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별2023-02-21 13:06:51
결국 가질 수 없는 공허함
영화 <노 엔드>
결국 가질 수 없는 공허함
영화 <노 엔드>
감독] 나데르 사에이바르
출연] Vahid MOBASSERI, Shahin KAZEM NAJAD, Fahime JAHANI, Narjes DELARAM
시놉시스] 아야즈는 자기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인 평범한 남편이다. 처남은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이란을 떠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처남이 돌아오면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염려에 아야즈는 작은 거짓말을 한다. 비밀경찰이 집에 와서 수색을 하고 갔다는 거짓말. 비밀경찰이 아직 감시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처남이 이란으로 돌아오는 걸 포기할 거라 기대한 것이다. 문제는 진짜 비밀경찰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아야즈의 거짓말은 진짜 비밀경찰이 처남을 추적하는 빌미가 되고, 아야즈는 이웃과 가족을 고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 노 엔드. 노 엔드는 이란의 한 가정을 보여주면서 결국 됨루림되는 가난이라는 사회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연기를 처음하는 사람이라니
영화 노 엔드는 아야즈의 심리를 쫓는다. 아야즈의 기쁨, 불안, 해방감, 공포, 절망감 등 행복했던 아야즈의 모습부터 형님이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은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집을 사수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애를 쓰기 시작한다. 비밀경찰에 끌려와 모든 일을 자백하면서 두려움을 떨며 바지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이제 고백을 다 했으니 비밀경찰에서 해방되는 줄 알고 행복해하던 그의 모습, 하지만 다시 찾아온 경찰에 절망감을 느끼는 그 감정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표현을 하고 있어서 이란의 유명한 중년배우인 줄 알았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자신에게 남은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공허함을 담아내는 그 눈빛과 메마른 목소리까지. 이런 감정들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이 배우는 정말 이란에서 인기가 많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독과의 gv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바로 아야즈 역을 맡았던 바히드 모바세리가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었다. 그 전까지는 평범하네 생업을 하던 시민이었다가 나데르 사에이바르 감독에게 발탁되어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저 끼를 어떻게 감추고 살았을까? 얼굴에 그렇게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처음보는 카메라 앞에서 긴장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과장하거나 소극적인 부분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서 원석 같은 배우를 발견한 감독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고, 첫 연기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야즈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바히드 모바세리에게 더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결국 되물림되다
영화 노 엔드는 한 집안의 가장이 목을 메며 자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버지가 목을 메 자살한 것을 본 어린 아야즈는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을 보호해 줄 울타리, 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버지는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집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하고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자살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아야즈는 자라면서 부잣집 딸과 결혼을 해서 꼭 자신의 집이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절대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아내가 집이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사실 그 집은 오빠의 것이고, 오빠가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자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자신의 과오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아야즈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이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목을 메달고 자살하고 만다.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삶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란 사회가 계층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다른 출발선상에 있는 사람들은 따라잡을 수 없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과연 아야즈가 꾼 꿈은 헛된 꿈이었을까? 집이 없이 태어난 사람들은 집을 갖는 것을 꿈꾸면 안되는 것일까? 각자 꿈꿀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영화 노 엔드는 새로운 배우의 발견과 함께 사회적 메시지 역시 좋았던 작품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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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8월 19일 개봉예정 영화 팜스프링스 시사회 관람 리뷰입니다. 100만번째 하루를 반복하고있는 남자의 사연은? 믿고 보는 타임루프물!! 솔직한 감상평과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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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일기》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담긴 러브 다이어리다.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두 사람에게 건네진 다이어리. 드라마처럼 짜여진 이벤트지만, 그 안의 대사는 두 사람의 몫이다. 다이어리에 적힌 대로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며 점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두 사람. 정해진 미래가 있는데도, 둘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20년 전 방영된 전설의 연애 리얼리티 시리즈가 다시 돌아온다. MC: 다이고 / 스튜디오 패널: 사토 타이키(EXILE/EXILE TRIBE의 FANTASTICS 멤버), 사야(LALANDE), 스미 레이나, 나쓰나 테마송: SEKAI NO OWARI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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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시절, 언제나 일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난 스탠드업 코미디언.
이렇게 완벽할 수가.
똑똑하고 다정하고 직업 좋고, 부족한 게 없네?
너무 괜찮아서 믿지 못할 지경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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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태닝시 음료수를 갖고 가지 말 것, 통나무를 가득 적재한 트럭 뒤로는 차를 몰지 말 것 한 동안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금기가 되었던 행동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만약 어떠한 장면들이 파편처럼 머리를 스친다면 그는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살인마도 듣도 보도 못한 크리쳐도 아닌 주인공을 뒤쫓는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라는 주 내용을 필두로 시리즈화 되었던 영화가 14년만에 신작을 공개하게 되었다. 시리즈에서는 6편을 차지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은 오랜 공백을 거쳐 다시 리부트 된만큼 <스크림>에 이어 전세계 호래 팬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 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관람에 앞서 시리즈를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 되어준다. 다만 이 한 가지는 기억 하는 것이 좋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뒤를 쫓아갈 것이다.
유명 공포영화에는 대체로 법칙이 존재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방심하지 말 것, 낯선 사람에게 오는 전화는 받지 말 것, 친구를 의심할 것 등 시리즈를 거치며 완성된 공식들은 본편을 기준으로 세계관을 점차 확장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도 단연코 그 중 하나인데, 이 중 가장 명심해야 되는 것은 '예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음. 만약 피했을 경우 죽음은 어떻게든 당신을 쫓아간다.' 이다. 신박하고도 끔찍한 죽음 쇼로도 잘알려진 해당 시리즈는 갑작스럽게 보게 된 예지로 대형 사고를 면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죽음을 어떻게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1편에서는 여객기 폭발 사건에서 벗어난 주인공 일행을 다루며 2편에서는 대규모 차량 추돌 사고를, 3편에서는 롤러코스터 운행 사고를 다루고 4편과 5편에서는 각각 레이싱장 사고와 다리 붕괴 사고를 보인다. 대규모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은 1편에서 다뤄진 알렉스의 사고를 떠올리며 저 나름대로 죽음을 피해보고자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죽음이 정한 법칙을 피하지 못한 채 각자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는다. 슬래셔 물 특유의 개연성보다는 그런 개별의 죽음에서 오는 창의성과 잔인함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그리는 것이 해당 시리즈의 특징이나 이번 공개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에서는 전체 시리즈를 통과할만한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기에 이른다.
