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케2023-02-12 23:37:37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시사회 후기(스포있음)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있다.
바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를 개발하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영화 중간에 한 노부부가 등장한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자신을 못 알아보자 자신을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런 향수를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창수와 아라의 사연을 듣고 자신의 바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픔을 겪는 건 싫다고 연구를 중단시키게 된다.
향수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사뭇 슬프기도 했지만 향으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한다는 설정은 새로웠다.
이야기의 전개는 다른 로코랑 큰 다른 점은 없어서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였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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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덤: 아신전> 활과 화살을 든 돼지의 처연한 복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추파진에 파견된 첨절제사 '민치록(박병은)'은 백 년 간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폐사군에서 강을 건너온 파저위 여진족의 시체를 발견한다. 만주를 통합하고 있던 파저위 여진족과 조선 간의 외교적 분쟁이 야기될 수 있음을 직감한 치록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선 땅에 들어와 사는 여진족 상저야인을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만호부락의 '타합(김뢰함)'에게 밀정으로 활동할 것을 명한다. 이에 타합은 병든 아내와 어린 '아신(김시아)'을 뒤로한 채 파저위 여진의 본진으로 향한다. 남겨진 아신은 어머니를 살릴 수 있을 거라 믿고 생사초를 캐기 위해 집을 나서지만, 그 사이 '아이다간(구교환)'이 이끄는 파저위 군사들이 들이닥쳐 만호부락의 부락민을 몰살한다. 큰 슬픔 속에 오갈 데 없어진 아신은 치록을 찾아가 몸을 의탁하고, 성인이 된 '아신(전지현)'은 복수의 날을 준비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의 두 번째 시즌은 '이창(주지훈)'과 '서비(배두나)'가 생사초와 역병 환자들이 가득한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인 아신을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났었다. 스핀오프이자 프리퀄인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은 바로 마지막에 얼굴만 비친 아신의 정체와 사연을 풀어내는 작품으로, 영국 BBC의 드라마 <셜록>의 시즌 3과 시즌 4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었던 <셜록: 유령신부>처럼 시즌 2와 시즌 3간의 가교 역할을 맡는다.
흥미로운 것은 기존 시리즈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셜록: 유령신부>와 달리 <킹덤: 아신전>은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 감상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 만큼 뛰어난 독립성과 완결성을 자랑한다는 사실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시즌 1의 김성훈 감독 연출 아래에서 감정 과잉으로 인해 극의 리듬과 템포를 깬다는 시즌 2의 문제점이 해소된 결과, 조선에 좀비가 창궐하게 된 계기와 아신의 생애는 전반적으로 매끄럽고 안정적으로 펼쳐진다. 호랑이 자리에 카메라를 배치하면서 속도감과 쫓기는 몰이꾼들의 두려움, 다급함 등을 잘 살려냄과 동시에 CG의 한계를 잘 피해 간 액션씬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무엇보다도 <킹덤: 아신전>이라는 한 작품은 물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두 모티브, '돼지'와 '활쏘기'의 활용을 빼놓을 수 없다. 차갑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담긴 아신의 복수극을 전달함에 있어서 이들이 결정적인 몫을 맡기 때문이다. 우선 돼지를 보자. <아신전>은 아신과 관련된 이들을 모두 돼지에 비유한다. 아신의 아버지는 조선의 백성들을 만지고 돕는 것조차 금지되고 멸시받는 돼지 잡는 백정으로 등장한다. 치록의 명령으로 조선과 여진을 오가는 밀정이었던 그는 여진족에게 붙잡힌 후 돼지나 다름없는 몸으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그의 부락민들도 마찬가지다. 부락민들은 여진족이지만 조선의 관리감독 하에서 살아가며 조선에 협력했던 상저야인으로, 조선이 파저위 여진과 민감한 외교적 문제에 휘말리자 언제든 필요할 때 도살되는 돼지처럼 버려진다. 조선군에게 몸을 맡긴 아신도 돼지우리에서 잠자고, 조선군의 허드렛일을 도맡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영화의 중후반부에 들어서 아신과 그녀의 가족, 부족민들의 비참함을 보여주던 돼지는 그 의미가 뒤바뀐다. 이제 돼지는 조선군에 대한 비유다. 아신은 성인이 된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멧돼지를 사냥하던 것처럼 자신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간 조선군들을 차례로 사냥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생사초를 이용해 조선군을 앞뒤 가리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들이받는 멧돼지나 다름없는 좀비로 변신시킨다. 그리고 그 좀비들의 홍수에 갇힌 조선군은 그녀 앞에서 자신이 도살장에 갈 차례를 알고 떨고 있는 돼지 마냥 순서대로 죽어간다.
