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2-06 11:34:14
2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2월 3일 - 2월 5일
지난 토요일은 입춘이었죠!
그래서인지 주말 날씨는 비교적 따뜻했는데요,
따뜻한 날씨와 별개로 대기질은 좋지 않으니 외출 시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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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더 퍼스트 슬램덩크> (-)

▶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영화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주에 이어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지켜냈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234만 8,332명으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18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16만)을 넘어섰으며, 국내에서 개봉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톱 3에 해당하는 성적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역대 흥행 1위 일본영화인 ‘너의 이름은.’(379만)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61만)까지 넘어설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2. <아바타: 물의 길> (▲1)

▶ 신작들에 밀려 순위를 거듭 내줬던 '아바타: 물의 길'은 '교섭'과 '유령' 등 한국 대작들이 힘을 못 쓰며 다시금 2위로 치고 올라왔으며,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한화 약 2조 5581억 원)의 흥행 기록을 넘어 전 세계 역대 흥행 수익 4위에 오른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지난해 12월 14일 개봉한 이후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첫 천만 돌파 외화가 됐습니다.
▶ 주말 동안 (2월 3일 ~ 2월 5일) 관객 수 11만 3,66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55만 2,79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교섭> (▼1)

▶ 한국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교섭'이 장기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으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아바타: 물의 길'에 밀려 3위까지 내려갔으며, 주말관객 9만 2361명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 수 162만 272명을 기록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38회 예측 이벤트는 <바빌론>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바빌론>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5%, 여성 35%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으로 20대,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바빌론>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7-19세 여성과(65,000명)과 13세 미만 남성(74,242명)이었습니다. 또한 <바빌론>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4%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바빌론>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바빌론> (▲16)

▶ 지난 1일 개봉한 신작 '바빌론'(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지난 3일 동안 6만 589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9만 7212명입니다.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애프터썬', '이마 베프' 등의 동시기 개봉작을 모두 제치며 순위에 올랐습니다.
5. <영웅> (▲2)

▶ 5위는 두 계단 올라간 <영웅>으로, 주말에 4만 6천 명을 더해 누적 관객 314만 명을 기록하였습니다. 실관람객의 호평과 함께 장기 흥행 중으로 350만 명 내외로 알려진 손익분기점에 근접 중입니다.
▶ 주말 동안 (1월 13일 - 1월 15일) 관객 수 4만 6,37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14만 658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물의 길’(‘아바타2’)이 북미 지역에서 두 달 가까이 지켜온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아바타2’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은 지난해 12월 개봉 이후 8주 만에 처음으로, 이 영화를 1위에서 몰아낸 작품은 ‘식스센스’를 연출한 M 나이트 샤말란의 공포 영화 ‘노크 앳 더 캐빈’(1420만 달러)과 파라마운트사의 코믹 영화 ‘80 포 브래디’(1250만 달러)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습니다.
▶ '노크 앳 더 캐빈'은 폴 G 트렘블레이 작가의 소설 ‘세상 끝의 오두막’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국내에서는 ‘똑똑똑’이란 이름으로 개봉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슷한 제목의 호러 영화 ‘캐빈 인 더 우즈’를 의식해 제목을 변경한 것으로 보이며, 국내 개봉일은 미정입니다.
▶ 지난 1일 개봉한 그룹 방탄소년단(BTS)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BTS: 옛 투 컴 인 시네마’(510만 달러)는 이번 주 박스오피스 5위에 올랐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노크 앳 더 캐빈> 1,420만 달러 (누적 1,420만 달러)
2. <80 포 브래디> 1,250만 달러 (누적 1,250만 달러)
3. <아바타: 물의 길> 1,080만 달러 (누적 6억 3,642만 달러)
4.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7,950만 달러 (누적 1억 5,129만 달러)
5. <BTS: 옛 투 컴 인 시네마> 628만 달러 (누적 912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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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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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코엔 형제 작품. 다시 봤다. 다시 보고 또 놀랐다. 먼저, 영화 제목을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코엔 형제가 'no country for old men'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 영화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알았다.
예이츠의 시 가운데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에서 가져온 구절로 원래는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이다. 예이츠의 시를 읽어보자.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저것은 노인의 나라가 아니다.)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팔짱 낀 젊은이들, 나무 위 새들,)
--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 (노래하고 있는 저 죽어가는 세대)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연어 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물고기, 짐승, 새들이 여름 내내)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잉태되고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을 찬양한다.)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모두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Monuments of unaging intellect.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엔 관심이 없다.)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늙은이란 하찮은 것)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막대기에 걸친 누더기일 뿐이리라)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육신의 옷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을)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영혼이 좋아 손뼉치고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지 않는다면)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노래를 배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그래서 나는 바다를 항해하여 왔다)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아 벽의 황금 모자이크 그림 속에 있는 듯)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신의 거룩한 불 속에 서 있는 성현들이시여,)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그 성화에서 원을 그리며 내려오셔서)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 주시라.)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내 심장을 다 태워버려 주시라, 욕정에 병들고)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죽어갈 동물성에 매어)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제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심장을 -그리고 나를 거두어 주시라)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영원히 죽지 않은 예술품 안으로.)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자연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어떤 자연물에서도 내 육신을 취하지 않으련다.)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대신 그리스의 금 세공인들이 망치질한 금과)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황금 유약을 발라 만든 형체를 취하여)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졸고 있는 황제를 깨우련다.)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아니면 황금 가지 위에 앉아)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비잔티움의 귀족과 부인들에게 노래해주련다)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 (지나간 것과 지나가는 것들, 그리고 다가올 것에 대해.)
따라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다. 어느쪽이든, 이 영화를 상징하는데 있어 기가 막히게 들어 맞는다.
원작 소설을 쓴 코맥 맥카시는 미국 작가로 하드보일드한 액션 스릴러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액션 스릴러'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매우 하드보일드한 것만은 틀림없다.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텍사스의 사막 근처에 살고 있는 주인공 모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마약 거래 현장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돈가방을 발견한다. 그리고 냉혹한 살인자 안톤 쉬거에게 쫓긴다.
돈가방을 갖고 도망다니는 주인공, 그를 쫓는 살인마 안톤 쉬거, 두 사람을 추적하는 지역보안관. 여기서 '노인'은 지역 보안관 에드를 말한다. 삼대를 이어 지역 보안관으로 일하고 있는 에드는 노련한 경찰이지만, 무차별,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옛날을 그리워한다.