그 메세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시초가 되어준 <데스티네이션>에 경우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외로도 죽음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운 좋게 피했다 한들 죽음은 그 순서를 착실히 지켜나가며 그들을 도로 저승으로 인도하는데 이런 <데스티네이션>의 시리즈보단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스티네이션2>는 그 순서를 어겼을 시 건너 뛴 자는 일시적으로 도망칠 수 있으며 세상과 단절 될 경우 수명을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고, 한 번 심장이 멈춘 경우는 죽음으로 카운트 되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등 죽음에서 극단적으로 도망친 자들이 등장하게 되며 절대적이진 않으나 파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편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데스티네이션2>는 본편에서 죽음을 피하는 것에 성공했던 클레어가 재등장하며 본편과 좀 더 접점을 갖고 세계관을 확장시키려 한 편으로도 역시 알려져있다. 하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즉, 3편부터는 프렌차이즈화의 포문을 열며 직접적인 본편의 언급보다는 색다른 방식으로 예견을 하는 등 같은 법칙 아래 가장 인상 깊은 죽음들을 보여줬던 편으로 남게 된다. 사실 죽음과 이를 피해 생존하고자 하는 이들 간의 대결처럼 그려지는 것은 물론 다양한 죽음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다 보니 다소 메세지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슬래셔 물이 나타내고자 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그 어떤 작품보다 충실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또한 대형 사고로 그 포문을 여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나 이를 방지하거나 예방하고자 하는 요소가 아닌 초자연적인 묘사를 통해 죽음이 확정된 이들을 무조건 죽이는 식의 장면이 다수 그려지기에 의미보다는 장르성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즉 억지로 죽여주는 묘사가 등장함에 따라 교차 편집이나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는 위험 요소보다는 더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등 억지스러운 부분이 관람 포인트가 됨으로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상당히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 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대형 사고에서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한 여성의 가족을 중심으로 그 세계관을 확장 시킨다. 늘 그랬듯 누군가에게 찾아온 예지 그렇게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하지만 이전 시리즈가 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구함으로써 그들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번 영화에서의 생존자 '아이리스'는 해당 사고의 피해자가 될 뻔 한 모든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즉 죽음이 찾아가야 할 가정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이것에서만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리즈가 늘 보여줬듯 왜 몇 일만에 모든 사람들이 정리 되지 않았을까. 즉 그 사이 아이를 낳거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 이들이 존재함으로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들에게까지 그 죽음이 바삐 찾아갔던 탓에 '아이리스'는 남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두 남매를 낳기에 이른다.
이 부분부터 리부트의 강점이 드러난다. 친구나 단순 지인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닌 '가족'이라는 관계의 형태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그 고리를 끊고자 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당위성을 만들어주고 긴장감을 깨알 같이 해소시켜줄 개그 요소도 등장시키는데 적합한 요소로 사용된다. 특히 긴장감에 지친 관객들의 웃음 요소가 되어준 배다른 자식 설정은 특정 인물이 죽음의 고리에는 포함되지 않는 인물이기에 안심을 유도했다가 다름 아닌 '죽음을 엿먹이려 하면 좋지 못한 결과가 따른다.' 라는 히든 법치을 해금함으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해당 시리즈 중 가장 획기적인 죽음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에릭'의 죽음은 한 번 분위기를 조성했던 시퀀스로 인해 임팩트를 주기도 했다. 또한 해당 편은 메인으로 삼는 참사는 물론 마지막 남매를 덮치는 죽음의 요소로 다름 아닌 작은 동전을 사용하는데, 이는 영화 내에서 작은 요소라도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일종의 나비효과를 암시함과 동시에 이토록 작은 동전이라도 누군가의 끔찍한 최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전편들과의 연결점도 만들어내며 수미상관을 장식한다. 무엇보다도 이 연결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본편의 장의사 '윌리엄 블러드워스'로 꾸준히 시리즈에 등장하며 마스코트 역할을 했던 이가 5편에 이어 그 정체의 비밀을 벗는 중요한 지점이 되기도 한다. 늘상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죽음의 법칙에 빠삭했던 것은 물론 늘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겼던 그가 다름 아닌 오래 전 '아이리스'가 구해주었던 꼬마였으며 그녀와의 교류를 통해 죽음의 패턴을 연구했던 사람임이 해당 편에서 밝혀지게 된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배우 토니 토드의 유작이기도 한 해당 영화를 통해 윌리엄은 25년동안 진행됐던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남긴채 그렇게 퇴장하게 된다. 너의 삶을 살아라. 죽음이 언젠가 당신을 쫓아올지라도.
죽음은 망토를 비롯한 그 어떤 외피도 쓰지 않지만 확실하게 해당 시리즈에서 슬래셔 물 속 살인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주인공을 끊임없이 추격하며 끝내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다른 장르 영화들에 비해 그 누구보다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은 초반에 묘사되는 사고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체가 없는 죽음이 너무나도 공평하게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순서나 죽음을 속이는 등의 소재적 법칙을 제외하면 모두가 한 번쯤은 영화를 보며 두려워했을 우리의 방어 기제가 만들어낸 상상의 끔찍한 죽음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죽음이 극단적으로 가까운 이들을 조명하며 불안에 떨고 도망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들을 보인다. 덩달아 그들의 모습에 불안해질 필요 없다고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말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일 뿐이라고 말하며 윌리엄은 아주 멋지게 그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다. 초반 '스테파니'가 살아남은 '아이리스'와 대면했을 때 느꼈던 것은 단순 어색함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을 오랫동안 피하기 위해 도망치고 경계하는 삶은 과연 아이리스, 그녀의 삶이었을까? 혹시 죽음의 삶은 아니었을까. 아이리스는 다름 아닌 처음 보는 손녀에게 이것이 진짜임을 알리기 위해 도망을 포기한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스테파니를 위했지만 죽음의 삶을 물려준 셈이나 다름 없다. 피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보며 우리가 진짜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이다. 죽음이 주는 불안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그저 삶을 살아가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것이 곧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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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나도 이 청춘들일 수 있다
청춘의 방황은 보이지 않는 어떠한 벽을 깨부숨으로써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얼음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얼음이 될 수도 있다. 온도에 따른 변화다. 그렇지만 녹음으로써 '변태'한 물은 언제든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가능성을 철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부수어야 한다. 얼음이 녹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마침내 부숴야 깨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흔적인 조각들의 형체를 치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브레이킹 아이스>가 전하는 메시지다.
청춘은 꿈을 꾼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의 웅덩이를 둔다. 하지만 인생에 예측불가한 사건사고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 나나(주동우)는 어렸을 적 꿈꾸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부상이라는 한 순간의 일로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꿈의 웅덩이가 얼어붙는다. 한때 피겨 선수를 꿈꾸며 그 위를 유영했던 빙판이,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마음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다.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 꿈과의 이별은 사람을 영원히 그 안에 가둔다. 작별할 각오가 생겨나기 전까지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나나는 연길에서 여행 가이드로서 돈벌이를 하면서도 애써 마주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빙판을 갖고 살게 된다. 한때 함께하던 동료, 친구, 심지어는 가족과도 멀리한 채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일 것이다. 혹은 도피하지 못해 선택한 '무모함'일 것이다. 얼음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이다.
샤오(굴초소)는 연길에서 친척의 가게 일을 도우며 지낸다. 스스로 빙판 아래에 가두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나나의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얼어붙은 청춘의 시간에서 방황하는 것은 나나뿐만이 아니리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가게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샤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형태를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을 얼음으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샤오에게는, 자신이 물이 될 수 있음은 예상 불가능한 일이며 감히 꿈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 된다.
샤오는 나나에게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 가능성을 엿보지 못한다. 허나 그 일말의 희망을 나나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곁에서 나나의 얼음을 깨는 과정을 곁에서 지키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기에 나나에게 불러준 노래가 그 의의를 가진다. 나나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빙판 아래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서.
