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10-13 17:09:56
[BIFF 데일리] 절대 미화되지 않을 기억
<클로즈> 리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공동 수상에 빛나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매우 사적인 기억에 가까이 다가가볼 수 있는 영화 <클로즈>는 성정체성을 다룬 작품 <걸>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번에도 역시 사회가 강요하는 틀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렇지만 너무나도 보통의 인물을 이야기한다.
작품의 배경이자 루카스 돈트 감독의 출신지인 벨기에는 2003년,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동성혼 합법화를 이뤄낸 국가이다. 인식은 제도를 뒤따르기 마련이고, 해당 제도가 갖춰진 지 약 20년이 흐른 현재 벨기에 국민의 82%가 동성혼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편견은 존재하며, 동성결혼 자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동성애에 관해선 거부감을 여과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클로즈>는 꽃이 만개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두 소년의 모습으로부터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에서 히데코와 숙희가 들판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의 해방감이 느껴지는 두 소년의 질주는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을 것 만큼 강인하며 아름답다. 이렇게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이던 두 소년은 새 학기가 시작됨과 함께 사회의 그릇된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될 건 없지만 이상하다는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또래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칼이 되어 이 둘의 관계를 조각내고, '레오'를 고정관념이라는 틀 안으로 밀어넣고 만다. 그렇게 레오는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스하키를 하는 등 사회가 남성적이라 규정하는 것들에 몰두하며 래미를 자신의 울타리에서 몰아내기 시작한다.
한순간에 래미의 세상은 무너져 내리고, 관계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청소년기의 한 소년의 삶도 함께 무너져버리고 만다. 레오는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에 나가고, 아이스하키를 하며 일상을 유지하려 하지만, 전혀 괜찮을 리 없는 레오는 다른 사람의 등을 보는 순간 감춰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터지고 만다.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친구는 떠났지만, 레오는 이 추억을 그대로 안고 살아갈 것이다. 영화의 끝자락에 레오가 혼자 들판을 달리는 장면에선 초반 들판씬에서 느껴지던 해방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레오'의 모습을 통해 이 소년이 잔혹한 세상을 결국 살아낼 것이라는 희망이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기억을 온전히 갖고 결국 살아낼 것이며, 세상의 수많은 '레오'들 역시 살아내리라.
루카스 돈트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 2022 | 104min | DCP | Color
씨네랩 에디터 Cammie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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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이유가 있진 않지만 일단 다 준비했어
<범죄도시 4>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괴물 형사 마석도(마동석)다. 수사 중인 마석도. 마약 유통업자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팀과 노력하고 있다. 딱 봐도 이상해보이는 남자를 쫓는 마석도. 열심히 달리니 도착한 곳은 어떤 건물의 옥상이다. 문을 열고 유통업자들의 본거지에 도착한다. 문이 철창으로 되어 있었다. 철창을 부수는 마석도. 악한들을 때려눕히고 나서 범죄자들이 쓰던 휴대전화를 관찰했다. 그 휴대전화에는 범죄자들이 마약을 유통하는 방식에 대한 힌트가 있었다. 어플을 개발해서 마약을 판매하던 업자들을 잡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다. 동시에 마석도에겐 과제가 있었다. 어느 날 발견된 시체가 있는데 그 피해자의 어머니와 했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석도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마석도가 나쁜 놈들을 싹 쓸어버린다!
가장 처음으로 써볼 수 있는 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경찰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다. 고된 노고로 치안에 힘쓰는 경찰들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좀 생뚱맞게 보일 수 있다. 아니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냥 마동석이 나쁜 놈 때려잡는 게 전부 아니었어? 물론 맞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가장 첫 번째 영화 <범죄도시> 1편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다 끝나고 나서 올라오는 자막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글쓴이의 기억 상으로는 ‘모든 한국 경찰들을 응원합니다’였다. 실제로 <범죄도시> 1편은 경찰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전일만(최귀화)나 강홍석(하준)의 서사를 이야기 전면에 배치시켜서 캐릭터 무비로서 장점을 추가했다. 경찰이 우리 일상에서 푸근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본편 <범죄도시 4>는 이 1편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오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서 이 영화의 기본, 그러니까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시리즈 1편에서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기존 시리즈의 계승과 그 변주를 통한 쾌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글쓴이는 이 부분, 그러니까 ‘계승과 변주’에 대해 써볼 것이다.
우선 가장 첫 번째로 써볼 것. 이 영화의 사실상 진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장이수(박지환)의 존재는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기획의도와 닿아있는 인물이다. 코미디라는 장르적인 특색과 영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과제를 수행하는 캐릭터가 장이수다. 그 과제가 뭘까? 바로 관객의 관점에서 경찰의 노고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아예 낯선 캐릭터들이 많았던 <범죄도시 3>의 쿠키영상에 등장한 장이수. 이 장이수는 1편과 2편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4편에 다시 나타났다. 이 시리즈 중 4편 중 3편에 등장한 캐릭터는 마석도 제외 장이수가 유일하다. 이 특징은 곧 장이수가 우리들에게 친근한 캐릭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친근함을 바탕으로 영화는 인물의 시점에서 여러 장면들을 비춘다. 이 연출의 의도는 중후반부에서 더 두드러진다. 왜? 마석도가 장이수를 데려온 것 치고 둘은 따로 논다. 오롯이 장이수만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근거는 장이수가 플롯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글쓴이는 장이수가 이야기 내적으로 이 역할에 100% 걸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장이수의 설정이 본작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원래 경찰이 꿈'이나 '도박업체를 운영한 적 있다'라는 점을 4편이 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제시한다. 심지어 이 인물의 행보를 보면 마석도가 데려온 것 치고 주인공과 따로 논다. 하지만 이 장이수는 명예경찰이 되어 악당들을 소통하는데 기여하는 행보를 보여준다. 마석도와의 캐미보다 이 검거 과정을 감독이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의 화룡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이수의 대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찰들 목숨 내놓고 사네!”다. 이 대사는 일반인이 경찰이 되어 겪은 경찰들의 노고를 관객에게 떠먹여 준다는 점에서 이 인물의 기획의도를 드러내는 문장이었다.
