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2022-12-21 23:53:13
한 왕비의 삶, 보통 여성의 삶 <코르사주>
한 여왕의 일대기가 아닌 한 여성의 삶을 공유하는 영화

영화의 제목과 같이 주인공인 엘리자베트는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 역할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지성과 신체력은 ‘여성'이라는 미명하에 국가라는 옷에 달린 왕비라는 코르사주가 되어버린다. 왕비라는 신분은 구속이나 억압 없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엘리자베트는 영화 초반부터 흉부를 꽉 조이는 코르셋 때문에 호흡곤란으로 귀빈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기절한다. 지난 역사 속 여왕의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보통 여성의 삶과는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여왕이 자신의 코르셋을 조이는 하녀에게 ‘더 조여'라며 엘리자베트가 겪었을 숨 막히는 삶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비극적인 삶에도 희로애락은 있다. 작고 소소한 일상이 공유될 때 그 사람의 미소와 눈물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인물의 솔직한 욕망이 드러날 때 우리는 주인공에게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덕분에 한 여왕의 일대기가 아닌 한 여성의 삶을 공유하는 영화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의 결말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현실성 있는 삶이기에, 죽음만큼은 자유로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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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의 제국 - 강렬한 섹스로 보여주는 제국주의의 허무
포르노와 영화의 경계는 무엇일까. 단순히 정사씬의 수위 문제일까? 아니면 예술성인가? 예술성이라면 어디까지가 예술성인가? 영화 심의를 받을 때 에로 영화랑 예술 영화가 같이 심의를 받는 마당에 이러한 질문은 답하기 힘들것이다. 비록 필자가 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부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받을 도출해냈다고 생각해 짧게 이야기해본다. 포르노와 영화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메세지'가 어떠한가. 포르노는 단순히 보는 이의 성적 흥분을 목표로 두고 있을 뿐이고, 영화는 섹스, 정사를 통해서 전해야만 하는 어떠한 메세지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필자가 생각하는 차이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리뷰하는 영화, "감각의 제국"도 포르노가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영화를 운 좋게 제작년에 CAV 기획전을 통해 스크린으로, 그것도 무삭제판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을 지인들에게 말하자 대부분의 지인들은 줄거리나 스틸컷을 보고 단순한 포르노로 평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사실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분명 이 글을 읽는 이 중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영화가 단순 포르노라면 왜 이 영화가 여러 매체에서 걸작 영화로 뽑히고, 죽기 전에 봐야하는 영화 리스트 같은데에 왜 들어가겠는가? 그것을 고른 평론가들이 전부 변태라는 것인가? 이 영화는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 바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예 모르고 영화를 본다고 깨닫기 어렵다. 필자도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미리 칼럼을 읽어보고 봤기에 깨달은 사실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대놓고 제국주의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기치조가 길을 지나가는 곳에 일본군들이 행군하고, 사람들은 일장기를 흔드는 장면이다. 실제로 감독 본인이 관객들이 눈치채게 일부러 넣은 장면이라고 언질했다.
여기에서 은유를 한번 해보려한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제목에서 감각은 성적인 의미이다. 제국은 일본 제국을 뜻한다. 이 영화에서 성욕은 부정적으로 다뤄진다. 즉, 여기에서 성욕은 삐뚤어진 욕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다가 그렇게 갈망하는 기치조의 남근은 일본의 삐뚤어진 욕망이다. 그 당시 일본은 어긋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서양의 강대국처럼 거대해지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은 과거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에게 향했다. 바로 식민지배라는 모습으로 말이다. 사다가 그렇게 남근을 갈망하는 모습은 마치 강대국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일본 제국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사실 나라가 강해지고 싶은 욕망은 성욕이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 처럼 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나라를 식민지배한다는 어긋난 욕망이라는 것이 문제되는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 처음에는 그냥 섹스를 하지만, 나중에는 브레스 컨트롤(강제적으로 저산소증을 유발하여 거기서 오는 쾌감을 즐기는 BDSM 플레이)를 하면서까지 섹스를 하는 것 처럼, 그 욕망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최후에는 성기를 자르고, 그것을 손에 쥔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은 파멸에 이르는 제국주의의 허무를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숭고한 미장센처럼 보인다. 결국 일본 제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였듯이 말이다.