영화 제목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영화 끝부분에 에드와 다른 보안관이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품위와 존경의 시대가 사라진 지금의 사회에서는 노인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이 독특하면서도 매력을 끄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개성 있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보여주는 때로 엉성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하는 대사는, 웃음과 함께 소름이 끼치게 만든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칼슨 웰즈를 보자. 그는 최근에 HBO의 미니시리즈 '참 형사(트루 디텍티브)'에도 주연으로 등장한 배우인 우디 해럴슨인데, 여기에서는 겉멋든 킬러로 등장한다.
살인마 안톤 쉬거를 처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등장해서 뭔가 멋진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그는 짧은 시간에 무수한 대사를 늘어 놓지만 결국 안톤 쉬거에게 맥없이 죽고 만다.
또한 주인공 모스 역시, 거의 살인마를 따돌리고 한숨 놓기 직전에 어처구니 없게도 멕시칸 갱에게 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장모 때문이다. 살인마 안톤 쉬거 역시 자신이 목표로 삼은 모스의 아내 칼라를 찾아가 죽이고, 교통사고를 당한다. 죽지는 않았지만 부러진 뼈를 감싸고 사라진다.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는데, 보안관 에드 역시 퇴직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노인은 입을 닫는다. 즉, 돈과 마약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인의 지혜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는 총이 필요 없던 과거의 보안관 선배들 이름을 나열한다. 그때가 그래도 인간적인 시대였다고 회상한다. 지금은 미치광이의 시대라고 말하며. 그리고 곧바로 안톤 쉬거가 보안관에게 붙잡혀 경찰차에 태워지고, 수갑을 찬 채 보안관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전화로 보고를 끝낸 보안관을 목졸라 죽이는 안톤 쉬거. 그의 두 팔목에 수갑에 긁힌 핏자국이 선명하고, 발버둥친 보안관의 발쪽으로 어지러운 흔적이 가득하다. 보안관 차를 훔쳐타고 나온 안톤 쉬거는 앞서가던 자동차를 세우고, 운전자를 살해한다. 그의 살인에 동기가 있을까.
텍사스주 테럴 카운티의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모스는 우연히 갱들이 서로 죽고 죽인 현장을 발견한다. 다섯 대의 트럭과 주위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는 사람들. 그는 한 트럭에서 가득 찬 마약을 발견한다. 아마도 마약 거래를 하던 자들이 서로 총질을 해서 모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이다. 모스는 분명 근처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무 아래 죽은 사람을 발견한다. 그 옆에는 가방이 있고, 그 가방 안에 2백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모스는 돈가방을 갖고 집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트럭에서 죽어가던 사람이 물을 달라던 말을 기억하며 내키지 않지만, 물통을 가지고 다시 현장으로 간다. 한밤중, 물을 달라던 멕시코인은 이미 죽었고, 모스는 다시 돌아가려하지만, 갱단의 일행이 도착하고, 모스는 쫓기게 된다.
모스의 운명은 여기서 갈린다. 범죄 현장에서 돈가방을 발견한 것은 행운일지 모르나, 그는 범죄자가 아니었고, 사람이 그냥 죽는 걸 지켜보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가 물을 가지고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그냥 부자로 살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건 결국 자신의 의지이며, 그 선택에 따라 다시 운명이 갈리는 아이러니는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모스는 돈가방을 들고 도망하고, 아내는 오데사로 보낸다. 범죄 현장에 차를 두고 도망했기 때문에 이미 그의 정체는 드러났고, 돈을 찾기 위해 범죄조직에서 자기 뒤를 쫓아 올 거라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안톤 쉬거는 사막의 주유소 매점에 들르고, 매점 주인과 신경전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매점 주인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맞닥뜨린다. 살인마 안톤 쉬거는 차를 뺐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싸이코패스인데, 매점 주인과의 동전 내기에서 매점 주인의 선택이 맞자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매점을 나간다. 이건 그 나름의 원칙이 있다는 뜻이다.
안톤 쉬거는 두 남자를 만나 범행 현장에 도착하고, 돈가방 안에 들어 있는 추적기를 찾을 수 있는 송신기를 받는다. 그리고 두 남자를 살해한다. 양복을 입고 추적 송신기를 들고 나타난 두 남자를 미루어 짐작하면, 마약범죄조직을 체포하기 위한 위장 거래를 하던 경찰 수사관 또는 마약단속국(DEA), FBI 요원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돈가방을 지닌 채 죽은 사람은 경찰이거나 FBI 요원 또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비밀요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안톤 쉬거는 모스의 트레일러 집을 찾아가고 그곳을 샅샅이 살펴본다. 트레일러 관리실에 가서 모스의 행방을 묻지만, 관리실 아주머니는 절대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때 안톤 쉬거는 말 없이 사무실을 나간다. 그의 행동은 언듯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싸움에서 살짝 밀리는 느낌이다.
안톤 쉬거가 트레일러에서 나가고 뒤 이어 보안관들이 트레일러를 찾아온다. 보안관은 아무 단서를 찾지 못하지만, 안톤 쉬거는 집안에 있던 우편물에서 모스의 처가집 전화번호를 찾아내 확인한다.
모스는 텍사스주와 멕시코의 경계인 '델 리오'에 도착해 허름한 모텔인 델 리오 레갈 모텔 138호에 묵는다. 방의 환풍구에 돈가방을 숨기고,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다른 모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돌아와 138호 맞은편 37호실을 하나 더 빌린다.
안톤 쉬거는 멕시코로 가는 길에 '델 리오 레갈 모텔'을 지나다 수신기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모텔에 모스가 있다는 걸 확신한다. 모스는 37호에서 환풍기에 올려 놓은 돈가방을 끌어당기고, 안톤 쉬거는 총과 산소탱크를 들고 맨발로 138호를 찾아간다. 두 사람의 대결은 조용하면서도 긴장감 높은 장면으로 이어진다.
138호를 급습한 안톤 쉬거는 그 방에서 세 명의 멕시코인을 발견하고 살해한다. 멕시코인들은 마약 범죄조직원들이고, 이들이 쉽게 모스의 행방을 알 수 있었던 건 돈가방에 든 송신기를 찾을 수 있는 수신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칼슨 웰스의 등장은 하드보일드한 영화에 약간의 유머를 넣으려는 코엔 형제의 의도로 보인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안톤 쉬거를 제거하려고 살인청부업자 칼슨 웰스를 고용한다.
레갈 모텔에서 도망한 모스는 이글 패스 호텔 213호에 묵는데, 이때 카운터를 보는 사람에게, 자기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잠을 자려고 누운 모스는 돈가방을 살펴보다 송신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을 쫓는 살인자가 매우 가까이 있다는 걸 직감한다.
