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5 23:38:54
[BIFF 데일리] 이 여정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영화 <그랜드 투어> 리뷰
DIRECTOR. 미겔 고메스(Miguel GOMES)
CAST. 크리스타 알파이아테(Crista ALFAIATE), 공살로 와딩턴(Gonçalo WADDINGTON) 외
PROGRAM NOTE.
1917년 양곤. 영국인 공무원 에드워드는 약혼녀 몰리와의 결혼을 앞두고 도망친다. 그래도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 몰리는 에드워드의 뒤를 쫓는다. 영화의 제목 <그랜드 투어>는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 또는 일본에서 끝나는 아시아 투어 여정에서 기인한다. 미겔 고메스는 2019년 그랜드 투어를 시작해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에서 영상을 찍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중국의 국경이 폐쇄되자, 감독은 스태프와 포르투갈로 귀국한다. 영화의 일부는 로마와 리스본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중국의 영상은 어떻게 확보했을까? 미겔 고메스는 중국 현지에 촬영팀을 꾸린 뒤, 포르투갈에서 원격으로 촬영을 감독했다. (시차 때문에 매일 밤 자정에 작업을 했다). <그랜드 투어>의 기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연인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으며 미겔 고메스는 자유롭고 총체적인 스펙터클을 창조한다. 영화에는 수확, 종교 축제, 오토바이 행렬 등 현대 아시아의 모습을 담은 매혹적인 아카이브 이미지, 그리고 주인공이 안개가 자욱한 강을 건너거나 매혹적인 밤의 숲을 가로지르는 모험 소설 속 상상의 아시아가 공존한다. 미겔 고메스는 <그랜드 투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영화에는 국가, 성별, 시대, 현실과 상상, 세상과 시네마 등 분리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투어가 있다. 나는 무엇보다 관객을 이 투어에 초대하고 싶다. 이것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믿는다.” (서승희)

그랜드 투어는 본디 17세기 중반부터 유럽 상류층 자제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약 2-3년을 들여 신문물을 익히던 여행이다. 가정교사를 대동한 젊은 남성 귀족이 당시 유럽 문화의 최고 중심지였던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계속해서 발달되고 구시대의 계급 구조 또한 변화되면서, 그 의미가 점차 퇴색된다. 19세기가 되면 대륙횡단철도를 포함한 각종 철도, 수에즈 운하 등이 차차 개통되면서 <80일간의 세계 일주>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배경이 된다.
20세기에는 제국주의의 광기가 시작되고, 이제 평범한 유럽인들도 식민지 관리를 위해 아시아로 향한다. 기이했던 이 시절은 문학의 역사에도 독특한 족적을 남긴다. 인도 벵골 지역에서 아편국 직원의 아들로 태어나, 추후 영국 본토 생활을 그만두고 근무지를 버마(미얀마)로 신청한 인도제국 경찰관, 조지 오웰은 <버마 시절>에 그 시절의 축축한 야만을 기록했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베트남 사이공 공무원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인도차이나 반도’ 곳곳을 다니며 살았고, 이는 <연인>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 세계에 계속해서 묻어난다.
2019년, 유럽의 한 영화감독 또한 행선지가 비슷한 여정을 꾸린다. 포르투갈 출신의 미겔 고메스 감독이 영화 <그랜드 투어> 촬영을 시작한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에드워드는 1910년대 버마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7년째 약혼자 상태인 몰리와의 결혼을 코앞에 두고, 영국에서 찾아오는 예비 신부를 피하고 싶다며 갑작스러운 도주 길에 오른다. 범죄를 저질러도 저렇게 열심히 도망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저 도망은 대체 왜일까… 싶은 이 여정은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베트남을 거쳐 일본, 중국에까지 이른다. 이 여정은 에드워드의 도주를 따르는 단단한 의지의 여성, 몰리의 행적을 통해 한 번 더 펼쳐진다. 즉 이 영화 스토리의 골자는 서로 겹쳐지기도 달라지기도 하는 두 개의 여정이다.

영화 속 여정들은 17세기의 ‘그랜드 투어’와도, 19세기의 ‘80일간의 세계 일주’와도 그다지 닮지 않았다. 20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제국주의의 광기와도 닮지 않았다. 그 닮지 않은 모양새를 아무 설명도 필요 없이 미장센으로 구현한다. 꿈을 비롯한 일부 장면을 제외하고 모두 흑백인데, 그 안에서 각지의 아름다움이 빛난다.
