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12-12 16:41:31
1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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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교섭>, 1월 18일 개봉 확정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의 신작이자 황정민과 현빈의 첫 동반 주연 영화 <교섭>이
2023년 1월 18일 개봉을 확정했다. <교섭>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과 현지 국정원 요원의 교섭
작전을 그린 영화이다.
전종서, <웨딩 임파서블> 긍정 검토 중
ⓒ 네이버 영화
<웨딩임파서블>은 동성애자인 재벌 후계자와 위장 결혼을 준비 중인 무명 여배우, 그리고 그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야망덩어리 예비 시동생이 만나며 벌어지는 욕망 충돌 결혼 반대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이다. 전종서 배우는 극중 무명의 단역 배우 오다정을 연기한다.
<이두나!>, 수지·양세종 출연 확정
ⓒ 매니지먼트 숲, 블러썸 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에서 시리즈 <이두나!> 제작 더불어 배우 수지와 양세종의 출연을 공식화하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이두나!>는 평범한 대학생 원준이 셰어하우스에서 화려한 K-POP 아이돌 시절을 뒤로하고
은퇴한 두나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드라마다. 동명의 원작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해외
<퀸카로 살아남는 법>, 뮤지컬 영화로 제작
ⓒ 네이버 영화
하이틴 영화의 대표작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뮤지컬 영화로 새롭게 제작된다고 한다. 영화에는
앵거리 라이스, 아울리이 크라발리오, 르네 랩, 자켈 스피베이를 비롯한 배우진들이 참여한다.
테일러 스위프트, 장편 영화 감독 데뷔 예정
ⓒ 네이버 영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영화사 서치라이트픽처스와 함께 장편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 11월, 자신의 노래 'All Too Well(10 Minute Version)'을 배경으로
단편 영화 <All Too Well: The Short Film>을 직접 집필 및 감독하며 인기를 끌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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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를 알아보자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가 어린이날 100주년과 더불어 개막 소식을 알렸습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는 오는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총 8일간 진행됩니다.
영화제 규모는 국제영화제 명성에 걸맞게 47개국 157편으로 진행되며, 해외 80편, 국내 77편입니다.
영화제는 온라인 중계(SICFF 유튜브 공식 계정), 씨네Q 신도림, 신도림 오페라하우스, 온피프엔(온라인), 문화철도 959(야외상영), 서울생활문화센터 신도림 다목적홀A(예스키즈존), 서울생활문화센터 신도림 다목적홀B(키즈포스터 전시), 신도림 테크노마트 11층(폐막식)에서 진행됩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의 시작을 알릴 개막작은 '울야는 못말려'가 선정되었습니다.
영화는 울야가 관측한 소행성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로 그리지만, 동시에 종교나 전통을 빙자하여 권위로 어린이들의 생각을 억압하고 존중하지 않는 부모와 동네 어른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가족'과 '마을' 단위로 어린이와 어른이 공존해야 할 때 어떻게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려주며 존중 할 수 있을지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울야는 못말려'는 6월 15일 18:30에 씨네Q 신도림 2관에서 상영됩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는 10회를 맞이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프로글매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며, 그 중에서 씨네랩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제 프로그램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액터스 토크 '안녕하세요'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
프로그램 노트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크로스 아이콘 '김환희' 배우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영화에 한 발 더 다가갑니다. 어린이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김환희 배우의 영화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06월 18일(토) 15:00 영화 <안녕하세요> 상영 후 액터스 토크가 진행되며, 게스트로는 '김환희' 배우가, 모더레이터는 '이화정' 영화전문기자가 초대되어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안녕하세요> 시놉시스
: 보육원에서 자란 고3 학생 수미. 어느 한 곳 기댈 데 없는 수미가 희망을 등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순간, 호스피스 간호사 서진이 이를 극적으로 막아선다. 이후 갈 곳 없는 수미는 죽는 법을 찾으려 서진이 일하는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가고, 삶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위로를 받는데..2. 우리가 외치는 '아동권리선언'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
프로그램 노트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해 아동 권리를 외칩니다. 영화 <태일이>를 본 뒤 '아동권리'를 배워보고, 오늘날 필요한 아동권리를 외치는 '아동권리선언 행진'에도 함께 참여해보아요. 2022년을 살아가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말하는 어린이 인권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행동 - 영화 <태일이> 속 아동권리
6월 18일 토요일 14:00 <태일이> 상영 후 진행되며, 씨네Q 신도림 2관에서 상영합니다. <태일이> 무료 관람 뿐만아니라 세이브더칠드런 기념 뱃지도 받아가실수 있습니다.
두 번째 행동 - 아동권리선언 행진(with 어린이 권리 탐험단)
6월18일 토요일 16:00 도담도담극장(신도림 오페라하우스 지하소극장)에서 진행되며, 첫 번째 행동 프로그램 '아동권리 교육'을 진행한 뒤 도담도담극장으로 함께 이동하여 진행합니다.3. 키즈 도슨트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
프로그램 노트
"어린이영화는 어린이가 제일 잘 알죠!" 키즈 도슨트는 어린이의 시각으로 어린이영화를 해설합니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키즈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영화 내용을 상상해 볼까요?
키즈 도슨트 1 :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마주하는 가족 이야기
6월 17일 금요일 16:00에 씨네Q 신도림 9관에서 진행되며, 씨네키즈 5플러스 1 <건전지 아빠>, <나쁜 친구>가 상영됩니다. 키즈 도슨트로는 김한나(개웅초 4학년), 정민규(개봉초 4학년)이 맡아 진행될 예정입니다.
키즈 도슨트 2 : <비스트 오브 아시아>로 보는 신화이야기
6월 18일 토요일 12:00에 씨네Q 신도림 10관에서 진행되며, <비스트 오브 아시아 1,2,4부>가 상영됩니다. 키즈 도슨트는 지은률(천왕초 6학년), 최홍원(구일초4학년)이 맡아 진행될 예정입니다.소개해드린 프로그램 외에도 씩씩한 토크 : 경계 존중하기, 비중러 리터러시 : 영화&그림수업, 기찻길 옆 극장 (야외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아래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https://www.sicff.kr/kor/default.asp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오는 6월 15일(수) ~ 6월 22일(수) 총 8일간 개최됩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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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위쇼의 방
-벤 위쇼(Ben Whishaw) 배우론
* 언급하는 작품들의 핵심 전개 포함
* 2022년 5월에 완성한 글입니다.
