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your bunny2022-09-30 14:15:01
[DMZ docs] 남들보다 더 빨리 비상해야 하는 작은 새들의 이야기
<작은 새들> 리뷰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작은 새들(Fledglings)
Poland/2022/84min/리디아 두다 감독 작품
상상력이 풍부한 조시아, 예민한 오스카, 독립적인 킹가는 또래 아이들보다 더 빨리 성인이 되어야 했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아이들의 동정심, 예술적 표현, 유머 센스 및 캐릭터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들의 우정과 사랑, 타인과의 관계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역경을 헤쳐 나갈 발판을 마련한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넓다. 넓고, 또 위험하다. 무수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큰 세상이지만 동시에 무수히 많은 위험과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는 그런 곳이다. 이렇게 넓고 큰 세상에서 유난히 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하는 '작은 새들'이 바로 여기 있다.
영화 <작은 새들>은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 3명이 시각장애 기숙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부모님을 잡지 않고서는 단 몇 초밖에 서 있을 수 없던 이 어린 작은 새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이 세상에 적응해야 했기에 부모와의 힘든 이별을 겪게 되었다. 어미 새들로부터 놓여진 이 작은 새들은 기숙학교에서 서로에게 말을 걸고, 서로를 도와주고, 서로를 사랑해주며 우정과 공감을 바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어린 아이들에게 주어진 낯선 환경으로 인해 처음에 이들의 움직임은 미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기숙학교를 떠날 때에는 마치 이 세상을 탐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 있는 작은 새의 활발한 날갯짓처럼 강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흑백으로 표현되었으며, 그리고 관객들은 아이들과 똑같은 시선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나는 최근 들어 영화를 볼 때 영화 속 인물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관객에게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메라의 시선이 다정하면 관객도 저절로 다정한 시선으로 해당 인물을 바라보게 되고, 또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봄으로써 그들의 움직임과 행동, 표정 등에 더 집중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저절로 우리가 이 작은 새들의 활발한 비상을 희망하고 응원하게끔 만든다.
작은 새들이 모여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며, 또 동시에 자기들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초반에 아이들은 서투르고 조심스러웠다. 자신의 앞에 주어진 피아노 건반을 천천히 만져보고, 또 복도를 걷기 위해 손을 마구 흔들며 손잡이를 찾아보고. 누군가에게는 어릴 때부터 그저 쓱- 보고 지나쳤을 공간이나 물건을 이들은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또 집중해서 탐구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들간의 사랑, 우정, 공감, 교감,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과 행동들이었다. 서로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선뜻 도와주고, 서로를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같은 상황에 주어진 서로에게 그 무엇보다 힘이 되는 응원을 보내고, 기숙학교를 먼저 떠나는 이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렴'과 같은 따스한 말을 건네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자연스레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부서질 것 같이 연약해 보이던 초반의 작은 새들이 어느덧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강인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2.09.26(월) 20:30 메가박스 백석점 7관
2022.09.29(목) 11:00 메가박스 백석점 7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 기간: 09월 22일 - 09월 29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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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나잇 인 소호>낭만과 비극을 품은 런던의 거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런던 소호로 온 ‘엘리(토마신 맥켄지)’. 기대와 달리 런던과 기숙사에서의 삶은 피곤하기만 하고, 이에 그녀는 새 자취방을 마련해 삶에 변화를 주려한다. 그리고 마치 엘리의 심경을 읽기라도 한 듯이 색색의 네온사인이 깃든 새 자취방은 꿈에서 1960년대 소호의 매혹적인 가수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를 만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샌디의 화려한 모습에 매료된 엘리는 매일 밤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삶을 함께 누리려고 하지만, 꿈이 점점 악몽으로 변해갈수록 현실에서 그녀의 삶도 점차 기괴해진다. 끝내 샌디에게 닥친 비극의 목격자까지 되어버린 엘리는 현재까지도 살아있을 범인을 쫓는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인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놓인 작품이다. 비교적 유쾌한 코미디에 기반해 잔혹한 액션, 과장된 연출이 빚어내는 쾌감과 미학이라는 감독 본연의 스타일로부터 적지 않은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웃음기를 내려놓은 호러 영화로 돌아왔다는 점, 그리고 비중에 관계없이 등장했던 액션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그 빈자리는 진중한 스토리가 대신한다. 영화는 1960년대와 현재 런던을 오가며 누구보다도 성공을 바라왔지만 사회의 벽과 폭력에 가로막혀야 하는 청년들의 두려움을 강렬한 색감과 화려한 렌즈 플레어와 조명이 만든 초현실적인 이미지 안에 녹여낸다. 이때 눈길을 끄는 것은 낭만과 비극으로 가득한 두 주인공의 사연을 전달하고 대담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라이트 감독이 선택한 메신저, 거울이다. 덴마크의 설치 예술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말대로 거울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한다. "역사적으로, 거울은 잠재의식에 대한 생각을 가진 매우 흥미로운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거울은 평행 세계에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바로 이러한 거울의 이중적 기능을 스토리 전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영화는 엘리를 끊임없이 거울 앞에 위치시킨다. 당장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엘리는 거울을 본다. 그 안에서 그녀는 어릴 적 죽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다. 런던 패션 학교에 진학한 후 룸메이트와의 갈등으로 인해 기숙사를 나와 이사한 방에서도 엘리는 거울을 본다. 그 거울 안에서는 자신과 닮은 모습의 샌디를 발견한다.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 런던으로 온 자신처럼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 샌디를 본다. 이때 거울의 독특한 특성은 엘리가 거울에서 보는 두 대상으로부터 서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오며 엘리를 주체이자 대상이라는 이중적 관계 안에 놓고, 막 대학생이 된 청춘의 성장 스토리를 비춘다.
우선 엘리는 거울 안에서 자신의 옆에 있는 엄마를 볼 때 단순히 거울에 비친 이미지만 보지 않는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던 엄마의 꿈을 자신이 이루겠다는 각오, 런던에서 지낼 미래에 대한 기대와 동경, 동시에 런던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조현병을 앓다가 자살한 엄마의 전철을 불안증을 앓고 있는 자신이 따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까지 같이 본다. 이렇게 엄마와 함께 서 있다가도, 다시 혼자 서 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엘리는 현재 자기 자신의 상태와 상황을 뚜렷하게 인식한다.
