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작가2022-10-17 12:41:15
원하는 일에는 꼭 이유가 없어도 돼
디즈니플러스 [메리다와 마법의 숲] 리뷰
줄거리
깊은 전통을 가진 스코틀랜드의 연합 부족 던브로크. 퍼거스와 엘리노어 사이에서 난 첫째 공주 '메리다'. 빨갛게 타오르는 천연 곱슬모를 가진 메리다는 어릴 적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다. 퍼거스는 그런 딸에게 활을 선물하기도 했지만, 왕비인 엘리노어는 메리다가 철저히 운명을 받아들여 공주로 살길 원한다.
메리다의 나이가 차자, 엘리노어는 다른 연합 부족과의 결혼을 서두른다. 자신들의 첫째를 메리다와 결혼시키기 위해 던브로크에 모인 '맥킨토시', '딩월', '맥거핀' 부족. 메리다는 그들보다 뛰어난 활쏘기 솜씨를 선보이며 결혼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다가 결국 엘리노어와 싸우게 된다.
성을 뛰쳐나간 메리다는 숲에서 자신을 이끄는 도깨비불을 따라갔다가 마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녀는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를 마녀에게 건네며, 엄마와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마법을 요구한다. 마녀는 작은 케이크 하나를 건네고, 성에 돌아온 메리다는 그것을 엘리노어에게 건넨다. 그러자 갑자기 엘리노어가 곰으로 변했다?
감상 포인트
1. (개인적이지만) 영어 발음이 쫜득쫜득하고 재밌어서 좋았다.
2. 메리다와 엘리노어가 함께 성장한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
3. 무난하게 볼만한 가족 애니메이션.
감상평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정해진 대로, 주어진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이 이끄는 대로 운명을 만들어가라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에서 영어 원제목은 [Brave]라고 할 수 있겠다.
메리다는 디즈니에서 만든 여타 공주들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데 반해, 메리다는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싫다고 완강하게 거부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메리다는 그저 사춘기 반항 청소년에 불과하다는 혹독한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메리다가 자신이 싫은 것을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싫은 것에 'NO'라고 얼마나 완강하게 말할 수 있었던가?
우리는 'YES'만을 강요당했던 세상에서 이제 거절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메리다가 무엇을 할지, 활이나 쏘고 말이나 타면서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갈피가 안 잡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일평생 하고 살 거란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천천히 살아가며 그것들을 누리고 즐기면 된다. 그러니 메리다가 '대체 뭐해 먹고 살 건지'를 우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메리다는 목표의식이나 책임감은 없지만, 일단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용기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무언가를 책임져야만 성공한 삶은 아니다.
나 한 사람만 만족시켜도 충분히 성공했다는 것을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메리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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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 영화 모음 (feat_서울 국제 도서전)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서울 국제 도서전이 개최되었습니다 (2023.06.14 ~2023.06.18)
작가를 다룬 영화들 또한 많은데요 오늘 씨네랩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 영화 모음'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작가의 일생, 생각, 집필의 열정을 엿볼수 있는데요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디 아워스
The Hours
개요: 드라마 | 미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니콜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스트립
개봉: 2003.02.21.
배급: 시네마서비스
시놉시스
영국 리치몬드 교외, 미국 LA, 미국 뉴욕의 세 여인들의 단 하루동안의 이야기이다.
세 가지 이야기는 겉으로는 모두 다른 듯 보이지만, 주인공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어떤 이미지로든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세월을 살고 있다.
CINEPICK
[자기만의 방]의 저자 버지니아 울프
〈디 아워스〉는 〈댈러웨이 부인〉,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지닌 성 정체성을 매개로 소설가인 버지니아, 독자인 로라, 그리고 로라의 아들을 사랑한 클라리사의 하루를 시공을 넘나들며 얽어나간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은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느낄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무기력함과 번뇌를 통찰하고 있으며, 그 운명을 벗어나고자 할 때 책임져야 할 또 다른 삶의 무게들을 보여준다.세 여배우 모두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공동수상을 안겨준 작품이며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한 니콜키드먼은 불안하고 예민한 버지니아 울프의 내면을 완벽히 표현해냈다.
호밀밭의 반항아
Rebel im the Rye
개요: 드라마 | 미국
감독: 대니 스트롱
출연: 니콜라스 홀트, 조이도이치, 사라폴슨
개봉: 2018.10.18.
배급: ㈜트리플픽쳐스
시놉시스
대학에서 쫓겨나고 방황하던 아웃사이더 제리 샐린저는 모두가 선망하는 사교계의 스타 우나 오닐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유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출판사의 끊임 없는 거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설을 쓰던 그에게 기존의 문학계를 발칵 뒤집을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 그대로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CINEPICK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JD.샐린저
본인이 경험했던 경험으로 글을 쓰는 제리.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것 조차 힘들어했던 제리는 세계 2차대전이후 날카롭고 서늘한 깊이있는 문체로 변화하게된다. 삶과 글이 연동되어있는 이 영화는 당대 시대와 작가 JD.샐린저 의 삶을 반영한다.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개요: 코미디, 멜로 | 미국, 스페인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오웬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맥아담스
개봉: 2012.07.05.
배급: (주)엔케이컨텐츠
시놉시스
약혼자 '이네즈'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되고 그곳에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 날 이후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난 '길'은 평소에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매혹적인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CINEPICK
[노인과 바다]의 저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없지" 위 영화의 헤밍웨이 대사처럼 헤밍웨이의 책에대한 열정을 잠시나마 엿 볼 수 있는 작품. 헤밍웨이 뿐만아니라 당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살바도르달리, F.스콧피트 제럴드, 파블로 피카소, 에드가 드가, 폴 고갱등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콜레트
Colette
개요: 드라마 | 미국
감독: 워시 웨스트 모어랜드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도미닉 웨스트
개봉: 2019.03.27
배급: (주)NEW, ㈜팬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프랑스 생 소뵈르 작은 마을의 소녀 콜레트 바람둥이 소설 편집자 윌리와 사랑에 빠져 파리에 왔지만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다 파리의 콧대 높은 사교계와 화려하기만 한 물랑루즈에 지쳐갈 무렵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윌리의 부탁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인 소설을 쓰게 된다 콜레트의 소설은 남편의 이름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급기야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딴 브랜드까지 런칭, 모든 상품들을 완판시키며 신드롬을 일으킨다 패션, 헤어스타일까지 유행을 이끌며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되지만 모든 성공과 명예는 남편 윌리에게 돌아간다 남편 뒤에 숨어있던 콜레트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로 결심하는데…
CINEPICK
[파리의 클로딘]의 저자 콜레트
시골의 평범한 부인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과정을 담은 작품.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롤링은 자신의 롤모델로 ‘콜레트’를 꼽으며 그녀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영감을 주는 아이콘임을 입증시켰다. 2019년 영화 <콜레트>를 통해 스크린에서 만날 ‘콜레트’의 이야기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격정적이며 치열한 순간이었던 [클로딘] 시리즈의 집필과 출간,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을 그리며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물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지니어스
Genius
개요: 드라마 | 영국, 미국
감독: 마이클 그랜디지
출연: 콜린퍼스, 주드로, 니콜키드먼
개봉: 2017.04.13.