그런 점에서 샤오는 나나를 짝사랑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나에게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를 약속받지는 못한다. 짝사랑이라는 관계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어쩌면 샤오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려면 나나가 샤오와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샤오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오펑(류호연)은 그렇기에 이 삼각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나나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샤오보다 나나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위치를 취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오펑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나의 관계성이 연길에서의 목적이 아니다. 하오펑은 상하이에서 일을 하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하오펑이 연길이라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단군신화의 골지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인 단군신화는 짐슴이던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긴 시간동안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오펑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해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력은 보상으로서 하오펑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적을 잃어버린 과정만 남은 하오펑이 우울증을 앓고 삶을 포기하려는 자세를 가진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기에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선 그가 우연히 마주한 단군신화를 직접 마주하는, 그 상징인 곰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방황을 공간화한 것이 플롯의 주 배경이 되는 연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모호한,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존재가 '조선족'이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 서있지만 연길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장벽이 마침내 허물어진다. 그곳에서는 그 모호한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결혼식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혼재가 그 결혼식에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연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들어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 각자의 방황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민족의 모호성이 그 특유의 형태를 찾을 수 있게 된 곳이 연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과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이 등장하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나나는 집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다. 동양권에서 실내는 신발을 벗는 곳이다. 바깥과 안을 경계짓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정론이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신었던 신발을 집에서도 신고 있다는 것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나나가 애써 자신이 피겨 선수를 꿈꾸던 과거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 모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게 된다.
그 모호한 집의 경계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두 남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그런 나나의 방황을 지금 당장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 주인공은 서로의 방황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자체를 공감하고 있다. 서로를 어떠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되어야 할 것임도 사실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 속에서 찾아질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도 자연스레 형태를 갖춘다. '무모한' 서점에서의 놀이가 하오펑의 방황을 찾게 할 어떠한 계기가 되어주었고, 그 계기를 통한 '깨어짐'은 다른 인물들의 방황도 깨부술 수 있는 연쇄 작용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들이 서로를 계몽시켜야 할 목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저 함께 이 모호한 시기를 이겨낼 것이라는 일종의 동료로서 바라본 것의 효용이다.
그래서 한때 뭉쳐진 삼각관계는 곰을 마주한 순간 이후로 순식간에 해체된다. 그 곰은 하오펑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며, 곰이 나나의 아픔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것은 나나의 모호성까지 해결해낸다. 자기 자신의 방황을 깨어나야 할 것으로 인지한 나나는 마침내 샤오가 스스로의 짝사랑을 놓을 수 있게끔 하기에 이른다. 방황의 빙판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이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연길에서 마주한 그들 저마다의 빙판 아래 모습들을 마주하고 극복한다. 방황을 깨고 육지로 올라온다. 그렇게 <브레이킹 아이스>의 메시지가 결론에 다다른다. 비로소 방황의 빙판이 깨어질 때, 내면에 숨어있던 자아를 마주할 때 진정한 성장의 서사가 영화의 수면 위에 올라선다.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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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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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류준열·천우희, <머니게임> 크랭크업
ⓒ 롯데컬처웍스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물 <머니게임>이 지난 23일 크랭크업했다. <머니게임>은 네이버 웹툰
원작으로 한 8부작 시리즈로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배우가 출연한다.
지일주·박지연 <강남좀비>, 134개국 선판매
ⓒ 네이버 영화
배우 지일주, 박지연 주연의 영화 <강남좀비>가 북미를 비롯해 독일, 태국, 일본, 필리핀 등
총 134개국에 선판매되었다고 밝혔다. <강남좀비>는 이번 달 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메간>,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영화 <메간>은 오직 ‘케이디’를 위해 프로그래밍 된 AI 로봇 ‘메간’이 ‘케이디’와의 우정을 위해
예측할 수 없는 업그레이드를 계속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새해 첫 호러 영화 <메간>은
이번 달 25일 개봉 예정이다.
<상견니>,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대만 인기 드라마 <상견니>가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과 스토리로 재탄생한 영화가 국내에서
25일 개봉을 확정했다. 원작의 내용에서 출발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전개될 것을
예고하였다.
해외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3> 불 다루는 나쁜 나비족 그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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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최근 프랑스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아바타 3>에서는 나비족 중 불의
요소를 가진 '재의 부족'에 대해 그릴 것"이라고 밝혔다. <아바타 3>는 현재 2024년 12월
20일 개봉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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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워터> 잔잔해 보이는 물처럼 흘러가는 드라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스틸워터에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향하는 '빌 베이커(맷 데이먼)'.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마르세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딸 '앨리슨(아비게일 브레스린)'의 면회를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앨리슨의 사건 현장에 또 다른 목격자 '아킴'이 있었고, 그를 찾으면 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빌은 호텔에서 만난 '버지니(카밀 코탱)'와 그녀의 딸 '마야(릴루 소바드)'의 도움을 받아 목격자를 찾아 나서지만, 그는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진실을 깨달으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난제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테세우스의 배'다. 이 역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테네 인들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탔던 배를 보존해 왔는데, 배의 판자가 썩을 때마다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이때 판자가 하나만 바뀐다면 여전히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겠지만, 만약 결국에 모든 판자를 갈아 끼우더라도 여전히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물의 변화와 정체성의 유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테세우스의 배는 근래 MCU의 <완다비전>처럼 많은 작품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알레고리로 활용되어 왔으며, 톰 맥카시 감독이 연출하고 맷 데이먼 주연을 맡은 <스틸워터>에서도 그 존재감을 발휘한다. 2007년에 발생한 아만다 녹스 사건을 모티브로 한 <스틸워터>는 빌 베이커라는 한 남자, 아버지, 이방인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 안에서 한 개인의 변화와 그로 인한 혼란과 충격, 슬픔 등을 관조한다. 그리고 설령 외관에는 변화가 없어도 판자가 다 달라진 배는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라 부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영화 초반의 빌은 소나무처럼 굳건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거나 안락한 환경은 아니어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매일 같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딸을 위해 기도를 드릴만큼 종교적으로 확고한 삶을 산다. 달리 말해 그는 변화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필요한 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마르세유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냈는데도 미국인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도 총기 소유에 대한 대화에서 지극히 미국 중남부 출신다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미식축구 중계를 챙겨보고 유럽 축구를 거부한다.
이렇게 완고하기까지 한 그의 성정은 초반부 전개에 중심 동력이 되어준다. 앨리슨의 면회를 갔다가 딸의 무죄를 확신하게 된 그는 맹렬히 증거를 수집한다. 딸의 변호사를 찾아가 격렬히 항의하고, 사설탐정을 만나 유일한 증거이자 증인인 아킴을 찾으러 다니며, 상황이 여의치 않게 흘러가자 직접 아킴을 찾기 위해서 마르세유의 빈민가를 돌아다닌다. 인종차별과 무슬림 차별 이슈처럼 프랑스에서 민감할 수 있는 이슈와 접점이 생길 위험이 있어도 그저 딸의 무죄를 밝히는 데만 집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스틸워터>는 범죄 영화, 스릴러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딸의 무고를 증명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이 빈민가에서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영화는 방향을 바꾼다. 여전히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미국인이지만 초반부에 보여준 빌과는 다른 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만난 버지니와 그녀의 딸 마야와 함께 지내면서 프랑스어로 간단한 대화도 나눌 줄 알게 되고, 매일 마야와 함께 하교하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미국에서는 생계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을 떠나 지내야 했고 몇몇 전과가 남을 정도로 무책임한 삶을 살았던 그가 마르세유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렇게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는 전개는 예상을 벗어나는 선택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확고한 목적과 신념 하나로 똘똘 뭉쳐있던 단단한 남자가 한 조각씩 교체되는 이야기 덕분에 막바지에 다시 스릴러로 전환되는 영화의 발걸음에는 큰 힘이 실린다. 새로운 삶을 살면서도 항상 앨리슨의 무고를 밝혀내고자 조사를 멈추지 않던 그는 자신이 믿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저 진실의 내용이 놀라워서가 아니다. 이미 진실에 근접해 있었지만 너무나도 완고했던 본인의 확신이 그 진실을 가리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지낸 시간 동안 점차 달라졌고, 그렇기에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앨리슨의 사건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빌의 충격과 혼란은 그의 배가 한 조각씩 교체된 결과 전혀 다른 배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빌의 모습은 앨리슨과 대비를 이룬다. 사실 그녀는 사건의 발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줄곧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변한 적이 없다. 이는 앨리슨의 진실이 등장하는 타이밍에 영화의 장르가 다시 범죄, 스릴러로 되돌아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두 부녀의 차이와 빌의 심경을 간단히 정리해준다. 고향에 돌아온 앨리슨은 스틸워터가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말한다. 하지만 빌은 자신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면서, 마르세유로 돌아갈 수 없듯이 그 이전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단정 짓는다. 이렇게 영화는 실화 사건 자체의 임팩트 대신 그 사건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집중한다.