이는 엘리아슨이 잠재의식을 만나다고 표현한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거울의 매끄러운 표면에 반사된 나를 닮은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거울이 우리가 볼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이미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던 자기 자신의 외관이나 정체성에 대해 재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백설공주> 속 새 왕비가 마법 거울로부터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매일 재확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보면서 엘리는 삶의 확고한 중심을 잡는 주체이자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겪는다.
그에 반해 꿈 혹은 환각 속의 거울에서 만난 자신과 똑 닮은 샌디는 엘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심정을 재확인하는 것과 달리 전혀 다른 이의 인생을 대신 사는 경험을 한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엘리 본인이 샌디가 있던 거울로 들어가고, 샌디가 엘리의 삶으로 넘어오면서 둘의 세계는 경계가 사라지고, 엘리는 샌디의 삶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한다. 자신이 염원하던 60년대 런던의 낭만과 화려함, 그리고 런던에서 성공한 이의 기쁨을 온몸으로 즐길 기회가 오자 고민 없이 기꺼이 샌디의 삶 안으로 뛰어든다.
이러한 엘리의 경험은 거울이 우리와 닮은 이미지를 보여주기는 하나, 결코 똑같은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기에 가능하다. 거울에 비치는 상은 좌우가 바뀌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나 동일하지는 않은 또 다른 주체를 거울 안에서 만나고, 그 주체가 '나'를 볼 때 '나'는 그 주체에게 하나의 대상이 된다. 즉, 거울 속 나 자신을 통해 타인을 만나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동화의 주인공이었던 왕비가 거울 속에서 백설공주라는 또 다른 주인공을 발견한 순간, 둘 사이에 갈등이 본격화되는 이유다. 이처럼 거울은 단순히 대상을 비출 뿐만 아니라 나와 타인의 세계를 마주 보게 하고 교차시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이며, 이는 런던에서 새로운 커리어와 삶을 시작한 엘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성인으로서 중심을 잡고, 더 큰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가는 과정은 항상 설렘과 안으로 가득할 수 없다. 거울에서 자신과 함께 타인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곧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호러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거울 속에서 만난 샌디와 그녀의 화려한 삶은 한 명의 청년이자 여성이 겪어야 했던 쇼비즈니스계의 추악한 악습으로 인해 거울 부서지듯 산산조각 난다. 이때 샌디가 겪어야 했던 공포와 무력함은 유령과 망자의 모습으로 엘리 앞에 나타나며 런던 골목골목마다 그녀를 에워싸고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누르는 악습이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듯 스타일리시하고 화려한 런던 소호의 밤길에 내려앉은 어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엘리는 그 두려움과 공포에 그저 굴복하거나 미쳐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일을 하며 샌디의 신원을 밝히고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한다. 이에 더해 자신만의 힘으로 주위를 배회하는 유령들을 떨쳐낼 수 없을 때는 친구인 존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해낼 수 있음도 보여준다. 과거의 낭만과 비극이 한 데 얽힌 것이 현재의 모습이라는 사실과 다른 이의 비극이 언제든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 곧 거울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엘리는 한 명의 성인이자 패션 디자이너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엘리의 성장담은 거울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현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건네는 격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장과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관객의 입장에서는 엘리가 거울을 보듯이 스크린을 보면서 그녀의 다양한 감정과 사연 속에 빠져들고, 그들의 사연이 완결되는 지점에 우리의 삶도 닿기를 바라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의 거울, 런던과 소호의 거울에 담긴 이야기가 선사하는 즐거움과 별개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분명한 단점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샌디가 중심이 된 과건의 사건이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현재 엘리의 경험과 오버랩되면서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것에 비해 엘리의 현재 이야기는 그 자체로 관객을 흡입시킬만한 매력이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개별 인물과 패션이라는 소재를 사실상 거의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과의 로맨스나 룸메이트인 조캐스타와 같은 캐릭터들은 단지 샌디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첫 시작이자 단추로써의 역할 외에 별다른 의의가 없는 도구적인 인물에 불과하다. 또한 패션이라는 소재를 사실상 거의 다루지 못하다 보니 굳이 엘리를 왜 패션 디자이너로 설정했는지도 와닿지 않는다. 이는 비슷한 시대상과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크루엘라>와 가장 대비를 이루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패션 학교에서 겪는 엘리의 에피소드는 새로운 삶과 커리어에 도전한다는 엘리와 샌디의 공통점을 보여주면서 두 주인공 간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기능적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의 환상적인 호흡과 강렬한 이미지가 시선을 끌어당기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분명 뇌리에 각인될 작품일 듯싶다. 호러 영화로 돌아온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변화가 성공적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엘리와 샌디의 이야기를 열고 닫는 거울을 다방면으로 이용한 스토리텔링과 몽환적인 스타일이 최소한 러닝타임 동안은 몇몇 흠결까지 가릴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뽐내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런던의 현재와 과거, 낭만과 비극이 만나는 성장담을 과시적인 스타일로 빚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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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세상과 얽혀보기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따로 별점을 매기지 않는다. 기억이 곧 별점이다. 볼 만했던 영화는 관람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을 기억한다. 재밌었던 영화는 줄거리를 기억한다. 최악이었던 영화도 마찬가지다. 결말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영화는 마음에 쏙 들었다는 의미다.
분명 봤는데 내용도, 감상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는 1)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흐려졌거나 2) 기억할 가치를 못 느껴서 지워졌다. '빨간 머리 앤'하면 몇 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주근깨, 양갈래로 땋은 빨간 머리, 활짝 웃었다가도 잔뜩 성내는 얼굴. 앤이 어떤 아이인지,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무슨 일을 겪는지 등 이야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빨간 머리 앤>은 넷플릭스 추천 드라마 리스트에 단골손님이다. 주변에서도 추천하는 목소리가 꽤 들렸다. 다만 앞서 말한 '기억 별점' 때문에 눈길이 가진 않았다. 선심 쓰듯 찜해둔 목록에 넣어두고 몇 달을 보냈다. 리스트 맨 끝을 차지한 작품들을 하나씩 도장깨기 했던 지난봄, 시즌1 첫 화를 재생했다.
