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2023-01-08 22:44:53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
영화 <애프터양> 리뷰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활짝 웃으며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 가장 좋아하는 계절의 어느 날 유난히도 맑아보였던 하늘.
행복했던 기억을 마음에 한가득 담은 채, 그렇게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서.
안드로이드 인간 '양'(좌)
우주를 연상시키는 공간 속에서, 별을 닮은 기억의 조각들이 빛나는 연출이 좋았다. 안드로이드 인간 ‘양’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양의 시선이 머문 삶의 기억 속 순간들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처음 동생에게 인사를 건네던 순간,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반짝거리던 나뭇잎, 벽에 비친 잎사귀의 그림자.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안드로이드 인간 ‘에이다’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는 이러한 기억을 꺼내어 몇 번이고 곱씹었을 것이다. 소중했던 순간들을 오래도록 추억하기 위해.
(사진)_안드로이드 인간 ‘양’과 ‘에이다’.
‘양’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가족은 양의 메모리 뱅크 속 기억을 재생하며 그의 삶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이는 SF 장르인 이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의 애도이자 사랑인 것 같다. 가슴이 먹먹했다.
찰나의 순간은 기록함으로써 기억이 되고, 기억함으로써 기록이 된다. 나를 미소 짓게 한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기록하며 기억해야지. 그리하여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할 때, 이별이 다가왔을 때, 마음속에 담아둔 추억들을 두고두고 꺼내봐야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덜 아플 것 같다.
양, 가족들은 잘 있어. 너와의 기억을 마음에 한가득 담은 채, 그렇게 기억의 편린을 붙잡고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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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숲 속에 고립된 G7, 현대 정치의 초현실적 우화
감독 에번 존슨( Evan JOHNSON ) /게일런 존슨 (Galen JOHNSON)/ 가이 매딘(Guy MADDIN)
Canada, Germany, Hungary, United Kingdom, United States/ 2024/104min /DCP /Color/B&W /Fiction/15세 이상 관람가
시놉시스
<뜬소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 일곱 명이 G7 연례 정상회의에서 겪는 일을 그린다. 글로벌 위기에 대한 임시 성명서를 작성하려던 국가 정상들은 숲에서 길을 잃고 점점 커지는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리뷰
캐나다 영화계의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 가이 매딘과 존슨 형제(에반 존슨, 게일런 존슨)가 공동 연출한 영화 <뜬소문>(원제: Rumours)은 G7 정상회담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비틀어낸 블랙 코미디이자 정치 풍자극이다.
영화는 세계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정체불명의 세계적 위기에 대한 공동 성명을 작성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정상들은 짙은 안개와 함께 숲 속에 고립되고, 설상가상으로 정체불명의 위협(죽지 않는 늪지의 시체들, 거대한 뇌 등)과 마주하며 혼돈에 빠진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지도자들의 허영심, 무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이들은 길을 잃은 채 서로를 의심하고 기이한 상황에 휘말린다.
<뜬소문>은 가이 매딘의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미장센과 고전 영화의 양식을 차용한 듯한 독특한 촬영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들은 정치인들의 공허한 수사와 위선적인 몸짓을 과장되고 희화화된 방식으로 포착하며, 현대 국제 정치의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숲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현실 정치의 밀실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지도자들의 내면 풍경을 시각화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케이트 블란쳇이 독일 총리 역을 맡아 카리스마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으며, 캐나다 배우 로이 뒤피는 자국의 총리 역으로 등장해 미묘한 캐나다적 유머와 풍자를 더한다. 찰스 댄스는 미국 대통령으로 분해 강대국 지도자의 오만함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은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이들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섬뜩한 상황 속에서 각 캐릭터의 불안과 욕망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력함과 소통 불능을 코미디와 호러를 넘나드는 장르적 실험을 통해 효과적으로 폭로한다. <뜬소문>이 보여주는 대담한 상상력과 정치 시스템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뜬소문>은 현시대 정치의 단면을 기괴하고도 유쾌하게 해부하는 문제작이다. 걷잡을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현실에 대한 서늘한 성찰을 유도한다.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이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뜬소문'의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상영 스케줄
2025. 05. 02 CGV 전주고사 3관 14:00 (상영코드 225)
2025. 05. 04 CGV 전주고사 3관 17:00 (상영코드 440)
2025. 05. 06 CGV 전주고사 3관 21:00 (상영코드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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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가로되 사랑이더라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 고은, 순간의 꽃작년 여름 <바비>를 두고 컨셉트가 영화를 압도했다고 말한 중년 남성 평론가에 열광하는 남성들을 보며,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와 그 옛날 채플린부터도 ’컨셉트를 위한’ 영화, 정치적 캠페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그 남성 거장들엔 불만 갖지 못하면서 젊은 여성 감독의 페미니즘 컨셉트만 쥐 잡듯 패는 건 너무 속 보이지 않냐고 비꼰 적이 있다.