20세기를 재현할 때에는 환상적이다. 흑백이라 더 어렴풋하여 아름다워 보인다. 희뿌연 안개 낀 정글을 가로지르는 기찻길, 거기서 들리는 새 소리, 당시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들던 싱가포르의 호텔, 방콕의 파티 현장 등은 모두 동양인 보기에 ‘적절’하다. 20세기 동남아 내 왕족의 부를 고스란히 재현하여 노골적으로 비춰 보이는 오리엔탈리즘을 피하고, 보는 동양인 마음 복잡스럽게 만드는 일 없이, 단순하게 영화를 영화로서 아름답다 느낄 수 있는 선을 적절히 지킨다.

소설을 읽어주는 느낌이 드는 내레이션 또한 국경선을 넘길 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와 목소리로 새로이 펼쳐진다. 화면에는 현재 그 도시의 광경이 드러난다. 일본에 도착한 에드워드가 식당에서 마주한 일을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동안, 오사카의 작은 식당에서 국수인지 우동인지를 먹는 손님들의 모습과 음식을 내는 사장님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20세기 이야기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객석에 있는 나의 동시대성을 밟고 서게 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라도 나올 것 같은 검박한 장면들이 겹쳐 흘러간다. 거위 알을 줍고 야자 열매 껍질을 벗기는 농부, 연꽃을 수확하여 팔기 좋게 단으로 묶는 여성, 오토바이와 차량이 줄지어 다니는 도로의 모습… 무엇보다도 감독이 꽤나 감흥을 깊이 받은 듯한, 동남아 각국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전통 인형무가 여러 차례 나온다. 덕분에 관객은 20세기와 21세기를 골고루 오가며 독특한 여행을 한다. 그러는 동안 내내 궁금해진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저 정도로 싫으면 차라리 결혼을 파하든지 대체 왜 저렇게까지 도망가는 것일까?

에드워드의 여정은 행선지를 못박아둔 여행이 아니라, 탈출이라는 목적만을 못박아둔 여행으로, 목적을 위시하여 행선지는 계속해서 추가된다. 이는 에드워드의 여정뿐 아니라 그 뒤를 따르는 몰리의 여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은 길 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유 모를 이 선형적 여정의 끝으로 점차 달려간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서, 관객은 감독이 준비한 선물을 맞이한다. 이 선물은 거울처럼 관객을 비추며, 관객에 따라 다른 답을 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여정에서 ‘왜’에 집착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뾰족한 물음표를 보고 팔짱 끼고 본 영화가, 팔짱 끼고 미간을 찌푸린 내 머리 위로 시원하게 내리치는 죽비 같았다.

모든 영화는 감독이 내놓는 상차림이다. 어떤 영화는 든든하고 친근한 밥상 같고, 또 어떤 영화는 조금 까다로운 미식의 세계 같다. 이 영화는 자기 실력에 자부심을 가진 요리사가 화려하게 꾸며 올린 테이블 같았다. 곱씹을수록 더 매력적인, 하나하나 더 뜯어 알고 싶은 그런 상차림. 영화를 본 직후보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만족스러운 상차림이었다.
10/04 20:00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상영코드 083)
10/09 13:30 CGV센텀시티 1관 (상영코드 457)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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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3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주 역시, 정말 많은 기대작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고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4월 세 번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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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앵커
ⓒ 네이버 영화
개요: 스릴러 | 한국 | 111분
감독: 정지연
출연: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 등
개봉: 2022.04.20
배급: 에이스메이커
줄거리
생방송 5분 전,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천우희)에게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며 죽음을 예고하는 제보전화가 걸려온다. 장난전화로 치부하기에는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세라’. 진짜 앵커가 될 기회라는 엄마 ‘소정’(이혜영)의 말에 ‘세라’는 제보자의 집으로 향하고 제보자인 ‘미소’와 그녀의 딸의 시체를 목격한다.
그날 이후, ‘세라’의 눈앞에 죽은 ‘미소’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건 현장에서 미소의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인호’(신하균)를 마주하게 되며 그에 대한 ‘세라’의 의심 또한 깊어진다.관전 포인트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 천우희가 <앵커>의 타이틀롤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는 소식에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천우희 배우는 런칭쇼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며 장르적인 재미를 느끼고, 범인이 누구일지 추측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길 추천하였습니다. 영화를 본 후, 서로의 추리를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
ⓒ 네이버 영화
개요: 로맨스 | 일본 | 121분
감독: 신조 타케히코
출연: 히로세 스즈, 야마자키 켄토 등
개봉: 2022.04.20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줄거리
모노톤의 인생을 살고 있는 천재 피아니스트 ‘코세이’ 어느 날 바이올리니스트 ‘카오리’를 만난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피아노를 치지 않는 ‘코세이’에게 ‘카오리’는 콩쿨에서 함께 연주해 줄 것을 부탁한다.
관전 포인트
일본의 하이틴 스타인 '야마자키 켄토', 그리고 일본판 <써니>에서 나미 역을 맡은 '히로세 스즈'가 주연배우로 출연하는 <4월은 너의 거짓말>.
