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2022-09-29 21:02:39
[DMZ DOCS] 간절한 집념으로 통하는 하나의 언어
<킵 스텝핑> 리뷰
킵 스텝핑(Keep Stepping) - 루크 코니시 감독 작품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
춤은 힘이 세다. 인종, 외모, 환경, 언어가 달라도 춤은 통한다. 아니, 춤은 새로운 언어로써 기능한다는 것이더욱 옳은 표현인 듯 하다. 춤이 시작되면, 인간의 표면적인 특징들은 사라지고 ‘춤’ 그 자체만이 주목의 대상이 된다. <킵 스텝핑>은 춤으로 말하는 세 인물의 이야기이다.
브레이크 댄서 패트리샤, 팝핀을 추는 가비, 호주 최대 댄스 컨테스트인 Destructive Steps(이하 'DS')를이끌어온 조 윈이 그들이다. 패트리샤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엔지니어 일을 하다 춤을 추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호주에 오게 된 인물이다. 여러 댄서들과 한번에 붙어도 절대 기가 죽지 않은 에너지의 보유자이며, 대회에서 윈드밀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끝없는 연습을 거듭한다. 가비는 칠레인 어머니와 뉴질랜드 원주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춤에 대한 반대로, 가족들과의 연을 끊고 홀로 호주에 살고 있다. 그러나 가비는 자신의 뿌리와 전통춤을 잊지 않고, 특기인 자유댄스에 전통 서사를 섞어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조 윈(이하 조)은 한국에서 태어나 3살부터 호주에서 자란 한국계 호주인이다. 조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아버지의 학대와 학창시절의 인종차별로 인해 지워낼 수 없는 심적 상처를 입는다. 조의 곁을 지켜준 것은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될 수 있었던 '춤'이었다. 조는 10년째 호주 스트리트 댄스 대회를 개최하며 해당 대회가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가비와 패트리샤는 열정을 먹고 산다.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현실에 고뇌하다가도, 몸을 움직일 때 만큼은 걱정의 이면에서 흐르듯 비상한다. 공원부터 연습실, 광장의 한켠까지 모든 곳이 이들에게는 무대가 된다. 새로운 동작에 자신의 개성을 묻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행인들의 언짢은 시선은 방해 요소가 되지못한다. 단순하게, 때로는 무식하게 춤만 추는 것 같다는 인상은 영화가 진행되며 완전히 전복된다. 체형과스타일, 신념을 모두 고려해 이루어지는 작은 동작들은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이들의 집념은 지독히 간절해숨을 죈다.
<킵 스텝핑>의 피사체들은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고, 경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커뮤니티는 경쟁보다는 단합을 선물한다. 여성, 이민자, 소수 인종, 혼혈, 교포, 청소년, 비주류... 마이너리티에 속한 인물들은 경쟁을 통해 소통하고 소통을 통해 단합한다. 이들의 손끝에는 전하고 싶은 말들이담겨 있다. 용감한 움직임 속 스트리트 댄스가 주는 감정의 분출과 치유는 그 자체로 연대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목표를 향해 집요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좌절을 모르기에 아름답다. 아무리 춤에 문외한이더라도, 당신은어느샌가 가비와 패트리샤, 그리고 조를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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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들 / The Dreamers
/ 간단한 줄거리 /
프랑스로 유학 온 미국인 유학생 영화광 매튜가 시네마 테크에서 이사벨,테오 남매를 만난다.
세 사람은 관심사도 같고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에 이끌려 급격히 친해지게 된다.
테오와 이사벨 남매의 부모님이 한달간 여행을 떠난 틈을 타
매튜는 그들과 함께 남매의 집에서 살게 된다.
같이 살면서 알게 된 남매의 특이한 관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그들의 행동.
그러나 결국 매튜 또한 그들의 행동과 생각에 물들게 되고,
서로 친구 이상의 정신적 육체적 교감을 하게 된다.
/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 /
영화의 분위기와 색감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스토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세 박자가 너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가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근데 이 영화의 매력은 딱 여기까지.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꼽는 영화여서
보기 전에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내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명작이라고
꼽을 만한 부분이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영화의 내용이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몇번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게 뭐 아름다운 청춘(?) 사랑(?) 여름밤의 꿈(?) 정도로
바라볼 수 도 있지만.
나에게는 쫌 힘들었다.
그러나
내용은 쫌 비상식적이긴 해도
서로에게 퀴즈를 내며
중간 중간 다른 영화를 삽입하여 보여주는 편집방법은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들만의 퀴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관객도 그 퀴즈에 참여하는 한 사람이 되게끔 한달까.
그리고 중간중간에 테오와 매튜가 서로의 생각이 더 옳다며
주장할때도 나도 모르게 어떤 배우, 어떤 기타리스트가 더 나은지
혼자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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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 /
몽상가들
The Dreamers
왜 제목이 몽상가들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만의 해석이 나왔다.
몽상 :
[명사] 1. 꿈속의 생각. 2.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또는 그 생각.
1-1. 비상식적인 그들의 관계와 행동들 자체가 결국
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으로 보아
이 내용자체가 몽상이라는 것이다.
1-2. 1-1의 근거(?)라고 생각 되는 부분은
마지막 씬.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들의 이름이 올라갈때
뒷 배경은 점점 색을 잃고
마지막엔 흑백으로 물들어 있다.
흑백으로 바뀌어 버린 배경은
결국 이 또한 영화(몽상)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 몽상가들은 1960년대 배경으로 영화 중강중간 삽입 된 모든 영화들은 모두 흑백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영화에서 결국 '몽상가들 또한 영화다' 라고 알려주는 근거로
흑백배경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
(그러므로 감독이 '이 또한 영화니까 비상식적인 내용에 대하여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지 마시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 테오와 이사벨.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만 옳다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라 했던 테오.