모스와 안톤 쉬거는 여기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총을 쏜다. 둘 다 만만찮은 상대였고, 둘 다 총상을 입는다. 총상을 입은 안톤 쉬거는 사라지고, 모스는 피를 흘리며 멕시코 국경을 걸어서 넘는다. 다리 중간에서 돈가방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 무사히 국경을 지나 멕시코로 들어가는 모스. 이제 악몽은 끝난 걸까.
다리에 총을 맞은 안톤 쉬거는 약국 앞에 주차한 차에 불을 지르고,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훔쳐 나온다. 그는 총상이 심했지만,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꿰맨다. 그는 확실히 보통사람과는 다른 인간이다.
그 사이, 병원에 입원한 모스를 찾아온 사람은 칼슨 웰스. 겨우 3시간만에 모스를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보안관 에드는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을 오데사에서 만난다. 칼슨 웰스는 국경 다리에서 모스가 던진 돈가방을 발견하지만, 호텔로 쫓아온 안톤 쉬거에게 당한다. 안톤 쉬거가 칼슨 웰스를 죽인 직후, 모스와 전화 통화를 하고, 서로 두고 보자고 벼른다.
안톤 쉬거는 모스가 병원에 있다는 것도 알지만 찾아가지 않고, 그의 아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모스는 병원에서 나와 다시 미국 쪽으로 국경을 넘은 다음, 돈가방을 찾아 아내에게 전화한다.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로 오라고. 엘 파소 역시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도시다.
멕시코 마약조직은 모스의 장모에게서 정보를 얻고,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은 보안관에게 남편 모스의 행방을 알려주고, 안톤 쉬거는 모스를 쫓는다. 이들은 모두 엘 파소에서 맞닥뜨린다. 보안관이 엘 파소의 데저트 샌즈 모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총격전이 벌어진 뒤였고, 모스는 죽어 있었다.
모스의 장례를 치르고 곧 이어 칼라 진의 어머니도 암으로 사망한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칼라 진은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톤 쉬거를 만난다. 안톤 쉬거는 이번에도 동전을 던져 정하라고 칼라 진에게 말한다. 칼라 진의 집에서 나온 안톤 쉬거는 무심한 상태로 운전하다 다른 차와 부닥치고, 부상을 입고 사라진다.
보안관 에드는 퇴직하고, 아내와 차를 마시며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서 아버지를 봤고, 아버지는 춥고 어두운 오솔길을 앞질러 가시면서, 횃불을 들고 있었노라고 한다. 자신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안톤 쉬거가 살해한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다. 이 가운데 두 명은 살해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도로에서 만난 닭장차 운전수와 마지막 장면의 칼라 진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 역시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과 맞닿아 있는 테럴 카운티에서 시작해 델 리오, 오데사, 엘 파소로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도시와 연결된다.
보안관 에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지역은 과거와는 너무 달라졌고, 사람들이 돈과 마약으로 타락했으며, 도덕과 상식이 사라진 현실이 개탄스럽다. 늙어가는 에드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느끼고 은퇴한다. 삶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메마르며, 불투명해서 행복한 삶이란 마치 파랑새를 찾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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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전락하더라도 놓을 수 없는 것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인 박쥐를 다시 봤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 영화를 봤는지 셀 수도 없다.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는 아니지만 내용과 대사를 다 알아도 항상 소름이 돋은 상태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이다 보니 소모임 멤버들에게 하도 호들갑을 떨어 놔서 다들 많은 기대를 하고 봤을 것 같은데, 개봉 당시에도 평가가 엇갈렸듯이 보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 다른 것 같아서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불쾌하고 찝찝하다는 평은 모두의 입에서 나왔던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외모라고 했다. 배역에 어울리는 외모와 분위기가 1순위라는 감독의 말을 증명하듯이, 이 영화는 송강호 김옥빈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인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유튜브 영화
본작의 주인공인 현상현은 정말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신부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없음에 허무함을 느끼고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신부로서의 자신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직접적인 구원자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 또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결국 불치병 바이러스의 치료약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실험 대상으로 자원하게 된다. 치사율이 100%인 바이러스를 몸에 집어넣은 뒤 행하는 그의 기도문 독백은 이 신부가 얼마나 희생적인 사람인지를 초반에 확실히 설명해주는 역할과 이후의 장면들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떠한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결국 현상현 신부는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되어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이후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사망 판정을 받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해 한국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혼자 살아 돌아온 현상현 신부의 앞에는 그를 메시아로 칭하며 치유받기를 원하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아버지와도 같은 신부님에게 '치유되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자신이 약간이라도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와중 부산에서 친구로 지냈던 강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어머니인 라 여사에게 듣게 되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되면서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인 태주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어렸을 때 강우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던 상현은 '집에 놀러 가면 여동생이 부끄럽다고 숨고 그랬었는데..'라고 회상한다. 이 말을 들은 태주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이는 태주라는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첫 장면임과 동시에 이후 어떤 장면에서 태주의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이 때의 인연으로 현상현은 라 여사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마작 모임에 초대받게 되고, 태주와는 두 번째로 대면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해당 장면에서도 느껴지는 박찬욱 영화의 특징은 현실에서 흔하게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소품과 장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올드보이의 사설 감옥 벽지가 그러했고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집 벽지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 속 중심이 되는 장소인 한복집 건물 역시 여러 나라의 특징이 결합된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 마작을 하고 있다는 설정도 특이하게 느껴진다. 모두에게 보이는 1층에는 한복집이 위치하고 있으나, 그 위 층에서 다양한 인물이 모여 도박인 마작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반복적인 삶 속에 갇혀 있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고자 하는 태주의 심리 상태를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 있는 소재들이 충돌하고 있는 이 공간은 편안한 집이 아니라 음침한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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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에는 팜므파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 등장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 속 태주는 그러한 면모를 극한까지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주는 자신이 원치 않는 반복적인 삶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물이며 이를 약간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몽유병을 핑계로 밤마다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인물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억압받은 그녀는 집에서 완전히 도망치지는 못하고 동네 골목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태주의 가족은 라 여사의 집 작은 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태주가 어렸을 때 그녀를 두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서 혼자 남겨진 태주를 라 여사가 거두어 딸처럼, 강아지처럼 키웠다고 한다. 이 대사를 딱 들으면 때 단순히 태주를 아끼고 귀여워하며 키웠다는 말인 듯싶지만, 이 집안 속에서 태주의 취급을 보았을 때 '개처럼 키웠다'라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중반에 밤마다 달리러 나가는 태주를 막기 위해 라여사가 문에 자물쇠를 거는 것만 봐도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다. 라 여사는 태주를 강우의 간병인처럼 기능적으로 대하고 있는 인물이며, 다른 마작 멤버들 역시 외국인인 이블린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물들로 묘사가 되고 있다. 태주는 원래 이 마작 멤버에 포함될 수가 없는, 즉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가 없는 인물이지만 현상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그녀를 묶고 있던 속박의 끈이 끊어지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한편 현상현 신부는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피를 갈구하게 되면서 자신이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하고자 했던 현 신부는 의도치 않게 타인의 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흡혈귀가 되어 육체적 쾌락에까지 이끌리게 된다. 자해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려고 했던 상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태주에게 끌리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태주 역시 상현에게 호감을 느끼고 상현을 통해 한복집의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상현이 맨발로 뛰고 있는 태주를 번쩍 들어 자신의 신발을 신겨주는 것은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설렘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만의 독특한 멜로 연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출처: 유튜브 영화