영화 제목처럼 꽃이 만개한 4월에 연인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일 것 같습니다.
세븐틴 파워 오브 러브 : 더 무비
ⓒ 네이버 영화
개요: 다큐멘터리 | 한국 | 115분
감독: 오윤동
출연: 세븐틴
개봉: 2022.04.20
배급: CJ 4DPLEX, CGV ICECON
줄거리
5 연속 밀리언셀러, 빌보드 200 2주 연속 차트인, 오리콘 차트 정상을 꿰차며 매번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글로벌 아티스트 SEVENTEEN의 첫 번째 영화!
풍성한 퍼포먼스부터, 13인 멤버들의 속마음 인터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캐럿과 함께 그려나갈 미래를 담은 다채로운 코멘터리까지 전부 담았다!
관전 포인트
<블랙핑크 더 무비> <몬스타엑스: 더 드리밍>에 이어 오윤동 감독의 세 번째 아이돌 다큐멘터리 <세븐틴 파워 오브 러브 : 더 무비>.
이 영화는 2D 뿐만 아니라 스크린X, 4DX, 4DX Screen 등 다양한 포맷으로 공개하기 때문에 더욱더 실감 나는 콘서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스트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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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액션 | 미국 | 111분
감독: 애덤 니, 아론 니
출연: 산드라 블록, 채닝 테이텀, 다니엘 래드클리프 등
개봉: 2022.04.20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줄거리
전설의 트레저를 차지하기 위해 재벌 페어팩스(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유일한 단서를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로레타(산드라 블록)를 납치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비지니스 관계로 사라진 그녀를 찾아야만 하는 책 커버모델 앨런(채닝 테이텀)은 의문의 파트너(브래드 피트)와 함께 위험한 섬에서 그녀를 구하고 무사히 탈출해야만 한다.
관전 포인트
<로스트 시티>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며, 한국에서 이 작품을 기다리는 관객이 늘어났는데요. 개봉 전 프리미어 때 외신들의 극찬을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작으로 등극하였습니다.
할리우드 대표 배우인 산드라 블록, 채닝 테이텀, 다니엘 래드클리프, 그리고 브래드 피트가 특별 출연을 하면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중경삼림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홍콩 | 102분
감독: 왕가위
출연: 임청하, 양조위, 왕페이, 금성무 등
개봉: 2022.04.20
배급: (주)디스테이션
줄거리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술집을 찾은 경찰 223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술집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마약밀매상.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고 있는 경찰 663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쥔 단골집 점원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
관전 포인트
많은 이들의 인생 작품으로 꼽히는 <중경삼림>은 1995년 개봉 이후 2번 재개봉을 하였고, 올해도 재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큰 스크린으로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공기살인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08분
감독: 조용선
출연: 김상경, 이선빈, 윤경호 등
개봉: 2022.04.22
배급: TCO(주)더콘텐츠온
줄거리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 공기를 타고 대한민국에 죽음을 몰고 온 살인무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그들의 사투. 증발된 범인, 피해자는 증발되지 않았다!
관전 포인트
<공기살인>은 실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다룬 영화입니다. <공기살인>은 단순히 사회 고발로 그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참사의 해결책은 우리 모두의 관심임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OTT 공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79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등
공개: 2022.04.20
스트리밍: 왓챠
줄거리
누가 봐도 아름다운 부부 가후쿠와 오토.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말없이 묵묵히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미사키와 오래된 습관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눈 덮인 홋카이도에서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보게 된다.
관전 포인트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카데미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였는데요. 이외에도 95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고, 그중 73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였습니다.
약 3시간의 러닝타임을 지닌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평이 많은 작품입니다.
아이스 에이지 : 스크랫 이야기
ⓒ Rotten Tomatoes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6회
감독: 크리스 웨지
출연: 캐리 월그렌 등
공개: 2022.04.20
스트리밍: 왓챠
줄거리
<아이스 에이지>의 검이빨 다람쥐 '스크랫'이 주연을 맡은 6편의 완전히 새로운 단편 애니메이션.
관전 포인트
2002년 처음으로 선보인 <아이스 에이지>가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나왔던 총 4편의 속편도 모두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기록한 최고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다람쥐 '스크랫'의 이야기를 다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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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 / Ghostbusters: Afterlife, 2020
영화의 제목만으로 이 영화를 안다는 건 저처럼 나이를 많이 먹었거나 많은 영화들을 봐왔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동명의 노래를 들어보신다면 '어! 이 노래가 이 영화에 나오는 거였어?'라고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는 84년에 첫 선을 보였고, 89년 2편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흥행이 전혀 안되건 아니었습니다. - $296,578,797과 $215,394,738로 각각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성적을 기록했으나 수뇌부의 기준에는 못 미쳤나 봅니다.