그러나 그는 사실 영화 내내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는 행동은 성숙하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언제나 테오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며 테오의 의견만 따르는 미성숙한 이사벨.
결국 자신의 이상향을 따라할 뿐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 한 그들은 몽상가들에 불과하다.
꿈꾸는것도 좋지만 언젠간 깨어나야해!
매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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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P.> - '갈 곳 없는 청춘을 쫓다.'
D.P. (D.P.,2021)
개봉일 : 2021.08.27 (넷플릭스 공개)
감독 : 한준희
출연 :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이준영, 신승호, 조현철
‘갈 곳 없는 청춘을 쫓다.’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D.P.>가 2021년 8월 27일, 높은 기대치와 많은 관심 속에 공개되었다. 주인공 안준호 이병과 한호열 상병 역을 맡은 정해인, 구교환 배우의 신선한 조합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높은 작품이었는데,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두 배우가 각자에게 꼭 알맞은 옷을 입고 내뿜는 케미가 상당해 이야기를 제외하고도 두 캐릭터의 파트너십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다. 정해인, 구교환 배우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이 시리즈를 보다 보면 두 배우가 흘리는 매력에 금세 빠져버릴지도 모르겠다. (난 이미 그전부터 허우적대고 있던지라 더 할 말이 없다...)
<D.P.>는 어려운 가정 사정을 뒤로한 채 입대한 후, 헌병대로 차출돼 특유의 눈썰미와 센스로 탈영한 군인을 쫓는 군인. 'D.P'가 된 안준호 이병과 그의 파트너 한호열 상병의 이야기다. '군인을 쫓는 군인'의 이야기라 하여 추격극이 주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D.P.>는 단순한 추격, 액션극이 아니었다.
20살 초반, 갓 성인이 된 우리나라 남자들은 좋든 싫든, 어떻게든 국방의 의무란 것을 지게 된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국방부의 시계에 맞춰 청춘의 일부를 헌납하게 되는데, 이 의무에 대해선 항상 논란이 많다. 말도 안 되게 적은 월급, 계급제 아래 잔혹하게 이어지는 가혹행위, 군사 비리, 인권문제, 병사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는 불합리한 판단 등등.. 군대란 것이 공개적이기보단 폐쇄적인 집단이다 보니 모두가 알면서도 쉬쉬하고 넘어가는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D.P.>는 이 문제들을 준호, 호열이 쫓는 탈영병들을 통해 비춰낸다. 그리고 준호와 호열이 가진 트라우마들과 그를 조금씩 극복하는 모습,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보여주며 안준호 이병과 한호열 상병이라는 인물에게 인간성과 입체감을 부여하며 몰입력을 끌어낸다.
탈영병들은 말한다. “더 이상 쫓아오지 마.” “내가 뭘 잘못했어.”
20대 초반의 남자들에겐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부대 밖으로 뛰쳐나가는 건 엄연한 군법 위반이다. 탈영병에겐 탈영이라는 죄가 있다. 하지만 탈영병에게만 죄가 있는 걸까?
호열은 이렇게 말한다.
“탈영병 잡아오면 뭐해. 안에서 이러는데 탈영을 안 하고 배겨?”
모두가 쉬쉬하는 가혹행위와 근절되지 않는 군사 비리, 병사들을 가족이라기보단 진급 수단의 하나로 보는 간부. 바뀌지 않는 현실들. 탈영병은 이 문제들에 떠밀려 벼랑 끝에 선, 연약하고 어린 청춘이다. 탈영병을 다시 군대로 끌어다 놓아도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다른 곳으로 전입될 뿐이고, 탈영병에겐 상처 위에 ’탈영병‘이라는 딱지가 붙을 뿐, 아무도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는다. 탈영의 결말은 탈영을 하게 만든 문제의 해결이 아닌, 탈영병이란 낙인과 영창뿐이다.
군인이라는 신분에 발 묶인 채로 흔들림을 견디지 못해 탈영병이 된 이들. D.P가 된 준호와 파트너 호열은 탈영병들의 이야기를 파헤쳐 가며 문제를 통감하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성장한다. 반듯하고 거침없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숨기고 사는 인물 준호와 속옷 고무줄을 퉁-튕기며 극의 분위기를 띄우다가도 곧 색다른 얼굴로 돌변해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 호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진 두 인물은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달린다. '도망간 군인을 잡는다.'
처음엔 '설렁설렁하다 만약 못잡으면? 또 나와서 잡으면 돼-'(해당 보직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시작된 탈영병 체포는 극이 진행될수록 죄책감, 책임감 같은 감정과 새로운 문제와 무게감이 더해지며 시즌 1의 마지막쯤엔 상당히 묵직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해도, 어떤 사고를 쳐도 결국 변하는 건 없는 시스템 속에서 끝까지 내몰린 청춘에 공감하며 눈물짓는 건 그들과 똑같이 아픈 청춘뿐이다. 예상보다 훨씬 무겁고 아픈 이야기였다. 이렇게 내쫓긴 탈영병들의 청춘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매화 반복되는 오프닝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울음을 토해내는 갓난 아이가 나오고, 아이가 자라나는 순간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아이(준호)가 입대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화면 너머에 앉아있는 우리를 바라보듯 뒤를 돌아 어딘가로 시선을 던진다. 그와 시선을 맞추고 있는 당신은 탈영병들과 같은 아픔을 가진 청춘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묵인하거나 그들을 괴롭힌 방관자 또는 가해자인가. 준호의 시선은 <D.P.>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군인입니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 불안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준호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 어머니와 동생을 사랑하고 동정하지만 이 가족을 떠나고 싶었기에 더 이상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준호는 가족들을 두고 홀로 연병장으로 향한다.
