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습니당2022-11-14 21:36:41
야망 넘치고 치열하고 살벌한 이야기
넷플릭스 [작고 예쁜 것들 시즌1] 리뷰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치열하게 분투하는 이야기
야망을 갖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쟁취하는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가 있다. 영화 블랙스완도 그랬고, 전부터 지금껏 흥행하고 있는 보컬과 댄스 등 경연 프로그램도 같은 결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자 사연이 있는 등장인물들이 있고, 그들은 각각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정적인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개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은 현실 속 이야기라 '우와 즐겁다'하는 마음으로 보기가 힘들다. 전에 공연계 지망생으로서 훈련하면서 동료들과 각자의 꿈, 어려움 등을 나누어본 경험 때문인 것 같다.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도 예전의 나와 동료들이 나누었던 고민과 걱정을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잘 되면, 다른 누군가는 놓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경연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치열한 현장을 가공해서 만든 콘텐츠는 종종 소비한다. 완벽에 대한 인간 심리와 발레계의 치열함을 엮은 영화 <블랙스완>은 아름답고 치명적이었으며, 공감이 가서 좋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에서 역시 한정적인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프로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서로 알고 있는 정보나 이론을 공유하며 '더 나은 지휘자가 되기 위한 경험'으로서 경연을 받아들인다. 내가 설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갈망하지만 영화 <블랙스완>만큼 파괴적으로 경쟁하지는 않는다.
블랙스완, 지휘자 1분과 유사한 점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한 드라마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 역시 어떤 자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영화 <블랙스완>, 다큐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과 유사한 점이 각각 있었다.
발레계의 치열함을 다루고 있으며, 완벽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는 점은 블랙스완과 닮았다. 내가 설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갈망하고, 더 나은 댄서가 되기 위해 서로 돕는 장면은 지휘자를 위한 1분과 닮았다.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만의 특징
뚜렷한 1인 주연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이다 보니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한 소녀를 주인공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레 명문 학교에 극적으로 입학하게 된 그 인물은 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에피소드를 거듭 헤쳐갈수록 확신하게 된다. 나는 '내레이션을 하고 있는 인물은 그 흑인 여성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은 뒤에 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콘텐츠 속 콘텐츠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이 작품은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콘텐츠 두 가지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우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또는 공주). 또 다른 콘텐츠는 '리퍼'. '잭 더 리퍼'로 알려진, 오래전 영국의 미제 사건 이야기이다.
캐시가 사고를 당하기 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발레 공연으로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새로운 학생과 새로운 안무가가 영입되고, 살인마 이야기를 공연하게 된다.
작품 밖에서도 실존하는 두 콘텐츠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 '캐시'는 잠자는 미녀이다. 여성들을 살해한 리퍼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솔로이스트(독무를 추는 최고 댄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서우리만치 살기를 띠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 시즌1, 총평
여러 인물들이 겪는 각자의 문제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다루는 이야기인 점은 좋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된 이유인 유망했던 발레리나의 추락사고 전말은 여러 인물들을 곤란하게 했던 것 치고는 밋밋했다.
썸네일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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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영화 랭킹 Star Wars Film Ranked
조지 루카스가 구상한 [스타워즈 9부작] 혹은 [스카이워커 사가]은 한마디로 '다스 베이더의 비극'라는 거대한 서사시다. 그 비극을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파토스(Pathos, 연민을 자아내는 힘, 측은지심)'을 자아내기 때문에 전설의 위치에 올랐다.
마블과 DC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르물이 그렇듯이 [스타워즈] 역시 개연성을 지닌 영화는 아니다. 지난 42년간 [스타워즈]는 MCU처럼 독창적인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무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이전에 팬들에 의해 대중문화 최초로 ‘확장세계관(EU)’를 정립했다. 그런데 [시퀄 3부작]은 [스타워즈] 특유의 ‘설정 놀음’을 간과했다. 특히 캐슬린 케네디 루카스필름 대표와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그랬다.
◆평가 기준
1순위 시리즈로써 의의
2순위 공유 세계관 기여도
3순위 단일 작품으로써 완성도
#11 : 에피소드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Episode IX: The Rise Of Skywalker, 2019)
디즈니는 ‘스카이워커 사가의 종결’을 홍보했지만, 9편의 실제 임무는 ‘브랜드 관리’다. J.J. 에이브람스의 최우선 과제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팬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것이다. 거기다 자신이 던져놓은 7편의 떡밥을 회수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따지고 보면 라이언 존슨이 8편에서 7편의 떡밥을 싹 무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제작을 맡은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팬 서비스’를 핑계 삼아 8편의 아이디어를 깡그리 쓰레기통에 버린다. 속편이 나올 때마다 전편을 부정하는 [시퀄 3부작]은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팬들의 반응만 살피며 돌려 막기 하다 보니까 캐릭터, 설정, 세계관, 스토리 전부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거기다 캐슬린 케네디가 꺼내 든 황제 클론 아이디어는 그 자신이 2014년 4월 25일에 폐기한 레전드에서 가져왔다. 캐슬린 케네디의 '빈곤한 상상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느라 포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만능키)' 되고, 레이는 '메리 수(천하무적)' 화 되어 시리즈 전통을 더더욱 망가뜨린다. 이게 다 라제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부 다 수습하려고 노력하면서, 9편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시퀄 3부작 내내 기존 시리즈에 대한 지나친 오마주를 하면서 전통 파괴를 일삼는 모순을 매번 일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통 [시퀄 3부작]의 주제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세 편 모두 제각각 따라 놀며 [시퀄 3부작]의 정체성과 주제를 전부 잃어버렸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빈곤한 상상력과 방향성의 부재다. 이것이 디즈니가 '새로운 스타워즈'를 내세우면서도 [스타워즈 6부작]을 의존하는 [시퀄 3부작]의 한계다. 고로 창의적인 비전이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제작진이 [스타워즈] 시리즈 자체를 오독하고 있다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실로 안타깝다.
#10 : 에피소드 8 : 라스트 제다이 (EPISODE VIII - THE LAST JEDI, 2017)
당연하게도 시리즈물은 단 한 편의 완성도로 평가할 수 없다. 라이언 존슨은 우리가 익히 알던 스타워즈의 영웅 서사를 해체시킨다. 영화 전체에 걸쳐 낡은 스타워즈를 새롭게 갈아엎지만, 5편 [제국의 역습]처럼 하는 일마다 죄다 실패하는 통에 다 보고 나면 허무하다. 왜 [제국의 역습]을 레퍼런스한 [라스트 제다이]는 감흥이 적을까? 비극은 공포와 연민을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완수한다. [제국의 역습]은 '부살(父殺·Patricide)' 모티브를 차용해 루크에게 감정 이입하게 되지만, [라스트 제다이]의 성장 자체가 없는 레이에게 어떻게 연민과 공포를 가지겠는가?