<스틸워터>의 이야기는 맥카시 감독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긴 전작 <스포트라이트>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울림을 준다. 특히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그저 관찰하듯 제시했던 것처럼, 빌의 발걸음을 뒤따르며 굳이 감정선을 억지로 고조시키거나 갈등을 극대화하지 않는 매우 사실적이고 건조하기까지 한 연출이 눈에 띈다. 이는 맷 데이먼의 부성애 연기를 만나 그의 혼란과 허탈함까지 온전히 전해준다.
다만 두 가지 문제가 있기에 절반의 성공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단 영화의 흐름이 느리고 템포가 늘어져서 13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온전히 쫓아가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의 지향점 자체는 <스포트라이트>와 같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선택처럼 보인다. 기자들이 거대 권력의 결탁과 비리를 쫓는 내용은 담백하게 전달되더라도 이야기 자체서 긴장감과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범죄 영화 내지는 추적극의 형식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는 이야기에서는 같은 몰입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반전이 너무 늦게 등장한다. 빌의 개인 서사와 변화를 지켜본 후 반전을 접할 때 그 임팩트가 가장 강렬할 것이라는 판단한 듯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굳이 반전을 마지막까지 숨기는 것이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길고 느린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후반부에 몰아치는 전개는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국 <스틸워터>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스포트라이트>의 그것보다 덜 강렬한 사건인데도 동일한 접근법을 취한 구성이 한쪽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빌의 이야기와 제목인 스틸워터를 곱씹어보면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 비경쟁작으로 초청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서서히 느낄 수 있다. 빌의 이야기는 단순하 가십이나 이슈로 여겨질 수도 있던 사건 이면에 깃들어 있는 인생에 대해 말한다. 사람의 신념과 감정은 변하기 마련인데 과연 나는 여전히 나인지, 내 앞에 있는 딸과 같은 이들도 여전히 내가 아는 그 사람인지와 같은 보편적인 고민을 건드린다. 이때 단순한 지명이었던 스틸워터(Stillwater)는 멈춘 듯 잔잔해 보이지만 천천히 흐르는 물(still water)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스틸워터>는 천천히 변해가는 각자의 배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가 된다.
A(Acceptable, 무난함)
지중해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서 지중해를 가로지르던 테세우스의 배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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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데타 / Benedetta, 2021
작년 12월 1일, 국내에 개봉한 영화 <베네데타>는 총 13,547명의 관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상업적인 흥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국내 개봉 당시 본 작품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 모았습니다. - 그 이유는 본 작품의 포스터인데, 그 모습이 "수녀"가 한 쪽 가슴을 노출시켰거든요.
문제는 이게 국내로 들어오면서 수정된 것이고, 문제의 해외 포스터에는 '유두와 유륜'까지 모두 노출이 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수녀"라는 단어로 알 수 있듯이 종교와의 관련성도 있어 보기도 전부터 모든 이들의 주목을 이끌었죠.
그렇게, 까먹고 있다가 이번 2월 25일에 "왓챠"에 <베네데타>가 공개되었는데요. - 과연, 어떤 작품이 있는지?,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17세기 유럽, 한 소녀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한 수녀원에 도착합니다.
그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은 소녀의 이름은 "베네데타", 시간은 흘러 한 명의 수녀로 어엿하게 성장한 그녀에게 이상한 일들이 하나둘씩 발생하는데요.
'그녀가 성녀인지, 아님 사기꾼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대사까지 내려오는데...진짜 뭐가 맞을까?
1. 진짠가?
영화 <베네데타>는 실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레즈비언 수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 한들, 외설적인 포스터와 "종교"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 해당 작품의 131분은 섣불리 손대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 "하느님"을 보여줘 '어찌 운을 띄어할지?'부터 고민이 드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해당 영화는 그녀를 바라보는 캐릭터들과 함께 관객들을 동일시하려 합니다.진짜 맞나?
시작과 함께 성모상이 그녀에게 떨어지거나 떠돌이 용병들에게 위기에 모면하는 모습, 그리고 빙의를 의심케하는 모습 등 해당 장면들은 그녀를 "성녀"로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믿음에 부응하려는 듯, 하느님마저 등장시켜 이를 확신으로 낙인 시키려 합니다.
관객들마저 그녀를 일말의 의심 없이 "성녀"로 받아들이던 그 순간, 하나의 의심할 만한 구석을 보여줍니다.2. 이게, 왜 나오는데?
극에서 "성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에 "원장 수녀"는 '성흔이 나온 사람들에게는 하나같이 월계관이 씐 머리에도 있었다'라는 말을 꺼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내 머리에 피를 흘리는 "베네데타"를 다음 장면에서 보여주는데요.
근데, 그녀의 발밑에 유리 조각이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극 중 한 등장인물에게도 보여줍니다. - 왜, 이런 장면을 보여주었을까요?진짜, 맞나?
영화 <베네데타>에서 나오는 수녀 혹은 신부, 그리고 교황청까지 모두 신을 섬기는 자들로 등장하지만 그 누구보다 현실적인 인물들입니다.
극 중 "베네데타"를 수녀원에 인도하지만, 지참금을 주지 않는 이상 받아주지 않는데요.
이에 "부자는 지옥에 갈 수 없다"라는 말로 거래를 하려는 원장 수녀와 비단을 물에 빠트려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라는 말은 그들이 말하는 신성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는 바는 '그녀가 성녀인지, 아님 사기꾼인지?'가 아님을 의심하게 됩니다.3.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이후 영화는 "진실"에 대해 이런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서로 실오라기 없는 상태에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 "베네데타 - 바르톨로메아"의 관계와 이를 파헤치려는 '바르톨로메아'에게 "고문"은 대비를 이룹니다.
분명히, 소리가 새어 나오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다를뿐더러 '진실'의 정의도 달랐습니다.
"베네데타 - 바르톨로메아"의 관계에서는 그들 스스로가 주체였다면, '바르톨로메아의 고문'은 그들 스스로가 아닌 '신'에게 가려져 있으니까요.
마치, 흑사병에 걸린 것을 숨기려는 교황청 대사의 옷깃처럼 말이죠.결국, 뭐가 맞을까?
마지막에 보여주는 시민들의 믿음은 "양가성"을 더 부각시킵니다.
