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3-01-18 18:31:18
짧은 러닝타임이면서 아쉬운 점이 돋보였던 영화
영화 <강남좀비> 시사회 리뷰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질 때 강남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떤 사람이 빌딩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든다는 내용인 <강남좀비>는 티아라의 지연을 출연으로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1시간 20분이고 보통의 좀비 영화들과 달리 대충 만든 것 같고 좀비들이 자신이 좀비가 되기 직전에 했던 행동들을 함으로서 재미를 반감 시켰다. 또한 강남에 좀비들이 몰리는게 아니라 빌딩 중 한 곳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그곳을 탈출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나온다.
특히 강남의 건물주가 갑질을 일삼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데 결국 좀비가 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또한 유튜브를 한다는 핑계로 직원들에게 월급도 못주고 성추행을 일삼는 악덕 사장도 좀비가 되버린다. 스케일이 크진 않지만 마치 강남의 문제점을 풍자하는 듯한 이 영화는 그곳이 진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갑질과 성추행같은 범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최후를 맞이한다는게 통쾌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사는 강남에서 좀비들이 점령한 건물을 빠져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코믹하기도 하고 무언가 아쉽기도 했다. 이 영화가 끝나고 쿠키 영상이 나오는데 마치 강남좀비 2가 나올 것 같다는 예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미숙한 점들도 많고 러닝타임이 짧은만큼 가벼운 영화로 보는 걸 추천한다. 어쨌든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말고 짧은 킬링 타임 영화로 보는게 좋을 것이다.
강남에 좀비 한 명이 강남 건물
하나를 감염시킨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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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담아, 뜨거운 안녕
* <인생은 아름다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인생은 아름다워 (2022)
감독: 최국희
출연: 류승룡, 염정아, 옹성우, 박세완
장르: 뮤지컬, 드라마
상영시간: 122분
개봉일: 2022.09.28
내 생애 마지막 생일, 첫사랑을 찾아줘!
자상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편 ‘진봉(류승룡)’과 무뚝뚝하고 철 없는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오랜 세월 자신을 잃은 채 살아온 ‘세연(염정아)’. 어느 날 병원에서 2달 시한부 인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런데 웬걸.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내가 곧 죽는다는데 여전히 자신을 종 부리듯 하고 걱정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는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생일마저 가족들에게 무시당한 ‘세연’은 ‘진봉’에게 마지막 생일 선물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당당하게 으름장을 놓는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없던 ‘진봉’은 결국 ‘세연’의 첫사랑을 찾아 그들의 찬란했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국내 첫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안전한 각본 선택
<인생은 아름다워>는 국내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이문세’, ‘이승철’, ‘토이’ 등 많은 세대가 즐겨 들었던 유명 가수들의 음악을 뮤지컬 넘버로 활용했다. 아직 국내에서 뮤지컬 영화는 성공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시도만으로도 큰 도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험적인 장르를 시도한 대신 각본은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안전한 가족 드라마를 택했다. 두 주인공이 로드무비처럼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장소에 깃든 과거를 추억하고, 그 시기에 유행했던 명곡을 해당 신의 뮤지컬 넘버로 사용해 스토리와 음악의 편안한 결합을 이뤄낸 점은 호평할 만하다. 그저 맥락 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 인물들의 서사에 걸맞게 음악을 활용해 뮤지컬 신에 설득력을 더하고, 대사와 노래의 전환이 매끄럽게 이어져 화려한 퍼포먼스와 신나는 뮤지컬 넘버가 분위기 환기를 톡톡히 해낸다.
작위적인 캐릭터 구성, 그럼에도 훌륭한 염정아의 연기
개봉 전 우려했던 뮤지컬적 연출은 의외로 준수했으나 장르 특성상 감성적인 요소를 터치해야 하기 때문인지 캐릭터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다. 특히 ‘류승룡’이 연기한 ‘진봉’이라는 인물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시한부인 아내에게 지독하게 못되게 구는 비호감으로 비춰진다. 생일날 술에 취해 들어와 선물이랍시고 손가락 하트를 내밀고 옷이 덜 말랐다며 셔츠를 툭 던지는 행태는 충격을 금치 못할 정도다. 이는 불쌍하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세연’의 감정에 관객들이 이입할 수 있는 일종의 장치일 터. 하지만 제아무리 이들이 젊을 적에 열렬한 사랑을 했다 할지라도 현재 ‘진봉’의 행동들을 보고 이들의 사랑에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감정에 호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이 반영한 설정이라 감안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쳤다. ‘진봉’의 이러한 모습들 때문인지 아빠 못지 않게 엄마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두 자녀는 그나마 귀엽게 봐 줄 만한 수준이었다.