2014년 선진 병영이 도입되기 전, 지금보다 폭행과 가혹행위가 더욱 심했던 시절. 준호는 군인이 된다. 민간인이 아닌 군인. 민간인에게 'Touch My Body'가 즐거운 노래 가사라면 내무반에서 'Touch My Body'는 말 그대로 폭행 또는 몸을 더듬는 성추행을 의미한다.
준호가 머무는 내무반의 고참 황장수와 류이강은 가까운 기수 몇 명을 제외한 후임들을 심하게 괴롭히는 선임이다. 준호의 가장 가까운 선임 조석봉 일병은 황장수, 류이강과 다르게 후임인 준호를 챙기며 “우린 나중에 애들한테 잘해주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가혹행위와 성폭력은 봉디(석봉+간디)라는 별명을 가진 착한 청년마저 미치게 만든다.
모두 알고 있지만 쉬쉬하고 있는 가혹행위들. 석봉과 탈영병들은 이와 같은 이유로 점점 망가지고 끝내 넘어선 안될 선을 넘어 도주한다. 하지만 이들은 잡히면 안 되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옥 같은 군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대부분의 탈영병들은 집이 아닌 길거리 어딘가를 헤매다 다시 군대로 돌아간다. 무슨 짓을 해도 바뀌지 않을 지옥 같은 그곳으로.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앉아있으면서도 “여기가 편하다”고, “갈 곳이 없네요”라고 말하는 탈영병의 한마디에 그간 그가 겪었을 아픔과 고통이 묻어난다. 준호와 호열은 탈영병들을 잡으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젖어든다. 하지만 준호와 호열은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 탈영병을 다시 부대로 인도하는 순간, 이들의 영향력은 끝이 나고 윗선에서는 진급에 영향이 간다는 이유로 가혹행위를 최대한 쉬쉬하고 덮으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기심과 잔혹함은 석봉이 탈영한 후 더욱 여과 없이 드러난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던 전우를 가차 없이 쏘라 명령하는 부대장 앞에서 박범구 중사와 임지섭 대위는 서로에 대한 경쟁심을 내려놓고 석봉을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좁고 폐쇄적인 군대라는 사회에서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사람이 나에게 선을 넘는 행동과 가혹행위를 반복한다면, 계급제라 반항 한 번 할 수 없다면, 윗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방관하고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목숨을 끊는 것 또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하는 것밖에 없다. 뭐라도 바꾸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 탈영을 결심한 탈영병 신우석, 허기영, 허치도, 조석봉. 이들의 필사적인 탈출과 죽음은 과연 무엇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가혹 행위로 탈영을 했던 허기영 일병의 어머니가 답답해하며 묻는다. “어떻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 피해자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가해자도 분명한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그리고 수많은 피해자를 봐왔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썩은 부분들. 총을 든 석봉 앞에서 “우리가 바꾸면 되지”라고 말하던 호열의 대사가 무색할 만큼 이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석봉은 수통마저도 6.25 때 쓰던 것인데 어떻게 바뀌냐며,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선택한다. 착한 선생님이었던 석봉, 친하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던 석봉,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었던 석봉, 준호에겐 가장 의지가 되던 선임이었던 석봉이란 청년은 이제 없다. 그는 '선임을 납치한 뒤 자살 시도한 탈영병'으로 뉴스에 오르내릴 뿐이다. 사람 때리는 걸 못해서 유망주로 주목받던 유도마저 관뒀다는 선한 마음씨의 석봉이 칼을 휘두르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모습과 자살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르겠다. 칼과 총을 든 탈영병이기 이전에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어린 청년이었을 뿐인데.
석봉의 자살시도와 함께 6화가 끝난 후 나오는 부가 영상은 이 먹먹한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석봉의 친구가 석봉처럼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고 말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선임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에서 선임들과 변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 원망이 가득 느껴진다. 결국 총기를 난사한 병사가 되고 자살한 탈영병이 되는 건 피해자들뿐이다. 가해자들은 무사 전역을 하거나 심해야 영창과 전입, 며칠간의 반성. 그게 죗값의 전부다. 돌아갈 곳 없는 지친 청년들의 마지막 선택지 탈영. 그리고 그를 쫓는 또 다른 청춘. 탈영과 일들은 벌어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피해자의 눈물과 죽음 앞에서 책임감을 느끼는 건 또 다른 청춘(준호,호열)이 유일하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조금 날카롭게 말하자면 <D.P.>를 보는 시청자들 중에서도 분명 황장수와 류이강처럼 군 시절 누군가에게 가혹행위를 하거나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오프닝 영상에서 시청자 쪽을 바라보는 준호의 눈빛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황장수처럼 자신의 죄를 전혀 알지 못하고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겠지?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줄이고, 이번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D.P.>의 주인공 안준호와 한호열은 겉으론 강하거나 유머러스해 보이지만 각자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준호는 대체적으로 ‘죄책감’과 연관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는 영창 근무를 서는 날, 영창 안에 갇힌 죄책감들과 마주한다. 첫 근무 날 구하지 못했던 탈영병 신우석의 환영,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어머니가 “왜 도와주지 않냐”며 묻는 환영과 같은 것들 말이다.