'돼지'에 담긴 의미의 변화는 아신이 서 있는 장소의 변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돼지우리에 있는 평상에도 눕지 못한 채 땅바닥에서 잠을 청했던 그녀는 돼지보다도 계급이 낮은 존재였다. 그러나 조선 군영에 좀비를 퍼트린 그녀는 이제 지붕 위에서 조선군과 좀비들, 곧 모든 돼지와 멧돼지들을 내려다보고 자유로이 활을 당겨 그들을 사냥한다. 마지막 남은 단 한 명의 조선군도 자신의 아버지가 당했듯이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시킨 후에 가볍게 불사른다. 자신들의 부족이 불탄 것처럼, 또 파저위 여진족 본진에 불을 지른 것처럼.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파저위 여진족에게 활시위를 당기는 아신을 비추는 엔딩은 조선군도 여진족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을 돼지 잡듯 사냥하는 복수귀가 되어버린 그녀의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렇게 돼지라는 소재를 통해 아신의 성장과 변화의 서사를 보여주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아신전>은 그 결과물인 아신의 성격과 상태를 활과 화살에 담아낸다.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의 '활쏘기의 선'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궁사는 자기 앞의 과녁을 맞히는 일 이외에는 자기 자신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활쏘기가 불붙은 초로 다른 초에 불을 붙이듯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이러한 표현은 그 자체로 아신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아신이 활 쏘는 모습에는 돼지로 지내야 했던 긴 세월 동안 너무나도 깊어진 복수심에 잠식된 나머지 인간다움을 버린 복수귀로 변한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그녀는 팽팽히 당긴 시위에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던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화살을 걸어 원수인 조선군과 여진족을 향해 날리며 죽음이라는 진심을 전해준다.
이는 작중 좀비들을 볼 때의 충격이 지난 두 시즌에 비해 덜할 뿐만 아니라, 그 오싹함의 결이 미묘하게 다른 이유로도 이어진다. 그간 <킹덤> 시리즈에서 좀비는 그 자체가 공포스러운 미지의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즌 2의 대미에서 이창과 그의 동료들이 궁궐에서 근접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시청자들이 감정적으로 이입된 주인공들과 직접 대면하는 존재들이었다. 달리 말해 즉각적이고 뜨거운 공포를 자아내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아신전>에서 좀비는 더 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좀비는 철저히 아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조종된다. 이제 좀비는 보다 처연한 공포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좀비 그 자체의 존재보다는 그들의 흑막으로 존재하는, 인정사정없이 민간인과 조선과 여진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려는 아신의 존재가 더 강렬한 섬뜩함을 자아낸다. 당장 가족들과 본연의 삶을 되찾고 싶어 하는 그녀의 회한이 사무친 마지막 장면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아신전>의 결말은 좀비가 만들어진 경위와 그들의 존재보다도 아신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유로 스스로 좀비나 다름없어졌고, 복수에 미친 살인귀가 되었음을 보여주기에 그 어떤 장면보다 무섭고 소름 끼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손에 쥔 활과 화살에 담겨 있다.