라이언 존슨이 전통에만 기반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미래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따르는 건 좋다. 해체하기에 앞서서 우선 시리즈의 본질을 제대로 통찰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예 과거와는 선을 긋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덧붙여서 차라리 [라스트 제다이]를 첫 번째 영화로 내세워 [시퀄 3부작]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되었다면, 훨씬 순조로웠을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일부터 저지르는 8편은 J.J. 에이브람스를 포함한 스타워즈 팬들에게는 40년 동안 쌓아왔던 공유 세계관에 대한 '반달리즘'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라이언 존슨은 제다이와 시스로 구분 짓지 말자고 계속 설득하지만, 정작 '저항군 VS 퍼스트 오더' 선악구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또, 영화 내내 탈영웅 서사를 부르짖지만, 결국 시련과 고초를 한 번도 겪지 않는 완전무결한 레이의 영웅 서사를 보면 자기모순처럼 읽힌다. 거기다 서스펜스에 약한 라이언 존슨의 약점이 겹치면서 저항군을 계속 위기로 몰아넣지만,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서 긴박감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 ([나이브스 아웃]을 보면 그는 미스터리에 강점이 있는 감독이다.) 전부 라이언 존슨이 별다른 설득 없이 시리즈의 요소들을 본인 입맛대로 취사선택하고 변용한 결과였다. 왜 그랬을까?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두, 자크 데리다는 흔히 '선과 악' 같은 이항대립 체계를 종언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 가르침대로 라이언 존슨 역시 제다이와 시스의 대결을 종식시키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사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의 경계, 울타리를 이야기할 뿐 종언을 고하지 않았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을 해체하되 이항대립 그 자체가 종결될 수는 없다고 봤다. 왜냐하면 성경을 포함한 서구인의 사고체계 전부를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언 존슨도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의 맹점에 빠졌던 것이다.
결국에는 괜찮은 완성도임에도 불구하고, 후속작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그 즉시 기록 말살 형에 처해진다. 이제 루카스 필름 내부에서조차 ‘흑역사’로 공인된 셈이다. 그러나 조만간 재평가 받을지도 모른다. 현재 라이언 존슨이 집필하는 구 공화국 시점의 신규 3부작(10,11,12편)이 2022년 12월, 2024년 12월, 2026년 12월 개봉 예정으로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케빈 파이기가 제작하는 스타워즈 작품 역시 2022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어 동일한 프로젝트로 예상된다.
#9 :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 (EPISODE VII - THE FORCE AWAKENS, 2015)
첨 볼 때는 클래식 느낌이 나서 반가웠다. 다시 보니 [깨어난 포스]는 [에피소드 4·5]을 리뉴얼했을 뿐 아니라 개봉 당시 과대평가보다 실제 완성도가 떨어지고, 의미 없는 서사가 많았다.
물론 당시에는 이러한 구멍들이 차기작을 위한 떡밥으로 간주하고 넘어갔었는데, 라이언 존슨의 8편 [라스트 제다이]이 떡밥 자체를 무시하고, 세계관 자체를 붕괴시키는 바람에 에이브람스가 직접 연출한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망가진 세계관을 수습하고, 설정 구멍을 막는데 급급하게 되었다.
문득 왜 에이브람스가 ‘떡밥의 제왕’이 되었을까? 가 궁금해진다. ‘쌍제이 특유의 떡밥 투척’은 독창성이 부족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다, 맥거핀(떡밥)을 많이 설정해서 재빨리 흥미를 유발하고, 연속된 위기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며 돌려 막기일 뿐이다. 7편과 9편에서 쌍제이의 단점이 크게 부각되는데, 새로운 맥거핀이 파생될 때마다 또 다른 플롯 포인트가 생긴다는 점이다. 무언가 흥미로운 떡밥을 던지긴 하는데 전체적인 흐름은 전진된 게 없다. 게다가 쌍제이가 캐릭터들조차 도구적으로 정보와 아이템을 주는 용도로 쓴다. 아마 데이지 리들리조차도 레이가 어떤 역할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3편 내내 자꾸 설정이 바뀌니까 말이다. 핀과 포 다메론도 마찬가지다.
디즈니가 안정된 돈벌이를 위해 ‘추억 팔이‘에 안주한 결과, 시리즈로의 신규 관객 유입에 실패한다. 진부한 [시퀄 3부작]으로 스타워즈를 처음 접한 세대들에게 "개연성도 부족하고 재미없는" 시리즈로 받아질 수밖에 없다. '영혼 없는' 팬 무비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시퀄과 프리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깨어난 포스]에서 레이가 모아 온 고물을 수거하는 배급소 주인 '운카 풀럿'은 뚱뚱한 구두쇠 정도로 단편적으로 묘사한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부품가게 주인으로 나오는 '와토'는 어떤가? 이방인 '콰이곤 진'을 경계하지만 장사치답게 흥정을 건다. 자신의 노예인 아나킨의 포드 레이싱 재능을 인정해서 포드를 제공해준 적이 있으며, 경주 도박을 하기도 한다. 또, 자바 더 헛을 두려워하고, 세불바가 아나킨에게 해코지 못하도록 단속한다.
루카스는 '단역'이라고 해도 그 전후 배경와 상호작용을 미리 설정해둔다.
그렇기에 루카스의 형편없는 연출력에도 불구에도 [스타워즈]가 확장세계관의 선구자로 매김 할 수 있었다. 간과하기 쉽지만, 조지 루카스 세계관과 캐릭터를 설정할때 입체적 사고로 그린다. 거대한 세계관을 창조하려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언뜻 별 관계가 없는 대상과 우리는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표시되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와 관습이 있지 않은가? 제임스 카메론도 조지 루카스처럼 인류학적·미학적 맥락을 철저히 따진다. 그는 [아바타]를 제작할 때 나비족 언어와 종교, 규범, 문화, 지리까지 미리 설정한 다음에야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6편 [제다이의 귀환]에서 은하 제국이 멸망하고, 들어선 신 은하 공화국이 어떤 과정으로 붕괴되었는지 7편 [깨어난 포스]가 전혀 설명하지 않아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즉, 정체불명의 퍼스트 오더가 왜 위협적인지를 관객 입장에서 와닿지 않기에 [시퀄 3부작] 내내 ‘긴장감의 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부실한 세계관 구현이 2020년 현재 [시퀄 3부작] 관련 작품보다 이전 [프리퀄 3부작] 혹은 [클래식 3부작]에 기반한 미디어 믹스 및 파생상품이 더 많은 이유다.