말하자면 오로지 심미성과 예술적 비장미에만 집중할 수 있는/집중해야 하는, 마치 일본 버블시대 같은 영화적 황금기는 지나갔다는 것.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지 않고, 시대적 부름에 총대 메고 나서 어려운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그레타 거윅이나 켄 로치, 다르덴 형제를 위시한 ‘캠페인’ 전문가들에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반 년 후. 놀랍게도 그이들은 이제 아예 켄 로치의 컨셉트 - 노동자 정치와 난민에의 연대 -마저 부인하려고 하는 듯하다.
영화의 ‘구조’는 물론 단순하다. 80년대 광부 파업 이후 결국 폐쇄된 (구) 탄광 마을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도 친구도 다 버리고 도망쳐온 시리아 난민들이 섞여든다. 국가에 의해 생계형 노동이 중단된 폭력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폐광촌의 가난한 영국인들은 이 ‘수용’ 조치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 살기도 팍팍한데 ‘두건 대가리’들을 마을에 들이지 말라고 아우성치고, 어떤 이들은 난민이 받는 구호물품을 보며 탐내거나 그들이 자기들의 공적 공간을 침범한다며 적개심을 품고, 일상적 언어폭력을 넘어 실제로 손괴에 준하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물론 오래된 바 주인 토미 조 발렌타인이나 그의 친구 로라처럼 적극적 앨라이가 되는 이들도 있고 처음엔 경계하다가 마음을 여는 주민들도 적게나마 있다.
TJ 발렌타인과 야라는 꼴통 대표 청년이 망가트린 야라의 카메라를 계기로 가까워진 후, 마을에서 고립되거나 굶주리는 사람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런저런 역경을 겪으며 서로의 지난 삶을 다 알게 되며 진짜 친구가 된다. 결말에서 시리아에 남아 억울하게 구금됐던 야라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사망했단 소식에 TJ와 로라뿐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조문을 오며 마을/노동자 공동체의 부활을 암시한다.
상호 연대를 말하는 이 서사가 이토록 쉽게 쓰인 원인은 뭘까. 60년 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켄 로치가 영화를 잘 못 만드는 사람이라서일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는 순간 짜증내며 쉬운 말로 세 줄 요약해달라고 조르는 반지성주의자들 때문일까?
<공산당 선언>의 장엄한 문장은 한 줄 한 줄 낱낱이 아름답지만 바로 그 복잡성 때문에 그걸 정말 읽었어야 하는 노동자 계급을 전부 포섭하지 못해 실패했다. 켄 로치는 그 딜레마를 잘 아는 노장이고 우리보다 먼저 난민 거부라는 현실을 맞닥뜨려본 유럽인이다.
그는 우리가 최근 몇 년간 봐온 모든 혐오를, 앞으로 보게 될 더 심각한 백래쉬를 이미 전부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사실상 자신의 유작이 될지도 모를 이 영화를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들어서, 미음처럼 곱게 갈아 떠먹여 주기로 결심한 것 같다. 가장 최근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미안해요 리키>보다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직관적 대사와 사건들을 배치한 그의 의도는 약간 절박해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극 중 사건들의 핍진성을 의심하거나 너무 극화된 선악 이분법이라며 중립을 자처하는 건, 자긴 아무리 생각해도 살면서 난민 될 일은 없을 것 같고 오로지 그들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권을 지닌 편에만 속하다 죽을 것 같으니 끝까지 모르고 살겠다는 외면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얼마나 우습고 편협한 착각인가. 얼마나 기계적인 사유 없음인가.
게다가 이 마을의 난민 거부자들이 보이는 폭력성은 실제 난민들이 유럽 사회에서 겪어온 바에 비하면 아주 순하기 짝이 없다. 켄 로치가 폐광촌의 빈곤하고 여유 없는 사람들을 완전히 악인으로 그리지 않고 이해의 여지를 적재적소에 충분히 배치하기 위해 너무나 애쓴 것은 지구 반대편의 관객에게도 분명하게 보이는데, 예를 들면 린다의 엄마가 린다를 집까지 부축해 온 야라가 냉장고를 여는 장면을 보고 냅다 성을 낸 장면이 그렇다.
초라한 냉동실을 보고 야라도 잠시 멈칫할 만큼 그 집의 사정은 좋지 않다. 아마도 소아 당뇨를 겪는 듯한 딸과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들을 홀로 키우는 듯한 린다의 엄마는 미용실 청소 등 저임금 고강도 저퀄리티의 비정규 노동으로 삶을 꾸린다. 부박함은 사람을 여유 없게 만들고, (나보다 불쌍한 사람일 거라 예단했던) 남이 그것을 제대로 목격하고 나를 연민할 때의 수치심은 거의 죽음으로 가는 카운터펀치다. 그 순간 린다의 엄마가 민망함과 슬픔을 분노로 착각해 야라에게 빽 소리지르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 후 길 가는 야라를 멈춰세워 자신이 오해했다며 사과하고 친구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 놀랍고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만다.