결국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가지게 되고, 태주를 사랑하게 된 현 신부는 자신의 몸 상태를 태주에게 고백한다. 남의 피를 마시는 현 신부의 모습을 본 태주는 경악하며 자신의 집으로 도망친다. 현 신부는 태주를 쫓아가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며 자신이 마신 피의 주인은 원래 다른 사람들 먹이는 것을 좋아했던 분이라 이해해주실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뱀파이어가 되어 타인의 피를 마시게 된 1차 전락, 신부로서 금기인 육체관계를 가지게 된 2차 전락을 겪은 상현은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신부로서의 자신과 흡혈귀로서의 욕망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한다. 처음에 두려움을 느꼈던 태주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자신의 지루한 일상과 정 반대에 있다고 느끼며, 밤의 골목을 뛰어다니는 행위를 중단함과 동시에 밤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자신의 삶 속에 집어넣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상현은 사랑하는 태주를 안고 마치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것처럼 높은 건물 위에서 쉽게 뛰어내리지만 건물을 다시 올라갈 때는 태주를 안고 계단을 오른다. 이 장면을 건물을 뛰어내리는 태주의 표정과 연결 지어 생각해봤을 때 뛰어내리는 것, 즉 전락하는 것은 정말 즐겁고 쉬운 일이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해준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속아 자신의 직업윤리와 가치관 버리게 된 상현은 결국 물에 가라앉은 집 속 옷장에 강우를 가둬 살해하게 된다. 그래도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던 상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살해하는 3차 전락에까지 이르게 되며, 인간도 짐승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신부까지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목격한 상현은 더 이상 신부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게 되고, 더욱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내 얼굴은 비록 냉담하고 둔감할 것이나 내 심장은 항상 당신을, 오직 당신만을 위해 뛰겠나이다.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던 상현은 결국 끝없는 전락의 과정 속에서 태주 한 사람만을 구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태주의 손을 잡고 기도하듯이 말하는 위 대사를 영화 초반부의 기도문과 비교해봤을 때 상현의 정체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강우를 제거하면 거칠 것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게 된다. 태주 자신이 그리했던 것처럼 강우의 환영이 자신의 입에 쪽가위를 집어넣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고 몸이 물속에 잠기는 체험을 하기도 하며 육체관계 중 두 사람 사이에 강우가 끼어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멀어져 다른 마작 멤버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하는 등 강우를 죽이기 전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 영화의 내용을 사랑의 과정으로만 생각했을 때, 상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여러 긴장과 제약이 많았던 연애 시작의 설렘을 잃어버린 두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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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의 욕망에 의해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알게 된 상현은 태주를 다그치지만, 태주는 오히려 '내가 아니었어도 당신은 강우를 죽였을 것'이라며 상현의 합리화를 비웃고 그를 병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강우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태주의 말에 이성을 잃은 상현은 결국 그녀까지 살해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4차 전락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의 구도와 음악이 모두 압도적이라 가장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죽여 놓고도 슬퍼하기 이전에 흡혈 본능에 이끌려 그녀의 피를 마시는 상현의 모습은 소름 끼치기 가지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정신없이 피를 마시던 상현은 라 여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에 놀라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파악하게 된다. 영화 최후 반부까지 태주와 상현이 라 여사만은 죽이지 않는다는 점과 두 사람의 모든 죄를 지켜보거나 폭로하는 사람이 라 여사라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라 여사는 태주와 상현의 최후의 양심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상현은 태주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피를 먹이고,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난 태주에게 '해피 버스데이 태주 씨'라고 말한다. 이 대사 역시 그녀를 우발적으로 살해해 놓고, 마치 그녀에게 뱀파이어로서의 새 삶을 선물하려고 의도했던 것처럼 합리화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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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상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흡혈을 하고 다닌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며 자신이 도와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더 편하게 죽는 것 같다고 또다시 합리화하는 상현에게 태주는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처럼 생각하지 마라',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냐?'라는 대사를 통해 상현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폭주하는 태주의 모습을 보며 상현은 자신의 선택이 전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더 이상 태주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태주는 '당신을 살린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줘'라는 상현에게 '당신은 나를 죽여도 후회, 살려도 후회야'라며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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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는 라 여사의 폭로로 인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마작 멤버들을 죽이고, 상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를 돕는다. 마작을 하지 않았던 이블린만이 상현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되는데, 이 영화 속에서 마작이 인간의 욕망이나 악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작중 유일하게 도덕적 해이를 보이지 않는 인물인 이블린만이 살아남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 선한 인물들이 이유 없이 죽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감독의 뚜렷한 가치관이 보이는 장면이기도 한 것 같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죽을 필요 없는 인물이 죽는 것에서 나오는 감정 소모를 자신도 잘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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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한 상현은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는 신도들의 캠프에 찾아가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을 일부러 들킴으로써 그들을 헛된 희망으로부터 구원한다. 이후 상현은 새벽이 되기 직전 시간에 태주와 라 여사를 데리고 허허벌판 끝의 절벽에 도달한다. 처음에는 죽기를 거부하고 그늘 속에 숨던 태주였으나, 상현의 진심을 깨닫고 그와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다. 이 장면에서 태주가 상현이 신겨줬던 구두를 신는 것은 죽는 순간에 자신이 살면서 느낀 가장 행복한 감정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서야 관객들은 태주도 상현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상현은 전락의 끝에 도달해서야 자기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합리화가 아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상현은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태주, 앞으로 희생될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라 여사가 웃으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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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출처: 유튜브 영화
극단적인 이야기 속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이 영화에서도 통했던 것 같다. 자의와 타의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만나 그 극한까지 달려간 뒤 허무하게 재가 되는 것은 굳이 뱀파이어나 재와 같은 소재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상상하는 일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꼽을 수 있겠다. 또한 전락의 끝에 가서야 구원의 길을 깨닫게 되는 결말 역시 흥미롭다. 결국 현상현은 인간의 상식이나 양심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 먹는 짐승'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인간으로서 죽기를 선택해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를 다시 보며 느꼈던 것은 박찬욱 감독 영화 속에서는 역시 여성 캐릭터들이 빛나 보인다는 것이다. 박쥐의 태주와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비교해 보면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팜므파탈처럼 보이는 공통점이 있으나, 감독 자신의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테주보다는 훨씬 더 감성적이 된 서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던지는 주제의식을 무시하고서 보더라도 다른 영화들에서 볼 수 없는 훌륭한 장면들에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장면마다의 의미를 곱씹으며 보면 두 배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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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7월 3주차의 극장가를 달군 영화들과 박스오피스 다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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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셋째 주, 1위를 차지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그 뒤를 잇는 굳건한 <엘리멘탈>은 역주행을 넘어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대표작은이 되면서 꾸준한 관객들이 호평 속 기분 좋은 흥행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주말 관객수 120만명을 넘기면서 5일째 누적관객수 170만,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인공지능 '엔티티'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에단 헌트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완성도 높은 액션으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서는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악당과 맨몸 액션을 선보이고 이후 등장하는 절벽 추락씬등 짜릿한 톰크루즈의 도전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엘리멘탈>은 428만 관객 돌파와 함께 역대 픽사 영화 중 국내 매출 1위까지 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주말을 지나 누적 관객수 428만 명을 돌파해 멈출 줄 모르는 흥행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엘리멘탈>의 흥행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이목이 집중되고있습니다.