조금 더 시각을 확장시켜보면 활쏘기는 <킹덤>이라는 시리즈의 맥락 안에서 시즌 1과 시즌 2에서 위기에 빠진 조선, 그리고 앞으로 더 큰 위기에 빠질 조선을 암시하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시리즈의 배경이 조선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조선에서 궁술은 왕이 직접 장려할 만큼 중시되었는데, 공자가 사대부에게 권장한 육예인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중에 사(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군자는 경쟁하는 바가 없으나 활쏘기에서는 경쟁한다"는 논어의 말씀처럼 활을 쏘는 것은 예절을 남과 겨루는 일이었기에 도리와 예의를 익히는 심신 단련의 수단으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즉, 활쏘기는 단순한 무예를 넘어서 조선의 이데올로기를 직접 실천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아신전>은 성리학 국가인 조선의 상징적 이데올로기인 충과 효가 버려지는 세태를 만악의 근원으로 설정한다. 타합을 비롯한 상저야인들은 그들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조선으로부터 그 대가나 보상을 받기는커녕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여진족에게 몰살당한다.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불효를 범한 아신은 부족민들이 죽게 된 이유를 조선군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파저위 여진족의 시신에 꽂힌 화살을 보고 깨닫는다. 활쏘기는 조선의 근간인 충효가 무너졌고 더 이상 무용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적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아신의 화살이 조선을 겨누는 것은 곧 <아신전> 이후의 시간대에서 조선의 존립이 흔들릴 것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시간상 <아신전>보다 뒤의 일을 다루었던 <킹덤>의 두 시즌에서 조선은 왜란뿐만 아니라 해원 조 씨의 세도정치로 인해 왕위의 승계까지 흔들리는 등 내정이 엉망인 상태로 등장한다. 또한 이는 두 번째 외전인 <킹덤: 세자전>과 <킹덤>의 세 번째 시즌에서 조선이 다시 한번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자신의 왕위를 버리면서까지 유학의 이데올로기를 다시 세워 조선이라는 국가와 사직, 종묘를 지켜낸 이창과 그의 안타고니스트인 아신이 대립하고 충돌할 미래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아신전>의 활과 화살은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이 된다.
<아신전>에 아쉬움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제목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보니 초지일관 아신의 복수극을 그려내고 있고, 따라서 본래 시리즈에서 특출 났던 좀비 영화의 장르적 매력은 결코 강하지 않다. 달리 말해 아신이라는 캐릭터에게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이번 스페셜 에피소드에 대한 호불호는 필연적으로 갈릴 수밖에 없다. 아신이라는 인물이 대사가 많지 않다 보니 그녀의 감정선을 그녀의 주변 상황으로부터 캐치해야 하는 것도 한몫 거든다.
또한 생사초를 최초로 사용하거나 발견한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생기는 점, 동물에게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되지 않는 설정이 의아한 것처럼 이전작들에서 남겨둔 생사초를 비롯한 여러 설정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것은 시리즈의 팬들이 다소 실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신의 사연에 조금이라도 몰입하는 순간, <아신전>이 아신의 성장기와 시리즈의 프리퀄, 더 나아가 화려한 예고편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성공적인 작품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성공적인 복수극, 스핀오프, 프리퀄, 그리고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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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남자의 활어회 같은 입담여행, <트립 투 그리스>
- 트립 투 그리스(The Trip to Greece, 2020)
제작 : 영국, 코미디 │ 감독 :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03분"소소한 행복감을 계속 선사하던 시리즈를 그리스에서 제대로 마무리한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영국 대표 배우 스티브 쿠건 & 롭 브라이든
환상의 팀워크로 완성한 낭만 가득 여행기
여행이 한결 다채로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그리고 여행에 대한 풍부한 교감으로 그 깊이를 확장할 때. 영화 <트립 투 그리스>의 두 남자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떠나는 여행은, 그 두 가지 여건을 충족시키는 여행이 아닌가 싶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은 영국의 내로라하는 배우이자 입담꾼들이다. 그들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 건 <트립 투 잉글랜드>에서였다.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은 이 영화의 영감을 실제 두 배우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얻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유머와 풍부한 지식은 그렇게 ‘트립’ 시리즈가 되어,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이번에는 그리스로까지 넘어왔다.
중년 남자 두 명이 떠나는 여행이 그리 재밌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치 다듬어지기 전의 비방용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서로를 향한 짓궂은 장난과 성대모사 등은 기본이고, 그때 그때 여행지에서 떠올리는 노래와 상황극 등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이어진다. 감독이 영감을 받았다던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해박한 지식 또한 영화를 보는 재미에 한 몫한다. 두 배우의 나이는 50대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오는 동안 켜켜이 그들의 삶에 쌓여온 문화예술과 역사, 미식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농담 같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적극 활용된다. 물론 영화 촬영을 위해 사전에 전달된 상황과 정보들은 몇 가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소수의 사전 정보를 제외한다면 절반 이상이 거의 두 배우의 즉흥적인 티키타카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바로 그 날 것의 힘에 있었다. 여행지를 다니면서, 빼어난 음식을 맛보면서, 두 배우가 떠오르는 대로 아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대화가 곧 씬이 되고 영화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립 투 그리스>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그들이 가족의 구성원이자 가장이라는 느낌을 선뜻 느끼게 하는 대목도 존재한다. 스티브의 아버지는 여행 중 병세가 심해지시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상황을 아들로부터 듣는 스티브의 모습은 영락없는 50대 가장이자,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롭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종일관 스티브를 놀리고 개구진 성대모사를 하다가도, 아내나 딸과 통화할 때면 영락없는 애처가 기질을 드러낸다. 두 배우의 사회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면을 둘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묘미가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배우가 함께 ‘트립’ 시리즈로 호흡을 맞춘 지도 어언 10년. 두 배우의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활어회 같은 형태의 여행을 보고 있자니,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이 문득 떠오른다.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호흡을 맞추며 보낸 두 사람의 시간 또한 커다란 의미에서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 50대가 된 두 배우, 두 사람의 관록, 여행과 우정,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라는 뻔하지 않는 여행 테마, 날 것의 대화. 이 모든 요소들이 트립 시리즈를 관통하는 색이자 매력이 아닐까.