#8 : 솔로 : 스타워즈 스토리 (SOLO: A STAR WARS STORY, 2018)
크리스 밀러 & 필 로드의 급작스러운 해고로 말미암아 캐슬린 케네디가 싹 다 갈아엎도록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 간판을 떼고 보면 괜찮은 하이스트 무비다. 다만, 구원투수로 등판한 론 하워드가 산으로 갈 뻔한 작품을 겨우겨우 수습한 티가 난다. 예를 들면, 항공권이 없는 한은 제국군에 의해 수배령이 내려지지만, 정작 제국군 입대 담당관은 그에게 성을 붙여준다. 이렇듯 얼렁뚱땅 넘어가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베테랑 론 하워드가 촉박한 제작 기한 내에서 균열을 최소화했다.
해리슨 포드를 닮지 않은 엘든 이렌리치는 차분하게 연기를 잘했고, 까칠한 드로이드 L3-37과 도널드 글로버의 랜도 칼리시안은 씬 스틸러다. 그럭저럭 즐길만하지만, 애초부터 3부작으로 기획되어서 그런지 속 시원한 기원담을 들려주지 않는다. 꽁꽁 싸맨 채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다 보니 자꾸만 여타의 SF 영화들이 연상될 뿐 특별한 인상을 안겨주지 못한다. 문제작 [라스트 제다이]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프랜차이즈 최초로 적자 흥행을 기록하게 된다. 이 사단의 원흉인 캐슬린 케네디는 어쩔 수 없이 한 솔로의 속편 계획과 [오비완 케노비], [보바 펫]의 앤솔로지 시리즈를 취소한다.
그러나 [더 만달로리안]에 앞서 시리즈 최초로 '암시장의 밀수와 범죄'를 조명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자바 더 핫이 이끄는 핫 카르텔, 코렐리아 행성에서 제국 전함이 건조되는 장면, 우주 공항의 묘사, 코악시움 광산의 묘사, 츄바카와 우키 종족의 묘사 등 [시퀄 3부작]이 등한시했던 세계관 구현에 노력했다.
#7 :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EPISODE I - THE PHANTOM MENACE, 1999)
[프리퀄 3부작]의 밑바탕을 깔기 위한 거대한 예고편에 불과하다. 포드 레이스 장면과 다스 몰과의 검투신만 보거나 [보이지 않는 위험]을 통째로 건너뛰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상상력이 결여된 ‘시퀄 3부작’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는 위험]의 세계관 확장이 긍정적인 평가로 돌아섰다. 살다 살다 [프리퀄 3부작]을 응원하는 날이 오다니
무역협상, 분리주의 연합 등 진지한 정치적 담론, 자자 빙크스의 고통스러운 CG 슬랩스틱, 부재한 주인공, 처참한 대사, 느슨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3부작과는 확연히 차별화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바로 로마 공화정이 제국화되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결함으로 인해 자신과 주변인이 파멸로 치닫는 셰익스피어리언 비극을 시리즈에 훌륭하게 이식시켰기 때문이다.
또, [클래식 3부작] 과는 이질적이었던 디자인이 클래식의 변영에 지나지 않는 진부한 디자인을 선보인 [시퀄 3부작]으로 말미암아 지금에 와서는 과감한 도전으로 재평가를 받았다.
끝으로 미디클로리언을 통해 '기(氣)'에서 착안한 포스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이 개념으로 노예 신분인 아나킨을 '선택받은 자'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8편 이전부터 누구나 포스를 가질 수 있다는 '포스 에브리웨어' 설정은 이미 존재했었다.
#6 :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EPISODE II - ATTACK OF THE CLONES, 2002)
[클론의 습격]은 조지 루카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와 형편없는 연출,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발성 문제가 겹치면서 '역대 최악의 로맨스 영화'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100% 디지털 촬영으로 완성된 첫 블록버스터이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영화 산업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다와 두쿠 백작의 라이트세이버 결투, 제다이 기사단와 분리주의 연합의 드로이드 간 전투 등으로 액션을 강화했으며, 의회를 장악한 팰버틴 의장이 무역 연합에 대항하고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은하 공화국을 방어할 목적으로 비상 권한을 부여받는다거나 보바 펫과 클론 트루퍼를 결부 짓는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법이다. 루카스의 탁월한 기획력에 비해([시스의 복수]을 위해 아껴둔) 드라마의 부재를 막을 캐릭터 묘사에 실패하면서 시리즈 사상 가장 지루하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조지 루카스가 프리퀄을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인 '클론 전쟁'의 개전만을 알린다는 점이다. 추후 전쟁의 진행 상황은 [클론 전쟁(2003/2008)]로 대체됐다. 있으나 마나 한 ‘제다이의 결혼 금지 규율’ 따위보다 '클론 전쟁' 자체에 포커스를 뒀다면, [에피소드 1·2]가 이리 허무하게 낭비되지 않았을 터, 무척 안타깝다.
하지만 2편의 숨은 장점은 비극의 단초인 ‘하마르티아(Hamartia)’를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 '하마르티아’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가다’ ‘길을 잃고 헤매다’이지만, 하마르티아는 주인공이 지닌 결함으로, 아나킨은 금혼 계율을 어기고 파드메와 결혼하고, 제다이답지 않게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 이것이 아나킨의 하마르티아다. 그의 판단 실수는 '비극'이라는 커다란 기계를 작동시킨다. 마치 브레이크 페달이 고장 나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 자동차의 결함처럼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2편의 빌드업이 있었기에 3편에서 극적으로 반등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EPISODE VI - RETURN OF THE JEDI, 1983)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처럼, 3부작을 마무리 짓는 일은 어렵다. [제다이의 귀환]은 전편 [제국의 역습]이 근사하게 던져놓았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지금까지 끌어온 시리즈의 결말을 내야 하는 힘겨운 미션이 남아있었다. 그럼 [스타워즈]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파우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동일하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어떻게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자신의 구원을 가능케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제다이의 귀환]라는 제목은 아나킨이 메피스토펠레스(팰 버틴)을 원자로에 던져버리며, 인간성을 회복하는 걸 의미한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아들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부자간의 화해가 이뤄진다. 여기서 그리스 비극과 [스타워즈]의 차이점이 발견한다. 그리스 비극은 신이 정한 운명론에 의존하지만, 팰버틴에게 끌려다니던 다스 베이더가 자신의 의지로 다시금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타락한 영웅이 스스로 선택해서 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바로 '포스의 균형'이다.
더욱이 6편은 분명히 4편 [새로운 희망]의 아이디어를 재탕하고, 인물 간의 갈등구조가 할리우드 영화답게 안전하다.