작품의 진주인공 ‘세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임신한 아내에게 굶으라는 소리나 했던 남편과 20년 넘게 함께 산 그에게 대체 무슨 사랑이 남은 걸까. 감독은 ‘세연’의 불쌍한 처지를 강조하기 위해 캐릭터를 과도하게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다른 가족들에겐 매몰차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세연’의 안타까움을 강조할수록 결말부에 가족들의 슬픔과 후회는 더욱 커질 것이고, 비극적인 상황에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이입시킴으로써 눈물과 감동을 유도한 것이다. 차라리 ‘세연’이 초반에 신용카드로 명품 코트를 지르고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나가버렸다면 어땠을까. 감독은 그녀를 마지막 버킷 리스트조차 남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성으로 만들어 버렸고, 아련하고 풋풋했던 첫사랑의 추억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열 일곱의 첫사랑을 엇갈린 관계로 그림으로써 결국 ‘세연’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은 ‘진봉’ 뿐이라는 것을 부각한 셈이다. 하지만 앞서 아내를 향한 감정적인 학대를 일삼는 ‘진봉’의 행동들을 지켜보게 해놓고 어떻게 이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보란 말인가.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야 급하게 ‘진봉’이 사실은 아내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음을 꺼내 놓는다. 겉으로는 화를 내고 툴툴거렸지만 사실은 아내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 뒤편에서 애를 썼다는 ‘츤데레’로 포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캐릭터의 비호감적 속성을 상쇄시키려는 시도로 느껴질 뿐이며 스토리의 진부함을 떨쳐내지 못한다. 시한부를 알게 된 이후 남편이 뒤에서 챙겨줬다고 한들, 그동안 받았을 ‘세연’의 상처는 지워낼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입하기 어려웠던 캐릭터 설정과는 별개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물을 쏟는 감정신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푼수 끼 넘치는 코믹한 면모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 ‘염정아’의 연기력만큼은 눈부시다. 엄마의 시한부 소식을 알게 된 후 전화를 건 자식들의 목소리에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세연’의 눈물에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혔고 출중한 실력은 아니지만 진솔한 감정을 담아 노래한 담백한 목소리에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꼈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성량과 안정적인 가창력을 지닌 ‘류승룡’이 뮤지컬 신에서 중심을 잡아주었다면 ‘염정아’는 절륜한 연기력과 놀라운 몰입감으로 작품 전체를 이끌었다.
시대 고증보다는 뮤지컬적 연출에 집중
두 주인공의 10대부터 50대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등장하는 만큼 작중 다양한 시대상이 배경으로 나온다. 하지만 감독이 시대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것 같지는 않다. 가령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는 1980년대이지만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난 90년대 초반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90년대 초반 대학생이었을 두 주인공의 의상 또한 1970년대 배경의 <써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촌스럽다. 이는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대의상처럼 원색의 화려한 의상들과 시대착오적인 스타일링을 택한 게 아닐까 싶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IMF’ 등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사건들은 단지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줄 배경으로 활용될 뿐이며 고증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은 것을 보면 배경 자체에서 큰 의미를 끌어낼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지 그 시기를 경험했던 관객들로 하여금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기능적 요소로 쓰일 뿐이다.
음악으로 아름답게 포장, 장르적 도전에서만 건진 의미
캐릭터의 구성과 스토리 자체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전형적인 가족애의 이야기가 가져다 주는 감동은 유효한 듯하다. 시한부라는 설정상 신파적 요소가 강한 부분이 있지만 해당 장면에서 관객이 눈물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은 평상시에 가족에게 잘하고, 존재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고루한 메시지가 아직까지 먹힌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평소 아내에게 무심했던 중년의 남편, 엄마의 뒷바라지를 당연하게만 여겼던 철없는 자녀들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면 작중 가족들의 이별에 감정적으로 이입하는 바가 남다를 것이다.
낡은 스토리에 춤과 노래가 색깔을 입혀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후반부에 무거운 감정을 질질 끌고 가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이 모인 파티에서 함께 ‘뜨거운 안녕’을 노래한다는 것은 이 작품이 뮤지컬 장르의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슬픔에 잠식되지 않고 유쾌한 멜로디에 모두의 사랑을 담아 ‘세연’을 떠나 보냄으로써 그녀의 덧없던 인생에 한 줄기 아름다움을 덧씌운다. 끝내 반전은 없었지만 영화가 음악을 통해 형성한 감흥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래도 세연의 인생은 아름다웠지’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그녀와의 쿨한 이별을 받아들이게 한다.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의 시도는 좋았으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걸작의 이름을 빌려올 것이었다면 음악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이 아닌 아름다운 이야기로 승부를 봤어야 하지 않을까. 추억의 명곡과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뮤지컬’ 영화에 대한 편견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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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소년은 거리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제26회JIFF 국제경쟁부문 <거리의 소년 사니> 후기
[JIFF 데일리] "소년은 거리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제26회JIFF 국제경쟁부문 <거리의 소년 사니> 후기
제목 : 거리의 소년 사니 (KIX)
감독 : 발린트 레베스, 다비드 미쿨란
국가 : 프랑스, 크로아티아, 헝가리
장르 : 다큐멘터리
연령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91분
시놉시스 : 한 소년의 성장을 담은 연대기적 영화. 사니의 어린 시절 장난기 가득한 모습부터 성인이 된 후 사회에 순응하게 되고 냉혹함을 맞닥뜨리는 12년 간의 여정을 따라간다.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시선을 통해 현대 부다페스트의 빈곤한 노동계급 가족의 초상을 목도한다.