19세기 캐나다 동부, 애번리 마을. '초록색 지붕 집'에 커스버트 남매가 산다. 건강이 나빠진 동생 매슈. 누나 마릴라는 매슈의 농사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데려오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웬걸.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가 기차역에서 매슈를 기다리고 있었다. 볼과 코 주변을 덮은 주근깨, 양갈래로 땋은 빨간 머리. 이 아이가 '앤'이다. 앤은 커스버트 남매가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줄로 안다. 잔뜩 들떠서 마차를 몰고 가는 내내 입을 놀린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호수, 나무, 꽃에 이름을 달아준다. 우리는 자연물을 단순히 이름 붙인다. 나무, 꽃, 하늘, 구름, 거리. 사물마다 특징을 살려서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큰 나무, 작은 나무, 노란 꽃, 흐린 하늘.
앤의 작명은 남다르다. 희게 흐드러진 꽃나무.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고, 꽃나무들이 저마다 빛을 가진 듯 반짝인다. 앤은 이 거리를 '환희의 하얀 길(The White Way of Delight)'이라고 이름 붙인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앤은 말한다. 제 상상력을 덧대지 않아도 이미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이라고.
▶ 전혀 다른 둘이 한 집에 살다
앤은 여전히 어리지만, 고아원에서 열 살 넘은 애는 성인으로 취급한다. 고아원 원장은 해먼드 부부에게 앤을 데려갔다. 노동을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았던 앤. 정확히는 노동 착취였다. 식사나 휴식은커녕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분량을 맡겼다. 실수하거나 제때 하지 못하면 구박과 욕설을 퍼붓고, 물리적 폭력도 가했다. 주변에 긍정적인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앤은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찾는다. 책, 그리고 상상이었다. 흔하고 투박한 사물을 그럴싸하게 부르며 가상의 이야기를 만든다. 과한 미사여구와 풍부한 감성은 끔찍한 상황에서 앤을 지키는 방패였다. 앤이 세상을 보는 눈, 앤의 생각, 앤의 방법이 반감을 가졌던 타인들을 변화시킨다.
마릴라는 날카로운 원리원칙주의자다. 예컨대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은 매슈를 구박한다거나 외출복을 아무렇게나 던져둔 앤의 행동을 지적한다. 농장 일을 할 수 있다는 앤의 말을 듣지 않은 것도 본인의 신념이 확고해서다. '농장 일은 남자애만 할 수 있다. 앤은 여자애라서 집안일이면 몰라도 농장 일은 절대 시킬 수 없다.' 마틸다의 지론이었다. 마릴라에게 앤은 커다란 변수였다. 그렇게 다니고 싶어 하던 학교에 가지 않고, 앤을 깎아내린 마릴라의 친구 레이철에게 똑같은 말로 갚아주었다. 마릴라의 기준과 하나도 맞지 않았다. 오해가 생기거나 다투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싸움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행착오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젊은 어머니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 마릴라. 이 모임은 여자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의 모임으로, 어떻게 아이를 교육할지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과거 '농장 일은 무조건 남자의 몫'이라던 마릴라가 그들의 이야기들을 깊이 공감하며 받아들였다. 레이철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또,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앤을 나무라기 위해 목사를 부른 때였다. 신앙심 깊은 마릴라는 목사의 해답을 기대했다. 목사의 답은 뜻밖이었다. '여자아이는 학교에 다니지 말고, 좋은 집에 시집가기 위한 신부 수업을 들어야 한다.' 마릴라는 동조하지 못했다. 마릴라의 원리원칙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마릴라는 목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한다. 학교에 가고 싶다면 가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배우고, 뭐가 됐든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라며. 의젓하게 굴어도 앤은 어리숙한 십 대였다. 갈피를 못 잡던 앤도 마릴라의 지지에 힘을 얻는다.
사실 앤은 누구보다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배움의 폭이 넓어진다는 기대로 매 수업에 성실히 참여했다. 그랬던 앤이 학교를 거부한 이유, 바로 친구들이었다. 앤을 얕잡아 보고, 가볍게 놀리고, 눈치를 주던 아이들. 관심사도 맞지 않아서 적응을 어려워했다. 앤은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고자 현실과 상상을 적절히 섞어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진짜처럼 퍼지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루머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일로 앤은 온갖 손가락질을 받는다. 잘못된 행동은 맞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앤이 친구와 어울려 보고자 이런저런 말을 뱉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고려하지 않았다.
▶ 앤에게서 얻는 교훈
와중에 친구들 중 한 명인 루비의 집에 화재가 난다. 수리할 때까지 앤의 집에 머물게 된 루비. 그 집에 가기 싫다고 엉엉 울며 때를 쓴다. 앤이 목숨 걸고 루비의 집을 도와주었는데도 루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억지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둘. 앤이 자신의 아지트로 초대하며 상상하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상상 자체를 서툴어하는 루비에게 근사한 소재를 던져준다. 루비는 앤의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마지막 밤, 루비는 앤에게 아쉬움을 드러낸다. 너를 학교에서 보면 좋겠다는 말을 잠꼬대로 덧붙이며.
앤은 애번리 마을 사람들과 아주 달랐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해 보이면 주눅 들 수밖에 없다. 말과 행동을 검열하고, 흉내와 모방에 에너지를 쏟게 된다. 일방적으로 한쪽에 맞추면서 감정이 겹겹이 쌓인다. 그만큼 괴로움도 자란다. 감정은 꾸며낸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 자신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타인(들)과 다르고, 그 다름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또,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소재나 에피소드를 떠올려 자기 자신과 그 주변에 적용해 본다. 작은 숨구멍 하나를 만들면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다. 그 힘으로 다른 세상과 마주한다. 충돌이 아니다. 앤을 생각해보자. 어려운 용어 사용을 즐기고, 감정표현에 충실한 앤. 소통 방법이 전에 없이 독특했다. 그래서 오해와 다툼이 생겼다. 앤이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정과 용인에서 나온다.