벤 위쇼의 주인공들은 좀처럼 ‘세계’와 화합하지 못했다. <향수>(2006)나 <아임 낫 데어>(2007)의 ‘반사회적 예술가’(오정연, 2008.05.29. [씨네21])에서 시작해, <할로우 크라운>(2012)에선 한 나라의 ‘주인’이 돼서도 예정된 실패를 맞이하고 눈물을 흘렸다. <크리미널 저스티스>(2008)와 <런던 스파이>(2015)에선 ‘로맨스에 휘말려’ 누명을 쓴 청년, <브라이트 스타>(2009)에선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요절한 시인 존 키츠였다. 이는 인물의 소수자성과 연결되기도 했는데-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2008)의 세바스찬은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정체성을 부정 당하다 알코올에 중독됐고,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속 로버트 역시 남성에게 끌린다는 까닭으로 협박 당했으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노만의 사랑과 존재는 불법이었다.
허면 무대 위 벤 위쇼는 늘상 보편에 속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대상이었는가? 그의 연기를 목격했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테다. 앞서 부러 표면적으로 요약했으나, 그의 주인공들은 늘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에 맞서며 중심을 지켜냈다. 몹시도 흔들리며 괴로워하더라도, 여린 눈빛과 신체가 파헤쳐진 밑바닥엔 항상 꺾이지 않는 ‘곤조’가 있었다. 그게 사랑이건 정의건 예술이건, 넘어져도 놓지 않고 ‘세계’에 저항함으로써 주제를 관통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배우가 지은 독특한 감정의 집과 만나 탄생한 캐릭터성이었는데 -벤 위쇼의 인물들에겐 ‘벤 위쇼’가 가득했다.
연기법에 메소드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는 지났고, 그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표하는 배우들도 있으나, 여전히 메소드는 ‘serious acting’의 가장 추앙받는 방법론이다. 다만 현대에는 오프라인 GV나 인터뷰는 물론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관객이 당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스크린 밖의 배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미디어는 대중이 배우의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을 전제로 ‘그가 자신과 아주 다른 이 인물이 되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으로 노력했는가’를 화제로 삼는다. 한편으로는 ‘배우 본인’의 모습만으로 팬덤이 형성되기도 하고, 어떤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공개하고 닮은 역할을 맡음으로써 스크린에 자리 잡았다.
벤 위쇼의 케이스는 조금 특이하다. 스크린 밖의 모습은 공개하기를 꺼리면서 연기에는 그 자신이 묻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배우 개인을 알지 못함에도 관객은 (이상하게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앞에 언급했듯 인물의 특징에 유사성이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성, 포지션을 막론하고 스크린 속에서 ‘자신’이 되곤 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 인물(:타인)이 되고 관객에 닿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기능적 조연일 때조차 어느 정도- 벤 위쇼는 화면에 마련한 제 방에서 주변 인물이나 서사와 소통하며 재빠르게 제자리를 찾았고, 영화/TV시리즈/연극 등 다양한 무대에서 그 범위를 넓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신체보다는 두뇌/‘심장’에 재능이 있는 자가 되었던 벤 위쇼는, 오히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그 예리함을 입는다. 눈을 굴리는 건 남들의 눈치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내면의 고민이나 불안, 혹은 오감으로 흡수되는 다량의 정보나 빠른 머리 회전 때문이다. 고개나 손목을 꺾는 것은 특정 이미지를 내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감각이 신체에 묻어 절로 그리 된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느끼느라 외부의 시선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그렇다 하여 그들 모두가 저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임 낫 데어>(2007)
‘세계’와 불화하며 비범하게 존재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비정상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 앞 문장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향수> 속 벤 위쇼의 그루누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행동의 폭력성과는 별개로 스크린 속 그의 몸짓은 오히려 남성/여성을 초월한 기이하고 불온한 선지자의 그것에 가깝다. 단편 <더 뮤즈>(2014), 뮤즈에게 집착하다 결국 익사하는 남자의 변태적 우울에도 닮은 데가 있다. 이들이 궁금해지는 것은, 그 ‘괴상한 욕망’이 벤 위쇼의 피부에 안착함으로써 ‘어느 정도’ ‘시대와 불화한 비범한 예술’의 정서를 입는 까닭이다.
<아임 낫 데어>, 덥수룩한 머리의 젊은 ‘시인’. 담배를 물고 삐딱하게 카메라를 향하는 그의 눈빛도 불온하다. 언뜻 ‘메인 롤’은 케이트 블란쳇의 ‘록스타’나 히스 레저의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무법자’ 등 비중과 활동성이 높은 자들의 몫인 듯하지만, 흑백 화면에서 한 공간에 머무르며 말을 이을 뿐인 ‘시인’이야말로 가장 자유롭다. 그의 뾰족한 신체는 플롯들 사이의 중심을 잡고, 대사는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유사하게, <클라우드 아틀라스> 속 로버트 프로비셔의 편지는 정교하게 뒤섞이는 서사의 기준을 잡고, 곡은 화면을 아우른다. <브라이트 스타>, 존 키츠의 운명이자 고통인 시 또한 사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작품 전체에 흐른다.