재개봉 첫날 6위로 출발했던 '여름날 우리'는 재개봉 3주차에 오히려 순위가 두 계단 상승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두 청춘스타 허광한과 장약남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의 모든 순간을 완벽한 케미로 그려내며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여성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누적 관객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경이로운 역주행 신화를 작성해 나가고 있는 <여름날 우리>의 흥행 추이에 이목이 집중이 됩니다.
<범죄도시>의 흥행으로 전체 매출액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6월 한국영화 매출액에서 92.8%를 기록했다고하며 팬데믹 이전 한국영화 97.3% 수준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눈 뗄 수 없는 CG 액션, 릴 웨인, 에이셉 라키 등 레전드 힙합 뮤지션들이 다수 참여한 강렬한 ost들로 채운 힙한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5위를 차지하며 누적관객수 87만을 기록하며 점점 순위권에서 밀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7월 셋째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북미 박스오피스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동 성노예와 구출 이야기를 다룬 <Sound of Freedom> 2위, <인시디어스: 빨간문>이 3위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4위를 기록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PART ONE>은 북미 공개 첫 주말 매출액 5600만 달러를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이 수치는 해당 시리즈 중 3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영화 제작비에 가까운 수익을 첫주에 내면서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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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마블이 오답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마블 스튜디오 성적이 부진했던 것, 특히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개봉하는 작품들 거의 모두 마블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영화를 좋아하는 씨네필들에게도, 평단에게도 실망감을 선사한 것은 통계적으로도 볼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억지스러운 PC주의, PC주의가 들어간 영화는 무조건 실패한다.'와 같은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마블이 새로운 장을 열면서 전과는 또다른, 조금 더 깊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PC주의를 영화 속에 넣은 것으로 추측되나, 의도가 어찌되었든 모든 이들에게 실망감을 사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마블의 이러한 연이은 실패의 이유에 PC주의에 대한 무분별한 탓, 무조건적인 비난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마블이 지금처럼 부진한 성적을 받고 있는 데엔 '설득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단순 우주에서 다중 우주로 뻗어져나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설득 못 시켜서, 세대 교체를 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배우,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던 이유에 대해서 설득하지 못해서, 영화팬들에게 영화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OTT 서비스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이야기 템포를 따라와줄 것을 설득시키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마치 마블의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고,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본인들의 과오를 하나씩 수정해나가는 영화로 보인다.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그 점을 보완하고, OTT 서비스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고 싶게 만드는, 마치 마블의 영광스러웠던 시대의 희망 의 뿌리를 보는 것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의 이야기는 물론 마블 시리즈의 한 작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작들의 이야기에서 이어지고,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작품들에서도 이어진다. 마블 스튜디오 또한 영화 <아이언맨1> 개봉 이후 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동안 쌓여왔던 작품들이 꽤 많고, 또 그만큼 이야기가 매우 깊어졌다. 이에 더해,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가 가세해 마블 스튜디오의 전반적인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있어 그 양은 갈 수록 비대해졌다. 그렇기에 최근 많은 이들이 마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면 설레는 기대보다 "전작들 못 봤는데, 못 따라가면 어떡하지? 돈 낭비하는 거 아니야?"라는 우려 섞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점을 과소평가했던 것인지, 실제로 최근 마블 스튜디오는 이런 점에서 날 선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를 드디어 깨달은 것인지,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작품 내에 전작들의 설정들을 친절하고, 설득력있게 제시했고, 전작들을 보지 않았던 관객들에게도, 전작들을 모두 섭렵한 관객들에게도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을 제시했다. 또한 이전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까지도 불어 넣어, 이전 작품들에 대한 반성문만이 아닌 개선과 포부가 담긴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 액션 영화에 비법 양념을 더해 마블만의 맛을 내다.
장르가 액션인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울 때는 바로 액션마저 별로일 때이다. 액션 장르 영화에서 이야기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액션이 수준급이라면, 최악은 면할 수 있는 것이 액션 장르의 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전에 먹어봤던 맛있는 맛의 액션에 새로운 맛을 한 숟갈 더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는 이전 작품들의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이 아니라 "팔콘"의 캡틴이기 때문에, 전작들의 시원하고 파워풀한 액션씬보다는 윙슈트를 이용한 화려한 곡예비행과 날개 및 기타 파츠들을 이용한 볼거리 많은 액션을 보여준다. 또한 빌런으로서 2008년 작품,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에 등장한 "사무엘 스턴스"와 "썬더볼트 로스"이자 "레드 헐크"를 등장시키는데, "캡틴 아메리카"의 아쉬운 파워풀한 액션을 "레드 헐크"가 채워준다는 데에서 빌런과 히어로이지만 작품의 깊이감을 위해 상보적인 존재로서 장면들을 만들어간다. 또한 '서펀트 소사이어티'라는 새로운 집단을 등장시키면서 "캡틴 아메리카"의 액션을 선보이기 위한 발사대로서 꽤 좋은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는 또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스파이물, 추리물과 같은 장르적 특징을 띄기도 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억울한 이의 누명을 벗겨주어야 한다는 "캡틴 아메리카"의 사명감과 친구와의 의리로 임무를 수행하는데, 여느 스파이 장르 영화가 그렇듯 정부와의 갈등을 보여주게 된다. 또한 단순 빌런과 입체적인 면을 지닌 빌런을 공존시키고, 빌런의 등장을 지속적으로 암시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더해갔다. 이 과정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슈트를 입지 않은 채 맨몸 액션을 선보이는데, 별다른 초능력은 없지만, 영웅으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강력한 악당들에게 맡서는 한 인간의 의로운 모습을 영화는 강조한다.