애번리 마을 사람들에게 앤의 방식이 낯설었듯 앤도 마릴라의 원칙이, 친구들의 관심사가,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는 일이 낯설었다. 초면인 건 마찬가지다. 여기서 앤은 자신의 방식을 숨기지 않되 상대의 다른 방식도 받아들였다. 마릴라의 말대로 옷 정리를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늘어뜨렸다. 마릴라는 앤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다. 제 방식을 앤이 존중해주어 자신 또한 앤의 방식을 존중한다. 결국 서로를 탐색하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은 언제나 삐걱거린다. 판단은 잠시 미뤄두고 상대의 언어를, 상대의 시선을 알아보려는 호기심이 다름을 존중하는 첫 발이 아닐까.
*사진 출처는 IMDB입니다.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시대물
원작
도서 빨간 머리 앤
제작
모이라 월리베킷, 니키 카로, 어맨다 태핑
출연
에이미베스 맥널티(앤 셜리 役), 제럴딘 제임스(마릴라 커스버트 役), R. H. 톰슨(매슈 커스버트 役) 등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박윤혜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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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확정된 후속작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넷플릭스 팬이라면 요즘 너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계실 것 같은데요.
바로 넷플릭스에서 [D.P. 시즌 2]를 시작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 2], [지금 우리 학교는]
그리고 [스위트홈 시즌 2-3]까지 제작을 확정했습니다!
제작 확정 소식과 더불어 캐스팅 그리고 작은 스포일러까지 함께 공개했는데요.
그래서 씨네랩이 지금까지 확정된 작품과 지금까지 나온 작품과 관련된 정보를 정리해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D.P. 시즌 2 (공개 일자 미정)
ⓒ 넷플릭스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D.P.]는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다.
군필자에게는 PTSD가 올 정도로 대한민국 군대의 어두운 면을 가감없이 리얼하게 다루며 호평을 받았다.
시즌 2 역시 시즌 1에서 [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이 맡았으며, 제작사 역시 시즌 1과 동일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에서 맡게 되었다.
▶ 지금까지 나온 [D.P 시즌 2] 정보
ⓒ 넷플릭스
① 출연진
이번 [D.P. 시즌 2]에는 기존 출연자였던 배우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가 출연하며,
배우 지진희, 김지현이 새롭게 출연한다. 지진희 배우는 육군 본부의 법무실장 '구자운' 역을 맡았고,
김지현 배우는 국방부 검찰단 작전과장 서은 중령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② 현재 진행 상황
대본 리딩을 마쳤으며 현재 촬영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스위트홈 2, 3 (공개 일자 미정)
ⓒ 넷플릭스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인 [스위트 홈]은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각양각생의 크리쳐들이 등장하며
전셰계 많은 팬들의 호평을 이끌어낸 작품인데요.
[스위트홈]의 경우 시즌 2뿐만 아니라 시즌 3까지 확정하며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나온 [스위트홈 2, 3] 정보
ⓒ 넷플릭스
① 출연진
이번 [스위트홈 2, 3]에는 기존 출연자였던 배우 송강, 이진욱, 이시영, 고민시, 박규영이 출연하며,
배우 유오성, 오정세, 김무열, 진영이이 새롭게 출연한다. 유오성 배우는 수호대의 상사 역을,
오정세 배우는 백신을 연구하는 임박사 역을, 김무열은 UDT 중사 출신이자 수호대의 2인자 김영후 역을,
진영은 수호대의 박찬영 이병 역을 맡았습니다.
오징어 게임 2 (공개 일자 미정)
ⓒ 넷플릭스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작품인 [오징어 게임]이 최근 시즌 2를 확정했는데요.
감독은 시즌 1과 동일하게 황동혁 감독이 맡아 연출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황동혁 감독은 2024년 공개를
목표로 준비 중이라 밝혔지만, 아직 공개 일자가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 지금까지 나온 [오징어게임 2] 정보
ⓒ 넷플릭스
① 출연진
시즌 1 대부분의 출연자가 죽음을 맞이해 시즌 2에 어떤 배우들이 나오게 될 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일단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편지 속에 따르면, 기훈 역을 맡은 이정재 배우가 출연한다고 합니다.
또한 '프론트맨', '딱지를 든 양복남', 영희의 남자친구 '철수'까지!
어떤 배우가 맡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즌 1 속에 굉장히 임팩트 있었던 캐릭터와 기대되는 캐릭터의
출연이 확정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② 게임 (예상)
황동혁 편지 속에서 더욱 새로운 게임으로 다시 만나뵙겠다고 밝혔는데
이전 인터뷰에서 시즌 1 후보에 올랐었던 게임인 '공기놀이', '우리 집에 왜 왔니'. '동대문 남대문 게임'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 2 (공개 일자 미정)
ⓒ 넷플릭스
넷플릭스 코리아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금 우리 학교는 시즌2] 제작 확정 소식을 알렸는데요.
영상 속 출연자를 보면, 배우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이 등장합니다.
시즌 1 공개 이후 청산이 '죽었다', '안 죽었다'로 굉장히 열띤 토론이 일어났는데요.
시즌 2 확정 영상 속 청산 역을 맡은 윤찬영 배우가 등장하며 시즌 2에 윤찬영 배우의 등장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지금 우리 학교는 시즌2]와 관련된 소식이 별로 나와있지 않아 추가적인 정보가 생기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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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자는 불협화음 환상곡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연인 '가모라'(조 샐다나)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술에 의지하는 스타로드 '피터 퀼'(크리스 프랫). '네뷸라'(카렌 길런)와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맨티스'(폼 클레맨티에프)'를 비롯한 동료들은 그저 그를 지켜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담 워록'(윌 폴터)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기습하고, '로켓'(브래들리 쿠퍼)이 치명상을 입는다. 동물을 개조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빌런 '하이 에볼루셔너리'(추쿠디 이우지)가 로켓 몸에 심어둔 폭탄이 기습 때문에 작동한 것. 폭탄이 터지기까지는 48시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로켓을 살리고, 더 나아가 팀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임무에 나선다.