자신을 의심해 병에 걸린 자들의 등장으로 공포심에 떠는 시민들의 모습은 앞서 '그녀가 성녀인지, 아님 사기꾼인지?'를 의심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마지막에서 그 정답을 말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르톨로메아'가 '베네데타'에게 '진짜를 말하라'라고 하지만, 이내 옷을 입고서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는데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흑사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던 교황청 대사처럼 말이죠.4. 그래도, 청소년 관람불가
단순하게 '야한 영화(?)'쯤으로 봤다가 된통 당했지만, <베네데타>는 이에 대한 기대치를 완전히 저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이상을 충족시켜준다는 것이 맞겠죠.
노출이 있다는 점도 있지만, 이를 구성하는 전체적인 장면부터 감탄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베네데타>를 연출한 "폴 버호벤"은 <원초적 본능>으로 커리어가 설명되니까요)
어찌 보면, 최근에 보았던 <모럴센스>때문이라도 더 만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극 중 "베네데타"가 성을 봉쇄해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장면이며, "진찰"을 확인할 서류를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 어째?
※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해당 영화를 야외상영을 했다는데,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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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 뉴 이어 / A YEAR-END MEDLEY, 2021
작년 설에 개봉한 <새해전야>의 당초 개봉일은 2020년 12월 30일이었습니다.
제목처럼 "새해"를 맞이하려했지만, "코로나19"로 개봉이 연기되며 이대로 이뤄지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 영화는 17만명에 그치며 쓸쓸히 극장을 퇴장했는데, 이번 <해피 뉴 이어>는 제목대로 개봉을 했습니다.
다만, 그 때와 달리 더 심해진 "코로나19"로 극장과 함께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 "TVING"에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복>과 <미드나이트> 다음으로 세 번째 결정입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해피 뉴 이어>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어느덧, 새해를 앞둔 연말 15년째 남사친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호텔리어 ‘소진'의 속도 모른 채 ‘승효’는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발표합니다.
근데, 결혼하는 장소가 자신이 일하는 호텔이고 축가를 불러달라고 하니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간다.
그리고, 호텔 대표 ‘용진’과 하우스키퍼 ‘이영’, 가수 '이강'과 매니저 ‘상훈’, 장수공시생 ‘재용’, 도어맨 ‘상규’와 그의 첫사랑 ‘캐서린’, 그리고 맞선남 ‘진호’까지 이 곳 "엠로스 호텔"로 모여드는데...올 한해, 극장은 행복할 수 있을까?
1. 공식에 충실한 영화, 재미도 충실할까?
앞서 말한 <새해전야>처럼 영화 <해피 뉴 이어>도 크게 다른 점이 존재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이 기원을 올라서면, <러브 액츄얼리2003>부터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2010>까지 한데 모이기 어려운 배우들을 집합시켜 배우들의 얼굴보는 재미는 보장합니다.
여기에 "옴니버스"구성으로 다들 이야기씩 꽤나 하니 특정 시즌을 노린 작품이라고 욕해도 궁금하실겁니다.
<해피 뉴 이어>도 공식에 크게 엇나가는 작품은 아니라 이를 기대하면서, 보았습니다.해피?, 언해피!
먼저, 영화 <해피 뉴 이어>의 분량을 살펴보면 138분으로 평균 120분 내외로 끝나는 영화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많죠?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많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러브 액츄얼리,2003>가 130분,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이 129분,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2010>이 125분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앞서 언급한 14명의 캐릭터, 이야기로는 총 6개의 이야기가 존재하니 이를 제대로 소개는 커녕 시작도 할지 걱정이 들었는데요.
그리고, 영화는 그런 우려를 그대로 보여주고 맙니다.2. 이게, 없다구요?
아시다시피, "옴니버스"는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가 기록한 255만명이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수요가 적은 장르입니다.
이런 이유로는 이전 <새해전야>에서 밝혔듯이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만 본다면, "멀티캐스팅"과 유사하나 "옴니버스"는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전개어 이야기의 연결도 되지 않아 캐릭터별로 이야기를 봐야 하는 관객들의 피로는 다른 영화에 비해 배가 된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러닝타임은 길어지고, 캐릭터들의 설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면적으로 소개되어 매력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에서 보듯이 "옴니버스"는 하나의 이야기만을 전개하는 여타 영화들과 다르게, 각 이야기들을 전개하니 관객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더 많은데요.
그래서, "옴니버스"에는 이를 방지한 하나의 장치가 존재합니다.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다시, <새해전야>의 리뷰를 빌려오면, '그렇기에 "옴니버스"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캐릭터들의 동선을 겹치는 우발적인 장면들 넣는다. 스크린 너머 관객들은 알지만, 극 중 캐릭터들을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만들어지는 재미는 "옴니버스"를 즐기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가 그러한 방법입니다.
이번 <해피 뉴 이어>에서도 이를 살펴볼 수 있지만, 여타 작품들에 비해서 많이 약한 것이 아쉽습니다.
극의 전개를 뒤바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알아도 그만일 정도로 설명으로 그치니 이런 장르적인 재미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3. 기본도 없이 잔재주에 치중한다.
그렇기에 지적되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른 개연성도 심하게 흔들립니다.
먼저, 극 중 설정상 오랜 짝사랑을 해온 '소진'과 ‘승효'의 관계를 풀어나가기엔 사전 설명이 너무 없어 이에 납득가질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건축학개론> 혹은 <너의 결혼식>같은 작품들도 과거 에피소드만으로 절반을 넘게 할애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준비 동작인거죠.
다음으로 ‘용진’과 ‘이영’의 관계인데, 이 역시 중간을 빼먹은듯한 설명으로 '이들이 왜, 빠졌는지?'가 아니라 "왜, 싸웠는지?"로 빠져 난감할만큼 이야기가 군데군데 빠진 느낌입니다.
이외에도 ‘상규’와 그의 첫사랑 ‘캐서린’도 '소진'과 ‘승효'에서 지적된 문제가 반복하고, 고딩 커플은 비중도 없으니 이래저래 아쉬운 점들이 많습니다.음악 좀 꺼주세요.
극중 '이강'의 매니저 ‘상훈’이 상대 소속사 사정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고있자니 <엽기적인 그녀>가 떠오르는건 저뿐만은 아닐겁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해피 뉴 이어>의 감독이 이를 연출한 "곽재용"감독이거든요.
물론, "신승훈"의 "I Believe"가 나오지는 않지만 다른 노래를 재생하며 이에 대한 "오마주"가 짙게 묻어 나옵니다.
영화 <해피 뉴 이어>는 노래가 많이 나오는 작품인데, 극 중 시간상 배경이 연말이라 길가에 흘러나오는 캐롤마냥 계속 재생됩니다.
문제는 이게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이유로는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야기 전개가 엉망이라 음악으로 분위기를 녹여도 녹여지지 않다는 것이죠.