그리고 2016년 기존 남성 캐릭터들을 여성으로 바꾸며, '리메이크'를 강행했지만 평가와 흥행이 실패하며 그대로 '유령'이 돼버리고 맙니다.하지만, 이대로 멈추기에는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이에 영화는 "제이슨 라이트만"감독을 선임하는데, 특이사항이라면 아버지가 "이반 라이트만"으로 대표작이 <고스트버스터즈>라는 것이죠.
이 소식에 '낙하산'이라는 말도 나오겠지만, <주노>를 시작으로 <인 디 에어>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아왔으며, 최근 "샤를리즈 테론"의 <툴리>까지 흥행은 아쉬워도 실력을 인정받은 그이기에 때아닌 기대를 끌어모았는데요.
그렇게, 아들이 만든 시리즈의 3편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재밌는 건 평론가의 반응과 관객들의 반응이 상반되는데, 이는 16년 버전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의 감상을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한 남성은 황급히 집으로 들어오지만, 끝내 목숨을 잃고 마는데요. 이에 연락을 받은 딸의 가족은 남겨진 그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시골이고, 외진 곳에 있는 만큼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던 가운데 '피비"는 집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물건을 발견하고, 지하실을 찾게 되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고스트버스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내가 누군지 알겠니?
1. 30년도 더 된 영화들을 찾아봐야 하나요?
앞서 말했듯이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시리즈'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이는 즉슨, 고정 관객층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런 시국일수록 이런 영화들의 개봉은 불가피하지만 좋은 선택지로 보이나 문제는 전작 <고스트버스터즈>가 1984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그나마, 빠른 최근 작이 89년에 나온 작품이니 빨라도 32년 전에 나온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2016년에 나온 영화가 있지만 이는 전혀 상관없는 작품이 되었으니 이번 <라이즈>를 보려면 30년도 넘은 영화를 찾아봐야 하니 높디높은 진입장벽에 해당 관람을 포기하는 팬들도 존재할 겁니다.
무엇보다 30년이나 넘은 영화인만큼 요즘 같은 매끈한 시각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죠.그럼에도, 찾아봐야 할까?
저는 이에 "굳이, 안 보셔도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할 겁니다.
이런 이유에는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가 '시리즈'에 속하지만 전작들과의 텀이 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를 영화에서도 하나의 과거담으로 적용시켜 역으로 "궁금증"을 자아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활용시킵니다.
여기에 어린 주인공들의 성장을 "귀신"과 접목시킨 <그것2017-19>의 사례대로 밟아가니 어색함은 느껴지지가 않아 하나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합니다.2. 그래도, 시리즈를 찾아본다면 달라질 거예요.
다만,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일부 개연성이 아쉬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극 중 숨겨진 "고스트 트랩"을 발견하는 우연성 짙은 장면이나 보지도 못한 "먹깨비"의 존재와 등급을 유추하는 장면은 그러한데요.
특히,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의 러닝 타임은 124분으로 앞선 107분의 1편과 2편보다 더 많은 분량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미스플레이"입니다.
이런 이유는 앞서 말한 길어진 시리즈의 텀을 정리하는 것과 새로이 소개할 "피비"와 같은 아이들의 설명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시리즈를 챙겨봤어야 하나?"싶은 후회도 생기겠지만, 이는 예습을 못한 우리의 잘못은 아니잖아요.그래도, 찾아본다면 달라질 거예요.
이렇게, 본다면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다소 평범한 범작에 그치겠지만 앞선 "시리즈"들을 챙겨본다면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겁니다.
앞선 84년 89년에 나온 영화의 분위기는 마냥 어둡지만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귀신"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영화는 내내 코믹스러우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는데, 이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마시멜로맨"이죠.
여기에 "먹깨비"의 존재도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보다 먹는 것에 초점을 두었으니까요.
근데, 앞서 <그것>시리즈를 언급한 이번 <라이즈>에서는 그 분위기가 정반대로 흘러나갑니다.3. 기술의 발전에 비례하는 무서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펼쳐지는 "유령"과의 추격전과 대결부터 영화는 이전과 다른 다크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런 이유에는 "점프 스케어"와 같은 공포 영화의 방식을 일부 차용한 것도 있지만, 보여주는 비주얼의 발전이 크더군요.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가 "고저"와 '도사견'같은 하수인들입니다.
84년 영화에서는 기술의 한계로 옷과 섬광 효과, 그리고 점토와 같은 질감으로 표현되어 어설픈 감이 없지 않는데요.
이제는 강산도 3번이나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그 비주얼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발전하는 기술만큼 무서워진다.
앞서 말했듯이 '도사견'의 모습을 한 하수인들은 그 자체만으로 제법 무섭습니다.