TJ의 죽마고우 찰리의 사정 역시 만만치 않다. TJ는 반려견 마라가 죽고 몸 가눌 수 없는 슬픔을 다시 겪다가 겨우 난민 공동체와의 식사 연대를 통해 자신을 지탱하던 중이고, 그렇기에 가게의 수도 밸브를 의도적으로 터트려 그 연대를 저지한 40년 단골 일당 벡과 에드 등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 범죄에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찰리까지 끼어있었다는 사실은 TJ를 미치도록 슬프게 만들지만, 찰리가 TJ에게 거부당한 데에서 분노를 넘어 모욕감과 서운함까지 느꼈단 점, 그리고 그가 휠체어 탄 부인 메리를 돌보는 주 간병인이었단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마냥 ’우리 부류‘ ’우리 사람‘들을 강조하며 ‘내 것을 뺏겼다’는 한 꺼풀의 박탈감에만 집중하던 다른 일당과 달리 ’올드 오크는 교회도 보건소도 닫은 후에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공적 공간‘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던 이이기도 하기에 더 복잡한 인물이다.
아주 무심하고 당연한 도리를 한다는 듯 야라와 로라의 작당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친지들의 적극적 혐오에 가담하지 않고 내부고발을 시도한 청년 토니, 역시 가게 수리를 함께해준 노인 자파와 올드 오크의 직원 매기, 이들이 납작한가. 이들이 너무 단순한 선인 같고 반대편의 비열한 혐오자들은 너무 단순한 악인으로 그려진 것 같아서 억울한가. 이상하게 벡과 에드 편에 이입되고 그 마음이 찔려서 너무 편향된 서사라고 비판하고 싶어진다면 거기 내포된 자기의 믿음을 다시 파보는 게 낫지 않을까.
켄 로치의 놀랍도록 세심한 묘사를 또 꼽자면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그릴 때 성별 요인의 영향을 잊지 않았단 점이다. 영화 속 젊은이들 중 적극적 배척의 주동자/공모자들은 대부분 오프닝의 로코 같은 남성들이고 TJ에게 아버지가 보내준 것 같은 상징성을 갖던 반려견 마라(Marra, 광부들 언어로 단순한 친구보다 깊은 의미의 용어라고 한다)를 물어죽인 개의 주인들 역시 책임감 없는 젊은 남자애들이었다. 반면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애들은? 세이디의 딸 조시, 린다의 언니 케이티와 또 이름 없는 무수한 젊은 여자들은 집으로 숨어들고 있고, 엄마들의 ‘우리 딸들’ 걱정을 빌려서만 세상에 드러나는 존재들이다.
꿈도 희망도 자신감도 없고, 자기를 수치스러워하고, 한창 빛나야 할 때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해 히키코모리가 되는 여성들의 양상은 남성들의 타인에 대한 극도의 폭력성과 완전히 구분된다. 이건 영국에 한하지 않은 우리 눈앞의 현실이기도(근 10년 꾸준히 가파르게 오른 20대 여성의 자살률/자살 시도율이나 팬데믹 전후 ‘조용한 학살’을 떠올려보라).
켄 로치가 전 유럽의 청년층 우경화를 거의 반 세기 동안 관찰한 후 형성한 무의식인지, 혹은 의도가 있는 구분인지 정말 궁금한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일 때 폭력성을 외부로 발산하는지 내부로 폭발시키는지 그 방식은 분명하게 성별화된다(또 오인할까봐 굳이 당연한 소리를 덧붙이자면 이건 물론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차이, ‘어떻게 키워졌느냐’의 차이).
책이나 뉴스는 전혀 안 보고 오로지 영화만 보는 인물이라 해도, 근 몇 년간 가장 화제였던 디아스포라 서사 <사마에게>와 <가버나움> 또는 <소년 아메드>와 <토리와 로키타> 중에 한 편 정도는 알지 않을까. 난민의 몸에 체화된 공포를, 애써 도망쳐 도착한 사회에서 매 순간 거부당하며 위축되는 감정을 모를 리 없다. 난민을 만드는 내전과 정치적 탄압이 어떤 시절 어느 나라들에서 발원했는지, 강력한 종교적 규제, 소수자 배척과 구금 및 고문 등이 얼마나 잔혹하게 사람을 망가트리는지는 공교육만 제대로 받았다면 더욱이 모를 리 없다.