배우들 얼굴에 해피했다가 한 살 더 먹을 것만 같은 긴 분량과 아무런 내용이 없는 저의 새해 결심을 본거 같아 화만 납니다.※ 쿠키, 이런 비스무리가 있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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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지 말까요? / 남과 여 명대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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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반복 도르마무를 하고 있는 남자의 사연은?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8월 19일 개봉예정 영화 팜스프링스 시사회 관람 리뷰입니다. 100만번째 하루를 반복하고있는 남자의 사연은? 믿고 보는 타임루프물!! 솔직한 감상평과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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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미래일기> 공식 예고편
《미래 일기》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담긴 러브 다이어리다.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두 사람에게 건네진 다이어리. 드라마처럼 짜여진 이벤트지만, 그 안의 대사는 두 사람의 몫이다. 다이어리에 적힌 대로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며 점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두 사람. 정해진 미래가 있는데도, 둘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20년 전 방영된 전설의 연애 리얼리티 시리즈가 다시 돌아온다. MC: 다이고 / 스튜디오 패널: 사토 타이키(EXILE/EXILE TRIBE의 FANTASTICS 멤버), 사야(LALANDE), 스미 레이나, 나쓰나 테마송: SEKAI NO OWARI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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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겉보기엔 멀쩡한 남자> 공식 예고편
그 좋은 시절, 언제나 일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난 스탠드업 코미디언.
이렇게 완벽할 수가.
똑똑하고 다정하고 직업 좋고, 부족한 게 없네?
너무 괜찮아서 믿지 못할 지경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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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태닝시 음료수를 갖고 가지 말 것, 통나무를 가득 적재한 트럭 뒤로는 차를 몰지 말 것 한 동안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금기가 되었던 행동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만약 어떠한 장면들이 파편처럼 머리를 스친다면 그는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살인마도 듣도 보도 못한 크리쳐도 아닌 주인공을 뒤쫓는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라는 주 내용을 필두로 시리즈화 되었던 영화가 14년만에 신작을 공개하게 되었다. 시리즈에서는 6편을 차지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은 오랜 공백을 거쳐 다시 리부트 된만큼 <스크림>에 이어 전세계 호래 팬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 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관람에 앞서 시리즈를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 되어준다. 다만 이 한 가지는 기억 하는 것이 좋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뒤를 쫓아갈 것이다.
유명 공포영화에는 대체로 법칙이 존재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방심하지 말 것, 낯선 사람에게 오는 전화는 받지 말 것, 친구를 의심할 것 등 시리즈를 거치며 완성된 공식들은 본편을 기준으로 세계관을 점차 확장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도 단연코 그 중 하나인데, 이 중 가장 명심해야 되는 것은 '예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음. 만약 피했을 경우 죽음은 어떻게든 당신을 쫓아간다.' 이다. 신박하고도 끔찍한 죽음 쇼로도 잘알려진 해당 시리즈는 갑작스럽게 보게 된 예지로 대형 사고를 면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죽음을 어떻게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1편에서는 여객기 폭발 사건에서 벗어난 주인공 일행을 다루며 2편에서는 대규모 차량 추돌 사고를, 3편에서는 롤러코스터 운행 사고를 다루고 4편과 5편에서는 각각 레이싱장 사고와 다리 붕괴 사고를 보인다. 대규모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은 1편에서 다뤄진 알렉스의 사고를 떠올리며 저 나름대로 죽음을 피해보고자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죽음이 정한 법칙을 피하지 못한 채 각자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는다. 슬래셔 물 특유의 개연성보다는 그런 개별의 죽음에서 오는 창의성과 잔인함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그리는 것이 해당 시리즈의 특징이나 이번 공개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에서는 전체 시리즈를 통과할만한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기에 이른다.
그 메세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시초가 되어준 <데스티네이션>에 경우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외로도 죽음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운 좋게 피했다 한들 죽음은 그 순서를 착실히 지켜나가며 그들을 도로 저승으로 인도하는데 이런 <데스티네이션>의 시리즈보단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스티네이션2>는 그 순서를 어겼을 시 건너 뛴 자는 일시적으로 도망칠 수 있으며 세상과 단절 될 경우 수명을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고, 한 번 심장이 멈춘 경우는 죽음으로 카운트 되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등 죽음에서 극단적으로 도망친 자들이 등장하게 되며 절대적이진 않으나 파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편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데스티네이션2>는 본편에서 죽음을 피하는 것에 성공했던 클레어가 재등장하며 본편과 좀 더 접점을 갖고 세계관을 확장시키려 한 편으로도 역시 알려져있다. 하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즉, 3편부터는 프렌차이즈화의 포문을 열며 직접적인 본편의 언급보다는 색다른 방식으로 예견을 하는 등 같은 법칙 아래 가장 인상 깊은 죽음들을 보여줬던 편으로 남게 된다. 사실 죽음과 이를 피해 생존하고자 하는 이들 간의 대결처럼 그려지는 것은 물론 다양한 죽음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다 보니 다소 메세지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슬래셔 물이 나타내고자 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그 어떤 작품보다 충실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또한 대형 사고로 그 포문을 여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나 이를 방지하거나 예방하고자 하는 요소가 아닌 초자연적인 묘사를 통해 죽음이 확정된 이들을 무조건 죽이는 식의 장면이 다수 그려지기에 의미보다는 장르성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즉 억지로 죽여주는 묘사가 등장함에 따라 교차 편집이나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는 위험 요소보다는 더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등 억지스러운 부분이 관람 포인트가 됨으로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상당히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 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대형 사고에서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한 여성의 가족을 중심으로 그 세계관을 확장 시킨다. 늘 그랬듯 누군가에게 찾아온 예지 그렇게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하지만 이전 시리즈가 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구함으로써 그들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번 영화에서의 생존자 '아이리스'는 해당 사고의 피해자가 될 뻔 한 모든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즉 죽음이 찾아가야 할 가정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이것에서만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리즈가 늘 보여줬듯 왜 몇 일만에 모든 사람들이 정리 되지 않았을까. 즉 그 사이 아이를 낳거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 이들이 존재함으로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들에게까지 그 죽음이 바삐 찾아갔던 탓에 '아이리스'는 남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두 남매를 낳기에 이른다.
이 부분부터 리부트의 강점이 드러난다. 친구나 단순 지인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닌 '가족'이라는 관계의 형태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그 고리를 끊고자 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당위성을 만들어주고 긴장감을 깨알 같이 해소시켜줄 개그 요소도 등장시키는데 적합한 요소로 사용된다. 특히 긴장감에 지친 관객들의 웃음 요소가 되어준 배다른 자식 설정은 특정 인물이 죽음의 고리에는 포함되지 않는 인물이기에 안심을 유도했다가 다름 아닌 '죽음을 엿먹이려 하면 좋지 못한 결과가 따른다.' 라는 히든 법치을 해금함으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해당 시리즈 중 가장 획기적인 죽음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에릭'의 죽음은 한 번 분위기를 조성했던 시퀀스로 인해 임팩트를 주기도 했다. 또한 해당 편은 메인으로 삼는 참사는 물론 마지막 남매를 덮치는 죽음의 요소로 다름 아닌 작은 동전을 사용하는데, 이는 영화 내에서 작은 요소라도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일종의 나비효과를 암시함과 동시에 이토록 작은 동전이라도 누군가의 끔찍한 최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전편들과의 연결점도 만들어내며 수미상관을 장식한다. 무엇보다도 이 연결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본편의 장의사 '윌리엄 블러드워스'로 꾸준히 시리즈에 등장하며 마스코트 역할을 했던 이가 5편에 이어 그 정체의 비밀을 벗는 중요한 지점이 되기도 한다. 늘상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죽음의 법칙에 빠삭했던 것은 물론 늘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겼던 그가 다름 아닌 오래 전 '아이리스'가 구해주었던 꼬마였으며 그녀와의 교류를 통해 죽음의 패턴을 연구했던 사람임이 해당 편에서 밝혀지게 된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배우 토니 토드의 유작이기도 한 해당 영화를 통해 윌리엄은 25년동안 진행됐던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남긴채 그렇게 퇴장하게 된다. 너의 삶을 살아라. 죽음이 언젠가 당신을 쫓아올지라도.