이 장이수가 등장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 변주를 둔 캐릭터에 속하는데, 바로 서울지방경찰청(권일융)의 등장이다. 이 캐릭터가 등장한 배경이 아주 흥미롭다. 마석도와 장태수(이범수)가 둘의 상사(정인기)를 만나 설득한다. 이번엔 1,2,3편과는 다르게 실패한다. 일단 이 상황 자체가 변주인데 그것이 한번 더 일어난다. 우리가 아는 실제 경찰이 영화 안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 자체도(권일융 교수의 발연기 때문이 아니라;) 변주지만 이 인물의 입에 나오는 대사도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이 범인을 잡는 시기가 예상보다 늦을 수 있다”는 말과 “경찰은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경찰청장. 글쓴이가 주목하고 싶은 건 이 경찰청장의 캐스팅이다. 그냥 모르는 아저씨가 짠하고 나타나서 이런 대사를 해도 이야기의 흐름에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굳이 권일융이라는 프로파일러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영화 밖에서 찾을 수 있다. 권일융 프로파일러는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다. 이 인물이 대중매체에 자주 노출됐기 때문에 이 사람의 권위를 우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인물이 굳이 영화에 들어와 경찰청장을 연기한다. 그럼 당연히 경찰로서의 권위가 영화 안에서 맥락으로 사용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현실과 영화 밖을 흐려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방식은 이 장면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느냐에도 근거가 있다. 마석도 역할을 맡은 마동석 배우는 현재 명예경찰 경위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에 힘입어 경찰청에서 명예직을 수여한 것이다. 이 마동석 배우가 ‘범죄도시’ 시리즈를 찍을 때 마석도를 연기하지 않나? 그럼 명예경찰인 배우가 경찰을 연기한다는 삼중 구조의 상황이 연출된다. 글쓴이는 이것을 경찰과 배우의 중간단계라고 생각한다. 이 마동석 배우를 기준으로 실제 경찰인 사람(권일융 교수)과 직업이 배우인 사람(정인기 배우)이 한 컷에 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경찰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연출은 곧 “영화라는 틀(배우)을 넘어 경찰 베테랑이 영화와 현실 한가운데에 있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문단을 종합하면 ‘경찰 베테랑의 입을 통해 영화와 현실 한가운데에 있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윗문단에 쓴 장이수의 활용법과 겹쳐지는 점이 있다. 인물의 활용이 현실의 관객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다.
다음은 이 영화의 어떻게? 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에 있어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한지수(이주빈)다. 이 ‘범죄도시’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어렵다. 이 시리즈는 마석도의 핵펀치로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 아닌가? 하지만 이 장점은 반대측면에서 단점으로 돌아온다. 여성 캐릭터가 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마 마석도와 여성 캐릭터가 맞대결을 펼치기엔 블랙 위도우정도는 돼야 싸움이 가능하다. 시리즈의 기획의도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다양성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 특징은 치명적이라 영화가 다른 노선을 취하기가 어렵다는 단점과도 이어진다. 성별이 영화 밖의 맥락에서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자그마한 요소 하나로 이야기의 결은 아예 달라질 수 있다. 그럼 시리즈 중 하나의 배경에 여성 경찰이 등장할만한 일을 깔면 되지 않을까? 글쓴이는 이 영화가 이 과제에 대한 답으로 사이버 범죄를 선택했다고 본다. 사이버 범죄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내지는 면대면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물리력이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다. 그럼 한지수가 등장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한지수는 강남수(김신비)라는 부사수와 함께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서 이야기를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된다. 이 필연에 근거한 캐릭터 한지수는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초반부에 마석도가 한지수에게 “방검복 입혀!”라고 말하자 그녀가 이 제안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을 필두로 인물이 마냥 끌려가지는 않는 연출인 것과 동시에 직접적인 액션은 없이 인물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이 영화의 악당들에 대한 부분도 영리하게 변화구를 둔 지점이 있다. 여러분은 권사장(현봉식) 캐릭터를 어떻게 봤는가? 글쓴이는 이 영화가 기존의 시리즈와 다르게 1대 다수의 구도를 만들려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선택의 일환이 권사장이라고 느꼈다. 이 영화가 기존에 유지했던 1대 1 혹은 1대 2의 구도라는 클리셰에서 벗어나 1대 3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 권 사장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것의 첫 번째 근거로 물리적 비중을 이야기할 수 있다. 권사장이 사전에 광고된 바와는 다르게 물리적 비중도 크고 장동철(이동휘) 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영화가 중간에 광고된 것 그 자체라면 장동철이 판을 이끄는 흑막으로서 극을 이끌 것 같지만 백창기(김무열)의 곁에서 사건을 지휘하는 일은 권사장이 맡았다. 이 단적인 사실만 놓고 봐도 이 영화의 빌런은 2명이 아니라 3명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화 안에서 이 빌런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도 이 영화를 설명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전작 <범죄도시 3>을 생각해 보자. 리키(아오이 무네타카)와 주성철(이준혁)은 시시건건 대립한다. 그러다가 플롯이 하나로 정돈되며 마석도와 리키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는데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는 액션 신을 통해 ‘외국인’과 ‘검객’ 빌런의 개성을 나름대로 살리려고 노력했다. 권사장 역시 본작 <범죄도시 4>에서 3편에서 리키가 받은 대우를 오마주 하는 듯한 장면이 있다. 바로 마석도와의 대결 장면이 있는 것이다. 이 대결이 주먹 세 방에서 끝나서 그렇지 이 영화의 핵심인 ‘마석도와의 맞대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빌런으로 둔 변화구는 후반부 마석도와 백창기의 맞대결에서도 볼 수 있는 변주다. 백창기의 옆에 조력자로 나오는 캐릭터가 마석도와의 대결에 참여한다는 점은 이 영화가 빌런의 물리적인 수를 통해서도 변화를 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윗문단에 적은 걸 보충하고 싶다. 이 영화는 현재 경찰들의 헌신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가 변주하고 또 계승한 것이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가장 첫 번째 계승과 변주는 하이라이트 액션이다. 원래 범죄도시 시리즈의 하이라이트 액션은 합을 길게 주고받는다. <범죄도시 3>에서 주성철과 마석도는 넓은 경찰청 안의 방과 방을 움직이며 온갖 구조물을 부수고 다닌다. 본작에서도 비행기 안에서 공간을 바꾸는 액션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글쓴이는 마석도가 1,2,3편처럼 종합기술로 백창기를 제압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몇 대 더 때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왜? 연속기로 백창기를 두들겨 패면 그 전의 상황을 보여줄 수 없다. 그전 상황이 뭐게? 바로 백창기가 뛰어난 무력으로 마석도의 몸에 칼을 꽂는 장면이다. 또 2대 1의 구도를 맷집으로 버티는 상황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또 여기에 대사 한 줄을 더 추가한다. "외롭지"라는 대사다. 액션 신의 두 상황과 대사 한 줄을 덧붙이면 경찰 마석도가 직업인으로서 겪는 애환을 보여주는 셈이다. 혼자라서 알아주지도 않지만 위험한 일을 감수하는 경찰로서의 삶을 단면으로 잘라 보여준 것이다. 이 단면을 보고 느끼는 것. 혹시 이 전 장면에 마석도의 헌신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없을까? 조성재와 관련한 감정선이 영화에서 중요하기는 하다. 인물의 동기가 되니까. 하지만 전작처럼 그냥 나쁜 놈이니까 두들겨 패고 잡아넣어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부상당하고 노력하는 마석도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납작하다 못해 평평한 마석도라는 캐릭터에 입체성에 부여해서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 선택이 됐다.