그것이야말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게 [배트맨 비긴즈]을 참고하라는 교훈으로 받아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제다이의 귀환]는 클래식 3부작이 남긴 수많은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무용담을 장중하고 우아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루크와 레아를 중심으로 레전드 확장 세계관(EU)이 진행되고, 팬들로 하여금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악당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뒤에 팬들의 소원은 마침내 이뤄진다.
#4 :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
드디어 디즈니 스타워즈가 재탕을 멈추고, [스타워즈]의 감춰진 이면을 파헤친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저항군 특공대들의 희생을 다룬다. 원래 [스타워즈] 자체가 제2차 대전 전쟁 영화들에게서 착안한 작품이었다. 은하제국 군복은 나치 독일과 매우 유사하며, 저항군은 연합 군을 연상시키지 않은가? [로그 원]은 한발 더 나아가 ‘레지스탕스‘의 이미지를 덧입힌다.
다시 말해 스타워즈 특유의 유치한 가족영화의 틀을 버리고, 본래 스타워즈 세계관에 지니고 있던 2차 대전 특공대를 내세운다. 그러면서도 [스타워즈 6부작]과 연결성을 중시한다. 무엇보다 가렛 에드워즈의 장단점이 다 발휘됐다. 무미건조한 캐릭터 구축과 초반부의 산만한 드라마가 아쉽지만, 스펙터클하게 규모를 살리는 연출이나 사실성을 강조한 서사구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요즘 미드 [만달로디안]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로그 원]과 동일하다. 기존 스타워즈 설정을 존중하면서도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참신한 시도가 병행되었다는 점이 성공 비결이다.
#3 :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EPISODE III - REVENGE OF THE SITH, 2005)
조지 루카스의 여전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선다. 아나킨은 한 개인이 막을 수 없는 불행이 연달아 닥치며 타락하게 되고, 공화국 역시 멸망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가지게 한다. [프리퀄 3부작]을 통해 ‘제다이 vs 시스’로 세계관이 확장하게 되면서 클래식 3부작의 ‘부자간의 골육상잔'은 수 천 년간 이어진 제다이와 시스의 대립 중 하나로 재정립한다.
시스 로드인 황제가 제다이 기사단의 '선택받은 자'를 회유하며 시스의 복수를 완성한다. 스타워즈 팬들은 아니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가 되는 결말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창시자가 새롭게 공개한 사실들에 놀람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승과 제자의 처절한 혈투는 물론이고, 요다가 황제 암살에 실패하면서 은거한다거나 오더 66에 의한 제다이 기사단이 몰락하고, C3P3와 R2D2가 기억을 잃는 과정, 오비완이 포스의 영이 되는 법을 요다에게 전수해준다거나 파드메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들쑥날쑥한 [프리퀄 3부작]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면서도 [클래식 3부작]에서 빠진 빈틈을 세심하게 메웠다.
또, 시리즈 최초의 배드 엔딩에도 불구하고, 라이트 세이버가 누군가에 전해지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서사와 액션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유일한 스타워즈 작품이며, 밝고 유쾌한 [클래식 3부작]과는 180도 다른 어둡고 진지한 [프리퀄 3부작]을 성공적으로 완결 지었다.
만약 ‘현자 다스 플레이거스의 비극’이 없었다면 9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의 황제 클론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될 만큼 확장 세계관과 캐릭터 정립에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2 :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EPISODE IV - A NEW HOPE, 1977)
대중문화를 영원히 바꾼 영화다. 처음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정의 내리고, '콘텐츠 산업'으로의 패러다임을 바꿔, 부가상품을 대중화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산업 역시 [스타워즈]를 기점으로 현실의 영역에서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국내에서 [스타워즈]가 유치하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러하다. 원래 조지 루카스가 어릴 적 즐겨본 코믹스 [플래시 고든], 구로사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 조지프 캠벨의 원형 신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동양의 '기(氣)' 개념을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포스 등의 철학적 우화, 전쟁영화, 갱스터, 호러, 뮤지컬, 서부극의 요소를 섞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이자 밝고 경쾌한 어드벤처 SF 영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복합장르 전략은 이후 영화 제작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스타워즈]는 조지프 캠벨의 원형 신화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칼로 총알(빔)을 막거나 우주가 배경인데 18세기 라인 배틀을 펼치는 광경이 의아할 것이다. 이는 시대와 문화권에 구애받지 않는 원형 신화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5편부터 '다스 베이더'를 그리스 비극처럼 그리면서 시리즈로써 환골탈태한다. 이때부터 할리우드 극작술에 '원형 신화'가 도입된다.
#1 :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1980)
루소 형제의 말마따나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이 관객의 예상과 기대를 배반한 용기는 [제국의 역습]에서 배웠다. 당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도대체 뭘 본 거지?" 싶었다고 한다. 악에게 패배한 주인공, 어긋난 로맨스, 새드 엔딩은 상업영화의 오래된 금기들이었다.
전편 [새로운 희망]이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완결성을 갖춘 반면에 [제국의 역습]은 어떻게 이야기를 확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선례로 여전히 남아있다. 스타워즈 9부작의 밑그림은 여기서 출발했다. 한편 팬들은 [새로운 희망]과 [제국의 역습] 사이의 설정 구멍을 메우며 [확장 세계관 (EU)]를 만들고 놀았다. 바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기원’인 것이다, 이것이 ‘스타워즈’를 신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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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울리는 올드팝 삽입 영화들
명장면 속 올드팝이 삽입된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3월 13일 개봉하는 <로봇드림> 과 함께 즐겨보아요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외롭게 살던 ‘도그’는 TV를 보다 홀린 듯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그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해수욕장에 놀러 간 ‘도그’와 ‘로봇’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데··· “기다려, 내가 꼭 다시 데리러 올게!”
[어바웃 타임] - Morten Harket - Can’t Take My Eyes Off You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radio head - creep
[로봇드림] earth, wind & fire - September
[아이 엠 샘] -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bonnie tyler - holding out for a hero
[킹스맨: 골든 서클] - John Denver - Take Me Home, Country 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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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당신의 단짝을 기억하는가?
나의 단짝을 떠올려본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공유한 타인. 별거 아닌 일에도 눈만 마주쳤다 하면 깔깔 웃곤 했던 그때. 유머 코드도, 대화도 잘 통했던 우리. 오랫동안 함께 하리라고 믿었던 어린 나. 번호조차 모를 미래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친구는 가끔 꿈에 나온다. 우리는 때로 화해를 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예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눈을 뜨는 순간 실제 같은 잔상은 빠르게 사라진다. 오묘하다. '오묘함'은 대체 어떤 감정인지 몰라서 어떻게 떨칠 수 있는지 모른다. 추억이 된 단짝과의 기억은 그렇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안생도 비슷한 아침을 보냈을까.