특히, 마트에서 보여주는 추격전은 저라도 "꺄아!"를 극장에서 떠나가라 할 정도로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고저"도 84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성의 모습과 남성의 목소리는 외양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 만큼 완벽했으니까요. (이에, '정치적 올바름'도 나오죠)
그런 점에서 이번 <라이즈>에서는 외양에 있어 합격점이나 그 안에 있는 이야기는 84년 영화에서 조금 더 뻗어나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신을 봉인한 "고스트 버스터즈"와의 관계가 존재하나 그를 부활시키려던 시장의 이야기는 정작 풀어내지 못했네요.4. 다음 고스트 버스터즈는 언제쯤?
그럼에도,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세대교체"라는 시점에서 바라보면 만족스러운 영화입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세대교체"는 정말 어려운 숙제인 것이 '나이'를 빌미로 삼자니 당장의 성적이 눈에 아른거리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는 "로다주가 아닌 아이언맨이 맞나?'라고 팬들의 반발심만 살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다음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을 기대케한다는 것은 이전 16년 작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던 것일까요?무릎을 꿇어 맞춰준다 한들...
이번 <라이즈>와 16년 작품, 모두 전작의 주인공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은 맞지만 보여주는 위상은 정반대입니다.
<라이즈>의 경우. 공식적인 후속작인 만큼 악당 "고저"와의 관계부터 보여주는 힘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16년의 경우. 극의 전개에 아무런 영향도 없는 캐릭터들로 축소되니 두 영화 새로운 주인공들을 위한 의도된 푸시라고 한들 느껴지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분명히,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일어나라"라는 부제만큼 쓰러진 팬심을 다시 기립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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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지만 무심하게 잔인하고 강력한 자연에게 바치는 한편의 시이자 애찬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 감독의 이름을 들어본적 있는가, 들어본적 있다면 당신은 상당한 수준의 씨네필일 것이다.
사실 모른다고 해도 섭섭해할 필요는 없는것이, 예전부터 영화를 봐온 씨네필이 아닌 이상 잘 모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번에 이야기할 영화, <대자연>은 아르타바즈드 펠레시안 감독의 무려 27년만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인 <생명>, <끝>, <우리 세기> 같은 작품들은 90년대, 80년대 작품인데다가 흔히 보기 힘든 단편이며, 시대가 시대인지라 한국에 초청된 것도 벌써 한자리대의 전주국제영화제이다.
그러나 "간격 몽타쥬 Distance Montage"의 창시자로 불리는 의미있는 거장이며 장 뤽 고다르 감독이 "영화의 신"이라 칭할 정도로 존경을 표할 정도의 반드시 알아야 할 거장 감독이다.
이번에 정말, 아주 오랜만의 복귀작인 대자연을 통해 그의 이름을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자연은 잔잔하고 고요한 자연의 순간에서 시작하여, 강력한 자연의 힘에 저항없이 무너지는 인류의 문명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을 무릎꿇게 만든 자연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다시 잠잠해지고, 여명이 밝아오며 이러한 자연의 연속성을 알 수 있다.
본 영화는 대사가 단 하나도 없이, 흑백의 기록영상들과 음악으로만 이루어져있다.
다만 단순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닌, 마치 자연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과 그에 맞춰진 자연의 모습은 정말 놀라운 조화를 일으킨다.
필자는 사실 이번 기회에 본 감독의 작품을 처음 접한터라 그가 창시한 "디스턴스 몽타주"라는 게 뭔지 잘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어떤 느낌인지 알게되었다.
하지만 솔직히말하자면, 1시간 내내 계속 이렇게 진행되다보니 중반부부터 체력적 힘듦은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스로 말한 "영화적 언어"에 대한 위대함과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던 62분이었다.
장 마리 스트라우브 감독의 영화 중 "아르테미스의 무릎", 레우코와의 대화 중 한 대사를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짓고 싶다.
자연에 대한 예찬이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같아서이다.
“당신은 이런 이를 본 적이 있나요? 하나의 존재 안에 수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그런 여인을. 그리하여 그녀의 모든 몸짓과 그녀를 향한 모든 생각이, 당신의 대지와 하늘, 말과 기억들, 당신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날들, 미래들, 확실한 것들, 그리고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 없을 대지와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을 무한히 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이를 본 적이 있나요?”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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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비밀이고, 이 역시 <비밀일 수밖에>
비밀일 수밖에 Homeward Bound, 2025
한국, 드라마 외, 113분
감독: 김대환
물론 비밀이고, 이 역시 <비밀일 수밖에>
출처: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비밀은,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숨기지 않을 수 없기에 탄생한다. 평생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언젠가는 반드시 공개된다는 전제하에, 비밀은 비로소 비밀이 된다. 비밀을 만든 사람도, 쫓는 사람도 비밀이 비밀로 숨죽일 수 있는 시간을 가늠할 순 없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밝혀질지 모르는 예측 불가한 고유 성질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따라서 사람들은 비밀을 간직하거나, 이용한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이용한다. 가깝고도 먼 가족이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각각의 소우주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거대한 우주로 통합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치명적인 비밀을 발견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분출되는 참을 수 없는 날것의 감정들까지, 영화는 분열 직전인 가족을 강제로 뒤엉키게 해 기어이 끝을 보게 한다.