마블 시리즈 내에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인물들은 많지만 실제로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액션을 펼치고, 임무를 수행했던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그동안 못했던 한을 푸는 것인지, 고공 액션을 굉장히 훌륭하게 선보이고, 그의 슈트를 최대한 활용한 액션씬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마블의 창의력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액션의 화려함, 그 창의성을 더욱 돋보이기 위해 중간 슬로우 모션을 활용하였는데, 이 또한 멋있으면서 재밌게 다가왔고, 이를 남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었다 보여진다.
'팔콘'의 "캡틴 아메리카"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팔콘과 윈터솔져>에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때부터 그가 "캡틴 아메리카"가 된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의 걱정거리였다. "갈수록 강력했지는 빌런들을 아무리 방패와 최첨단 윙슈트가 있다고 한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영웅이 이길 수 있을까?" 영화는 이런 의문을 부정하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서 싸운다. 영화 속엔 '혈청 맞을걸'와 같은 대사가 빈번히 등장한다. 작품 내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아 그 한계에 아쉬움을 표하고, 영화 자체적으로도 그의 갈비뼈가 부려졌다는 대사를 빈번히 사용하거나, 팔에 깁스를 한 것을 보여주면서 히어로 영화에서 잘 볼 수 없었던 히어로의 신체적 아픔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히어로에 대한 응원과 공감으로 승화시키고, 힘이 강력해서 영웅인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영웅이기 때문에 영웅인 인물에게 그를 기대하게 한다.
- 마블이 생각했던 '영웅이란', 소를 잃은 후에야 설득의 시간을 가지다.
앞서 이야기 했듯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를 강력한 영웅일 때에는 멋지고, 힘쎈 인물처럼 묘사하지만, 슈트나 방패가 없을 때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굉장히 의도적이고,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심지어 영화의 종반부 마지막 액션씬에선 "레드 헐크"에게 붙잡혀 날개를 뜯기는 "캡틴 아메리카"는 영웅에게 좀처럼 들기 힘든 감정인 '불쌍함'이 생각났다. 영화는 영웅의 어쩌면 나약해보일 수 있는 장면을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단순히 힘이 세거나, 무술을 잘하거나, 최고의 기술력이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응한다. "스티브 로저스"의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의 캡틴 아메리카를 비교하면서 앞선 이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희망을 주었다면, 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는 대사를 통해, 본인들이 해석한 "캡틴 아메리카"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킨다. 또한 "캡틴 아메리카"의 불굴의 의지를 언급하면서 그가 영웅인 이유를 대사를 통해 설명하는데, 이 또한 관객들의 우려와 걱정을 아주 말끔하게 씻어내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블은 앞선 작품들에서 관객들의 걱정과 우려를 어찌 보면 이해해줬으면 하는 식의 태도를 갖췄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은 만들고 싶은 세계관을 만들테니 이를 그저 관객들이 이해하고, 따라만 와줬으면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서 말이다. 하지만 본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이해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을 설득시키고, 그들의 손을 붙잡고 세계관을 안내시켜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영화는 또한 이야기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의 플롯을 곁들였다. 영화 <이터널스> 이후 등장한 새로운 광물을 두고 세계 강국들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 협의하고, 조약을 맺으려 하며, 광물 때문에 전쟁까지도 이어질 뻔했던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을 제시하는데, 이는 실제 강국들의 석유와 석탄을 두고 경쟁했던 시기를 다루는 것 같아 서사의 깊이감이 더해졌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눈치싸움, 비자금을 사용했다는 정황 등의 이야기들을 히어로 영화에 접목시켰으며, 이를 "캡틴 아메리카"가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직접 투입하여 몸을 던져 싸우기도 하면서 동시에 작중 빌런이자 누구보다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인물의 입체적인 면을 덧붙여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이 묘미는 단순히 나쁜 이가 세상을 어지럽히자 조국의 영웅이 무찔러 해결한다는 데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기본 바탕에 '친구', '가족', '스파이', '신념과 의지' 등을 붙인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본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킥을 통해 친구를, "썬더볼츠 로스"를 통해 가족과 최종 빌런의 묘략에도 조국에 대한 신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늦은 것이다. 빨리 시작하길 바란다."라는 개그맨 박명수의 명언 모음집 중 하나가 생각난다. 어쩌면 마블은 정말 늦은 것일지 모른다. 너무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고, 팬 유망주들 또한 너무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나서지 못하고 있고, 평단마저 더이상 마블 영화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필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을 달리 생각한다. 잃었더라도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외양간을 고치는 점에 위안을 보낸다는 입장이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완벽히 장점만을 지닌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속도가 너무 빨랐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그 메시지들이 너무도 의도적이라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그 나머지 점들을 챙기지는 못했다는 장점이자 단점도 있었고, 영화의 종반부를 너무 성급하게 끝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럼에도 본 작품을 통해 그들이 드디어 외양간을 고치려는 의도를 볼 수 있었고, 스스로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곧 있을 최종장을 향해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 또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필자는 마블에게 희망을 걸고, 그들의 행보에 기대를 걸어본다.
어느날 친구가 필자에게 아직도 마블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냐고 물어본 적 있다. 이에 필자는 아직 머리를 밀봉하기 전이라고 대답했다. 아직 필자는 머리를 밀봉하고 싶지 않다. 마블의 그간 행보가 맘에 들어서도, 그들의 연이은 악수를 무조건 응원해서도 아니다. 그저 마블 스튜디오 작품엔 필자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고, 함께 성장해나갔다는 생각에 메타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블은 이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아직 필자와 같은 팬들이 남아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 팬들을 더이상 실망시키지 않아줬으면 한다. 그들의 행보를 꾸준히, 계속해서, 아직까지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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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을 벗어야 보이는 것들
슈렉
줄거리
자신만의 늪에서 아늑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초록 오거 슈렉.
평소처럼 느긋한 저녁을 즐기려는데, 동화 속 주인공들이 갑자기 슈렉의 늪에 쳐들어온다.
알고 보니 듈락의 통치자, 파콰드 영주가 그들을 모조리 쫓아낸 것.
완전 열받은 슈렉은 파콰드를 찾아가 늪을 내놓으라 따지고, 파콰드는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가면을 벗어야 보이는 것들
숨은 의미 찾기
‘오거’라는 단어는 슈렉 전과 후로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영화 개봉 시기가 2001년인데, 그 당시에 ‘괴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영웅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실로 과감한 시도였다.