이 영화는 사실 지금 기준으로도 매우 높은 고수위의 영화라 아무한테나 추천하기는 힘들다. 영화가 나올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많은 논란을 일으킬 영화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에서도 걸작으로 불릴만한, 한번은 봐보기를 권하는 영화이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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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 준 까치, 펭귄
누구나 갑자기 찾아오는 사고를 만날 때가 있다. 그 사고를 겪으며 다쳤던 부위가 치료 가능하다면 정신적 트라우마는 있겠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자신의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회복에 대한 작은 희망이 있다면 회복을 바라보며 그것을 위한 운동이나 활동에 매진한다. 그것에 집중하면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을 입어 장애인이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사고로 하반신 부위의 감각이 없어져 걷지 못하게 되고, 그것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당사자뿐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도 아픔을 느낀다. 호주에 살고 있던 샘 블룸과 그 가족들은 2013년 태국으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어떤 관광지 옥상에 올라가 난간에 기대었다가 난간이 부러져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는 그 과정에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다. 그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고, 그의 남편 캐머런 블룸과 세 아들도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갑자기 가족의 한 사람에게 엄청난 변화가 온다는 것을 본인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샘과 그 가족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변화에 적응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남편 캐머런 블룸의 책 포토 에세이 <펭귄 블룸>에 담겨 있다. 샘의 가족들이 한 사람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속에는 우연히 만나 가족처럼 살게 된 펭귄이라는 이름의 까치가 함께 했다.
실제 추락사고를 당한 샘 블룸의 극복기를 영화화한 이야기
영화 <펭귄 블룸>은 캐머런이 쓴 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이야기다. 영화는 샘 블룸(나오미 왓츠)의 사고 순간을 생각하고 있는 큰 아들 노아(그리핀 머레이 존스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여행지에서의 밝고 즐거웠던 모습과 함께 하필 그 날 그 순간에 블룸 가족이 그곳에 있었는지에 대한 노아의 안타까움이 잘 느껴지는 독백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정서를 알려준다. 그 정서는 바로 이어지는 샘의 모습과 반응을 보며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는 아이들, 그리고 아직 자신의 힘으로는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기도 벅찬 상황은 슬픔을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한다.
갑자기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샘의 삶의 의지까지 빼앗아 간다. 남편 캐머런(앤드류 링컨)이 찍은 과거의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한참을 보는데, 그 사진들 속 샘은 모두 서있거나 걷고 있다. 과거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해 그것을 긴 막대기로 전부 깨트리는 모습은 그런 절망적인 감정 속에 있는 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볼 수 없고, 대부분의 육아는 남편이 도맡아야 했다. 에세이 <펭귄 블룸> 속에서 샘의 사고 당시 주변 사람의 증언이 나오는데, 사고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 때문에 가족 휴가를 망쳐서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점들을 봤을 때, 매우 이타적인 샘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에 펭귄이 들어간다.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 중에는 펭귄 블룸이라는 인물은 없다. 펭귄은 블룸 가족 중 첫째 아들 노아가 발견한 까치의 이름이다. 펭귄처럼 까만 색깔과 하얀 색깔이 섞여있는 까치를 보고 노아가 지어준 이름이다. 아기 새였던 펭귄을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로 한 노아는 자신이 학교에 간 사이 엄마 샘에게 펭귄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샘과 펭귄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그 까치를 거부하고 방치하지만 이내 그를 돌보기 시작한다.
