 후 다시 보기 싫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엄마가 다시 헤로인에 손을 댔다는 말을 듣고는 고향으로 곧장 돌아온다. 그의 할머니가 그랬듯이 자신에게 남은 가족인 누나와 엄마의 손을 놓지 않는다. 영화 말미, 한 모텔의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가 JD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손을 내밀 때, JD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잡는다. 그리고 가만히 손을 잡으며 이야기한다. 면접 때문에 잠시 학교로 가야 하지만 다시 돌아올 거라고,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 가족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비록 가정의 환경 자체가 불우하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가는 걸음을 포기해버리면 그건 엄마 베브가 선택한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아주 훌륭한 삶은 아닐지라도 계속 먹고 마시며 살아갈 힘 정도는 얻어지지 않을까. 그런 긍정적인 인식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베스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JD가 실제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약에 중독되었던 엄마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할머니 역을 맡아 실제 외모까지 비슷하게 분장한 글렌 클로즈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약해진 몸에도 불구하고 강인함을 보여주며 손주들을 끝까지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은 글렌 클로즈의 연기와 목소리를 만나 한층 돋보인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트럼프 지지층으로 대표되는 백인 노동자층 가정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정치적인 영화이고 아주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인 색깔을 걷어내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그렇게 불편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다. 비록 아주 좋은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JD를 비롯한 가족의 모습과 그들의 선택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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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자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개봉전 시사에서 영화 관람 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살면서 가까운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다. 나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어 전달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감정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시킨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자식을 이해하려 애쓴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가 무엇을 원해서 우는지 이해하려 애쓰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내뱉는 말에 따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추측한다. 아이가 크면 더 이해하기가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이가 10대가 되면서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서로 대화는 적어지고 그에 따라 서로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간다. 부모는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어렵고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자식을 이해하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영화 <더 썬>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주인공 피터(휴 잭맨)는 전처인 케이트(로라 던)와 이혼 후 베스(바네사 커비)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케이트가 피터의 집에 찾아와 두 사람의 아들인 니콜라스(젠 맥그라스)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엄마인 케이트와 살고 있는 니콜라스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케이트는 자신이 니콜라스를 바로잡으려 애쓰다 잘 되지 않아 전남편인 피터를 찾아간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전아내를 보는 피터의 모습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마치 착한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초반에 등장한 피터와 케이트의 모습을 보면 케이트의 육아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고, 피터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피터는 자신의 집으로 아들 니콜라스를 데려와 생활하게 한다. 새로운 학교에 등록도 해주고 최선을 다해 새로운 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현재 아내인 베스를 설득하기도 한다.
피터가 아들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아버지로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모든 면에서 피터는 아들 니콜라스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 준다. 그리고 니콜라스도 그런 아버지의 노력에 따라 학교도 다시 다니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모습 속에서 니콜라스는 왠지 불안해 보인다. 그가 지금 정말 안정이 된 건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지를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이야기 내내 한편으로는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찝찝함을 준다. 그러니까 아버지 피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무언가 해결된다는 느낌을 주지만, 니콜라스가 혼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불안해 보이는 아들 옆 좋은 아버지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 중 가장 부정적인 일은 바로 피터와 케이트의 이혼일 것이다. 부모의 이혼을 직접적으로 겪은 아들 니콜라스도 그 과정에서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스는 아버지가 없을 때, 아버지와 재혼한 베스에게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 가까운 베스에겐 그런 니콜라스의 모습에서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니콜라스는 아버지 피터 앞에서는 안정적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타인인 베스 앞에서는 조금씩 진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부모 피터와 케이트가 진짜 니콜라스를 이해하고 있는지 영화 내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는 아버지 피터를 중심인물로 내세우면서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위험함을 훌륭하게 화면에 담고 있다. 실제로 처음 케이트가 등장했을 때 그는 부모 노릇을 잘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아들의 입장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보호자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피터의 모습은 점점 케이트와 비슷해진다. 피터가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피터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피터는 그 자신도 권위적이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아들 니콜라스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자신이 맞는다고 생각한 해결방법을 니콜라스에게 강요할 뿐이다. 니콜라스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 근원적인 상처는 하나도 치유되지 못한다.