그래서인지 난민-빈민은 인권을 두고 제로섬으로 경쟁할 대상이 아니란 점을 매우 명시적으로 얘기하는 <나의 올드 오크>를 바로 그 경합(을 넘어 거의 적대)의 구도로만 읽어내거나, 영화가 너무 망상적이고 편향적이라며 투정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일 때마다(걱정보다는 적지만) 21세기의 공론장이 얼마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지 오래됐는지 자꾸 상기하게 된다. 이건 모두 우리 사회가 공론장에 올리면 안 될 것을 - 안티 페미니즘을, 난민 ‘수용 거부’론을, 퀴어와 장애 혐오를 - 마치 하나의 대등한 주장처럼 링 위에 올려주고, ‘의견’으로 고려하면 안 될 것을 의견으로 쳐주고, 논쟁의 대상이 아닌 것을 ‘00 논란’으로 체급을 키워주는 바람에 초래된 전 인류의 비극. 모두가 일제히 그 '의견'을 받아들이기 거부해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절망하는 와중에 87세의 켄 로치는 침착하게 사태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견 내지 않기를 선택했던 대다수의 방관자들이 하나하나 ’난민 편‘으로 돌아설 만한 사건들이 여기저기 배치됐다며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느낀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거야말로 너무 억지스러운 거부를 위한 거부 아닐까. 이 영화의 전제 자체를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내심을 스스로 못 깨달았든지, 아님 부정하고 싶은 마음까진 분명히 인지했는데 그런 자신이 도덕적 사회적 인간이 아니란 점을 인정 못하는 건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얼마나 주류의 규율이 지향하는 디폴트 인간형과 어긋남 없이 살아왔으면,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를 얼마나 상상을 못해보고 살았으면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나 자신도 악하지 않다고 해달라고 투정을 부릴 만큼 철이 없는 걸까.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설득이 없었다'? 모든 설득이 공청회처럼 자리 만들어주고 오실 분 와서 들으라고 권유하는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뿐더러, 어차피 혐오할 사람은 어떤 노력이 선행했든 답을 정해두고 혐오한다. 과연 빅과 에드와 로코 같은 사람들이 시리아 난민 도착 전에 어떤 설명을 들었다면 차분히 환영해줬을까? 버스에 불 지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기다렸을 거라고 예상한다.
‘부자연스럽다’? 원래 대부분의 사람은 부대끼고 살면서 밥 몇 끼 같이 먹다보면 놀랄 만큼 빠르게 타인에게 적응하고 친밀감 갖고 애정하게 된다. 초대 교회들이 파산 직전으로 가난할 때도, 진짜 죽어나가는 수준으로 핍박받던 로마 왕정 하에서도 이 악물고 ‘같이 밥 먹기’ 강조해가며 교인들 일요일 식사 다 챙겨먹였던 이유 역시, 커뮤니티로서의 식사 공동체가 수행하는 물리적 친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대한지 알기 때문이겠다.
어차피 못 받아들일 빅과 같은 사람은 ‘떼어놓고’ 갈 때, 나머지 다수에게 선 밖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이 사람들도 사람이다’란 사실을 납득시키고 싶을 때 ‘함께 밥 먹기’라는 건 켄 로치가 판단하기에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사람 냄새나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그런 <나의 올드 오크>가 영화답지 않게 너무 교조적이거나, 너무 ‘편향된’ 것 같거나, 너무 망상적이고, 난민 혐오자를 너무 단편적인 악으로 그린 것 같은가? 그래서 너무 유치하고 납작하게 느껴진단 이유로 영화의 사회적 제언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가? 축하합니다. 당신은 바로 이 쉽게 떠먹여주기 위한 영화의 정확한 타겟입니다. ‘난민 수용 여부를 떠나’ 영화를 영화로만 사고하고 싶은가? 떠나면 안 될 논제를 굳이 떠나고 싶어하는 건 강자가 여유 부리며 무지한 상태에 남아있고 싶어할 때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켄 로치 감독은 선한 사회주의자라 이 '난민 반대론자'들의 반지성과 혐오까지 사회 구조적으로 이해해보려 애를 쓰며, 또 하나의 영화적 희망을 심어둔다. 바로 야라의 카메라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야라의 카메라는 남성화/보수화/반지성화/구조화된 현대의 폭력에 대응하는 매우 시네마틱한 장치다. 난민 가족들을 실은 셔틀이 마을에 도착하고 어리둥절한 주민들이 이들을 위협하려 몰려드는 오프닝, 셔틀 밖에 있는 그들을 함께 밖에서 찍은 영화적 영상 대신 셔틀 안에서 밖을 찍은 야라의 사진 슬라이드가 전개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원류 - 모션 픽쳐에 대한 켄 로치 나름의 야심이 드러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즈음 올드 오크의 뒷방(이란 공간이, 이 말이 주는 울림은 왜 이렇게 늘 두근대는가)에 모인 마을 사람들이 야라의 사진 슬라이드를 다같이 숨죽이며 시사하는 장면에선 이 영화적 야심이 기어이 폭발하는 것만 같다. <플라워 킬링 문>의 드 니로가 무심하게 관망하던 바로 그 모션 픽처. <파벨만스>의 어린 스필버그가 비명을 참고 첫 작품을 찍어냈던 바로 그 매체.