샘과 가족의 트라우마 극복을 이끄는 작은 까치, 펭귄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다른 동물이나 아이를 돌보면서 정서적 치유를 경험하기도 한다. 말도 못 하는 작은 새에 불과했던 펭귄은 샘의 옆에서 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함께 머무르며 샘에게 자신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신기하게도 이 작은 희망은 샘을 밖으로 이끈다. 남편 캐머런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펭귄이 함께하면서 치유시킨 그 트라우마는 샘을 카약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다. 치유의 시작은 펭귄이었지만, 그것을 완성시킨 건 카약에의 도전이었다. 상체 위주로 움직이면 되는 이 스포츠는 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실제로 긴 시간 노력한 끝에 샘은 호주의 국내 카약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또한 영화 속에서 샘을 비롯한 모든 가족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대화다. 각자가 그 사고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다르다. 그것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오해는 커지고 관계는 깨지고 만다. 샘과 남편 캐머런은 영화 내내 계속 대화해 나간다. 때론 다투기도 하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내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특히 영화 속 케머런의 말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 자신이 아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아내를 더 동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할지, 더 강하게 이야기할지 등 어떤 태도를 취해야 아내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지 그 적정한 선을 늘 고민하는 것이다.
샘의 사고를 직접 목격한 큰 아들 노아도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영화 초반의 독백에서 이미 보이듯, 노아는 그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샘이 떨어진 그 관광지의 옥상에 먼저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고 이후 노아는 선뜻 엄마 샘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 노아의 태도는 그 마음을 알지 못하는 샘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어 두 사람의 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 멀어진 간극을 다시 메우는 건 솔직한 대화다. 영화의 후반부 등장하는 노아와 샘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블룸 가족
실제 샘 블룸은 그 사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자신을 직시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탕으로 삶을 계속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존재는 바로 까치 펭귄일 것이다. 샘을 그 작은 새와 시간을 보내면서 사진도 찍고 교류하며 조금씩 자신을 치유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펭귄이라는 새의 비중이 아주 크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에는 ‘펭귄’이라는 새의 이름과 함께 ‘블룸’이라는 가족 이름이 같이 붙어있다. 블룸 가족에게 펭귄이라는 존재는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샘 블룸의 과거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블룸의 가족 옆에 펭귄은 없다. 2015년 어느 날, 어느 순간 밖으로 날아간 펭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때 아이들의 생일에 갑자기 찾아오거나 한 적은 있지만 아마도 지금은 완전히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펭귄이 독립한 것처럼 샘도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독립시키는 힘을 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샘으로 출연한 나오미 왓츠는 과거 영화 <임파서블>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실화의 가족 이야기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나오미 왓츠는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남편 캐머런 역을 맡은 앤드류 링컨은 미드 <워킹 데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배우다. 이 영화에서는 힘을 뺀 연기로 부드럽고 인내심 있게 가족을 돌보는 아빠로 따뜻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펭귄을 연기한 실제 까치도 나는 모습만 CG로 처리했을 뿐 집안 곳곳을 누비는 장면은 실제로 촬영된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실제 가족의 사진과 펭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끝까지 영화를 관람하면 더욱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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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자각하기까지의 시간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호감을 갖게 되고 서서히 물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사랑이라고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고 그 상대방을 관찰하게 된다.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게 멀리서 상대방을 보다 이내 가까운 위치로 가서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관계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연인관계가 반드시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상대방이 잘 받아서 그것을 다시 그 신호를 보냈던 사람에게 돌려보내는 과정을 거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연인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동시에 그 감정이 시작되는 사랑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그것을 알아내는데 시차가 있다. 한 사람이 호감으로 사랑을 시작하면 그걸 바라보는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채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 신호가 잘 전달되고 또 잘 맞을 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 자각의 시점이 맞지 않을 때면 서로 어긋나고 그 사랑은 이루어지는데 한참 걸리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는 아름답지 않지만 그 사랑의 확인 과정 속에는 꽤 아름답고 가슴 아픈 순간도 포함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를 담은 영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감정의 시차를 담은 영화다. 베테랑 형사인 해준(박해일)이 산에서 추락사한 남자를 수사하게 되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죽은 남자의 아내인 중국인 서래(탕웨이)가 용의자가 되면서 형사와 용의자 관계로 만난 해준과 서래는 처음 만나는 순간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특히 해준이 느끼는 사소한 행동들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해준이 먼저 느낀 감정은 바로 용의자로서의 의심이다. 상대방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했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묘한 분위기를 가진 서래를 본 해준은 좋은 음식을 시켜주는 것처럼 최대한 예의를 다해 그를 대한다. 그때부터 해준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의심 때문인지 상대방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를 혼란스러워한다.