진정한 가족을 만드는 여정
2014년, 1편이 개봉할 때만 해도 물음표가 가득했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시리즈.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 외계인, 사이보그, 말하는 라쿤, 움직이는 나무가 한 팀을 이룬다니. 아무리 마블이라지만 터무니없는 도전 같았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가오갤> 시리즈는 의심의 여지없는 인기 시리즈다. 마블의 올스타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재치 있는 입담,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 이야기에 스며드는 음악까지. 그뿐만이 아니다. 독특한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다. <가오갤>은 가족이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가족 영화이기 때문이다. <가오갤>의 주인공들은 제각각의 사연으로 가족을 잃은 패배자다. 종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피터가 음악을 드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설령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가오갤 멤버들은 함께 모험을 떠나 식구를 찾을 수 있었다. 매일 같이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안아주며 아픔을 보듬었다. 덕분에 그들은 마음속 어두움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었다. 서로서로 방패인 셈이다. 피터가 가모라를 비롯한 팀원들의 손을 잡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듯이. 피터의 아버지 에고가 아들을 죽이려 했지만 피터를 직접 키운 아빠 욘두는 목숨을 희생해 아들을 살렸듯이. <가오갤> 시리즈는 진정한 가족을 찾는 여정이었다.
안팎으로 무너지는 가족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이하 <가오갤 3>)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여전히 가오갤이라는 가족의 여정을 다룬다. 하지만 흐름이 다르다. 이전 두 편은 가오갤이라는 보호막을 찾고 단단히 만드는 이야기였다. 반면에 세 번째 영화는 방패가 무너지는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가오갤은 위기에 빠진다. 아담 워록의 기습 때문에 로켓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에 다른 팀원들은 로켓을 살리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 내내 각 캐릭터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트라우마가 여과 없이 튀어나온다. 일례로 피터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지구에 대한 그리움, 외할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을 직면한다. 자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2014년의 가모라를 만나 가슴이 아프다. 정작 가모라는 피터를 아예 무시하고, 오히려 가오갤을 더 큰 위기에 빠트린다.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맨티스는 에고의 하인으로, 또 가오갤의 멤버로 지내느라 미처 깨닫지 못한 자기 자신을 궁금해한다. 개그 캐릭터였던 드랙스의 아픔도 다시 언급된다. 1편에서 가족이 모두 죽었던 아픔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는 게 밝혀진다. 시리즈 내내 감정이 없던 네뷸라도 로켓이 다치자 눈에 띄게 동요하며 성격이 더 고약해지고 예민해진다. 아담 워록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크래글린'(숀 건)'은 '욘두(마이클 루커)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며 자책한다.
가족을 지키려는 사투 속에서 이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은 거칠게 부딪힌다. 가오갤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하는 데 집착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화내고, 짜증을 낸다.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고 충돌한다. 일례로 피터는 타노스에게 죽은 자기 여자친구 모습을 2014년의 가모라에게 강요한다. 네뷸라도 매번 멍청한 짓만 한다며 네뷸라가 드랙스에게 면박을 줬다가 맨티스와 말다툼을 벌인다.
자기혐오를 자기 긍정으로
제임스 건은 가오갤의 난맥상을 영리하게 정리한다. 여태 베일에 싸여 있던 로켓의 과거를 중심으로 위기를 타개한다. 혼수상태에 빠진 로켓은 임사 체험한다. 평범한 라쿤이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말하는 라쿤, 로켓이 된 사연을 보여준다. 완벽한 질서로 가득한 우주를 만들려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실험체였던 그. 그는 온갖 개조 실험에 시달린 결과 창조자를 뛰어넘는 지성과 창조성을 갖추게 됐다.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번번이 실패한 실험을 해결할 정도로.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열등감에 빠진다. 자기 피조물이 자기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에 충격받다. 로켓을 죽이고, 로켓의 뇌를 활용해 더 완벽한 우주를 창조하려 한다. 로켓도 평생 따라다닐 트라우마를 피하지 못한다. 친구를 잃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자기처럼 개조된 수달 '라일라', 바다코끼리 '티프스', 토끼 '플로어'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로켓. 로켓은 그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나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공격 때문에 혼자 살아남는다. 오프닝에서 로켓이 라디오헤드의 'Creep'를 따라 부르며 자기혐오에 빠지는 이유다.
그러나 둘의 말로는 달랐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끝내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다. 완전히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로켓에 집착한다. 로켓에만 있는 창조성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의 뇌를 원한다. 반면에 로켓은 마침내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환상 속에서 친구들을 만나 속죄하고, "너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정신을 되찾는다. 오프닝과는 달리 자기 과거와 당당히 맞선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함선에서 실험용 동물들을 구출하고, 자기 창조자를 징벌한다.
있는 그대로면 충분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로켓의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로켓의 치료법을 찾는 여정에서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어두움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로켓의 부상은 가오갤 모두의 성장통이었던 셈이다. 피터는 그간 외면했던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지구로 향한다. 가모라에게 집착하는 마음도 내려놓는다. 아내와 아이를 잃은 드랙스는 하이 에볼루셔너리가 창조한 어린아이들을 구출하고 보호하면서 마침내 아픔을 씻어낸다. 맨티스는 난생처음으로 주도적인 삶을 선택하고, 네뷸라는 양아버지 타노스의 학대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함께할 수 있는 완전한 가족을 만난다. 크래글린도 욘두가 남긴 화살 조종법을 마침내 터득한다.
덕분에 무너졌던 가족도 안정을 되찾는다. 더 단단해진다. 각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가오갤 멤버들은 다른 멤버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설령 자기가 원하 않은 길이라 해도. 다른 가족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이 에볼루셔너리처럼 화내지 않는다. 리더가 바뀌고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더라도 동요하지 않는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이 공고하니까. 불협화음도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가오갤 3>가 삼부작의 마무리로서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메시지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로켓과 친구들이 일례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본래 생체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동물 신체를 개조한다. 실험이 끝난 뒤에도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고 혐오한다. 그런데 정작 로켓과 친구들은 그 기괴한 모습마저 사랑한다. 감옥을 행복한 천국으로 바꿔버린다. 그들은 설령 동물이 귀엽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아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담 워록을 통해 예상치 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아담 워록에게 이미 정해진 일만 잘 해내라고 다그친다.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면 죽일 거라고도 협박한다. 가오갤은 다르다. '그루트'(빈 디젤)는 죽을 위기에 처한 아담 워록을 구해준다. 모든 이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있어야 한다면서. <가오갤 3>가 삼부작 중에서도 유달리 감동적인 이유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영화 밖에도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질서대로, 정해진 삶의 경로대로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회는 또 다른 하이 에볼루셔너리나 다름없다. 따라서 정해진 대로 살지 못해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모든 이에게 <가오갤 3>는 따스한 격려이자 응원이나 다름없다.