준호는 술 먹고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돈을 빼앗기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고 그래서인지 가정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준호는 3화에서 탈영병 정현민을 검거하며 만난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여자 ‘영옥’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녀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술 먹고 폭력을 일삼는 남자에게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팔아가며 돈을 바치는 영옥과 어머니. 준호는 영옥을 도우며 어머니를 돕지 못한 죄책감의 일부를 극복하고 뒤이어 ‘밥은 먹었냐’는 시답잖지만 따뜻한 인사를 담은 전화를 한다.
또 하나의 죄책감은 ‘탈영병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죄책감은 차후에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변한다. 준호는 석봉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석봉의 뒤를 쫓지만 석봉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고 자살한다. 석봉의 죽음 앞에서 가장 크게 비명과 울음을 토해내던 준호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그는 석봉의 죽음 이후 첫 근무 당시 구하지 못했던 탈영병 우석의 납골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누나를 보며 쓰린 표정을 짓는다. 열을 맞춰 걸어가는 병사들과 반대로 걸어가는 준호의 뒷모습엔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 속에서 죽어간 청춘들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진다.
호열은 준호의 파트너이자 D.P 조장이다. 꽤 오래 D.P 생활을 한듯한 그는 내무반과 크게 엮이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영향력을 챙겨온 꽤 센스 있는 인물로 보인다. 국군 병원에서 흡연을 하는 다른 아저씨들에게 페브리즈를 팔며(?) PX 냉동을 뜯어내는 그의 능청스러운 장사 솜씨와 복귀가 결정되자마자 “얘네 담배 피웠어요”라며 모든 걸 폭로해버리는 한마디에서 그의 성격이 단박에 드러난다.
능청스럽고, 유연하면서도 선을 알고 내 몫은 확실하게 챙기는 인물. 굳어있는 준호에게 “네가 내 아들이구나?(아들 군번)”라고 물으며 자연스레 다가가는 모습과 황장수가 후임들을 말도 안 되게 갈구는 걸 발견했을 때, 중간에서 준호를 채간 후 황장수가 만든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따뜻하고 영리한 면을 볼 수 있었다.
호열이 가진 트라우마는 이전 활동에서 만난 칼을 휘두른 탈영병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무심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있겠다. 정현민을 잡으러 갈 때 호열은 준호에게 “칼침 놓는 탈영병도 있다”며 가볍게 말을 던지는데, 이후에 마주친 호열의 동기 ‘김규’를 통해 우리는 이 말이 호열의 경험담임을 알게 된다. 호열은 이런 트라우마를 겉으로 전혀 티 내지 않고 준호와 D.P 활동을 하고 있지만, 영화관에서 마주한 칼을 든 석봉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호열은 시리즈의 초반부에 ‘과호흡과 불안한 상태’ 때문에 병원에 검사를 하러 갔었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이 불안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호열의 다른 트라우마는 ‘무심한 부모님’이다.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호열은 꽤 잘 사는 집안의 외동아들로 보인다. (정현민을 잡을 때 쓴 김규의 300만 원을 바로 이체해 주는 걸 보면) 하지만 호열이 부모님과 통화를 하거나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호열과 준호가 함께 포상 휴가를 나왔을 때, 호열의 집엔 아무도 없었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다. 라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호열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게, 부모는 왜 나를 낳았을까?”
이 말과 사진 한 장으로 속단할 순 없지만 교복을 입은 호열과 부모님의 사진에선 왠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런 모습을 봐서일까, 호열이 연락을 받지 않는 준호의 집에 찾아가 준호의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는 장면에선 왠지 호열이 ‘이런 분위기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일 시즌 2가 제작된다면 한호열 상병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원작 웹툰을 보지 않고 바로 감상했는데, 시리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자연스레 원작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원작을 먼저 보고 시리즈를 감상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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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미완성인 무슬림 히어로 탄생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뉴저지 주의 저지시티에 사는 무슬림 10대 소녀 '카말라 칸(이만 벨라니)'. 그녀는 열렬한 슈퍼 히어로 덕후로 특히 캡틴 마블을 향해 상상을 초월할 팬심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인 '브루노(매튜 린츠)'와 함께 어벤져스 행사인 어벤져 콘에 놀러 간 카말라는 캡틴 마블 코스프레 대회를 앞두고 외할머니한테 받은 팔찌인 '뱅글'에 의해 자신에게 초능력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이에 본격적으로 능력을 연습하며 슈퍼 히어로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한 카말라는 그녀에게 힘을 준 뱅글이 현실과 분리된 또 다른 차원인 '누어 디멘션'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집안사와 지구의 안전이 걸린 모험에 나선다.
디즈니+에서 공개된 <미즈 마블>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의 여섯 번째 드라마로, 평범한 고등학생이자 캡틴 마블의 열렬한 팬인 카말라 칸이 갑작스레 초능력을 얻어 히어로로 거듭나는 탄생기를 그린다. 사실 최근 MCU가 단기간에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다 보니, 해당 작품만의 독특함이 없다면 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미즈 마블>은 범람하는 MCU의 세계관 내에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가지의 고유한 특징을 다양한 장르적 재미로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즈 마블>은 갑작스럽게 히어로가 된 고등학생 카말라 칸의 이야기를 통해 1화에서 두드러지듯이 하이틴 드라마의 재미를 준다. 다음으로는 다른 히어로들과 겹치지 않는 특성인 파키스탄계 이민자 출신의 히어로라는 특징이 있다. 이는 뻔한 하이틴 드라마의 구도를 신선하게 포장해 줄 뿐만 아니라, 4화와 5화에서 역사드라마의 특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증조할머니의 유물인 '뱅글'의 힘과 관련된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있다. 이는 슈퍼히어로 장르 안에서도 MCU만이 줄 수 있는, 확장되어가는 세계관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준다. 그런데 세 장르의 특징이 한 데 뭉치는 순간 <미즈 마블>은 두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6개의 에피소드라는 분량으로 인해 각 장르 안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내지 못하며, 이에 더해 필요한 만큼 깊이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못한 결과 장르적 쾌감도 퇴색된다.