OVERVIEW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중요하다. 우리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스쳐 지나간 사람들.”
영화는 길거리서 영상을 찍던 젊은 헝가리 감독이 ‘사니’라는 어린 남자아이를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다큐멘터리 장르이기에 ‘사니’와의 만남 자체가 짜인 각본이 아니라 정말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본 영화는 촬영 방식도 영화 <애프터 썬>에서 선보였던 캠코더 촬영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촬영 자체가 굉장히 리드미컬하며 빠른 속도감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치안 상황이 좋지 않은 헝가리의 외곽 지역의 날 선 모습이 거칠게 흔들거리는 화면과 맥락을 이어갑니다.
특히 영화 초반부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촬영하는 장면들은 어딘가 위험한 돌발 상황이 터질 것 같았죠. 반대로 정직하게 고정된 샷이 많이 없기에 멀미에 약하신 분들이라면 다소 관람이 힘드실 수 있습니다. 장르와 상관없이 <REC> 같은 페이크 다큐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하실 겁니다. 하지만 본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실제로 발생한 사건과 12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진실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객관적인 상황에서 빈민가를 관찰한 일종의 실험이라고도 느껴졌습니다. 형을 따라다니며 장난을 치던 순수한 ‘사니’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나뭇잎이 우거진 나무가 아닌, 달콤한 열매와 희망의 씨앗을 품지 않는 방향으로 자란다는 점입니다. ‘사니’는 자신이 처한 환경 내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영화 <가버나움>과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함께 떠올랐습니다. 당장 한 침대에서 여섯 식구가 밤을 보내는 열악한 가정 상황, 조언과 응원보다는 웃으며 멸시와 협박을 일삼는 일그러진 사랑의 부모님, 아이들이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설명하는 어른들, 통보와 검거 외 실질적인 도움은 존재하지 않는 아동복지국 등 ‘사니’는 유치원을 다닐 시기부터 이미 냉혹한 현실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서리가 끼기 시작하면 푸른 잎은 말라비틀어지거나 기운 없이 늘어지기 마련. 영화는 12년이란 긴 세월을 근거로 ‘사니’의 처음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환경적, 심리적 증거를 낱낱이 소개합니다. 어린아이는 눈사람처럼 계속해서 지켜보고 눈을 추가해 주지 않으면 어딘가 녹기 시작한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사니’가 좀 더 나은 환경이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빈부의 격차나 삶의 질이 더 어려워지지 않았겠죠. 무엇이 ‘사니’를, 헝가리 사회의 작은 남자아이를 변하게 했는지 영화를 관람하시고 확인해 보시죠.
앞서 설명하듯 영화 속 촬영된 모든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노숙자가 자신의 부모를 욕하며 스스로의 탄생을 모욕하는 것부터, 주인공 ‘사니’가 빨간 불에도 보드를 타며 무단횡단 하다가 이름모를 행인에게 혼나는 것까지 말이죠. 진실은 이따금 사실보다 더 무겁게 현실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사니’가 실존하는 사람,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그것은 단순히 ‘사니’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법을 초월한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영화는 아이가 절대 자신의 운명과 현실의 냉혹함을 비교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설령 참혹한 내일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니’의 늦둥이 여동생이 공갈을 물며 엄마의 욕을 재창하는 장면에서 소위 ‘아이들은 다 기억한다’는 명제가 가슴 깊이 찔러 들어왔습니다. 부모를 욕하기엔 그들도 나이만 다르지 동일한 입장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사니’의 부모들도 밝은 미래를 위한 투자나 공부보다 젊은 시절 결혼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부의 승계보다 가혹한 가난의 악순환에 부모는 더욱 속수무책일 뿐이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 장면은 대부분 ‘물’과 연관된 장면들이었습니다. 어린 ‘사니’는 들어가지 말라는 말에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이는 연못에 머리까지 푹 담급니다. 카메라맨, 감독님은 입안에만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하죠. 소년 ‘사니’는 락커같은 머리 스타일로 친구와 함께 자유롭게 강가에 몸을 던집니다. 못된 형, 친구들과 모여 어두운 밤 사이 담배를 피기도 합니다. 청년 ‘사니’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믿는 여자 친구와 함께 강변에서 모닥불을 지피며 진솔한 대화를 나눕니다. ‘사니’에게 물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제 생각에 물 속은 평화이자 죽음이었을 겁니다. 차가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장치이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자연의 선물이었을 겁니다. 동양 철학적으로 ‘사니’는 스스로 물이 많이 필요한 사주였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사니’는 성인이 되어 일어나기 시작하려는 직전 ‘불’에 크게 당합니다. 어린 시절 익숙했던, 많이 했던 장난으로부터.