야라의 사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야라라는 경계인이 담은 폐광촌의 사람들, 아직은 외부인이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연대체가 되어가고 있는 난민들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켄 로치는 이 아름다운 야라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허투루 다루지 않고 정직하게 3초씩 꾸벅이며 넘어가게 둔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우직함. 아마도 그것이 그의 연대, 그의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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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의 아들 / Son Of Saul
/ 줄거리 /
시체처리반 일명 '존더코만도'인 사울은 주검이 된 자신의 아들을 발견하고
아들의 장례를 제대로 치뤄주기 위해 시체를 빼돌리고, 랍비를 찾아나선다.
/ 영화의 특징 /
이 영화는 1.37:1 비율의 화면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은 사울의 뒷모습을 쫓는다.
이러한 화면의 비율은 나치수용소의 폐쇄적인 느낌을 극대화시켰으며
사울의 뒤를 쫓는 카메라워킹은 우리가 사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체들을 계속 '토막'이라고 칭하며 인간존엄성이라는 것이 없는
나치수용소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다.
/ 간단한 고찰 /
1. 사울은 왜 그토록 아들의 장례를 치루어주기 위해 노력했는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나무토막다루듯이 처리하던 사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을 위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어 줌으로써 평소 갖고 있던 죄책감을 덜고, 단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어 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들을 위한 기도와 장례지만 그 사이에 평소에 자신이 처리해 왔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무고한 희생을 당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다.
2. 그 아이는 진짜 사울의 아들일까?
영화를 보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들의 장례를 치루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지지만, 이게 과연 부성애일까?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영화 중간중간에 사람들은 사울에게 '너는 아들이 없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에 사울은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회파하거나, '아니, 지금 내 와이프의 아들은 아니고 중얼중얼' 하며 횡설수설한다.
또한, 수용소의 특성상 그리고 사울의 처지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아무리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여도, 아들이 다시 죽임을 당할 때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울은 왜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이라 생각하고, 장례를 치루어주기 위해 자신뿐만아니라 동료들 마저 희생시켰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그리고 '아들의 장례'라는 것이 사울에게 있어서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삶의 목표의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3. 마지막장면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이를 보고 환하게 웃은 이유?
위에서 말했다시피, 아들이 사울의 진짜 아들이 아니었다면
사울이 장례를 치루어 주고자 한 아이는 사울의 죄책감과 목표의식등이 투영된
대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꼭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도 투영가능하지 않을까.
따라서 내 생각에 그 아이는 강에서 감정투영의 대상이었던 아이를 잃고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사울에게 보여진 새로운 감정투영의 대상이었고,
사울의 의미 모를 환한 미소는
' 너라도 탈출할 수 있어서 (혹은 살아서) 다행이야'
하는 의미를 담고 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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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130년의 고독을 건너 울려 퍼지는 역사에 관한 물음
다호메이 Dahomey
France/Benin/Senegal/2024/68min
*시놉시스
영화는 파리 케 브랑리 박물관이 보유했던 다호메이 왕국의 보물 26점을 본국으로 반환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베냉으로 송환된 보물은 방문자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박물관에 진열해야 할까, 아니면 본래 종교적 오브제로서의 기능을 살려 대중에게 돌려줘야 할까?
130년 동안 태어난 땅에서 단절되어 어둠 속에서 존재하던 무언가가 있다. 그는 내내 침묵을 강요당해 자기 의사를 말할 수 없었다. 그가 견뎌야 했던 고독은 가혹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한 세기가 훌쩍 넘었다. 그는 다시 빛의 세계, 즉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의 고독은 낯섦과 현기증으로 바뀐다.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곳, 자신이 떠나올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진 곳이 야기하는 감정이다.
그는 다호메이 왕국 출신의 조각상이다. 현재는 아프리카의 베냉 공화국이 있는 자리다. 다호메이의 문화재 7천여 점은 프랑스에 식민 통치를 당하던 시절 바다를 건너 강탈당했고, 그중 26점이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참이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다호메이〉의 영화적 성취는 인간이 아닌 이들 문화재에 목소리를 부여한 데서 나온다. 프랑스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상어 문장(紋章)을 한 반인반수 조각상의 모습을 한 다호메이의 왕은 이 귀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호메이 왕(조각상)의 목소리는 영화의 질감과 정서를 단번에, 그리고 근본적으로 주조한다. 그는 동시대 베냉‧프랑스 역사의 주인공이자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다호메이 조각상의 귀환은 단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저 제국주의자들에게서 빼앗긴 문화재를 돌려받았다는 단선적인 설명은 그의 낯섦과 현기증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감동적인 귀환이 마무리되고, 다호메이를 국가 차원에서 환영하는 대대적 행사가 영화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의 낯섦과 현기증은 본격화된다.