<트립 투 그리스>를 끝으로 트립 시리즈는 마무리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 덕에 알게 된 두 배우의 남은 발자취는 두고두고 응원하게 될 것 같다. 삶이라는 여행이 언젠가 끝난다던 이상은의 노래처럼, 두 배우는 서서히 노년이 되어가겠지.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 나면 인생이든 진짜 여행이든,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아진다.
성격도 꿈도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 메이트가 되어주었던 두 사람을 보는 103분 동안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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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생각은 적게, 행동은 바로
생각은 적게, 행동은 바로. 권철 감독의 버텨내고 존재하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한국경쟁 부문에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초정하였다. 작품 속 일곱 뮤지션은 광주극장에서 각자의 ‘버텨내고 존재함’을 말한다. 8월 13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권철 감독님을 만나 특별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소개해주세요.
이 작품은 뮤지션 최고은님이 2019년부터 진행한 커밍홈 프로젝트의 기록입니다. 고은님은 광주극장에 친한 뮤지션들을 초대하여 광주를 소개하고자 진행하였고 그 연출을 제가 맡았습니다. 광주극장에 가서 준비를 하다보니 극장의 느낌이 좋아서 한 편의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기획에서 시작한 영화가 아닌, 쌓인 기록을 편집하여 만든 영화입니다.
극장과 뮤지션. 어떻게 보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같아요.
이 영화는 극이 아닌 기록과 나열의 영화입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음악과 함께하는 영화제이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사실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을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출품하고 싶어서 마감 기한에 맞추어 급하게 제출했습니다.
광주극장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는데, 뮤지션마다 공연하는 장소를 다르게 한 이유가 있나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기획자이신 고은님이 ‘광주극장에 안 와본 사람들도 마치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뮤지션 여덟 팀을 보여주는 단순한 기록의 나열같지만, 나름의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았어요. 영화관에 들어와서 표를 사고, 대기를 하고 극장에 들어선다.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순서대로 입장문, 매표소, 대기실 등의 흐름으로 연출했습니다.
그럼 뮤지션의 장소나 순서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셨는지 궁금해요
뮤지션의 장소나 순서는 음악의 분위기나 주제에 따라 배열했습니다. 시작 주제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김일두, 김사월을 앞에 배치하고, 그 다음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곽푸른하늘, 고상지님의 음악, 마지막은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정우님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노래로 마무리했습니다.
영화의 독특한 인서트들이 기억에 남아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이 영화는 뮤지션들의 라이브와 그 사이에 인터뷰를 넣은 단순한 구성인데요. 한 편으로 이으려다보니 인서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일두님이 화분으로 바뀌는 것은 촬영 중 갑자기 김일두님이 싱그러운 화분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찍은 장면이에요. 궁금해하셨던 곽푸른하늘님의 ‘포도봉봉’은 제가 캐릭터를 생각해서 준비한 소품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버텨내고 존재하기’인데요.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버텨내고 존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하하. 사실 저는 김일두님의 말씀처럼 생각을 적게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이어서 버텨낸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만약 제 스타일로 영화의 제목을 정해본다면 ‘광주 극장의 지박령들’이라고 짓고 싶네요.(웃음)
감독님의 앞으로 꿈이나 목표가 있을까요?