<미즈 마블>에서 가장 먼저 부각되는 특색은 하이틴 드라마다. 특히 '상상력 소녀'라는 1화의 부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이틴 장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발달하고 또 불안해하는 십 대들의 사춘기를 그려낸다. 히어로 영화 중에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고등학생에 불과한 피터 파커가 거미에게 물려 엄청난 근력과 특수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되는 것은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어야 하는 신체적 변화를 상징한다. 또 그러한 변화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고단함이 함축되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사춘기에 겪어야 하는 모든 변화와 그 당시에는 좀처럼 이겨내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변화의 무게감까지 담아내고 있다. 결코 빠질 수 없는 청춘 로맨스도.
새로운 히어로 미즈 마블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가 신체적 변화에 의한 삶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묘사한다면, <미즈 마블>에서는 정신적 변화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카말라가 꿈꾸던 초능력이 그녀에게 발현되는 사건은 사춘기 청소년의 상상이 현실이 될 때 가능해지는 변화에 대한 비유이고, 캡틴 마블의 팬인 그녀의 모습은 대상이 아이돌 그룹이 아닌 슈퍼히어로일 뿐 현실성을 더해준다. 또한 카말라의 친구인 브루노가 꿈꾸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합격 소식을 듣게 된 것 역시 이 하이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하이틴 장르의 매력은 탁월한 연출 기법 덕분에 더욱 빛난다.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녀에게 캡틴 마블과 새로운 초능력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며, 화면을 순간적으로 180도로 전환시키는 방식의 연출법은 카말라의 내면 속 환상과 덜 흥미로운 현실 사이의 간극을 잘 전달하면서 카말라 칸이라는 캐릭터를 멋지게 소개한다.
그다음으로 <미즈 마블>은 그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문화적 배경을 전면에 내세운다. 특히 미국 사회 내의 무슬림과 서남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일단 파키스탄 전통 음식과 의상, 그리고 기도를 하기 전에 내는 일종의 외침인 '아잔 혹은 아단(أَذَان/ʾaḏān)'을 현대적으로 편곡한 ost는 이전까지의 MCU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블랙 팬서>가 아프리카 지역의 리듬감을 살려낸 ost로 찬사를 받은 것과 같다. 이는 주류 문화에서 소외되어 왔던 문화적 특성이 수용되고 조화를 이룰 때 사회적 차원에서 다양성이라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시청각적으로 매끄럽게 전달한다. 이처럼 여전히 낯설고 이질적이며 비주류인 문화적 배경을 중심에 놓은 결과, 드라마는 무슬림들의 '소외감'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특히 소외감은 이슬람교와 무슬림들을 향한 선입견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무슬림과 외부인의 일상이 충돌하며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편견을 보여준다. 알려지지 않은 히어로를 추적하는 '대미지 컨트롤' 요원들이 강압적으로 모스크를 수색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에 모스크의 이맘은 자신들은 법을 어기지 않았고 오히려 요원들이 신발을 벗어야 하는 모스크의 규정을 먼저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 쿠란의 가르침 따위는 필요 없다는 대미지 컨트롤 요원에게 자신이 인용한 문구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것이었다고도 응수한다. 카말라의 절친인 '나키아(야스민 플레처)'가 히잡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흔히 히잡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차별의 상징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나키아처럼 서방에 사는 여성 무슬림에게 히잡은 자신의 민족, 문화,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주류에서 소외되어 평 면화되었던 무슬림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적 특성의 공존과 조화를 위해서는 비주류로 인식되던 특정 공동체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은 미즈 마블이라는 히어로만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그녀의 능력이 평번한 인간들의 눈에, 이 세계의 주류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힘인 '누어'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는 그녀가 존재 자체로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사이의 가교라는 의미다. 따라서 그녀는 직접적으로는 파키스탄계 이민자, 더 넓게는 미국 내 무슬림, 보다 확장시켜서는 <미즈 마블>을 보는 모든 소외된 이들과 비쥬류들을 대변하는 히어로나 다름없다. 심지어 카말라와 친구인 브루노가 아웃사이더라는 점을 고려하면 소외감이라는 테마는 하이틴 드라마적 요소와도 잘 어우러진다. 이처럼 여러 장르적 특성을 하나의 주제 안에, 미즈 마블이라는 히어로의 정체성 하에 묶어내는 방식은 이 히어로의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만 <미즈 마블>의 매력은 근래 공개되는 마블 작품들이 모두 공유하는 단점으로 인해 목표한 만큼의 임팩트를 주지는 못한다. 세계관 확장 혹은 확립을 위한 요소들이 난립한 결과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와 재미를 깎아 버리기 때문이다. 카말라가 유전적으로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등장한 핵심 소재인 팔찌 '뱅글'에 주목해야 한다. 쿠키 영상에서 의도치 않은 사건을 일으킨 것이나 5화에서 카말라가 과거로 이동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뱅글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가능케 하기에 앞으로의 멀티버스 사가를 이끌 핵심적인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계의 물건이 아무도 모르는 이유로 지구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등장한 '텐 링즈'와의 공통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다른 마블 작품들과 연계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점은 일견 <미즈 마블>의 매력 포인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학교와 가족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고등학생의 고충과 미국 사회 속 파키스탄 이민자 혹은 무슬림들의 아픔을 보여주느라 많은 분량을 할애한 상황에서 세계관의 확장까지 시도한 결과 자연히 드라마의 서사적 완결성이나 개연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드라마가 인도-파키스탄 분열과 관련된 논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사실 인도-파키스탄 분할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영리하게 활용할 경우 짧은 순간에 카말라의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MCU의 무대를 공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확장시키기에 적합한 소재일 수 