상영 후 ‘다비드 미쿨란’ 감독님과의 GV 중
감독님은 ‘사니’와의 만남이 2011년 졸업 작품용 단편 영화를 찍기 위해 거리를 걷다가 만났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21살의 청년이었던 감독님 자신도 ‘사니’처럼 영화에 있어서 굉장히 순수하고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촬영하는 장면이 탄생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사니’처럼 자신도, 영화도 점점 촬영 기법이나 방식이 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12년간 영화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Q. 카메라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을까? 또 어른인 당신이 옆에 있었는데, 그것 마저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지 않을까? (이탈리아 관객의 질문)
A. 그것은 ‘사니’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내가 아이들의 감독자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냥 같이 함께 그들과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또 카메라 앞에서 아이들에게 연기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면 촬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함께 같이 있고, 당연히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 내 생각에 ‘사니’는 나아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갑작스러운 사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작은 인연을 떠오르게 해주는 영화 ‘거리의 소년 사니’였습니다. ‘사니’가 과연 어떤 12년간의 역사를 보여주는지, 스케이트 보드와 낙서를 좋아하던 꼬마 아이가 어떻게 방화범이 되어 가는지, 궁금하시다면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적극 추천합니다.
2024.05.02 13:30 CGV 전주고사 7관(124)
2024.05.06 17:00 CGV 전주고사 7관(545)
2024.05.09 10:00 CGV 전주고사 7관(805)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2024.0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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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부끼는 번민의 돌파구
SYNOPSIS.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게 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독립군 사이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함께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1년 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안중근을 비롯해 우덕순, 김상현, 공부인, 최재형, 이창섭 등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하얼빈으로 향하고, 내부에서 새어 나간 이들의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이 시작되는데…
하얼빈을 향한 단 하나의 목표, 늙은 늑대를 처단하라
POINT.
✔️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역사적 순간을 담아낸 영화 타율이 좋은 우민호 감독의 작품
✔️ <기생충>으로도 잘 알려진 홍경표 촬영감독의 미학이 빛나는 작품
✔️ 이미 여러 차례 다루어진 만큼, 안중근의 거사 자체를 조망하기보다 안중근의 내면에 집중했으며, 어마어마한 로케이션과 어우러지는 비장미가 있는 작품
✔️ 많은 배우들의 합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연기 아른거리는 회화 속에서
영화는 초장부터 기존의 안중근 서사와 다른 길을 갈 것임을 명확히 한다.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독립 운동가들의 회동 모습은 마치 바로크 회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안중근 서사 하면 기대하는 역동적인 스펙타클 대신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한 의심의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이 무드야말로 실제 독립운동의 무드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독립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을 아는 미래가 아닌, 과연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지, 미래가 있다 한들 거기에 내 자리는 있을지 회의감과 번민 속 현재에서 걸어간 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밀정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으며, 안중근이 나타난다. 흔히 결의에 찬 장면으로 묘사되는 단지(斷指)의 순간으로 걸어들어온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의 순간조차 안중근이라는 인물 한 사람에게 확신에 찬 핀 조명을 쏘는 대신, 유령 혹은 그림자처럼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자를 그 주변에 둘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방점을 찍은 일제의 침략이 계속되고 있던 1908년에서 1909년이었으니까. 의구심과 자괴감,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정서는 빛 아래 있어도 그림자였다. 극중 가장 역동적이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조차 승리 혹은 패배를 강조하기보다 처절한 아비규환을 그리고 있다.
그 지옥도에서 안중근이 택하는 길은 만민공법을 지키고 스스로가 대한의 참모중장임을 잊지 않는 것, 다시 말해 그의 내면과 신념을 지키는 길이었다. 탄환을 명중시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로 극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대신, 영화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고뇌가 때로는 고꾸라지고 때로는 맞아떨어지는 길을 담는다. 주변 인물들과 때로는 합심하고 때로는 불화하면서, 안중근은 (실제 역사에서는 '동양평화론'이 될) 그의 길을 간다.
각지고 막힌 상자 속에서
반면 확신에 찬 인물이 있다. 릴리 프랭키가 분한 이토 히로부미는 시종 확신에 차 있다. 실제 역사에서 1-2년 후에 이루어질 경술국치(1910.08.29)를 앞두고, 단상에 서서 담담한 말투로 한일 병합을 말한다.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에서 은혜 입은 것도 없는 백성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는 말조차 담담하게 내뱉는다.