존 키츠는 화면에 잡히지 않은 채 타인의 언어를 통해 등장하고 퇴장했다. 그러나, ‘집구석에 박혀 있는’, ‘요새 슬픈 생각을 많이 하는’ 따위의 말이 불러일으킨 예상을 깨며- 세상 맑은 얼굴로 평가를 백지화했다. ‘날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듯 첫인상을 남겼다. 병이 목숨을 앗아가기 전 이미 연인과 작별의 밤을 보내며 차분히 죽음을 예견했다. 어느 정도 자신을 ‘실패작’으로 여기더라도 사랑과 예술에 대한 확신만은 뚜렷한 채였다. 로버트 역시 스스로 마지막을 만든다. 유서 격의 편지와 함께 등장하기에 관객은 자연히 그가 삶을 ‘포기’하게 된 과정을 궁금해하게 되는데, 이 자살은 사실 ‘포기하지 않음’에 가깝다. 세상이 정한 바운더리에 속하지 않기에 무시당하고 협박당하지만, 제 존재를 의심치 않는다. 죽어가는 영혼을 곡에 담는 모습에는 절망이나 파멸의 정서가 없다. 초월적 아름다움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자, 자신을 짓누르는 세계에 순응하느니 존엄하게 사라지겠다는 선언이다, 그가 편지에 적은 대로. (“진실된 자살은 세심한 준비와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야.”,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어, 먼저 가 있을게.”)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 세바스찬은 가난한 예술가가 아닌 귀족가 도련님이었으나, 세상에 ‘fit in’ 되지 못했다. ‘남색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관람되며’ 처음 등장하는데, 그 역시 편견에 빼앗긴 첫인상을 제 언어로 재정립한다. 꽃다발과 편지, 이어 테디 베어와 행복에 대한 의심으로. 가족과 자신을 단호하게 분리하며 이방인을 자처하는 세바스찬의- 텅 빈 저택을 휘감는 위화감은, 미묘하게 구르는 벤 위쇼의 눈동자로 완성된다. 미래의 불행을 확신하고 ‘죄인’이 되어 슬픈 얼굴로 기도하면서도 절대 존재를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Just to fit in.그냥 너한테 맞추려고.”이라던 찰스에게, 그는 “Well, than don’t!그럼 하지 마!”이라고 말했다. 저들의 ‘선의’에 흔들리느니 차라리 스스로 망가지고 고립되기를 택했다. 사과하는 찰스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그는 작별의 순간 “Not a word.한 마디도 하지 마.”라고 선을 긋던 존 키츠와 겹친다. 타인의 죄책감이 되거나 ‘구원’되기를 거부하며, 연약하나 평온한 모습으로 원하는 순간 이별(퇴장)을 선언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침착하게 각도를 맞춰 입에 총구의 자리를 만드는 벤 위쇼의 동작은 분명한 정서를 섬세하게 전달했다. 시대의 룰에 억압당한 그의 인물들은 -병으로 인한 죽음이든, 권총 자살이든, 이민이든- 결국 제 식대로 ‘세계’와 헤어지기를 택하며 고유의 언어로 존재를 정의했다. 이 남다른 자들이 거의 거리감 없이 관객에게 닿았던 것은, ‘두꺼운 피부나 굳건한 심지로 대수롭지 않게 억압을 받아치거나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숨길 요령 없이 최전선에 던져져 끊임없이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존재를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캐릭터 묘사의 일등공신은 절대 벤 위쇼였다.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평범하고 무해한 마스크 속 내면의 힘
단편 <러브 헤이트>(2008) 속 ‘착하지만 수완 없는’ -증오조차 ‘제 hate에게 휘둘려’ 어설프게 표출하며, 욕이 가득한 메일을 쓰며 울먹이거나, 사람을 ‘죽이려’ 나서서도 주먹 한 방에 자빠지고 마는- 톰처럼, 벤 위쇼의 어떤 주인공들은 가장 평범하고 순수한 영혼이었다. 대개 사람이나 상황에 ‘말려’ 곤경에 처하고 위험에 노출되었는데- 그 ‘순수’는 대다수의 사람이 지닌 것은 아니어서, 관객은 이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고’ ‘구해지기를’ 바라며 안타까워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 받는 피해자로만 남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끝내 스스로를 구한다.
<크리미널 저스티스>, 벤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평정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말한다, “Be yourself, Ben.네 모습 그대로 있으면 돼, 벤.” 벤 위쇼의 얼굴은, 작품이 ‘크리미널 저스티스’의 모순과 부정의를 강조하는 제1의 방법이다. 메시지를 분명히 하려면 주인공의 캐릭터성에 물음표가 생겨선 안 되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 속 카세 료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의 ‘무해한’ 인상은 의심의 여지를 효과적으로 지웠다. (‘매력적인 보호자’와 로맨틱한 긴장감을 유지하다 ‘구원’되는 연약한 주인공의 남성형인 듯 하다 그것을 ‘배반’하기도 하는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제스처였음을 전하는 것도 벤 위쇼다.) 후반부 결코 전처럼 해맑지 못한 눈빛은 시스템에 의해 개인의 마음이 조각난 모양을 빚어낸다. 최종적 설득력은 대사나 행동 자체보단, 섬세하고 개인적인, ‘두려움을 내보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에 있었다. 특수한 상황임에도 인물과 같은 것을 겪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몸도 마음도 최대한으로 여린 듯 보이나 숨겨진 내면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는 캐릭터들. 연인의 죽음 이후 누명을 쓰고 괴로움과 혼란에 휩싸이지만 진실을 알아내려 애쓰는 <런던 스파이>의 대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노만 스콧 또한 그 맥을 잇는다. 벤과 노만 모두에겐 법정에 서는 장면이 있는데, 강압적인 시선 한가운데 자리한 무방비한(무방비하나 무력하지는 않다.) 이미지가 이미 ‘결백’을 주장한다. 벤 위쇼는 ‘연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모든 자극을 견뎌내며, ‘울음을 계속 참고 있는, 그러다 참지 못하기도 하는’ 모양을 유지한다. 그 터질 듯한 상태 그대로 결국 말들을 당당하게 뱉어내는 모습은, 고통스럽고 벅찰 수밖에.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의 경우 노만 스콧의 특수한 서사, 복합적인 내면과 매력을 드러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데, 벤 위쇼는 조심스러우나 방어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이를 수행한다. 노만은 제레미 소프의 서술을 통해 일종의 ‘안타고니스트’ 포지션에서 시작하지만, 짐작은 곧 깨진다. 감정과 ‘약점’을 다 드러내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 속수무책의 순수. 모델로서 포즈를 취할 때도 어느 정도 수줍고, 협박을 해도 어설프다. 내내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즐겁고 당당하게 세상에 외칠 때, 엉엉 울고 나서도 활짝 웃을 때, 관객은 이것이 ‘노만 스콧의 이야기’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2018)
비범하나 보편적인, 평범하여 특별한.
‘천재’라는 수식에 기자는 어울리는 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 아워>(2011-2012) 프레디의 재능은 절대로 비범하다. 그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지만, ‘안 예쁜 태도’에 대해서도 모두 입을 모은다. 열변을 토할 때 그의 표정은 ‘관리’되지 않고 생생하게 굳어진다. 프레젠테이션보다 내용이 중요하고, 제 평판보다 진실이 중요해서다. 모두 어느 정도 연기하며 사는 세계에서, 홀로 연기할 생각을 않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기꺼이 골칫거리가 되는 자. 프레디가 맘에 없는 말을 하는 대상은 벨 하나다. 감정을 덮으려 부러 장난을 걸거나 상대를 깎아내리지만, 아련한 눈빛이 진심을 다 드러낸다-기보단 숨기지 못한다. 외부 압박에 타협하지 않는, 남달리 똑똑하고 위트있는, 그러나 로맨스엔 젬병인- 주인공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프레디 라이언은 유일하고 그 까닭은 벤 위쇼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He sees extraordinary in ordinary.그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봐요.”(벨 롤리) 프레디가 그렇듯 벤 위쇼도 그렇다.