물론 영화는 이 '경찰의 헌신'이라는 소재를 마석도에만 국한 짓지는 않았다. 김만재(김민재)가 백창기와 대결을 펼치는 장면, 양종수(이지훈)의 팀이 필리핀에서 악당들을 체포하는 장면은 경찰들이 직업인으로서 '열일'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엔딩도 이 직업인으로서의 경찰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마석도와 한태수가 팀을 이끌고 조성재 모녀를 추모한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교통경찰이고, 그 인물은 장이수에게 "Police 지 Folice가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영화의 마무리를 경찰로 끝내고 그 마저도 영단어의 스펠링을 보여주고 끝낸다는 건 분명히 이 장면을 강세를 두고 말하고 싶다는 의미겠지? 심지어 오프닝에서 경찰이 습격당해 죽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통일성까지 생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의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자체를 강조했다는 것이 이 <범죄도시 4>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역설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따라오는 수많은 단점들은 이 선택에 따라 딸려오는 것들이었다. 글쓴이는 장이수의 등장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장점으로 언급한 부분은 반대로 돌아와 이 영화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씬, 그러니까 필리핀 경찰이 "넌 왜 머리가 길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굳이 필요했을까? 더 나아가 FDA를 보고 장이수는 왜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던 걸까? "마 형사"라고 대놓고 언급하는 장면을 겪고 나서도 마석도는 왜 장이수와 협업하지? 갑자기 틈입하는 '원래 꿈이 경찰'이라는 설정이 굳이 필요했을까? 이 설정이 인물의 동기에 있어 중요하기는 하지만 마석도가 다른 말로 설득했다 하더라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권일융 프로파일러가 경찰청장으로 나온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오지 않은 관객을 세는 건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해서 그 장면은 그게 최선이었겠지만 어떤 장면은 특정 영화의 전체적인 퀄리티를 헤치기도 한다.
사이버 범죄라는 선택지를 골라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도 약간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다. 글쓴이가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본 장면은 장이수와 합심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한지수는 이주빈 배우의 빼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여기서 하나 더 덧붙인다. 한지수가 액션을 보여줄 것 같았지만 마석도가 "뻥이야"라면서 불필요한 대사를 친다. 이 두 장면은 여성 캐릭터를 고전적으로 사용했다는 점/한지수가 액션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나라는 점에서 연출 의도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전자가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하더라도 한지수가 주체적인 모습이 없으니 여성 캐릭터가 그냥 존재만 하고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이 캐릭터가 사이버 범죄 전문가라는 설정이 빛을 발하지도 않는다. 한지수가 뭔가를 하는 건 그 하는 것 자체만 보여주지 그 디테일은 장이수가 채우니 내실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이 단점의 표면, 그러니까 '사이버 범죄'라는 기본적인 배경은 영화의 핵심과는 멀어 보인다. 물리적인 범죄가 아니다 보니 치밀한 수싸움을 기대하는 관객이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 해결 방식은 우리가 아는 범죄도시 시리즈 그 맛이다. 이 무의미한 설정은 본 작의 코미디 요소와도 이어지는 단점인데 글쓴이는 '클라우드 동기화'같은 이상한 개그를 왜 들어야 하나 싶었다.
빌런으로 1 vs 다수의 구도를 설정한 것도 깊게 파면 단점이 많다. 가령 김무열 배우가 맡은 백창기만 봐도 그렇다. 김무열 배우가 굉장히 뛰어난 배우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백창기 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잘 안다. 특히 하이라이트 신에서 허허허허허 웃는 장면은 굉장했다. 하지만 이 연기력에 비해 물리적인 비중이 부족했다. 단지 돈 받고 말고 가 인물의 동기다. 1편의 장첸, 2편의 강해상과는 다른 행보다. 1편의 장첸은 동기를 예측할 수 없어서 무서운 놈이었고 2편의 강해상은 동기 같은 게 없어서 악함이 드러나는 빌런이었다. 그런데 본 작의 백창기는 그냥 사람 죽이고 건물 부수는 게 전부다. 심지어 중간에 굉장히 의아한 선택을 보여준다. 청소부 아주머니를 공격하는 장면에서 글쓴이는 당연히 아주머니와 김만재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영화는 대중성을 선택하며 두 사람이 죽지 않는 선택지를 고른다. 이 사건이 빌런의 악함을 대놓고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두 사람을 공격해야 후반부에 카타르시스를 더하는 것 아닐까? 단지 허허허허 웃는 게 빌런의 악함을 드러내는 방식인 걸까? 왜 이런 연출이 들어갈까 생각해 봤다. 왜?를 거세하고 그냥 현상 그 자체만 담기 위해 이런 각본이 들어간 게 아닐까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빌런으로 권사장을 등장시키는 선택지엔 사실 큰 위험부담이 있다. 장동철 캐릭터가 평면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인물이 초반에 이야기를 이끌고 퇴장한 다음 후반부에 권사장이 이끄는 플롯에 쾌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장동철의 역할을 있는 최소화 시킨다. 이 최소화는 이야기의 흐름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이 장동철이 백창기가 사람을 언제든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대비를 부실하게 한다는 점이나 권사장과 백창기의 내통 가능성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리고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이야기의 얄팍함이다. 이 얄팍함이 단지 시리즈의 전통만 계승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야기의 핵심인 '경찰의 헌신'을 보여주는 방식의 문제다. 이 영화의 흐름은 전부 다 말이 된다. '왜?'를 철저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플롯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의 기획의도가 '실제의 경찰'에게 바친다는 점에서 두 특성은 상호 충돌한다. 대표적으로 경찰서에 구금해 있는 범죄자를 수많은 배달원에 가려 죽게 놔둔다는 설정은 명백한 무리수다. 이것만 있을까? 갑자기 업체를 순식간에 후다닥 만들어진다는 설정, 특수경찰이라는 소재까지 영화는 생경한 것들로 가득 차 내내 삐끄덕거린다. 이런 설정들이 말이 아예 안되게 연출되는 것은 아니라 그냥 넘어간다 치더라도 이건 그냥 단지 이야기만의 문제지 현실로 끌고 오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지엽적인 이야기 흐름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삐걱거린다는 점에 있어 치명적이다. 영화가 지나치게 대중성만 고려했다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의 메시지의 측면을 쭉 썼지만 사실 이 영화의 액션은 굉장히 훌륭한 편이다.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석도의 액션이 아니라 백창기의 것이다. 이야기 중반에 건물 하나를 철거하며 보여주는 나이프 파이팅, 김만재와의 대결 같은 것들은 <아저씨>의 차태식(원빈)이 연상되는 부분이었다. 이 액션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몸값을 톡톡하게 해낸다.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사운드와 촬영을 잡은 영화의 내실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이 액션이 아닌 나머지 부분에서 영화는 기술적인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중 최고는 편집이다. 이 편집은 영화의 두 번째 단점으로서 허명행 감독의 경험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가령 "뻥이야"같은 장면 굳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면 길게 뺄 필요가 있을까? 어디 장면에서 어느 게 들어가야 할지를 고민하지 못한 채로 그냥 무작정 이야기만 전개하려니까 완급조절에 실패한 것 아닐까?