그의 공간은 하나 같이 각지고 막혀 있다.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네모 반듯한 귀족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똑같은 뒤통수는 똑같이 수그려지고, 이동할 때에도 그의 자리는 사방이 틀어막힌 기차 칸이다. 러시아 공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차 칸도 바깥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의심과 번민으로 흔들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기차와 달리, 확신으로 감싸인 공간에서 그는 남의 인생을 손발 삼아 움직이며 덤덤히 침탈의 길을 간다.
이는 얼어 붙은 두만강이나 숲이나 너른 사막으로 표상되는 안중근의 공간, 그림자와 연기가 아른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그림 같은 공간과 대조적이다. 이 공간적인 대비는 마치 확신이 꼭 옳은가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가는 침탈의 길에 확신을 가진 이토 히로부미와, 끝없는 번민으로 내면의 두레박을 길어 올리는 안중근, 그리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마음. 안중근이 내면으로 던져 올린 두레박은 영화 마지막에 기어코 마중물을 길어 올렸고, 유령처럼 서성거리는 인물들은 죽음 이후에도 유령으로 남아 사라지지 않는 아우라를 남겼다. 하지만 확신은 총탄에 스러진다.
푸른 꿈과 시린 번민으로 열린 공간에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이 시국'에 잘 어우러진다며 여러 차례 회자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 언제나 절망의 뒤편에 희망이 있다는 것, 이제는 진부한 문장이지만 빛은 그림자와 함께 도드라진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미래를 알 수 없는 채로, 독립의 실낱 같은 가능성을 바라보는 괴롭고 지난한 길. 신뢰와 의심을 동시에 품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즉각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그 길을 걷는 한 인간의 고뇌. 영화는 안중근의 거사까지 직진하여 가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회전하며 주변 인물들을 에두르는 고뇌의 그림자를 품는다. 총알이 날아가는 모양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지난한 길을 갔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가늠해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마음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 보편적이다. 희망을 길어 올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두 다리를 걷어붙이고 진창에 서야 하기에. 푸른 꿈은 언제나 곱고 예쁜 자리에만 있지 않다. 그 색깔은 시린 번민의 색깔과 맞붙어 있다.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빛과 그림자가 언제나 등을 붙이고 있듯이. 그 자리는 안중근의 공간들처럼 탁 트여 있다.
희망에 꽉 막힌 확신 같은 건 없지만, 가능성은 사방으로 트여 있지만, 그림자처럼 담배 연기처럼 나부끼지만, 이 번민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돌파구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광장 또한, 탁 트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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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볼륨의 숫자는 더 높아질 수 있는데...
국내에서의 "스페이스 오페라", 즉 <스타워즈>와 <스타트렉>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다.
단적인 예시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014-23>만 하더라도, 그렇다!
14년에 개봉한 1편은 134만명에 그쳤으며, 17년 2편은 273만명으로 2배로 늘어났지만 400-500만명을 국내에서의 통상적인 마블 성적임을 감안한다면...
그럼에도, "기라성"과 같은 선배들과 나란히 어깨를 하는 이유엔 신나는 볼륨 믹스가 있다! - "Redbone"의 "Come and Get Your Love"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마블"을 떠나 역대 최고 시작이다.여전히, 온 우주 수호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앞에 새로운 적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로켓"이 크게 다치고 만다.
이에 술로 식음을 전폐했던 "피터"는 "로켓"을 살리기 위해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던 "로켓"의 과거를 알게 되는데...1. 완벽해질 수 있을까?
이번 3편을 말하기 앞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014-23>시리즈는 "마블(MCU)"내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이다. - 음악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이런 이유에는 이들의 출신 성분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등의 주인공들이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던 것과 다르게, 해당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전과들이 수두룩하다.
어찌 보면, "피카레스크(악당들만 나오는 장르)"에 해당되나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성공적인 사례와 앞서 언급한 "POP"으로 차별화를 할 수 있던 게 아닐까? - 그리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이들의 모습이 친숙하기도 하거니와...여기에 화려한 비주얼까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23>시리즈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간단하게 설득되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인류에게 불을 전달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신들에게 받은 선물을 동물들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인간"의 차례가 다가오자 전달해 줄 선물이 떨어진다. - 이게,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전달해 주는 계기가 되고 만다!
'한낱 신들조차 실수를 범하는데, 인간이라고 실수를 안 할 수가 없다'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본다면, 동물보다 인간이 더 결격 사유가 많은 존재가 아닐까?그런 점에서 영화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는 바를 투영하는 메인 빌런들의 존재가 의미심장하다.
2편의 "에고"와 이번 3편의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던 캐릭터들로 완벽을 요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방법과 과정에 있어 자신들의 결함을 노출시켜 이미, 자신들의 결점을 인정한 "가디언즈"와의 대결 레퍼토리를 구축시킨다.2. 늘어져도 좋다!