저는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영상을 시작했고, 지금도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기획과 연출이 들어간 음악 영화를 만들고 싶네요. 저는 재미있는 걸 좋아해서 다음에는 좀 더 키치하고 막 나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벌써 몇 가지 아이디어도 생각해 놓았습니다. (웃음)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들여 만들어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또 참여하고 싶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한 광주극장에서 뮤지션의 다양한 음악을 재미있게 풀어내어 보여주며, 영화와 음악을 나란히 선보이는 이 작품은 어쩌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가장 닮아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권철 감독의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만들어 낼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luna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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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아쉬운, 죽음 직전 킬러의 복수극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벌어진 일 때문이기도 하다. 죄책감이 마음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죄책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악행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각자 지켜야 할 선을 정해놓고 그 선을 넘지 않으며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어쩌면 개개인의 죄책감은 사회 전체의 도덕성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 죄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나오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아무 느낌을 가지지 못하다가 어떤 조건이 생기거나 자신의 기준을 넘어서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갑자기 마음속을 채우는 죄책감은 그것을 느끼는 당사자에게 고민을 선사한다. 그것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반하거나 더 나아가 조직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더욱 그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은퇴 혹은 퇴직, 여행 같은 것을 행하면서 자신 속에 자리 잡은 고민을 해결하고 다음에 가야 할 방향을 선택하기도 한다.
킬러에게 죄책감을 주며 시작하는 영화 <케이트>
지난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케이트>는 케이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죄책감을 느낀 그 시점부터 그의 마지막 결정까지를 담는다. 케이트는 청부살인 조직의 일원으로 의뢰를 받아 누군가를 암살하는 임무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배릭(우디 헤럴슨)에게 암살 교육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배릭은 일종의 팀장 역할을 하는데, 케이트와는 유사 부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초반 그들은 일본 야쿠자 조직의 누군가를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암살 목표 옆에 그의 어린 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조직의 압박에 방아쇠를 당겨 암살을 성공시킨다.
케이트의 죄책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있으면 암살을 보류한다는 조직의 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조직은 해당 시스템의 잘못은 묻어두고 케이트에게만 죄책감을 심어준다. 자신이 암살을 완료한 사람 옆에 울고 있는 어린 딸 아니(미쿠 패트리샤 마티네)의 모습은 케이트의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계속 그를 괴롭힌다. 어찌 보면 그 암살 시스템이 좀 더 나은 시스템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케이트가 가져다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케이트에게 모두 책임을 넘긴다.
영화 속 케이트는 자신의 팀장인 배릭에게 마지막 임무 완료 후에 은퇴를 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 이후 임무 직전 누군가가 건넨 술을 마시고 방사능 물질 때문에 피폭을 당한다. 하루 뒤에 죽음을 맞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방사능 피폭에서 회복될 수 있는 기술은 영화 안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에 이미 주인공이 곧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것을 밝히고 영화를 전개하는 셈이다. 그 이후는 케이트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두목을 찾아서 죽이는 것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와 비슷한 이야기, 캐릭터의 구도
케이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만들어낸 소녀 아니를 만나게 되고 같이 자신의 원수를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와 캐릭터의 관계를 보면 얼마 전에 개봉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속 주인공인 샘(카렌 길런)은 어떤 청부살인 조직의 일을 받아 살인을 하는 킬러다. 그리고 임무 수행 중 어떤 아이의 아빠를 죽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를 보호한다. <케이트>에서도 케이트는 자신이 아빠를 죽인 아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를 보호하려 애쓴다. 또한 케이트는 암살 조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복수를 하게 되는데 결국 그 끝엔 암살 조직과의 대결도 하게 된다. 두 영화 모두 여성이 조직에 대항하여 싸움을 벌인다는 점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두 영화의 캐릭터가 다른 점은 케이트를 움직이게 만든 건 온전히 죄책감이다. 그 죄책감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고 자신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반면 샘을 움직이고 변화시킨 건 조직에 대한 반항심이 더 컸다. 그 이후에 죄책감과 복수심이 따라왔다. 영화 <케이트>는 시종일관 어둡고 진지하다. 액션의 강도도 굉장히 높아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케이트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액션을 끝까지 보여주며 잔혹한 킬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가 잔인한 액션이 이어짐에도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차이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케이트>의 액션은 꽤 훌륭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인물 간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기는 어렵다. 죄책감 속에 복수를 강행하는 케이트의 모습은 점점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 특히나 결국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금은 짜증 나게 느껴지게 한다. 또한 케이트와 아니가 만난 이후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두 사람이 별로 가까워질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은 설득력이 없다. 영화 말미 케이트의 사과는 너무 갑작스럽게 내뱉어져서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도 주지 못한다.