글쓴이는 이 <범죄도시 4>가 이번에도 천만 관객을 넘길거라 생각한다. 단점을 적긴 했지만 나의 총평은 '재밌었다'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시리즈의 경고음을 울리는 단적인 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시리즈의 매력을 재가공하는 것이 아닌 표면적인 것만 좇는, 지엽적인 영화의 태도가 아쉬움처럼 느껴진다. 글쓴이는 이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단점 때문에 5편에서 더 본질적인 변화를 두지 않는다면 지겹다고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시리즈의 최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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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턴트맨 | 진심 하나로 무장한 로맨스 코미디 액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할리우드 최고 액션 스타 '톰 라이더'(애런 테일러존슨)의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 그는 숱한 영화에서 경력을 쌓으며 승승장구하며, 촬영감독으로 일하는 '조디'(에밀리 블런트)와의 사랑도 키워나간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갑작스레 끝난다. 스턴트 촬영 중 자기 실수로 허리를 크게 다쳐 버린 것. 자존심에 금이 간 콜트는 그 길로 커리어도, 조디와의 연애도 포기한 채 잠적해 버린다.
그러나 발레파킹을 하며 지내던 콜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영화 제작자이자 톰의 친구인 '게일'(해나 워딩엄)이 그를 촬영 현장에 복귀시킨 것. 그것도 조디의 데뷔작 촬영장에. 콜트는 조디와의 아련한 재회를 기대하며 촬영장으로 향하지만, 게일은 그에게 예상 못한 미션을 내준다. 바로 종적이 묘연해진 주연 배우 톰을 찾아달라는 것. 그렇게 콜트는 다시 한번 온몸을 내던진다. 사랑과 일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예상과 실상의 괴리감
외국 영화가 개봉할 때 제목 번역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초월 번역을 하면 작품의 접근성이나 호감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번역이 영화 내용과 거리가 멀거나 본래 제목에서 멀리 벗어나면 관객의 관람 후 만족도가 낮아질 수 있다. 장르나 내용을 잘못 예상한 나머지 실망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분노의 질주>는 전자다. <The Fast and the Furious>라는 영어 제목 못지않게 카 레이싱 액션 영화라는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전해준다. 반면에 후자의 대표 사례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꼽을 수 있다. <월터 미티의 비밀 생활(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이라는 본래 의미와 동떨어졌기 때문. 자칫 판타지 영화로 오해할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다.
<데드풀 2>와 <분노의 질주: 홉스&쇼> 메가폰을 잡았던 데이비드 리치의 신작 <스턴트맨> 또한 후자다. <스턴트맨>의 영어 제목은 <The Fall Guy>, 직역하면 곧 '추락한 남자'다. 내용도 제목에 충실하다. 스턴트맨 콜트가 인생의 추락을 극복하는 드라마다. 자연히 한국어 제목만으로는 이 이야기를 함축할 수 없다. 이 괴리감 때문일까? <스턴트맨>은 어딘가 허전한 액션 영화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추락한 남자'의 이야기
시작은 화려하다. 예고편처럼 여러 액션 영화 속 콜트의 스턴트 장면을 짜깁기해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내 새 경로를 잡는다. 빌딩에서 등 뒤로 추락하는 스턴트 촬영 중 허리를 크게 다친 콜트. 그는 업계 최고의 스턴트맨이었다는 자존심을 꺾지 못한 나머지 자기 경력을 포기했다. 조디와의 연애 역시 덩달아 끝났다. 그렇게 그는 한 번에 두 번 추락해 버렸다.
자연히 영화는 두 개의 드라마에 치중한다. 우선 콜트가 사랑의 불씨를 되살리려 노력하는 과정을 쫓는다. 이 대목이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특히 콜트와 조디가 촬영 중인 영화 주인공 커플의 관계에 몰입해 서로의 감정을 진솔하되 돌려 말하는 화법이 감동적이면서도 웃음 포인트다. 화면 분할 장면처럼. 로맨스 연기에 특화된 라이언 고슬링, 장르 무관하게 연기력을 자랑하는 에밀리 블런트의 호흡 덕분에 사랑 이야기는 더 빛난다.
이에 더해 콜트가 주연 배우의 실종과 얽힌 음모를 파헤치며 자기 경력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대목은 스턴트맨이라는 직업에 존재론적으로 접근해 스턴트맨을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릴 수 있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비판한다. 스턴트맨에게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없다는 대사처럼. 영화 내에서 얼굴이 비치면 안 되는, 존재하지 않아야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의 비애를 잘 끄집어낸다.
서로서로 발목 잡는 플롯
그런데 두 이야기가 잘 융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범죄와 로맨스 사이를 오가는 사이 서스펜스가 끊기기 때문. 콜트가 요트를 타고 펼치는 액션 시퀀스만 봐도 한계가 명확하다. 이 장면은 콜트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탈출하는 절박한 순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콜트가 조디에게 유언 비슷한 말을 전해야 하니 위기가 절정에 이르기 전에 김이 새 버린다.