무엇보다 대결에 있어 힘과 힘의 대결도 좋으나 그에 걸맞은 "동기", 즉 "프로모"는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물론, "플래시백"으로 교차되는 형식으로 늘어지기도 하나 이번 3편에서의 "로켓"의 과거담은 관객들의 마음을 동요케 만든다.
여기,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악독함까지 단순한 모습들이나 벌써부터 이들의 대결을 기대하게 만든다.
근데, 이런 메인들에 비해 기대했던 "아담 워록"의 부진함은 마음에 걸린다.지난 2편에서 "복수"를 다짐한 "아이샤"의 비밀 병기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캐릭터이나 진정한 흑막으로 등장하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위상에 희생된다.
물론, "일찍 나와서 완성이 덜 되었다"라는 설명을 덧붙여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려 하나 "빌드업"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에 걸린다.
결국, "로켓"이라는 박힌 돌을 빼내기엔...· tmi. 1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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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고 울게 만드는 <기적>의 세 가지 특이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찻길은 있어도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서 아버지 ‘태윤(이성민)', 누나 ‘보경(이수경)'과 함께 살아가는 ‘준경(박정민)'. 누나와 함께 마을에 남아 왕복 5시간 통학길을 감수하며 지내는 그는 마을에 간이역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를 청와대에 계속해서 보낸다. 이러한 준경에게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자칭 뮤즈 ‘라희(임윤아)'는 그의 편지 쓰기를 돕기 시작하고, 준경의 편지에 지금보다 더 큰 힘이 실리도록 장학퀴즈나 대통령 배 수학경시대회에 응시할 기회도 마련해준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던 찰나에 준경에게는 따뜻한 기적이 찾아온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을 모티브로 한 <기적>은 추석 시즌 영화답게 웃음과 눈물, 감동과 풋풋한 로맨스까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준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가 결코 가볍지 않은 가운데, 두 주인공의 로맨스처럼 결이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대목은 서로 다른 두 영화를 이어 붙인 듯한 어색함도 자아낸다. 이처럼 종합 선물세트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어색한 친척 같기도 한 <기적>의 인상은 작중 빛나는 세 가지 특이점, 터널, 기적, 그리고 반딧불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기적>의 전반부를 놓고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면 엉성하다고 볼만한 순간이 적지 않다. 마을 주민들의 불편함은 이해가 되지만, 준경의 동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다 보니 맹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간이역에 대한 그의 집착은 공감을 일으키지 못한다. 불도저처럼 직선적인 라희와 소심한 준경의 티키타카도 풋풋한 싱그러움과는 별개로 억지스럽다. 우연적인 만남으로 시작해 우정을 빙자한 로맨스는 간이역 설립을 위한 준경의 편지 쓰기를 라희가 도우면서 진행되는데, 애초에 준경의 동기나 목적이 와닿지를 않으니 그 과정이 지나치게 들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보는 중에는 위의 내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엄연히 픽션 영화인만큼, 기본적으로 <기적>의 매력은 동화적 판타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장훈 감독은 시작과 동시에 본인의 전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처럼 영화의 배경을 현실이 아닌 동화로 옮겨 놓는다. 예상치 못하게 터널에서 튀어나오는 화물 열차를 피하는 찰나에 준경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은 우진(소지섭)이 사별한 연인 수아(손예진)를 터널에서 다시 만나는 데서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터널이라는 존재가 <부산행>의 마지막 장면처럼 흔히 특정한 시점 이전의 세상과 그 이후의 세상을 나누는 분기점처럼 활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이 한 편의 판타지를 그려내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 덕분에 다소 엉성하고 어색할 법한 장면이나 설정도 오히려 동화적인 분위기를 살려주는 포인트가 된다.