있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과 <문나이트>처럼 카말라가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진실을 찾아나가며 영웅으로 각성해 나가는 모습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즈 마블>은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요구되는 미묘한 균형을 잡지 못했다. 4화에서 카말라의 할머니는 자신이 파키스탄과 인도 양쪽에 모두 소속감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영국인들이 만든 국경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될 당시 파키스탄이 먼저 인도로부터 독립과 분리를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언급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백인 중심적인 시각의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힌두교도와 무슬림을 차별한 영국의 식민통치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열을 낳았다고 이해한다면 카말라의 할머니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전달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드라마는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당시 사람들이 겪었을 혼란만 배경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예민한 역사적 사안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었고, 논란이 발생했다. 이는 세계관 확장 대신 보다 세밀한 사건 묘사를 통해 카말라 본인과 과거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쉬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이에 더해 부가적인 문제들도 생겨난다. 이야기의 키를 쥔 것처럼 보이던 '레드 대거즈'라는 단체는 MCU의 역사와 배경을 설명해준 이후로 분량과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다. 드라마의 주요 갈등이 봉합되는 마지막 회의 전개 역시 지나치게 빠르다. 액션의 비중이 지나치게 적은 것도 문제다. 물론 애초에 하이틴 드라마로 출발하였고, 첫 작품이기에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파이더맨도 하이틴 영화에서 나름의 규모와 퀄리티로 무장한 액션씬을 선보였던 것을 고려하면, 엄연히 히어로물인 <미즈 마블>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미즈 마블>은 제목과 달리 아이러니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카말라라는 이름의 어원인 '카말'은 아랍어로 '완벽'을 뜻하며,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드어로는 '놀라움'이라는 의미다. 이는 카말라의 히어로 이름이 미즈 마블(marvel)로 정해지는 이유다. 다만 그녀의 탄생기인 <미즈 마블>이 아쉽게도 아직 완전치 않고 놀라기에도 충분치 않기 때문에 드라마는 제목과 내용 사이에서 모순된 측면이 존재한다. 과연 서로 다른 두 마블, 캡틴 마블과 미즈 마블이 만날 <더 마블스>에서는 보다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 섞인 채 기다려봐야 알 듯싶다.
P(Poor, 형편없음)
무슬림 소녀의 상상이 현실이 될 때. 그런데 상상이 너무 장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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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애의 범위를 넓히다
인간의 선택: 박해와 공존
로봇이 인간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보폭을 맞춰 걸어간다. 다른 로봇은 우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달랜다. 승려복을 입은 로봇들은 반격 의사도 없이 미군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크리에이터>는 AI 로봇의 존재가 일상화되기를 넘어 정치적, 군사적 문제가 된 미래 사회를 그린다. LA에서 핵폭발 사건이 일어나고 미국은 이를 인간을 향한 AI 로봇의 공격으로 간주한다. 미국은 AI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거대한 미사일 함선을 지구 상공에 띄운 ‘노마드’라는 무기로 공격한다. 반면 뉴아시아는 AI와의 공존을 선택한다. 태국, 네팔과 같은 나라를 바탕으로 설정된 뉴아시아는 불교적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불교적인 형태의 석상을 돌리자 AI로봇 연구소의 입구가 드러난다. AI로봇들은 뉴아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로봇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뉴아시아는 오히려 인간들이 로봇의 보호 아래 살아가고 있다.
미군 장교는 말한다. 사피엔스보다 독한 종이 나타나면 인간도 네안데르탈인처럼 멸종할 것이라고. 미국은 사피엔스의 멸종을 걱정한다. 다르게 보자면 이는 AI로봇을 사피엔스와 대응되는 하나의 종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인간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지구의 다른 모든 종이 악이 아니듯 AI로봇이 절대적 악은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미국에게 있어 인간의 범위는 미국인에 한정되어 있다. 미국의 전쟁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AI가 공존의 범주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싸움이다. 공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택의 의지다.
구원자의 등장
AI 로봇은 미국인들의 탄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원한다. 이들은 도구나 가축과 같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해방을 원한다. 혁명을 모의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설파하는 로봇과 승려 로봇의 존재는 이들이 이미 만들어진 목적에 앞서 존재론적 의미를 탐구하는 주체로 우뚝 섰다는 의미다. AI 로봇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알파-오’는 만들어졌다. 자유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비폭력으로 전쟁을 끝내고자 세상에 왔다. 이름 그대로 로봇들의 구원자다. 아이의 외형을 가진 로봇 ‘알파-오’는 모든 기계들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다. 기계를 끄고 킬 수 있는 힘은 로봇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기계문명에 바탕을 둔 미래사회에서 절대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니르마타의 소재에 접근했던 전직 군인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AI로봇의 창조자인 니르마타와 무기 알파-오를 제거하라는 명령에 따라 뉴아시아로 향한다. 하지만 조슈아는 AI 로봇과 미국의 전쟁보다 이전 작전에서 잃었던 아내 마야(젬마 찬)의 행방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AI연구소에서 발견한 알파-오는 마야의 행방을 알고 있었고, 조슈아는 알피라 부르며 마야의 흔적을 따라간다. 알피는 니르마타인 마야에 의해 만들어진 ‘노마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무기로 창조된 로봇이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감독은 인간과 AI의 공존을 이어주는 매개로 로봇의 창조자인 니르마타와 인간 배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간자 알피를 내세운다. 니르마타가 인간으로서 로봇에 대한 사랑을 가진 존재라면 알피는 AI 로봇으로서 인간과 로봇에 대한 사랑이 입력된 존재다.