중국인인 서래는 어렵게 한국으로 건너와 정착하기 위해 남편과 결혼을 택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배운 한국어가 조금은 서툴다.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나 문장이 아닌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단어를 선택해 이야기하면서 서래의 분위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런 묘한 분위기 때문에 해준이 더욱 서래를 의심하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호감으로 변해갔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해준과 서래는 조금씩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때 해준은 호감의 감정을 조금씩 전달했겠지만 그게 사랑이라는 진짜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서래는 한참이나 지나서 깨닫는다. 그건 해준이 죽은 남편 사건에 대한 어떤 이야기 때문에 한 말이었지만 그건 서래에게 진짜 사랑으로 다가온다.
그 이후 영화는 몇 개월 후로 시점을 건너뛴다. 그리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해준과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하여 생활하고 있는 서래가 우연히 만난다. 그때 해준은 서래의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서래는 피하지 않는다. 이때 서래의 남편이 다시 죽음을 맞이하면서 해준의 의심은 커지고 그에 따른 분노도 커진다. 그러니까 해준의 의심이 커질수록 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높아지게 된다. 영화에서 서래의 진심은 거의 말미에나 드러난다. 그래서 서래가 진짜 범인인지, 그가 해준을 바라보는 감정이 무엇인지가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리고 영화 안에는 '사랑' 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등장인물들은 상대방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가 모호하게 보이기도 한다.
파도 앞의 서래, 파도 속의 서래
영화 중에 서래가 파도처럼 보이는 벽지 앞에 서있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래는 실제 바다 모래사장 위에서 파도의 앞에 선다. 그 파도는 서서히 서래 쪽으로 스며들듯 다가온다. 해준의 사랑이 다가오면서 서래의 마음을 조금씩 적신 것처럼 그 사랑의 파도 역시 서서히 다가온다. 그리고 파도 벽지 앞에 서있던 서래의 모습처럼, 서래는 사랑의 파도 속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렇게 진짜 사랑의 감정을 시작한 그는 해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두 사람의 호감과 사랑은 두 가지의 시차가 있다. 일단 둘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한국어를 쓰지만 중국어를 모르는 해준은 서래가 하는 한국어도 조금 어색하게 느끼지만 서래가 하는 중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영화 중반 서래는 보다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먼저 말을 하고, 그것이 번역된 한국어가 해준에게 들려진다. 적어도 서래가 중국어로 해준에게 말할 때는 둘 사이에 즉각적인 의사 전달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언어적인 시차가 둘 사이에는 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감정의 시차다. 해준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그가 시작한 사랑의 감정은 서래에게 단번에 전달되지는 못한다. 첫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은연중에 전달되지만 서래는 그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그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래가 시작한 사람의 감정은 두 번째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해준에게 전달되지만, 그것 역시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그 마음이 해준에게 전달된다. 정말 안타까운 건 그 마지막은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수면 위로 확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돌출된 사랑은 상대방의 감정을 뒤흔든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시점 전환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과거작들에서도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전환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담은 화면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이 이번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영화의 초반 영화의 제목이 뜨는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수사가 이루어지는 산속으로 전환되는 화면부터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영화 중반 해준이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하며 망원경으로 집 안을 보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넘나들며 해준이 느끼는 호기심과 감정을 한 번에 전달한다. 박찬욱 감독이 아니라면 그런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서래라는 인물이 눈에 띈다. 영화에서 가장 늦게 진심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고, 가장 많이 의심당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서래 역을 맡은 배우 탕웨이는 꼼꼼하게 그의 감정을 모두 표현해낸다. 그가 해준의 사랑을 확인하고 좋아하는 모습과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그의 연기에서 볼 수 있다. 해준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의심스러운 용의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하고 그것에 다가갈 수도 없고 물러서지도 못하는 캐릭터를 잘 담아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아름다운 사랑 영화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줄었다. 대신에 천천히 두 인물이 가지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담아낸다. 그들이 엇갈리는 과정과 느끼는 감정이 아름다운 화면에 표현되면서 과거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쉬운 영화로 보인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두 인물의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겪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가 무척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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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헤어질 결심>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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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2020)
개봉일 : 2021.08.19 (한국 기준)
감독 : 맥스 바바코우
출연 :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시몬스, 피터 갤러거, 메레디스 하그너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아마도 올여름, 가장 재기 발랄한 로코물이 아닐까 싶은 영화 <팜 스프링스>.