이렇게 <기적>이 그려내는 동화적인 판타지는 보경과 관련된 부자의 가슴 아픈 과거사가 등장하는 중반부터 반전과 신파의 힘을 극대화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관객을 동화 속으로 초대하는 오프닝에 가려져 있던 현실을 일깨우고 과거의 사연을 뒤늦게 털어놓으며 의문을 해소시키고, 역으로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면서 가족의 비극을 강조한다. 이러한 전개 역시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같은 전략이 다시 한번 적중한 결과 기꺼이 눈물을 흘리고 싶은 신파가 완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신파에서 제목인 '기적'의 중의성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선 영화 제목은 기적(miracle)을 뜻하며,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간이역을 기어코 만든 준경의 사연은 분명 기적이라고 부를 법하다. 그런데 단지 그것만이 기적은 아니다. 영화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생각지 못하는 같은 문제점을 공유하는 두 남자가 과거의 비극을 극복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준경은 도로조차 없는 시골 구석에서 무려 NASA에 장학생으로 유학 갈 기회를 잡지만, 과거의 아픔 때문에 집을 떠나는 것을 망설인다. 아들의 상처를 공유하는 아빠 태윤은 준경에게 자신의 아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아들을 따뜻하게 대하지 않으며, 결국 고민에 휩싸인 그를 돕지 못한다. 이때 영화는 두 부자가 결코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장애물을 끝내 넘어서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회를 붙잡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마침내 완공된 간이역에 첫 기차가 들어서는 순간과 일치시킨다. 기차의 기적 소리(whistle)가 온 마음이 흉터로 가득한 가족에게 기적(miracle)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서로 다른 기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결국에는 하나임을 표현하는 장치로 기적의 중의성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다만 터널에서 시작된 웃음이 기차의 기적 소리에 뒤따르는 눈물로 귀결되는 전개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매력과 별개로, 복고적이고 회귀적인 이 눈물이 다소 때늦은 도착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기적>의 플롯을 지탱하는 핵심 감정선은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누나 보경을 향한 준경의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아빠인 태윤의 회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중 가족 이야기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동생들을 돌보기로 결심한 보경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에 대한 헌사라고 볼 여지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류의 이야기가 이미 숱하게 소비되었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6~8년에서 30여 년이 지나버렸기 때문에 영화가 보편적인 감성과 익숙함 사이의 경계에서 줄을 타는 듯이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담백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자연스레 남는다.
또한 보경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에 대한 헌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보경과 같은 캐릭터를 반복하는 데서 그치기 때문이다. 당장 라희만 하더라도 그녀는 스스로를 준경의 뮤즈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예술의 원천 그 자체이자 예술가에게 영감을 심어주는 능동적 여신이었던 뮤즈의 본래 의미와 달리 그녀의 역할은 그저 준경을 뒷바라지하고 기다리는 선에서 제한된다. 라희라는 캐릭터 자체는 적극적인데, 정작 그 캐릭터가 활동할 수 있는 판을 못 깔아주기에 새로운 그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판타지라는 고립된 배경에서 안전하게 추억을 되살리는 것에 그친 결과 영화의 로맨스는 준경과 라희가 반딧불이를 만나는 장면의 연출처럼 판에 박은 듯 몰개성적이다.
다행히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이고, 또 다르게 보면 부정적인 <기적>의 특이점들은 배우들의 역량 아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성민이 선보이는 가슴 절절한 부성애 연기는 명불허전이고, 박정민 역시 과거의 아픔부터 현재의 망설임과 고뇌에 이르는 복합적인 감정선을 유려하게 표현해내면서 극을 장악한다. 임윤아 역시 <엑시트>나 <공조>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캐릭터를 맡아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이수경은 그녀가 아니었다면 중반부의 반전이 가져다줄 수 있는 감동이 반 이상 줄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큰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안정적인 앙상블 덕분에라도 <기적>이라는 기차는 최소한의 목표로 삼았던 간이역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동화 속 눈물과 감동에 배우들의 앙상블이 만나면 무방비로 설득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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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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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썬다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 및 퍼가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 주세요.
쳐다보기 힘든 여름의 태양 같던 영화계의 여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개봉 영화의 수(Number)도, 장르도 조금씩 변화하면서, 강렬하기 그지없던 여름에 대한 약간의 향수가 함께 마음속에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 같다.
쓸쓸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들도 하나둘씩 개봉해 관객들의 마음에 남은 여름의 온기를 지켜주려 노력한다.
영화 [썬다운]은 이런 날씨처럼 인생에 있어서도 여름을 슬며시 비켜가 가을을 맞이하는 남자 닐을 통해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짧지만 강렬하게 던진다. 과연 봉준호 감독도 좋은 말을 했을 법하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꽤나 존재한다.
휴양지의 느긋하고 따사로운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닐의 마음과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주는 부조화가 주는 재미 또한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키며, 많은 숙제 같지만 괴롭지 않은 생각도 함께 던져주어 오래 생각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 좋은 영화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던 바닷가의 남자;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본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닐은 기어코 해변에 남기를 택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피하고 싶어서. 아니, 추악하다고 말해도 모자라지 않는 진실을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자신의 몸을 담그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현실은 정오 때의 태양처럼 피할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영화는 몇 번이고 가장 높은(중앙) 곳에 떠 있는 태양을 비추며 너 따위가 감히 현실을 피해 숨을 수 있을 것 같냐고 조롱하듯 작열하지만.
닐은 아무런 동요도 없는 얼굴로 조용히 눈을 감아버린다. 그는 단 한순간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태양을 자신이 없애버렸다는 잘못된 승리감에 도취해 억지로 마음의 평온을 끌어온다.
어찌 이렇게도 태평할 수 있을까. 애써 도망쳐 도착한 바닷가 이건만, 그는 수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물 위에 둥둥 떠서 유영하는 것을 즐길 뿐. 단 한 번도 힘센 파도를 향해 육신의 힘을 모아 헤엄치지 않는다. 이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휩쓸려 가다 도착하는 곳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로 닐은 그저 인생을 유영한다.