꼬꼬마 시절, 안생과 칠월은 같은 학교에 다녔다. 공통점이라곤 그거 하나인 것 같았다. 칠월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모범생의 길을 걸었다. 공부도 잘하고, 말썽도 안 피우고, 하라는 일은 착실히 해냈다. 안생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갔다. 성향이 상극인 두 사람은 종일 붙어있다시피 한다. 정반대여서 끌렸을까?
▶ 그래야만 하는 칠월, 그래도 되는 안생
안생과 칠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둘이 걷는 방향이 멀어진다. 안생은 공부 대신에 미용을 배우고, 칠월은 어려서부터 듣던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 둘의 마음은 멀어지지 않았다. 안생은 여전히 칠월의 가족처럼 식탁에 앉는다. 칠월은 조금 불만이다. 저에겐 타박만 하는 어머니가 안생을 다정하게 대한다.
태도뿐만 아니라 들려주는 말도 다르다. 칠월에게는 바른 삶을 이야기한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고, 그마저도 힘드니까 좋은 대학에 가서 적당한 때에 결혼을 해야 한다며. 칠월은 그 조언을 진리라고 믿었다. 한 번도 엇나가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안생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유분방함과 씩씩함, 복스럽게 먹는 모습 따위에 대한 칭찬만 들었다.
칠월은 친딸이고, 안생은 딸의 친구라서 하고 싶은 말이 달랐을까? 어쩌면 둘이 태생부터 다르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칠월은 얌전하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유약한 아이. 안생은 밝고, 쾌활하고, 재밌고, 흥이 많은 아이. 안생이 훔쳐온 귀걸이를 칠월의 어머니께 선물하자, 칠월은 도덕성에 어긋난 안생의 행동을 꼬집는다. 안생은 언젠가 갚을 생각으로 가져온 거라 훔친 게 아니라고 답한다. 칠월의 어머니가 사실을 알게 되면, 안생보다는 친구를 말리지 않은 칠월을 나무랄 것이다. 칠월을 '그래야 하는' 아이로 키워왔다.
안생은 곧 넓은 세계로 나가겠다며 고향을 떠난다. 칠월은 고향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킨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이제 꼭 해야 하는 공부는 끝났다. 앞으로 할 일을 직접 찾아야 한다. 호기심과 들뜸을 안고, 저마다 관심 있는 동아리 부스로 찾아가는 사람들. 칠월은 그 가운데에 우뚝 서 있다. 하고 싶다는 욕구를 품어본 것도, 그 욕구를 따라가 해소한 경험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결국 주어진 길로 돌아온다. 칠월은 목표했던 신문방송학과 대신 경제학과를 졸업해 은행원으로 취직한다. 스물일곱에 애인과 결혼하면, 적어도 가족이 말했던 여성에게 안정적인 길은 따라갈 수 있다. 안생은 긴 시간 세상 곳곳에서 칠월에게 편지를 쓴다. 매 편지마다 직업도, 머무는 장소도, 어울리는 사람도 다르다. 매일을 다르게 사는 안생은 문득 재미를 잃는다. 지친 것이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고향, 칠월에게 돌아간다.
▶ 나는 네 존재만큼 부족하다
둘은 상해로 여행 간다. 칠월은 처음으로 고향에서 벗어났다. 정해진 길을 충실히 산 덕에 여행자금이 풍족하다. 하루하루 사는 것에 족하던 안생은 돈이 없다. 안생의 안내로 낡은 여관으로 간 둘. 칠월은 자신이 돈을 내겠다며 고급 호텔로 데려간다. 식사를 하러 나온 둘. 안생은 칠월에게 제가 살아온 방식을 보여준다. 바텐더에게 술 10병을 팔면 자신에게 공짜로 1병을 주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시끌벅적한 테이블로 가 내기를 건다. 20초 안에 안생이 한 병을 다 마시면 추가로 10병 시키기로. 안생은 해낸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술병을 따는 안생. 잠시 머물렀던 테이블에서 두 남자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안생은 친구가 술을 못한다며 자연스레 거절하려고 한다. 칠월은 술잔을 단숨에 비운다. 당황한 안생, 다시 빌붙으려는 남자들을 융통성 있게 쫓아낸다. 상황을 가볍게 넘기려고 애써 농담을 붙이는 안생. 칠월은 날카롭게 받아친다. 감정은 말이 오갈수록 격해지고, 결국 안생의 언행이 저급하다고 깎아내린다. 안생도 지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칠월을 비꼰다. 상처만 남은 여행은 각자 찢어진 채로 끝난다.
안생에게 있는 것이 칠월에게 없고, 칠월에게 있는 것이 안생에게 없다. 전자는 자유로운 사고, 친화력, 추진력이고 후자는 따뜻한 가정, 안정적인 삶이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부러워한다. 성격과 가정환경은 후천적으로 창조할 수 없다. 절대 가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갖고 싶어 하고, 그것을 가진 이의 자랑에 자존심이 깎인다.
둘의 사이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칠월의 삶은 안생과 애인뿐이었다. 칠월이 가졌기에 안생은 가질 수 없는 사람, 칠월의 애인 가명. 오래전, 안생이 떠나기 전에 가명은 가장 소중한 목걸이를 안생에게 주었다. 둘의 이상한 분위기를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칠월은 모른 척했다. 둘 다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안생에게 뺏기기 싫었다. 안생을 다시 만난 칠월은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낸다. 칠월이 이전에 저급하다고 말했던 방식대로 안생을 공격한다.
느지막이 칠월은 깨닫는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서 가명과 결혼을 해도 행복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온전히 자신 뜻대로 무언가를 한 적도, 원한대로 된 적도 없었다. 칠월은 큰 결심을 단행한다. 가명에게 결혼식 날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신도 당당하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며. 그렇게, 둘의 사이는 끝났다. 고향을 벗어나 혼자 살아가던 칠월은 안생을 찾아간다. 부른 배를 안고서.