배급: (주)라이크 콘텐츠
시놉시스
1929년 뉴욕. 유력 출판사 스크라이브너스의 최고 실력자 ‘퍼킨스’는 우연히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작가 ‘울프’의 원고를 읽게 된다. 방대하지만 소용돌이와 같은 문체를 가진 그의 필력에 반한 ‘퍼킨스’는 ‘울프’에게 출판을 제안한다. 서정적이고 세련된 ‘울프’의 감성에 냉철하고 완벽주의적인 ‘퍼킨스’의 열정이 더해져 탄생한 데뷔작 [천사여, 고향을 보라]는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또 하나의 천재 작가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성공 이후에도 ‘울프’는 쏟아지는 영감과 엄청난 창작열로 5,000 페이지에 달하는 두 번째 원고를 탈고해 ‘퍼킨스’에게 건네고 이들은 다시 한번 오랜 편집 과정에 돌입한다.
CINEPICK
[천사여,고향을 돌아보라] 저자 토머스 울프
<지니어스>는 완벽주의 편집자 ‘퍼킨스’와 전설이 된 천재 작가 ‘울프’의 강렬한 관계와 각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는 만큼 흡입력 있는 각본과 인물, 캐릭터를 표현하는 연기력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핵심 되었다. 내성적이고 절제되어 있는 성격의 ‘퍼킨스’와 달리 열정적이고 돌진하는 에너지를 가진 ‘울프’의 세계는 자주 충돌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히려 짜릿한 전율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마치 두 사람이 눈앞에 살아 숨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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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 막시모프가 내 시간을 없애버렸어
그토록 기다리던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팔콘 앤 윈터 솔저>나 <로키>가 한창 방영중일 때 국제적으로 들려오는 평판만 확인할 정도였는데 실제로 볼 수 있게 됐으니 완전히 감개무량이다. 나는 사실 이 <완다비전>이 너무 궁금해서 나무위키로 슬쩍 읽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개봉했던 영화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이나 <블랙 위도우>와는 다르게 인물의 깊은 내면묘사가 이뤄져 알고 봐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아마 직접 보면 알 것이다. 내면묘사가 단순히 인물의 양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꼭 가져야 할 연출 지점과 어우러져 신기했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루는 글로벌 드라마답다.
주연은 두 명이다. 아이언 맨이 만든 똑똑한 AI 비전과 하이드라가 만들어낸 초능력자 완다(스칼렛 위치)다. 이 둘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만든 커플로 깊은 사랑에 빠졌다. 배우 둘이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올슨과 폴 베타니는 MCU의 히어로들 중에서 제일 몰입이 필요한 역할일 텐데 이번에도 무난하게 각자의 롤을 잘 소화해냈다. 나는 초능력자가 된다던가 AI가 된다던가 하는 생각을 단 1분도 해본 적이 없다. 근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 답게 어떻게든 하는 걸 보면 역시 프로는 다른가보다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엘리자베스 올슨 진짜 예쁜 것 같다. 같이 나오는 캣 데닝스도 물론 예쁘다. 근데 엘리자베스 올슨은 고상하게 아름답다. 심지어 연기까지 잘한다.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랑스러움부터 연이은 좌절로 인한 어두운 내면까지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내가 배우면 이렇게 멋있게 연출해놓은 판 안에서 연기할 맛 날 것 같다. 또 폴 베타니 목소리 너무 섹시하다. 얼굴도 잘생겼다. AI 의상에선 몰랐는데 과거 미국에서 유행했던 코디를 입혀놓으니 '와 진짜 멋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튼 드라마는 배우들의 호연과 깔끔한 색감, 또 과거 미국 드라마들에 대한 오마주까지 아다리가 맞아떨어지는 삼박자 연출로 깔끔하게 잘 뽑혔다. 나는 이 장점들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드라마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단순히 마블 팬이라서 재미있는 작품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1. MCU 정주행, 필요한가요?
네!!!!!!!!!!!!!!!!!!!!!!!!!!!!!!!!!!!!!!!!!!!!!!!!!!!!!!!!!!!!!!!!!!!!!!!!!!!!!!!!!!!!!!!!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
- 이 이하부터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들, MCU 정주행하고 옵시다 -
2. 앞으로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작품인가요?
일단 이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할 정도라면 인류 반이 날아갔었다는 극의 설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타노스는 생명체 반을 날리기 위한 준비물을 모두 구하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인피니티 워>에서 그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전이 갖고 있던 마인드 스톤이 뽑히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가 죽게 된다. 결과적으로 어벤저스는 타노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완다 역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멘토 스티브 로저스와 나타샤 로마노프까지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다. 가족, 친구, 사랑 모든 걸 다 잃은 완다. 그녀에게 기댈 곳이라곤 단 1도 없다. 그런데 드라마 1화부터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비전이 살아서 완다와 함께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아니, 비전 죽은 거 아냐? 와 아니, 갑자기 느닷없이 평범한 시트콤이 되어버린다고? 다. 이 두 가지가 이 드라마의 기본 설정이다. 작품은 이 두 가지의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해주며 왜 주인공 둘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완다에게 비전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이는 곧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로키>와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에서 다룰 '멀티버스' 세계관이 열렸던 개연성을 보여준다. - 아, 이것을 설명해주는 건 스포일러가 아니다. 왜냐면 케빈 파이기가 완다비전이 멀티버스랑 관련 있다고 오피셜을 내렸기 때문이다. - 또한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하는 듯한 암시도 있었으니 MCU의 팬이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셈이다. 아, 포스터에도 나오듯 완다 막시모프라는 인물이 '히어로냐 빌런이냐'의 양자택일 안에서 어떤 선택을 고르는 지도 굉장히 중요하니 새로운 안티 히어로의 등장을 지켜본다는 점에서도 볼 이유가 분명하다. 아, <앤트맨>에서 나왔던 지미 우와 <캡틴 마블>에서의 모니카 램보, <토르 : 천둥의 신>에서의 달시 루이스, <엑스맨>의 피에트로도 나오니 마블의 팬들은 즐겁게 보기 좋을 것 같다.
3. '빌런 혹은 히어로'? 갑자기?
'완다가 빌런이냐 히어로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고?'라고 포스터를 보고 의문점이 들 수 있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아니 한번 히어로면 영원한 히어로지 빌런이 된다고? 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의문점은 내가 지극히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완다비전>까지 오기 전, 그녀의 처지를 살펴보자. 주인공이 사랑했던 인물들이 자기 의사랑 상관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험상 이럴 땐 누군가의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막상 아무도 없으니 그녀가 감당하기엔 슬픔은 너무 컸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그녀의 처지를 복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데 드라마는 그녀의 섬세한 내면묘사를 바탕으로 이 인물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공감하게 만든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로 남을지. 강한 내면을 되찾음으로써 그녀의 자아를 다른 쪽으로 비틀지, 드라마는 철저한 미스터리로 우리들의 시간을 없애버린다. 결국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인물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4. 이야기의 완성도는 어떤가요?