그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책임도 다른 사람의 손에 손쉽게 넘기는 것도 모자라, 미안하다는 말로 교묘히 책임들을 벗어난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익만은 사양 않고 조용히 챙긴다. 이 현실과 인생을 향한 미적지근한 그의 태도는 닐의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서도 분노가 되어 닐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닐은 원래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는 듯. 또 한 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들을 향해 또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태양의 눈부심은 오롯이 그것을 들여다본 당신들의 몫이라는 듯한 태도로.
레다(로스트 도터)의 바다와 닐의 바다;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태도
사진출처:다음 영화
애석하게도(?) 바다는 온전히 닐 만의 것이 아니었다. 옆에 있었다고 해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을 만큼 멀지 않은 곳에. 영화 [로스트 도터]의 레다도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레다는 안식년으로 충분한 시간을 활용해 자신이 숨겨왔던, 혹은 낯부끄러웠던 모습을 바닷물에 씻어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모성(엄마)과 인간으로서의 역할이 부딪치며 만들어낸 상처마다 들러붙은 소금과 모래알은.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파다 못해 다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본 듯 소스라치게 한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쓰라림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자신에게 이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물론 해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아프고. 피하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레다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마저도 자신의 모습임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피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면에 있어서 모자라고 깨지고 뒤틀린 자신의 모습이지만. 레다는 용기를 내었고. 딸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여태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말을 던지는 것으로 떠날 채비를 시작한다. 그녀는 휴양지의 파도에 자신의 반성과 고뇌를 쓸어 보내는 것으로 안식년을 완성시키려 했을 것이다.
레다의 여정을. 조금은 개운하고 맑아진 표정으로 오렌지의 껍질을 벗겨내는 모습을 닐이 물끄러미 옆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확한 사정을 다 알 수 없더라도. 레다의 웃는 얼굴을 보며 그동안 그녀의 입꼬리를 올라가지 못하게 꽁꽁 붙들고 있었을 비밀과 그녀의 속내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자신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닐 또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닐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었는지 간접적으로라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비난할 수 있을까;그래도 태양은 진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그렇게 인생의 무게를 자신의 어깨 위에 직접 짊어지라고 피 토하듯 말했건만. 스스로의 삶마저도 타인의 말과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고. 서류에 사인하는 것 마저도 겨우 하는 이 남자를 보며 단박에 떠오른 문장이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과, 인생에 있어 그다지 큰 목표도, 그렇다고 완전히 엇나가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태도. 오늘도 흐물흐물하고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그저 해변가에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기꺼이 써버리는 중년의 남자.
차라리 여동생의 죽음을 대신하는 게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이 남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밉기만 한 사람이냐. 고 묻는다면.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직후에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는 인생에 대해서도. 그리고 결국 찾아온 죽음에 대해서도. 어떤 해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연 설명마저 없이 입을 굳게 닫는다. 그것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앞서 뱉은 소설 [인간 실격]의 문장은 당신은 영화 초반부에는 분명 아마 이런 생을 살았을 거야.라고 생각한 관객이 떠올리기 쉬운 문장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가면, 마치 닐의 독백을 영화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인생은 소설 속 주인공보다는 조금 더 길었고. 마지막도 조금 더 풍요로웠겠지만. 스스로의 인생 한 조각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실토하고 있는 셈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고. 이제 그 생이 끝나갑니다. 마치 일몰처럼 말이지요.
라고 말이다.
마치면서.
영화의 거의 모든 면이 참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상영 시간마저 1시간 30분 남짓으로 충격적으로(?) 짧다.
그러나 이 급작스런 끝맺음마저도 참 인생의 한 부분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찾아오는 죽음과 엔딩 크레디트처럼.
인생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들이 완벽하게 모든 것을 바꿔놓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생 같은 영화였다.
또한 누군가의 인생의 한 부분만을 보고 입에 담는 것이 어쩌면 성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어 몇 번이고 제목을 곱씹게 되는 영화다.
[이 글의 TMI]
1. 사실 [로스트 도터]도 봤는데 리뷰 못 쓰고 있었음.
2. 근데 쓰긴 해야 할 것 같음. 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느꼈음.
3. 이제 추워져서 반팔은 정말 다 장롱으로 넣어야 할 듯.
4. 추석 기대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나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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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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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시작에 불과했다. 《곤도 마리에: 기쁨을 찾아라》로 돌아온 정리 전도사 곤도 마리에. 전 세계적으로 정리 열풍을 일으킨 그녀가 이제 삶을 바꾸는 방법을 알려준다. 도움받을 만한 사업체 세 곳을 찾아가 소유주와 직원들에게 조언을 전하는 3편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