'타임 루프 로맨스'라는 소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소재다. 타임 루프 로맨스의 원조 <사랑의 블랙홀>과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같은 타임 루프 로맨스 영화들이 파스텔 핑크와 같은 색감이라면 <팜 스프링스>는 핫핑크 빛이다. 마냥 얌전하지만은 않은 거침없고 유쾌한 로맨스랄까. 통통 튀는 영화의 색과 무해한 농담들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일이 없다는 듯 여러 모험에 도전하며 마음을 나누는 세라와 나일스의 모습과 이들이 던지는 농담은 보는 이에게 대리 만족과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거기에 시원한 풀장 배경과 청량한 색감이 더해져 그들의 파티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듯한 흥겨움은 덤으로 따라온다.
인생 최고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결혼식 날에 갇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나일스에게 누군가의 결혼식 날은 더 이상 특별한 날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능글능글한 말솜씨와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늘어가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보니 그는 점차 오늘의 소중함을 잊게 된다. 나일스에게 오늘은 그저 똑같고 의미 없는 반복일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당연하게 오늘도 역시 어제와 같은 하루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소한 실수로 인해 오늘이 조금 달라진다. 시간이 흐른 건 아니고, 나일스의 하루에 세라가 들어온 것이다. 어쩌다 보니 갇혀버린 같은 시간 속에서 나일스와 세라는 어제의 오늘과는 다른 특별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하루를 기억해 주는 유일한 사람, 무의미한 오늘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 '영원히 반복될 오늘에 갇히더라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일스는 오늘을 기대하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는 "이 사람들은 어차피 내일이면 잊을 거야!"라고 외치며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귀여운 일탈과 과감한 장난을 반복한다. 두렵고 신경쓰이는 게 많았던 현실을 벗어나 모든 걸 예상할 수 있는 '오늘'에 갇히다니.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해가 될 것도 없고, 모든 게 내 손안에 있는 편안함이 나름 나쁘지 않다. 불안감과 위험 따위가 없는 시간들은 이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하지만, 이내 결국 사라질 것이 뻔한 오늘에 대한 무력감을 몰고 온다. 당장 무서울 것이 없으니 반복돼도 괜찮겠다 싶었던 하루가 무의미한 것이 되자 이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두려움을 외면하며 영원히 함께 갇혀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사랑을 이대로 지키고 싶은 남자 나일스와 미뤄뒀던 두려움을 다시 마주하며 내 삶을 찾고 싶어 하는 여자 세라. 다른 목표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닮아있는 운명 같은 두 사람은 이 사랑을, 내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에서 만난 내 삶의 가장 큰 의미가 된 당신. 이 로맨스의 끝엔 오늘이 있을지 내일이 있을지 궁금하다면 <팜 스프링스>를 추천한다.
팜 스프링스 시놉시스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늘 기분 어때요?”