“이해가 안 돼, 슈렉. 왜 오거처럼 안 했어?”
“넌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알려진 게 다가 아냐. 어디 보자, 오거는 양파와 같지.”
슈렉은 탑 꼭대기에서 피오나를 구출하고 계단을 뛰어내려오면서 서사시 따위는 사치라고 말한다. 그런 슈렉이지만, 왜 오거처럼 굴지 않느냐는 동키에게만은 ‘괴물은 양파다’라며 지리는 비유를 한다. 깊은 문학적 비유 따위를 알 리 없는 동키는 ‘냄새가 고약해?’라고 묻지만.
슈렉은 양파처럼 겉으로는 맵고 눈물 나게 하고 냄새도 나지만, 속을 까고 까고 까다 보면 정의롭고 여리고 순수한 면도 있다. 양파의 생김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으로 요상하다. 반으로 잘라내지 않는 한, 둥근 막을 완전히 벗겨내야만 그 속의 다른 겹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양파와 같은 슈렉의 매력, 참모습을 보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그런데 모두가 양파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괴물과 양파는 똑같이 겹이 있다는 슈렉에게 동키는 깐족거리며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을 덧붙인다. 물론 생양파도 물에 한 번 헹궈서 연어랑 홀스래디쉬 소스에 찍어 먹거나, 라이스페이퍼에 각종 야채와 넣어 월남쌈으로 먹으면 꿀맛이긴 하다. 하지만 생양파를 우적우적 씹어먹을 만큼 양파를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슈렉이 말한 ‘괴물의 겹’은 결코 파르페나 케이크와 같은 달콤한 음식에 비유될 수 없는 것이다.
양파는 속을 까보지 않아도 누구나 좋아하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들과는 다르니까.
“케이크는 다들 좋아해! 게다가 층으로 되어있지.”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슈렉이 양파라면 피오나는 케이크나 파르페 쯤일 것이다.
구태여 속을 까보지 않아도 모두가 달콤한 향기와 황홀한 생김새에 마음을 홀딱 뺏기고 마니까. 양파가 제대로 속을 까보지도 않고 판단해서 문제라면 케이크는 속에 얼마나 많은 겹이 있는지 아무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 속에 초코시트가 들었는지, 바닐라 시트가 들었는지, 딸기가 들었는지, 생크림이 들었는지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위험에 처한 공주를 구해서 결혼하고 왕이 되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남성형 신분 상승’ 이야기다.
피오나를 권력 취득의 ‘수단’으로만 여긴다는 점에서 파콰드나 성에서 불타 죽은 이름 모를 기사들은 전부 동일 인물이다. 동화 속에서 여성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것은, 남성이 주인공일 때든 여성이 주인공일 때든 마찬가지였다.
“밤과 낮에 따라 모습이 달라질지어다.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로 사랑의 참모습을 따를 때까지.”
그런 점에서 슈렉 속 마녀의 저주는 다른 마녀들의 저주와는 달리 참으로 특이하다.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가 ‘저주를 풀어준다’고는 하지 않는다. 피오나의 겹은 파르페나 케이크와 같다 했던가. 낮에 비치는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은 모두가 독점하려 달려드는 케이크의 겉모습이지만, 그 속에 들은 진정한 모습은 괴물이었다.
내면이 괴물이라고 해서 그것이 추하다거나, 못났다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울퉁불퉁 못난 괴물이라는 생김새는 피오나 내면의 아픔을 형상화 한 것이다. 공주라고 항상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아니다. 성에 갇혀 홀로 살면서 느낀 외로움과 슬픔, 슈렉은 그 상처마저도 피오나의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한 마디로, 슈렉은 케이크 속을 들여다본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슈렉이 피오나를 구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를 구해준 셈이다.
슈렉과 피오나는 아주 두꺼운 가면을 쓴 채로 서로를 만났다. 슈렉은 까칠하고 투덜거리면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숨겼다. 피오나는 '공주다운' 외모와 지위로 자신을 포장하며 아픔을 숨겼다. 가면은 자신을 가리는데에는 꽤나 효과적이지만, 상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면이 너무 두터우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면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게 자기 가면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했던가.
때론 그 가면을 벗어던져야만 진실되게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페르소나다.
슈렉이라는 영화를 두고 대부분은 괴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도전장이라고만 해석한다. 하지만 슈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 슈렉과 같지는 않는지 묻는다. 우리 내면에 겹겹이 쌓인 아픔과 상처들이 만들어낸 가면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슈렉처럼 깊숙한 늪지에 스스로를 가두고는,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며 거칠고 위협적인 가면을 쓴다. 사실 그 가면을 쓰는 이유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가? 물론 이 험난한 세상에서 뒹굴기 위해서는 맨 얼굴을 가리는 게 필수라고들 한다. 어쩔 수 없다고. 그렇다면 적어도 남들이 나의 가면만 보고 나를 판단한다고 말하지는 말자. 나 역시 남들을 그렇게 바라보았을 게 뻔하니까.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일단 나부터 가면을 벗고 마음을 열어보는 게 우선 아닐까.
어른에게 더 필요한 동화
감상평
어릴 적 엄마는 나의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수많은 애니메이션 DVD를 구매해서 끼니마다 틀어주었다. 정말 영어공부가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당연히 효과 없다. 아,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이번에 영화를 보니 나도 모르게 대사를 줄줄 읊고 있더라. 아주 허튼짓을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1시간 30분짜리 영화의 대사를 거진 다 외울 정도라면 얼마나 돌려봤을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아리라 믿는다. DVD 케이스 안에 꽂힌 무수히 많은 영화 중에서도 슈렉은 늘 새로운 영화였다. 나 역시 그 영화를 볼 때는 어린아이였으므로, 사회가 규범처럼 내밀던 진부한 공주와 왕자 이야기가 정답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어린아이의 생각을 일깨워준, 그야말로 인생 영화라 할 수 있겠다.
나이를 먹고 슈렉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어릴 땐 저녁밥 먹을 때마다 틀어보던 영화였다지만, 이제는 나도 모르게 세상과 벽을 쌓고 싶을 때,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보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사진 참조 : 네이버 영화 '슈렉'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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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만난 두 토르, 로맨스를 완성하다
일생에 한 번은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그것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과 이별의 순간을 맞은 이후에 그것으로 인한 공허함이 마음을 채운다. 그 공허함은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게 만든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또 할 일을 해나가지만 과거와 같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지난한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정리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건 마음의 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짝이라고 믿었던 사랑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본 후에나 가능하다.