일단 1회독을 끝낸 지금 생각해 보니 딱히 구멍은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색감이 은근히 좋아서 이야기에 몰입하기 좋다. 또 도입 3화까지 살짝 지루한 구석이 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그게 플롯의 누수때문이 아니라 천천히 내용을 만들어 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5번에서도 썼지만 빌런에게 읭? 싶은 구석이 있긴 하다. 근데 보기에 페널티가 있고 이런 건 아니다.
5. 빌런의 묘사는 어떠한가요?
기존에 마블의 빌런들을 돌이켜 봤을 때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만다린,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의 벌처가 생각난다. 전자는 담당 배우의 엄청난 카리스마가 만든 느낌이 강하고 후자는 생활밀착형 빌런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쉬웠다. 이 <완다비전>에서의 빌런은 이들과 살짝 다른 맥락이다. 이 빌런(들)은 엄브릿지형으로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재수가 없다. 또한 밑도 끝도 없는데 인물의 성격 자체가 그럴 법해서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의 지모 대령의 정확히 반대 기능을 하는 악역인 셈이다. 현실에 저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거나 직장상사거나 후배면 진심으로 싫을 것 같다. 이런 가까이 가기 싫은 캐릭터를 잘 묘사해 나름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6. 다른 히어로의 탄생? 무슨 뜻인가요?
이는 3번의 질문과도 이어진다. 완다는 앞으로 히어로가 될지 빌런이 될지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이 인물이 후의 MCU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가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꼼꼼히 지켜보면 알 수 있다. MCU의 방향성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새로운 능력자와 함께 지켜보도록 하자.
7. 고전 미국 시트콤을 오마주 했다던데?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떤 드라마를 본떠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시트콤에 대한 오마주가 이 극에서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무조건. 오마주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작품을 위한 오마주가 된 것이다. 또한 이런 연출 방식이 드라마의 호러, 스릴러 향 첨가에 도움을 준다. 기존에 장르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다른 재미요소가 될 것이다. MCU의 작품이 평단에서 호평받았던 경우가 드문 걸로 아는데 이 작품은 이 지점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8. 액션 맛집 마블, 이번에도 닉값 하나요?
액션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한 화에만 나오는 정도? 두 주인공 폴 베타니와 엘리자베스 올슨이 워낙 연기를 잘했고 CG도 매끄럽게 잘 뽑아서 극을 이끄는 흡입력이 좋다. 굳이 액션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액션의 퀄리티가 별로냐? 난 좋았다. 등장인물의 특색들을 잘 살렸다.
4.5/5.0
강력추천!
디즈니 플러스를 처음 구독한 분들이라면 부담없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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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액션은 어디로 갔는가?
드니 빌뇌브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느낌을 매우 좋아한다. <컨택트>와 <시카리오> 등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미장센, 대사 없이 많은 설명을 담는 능력, 진중한 메시지 등 헐리우드의 젊은 3대 천재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만든 <듄> 시리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감독인 한스짐머까지 합류해 기대가 컸고, 많은 유명한 SF에 영향을 준 이야기답게 무게감 있고 멋지게 담아냈다. 그리고 이번 <듄: part2>는 마치 20년 전 유행하던 블록버스터 트릴로지 무비들-<스파이더맨>, <엑스맨>,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의 2편처럼 1편보다 더 광대하고 박진감 있다.
그러나 2편에도 여러 가지 단점들이 존재했다. 1편에서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살라메)의 고난과 역경을 다루었다면, 2편은 그가 안티메시아로써의 도약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가득 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에서는 액션의 서사나 성장이 아주 부족하거나 거의 보이지 않아, 어떤 이들은 지루함을 느낄 정도다. 영화의 완성도가 훌륭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액션 매니아의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워서, <듄: part 2>를 액션 영화의 관점으로 다뤄보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캐릭터성이 사라진 액션
액션 영화에서 무술은 한 인물의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가문,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듄: part 2>에서는 게릴라전을 하는 프레멘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징 있는 무술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액션에 캐릭터가 없다.
간단한 예를 들면, 마블의 <어벤저스>는 이런 캐릭터 액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 걸로 유명하다. 캡틴 아메리카와 블랙 위도우가 시대적으로 다른 사람이라 총 파지법이 다르다던지, 토르와 로키 등 아스가르드인들은 쓰는 무술이나 준비자세가 같다던지 하는 식으로. <샹치>와 같은 중국식 무협에서는 캐릭터의 인생철학이 캐릭터가 쓰는 무술에 담겨있고, 싸우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무술의 합으로 표현했다.
<듄: part 2>에서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하며 공포스러운 존재인 황실친위대 사다우카가 황제 옆에서 칼을 들고 있는 모습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마지막 선을 지키던 공작 친위대가 칼을 든 모습은 서양 롱소드 검술로, 둘 구분이 거의 가지 않는다. 가문 성격이 완전히 다른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도 무술 동작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액션을 잘 짠다는 것은 단순히 합을 잘 짜는 걸 말하지 않는다. 의상, 외모, 대사 등 캐릭터를 대비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한 것 치고 액션의 캐릭터성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단 얘기다. 다만, 1편에서 처음 폴이 액션을 배울 때 했던 실수 - 목을 겨누느라 배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을 그대로 이용해서, 그보다 성장한 마무리는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서 무술을 배운 것처럼 단조롭다.
프레멘의 무술은 단도를 주로 사용하고, 몰래 빠르게 움직여 죽이는 암살과 게릴라전에 특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군용 무술보단 잠입암살 무술인 닌자에 더 가깝고, 그 부분은 프레멘의 특징을 잘 살려서 좋다. 그러나 이는 폴이 배운 '펜싱 자세를 기본으로 한 검술'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렇다면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행을 할 때 무술을 배우는 장면도 있어야 했다. 물론 1편에서 무술수련을 할 때 이미 다양한 무기들로 수련을 해온 설정이 어렴풋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실제와 자료로 보고 배운 건 다르다. 영화에서는 '사막 걸음'을 프레멘인 챠니가 제대로 된 걸로 다시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액션에서도 필요했다.
그리고 폴이 하는 검술의 펜싱자세는 다른 무술과 달리 주손 주발이 앞으로 나와있는 오소독스 자세다. 그 이유는 긴 칼로 빠르게 찌르고 빠지기 위함인데, 단도를 들고 육탄전을 감안해 싸우는 <듄> 세계의 특성상 잘 맞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준비 자세만 펜싱 자세고, 싸울 땐 그냥 군용 무술이다. 즉 '귀족'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준비자세만 멋으로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액션을 죽이는 잘못된 무기들
라반은 채찍을 사용하는데, 이게 그의 캐릭터가 말랑해지는 데 한몫했다. 채찍이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고, 그 큰 덩치에 조그만 채찍을 꺼내드는 모습은 조금 코믹하다. 페이드 로타는 칼을 두 개 든 이도류지만, 액션이 그의 캐릭터성을 나타내기엔 평범했다. 그 이유도 무기 때문이다. 페이드 로타의 검은 앞이 길고 내려앉은, '정글도'로 잘 알려진 마테체의 한 형태다. 정글도는 원래 도끼와 단검의 중간 형태로, 정글에서 생존용으로 쓰는 칼이다. 실제 무기로도 자주 쓰이지만, 날 앞쪽에 무게중심이 있고 손잡이 위에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어서 가까이에서 찌르기에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마테체는 오히려 덩굴을 베듯 도끼처럼 내려찍는 무기다. 그런데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일반 백병전 단검술이다. 그러니 동작이 둔해지고,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오히려 예리한 단검술보단 위협적으로 내리찍는 무술을 했다면 더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레멘의 무기, 크리스나이프도 그렇다. 크리스나이프는 샤이 훌루드의 이빨로 만든 단검으로, 날과 손잡이의 두께가 거의 같으며 역시 손을 보호하는 키용이 없다. 키용이 없는 칼은 사실 대부분 찌르는 전투용 칼이 아니다. 그런 칼로 유명한 것은 일본의 시라사야인데, 이건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지팡이로 위장한 칼이며 베는 칼이다.