먼저 지금 프랑스에서 다호메이를 돌려받는다는 것의 의미다. 이야기의 주체는 다호메이 조각상이지만, 그를 운반하는 주체는 국가다. 베냉 공화국에서 다호메이 조각상은 순식간에 국가, 민족, 역사, 문화의 상징이 된다.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상징물로서 집단적 피식민 주체성을 주조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 낯섦과 현기증이 파생된다.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의 의미에 대한 토론회에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폭발하듯 분출한다. 누군가는 현 대통령의 조상이 프랑스 편에 섰던 자였다는 점을 들어 위정자의 역사 세탁을 고발한다. 누군가는 수천 점의 문화재 중 26점만 반환된 것에 강한 불만을 표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번 반환이 프랑스의 이미지 정치의 일환일 뿐, 베냉이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제국주의 역학의 문제를 짚는다. 돌려받은 문화재를 어떻게 교육하고 관리할 것인지도 문제다. 다호메이가 국가적 상징이라면, 도시에 사는 사람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접근성 격차는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이들 문화재는 각각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번 반환을 출발점 삼아 변화를 모색하자는 희망파와 오만한 프랑스에 또 한 번 놀아났다는 비관파 등등 논쟁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렇게 다호메이의 목소리는 동시대 베냉 공화국 시민들의 목소리와 공명하며 낯섦과 현기증의 세계로 진입한다. 130년 만의 귀환이라는 초현실적 판타지가 자아내는 낭만은 다층적 권력 관계가 어지러이 교차하는 현실의 한복판에서 희미해진다. 그 대신 첨예해진다.
다호메이 조각상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인가?” 이 말은 자신을 마냥 환영해주지 않는 후손들에 대한 한탄일까? 그렇지 않다. 또 다른 목소리를 들어보자. “나는 당신들을 통해 나를 선명하게 본다.” 다호메이는 어둠에서 빛으로의 이행이, 프랑스에서 베냉으로의 이동이 온전한 기쁨과 승리의 역사일 수만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130년을 고독 속에 있던 만큼, 자신이 의탁할 곳이 자신을 둘러싸고 폭발하는 담론의 바다에서 지난한 시간을 거쳐 마련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베냉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얼굴을 비추는 영화의 시선은 후손을 바라보는 다호메이 조각상의 시선이다. 그 다양한 삶에서 솟아나는 치열한 토론과 논쟁 끝에 이른 합의의 지점에 자신을 맡기겠다는 의지의 표명을 드러내는 시선 말이다. 하나의 목소리지만 여러 목소리가 혼재된 듯하고, 누군가 꿈과 환상으로부터 말을 걸어오는 듯한 조각상의 목소리도 같은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약탈과 반환,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역사를 이해하고 논쟁하는 법에 관한 〈다호메이〉의 물음은 베냉만의 것이 아니다. 다호메이의 목소리는 식민자와 피식민자 모두에게 역사에 대한 복잡한 사유를 긴급하게 요청한다.
*영화 상영시간
10-03/10: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04/10:3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10-09/20:30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https://www.biff.kr/kor/html/schedule/date.asp?da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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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 뉴 이어 / A YEAR-END MEDLEY, 2021
작년 설에 개봉한 <새해전야>의 당초 개봉일은 2020년 12월 30일이었습니다.
제목처럼 "새해"를 맞이하려했지만, "코로나19"로 개봉이 연기되며 이대로 이뤄지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 영화는 17만명에 그치며 쓸쓸히 극장을 퇴장했는데, 이번 <해피 뉴 이어>는 제목대로 개봉을 했습니다.
다만, 그 때와 달리 더 심해진 "코로나19"로 극장과 함께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 "TVING"에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복>과 <미드나이트> 다음으로 세 번째 결정입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해피 뉴 이어>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어느덧, 새해를 앞둔 연말 15년째 남사친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호텔리어 ‘소진'의 속도 모른 채 ‘승효’는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발표합니다.
근데, 결혼하는 장소가 자신이 일하는 호텔이고 축가를 불러달라고 하니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간다.
그리고, 호텔 대표 ‘용진’과 하우스키퍼 ‘이영’, 가수 '이강'과 매니저 ‘상훈’, 장수공시생 ‘재용’, 도어맨 ‘상규’와 그의 첫사랑 ‘캐서린’, 그리고 맞선남 ‘진호’까지 이 곳 "엠로스 호텔"로 모여드는데...올 한해, 극장은 행복할 수 있을까?
1. 공식에 충실한 영화, 재미도 충실할까?
앞서 말한 <새해전야>처럼 영화 <해피 뉴 이어>도 크게 다른 점이 존재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이 기원을 올라서면, <러브 액츄얼리2003>부터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2010>까지 한데 모이기 어려운 배우들을 집합시켜 배우들의 얼굴보는 재미는 보장합니다.
여기에 "옴니버스"구성으로 다들 이야기씩 꽤나 하니 특정 시즌을 노린 작품이라고 욕해도 궁금하실겁니다.
<해피 뉴 이어>도 공식에 크게 엇나가는 작품은 아니라 이를 기대하면서, 보았습니다.해피?, 언해피!