액션과 음악의 조화, 제임스 건의 환상곡
<가오갤 3>의 보고 듣는 재미는 메시지와 주제의식에 힘을 실어준다. 우선 액션이 인상적이다. 작중 가장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는 긴 복도에서 가오갤과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부하들이 일제히 격돌하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이 순간을 롱테이크로 잡는다. 싸우는 방식이나 장점이 서로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시너지를 내는지를 멋지게 포착한다.
유달리 한 팀을 강조하는 연출도 눈에 띈다. 가오갤 멤버가 일렬로 나란히 서서 함께 걷는 모습이 유달리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초반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피터를 네뷸라가 옮기는 장면, 오르고스코프에서 탈출하는 때, 마지막으로 하이 에볼루셔너리를 공격하는 모습까지. 유사한 연출을 반복하며 한 가족으로서 가오갤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듣는 재미를 살린 음악도 귀를 사로잡는다. 자기부정에서 긍정으로 전환되는 이야기의 흐름이 삽입곡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화 오프닝곡 'Creep'과 엔딩곡 'Dog Days Are Over'가 대표적이다. 두 노래 가사만 비교해도 오프닝과 엔딩 사이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오프닝에 로켓은 'Creep'을 따라 부르며 자조한다. 반면에 엔딩에서는 가오갤 멤버, 노웨어 행성 주민, 구출된 아이와 동물들이 'Dog Days Are Over'에 맞춰 춤추며 즐거워한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광경을 예찬하는 제임스 건의 환상곡인 셈이다.
마블이 아닌 제임스 건의 성공
물론 <가오갤 3>도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몇몇 단점이 있다. 일단 주인공 서사를 매듭짓는 데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빌런의 역할이 평면적이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가오갤과 철학적으로,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완성도 높은 빌런이다. 다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타노스처럼 강력한 액션을 보여주는 빌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가오갤의 성장을 위한 발판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더불어 액션이 양적으로 부족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아담 워록 역시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는 인상은 약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단점은 삼부작을 너무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이다. <가오갤 3>는 <가오갤> 시리즈는 물론, 인피니티 사가가 진정으로 종결됐다는 인상을 준다. 피터와 2014년의 가모라 서사까지 끝내면서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에필로그처럼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MCU의 멀티버스 세계관이 관객의 호응을 좀처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결과 멀티버스와 큰 관련성이 없는 <가오갤 3>의 성공은 향후 MCU에 대한 기대로 직결되지 않는 모양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임스 건이 MCU를 떠나 만들 <슈퍼맨: 레거시>와 DC 유니버스에 대한 기대만 높아진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불협화음이라서 아름다운 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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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과 시선의 방향
SYNOPSIS.
1972년 뮌헨, 올림픽 생중계에 도전한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선수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음을 알고 이를 생중계로 보도한다. 솟구치는 시청률과 9억 명의 시청자까지,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단독 특종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들은 테러리스트들 역시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올림픽 사상 초유의 테러 인질극 생중계! 방송을 멈출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POINT.
✔️ 실화 기반이지만,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전개됩니다.
✔️ 그러나 잔인한 장면은 들어있지 않아요. 저는 이 지점이 좋았습니다.
✔️ 속도감 있는 전개 안에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의 책임감과 고민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 더불어 언론인들의 전문가다운 면모로 척척 손발이 맞는 장면들도 재미있었어요.
✔️ 그 장면들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양한 배우들의 협연입니다. <퍼스트 카우>, <쇼잉 업>에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존 마가로, <티처스 라운지>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준 레오니 베네쉬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 포스터만 보면 <스포트라이트>보다 10년 앞서 나온 영화처럼 보여요... 하지만 영화는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버거워하고, 영화라 해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테러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건 존 마가로의 얼굴이 궁금해서였다. <퍼스트 카우>에서 소처럼 순박한 눈망울을 보여주었고, <쇼잉 업>에서 불퉁하게 세상과 불화하는 동생의 표정을 보여주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얼굴을 보여줄까. 그리고 나는 존 마가로를 못 알아볼 뻔 했다. 아니 존 마가로를 궁금해 할 겨를이 없었다. 빠른 전개 안에서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느라.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영화관에 앉았지만, 극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언론의 생중계 현장을 담은 영화이다 보니 그들의 대화와 상황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정보가 전달되고, 방송을 만드는 과정을 척척 담아내어 그 설명이 늘어지는 법도 없다.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편집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것 같은 대목이다.
전개가 빠른 영화의 스토리라인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보고 나서 마음에 남은 생각들만 정리해 보고 싶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
영화 초반에 인물들이 서로의 국적을 인식하고 있음이 대사에서 수 차례 드러난다. 지네딘 수알렘이 연기한 캐릭터 자크의 경우, 자크라는 이름보다 프랑스인이라는 국적으로 더 많이 불리고 인지될 만큼 국적이 강조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조망한다.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세계, 세계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독일. 앙금은 남아있지만 이제 가장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이벤트가 펼쳐져야 한다. 국적에 따라 다른 입장은 개인의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 평화와 우호를 말하는 행사에서조차 국적을 고려하여 방영 우선순위를 결정할 만큼.
우리 각자의 자리는 과연 각자만의 자리인가.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관계 뿐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테러 사건 또한 국적에 따라 다른 입장과 감정이 뒤얽힌 사건이다. 테러리즘 사건 하나만 놓고 가타부타 판단하기엔 너무 많은 사건과 역사가 줄줄이 얽혀 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맥마흔 선언과 밸푸어 선언의 발화자였던 영국을 비롯해 여기 얽힌 국가들이 더 많이 있다.