서양의 칼에서 손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날과 손잡이 사이의 키용
영화 <듄> 시리즈의 크리스나이프
칼과 칼이 맞붙는 싸움에서 키용은 굉장히 중요하다. <듄> 시리즈에서는 칼을 칼로 막고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진검이라면 날끼리 미끄러진 다음 키용끼리 부딪혀, 칼과 키용의 십자 모서리 부분끼리 엇갈려야 힘겨루기가 가능해진다. 즉, 키용이 없는 칼끼리 싸우면 금방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용이 없는 칼끼리 너무 챙챙 맞부딪힌다. 날끼리 부딪혀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자체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판타지 액션 연출이지만, 키용까지 없는 칼로 그렇게 싸우는 건 조금 그렇다. 사실 키용은 손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칼을 뺏거나 부러트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검술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장치다. 그런데 폴과 페이드 로타 둘 다 칼에 그게 없으니, 단순하게 찌르거나 휘두르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키용이 없다면 손이 미끄려져 힘을 준 찌르기가 힘들며, 오히려 내 손이 날까지 미끄러져 손이 다치게 된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식칼로 찌르다 엄지손가락이 나간 것을 기억해 보자. 즉 <듄: part 2>의 무기들은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디자인부터 잘못되었다. 단순한 액션 고증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영화의 액션을 심심하게 만든다. 칼 디자인은 그냥 영화적 장치니까 멋으로 보자고 하기엔, 다른 부분들에서 세계관을 엄청나게 잘 만들었다고 칭송받는 소설이 원작이라 아쉬울 뿐이다.
또한 <듄> 시리즈에서는 핵무기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고대의 엄청난 무기를 발견한 것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 핵무기의 사용 방법이나 파괴 리액션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폴은 핵무기를 군대 뒤에 산을 폭파하는 데 쓰고, 그 잔해들이 운석처럼 군대를 덮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그렇고 실제 핵무기의 가장 큰 위력은 폭발 반경에 1억 도가 넘는 순간온도와 몇천 도가 넘는 '열폭풍'이다. 수십 킬로미터 반경에 달하는 열폭풍으로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녹이고 날려버리는 것이 핵무기인데, <듄: part 2>에서는 그저 조금 센 미사일 수준으로만 보여서 너무 심심했다. 황제까지 죽이면 안 되니까 그랬다고 변명한다면, 황제는 우주선 안에 있으므로 그 정도는 견딜 수 있고 밖에 주둔한 군대를 싹 쓸어버리는 용도로 쓴다고 설정할 수도 있었다. 그게 안된 이유는, 모래벌레가 공격하는 장면이나 백병전 장면을 넣기 위해서로 보인다. 사실 애초에 핵무기를 백병전 전초전 격으로 발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 일대가 수십 년 이상 방사능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또 샤이 훌루드는 마지막 전투에서 등장만 화려할 뿐, 구체적으로 적들을 어떻게 섬멸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깔고 뭉개는 건지, 잡아먹는 건지, 차에 치이듯 사람들이 날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매머드가 적들을 상아로 쳐내 날려버리는 모습이나 밟는 모습이 세세하게 나와서 위압감을 줬던 걸 생각하면, <듄: part 2>에서의 샤이 훌루드를 활용한 액션은 많이 아쉽다. 지하에서 나와서 군인들 수십 명을 잡아먹거나 하늘의 비행정을 통째로 삼키는 등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걸 보여줬어야 더 재미있었을 텐데.
대단하지 않은 액션 서사의 포장
사실 이게 <듄: part 2>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폴이나 페이드 로타 둘 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을 했는데도 대단하다고 리액션을 하며 엄청난 음악을 깔아주고 있는 연출이 그것이다. 그것은 조금 과장하면, 동남아의 무술 고수라면서 손도 안 대고 제자들을 쓰러트리는 사기영상처럼 우스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말했듯 <듄: part 2>에서는 프레멘이 되기 위해 폴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기 힘들다. 거기에 폴이 프레멘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 부분이, 고작 '미끼가 되어 방어막이 풀리는 순간을 노리도록 한 것'이라는 게 많이 의아하다. 그 정도의 전술은 미리 가르치고 시작하던지, 당연히 해내야 하는 것 아닐까? 배우는 부분이 삭제되었다면, 프레멘이 생각하지 못할 기발한 작전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대단했을 것이다. 혹은 비행정에서 무기를 사용할 때만 방어막이 풀리는 것을 프레멘들이 모르고 있었던 걸까? 그럼 폴이 직접 포를 쏴서 그 짧은 틈을 맞추는 장면을 보여줬다면 뒤에 프레멘들이 폴을 대단하게 여기고 환호하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챠니와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챠니가 포를 쏴서 폴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죽었다. 웅장한 화면에 더 엄청난 음악을 깔아버려 뭔가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별거 없는 걸 포장한 것이다. 비행정의 움직임을 미래를 봐서 예측한 것도 아니고.
거꾸로, 프레멘의 액션도 그렇다. 프레멘은 적들이 사막에서 방어막을 켜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샤이 훌루드가 방어막의 진동 때문에 미쳐 날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에서 게릴라전을 잘하는 건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수도에 들어가면 적들은 방어막을 켜고 있다. 방어막을 켠 상태에서의 검술은 일반 검술과는 달리 몸 근처에서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방어막을 켠 적을 별로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프레멘은 그 검술을 어떻게 익혔을까? 폴이 그걸 가르쳐줬다면 더 폴의 능력을 높게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 서사도 그렇다. 페이드 로타의 액션은 그의 캐릭터와 위압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다. 등장 전부터 그를 '싸이코닉'하다고 말하거나, 칼을 점검하며 주변 사람들을 찔러 죽여보는 모습 등으로 하코넨 남작이나 라반보다 더 대단할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상은 그가 자기 혀에 칼을 가져다 대려다 피도 안 내고 그냥 옆사람을 찔러보던 장면처럼 맥이 빠졌다. 원작에서 그는,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굉장히 교활한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면모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럼 그냥 사이코패스 같은 면이라도 부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차라리 비슷한 장면의 비교라면 <글래디에이터>의 코모두스가 훨씬 교활하고 사이코 같고 두려움의 대상처럼 보인다. <듄>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으므로 <글래디에이터>가 그것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원작을 살펴보니 페이드 로타의 생일 검투장면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교활한 최면 술수를 써놓고 마치 자기가 정당하게 힘으로 이긴 것처럼 포장해서 영웅처럼 그려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폴과 싸우다 그 최면이 자기한테 걸린 거라 착각해서 스스로를 옭아매 죽게 되는 게 원래 내용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영화에선 페이드 로타의 그런 술수나 자업자득의 교훈도 없이 그냥 칼싸움해서 지는 걸로만 보여줘 페이드 로타의 서사가 사라졌다. 그러니 밋밋한 것이다. 서사를 없앴다면 액션에서 캐릭터성을 부여할 수도 있었는데, 페이드 로타는 검술을 잘해서 오만하다는 거 말고 딱히 액션에서 드러난 게 없었다. 만약 페이드 로타가 너무 검술을 잘해서 폴의 검술을 흉내 낸 설정이었다면,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게 연출을 했다.