“오늘, 내일, 어제 다 똑같죠.”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 날. 홀로 결혼식 날에 갇힌 나일스에게 어제, 오늘, 내일은 모두 똑같은 날이다. 나일스는 같은 날을 살아가며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모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상황극을 즐긴다.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여친 두고 바람피우기, 동성의 인물들 꼬셔보기, 결혼식 방해하기까지.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수많은 일탈들은 처음엔 즐거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하고 무의미한 행위로 변한다. 거기에 점점 더 사라져가는 ‘나 자신’에 대한 기억들. 나일스는 타임루프 속에서 나를 잃고 조금씩 지쳐간다.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라와의 하루를 시도하던 날 밤, 세라가 나일스를 따라 타임 루프에 들어온다. 신부 탈라의 언니인 세라는 결혼식에서도 온갖 눈치를 보고 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실패한 결혼과 순간의 판단 미스로 저질러버린 신랑 에이브와의 하룻밤. 이 행복한 결혼식에서 죄책감과 눈치에 맘 편하게 웃지 못하고 술을 잔뜩 들이켜고 있던 세라에게 타임 루프는 안전한 도피처다. 세라도 역시 나일스처럼 처음엔 어떤 사고를 쳐도 깔끔하게 사라져버릴 오늘을 마음껏 즐긴다. 오늘의 실수를 책임질 내일이 없으니 사고도 마음껏 쳐보고 이런 일 저런 일에 뛰어들어본다. 그리고 어딘가 나와 닮은 나일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나일스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쳤다는 걸 알 게된 후 나일스와 거리를 두고 형체 없이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오늘의 내 실수와 어제의 후회를 책임질 필요 없는 타임 루프는 분명 안전한 도피처다. 실수에 대한 책임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어차피 내일이면 없는 일이 될 하루. 하지만 다른 이들은 오늘 나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타임 루프에 갇힌 나는 나의 실수와 후회를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나일스는 타임 루프 속에서도 타인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실수와 후회이기에 그것을 꼭 되돌릴 필요는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실수를 되돌리거나 변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내일이,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 인생을 되찾아야겠어요"
우리는 보통 지난 실수와 후회를 떠올리며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다. 하지만 타임 루프 속에선 이러한 성장을 이뤄야 할 이유도 이룰만한 기회도 없다. 세라는 타임 루프에 빠진 후 매일 아침 에이브의 침실에서 눈을 뜬다. 세라는 처음엔 그저 타임 루프가 선사하는 자유를 즐기기 바빴지만 나일스의 거짓말을 듣게 된 후 타임 루프를 방패 삼아 거짓말을 하거나 실수를 모르는체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로 돌아가면 분명 전처럼 눈치 보는 날이 반복될 테고, 어쩌면 결혼식 전날에 저질러버린 실수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무의미한 하루를 반복하는 것 대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한 뼘 더 성장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나일스는 이제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현실로 돌아가길 두려워한다. 세라가 동굴을 폭파시켜 현실로 돌아갈 거라 말하자 나일스는 “당신과 남고싶어요.” “여기 남아줘요.”라고 말하며 세라를 붙잡지만 세라는 단호하게 자신의 인생을 되찾겠다며 자리를 뜬다. 나일스는 세라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닫고 함께 현실로 돌아갈 용기를 낸다. 혼자 무의미한 오늘에 남아 현재에 안주하며 사느니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 그게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자네만의 안식처를 찾아봐."
어쩌면 우리는 항상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걸지도 모른다. 내일은커녕 당장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거창한 비유를 내려놓고 가볍게 말하자면 오늘 먹으려고 결정해둔 저녁 메뉴가 갑자기 품절이 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긴다면 또다시 고민을 반복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타임 루프 속에서 겪는 오늘은 모든 게 다 예상되는 정해진 일들의 연속이지만 진짜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 역시 인생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나일스는 정해진 길과 결과가 있는 타임 루프를 ‘나만의 안식처’라고 느끼며 타임 루프를 벗어나길 꺼리지만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세라를 보며 다시 삶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세라의 존재가 진정한 오늘의 의미이자 안식처임을 알게 된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건 결국 새로운 기회와 조금 더 발전할 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타임 루프는 그저 반복되는 나의 실수를 가볍게 외면해도 괜찮다는 특권일 뿐, 달라진 나와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배경은 아니다. 시간은 의미 없이 낭비되고 있고 무의미에 갇힌 사람은 변하지 않는 오늘처럼 변하지 않는 삶을 산다.