그뿐만 아니다. 곳곳에 삽입된 개그 장면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데드풀 2>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지만, 어설프게 균형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듯싶다. 일례로 톰 라이더 실종 사건의 진짜 흑막이 밝혀지는 순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대목을 더 무섭고, 날카롭고, 긴장감 넘치게 연출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그런데 그 순간마다 과한 유머가 찬물을 뿌리다 보니 이야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없다.
영리하지만 임팩트 없는 액션
액션도 균열을 감추지는 못한다. <스턴트맨>의 액션은 주 재료가 아니라 양념이니까. 물론 아기자기한 맛은 살아있다. 차를 전복시키거나, 실전에 스턴트 기술을 접목하거나, 공포탄 총이나 고무 도끼 같은 소품을 활용해 변칙적인 재미를 주는 식의 액션 연출은 분명 영리하다.
이는 의외의 관음증적 재미로도 이어진다. 다큐멘터리나 메이킹 영상만큼 자세하지는 않지만, 블록버스터 영화 속 액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놓치지 않기 때문. 데이비드 리치 본인이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장점을 영리하게 잘 살렸다. 그는 <파이트 클럽>, <오션스 일레븐>, <트로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등에서 브래드 피트의 스턴트를 맡은 바 있다.
하지만 <스턴트맨>의 액션은,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섹시 베이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스턴트맨>은 할리우드의 성장을 밑받침한 수많은 스턴트맨을 위한 헌정작이기에 액션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자연히 극 중 액션은 여러 액션 영화에서 한 번쯤 본 듯한 장면으로 가득하다. <매드맥스>나 <스타워즈>, <분노의 질주>가 대표적이다. 안 좋게 말하자면 클리셰 범벅인 셈이다.
스턴트맨이라는 소재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스턴트맨이 현실에서 자기 기술을 써먹는다는 콘셉트에 충실하다 보니 과장된 액션을 막무가내로 보여줄 수가 없다. CG로 무장한 고자극 액션에 익숙해진 현재 관객의 눈높이에서는 다소 '순한 맛'이다. 자연히 감독의 전작이 보여준 수준의 아드레날린을 느끼기는 힘들다.
가슴 뭉클한 헌사
그런데도 <스턴트맨>의 끝은 뭉클하다. 톰 크루즈, 제이슨 모모아 같은 배우와 <제이슨 본>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의 오마주로 꾸며진 헌사가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
이에 더해 라이언 고슬링과 에밀리 블런트가 스턴트 액션을 직접 소화하는 메이킹 영상을 담은 엔딩 크레디트 덕분에 영화의 진심은 놀랍도록 잘 전달된다. 혼합된 장르 사이에서 방황하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액션 영화 팬이라면 마지막 순간 <스턴트맨>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로맨스, 스릴러, 코미디, 액션, 스타, 진심까지 있는데 허전한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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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일의 밤> -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제8일의 밤 (The 8th Night)
개봉일 : 2021.07.02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태형
출연 : 이성민, 박해준, 김유정, 남다름, 김동영, 이얼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번민하는 검은 악마의 눈과 번뇌하는 붉은 악마의 눈이 만나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각기 다른 사리함에 봉인된 두 눈은 지옥의 문을 열 순간만을 기다린다.
<제8일의 밤>은 끝없이 이어지는 문을 지키는 자의 운명과 문을 열려는 악의 욕망,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7개의 징검다리가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7월 2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반응은 꽤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내에서 통용되는 소재 자체는 좋았으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결국 불필요해진 감정들이 아쉬웠다.
결국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건 대가없는 희생과 선함뿐인 건가. 악에 잠식당한 사람들에게 남는 커다란 구멍과 그 틈을 넘나드는 붉은 눈의 괴기함이 나에겐 완전한 공포보다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악이 원하는 지옥은 무엇이기에 무력한 사람들을 이토록 끈덕지게 괴롭히려 하는 걸까. 개인적으론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진 못하는데, 걱정보단 덜 공포스러웠기 때문일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식은땀이 날 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보는 이를 놀라게 하거나 악몽을 걱정할 만큼 잔혹한 공포 같은 것에 집중했다기보단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지옥문을 지키는 선한 자의 대립. 그리고 어리석은 사랑에 묶인 운명과 그 또한 감싸 안는 선한 자가 내미는 손과 주어진 숙명. 이런 주제들에 더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죽죽한 장마철을 내쫓을 서늘해질 만큼의 공포 영화를 찾고 있다면 아쉽게 느껴질만한 공포랄까. 그래도 전하려고 한 메시지와 의도, 배우진들의 연기가 좋아 한 번쯤은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제8일의 밤 시놉시스
붉은 달이 뜨는 밤,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이 7개의 징검다리를 밟고 자신의 반쪽, ‘검은 눈’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제8일의 밤, 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 고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세상이 될 것이다.
북산 암자의 ‘하정 스님’(이얼)은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제자 ‘청석’(남다름)에게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며, ‘선화’를 찾으라고 유언을 남긴다. ‘청석’은 주소지만 적힌 종이를 들고 길을 떠나던 중 사리함을 잃어버리고 그곳에서 정체모를 소녀 ‘애란’(김유정)을 만나게 된다. 한편, 괴이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들이 발견되고, 강력계 형사 ‘김호태’(박해준)와 후배 ‘박동진’(김동영)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괴시체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수사를 이어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때가 되었구나. 전해라… 놈이 왔다”
사리함이 박준철 교수에 의해 발견된 2005년. 정밀 감식 결과 사리함은 최근에 합성된 ‘가짜’라는 결론이 나고 교수는 고고학을 50년쯤 퇴보시킨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기꾼. 교수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는 의심이 아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자신의 말이 진짜임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번뇌의 붉은 눈 사리함에 제물들의 피를 붓는다. ‘번뇌’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 박준철 교수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욕망이다. 악마는 그의 욕망과 제물들의 피를 받아 세상에 깨어나고 지옥문을 열기 위해 징검다리를 밟는다.
지옥의 문을 열려는 악마. 그리고 징검다리 마지막에 서있는 문을 지키는 자.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그의 운명을 내려받은 진수(선화 스님)과 청석. 징검다리를 두고 악마와 지키는 자는 대립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사람들이 주고받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녀 보살은 자신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될 운명을 사주가 같은 동진에게 넘기고, 북산에 있는 지키는 자들(스님)은 자신의 명이 다할 때쯤 다음 사람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넘겨준다.