오히려 액션의 캐릭터 서사에서는 1984년 데이빗 린치의 <듄>이 조금 더 낫다
또한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서사도 대단하게만 보이지 실제로 대단한지 잘 모르겠다. 1편에서 프레멘에게 신처럼 여겨지던 샤이 훌루드가 2편에서 교통수단으로 다뤄지는 게 좀 의아했는데, 원작에서도 그런 모양이다. 그 부분 묘사를 보면, 프레멘이 샤이 훌루드를 생각하는 감정이나 느낌은 모아나가 바다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하다. 인격체 신이라기 보단 만물이 창조된 대자연으로써의 경외감 같은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는 장면은 사실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폴이 왜 대단한지, 샤이 훌루드와의 교감이나 길들이기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서사가 전혀 없다. 이전에 <아바타>에서 나비족이 토루크를 길들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데, <듄: part 2>에서 보이는 샤이 훌루드와의 액션 교감 서사보단 낫다.
샤이 훌루드를 타는 것은 갈고리를 걸면 끝나는 것이고, 그 거대한 것을 손으로 버티며 조종하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쳐도 1편에선 분명 공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갈고리가 걸쳐졌다고 해서 모래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친절하게 모래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태워주는 것은 왜인가. 또 갈고리를 풀면 바로 튕겨나가 떨어질 텐데 내릴 땐 어떻게 내린단 말인가. 베네 게세리트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에게도 '보이스'를 쓰는 것이 1편에 나왔었는데, 폴은 '보이스'를 이용해 남다르게 샤이 훌루드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설정이 있어도 좋지 않았을까? 마치 이 장면은 '폴이 샤이 훌루드를 타게 되어 프레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한 문장을 대충 영상으로 멋지게 '설명'한 것뿐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특별한 교감이나 길들임 없이 되는대로 타는 설정은 샤이 훌루드의 캐릭터를 빈약하게 만들었다.
빈약한 전술
그리고 영화의 내용상으로 보자면, 황제의 군대를 잡는 마지막 전투는 전쟁액션 개연성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멀다고 해도 언덕 뒤에서 크게 연설을 하고 온 군대가 개전 전에 소리를 지르다니, 이건 기습전에서 해선 안될 일이다. 이런 장면은 남부에서 군대가 출발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액션에서 종종 뒤에서 기습하는 적이 소리먼저 지르고 공격하려다 소리 듣고 눈치채고 피하거나 되받아치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기습전은 조용해야 한다.
그리고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게릴라 전술은, 적들이 가는 길목을 예측하고 함정을 파서 기습할 때 쓴다. 앞에 스파이스 채굴기를 공격하는 건 그게 맞았다. 그러나 적의 진지 앞에서 모래 속에 숨어있다가 튀어나온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언제부터 거기에 숨어있었던 걸까. 아니면 모래 속을 기어서 거기까지 간 걸까. 그럼 그 뒤에 단체로 백병전을 위해 달려서 뛰어오는 건 왜 그럴까.
폴이 이 전투에서 특별히 한 것은 거대한 모래폭풍 예측이다. 나머지 전술이라는 건 그냥 순서대로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전술이랄 게 없었다. 왜 이렇게 황제와 하코넨의 군대가 허무하게 당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폭풍이 먼저 수도를 감싸고, 비행정이 뜨지 못하는 가운데 익숙한 프레멘들만 자유롭게 움직이며 적들을 썰어버렸다면 모르지만 영화에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프레멘들은 애초에 방어막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레이저 빔으로 쓸어버리면 그만 아닐까? 하코넨한테 고전 무기도 다 허용했던 황제인데. 왜 황제 앞까지 왔는데 사다우카는 칼로 싸우는 걸까. 멋있고 장대한 장면들을 늘어놓기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듯 보였다.
게다가 하코넨은 프레멘을 상대한 게 처음이 아니다. 지금이 가장 격렬한 저항이라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아라키스 행성을 지배하며 그들을 상대해 왔다. 그런데 프레멘의 저항이 거세진 상황에서 채굴기의 방어인력은 왜 이리도 허술한가? 거꾸로 채굴기를 미끼로 해서 프레멘을 몰살시킬 생각은 왜 못하나? 여기선 프레멘이 폴에 대한 종교적 믿음으로 더 강해진 것처럼 보인다기보다, 그냥 하코넨 쪽이 너무나 바보같이 보인다. 황제 또한 그렇다. 황제는 은하계의 대 가문들을 사다우카의 무력과 자신의 정치력으로 조율하는 세력이다. 물론 그 뒤에 베네 게세리트가 있었다고 해도, 여기서 보여주는 황제의 모습은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허약한 모습이다. 만약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원작에 있다!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 팬끼리 돌려보는 2차 창작 팬무비에 불과하다. 영화는 영화로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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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듄의 스토리가 현재 세계정세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아주 궁금해진다. 모티브를 따온 종족과 별개로 내용을 보자면 아트레이데스는 영국(미국) / 하코넨은 나치 / 프레멘은 유태인과 흡사하다. 현재 2편까지의 내용을 보면 영국이 유태인을 나치에게서 구해 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준 역사와 비교되는데, 그 뒤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주변 아랍국가와 팔레스타인과 끝없이 전쟁해 왔다. 이는 3편에 나올 내용, 대가문들과의 전쟁과도 연결된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듄: part 3>가 이것을 어떻게 느끼게 만들까? 미국인과 이스라엘 인들은 그 내용을 자신들의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드니 빌뇌브가 소설 <듄>을 너무나도 멋지게 실사 영화로 만들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의 고질적인 약점인 빈약한 액션 서사가 더욱 두드러졌다. 게다가 그 빈약함을 영상미와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이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는 모양새다. 1편보다 2편이 조금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한다면, 3편은 부족함을 더 채워서 나왔으면 좋겠다. 장대한 우주 대 서사시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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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가여운 실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 속 드러나는 배경은 과거와 미래를 혼란스럽게 조합하는 세계 속에서 신의 실험이 시작된다.