죽음은 망토를 비롯한 그 어떤 외피도 쓰지 않지만 확실하게 해당 시리즈에서 슬래셔 물 속 살인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주인공을 끊임없이 추격하며 끝내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다른 장르 영화들에 비해 그 누구보다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은 초반에 묘사되는 사고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체가 없는 죽음이 너무나도 공평하게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순서나 죽음을 속이는 등의 소재적 법칙을 제외하면 모두가 한 번쯤은 영화를 보며 두려워했을 우리의 방어 기제가 만들어낸 상상의 끔찍한 죽음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죽음이 극단적으로 가까운 이들을 조명하며 불안에 떨고 도망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들을 보인다. 덩달아 그들의 모습에 불안해질 필요 없다고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말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일 뿐이라고 말하며 윌리엄은 아주 멋지게 그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다. 초반 '스테파니'가 살아남은 '아이리스'와 대면했을 때 느꼈던 것은 단순 어색함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을 오랫동안 피하기 위해 도망치고 경계하는 삶은 과연 아이리스, 그녀의 삶이었을까? 혹시 죽음의 삶은 아니었을까. 아이리스는 다름 아닌 처음 보는 손녀에게 이것이 진짜임을 알리기 위해 도망을 포기한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스테파니를 위했지만 죽음의 삶을 물려준 셈이나 다름 없다. 피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보며 우리가 진짜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이다. 죽음이 주는 불안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그저 삶을 살아가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것이 곧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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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나도 이 청춘들일 수 있다
청춘의 방황은 보이지 않는 어떠한 벽을 깨부숨으로써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얼음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얼음이 될 수도 있다. 온도에 따른 변화다. 그렇지만 녹음으로써 '변태'한 물은 언제든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가능성을 철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부수어야 한다. 얼음이 녹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마침내 부숴야 깨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흔적인 조각들의 형체를 치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브레이킹 아이스>가 전하는 메시지다.
청춘은 꿈을 꾼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의 웅덩이를 둔다. 하지만 인생에 예측불가한 사건사고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 나나(주동우)는 어렸을 적 꿈꾸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부상이라는 한 순간의 일로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꿈의 웅덩이가 얼어붙는다. 한때 피겨 선수를 꿈꾸며 그 위를 유영했던 빙판이,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마음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다.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 꿈과의 이별은 사람을 영원히 그 안에 가둔다. 작별할 각오가 생겨나기 전까지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나나는 연길에서 여행 가이드로서 돈벌이를 하면서도 애써 마주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빙판을 갖고 살게 된다. 한때 함께하던 동료, 친구, 심지어는 가족과도 멀리한 채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일 것이다. 혹은 도피하지 못해 선택한 '무모함'일 것이다. 얼음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이다.
샤오(굴초소)는 연길에서 친척의 가게 일을 도우며 지낸다. 스스로 빙판 아래에 가두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나나의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얼어붙은 청춘의 시간에서 방황하는 것은 나나뿐만이 아니리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가게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샤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형태를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을 얼음으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샤오에게는, 자신이 물이 될 수 있음은 예상 불가능한 일이며 감히 꿈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 된다.
샤오는 나나에게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 가능성을 엿보지 못한다. 허나 그 일말의 희망을 나나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곁에서 나나의 얼음을 깨는 과정을 곁에서 지키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기에 나나에게 불러준 노래가 그 의의를 가진다. 나나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빙판 아래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서.
그런 점에서 샤오는 나나를 짝사랑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나에게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를 약속받지는 못한다. 짝사랑이라는 관계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어쩌면 샤오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려면 나나가 샤오와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샤오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오펑(류호연)은 그렇기에 이 삼각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나나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샤오보다 나나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위치를 취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오펑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나의 관계성이 연길에서의 목적이 아니다. 하오펑은 상하이에서 일을 하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하오펑이 연길이라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단군신화의 골지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인 단군신화는 짐슴이던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긴 시간동안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오펑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해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력은 보상으로서 하오펑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적을 잃어버린 과정만 남은 하오펑이 우울증을 앓고 삶을 포기하려는 자세를 가진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기에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선 그가 우연히 마주한 단군신화를 직접 마주하는, 그 상징인 곰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방황을 공간화한 것이 플롯의 주 배경이 되는 연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모호한,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존재가 '조선족'이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 서있지만 연길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장벽이 마침내 허물어진다. 그곳에서는 그 모호한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결혼식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혼재가 그 결혼식에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연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들어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 각자의 방황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민족의 모호성이 그 특유의 형태를 찾을 수 있게 된 곳이 연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과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이 등장하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나나는 집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다. 동양권에서 실내는 신발을 벗는 곳이다. 바깥과 안을 경계짓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정론이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신었던 신발을 집에서도 신고 있다는 것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나나가 애써 자신이 피겨 선수를 꿈꾸던 과거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 모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게 된다.
그 모호한 집의 경계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두 남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그런 나나의 방황을 지금 당장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 주인공은 서로의 방황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자체를 공감하고 있다. 서로를 어떠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되어야 할 것임도 사실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 속에서 찾아질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도 자연스레 형태를 갖춘다. '무모한' 서점에서의 놀이가 하오펑의 방황을 찾게 할 어떠한 계기가 되어주었고, 그 계기를 통한 '깨어짐'은 다른 인물들의 방황도 깨부술 수 있는 연쇄 작용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들이 서로를 계몽시켜야 할 목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저 함께 이 모호한 시기를 이겨낼 것이라는 일종의 동료로서 바라본 것의 효용이다.
그래서 한때 뭉쳐진 삼각관계는 곰을 마주한 순간 이후로 순식간에 해체된다. 그 곰은 하오펑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며, 곰이 나나의 아픔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것은 나나의 모호성까지 해결해낸다. 자기 자신의 방황을 깨어나야 할 것으로 인지한 나나는 마침내 샤오가 스스로의 짝사랑을 놓을 수 있게끔 하기에 이른다. 방황의 빙판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이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연길에서 마주한 그들 저마다의 빙판 아래 모습들을 마주하고 극복한다. 방황을 깨고 육지로 올라온다. 그렇게 <브레이킹 아이스>의 메시지가 결론에 다다른다. 비로소 방황의 빙판이 깨어질 때, 내면에 숨어있던 자아를 마주할 때 진정한 성장의 서사가 영화의 수면 위에 올라선다.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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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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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류준열·천우희, <머니게임> 크랭크업
ⓒ 롯데컬처웍스
한재림 감독의 첫 시리즈물 <머니게임>이 지난 23일 크랭크업했다. <머니게임>은 네이버 웹툰
원작으로 한 8부작 시리즈로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배우가 출연한다.
지일주·박지연 <강남좀비>, 134개국 선판매
ⓒ 네이버 영화
배우 지일주, 박지연 주연의 영화 <강남좀비>가 북미를 비롯해 독일, 태국, 일본, 필리핀 등
총 134개국에 선판매되었다고 밝혔다. <강남좀비>는 이번 달 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메간>,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영화 <메간>은 오직 ‘케이디’를 위해 프로그래밍 된 AI 로봇 ‘메간’이 ‘케이디’와의 우정을 위해
예측할 수 없는 업그레이드를 계속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새해 첫 호러 영화 <메간>은
이번 달 25일 개봉 예정이다.