진수와 청석은 청석의 어머니가 낸 사고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청석의 어머니가 낸 교통사고로 진수는 아내와 딸을 잃는다. 그리고 청석의 어머니는 죗값을 갚겠다며 자살을 택한다. 하정 스님과 진수는 홀로 남겨진 어린 청석을 북산으로 데려온다. 그 순간부터 청석은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받을 인물이 된다. 청석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적이 없지만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머니, 스님들에 의해 운명을 부여받는다. 2년이 넘도록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청석의 목에 걸린 ‘묵언’ 목걸이를 걸어준 하정 스님. 그 목걸이를 끊어내고 새로운 신발을 신겨준 진수. 두 사람은 청석의 운명을 결정하고, 다시 바꾸는 인물이다.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청석의 묵언수행이 끝이 나고 새로운 신발을 신게 된 건 청석이 새로운 운명, 지키는 자의 운명을 받게 되는 순간임을 암시한다.
호태는 물에 빠져 죽었어야 할 동진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호태와 동진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동진이 일을 하던 중 어떠한 사고로 인해 다리와 눈을 다쳤고, 호태는 그로 인해 깊은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모두가 호태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호태는 동진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떻게든 동진을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가 살려낸 동진은 결국 악마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되고, 호태는 동진의 몸에 들어간 악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운명이란 것은 변하지 않고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뿐이다.
<제8일의 밤>에서는 끊어내지 못한 운명과 숙명을 발목에 묶인 족쇄로 표현한다. 애란은 학대받던 자신을 구해준 새아빠 준철을 위해 악마를 소환하는 제물이 된다.
“그리고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냥 믿고 싶어져.”
준철은 악마를 불러내겠다며 어리석은 꿈을 꾸지만 애란은 자신의 전부인 아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 애란의 발목엔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고 애란은 그것을 끊지 못한다.
진수는 악마를 유인하기 위해 덫을 치며 자신의 발목에 단단히 끈을 묶는다. 이미 사리함을 열 운명이 청석에게 내려졌음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마지막 징검다리이며 청석이 나를 죽이면 악마도, 지키는 자의 운명도 끝이 날것이라 예상하고 발목에 끈을 묶는다. 그가 희생을 감수하고 발목에 끈을 묶은 건 지금껏 외면해왔던 ‘귀신을 천도해야 한다’는 숙명을 이제야 단단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북산을 떠난 순간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이 돌아갔음을 알게 된 진수는 발목에 묶인 끈을 힘껏 내리쳐 덫을 벗어나 청석을 따라간 악마의 뒤를 쫓는다. 발목에 묶인 끈을 끊어낸 진수는 결국 자신을 희생해 ‘마지막 징검다리인 청석을 통해 악마가 부활할 것’이라는 운명을 바꿔놓는다.
내 아내와 딸을 죽인 가해자의 아들. 진수는 모두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 존재를 용서한다. 진수는 청석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포기하고 북산을 떠난다. 그리고 번뇌와 번민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던 진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던 죄책감을 털어내고 청석을 용서한다. 사실 아이에게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아이를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사고 날부터 제8일의 밤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다시 봉인된 사리함과 남게 된 지키는 자 청석.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준 스님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겐 새로운 숙명이 생겼다. 애란의 서글픈 눈을 바라보며 먼저 손을 내밀던 그의 선함이 오래도록 지옥의 문을 단단히 누르고, 덮어주길. 누군가는 지옥의 문을 지켜야 하는 운명.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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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이 나를 살게 한다
코로나 이전 한동안 스쿠버다이빙에 미쳐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정말 진심으로 미쳐 있었다. 태국에서 시작한 다이빙은 필리핀, 스리랑카, 몰디브를 거쳐 멕시코와 에콰도르의 머나먼 섬 갈라파고스까지 이어졌다. 우주를 향해 멀리 쏘아 올려 떠나지 않아도, 발을 디뎌 빠져 들면 심해라는 미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먼 바다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새로운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영은 하지 못하는데, 바닷속 깊이 들어가는 다이빙은 좋아 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 수영을 하는 것과 다이빙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파도 위에서 물에 빠지지 않게 허우적거리는 것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고통에 가까웠으나, 파도를 넘어 짙은 푸름 속에 깊숙하게 들어가 내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을 느끼며 천천히 해류에 몸을 맡기는 것은 편안하였다. 두려울 때, 두려움 속으로 뛰어들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 그 점이 나를 바다에 계속해서 뛰어 들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두려움을 이기는 감정을 동시에 느낄때면 <라이프 오브 파이>를 떠올렸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파이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고, 동물들과 함께 배를 타고 캐나다로 긴 여정을 떠나지만, 얼마 가지 못해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배는 침몰하여 파이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홀로 살아남게 된 그의 구명보트에 다친 얼룩말, 굶주린 하이에나, 오랑우탄과 표류하게 되는데, 모두를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보트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배고픔에 허덕이던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 리처드 파커와 파이만 남게 된다. 호랑이와 단둘이 배에 남게 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되고 만다. 두려움으로 가득 찰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에도 파이는 살아갈 방법을 생각한다.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내 정신은 또렸해졌다. 호랑이를 굶주리지 않도록 돌보는게 나의 목표가 되었다. 리처드 파커가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호랑이와 함께 망망대해를 건너 마침내 육지에 다다른 파이에게 사람들은 믿지 못할 이야기 대신 믿을 만한 이야기를 원하고, 파이는 다른 버전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는 묻는다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냐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스펙터클한 사건에 이어진 호랑이와의 동행 내내 긴장하고 흥미진진했다가, 아름다운 영상에 눈호강을 하며 감탄했다가, 마음을 쿡 찌르는 두번째 이야기에 ‘그래서 진실은 무엇일까’ 당황한 채 영화가 끝나버려 멍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나를 살리게 했다는 파이의 말이 자주 떠올랐다.
나이가 들고 지킬 것이 많아지니, 그만큼 두려운 일도 자주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다 무슨 일이 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위태로운 상황이 닥칠 때 마다 망망대해에 호랑이 한 마리와 작은 구명보트에 타고 있는 파이가 된 것 같았다.