케이트가 쫒는 두목 키지마(쿠니무라 준)의 변화도 당황스럽다. 그가 왜 영화 마지막 케이트와 같은 편에 서서 싸우는지에 대해 영화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뜻밖의 도움으로 목숨을 유지하는 케이트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결국 자신이 평생 일한 암살 조직이다. 이미 우리가 많은 암살자 관련 영화에서 보아 왔던 복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는 깔끔한 영상으로 액션을 촬영해냈지만 스토리의 개연성과 캐릭터 간의 이상한 관계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 케이트의 행동과 상황에 공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화려한 영상과 액션에도 많이 아쉬운 이야기가 캐릭터
영화는 배경을 일본으로 함으로써 동양적인 이미지와 네온이 강조되는 거리의 모습 등으로 이미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실제로 한국 팝 음악이 나온다거나 일본의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고 일본어 대사들이 등장하며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 이국적인 영화의 배경은 이 영화의 강점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실망스럽다. 주연을 맡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만 고군분투할 뿐 악역이나 주변 인물들은 소품 정도로만 머무르며 영화의 틀을 만드는 것으로만 소비된다.
영화 <케이트>는 영화의 처음에 느꼈던 케이트의 죄책감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영화 속에서 케이트는 복수심으로 끝까지 달려가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사과를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부분 역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으로 등장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샘과 아이의 관계를 영화 초반부터 만들면서 두 사람 자체의 서사와 관계를 만들어갈 시간을 만든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샘이 건네는 사과에는 진정성이 있다. 하지만 <케이트>는 주인공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고 하더라고 정작 그것이 화면 밖의 관객에게는 진심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케이트의 고군분투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연출한 세드릭 니콜라스-트로얀 감독은 <헌츠맨: 윈터스 워>를 연출하며 장편 영화 연출 경력을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여러 장편 영화의 비주얼 효과를 담당했던 그는 <캐리비안의 해적:죽은 자는 말이 없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같은 영화에서 비주얼 효과를 담당했다. 그가 최근에 연출한 <헌츠맨>과 <케이트> 역시 영화의 영상이나 효과 자체는 훌륭한 편이다.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이나 캐릭터, 이야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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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키'가 바라왔던 '영광스러운 목적'을 향해
<로키 2>의 주인공은 ‘장난의 신’ 로키다. 실비가 로키(톰 히들스턴)의 눈앞에서 ‘계속 존재하는 자’를 살해하고 난 후의 이야기가 드라마 1화 시작으로 이어진다. TVA 안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돈다. 갑작스럽게 침입한 로키를 제지하기 위해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도망치는 로키. 카트 위로 떨어진다. 카트를 운전하던 여자가 깜짝 놀라 앞의 흉상에 부딪혔다. ‘계속 남아있는 자’의 흉상과 부딪힌 카트. 흉상이 깨지고 케이시가 등장한다. 사실 로키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무엇인지 전부 판단하지 못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다 이해하려고 할 즈음에 케이시와 만났다. “너 누구야?”반문하는 케이시. 방금까지 대화했던 케이시가 나를 모른다니, 이상한 상황이 벌어져 당황한다. 로키가 도착한 곳은 과거의 TVA였다. 새삼 시간선을 넘나들며 이동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적으로 이 현재만 봐도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하지만 그거보다 더 큰 것은 ‘계속 존재하는 자’라는 인간이 여러 세계선을 관리하며 우주의 대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신이야. 그리고 나에겐 영광스러운 목적이 있다고. 로키는 ‘정복자 캉’이 만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로키 2>는 우리가 좋아하던 마블의 상상력이 그대로 구현된 드라마다. 마블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를 상징하는 영화는 세 편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캐릭터의 개성을 모두 살리면서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챙긴 경우, 역시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 극강의 액션을 보여주던 작품도 있었고 <닥터 스트레인지> 1편처럼 눈이 호강하는 시각화와 상상력이 영화의 무기인 때도 있었다. 이 <로키 2>는 <닥터 스트레인지> 1편처럼 상상력의 힘이 드라마의 동력이 되는 경우다. 이 드라마가 이 뛰어난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점은 인물의 내면이다. 여러 우주를 오가며 인물의 절박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명한다. 대표적으로 이야기 중후반부로 흘러갈 때 모비우스(오언 윌슨)와 로키가 보여준 감정연기는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선은 엔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복잡한 이야기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또 우리가 마블의 드라마/영화를 논할 때 항상 이야기하는 ‘기존 MCU와의 연계성’의 측면에서도 <로키 2>가 구사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하지만 드라마의 그 어떤 장점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은 정서적인 여운이다. 우리가 마블의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하던 모든 순간에 로키가 있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엔딩을 더 특별하게 만들 것이다.최근 마블의 아쉬운 타율에 가려지기는 속상한 웰메이드 드라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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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코리쉬 피자> 사랑의 탈을 쓴 힘과 위치의 변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 어느 날 그는 학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아름다운 햇살과 함께 등장한 연상의 여인 '알라나(알라나 하임)'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데이트를 청하며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개리. 