먼저, 영화 <해피 뉴 이어>의 분량을 살펴보면 138분으로 평균 120분 내외로 끝나는 영화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많죠?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많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러브 액츄얼리,2003>가 130분,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이 129분,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2010>이 125분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앞서 언급한 14명의 캐릭터, 이야기로는 총 6개의 이야기가 존재하니 이를 제대로 소개는 커녕 시작도 할지 걱정이 들었는데요.
그리고, 영화는 그런 우려를 그대로 보여주고 맙니다.2. 이게, 없다구요?
아시다시피, "옴니버스"는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가 기록한 255만명이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수요가 적은 장르입니다.
이런 이유로는 이전 <새해전야>에서 밝혔듯이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만 본다면, "멀티캐스팅"과 유사하나 "옴니버스"는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전개어 이야기의 연결도 되지 않아 캐릭터별로 이야기를 봐야 하는 관객들의 피로는 다른 영화에 비해 배가 된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러닝타임은 길어지고, 캐릭터들의 설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면적으로 소개되어 매력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에서 보듯이 "옴니버스"는 하나의 이야기만을 전개하는 여타 영화들과 다르게, 각 이야기들을 전개하니 관객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더 많은데요.
그래서, "옴니버스"에는 이를 방지한 하나의 장치가 존재합니다.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다시, <새해전야>의 리뷰를 빌려오면, '그렇기에 "옴니버스"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캐릭터들의 동선을 겹치는 우발적인 장면들 넣는다. 스크린 너머 관객들은 알지만, 극 중 캐릭터들을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만들어지는 재미는 "옴니버스"를 즐기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가 그러한 방법입니다.
이번 <해피 뉴 이어>에서도 이를 살펴볼 수 있지만, 여타 작품들에 비해서 많이 약한 것이 아쉽습니다.
극의 전개를 뒤바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알아도 그만일 정도로 설명으로 그치니 이런 장르적인 재미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3. 기본도 없이 잔재주에 치중한다.
그렇기에 지적되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른 개연성도 심하게 흔들립니다.
먼저, 극 중 설정상 오랜 짝사랑을 해온 '소진'과 ‘승효'의 관계를 풀어나가기엔 사전 설명이 너무 없어 이에 납득가질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건축학개론> 혹은 <너의 결혼식>같은 작품들도 과거 에피소드만으로 절반을 넘게 할애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준비 동작인거죠.
다음으로 ‘용진’과 ‘이영’의 관계인데, 이 역시 중간을 빼먹은듯한 설명으로 '이들이 왜, 빠졌는지?'가 아니라 "왜, 싸웠는지?"로 빠져 난감할만큼 이야기가 군데군데 빠진 느낌입니다.
이외에도 ‘상규’와 그의 첫사랑 ‘캐서린’도 '소진'과 ‘승효'에서 지적된 문제가 반복하고, 고딩 커플은 비중도 없으니 이래저래 아쉬운 점들이 많습니다.음악 좀 꺼주세요.
극중 '이강'의 매니저 ‘상훈’이 상대 소속사 사정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고있자니 <엽기적인 그녀>가 떠오르는건 저뿐만은 아닐겁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해피 뉴 이어>의 감독이 이를 연출한 "곽재용"감독이거든요.
물론, "신승훈"의 "I Believe"가 나오지는 않지만 다른 노래를 재생하며 이에 대한 "오마주"가 짙게 묻어 나옵니다.
영화 <해피 뉴 이어>는 노래가 많이 나오는 작품인데, 극 중 시간상 배경이 연말이라 길가에 흘러나오는 캐롤마냥 계속 재생됩니다.
문제는 이게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이유로는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야기 전개가 엉망이라 음악으로 분위기를 녹여도 녹여지지 않다는 것이죠.
배우들 얼굴에 해피했다가 한 살 더 먹을 것만 같은 긴 분량과 아무런 내용이 없는 저의 새해 결심을 본거 같아 화만 납니다.※ 쿠키, 이런 비스무리가 있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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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매혹하며 사유하게 만드는 영화들
사담 후세인 숨기기
월드시네마
어느 날 누군가 평온한 시골집을 찾는다. 그는 사담 후세인으로 15만 미군의 추격을 받는 중이다. 후세인은 집 주인이자 농부인 알라 나미크에게 자신을 숨겨달라고 요청한다. 나미크는 미군의 보복과 사담 후세인의 권위, 무엇보다 가족의 안위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걱정에 휘말리지만 손님을 접대하는 농부의 전통에 따라 후세인에게 235일간 비밀 거처를 마련해준다. 그는 사담 후세인의 주치의, 경호원, 미용사, 운전수, 요리사 역할을 동시에 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결국 미군에 발각된 후에는 8개월간 수감되어 끔찍한 고문과 성 학대로 유명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영화는 알라 나미크의 회고를 통해 세계를 들썩이게 한 이 모든 사건을 차근히 톺으며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평범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사건을 홀로 마주해야만 할 때 어떤 태도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매우 흡인력 있는 다큐멘터리다.