맞설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속으로 풍덩 빠져 이겨내게 되는 마법같은 일이 생기고 견딜 수 없는 것도 견디게 되었다. 결국 가장 큰 두려움은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나 짐작에서 오게 되는 것이니까.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 바다도, 호랑이도 지금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결국은 나를 살리게 하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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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이라는 무기가 세상을 바꾸는 순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다르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세상은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자꾸만 정해진 방식대로만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회사에서는 매뉴얼대로, 학교에서는 성적대로, 사회에서는 통념대로 살아가는 것을 은근히 강요받는다. 그런 길이 틀리다고 할수 없다. 그 통념은 역사와 경험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은 것일 테니까. 하지만, 과연 그게 유일한 길일까. 몇 가지의 통념만이 옳은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 원작을 실사화한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그 통념에서 벗어난 소년 히컵(메이슨 테임즈)의 이야기다. 모두가 드래곤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마을에서, 히컵은 싸우지 않고 드래곤과 친구가 된다. 다리를 다쳐 더는 날 수 없게 된 드래곤 투슬리스를 도우며, 히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영화는 히컵과 투슬리스를 통해 묻는다. 서로 대립하지 않고 살수 있는 길은 정말 있는 것인지, 만약 있다면 그걸 이끌 수있는 리더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하는지.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히컵의 감정 변화를 이용해 그 답을 하고 있다.
[첫번째 감정] 히컵의 무기력
히컵은 바이킹 마을의 족장인 스토이크(제라드 버틀러)의 아들이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도, 마을 사람들로부터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전투 실력은 없고, 무기를 다루는 능력도 부족하다. 겁이 많고, 엉뚱한 발상만 내세우니 마을 사람들은 히컵을 골칫덩이 취급한다. 아버지는 그를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고, 대장장이 보조로만 남겨둔다. 마치 '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거기만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스토이크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과 같이 전투적인 리더가 되었으면 하지만, 매번 사고만 치는 모습에 실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히컵이 느끼는 감정은 무력함이다.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 같고, 도움이 되기보단 민폐만 끼치는 사람 같다고 느낀다. 그는 외롭고 작아지고 점점 말이 없어지고, 심지어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영화 초반, 드래곤과의 전투 장면에서 히컵은 자신이 개발한 신무기를 들고 나가지만 다른 사람의 전투에 피해를 주고, 드래곤 사냥에도 실패한다. 이는 모두에게 실망만 안겨주게 된다. 그 순간 관객은 히컵의 무기력과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히컵 역시 힘없는 모습으로 구석으로 향할 뿐이다.
이 감정은 단지 캐릭터의 문제만이 아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하니'라는 실망을 느끼고,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기며 위축된다. 히컵의 모습은 그런 아이들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나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히컵의 눈빛은, 우리가 청소년 시절에 느꼈던 외로움과 무기력의 흔적과 닮아 있다. 영화는 많은 기대를 받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무기력함을 히컵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 감정] 히컵의 공감력
히컵은 사실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자신이 개발한 무기로 드래곤 한 마리를 잡아냈다. 뒤늦게 뒷산에서 한 마리의 부상을 입은 드래곤을 발견했고 그게 바로 전설의 드래곤 투슬리스였다. 마을 사람들처럼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 입은 투슬리스를 도와주고, 스스로 만든 꼬리지느러미 장치를 달아준다. 히컵이 드래곤에게 드러내는 감정은 공감이다. 적이라 여겨지던 존재에게도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공감력은 관찰력과 만나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는 투슬리스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다른 드래곤들의 특성을 알아가고, 드래곤들이 단순히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적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알아채고, 배척당한 존재와 함께하는 능력이 바로 히컵이 가진 잠재력이었다. 히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공감까지 확장시킨다. 그가 만든 변화는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다.
히컵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고민한다. 전면전에 나서는 대신, 대화하고 이해하며 협력의 가능성을 본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지만, 히컵의 방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영화는 말한다. 진짜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이 공감력이라고.
[세번째 감정] 히컵의 지도력
히컵은 카리스마 넘치는 전형적인 리더는 아니다. 호통을 치거나 강하게 끌고 가는 리더도 아니다. 오히려 조금 자신감 없이 보이기도 하고, 강력해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주변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드래곤들과의 공존을 통해, 마을은 더 이상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더 강한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다. 혼자만이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그 방법을 공유함으로서 평화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게 된다.
히컵의 지도력은 현대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의 리더십이다. 현실에서 말하자면, 누구보다 강하게 지시하는 정치인보다, 의견을 듣고 조율하고 이해하며 함께 가려는 사람과 더 가깝다. 히컵은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오히려 그 약함을 통해 모두를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진다. 강한 리더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인물이다.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히컵은 마을의 새로운 리더가 된다. 그는 전쟁 대신 공존을 택했고, 그 선택은 모두를 지켜낸다. 지도자의 힘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는 걸 히컵은 보여준다. 그건 오늘날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리더의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나 엄청난 위기가 다가왔을 때, 절대 악처럼 보이는 존재가 등장했을 때, 인간과 드래곤의 장점을 합쳐서 이겨내게 만드는 것이 바로 히컵의 지도력이었다.
가장 성공적인 실사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2010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으로 첫 선을 보였던 이야기를, 원작 감독 딘 데블로이스가 그대로 실사화한 작품이다. 원작의 감성과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실감과 생동감을 더했다. 특히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장면의 입체감은 4DX나 IMAX로 볼 때 훨씬 더 극대화된다. 투슬리스의 생생한 표정과 움직임은 고양이와 강아지의 특성을 결합해 구현됐는데,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히컵과 투슬리스의 관계를 통해 말하는 메시지인 '낯선 존재를 향한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준다. 실사화의 함정인 어색한 연기나 어설픈 CG를 완벽히 비켜간 작품이다. 디즈니식 PC주의가 살짝 묻어나긴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자세히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게 설정되어 있다. 여러 인종이 공존하는 이유를 설정상 설득력 있게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디즈니의 실사화는 원작의 정서를 훼손하거나,서사 구조를 무리하게 바꾸면서 팬들의 비판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정치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캐릭터의 성격이나 외모를 과하게 변경하면서 이야기의 감정선이 무너진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드래곤 길들이기>는 다르다. 원작의 구조와 감정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실사화로 옮길 때 필요한 감각적인 변화는 세심하게 조율했다. 그래서 실사화라는 형식이 기존 애니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밀도를 좀 더 증폭시킨다는 느낌이다. 어색한 변형 없이도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디즈니 실사화보다 더 균형감 있고, 감정적으로도 더 진실한 작품이다.