과거는 온전하게 과거로만 존재하지 못하고, 타자는 철저하게 타자로만 존재하지 못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무언가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가능한가? 언론인이라면 다르게 답할 수 있겠지만... 시민인 나로서는 그저 연결되어 있는 서로를 감각하며 나의 자리를 확인하고 내 시각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를 좀더 명확히 아는 것, 그리고 그만큼을 감안하는 것, 어쩌면 그게 최선의 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밖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마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도 영화 바깥이 궁금했다. 그리고 보는 동안 혹시라도 이스라엘의 '피해자성'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올까봐 꽤나 긴장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감독과 제작진이 유대인인지 다급하게 찾아보게 될까봐 긴장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 영화의 안과 밖 또한 예외가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인질이 석방되고 군이 철수하고 있다. 그동안 사람을 말살할 것처럼 쏟아붓던 공격이 멈춘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 지구를 "장악"해서 "재개발"하곘다는 소리를 하고 있고, 휴전 협상 다음 단계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런 세상에서 팔레스타인 과격 단체가 이스라엘 대표단을 인질로 잡아 벌인 테러극을 담은 영화라면, 이 영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그리는지 민감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전혀 담지 않았고, 테러 사건의 전개는 전화와 전보를 비롯한 소식으로 전달되어 대사로 공유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본인 할 일을 하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주력한 영화다운 선택이다.
영화 속 언론인들은 이제 막 도입된 위성 생중계라는 신기술과, 자신들이 정통한 각종 기술을 펼쳐 보인다. 옛날 텔레비전에는 저런 식으로 자막을 깔았던 거구나, 사진을 저런 식으로 확대했구나, 스튜디오 연결은 저렇게 하는구나... 같은 생각들을 하며 본 그들의 능숙한 손놀림 뒤에는, 지금 어디와 연결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소식을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그때그때 선택해야 하는 언론인들의 본능이 있다. 역시나, 영화 밖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이다.
제작자의 마음과 시청자의 마음
능숙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그때그때 판단을 내리는 언론인들의 모습은, 전문가처럼 보여 한편으로는 멋있으면서도... 동시에 징그럽다. 선택을 내릴 때 그들은 인간성을 우선순위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이 미칠 파장을, 그 경우의 수를 일일이 계산한다면 방송은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이 영화처럼 급박하게 굴러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뉴스 보도국이 아니라 스포츠국이지만 지금 상황을 곧바로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사명감과, 방송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과, 갑작스럽게 굴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따라가는 데 분주한 마음은 이리저리 뒤엉킨다. 그 안에서 최소한의 윤리 준칙이 무너지기 너무 쉬워 보이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제작자의 마음보다 더 징그러운 것을 발견하는데, 내 안에서 발견한 시청자의 마음이다. 사건 전개를 궁금해 하면서 상황이 전개되기를 기다리는 기자의 마음, 또 나의 마음. 그건 어디를 향하고 있나. 심지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모두가 각자의 스크린을 각자의 알고리즘 안에서 보고 있는 세상이다. 더블체크되지 않은 정보 채널이 마구 난립하는 세상.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언론인들이 서로 논의하며 갈등하여 적정선을 찾아가는 결과물조차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칠 수 있는데, 그 과정조차 생략된 '가짜 뉴스 채널'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실시간으로 본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한때 실시간으로 보면서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렸다. 거대한 참사가 일어나는 장면을 몇날며칠 우리가 가만히 보고 있었던 순간들. 정제되고 편집된 뉴스 영상이 아닌, 마구잡이로 찍힌 사고 현장을 조용한 방에서 핸드폰으로 들여다 보면서 '이걸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맞아?' 싶었던 순간들. 가슴이 쿵쾅거려 잠들기 어려웠던 밤들로 이어졌지만, 이런 날들이 길어지고 아득해지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지난 15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 얼추 추산하기로도 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이 중 70% 가량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UN의 분석이 있었다.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거라는 추측이, 카더라 통신이 아닌 의학 학술지에 실렸다. 병원과 학교는 의례적으로 마지막 안전지대지만, 전쟁 규칙을 무시하고 조준 폭격하기도 했다. 하루에 몇 명씩 죽었다더라, 그 중 아이들이 몇이라더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끔찍한 소식을 무수히 들으며 나는 이미 무뎌졌다.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을 미치게 괴롭게 하거나 무뎌지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의 수순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불 꺼진 스튜디오에서 제프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 그곳은 유일하게 희미한 빛이 드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는 게시판이다.
우리의 시선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상황 전개 소식을 듣고 복도에 선 언론인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렸듯. 물론 흔들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다잡겠지만, 언론인도 흔들린다. (흔들렸을 때의 결과가 너무 끔찍하기에, 그들에게 남다른 균형 감각이 주어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지만.) 시청자도 흔들린다. 시청자는 숫자가 되어 언론인에게 영향을 주고, 언론인들은 또 다른 숫자를 창조해낸다. 우리는 순환한다.
그러나 흔들림 끝에 우리의 시선이 희미한 빛 아래 사람의 얼굴에 머물 수 있다면. 결국 시선은 마음 가는 곳을 향하게 되어 있다. 95분을 빼곡하게 채우는 영화적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동시에 영화 바깥 나의 시선을 가다듬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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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정의'는 안녕한걸까?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이를 추적하는 경찰이 있다. 범죄자가 잡히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다. 살인을 저지르면 살인에 맞는 형량을, 성폭행을 저지르면 성범죄에 맞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일반 시민들은 이를 재판하는 판사와 사법부를 믿고 신뢰하려 하지만, 종종 판결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형량이 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며, 사회적으로 그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간다.