안생은 직장을 잡고, 결혼할 애인을 옆에 두고, 한 곳에 머문다. 예전의 칠월이 살던, 매일이 똑같은 삶이다. 칠월은 지난 일들을 털어놓으며 미움, 분노, 억울함까지 고백한다. 그리고 자유를 갈망한다. 안생처럼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도는 삶, 정해진 길이 없는 삶, 하고 싶은 것을 주저 없이 따르는 삶. 안생과 칠월은 서로의 인생을 바꾸기로 한다. 칠월의 아이는 안생이 맡고, 칠월은 생애 첫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 그래서 너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어
자유를 얻은 칠월은 안생의 흔적을 따라간다. 여관, 유람선, 바, 거리. 안생은 후에 가명을 만나 칠월의 이야기를 전한다. 가명은 안심한다. 하지만 안생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진다. 가명이 현실이라고 믿는 그 이야기는 사실 안생이 쓴 소설의 픽션 부분이었다. 칠월은 아이를 세상에 남기고 죽었다. 자유를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떠난 친구의 명복을 안생이 빌어주기로 한다. 적어도 소설 속 칠월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얼마든 머물 수 있고,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
누가 만든지도 모를 길을 견뎌내느라 지쳤을 칠월, 자유에 손 뻗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헐뜯던 칠월, 자유를 쉽게 얻은 안생을 미치도록 부러워했던 칠월. 신중하고, 겁 많고,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화재경보기를 장난으로 울리려고 한다. 안생은 경보기를 감싼 유리를 깨뜨리려고 돌멩이를 쥐었지만, 망설인다. 뒤에 있던 칠월이 안생의 손을 잡고 유리를 부쉈다. 스릴을 즐기고, 겁 없고, 장난기 많았던 칠월. 정해진 길을 걷기 위해서 제거해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안생이 그린 칠월의 자유로움은 칠월의 바람이 깃든 것만은 아니다. 잃어버린 칠월을 되찾은 이야기이다.
'너 자신을 알라'.
사회의 무수한 기준, 잣대, 평가에 나를 욱여넣던 지난날. 이제 뒤돌아 자신이 찍은 발자국을 살펴볼 시간이다. 내가 원했던 방향을 걷고 있는지, 이상과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래서 어떻게 할지. '나'에 관한 답을 만들어 갈수록 생각은 명확해지고, 길은 뚜렷해진다. 물론 어렵고 힘든 여정이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는 모두 네이버 영화입니다.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원작
도서 칠월과 안생
러닝타임
110분
감독
증국산
출연
주동우(안생 役), 마사순(칠월 役), 이정빈(가명 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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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기 위한 그녀들의 힘찬 발걸음
어떠한 문제를 일으켜도 주변의 사람들만 바뀔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관습을 바꾼 사건이 있었다. 30년 간 드러나지 않았던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 사실을 2017년 뉴욕 타임스가 보도하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미투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발화점이 되기도 했던 사건이었다.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현실을 '변화'의 흐름으로 만들어낸 그녀들의 목소리가 뜨겁게 담겨있는 영화 '그녀가 말했다'를 소개한다.
2016년 어느 날,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꼿꼿하게 살아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폭로가 시작됐다. 하지만 잇따른 폭로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침묵보다 더 무서운 무관심에 휩싸여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시간은 흐르고 바뀌지 않은 현실에 절망할 새도 없이 할리우드의 거물의 성범죄 사실을 취재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며 숱한 증언과 부족한 증거로 인해 난항을 겪게 되는데, 과연 두 기자의 취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할리우드 영화를 거치려면 그를 지나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명세와 영향력에 짓눌린 배우들은 그를 거절할 수 없었고 그를 거절한 배우들은 보복당하는 현실이 참담하기만 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벌어지는 비난도, 피해도 모두 피해자 몫이었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크게 목소리를 냈던 이들도 침묵보다 무서운 무관심을 경험했고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 또한 '침묵'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침묵하는 약자 앞에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강자는 '합의'라는 이름으로 그 상황을 마무리 짓고 또 다른 약자에게 손을 뻗친다.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길 바라며 묵인했던 피해 사실은 30년 간 감춰왔던 할리우드의 민낯이었으며 현실이었다. 그 현실 앞에 선 이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끊임없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렇게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도 끊임없이 범죄행위를 지속했던 이는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고 그 행위를 이어왔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하는 합의는 오직 자신을 위한 행위를 지속했던 이에게 큰 힘을 보탰다. 그 고통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던 이들이 폭력의 순응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눈을 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꺼이 자신의 상처를 헤집는 그 용기에 힘입어 그 목소리가 합쳐지는 순간,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그 뒤에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던 두 기자가 있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올바르고 정직한 저널리즘에 의해 더욱 도드라진다.
보통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은 감정에 치우쳐 객관적인 힘을 일어가곤 하지만 이 영화는 뭔가 좀 다르다. 자극적인 사실에 집중하기보다 객관적인 상황 전달에 무게를 두고 몰입감을 높인다. 말로써 전달되는 부분을 녹취록을 통해 보여주거나 실제 피해자를 등장시켜 더욱 현실감을 더한다. 영화를 '폭로'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고 '사실 전달'에 집중을 하며 이들의 진심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또한 피해 사실에 집중하면서도 자극적인 장면을 최소화하는 영화의 표현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비난에도 방향을 틀지 않고 꿋꿋하고 묵직한 그들의 발걸음이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전 세계 언어로 그녀가 말했다 라는 문장이 그려졌다 지워지는 장면을 끊임없이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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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을 찾기 위한 네 친구의 모험
*개봉 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십 대 시절을 지나면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부모과 가족의 영향을 받고, 더 크게 보면 국가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은 한국 부모 밑에 자란 한국 사람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정체성 인식과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가족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지 몰라도 국가적인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다가 다른 나라로 간 경우나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경우에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기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다른 나라인 미국으로 건너갔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일까. 아니면 미국 사람일까. 과거와 달리 다른 나라로 간 이민자들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그 이민자의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확립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이도저도 아닌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끝에, 결국에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찾아가게 된다.
아시아계 미국 입양인 오드리의 이야기
영화 <조이 라이드>는 어린 시절 미국 부모에게 입양된 오드리(애슐리 박)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 중국에서 미국 부모님에게 입양된다. 어린 시절에 우연히 만나게 된 중국계 이민자 가정의 롤로(셰리 콜라)는 오드리와 중국계 아시아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된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주변의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같이 이겨내고 의지하면서 성공적인 성장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의 학장시절의 주요 순간을 짧은 편집을 통해 보여주면서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시아계 미국인이로서 겪게 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그 모든 경험이 결국 그들을 어떤 어른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된 인물은 오드리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변호사가 된 그는 직장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알파걸이다. 그런 그는 상사로부터 중국에 있는 고객과의 계약을 따오라는 지시를 받고 친구 롤로와 함께 중국으로 향한다. 여기에는 롤로의 친척인 데드아이(사브리나 우)와 오드리의 대학 친구인 캣(스테파니 수)도 동행한다. 오드리의 중국 고객은 가족의 존재를 강조하며 며칠 뒤에 있을 파티에 오드리의 엄마와 같이 참석하라는 요구를 하게 되고, 그 일이 실행되었을 때 계약서에 서명을 하겠다는 답을 듣게 된다.