1화 첫 장면은 대뜸 클로즈업된 벤 위쇼의 얼굴, 거울을 보고 연설문을 읊는 모습이다. 따라서 관객이 보고 있는 상은 프레디 본인의 눈에 비친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작품은 자주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그 뛰어난 감각이 인식하는 바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 벤 위쇼가 샅샅이 드러내는 보편적인 감정의 떨림 덕이다. 그러고 보면 프레디는 여성을 ‘구하는’ 강하고 멋진 남성이기보단, 루스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늘지거나 잔뜩 얻어맞고 벨에게 발견되는 자다. 인간적인 ‘보통’의 정서를 지님에도 물러서지 않기에 더 ‘보통이 아닌’- 이 위대한 기자의 여정을 그저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이입해 가슴을 졸이며 응원할 수밖에. 비범하면서도 보편적인, 평범하기에 특별한. ‘세계와 불화하는 그들’의 내면에 있는 힘을 벤 위쇼는 오롯이 소화해 전했다. 그 컴플렉스complex함을 절대 단순화하는 법 없이.
어떤 인물들: ‘유해한 세계’에 벤 위쇼가 편입되는 법
아르튀르 랭보, 존 키츠, 노만 스콧, 리처드 2세와 최근의 아담 케이까지. ‘실존 인물’에 그를 캐스팅하며 외모의 유사성은 애초에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을 테고, 기대한 바도 완벽한 ‘재현’과는 멀었을 것이다. 그가 ‘벤 위쇼 아닌 자’이려면, 애니메이션 곰이 되거나, 판타지적 디스토피아의 무감정이라도 입어야만 했을테니. 그러나 <패딩턴>(2015), 마음껏 정신없이 명랑했다가도 풀이 죽어 무방비하게 처량해지는 벤 위쇼의 정교한 미성이 사고뭉치 패딩턴을 ‘지구상 가장 순수한 생명체’로 만드는데 필수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듯- ‘기능적 조연’들 역시 벤 위쇼를 통함으로 인해 달라진다.
<007> 시리즈나 <제로법칙의 비밀>(2013) 속 ‘박사들’ 외에 그가 맡은 일부 조연들은 어쩐지 의외다. 빈민가 소년, 시인, 기자, 귀족 자제, 심지어는 왕의 모습으로-세계의 법칙이/을 거부하는 자였던 벤 위쇼는, 몇 년 후 여성 주연 작품들에서 ‘유해한 규범을 기꺼이 따르고 재생산하는 남자들’이 되었다.(‘절름발이 남자’는 규칙을 어기지만, 세계에 편입되기 위함이었다.) 맡는 역할의 범위를 넓히며 늘 ‘특정한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캐스팅으로 ‘효과’를 본 것은 사실 배우보다는 작품이다. ‘규범’이 현실적인 경우 개인이 아닌 불평등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면, ‘영화적일’ 때는 화면에 미묘한 불쾌감을 부여한다.
<서프러제트>(2015) 속 남성의 유형은 다양하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즐기는 자, 권력을 쥐고 놓지 않는 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법을 집행하는’ 자, 아내를 지지하는 자- 그들 모두가 ‘악해서’ 여성을 억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며, ‘대표적’ 가부장의 마스크를 벤 위쇼가 가져가며 이는 최대한으로 어필된다.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착실한 남자’로 등장한 소니는, 모드가 여성 참정권 집회에 나가도 먼발치에서 예민하게 주시하거나 부드러운 말투로 걱정을 내비치는 정도였다. 그 ‘배려’의 정체는 인물의 불안과 함께 밝혀지고, 카메라는 그가 ‘자상한 남편’, 이어 아버지이기를 포기하는 순간을 노린다. 악의 없이 울먹이며 흔들리는 낯을 잠시 클로즈업함으로써, 이 남자가 그저 평범하고 유약하며 특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가부장임을, 그 무책임한 몰인지가 그의 잘못이며 폭력과 차별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더 랍스터>(2015)는 남다른 이입이 특기인 벤 위쇼에게 언뜻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러나 요구되는 연기 스타일이 일정함에도, 이곳의 배우들은 의외로 ‘텅 비지’ 않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연출을 거듭할수록 더) 배우의 개성을 지우기보다 ‘세계’의 룰에 맞게 돋보이도록 조율하며, 행동과 정서가 뻔하게 이어지지 않도록 활용해 장면을 ‘흥미롭게’ 만든다. ‘비정한 여자’가 안젤리키 파풀리아의 얼굴을 통해 기본적 우울을 입듯,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절름발이 남자’의 바탕에 있는 불안은 벤 위쇼의-기계적인 톤을 적절히 입고도 예민하게 구르는 눈동자를 통해 드러난다. <리틀 조>(2019), 크리스의 변화를 미묘하고 ‘극적’으로 드러내기에도 그는 가장 적합한 배우였다. 주인공 여성을 사로잡는 매력적 남성의 전형이 아닌, 잔뜩 긴장해 머뭇머뭇 데이트를 신청하는 소심한 연구원. 그 조심스러움, 어색함과 함께 무해함이 사라지고 결국 무감정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크리스가 지닐 기이함을 예시카 하우스너는 벤 위쇼의 실루엣에서 찾았다. ‘변화’ 이후의 폭력성 역시 계산된 각도로 침착하게 주먹을 뻗는 종류의 것으로, 색다른 공포와 불쾌감을 야기한다. 엄격한 디스토피아에 편입되는 남성들, 그 유해함마저 벤 위쇼만의 것이었다. 특정한 ‘악인’이 되려 애쓰지 않고 ‘세계’를 거역하지 않는 선에서 저만의 위치를 찾는다.