연습
국제경쟁
노르웨이의 급진적 기후 활동가이자 촉망받는 트럼펫 연주자 트리네는 어느 날 명망 있는 음악인에게 오디션 참석을 제안받는다. 문제는 트리네의 집에서 오디션장인 오슬로까지 1,500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점. 비행기를 타면 금방이지만 기후 활동가로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트리네는 히치하이킹으로 오슬로에 가기로 한다. 당연히 온갖 어려움과 불편함, 두려움이 수도 없이 발생하고 연습조차 여의치 않다. 트리네는 과연 오디션장에 제때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연습하고 컨디션을 관리해온 다른 연주자들보다 잘할 수 있을까?
기존 사회의 작동 방식을 비판하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려면 결연하고 혹독한 ‘연습’이 필요하다. 트리네는 오슬로를 향한 여정 곳곳 그리고 그녀의 상상 속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트럼펫을 연주하는데, 이 장면에서 그녀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는 미래 말이다. 트리네에게 동의하든 그 반대 입장이든 이상과 현실, 타협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결연한 의지에서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마스터즈
1973년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가 집권하고 같은 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의 일을 다룬 영화로, 2019년 라울 루이스 감독의 비공개 촬영본을 발견한 동료 감독이 이를 편집해 복원했다고 한다.
영화 도입부와 말미에는 당시의 혁명적 사회 분위기를 포착한 다큐멘터리 장면이 나오고 중간에는 픽션 장면이 나온다. 어딘가 관료적으로 보이는 당과 당의 신중함이 답답한 노동자 집단의 논쟁, 지식인과 소부르주아지들이 자신들이 과연 혁명의 주체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논쟁, 노동자들이 점거한 공장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을 처리하는 장면, 도둑질로 공장에서 쫓겨난 남자가 우익 폭력단에게 사주받는 장면 등 혁명 직후와 쿠데타 직전의 난맥상을 고루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미공개 영상을 이어 붙였다는 점에서 영화적으로도, 혁명이 결코 하루아침에 세상을 완벽하게 바꾸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는 점에서도 ‘공백’이 많은 영화다. 그러나 이 공백은 관객에게 영화에 생산적으로 개입하기를 요청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혁명의 체계 없음에 고개를 저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오히려 반대다. 혁명은 이 모든 지난한 난장을 생산적 힘으로 전환하는 역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위 영화의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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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전투가 아니었다 - GHOSTS OF WAR
흥해라 이 영화
고스트 오브 워 (2020)
- 2차대전 막바지 크리스와 4명의 분대원들은 한때 나치가 점령했던 프랑스 대저택에 도착한다
휴양지 같은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려 했으나 정체불명의 소리와 의문의 사건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적군과의 교전도 모자라 정체불명의 존재와 싸워야 하는 군인들의 퇴마미션 '고스트 오브 워'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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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주 최신 개봉영화(샹치, 켈리 갱, 코다, 습도 다소 높음, 최선의 삶)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1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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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미래일기 시즌 2> 공식 예고편
20년 전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전설적인 연애 리얼리티 쇼를 넷플릭스가 리부트한 작품, 《미래일기》가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미래일기》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적혀 있는 신비한 사랑의 일기장'. 서로를 전혀 모르는 출연진에게 일기장이 전해지고, 거기에는 그들이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예언이 적혀 있는데. 깜짝 놀랄 만남과 감동적인 사랑 고백, 특별하고 극적인 이벤트를 경험한 출연자들은 과연 사랑에 빠지게 될까? 시즌 2에서는 일기장이 요구하는 험난한 시험에 든 출연자들의 삼각관계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싱글 남녀들은 사랑과 우정 중 어느 쪽을 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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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더랜드> 메인 예고편
기본정보) 제목: 보더랜드(Borderlands) 감독: 일라이 로스 주연: 케이트 블란쳇, 케빈 하트, 잭 블랙, 제이미 리 커티스, 아리나 그린블랫, 플로리안 문테아누 장르: 판타지, 액션, 코미디 수입/배급: ㈜누리픽쳐스 러닝타임: 101분 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5년 3월 5일 시놉시스) 악명 높은 현상금 사냥꾼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는 은하계를 이끄는 굵직한 기업가 ‘아틀라스’의 실종된 딸 ‘티나’(아리나 그린블랫)를 찾기 위해 은하계에서 가장 정신없는 행성이자 자신의 고향인 판도라로 향한다. 그곳에서 투 머치 토커 로봇 ‘클랩트랩’(잭 블랙)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티나’를 만나지만 엘리트 용병 ‘롤랜드’(케빈 하트)와 사이코 ‘크리그’와 함께 이리디안 종족이 숨겨놓은 보물 ‘볼트’를 찾으러 가게 되고 괴짜 과학자 ‘태니스’(제이미 리 커티스)까지 합류하면서 아주 요란하고 ‘킹’받는 여정에 오르게 되는데… 똘X 충만한 놈들의 대환장 팀플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