하지만 오드리는 아주 어린 시절에 입양되어 생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때부터 오드리와 세 친구들은 오드리가 입양될 때 관여된 입양기관에 찾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생모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가 보여주는 네 친구의 여정은 무척 경쾌하다. 영화는 입양 기관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중국과 한국, 미국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코믹한 설정과 약간의 성적인 코드를 이용한 웃음코드가 오드리의 무거운 상황을 희석시킨다. 또한 그들이 중국의 문화나 분위기를 관찰하고 본인들이 끌리는 이성과 어울리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도 다른 인종과 관계없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도 보여둔다.
네 아시아계 미국인의 로드무비
이들은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다. 그중에서 오드리는 입양되어 진짜 부모를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그동안 무시했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인 다른 친구들보다 더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미국인 부모 밑에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오드리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가 중국의 문화나 한국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끼는 모습에선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이 드러나게 된다.
오드리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오드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는 확고하게 알고 있다. 중국에 친척이 있고 중국어도 꽤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드리는 중국어를 하지 못하고,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도 낮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그의 부모가 어떤 모습일지, 그 부모를 만난 오드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의 전반부는 미국에서, 중반부는 중국에서, 후반부는 한국에서 진행된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는데, 미국에서의 오드리는 그야말로 미국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가 중국으로 넘어가 중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인의 사고와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가 느끼는 친근함 때문인지 중반부의 친구들은 모두 마음이 한없이 풀어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그러다 한국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오드리의 생모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면서 중국 친구들과의 갈등이 심화된다. 그렇게 나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후반부에서의 오드리는 한국인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오드리가 느끼는 정체성이 변화할 때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변하고, 그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찾은 이후에 그 모든 혼란은 정리된다. 영화 <조이 라이드>는 그런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오드리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편으로 영화 중반부에 포함된 성인 코미디 장면이 조금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면서 여성인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고 행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의 당당함이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오드리의 정체성에 따라 변하는 친구들과의 관계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네 친구가 파리로 함께 여행을 가서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 마지막 식사가 인상적이다.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중식과 한식 요리를 먹으며 한국 맥주와 소주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각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자신만의 정체성을 언제든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인종과 국가가 뒤섞여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정체성을 알고 드러내면서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아델 림 감독은 과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각본을 썼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아시아계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를 계속 작업해 온 것이다. 자신도 경험했을 정체성의 혼란을 영화 <조이 라이드>에 그대로 담았고, 그 혼란을 우울하게만 보여주지 않고 경쾌한 코믹 로드무비 형태로 설정하여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오드리 역을 맡은 애슐리 박은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으며, 캣 역의 스테파니 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주연을 맡았었다. 이 두 배우를 포함해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롤로 역의 셰리 콜라와 데드아이 역의 사브리나 우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시안계 미국인 네 명이 주연을 맡아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점이 영화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영화 속 오드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을 생모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만다. 영화에서 그가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과 발견 이후의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미국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조이 라이드>는 다양한 웃음코드를 보여주고 있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따뜻하고 경쾌한 영화다.
*본 포스팅은 배급사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의 스틸컷은 [배급사]로부터 전달받았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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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비할수록 채워지는 이상한 마법을 손끝으로 느껴본다면
※영화 〈시티 라이트〉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한 남자가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낡고 펑퍼짐한 양복과 맞지 않는 모자, 지팡이뿐인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길모퉁이에서 꽃을 팔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에게 부토니에를 사려했을 때 남자는 알게 되었다. 소녀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깐의 만남 이후 그는 길 위의 삶을 그만두기로 한다. 대신 자신을 위해 웃어주는 한 사람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는다.
20세기 문화예술을 말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되는 최고의 예술가이자 감독, 제작자 찰리 채플린의 영화 〈시티 라이트〉는 사랑에 빠진 눈먼 소녀를 지키기 위해 가난한 남자가 벌이는 고군분투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로맨스 장르에는 언제나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이는 중세 기사도 문학인 ‘로망스’부터 시작되었다. 기사와 귀부인이라는 계급과 신분의 차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플라토닉 사랑을 자아낸다. 닿지 못하는 사랑의 결실은 곧 귀족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수호하는 매뉴얼이 된다. 명예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겸손하고 금욕적인 기사도의 원형은 당대의 사회 질서를 지배했다. 이후 로망스가 로맨스 소설로 변화하면서 ‘낭만적 사랑’의 서사가 등장하고, 현대에 와서는 사라진 신분과 계급 대신 다양한 심리적, 물질적 장애물로 세분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가로막은 집안과 신분을 지난 현대의 작가는 사장과 평직원, 북한의 장교와 남한의 유명 배우, 심지어는 도깨비와 인간 사이의 장애물까지 만들어낸다. 독자, 시청자, 또는 관객은 이 미끄러지는 위치와 관계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격차로 발생하는 오해와 편견, 이별과 재회에 이목을 집중한다. 하지만 로맨스 장르의 또 다른 특징은 독자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사랑과 이별에 갈등하고 위기를 맞는 이들은 결국 절대적인 사랑의 힘이라는 우연 혹은 필연으로 재회하고, 행복한 결말을 이룬다. 롤러코스터처럼 종잡을 수 없는 갈등의 연속에도 이미 독자는 이 바람 잘 날 없는 사랑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품는다. 독자는 로맨스 안에서 현실과 다른 환상적 사랑의 결실을 바라기 때문이다.
과거의 로맨스는 주로 우월적 지위의 완벽한 남성이, 그보다 낮은 지위의 선량하지만 수동적인 여자 주인공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드라마였다. 이는 현대의 로맨스 장르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법칙이다. 다만 그 안에서 여러 설정과 관계성의 변주를 준다. 앞서 언급했던 도깨비와 인간의 사랑처럼 믿을 수 없는 능력의 탈인간을 남자 주인공으로 설정하거나,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근대의 조선 양반집 여성과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한국계 미국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로맨스 장르에서 특징 중 하나는 한쪽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의 결핍이 서로 마주하며 성장해 동등한 지위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여성 캐릭터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이제 로맨스의 여성은 과거의 인습에 따라 ‘도덕적 미덕’을 구현하는 존재로 남아있지 않다.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정확히 인식하고 주체적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무조건 선량하거나 씩씩한 캐릭터도 아니다. 좌절과 절망, 탐욕과 부정을 숨기지 않기도 하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거침없이 행동한다. 과거 남성과 여성의 구도가 전복되기도 하며 미스터리, 공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확장된 장르의 변용과 해체도 이루어진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현실적 인식과 다양성의 확장이 맞물린 로맨스의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연대와 성장의 길로 함께 들어서는 관계가 된다.