변화도 의미도 없는 타임 루프 속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은 서로에게 내일을 꿈꾸게 될 동력이 된다. 무의미한 하루 속에서 발견한 가장 의미 있는 그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조금 더 나아갈 우리를 궁금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일’은 꼭 맞이해야 할, 가장 필요한 존재로 변한다. 내일을 맞이하게 되면 무의미한 시간을 반복할 때보다 걱정도, 부딪혀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어마 무시하게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적어도 지루하고 힘들진 않겠지-싶다. 더 아름다워질 우리의 내일과 한 발자국 나아갈 나를 상상하며 내딘 내일을 향한 한 걸음엔 용기와 사랑, 믿음이 가득하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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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공개 첫 주말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파일럿>은 개봉 3주 차에도 장기 흥행을 보이며 4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게 되었고
광복절을 맞이해 개봉했던 <행복의 나라>는 3위, <트위스터스>는 4위 <빅토리>는 6위에 머물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도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4150만 달러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으며 <데드풀과 울버린>이 1조 4564억원을 벌어들이며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R등급 영화가 됐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식민지를 떠난 청년들이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도착한 후, 에이리언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하며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전작들과 달리 민폐를 부리는 인물이 적다는 점과 적재적소에 삽입되고 오마주 된 에이리언 시리즈의 레퍼런스, 떡밥 회수 등 에이리언 골수 팬들을 충분히 만족시킨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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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악의 없는 복수에 엄습하는 공포
8★/10★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자연에는 선악이 없다. 자연은 그저 자연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면 지탄받는다. 하지만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는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인간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은 다르다. 그런데 두 세계는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이미 상당 부분 겹쳐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이럴 때 필요한 건 ‘균형’이다. 두 세계의 원칙이 충돌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누른다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은, 다른 쪽 세계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충격적인 흡인력으로 펼쳐내듯이.
일본의 작은 산골 마을. 외지인들이 개척해 대를 이어 터를 꾸려온 이 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절묘하다. 마을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자연을 이용하지만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무척 신중하고 사려 깊다. 정성스럽게 생수를 퍼 올려 통에 담고, 이 물로 우동을 끓이고, 가게 주인과 주민들은 우동의 특별한 맛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들이 자연과 관계 맺으며 오랜 시간 꾸려온 균형점의 단면이다.
그런 이 마을에 한 연예기획사가 글램핑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공청회가 열린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가 시작된다. 업체 측의 논리는 단순하다. 글램핑장이 들어오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어, 업체와 마을 모두가 이득을 본다. 일본의 산골 마을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어서 그런지 꽤 ‘상식적’으로 들린다. 문제는 이 상식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램핑장 정화조 미비로 샘물이 오염될 가능성, 경비 절감을 위해 관리인 수를 줄였을 때 커지는 산불 위험, 무엇보다도 ‘상류에서 한 일은 반드시 하류에 영향을 준다’는 아랫마을에 대한 책임감. 공청회를 마련한 업체 측 직원들의 표정은 점점 당혹감으로 물든다. 마을 사람들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공존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감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감각 그 이상이다. 공청회에 참석한 업체 직원 두 명은 마을 사람들의 주장에 감화되기에 이른다. 직원들은 마을 사람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며 사장과 컨설팅 담당자를 설득한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 바깥에 있는 것들을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기술적‧관습적‧기계적으로 자기 논리를 관철한다. 관과 결탁한 자본은 자신을 관철하는 법을 안다.