출처: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춘천에서 교직 생활 중인 ‘정하’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아들 ‘진우’와 그의 연인(제니), 제니의 일방적인 결혼 통보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부모(문철과 하영), 정하의 동거인 ‘지선’까지, 이들은 서로에게 반가우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내뿜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중심엔 진우와 제니가 있다. 진우는 어학원 사무직을 그만두고 요리 유튜버로 활동할 생각이고, 제니는 부모에게서 완전한 정서적 독립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소망은 가족들에게 쉽사리 닿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일로 갑작스럽게 집을 게스트 하우스로 내주게 된 정하에겐 암 수술과 지선과의 관계가, 세탁소 사업 중인 제니 부모에겐 사업 자금 부족 문제와 가족 문제가 비밀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인들이 가진 비밀을 지키면서 자식에게 바라는 바를 요구하느라 정신없다. 특히 정작 해야 할 말을, 다른 화두에 슬그머니 얹어 빙빙 돌려가며 얘기한다. 시간을 허비하는 게 분명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잠깐만이라도 후환을 덮어놓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믿으면서. 그 결과 유일하게 수면 위로 드러난 부모와 자식의 동상이몽과 사돈 간의 기싸움은 피로감을 유발한다. 아무리 어쩔 수 없다지만, 진척 없는 사건은 지루할 수밖에 없으니까. 감독은 해법으로 인물들의 대화 속에 웃픈 요소들을 집어넣었다. 시한폭탄(비밀)을 가진 인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뭉치고 해체되길 반복하며 코믹함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과정은 분명 작품만이 가진 특색이다. 다만 이따금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아슬아슬하게 흔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출처: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비밀일 수밖에>에는 말하는 입만 있고 듣는 귀는 없다. 심지어 영화는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눈을 더 크게 뜨고, 더 귀 기울여 들어주길 원한다. 심지어 모든 인물이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 본인의 가족이 아닌 지켜보는 제삼자, 우리를 붙잡고 열심히 호소한다. 문철의 기막힌 뻔뻔함도, 정하의 한없는 인내심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끊임없이 전달하려 애쓴다. 인물뿐만이 아니다. 인물의 외적‧내적 특징은 물론 춘천이란 배경, 이야기 진행 방식, 편집점까지 전부 내담자로 변신해 카메라를 뚫고 나오려 한다. 가족의 이해보다 관객의 이해가 더 급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시한폭탄이 터지고 인물들의 감정이 이성과 함께 폭발한다. 그들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참아왔던 비난을 터트리고, 거대한 해일로 덮쳐오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멀리 도망친다. 그리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인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비밀이 폭로 당함으로써, 가족 간의 진정한 소통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오직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거짓말과 진심 그리고 이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강조했다. 블랙코미디로 가족이 가진 명암을 표현하며, 끊임없이 가족의 진정한 힘과 의미를 전달하려 애썼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희생과 맹목적 지지를 강요하고, 걱정과 미안함은 숨기기 바빴던 이들이 마침내 거울 속 자신을 보듯, 가족을 이해하게 된다는 따뜻한 결말, <비밀일 수밖에>가 원한 끝이 분명하다.
출처: 영화 <비밀일 수밖에> 스틸컷
가족이기에 비밀일 수밖에 없고,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또 결과적으론 같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영화는 마지막을 상처가 잘 봉합된 해피엔딩으로 그렸지만, 지켜본 자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막 겨우 첫걸음을 뗐을 뿐이란 걸.
물론 이 역시 비밀이고, 비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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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요 콜텍 노동자, ‘해결’된 줄 알았어요
4464일. 콜텍 해고 노동자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투쟁하며 길가에서 보내기엔 너무도 긴 시간이다. 이 길고도 긴 시간이 지나서야 회사는 ‘유감’을 표했고, 3명의 조합원에 대한 명예 복직, 25명의 조합원에 대한 보상금을 약속했다. 2019년 4월의 일이다. 2007년 부당해고 후 13년이 지난 때였다.