그러나 서로 다른 나이와 환경, 직업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사이, 연인과 친구 사이에 있는 그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엮이면서 이들의 연애사는 더욱더 험난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할리우드의 젊은 천재 감독인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신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시상식에서 받은 상의 숫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겉보기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와는 결이 다소 다른 듯 느껴지지만, 그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간 앤더슨은 설령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유사 가족 관계, 폐쇄된 집단, 사이비 종교, 깊은 상처를 가진 캐릭터 등의 소재에 집중하며 불완전한 인간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영화는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며 미국의 어두운 부분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1973년 미국 10대, 20대 청춘의 로맨스를 다룬 <리코리쉬 피자>는 필연적으로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앤더슨이 그려내는 로맨스가 평범한 사랑 이야기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당장 <리코리쉬 피자>의 시작을 보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십 대 소년 개리 앞에 알라나가 등장한다. 따스한 햇살, 그리고 로맨틱한 음악은 그녀의 등장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사진 찍는 일을 돕는 알라나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개리는 대화를 이어가고, 그 대화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등을 알아가며 조금씩 하나의 관계로 묶인다. 알라나의 등장부터 개리의 퇴장까지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리코리쉬 피자>는 그 어떤 하이틴 로맨스와도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간질거림과 살랑거림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롱테이크의 말미에서 영화는 본색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나이가 더 많다는 무기를 내세워서 개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알라나. 그러나 개리 앞에서는 여유 넘치던 그녀도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는 촬영 기사 앞에서는 불쾌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약자로 변하고 만다.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찰나에 그 리듬과 분위기를 아주 효율적인 방식으로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사랑의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희롱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자 본 작의 테마를 날카롭게 소개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내에서 그들을 둘러싼 배경과 환경에 따라 그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 2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알라나와 개리의 로맨스는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으로 가득하다. 알라나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만지는 개리를 부러워한다. 반면에 개리는 미성년자라는 한계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이에 알라나는 개리의 매니저가 되어준다. 또 개리의 촬영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개리와 알라나에게 서로 다른 남녀가 번갈아가며 데이트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코리쉬 피자>는 우선 앤더슨의 사랑에 대한 정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사랑은 감정의 교류, 추억의 공유, 뜨거운 육체적 교감이 아니라 위계의 형성을 뜻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리코리쉬 피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남녀 사이에서 더 우월한 지위와 주도권을 점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법을 걷어냄으로써 <리코리쉬 피자>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현실적이며 깊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단순히 남녀와 사랑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대신, 그 관계를 매개로 보다 다양한 역학관계의 전복과 치열한 재전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성의 섹스와 산업 사이의 역학관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앞서 본 오프닝 시퀀스처럼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불균질 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애인과 친구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개리와 알라나 사이에 비즈니스가 끼어들고, 그로 인해 알라나의 성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물침대 사업을 시작한 개리는 박람회에서 한 여성에게 섹시한 의상만 입힌 채 물침대를 홍보하게 하며 알라나는 그 여성에게 관심을 표한다. 바로 그 찰나에 개리는 용의자로 잘못 지목되어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이 대목에서의 장면 전환은 굉장히 사나운 인상을 남긴다. 특히 경찰이 개리를 거칠게 다루며 그의 사업을 일시적으로 막는 모습에서는 마치 여성의 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는 듯한 느낌도 준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물침대 상점 오픈식에서 비키니를 입고 홍보를 하던 알라나는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개리를 본 후 좌절한다. 개리가 물침대를 사려는 고객에게 섹시하게 응대하라고 요구하자 알라나는 개리가 말한 것 이상으로 고객을 유혹하기도 하고, 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에이전트와 오디션을 보던 중 개리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작품 내에서 노출도 감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하면서 개리와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는 개리와 알라나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려는 찰나마다 섹스를 매개로 빛에서 어둠으로, 환희에서 절망으로 급격하게 분위기를 전환한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의 로맨스는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을 활용하는 세태에 대한 일차원적인 비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알라나의 이야기 속 성역할과 성위계를 고정되지 않은 시선으로 고찰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알라나가 성을 이용하는 사회와 산업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위치한다.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닌 그녀에게 성적 매력은 유용한 도구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남자 배우를 유혹하고, 자신의 매니저가 된 개리가 불평하자 가슴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장 후보인 조엘이 밤에 호출하자 곧장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수동적 캐릭터가 아닌 알라나의 모습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설령 기존의 사회 질서가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더라도, 알라나의 주도적인 선택과 참여가 없다면 그 질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즉, 그녀에게는 개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했듯이 선택권과 주도권이 있다.