<리틀 조>(2019)
예민함이라는 재능: 타인의 얼굴로 가장 솔직한 자신이 되다.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닌 ‘가녀린’ 실루엣, 쉽게 긴장해버리는 근육. 같은 작품에 출연했던 동세대 잉글랜드 배우들: 톰 히들스턴(<할로우 크라운>)이나 짐 스터지스(<클라우드 아틀라스>), 매튜 구드(<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와 같은 ‘남성 리드’가 되기 어려운 이미지고, 에디 레드메인(<대니쉬 걸>)의 ‘무던함’도 없다. 유사하게 ‘세상과 불화하는 천재’ 타이틀을 유독 많이 달았던 베네딕트 컴버배치처럼 ‘뭐든 가능한’ 마스크도 아니어서, 드물게 이성애 로맨스 서사의 주인공이 될 때도 제 1화자나 ‘관계의 리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많은 동료 배우와 평론가, 관객들로부터 ‘동세대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받는 까닭의 핵심은 이 ‘예민함’에 있다. “주변 사람들보다 피부를 한 겹 덜 가지고 있는 것 같은”(트레버 넌),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감각을 전제하는 천재성,은 ‘축복’이라고 하기엔 망설여짐에도- 그의 예민함은(‘예리함’으로 바꿔 적어서도 안 된다) 절대로 ‘결점’이 아니다.
“세 시간 만에 모든 인생사를 겪고 자살을 결심하는 젊은이”(벤 위쇼, 2004.04.29. [인터뷰: AP Archive]), 비니에 후드티 차림으로 약병과 주머니칼을 꺼내며, ‘사느냐 죽느냐’를 논하-기보다 온몸으로 겪-는 트레버 넌의 ‘뉴 햄릿’은, 벤 위쇼의 운명과도 같았다. 아니, 이 역할의 운명이 그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이 주연 데뷔 퍼포먼스로 그는 수없이 공연되고 인용됐던 대사가, 관념에서 떠도는 대신 관객의 가슴에 내려앉게 하고 말았다. <할로우 크라운>, 리처드 2세의 슬픔이 밴 엷은 미소에는 귀족과 군인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분투했던 열 살의 어린 왕마저 비친다. 그는 짓무른 눈가에 자기파괴적 저항과 조롱의 뉘앙스를 드리우고 스스로 ‘폐위’ 씬을 써내려가며 ‘텅 빈 왕관’의 의미를 들이밀었다.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외치며 안경을 든 손을 섬세하게 놀리던 브루투스가 그랬듯, ‘폭정’으로 수식되기도 하는 리처드 2세의 말년 역시, 벤 위쇼와 만나 풍부하고 ‘현대적’이기까지 한 정서를 입었다. 현대의 일반인과는 한참 먼 이 셰익스피어의 남자들이 벤 위쇼와 만나면, 어찌하여 ‘인간’으로 다가와 버리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되고 싶지 않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던 그는, ‘모순적’이게도 스크린을 통해 가장 적나라한 자신이 된다. ‘연기하지 않는’ 이들을 연기하는 벤 위쇼는 그들인 동시에 ‘벤 위쇼’이며, 보고 있는 관객 하나하나다. 그가 불어넣는 개인적 에너지는 작품 전체로 확장되어 관객을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평범과 비범, 특수와 보편을 가리지 않는다. 중세 왕의 대사조차 개인적 감성을 완벽히 드리워 읊어버리고, ‘특별할 것 없는’ 청년일 때도 남달리 고통 받는다. 어떤 전형성조차 저다운 방식으로 수행한다. 배우로서 ‘이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특징을- 벤 위쇼는 애써 지우고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타인/인물이 자신의 피부에 착륙하여land on one’s skin 파고들도록 허락한다.
배우가 게이인 캐릭터를 연기하면, ‘OOO게이’라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따라붙고, ‘아니라는 부정’이나 커밍아웃에 대한 기대(유명인의 커밍아웃은 퀴어의 가시성visibility을 높이고 인식을 향상시킬 가능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여기서 ‘기대’는 그러한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한 종류의 것이 아닌 단순 가십을 위한 ‘기대’를 일컫는다.)가 뒤따른다. 벤 위쇼 역시 그에 시달렸고 아웃팅outing으로 성 지향성이 대중에 알려졌으나, 이후로도 소수자적 정체성을 ‘공개’하거나 숨기려고 애쓰지 않았다(벤 위쇼, 2016.04.03. [인터뷰: The Guardian]) 이미지가 굳어지기를 걱정해 의식적으로 ‘다른 방향의’ 배역을 맡지도, 반대로 전략적으로 특정한 이미지를 대중에 ‘어필’하지도 않았다. “배우들은 어떤 것이든 구현하거나 표현할 수 있고, 그 자신이 무엇인가,로만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벤 위쇼, 2019 골든 글로브 백스테이지 인터뷰)고 벤 위쇼는 말했다. 그의 인물 중엔 게이도 바이도 스트레이트도 있으며, 이는 표현의 깊이나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스스로 ‘양쪽 모두의 에너지에 매료된다’(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고 말하기도 했듯,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전형을 답습하지 않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깨트린’다기보다는- 다만 가장 정직한 인간이 된다.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무방비해지는 그 솔직함과 용기 역시 재능이다. <리틀 조>의 서사를 가져온다면, 그야말로 가장 ‘리틀 조 행복 바이러스’에 덜 감염된 사람 중 하나일 테다.
아르만도 이안누치식 찰스 디킨스 각색에서 ‘밉상 빌런’ 유리아 힙의 옷을 입기도 했던 그는, <파고>(시즌4, 2020)에서는 총을 겨누고 협박하다가도 “내겐 아내가 있어요.”, “난 아내가 없는데 내가 죽으면 개밥은 누가 줘요.” 따위의 말에 눈가를 떨고 마는 ‘정이 가는 범죄자’ 라비 밀리건의 복잡한 캐릭터성을 한 톤 낮춘 목소리에 드리웠다. 프로듀싱을 겸한 <디스 이즈 고잉 투 허트>(2022)에서는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unlikable’’(벤 위쇼, 2022.01.29. [인터뷰: The Guardian]) 프로타고니스트 아담 케이가 되어 바쁘고 예민하게 이 병실 저 병실을 오가거나 우울하게 입꼬리를 내렸다. 벤 위쇼는 여전히 범위를 제 식대로 넓히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공연예술계에 혈연이 없음에도 젊은 나이에 무대 정가운데에 올랐던 그의 연기에는 초반부터, ‘타고난 천재성’ 따위 문구 없이는 수식하기 힘든 완전함과 특별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흔치 않은 재능’이란 흔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것 역시 안 될 말이다. 그가 지나온 예술의 여정엔 소수적 정체성을 지닌 내성적 남성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의 과정, 그것을 드러낼 용기와 감수성, 인물을 존중하는 섬세한 접근법, 어느 하나로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배우로서의 프라이드와 철학이 녹아 있다.