프로그래밍된 태도에 사랑이나 구원 같은 말을 붙여도 될까? 알피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거나 손바닥을 갖다 대면 모든 로봇과 기계는 그의 통제 아래에 놓이는 기적이 행해진다. 인간의 증오와 그로 인한 공격은 기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모든 공격을 멈추는 것이 니르마타의 뜻이라면 알피는 그 뜻을 행하는 자다. 알피의 의지는 인간이자 니르마타인 마야에 의해 계승되었다. 알피는 인간에 대한 증오가 아닌 사랑을 품고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알피는 로봇과 인간 모두에 대한 사랑을 지닌 구원자다. 알피의 사랑은 로봇과 인간을 아울러 가장 넓은 범위를 감싸 안을 수 있다.
왜 아이일까?
마야와 조슈아 사이에서 잉태된 태아의 배아 스캔을 통해 창조된 것이 알피다. 인간과 로봇의 중간자인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로봇을 완전하지 않은 아이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기술과 힘이 완전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면 적절한 도구나 무기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아이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다. 알피의 힘은 어마어마한 성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성장은 불확실하다. 로봇은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알피는 어디에 쓰일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평화와 자유라는 목적지에 닿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조슈아의 도움으로 노마드를 격퇴했지만 전쟁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AI 로봇의 학습은 성장과 차이가 있다. 성장은 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시기를 지나야 한다. 알피의 성장은 원격 제어 영향력과 힘을 키우는 것뿐만이 아니다. 알피는 이미 미국의 자본과 기술의 집약체인 무기를 격파했다. 알피는 무기가 아닌 인격체로서 성장해야 한다. 인간과 로봇을 두루 경험하며 내면의 사랑을 키워야 한다. 절대적 힘을 가진 완전한 강자는 공동체를 규합하기 위해 힘을 내세우기 쉽다. 무력한 아이만이 오히려 공동체의 사랑과 보호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다. 로봇의 보호 아래 유년시절을 보낸 마야는 알피 역시 이를 느끼기 바라지 않았을까. 알피가 어떻게 성장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정보가 프로그래밍되어 있기에 그 미래는 믿어볼 만하다. 바로 인간과 로봇에 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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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2022>
기대하고 궁금했던 영화를 빠르게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운이 좋게도 제게도 그런 기회가 왔네요. 아카데미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 <로스트 도터>를 시사회를 통해 가장 먼저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여하튼 <로스트 도터>는 상당히 어려운 감정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는 고통들을 쉽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다만 <로스트 도터>가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점은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모성애의 어머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듦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버리고 나오는 어머니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식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기심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영화는 단순히 낳았다고 모든 것을 줄 수 없는 모성의 뒷면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육아의 그 참지 못할 스트레스와 더불어 아이들을 버리고 나왔다는 죄책감으로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인물을 그저 보여주면서 약간은 일반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그런 감정들을 점점 스며드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랄까요. 다만 여기에서 그쳤다면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레다의 성장까지 보여줍니다. 어머니라는 것도 처음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게 언제든 간에 성장하면서 메꿔가는 것이겠죠.
직접적인 묘사보단 암시하는 듯한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더불어서 영화는 스릴러처럼 느껴질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안기는 쇼트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로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흔히 예상했던 인물과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소재를 영화적 긴장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올리비아 콜맨과 제시 버클리의 연기가 놀랍습니다. 특히 제시 버클리가 정말 인상적인데, 이전부터 제시 버클리를 눈여겨보셨던 분들이라면 이 영화 역시 충분히 만족하실 것 같습니다. 다코타 존슨도 비중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전 영화들과는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그 어떤 영화보다 육아에 대한 고통을 생생하게 담은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도피를 택한 독특한 인물을 내세운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가 훌륭한 점은 엄마의 삶보단 자신의 삶을 택한 레다를 비난하지 않음과 동시에 자녀란 존재는 얼마나 따뜻하고, 가족을 꾸리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성공한 연출 데뷔작이네요.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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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바하> 잘 만든 한국형 오컬트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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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사제들> 이후로 꽤 기대되는 장재현 감독의 작품이었다.
오컬트나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지 않지만 감독의 디테일들이 매력적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강동원에게만 비친다는 소문의 후광을 못보았다.
사바하에 대한 해석이 굉장히 많다. 그만큼 수용자로에게 많은 걸 던져주고, 인과관계를 엮기 좋은 영화다. 어떤 종교적 상징들은 굳이 수수께끼처럼 풀지 않아도 눈에 보인다.
사바하는 '이루어지게 하소서'와 뜻을 같이 하는 진언이다.
불자가 아니어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반야심경>의 마지막 경구도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못지 사바하'로, 무언가를 바라는 간절히 바라는 산스크리트어다.
그렇다면 뭘 바라는지가 중요하겠다.
영화는 종교계 이단을 파헤치고 다니는 박웅재 목사의 설교로 시작한다. 자신들의 믿음을 이단이라 하는 목사를 공격하는 집단도 보인다.
우리나라 종교는 큰 줄기가 몇 개 있다. 거기에서 뻗어나온 잔가지들이 굉장히 많아 해석에 따라 어디까지를 이단으로 볼 것이냐가 달려있다.
맹목적인 믿음을 이용하여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자들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았다.
어찌됐든 박 목사는 이단을 찾아다니는 게 돈벌이다.
이번에 파고들어간 '사슴동산'은 불교의 한 종파처럼 보이지만 수상한 냄새가 난다.