벨라가 탄생한 런던에서 아이의 지능을 가진 벨라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흑백이다. 덩컨과 함께 리스본으로 모험을 떠나는 순간부터 흑백에서 컬러로 변화하고, 성에 눈을 뜨고 상류 사회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사람들의 감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색은 더욱 다양해지거나 혹은 누그러지는 것과 같이 벨라가 경험하는 세계에 따라 색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갓윈의 집 안에서 억압되어 있던 벨라에게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그녀를 꾀어내지만 결국 벨라에게 상류 사회의 규범을 강조하며 그녀의 언어마저 구속하고, 행동을 통제하며 벨라를 또 다른 감옥에 가두는 덩컨에 의해 크루즈, 즉 바다 한가운데 감금당하는 순간부터 리스본을 채우고 있었던 다양한 색들이 거의 사라지고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다시 파란색과 노란색이 주를 이루게 된다. 크루즈에서 벗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어 슬픔, 연민과 같은 감정을 배우게 되는 순간 벨라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따듯한 노란 계열로 뒤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크루즈에서 쫓겨나 새롭게 경험하는 파리는 단조로운 파란색이 주를 이루게 되는데, 그녀가 입은 의상은 노란색 계열이지만 파리의 사창가의 배경은 슬픔과 연민의 감정은 없다는 듯 노란색 계열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파리의 사창가에서 그녀의 성적 쾌락을 이용하여 경험하는 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녀가 바라본 세상의 색이 파란색 계열로 단조로워지는 것을 보아 다른 경험과 달리 자신의 자아실현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벨라의 시선 각도와 앵글 역시 눈여겨 볼 부분이다. 벨라는 리스본에 도착하고 덩컨을 내버려둔 채 처음으로 혼자 세상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녀의 시선에 맞춰 하늘을 보여주면 다양한 물고기들이 날아다니며 하늘 위로 이동하는 이동 수단을 통해 관객에게 마치 미래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승 이미지를 통해 벨라가 세상을 처음 만나는 순간 느끼는 흥분감과 세상을 우러러 보고 있다는 느낌의 정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벨라가 생각하던 것과 정반대의 현실을 마주하며 세상의 고통과 범죄를 자각하게 된 벨라의 시선을 보여주듯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하이 앵글 샷, 즉 버드 아이 뷰를 사용하여 하강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앵글을 통해 하강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주며 벨라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벨라의 시선 아래 위치한 현실을 상류 사회 속 벨라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어 계급 차이 또한 느낄 수 있는 구도인 셈이다.
벨라의 모험이 끝난 이후 그녀가 원래 지냈던 런던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다시 색이 다양해지는데 이는 벨라가 경험한 세상을 통해 얻게 된 것들이 더 이상 누군가로부터 억압받지 않고 벨라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일한 존재를 만들고 싶었던 신의 실험은 과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죽고 싶어 다리 아래로 투신하여 자신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빅토리아의 처절한 선택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무시당했다. 또한 타의, 벨라의 창조주인 갓윈에 의해 어린 아이의 뇌를 가진 채 벨라 백스터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다시 수많은 존재들에게 억압을 당하다가 이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옳지도, 틀릴지도 모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의 현실을, 감정을 배워가는 벨라가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인 가여운 것인 셈이지 않을까. 과연 사랑이라는 핑계로, 사회적 통념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는 다양한 색들이 벨라의 세상을 이루며 막을 내리는 것을 보아 벨라가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경험한 것들이 전부 쓸모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옳을 수도 있다는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은 경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옳을 수도 있는 경험이 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고 자신에게 옳다고 생각되는 경험들을 끊임없이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를 통해 스스로가 바라보는 세상이 자신의 색으로 물들 때까지 다양한 경험들을 쌓는 것이 우리를 억압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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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곳적 복수 신화를 지금 소환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기 895년, 해외 정복을 마치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온 '아우반디르(에단 호크)' 왕은 왕비 '구드룬(니콜 키드먼)'과 어린 암레스 왕자와 재회한다. 그러나 막 성인식을 치른 아들에게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해주기도 전에 그는 동생 '푤니르(클라에스 방)'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는다. 푤니르는 구드룬 왕비와 왕국을 차지하고, 암레스는 바다 건너로 도망간다. 이후 세월이 흘러 바이킹의 일원이 된 '암레스(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왕국을 잃은 푤니르가 망명지인 아이슬란드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노예로 신분을 위장한 그는 노예선에서 만난 마녀 '올가(안야 테일러 조이)'의 도움을 받아 푤니르의 땅으로 들어가고,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한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신작 <노스맨>은 바이킹 왕자 암레스의 사랑과 복수를 노래하는 영화로, 중세 시대극이자 근래 할리우드에서 보기 힘들었던 에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피비린내 나는 10세기 북유럽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그린 나이트>처럼 상징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며 신화적 영웅의 비현실적 여정을 압도적인 분위기와 미장센으로 녹여낸다. 주술사가 이끄는 암레스의 성인식이나 피 튀기는 바이킹의 전투 장면은 거칠고 잔혹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북대서양의 거친 바다부터 아이슬란드의 화산에 이르는 웅장하면서도 잔인한 자연의 풍광이 더해지면 그 시대의 야만성이 눈앞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절단 장면은 '이 정도로 잔인할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을 자아낸다.
하지만 강렬한 영상에서 눈을 돌려 주인공 암레스의 여정에 빠져들다 보면 그 의문은 자연히 답을 찾는다. 특히 중세 스칸디나비아 전설 속 영웅인 암레스 왕자가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 햄릿의 원형이라는 점, 하지만 암레스와 햄릿의 이야기가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그 답은 더욱 명확해진다. 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은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에게 복수하려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다 풀어내지도 못한 채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에 휘말린다. 혼란 속에서 그는 미친 듯 보이는 현실과 미쳐 가는 자아를 화해시키지 못하고, 복수마저도 온전히 끝내지 못한 채 죽는다.
햄릿의 복수는 허망하다. 복수심이 도리어 파국을 가져온다는 것을 복수가 결코 건강한 선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사실 복수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작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장 <일리아스>만 해도 그렇다. 친구를 죽인 헥토르를 향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아버지를 만난 후 그의 용기와 부성애에 감동한 아킬레우스를 비추며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분노에 가득 찬 야수였던 아킬레우스가 복수심을 버리고 사랑, 희생, 용기를 아는 고결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비록 그 끝은 조금 달라도 햄릿과 아킬레우스는 모두 복수의 무용함을 이야기한다.
<노스맨>과 암레스는 다르다. 영화는 햄릿, 아킬레우스와는 달리 복수의 완성을 통해 생명력을 되찾고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암레스를 보여준다. 복수와 삼촌의 죽음을 다짐하며 바다를 건넌 간 암레스는 바이킹의 배를 탄 채로 다시 등장한다. 배에서 내려 한 마을을 공격하는 바이킹들 사이에서 암레스는 다른 바이킹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저 사람을 죽이는 데 몰두한다. 적군을 죽이고 그 몸을 입으로 물어뜯으며 울부짖는 그의 모습에서는 목적 없이 배회하는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가 보일 뿐이다.