피터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아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 애쓴다. 제 3자인 관객이 보기에 그는 다른 어떤 부모보다 좋은 아버지다. 단지 그가 전처와 사이가 멀어지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과거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한순간의 상처를 좋은 아버지가, 좋은 어머니가 모두 치유해 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초반 니콜라스가 피터의 집으로 가게 되는 과정에서 영화는 케이트와 니콜라스, 피터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통해 교차로 보여준다. 세 사람의 얼굴에 담긴 고민은 하나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의 도착점은 모두 다르다. 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생각은 영화 내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영화 속 피터는 재혼 한 이후 갓 태어난 아들이 하나 더 있다. 그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이지만 니콜라스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두 번째 아들과는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 너무나 좋은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결과는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비극
우리는 니콜라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부모님 피터와 케이트는 니콜라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에 대한 표현도 하지만 니콜라스는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영화를 본 누군가는 그런 예측불가능한 니콜라스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부모의 사랑과 관심보다는 전문적인 치료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연출한 직전작인 <더 파더>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 <더 썬>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자식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사랑만으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치유될 수 있는지를 긴장감 있게 담고 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훌륭하다. 피터 역을 맡은 휴 잭맨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만 의도하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가면서 아들을 이해할 기회를 놓쳐 무너지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이미 무너진 어머니 케이트를 연기한 로라 던의 연기도 훌륭하고, 어떤 심리 상태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니콜라스 역의 젠 맥그라스의 연기가 특히 눈에 띈다.
영화 <더 썬>은 자식이 가진 트라우마를 부모가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부모가 그런 자식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진짜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 아이를 위한 좋은 육아가 정말 아이의 심리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던져준다는 측면에서 무척 훌륭하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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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정의하는 시선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친밀한 관계는 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변화한다. 서로의 집에서 서로의 가족과 함께할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던 것들이 학교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된다. 매일같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이들의 두터운 관계는 타인의 시선이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친구치곤 너무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첫 등교일에 자기소개 시간부터 서로에게 기대며 다정한 둘을 바라보는 같은 반 아이 시선부터 시작해 둘이 사귀는 사이냐는 다른 아이의 직접적 질문이나 보통의 남자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한다며 놀리고 괴롭히는 일부 아이들은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레오와 레미에게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계기가 되는 주된 장소가 '학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학교는 가족을 제외한 타인을 사실상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며, 사회화 과정의 본격적 시작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사회의, 세상의 폭력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 두려운 곳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시선이라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쉽게 정의하고 사고의 범주 안에 있지 못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떠한 시선이 말이다. 레오와 레미를 자신들과 다르게 본 아이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그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그중 한 사람, 레오가 레미를 스스로 멀리하게 만들었다. 같은 상황에 놓인 두 소년의 태도는 달랐다. 레오는 그러지 않길 택했고, 레미는 놀림받는 것보다도 자신을 배척하는 레오의 행동을 견디지 못한다.
<클로즈>는 트랜스젠더 발레리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걸>에 이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감독 자신이 밝혔듯 이번 영화는 자신의 유년시절 자전적 경험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전작에서 감독은 영화의 초점을 온전히 주인공 '라라'에게 맞춰 라라의 내면 변화를 세밀하게 따라갔다. 신체와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운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형식의 연출을 취하며 관객이 여성성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는 라라에게 간접적으로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인물을 그려내는 감독의 분명하고도 명확한 시선은 공감의 깊이를 더해 많은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감독은 <걸> 이후 남성성과 관련된 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지금의 어린 소년들의 우정이 사회의 요구와 압박에 의해 파괴되는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의 경우 전작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반면,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정치적인 영화라 칭하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레오와 레미가 함께 전쟁놀이를 하며 놀던 요새는 둘을 지켜내지 못한다. 서로가 전부여도 다라고 할 만큼의 평화롭고 친밀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초반부가 지나가고, 다른 아이의 "너희 둘이 사귀어?"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둘은 서로의 관계를 의식하게 된다. 둘이 같은 침대에서 자다가 몸장난으로 시작하던 것이 몸싸움으로 번져 서로 돌아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장면은 묘하게 생긴 둘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정의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의 사이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간다.