2010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을 보면, 콜텍 박영호 사장이 기존의 인천 공장을 ‘노조가 점령한 공장’이라 비난하며 새로 지은 대전 공장을 ‘꿈의 공장’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재춘언니〉의 주인공 임재춘 씨가 일했던 곳은 ‘꿈의 공장’이었다. 임재춘 씨에게 공장은 그 '이름값'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무려 30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다.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임재춘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200~300개의 기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회사가 기타를 배우지 못하게 해 연주할 줄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그에겐 한때 세계 기타 생산량의 30%를 점유했던 콜텍은 자부심 그 자체였다. ‘꿈의 공장’에서 노동하며 두 딸의 아버지이자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동안 쌓은 자부심이 허탈함, 분노, 좌절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공장 운영을 무기한 중단한다는 통지문 한 장에 30년 세월이 부정당했다. 자그마치 30년이다. 부당해고를 당한 임재춘 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빼앗긴 일상과 꿈을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투쟁 3년 차에 제작된 〈꿈의 공장〉과 13년 투쟁 기록을 담은 〈재춘언니〉를 비슷한 시기에 함께 본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임재춘 씨를 비롯한 해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이 13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이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임재춘 씨는 투쟁이 1년 안에 끝날 거라 예상했다 한다. 허망할 정도로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꿈의 공장〉에는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 십수 명 나오는 데 반해, 〈재춘언니〉에는 임재춘 씨를 포함해 세 명의 해고 노동자만 남았다는 데서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재춘언니〉가 천착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투쟁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는 감독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해고 노동자들이 그 긴 시간을 무엇으로 버텨왔는지를 조명한다.
강한 투쟁력만큼이나 감성적인 요소도 중요하다는 게 〈재춘언니〉의 대답이다. 여장을 하고 〈햄릿〉의 오필리아를 연기하기, 천막 농성장 근처에 텃밭 가꾸기, 투쟁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시든 방울토마토를 보며 서운해하기, 성별‧나이를 불문하고 연대 방문자와 수다 떨기, 표정만 보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 알아채기. 모두 중년을 훌쩍 지난 남성 임재춘 씨가 한 일이다. 그는 이렇게 13년을 버텼다. 농성장을 떠난 동료 노동자들을 이해한다는, 자신도 이제 투쟁은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던 임재춘 씨. 그는 나이와 성별에 어울리지 않는 관계 맺기 방식으로 ‘언니’라 불리며 자기 자신과 동료를 챙겼다. 나는 임재춘 씨가 있었기에 그토록 길고도 가혹했던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성과를 내며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략적 사고, 장기적 전망, 완고한 의지, 투철한 정의감에 다정한 관계 맺기가 더해질 때야 투쟁 현장에 생기가 돌고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음을, 〈재춘언니〉는 지난 13년의 세월을 통해 증명한다.
〈꿈의 공장〉을 보면, 콜텍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투쟁이 국제적 투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여러 뮤지션뿐 아니라 기타를 사랑하는 수많은 해외 뮤지션, 일반인 애호가 등이 콜텍 해고 노동자에게 깊은 연대를 표했다. 국내에서도 콜텍의 투쟁은 꽤 많은 사람에게 여러 곳에서 회자되었다. 그런데도 13년이 걸렸다. 부끄러움이 솟구쳤다. 2010년대 초중반, 콜텍을 규탄하는 집회에 두어 번 참석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도 종종 뉴스로 콜텍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했다. 긴 투쟁 끝에 콜텍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관심을 껐다. 콜텍의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임재춘 씨는 한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최근 영화 시사회 인터뷰에서는 경비 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재춘언니〉를 처음 본 임재춘 씨는 울컥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한민국에 콜텍 투쟁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콜텍 투쟁이 대한민국의 마지막 투쟁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TV에 나오고 해도 사회 현실이 변화되는 것은 없더라”는 그의 말에 울적해진 것은.
누군가가 13년의 긴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의미 있는 성과를 얻어내는 동안,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나? 지금껏 우리는 얼마나 많은 투쟁 현장에서 약간의 연대와 죄책감만을 느끼다가 잊어버린 후,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자위하고는 돌아서버렸는가? 그래서 나는 〈재춘언니〉를 본 후, 콜텍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긴 것을 반성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동 투쟁 현장이 어떤지 함께 느끼”는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재춘언니와 관계를 맺자. 그리고 그 관계를 키워나가자. ‘해결’이란 말이 부끄러움을 동반하지 않을 때까지. 이것이야말로 누군가의 간절하고 절박한 투쟁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공당의 대표에게 조롱당하는 요즘의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분노만큼이나 서로를 북돋는 다정한 관계 역시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준 재춘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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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같은 순애의 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
순애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폭삭 속았수다> 속 관식의 사랑에 대해 사람들은 ‘순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상대에게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관식의 사랑은 순애다. 그의 사랑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의 사랑으로 인해 관식이라는 캐릭터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니콘남’이라는 말이 덧붙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순애’에 열광하는가. 신자유주의 사회 속 사랑이란 점차 별볼일 없는 감정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랑은 돈과 시간을 들여 타자와 관계를 맺는 일이다. 연애와 결혼은 투자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 되었다. 20대에는 뻔한 사랑을 꿈꾸며 연애를 하던 이들도, 결혼적령기에 이르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조건‘이 맞는 상대를 만난다. 이는 관계 맺기의 실패 확률을 줄이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계산적인 행위다.