강원도 영월에서 의문의 살인사건들이 발생하고 수많은 아이들이 실종된다. 그리고 영월에는 '그것'이라 불리는 아이와 그 때문에 역시 숨어 지내는 금화가 있다.
금화는 16년 동안 감금되어 있는 쌍둥이 언니에게 밥을 준다. 그것이 죽어버렸으면, 그것이 없어졌으면 하며 평범한 일상을 바라는 중학생이다.
크리스마스날 그것의 밥에 농약을 타고 집을 나가려고 하지만, 다시 돌아와 밥그릇을 차버린다. 따뜻한 스웨터도 놓고 간다.
'광목'은 수많은 살인을 사주하고 직접 행하기도 했으나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불안할 때마다 경전에 있는 그 문구들을 외워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의 불안을 잠재워주는 건 아주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들었던 자장가.
'그것'은 얄궂은 소리를 내며, 뱀을 보내며, 갖은 수를 써서 그에게 접근하는 이들을 쫓아낸다. 하지만 광목만은 예외다.
광목은 그것에게 다가갔다가 뱀 대신 그것의 손에 발목을 붙잡힌다.
그것으로부터 도망친 광목은 금화를 납치하여 지금까지 영월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들이 죽임을 당한 방식으로, 팥과 부적을 두고 기도한다.
금화는 묻는다. 왜 죽어야 하냐고.
그리고 죽일 거라면 쌍둥이 언니도 같이 죽여서,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광목은 '그것'을 찾아간다. '그것'은 땅을 파고 파고, 끝없이 파내려가 무언가를 발견한 뒤 자신의 몸을 뒤덮은 털을 깎아내고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부처의 모습으로 그를 기다린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광목만을 기다렸다.
"나는 울고 있는 자니라. 너를 기다렸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광목에게 그것은 엄마의 자장가를 들려준다.
미륵이라 불린 김제석. 김제석은 소년 교도소에 있던 네 명의 아이를 양자로 삼는다.
네 명의 아이들은 각자 미륵의 곁에 있는 사천왕이 된다.
1899년생 김제석이 태어난 땅에서 100년 뒤 그의 천적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사천왕들은 1999년생 여자 아이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김제석을 지킨다.
그러므로 교도소에서 네 명의 남자아이들을 살인병기로 쓰는 동시에, 너희들의 시궁창 같은 삶 또한 구원받으리라, 하고 아이들을 꼬셨을 것이다.
한때 김제석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신이라 불린 사나이였다.
하지만 자신의 선(善)이 타인의 시선을 받을 때 목적없던 선에 목적과 욕망이 생긴다.
남의 손에 피를 묻혀 목적을 이루던 김제석은 시종일관 흰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코끼리와 광목을 총으로 쏜 뒤에는 동물의 털로 된 검은 옷을 입는다.
'그것'이 광목의 발목을 붙잡은 것처럼, 전복된 차에서 광목은 김제석의 발목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이 건네준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김제석은 불에 타고, 그때 하늘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불꽃이 터진다.
크리스마스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위해 수많은 아이들이 대신 죽어야 했던 슬픈 날이라는 박 목사의 말처럼, 김제석이 신이 되기 위해 수많은 99년생 여자 아이들이 죽어야 했던 날들이 끝났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유신론자에 가깝다. 그러면서 동시에 진화론을 믿는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신이 어딘가에 있긴 한 것 같다.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니, 그 모습이 필시 건강한 백인 남자의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신이 있다면 외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수많은 장면들을 우리는 매일 목격한다.
신이 있다면 세상을 이렇게 두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곳이 신이 만든 지옥이라면 어떨까. 생로병사가 존재하는 이 세계가 지옥의 모습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붓다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고행했다.
니체의 영원회귀와도 비슷하다. 영원히 다시 태어나서 고통받고, 병들고, 죽기를 반복하는 지옥.
<무간도>에서 무간지옥을 죽지도 못하는 지옥이라 한 것처럼. 그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뿐이다.
차라리 이 세계가 지옥이라 생각하면 지옥을 잘 즐길 방법을 찾는 편이 마음 편하겠다.
그보다는 윤회의 고리를 끊고 다시 안 태어나는 쪽이 좋겠다.
광목은 금화를 죽이려 하기 전에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 말한다. 미륵을 위해 희생했으니 말이다.
김제석은 사천왕의 순교로 신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은 김제석을 죽이기를 바랐다. 광목은 믿음에 의지하여 구원받기를 바랐다.
티벳 승려의 예언은 적중했다. 1999년에 태어난 그것은 김제석을 죽일 광목을 기다렸다.
광목은 깨달음을 얻은 불교 성자 나한처럼, 잘못된 믿음이었음을 깨닫고 그것을 대신하여 김제석을 죽인다.
그것 역시 김제석의 죽음과 함께 죽는다.
광목의 본명은 정나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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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삶을 좀먹는다. 외로운 자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기도 쉽다.
어떤 악인들은 인간의 연약함을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한다. 우리는 나약하고, 지옥(같은 곳)에서 매일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곳에 이유도 모른 채 내던져졌다.
나는 지옥의 수많은 미끼들ㅡ삶을 더 지옥으로 만들어주는ㅡ에 쉽게 중독되어 무지몽매해지기 일쑤이지만, 어쨌든 깨어있어야 한다.
무엇을 바랄 것인가.
신이 되기를, 영원히 죽지 않기를, 부자가 되기를, 사랑받기를, 신은 우리의 바람들을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끝무렵 박 목사의 내레이션이 인상 깊었다.
어디 계시나이까. 우리를 잊으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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