연기는, 벤 위쇼가 타인을 자신의 공간에 초대하는 방법이다. 세상이 화면 밖의 그를 궁금해할 필요나 권리는 없다. 그는 어느 정도, 데뷔 초부터 그 선언을 마쳤다. 연기예술가 벤 위쇼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예술을, 픽션의 옷을 입은 채 내보이는 자신을 들여다보면 된다. “Give him a mask, and he’ll tell you the truth.가면을 씌워 주면, 그는 진실을 말할 거야.” (1998, <벨벳 골드마인>, 오스카 와일드 재인용)
* 주 참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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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 언제나 피어있을 그를 떠나보내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의 마지막 작품,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11월 9일에 개봉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블랙팬서 실사영화 2번째 영화가 드디어 공개 되었다. 우리의 영원한 블랙팬서, 채드윅 보스만은 여기에 없지만 우리의 기억과 이 마음 속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영화의 모든 분위기와 기존의 이야기를 계승해 갈 와칸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가 우리의 곁을 떠난 것만으로도 슬퍼서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슬픔에 잠긴 이 세상에서 마블은 새로운 블랙 팬서를 만들어내지 않고 그를 추모하는 방식으로 블랙 팬서 2를 구성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완전했던 그가 떠나며 와칸다에도 슬픔이 찾아온다. 그의 빈자리는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지만 와칸다라는 완전체가 하나가 되어 이겨내는 과정을 거친다. 기존에 보여줬던 마블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마블에게 헌신했던 히어로를 이러한 방식으로 추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0여 년 동안 마블 영화를 빛냈던 기존의 마블 히어로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나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R.I.P 블랙 팬서.
국왕이자 블랙 팬서인 티찰라의 죽음으로 와칸다는 슬픔에 잠기지만 그것도 잠시 와칸다를 노리는 수많은 세력들로 인해 슬픔도 감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른다. 비브라늄과 그 외의 존재에 대한 언급은 위협으로 다가와 와칸다는 영원히 하나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었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와칸다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하여 그들이 살아온 이곳이 얼마나 그들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만든다. 또 소중한 와칸다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사명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에 비치며 그의 빈자리가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는 이곳에 없지만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는 언제나 피어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 영화의 주요 인물이 없다고 느껴지는 건 블랙팬서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와칸다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 네이머의 존재를 서술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또 다른 죽음으로 성장을 꾀하는 그런 아쉬움에도 영원한, 그리고 영원할 와칸다가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웅장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없는 와칸다, 블랙 팬서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가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와칸다의 전부를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단순하게, 인상 깊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아이언 하트를 제외하면 만족스러웠다.
마블 영화를 비롯한 히어로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히어로의 숙명이며 인간의 굴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참 마음이 아프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히어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한 번쯤 상상해보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좋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주목을 받지 못했거나 주위로 인해 악당이 되어버린 이들을 보면 히어로의 삶이 순탄치 않음을 반증한다. 쿠키영상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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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인 터프가이 & 섹시가이
느슨해진 극장가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등판했다. 외형은 더티 터프, 더티 섹시가 풀풀 풍기는데 내면은 큐티 뽀짝함을 갖췄다. 영화 '핸섬가이즈'의 매력에 푹 빠진 나머지 관객들은 웃참에 실패해 계속 웃음이 터진다.
'핸섬가이즈'는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는 외모를 자랑하는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전원생활을 꿈꾸며 새집으로 이사 온 날, 지하실에 봉인됐던 악령이 깨어나며 벌어지는 잔혹 코미디다.
시작부터 두 캐릭터의 외모는 범죄자로 오해받는 '추남형'으로 정의하긴 했지만, 보는 이들에게 불호로 다가오지 않는다. 극 중 서로를 향해 '터프가이', '섹시가이'라 칭하는 등 되려 시선강탈하는 외모로 웃음을 유발하며 포문을 열어젖힌다.
'핸섬가이즈'는 단순히 두 주인공의 외모만으로 웃기지 않는다. 캐릭터들의 동심과 세심함, 배려심을 녹여 러블리한 남성 캐릭터로 발전시키는 등 캐릭터 설계를 훌륭하게 해낸다. 특히 상구는 지켜주고 싶은 크고 소중한 '쁘띠가이'로 매력을 철철 흘리면서 관객들을 제대로 홀린다. 상구로 분한 이희준은 이번 작품에서 연기력으로 정점을 찍는다.
호러 코미디 장르이긴 하나, '핸섬가이즈'는 웃음과 잔혹함 둘 다 잡겠다고 갈팡질팡하지 않고 웃음부터 공략하며 관객들을 제대로 터뜨린다. 그러면서도 오컬트스러운 분위기도 살포시 깔아 두며 균형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흥미를 끊임없이 유발한다.
원작의 할리우드 B급 잔혹코미디를 국내 정서에 맞게 잘 심어놓는 영리함도 발휘한다. 원작인 '터커 & 데일 Vs 이블'의 슬래셔 요소를 일정 부분 완화시켜 잔혹한 장면에서도 관객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B급 정서로 A급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핸섬가이즈'에 등장한 배우들의 연기도 웃음을 빵빵 터뜨리는 데 제대로 한몫했다. 이희준 이외 '자칭 터프가이' 재필을 통째로 집어삼킨 이성민과 두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미나 역의 공승연은 확실히 눈에 띈다. 이들 이외 박지환, 이규형, 우현 등 조연들의 신스틸러급 연기는 영화 속 빅웃음 포인트를 선사하기도 한다.
다만, 영화 자체가 대중적이진 않다. 그래서 보는 이에 따라 확실히 취향을 탈 것이다. '핸섬가이즈'가 자신의 취향이라면 껄껄 웃다가 나올 101분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이게 무슨 내용인가' 생각하며 와닿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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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연말에 다소 무거웠던 <서울의 봄> <노량: 죽음의 바다>를 벗어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재의 영화로 관객들에게 찾아온 <시민 덕희>!
영화는 실화바탕의 '보이스 피싱' 소재로 통쾌한 스토리를 들려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이번주 개봉예정작 같이 만나보실까요?
시민 덕희
Citizen of a Kind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14분
감독: 박영주
출연: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 등
개봉: 2024.01.24.