피해자들은 평생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 공포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죄를 지은 범죄자들은 자신의 형량을 채우고 나면 죗값을 다 치렀다고 착각한다. 이런 괴리가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범죄자가 더 이상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음에도, 피해자는 여전히 그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조두순의 출소 사건이 있다. 그의 출소 직후 집 앞에 몰려든 유튜버들과 취재진은 지금의 사회가 느끼는 불안과 분노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장면은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 시리즈 <비질란테>, <노웨이아웃 더 룰렛>, 영화 <무도실무관>, 그리고 최근 개봉한 <베테랑2>에도 비슷한 장면이 묘사된다. 이러한 출소한 범죄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그들에 대한 응징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 사회적 현상은 이제 단순한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범죄와 처벌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는 문제로 자리잡았다.
[첫번째 감정] 서도철의 정의감
서도철(황정민)은 사실 단순히 올바르기만 한 경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강력계 형사로서 수많은 범죄자들과 맞서왔고, 그 과정에서 다소 거친 언행과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범죄자들에게 “잡히면 죽는다”는 협박이나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남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신의 가족에게도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식의 말을 자주 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서도철의 내면에 깔린 세계관을 보여주지만, 그가 항상 법을 준수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관객들은 이러한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그가 과연 진정한 정의의 구현자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서도철의 정의는 단순한 폭력의 정당화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범죄자를 체포하고 제압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 한다. 물론 분노에 휩싸여 때로는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만, 그의 팀원들이 그를 제지하며 그가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준다. 이는 서도철이 제도 내에서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의 강한 언행과 행동 뒤에는 법과 질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려는 노력이 숨어있다. 서도철은 자신의 감정에 휘말릴 때가 많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범죄자들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서도철의 정의는 때로는 삐딱하고 비뚤어져 보일 수 있다. 그는 완벽하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서도철은 이상적인 정의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의 거친 정의는 때로는 불안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들과 맞서 싸우려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도철은 결국 제도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투박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두번째 감정] 해치의 정의
해치(정해인)는 서도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그는 경찰이지만, 그가 경찰로서의 공권력을 사용하는 목적은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복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해치는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범죄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직접 처단한다. 그가 추구하는 정의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다. 그는 범죄자들을 법에 맡기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한다. 이런 모습은 서도철의 방식과 대조적이며, 해치의 정의는 더욱 극단적이다. 그러나 해치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대신해 복수를 실천하며, 그 자신 또한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다.
해치가 처단하는 범죄자들은 모두 사회에서 적은 처벌을 받고 풀려난 자들이다. 해치는 그들이 다시 사회로 나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 전에 그들을 없애기로 결심한다. 관객들은 해치가 처단하는 장면을 보며 그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해치가 대신해주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해치의 처단은 우리가 실제로 법적 제재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범죄자들에게 통쾌한 대리 복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치의 행동은 때로는 불법적이고 잔인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정의는 많은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해치의 정의는 과연 정당한가? 그의 방식은 법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사법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해치의 정의는 단순한 복수를 넘어선다. 그는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범죄자들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가함으로써 자신이 피해자를 대신해 그들에게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다. 관객들은 그의 처단에 통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올바른 정의의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해치의 정의는 법적 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의 잔인한 복수는 우리가 바라는 정의와 어긋나지 않지만, 그 방법론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세번째 감정] 관객들이 느끼는 정의
<베테랑2>는 관객들에게 두 가지 상반된 정의의 방식을 제시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정의가 더 옳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서도철은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려는 인물이고, 해치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이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해치의 복수가 더 통쾌하고 직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나 약한 처벌을 받고 사회로 돌아온 범죄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해치의 처단은 일종의 대리 만족을 제공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은 서도철의 방식이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치의 복수는 사법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방식이지만, 그가 처단하는 범죄자들도 결국 법적으로는 처벌을 받았다. 해치는 그 처벌이 약하다고 판단해 스스로 판사이자 집행자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이는 사법 체계의 붕괴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해치가 지속적으로 범죄자를 처단할수록, 그가 범죄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는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정의 역시 범죄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관객들은 해치의 처단이 통쾌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한 정의인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결국 서도철의 정의가 옳다는 결론을 내린다. 서도철은 때로는 법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려고 노력한다. 해치가 기괴한 방식으로 범죄자들을 처단하면서 사법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동안, 서도철은 그 시스템을 지키며 범죄자들과 맞서 싸운다. 영화는 관객들이 해치의 처단에 일시적으로 마음이 기울게 하면서도, 결국에는 서도철의 정의에 더 큰 힘을 실어준다. 이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사법 시스템 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 문제와 출소 이후의 사회적 반응에 대한 깊은 화두를 던진다. 이는 1편에서 권력자와의 대결을 주제로 삼았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2편은 더욱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범죄자들의 처벌과 형량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다양한 정의의 형태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영화의 연출은 이전 작품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여, 서도철과 해치의 대립을 통해 사법 시스템 내에서의 정의와 사적 복수 사이의 경계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황정민은 서도철이라는 인물을 거칠지만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정의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표현해낸다. 반면 정해인은 해치라는 인물을 통해 복수와 정의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을 차갑고 날카롭게 연기한다. 그의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실현하려는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두 배우의 연기력은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고, 관객들이 이들의 정의에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베테랑2>는 단순히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액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현재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빌런을 점점 더 강력하게 그려내는 것과는 다르게, <베테랑> 시리즈는 보다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며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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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마블이 나아가는 다양성, 그리고 차별? (페이즈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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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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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04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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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어둠 속의 미사> 공식 예고편
어 버린 듯 무료함으로 가득 찬 작은 섬마을. 이곳에 카리스마 넘치지만 미스터리한 젊은 신부가 부임한다. 그 이후, 고립된 채 살아가던 크로킷섬 주민들에게 기적 같은 일과 불길한 사건이 함께 찾아오는데. 마이크 플래너건이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의 미사》, 9월 24일 넷플릭스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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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메인 예고편
18세 ‘세진’, 덜컥 임산부가 되어버렸다.
무책임한 어른들에 지쳐 거리를 떠돌던 ‘세진’은
가출 경력 4년 차, 동갑내기 ‘주영’을 만난다.
처음 만났지만 절친이 된 ‘세진’과 ‘주영’,
위기의 순간 나타난 파랑머리 ‘재필’과 ‘신지’까지
왠지 닮은 듯한 네 명이 모여 ‘세진’의 유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우리도 살아야 되잖아요.”
어른들은 모르는 가장 솔직한 10대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