〈시티 라이트〉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마법에 빠진 것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 무조건적 선의와 환대의 가치는 유성 영화의 시대에 들어선 1930년대를 마주 선 찰리 채플린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연결된다. 찰리 채플린이 연기하는 남자는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단벌 신사다. 평소처럼 길을 걷다 첫눈에 반한 소녀는 소리만 듣고 우연히도 고급 자동차에서 나오는 부유한 남자와 그를 착각한다. 남자는 당황하지만 소녀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집도 절도 없는 사정은 본인도 마찬가지기에 여느 때처럼 방황하며 고민을 하던 중 강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한 남성을 구한다. 그는 이 도시의 백만장자였고, 목숨을 살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찰리 채플린을 금세 친구로 사귀고 집으로 초대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술을 즐기는 이 백만장자는 찰리의 여러 사정을 묻지 않고 통 크게 그를 환대한다. 소녀를 돕기 위해 돈을 건네주기도 하고, 잠자리도 제공해 주는 등 선의를 베풀어 준다. 불의의 사고로 그와의 기억을 잃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성영화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1930년대 음향 기술의 도입에 반기를 들었던 그는 사회의 부조리에도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부의 불평등과 인간의 가치 하락을 꼬집는 블랙 코미디로써 영화는 사회의 약자들에게 가닿을 수 없는 도시의 불빛에 휘청거리는 소시민을 연기한다. 소녀의 집세와 개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얻으려 했던 그의 노력은 안타까움 속에 담긴 익살스러운 슬랩스틱에 담겨 웃음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자아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 보려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 신세가 되어서야 소녀에게 돈을 쥐여줄 수 있던 그의 마음은 오로지 한 곳으로 향한다. 자신도 변변치 않은 현실에도 소녀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일대기는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의 무성영화가 주는 그 울림과 가치를 고집스럽게 지켜내려는 감독 찰리 채플린의 심정과 닮았다.
이 영화를 말할 때 헬렌 켈러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찰리 채플린과 그의 짧은 만남은 영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찰리 채플린과 헬렌 켈러는 국가의 억압과 독선에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대중과 미디어에 비치는 헬렌 켈러는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딛고 삶을 이어 온 투혼의 인물’ 정도였다. 모두가 행복한 동화 속 헬렌 켈러의 삶은 그의 스승 설리번 선생님과의 유대관계와 우정, 박애와 사랑의 성녀, 그 정도뿐이다. 정말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철저히 가려지고 윤색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헬렌 켈러는 서른 살까지의 인생까지다. 알려지지 않은 그는 공산주의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였고, 1900년대 초반 미국 사회당에 입당해 여성과 노동자, 유색인종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싸웠다. 여러 신문의 칼럼과 저서로 부정의한 사회로부터 투쟁해 온 헬렌을 보며 사람들은 그가 장애인과 사회복지 운동 외의 다른 운동에 투신하는 것을 싫어했다. 대중이 정해놓은 성스러운 이미지로 ‘숭배’ 해야 하는 ‘천사’가 정치 세력에 옮아 ‘불순한’ 사회운동을 하다니. 견디지 못한 언론은 그를 향해 십자포화를 날렸다. 장애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을 과거에는 ‘삼중 장애의 역경을 딛고 세상에 나온 영웅’으로 추앙했지만 비난의 대상이 된 이후 ‘세상 물정 모르는 장애 여성의 치기’로 격하한 언론의 이중성은 극에 달했다. 장애를 단지 극복해야 할 비정상적 양태로 바라본 편협한 시각은 등을 돌렸을 때 더욱 모진 차별과 비난의 무기로 활용되었다.
찰리 채플린도 같은 곤경에 처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과 빈곤의 굴레를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한 그의 영화는 냉전 시대의 광풍 앞에 ‘공산주의적 선동’으로 몰린다. 소아성애자라는 근거 없는 가짜 뉴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그는 결국 미국을 떠나 이민을 간다. 여성이자 장애인으로 사회의 진보를 위해 투신했던 헬렌의 삶에 감명을 받은 찰리는 〈시티 라이트〉에서 도시의 불빛을 볼 수 없던, 아니 도시의 따가운 시선에 가려진 한 소녀가 선한 의지와 노력으로 결국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만든다.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사적으로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영화 줄곧 원경에서 시민들의 군상, 그 안의 찰리 채플린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던 카메라는 눈을 뜬 소녀가 그의 얼굴이 아닌 손끝으로 남자를 알아보는 장면에서 또렷이 서로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관객은 무조건적 희생과 사랑의 연대라는, 자본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던 가치를 묵묵히 이어나간 끝에 마침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는 두 사람의 표정을 만난다. 고난 끝에 찾아온 행복이 현실이 되기 바라는 감독의 간절함은 참고 참다 마지막에 드디어 시선을 가까이 두는 탁월한 완급조절로 드러난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 의미를 전혀 알 수도 없는 ‘평화와 번영’ 동상 위에서 대범하게 잠을 청하는 유쾌하고 날카로운 찰리 채플린의 시선은 이렇듯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마음을 울리는 직접적인 메시지로 표출한다.
우리는 사랑과 연대가 가진 힘을 알고 있다. 저 큰 도시 한 구석에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동상 하나 세운다고 그 가치는 실현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몸부림이겠지만, 자신의 곤궁함을 받아들이면서 한 인간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몸이 오히려 가장 시대의 변화를 추동하는 상징으로 내세울 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상이 아닌 행동이다. 우리의 진가는 사회에 겉돌고 외면받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지난달부터 우리는 서아시아의 한 나라가 무너지는 장면을 바라봤다. 한순간에 억압의 과거로 퇴보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타인을 포용할 만큼 충분히 밝은 도시의 불빛에 비해 비좁은 시민들의 인식은 여러 이유를 들어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만다. 사회에 내 집 하나 없이 무시당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해학을 담아 웃음과 눈물을 만든 찰리 채플린은 영화 내내 웃지도 않고 전 세계의 관객을 웃겼다. 어쩌면 우리는 난민과 이주민을 카메라 뒤편에서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닫힌 우리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꺼이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줌을 당겨 그들을 만나고 손을 잡는 것이다. 다정함은 세상을 구한다. 그래야 절망 앞에 웃을 수 있고, 선의지를 담은 표정으로 타인을 반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마침내 행복을 찾은 남자의 이름은 리틀 트램프, 작은 방랑자이다.
※ 이 글은 파랑달의 브런치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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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의 보디가드 2 영화 후기 /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잭슨의 티키타카 / 난무하는 f*** 욕설 / 사방에 튀는 핏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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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연인과 엉망진창인 이별을 겪은 앤디 에스코베도는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LA로 이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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