이는 알라나가 기름이 떨어진 트럭을 끌고 내려가는 후진 장면이 러닝타임 중 가장 시원하며 황홀한 순간인 이유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선택권을 다르게 활용한 최초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세계에 편입되고자 했던 알라나. 그랬던 그녀는 이제 '존 피터스(브래들리 쿠퍼)'처럼 마초적인 남성의 공간에서 개리로 대변되는 또 다른 남성이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운전대를 잡고서 스스로를 구해낸다.
또한 이 장면은 작중 한국 전쟁의 영웅을 연기한 왕년의 스타 '잭 홀든(숀 펜)'이 오토바이를 탄 채 그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때, 알라나가 오토바이에서 뒤로 추락했던 장면과 정반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잭 홀든에게 알라나는 과거 파트너였던 그레이스의 대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잭 홀든이라는 마초적인 영웅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던 그녀는 오토바이 뒤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뒤로 추락했던 그녀가, 이제 오히려 후진을 통해 존 피터스와 잭 홀든이 상징하며 그녀가 편입되고자 했던 기존의 남성적 질서를 전복한다. 그러니 이 장면 직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시장 후보 조엘의 선거캠프에 알리나가 합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들춰내는 앤더슨의 장기가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리코리쉬 피자>의 메시지는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알라나가 보여주는 주도성과 저항력은 개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리는 성공을 갈망하는 알라나만큼이나 사회 속으로 편입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는 설령 알라나와의 관계가 뒤틀린다 해도 배우로서 성공을 꿈꾸고, 또 물침대 상점에 이어 핀볼 게임장을 오픈하면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자 한다. 이렇게 주류 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개리의 열망은 그보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 위치의 우위를 점하는 남성인 존 피터스에게 조롱당하자 분노하고 또 복수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그는 막 오픈한 게임장을 뒤로한 채 알라나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알라나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동성 연인을 지키지 못하는 조엘과 달리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개리에게 달려가듯이. 이렇게 개리도 주류 질서로 편입되고자 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감싸고 있던 힘과 권위를 주도적으로 뒤집는다. 사회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이루어낸다. 영화는 이러한 커플의 탄생과 변화를 세 번의 달리기를 통해 보여준다. 알라나는 경찰서에 갇힌 개리를 꺼내 주기 위해, 개리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알라나를 향해 달린다. 이는 두 주인공의 달리기가 스크린 상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고, 곤경에 처한 사람도 정반대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위계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둘은 그들의 역학관계에서 마침내 평형점을 찾았다는 듯 같은 방향을 보면서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렇게 역학 관계의 변화로 사랑과 연애를 정의하면서 앤더슨은 사랑을 매개로 보다 넓은 사회상까지도 통찰해낸다.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중 유독 대중성을 염두에 둔 영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소재 자체가 많은 이들을 시간 여행에 빠트리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한 소재이자 장르인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를 선택한 것부터가 그렇다. 비록 스토리라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듯 보이나, 공간과 음악을 활용해 석유 파동을 비롯한 히피 문화, 반전 운동 등으로 가득했던 70년대의 정취를 스크린에 가득 풀어놓은 것도 큰 몫을 맡는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 익숙하고 친숙한 사랑 이야기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낱낱이 파헤칠 때 비로소 앤더슨의 로맨스가 품고 있는 이중, 삼중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을 힘과 관계로 이해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전복의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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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리뷰" 영상(*스포주의)"
오피셜이 아니라 제 멋대로 만든 겁니다
재미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프론트맨 이병헌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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