<상견니>, 25일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대만 인기 드라마 <상견니>가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과 스토리로 재탄생한 영화가 국내에서
25일 개봉을 확정했다. 원작의 내용에서 출발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전개될 것을
예고하였다.
해외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3> 불 다루는 나쁜 나비족 그릴 예정
ⓒ 네이버 영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최근 프랑스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아바타 3>에서는 나비족 중 불의
요소를 가진 '재의 부족'에 대해 그릴 것"이라고 밝혔다. <아바타 3>는 현재 2024년 12월
20일 개봉 예정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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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워터> 잔잔해 보이는 물처럼 흘러가는 드라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스틸워터에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향하는 '빌 베이커(맷 데이먼)'.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마르세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딸 '앨리슨(아비게일 브레스린)'의 면회를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앨리슨의 사건 현장에 또 다른 목격자 '아킴'이 있었고, 그를 찾으면 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빌은 호텔에서 만난 '버지니(카밀 코탱)'와 그녀의 딸 '마야(릴루 소바드)'의 도움을 받아 목격자를 찾아 나서지만, 그는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진실을 깨달으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난제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테세우스의 배'다. 이 역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테네 인들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탔던 배를 보존해 왔는데, 배의 판자가 썩을 때마다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이때 판자가 하나만 바뀐다면 여전히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겠지만, 만약 결국에 모든 판자를 갈아 끼우더라도 여전히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물의 변화와 정체성의 유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테세우스의 배는 근래 MCU의 <완다비전>처럼 많은 작품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알레고리로 활용되어 왔으며, 톰 맥카시 감독이 연출하고 맷 데이먼 주연을 맡은 <스틸워터>에서도 그 존재감을 발휘한다. 2007년에 발생한 아만다 녹스 사건을 모티브로 한 <스틸워터>는 빌 베이커라는 한 남자, 아버지, 이방인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 안에서 한 개인의 변화와 그로 인한 혼란과 충격, 슬픔 등을 관조한다. 그리고 설령 외관에는 변화가 없어도 판자가 다 달라진 배는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라 부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영화 초반의 빌은 소나무처럼 굳건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거나 안락한 환경은 아니어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매일 같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딸을 위해 기도를 드릴만큼 종교적으로 확고한 삶을 산다. 달리 말해 그는 변화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필요한 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마르세유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냈는데도 미국인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도 총기 소유에 대한 대화에서 지극히 미국 중남부 출신다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미식축구 중계를 챙겨보고 유럽 축구를 거부한다.
이렇게 완고하기까지 한 그의 성정은 초반부 전개에 중심 동력이 되어준다. 앨리슨의 면회를 갔다가 딸의 무죄를 확신하게 된 그는 맹렬히 증거를 수집한다. 딸의 변호사를 찾아가 격렬히 항의하고, 사설탐정을 만나 유일한 증거이자 증인인 아킴을 찾으러 다니며, 상황이 여의치 않게 흘러가자 직접 아킴을 찾기 위해서 마르세유의 빈민가를 돌아다닌다. 인종차별과 무슬림 차별 이슈처럼 프랑스에서 민감할 수 있는 이슈와 접점이 생길 위험이 있어도 그저 딸의 무죄를 밝히는 데만 집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스틸워터>는 범죄 영화, 스릴러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딸의 무고를 증명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이 빈민가에서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영화는 방향을 바꾼다. 여전히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미국인이지만 초반부에 보여준 빌과는 다른 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만난 버지니와 그녀의 딸 마야와 함께 지내면서 프랑스어로 간단한 대화도 나눌 줄 알게 되고, 매일 마야와 함께 하교하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미국에서는 생계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을 떠나 지내야 했고 몇몇 전과가 남을 정도로 무책임한 삶을 살았던 그가 마르세유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렇게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는 전개는 예상을 벗어나는 선택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확고한 목적과 신념 하나로 똘똘 뭉쳐있던 단단한 남자가 한 조각씩 교체되는 이야기 덕분에 막바지에 다시 스릴러로 전환되는 영화의 발걸음에는 큰 힘이 실린다. 새로운 삶을 살면서도 항상 앨리슨의 무고를 밝혀내고자 조사를 멈추지 않던 그는 자신이 믿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저 진실의 내용이 놀라워서가 아니다. 이미 진실에 근접해 있었지만 너무나도 완고했던 본인의 확신이 그 진실을 가리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지낸 시간 동안 점차 달라졌고, 그렇기에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앨리슨의 사건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빌의 충격과 혼란은 그의 배가 한 조각씩 교체된 결과 전혀 다른 배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빌의 모습은 앨리슨과 대비를 이룬다. 사실 그녀는 사건의 발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줄곧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변한 적이 없다. 이는 앨리슨의 진실이 등장하는 타이밍에 영화의 장르가 다시 범죄, 스릴러로 되돌아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두 부녀의 차이와 빌의 심경을 간단히 정리해준다. 고향에 돌아온 앨리슨은 스틸워터가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말한다. 하지만 빌은 자신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면서, 마르세유로 돌아갈 수 없듯이 그 이전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단정 짓는다. 이렇게 영화는 실화 사건 자체의 임팩트 대신 그 사건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집중한다.
<스틸워터>의 이야기는 맥카시 감독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긴 전작 <스포트라이트>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울림을 준다. 특히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그저 관찰하듯 제시했던 것처럼, 빌의 발걸음을 뒤따르며 굳이 감정선을 억지로 고조시키거나 갈등을 극대화하지 않는 매우 사실적이고 건조하기까지 한 연출이 눈에 띈다. 이는 맷 데이먼의 부성애 연기를 만나 그의 혼란과 허탈함까지 온전히 전해준다.
다만 두 가지 문제가 있기에 절반의 성공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단 영화의 흐름이 느리고 템포가 늘어져서 13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온전히 쫓아가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의 지향점 자체는 <스포트라이트>와 같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선택처럼 보인다. 기자들이 거대 권력의 결탁과 비리를 쫓는 내용은 담백하게 전달되더라도 이야기 자체서 긴장감과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범죄 영화 내지는 추적극의 형식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는 이야기에서는 같은 몰입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반전이 너무 늦게 등장한다. 빌의 개인 서사와 변화를 지켜본 후 반전을 접할 때 그 임팩트가 가장 강렬할 것이라는 판단한 듯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굳이 반전을 마지막까지 숨기는 것이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길고 느린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후반부에 몰아치는 전개는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국 <스틸워터>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스포트라이트>의 그것보다 덜 강렬한 사건인데도 동일한 접근법을 취한 구성이 한쪽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빌의 이야기와 제목인 스틸워터를 곱씹어보면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 비경쟁작으로 초청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서서히 느낄 수 있다. 빌의 이야기는 단순하 가십이나 이슈로 여겨질 수도 있던 사건 이면에 깃들어 있는 인생에 대해 말한다. 사람의 신념과 감정은 변하기 마련인데 과연 나는 여전히 나인지, 내 앞에 있는 딸과 같은 이들도 여전히 내가 아는 그 사람인지와 같은 보편적인 고민을 건드린다. 이때 단순한 지명이었던 스틸워터(Stillwater)는 멈춘 듯 잔잔해 보이지만 천천히 흐르는 물(still water)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스틸워터>는 천천히 변해가는 각자의 배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가 된다.
A(Acceptable, 무난함)
지중해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서 지중해를 가로지르던 테세우스의 배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