그러나 사람들이 소구하는 콘텐츠의 양상은 다르다. 암청색의 액션 장르물이 즐비한 콘텐츠 업계에서도 단비처럼 찾아오는 멜로물에 시청자들은 반응한다. 스펙터클에 매몰된 영화계의 경우 멜로물을 기피하는 추세가 이어진지 오래이나, 드라마계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여전히 멜로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을 사로잡는 장르이다. 그리고 그런 멜로물의 핵심에는 ’순애‘가 있다.
<행복의 노란 손수건>은 한 여자의 순애를 그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표면적인 이야기는 킨야라는 한 남성이 주도하는 로드 무비다. 훌쩍 지겨운 삶의 터전을 떠나온 킨야는 우연히 아케미라는 여성을 만난다. 킨야는 상대가 누구여도 상관없었을 만남에 순간의 쾌락만을 추구한다. 그리고 또다시 누구여도 상관없었을 시마라는 남성을 만난다. 아케미의 독촉에 가까운 독려에 어쩔 수 없이 세 사람은 한 대의 차에 오르고, 이들의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품의 초중반부에 주로 다뤄지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아케미라는 단독자라기보다는 여자를 원하는 킨야는 서투르게 그녀에게 접근하고 실패한다. 그의 방법론은 현시대의 감각으로 읽어낸다면, 폭력적인 접근이라고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시마의 적절한 개입 때문이다. 남자라면 여성은 지켜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킨야의 아케미에 대한 감정과 행동을 비판한다. 반세기를 거쳐 현대에 도달한 작품에는 일정 수준의 시대 착오성과 그의 분명한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함께 녹아 있기에 웃음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는가. 킨야와 아케미의 짧은 관계는 순간에 불과하다 말할 수 있는 ‘순애’가 그의 인생에는 있었다. 거친 삶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나, 미성숙했던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렇게 감옥에 가게 되고, 출소의 날 만난 것이 킨야와 아케미였던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깨닫고, 아내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교도소에서 먼저 이혼을 요청한다. 그렇게 그녀를 보지 못 한 지 몇 년. 수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그녀를 여전히 그리워한다.
사랑이 남았음에도, 미안한 마음에 차마 그녀에게 돌아갈 수 없는 시마. 그러나 그의 곁엔 킨야와 아케미가 있다. 아내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못 이기는 척, 자신이 가정을 꾸렸던 공간인 유바리로 향한다. 아내가 자신을 영원히 떠났을까 너무나 두려워 고개를 숙이고 아케미가 대신 길을 본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깊은 기억은 네비게이션과 같은 능력을 준 것 같다. 수없이 되새겼을 그 길과 시간들을 경유하여 시마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을 어제 온 듯 안내한다.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는 시마가 과거에 아내와 쌓아왔을 추억의 공간들. 동네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집을 킨야와 아케미는 쉽게 찾지 못한다. 그렇게 두 사람도 어느 정도 포기 상태에 이르른 순간, 노란 손수건이 가득 걸린 장대가 그들을 반긴다. 시마와 아내만이 아는 사랑의 약속과 상징이 담긴 노란 손수건. 오랜 기다림의 시간 동안 아내는 사랑을 놓지 않고 노란 손수건을 달았던 것이다. 어쩌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뻔한 해피엔딩임에도 그녀의 순애에 나는 무력하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젊은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며, 이야기의 주요 화자는 시마이다. 그러나 가장 깊은 ‘순애’를 보여주는 인물은 분명 시마의 아내이다. 시마의 기억 속에 아내는 미화되어 존재한다. 그럼에도 객관적인 사실도 있다. 시마는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순간만은 최선을 다했을지 모른다. 어떤 순간까지도 그는 분명 다정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까지 벌인 것 또한 시마이다. 사실 시마는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킨야를 향한 설교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일 수 있다. 이런 남자를 사랑하고, 영원을 기다린 시마의 아내야 말로 순애를 한 것이 아닐까.
이 작품에는 고전 멜로의 매력이 넘쳐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을 선택하는 마음. 나에게 상처를 주었고 다시 상처를 줄지 모르는 당신을 다시 한 번 믿어보는 마음. 그런 바보같은 마음이 고전 멜로의 핵심 요소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일까. 조금은 시대착오적이나, 그렇기에 더 마음이 끌리는 이 작품을 보며 사랑을 다시금 꿈꾼다.
* 본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으로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작품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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