그러나 마녀의 환시를 보고, 자신이 복수를 완수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들은 후 그는 새롭게 태어난다. 삼촌의 땅인 아이슬란드로 향하기 위해 인간 대우도 받지 못하는 노예로 위장한 암레스는 가장 낮은 계급이지만 오히려 가장 살아있어 보인다. 집을 나가 떠돌던 외로운 늑대는 이제 무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눈이 이글거린다. 복수를 통해 암레스의 인생이 죽음에서 삶으로 전환되는 이야기는 영화의 결말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용암이 치솟는 화산에서 삼촌을 죽임으로써 마침내 꿈꾸던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한 암레스. 그는 삼촌과의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클로즈업되는 그의 표정은 환희와 평화로 가득하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지켰고, 아버지와 자신의 왕통을 이을 아이들도 남겼으면, 응어리 진 분노도 온전히 터뜨린 후 해소하여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다른 인물들의 서사 역시 복수의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 보인다. 당장 푤니르만 하더라도 그는 단순히 복수의 목표물이 아니다. 왕의 배다른 동생이자 사생아인 그는 자신의 삶을 무시한 이복형에게 복수한 인물로, 비록 영지를 잃어버리기는 하지만 가족들과 따뜻한 삶을 영위한다. 그래서 암레스에게 가족을 한 명씩 잃어가는 그의 모습에서는 간악함보다는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진다. 그의 어머니인 구드룬 왕비가 마찬가지다. 삼촌 푤니르에 인해 강제로 결혼하여 비극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는 알고 보니 푤니르를 추동한 만악의 근원으로 밝혀진다. 그녀는 노예로 팔려와 강제로 결혼하고 후사를 낳아야 했기에 증오 가득 찬 결혼 생활을 끊기 위한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구드룬은 분노하는 암레스 앞에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고 지금의 삶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일갈한다.
이에 더해 올가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신화 속 여성은 남성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 남성은 상처를 치유하고 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는 반면, 여성은 분기점 외의 특별한 역할을 맡지 못한 채 해피 엔딩 속에서 존재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 <노스맨>은 다르다. 암레스는 올가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복수를 함에 있어서 적잖은 도움도 받고, 또 서로의 목숨도 구해준다. 하지만 올가는 암레스의 운명에 종속되지 않는다. 암레스는 사랑을 통해 복수심을 잊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대신 목숨을 걸고 복수하는 늑대로 남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사랑은 쌍둥이를 잉태한 채 그 관계가 끊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암레스는 온전히 마음의 평화를 얻을 기회를 잡고, 올가는 노예에서 벗어나 위대한 왕통을 이어갈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 이처럼 <노스맨> 속 복수는 단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싸움이 아니라 바람직하고 정당하며 옳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물론 혹자는 <노스맨>의 복수극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햄릿과 암레스가 복수에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를 제외하면 이 영화의 각본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는 2시간을 넘는 137분의 러닝타임 동안 느린 템포로 진행되기에 꽤나 지루한 인상이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멋지게 복수하는 쾌락을 선사한다는 특징은 고전 중의 고전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특출 난 게 아닐 수 있다.
이에 더해 신화 원전의 분위기를 재현하는데만 집중한 것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일례로 작년에 개봉한 <오필리아>는 햄릿을 원작으로 하면서도 햄릿의 아내인 오필리아를 전면에 내세워 햄릿의 비극을 여성의 시선에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바 있다. 그에 반해 죽음과 폭력, 예언과 마법으로 가득한 <노스맨>의 세계는 굳이 이 신화를 지금 이 시점에 만나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레스의 세계를 잘 살펴보면 <노스맨>에 숨겨진 시의성이 그 모습을 찬찬히 드러낸다. 화산을 배경으로 암레스는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싸우다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결투에 임한다. 바이킹에게 정당한 복수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 것은 그들의 천국인 발할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 속에 가득한 울분을 온전히 표출하면, 전장에서 죽은 후 발할라에 들어가 라그나로크가 올 때 오딘의 옆에서 함께 싸우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즉, 이 세계는 복수를 긍정하며, 오히려 되갚아주지 못하는 이들이 손해를 본다는 믿음이 지배적인 세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스맨>의 현대적 맥락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사회는 외관만 다를 뿐 암레스의 세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SNS 상에서 오가는 설전, 리벤지 포르노의 등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의 모습까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 모든 현상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과거의 수많은 전쟁과 갈등의 변주일 따름이다.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엄벌주의에 대한 갈망 역시 국가나 사법 제도가 복수를 대신한다는 믿음이 약해졌음을 방증한다. 암레스처럼 직접 당한 만큼 돌려주고 정의를 바로잡는 복수의 욕구가 나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충실한 재현 같아 보이는 <노스맨>의 접근법은 결코 과하지 않다. 태곳적 복수 신화를 성공적을 소환하는 심장 박동을 닮은 북소리와 극한의 현실 고증을 통해 신화에 설득력을 더하는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암레스의 세계와 그의 행적이 가능한 사실적으로, 그리고 실감 나게 느껴질수록 관객 역시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커져가지만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욕망을 분출하는 공간을 경험할 수 있으므로.
암레스가 발할라에 들어가는 결말이 대표적이다. 화산에서 죽어가는 그의 앞에 하늘이 열리고, 발키리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내려와 그를 발할라로 이끄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환상이다. 하지만 이는 복수를 통해 평화를 찾은 암레스의 심정을 그 어떤 방식보다도 훌륭하게 반영하는 연출이기도 하다. 성인식부터 전설 속의 검을 얻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복수에 미친 그가 다양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을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나치게 재현적이고 현대적 맥락에서는 동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노스맨>에서는 원형적인 복수 신화를 통해 현대 사회를 반추하게 만드는, 단순한 영화적 재현 이상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태곳적 복수 신화를 재소환하는 현대의 야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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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렌시아가와 H&M, 두 세계를 오가는 롤러코스터
6★/10★
2017년, 〈더 스퀘어〉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에게 또 한 번의 황금종려상을 선사한 〈슬픔의 삼각형〉은 한 모델 오디션장에서 시작된다. 상의를 탈의한 채 오디션을 기다리고 있는 남성 모델 무리 사이로 한 방송 진행자가 들어선다. 그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몇몇 모델을 인터뷰한 후, 개중 몇몇을 벽 앞에 세운 뒤 짓궂은 제안을 건넨다. ‘발렌시아가’ 포즈와 ‘H&M’ 포즈를 취해보라는 것. 둘 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는 명품이고, 후자는 저가의 패스트 패션이다. 방송 진행자가 말을 잇는다. 발렌시아가 모델은 다소 거만한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며 네가 우리 제품을 사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굴어야 하고, H&M 모델은 백인, 흑인, 아시아인이 나란히 서서 밝은 얼굴로 ‘우린 행복해! 우리는 평등해!’라고 외치며 환하게 웃어야 한다는 것. 설명을 마친 진행자가 발렌시아가와 H&M을 번갈아 외치면, 앞에 선 모델들은 그에 따라 오만한 표정과 밝은 표정을 교차로 짓는다. 진행자는 두 브랜드의 이름을 점차 빠르게 바꿔 부르고, 모델들 역시 그에 맞춰 재빨리 포즈와 표정을 바꾼다.
모델들의 몸짓과 표정으로 재현되는 두 브랜드의 교차는 〈슬픔의 삼각형〉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이 영화는 롤러코스터처럼 두 세계를 오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힘껏 풍자한다. 오디션에 참가한 모델 칼과 그의 인플루언서 애인 야야는 야야에게 협찬된 티켓으로 호화 크루즈에 탑승한다. 승객은 대부분 큰 부자들이고 승무원들의 서비스는 완벽하다. 돈을 낸 사람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고, 탑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탑승객은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살고, 승무원은 H&M의 세계에 산다.