결국 <드래곤 길들이기>는 ‘실사화는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게 답하는 영화다. 이야기의 본질은 그대로 두되, 감각은 훨씬 확장시키고, 감정은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아이와 함께 보기에도 좋고, 어른들이 혼자 보기에도 충분히 울림이 있는 작품이다. 꼭 특별관에서, 바람이 불고 소리가 터지는 그 감각으로, 히컵과 투슬리스의 비행을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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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다 액션하는 말벌 아저씨 등장이요!
시원하다! 보이스피싱범들을 처단하는 이야기도 제이슨 스타뎀의 호쾌한 액션도. 극 중 양봉업자로 분한 제이슨 스타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꿀조차 사이다처럼 청량함이 느껴질 정도. <트랜스포터> 시리즈에서 느꼈던 그의 원초적 액션 매력을 다시 보여주는 듯한 이 영화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 7주 연속 1위, 글로벌 흥행수익 1억 5천만달러를 돌파하며 이미 속편 제작이 결정되었다. 역시 사람은 하던 걸 해야 하고, 자신이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건가. 단점도 상쇄하는 그의 발차기 위력은 대단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일만 하는 애덤(제이슨 스타뎀)은 양봉업자다. 근육도 표정도 화가 단단히 난 상태에서 벌통을 옮기며 꿀을 만드는 그의 모습이 어떻든 간에, 이웃에 사는 엘로이즈(필리샤 라샤드)는 언제나 반가워하며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결국 자살을 한다. 자신이 누구든 따뜻하게 받아줬던 유일한 이가 세상을 떠나자 애덤은 복수를 계획, 보이스피싱범들의 본거지에 쳐들어가 적을 단숨에 제압하고 불까지 지른다. 과거 세계 정의와 균형을 지키는 비밀조직 ‘비키퍼’의 요원이었던 그에게 이 일은 껌에 불과하다. 성에 차지 않은 그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보이스피싱 사업 우두머리를 쫓고 관련 인물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비키퍼>의 정체성은 액션이다. 제이슨 스타뎀이 주연과 제작을, <수어사이드 스쿼드> <퓨리>의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이 연출을, <이퀼리브리엄> <솔트>의 커트 위머가 각본을 담당했다. 액션 영화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 손을 잡고 만든 이 작품은 액션으로 대동단결. 스토리보단 액션에 방점을 두고 봐야 하는 영화다.
그런 점에서 <비키퍼>는 오랜만에 장르 영화에서 느끼는 액션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 제이슨 스타뎀과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관객들이 원하는 바를 액션으로 실현시키는데, 적을 무력화시키는 스피드와 간결하면서도 파워풀한 타격감이 보는 이를 흥분시킨다. 정제되어있지 않은 거친 액션의 맛을 살리기 위해 그 수위를 높이고, 빠른 극 전개를 통한 몰입감을 키우기 위해 애덤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게 한다.
액션의 주요 포인트는 애덤과 적의 멋진 대결이 아닌, 애덤이 얼마나 빠르고 강하게 적을 쓰러뜨리는지에 있다. 혈혈단신으로 적을 향한 도장 깨기를 하는 것처럼 그의 손과 발, 주변 사물을 활용한 다채로운 움직임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존 윅, 마석도 형사가 생각나는 등 신선함이 떨어지는 부분이지만, 먼치킨 액션 트렌드 흐름에 맞춰가면서도 제이슨 스타뎀이 가진 액션 본능을 잘 활용했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제이슨 스타뎀의 발차기를 봐서 좋았다.
감독은 액션의 맛을 한층 더 살리고, 애덤의 액션 질주에 최소한의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 보이스피싱이란 현실 소재를 가져온다. 더 나아가 벌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여왕벌을 죽이는 ‘비키퍼’처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애덤의 비현실적 설정은 괴리감보단 시원함을 안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고위층들의 행태에 치명타를 날리는 그를 누가 싫어할까. 단, 이런 소재 차용임에도 스토리의 전개 과정에서 빗어지는 빈약함은 감안해야 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비키퍼>가 북미를 포함한 높은 글로벌 수익, 준수한 해외 평점(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71% 팝콘 지수 92%)을 받은 건 그만큼 대중들이 바라는 지점을 만족시켰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점점 있는자들의 세상이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체념한 사람들의 울분이 이 영화를 통해 폭발한 느낌이다. 마치 여왕벌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비키퍼에게 꼭 처단해달라고 하는 것처럼. 결은 다르지만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그 누구도 잡지 못하는 범죄자를 처단할 때의 카타르시스와 오버랩된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대중의 가려운 곳을 간파하고 그것을 간접적으로 해갈했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제작진의 승리. 앞으로 나올 속편에서는 어떤 부분을 긁어주려나. 벌써부터 ‘윙윙’ 호쾌한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사진 제공: (주)바른손이앤에이
평점: 3.0 /5.0
한줄평: 호쾌한 먼치킨 영화 한 편 더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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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틀린 집 - 집 구조를 잘못 지으면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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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이 집 뒤틀린 거.. 아세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딴집에 이사 오게 된 가족.
엄마 ‘명혜’는 이사 온 첫 날부터 이 집이 뒤틀렸다고 전하는 이웃집 여자의 경고와
창고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리로 인해 밤잠을 설친다.
아빠 ‘현민’은 그런 ‘명혜’를 신경쇠약으로만 여기고
둘째 딸 ‘희우’는 가족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마주하지만 그 사실을 숨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잠겨있던 창고문을 열고 만 명혜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뒤틀린 틈에서 시작된 비극이 가족을 집어삼키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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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스타일 리메이크 / 로코의 정석 /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 진영 다현 / 대만 원작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지만 엔드크레딧과 함께 사진들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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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어질 결심> 1차 예고편
짙어지는 의심, 깊어지는 관심" 박찬욱 감독X탕웨이X박해일, 가장 매혹적인 만남 [헤어질 결심] 1차 예고편 드/디/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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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운드 오브 데스> 30초 예고편
실험적인 음악과 소리를 연구하는 알렉시스.
폭력의 소리를 수집하는 그녀는 끊임없이 목마름을 느낀다.
어느 날, 행인의 우연한 죽음을 목격한 그녀,
죽음의 소리만이 자신의 쾌감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이후 죽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한 살육을 시작한다.
노숙자, 레코드 샵 오너, 하프 연주자…
알렉시스는 죽음의 비트를 찍어 나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