이별은 마음속엔 늘 채워지지 않았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토르> 시리즈에서 연인 관계였던 토르(크리스 햄스워스)와 제인(나탈리 포트만)은 서로 잘 맞는 커플이었다. 하지만 토르는 인간을 뛰어넘는 신적인 존재였고 제인은 조금 똑똑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둘은 어느 시점 이후 관계를 정리한다. 하지만 이별 후 이들은 과거의 상대방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토르는 세상의 반이 죽어나가는 극한의 경험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자신을 가두었고, 제인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다. 토르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제인은 자신에게 슈퍼히어로 같은 극한의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함을 잃었다.
토르와 제인의 재회를 보여주는 네 번째 단독 영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토르와 제인이 다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마블의 1세대 히어로인 토르는 이번 영화가 네 번째 시리즈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는 다르게 가장 많은 단독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1편과 2편에 등장했던 제인 캐릭터를 3편에는 등장시키지 않았다가 이번 4편에는 다시 등장시키게 되는데, 그래서 이번 영화에는 로맨스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다시 포함되었다. 3편이 유머와 경쾌함을 극대화시켰던 영화라면, 이번 4편은 유머와 경쾌함은 조금 톤을 낮추고 로맨스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영화 속 다시 등장하는 제인은 암 말기로 건강을 잃은 상태다. 반면 토르는 여전히 심리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확신을 하지 못해 명상을 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도우면서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시기에 제인은 지구에 있는 아스가르드 마을에 있는 망치 묠니르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 그 묠니르를 얻게 된다. 적어도 묠니르를 들고 영웅으로 활동할 때는 그에게 아픈 모습은 없다. 활기차고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망치를 놓는 순간 다시 말기 암 환자의 핏기 없는 모습이 나온다.
제인과 토르가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영화의 빌런인 고르(크리스찬 베일)가 하려는 일 때문이다. 누군가와 거래하여 온 세상의 신을 죽이고 다니는 빌런 고르는 자신의 딸이 죽은 이후 신들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그가 신들을 죽이는 목적은 결국 우주의 절대적 존재인 이터널과 소통하여 죽은 딸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그의 목적에 따른 행동은 토르를 지구로 불러들이고 과거 연인이었던 제인과 다시 만나게 만든다. 그리고는 이들이 다시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기능적으로만 활용되는 빌런 고르
영화는 빌런 고르가 가지게 되는 분노에 대해 이해시키려 하고 그가 신들을 죽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긴장을 만들어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가 죽이려는 신들의 모두가 타락한 것은 아닐 것이고 그 방법 자체도 너무나 폭력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가 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납치하여 토르를 협박하는 장면은 딸을 잃은 아빠가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고르가 왜 빌런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의 사연을 먼저 보여주고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가진 설득력은 영화의 말미 아이들을 납치하고 협박하면서 없어져버린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빌런 고르는 단지 제인과 토르를 만나게 하는 기능적인 역할로 보인다. 마블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전체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봐도 고르의 역할은 매우 한정적으로만 소비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렇게 빌런을 소비하면서 영화는 마이티 토르가 된 제인과 토르가 만나면서 벌이는 로맨스에 좀 더 집중한다.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보여줬던 재치와 유머들이 여전히 이번 영화에도 포함되어 있다. 토르의 우스꽝스러운 말투와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행동은 제인과의 재회 순간에 활용되며 독특한 웃음을 선사한다. 또한 두 토르가 같이 전투를 벌이면서 서로 도와주는 장면은 꽤 완벽해 보인다.
그렇게 힘을 얻어 마이티 토르가 된 제인과 토르는 비슷한 힘을 가졌고, 서로 만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다. 결국 이 영화에서 이들이 다시 만나 서로가 겪은 혼란과 정신적인 성장을 서로 확인하고 진정한 사랑을 발견해 낸다. 과거 <토르> 1편과 2편에서의 제인은 상황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토르에 의지해야 했지만 이번에 다시 등장한 제인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토르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좀 더 주도적인 캐릭터로 거듭나게 된다.
유머는 줄이고 로맨스는 늘리고
사실 토르라는 캐릭터는 초기 마블 세계관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영웅은 아니었다. 케네스 브레너 감독이 연출했던 <토르 천둥의 신>은 너무 어둡고 심각한 스타일의 영화였고, 마블 특유의 경쾌한 느낌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 영화였다. 알랜 테일러 감독으로 연출자를 변경하고 완성한 <토르 다크 월드>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는 너무 심각하고 어두웠다. 영화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마블은 다시 감독을 타이카 와이티티로 바꾸고 <토르 라그나로크>를 내놓는다. 과거 토르 시리즈와 다르게 유머와 경쾌한 음악이 들어간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로 성공적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는 3편의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다시 연출을 맡았다. 유머와 경쾌한 음악이 포함되어 있지만 전편에 비해서는 조금 강도를 낮췄고 로맨스를 추가시키면서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시도가 그렇게 성공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머와 로맨스가 균형 있게 들어가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애매한 느낌이 든다. 빌런 고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도 적절하게 살아나지 않는데 긴장감이 올라갈 때마다 유머나 로맨스 장면이 이어지면서 그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결국 일생에 한 번은 만나는 완벽한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토르와 제인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재회와 러브스토리가 영화의 마지막 전투까지 이어진다. 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확인한 이후 보여주는 각자의 모습은 심리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토르의 성장과 치유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마블 영화지만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분위기다. 토르가 던지는 유머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조금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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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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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삼칠 리뷰 - 이름을 빼앗긴 소녀, 지옥에서 희망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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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발견한 가장 빛나는 만남”
열아홉 윤영은 엄마와 단 둘이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얼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장에서 일하는 청각 장애가 있는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
착한 마음과 성실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뜻밖의 사고는
윤영을 피해자에서 살인자로 돌변시켜 교도소에 몰아넣고
‘윤영’이라는 이름대신 ‘이.공.삼.칠.’이라는 수감번호로 불리게 만든다.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10호실 동료들은 윤영을 지켜주기 위해 희망의 손길을 내미는데…
반드시 돌려줄게 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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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주 최신 개봉영화(베놈2, 졸트, 실: 인연의시작, 십개월의 미래, 푸른호수)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0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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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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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메인 예고편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군말 없이 집으로 내려온 아들은
엄마가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구슬픈 노래를 담담하게 듣는다.
엄마와 아들,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바람이 되어 안개를 걷어갈 수 있을까?
때로는 지긋하고 때로는 애틋한 엄마와 아들,
우리 시대 가족 이야기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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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화인가 스캔들> 메인 예고편
누구를 믿을 것인가 그들의 모든 것이 우아하게 폭로된다 [화인가 스캔들] 7월 3일 디즈니+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