배급: ㈜쇼박스
시놉시스
내 돈을 사기 친 그 놈이 구조 요청을 해왔다! 세탁소 화재로 인해 대출상품을 알아보던 생활력 만렙 덕희에게 어느 날, 거래은행의 손대리가 합리적인 대출상품을 제안하겠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대출에 필요하다며 이런저런 수수료를 요구한 손대리에게 돈을 보낸 덕희는 이 모든 과정이 보이스피싱이었음을 뒤늦게 인지하고 충격에 빠진다. 전 재산을 잃고 아이들과 거리로 나앉게 생긴 덕희에게 어느 날 손대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는데… 이번엔 살려달라는 전화다! 경찰도 포기한 사건, 덕희는 손대리도 구출하고 잃어버린 돈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필살기 하나씩 장착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중국 칭다오로 직접 날아간다.
CINE PICK!
이 영화는 2016년에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경기도 화성시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성자씨의 보이스피싱 사기로 직접 보이스피싱 총책의 사진, 은신처 정보, 중국에 소재한 사무실 주소 등을 모아 경찰에 제출하며 경찰이 총책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실화 사건을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넥스트 골 윈즈
Next Goal Wins
ⓒ 네이버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영국 | 104분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오스카 카이틀리 등
개봉: 2024.01.24.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인성 논란으로 퇴출 위기에 놓인 축구 감독 ‘토머스 론겐’은 31: 0이라는 기록적인 패배로 창설 이후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FIFA 랭킹 최하위 아메리칸사모아 국가 대표팀의 감독을 어쩔 수 없이 맡게 된다. 승률 제로, 단합 제로, 용기 제로 모든 것이 부족한 선수들과 ‘론겐’은 고군 분투하게 된다. 그들의 목표는 승리도, 우승도 아닌 오직 한 골!
CINE PICK!
<조조 래빗> <토르: 라그나로크>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과 <엑스맨: 아포칼립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연기력을 보여준 마이클 패스벤더가 만난 영화로 2014년에 나온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바탕으로 미국령 사모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4fif a 월드컵 브라질 오세아니아 1차예선 시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클럽 제로
Club Zero
ⓒ 네이버영화
개요: 미스터리, 스릴러 |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 110분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외
재개봉: 2024.01.24.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STEP 1. 깊게 심호흡하고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해 보세요 STEP 2.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어보세요 STEP 3.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세요 모든 단계를 통과한 여러분을 이제 ‘클럽 제로’의 회원으로 임명합니다! 최고급 기숙사 시설에서 학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의 다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에 아이들은 점차 빠져들게 되고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식사를 이어가는데…
CINE PICK!
<슬픔의 삼각형> 제작사 참여, <스토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미와 와시코브스카의 만남으로 영화 <클럽 제로>는 독특한 식사법을 설파하는 미스 노백과 이를 맹목적으로 믿는 앨리트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도그맨
DOGMAN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프랑스, 미국 | 115분
감독: 뤽 베송
출연: 케일럽 랜드리 존스 외
개봉: 2024.01.24.
배급: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뉴저지의 한 도심, 핑크 드레스에 짙은 화장을 한 남자가 수백 마리의 개와 함께 긴급 체포된다.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던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15년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개들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한 남자의 쇼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CINE PICK!
<도그맨>은 안티히어로가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는 휴먼드라마로 <레옹> <루시>를 연출한 뤽 베송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2021년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케일럽 렌드리 존스, 폭스테리어, 도베르만, 그레이하운드와 같이 열연을 펼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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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과 인간의 운명, 야누스란 이름의 괴물
욕망이란 구덩이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 그리고 그 구덩이에 빠져버린 이카로스
욕구란 생존이라는 본능에서부터 발생한 모든 생명체들이 추구하는 목표 혹은 소망입니다. 하지만 모든 욕구를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한 법,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공간에서 욕망이라는 감정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감정은 어떻게든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고자 하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결과물이 극히 미미하고 빈약한 양일지라도 끊임없이 반복하여 빈 공간을 채워나가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게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빈 공간을 인정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또는 그 동기로부터 발생한 새로운 동기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그 공간을 채우는 행위의 의미가 180도로 달라지게 됩니다. 즉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욕망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인 존재입니다. 이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는 인간의 채울 수 없는 욕구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특히 약점으로서의 욕망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 욕망에 관련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탈출이 불가능하다시피 한 미궁 라비린토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이카로스에게 밀랍으로 만든 날개라는 무기와 동시에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새로운 동기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이는 태양이란 신적이고 경외의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새로운 욕망을 낳았고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조언과 경계를 무시하게 되었으며, 결국 추락이라는 날로 바뀌어 스스로를 베고 맙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탠턴 칼라일은 여러모로 이카로스와 닮은 점이 많은 주인공입니다. 서커스의 독심술사 피트로부터 독심술을 배우고 싶다는 그의 욕망은 부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새로운 욕망을 낳았습니다. 그 욕망은 더욱 많은 돈을 갈망하도록 만들었으며, 종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하게 됩니다. 특히 칼라일이 탐내는 독심술에 관한 전문가이면서 그 모든 내용을 담은 공책의 소유자이자, 칼라일의 독심술에 대한 욕심에 대해 경계와 염려를 하는 피트의 모습을 통해, 그는 신적인 경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다이달로스와 대응되는 존재임을 인지하게 해 줍니다. 다만 칼라일은 이카로스와 달리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스승이면서 경외의 대상을 살해했다는, 선을 넘었다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욕망이란 선을 넘느냐 마느냐에 따라 무기가 될 수도 약점이 될 수도 있으니, 그 선을 넘어버린 칼라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괴물, 그 이름은 인간. 야누스란 이명을 가진
욕망에 사로잡힌 칼라일은 독심술을 적극 활용하여 쇼에 참석한 관객들을 쥐락펴락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사탕발림으로 상담을 해 주는 척하면서 농락합니다. 스탠턴의 겉모습과 행보만 본다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고 당당한, 뚫을 수 없는 강인한 갑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실상 그 속은 누구보다도 가냘프고 연약하기만 합니다. 반대로, 몰리 혹은 릴리스와 같이 나약해 보이거나 강인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인물들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거나, 더 나아가 잔인함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인간의 욕망과 더불어, 이러한 인간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인 야누스에 관해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먼저, 영화 중간중간에 첫 시작의 배경이었던 낡은 집에서 칼라일의 늙은 아버지와 관련된 컷들을 반복하여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해당 상황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이를 통해 칼라일의 욕망을 쫓는 행위는 아버지와 관련된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듯한 정반대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극단주 클렘의 수집품 에녹과 괴인을 찾으러 들어간 유령의 집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문구들을 통해서 구체화됩니다. 출산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에녹의 이마에 박힌 눈은 관찰자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는 클렘의 대사와, 자신의 죄를 비추라는 거울 위에 쓰인 문구를 통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을 상기시킵니다. 