마을 사람들을 회유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두 직원. 그러나 둘은 오히려 점점 마을 사람, 그중에서도 마을의 심부름센터로 통하는 타쿠미에게 매료된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는 점점 그들의 마음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제 놀랄 만한 결말이다. 타쿠미의 딸 하나가 없어지자 마을 사람들이 숲으로 하나를 찾으러 가고 업체 직원들도 이들을 따른다. 그런데 옆에 직원 한 명만 남자 타쿠미가 그의 목을 조른다. 도대체 왜? 마을과 자연의 균형점을 깨닫는 중인 사람을, 폭력적으로 돌격해올 글램핑장 건설을 저지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사람을 도대체 왜?
자연에 선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쿠미가 말하듯, 사슴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사냥꾼에게 새끼를 잃거나 자신이 부상당하지 않은 이상. 그러나 사슴이 인간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종種으로서의 인간이 사슴을 사냥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사슴의 복수는 사냥꾼이 아닌 인간을 향한다. 단 한 번 개에 물린 사람이 자신을 물지 않은 수많은 개를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듯 인간에게 두려움과 분노를 느낀 사슴이 혼자 남은 인간을 공격하는 건 당연하다.
타쿠미는 사슴이고, 하나는 새끼 사슴이다. 글램핑장이 계획되기 이전의 타쿠미는 인간의 편에서 자연과 균형을 찾았지만, 글램핑장이 자연을 망칠 것이 분명해진 이후에는 자연의 편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연에는 선악이 없다. 왜 일을 꾸민 자본가가 아닌 그 하수인 혹은 이제 막 자연으로 넘어오려는 사람이 죽었느냐고 한탄해봐야 소용없다. 자연의 복수는 인간 세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은 우울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안긴다. 우울함은 늘 가장 안전한 곳에서 균형추를 자본 쪽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높은 확률로 자연의 악의 없는 보복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데서 온다. 그러나 동시에 서늘하다. 타쿠미의 소리소문없는 민첩함, 즉 균형을 되돌리기 위한 사슴의 보복이 그다음에는 어떻게 발현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서늘함은 앞선 우울함을 압도한다.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고, ‘극복’하고, ‘정복’해왔다. 그래서 그 결과는?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다. 온갖 잿빛 전망이 쏟아지는데도 지금껏 쌓아온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타쿠미의 살인으로 상징되는 사슴의 반격‧자연의 반격이 또다시 일어날 때, 자본이 구축한 안전한 공간이 과연 끝까지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저 서슬 퍼렇고 예측 불가능한 서늘함 앞에서? 회의적이다. 영화의 결말이 관객에게 던지는 충격과 당혹은 자본의 논리에 가까운 사람 모두가 느낄 만한 감정이다.
영화의 수미상관을 이루는, 카메라를 직각으로 세워 나무를 올려다보는(혹은 나무가 내려다보는) 장면은 인간의 지식은 결코 자연을 완벽히 장악할 수 없음을, 때때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자연의 의지에 휩쓸릴 수밖에 없음을 자연의 입장에서 전달하는 듯하다. 사슴의 그다음 복수는 우리를 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후 활동가든 기후 파괴자든 상관없다. 사슴의 눈에는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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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1,매트릭스2,매트릭스3 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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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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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메인 예고편
서울에서 사업으로 잘나간다느 형 토오루의 말만 믿고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한국으로 날아온 츠요시는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형 때문에 하루아침에 낯선 길바닥에 나앉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토오루는 기발한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좌절한 츠요시를 꼬셔 강릉으로 향하고, 기차 안에서 우연히 사연이 가득해 보이는 삼남매 솔, 봄, 정우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데,, 불운만 가득했던 인생에 벌어진 우연 같은 운명! 기적이 간절할 때, 우리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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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키드> 예고편
장르: 뮤지컬 영화 출연: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미셸 여, 제프 골드브럼, 조나단 베일리, 에단 슬레이터, 마리사 보데가, 보웬 양, 브론윈 제임스, 케알라 세틀 감독: 존 추 각본: 윈니 홀즈만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원작, 작곡 작사 스티븐 슈워르츠, 윈니 홀즈만이 각본을 맡은 뮤지컬 위키드를 원작으로 한다. 제작: 데이비드 닉세이, 스티븐 슈워르츠, 자레드 르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