두 사람의 다툼은 한 번 더 등장하는데 이번엔 돌이킬 수 없다. 다투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회복되던 관계는 레오의 행동 하나에 결국 어그러지고야 만다. 먼저 간 레오를 기다리다가 나중에야 학교에 도착한 레미는 레오에게 화가 나 그를 마구 때리는데 앞선 다툼과 마찬가지로 핸드헬드로 비교적 거칠게 찍었다. 울분에 차 서럽게 울며 주먹을 휘두르는 레미의 얼굴만큼 현재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레미의 행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한 레오의 얼굴이 들어온다. 당연히, 레오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미가 보이지 않아 신경 쓰이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결국 레오는 친구의 상실을 맞게 된다.
레미는 영화의 일반적인 구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되는데, 이 점이 처음엔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두 인물이 주인공인줄 알고 러닝타임의 반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한 인물이 사라지다니. 하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사회적 원인과 갑작스럽게 친구의 상실을 맞이하게 된 레오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바로 그 과정에 있다. 꽃밭에서 함께 활짝 웃으며 달리던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이 웃을 수 없다. 이젠 레오 만이 그곳에 남아있다. 레오 가족의 생업으로 보이는 화훼농사 즉, 꽃은 레오와 레미 두 사람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꽃의 수확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레오와 레미처럼 사회의 시선과 기대에 억눌리게 되는 많은 어린 소년들을 은유하는 것 같다.
레오는 처음엔 크게 티 내지 않지만 레미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레미에 관해 좋게 얘기하는 반 아이들의 말에도 화가 난다. 레미를 보던 레오의 시선은 이제 레미의 엄마에게로 향한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레미가 그렇게 됐다는 생각에. 하지만 레오는 용기가 나지 않아 주변을 서성일뿐이다. 학년이 다 끝날 때가 되어서야 용기를 냈다. 자기 자신 만이 멀어졌던 관계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레오는 그렇게 레미의 엄마에게 숨겼던 사실을 말하며 레미와의 관계를 닫는다. 어쩌면 그럼으로써 레미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와의 예상할 수 없던 갑작스러운 이별을 레오는 그렇게 스스로 마무리짓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레오의 시선으로 끝을 내며 모든 과정을 본 우리에게 당신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봤는지 묻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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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잘리카투> 티저 예고편
폭주하는 물소, 광기 어린 인간들, 진정 누가 짐승인가?
푸줏간(도축장)에서 도망친 물소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닌다. 마을 남자들은 폭주하는 물소를 잡기 위해 나서고 이웃 마을 남자들까지 몰려들자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진다. 평화롭던 마을은 물소를 제압하려는 남자들로 인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버리고, 인간과 짐승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물소 사냥은 점차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광기로 변해간다.
※ 잘리카투(또는 살리카투) JALLIKATTU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수확축제인 퐁갈에서 진행하는 전통있는 집단 경기다. 황소를 남자들 무리 속에 풀어놓으면 참가자들은 황소의 등에 올라타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는데, 이 과정에서 살벌한 장관이 펼쳐진다.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의 <잘리카투>는 잘리카투 경기를 묘사하는 영화는 아니다. 확실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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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주를 가르는 절규 피할 수 없는 그것과의 사투 [맨 인 더 다크] 페데 알바레즈 감독 [에이리언] 리들리 스콧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