죄책감은 칼라일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으며 그는 죄책감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화술로 사기를 치는 겉모습과 달리,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두려워하고 도망치려는 본모습을 통해 칼라일도 사기의 대상이 된 인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어떨까요, 클렘과 에즈라를 비롯해 릴리스는 외강내유라고 할 수 있는 칼라일과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인물들입니다. 세 인물들은 모두 정상적이고 평범하거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채로 영화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셋 모두 공통적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인물임이 밝혀집니다. 아편을 이용해 사람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그 사람을 극단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과정을 아무렇지 않게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클렘, 아내를 잊지 못하는 듯했지만 수많은 여성들을 폭행하고 살해하기까지 한 에즈라, 칼라일의 본질을 꿰뚫고 자기 자존심을 짓밟은 대가로 천천히 나락으로 끌어당긴 릴리스. 이들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야누스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묘사를 통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들에서 항상 등장해 왔던,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제는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 협의의 괴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음에도 말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야누스, 비단 칼라일뿐만이 아닌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이 야누스에 속한다. 그 속에 숨기고 있는 게 괴물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그 외의 은유, 황홀한 미술과 함께
마지막으로 칼라일, 그의 아버지, 그리고 피트 사이를 운명이란 주제로 관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세 인물 간에는 술이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됩니다. 칼라일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어머니가 가족을 버리고 전도사와 떠나게 하며 그 전도사는 칼라일을 성추행까지 함에도 아들을, 가족을 보호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기만 했음을 대화를 통해 드러냅니다. 칼라일은 그러한 아버지를 추위 속에서 얼어 죽도록 내버려 두고, 그의 시체를 구덩이에 묻고 집과 함께 불태우고 떠납니다. 칼라일이 극단에서 일을 시작한 후 스승 혹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었던 피트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였기에, 메틸알코올이 어떤 상자에 담겨 있는지를 알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메틸알코올을 피트에게 가져다 줌으로써 그를 살해합니다. 이후 릴리스에게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임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던 칼라일 본인조차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였고, 점차 무모한 결정들을 내리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종국에 다다라, 클렘이 알려줬던, 괴인을 길들이는 방식을 그대로 언급하면서 일자리를 제안받았음에도 "자신은 그 연기를 위해 타고났다"라고 말하는, 완전히 술의 노예가 되어버린 칼라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걷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에는 그 악몽의 길을 똑같이 걸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술을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특히 이 운명을 깨닫고 체념한 듯 웃는지 우는지 파악이 힘든 표정을 통해 가장 충격적이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가히 인상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는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로 영화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여러모로 감독의 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와 많은 부분에서 대척점에 위치해 있는 영화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성이 가득 차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와 달리 <나이트메어 앨리>에서는 그러한 감성은 1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청록색이 영화를 상징하는 색이었다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청색과 더불어 주황색으로 대표되는 불빛의 색깔이 영화를 대표하는 색입니다. 불빛이라 하면 따뜻함이란 인상이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나이트메어 앨리>에서의 불빛은 전혀 따뜻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1940년대 시골 배경이 가져다주는 음침한 기운과 함께 건조하고 메마른 느와르 장르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용도로 사용될 뿐입니다. 아울러, 앞서 언급했던 겉과 속이 다른 야누스적인 모습을 칼라일의 중심선을 기준으로 푸른빛과 주황빛이 각각 반쪽을 비추는 연출을 통해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 시대상을 담아낸, 고전적이지만 우아함이 살아있는 복식과 배경은 황홀감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연 거장의 비주얼을 가지고 노는 솜씨는 여전하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예술이었습니다.
아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 술.
전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불빛, 과연 기예르모 델 토로 답다
두말하면 입 아픈 배우진, 아쉬운 점
액션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느와르 장르, 심리극은 배우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은 이전의 리뷰들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했었습니다. 당연히, <나이트메어 앨리>의 출연진들을 확인해 보면 연기력을 걱정한다는 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습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나이트메어 앨리>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가장 두껍고 중요한 줄기인 칼라일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연기해 냈습니다. 앞서 말했듯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 연기로 정점에 다다른 피날레를 당연히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 외에 순수하고, 그렇기에 두려움에 빠져 있는 루니 마라의 몰리,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자만감,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오만함과 도도함을 가진 케이트 블란쳇의 릴리스 등등, 모든 배우들이 영화를 구성하고 받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이트메어 앨리>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고,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많은 메타포와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치밀한 플롯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에 이를 분석하고 곱씹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고 전형적인 이야기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새로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나이트메어 앨리>는 150분이란 긴 러닝타임에서 불필요한 부분이 없이 꽉 차있는 영화입니다. 불필요한 부분이 없다는 건 그만큼 몰입감이 강하다는 의미이지만, 이는 긴 러닝타임으로 인해 관객들이 피로감을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는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 파트가 불필요하게 길고 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감상평을 한 관객들이 대다수인 부분에서, 극단 파트의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방식이 달랐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영화를 꽉 채우고 받쳐주는 명배우들의 연기 향연
그리고 아쉬운 러닝타임과 극단 파트의 진행 방식
감독의 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에 비할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이트메어 앨리>는 충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곳곳에 담긴 요소들을 파헤치고 느꼈던 모든 내용들을 글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표현력으로 인해 여기까지가 제 한계였습니다. 올해, 아니 그동안 작성했던 리뷰들 중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글임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네요. 완벽하게 느낀 영화의 리뷰보다 긴 리뷰라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설명할 거리가 많다 보니 이렇게 된 느낌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글에 담지 못한, 더 많은 내용을 따로 작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여하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매력에 더 빠지게 만드는 정말 좋은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였습니다.
I was born for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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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일단 손풀기로 아주 짧게 영상 하나를 올립니다.
영상 이제서야 올리는데 성의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곧 좋은 영상으로 다시 돌아올 테니 그냥 재미있게 영상 즐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2018. 00. 00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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