그런데 한 탑승객이 ‘우리는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이 기뻐했으면 좋겠다며 모든 승무원이 거대한 미끄럼틀 튜브를 타고 놀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기쁨을 느껴 ‘평등’해지자는 것. 그러나 H&M의 세계에 사는 우리는 승객의 요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안다. 두 집단이 발 디디고 있는 세계를 그대로 둔 채 같은 행위를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 만으로 평등해지자고 외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요컨대, 발렌시아가가 H&M 홍보 문구를 읊는 우스운 꼴이다.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황당한 요구는 계속 이어진다. 웃통 벗은 승무원이 불편하다는 탑승객의 말에 해당 승무원이 단번에 배를 떠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바다 한 가운데를 항해하는 크루즈의 돛이 더러워 경관을 해친다며 청소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H&M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의 요구를 모두 충실히 수행한다. 두 세계가 기울어져 있고, H&M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변곡점이 찾아온다. 선상 파티를 하던 중 폭풍이 찾아와 크루즈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크루즈의 흔들림은 곧 탑승객과 승무원이 자리한 세계의 흔들림을 의미한다. 탑승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우아하게 고급스러운 요리를 고상하게 먹으려 하지만 욕지기는 점점 더 강해진다. 그리고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볼’ 구토 장면이 연달아 이어진다.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은 탑승객들이 자신들이 먹은 일품요리를 끝도 없이 토해내는 장면과 그 옆에서 승무원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탑승객을 배려하며 서빙과 청소를 이어가는 장면은 무엇을 시사할까? 이 장면은 세계가 ‘뒤집히면’ 누가 혼란을 느끼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구역질 날 정도로 적나라한 구토(심지어 설사)는 발렌시아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몸속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를 폭로한다. 수류탄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는 무기회사를 운영하는 한 노부부가 UN 규제 때문에 힘들었다며 불평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화려하고 비싼 명품으로 치장된 탑승객들의 외면이 실은 몸속에 쌓인 토사물과 설사(즉 추악한 자본 축적)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였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폭풍이 지나간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적이 배를 습격하는 사건마저 발생해 일부 탑승객과 승무원이 ‘무인도’에 표류된다. 이제 기존 권력관계는 별 의미가 ‘없다’. 무인도에서는 돈보다 생존 능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 새로운 위계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발렌시아가’와 ‘H&M’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조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은 이들과 함께 떠내려온 프레츨 스틱과 물, 즉 식량이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죽은 부인에게서 다이아몬드를 뺀 후 몰래 주머니에 넣는다. 무인도에서 건설될 세상은 결코 완전히 새로울 수 없다. 새 세상은 결코 기존 세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영화 전반부에서 신랄하고 날카롭게 활개 치던 계급 사회 풍자가 다소 길을 잃는 듯 맥이 빠지는 건 이 때문이다. 배가 난파당하기 직전, 미국의 공산주의자와 러시아의 자본주의자가 만취해 우리 세계를 두고 토론하던 장면이 보여주듯,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발디딘 곳에 제한된 상상력만을 가질 수 있다. 그 어떤 새 출발도 ‘백지’에서 시작할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무인도에서 젠더 위계가 뒤집히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전반부, 평범한 모델인 칼과 인플루언서 모델인 야야가 데이트 비용을 두고 갈등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 시대는 전통적 남성 부양자 모델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사회다. 그러나 기존 젠더 관념은 현실이 달라졌는데도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칼은 데이트 비용을 하나하나 계산하느라 초조하고, 데이트 비용에 무관심한 야야에게 화가 난다. 반면 야야는 여자라는 이유(임신, 출산 등)로 언제든 자기 경력이 끝장날 수 있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이 안전하게 기댈 수 있는 남자를 찾는다. 둘의 현실과 현실 인식이 내내 충돌하는 것이다. 젠더 권력의 복잡성은 크루즈에서도 이어진다. 진상 승객과 만취한 선장을 대신해 크루즈를 완벽한 상태로 유지하는 여성 매니저 폴라, 크루즈에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으나 무인도에서는 뒤집힌 세계의 꼭대기에 자리하는 아시아계 여성 애비게일은 세상을 굴러가게 하고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 재생산 노동이 ‘여성의 일’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세상이 뒤집혀도 재생산 노동은 여성이 담당하는 현실을 비꼬듯 풍자해 영리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계급과 젠더의 얽힘, 그리고 뒤집힌 세계에서도 완전히 새롭게 출발할 수는 없는 사람들. 영화 제목인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은 미간의 주름 모양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 얼굴을 찡그릴 때 생기는 주름의 이름인 것이다. 영화는 이 주름을 야기하는 감정이 ‘자연 발생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여러 위계가 교차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며 미간을 찡그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억눌린 역능을 되찾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음의 대사가 말하듯, 〈슬픔의 삼각형〉은 세상이 뒤집혀야 된다고 말한다. “여기선 내가 캡틴입니다. 자, 내가 누구라고요?”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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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트홈(2020)' 넷플릭스 드라마 보기 전 필수 시청
스위트홈 웹툰 스토리 요약(*결말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위트홈" 시놉시스1
세상을 차단하고 방 안에 틀어박힌 10대 소년. 현수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인간이 괴물로 변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아직은 사람이니까. 이웃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스위트홈" 시놉시스2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는 그린 홈이라는 낡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한다.
절망에 빠진 그는 점차 그린 홈에 관한 비밀을 깨닫는다.
왜곡된 인간 욕망을 여러 가지 형태로 투영하면서 인류를 몰아내려는 괴물이 그린 홈을 둘러싸고 있으며, 자신을 포함해 그린 홈 주민들은 그 괴물들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스위트홈" 정보
공개일: 2020년 12월 18일
화수: 10부작
제작: 스튜디오 드래곤, StudioN
장르: 호러, 크리처, 생존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
연출: 이응복
극본: 홍소리, 김형민, 박소정
출연: 송강, 이진욱, 이시영 외
원작: 네이버 웹툰 스위트홈
시청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청소년 관람불가[2]#스위트홈 #스위트홈_웹툰 #스위트홈_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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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V 드라마계의 최정상급 각본가 쿠도 칸쿠로와 오오이시 시즈카. 사상 처음 넷플릭스에서 성사된 이들의 콜라보! 남편은 정치인, 아내는 배우, 결혼 5년 차 쇼지 부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지금 위기에 빠졌다. 바람, 불륜 그리고 이혼까지! 둘만의 문제에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며 대소동이 벌어지는데. 이 좌충우돌 이혼극은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주연인 마츠자카 토리, 나카 리이사를 비롯해 니시키도 료, 이타야 유카, 야마모토 코지, 후루타 아라타 등 초호화 출연진이 모여 선사하는 울고 웃는 이혼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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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빈 교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링이야오'에게 첫눈에 반한 '뤼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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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 속 누구보다 빛났던 너, 세상 끝에서 다시 함께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